지난 블로그 글

2008년 짧은 글 모음


2008.12.29 12:00

연말인사



  군대 제대 후 처음 디카를 사고, 심심해서 시작한 연말 인사가 이제 일곱 해 되었다. 해마다 들어간 내 사진들 보면 내가 변한 것을 알기도 하고, 또 내가 여전한 것을 알기도 한다. 한 명 한 명에게 보낼 생각을 하며 한 명마다의 이야기를 생각한다. 한 명도,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블로그.를 만들었다. 내년도 올해처럼 살면 끝장이겠구나.라는 절박한 마음이다. 이 사이트를 좀 더 사진가.다운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문장.을 빼낼 작정이다. 문장과 인터액션. 게시판을 없애고, 그 부분들을 블로그로 옮겨가려고 한다. 


  포트폴리오 사진을 제외하면 여기에 올라오는 사진은 거의 없는 셈인데, 내년에는 아포리즘. 게시판에 꼬박꼬박 진지하게 작업한 새 일상의 사진들을 올리려고 한다. 


  이 사이트를 리뉴얼하던 2년 전의 마음 그대로, 여기에서는 사진.만으로 이야기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내 블로그.

  http://forgogh.blogspot.com/






2008.12.24 00:20





1.

  중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서울 동생집에 머물렀다. 시험기간이라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동생이 와서 깨웠다. 새벽 세 시가 지나 있었다.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병원 계신 모습을 보고 올라온 지 이틀 만이다. 면도하고 옷 차려입고 나왔다. 새벽에 바깥 바람은 찼다.



2.

  외할아버지 핏줄은 어머니 밖에 없다. 외할머니는 어머니 어려서 벌써 돌아가셨고, 어린 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그도 얼마 못 자라 죽었다고 했다. 아침에 도착한 영안실에, 어머니는 앉아서 울고 계셨고 아버지는 독경하고 계셨다. 동생과 함께 절하고 나오니 아버지께서 울고 계셨다. 고집스런 외할아버지께 가끔 삐뚠 소리 하신 것이 가슴을 친다고 하셨다. 무남독녀인 어머니를 도와 아버지도 상주가 되셨다.

  철 들고 처음 상복을 입었다. 나는 백관이 되었다. 상복. 그 얇은 옷 한 겹이 무겁다. 피의 무게다. 나를 이 땅에 보내고 또 내가 이 땅에서 이어가야 할 무게를 실감한다. 상복. 새 옷 냄새가 난다.



3.

  내 기억의 시작에서부터 외할아버지의 한 쪽 다리는 불편했다. 내 기억의 시작에서부터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였으므로, 나는 할아버지의 불편한 다리가 할아버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열 살쯤 되었을 때, 논두렁에서 떨어져 구해주는 사람 없이 몇 시간을 찬 논두렁에 방치되었던 할아버지는 그 뒤로 여든 생 동안 반신을 불편하게 쓰셨다고 한다. 외할머니는 어머니가 다섯 살 때 돌아가셨다. 그리고 외할아버지는 외증조할머니와 함께 사셨다. 외증조할머니는 내가 겨우 기억이나 할 무렵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외할아버지는 혼자 사셨다. 차근차근 외할아버지의 삶을 되짚어 보면, 그 한의 크기를 재려다가 지쳐 넘어진다. 

  영정 사진 속에서 할아버지는 깔끔하게 걷어 올린 머리 스타일이다. 살짝 보이는 흰머리카락도 균형이 좋다. 왼쪽 어깨를 높이고, 굳게 다문 입. 체크 무늬 모직 넥타이와 스트라이프 재킷. 메인 조명이 왼쪽 위에서 내려 오고 반대편 조명이 부족한 밝기를 채우고 있다. 이미 오래 전에, 할아버지께서 이 사진을 찍으시러 가던 날을 기억한다. 할아버지께서는 절뚝거리시며 한참을 걸어서 드물게 오는 시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가 이발하시고 면도하시고 옅은 갈색이 퍼져나가는 배경지 앞에 앉으셨을 것이다. 카메라 앞에서 할아버지는 어떤 표정을 지으신 것일까. 기어이 살아낸 일생을 통째 밟고야 말겠다는, 나는 결코 생에게 패하지 않겠다는 각오 같은 것일까. 힘이 다해 갈 때, 저 사진 한 장으로 할아버지는 든든할 수 있으셨을까?



4.

  시작부터 끝까지, 어머니는 서럽게 우셨다. 살아오는 동안의 한의 무게만큼 울음은 무겁고 깊었다. 곡소리는 어떤 해방. 같았다. 쌓이고 쌓여서 그 개개의 형태가 뭉개져버린, 인간의 말이 되지 못한 온갖 부정의 감정들이 비로소 풀려나는 소리 같았다. 밖으로 울어야 할 마지막 핑계가 되어주었던 혈육을 보내고, 이제 남은 삶 동안 어머니는 속으로 우실 모양이다.



5.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문상 오셨다. 노구를 이끌고 와서 두 번 큰 절하고 작게 한 번 절 했다. 늙은 몸은 엎드리기 위해 엎드린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이 걸렸고, 일어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굽혀지지 않는 노구를 무릎 꿇고 엎드리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발인 날 새벽에 꺼지는 향을 갈아가며, 부조함에 들어온 봉투들을 꺼내 정리했다. 노트를 펴서 봉투에 적힌 이름을 옮겨 적고, 봉투 안에 든 만원 짜리를 세어서 이름 옆 칸에 적었다. 날 밝아서 발인 전에는 영안실 원무실에 가서 장례 기간 동안 사람들이 먹은 음식이며 온갖 비용을 정리했다. 카드 하나로는 한도를 초과해서, 어머니와 아버지 카드를 모두 받아 썼다. 



6.

  갓 태어난 아이들을 보고 돌아선 며칠만에 보는 죽음은 비현실적이었다. 아직 태지도 벗지 못한 피부와 검버섯 핀 피부는 아무래도 닮지 않았다. 이것이 변해 저렇게 될 것이라고, 배우지 않았다면 믿지 못 할 뻔했다. 저 피부가 이 피부가 될 때까지, 저 피부는 어떻게 되어갈까?

  장례 기간 내내 카메라는 쭈뼛거렸다. 내 카메라는 아내의 죽음 앞에 춤 추었다는 장자가 되지는 못 할 것이다. 그 사체 앞에서 조리개를 조여나간 아라키도 못 될 것이다. 내 카메라는 참 작아야할 모양이다.




할아버지.

이제, 되었네요.






2008.12.24 00:18


  어려서 누나는 아팠다. 멀리뛰기하다가 다쳐서 두어 달 아버지 등에 업혀 학교 다녔다. 그리고 사방으로 찾아다니며 치료 받아서 겨우 낳았다. 아픈 동안 다시는 누나가 누나의 두 다리로 설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갑자기 다쳤던 것처럼 갑자기 나았을 때 부모님은 우셨다.


  다 자라서 누나는 아팠다.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했다. 큰 수술을 하고 매형이 병수발을 했다. 완치 판정을 받고 매형이 우셨는지, 또 부모님이 우셨는지 나는 모른다.


  건강한 쌍둥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나는 백화점 1층 걷는 중에 들었다. 마음 졸였었는데, 마음 쓸까봐 심한 당부도 못 하고 그저 속으로 빌고 기다렸는데, 출산 후 기운 빠졌지만 건강한 누나 목소리를 듣고 백화점 1층에서 나는 울었다.


  얼른 와서 조카들 사진 찍으라는 무언의 압박.


  아이들은 흐리고 낮은 하늘의 세상과 첫 대면했다. 저 작은 것이 사람이다. 조리원에서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내게 안긴 아이는 초점 잡기 힘든 눈으로 사방을 살폈다. 그러니까, 이 아이는 세상에 태어난 존재의 가치를 고민하고 있는 것일 테다. 아직 익히지 못한 사람의 언어 대신, 전할 수 없는 언어로 어쨌든 무거운 고민을 시작한 것이다. 누나는 웃었다.


  내년 한국에 갈 때는 예쁜 아기 신발 두 켤레를 사야겠다. 





2008.12.04 21:39


  쓰고 싶은 말들, 써야겠다고 다짐한 말들이 많은데 요즘은 왜 그리 글 쓰기가 어려운가. 메모지 한 구석에 아이디어만 적어둔 글도 있고, 컴퓨터 바탕화면에 몇 줄 적다가 그친 글도 있다.


  어디 보자.


  최근에 본 다큐멘터리 차마고도 2편, 오체투지를 보며 퍼다먹은 감동에 대해 쓰려고 했다. 유난스럽게 노란 은행나무 낙엽들을 말머리로 쓰려고 보아둔 게 며칠 전이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그 선험적 선언의 위험에 빠지기 쉽다는 이야기도 쓰려고 했고, 내 책읽기의 방식이 여러 권을 한 번에 섞어 보는 형태로 변했다는 이야기도 쓰려고 했다. 소비하는 사진과 생산하는 사진에 대해 생각한 메모도 있고, 내 책 원고 진도 안 나간다는 푸념도 쓰려고 했다. 아, 세계 경제 위기를 온몸으로 겪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구나. 누나가 쌍둥이 낳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백화점 걸어가다가 괜히 눈물이 나왔다는 이야기도 쓰려고 챙겨두었다. 어느새 연말이라는 이야기, 대학생들과 함께 꾸리려는 인문 책읽기 모임 이야기도 있다.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들을 하려고 했었다고, 이야기해버렸다.


  오래 밀린 숙제 날림으로 끝낸 기분. 이제 나는 밀린 이야기 없다.





2008.11.26 06:41


  새벽마다 창밖은 안개가 가득하다. 강 건너 저편의 아파트들은 흐리고 더 멀리에 있는 것들은 형체도 없다. 날씨가 제법 춥다. 외투 여미듯 생각들을 여민다.






2008.11.16 22:17


  중국 자전거 여행을 처음 생각했던 때는 군대 가기 전이었다. 아마 북경을 출발해 상하이를 거쳐 광동에 이르는, 해안선을 따라 가는 중국 여행이었을 것이다. 어줍잖게 계획만 하는 듯 마는 듯하다가 실행하지 못 했다. 유학생 사회에 대한 책임감과 자전거를 탄다는 흥분이 더해져서 내년 여름쯤에 학생들을 모아 중국 대륙 횡단에 나설 계획을 세우고 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종혁이를 불러서 실무진을 꾸리라고 부탁했다.


  맡은 일을 듬직하게 해내는 종혁이는 평소에 신뢰하는 아이다. 주문한 사항을 단지 수행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목적지를 알려주면 그 곳에 닿는 길을 직접 개척해가는 모습이 듬직하다. 실무진을 꾸리라는 부탁에 종혁이는 알음알음 아는 동료 셋을 우선 데리고 왔다. 수원이는 본인의 말에 따르면 준프로급으로 자전거를 타는 친구다. 자전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여행 루트를 짜고 여행단의 체력을 배려한 노선 조정 등을 총괄할 수 있을 듯했다. 현주는 여러 곳의 공모전에서 입상 경력을 갖고 있는, 이재에 밝은 학생이다. 기획서를 만들고 얼개를 짜는 일, 그리고 웹상에서 구현될 작업들에 어울릴 듯하다. 경훈이는 나를 제일 놀라게 한 친구인데, 온갖 서양 철학자들의 이름을 앞세우며 왔다. 웹진에 관심이 많다고 하니 여행단 준비에서 여행기간에 이르기까지 미디어와의 소통을 전담해 줄 수 있을 듯히다.


  네 명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자극적이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맞은 나는 당황했다. 돌려보낸 후 생각하니 말도 행동도 서툴렀다 싶다. 나보다 몇 살 어린 친구들이라고 너무 얕보았다. 어차피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기획이니까, 나는 뒷방 늙은이나 할까 보다. 


  자전거를 산 후, 상하이의 자전거 클럽 몇 곳을 기웃거리고 있다. 함께 다녀보기도 한다. 맞는 클럽도 있고 아닌 곳도 있다. 지난 주에는 함께 책 읽고 공부하는 모임도 시작했다. 할 만한 모임이다. 매주 목요일 사진 강평 모임은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가서 딱 두 시간 강평하고 돌아오면 몸에도 마음에도 부담이 없다. 


  경훈이라는 친구는 두 현호를 생각나게 했다. 군대에서 내 후임이었던 윤현호.는 내게 제대로 된 책읽기를 알려준 친구다. 겨우 역사소설이나 몇 권 읽고 책 좋아한다고 자만하던 내게 현호는 정통 문학의 매력을 알려 주었다. 철학을 전공하고 사진을 공부한 후 지금은 예술 전반에 대한 기획을 하고 있는 사진 친구 김현호.는 언제나 내가 보고 배우는, 나보다 몇 걸음 앞서 있는 친구다. 두 현호를 생각나게 하는 경훈이라는 친구 앞에서 나는 참 소리 요란한 빈상자 같았다. 많이 배워야겠다.


  책읽는 일을 다시 챙기기로 한다. 책을 읽는 과정과 읽은 책을 정리하는 과정은 닮은 듯한데 사실은 다른 성질의 작업이다. 다시, 읽은 책들에 대해 후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읽은 책에 대한 후기를 드러내는 것은 생각의 바닥을 고스란히 드러내게 만들어서 부끄러운 작업이다. 그래도 해야겠다.


  




2008.10.14 21:44


  아침에는 파출소에 가서 거류증 연장 수속을 했다. 담당 경찰들은 이것 저것 물었다. 나는 말 하면 안 되는 것들을 요령껏 감추면서 질문의 조건들을 하나씩 채워 대답했다. 


  작업실에 나가서 사진 몇 장을 리터칭하고 어제 찍은 인터뷰 사진을 옮겼다. 리터칭한 사진을 잡지사로 전송하고 인터뷰 사진 중에 쓸 사진을 골라서 대충 만져 놓았다.


  오후에 조계 지역에 사진 찍으러 가겠다던 계획은 흐지부지 되었다. 저녁 약속 전에 끝내기에는 조금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촬영 계획을 취소하고 나니 조금 모자라던 시간이 되려 많이 남았다. 장판에 배깔고 누워서 어제 인터뷰한 내용들을 컴퓨터로 옮겼다. 


  저녁에는 내일 촬영을 위한 사전 미팅이 있었다. 새내기 기자와 편집디자이너가 함께 왔다. 셋이 머리 맞대고 촬영 컨셉에 대해 회의했다. 시간 끌어봐야 답답할 것만 같아서 대충 총대 매고 정리해서 안심시키고 말았다. 어차피 사진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는 사진가에게 돌아온다. 칭찬이든 욕이든.


  돌아와서 김광석 듣는다. 한참 같이 듣던 사람들이 생각나고 그 사람들과 어울리던 시간들이 생각나고, 그 때 꾸었던 꿈들이 생각났다.


  하루하루는 분명한 구체성 위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두고 겨우 이렇게 적어 둔다. 





2008.10.11 10:22


  사람이 참 많다. 이만큼 보고 알겠다 싶었는데 저만큼 보면 나는 아직 모르겠고 이제 저만큼은 내 안에 넣겠다 싶었는데 또 그만큼 보면 나는 아직 좁구나 싶다. 사람도 많은데, 살아 있는 것들은 더 많고, 산 것들도 많은데 숨쉬지 않고 사는 것들은 더 많고, 그렇게 많은데, 내 의식 밖에 있는 것들은 더 많을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짐작할 뿐이다.


  동경하고 공감하고 사랑하고 반대하고 미워하고 무시하고 또 잊는다. 꿈꾸는 대로야, 의식하지 못하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삶까지 내 안에 담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당치 않는 바람이란 것은 자명하고, 자명한 것을 넘어서 도저히 닿을 수 없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살아있는 것이 그렇게 오만하면 안 된다. 다만, 살아가면서 좀 더 많은 삶의 방식들을 긍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 살아갈 수록 고집만 생겨서 긍정하는 삶의 폭이 줄어드는 잘못을 저지를까 두렵다. 그 가치에 동의하고 마음으로 응원하는 삶의 방식에 그치지 않고, 비록 나와 다른 방식이고 내가 싫어하는 삶의 형태일지라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경계 너머에서 그 삶들을 긍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겨우 삶 하나를 앞에 두고.





2008.09.27 22:24


  우시의 택시 기본요금은 8원이다. 우시는 상하이 옆에 있는 도시다. 최고속도가 시속 250km에 달하는 기차를 타고 50분 좀 넘게 간다. 그러니까 중국식으로 말하면 바로 옆에 있는 도시다. 우시에는 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이 있다. 기차역에서 출발한 기본요금 8원 짜리 택시가 딱 33원이 되면 하이닉스 정문에 도착한다. 먼 곳이다. 나는 앞으로 1년 동안 이 곳 공장의 노동자가 되기로 했다.


  다른 촬영들에 비해 하이닉스 사보 촬영은 부담이 적다. 나는 몇 시간 신나게 노는 기분으로 사진 찍는다. 그리고 돈도 받는다. 오늘은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찍었다. 난생 처음 이상한 옷과 장갑과 신발과 모자를 걸치고 신이 나서, 공장 안에서 내 걸음은 빨랐다. 반도체를 생산하는 라인은 듣던대로 맑았고 생각보다 밝았다.


  셔터질이 버거울 때가 있다. 셔터질이 인이 박힐 때도 있다. 셔터질이 여운으로 남을 때도 있다. 아침 열 시에 시작한 촬영은 저녁 다섯 시 넘겨 끝났다. 모처럼 날이 맑아서 저녁 하늘이 예뻤다. 촬영은 끝났는데 나는 카메라 집어 넣지 못 하고 돌아오는 길가에서 자꾸 하늘을 찍었다. 오랜만에 셔터가 참 가벼웠다.


  중고 카메라 한 대를 구해서 아버지께 보내드렸다. 새 것 사드리고 싶었는데 그렇게까지는 여유가 없어서, 겨우 중고 카메라 하나 보내드리면서 생색도 못 냈다. 촬영 중에 아버지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는 대뜸 온갖 버튼의 기능들을 물으셨다. 아, 중고카메라는 설명서가 없지. 한참 장비 들고 이동하는 중이라 세세하게 알려드리지 못 하고 그저 "제가 세팅 맞춰 보냈어요. 우선 자동 모드에서 쓰시면 돼요." 했다. 다음 번 한국에 가면 아버지 모시고 촬영 특훈을 할까 보다. 아, 그런데 어쩌나. 아버지는 당신께서 나보다 사진 잘 찍으신다고 믿으시는데. 아버지, 그래도 제가 명색이 사진가인데요.







2008.09.21 22:23


  행복합니까?


  길 가는 사람마다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행복합니까? 바쁘게 걸어가는 회사원, 잘 차려입은 아가씨, 산책 나오신 노부부, 놀이기구 앞에서 울고 있는 아이, 식당 앞에서 배 두드리며 나오는 연인. 


  행복합니까? 물었을 때 주저없이, 또는 심사숙소해서 행복합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저들 중에 얼마나 될까? 어떤 상황이면, 어떤 기분이면 행복하다고 말해도 부끄럽지 않을까? 행복한 일이 얼만큼, 그리고 안 행복한 일이 얼만큼이니까 행복한.에서 안 행복한.을 뺀 값이 영보다 크면 그 때 행복한 것일까? 오늘 이만큼 고생해서 몇 년 뒤에, 몇 십 년 뒤에 나는 크게 행복할 테니까 그 행복 담보를 조금 끌어와서 지금 나는 행복한 것일까? 남들만큼 벌어서 남들만큼 쓰니까 남들만큼 행복한 것일까? 


  엉뚱한 물음이 대책없이 간절한 날도 있다. 나는 정말 간절하게 묻고 싶었다. 그래서 만약에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답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실은 숨겨둔 문제 하나를 더 묻고 싶었다.


  행복합니까?






2008.08.25 17:04


  오후는 고요하다.


  새벽에는 비가 많이 오고 천둥도 치고 번개도 쳤다. 눈 감고 있는데도 감은 눈 앞이 번쩍거리고 화난 천둥이 창문 바로 앞에서 울어댔다. 


  오후에 비는 그치는 듯 마는 듯하다. 1년쯤 끌던 책도 초고를 마쳐서 출판사쪽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고, 지난 주에는 촬영도 제법 열심히 했다. 전공도 아닌 엉뚱한 것을 두 번이나 주문했던 보그.는 다행히 인터뷰 촬영으로 세 번째 주문을 해 주었고, 나는 마침내 해낸 것 같다. 상대적으로 이제 제법 익숙한 노블리스 촬영은 대충 한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하다. 처음이니까 더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더 많은 물량을 투입하고 더 큰 긴장감을 가졌다. 


  며칠 째 배달 못 하고 집에 있던 사진도 오늘 가져다 주었다. 받는 사람이 참 좋아해 주어서 주는 마음이 더불어 좋았다.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노트.는 한참 전에 사서 대충 한 번 읽어보고 기대 이하.라는 감상으로 아무 구석에나 놓아두었던 책이다. 어제 나가는 길에 작고 가벼운 놈으로 고른다고 골라서 가져갔는데, 원고 쓰고 나서 읽으니 그 책이 다르게 읽힌다. 옛 사람들은 말도 많이 안 하고 UCC도 안 찍고 또 사진도 안 찍고 이메일도 안 써서, 글은 자신을 드러내는 가장 완성된 재현물이었던 듯하다. 그래서 옛사람은 문장 앞에서 결사적이다. 책 두어 번 더 읽고, 미뤄두었던 두 번째 퇴고를 시작하려고 한다.


  밀린 일들 대충 처리된 오후는 고요하고 편안하다. 나는 영화나 한 편 때리고, 생수통 배달 오면 받아둔 다음에, 라면 하나 끓여 먹은 후 제대로 돈 벌 궁리를 하려고 한다. 




2008.08.18 20:31


  며칠 말이 많다. 일은 안 하면서.


  영숙 누나와 그 동생 진숙씨는 오늘 돌아갔다. 오후 비행기 타고 가서 밤에 내리면 내일 아침부터 출근이라고 했다. 많이 움직이고 갔으니 몸은 피곤할 것인데, 몸의 휴식과 마음의 휴식은 다른 것인지 둘은 신나게 걸어다닌 며칠을 휴가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재밌는 사람들이다. 누나는 2년 전 그 때처럼 많은 것을 챙겨주려고 했다. 내가 아직도 밥값도 없이 냉난방도 안 되는 창고 바닥에 자는 줄 아는 모앙이다. 그 마음이 고맙다. 2년 전에 잠시 보고 말았던 동생은 이번에 며칠 함께 놀았다. 같이 있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좋은 기운을 가진 사람이다. 귀한 재능이 제 자리를 만나서 빛을 발했으면 좋겠다. 


  사람 보내고 돌아설 때마다 나는 부쩍 자라는 듯한데, 한참 지나 돌아서서 보면 조금도 나아간 것 같지 않다. 사람이 가고 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고 나도 가고 올 것인데 반복되는 과정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 보낼 때마다 가슴은 높은 곳에서 덜컥 떨어지고 숨은 걸음을 막아선다.    


  어제 저녁을 함께 먹으며 나는 두 사람에게 조직.에 대해 묻고 들었다. 군대를 제외하면 마땅한 사회 조직을 겪어보지 않는 나는 시스템.에 대한 환상이 있다. 두 사람은 번듯한 조직.에 있는데, 그들이 들려준 조직.이란 대충 이렇다.


  정도 이상으로 열심히 하지 마라. 소용 없다.

  먼저 나서서 아이디어를 내지 마라. 그게 곧 네 일이 된다.

  언제든 빠져나갈 구멍을 생각해라. 책임진다는 생각은 미덕이 아니다. 책임진다는 뜻은 곧 끼니 걱정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남들 하는 정도만 하고 시키는 일만 잘 해라.

  창의력 따위, 체제를 바꾸려는 도전 따위, 개나 줘버려라.

  조직은 개인의 역량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조직은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조직은 기름칠 잘 된 부품을 원한다.

  조직은 네 목표가 아니다. 네 목표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조직.은 끔찍한 거다. 그 조직은 좋은 조직과 나쁜 조직을 가리지 않는 듯하고 큰 조직과 작은 조직을 가리지 않는 듯하다. 나는 내가 대학생활의 큰 유산으로 여기는, 그리고 역사 속에서 다양한 선각들에 의해 시도되었던 유기적 조직.을 언급하며 다른 가능성을 따져 물었지만 숙련된 조직인.들의 대답은 단호해서 내 의문은 뿌리부터 차단당했다. 유기적.이라는 수식은 조직.이라는 본질을 도저히 넘을 수 없어 보였다.


  살아가는 일은 구체적 행위와 사실들을 통해 비로소 구축되고 또 완성될 것이다. 모든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작업이 가치를 가지려면, 그 전에 우선 단단한 구체성으로 다진 일상이 있어야 할까 보다. 그러니까, 나는 사진을 찍고 글도 쓰고 돈도 벌고 밥도 먹고 잠도 자야겠다. 


  여름아, 이제 그만 좀 가라. 


  덥다.







2008.08.18 10:00


  책꽂이를 한참 쳐다보다가 왔다. 모아둔 소설책들은 대충 읽었거나 읽고 싶지 않은 것들만 남았다. 요즘에는 읽은 책 중에서 특히 문장이 욕심나는 것들로 골라 다시 읽는다. 길에서 읽을 책 고르며 두껍고 무거운 책을 고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겨우 김승옥의 소설집 한 권을 챙겼다.


  "끝까지 가 보자. 설사 우리가 도달한 끝이 저 길의 한 중간이더라도, 끝까지 가 보자." 이 책을 내게 준 이는 책 앞장에 이렇게 적어 주었다. 

  

  나는 그 길의 어디쯤에 와 있는 것일까? 그는 또 그의 길 위에서 얼마쯤 갔을까? 우리는 가기나 한 것일까? 끝에는 닿을 수 있을까? 우리가 도달하는 길의 끝은 또 어디일까? 끝은, 있기는 한 것일까?


  나는 농도의 짙고 옅음에 대해 말했고, 그 생각은 색깔의 존재로 인해 깨어졌다. 모든 존재를 무채색의 선형성 위에 두고 읽었는데, 실상 그들이 다른 색깔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지적은 충격이었다. 그런데 선형성에 대한 미련은 좀처럼 버릴 수 없는 것이어서, 나는 각 색깔이 갖는 색의 충실도를 척도 삼아서 다시 선형적 질서를 세우려는 모양이다. 왜 색이 색으로 온전히 아름다우면 안 되나? 가파른 질문으로 몰아세워 보아도 좀처럼 나는 나를 설득하지 못 한다.


  새벽에 택시는 빨리 달렸다. 거칠 것 없는 길을 택시 운전사는 레이싱 선수처럼 달렸다. 커브에서는 최대한 속도를 유지한 채 부드러운 코너링으로 흐르듯했고 직선 주로에서는 기록 단축에 힘쓰는 선수 같았다. 그 속도는 유쾌하고 가벼워서 경기에 임하는 단단한 마음은 옆자리 승객에게까지 상쾌한 새벽 바람을 밀어넣어 주었다. 교통정체가 종일 동안 이어지고 멈춘 차들이 끼어들기를 통해 전진해가는 상하이에서, 택시 운전사는 이 새벽의 기억으로 한낮의 정체 속을 밀어가는구나. 싶었다.


  나는 직장인도 아닌데, 왜 월요일 오전에는 마음이 덩달아 바쁠까? 괜히 직장인 흉내라도 내고픈 마음인가?






2008.08.16 20:45


  어제는 새벽까지 놀았다. 그러니까 어제 저녁부터 오늘 새벽까지 놀았다. 영숙 누나가 2년만에 상하이에 왔다. 동생이랑 같이 왔다. 모처럼 에프상하이 맴버들이 함께 모여서 밥 먹고 술 먹고 이야기하고 놀았다. 우리 집에 사람들이 모여서 그렇게 판 벌려서 논 것이 처음이다. 지난 겨울에 이사온 후 나는 마땅한 집들이도 못 했었으니까, 마침 이름만 집들이.도 겸했다.


  과일 잔뜩 사고, 술도 제법 사고, 고기도 굽고 찌개도 끓였다. 아, 누나는 베이컨말이도 만들었다. 요즘 술은 입에도 못 대는 나는 쥬스 홀짝거리고 콜라 벌컥거리면서 같이 취했다. 손님 치르는 것이 이런 재미구나. 싶었다. 하여튼 영숙 누나가 오면 상하이가 이벤트 도시가 되는 것 같다. 내 작업실을 통째 털어내고 거기서 파티를 열었던 사람도 누나였었지.


  누나와 그 동생은 아마 오늘 종일 숙소에 쓰러져 있었을 것이다. 길지 않은 여행기간 중에 하루를 숙소에 쓰러져 있게 만든 것 같아서 괜히 미안하기도 하다.


  정신 차리고 보니 저녁이다. 원고나 좀 살펴야겠다.





2008.08.14 13:04


  명호가 왔다. 어제 저녁에 상하이에 도착했다. 1년 간 아시아를 돌아 왔다. 짐 풀기 전에 사진 찍어서 작년 녀석이 출발할 때 찍은 사진과 겹쳐 보았다. 1년 사이에 녀석은 수염이 많이 길었고, 몸은 말랐다. 떠날 때와 비슷한 짐으로 명호는 왔다. 보이지 않는 변화도 있을 것인데, 그 변화는 1년 동안 상하이를 떠난 적 없는 내가 함부로 짐작해서 말할 수 없는 것들이다.


  온다는 연락을 받고, 녀석이 떠나던 그 날과, 그 날 이후 1년 동안 나는 무엇이 변했나 생각했다. 내 사진은 나아갔고, 책도 초고가 끝났다. 이제 제법 밥값도 번다. 촬영 미팅에는 그럴듯하게 옷도 차려입고 가고, 필요할 때는 술도 한 잔쯤 산다. 아, 나도 변했구나.


  난생 처음 큰 계약건을 물었다.고 생각했다. 구두계약이 끝난 상황에서 나는 새 작업에 들어갈 조명을 추가 구입하고 출장갈 기차표도 예약했다. 일을 도와줄 사람도 둘 구했다. 그리고 몇 시간 전에 계약 무기 연기 통보를 받았다. 낮잠 자려고 막 누웠는데 전화를 받아서 잠이 깼다. 이미 합의해 놓고, 출발 날짜까지 맞춰서 다른 스케줄 다 취소한 나는 뭐가 되냐고, 다시 점검해 달라고 화를 냈지만, 전화 끊고 생각하니 계약서 도장 찍기 전에 앞질러 간 내 탓이다. 


  1년 동안 내게 일어난 보이지 않는 변화는 어떤 든든함. 같은 것이다. 계약이 연기되어도 괜찮다. 늦게라도 가면 된다.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다. 다음에 다른 일을 하면 된다. 사방 기둥 하나 없이 불안하고 가벼웠던 때가 1년 전인가 보다. 이제 일 하나 둘 정도로 들뜨거나 가라앉지 않는 나를 보면서 시간이 흘렀다고 안다. 잘 살아냈구나 싶다.


  초고는 끝났는데, 원고 수정이 길어지면 올해도 책은 나오기 힘들겠구나. 내년 설에는 집에 갈 수 있을까?






2008.07.30 20:45


  내 문장과 사진이 정말로 책이 되어서 나오면 어떨까. 싶다.


  헛 살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을 겨우 할 수 있겠다 싶다.


  



2008.07.20 06:24


  지난 밤에 창문 열어놓고 자는데 바람이 세차게 불고 비가 왔다. 태풍이 온다고 했었는데 아마 다녀간 모양이다. 아침에 하늘은 흐리고 바람도 여전히 거센데 나는 항구에 간다. 상하이를 처음 개항시킨 영국 선박이 접안했던 항구다. 


  태풍이 오기 전이나 태풍이 다녀간 후에 시원하고 큰 바람이 부는 날을 좋아한다. 그 바람은 서늘해서 몸 속에 있는 것들을 모두 끄집어내는 듯하고 또 바라는 마음으로 머물러 있는 많은 것들을 그 목적지로 데려가는 듯하다.


  바람처럼 지하철을 타고, 흐려서 끝도 보이지 않을 강가에 가야겠다.




2008.07.09 21:28


  내가 내 집에 오는 것이 오랜만이다. 무슨 이유인지 내 홈페이지가 있는 서버가 중국 인터넷 제공 회사에 의해서 차단당했고, 한 달째 나는 집에도 못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다. 다른 회사에서 제공하는 회선을 쓰는 어떤 집들은 되기도 한다. 집에서 노트북 무선 인터넷을 켜면 다른 집의 무선 신호를 몰래 끌어올 수 있는데, 그렇게 해서 가끔 내 홈피도 뜬다.


  처음 내 자전거를 가진 때는 아마 초등학교 5학년 쯤이었다. 자전거가 너무 타고 싶었는데 고등학교 시절부터 얼마동안 싸이클 선수생활을 하셨던 아버지는 그 위험성 때문에 반대하셨다. 새벽에 일어나 작은 몸으로 신문배달 가방을 짊어지고 두어 달 고생한 뒤에 겨우 받아든 월급으로 자전거를 살 수 있었다. 내 돈으로 산다니까 아무 말씀을 안 하셨던 것인지, 어리고 작은 몸이 새벽마다 신문 돌리는 모습이 기특해 보이셨던 것인지, 아니면 안스러워 보이셨던 것인지 모른다. 어쨌든 자전거 가격은 내 두 달 월급보다 조금 비쌌는데, 아버지께서는 이제까지의 모습과 다르게 선듯 모자란 돈을 내어 주셨다. 그리고 다음 달 월급에서 다시 가져가셨다지.


  거제도는 산이 많은 섬이다. 도로는 산을 가르고 가지 않고 산 위에 걸터 앉아 간다. 그 도로를 자전거 여행한다는 이름으로 참 많이 다녔다. 지금 달리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중학생일 때는 하루 온 종일 달리면 섬의 1/4 정도를 달릴 수 있었다. 번잡한 아들의 하이킹을 반대하실 게 뻔한 아버지의 눈을 피해 새벽에 몰래 나오던 날에 어머니는 간단한 간식거리를 챙겨주시고는 했다. 


  대학교 입학하던 그 때부터 작은 계획이 있었다. 여름 방학 두어 달 전에 자전거를 샀다. 그리고 짧은 하이킹으로 몇 번 연습한 후, 첫 방학 시작과 함께 친구 영광이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거제도로 갔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처음인 만큼 어찌나 서툴렀던지. 내 여행은 거제도를 두어 시간 남기고 미완으로 끝났다.


  자전거 여행을 여행보다 레이싱처럼 했던 그 시절에는 밤새 세미나 준비한 후 새벽부터 달려 밤에야 겨우 돌아오기도 했다. 그런 날은 길가에서 낮잠을 길게 잤다. 북한강으로 남한강으로 달리기도 많이 했다. 이제는 기억도 가물하다.


  입대 전에 중국 자전거 종단을 계획했다. 나름 기획서도 만들었는데 어디서부터 흐지부지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군대 말년 휴가를 몇 달 앞두고, 집에서 쉬고 있던 자전거를 창원 부대로 갖고 왔다. 주말 외출마다 자전거 수리점에 가서 여기저기 손보아서 준비해 두었다가, 휴가 신고식 마치고 곧장 자전거를 타고 남해안 일주를 시작했다. 동에서 서로 남해안을 타고 제주도로 건너가서 다시 부산으로 나와서 부대로 복귀하는 여행은 꼬박 열흘이 걸렸다. 수염이 잔뜩 길어서 검게 변해 돌아온 나를 부대 사람들은 처음에 알아보지 못 했다.


  석모도 그 섬에서 자전거 타던 때가 있다. 길도 아닌 풀밭에서 타고 갯벌에서도 탔다. 시간이 오래 흘렀으니 풀이 높게 자라 길을 덮을 것이고 밀물이 들어와 바퀴자국을 지울 것이다.


  중국은 자전거 타기 좋은 곳이고 자전거 사기 불안한 곳이다. 깔끔한 자전거는 얼마 안 가서 도둑맞는다.


  이번에는 제법 튼튼하고 가벼운 자전거를 사려고 한다. 말릴 것 같은 혜정이도 이번에는 되려 더 반긴다. 자전거 여행 이야기를 하니 자기도 하고 싶다고, 같이 자전거 타고 긴 여행을 가자고 한다. 옆에서 말리는 사람이 없으니 바람이 제대로 든다. 사실 이번 자전거 이야기는 혜정이가 먼저 꺼냈다. 나는 옆에서 추임새 몇 번 넣은 게 전부다. 바람 넣다가 내가 더 바람 들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지 않나.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브랜드도 알아보고 구입시 주의해야 할 점도 알아보았다. 제대로 된 MTB를 사는 것은 처음이니까 공부할 게 많다. 아직 스피커랑 엠프 공부도 덜 했는데. CDP 살 돈은 당분간 자전거로 전향하기로 한다. 중국은 한국보다 많이 넓어서 시작부터 끝까지 자전거로 누비기 힘들다. 당분간은 상하이에서 타고, 그 다음에는 주변 도시까지 기차에 자전거를 실어가서 도시를 자전거로 누빌 생각이다. 그렇게 적응한 다음에, 내년 언제쯤에는 상하이에서 홍콩까지 자전거를 탈까 싶기도 하다. 입대 전 계획했던 그 종단을 거의 10년 만에 실현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전거 타고 바다 앞에 서면, 거제도에서 석모도까지가 눈 앞에 펼치겠다. 어쩌면 나는 울겠다.



    



2008.06.20 11:34


  운동 다녀오는 길에 날개미 한 마리가 땅을 기고 있다. 디디던 발을 얼른 옮겨서 겨우 피했다. 녀석도 나도 다행이다. 스님들은 여름에 소소한 산 것들을 밟을까 두려워서 산 속에 들어가 하안거에 든다. 그 뜻이 참 좋다.


  개미를 피하다가 퍼뜩 생각난 것인데, 음...


  스님들은 정말로 작은 것들 혹 밟아 죽일까 두려워서 하안거에 들고 대비되는 이유로 동안거에 드는 것일까? 그냥, 너무 덥고 추워서 그런 것은 아닌가? 


  혼자 생각해도 발칙하다.


  아, 오는 길에 참새도 한 마리 봤는데 이제 막 땅에 떨어져서 아직 푸릇한 잎사귀 몇 개를 물고 날아갔다.







2008.06.19 21:35

하늘 나는 꿈


  새 웹브라우저 파이어폭스.를 받았다. 익스플로어보다 조금 빠르고 새 창이 탭으로 뜨는 것은 우선 보기에 좋다. 그리고 전체화면 모드에서 즐겨찾기가 왼쪽으로 자동 슬라이딩 되지 않는 것은 조금 불편하다. 하지만 단축키 ctrl B를 누르는 법을 배웠으니 참을 수 있다. 대부분의 선택은 하나가 옳고 하나가 그른 것보다는 다만 다를 것인데, 선택의 당사자는 그 다름을 낫고 못함의 차이로 인지해야 비로소 어떤 비장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얼마 전에, 몇 년만에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다. 내가 하늘을 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어서 나는 하늘을 날면서도 그 사실을 의심했는데, 꿈애서 깨었을 때, 하늘을 날아 다녀온 곳에서 가져온 메모가 내 수첩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을 보고는 내가 정말 날았다는 것을 비로소 믿을 수 있었다. 그 놀라움이란. 꿈 안의 꿈을 꾼 셈이다.


  내가 하늘은 나는 법은 로봇이나 수퍼맨의 그것과는 달랐는데, 나는 조그만 턱을 박차고 오르거나 아주 낮은 높이에서 떨어지면서 비로소 저공비행을 시작한다. 바람에 올라타는 기분. 그 때 땅과 내 몸 사이에는 겨우 수 십 센티미터의 간격 밖에는 없다. 그렇게 날면서 점차 고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내 비행은 이어진다.


  비장하지 않아서 어떤 결정도 없는 일상같은 날씨다. 더위 속을 사람은 힘겹게 걷는다.


  살면서 삶이 지루하다거나, 날마다 나아가는 것 없이 반복되는 시간이라고 느껴질 때, 어떤 반전.을 꿈꾼다. 그러니까 삶의 어떤 낮은 턱 같은 것, 떨어져도 다치지 않을 정도의 높이 같은 것. 나를 바람 위에 얹어 줄 반전.같은 것들.


  



2008.06.03 20:55


  간판 떼어왔다.


  언제 어디에 다시 걸릴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다.


  열쇠를 넘기고 작업실 크고 빈 공간에 혼자서 가만 앉았는데,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여기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꾸미고 내가 만들고 내가 앓아가면서 겨우 겨우 버틴 모습이 마냥 익숙해서 처음의 모습은 벌써 잊은 모양이다. 내가 가고 나도 이 공간이 그 때와 같지 않을 것이다. 


  빈 공간에 대고,

  고맙습니다. 인사했다.


  그 말 밖에 따로 할 말이 없었는데, 그래도 그 동안 나를 내치지 않고 잘 길러준 공간이 참 고마웠다. 그리고 고맙다고 말할 수 있게 지낸 내가 또 고마웠다.


  STUDIO GOGH

  문 닫다.








2008.06.02 20:37


  작업실 이사했다. 형식상으로는 장소를 옮겨 세 명이 같이 쓰는 것이고 내용상으로는 더부살이다. 아침부터 작업실에서 짐들 정리하는데 좀처럼 진도가 안 나갔다. 새로 옮기는 작업실에 가서 구석 한 켠에 내 장비들을 두고 오는 길은 꼭 남 집에 아이 맡겨두고 나오는 기분이었다.


  밤이 가까워서야 겨우 집에 왔다. 음악을 크게 틀어두고 잠시 앉았다가 배가 고파서 계란도 굽고 새 김치도 썰어서 먹었다. 밥 먹고 나서는 수박도 제법 담아 왔다. 올리브기름이 떨어져서 새로 사야겠다. 나는 요즘에 김치찌개도 하고 된장찌개도 한다. 썩 맛있다. 요리도 배웠으니 이제 장가를 가야 하나?


  며칠 전 아는 분 집에 갔는데, 프랑스에서 이 십 년 가까이 살다가 온 그 친구는 옛날 집들이 있는 골목에 풍경처럼 살고 있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텅 비어있는 집이었다. 책상과 책장이 하나씩. 그리고 의자 몇 개와 작은 소파 하나. 옷들은 붙박이 장에 들어 있는 모양이었다. 아, 홀가분하구나. 이 친구는 언제든 가볍게 떠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짐 싸면서 보니 새 스튜디오로 가는 짐보다 내 집으로 들어오는 짐이 많다. 어쩌나, 내 집에는 지금도 이미 짐들이 많은데. 꼭 필요할 것 같아서 산 컴퓨터와 프린터. 그 컴퓨터와 프린터를 위한 별도의 책상들과 내 글쓰기 책상, 또 큰 마음 먹고 지른 진공관 앰프와 스피커, 게다가 애물단지 책들과 그 책들을 위한 책장이 두 개, 작업실에서 먹고 살던 시절에 침대로 쓰던 소파와 그 아래 깔린 작은 소파는 또 어쩌고. 아, 나는 짧은 생에 무엇을 이리 덕지덕지 붙이나. 


  삶이 번잡하다.







2008.06.01 09:51


  아침에 유혈진압 사진들을 봤다.


  시민들이 여럿 다쳐서 피흘리고 있었다. 경찰은 곤봉을 휘두르는데 그 곤봉에는 어떤 주저함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껏 마음으로만 응원하면서 봤었는데, 그러면 안 되는 모양이다.


  분명한 잘못을 저지르고 그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그에 대한 항의를 힘과 무식함으로 누르려는 저 개념 없는 쥐새끼 한 마리를 두고 보면 안 되겠다.


  2MB 용량이 부족해서 저 쥐새끼는 이 땅의 바른 역사를 기억하지 못 하는 모양이다. 고작 불도저 운전법이나 알까. 아니다. 그것이나마 제대로 안다면 이럴 수 없다.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






2008.05.18 20:58


Inter action. 


이름은 이렇게 썼다. 


어떤 소통.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데 그 소통이란 것이 커뮤니케이션.의 의미보다는 상호간에 주고 받는 어떤 유형 무형의 움직임.같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새 게시판을 연다.


한 명이 다녀가고 두 명이 다녀가고 여러 사람 다녀가면서 풍성하면 좋겠다.






2008.05.06 12:14


  운동하고 나오는 길에 보니 운동화 바닥이 다 뜯어져서 덜렁거린다. 


  오래 신었다. 군대 말년휴가에 갔던 열흘짜리 하이킹도 기억해 보면 이 운동화였던 것 같고, 복학 후에 꽤나 다녔던 하이킹도 이 운동화를 신었다. 엉성하게 가다가 말다가 하던 핼스장도 전부 이 운동화를 신었다. 떨어질 때도 되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게을러진다는 것은 한 켤레 운동화를 오래 신는 일인 것 같다.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은 가난까지는 아니어도 무엇 하나 물려받은 것 없는 젊은 부모님이 꽤나 부지런하게 움직이시며 조금씩 살림을 만들어나가던 무렵이었다. 그 때는 어려서 잘 몰랐는데, 내가 신던 운동화가 많이 낡아서 거의 떨어져나가던 때였나 보다. 어릴 때는 운동화가 전천후 아니었던가. 어느 날 아침에 학교 간다고 문지방을 내려서는데 두 분이 여느 떄 같지 않게 그 앞에 서서 웃고 계신다. 그리고 그 아래 놓여 있는 새 운동화. 어떤 모양이었는지 기억나지 않고 그 운동화를 얼마나 오래 신었는지 기억나지 않고 그 때 내 기분이 어땠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데, 그 앞에 어린 아이보다 더 설래는 표정으로 서 계시던 두 분 표정은 지금도 생각이 난다. 새 운동화를 살 때는 가끔 그 아침이 생각난다.


  사람 만나러 갈 때 신는 신발이 다르고, 여행갈 때 신는 신발이 다르고, 편하게 장보러 갈 때 신는 신발이 다른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운동화는 맨땅에 닿을 일도 잘 없고 겨우 핼스장 바닥이나 런닝머신 위에서만 움직이니까 오래 신는다. 요즘에는 하이킹 가는 일도 없으니까 꼭 무슨 집 안에서만 기르는 애완동물 마냥 바깥 구경을 못 하는 신발이 되었다.


  내일은 새 운동화를 사야겠다. 빨간, 아주 빨간 운동화를 살 거다.


  조심해야겠다. 새 신을 신고 너무 뛰다가 머리가 하늘에 닿으면 우습겠다.





2008.05.06 10:07

박경리 선생님 가셨다


  박경리 선생님이 가셨다.


큰 선물 주고 가시는 길이 편안하셨으면 좋겠다.


토지.가 이루어 놓은 그 넓은 들에서, 이 나라의 글쟁이들은 마음껏 뛰어 놀 테다.


요즘 내가 정상이 아닌 것인지,


박경리 선생님 돌아가셨다는데 괜히 땅박이가 밉다.






2008.05.04 22:11


  과연 될까? 싶은 심정으로 시작한 서양미술사 스터디가 어느새 석 달이 되었고 다음 모임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긴 역사를 겨우 몇 달에 다루어야 했기 때문에 서투른 부분이 많았고 또 성근 부분이 많았다. 다섯 명이 서양미술사에 대해 서로 다른 책을 선택해 한 달에 두 번 모여서 발제하고 토의했다. 현직으로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이 둘 있었고 나를 비롯해 세 사람은 적어도 미술 분야와는 무관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아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읽었다. 재미있게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아서 적지 않은 부분을 건너뛰며 읽었다. 처음 공부하는 사람에게 너무 어려운 책이었다. 함께 해준,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해준 일행들이 고맙다. 이번 스터디가 끝나면 한 주 정도의 휴식을 거쳐 다음 스터디를 이어가게 될 것인데, 동양미술사를 하자는 사람도 있고 각자 좋아하는 작가를 선택해 작가론으로 하자는 이야기도 있고 또 현대예술에 대해 하자는 의견도 있다. 어떤 주제도 개인적으로 별로 흥미롭지 않아서 다음 스터디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데 아마도 하게 될 것이다. 지식의 습득과 공유 외에 에너지 있고 창조적인 사람들과 지속적인 자극을 주고받는 일이 내가 의도한 스터디의 목적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스터디 나가는 꼴이 참 부럽게, 웹진은 진도가 안 나간다. 스터디보다 조금 큰 기획이고 잘 되면 훨씬 더 재미있을 작업인데 시작.이라는 것은 역시 쉽지 않다. 일의 단위가 크니 쉽게 되지 않고 마땅한 팀도 없도 또 내가 게으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알고 있었던, 한 때 상하이를 거쳐 갔던 신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아, 그 사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 녀석이었다면 믿고 같이 해볼 수 있었을 텐데. 따위를 생각한다.


  겨우 책 한 권 쓰겠다고 그 앞에 앉아 낑낑거리는 꼴이 안스럽다. 가만 두면 무엇도 안 될 것 같아서 최근에는 원고의 완성도를 포기하고 우선 시간계획에 맞추어 작은 꼭지들의 마침표를 찍는데 힘을 쓴다. 계획대로 된다면 6월 말에는 전체 열 두 개 꼭지의 초고가 완성된다. 그러면 나는 몇몇 사람들에게 원고를 보내서 그들의 의견을 물으려고 한다. 초고를 다 쓰고 인연들의 피드백이 돌아오는 그 동안에는 작은 여행도 생각해 두고 있다. 김훈의 책들을 여행길에 가져가겠다는 생각도 벌써 해 두었다. 겨우 책 한 권 쓰겠다고.


  소통.같은 것. 예술사에 대해 공부할 때나, 사진에 대해 말할 때나, 빌어먹으실 현 정권의 지랄발광을 볼 때나, 미처 못 다 한 말에 대해 생각할 때나, 지난 실수에 대해 생각할 때나, 내 문장과 사진에 대해 생각할 때도 어떤 소통.에 대해 말해야 하지 않나 되몯는다. 지금 내 사이트는 상당히 일방적이어서 건방지다. 가장 최근의 사이트 리뉴얼은 그러니까 한 명의 상업사진가로서 오로지 사진을 제대로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고 사진가는 사진으로 말해야 한다는 어떤 덜 익은 비장함이 그 때는 컸다. 어떤 방향인지 아직 분명하게 알 수 없지만, 어떤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징조를 내 여기저기에서 본다.





2008.04.30 19:50


  새학기를 시작하는 기분 아니면 새 방학을 시작하는 기분. 잘 하고 싶다, 잘 해야겠다는 다짐 같은 것. 시간표도 새로 짜 보고 괜히 결심도 굳게 하면서 주먹 한 번 불끈 쥐어 보는. 


  5월 시간표를 뽑아서 벽에 붙인다. 지난 달에는 제법 많은 칸에 곱표.를 그렸고, 그 마저 없이 통째 비워놓은 칸들도 여럿이다. 더 이렇게 지내면 안 되겠다는 몇 년째 반복되는 위기감 같은 것. 무엇이 제대로인지 모르지만 나는 어쨌든 한 번 사는 세상 제대로 살고 싶으니까. 그래서 조금 더 비장한 마음으로 5월 시간표를 붙인다. 


  계절은 곧 여름이 된다. 여름에는 나비가 날까?







2008.04.23 20:42


  올해는 봄이 유난히 늦다. 매년 봄이 올 때는 말 할 수 없는 설램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오는 듯 마는 듯 와서는 알게 모르게 가 버릴 모양이다. 낮에 밖에 나가면 제법 따뜻한 것도 같은데 아직도 집에서 작업할 때는 외투를 두 개 입는다.


  삶에서 가을은 언제쯤 오는 것일까? 계절은 해마다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삶은 한 해 밖에 없는 것일까? 그래서 삶에는 가을이 한 번 밖에 오지 않는 것일까? 알몸으로 가벼워지는 가을의 나무를 만나는 기회는, 삶에는 한 번 밖에 와 주지 않는 것일까.


  나는 밖으로 빛나려고 하는가? 내 안으로 빛나고 싶다고 여러 해 생각했는데, 생각의 끝은 결국 안에서 생겨난 빛이 밖으로 퍼져나와 밖으로 빛나는 거기였을까? 사진과 문장과 삶이 모두 거기를 바라본다는 아픈 자각. 같은 것들. 알면서도 판 위에 놓게 되는 악수.같은 것들.


  문장 앞에서 마음이 급하다. 어떤 예감 같은 것. 어서 써야 한다는, 지금 쓰지 않으면 기회가 없을 거라는 예감 같은 것. 그래서 마음이 급하다. 더 미룰 수 없다.


  불꽃처럼 살면 좋겠다. 하지 않으려고 않으려고 모르는 척 했던 단어인데 결국 쓰고 만다. 불꽃처럼 살면 좋겠다고 쓴다.





2008.04.08 18:52


  쌀 섞었다. 지난 설 즈음에 사서 먹고 이번에 샀으니까 두 달쯤 먹은 셈이다. 현미 5kg짜리를 사고, 옆 곡물 코너에서 팥을 샀다. 팩으로 포장되어 있는 녹두와 율무(로 추정되는 것)를 샀다. 그리고 유기농 코너에서 조, 검은콩, 찹쌀, 작은 율무(로 추정되는 것), 메밀(로 추정되는 것)도 샀다. 3만 원이 조금 덜 들었다. 우선 현미를 두 곳에 적당히 나눈 다음 다른 잡곡들을 적당히 넣어서 섞었다. 두 덩어리 중에 하나는 집개로 입구를 물려서 그늘에 두고, 다른 한 덩이는 쌀칸에 놓았다. 지난 번 잡곡밥은 맛이 참 좋아서 가끔 외식할 때는 밥 먹는 일이 되려 아쉬웠다. 이번에는 지난 번에 더해서 율무(로 추정되는 것)과 메밀(로 추정되는 것)을 더했는데 밥맛이 어떨지 알 수 없다. 이 글을 적고 나면 가서 쌀 담궈야겠다. 지난 번에 혜정이 통해서 중고로 구입한 압력밥솥은 밥을 참 맛있게 해준다. 


  지난 달에 찍어둔 호텔들 덕분에 통장에는 제법 잔고가 있고, 그래서 요즘 장보러 갈 때는 돈 걱정 하지 않는다. 가서 필요한 것들, 사고싶은 것들을 사도 계산대에서 마음이 가볍다. 거창하게 살지 않더라도, 그저 먹거리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는 것이 이토록 마음 편한 것인가 싶다. 겨우 먹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3년이 걸렸다. 다음 3년은 내게 무엇을 주는 시간이 될까?


  저녁 반찬은 뭘로 하나?





2008.03.24 14:53


  요즘 몇 명이 모여서 서양미술사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르네상스와 매너리즘, 바로크 미술 정도까지 진도가 나갔습니다. 격주로 하는데 다음 주에는 바로크 후반부와 낭만주의에 대해 할 겁니다.


  첫 주에 고대미술과 이집트, 그리스 미술에 대해 했었습니다. 그 때 이집트 미술에 대한 부분이 저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집트 미술은 어색합니다. 다리와 몸통, 그리고 다시 몸통과 얼굴이 따로 놀지요. 다리와 얼굴은 옆모습이고, 몸통은 정면입니다. 저는 그런 이집트 미술을 참 서투르다고, 그리스 미술과 비교해서 참 원시적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공부해 보니 그것도 아닌 모양입니다. 이집트인들은 그리스처럼 그릴 줄 몰라서 그런 게 아니었답니다. 사물을 나타낼 때 어떻게하면 가장 사물의 본질적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까 고민했고 그 결과로 태어난 것이 소위 말하는 '정면성의 원리'라는 것이랍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은 시각적인 착각, 즉 착시를 불러 일으키려는 저급한 의도를 가진 것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당시의 미술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왕이나 신께 바치는 것이었는데, 감히 그런 관람자를 대상으로 저급한 시각적 속임수를 쓸 수는 없다고 믿었기에, 그들은 정면성의 원리를 가장 훌륭한 표현방식으로 옹호했다는 것입니다.


  미술사 공부에서 제가 다루고 있는 책은 아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라는 책입니다. 시인 황지우는 이 책을 읽고 비로소 예술사적인 지형감각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작품이 예술사에 있어서 어떤 맥락을 따라 왔고 따라서 현재 어떤 흐름의 연장선에서 어떤 가치를 획득하고 있는가.라는 부분을 이 책을 읽은 후 비로소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황지우의 그런 말에 공감합니다. 뭐 한참 모자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현대 사진에서 광각은 지배적인 흐름입니다. 그리고 저는 현대.라는 시대에 광각이 참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렌즈의 선택에서 호불호.의 문제 정도는 있을 것이고, 제 경우에는 표준 화각을 구사하는 것이 조금 더 까다롭고 어렵기는 하지만, 내가 바라보는 공간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좀 더 지극한 시도를 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과감하게 시선을 몰아가려는 시도 대신, 좀 더 쉽게 인상적인 사진을 만들려는 유혹 대신에 공간이 갖는 어떤 본질.이 내 사진에 담겨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같은 것 말입니다.


  어떤 화각이 좋고 어떤 화각이 나쁘다는 생각은 의미가 없을 겁니다. 현대 예술에서 모든 예술은 스스로의 가치를 획득하고 있고, 또 그런 가치들은 존중받습니다. 다만 진지한 작업을 앞둔 사진가라면 한 번쯤 자신의 화각에 대해 물어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합니다. 나는 이 화각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언제나 열심히 하시는 노신님 사진 보면서 많이 배웁니다. 같이 공부하는 입장에서 작은 참고라도 될까 싶어 아침 부시시한 모습으로 적어둡니다. 







2008.03.21 13:50

노무현 촌장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에 봉하마을에서 촌장님처럼 지내고 계신다. 나는 매일 인터넷 뉴스 보다가 가슴이 먹먹할 만큼 답답해지면 노무현 홈페이지에 가서 글 몇 개 읽어보고 나온다. 요즘 그 곳에서는 시민주권운동.이라는 부분에 대해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려고 하는 모양이다.


  나는 모택동과 김구에 대해 말하면서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아름다운 세상에 끝끝내 닿지 못 했고 다만 그 진정성으로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얻었다고 썼다. 노무현 대통령도 참 아름답다.


  노자 할아버지 한참 좋아하던 때에 바람처럼 스스로를 완성하며 사는 것이 제일이라고 믿었다. 치고박는 현실을 안타까워했고 또 의미 없다고 보았다. 세상이 망가져도 언젠가는 큰 순리대로 갈 것이고, 그러면 지금의 치고박는 싸움의 허무함을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공자 할아버지를 읽었다. 네가 살고 있는 세상이 사람과 더불어 사는 곳인데 사람에게 어떻게 무심할 것이냐고 야단치는 듯했다. 


  선거가 축제가 되어야 한다. 내 표 한 장으로 내가 원하는 세상이 올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그런 희망을 줄 수 있는 역할을 이 땅의 정치인들이 해야 한다. 그래서 선거일은 한판 신나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 대학은 선거철에 선거에 대한 다양한 토론이 이루어져야 하고 사회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선거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 적어도, 지금의 이 꼴을 두고보면 안 되지 않나. 힘들게 힘들게 만들어 온 이 땅을 또 개판치면 안 되지 않나.




2008.03.21 13:27


  물이 가득 담긴 큰 그릇 안에 빈 찻잔을 담았다. 찻잔은 잠시 흔들거리다가 균형을 잡고 그릇 가운데 떴다. 아, 찻잔이 뜬다. 잔은 비어서 뜨는 것일까? 물은 무슨 마음을 먹고 저 빈 잔을 떠올려 준 것일까? 싱크대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만들겠다고 만들겠다고 말만 했던 웹진을 위해 어제 첫 회의를 했다. 내가 밥을 사고 후식도 샀다. 알면서도 덥썩 미끼를 물어준 사람들이 고맙다. 상하이에 거주하는, 생기있는 사람들의 인력 풀을 구성하고, 해서 마땅한 이야기를 하며, 현지 유학생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 세 가지 목적으로 웹진은 출발한다. 신나는 놀이터 하나가 또 생겨난다. 나는 그 안에서 마음껏 놀아볼 테다.


  봄인가. 무언가 서둘러야 하고 무언가 이루어야할 것 같은. 내 겨울잠은 너무 길었나. 몸은 나아가다가 비틀거리고, 또 움직이다가 멈추고 해서 박자 맞추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나는 나아가기에 대한 간절한 바램이 있고, 그래서 가려고 한다. 떨치고 일어나면 좋겠다. 3년 사이에 나는 이 만큼 왔다.


  홈페이지를 개편하겠다. 이번 개편은 내 사진들을 좀 더 잘 팔기 위한 목적과, 책 출판시기에 대비해서 소통하기 위한 공간을 마련하려는 두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향으로 진행하려고 한다. 웹진 fshanghai와 직접적 연결을 만들고, 몇 년 동안 닫아두었던 잡담 게시판을 다시 연다. 현제 제로보드 게시판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 사진포트폴리오 게시판은 라이트룸의 기능을 이용한 플레시 형식으로 바꿀 것이다. 


  미술사 스터디를 시작해서 이미 궤도에 들었다. 예상보다 얻는 것이 적은 것도 같고, 서툰 것도 같다. 첫 술에 배부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여러 번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첫 술의 가치가 포만감이 아닌 다른 데 있다는 것도 나는 또한 경험했다. 주문한 봉투가 오면 사진 발송이 시작된다. 호텔 작업 포트폴리오도 제법 됐다. 곧 웹진이 시작할 것이고, 별도의 사진 스터디도 봄과 함께 시작할 것이다. 조금 늦어진 책도 다시 속도를 붙일 것이다. 나는 잘 하고 있다.


  계절이 바뀔 때 불어오는 바람은 그 바람과 함께 있었던 기억들도 함께 담아 온다. 내 봄은 어떤 원시의 감정이다. 수 만 년 전쯤에 내가 살았던 아릿한 봄이 기억날 것 같다. 그 봄에, 나는 어느 벌판에 있었던가. 


  좋은 친구들 더불어 나른한 봄볓에 드러난 나무뿌리처럼 앉아서 맥주나 한 잔 하면 얼마나 좋을까. 소리소리 노래도 부르면서.






2008.03.12 22:46


  겨울잠이라도 한 판 잔 것 같은 기분,


지난 겨울은 길고 추웠다. 봄은 갑자기 왔고 몸도 갑자기 깬다.





2008.02.01 23:13


  내 이럴 줄 알았다. 잠시 자려고 누웠던 낮잠이 늦잠이 되어 서둘러 깼을 때부터 알았다. 


  지난 학기 복단대 교환한생으로 왔던 학교 후배 현주를 만났다. 곧 귀국한다고 해서 밥 한 끼 샀다. 나 요즘 돈 좀 번다고, 편하게 먹고 싶은 것 먹으라고 하면서 내가 먹고 싶은 얼큰한 한식으로 했다. 선미 누나가 돌아갔고, 먼지도 돌아갔다. 성균 형도 돌아갔고 곧 현주도 간다. 사람  보내는 일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번 겨울에는 유난히 돌아가는 사람이 많고 떠나보낸 마음은 채 가라앉기 전에 다시 뜬다.


  밤이 길고 춥다. 상하이는 50년만에 내리는 기록적인 눈 때문에 도시 전체가 정신이 없다. 거의 이 십 일 가까이 햇빛을 보지 못 했고, 일주일 가량 눈이 내리고 있다. 최저기온은 영하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전기장판을 싫어하는 나는 세 겹 옷을 입고 잔다. 그래도 새벽에는 추워서 잠시 전기장판 켰다가 끄고 잔다.


  미술사 스터디가 곧 시작한다. 웹진도 슬슬 사람이 모인다. 사진스터디는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가능하다. 뭐가 하나씩, 되어 간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밤 늦었는데 잠이 안 온다.






2008.01.18 12:37


  새해도 한참 갔다. 일 나가는 진도는 더디고 마음은 조급하다.


  십 수 년 전부터, 나는 서른 살이 되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 역사 속의 영웅들은 어려서 뜻을 펼치고 스무 살에는 완성에 근접하지 않았던가? 십 년 전 생일에는 조급한 마음으로 오대산에 올라서 수음은 했었던가 안 했었던가. 서른 되어서 며칠 지내고 보니, 서른에도 세상은 끝나지 않을 모양이다. 나는 마흔을 기다려 보기로 한다.


  프린터는 아직도 수리중이다. 사진을 넣어 보낼 봉투를 의뢰했고, 형압 틀도 문의했다. 취미이던 사진이 직업이 되어버린 후로 내 취미란은 비어 있었다. 프린팅을 취미로 삼아볼까 싶다.


  웹진을 만들 생각, 책 원고를 정리해서 우선 웹 연재를 시작할 생각, 그리고 작업들을 프린트하고 다시 프린트에 탄력 받아 작업을 계속할 생각. 연초에는 사고를 치고, 연초를 제외한 일년의 나머지 시간에는 사고를 수습하며 산다. 그렇게 한 해가 간다. 올 해는 책이 나온다.






2008.01.01 18:55

연말인사


  "오빠, 그거 알아요?"

  "응? 뭐?"

  "오빠, 내일이면 서른이다."


  연말 기념 판타스틱 이벤트 초특급 몸살과 더불어 새해를 맞았다. 내복 입고 양말 신고 머리는 산발을 해서 하얀 마스크 쓰고 앉은 꼴이라니. 매년 12월 초에 보내던 연말인사도 올해는 정말 연말에 닥쳐 급하게 만들고 보냈다. 대신 올해는 한 분 한 분에게 따로 소식을 적었는데, 참 잘 한 일이다.


  아, 올해가 아니구나.


  내 올해는 어떤 한 해일까? 보다는 어떤 한 해여야 할 것인가? 인연들은 안녕했을까?




  나는 착하게 잘 살고 있는데, 세상은 왜 자꾸 내 앞에 숫자를 붙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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