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블로그 글

2009년 짧은 글 모음



2009.12.31 23:52


오전이면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겠다 싶었던 일들은 제법 길어졌다.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밤까지 맑고 서늘한 정신으로 있고 싶어서 저녁은 부러 가볍게 먹었다. 청소를 했다. 어제 마침 정원사님이 이불을 선물로 주셔서 지난 이불을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책상에 쌓인 서류들도 치우고 쓰레기통도 모두 비워서 몇 봉투의 쓰레기를 내다버렸다. 냉장고에 오래 묵은 것들을 치워내고 설거지를 해서 말끔하게 정리했다. 

최근에 잘 안 듣던 음악들을 골라서 들었다. 베토벤 9번도 들었다. 다 듣기에는 좀 지루해서 4악장만 들었다. 스메타나 나의 조국.은 시작 부분의 하프 연주만 듣고 말았다. 명성황후 뮤지컬 씨디는 다 들었다. 웅산의 1집, 3집을 들었다. 여성 재즈 보컬들의 대표곡을 모아 놓은 앨범도 들었다.


책장을 정리했다. 새 책장을 사 온 뒤에 책들을 아무렇게나 넣어두고, 언젠가 정리할 날이 있겠지 싶었는데 오늘 했다. 우선 여러 권짜리 책들은 한 데 모으고 한 작가의 책들도 가능하면 모았다. 오른쪽 책장에는 문학이론과 철학서들을, 그리고 에세이와 평전들을 모았다. 왼쪽 책장에는 미술, 음악, 건축, 사진 등 갖고 있는 예술 관련 책들을 모았다. 가운데 책장에는 소설책들을 모았다. 한국 다녀올 때마다 몰아서 사오다 보니, 사 두고 안 읽는 책들이 조금씩 불어난다. 얼른 읽어야 할 책들을 따로 모아볼까 하다가 관둔다. 모아둔다고 볼 내가 아니고, 그렇게 모으려니 괜히 더 어렵다. 책장은 다시 좁아져 가는데, 치워버리고 싶은 책들도 몇 권 생겼다. 처음 내게 올 때부터 치우고 싶었던 책들도 있고, 그 때는 제법 그럴 듯하게 보았는데 시간이 지나서 녹슨 책들도 있다. 우선 두어 칸을 비워서 남은 책들은 아무렇게나 막 넣었다. 제법 색깔도 그럴 듯하고, 키도 가지런하고, 그럭저럭 번듯하게 차려 선 책들을 보니 딱 오늘 같은 날에 어울리는 작업을 한 것 같아서 혼자 뿌듯하다.


연말을 차근차근 기다려서 맞지 못 했다. 마감 넘긴 일들에 쫓겨 숨을 헐떡이다 보니 어느새 12월이고 31일이다. 10년 가까이 매년 연말에 보내던 연말인사도 올해는 못 보냈다. 억지로라도 만들어서 급하게라도 보낼까 하다가 관둔다. 올해는 유난히 새로 알게 된 사람들도 많았는데, 못 보내는 것은 아쉽다. 내년 초 새해 인사로 대신할까 생각도 해보는데, 아마 안 할 것이다.


유난히 서툰 한 해였다. 세상이 바라보는 내 나이를 뜨끔하게 안 한 해였다. 알게 모르게 간 한 해가, 좀처럼 못 마땅하다. 


내일 새벽에는 새 밥을 지어야겠다. 밥이 끓는 동안,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 앉아 있어야겠다. 그리고 갓 지은 새 밥을 먹고, 다시 일해야겠다.


아, 사랑했던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







2009.12.17 16:58


  며칠 동안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사진을 만졌다. 오늘 오전 정도면 마치고 오후에는 시내 카페라도 찾아 앉아서 읽어야 할 책들을 읽고 써야 할 글을 쓰려고 했는데, 막상 해 보니 작업 속도는 더디고 시간은 빠르다. 그래도 오늘 밤까지 하면 작업해야 할 급한 사진들 중에 9할은 끝낼 수 있겠다. 그러면 내일은 조금 덜 급한 사진들을 만지고, 모레는 정말 원고뭉치와 책 몇 권을 들고 사람 적고 조용한 그 카페에 가서 하루 종일 앉아 있어야겠다.

  어제 밤늦게 시켜먹은 피자가 이상했던 것일까. 오전 내내 변기를 끌어앉고 있었다. 어디 나가 보려고 해도 배탈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이럴 때는 굶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아침 점심을 거르고 뜨거운 물만 계속 마셨다. 결국 오후 늦게 너무 배가 고파서 집 아래 편의점에 가서 배탈에 전혀 도움이 안 될 것이 뻔한 군것질거리들을 잔뜩 사와서 허겁지겁 먹었다. 하여튼 요즘 하는 짓이 대충 이런 수준이다.


  무릎팍 도사.를 봤다. 배울 것이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는데, 개인에게 좋은 것 뿐만 아니라 더불어 좋아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참 좋다. 이번에는 배우 강혜정이 나왔는데, 출산을 앞두고 있어서 아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많았다. 강혜정이 독특한 캐릭터라는 것은 지나가는 이야기로 몇 번 들어서 그런가 보다 했었는데, 직접 보니 그럴 만하겠구나 싶었다. 참 좋은 엄마가 될 것 같은 사람이다. 


  나이 핑계를 대고 싶지 않지만, 이제 또래의 여자를 만나면 예전과 다른 것들을 챙겨보게 된다. 그저 나를 들뜨게 하고 사는 일에 대한 가득한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을 욕심냈었는데, 이제는 그 사람을 내 주변 사람과의 사이에 놓아보게 된다. 물론 여전히 첫 기준은 내가 되어야겠지만 그래도 생각하게 되는 것이란, 이 사람이 내 주변 사람들에게 잘 해줄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 줄까? 그런 속에서 기꺼이 행복함을 느낄까? 뭐 그런 것들이다.


  여러 사람을 만났다. 같이 길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을 욕심내기도 했고, 내가 어디를 다녀오더라도 따뜻한 품으로 나를 맞아줄 사람을 욕심내기도 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내가 가진 것으로 돕고, 사방에 크게 해롭지 않은 사람으로 살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하는데, 제법 그렇게 살지 않았냐고 따져묻고 싶기도 한데, 만나던 사람과 헤어질 때마다 나는 어째 나쁜 사람이 된다. 진심이었다고 믿는 내 감정이 어쩌면 그들의 말처럼 한낮 눈속임이었나 싶고, 안전한 움집을 만들고 그 안에 들어앉아서 나만 무사히 살아남은 것은 아닌가 싶다. 발가벗은 알몸의 상대에게 온갖 날카로운 것들을 던져놓고.





  




2009.12.13 22:40


  계획대로 된다면, 화요일 정도에는 숨을 막고 있는 급한 일거리들이 대충 수습은 된다. 그러면 숨을 막고 있는 급한 일거리들. 때문에 미루어둔 다른 급한 일들을 금요일 정도까지 연장해서 마무리하면 된다. 


  밤이 되니까 오늘 하루 무엇을 했나 돌아보고, 마음은 여기저기 바빴는데 손에 쥔 것은 마땅히 안 보이는 하루라고 생각한다. 


  아마, 책 쓰기 전까지는 이 언제나 밀린 것 같은 압박감이 사라지지 않을 모양이다. 벼락치기로 단련된 시간들이다. 중학교 때는 학기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쯤 되면 본격적인 공부는 시험 전날 밤에나 시작했는데 대충 수습은 되었다. 고등학교 때는 조금 나아져서 시험기간 며칠 전에 대충 공부할 것들을 겨우 생각만 해두고, 여전히 전날 밤부터 본격적인 공부를 했다. 그렇게 며칠을 낮과 밤을 바꿔 지내면 시험기간은 끝이 났고, 대충 수습은 되었다. 대학교 때는 그래도 조금 철이 들고 공부에도 욕심이 생겨서, 혼자서는 절대 안 되니까 착실하게 공부하는 후배들을 꼬드겨서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했다. 나는 도서관 자리를 잡아주고, 대신 녀석들은 나를 하루 종일 도서관에 묶어두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렇게 나름 수습은 했다. 벼락치기는 삶의 한 나쁜 방편으로 굳어져서, 원고는 마감 지나고 독촉 전화를 받아야 겨우 쓰기 시작하고, 그러니까 완성도라고는 개뿔 없는 개발새발 문장을 원고랍시고 내게 된다. 사진은 찍을 때만 열심이고, 마감 때는 급하게 후반작업을 해서 넘기니까 언제나 나오는 사진은 아쉽기만 하다. 중학교 때보다는 고등학교 때의 시험기간이 하루쯤 길었다. 대학은 재수 없으면 시험 기간이 2주에 걸치기도 했다. 현장에서는 마감이 날마다 닥쳐와서, 벌써 대충 석 달째 시험 벼락치기 하는 기분이다. 얼른 끝내면 될 일들을 미루니까, 막상 일이 없는 날도 그 압박감에 시달려서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이런 벼락맞을. 


  마감이야 어쨌든 간에, 내일은 아침부터 촬영이 있으니 오늘은 이만 자야겠다. 내일은, 또 어떻게든 된다.





2009.12.10 08:49


  이상하네. 아침에 제법 분주하게 이것 저것 후다닥 움직인 것 같은데, 왜 앉아 보니 아무 것도 한 게 없어 보일까?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으로 만든 달력을 주문하기로 했다. 하나를 주문하려다가, 이왕이면 여러 곳에 나누어주어야겠다 싶어서 괜히 기분에 열 개쯤 주문하려다가, 막상 생각해 보니 또 그렇게 많이 나누어줄 곳도 없는 것 같아서 네 개만 주문하기로 했다. 몇 년 전부터 판화가 이철수님의 판화가 있는 달력을 사서 썼는데, 지난 한국 간 길에 교보에 들렀는데 안 보여서 올 해는 없는 모양이다, 생각하고 빈손으로 왔었다. 와서 이 달력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으니까, 그러려고 그랬나 싶다.


  활자들로 이루어진 세상을, 책으로 구축된 세상을 내 도피처로 삼지는 말아야겠다. 그 곳으로 간다면, 그게 또 하나의 도전이 되도록 해야겠다. 지금 삶이 지쳐서, 그 곳이 어쩌면 조금 덜 피곤할 것 같아서, 덜 다투고 조금 수월할 것 같아서 마지 못해 선택하는 길이 되지 않도록 해야겠다. 책에 대한, 문장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다.


  어제 잠자리에 누워서 새로 작업할 '배우' 작업에 대해 생각했다. 그 사진들을 통해 무엇을 말할 것인가? 우선 배우.라는 단어를 정의, 또는 그 단어의 범주를 설정.할 필요가 있겠다. 사진은 아름다워야 하니까 어떤 조명을 쓸지, 어떻게 다르게 만들지 고민해야겠다. 어떤 모델들을 구해야 할지, 어떤 설정이 필요할지 생각하다가 늦게 잤다.






2009.12.09 21:19


  아침에 볼일 보러 가는 길에 지하철에 앉아서 수첩을 펴고, 해야하는 일들을 적었다. 언제 적어도 대충 스무 개는 넘는다. 어떤 일들은 아주 오래된 것도 있어서 단골손님 같다. 


  비자를 연장해야 하는데, 취업비자 연장은 처음이라서 대행사에 알아보니 대행 비용이 제법이었다. 여기 저기 물어보니까 혼자 해도 가능하다고 해서 필요한 서류들을 모아서 알려준 곳에 가서 수속을 하고 다시 부족한 게 있어서 돌아가서 다시 모아서 다시 수속을 하고 그 다음 수속을 하고 또 해서 오늘 마쳤다. 이제 일주일이 있으면 다시 일 년을 비자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는 새 비자가 나온다. 내가 직접 움직이니까 이런 저런 수속에 이틀이 조금 덜 걸렸고, 대행사를 이용할 때보다 10만원 가까운 돈이 덜 들었다. 작업이 밀려있고, 어서 후반 작업을 해서 넘겨야 돈을 받고 그래야 연말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데, 내 이틀과 10만원의 시간 사이에서, 내 이틀이 10만원과 견주어 어디쯤에 있는 것인지 분명하게 알 수 없다. 해야할 실수는 대충 다 해가면서 진행시켰으니까, 내년에 다시 연장할 때는 좀 더 수월하게, 좀 더 짧은 시간에 해치울 수 있을 것이고, 그러니까 결론적으로는 잘 한 것이다 싶다.


  일해야 되는데, 좀처럼 일이 손에 안 잡히고 마음은 이런 저런 갈증이 생겨서, 쓴다. 두어 달 정도 전부터 밀린 일들이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급한 것들부터 하나씩 치워가는 사이에 새로운 일들이 밀려들고 그래서 일의 벽은 언제나 거대하고 긴급하다. 모르는 사람들은 일 많다니까 돈 많이 벌어서 좋겠다는데,


  오늘 또 돈 빌렸다. 며칠 전에 조금 빌리면서 며칠이면 쉽게 풀릴 줄 알았는데 안 됐다. 내 일을 돕는 어시에게는 두 달째 월급을 못 주고 있다. 지난 주 촬영 때 온 메이크업에게는 오늘까지 송금한다고 했는데 그것도 미뤄야겠다. 어제쯤 입금되었어야 할 급한 돈이 아직 안 들어와서 그나마 막아둔 것들이 터져나가려고 한다. 들어올 돈들이 있으니 어떻게든 되기야 하겠지만 제 때 들어오지 않으니 '어떻게든'이 안 되고 '문제'가 된다. 밀린 돈들을 어서 받고, 마무리 작업을 어서 끝내서 다른 돈들을 받아야 조금이라도 등 따신. 연말을 보낼 수 있겠다. 언제쯤 통장 잔고에 영 하나를 더 붙일까.

  

  찾아간 사무실 한 켠에서 차례를 기다리면서 잡지를 봤다. 인테리어에 관한 잡지였다. 사진을 시작한 후부터 잡지도 제법 보게 되었다. 인테리어 사진은 따로 덧붙일 말이 없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내가 겨우 흉내만 내는 분야니까 그런 것이 당연해 보였다. 인물 사진은 나쁘지 않았는데 그래도 내가 찍는다면 다르게 찍을 수 있다는 구석들도 제법 보였다. 마땅한 부분이다. 잡지의 대부분은 광고로 채워져있었다. 기사들은 온갖 허영의 집합같았다. 


  가구 하나를 바꾸면 당신의 삶이 바뀌고, 작은 소품 하나가 당신의 깊은 내공을 드러내고, 주변이 그런 당신의 거품을 찬양할 것이고, 없어도 죽지는 않겠지만 이게 있다면 당신은 좀 더 그럴 듯한, 잡지에 어울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결론은, 사라. 사라. 사라. 사고 사고 또 사라. 없으면 부끄러워해라. 이런 것도 살 수 없는 당신은 이 시대의 어두운 단면이다. 


  아, 빌어드실 세상. 열심히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저 허울 좋은 것들에게 잡아먹힐 것이다. 그 상대적 박탈감을 실제적인 위협으로 느끼며 그 안에서 허우적거릴 것이다. 아, 저것들이 팔려나가는구나. 세상이 저것들을 당연하게 소비하는구나. 

  소비의 시대에 적극적으로 저항한 게릴라들은 곳곳에 있었다. 시대에 등돌리고 앉아 세상을 왕따시키며 사는 것이 답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저 세상과 당당하게 마주서서 그 속내를 노려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살아내기 위해 돈은 당연히 벌어야 하는 것이고, 내게 오는 돈을 부러 내칠 생각은 꿈에도 해본 적이 없다지만, 무엇이든 사라는, 없으면 슬퍼하라는 저 함성은 기가 막히지 않나.


  갈피를 못 잡는 말들. 일이나 해야겠다.







2009.12.02 23:11


  팔짱을 세게 끼고 있으면, 심장이 뛰는 것이 팔에 느껴진다. 차 한 모금을 마시는 동안에, 다른 사람 발제를 듣는 동안에, 새벽에 꾼 꿈을 되돌려보는 동안에, 재미 없는 책 두어 장 뒤적이는 동안에, 이제 막 내뱉은 말실수를 후회하는 동안에도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뛰고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빈둥거리며 시간을 허송하는데도, 심장은 그것도 모르고 착실하게 뛰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조금 미안해졌다.


  세상에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할까 보다. 그러니까 언제든 어떤 형태로든 돌려주어야 한다는 각오를 항상 되새겨야 할까 보다.


  오늘 스터디에 온 성현 형은 마음이 많이 불편해 보였다. 괜히 와인 한 병을 사 와서는 맴버들과 함께 마시며 혹시 불편한 마음이 풀려나지 않을까 기다려 봤는데, 형은 스터디 마치고 얼른 돌아가셨다. 술이 모자랐던 것일까? 맛이 충분히 좋지 않았던 것일까? 


  성현 형은 직접 번역한 책을 선물로 주었다. 벌써 두 권째다. 사실 아직 읽어보자도 못 했고, 충분히 두꺼운 두 권을 그냥 책장에 잘, 폼나게 모셔두었다. 책을 받았으니 어떻게 고맙다는 표시를 해야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하다가 우선 책에 대한 감상을 제법 단단하게 쓴 문장을 하나 만들기로 한다. 읽고 생각하고 쓰려면 뭐 간단히 될 문제가 아니겠다만. 그리고 두 번째 받은 책은 초판본이니까, 꼼꼼히 읽고 어색한 부분이나 틀린 글자를 찾아서 정리해 주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 나도 가끔은 내가 기특하다.







2009.12.01 23:09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일의 지나간 이야기는 못 되더라도, 많은. 일.들의 목록이라도 적을까 하다가 그만 둔다. 다만 많은 일들이다.


  몸도, 마음도, 제자리에 돌아왔다. 사람과 일의 되어가는 모양새가 들고 나는 것이고, 솟고 꺼지는 것이면 사실 제자리.라고 불러서 마땅한 어디.쯤은 없을 것이다. 다만 영영 닿지 못하는 그 가운데 어디쯤을 향해서 가까워졌다 싶으면 어느새 멀어지고, 멀어졌다 싶으면 또 가까워지려고 한다. 그러니까 제자리에 돌아왔다.고 쓰면 틀린 말이 되겠지만, 어쨌든 몸과 마음이 한참 힘을 쓰고 무엇인가 새로운 것들 앞에서 두려움의 크기보다 더 큰 호기심으로 나아가려는 그 때쯤을, 나는 내 제자리.라고 믿고 싶다. 그래서 지금 나는 제자리.로 돌아온 기분이다.


  누나와 매형과 아버지와 어머니와 동생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어떤 부분은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듯했다. 나보다 나를 모른다,싶은 부분은 없었다. 적어도 내가 나를 아는 만큼 나를 알거나, 어떤 부분은 나에 대해 내가 아는 것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듯했다. 많이 듣고, 차곡차곡 담아왔다.


  날씨가 추워서 옷을 따뜻하게 입었다. 해가 가려고 하니까 또 연말 인사 만들 생각을 해야 한다. 밀린 일들이 제법이다. 언제나처럼. 그리고, 가끔 오는, 맑은 정신으로 맞는 밤시간이다. 내일도 아침 일찍부터 챙겨야 할 일들이 많으니까 일찍 자야하는데, 아, 이 말똥한 정신을 어이하나. 새로 사 온 책이나 두어 장 뒤적이면 잠이 올 테다. 재미 없는데 읽어야 하는 책이다. 백 페이지쯤 읽어야 겨우 알아들을 만한 말이 두어 마디 나오고, 꾸역꾸역 겨우 마지막 덮을 때쯤 '이 말이 이 말인가? 이렇게 살란 말인가?' 싶을 책들이다.


  박상륭을 좋아한다는 사람을, 처음 봤다. 한 작가를 좋아하고 말고는 사실 대단한 문제는 아닌 것인데, 그 반가움은 팔 할은 지적 허영일 것이고, 나머지 약간은 어려운 책을 어쩌면 어디 기대서라도 더 읽어낼 수 있겠다 싶은 마음일 것이다. 그의 소설의 깊이는, 한국 문학을 조금 더 풍성하고 깊게 하는, 한국 문학이 어디 가서 제법 폼 좀 잡아도 되는 재산이 되어줄 만하다. 읽어야 할 책들은 참 여러 방면에서 많은데, 요즘은 실용서가 대세니까 진득한 책을 읽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가볍게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거나, 내일 생활에 당장 활용할 수 있는 기술서이거나, 내일 시험에 써먹어야 하는 전공서이거나, 뭐 그렇다. 그런 틈에서, 세상 사는데 별 도움이 안 되는 책들을 같이 읽자고 말하기는 어렵다. 세상 사는 요령으로, 그런 말은 함부로 꺼내는 게 아니다. 그래도, 가끔은 그런 사람들 모여서 눈치 안 보고 고행하듯 문학작품을 차근차근 읽어나가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끝도 보이지 않게 너른 눈쌓인 들판에서 차근차근 걸어가면 마침내 작은 오두막이 보이듯이.


  가자. 전기장판이 부른다.





2009.11.13 11:47


  내가 주로 쓰는 웹브라우저는 모질라재단의 파이어폭스.다. 지금은 새로 업그레이드 된 익스플로어 8.0버전이 있지만, 그 전 7.* 버전이 주류일 때, 파이어폭스는 새롭고 더 강력했다. 지금도 나쁘지 않아서, 제법 익숙해져서 계속 쓴다. 가끔씩 파이어폭스.가 제대로 안 먹히는 사이트만 따로 익스플로어로 열어서 본다.


  오전에, 즐겨찾기 폴더를 정리했다. 웹서핑하다 보면 마음에 드는 사이트는 그 때 그 때 즐겨찾기에 추가해 두는데, 이게 조금씩 모이면 정신 없다. 그래서 몇 달에 한 번씩 폴더별로 나누어서 정리한다. 정리만 해두고, 잘 안 본다. '아침마다'라는 이름의 폴더를 새로 만들었다. 그리고 자극이 될 만한 사이트 몇 개를 폴더에 넣고, 가장 기본적인 것들만 모아둔 폴더 바로 아래 두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주로 컴 앞에 앉아 한 시간 가까이 소일하는데, 가장 정신이 맑은 시간에 잡스러운 기사들이나 뒤적이며 보내는 것이 참 한심하다. 그래서 컴퓨터 켜면 '아침마다' 폴더를 열어서 그 안에 있는 개인 사이트, 블로그들을 보려고 한다. 나와 같은 시간의 크기 동안에, 그들은 그토록 의미있는 일들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조금은 자극이 되고 나를 추스릴 수 있을 것이다.


  KBS에서 쫓겨난 정연주 사장의 강제 퇴임이 불법이라는 법원의 판결이 났다. 그러나 다시 돌아가려고 해도 임기가 이제 겨우 열흘 남짓 남았다고 한다. 명분으로 의미는 있겠지만 실효적 의미는 없다. 법원의 판단에는 그 실효적 의미 없음.도 작용했으리라. 그렇지 않다면 이 정권 아래서 법원은 어떤 논리를 만들어서라도 이와 같은 판결을 내지 않았을 것이다.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했을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최종 단계는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데올로기를 내재화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부당한 판결은 외부의 힘에 의해 강제된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자체를 내재화해버린 그들의 자의적 판단이다.


  어쨌든, 정연주 사장은 오마이뉴스.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데, 오늘자 칼럼을 어쩌다 보게 되었다. 리영희 선생께서 정연주 사장에게 보낸 서툰 글씨의 편지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시민 행동강령 50. 같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미국의 온라인 시민단체 'Move On'에서 만든 책에 실려 있는 내용이라고 한다. 옮겨 둔다.


결코, 침묵하지 않겠다.



1. 연대의 힘

- 효과적인 온라인 청원을 시작하라

- 온라인 청원에 대해 적극 알리라

- 그 청원에 서명하라

- 각자 알고 있는 정치 지식과 추천사항들을 공유하라

- 온라인에 대해 큰 소리를 내라

- 대통령(과 다른 정치인들)에게 이메일을 보내라

- 당신 선거구의 국회의원 등 대표자들을 만나라


2. 한 표가 중요하다

- 무슨 일이 있더라도 투표하라

-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투표자들을 동원하라

- 특정 쟁점과 관련하여 투표자 등록을 조직하라

- 당신 사무실 직원들을 모두 투표장에 가게 하라

- 선거 당일 최대한 투표가 이뤄지도록 하라

- 아는 사람들중 투표하지 않는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호소하라

- (투표를 종용하는) 투표은행에 참가하라


3. 미디어의 여러 얼굴들

- 더 많이 읽고, 텔레비전 뉴스를 적게 보라

- 편집자에게 편지를 쓰라

- 편향된 보도에 반응을 보이라

-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사실에 관심을 갖도록 언론에 주의를 환기시켜라

- 광고를 내라

- 언론을 개혁하라

- 자신의 미디어를 만들라

- 독자란에 기고하라

- 정치적 (깨우침을 위한) 독서 클럽을 만들어라

- 무브온이 권장하는 미디어 자료들을 참조하라


4. 정치적 활동은 개인적인 것이다

- 국회에 편지를 보내라

- 당신이 선출하지 않은 관리들에게도 의사를 표현하라

- 깨끗한 선거를 지원하라

- 선거 캠페인에 자원 봉사하라

- 선거 캠페인이 잘 되도록 도움을 주라

- 당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위해 직접 길거리로 나가 홍보하라

- 현역 선출자에 도전하기 위해 후보로 나서라

- 돈을 기부하라

- 집에서 파티를 열어 (정치적 공간을 넓히라).

- 효과적으로 청원을 하라

- 집회가 있으면 적극 참여하라

- 선출된 관리로 봉사하라

- 어디에 갇혀 있지 말고 열린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라


5. 개인적 활동은 정치적인 것이다

- 당신이 속해있는 공동체에 봉사하라

- (잘못된) 시 정책에 반대하라

- 전국적 쟁점들을 지역 단위에서도 반응을 보이라

- 시위에 참여하라

- (인권 등을) 보호하는 법률이 잘 이행되도록 하라

- 헌법 개정작업을 유도하라

- 사회적 책임을 하는 그런 일자리를 구하라

- 당신 가족과 함께 행동하라

- 정치적 견해를 나눌 수 있는 작은 모임(살롱)을 주최하라

- 당신이 가지고 있는 돈이 힘을 발휘하도록 하라

- 다른 사람들이 정치적 견해를 밝힐 수 있도록 도와주라

- 예술 활동을 통해 당신의 견해를 밝히라

- 당신의 정치적 비전을 홍보하라



2009.11.13 01:18


  요 며칠 여행자의 차림으로 걷는다. 당장 어느 산의 등산로에 들어서도 어색할 것 없는 옷을 입고, 신발도 등산화를 신는다. 우선, 유난스럽게 옷장이 비어보이고, 날씨가 험악하고, 마땅히 잘 보일 곳도 없고, 없는 옷 사이에서 그럴 듯한 조합을 고민해야 하는 일이 귀찮기도 해서, 하루 이틀이야 뭐 어떨까 싶어서 대충 입고 나선다. 츄리닝 입고 나왔냐는 구박을 받기도 했다.

  아이폰을 산 후로 한 동안 집 나서면 돌아올 때까지 계속 이어폰을 끼고 다녔는데, 그마저도 다시 접었다. 길 걸으며 계속 음악을 들으면 아무래도 주위가 산만해지고, 무엇보다 귀가 쉬지 못 해서 어째 지치는 듯했다. 그리고 그 산만함의 대가로 지갑도 소매치기 당하지 않았던가. 

  오늘은 일부러 가방도 안 들고, 그냥 손에 책 한 권만 갖고 나섰다. 하늘은 많이 흐렸는데, 비는 오지 않는다는 일기예보를 믿어보기로 하고 우산도 안 챙겼다. 날씨가 추워지고 외투를 입으니 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홀가분하려고 해도, 집 나서면 책 한 권과 수첩 하나와 펜 두어 자루, 지갑과 휴대폰이 기본이다.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가방.이 등장해야 한다. 외투를 입으면 아쉬운대로 지갑과 휴대폰 정도야 주머니에 넣으면 그만이고, 수첩은 메모지 한 장으로 대체할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물건 두어 개를 사서, 결국 갈 때처럼 홀가분하지는 못 했다.

  스타일에 목숨 걸 일은 없다지만, 그래도 단정하고 깔끔한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안다. 얼마나 채우느냐는 물론 중요하지만, 어떻게 보이는지도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을 지난 몇 년 사이에 배웠다. 


  마침내 거사가 끝났다. 태어나서 처음 사골을 삶았다. 하루 전날 저녁에 물에 담아서 피를 빼고, 큰 솥에 넣은 다음 물을 부어 끓인다. 한 번 끓으면 그 물을 따라내서 버리고, 다시 물을 부어 끓인다. 대충 열두 시간을 끓여서 우러난 물을 따로 담아두고, 다시 한 번 더 물을 부어 열두 시간을 끓여낸다. 처음 끓인 것과 나중 끓인 것을 섞어서, 당장 먹을 것을 제외하면 냉동칸에 넣어서 보관한다. 인터넷과 주변 사람들에게 들은대로 했다. 불조심만 잘 한다면 뼈를 삶는 일은 각오했던 것보다 쉬웠고, 뼈를 삶아낸 국물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비렸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었다.


  김훈의 새 소설 공무도하.를 본다. 첫 장 몇 문장의 느낌만으로 본다면, 이제는 어째 식상해 보이는 것도 같다. 이름은 다르고 말의 내용도 다른데, 모두 같은 색깔을 가진 인물들이 그의 소설 속에 나온다. 김훈을 김훈답게 하는 그 문장들이 어쩌면 김훈을 김훈 밖에 아니게 할 수도 있겠다. 


  하위분류로 나누어져있던 블로그와 사이트 몇 개를 위쪽으로 옮겼다. 아침마다, 또 하루의 중간에도 여러 번씩 들어가서 본다. 책 읽는 사람의 블로그도 있고, 미술하는 사람, 여행하는 사람, 기업하는 사람,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의 사이트도 있다. 아침에 가서 보면서 또 하루 부지런을 떨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빈둥거린 저녁에 보면서 저렇게 열심히 많은 것을 채운 하루 동안 나는 빈둥거렸구나 자책도 한다. 그리고는 오후 늦잠을 너무 많이 자서 결국 밤잠도 못 자고 이 새벽까지 깨어서는 이러고 있다. 


  한참을 빈둥거리고 정신차려 보니 사방에 쌓인 일들이 수습 불가능 상태의 직전에 있다. 일이 밀려있는 것은 알았지만 도저히 쳐낼 신체적 정신적 컨디션이 아니었고, 이러다 내가 죽겠다 싶어서 버려둔 일들이다. 이제 몸도 마음도 잘 쉬어서 일할 컨디션은 되었는데, 그 사이 저 멀리에 있던 일들이 눈 앞에 닥쳐와서 큰 벽이 되어 있다. 에프상하이 사이트는 석영님의 도움으로 되려 전보다 좋아져서 돌아왔다. 이제 전시에 쓸 사진들을 모으고 홍보자료를 만들어야겠다. 대충 컨셉도 잡았고 도안도 생각했으니 우선 만들어 두면 하미 누나가 마무리해줄 것이고, 안내문은 컨셉만 잡으면 성현 형께서 또 힘을 써주실 테다. 사람들 독촉하고 몰아가는 일은 봉식 형이 도와주실 것이고 세세한 디테일은 정원사님께서 챙기실 테다. 


  대충 몇 줄 쓰면 졸릴 줄 알았는데, 낮잠이 도대체 얼마나 길었으면 좀처럼 잠이 안 오나. 바람은 세차게 창 밖에서 불고 비는 유리창에 찌찔하게 흐르는데.





2009.11.10 23:39


  책 읽기에 좀 더 속도를 내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다녀올 때마다 사오는 책은 한 보따리씩 되는데, 일단 사두고 나면 마음이 풀려서, '언젠가는 읽겠지'하며 책장에 얹어두고 마는 책들이 점점 늘어간다. 스터디 때문에 억지로 등떠밀려 읽는 책들 말고, 스스로를 몰아가며 좀 더 부지런히 읽어야 한다.


  반 년쯤 이어온 미학스터디는 한 달 정도면 두 번째 책이 끝난다. 그러면 다음 책으로 작정하고 있었던 책은 '1900년 이후의 예술사'라는 제목인데, 많이 두껍고 무겁고 또 어려워 보이는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최종 목적지 삼아서 이번 스터디는 지금까지 왔다. 아무래도 그냥 읽기에는 무리겠다 싶어서 개론 수준의 미학이론을 다루는 책들을 먼저 보았다. 고지가 눈 앞인데, 고지 앞에서 갑자기 한참을 돌아가게 생겼다. 스터디가 진행되며 새로 들어온 맴버들의 면면이 재미있다. 처음부터 함께 공부해 온 큰누님은 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하신 분이고, 극작을 전공한 박사생과 피아노를 전공한 음악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합류한 분은 서양회화를 전공한 정통파 미술학도다. 야매 사진가까지 붙었으니 마음만 먹는다면 예술의 여러 분야를 신나게 다루어볼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최근 몇 번의 스터디에서는 각자 전공분야를 살려 입문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수준의 정보들을 들어볼 수 있었다. 한국이라면 별 것 아니겠지만, 이 먼 땅에서 이런 사람들과 모이는 일이 쉽지 않다. 이 맴버, 마음에 든다.


  마음에 들어서, 문제는 생기는 것인데, 애초에 미술에 관심이 있었던 세 명을 제외하고, 뒤늦게 합류한 연극학도와 음악도는 아직 현대미술이 낯설어서, 작정했던 책을 곧장 시작하기에는 무리가 아니겠냐는 큰누님의 사려깊은 제안을 차마 물리칠 수 없었다. 아마 두껍고 무겁고 어려워 보이는 '1900년 이후의 예술사'를 잠시 접어두고, 예전에 한 번 보았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다시 공부하게 될 것 같다. 아, 좀처럼 손에 닿지 않는 목적지다.


  한참 책읽기에 속도를 붙이던 무렵에, 책마다 메모지를 끼워서 읽었다. 책에 대한 단상과 인상 깊은 문장, 그리고 책을 읽는 사이에 내게 생겨났던 일들을 메모지에 적어서 책갈피처럼 쓰고, 책읽기가 끝나면 정리해서 작은 커뮤니티에 올려서 몇 사람과 나누어 보았다. 그게, 군대 있던 무렵이다. 다시 메모지를 끼웠다. 처음 책은 노무현 대통령의 유고 회고집 '성공과 좌절'이다.


  대통령께서 가신 뒤로, 여러 권의 책이 나왔다. 난무.했다고 써야 할 만큼 많이 나왔다. 인물평도 있었고 정책 안내도 있었고 울분도 있었고 또 비전도 있었다. 그 중에 마침내 대통령의 생전 원고들을 모아서 나온 책이 '성공과 좌절'이다. 별 내용은 없다. 이미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보았거나, 사람사는 세상. 사이트에서 읽은 것이 태반을 넘는다. 내용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는데, 다만 그 각오는 새삼스럽게 읽힌다. 책 곳곳에서 대통령은 지나온 삶의 허물에 대해 고백하는데, 그 솔직한 고백들은 삶에 대한 당당함으로 읽힌다. 그리고 전체 책을 통해서, 무엇보다도, 열심히 공부한 대통령이라는 인상이 짙다. 현안에 대해 잘 아는 대통령이라는 인상이 짙다. 고민은 누구나 한다. 일국의 대통령쯤 되면 그 고민이 오죽일까. 문제는 어떻게 해법을 찾고, 그 해법을 밀어나가느냐.일 것이다. 단단한 공부와 신중한 고민으로 도달한 답은,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 때 그 때 말이 바뀌는 지금의 그가 자꾸 떠올라서, 답답했다. 옮겨 적기에는 너무 많은 문장들이, 지금의 정치 현실을 걱정하게 한다. 


  대통령은 혈기 왕성하던 변호사 시절, 투쟁의 준비로서 '준법'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법에 대해서가 아니더라도, 드러나는 규칙에 대해서가 아니더라도, 사람에 대해, 시간에 대해, 살아가는 일에 대해 바른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혼자 바른 생활한다고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나 하나 깨끗하다고 안주하며 살아서는 이 땅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바꾸는 일에 기여하기 어렵다. 내 바른 생각이 주변으로 전해져서, 더불어 바른 사람이어야 한다. 


  촛불들은, 3년 뒤에 어떤 대답을 들려줄까.






2009.11.07 15:16


  잡담 같은, 넋두리 같은 몇 줄 문장을 쓰는 것이 뭐 어렵다고, 한참 만이다. 다시 넋두리를 쓸 수 있을 만큼, 주변이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뜻일 테다. 주변에 널린 일거리들을 애써 모른 척하며 한참을 노닥거리고 늦잠을 자고 버려진 다음에야 겨우 움직일 만해졌다.


  그 때 그 때 즐겨찾기에 추가해 둔 이웃집들이나, 참고가 될 만한 블로그들을 다녀보면 기운차게 사는 사람들이 참 많다. 긍정의 에너지로 유쾌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고,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가며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 다들, 그 에너지만큼은 아름다워 보인다. 날마다 어찌나 그렇게 기운찬 이야기들을 생산해내시는지. 새 책의 이야기, 새 하루의 이야기, 새 사람의 이야기, 새로 발견한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


  아. 이렇게들 사시는구나. 나도, 다시 옷을 차려입고, 얼굴을 깔끔히 하고, 머리를 단정히 하고, 책상을 말끔하게 치우고, 책장을 정돈하고, 맑은 백지 몇 장을 펴서 움직여야 한다, 싶다.


  해리포터가 처음 나온 것은 내가 군대도 가기 전이었으니 대충 10년도 더 된 것 같은데, 최근에 갑자기 해리포터의 마지막 이야기가 읽고 싶어서 속이 끓는다. 궁금하다. 궁금해서 찾아보려고 인터넷을 뒤지다가 행여 스포일러라도 만나게 될까 싶어 얼른 또 닫는다. 대충 마지막 이야기가 네 권짜리라는 것은 알았고, 한국에서 산다면 25,000원 정도라는 것도 알겠다. 그런데, 정말로 읽고 싶기는 한데 돈 주고 사기는 아까운 책이고 책장에 두기에도 아쉬운 책이다. 아, 어디 해리포터 마지막 이야기를 빌릴 곳이 없을까? 그런 책이라면 식음을 전폐하고 읽어내릴 수 있겠는데. 


  책 읽는 방식이 조금 변했다. 한 번에 한 권 밖에 못 읽던 것이 몇 년 전까지의 내 책읽기.였는데, 요즘에는 여러 권을 동시에 본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다. 아침에 화장실에 앉아서는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를 두어 장씩 보고, 지하철 탈 때는 문학 스터디에 쓸 노마디즘.을 본다. 김훈의 새 소설 공무도하.는 두어 장 뒤적이다가 옆에 던져두고 있고, 미학 스터디에서 보는 미술대계 3권은 벼락치기로 스터디 전날에나 본다. 발제문에 쓰려고 꺼내둔 막스 베버의 책은 목차만 보고 우선 미루어 두었다. 읽어야할 책들은 더 많은데, 시간을 대충 쓰다 보니 컴퓨터 앞에 앉아서 허송하는 시간이 훨씬 많고 진득하게 책 읽는 시간이 좀처럼 길지 않다. 


  책은 노인.이라는 이야기를 얼마 전에 어디서 보았다. 사람은 하나의 인생을 사는 것인데, 책은 그 수 만큼의 노인을 옆에 두는 것이어서, 그 만큼의 인생을 더 경험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본인의 하나 뿐인 삶을 더 풍성하게 한다는 이야기였다. 최근 한 동안 내 책읽기는 작은 위협을 받았는데, 책 이야기에서나 겨우 말을 하고, 보통 때는 별로 말도 없으며 유머 감각은 전무하고 경제적 현실감각도 무딘, 그러니까 말하자면 책만 아는 샌님 대접을 받은 적이 있다. 뭐라고 부정할 수 없었고, 모든 것이 상품 가치를 갖는 시대에 뒤떨어진 모습이 된 것도 같아서 주눅 들기도 했다. 마음에서는 또 괜한 반발심이 일어서, 돈으로 움직이고 영악하게 살아남아야 하는 세상을 괜히 내려다보려고도 했다. 


  역사책 속에서, 학문의 시대는 전근대적인 지형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질 때가 많다. 정신.만을 드높이던 한 때의 역사는 그렇게 해서 빠르게 변하는 세계 정세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 했고,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관념에 둔감함으로 나라를 잃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배웠다. 하지만 요즘에 생각해 보면, 그 정신이 이룩한 나라.를 실용과 경제의 이름으로 내리 누를 수는 없겠다 싶다. 얼마를 벌어서 무엇을 소비하며 누리는가.를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시대가 과연, 무엇을 배워서 어떻게 스스로를 다스리는가.를 기준으로 삼던 시대보다 낫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땅에 기대어, 흘린 땀만큼 얻어 쓰던 시대. 한 평생 골방에 앉아 책을 읽던 정신의 시대를 긍정할 수 있겠다. 사실, 조금은 동경할 수도 있겠다 싶다. 


  잘, 쉬었다.







2009.10.25 20:46


  비행기 아래로 한국이 보이면, '언제쯤 이 곳에 온전히 돌아올 수 있을까'싶다. 잠시 다니러 오는 것 말고, 언제쯤이 되면 대충의 승부를 모두 겨룬 뒤에 편안한 마음으로 귀환할 수 있을까 싶다.


  카메라와 렌즈 몇 개가 든 가방은 입국 때 한국 세관에 붙잡혔다. 세관 신고서 직업란에 적은 '사진가'라는 항목을 확인하고, 장비 가방을 열어 한참을 쳐다본 후에야 검색대를 통과시켜 주었다. 이미 들어올 때 초과 중량으로 들어왔는데, 상하이로 나갈 때는 서른 권 가까운 책이 추가되어 간다. 초과중량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kg당 만 원에 육박하는 요금을 보니 이게 장난이 아니다. 갈 때는 기내 휴대가 가능한 한에서 가장 큰 가방을 구하고, 그 안에 책들을 차곡차곡 쌓아야겠다. 그래서 검색대 앞에서 하나도 무겁지 않다는 듯 태연하게 들고 지나야겠다. 이 가방이 초과중량으로 걸린다면, 항공료에 맞먹는 초과비용을 지불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그것만음 막아야 한다.


  치정이는 내년 초에 있는 시험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지난 번이나 이번이나 녀석은 하루 종일 학교 도서관 학원으로 분주하고 출장 반 휴식 반으로 온 형은 그런 동생을 사뿐히 무시해주시고 녀석의 침대를 점령군처럼 쓴다. 

  형이 무엇을 하는지 상관하지 않고 내 열렬한 팬을 자처하는 동생은, 나보다 더 좋은 재능이 많다. 착실하게 공부하고, 성실하게 산다. 세상에 대해 겸손할 줄도 알고, 자신보다 낮은 곳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볼 줄도 안다. 이번 시험도 녀석이 한다고 했으니, 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와서 본 것은, 녀석은 주변에 참 좋은 사람들을 많이 두고 있다. 그런 점은 내가 많이 배워야할 부분이다.


  나는 사람을 챙기는 일에 서툴다. 진심이란 것은 가만 있어도 전해지는 것인 줄 알고, 아끼고 챙기는 마음을 다들 알아줄 거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드러나게 부러 챙겨주기도 해야 이어지는 것이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을 애써 모른 척한다. 세상,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닌데 벼랑 끝으로 스스로를 몰아가서 마치 기댈 곳 없는 여기가 마땅한 자리였던 것처럼, 이 곳에서 반드시 살아나가야 한다는 어리석은 비장함만 앞세우고는 한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리무진에는 YTN 글로벌 방송이 나오고 있었는데, 70년대 초에 태어나서 어릴 때 입양되었다는 여자가 나와서 가족을 찾고 있었다. 번듯하게 성공한 여자가 왜 이제 와서 가족을 찾으려는 것일까 생각하다가, 그 세월 동안 저 여자는 세상에 기댈 곳 하나 없이 얼마나 절박했을까.를 생각하니 어쩌면 가족을 찾는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하다가 무너지면, 더 갈 곳이 없어지면 언제고 기꺼이 나를 받아줄, 그리고 이제껏 나를 만들어준 내 가족을 생각해 보면, 그 무엇도 없이 매번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오로지 그 한 몸으로 받아내어야 했을, 실패는 잠시의 좌절이 아니라 완벽한 허물어짐이었을 그 사람의 지나온 삶이 안스러워졌다. 


  촬영 장비들이 모두 중국에서 사용하던 것들이라 전기 플러그가 맞지 않는다. 변환 플러그를 사려고 근처 조명기구 매장에 들렀는데, 아마 신혼인 듯한 젊은 부부가 계산대에 앉아 있었다. 남자는 내가 찾는 물건을 내어주었고 여자는 잔돈을 내어주었는데, 신혼이라는 단어가 어울리게 아담하고 깔끔한 가게에 가까이 앉은 두 사람의 미소가 참 보기 좋아서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바둥거리는 내가 참 어려 보였다. 

  

  너무 쉬지 못 했다. 피곤에 찌든 몸으로 한참을 버텼다. 내 집은 창문이 크고 커튼은 얇아서 일단 해가 뜨면 다시 잠들기가 어렵다. 그러니 밤에 일찍 잠들지 못 하면 좀처럼 피로를 풀 수 있는 긴 잠을 자기 어려웠다. 동생이 머물고 있는 원룸은 커튼만 내리면 낮에도 어둡다. 덕분에 오늘은 점심 시간까지 자다가 배가 고파서 일어났다. 동생은 학교에 가고 없었다. 모처럼 길게 자서, 몸이 가벼웠다.


  성글고 서툰 말들이 난무했다.고 써야겠다. 하지 않아도 될 말들, 하지 말았어야 할 말들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쏟아낸 지난 얼마 동안의 시간이 지나간다. 말을 좀 더 줄이고, 말보다 행동을 앞세워야겠다. 


  




2009.10.21 21:24

등대가 있는 숲


  페이지 아래가 살짝 접혀 있다. 인상적이었다는 뜻이다. 마침 그 때 밑줄 그을 펜이 없었다거나, 펜이 있었다지만 밑줄은 긋고 싶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번에는 후자일 것이다. 소설책이니까, 소설책에 밑줄을 긋는 짓 따위는 유치하니까 그랬을 것이다.


  응접실이나 식당이나 층계는 쥐죽은 듯 고요하였다. 바람의 큰 덩어리에서 떨어져 나온 샛바람이 녹슨 경첩이나 해풍, 습기에 부푼 목재 틈 사이로 스며들어(워낙 엉성한 집이었다.) 방구석이나 집안으로 밀고 들어올 뿐이다. 그 샛바람이 응접실로 들어와서 풀이 떨어져 너풀거리는 벽지를 만지작거리면서, 이 벽지가 앞으로 얼마나 더 여기 붙어 있을 것인가, 언제 떨어져 나갈 것인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리라고 상상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어 그 샛바람은 벽을 슬그머니 더듬고 지나, 마치 벽지에 그려져 있는 붉고 노란 장미꽃 무늬가 퇴색할 것인가를 묻고, 이제 그 바람 앞에 몸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휴지통 속의 찢어진 편지, 꽃, 서적들을 향해서, 저것들이 우군일까? 적군일까? 얼마나 오래 견디어 낼 것인가? 따위의 질문을(부드럽게, 왜냐하면 시간적인 여유는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물어보며 생각에 잠긴 채 이동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얼굴이 드러난 외딴 별이나, 정처없이 방황하는 배, 또 심지어는 등대불이 발하는 불빛의 인도를 받고 부는 샛바람은 그 희마한 발자취를 계단이나 매트 위에 떨어뜨리며 층계를 올라와 침실의 문 앞에서 냄새를 맡듯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샛바람의 방황은 끝나야만 했다.  - 버지니아 울프. 등대.


  생각해 보면, 참 좋아하는 책인데 내가 등대.를 끝까지 읽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신장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가 두 시간이나 늦어져서 공항 대합실에 앉아 어쩔 수 없이 읽어간 것이 결국 등대로 가장 가까이 간 것이 되었다. 그 공항에서 이 페이지를 읽고, 그 아래 모서리를 접었을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등대는 출판된지 족히 20년은 된 것 같은 낡은 책이다. 책장은 중간 중간 떨어져서 삐져나왔고 종이는 누렇게 바랬다.


  현대사회에서 평가되는 능력이란 인간적 품성이 도외시된 '경쟁적 능력'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낙오와 좌절 이후에 얻을 수 있는 것으로, 한마디로 숨겨진 칼처럼 매우 비정한 것입니다. 그러한 능력의 품속에 안주하려는 우리의 소망이 과연 어떤 실상을 갖는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기억할 것입니다. 세상사람은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당신이 먼저 말했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직한 어리석음, 그것이 곧 지혜와 현명함의 바탕이고 내용입니다. '편안함' 그것도 경계해야 할 대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편안함은 흐르지 않는 강물이기 때문입니다. '불편함'은 흐르는 강물입니다. 흐르는 강물은 수많은 소리와 풍경을 그 속에 담고 있는 추억의 물이며 어딘가를 희망하는 잠들지 않는 물입니다. - 신영복, 나무야 나무야.


  아침에 화장실에 앉아서 읽은 부분이다. 어떤 위로와 응원. 우직한 어리석음. 


  에프상하이 사이트는 바이러스인지 해킹인지에 당해서 일주일 넘게 완전 멈추었다. 수습을 해야긴 해야겠는데, 완전히 새로 만들기에는 시간도 부족하고 또 그럴 만한 동기부여도 없다. 대충 수습이나 하려고 보니 얼마 앞으로 닥친 동호회 전시 문제와 엮여서 일이 복잡해진다.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아침부터 이미 마감 지난, 내일 인쇄들어간다는 교민잡지 원고를 날림으로 해치우고, 저녁 스터디에 쓸 발제문을 어쩔 수 없이 또 날림으로 해치웠다. 결국 두 개 다 만족스럽지 못 했다. 많이 답답했다.







2009.10.15 22:17


  저녁 시간 동안 강을 따라서 걸었다. 예정대로라면 출장지에 있어야 하겠지만 그 곳 날씨 사정을 핑계로 출장을 미루었다. 떠밀리듯 지나 온 지난 얼마 동안의 시간 뒤에, 좀 쉬어가고 싶었다. 간절하게. 길을 걷기에 좋은 날씨가 이어진다. 이 곳의 가을은 온전한 하나의 계절이 되지 못 하고 다만 겨울을 예비하고 또 그 추위를 경고하는 한 때의 시간처럼 보인다. 얇은 외투를 걸치고, 지갑도 없이 다만 동전 몇 개를 챙기고, 집 열쇠 하나와 아이폰 하나만 넣어서 나갔다. 가져 간 동전 개수에 맞는 초콜릿 음료 하나를 사서 이미 어두운 집 앞 강변을 걷다가 앉았다가 했다.


  책은 몇 달째 열심히 써야한다는 구호만으로 그치고 있고 에프상하이 전시 준비는 해킹당한 사이트와 맞물려 제자리 걸음이다. 포트폴리오 업뎃은 올 초에 계획했던 것이 아직이고 연락해야 한다고 적어둔 연락처는 쌓여만 간다. 진행중인 스터디들도 이 핑계 저 핑계로 에너지 쏟는 것이 예전 같지 않고, 밀린 사진 작업들은 거의 잊혀지려는 요즘이다.

  새로 시작해야 하는 사진 스터디는 좀처럼 안 된다. 우선 몇 명의 프로사진가가 모여야 하고, 그들을 이끌어갈 수 있는 매력적인 내용이 있어야 하는데, 무엇보다 좀처럼 시간을 못 만들겠다. 당장 눈 앞에 닥친, 어떤 것은 소소하고 어떤 것은 거대한 일거리들이 쏟아질 듯 내 앞에 벽을 세우고 있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벽은 너무 거대해서 그 너머까지 가려는 시도는 무모해 보이고 내 작은 몸으로 아무리 밀어보아도 오늘보다 내일은 더 거대할 것만 같다. 영영 그 너머에 닿지 못할 것만 같다. 주거 지역 앞을 흘러 돌아나가는 강의 사방은 번듯하고 높은 아파트들이 우뚝한데, 나는 무너진 기둥이며 벽돌들의 한 가운데 있는 듯하다. 일으켜 세우고 다독여 버티게 해야 할 것들이 사방에 널려서 나를 재촉한다. 이 가녀린 힘으로 나는 날마다 겨우 몇 번의 방망이질 밖에 할 수가 없는데.


  미학스터디는 제법 진도가 나가서, 1000 페이지에 달하는 책 한 권을 마침내 끝내게 되었다. 몇 달이 걸렸다. 언제 왔나 싶게 대견하다. 문학 전공자들과 함께 하는 스터디는 갈수록 내 관심분야와 멀어져서 이제쯤 발을 빼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치열한 공부쟁이들과 어울리는 시간은 매력적이지만, 그들이 그들의 직업에 투자하는 시간만큼 나 또한 내 직업과 관련한 공부에 투자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언제까지 재밌다는 핑계로 그들의 공부에 끼어있을 수 없겠다 싶다. 몰랐던 이론에 대해 공부하고 막연하던 부분에 대해 밀도를 다지는 공부는 좋은데, 일주일에 적어도 꼬박 이틀을 쏟아야 하는 시간적 한계와 어떤 부분은 내 전공 분야와 아무 상관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학스터디를 정리의 우선 순위에 두게 만든다. 내 사진 공부와 사진 작업이 진도를 못 나가는 것은 내 게으름과 시간 계획의 문제일 것인데, 안 되니까 괜히 다른 곳에서 이유를 찾아 보는 것이다. 두 스터디는 최근 거의 같은 시기에 후기구조주의에 대해 다루었다.   

  데리다로 대표되는 해체의 미학은 일체의 기준을 부정하고 선형적 구조 위에 앞서고 뒤서며 서열짓던 가치들을 사방에 풀어놓는다. 그리고 선형성의 파괴는 다양성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졌다. 존재들의 차이 속에서 보다 충실한 의미를 찾으려는 그들의 시도는 아름다워 보였다. 심정적으로 좋아하고 또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내 살아가는 방식의 정당성을 보장받고 싶었는데, 해체의 미학은 패배자의 허무에 다름 아니라는 비판은 따끔했다. 비판에 대한 그럴 듯한 변명이 없진 않겠지만, 비판은 내게 닿았는데 그 변명은 내게서 멀리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정말 순환하는 것이라면, 조금쯤은 안심할 수 있을까.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될까 봐 이렇게 무서워하지 않아도 될까. 






2009.09.27 07:00


  상하이 교향악단의 130주년 기념 연주회가 있었다. 리허철 촬영 동안에 촬영은 접어 놓고 하도 넋 놓고 듣고 있으니 보기에 딱했는지 없던 표를 만들어 주었다.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과 차이코프스키의 5번 교향곡이 프로그램이었는데, 첼로 협주곡은 미리부터 좋아하던 곡이라 인상적으로 들었다. 어제의 인상이 남아서 아침 내내 뒤 프레가 연주한 앨범을 듣는데, 출장 준비로 온 방안을 가로지르며 듣는 음악은 집중해서 들을 때의 감동이 없다. 그래도, 역시 콘트라베이스가 짱입니다요.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은 가기 전에 미리 들어보고 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촉박해서 겨우 구해만 놓고 못 들어본 채로 갔다. 미리 들어봤다면, 어쩌면 중간 쉬는 시간에 미친 척 나왔을 수도 있겠다. 1악장은 아무 것도 모르니 집중해서 들었는데, 차이코프스키는 아마 등떠밀려 주문을 받고 그럭저럭 노닥거리다가 마감 닥쳐서야 뭔가 해야한다는 벼락치기의 심정으로 4악장을 만든 것은 아닌가 싶다. 


  신장에 간다. 돌아오는 비행기는 아직 확인을 못 했는데 아마 5일 정도의 일정이 될 모양이다.


  우루무치의 기온은 최저 기온은 10도를 조금 웃돌고 최고 기온은 20도를 조금 웃돈다. 아마 완연한 가을 날씨쯤을 짐작하면 될 것인데, 여름의 끝자락에서 완연한 가을의 날씨를 기억하는 일은 어려웠다. 아직 내어 걸지 않은, 옷상자에 담긴 가을 옷 앞에서 고민했다. 등산용 바지 한 벌과 역시 여행에 어울리는 기능성 윗도리 두어 개를 담았다. 


  책장 앞에서 두 번째 고민을 시작했다. 읽고 있던 문학 이론책은 내려 놓았다. 시집 한 권과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를 가져가기로 했다. 신장.에서 무엇을 보게 될지는 알 수 없는데, 나를 그 곳으로 보내는 자들이 보여주려는 것은 대충 알 만하다. 돌아오면 학사 졸업논문에 버금가는 분량으로 글도 써내야 한다. 보려고 하는 것과, 보아야 하는 것, 그리고 보는 것의 간격은 결코 좁지 않을 듯하고, 나는 다만 너르고 낮은 땅에 대해서 겨우 쓰게 될 것을 알겠다. 그것이 소심한 자의 버팀.쯤 될 것이다.


  등산화 끈을 묶는다. 오랜만이다.





2009.09.25 21:15


  어제 일이다. 촬영을 마치고 장비는 현장에 놓아둔 채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왔다. 내가 서 있는 맞은 편에는 나보다 어린 여자가 탔다. 손에 꽃을 들고 있었다. 이름을 모르는 꽃이었다. 넓고 길쭉한 녹색 잎 두어 장이 바깥을 둘러싸고 그 안에 흰 꽃이 한 송이 아니면 두 송이쯤 있었다. 크기나 줄기의 모양으로 보아서는 카라.와 비슷했는데, 카라보다는 꽃잎이 흐드러진 모양새였다. 여자는 미인형은 아니었는데,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이었고, 옆에서 보기에 예쁜 이마가 유독 드러났다. 종일 소리지르며 촬영 마치고 오는 길이라 어깨는 무거웠는데, 향기도 전해오지 않는 건너편 꽃이 기분을 가볍게 했다.


  요즘 책 안 들고 나갈 때가 많아졌다. 아이폰을 산 후 생긴 변화다. 이 작은 전화기는 내게 스케줄러인 동시에 전자사전이고 MP3플레이어이고 지도이고 노트북이다. 사람을 기다리거나 이동할 때는 1000곡 넘게 들어있는 음악에 빠져 있으니까 더 이상 책을 들고다녀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언젠가 다시 들고 다니고 언젠가 다시 읽겠지만, 당분간은 이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한다.


  겸사겸사, 나를 단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연기 전공 학생들 몇 명을 소개받게 될 듯한데, 포트레이트를 좀 더 전문적으로 찍어볼 것이다. 긴 10월 연휴가 끝나면, 이 곳 사진가들과 함께 하기로 한 공부를 시작한다. 나는 내 주제를 인물사진.에 두려고 한다. 그리고 일이 순조로우면 내년 겨울쯤에는 전시를 할까 싶다. 여러 사진 분야에 뛰어난 사진가들이 많지만, 아마추어들의 수준 또한 프로를 밥 말아드실 만큼 뛰어나지만, 인물 사진이라면, 나도 좀 한다.






2009.09.21 21:28


  요리를 해야 한다. 며칠 전 촬영 때문에 도자기 만드는 곳에 다녀왔다. 본격적인 촬영에 앞서서 실내를 둘러보고 있는데 작고 흰 접시가 참 예쁘게 생겼다. 크기가 작은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어디서도 보기 힘든, 가장 단순한 선으로 이루어진, 거의 높이가 없는 접시였다. 용도는 찻잔받침이어도 좋겠고, 작은 반찬들을 소박하게 담아내는 것도 좋겠다. 그 앞에 서서 한참을 생각했는데, 도대체 내 손에서 나올 수 있는 음식이나 내 냉장고에 보관 중인 먹거리 중에 그 접시에 소담하게 담길 만한 것은 없어 보였다. 라면 면발을 몇 줄씩 덜어 놓는 것도 우습고 쥐포 구워서 잘게 잘라 올려놓는 것도 역시나. 그래도 두 번 보기 힘든 접시인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서, 그 곳에 있는 세 개를 모두 사 왔다. 싸게 샀다.

  내가 사는 집 주방에는 마땅한 조리공간이 없었다. 그릇 올려 두고 냄비 올려두니 요리 할 때마다 그 공간을 비워내기도 귀찮아서 가끔 된장찌개라도 끓일라 치면 마땅히 재료들 둘 곳이 없어서 괜히 부산해진다. 창가쪽, 빛이 들어오는 곳에 나무 선반을 달아서 그릇들을 그 위로 옮겼다. 빛을 받으니 잘 마를 것이고 소독도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제법 음식이라도 만들어 볼 수 있는, 재료라도 몇 개 늘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그러니까, 저 공간에 재료를 늘어놓은 후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작고 흰, 높이가 없는 접시에 담아 보아야 한다. 맛의 문제나 먹는 문제는 그 다음이다.


  발제문 쓰는데만 하루 종일과 다음날 새벽까지 걸린 스터디는 뭐 그럭저럭 해치웠다. 잘. 했다고는 못 하겠지만, 수습은 대충 한 셈이다. 돈 주는 것도 아니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래도 그렇게 스트레스 받으며 무거운 책들과 기꺼이 뒹군 것이 제법 기특하다. 홀가분한 기분으로, 스터디 끝내고 돌아온 오후를 빈둥거렸다.




2009.09.15 21:54


  오랜만에 이케야에 다녀왔다. 음식쓰레기를 담기 위해 뚜껑 달린 작은 쓰레기통이 필요했고, 주방에 조리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선반을 만들어야 했다. 마침 근처에 갈 일도 있고, 근처에 가는 일이 마침 돈 받는 일이라 겸사겸사 이케야까지 발이 닿았다. 오후 약속 때문에 찬찬히 보지는 못 하고 급하게 지나가듯 가면서 사기로 작정한 물건들만 골랐는데, 계산대 앞에 서니 나도 모르는 물건 몇 개를 또 들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케야가 그렇지 뭐. 쓸 데 없는 A4 사이즈 액자와, 잡동사니 정리함을 들고 있었다. 한참을 저울질 하다가 그냥 근처에 내려놓았다. 모처럼 수금도 했으니 사는 것이었는데, 나는 내가 서 있는 줄이 카드결제 전용인 줄 절대 몰랐다. 미안타. 누나야. 그래도 얼마 안 긁었다.


  새벽부터 이어진 촬영은 점심 무렵에 끝났다. 내일 당장 인쇄소로 넘겨야 된다며 급한 작업을 부탁해서, 오늘 밤은 늦을 모양이다. 내일 오후 출장이 잡혀 있으니 그 전에 끝내고 보내려면 바쁘겠다. 교향악단 100명은 내가 머리 속으로 그려보던 것보다 더 많은 인원이었다. 좁은 공간에 세우고 보니 머리들 밖에는 보이지 않아서 사진은 답답해 보였다. 급한 사진이고 메인 컷이 아니니 현장에서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은 타협하며 진행했다. 그래도 지휘자도 아니면서 100여 명의 교향악단을 마음대로 오고 가게 주무르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음악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런가? 말은 참 안 들었다. 꼭 개구쟁이 꼬마들 촬영하는 기분이었다. 


  누나는 대뜸 전화해서, 나보고 베이비 포토를 해볼 생각이 없냐고 농 반으로 물었다. 조카들이 돌사진 찍을 때가 다가오는 것인데, 알아보니 제법 한다는 곳에서 제법 한다는 구성으로 찍으면 백 만원이 훌쩍 넘는 모양이다. 도대체 아이들 돌 사진이 뭐라고 백 만 원 넘는 돈을 써야하나? 사진가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니다만, 그거 허무해 보인다. 물론 나는 베이비 사진에 관심도 없고, 또 베이비 사진이라는 게 나름 해당 쪽의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 걸 아니까 웃으며 넘기고 말았다. 누나랑 협상해서, 왕복 항공표와 현지 체류비 일정액을 부담해주면 내가 가서 돌행사 스냅을 찍기로 했다. 그러나 누나는 강했다. 현지 체류비는 내가 부담하기로 했다. 왕복 비행기표가 어딘가.


  사람마다, 집마다 가진 것이 있고 못 가진 것이 있다. 당연한 말이다. 집집마다 문제 없는 집은 없으니, 문제 두어 개 있다고 탓할 일은 아니다. 우리 집도 다르지 않다. 다만 못 가진 것이 가진 것을 가리는 것은 주의할 일이다. 새삼, 누나와 나와 내 동생을 바르게 길러주신, 그리고 세 명 사이에 좋은 우애와 존중이 있도록 해주신 부모님이 참 고맙다. 그리고 내 누나와 동생이 참 든든하다. 들판에서 막 큰 것 같은데, 제법 잘 컸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경우에 나를 흔드는 것은 주변 사람들인데, 또 어떤 경우에는 나를 세우는 것도 그들이다. 나는 또 기대고 서서 겨우 버틴다. 사람들이 참 고맙다. 잘 해야겠다. 책도 잘 쓰고, 사진도 잘 찍어야겠다. 사람도 잘 만나야겠고, 돈도 잘 벌어야겠다. 


  아무리 비껴서도, 이건 해야겠다 싶은 것들이 있다. 현금 없다고 돈 빌려쓴 것이 불과 며칠 전인데, 수금 했다고 또 마음 풀린다. 아무리 참아 보려고 해도, 씨디 플레이어는 사야겠다. 아, 이건 진짜 사야겠다. 하.





2009.09.14 22:16


  이불을 갈았다. 여름 동안 쓰던 대나무 자리를 걷어내고 두툼한 속이불 한 겹을 깐 다음 자주색 얇은 이불을 침대보 삼아 덮었다. 그리고 지난 봄에 넣어두었던 흰색 이불을 꺼냈다. 대자리는 하루 동안 햇볕에 말려서 저녁에 말아 넣었다. 낮에는 아직 더운데 새벽으로는 제법 서늘해서 대자리 위에서 자면 새벽녁에는 설핏 깬다. 말아 넣기에는 조금 이른가 싶지만 포근한 새벽 잠이 욕심나서 바꾸기로 했다. 계절 가는 소리가 점점 선명하다.


  별 것도 아니면서 전날 잠까지 설치게 만든 촬영은 예상대로 가볍게 끝났다. 한 번 본 적이 있었던 모델은 의외로 표정 잡기가 쉬워서 촬영은 순조롭게 빨리 끝났다. 가격에 비해 몇 곱절 힘든 촬영을 할 때는 본전 생각이 간절한데, 이렇게 가격에 비해 수월하게 끝나는 촬영도 있으니 주고 받는 것이 엇비슷해진다. 


  오후에는 요즘 한참 열올리고 있는 교향악단 촬영 때문에 공연장에 있었다. 이런 저런 이유들이 겹쳐서 고전음악을 듣게 되는 요즘이다. 고전은, 힘이 세다. 어디 음악 뿐이랴. 문학에서, 철학에서, 예술에서 고전이 갖는 힘은 마땅히 고개 숙일 만한 것이다. 상하이 교향악단은 월말에 있을 연주회 연습중이었는데, 무대 가까운 자리도 아니고, 연주단 안에 섞여서 듣는 음악은 온 몸을 울렸다. 카메라 렌즈 안을 꽉 채운 지휘자의 몸짓은 아름다웠고, 묵은 나무결이 만드는 악기의 질감은 탐스러웠다. 촬영분이 다 끝났는데도 괜히 더 찍는 척하며 한 동안 음악 앞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이 아름답다는 것을 배웠다. 스메타나의 교향곡을 여는 하프 소리도 알았다. 바흐의 피아노곡이 좋은 것도 어렴풋이 알겠고, 몇 몇 연주자의 느낌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도 겨우 짐작하겠다. 뭐, 아직은 베토벤은 소문만 무성한 옆집 아저씨 같고 모짜르트는 세상 모르는 철부지처럼 들리니 갈 길이 멀지만, 고전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참 잘 한 일이다 싶다. 고전음악에 대한 관심이 오디오 장비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는 것은 좀 위태롭다만. 오늘 촬영 중에도 콘트라베이스 주변에서 한참 머뭇거렸는데, 연습중인 그들에게 차마 말 걸지는 못 하고 부러움 가득한, 묻고 싶은 말이 많다는 표정만 지었다. 


  에이전트가 생겼다. 영업에는 도대체 개념이 없는 나니까, 잘 된 일이다. 이제 나를 대신해서 내 사진을 팔아주고 새 일거리를 찾아 주는 일을 도맡아 해 줄 것이다. 뭐, 그만큼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잘 되면 좋겠다. 


  써야지 써야지 하며 모아두었던 메모를 몇 번이나 닫았다. 애써도 안 되는 때도 있는 것이고, 하루 종일 일에 시달린 후 잠자리에 누워 마지막 남은 정신으로 느긋한 문장들이 이어지는 때도 있다. 


  막혀 있는 문장들이 사방에 쓰러져 있다. 한 줄씩 불러 일으켜서 먼지도 털고 다리에 힘도 불어넣어서 잘 서도록 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언젠가 되겠지, 누군가 나를 일으켜 세워서 내가 문장을 일으키도록 도울 사람이 언젠가 나타나겠지, 때 되면 하겠지 핑계만 잇대어 간다. 그러다가, 한 방에 훅, 가는 수가 있다.


  진도 안 나가는 스터디 발제 책이 몇 권, 빨간색 껍질을 뒤집어 쓴 휴대폰, 이제 당분간 별로 쓸 일 없을 에어컨 리모콘, 빨간색 검은색 볼펜이 하니씩, 반쯤 채워진 물잔. 자, 잠들 시간. 





2009.09.13 20:32


  길에 군밤이 나왔다.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여름 사이에 아침 저녁으로 이른 가을 바람이 부는 때에 맞춰 군밤이 나왔다. 접시 안테나를 닮은 넓은 쇠그릇에 검은 자갈과 설탕을 넣고, 껍질 가운데를 갈라 놓은 밤을 넣어 볶아 낸다. 군밤 볶는 냄새는 멀리까지 닿는다. 군밤은 푸른 귤과 함께 상하이의 가을을 알리는 이른 신호다. 


  용란이 메일에 답장을 겨우 보냈다. 미루고 벼르던 일이다. 활자를 밥줄로 삼고 싶다는 녀석이게, 그런데 무섭다는 녀석에게 용기 내라고 썼다. 삶은 참 다양한 방식으로 있더라고, 교과서 안에 없다고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니 너무 겁 먹지 말라고 썼다. 나도 못 하는 일을 녀석에게 하라고 하는 것이 못내 미안했지만, 지금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이, 그리고 그 녀석이 내게 듣고 싶어하는 말이 그런 정도인 것 같았다.


  문장쓰는 사람들은 참 예쁘다. 객관적으로 예쁜 것보다는, 단지 내가 보기에 예쁘다. 사진과 달라서, 문장은 첫 글자를 빼고 두 번째 글자부터 쓰면 안 된다. 토씨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서 글자를 만들고 한 글자씩 정성 들여 이어야 문장이 된다. 사람의 진득함을 보는 듯해서, 그 사람이 쓴 문장을 보면 그 사람을 알 듯하다. 한 걸음에 여기까지 건너 뛰어온 것이 아니라, 당신 앞에 놓인 시간을 차근차근, 때로 답답해 보일 만큼 더디고 진중하게 밟아 왔노라고 그들의 문장은 말하는 듯하다. 그런 사람 보는 게 쉽지 않으니, 가끔 보는 사람들이 귀하다.






2009.09.03 22:03


  바람이 좋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서 여름이 끝나간다고 먼 신호를 보내온다. 창문만 열어도 들뜨는 며칠이다. 땀을 쏟아내며 길을 걷던 그 날들을 또 한 계절 잘 버텨낸 듯싶다.


  매달 기사를 써서 보내는 교민매체와 작은 미팅이 있었다. 내가 많은 도움을 받는 곳이어서 매번 그 곳에 가서 그 곳 사람들을 만날 때는 고마운 마음이다. 마침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듯해서 나도 돕기로 했다. 그 곳 편집팀에게 사진을 읽는 법에 대해 알려주기로 했고, 내가 쓰던 기사도 조금 더 수정하기로 했다. 필요하다는 사진도 찍어 주겠다고 했다. 그 동안 내가 신세 진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인데, 사장님은 항상 도움을 받아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내가 받은 고마운 것들은 생각이 나는데 내가 이 곳에 해 준 것은 잘 모르겠다. 


  세상에 빚진 마음으로 산다. 내가 내 능력으로 무엇이든 도울 수 있다면, 그것들은 다만 내가 세상으로부터 받은 것들에 대한 보답이다. 그러니까 받은 것들은 고마워서 기억에 남는데, 도와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신세 갚는 것이라서 기억에 남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아침이나 저녁에 백지를 펴 두고 해야 할 일들을 잔뜩 적는다. 급하게 해야할 일 옆에는 동그라미를 치고, 해치운 일은 길게 줄을 그어서 없앤다. 어제 적은 일을 못 해서 오늘 또 적고, 그 다음날 또 적는 것들이 제법 된다. 


  열흘 넘게 침 맞으며 치료하고 있는 왼쪽 어깨는 많이 나았다. 하루 걸러 하루씩 가서 20분씩 맞는다. 침을 놓는 자리는 내 시선에 들지 않는 곳인데, 어떤 곳은 따끔거리고 어떤 곳은 근육이 돌덩어리가 되는 것처럼 무거워진다. 의사 선생님은, 몇 번만 더 맞으면 근육은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힘을 쓰려면 두어 달은 더 있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두어 달은 더 불편한 어깨를 다독여야 한다.


  문장들이 짧다.






2009.08.30 09:30


푹 잤다.


한 동안 이런 저런 일들 때문에 늦게 잠들었다. 바깥이 밝으면 어쨌든 잠에서 깨야 하니까 잠이 부족했다. 그런 날은 하루 종일 개운하지 못 한 기운으로 움직여야 해서 일처리는 항상 어설퍼 보이고 생각은 날을 세우지 못 한다. 어제는 일찍부터 잤다. 


잘 자고 일어난 아침에 노트 앞에 앉으면 내 앞으로 놓인 시간의 일들이 가지런하다.





2009.08.23 23:10


  한국에 다녀오고 여행 다녀오니 한 달이 훌쩍 갔다. 풀려버린 리듬을 다잡는 일은 어려웠다. 촬영이 취소된 금요일부터 작정하고 움직임을 줄였다. 집 청소나 조금씩 하면서 밀린 일들을 차곡차곡 치웠다. 나른하게 주말 동안 버려져 있고 나니 이제 주변도 제법 차분해 지고 겨우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준비자세가 되었다. 밀린 일들을 다 치워낸 것은 아니지만, 급한 불은 껐다. 이제 힘주어 디딜 일들만 남았다.


  하던대로 연습장 한 켠에 새로 해야 할 일들을 목록으로 적어둔다. 여행에서 다친 어깨 때문에 병원에 가보아야 할 것 같고, 한 달 동안 멈추어 있었던 미학스터디도 다시 이어야겠다. 잔뜩 사 온 책들도 읽을 기회가 있어야 하니 어떻게 좀 더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할지, 아니면 사람 몇 모아 책 읽은 기회를 만들지 궁리해야겠다. 


  청소를 대신해 주는 아주머니를 부르기로 했다. 여전히 내게는 부끄러운 결심이다. 최근에 스콧 니어링에 대해 헬렌 니어링이 쓴 책을 다시 읽었는데, 주변을 정돈하는 일은 한 삶이 기꺼이 감당해야 하는 일들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눈코 뜰새 없이 바쁜 것도 아닌데, 그래도 되는 것인지 아직 모르겠다. 아주머니는 다음주 목요일에 오기로 했다.


  부모님은 지금 남 부러울 것 없이 사신다. 집집마다 문제 없는 집은 없으니 우리집이라고 다를 것은 없지만,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이 만하면 되었다 싶다. 그런 부모님은 지금도 금방 달아버리는 건전지가 아깝다고 새로 들인 텔레비전 리모컨을 내치셨다. 그리고 텔레비전 옆에 붙은 버튼으로 볼륨을 올리고 채널을 바꾸신다. 무엇도 받은 것 없이 맨주먹으로 시작하신 두 분의 젊은 날은 내 어린 기억 속에서부터 제법 선명하다. 자식들만큼은 돈 때문에 뜻이 막히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두 분의 노력은 깊었다. 객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이 돈 때문에 기죽는 일 없도록 챙기시면서도 정작 당신들은 돈 쓰는 법을 배운 적이 없으셨다. 철 든 후에야, 그런 두 분의 돈을 차마 얻어 쓸 수 없었다.


  중국에 와서 처음 얼마 동안 나는 밥값이 없어서 굶었고 작업실 나무 바닥에 촬영용 스티로폼을 깔고 겨울잠을 잤다. 여름 찜통에 옥탑방 작업실에서 전기요금 걱정하느라 더위 먹어 쓰러지기도 했고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수 십 킬로 장비를 지고 한참을 걸어다니기도 했다. 그래도 제 날짜에 작업실 임대료를 대는 일은 버거웠고 두 달에 한 번 내는 임대료를 두 달 내내 걱정해야 했다. 사진 따위 접고 들어오라고 하실 게 뻔했으니 집에 말 못 하고 다만 버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비장해야 했고, 스스로를 확신해야 했다. 


  그게 멋인줄 알았다. 그렇게 버텼으니 지금 내가 있다고, 그럴 듯한 무용담도 생긴 것 아니냐고 스스로 믿었다. 어쩌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요즘에 한다. 나는, 삐쩍 마른 생각의 몸으로 깡만 남은 추한 꼴이 된 것은 아닐까. 가진 것 아무 것도 없어서 진흙탕 바닥에 쓰러지면서도 꼴에 자존심이라는 것만 남아서 눈만 치켜뜨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적당히 벌어서 적당히 쓰면서 살아가는 것이 적당하지 않을까. 아니, 적당히.보다는 조금 더 벌어서.


  잘 쉬었다.


  다시, 나를 증명해야 한다. 마음이 바쁘다. 작업실 바닥을 뒹굴던 나를, 나는 내치지 못 하겠다.






2009.08.22 21:52

아버지의 영웅은 아마 김영삼 전 대통령쯤 될 것이다


  사람마다 가슴 속에 영웅을 품고 산다. 대부분의 경우에 영웅의 행동에 통쾌함을 느끼면서, 살다보면 현실에 매몰되는 영웅을 안타까워 하기도 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영웅에게 배신당하기도 한다. 어릴 때 영웅은 대부분 전지전능에 가까워 보인다. 하늘을 날고 힘도 세다. 모르는 것이 없으며 불의 앞에서 절대강함의 힘으로 정의를 지킨다. 그들은 하늘에 살며 인간들의 세상을 구원한다. 


  자라다 보면, 영웅은 점점 간격을 줄여서 같은 세상에 사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나와 똑같은 몸으로 똑같이 숨쉬는 존재가 된다. 상상 속의 영웅이 허구라는 것을 너무나 명백하게 알게 된다. 세상은 입바람 한 번이나 주먹질 한 번으로 구해지지 않더라. 대신에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가진 것 없는 몸으로 시대와 맞서가며 도저히 감내하기 힘든 것들을 기어이 감내하며 마침내 시대를 깨우는 사람들이 상상 속의 영웅보다 못 할 것 없다는 것을 배운다.


  아버지의 영웅은 아마 김영삼 전 대통령쯤 될 것이다. 아버지는 고향 거제도에서 거의 평생을 지내셨고, 그 섬에서 김영삼의 전설은 대단한 것이다. 집권 후에 그가 보여준 어떤 모습들은 실망스러웠으나, 아버지가 젊음을 불살랐던 그 무렵에 김영삼이 보여준 저항정신만큼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마지막까지 아름다웠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그는 고집스러운 그만의 길을 간 듯하고, 아버지는 여전히 그런 김영삼을 당신의 영웅으로 삼고 계신다.


  대비되는 위치를 설정한다면, 내 영웅은 노무현 대통령쯤 될 것이다. 대통령이 보여주었던 꿈은 아름다웠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아버지는 전화를 걸어 말씀하셨다.

  "눈물 흘리거나 그러지 마라. 대통령이나 되는 사람이 그 정도 일에 죽을 거면 대통령 할 배짱도 없었던 거다. 그런 사람 죽었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라."

  아버지의 영웅이 죽는다면 아버지는 어떤 심정이시겠냐고, 그런 작은 양심의 잘못도 큰 허물로 안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운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말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영웅이었을까. 고향이 거제도라는 이유로, 김대중은 한참 동안 내게 나쁜 사람.이었다. 그를 객관적으로 보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얼마나 헌신했으며, 사심 없이, 좋은 비전을 갖고 나라를 이끌었는지 뒤에야 알았다.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쩌면. 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급작스러운 충격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멍. 할 수 밖에 없었다. 좋은 시절에 편안하게 가셨으면 좋았을 것은 이리 하수상한 시절에 근심거리를 다 내려놓지 못 하고 가신 것이 안타깝다.


  얼마 전에 이 곳 책방에 갔다가, 노무현 관련 책 중 한 권에 김대중 대통령이 쓴 추천사를 읽었다.


  "당신은 저승에서, 나는 이승에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웁시다."


  노구를 이끌고 다시 민주화의 투쟁에 서겠다고 각오하셨던 분도 이제 저승으로 가셨다. 두 분 모두, 이제는 남은 자들의 몫으로 돌려두시고 안녕하셨으면 좋겠다.


  내 몸 하나 잘 지내자고 태어난 세상이 아니다. 나로 인해, 세상이 한 뼘은 더 아름다워져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사람으로 태어난 역할을 하는 것이다.





2009.08.18 07:25


  문장 쓰는 법을 알려주기로 했다. 그러니까, 가르치기.로 한 것인데, 내 주제에 언감생심 다른 누구에게, 그것도 다른 것도 아닌 '문장'을 가르친다는 생각은 시건방지기 짝이 없는(사실은 그런 짝들이야 제법 많지만) 일이니까 나는 차마 가르친다.고 못 쓰겠다. 다만, 내가 아는 것들을 알려주어 욕 먹지 않을 만큼의 길잡이라도 되면 좋겠다.


  좋은 문장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중학교 무렵이니 대충 15년쯤 되었다. 생각해 보지 못 한 부분이었는데, 짧지 않은 시간이다. 예쁜 문장이 탐났던 때도 있고, 단호한 문장이 탐났던 때도 있다. 거창한 문장을 쓰고 싶어했던 때도 있고, 아포리즘의 문장으로 한 방에 무찌르고 싶었던 때도 있다. 요즘에 내 문장은, 더한 것이 없는가? 감춘 것은 없는가? 이런 물음들에 대한 답들이다. 부끄러운 것들을 없는 체하지 않고, 가진 것 이상을 말하지 않고, 있는 만큼을 적되 있는 것으로 당당하려고 한다. 없어도 되는,감정을 부풀리는 형용사와 부사를 빼고, 단어 끝에 붙는 토씨 하나마다의 무게를 감당하는 문장이면 좋겠다. 


  사진을 가르쳐 본 적도 있고, 미술사와 미학사를 함께 공부하며 반쯤 가르친 적도 있다. 자잘한 것들도 몇 개 있을 것이다. 참고하고 읽게 할 책들을 고르느라 책장 앞에 서 있다가,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글쓰기에 대해 말한 작은 책을 봤다. 아, 잊고 있었다. 글쓰기는 어떤 기술적 문제에 앞서서 생각의 문제이고 태도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 때의 글쟁이들은 하나의 기술로써 글쓰기를 구사한 것이 아니고 삶을 단련시키고 단련한 삶을 비추어 보는 거울로서 그들의 문장과 마주했다. 괜한 사고를 친 것일까?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일까? 문장은 함부로 알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 함부로 나서서 권할 것도 아닌 것을 늦게야 안다. 문장이 앞서고, 삶이 문장의 각오를 따라 간다. 그리고 삶이 지나온 길을 문장은 다시 뒤따라오며 단속한다. 내 요즘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예쁘다. 어쨌든 시작은 해 보고, 하다가 내 역량이 안 된다 싶으면 미련 없이 닥쳐야겠다.


  시작은 한 장의 사진을 관찰하는 작업일 것이다. 사진을 찍는 작업은 내 문장에 세밀한 관찰력을 더해 주었다. 이제는 어떤 사진이든 앞에 두면 한참동안 그 사진에 대한 관찰기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무엇이든 쓰려면 쓰려는 내용이 있어야 할 것인데, 선택과 집중, 그리고 생략에 익숙한 평소의 시선과 생각은 글쓰기에 적당하지 않다. 막연한 시선과 생각이 붙잡지 못한 작은 틈들을 보게 하는 훈련으로서, 사진쓰기.는 제법 그럴 듯한 방법이 되어 줄 것이다. 사실은 예전부터 꼭 시켜보고 싶었는데 마침 실험대상이 생겼으니 잘 되었다. 해서 좋으면 되는 것이고, 혹시 기대한 결과가 안 나오면 제 복이다. 실험대상이라는 것이 뭐 그런 것을 어쩌겠나.


  김훈과 박완서의 문장을 우선 준비해 두었다. 김용택의 시집도 챙겨 두었다. 아, 법정 스님의 수필집도 가져가기로 한다. 김훈과 박완서, 법정 스님은 모두 문장으로 자신들의 도.를 완성해가는 사람들인데 그 문장은 사뭇 다르다. 김훈은 자신의 문장을 한 자루 칼날 위에 세우고, 박완서는 모두 풀어서 텃밭에 널어두려고 한다. 그리고 법정 스님의 문장은 마침내 도달한 무소유의 그것이다. 아무 것도 갖지 않겠다는 문장들은, 그러나 아무 것도 갖지 않음.을 추구하는 단단한 의지들로 채워져 있다. 사람마다의 문장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고, 알려주는 내 문장과 배우는 그들의 문장도 다른 곳을 볼 것이다. 다만 자신의 문장을 향해 가기에 앞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바탕만을 나는 겨우 알려줄 수 있을 듯싶다. 


  새벽에 책상에 앉아서, 아니면 침대에 누워서 내 책의 원고를 만진다. 진도는 더디다. 수첩에 새로 메모한 것들도 끼워넣고, 앞뒤 문단을 잘라 여기저기 옮겨가며 적당한 자리들을 가늠하기도 한다. 무슨 틈이 이렇게나 많고 덕지덕지 붙은 수식은 또 이리 한가득인지. 이런 원고를 책이라고 냈으면 부끄러워서 나중에 어떻게 얼굴을 들었을까 싶다. 고은이의 충고대로, 기본 틀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내 이야기를 덧붙이지 않고, 다만 나의 상하이가 드러나도록 해야겠다. 물론 고치는 부분도 많을 것인데, 우선 읽는 사람에게 조금 더 친절하라는 조윤숙님의 충고는 많이 반영하기로 한다. 사진을 좀 더 넣어야 한다는 여러 사람의 충고도 듣기로 한다. 깊고 단단하게 디디는 걸음들 같은 문장을 이어야겠다. 역시나, 한 세대쯤 뒤에 어느 누구의 책장에 있어도 한 권의 책으로서, 문장으로서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목적지는 여전하다.


  그나저나 진도는 참 안 나간다. 몇 줄 고치다가 또 침대에 배깔고 누워 이런 이야기나 끄적이고 있으니 더 할 말이 없다. 노트북 모니터에 반사된, 덜 마른 곱슬파마에 발바닥을 마주치며 노닥거리는 내 모습이 참 우습다.




2009.08.12 19:43


  생선 두 마리가 집에 왔다. 흙을 굳혀서 만든 것도 같고, 돌을 갈아서 만든 것도 같은 생선은 굵은 마줄로 몸을 묶고 있다. 아래에는 투박한 종이 달려서 맑고 긴 소리가 난다. 책장에 걸어 두었다. 바람 불지 않는 내 방에서 풍경 소리가 울 때는 없겠지만, 이 좁은 방 안이라도 마음껏 헤엄쳐 주기를 바란다.


  3년 전에 다녀왔던 양숴.에 다시 가서, 그 때 물고기 목판화를 샀던 그 집에 다시 가서 이번에는 물고기 조각품을 사 왔다. 3년 전에 내가 여기에 와서 저기 저 나무판이랑 비슷한 크기에 녹색으로 조각된 물고기를 사갔었노라고, 당신은 나를 기억하겠느냐고 물었다. 웃통을 벗고 물건을 포장하고 있던 사장은 물고기 두 마리를 싸게 내주었다.


  제법 몇 달 된 편지에서, 이상은 세상의 치열함과 화해했다고 쓰고 있었다. 정확한 단어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그렇게 읽었다. 그리고 아마 서투른 답을 보냈던가. 이번 여행은 내게 작은 답을 주었다. 일행들과 일주일 가까이 속도를 맞추어 자전거 탔는데, 속도를 맞추는 일에 나는 알게 모르게 지쳤던 모양이다. 마지막 공항으로 가는 구간에서 나는 한 번도 뒤 돌아보지 않고 할 수 있는 최고 속도로 내달렸다. 숨은 차지 않았고 허벅지도 터지지 않았다. 힘은 들었는데, 후련했다. 이상, 나는 아마 치열함과 당장에 평화로운 방법으로 화해하지는 못 할 모양입니다. 나는, 내 치열함의 끝 간 데까지 뛰어가서 부딪쳐 깨어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내 방식의 화해가 될 것이라고, 이번 여행에서 겨우 나를 설득할 수 있었습니다.


  미란이는 나보다 세 살이 어리다. 그런데 나보다 더 돈도 많이 벌고 세상 살아가는 일에 수월해 보인다. 나보다, 더 잘 하는 것 같다. 그 앞에서 어째 못 난 부분을 감추려 들고 가진 것에 헛기운만 세우려 드는 것 같은 나를 발견하고 나는 살짝 놀라고 당황했다. 내 지나온 날들이 제법 빈둥.이라는 단어로 요약되려는 요즘이다. 


  각오는 행동에 앞서는 것인데, 각오만으로 채워진 말들은 속이 빈 것들이다. 그래서 각오는 함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이제, 빛나 보겠다는 각오. 겨우 가진 것들을 힘껏 끌어모아서 방향성을 가진 길 위에 줄 맞춰 놓아보겠다는 각오. 


  조금 다른 길을 가도, 가려고 하는 곳은 다르지 않을 거라고 믿자. 그 끝에서 땀 닦으며, 쓰러지지 않고 기어이 잘 왔노라고 서로 토닥여 줄 날이 꼭 올 거라고 믿자. 벗들아.





2009.08.04 11:18


  프로그램으로, 특정 사이트(사실은 무작위 사이트)에 스팸성 게시물을 올리거나 스팸성 댓글을 달게 하는 시스템이 있다. 스팸봇.이라고 부른다. 내 사이트는 아포리즘.을 제외하면 다른 곳은 글쓰기 기능 자체가 없고, 아포리즘 게시판의 경우도 글을 쓰는 것은 오로지 나만 가능하니까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는데, 스팸봇은 댓글에 침투했다. 특정 게시물에 수 백 개씩 달리는 스팸 댓글을 더 두고 볼 수 없다. 하나 하나 지우는 것도 못 할 짓이고, 그렇다고 스팸 댓글이 달린 게시물을 삭제해 버리자니 써 둔 문장이 아깝다. 


   제로보드 사이트를 둘러보니 같은 문제로 많은 사람들이 고민했고, 스팸봇을 방지하는 방법도 나와 있다. php파일들을 열어서 직접 테그를 수정해야 하는 것들이라 좀 막막하긴 하다만, 해야겠다. 사이트 작업할 때마다 조금씩 보게 되는 php 파일들은 한 번 만져두면 좀처럼 손 댈 일이 없어서 한참 만에야 다시 보게 되고, 그래서 볼 때마다 새 것 같고 도대체 어디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시키는 대로 찬찬히 따라해 보아야겠다.


  2007년 7월에 쓴 글에는 도저히 수습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스팸댓글이 달려서 결국 게시물 자체를 삭제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온 지난 글을 여기에 둔다.


  그 때는, 외할아버니께서 아직 살아 계시던 무렵이었구나. 나를 세상과 잇는, 나를 비롯하게 한 끈이 하나 더 있던 무렵이구나. 이제, 나를 비롯하게 한 끈보다 나로부터 비롯하는 끈들이 하나씩 더 많아지는 나이가 되었다. 한 걸음 디딜 때마다 잘 살피고, 단단하게 걸어야 한다. 뒷 사람에게는 길이 된다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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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당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은 헐겁게 슬프다. 감당할 수 없는 사람, 감당할 수 없는 시간, 책임 따위들을 하나씩 내려놓을 때마다 마음은 헐거운 슬픔과 마주치는데, 애정이나 소유욕이 집착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머리는 알아도 마음은 아직 받아들이지 못 해서 슬프다. 놓여나는 것들을 보는 마음이 슬프고 마음이 슬프다는 사실 때문에 다시 슬프다. 손아귀에서 손가락 하나씩 힘 빠질 때, 내 의지로 힘 빼면서 큰 흐름 속에서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스스로 다독일 때 마음이 아릿한 것이다.


  문장에 있어서 나는 아마추어다. 아마추어와 프로패서널의 차이는 작업을 통한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느냐의 여부다. 프로패셔널의 기준은 고객인데, 설사 스스로의 마음에 들지 않는 작업이라고 해도 고객이 주문하면 수행해야 하고, 원하지 않는 결과물이라도 고객이 원하면 이름 석 자를 걸어 내보내야 한다. 그에 비해 아마추어는 철저히 자기만족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어서, 목적의 끝에는 언제나 스스로의 만족이 있다. 작은 용돈벌이를 제외한다면 나는 철저히 내 마음에 따라 글을 쓰고 내 만족을 위해 문장을 완성하니까, 나는 문장에 있어서 분명한 아마추어다. 내가 사진쟁이인지 글쟁이인지 생각했다.


  서점에 왔다.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바닥에 앉아 책 읽는다. 전에 없이 머리가 아파서. 견디기 힘들어 나도 바닥에 주저앉았다. 글쓰기 책 한 권과 백석 시집 한 권만 겨우 골랐다. 화려하게 포장한 책들이 어서 나 좀 들여다보라고, 장바구니에 나 좀 담아가라고 벽 바닥 천장 가릴 것 없이 가득 차서 소리지른다. 눈이 따끔거리고 속은 울렁거리는데, 내가 책을 쓰면 또 누군가의 눈을 따끔거리게 하고 속을 흔들어 댈 것은 아닌지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다. 어서 서점에서 나가야겠다.


  외할아버지는 요양원에 계신다.

하이고오~.

허~.

거 참~.

네가~.

  한참동안 겨우 몇 개의 단어가 호흡의 간격과 높낮이를 바꾸어 반복되며 조금씩 다른 감정의 진폭을 전했다. 삶의 이유를, 존재마다가 존재하는 이유를 나는 죽을 때까지 알지 못 할 것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할아버지는 전에 없이 내 손을 잡으시고, 내 눈을 보셨다. 나는 그 앞에서

  “할아버지, 저 잘 지내요. 젊을 때 고생하는 거죠.” 말했다. 할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답이 무엇인지, 사실 하이고.와 허어.로 이어지는 할아버지의 물음을 내가 제대로 읽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문장이 나와 맞지 않을 줄 어찌 알았나. 실체 없이 허물어져 내리는 문장을 나는 쓰지 않으려고 한다. 끝끝내 닿지 못 할 목적지를 향하는 길 위를 간절하게 걸음으로 잇대어 걸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문장은 그 걸음 사이의 결기를 담아 단단해야 하고 분명한 실체를 가져야 한다.


  어머니는 꼬질한 아들 신발을 씻어주지 못 해 마음에 걸린다고 하셨다. 겨우 이틀 집에 머물고 가는, 신발 씻어 말릴 시간도 없는 아들의 신발을 때 묻는 그대로 보내서 마음에 걸린다고 하셨다. 내 첫 책의 첫 페이지는 ‘아버지의 둥근 배와 어머니의 주름진 손 앞에’ 이렇게 시작할 것이다.


  어제 은경 누나네에서 얻어먹은 음식이 잘 못 된 것인지, 먹고 바로 소파에 구겨져서 잠든 것이 잘 못 된 것인지 내내 아팠다. 부러 거한 밥상을 차려 주었는데 잘 먹고 아파서 아프면서 미안했다. 머리가 깨질 듯하고 속은 울렁거려서 움직일 수 없었다. 아침까지 넘기기로 한 사진들이 있어서 새벽에 일어나 겨우 작업해서 넘기고 다시 누웠다. 다행스럽게 오후 촬영이 연기되어서 종일 죽은 듯 누워 있을 수 있었다. 소화제를 먹고 억지로 토했는데 위액과 침을 섞은 몇 방울이 겨우 나왔다. 다 저녁 때 나가서 과일 약간과 군것질 거리 조금을 사 왔다. 밥을 먹으면 속이 부대낄 것 같았다. 하루를 통째 누워 보내고 나니 조금 나아진 것을 알겠다. 이런 날은 생각하는데, 소박하게 살아도 좋을 것이다. 분주하게 일을 만들고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살아있음의 증거처럼 믿는 삶이 꼭 아름다운 것은 아닐 테다. 믿고 기댈 사람 하나 없는 외국에서 혼자 작업실 소파 위에 종일 누워 신음하고 있으면 내가 뭘 이루겠다고 이렇게 지내고 있나 싶기도 하다. 물론 이런 생각은 잠깐 하고 만다.




2009.08.02 13:56


  “나 한 권 사 줘, 책.”

  “안 돼 오늘. 돈 너무 많이 썼어.”


  제법 배가 나온 중년의 아저씨였다. 막 녹아내리기 시작하는 바닐라콘 아이스크림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이 책 저 책 뒤적이면서 말했다. 마땅히 사고 싶은 한 권이 있다기보다는 그저 이 코너에서 한 권쯤 사고 싶은 눈치였다. 아내는 밉지 않게 구박했다. 말을 마친 아내는 이미 자리를 떠났는데, 남자는 여전히 남은 미련을 어쩌지 못 해서 한참 동안이나 책 앞을 떠나지 못 했다.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콘을 수습하며. 아, 기분이 좋아지는 풍경.


  “이렇게 하니까 책 사기 편하지?”

  “응, 근데 아빠는 이 것 밖에 없어?”

  “응”

  “에게 에게”


  푸른 원피스를 입은 꼬마는 종종 걸음으로 아빠 뒤를 따라간다. 앞서가는 아빠와 딸을 바라보는 엄마는 편안해 보인다.


  일 년에 두어 번 한국 다녀올 때마다 서점에 들러 필요한 책들을 한꺼번에 사 온다. 돌아오는 짐중에 언제나 가장 큰 짐은 책뭉치다. 이번에는 다른 때보다 좀 많이 샀다. 하고 있는 스터디들에 필요한 책들이 대부분이고, 소개받은 철학 소개서적들도 제법 있다. 읽어야 하는 책들을 고르고 나면 다음은 읽고 싶은 책을 고를 차례다. 6개월에 한 번씩 서점에 갈 때마다 읽고 싶은 책의 주제가 변하는 요 몇 년이다. 이번에는 클래식이다. 


  서점에서 책 보는 여자는 아름다워 보인다. 같은 사람을 길거리에서 보았다거나 다른 여타 모임에서 만난다면 저렇게 아름답지 않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한다. 서가에 서서 책을 고르는 여자나 바닥에 편하게 앉아 책을 읽는 여자들이 모두 예뻐 보인다. 꾸미지 않고 집중한 그 표정과 시선이 아름답다. 


  노무현 대통령을 기억하려는, 그 뜻을 이으려는 책들이 여러 권 나와 있었다. 한 권쯤 사려고 이것 저것 들추어보았는데 너무 많아서 고르기 어려웠다. 그래서 대신 유시민의 책 한 권을 샀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를 추억하고 감상에 젖는 것보다는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시집을 사지 않는 것은 미안하고 위태로운 일이다. 시에 가장 열심이었던 때는 대학 무렵이었던것 같은데, 중국에 온 이후에도 한 동안은 서점 갈 때마다 시집 코너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마음이 점점 바빠지면서, 차근차근 시집을 읽어보고 고를 시간이 없어서 이제 시집 사기 어려워 진다. 시집 코너의 전면을 채우고 있는 시집이란 것들이 가볍고 말초적이고 대충 팔릴 만한 것들이 대부분이라서 좋은 시집을 찾기는 더 수고스러운 일이 되었다. 기형도의 시가 한 시대를 이끌었고 여전히 빛나는 시이기는 하지만, 그 시집이 지금도 시집 가판대의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 과연 맞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한 권 한 권 뒤져가며 차근차근 읽어가며 내게 맞는 시집을 고르는 일은 이제 마음이 바빠서 잘 안 된다. 좋은 새 시인을 소개받을 수 있는 통로도 없으니 좀처럼 다시 가까워질 수 있을지 모르게 되었다.


  한국에 있는 동안 내 원고에 퇴짜를 놓는 출판사의 메일을 또 한 통 받았다. 처음이 충격적이었지, 이제 그러려니 한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출판사들의 의도대로 수정하고 수정하는 사이 내가 바라는 책이 점점 기존 여행에세이 책들과 아무런 차이도 없이 닮아간다는 부분이었다. 고은이는 마침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충고를 해주었는데, 그렇게까지 하지 말라고 했다. 고집스러운 내 책을 쓰라고 했다. 듣기에 좋았다. 




2009.07.18 10:01


  며칠이나 지났나.


  재미나게 일하고, 좋은 사람들도 만났다. 새로 들은 노브레인 노래들이 참 마음에 들어서 청소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런 노래들이라면, 아침 시간에 에어컨 온도를 낮추고 청소기 윙윙 돌리면서 들어야 딱.이다.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아침 내내 음악을 제법 시끄러울 만큼 틀고 청소했다. 주말 아침인데 옆집은 좀 짜증이 났겠다. 미안하다. 그래도 줄일 생각은 없다. 청소라고 해보아야 진공청소기 한 번 휭 휘돌리면 끝나는 일이다. 그래서 청소기가 닿지 않는 집안의 구석구석에는 짧게는 몇 달 길게는 해를 넘긴 먼지들이 수북하다. 절대로 짧은 내공으로는 만들 수 없는 먼지의 지층이다. 책장을 살펴보면 가끔이라도 손이 가는 책들과 좀처럼 보지 않는 책들은 그 앞에 쌓인 먼지로 알아차릴 수 있다. 움직이지 않는 장비며 장식장 위에도 먼지들은 저들만의 지층을 쌓고 있다. 이제는 아주 친근하고 어째 오래된 친구 보는 것도 같다.


  net의 지층에 대해 생각하고 혼자 감탄하며 연습장 틈에 적어둔 것이 며칠 되었다. 역사.라고 이름 붙이면 어쩐지 불손해 보이는, 자연의 시간에서 사건은 지층으로 남는다. 지구의 나이가 40억 년 좀 더 된다고 했던가? 그 시간이 오롯이 층층으로 남아 있다. 자칫 수직의 선형성으로 읽을 수 있겠지만, 지층은 내게 여전히 순환의 고리 안에 있는 어떤 것이다. 자, 이제 재밌는 부분이 나오는데,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저변을 확대한 것이 내가 막 신입생이 되던 98년을 전후한 시기였다. 색깔 있는 사람들은 그 때쯤 개인 홈페이지도 만들었을 것이다. 이후에 싸이월드 등의 포털 제공 개인 공간을 거쳐 현재는 블로그가 대세다. 트위터라는 인스턴트 공간은 딱 게으르기 좋아 보인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온갖 개인 웹 공간에 사건에 대한 반응이 남는다. 예를 들어 노무현 대통령의 투신과 그 이후 생겨난 일련의 사태에 대한 반응은 대한민국 웹人들의 거의 모든 웹공간에 어떤 형태로든 흔적이 남아있다. 한 시대적 사건이 쌓아둔 넷의 지층이다. 이런 유쾌한 사태라니. 그 지층들을 조합해 보는 것은 참 재밌는 시도가 될 듯하다. 뭐 내 전공분야도 아니고 당장 어떻게 쓰일 것 같지도 않지만, 사진이든 글이든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게 된다면 재미있는 소재로 사용해 볼 만하다. 이런 아이디어가 튀어 나올 때는 가끔 내가 기특하다.


  정면승부. 요즘 웅얼거리며 혹시나 모를 삐딱선으로부터 나를 설득하는 말. 호구를 쓰고 죽도를 들고 마주 서면, 도저히 내가 상대가 안 되는 사람들이 많다. 틈은 보이지 않아서 공격할 방법이 없는데, 어느새 상대의 칼은 내 머리를 치고 있다. 하다가 하다가 안 되면 슬쩍 열받아서 칼을 치켜 든다. 상단.이다. 상단은 절대로 물러서는 마음이 없어야 하는, 배수진의 마음이어야 한다고 들었다. 여전히 상대는 틈이 안 보이고, 조금씩 조금씩 그대의 공격 거리 안으로 나를 잡아 넣는데. 아, 여전히 나는 방법을 모르는데. 언제나 맞는 건 순간이다.


  차근차근 배우고 익혀서 이제 겨우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행동으로 나오려고 하는 내 정면승부는 내가 얻은 귀한 힘이라고, 믿고 싶다. 상황 앞에서, 상대 앞에서, 두려움 앞에서, 모호함 앞에서 물러나지 말기. 


  좀처럼 안 적는 얕은 감정의 문장들을 적어두는 것은, 등 뒤에서 노브레인이 아침 내내 시끄럽게 떠들고 있기 때문. 이런 음악 속에서 생각이 정리 따위가 될 수는 없구나. 그래도 참 기분 좋은 음악. 청소도 끝났는데.






2009.07.09 19:24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전축이 있었다





앞길 막지 마라. 

봐 주라.






  상하이에 처음 온 여행객처럼 걸어 보겠노라는 아침의 각오대로 되지는 않았다. 날은 더웠고, 내 발걸음은 볼 것 없는 곳을 알아서 피해갔고 눈은 개중에 있을 아직 보지 못한 것들만 찾았다. 읽겠다고 들고 나온 두꺼운 책과, 돌려받은 얇은 책 두어 권이 무겁다. 처음 읽은 김연수의 단편소설은 기대 만하지 못 했다. 소설이 대단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모르겠고, 다만 기대만큼 나와 맞지 않았다. 기대는 잔뜩 했었다.


  수첩에는 반 접은 A4 용지가 몇 뭉텅이 끼워져 있다. 며칠 되었다. 사실 몇 달 된 것도 있고, 몇 년 된 것도 있다. 미룬, 미루어진 일들이다.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오늘 해야 하는 일들이 많고, 한국 다니러 가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상하이에 머무는 동안 해야 할 일들이 많고, 젊어서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살아서 해야 하는 일들이, 참 많다. 


  새로 사고 싶은 씨디플레이어에 눈 돌아간 것이 며칠 되었다. 스피커도 욕심이 나고 선재도 바꾸고 싶지만 괜한 욕심이다 싶어 다독이고 다독이는데, 이번 씨디피에는 당했다. 스피커와 앰프를 사고 씨디피는 승우 형이 빌려주신 이상한 녀석을 붙여 쓴 지 1년이 넘었다. 오디오 전용 씨디피가 아니라 디제이용 씨디피라서 음질이랄 것이 없다. 앰프고 스피커고 부산을 떨어봐야 소용이 없는 셈이다. 액정이 고장나서 도대체 지금 내가 듣는 음악이 몇 번째 트랙인지 파악도 안 된다. 무엇보다 리모컨이 없어서 때마다 가서 재생 버튼을 다시 눌러야 하고 전화라도 오면 얼른 가서 앰프 볼륨을 줄여야 한다. 이만하면 바꿔야 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은가? 새로 들일 녀석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음색은 모르쇠.다. 어차피 만만한 가격대에서 내 막귀 앞에 음질은 그 놈이 그 놈일 것이고, 마음 가는 대로 지르련다. 지름신께서 점지하셨으니 미약한 내 힘으로 어찌 버틸까. 뜻대로 따르리다. 뭐 잔고가 넉넉한 것은 아니지만 당장 돈 나갈 곳도 없고 조금이나마 더 들어올 돈도 있으니 슬쩍 못 이기고 말자. 딱 이번만. 알고도 속는 거짓말이란.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전축이 있었다. 절대 전축이 있을 만한 집안 상황이 아니었는데, 제법 큼지막한 스피커에 프리앰프, 파워앰프, 턴테이블, 카셋플레이어까지 세트로 구성된 인켈 전축이었다. 그 때는 비슷비슷하게 생긴 쇳덩이들이 무엇인지 알 리 없었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런 것들이다. 아마, 젊은 부모님의 거창한 사치였을 것이다. 가난했지만, 그래도 처음 시작하는 때쯤에 한 번쯤 부려보는 호기 같은 것이었을까. 아마. (내가 오디오를 산 것은 결코 우뚝한 우연이 아닌 셈이다. 피가 어디 가겠는가.) 아이 있는 집의 전축들은 대충 비슷한 운명을 겪는다. 스피커 그릴은 찢어진다. 턴테이블의 카셋트 핀은 부러지고, 우퍼는 찌그러져야 한다. 그래서, 내 기억에 전축은 다만 그 거대한 형태로만 남아 있다. 소리가 없는.


  지금은 창고처럼 되어버린 고향집 작은 방에는 10년쯤 된 미니컴포넌트가 있다. 고등학생일 때 구구절절한 편지를 써서 조르고 졸라 산 것이다. 무슨 핑계를 대었더라? 아마 교육방송을 듣는다고 했었던가? 기억도 안 난다. 다만 별 필요도 못 느껴 안 사주시던 것을 어버이날이던가? 편지 몇 장으로 끝내 얻어내었다는 기억만 있다. 몇 장의 씨디를 사고는, 아마 시시해져버렸던가. 라디오를 열심히 들었던 기억.


  이번에 가면 컴포넌트를 꺼내 안방에다 설치해 드려야겠다. 그리고 다운받아 둔 수 백 곡의 포크가요를 구워다 드려야겠다. 어머니께서 참 좋아하시겠다. 아버지께는 사진 교본을 가져다 드려야겠다. 옆에서 가르쳐 드리면 좋겠지만 차근차근 배우는 걸 달가워하지 않으시는 데다가 시간도 마땅찮으니 얇은 책 두 권이라도 드려야겠다. 촬영하고 받은, 꼭 주먹들이 들고 다니는 것 같은 나름 명품이라는 일수가방은 매형 드리면 되겠다. 음, 누나한테는 마땅히 줄 게 없구나. 조카들 신발 사다 주고 사진 찍어주면서 넘겨야겠다.


  멀지 않은 때에, 한국에 몇 년쯤 살았으면 좋겠다 싶다. 계속 있을 수는 없겠지만, 상하이의 시간이 끝나고 그 다음의 한 판을 시작하기 전에 몇 년이라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부모님 곁에서. 아버지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전국 여행을 다니고 싶다. 어머니께 컴퓨터를 가르쳐 드리고 싶다. 내게 낚시를 가르쳐주셨던 그 때처럼, 아버지께 사진을 가르쳐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어머니 텃밭에 가서 일하시는 동안 말동무가 되면 좋겠다. 나는 아직 이룬 것이 없어서 못 간다. 그리고 작은 것들부터 하나 둘씩 이루게 되면 그 이룬 것들에 등 떠밀려 또 못 갈 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잘 설득하고 다독여서, 더 늦기 전에 두 분께 몇 년의 시간만이라도 돌려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자식들 키우느라 접으신 아버지의 사진을 돌려드리고, 한 때는 고왔다는 어머니 노래를 들려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하루가 게을렀던 저녁에 마음은 더 조급해진다.






2009.07.06 19:01


  악몽쯤 되는 것들이다. 생전 꾸지 않는 꿈들을 꾸었다. 이틀 전에는 밀린 일들에 떠밀려 떨어지는 꿈이었다. 지지부진한 책 기획서 문제와, 계약에 앞서 보내야 하는 촬영계획서 문제가 마음에 걸렸는데 그 부담이 생각보다 컷던 모양이다. 꿈 속에서 나는 몇 개 일에 동시에 쫓겼는데 결국 못 해냈고, 결말은 잊었다. 일어나서, 얼마나 마음이 답답하면 이런 꿈까지 꾸나 싶었다. 어제는 다른 일 때문에, 오늘은 또 다른 일 때문에 진도는 여전히 거기에 있고, 내일도 다른 일이 있다. 오늘 밤에는 좀 해야지 해야지 하는데, 가 봐야 아는 것이다.

  오늘 낮잠 자는 동안에는 동생과 함께 큰 배를 타고 휴양지 섬으로 놀러가는 꿈을 꾸었다. 배는 목적지 거의 다 와서 풍랑을 만났다. 아, 이 싱싱한 꿈의 결말은 그냥 잊을란다. 섬은 휴양지 뒷편으로 현지 주민들의 낡은 거주지역이 있었다. 수영장에는 물이 겨우 몇 십 센티미터 밖에 없어서 수영할 수 없었는데, 수도 꼭지를 틀어서 물을 받아도 수도 꼭지는 자꾸만 잠겨서 수영장에는 물이 차지 않았다.


  어제는 함께 영어공부를 시작한 사람들과 앉아서 여행가자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는 덤덤했다. 여행 좋아하던 내가 왜 덤덤했을까. 덤덤한 중에 궁금했다. 제대로 기억에 남는 여행이라고 간 것이 제법 오래 되었다. 여행은, 새로운 것을 보는 것도 좋겠지만 마음의 자세를 바꾸는 일인 듯도 싶다. 낯선 곳에 가는 것도 맞겠지만 내 마음이 낯설어지는 곳에 가는 것도 맞는 듯싶다. 찬.이는 여행했던 곳 중에 어디가 가장 좋았었냐고 물었는데, 나는 대답하지 못 했다. 돌아보면, 모든 여행의 기억이란 것이 아름다운 것만 남았다.




2009.07.01 21:42


약속과 약속 사이에서 공중에 뜬 큰 덩어리 시간에, 

마침 읽어야 할 책도 제법 있고, 

밖에는 비가 좀처럼 그칠 것 같지 않고,


어쩌겠어. 검은 물 한 잔 값이 아깝긴 해도.




2009.06.25 21:12




베토벤


  마침내 하루가 갔다. 늦게 일어났다. 밀린 잠이고 풀린 긴장이었다. 종일 컴퓨터 앞에서 떠나지 못 하다가 저녁 먹고 겨우 일어났다. 요즘은 밥 먹고 곧장 작업을 이어가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소화가 잘 안 된다. 덕분에 맛을 들인 저녁 산책은 새로운 즐거움이다. 저녁 먹고 앰프를 켜서 예열해 두고 나간다. 지갑도 없이 전화기랑 열쇠, 그리고 동전 몇 개 집어서 간다. 근처 마트까지 저녁 바람 맞으며 건들거리며 걸어가서 내키는 음료수 한 병을 사서 갔던 길을 느리게 걸어 돌아온다. 강변길에는 저녁 바람이 좋다. 오늘은 콜라다. 일 많이 한 날은, 더구나 몇 개 일이 엉켜서 전화연락들까지 겹치는 날에는 콜라 만한 것도 없다. 몸에 해로워? 까짓 것.


  와인병처럼 콜라병을 떨굴 듯 쥐고, 뭘 들을까 하다가 대충 앞에 놓인 베토벤 교향곡을 듣는다. 불은 다 끄는 것이 좋다. 그래야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서 그나마 앞이 무대 비슷해 진다. 들어도 들어도 나는 그 멜로디가 그 멜로디 같고, 앨범을 통째로 걸어 놓으니 도대체 이 녀석의 제목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마침 음악하는 사람을 알게 되어서, 작곡을 가르쳐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작곡이 배우고 싶었다기 보다는, 화성이며 대위법이며 하는 것들을 좀 배우면 멜로디라는 것도 조금 친근해지고 그러면 도대체 계통 없어 보이는 이 고전음악들을 조금 더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배워본 적이 있냐고 묻더라. 아니요. 다룰 줄 아는 악기는 있냐고 묻더라. 아니요. 그 눈에 드러나는 가망성 없음.의 의사는 선명했더라. 그래도, 가사에 지치는 날들도 있잖은가. 언제 들어도 새 것 같은 클래식은 그래서 언제나 신선하다. 옆 집 눈치보는 소심한 마음을 곱게 접어서 마음 구석 눈이 닿지 않는 곳에 쳐박아두고 볼륨은 크게 튼다. 그래야 음악 속에 온전히 잠길 수 있다. 듣다 보면 스피커도 더 좋은 걸로 장만하고 싶고 앰프도 바꾸면 음악이 더 좋아질 것 같은 생각을 잠시 하지만, 잠시 하고 만다. 이백오십 만원은 아직 기억 전면에 있다.


  준비했던 발제는 끝났다. 미학 스터디 발제는 서양미학의 역사에 대한 개관이었고, 발터 벤야민 발제는 나답지 않게 일주일을 머리 싸매고 덤볐는데 결국에는 용 머리에 뱀 꼬리를 이어 붙였다. 애초 감당하기에 벅찬 깊이고 분량이었다. ‘몽타주’라는 한 단어에 담기에 몽타주는 너무 아까운 기법이다. 이미지적 몽타주 기법을 문장에 도입시킨 것을 나는 임의로 “이미지를 선언하는 문장”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더 공부해보고 싶은 부분이다. 벤야민은 모더니티의 신화성을 지적하고 그에 대한 반성을 시도한 것인데,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모더니티에 대한 반성을 주장하는 벤야민 또한 외관을 바꾼 새로운 모더니티의 형식을 창조한 것은 아닐까. 벤야민은 궁극적 목적지를 설정하는 부분에 있어서 극도의 신중함을 보이지만, 유토피아에 대한 잠재적인 긍정까지 숨기지는 못 한다. 그래, 나아가 닿을 곳을 긍정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할 수는 없지 않나. 당신 탓 아니다. 알레고리.는 몽타주와 떼어 생각할 수 없다. 몽타주를 구성하는 이미지의 조각들은 그 자체가 알레고리적인 성격을 가지며 존재의 본질을 일체의 매개없이 드러낸다. 동시대에 누구도 인식하지 못 했던 현실의 이면을 포착하기 위해서, 벤야민은 얼마나 민감한 더듬이를 갖고 있었던 것일까? 그 민감함은 놀라운 통찰력으로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읽기.를 제안했는데, 결국 벤야민은 그 민감한 더듬이를 감당하지 못 하고 자살했다. 달랐기 때문에 보였고, 달랐기 때문에 죽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수잔 손탁은 벤야민의 이런 측면을 토성의 영향을 받은 우울.이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처음 읽을 때는 억지스러워 보였는데, 벤야민의 철학에 있어서 우울.의 역할은 커 보인다. 괜히 수잔 손탁이 아니다. 현실에 대한 벤야민의 인식은 논리적 사고 끝에 결론을 이끌어 내는 학자의 그것이라기보다는 어떤 영감과 찰나적 전환에 의지하는 예술가의 인식과 닮아있다. 하여튼, 예술하는 것들이란.


  상아탑의 학자로서 자리 잡으려던 벤야민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 했다. 바로크 시대의 알레고리를 비판한 그의 논문은 퇴짜맞았다. 너무 어려워서. 그리고 공산주의가 청년기에 접어든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서 벤야민은 재야 좌파학자의 길을 택했다. 그에게 영감을 준 뮤즈, 라시스의 영향으로, 벤야민은 그의 학문이 조금 더 현실 세계에 기여하기를 바랬고, 자신의 학문적 성과로 세상이 조금 더 나은 곳이 되기를 바랬다. 죽음 앞에까지 껴안고 갔으면서 끝내 완성하지 못 하고 남은 그의 마지막 원고 파사젠베르크.는 그 시도의 미완성 결과물이다. 남은 자들은 그 시도의 위대함만을 겨우 찬양한다.

  어제 안철수씨가 나오는 무릎팍 도사.를 보았는데, 그 마음 씀씀이가 참 예뻤다. 잘 나가던 CEO 자리를 포기하고 다시 학생이 되기로 결심했을 때, 하나의 회사보다 세상에 기여할 방법을 찾고 싶었다는 그의 말은 듣기에 기분 좋았다.

  나는, 어떻게 이 세상에 기여할 수 있을까? 나를 온전히 버려서 낮은 곳에 어렵게 있는 사람들을 도우러 갈 수 있겠지만, 그런 극단적인 형태의 기여가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로 내가 태어나고 나를 길러준 이 세상에 내가 받은 것들을 돌려줄 수 있을까?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으라고 태어난 세상은 아닐 테니까, 내가 태어난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

  나는 왜 직업으로서의 일거리들을 밀어두고 돈도 안 되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스터디에 열올리는 것일까? 지적 허영일까? 무엇이라도 증명하려는 것일까? 나중에 돈 벌 준비일까? 삶이 도대체 물음표여서일까? 이 배움으로 나는 어떻게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 


  사진 찍는 일보다 글쓰는 일이 더 좋은 이유는, 우선 펜이 카메라보다 가볍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습장 위에 글자 한 자 한 자 적을 때의 내가, 피사체를 앞에 두고 카메라로 겨누고 구도를 잡을 때보다 훨씬 평화롭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글 쓸 때의 마음처럼 사진 찍는 일이 잘 안 된다. 영원히 안 될 수 있다. 사진은 내게 공간의 호흡을 포착하는 사냥.인 듯하고, 공간과 나 사이의 겨룸.인 듯하다. 전투적일 수 밖에 없지 않나. 문장 같은 사진을 찍는 연습을 해야겠다. 하루 하루 연습장에 또박또박 글씨 적어내려가듯이, 단정하고 소소한 사진들을 찍도록 연습해야겠다. 내 문장도 하룻밤 사이에 된 것은 아니지 않나. 하다 보면 닿는 날이 오겠지. 닿는 날이 못 오더라도 틀리지 않았다는 소식이라도 오겠지.










2009.06.21 22:18


  이틀을 시험 앞둔 학생처럼 살았다. 몇 권의 책을 읽고 발제문의 개요를 잡았다. 이왕 하기로 한 기운을 몰아서 그 동안 못 다한 다른 일들까지 모두 꺼내놓으니 책상은 난장이고 마음은 비장하다. 오후에 영어를 가르치는 친구 찬.에게 연락이 와서 간단한 스터디가 있으니 와 보지 않겠냐고 했다. 책상 위에 쌓인 일거리들을 가늠한 후에, 우선 가 보기로 했다. 할까 말까 망설이는 순간에, 뭐든 해보는 것이 낫다는 믿음은 이제 내게 진리다.


  다들 재밌게 열심히 했다. 피아노를 가르친다는 두 친구는 내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새로운 캐릭터였는데, 시간을 허송할 수 없다는 말은 단단해 보였다. 아직 어린 친구들이 삶에 대한 각오를 드러낼 때, 나는 깜짝 놀란다. 잠시면 끝나고 해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와 다시 일 앞에 앉겠다는 다짐은 희망사항에 그쳤다.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공부 마치고 나오니 밖은 어두웠다. 


  돌아와 컴퓨터 켜니 성공회대에서 있었다는 노무현 대통령 추모콘서트 기사가 뜬다. 콘서트 제목은 '다시, 바람이 분다.'였다고 한다. 콘서트에서 신해철은 삭발하고 나와서 울었다고 한다. "대통령을 죽인 죄인이라서 문상도 못 했다. 담배 한 대 올리지 못 했지만, 할 줄 아는 것은 노래 뿐이니 노래로 추모한다."며 몇 곡의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가 불렀다는 곡들을 찾아서 틀어둔다. 울어준 그대들이 참 고마웠다.


  이미 마감 지난, 그래서 도저히 더 미룰 수 없는 일이 몇 개. 그리고 내일이 마감인 일이 몇 개. 며칠 남긴 했는데 분량이 많아서 도저히 벼락치기가 안 되는 일이 몇 개. 그러니까, 잠시 다녀와서 얼른 마저 일 할 생각이었는데.


  일찍 자기는 걸렀다.





2009.06.16 21:41


  어느, 잊은 듯 오래된 사이트의 글 몇 줄을 읽다가 생각합니다. 나는, 건방지게 던지듯 문장의 마침표들을 내려놓지는 않았던가. 문장 끝에 힘 좀 붙었다고 뜻만으로 휘둘러대지는 않았나. 아직 한참 어린 것이 시건방을 떨지는 않았나.


  조금 더 겸손하게요. 모든 사람을 대하는 문장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게, 모든 존재하는 것들 앞에서 그 존재하는 이유를 곱씹으면서 설사 내가 미루어 알 수 없는 이유라도 명백하게 있을 테니까, 한 없이 작은 모습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 앞에서 낮은 문장을 써야겠지요.


  말 많으면, 좋을 일 하나 없습니다.




2009.06.16 07:15

맴버 두어 명은 먼저 나와서 새벽길을 걷고 있었다


  간밤에 꿈 꾸었다. 사진찍는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갔다. 강변이었고, 아시아적인 풍경과 유럽적인 풍경이 섞여 있었다. 강변은 어릴 때 놀던 그 강변이었다. 새벽에 깔끔한 기분으로 깨어서 사람들 불러 아침 산책을 갔다. 강변 둑길에는 새벽 일터로 나온 시골 사람들이 있었고, 맴버 두어 명은 먼저 나와서 새벽길을 걷고 있었다. 나는 노랗게 펼친 강아지풀을 찍었고, 낮게 강물도 찍었다. 더 걸어서 큰 호수변에 있는 오래된 마을로 들어섰는데, 온갖 원색의 천들이 새벽 빛에 제 빛깔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마 운남에서 보았던 풍경들이 꿈에 겹쳐졌던 모양이다. 빛은 맑았고 공기는 투명하고 가벼웠고 경쾌했다. 함께 간 맴버들도 말 없이 다들 든든했다. 나는 신나서, 제법 느낌이 좋은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마을을 벗어나자 관광객들이 많은 호수였다. 아마 마을은 호수에 면해 있었던 모양이다. 풍경은 나른하고 아름다웠다.


  모처럼 단잠을 잤다.





2009.06.15 21:25


  일찍 잘랬더니 어림 없겠다.


  엄청 클 것 같던 계약건은 재차 확인하는 과정에서 실제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처음 일을 연결시켜준 로즈.는 예상 외로 줄어든 규모 때문에 괜히 미안해했다. 됐다. 일단 계약서에 도장 찍고나면, 가격과 사진찍는 자세는 큰 상관관계가 없다. 십 만 원짜리 사진을 찍을 때나 백 만 원짜리 사진을 찍을 때나 내 마음가짐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뭐 다르기는 한데, 작다. 다만 부담감의 크기가 가격과 정비례 관계에 있을 뿐.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위해서는 영문 소개서라는 난관이 아직 남아있지만, 뭐 규모가 줄었으니 행여 못 잡더라도 덜 아쉽겠다. 그나저나, 이 밤에 어디서 영문 자문 구할 곳도 없는데, 더구나 별 내용도 없는 영문소개서를 어째 만들어내나. 


  사이 좋게 양쪽 발바닥에 커다랗게 한 개씩 싱싱한 살색 구멍이 생겼다. 이 곳 대학동아리에 껴서 검도를 했었는데, 방학이라고 안 한댄다. 몇 명이 남아 있었는지 마침 오늘 하루 운동이나 하자고 연락이 와서 냉큼 갔다. 예상했던 대로, 몇 주 쉬었더니 칼은 몇 배로 무거웠다. 그래도 한 판 신나게 놀았다. 무리해서 노는 동안 팔에는 길게 멍이 들었고 발바닥은 물집이 잡혀서 또 며칠 걷는 게 일이겠다. 그래도, 오늘은 제법 때리기도 했다. 방학 동안에는 조금 더 먼 곳에 있다는 상설 도장에 다녀야겠다. 돈 좀 비싸다던데. 오고 가기 멀다던데. 그래도 몇 년만에 다시 시작한 검도니까, 이제 가능하면 멈추지 않도록 해야겠다.


  사진으로 만나서 스터디를 통해 더 알게 된 성현 형에게서 요즘 많이 배운다. 몇 년 동안 길을 못 찾았던 공부에 대한 갈증이 조금은 덜어져서 좋다. 어제는 스터디 자료 받으러 간 길에 내 책에 대해 여러 조언도 듣고 참고할 수 있는 책도 몇 권 빌려왔다. 형의 방에 책들은 겹겹이 쌓여 있었는데, 보기에 좋았고 세상에 읽어야 될 책이 참 많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취미 삼아 하는 공부는 이렇게 재미있는데, 나중에 직업으로 공부하는 때가 오면 그 때는 공부가 나를 덮치고 목 조를까? 지금 사진이 그런 것처럼.


  그래도, 가 보면 참 좋은 곳이 많다. 안 가고 편히 살기 보다는, 가서 신나게 살아야겠다는 믿음은 한 번도 흔들린 적 없고, 그 시도들은 한 번도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2009.06.11 06:58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다.


  누구의 말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탁닉한 스님의 말쯤이 아닐까 하는데, 


  "화를 내는 것은 타인의 잘못으로 나를 상처입히는 일이다."고 했다.


  머리는 아는데 마음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을 때가 있다. 따져보면, 일하는 중에 생긴 사태니까 녀석의 말대로 전적으로 그 녀석 책임은 아닌 것이고, 아직 어린 나이니까 감당할 수 없는 일 앞에서 우선 도망치고 싶어하는 녀석의 마음도 지극히 당연하다. 사실 이제 별로 화도 안 난다. 지갑에서 수리비 빠져나갈 때 대충 마음도 정리된 듯싶다. 그런데도 마음은 녀석을 계속 미워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어서 잘 모르게 되었다. 제 책임은 크지 않다고, 돈 얼마 못 주겠다고 말하는 그 녀석을 더 미워해야 하지 않나? 내 성질 건드려서 결론적으론 한 푼도 안 내고 속으로 다행이다 싶어할 저 녀석을 이대로 웃으며 봐도 되는 것일까? 그건 세상에 너무 만만하게 보이는 건 아닐까? 그러니까, 좀 더 나쁘게 굴어야 하는 건 아닐까?


  아, 가만 두면 스러질 작은 '화'의 조각을 그대로 두는 것이 맞는가? 아니면 세상 살아가는 마땅한 자세로서 두고두고 더 지펴야 하나? 이거, 쉬운 문제가 아니네.


  그나저나, 저 녀석이 다시 웃는 모습을 보게 되면, 그건 정말로 제법 밉겠네.





2009.06.10 18:14


  광장으로 가자.


  오늘, 해가 지면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결연한 눈빛으로 광장에 모인다.


  바다 건너에 있다는 핑계로 더는 무심할 수 없게 되었다. 기억하고 있다. 여기서, 작은 목소리로 응원하고 있다. 


  힘 내자. 사람들아.


  한국에 가는 날, 나도 그 광장에 서겠다.






2009.06.09 23:26


  "이 봐, Mark. 생각해 봤는데, 카메라가 떨어진 것 중에 내 책임은 그렇게 안 큰 것 같아. 네가 말한 만큼의 돈을 못 내겠어."


  화가 나서, 한 푼도 내지 말라고 큰 소리로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네 책임이 아니면, 그 카메라가 거기서 추락한 것은 보안 검색대에 스스로 올라가서 추락을 예비한 카메라 탓이냐? 카메라가 죽기를 결심하기라도 한 것이냐? 도대체 네 핑계가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왜 그냥 돈 없다고, 사정을 살펴주면 안 되겠냐고 말 못 하냐? 속에 담긴 말들을 쏟아내는 것도 구차해 보여서 담아두고 덮고 말았다. 견적서에 나온 수리비는 내가 다 물어야 한다.


  어릴 때는 나도 그랬다.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어려움이 갑자기 밀려오면, 어떻게든 도망칠 방법을 찾았다. 비껴 설 자리만 살폈다. 정면으로 부딪쳐 깨거나 깨어진다는 것은 너무 무서웠다. 따지고 보면 화 낼 일도 아니었던 거다. 사람이 좋고 나쁜 문제가 아니었다. 중국인이고 한국인인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어시는 아직 어린 것 뿐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자신의 크기로 감당할 수 없는 사태 앞에서 비껴나고 싶었던 거다. 거기에 비겁.이라거나 부당.따위의 수식을 붙이는 건 잔인하다. 도저히 물러설 수 없는 상황과 마주쳤을 때, 정면으로 마주서는 것만큼 담백한 승부는 없다는 걸, 그 어린 친구는 언제쯤 배워가게 될까?


  전화 끊고 후회를 했다. 그깟 자존심이 뭐라고, 단 돈 얼마라도 받을 걸 그랬다. 내가 땅 파서 돈 버는 것도 아니면서. 어줍잖은 자존심이라니.


  개뿔 손에 쥔 것도 없는데, 시간이 갈 수록 나는 해낼 수 있다는 잔잔한 자신감이 바닥부터 찬다. 나는, 될 것 같다.






2009.06.08 14:48


  정신줄을 놓았다.


사태는 며칠 전에 벌어졌다. 하이닉스 사보 촬영을 마치고 카메라 가방이 보안검색대를 거쳐 나왔다. 같이 일하는 어시스턴트가 제 몫의 조명 가방을 들어내린다는 게 그 옆에 있던 카메라 가방을 밀었다. 일 미터 남짓, 카메라 가방이 바닥으로 추락한 소리는 둔탁했다. 


이 카메라를 산 것이 4년 남짓인데, 추락은 처음이었다. 우선 카메라에게 미안했다. 별 일 없을 줄 알았는데 돌아와서 점검해 보니 사진에 세로 줄이 가득 생긴다. 아, 뭔가 문제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30만원 들여서 셔터 박스를 교체한 것이 불과 한 달도 안 됐는데, 카메라는 다시 병원행이다. 그게 지난 토요일.


전화가 왔다. 수리 견적 250만원. 가장 비싼 부품 중 하나인 COMS를 통째 갈아야 한단다. 아, 250만원이라니. 저렴한 카메라 몇 대를 구입할 돈이다. 250만원이라니. 어시는 제 잘못이니 자기가 부담하겠다고 하지만, 그럴 돈도 없는 걸 안다. 우선 받을 수 있는만큼 받고 나머지는 고스란히 내가 떠안아야 한다. 아, 250만원이라니.


겨우 돈 조금 모일까 말까 하던 통장을 다시 털어야 한다. 수금 밀린 곳에도 전화를 해서 좀 독촉을 해야겠다. 집 값 낼 날도 다가오고 작업실 임대료 낼 날도 다가온다. 이번엔 바꾸리라 다짐했던 자전거 페달과 내일이면 새로 출시될 아이폰도 물 건너간다. 이번엔 정말로 돈 모아서 집에 보내고 생색 좀 내어볼까 했더니 또 말짱 황이다.


쳇. 250만원이면 250만원이지. 얼른 털어야겠다. 없어서 당장 빚을 내야하는 형편도 아니고. 까짓 돈에 답답해지고 정신줄 놓는 꼴이 더 밉다.


그나저나, 250이 뉘집 애 이름은 아니잖나. 


아. 일 정말로 열심히 해야겠다.






2009.06.08 10:19


  새 스터디를 시작했다. 이번 스터디는 내가 꾸린 것이 아니고 기존에 있던 스터디에 참여했다. 꾸리고 이끄는 부담이 없으니 우선 편하다. 중문학을 전공하는 석박사 과정에 있는 분들이 모여서 발터 벤야민의 글들을 읽어나간다. 재미있다. 아는 것도 없는 녀석이 그 동안 사진 스터디며 미술사 스터디 꾸리며 쏟아내는 척을 하느라 힘들었는데, 들어보지도 못 했던 학자들의 이름도 나오고 비슷한데 다른 생각들과 말 섞을 수 있는 기회가 되니 참 좋다. 다들 공부를 일로 하는 분들이라서 나는 더 좋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공부는 내게 취미생활이니까 그들만큼 부담될 것도 없고 텍스트도 내 방식대로 읽어서 내가 욕심나는 문제제기만 한다. 그래도 사진찍으며 사는 지난 몇 년 동안 기어가듯 읽어둔 책들이 허투인 것 같지는 않아서, 대견하다. 첫 번째 시간에 나는 벤야민이 시도한 가치선형성을 부정하는 작업에 주목했고, 어제 두 번째 시간에는 선형적으로 전개되는 문장을 이미지적인 비선형적 문장으로 전환시키는 작업에 주목했다. 스터디 자료들을 잘 모아서 그냥 스쳐가는 공부가 되지 않도록 해야겠다.


  새로운 미학스터디를 준비한다. 여기저기 사람 구하는 글을 올렸더니 몇 명이 연락해 왔다. 작년에 꾸렸던 미술사 스터디는 재미는 있었지만 부족한 느낌이 많았다. 이번 스터디는 미술사가 아닌 미학사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이제까지 등장했던 미학과 관련된 논의를 개괄적인 수준에서 다루어 보고, 그 다음에는 1900년 이후의 미술사에 대해 보려고 한다. 박사생도 있고, 영어를 가르친다는 사람, 무용 전공하는 석사생도 있다. 이런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제대로 힘을 쓴다면 재미난 스터디가 되겠고, 자칫하면 참 얕은 책읽기가 되겠다. 어쨌든, 시작은 해 보아야겠다.


  지난주 촬영을 마치고 카메라가 추락했다. 테이블에서 짐을 내리던 내 조수가 카메라 가방을 쳐서 카메라는 구입 후 처음으로 1m 높이에서 떨어졌다. 집으로 돌아와 점검해보니 문제가 생겼다. 급하게 센터에 수리를 의뢰했는데 도대체 견적이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다. 저렴하게 가능하다면 어시 녀석이 돈을 지불하게 되겠지만, 최악의 경우로 간다면 막대한 비용을 가난한 중국 친구에게 전가할 수 없게 된다. 어시 녀석은 녀석대로 얼어서 저녁 먹는 동안 말도 한 마디 못 하고 주눅들어 있었다. 아, 아이폰도 사야 되고 자전거 페달도 클릿으로 바꾸려고 찜해두었는데, 어쩌면 카메라 수리비에 올인해야 하는 사태가 온다. 다음 촬영 전에 수리나 가능하길 빌어야겠다.


  



2009.05.29 23:15

영결식


  벗들은 바다 저 편에 있고

  내 것이 아닌 울음들은 너무 멀다

  나는 겨우 우는데

  부딪칠 곳 없는 곡 소리가

  갈 곳을 모른다.



  남한산성을 다시 꺼내 읽는다. 살아서 감당할 수 없는 치욕은 없다는, 모든 치욕을 마침내 감당하는 것이 삶이라는 김훈의 선언적 문장은 멋들어졌었으나, 이제 모르게 되었다. 살아서 감당할 치욕에 대해 다시 묻기 위해 책을 열었는데, 겨울 산성 안에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갖힌 왕의 모습이 시골 사저에서 마지막을 고립 속에 보내던 대통령의 모습과 자꾸만 겹쳐 보여서 문장마다에서 나는 운다.


  영결식을 지켜보던 내 앞 사람은 연신 어깨를 들썩이며 서럽게 울었다. 아직 무엇도 모르겠다고, 다만 미안해서 운다고 그는 말했다.





2009.05.29 17:15


에프상하이에 쓴 글.




자로가 석문에서 묵게 되었는데, 문지기가 물었다.

“어디에서 오셨소?”

자로가 말하였다.

“공씨 문하에서 왔습니다.”

“그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 일을 하는 사람 말인가?”


공자께서 위나라에서 경쇠를 두드리며 연주하고 계셨는데, 삼태기를 메고 공자의 집 문앞을 지나가던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마음에 미련이 남아 있구나. 경쇠를 두드리는 모습이여!”

조금 있다가 다시 말하였다.

“비루하구나. 땡땡거리는 소리여! 자기를 알아주지 않으면 그만둘 뿐이로다. 물이 깊으면 아래옷을 벗고 건너고 물이 얕으면 옷을 걷어올리고 건널 일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세상을 버리는 것은 과감하지만, 그런 일이야 어려울 게 없지.”


논어. 헌문 편 김형찬 역, 홍익출판



대통령께서 가셨습니다.

아침에 울고 오후에 사람들 만나서 웃고 밤에 울고 자고 일어나서 또 웁니다.


좋아하거나, 싫어했으면 좋겠습니다. 반대편에 선 사람들의 입장도 긍정하는 것이 관용이라고, 그런 것이 세상에 필요한 덕목이라고 배웠습니다. 속 좁은 저는 도저히 자칭 보수라고 말하는 저 친일수구꼴통들을 긍정할 수 없을 것 같지만,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 그래야 한다고 스스로 설득이라도 해 보겠습니다.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 보다 못 한 것은 무관심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사이트 대문이라도 며칠 닫아 걸고 국화라도 몇 송이 뿌려두고 싶지만, 여기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서 그렇게도 못 합니다. 어떤 사이트들은 정치와 무관하기를 스스로 바랍니다. 사진 사이트에서는 사진 이야기만 하자는 곳도 있고, 자전거 사이트는 자전거 이야기만 하면 되지 않냐고, 괜히 민감한 주제를 불러 와서 분란을 만들지 말라는 곳도 있습니다. 정치는, 분리될 수 있는 것도, 그렇게 되어서 마땅한 것도 아닙니다. 지난 10년의 경험이, 현재의 상황이 정당하지 않다고 일러주고 있습니다. 나는 이 사이트가 그런 침묵을 강요하는 곳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공자 할아버지는, 일생 동안 자신의 정치철학을 펼치기 위해 떠돌아 다녔습니다. 세상에 관여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적 수양에 힘쓰는 것이 더 낫다는 노장사상가들 앞에서, 공자 할아버지는 “사람과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어떻게 사람의 일에 무관심하겠는가?”라고 반문했습니다. 대통령의 사이트 이름은 ‘사람 사는 세상’이었습니다. 나 하나 열심히 살면, 그래서 나처럼 개개인이 다 열심히 살면 좋은 세상이 오겠지.라는 것은 어쩌면 순진한 생각입니다. 그렇게 침묵하는 국민들을 그들은 아주 쉽게 여길 겁니다. 컨테이너로 길을 막고 물대포를 쏘고 조금만 눈에 엇나가면 잡아 들입니다. 알고 있는 것으로, 옳다고 믿는 것으로써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려는 의지가 지금을 있게 했습니다. 이 땅을 지금에 닿게 해주었던 많은 사람들이, 쉽게 사는 방법을 몰라서 그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두 투사가 될 수는 없을 겁니다. 다만, 무관심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좋아하거나, 싫어했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의 죽음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온 몸을 던져서, 마지막 남은 한 줌으로 끝끝내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잠시라도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영원할 수는 없겠지만, 되도록이면 오래 그 분의 가치를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기득권에 맞서 싸운 분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세계에 당당하고 오로지 국민 앞에 고개 숙이던 분이었습니다. 당신의 어떤 고통보다도 주변 사람들이 상처받는 것을 못 견뎌 하신 분입니다. 마지막 남은 몸뚱이 하나로 남은 사람들에게 마지막 힘을 불어넣고 가신 분입니다. 그 미련함이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자라면서, 존경하는 인물을 묻는 질문에 한 번도 자신 있게 대답한 적이 없었고, 그런 내가 참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나는 2002년 이후로, 노무현을 존경한다고 말합니다. 이 땅에서 정말로 존경 할만한 정치인을 가질 수 있어서, 그리고 그런 정치인과 동시대를 살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잘 가십시오.


고마웠습니다.


정말로 미안합니다.




2009.05.29 17:10

십 육 미터는 살아서 닿을 수 없는 높이 같았다


  촬영 때문에 태호에 다녀왔다. 태호 강변에는 영산이라는 산이 있고, 산 중턱에는 팔 십 팔 미터 불상이 서서 세상을 내려보고 있다. 석가모니불이다. 십 육 미터라고 들었다. 계단 어디쯤에서 십 육 미터의 높이를 가늠해 보았다. 어림할 수 없었다. 아슬아슬한 높이였겠다. 어떤 각오.같은 것이 필요했겠다. 


반드시 죽어야 한다.

요행이라도 살아나서는 안 된다.


  십 육 미터의 높이는 그런 각오의 높이처럼 보였다. 반드시 죽기 위해, 마지막 남은 몸뚱아리로 최후의 응원을 보내기 위해 그 분은 두 주먹 꼭 쥐고 수직으로 내리꽃혔을 것이다. 팔 십 팔 미터는 사람의 높이가 아닌 것이고, 십 육 미터는 살아서 닿을 수 없는 높이 같았다.


  명복 같은 것은 빌지 않았다. 주제 넘게 누가 누구 명복을 빌겠는가. 저 땅에 가셔서도 이 땅의 복을 빌어 주실 분이다. 누가 빌어주지 않아도 그 땅에서 떵떵거리며 사실 분이다.


  걱정하는 벗들이 전화 걸어 주었다. 너무 서럽게 무너지지 말라고도 했고, 그래도 살자고도 했다. 그 뜻들이 고맙다. 걱정만큼, 같이 울고 싶었을 벗들의 마음도 알겠다.


  추모의 뜻으로 닫아두었던 사이트를 다시 연다. 이제부터 열심히 쓰겠다. 행동해야겠다. 건강한 분노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마음만 바른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몸으로 나올 때 세상이 호응해 올 것을 안다. 


  지켜주지 못 해서.





2009.05.23 20:56


블로그에 2009년 5월 14일 목요일에 쓴 글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고재종



그토록 흐르고도 흐를 것이 있어서 강은

우리에게 늘 면면한 희망으로 흐르던가.

삶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듯

굽이굽이 굽이치다 끊기다

다시 온몸을 세차게 뒤틀던 강은 거기

아침 햇살에 샛노란 숭어가 튀어오르게도

했었지. 무언가 다 놓쳐버리고

문득 황황해하듯 홀로 강둑에 선 오늘,

꼭 가뭄 때문만도 아니게 강은 자꾸 야위고

저기 하상을 가득 채운 갈대숲의

갈대잎은 시퍼렇게 치솟아오르며

무어라 무어라고 마구 소리친다. 그러니까

우리 정녕 강길을 따라 거닐며

그 윤기나는 머리칼 치렁치렁 날리던

날들은 기어이, 기어이는 오지 않아서

강물에 뱉은 쓴 약의 시간들은 저기 저렇게

새까만 암죽으로 끓어서 강줄기를 막는

것인가. 우리가 강으로 흐르고

강이 우리에게로 흐르던 그 비밀한 자리에

반짝반짝 부서지던 햇살의 조각들이여,

삶은 강변 미루나무 잎새들의 파닥거림과

저 모래톱에서 씹던 단물 빠진 수수깡 사이의

이제 더는 안 들리는 물새의 노래와도 같더라.

흐르는 강물, 큰물이라도 좀 졌으면

가슴 꽉 막힌 그 무엇을 시원하게

쓸어버리며 흐를 강물이 시방 가르치는 건

소소소 갈대잎 우는 소리 가득한 세월이거니

언뜻 스치는 바람 한자락에도

심금 다잡을 수 없는 다잡을 수 없는 떨림이여!

오늘도 강변에 고추멍석이 널리고

작은 패랭이꽃이 흔들릴 때

그나마 실낱 같은 흰줄기를 뚫으며 흐르는

강물도 저렇게 그리움으로 야위었다는 것인가.




말이 너무 많아서 쓰러질 듯이 지쳤을 때 시 읽는다. 오랜만이다. 오랜만에 읽으니, 전에 안 보이던 것도 보인다. 아마 그 때는 보았는데 지금은 안 보이는 것도 있을 터이다. 생각 없이 꺼낸 시집 안에는 내가 한국을 떠나오던 무렵에 고은이가 썼던 편지가 끼워져 있다. 전에도 몇 번 보았던 것 같은데, 어쩐지 이 시집 사이가 그 편지의 자리인 듯해서 옮겨두지 않았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 여전히 가장 위태롭고 단단한 사람쯤 되는 고은이는 아마 그 녀석의 속내를 닮게 될 딸아이와 함께 영국에 산다. 편지 속에서,


"당신도, 나도, 건승합시다. 최소한, 비겁하게, 가고 싶은 길에서 가야할 길에서 도망치지는 않도록 합시다. 재회 때까지 건강하세요."라고 쓰고 있다.


이번 작업이 끝나면, 어디 짧은 여행이라도 다녀와야겠다. 두 바퀴 자전거를 타고. 






2009.05.23 20:55


블로그에 2009년 5월 9일 토요일에 쓴 글



아침에 복단대에 갔다. 잡지 준비하는 친구들 인터뷰가 있었다. 며칠 바빠서 인터뷰 질문도 제대로 정리를 못 한 터라, 붐비는 아침 시간도 피하고 질문지도 정리할 생각으로 일찍 나섰다. 도착해 보니 약속 시간까지는 한 시간이 남았다. 정문 안쪽에 큰 모택동 동상이 만드는 그늘에 앉아 필요한 것들을 정리하며 쉬었다. 조금쯤 졸고 싶기도 했는데 아침 맑은 바람이 자꾸 잠을 깨웠다. 눈감고 있어도 잠들지 못 했다. 


모택동 동상이 만드는 그늘은 컸다. 나 말고도 두어 명이 충분한 제 공간을 확보하고 앉아서 신문도 보고 귀도 후비고 사람도 기다렸다. 오늘의 중국이, 모택동의 그늘에서 쉬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2009.05.23 20:55


블로그에 2009년 5월 5일 화요일에 쓴 글



유학생에 대한 책임. 내가 대학생활을 통해 많이 성장했으니, 그런 기회가 상대적으로 드문 이 곳 유학생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어떤 막연한 책임감 같은 것. 건너 건너 알게된 유학생들이 잡지를 만들겠다고 한다. 그 중에 깨어있다고 스스로 아는 몇몇이 모여서 자신들이 속한 유학생 사회에 어떤 자극을 주고 싶다고 뜻을 모았다. 좋은 뜻으로 뭉쳤으니 잘 하라고 그저 마음만 보태며 있었는데, 얼마 전에 만났을 때 처음으로 걱정이 됐다. 든든하게만 보이던 친구였는데, 지친 모습이 안타까웠고 저러다가 제풀에 쓰러지면 그 좋은 시도가 빛을 보지 못 하고 무너지게 될 테고 그렇게 되면 그런 시도를 했던 팀에게도 아쉬움으로 남겠지만 그것보다 큰 것은 그 시도를 통해 어쩌면 자극을 받고 스스로의 가능성을 알게 될 더 많은 유학생들이 안타까울 것이다. 강건너 불구경이나 하고 뒷방 늙은이처럼 괜히 잔소리나 보태려던 마음을 바꿔서 조금 나서서 돕기로 했다.


발간 일정을 앞둔 잡지라고 하기에는 준비라고 해 둔 것이 없었다. 우선 급한대로 다시 회의를 통해 구성을 잡고 아는 잡지사로 가서 편집에 필요한 디자인툴을 얻어왔다.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으니 툴에 대한 안내 서적도 거의 빼앗듯이 가져왔다. 잡지의 핵심이 되는 디자인 서식도 얻어 왔다. 선듯 내어준 마음이 고맙다. 팔자에 없는 편집 디자인을 공부하게 생겼다. 모자란 기사를 몇 개 써주기로 하고 기존 원고에 대한 교정 이상의 수정 작업을 해주기로 했다.


학생들이 하는 작업에 끼어드는 것이 못내 못 할 짓을 하는 것 같다. 그 때는 나도 그랬을까? 하는 것마다 서툴러 보이고 온갖 틈만 보인다. 그런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의 나도 만들어졌을 테니까 그들의 지금도 긍정하는 것이 맞겠지만 그러기엔 그들이 잡아둔 일정은 촉박하고 해 놓은 것은 성글다. 급한 마음으로 몰아치고 안 되는 부분은 내가 떠안기로 한다. 


마음이 불편하다. 내 부족함을 내가 잘 아는데 그 부족한 모습으로 저 당당한 아이들을 몰아치고 있으니 무엇인가 속이는 기분이고, 회의 끝내고 아이들 돌려보내고 나면 방 안에는 쇳소리만 여운처럼 남고 녹슬어가는 쇳조각 비린내만 난다. 급한 마음에 말이 너무 많아서 미처 생각으로 채우지 못 한 성근 말들이 난무한다. 쫓기는 마음은 저들의 상황을 깊이 헤아리지 못 하고 내 기준에 맞추어서 닥달만 한다. 내가 관여하기 훨씬 전부터 저들끼리 공들여 만든 결과물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자꾸만 그들 기를 죽이는 것 같아서 내 말에도 자신이 없다. 그들 노력의 결과로 탄생한 잡지에 대한 자부심 대신, 부족한 것들만 모여서 어설픈 미완성 밖에 얻어낸 것이 없다는 감상을 갖게 할까 무섭다.


친구들, 선생님 생각이 간절하다. 내 부족함을 바닥까지 깨부수며 범접하기 어려운 높이의 지식으로 강의해주시던 교수님들이 간절하다. 선생님들의 지식에 대한 의심 없이 참 편하게 많은 것을 배웠다. 의심 따위 우습다는 듯, 이미 수 많은 의심에 대한 승전 기록을 보여주시듯 선생님들의 배움은 깊고 단단했다. 그 말본새 하나하나, 그 몸가짐 하나하나는 또 얼마나 멋드러졌던가. 

몇 명만 뭉쳐두면 이 정도 잡지쯤은 놀이처럼 해치우고 시원하게 맥주 한 잔 마시러 갈 수 있는 친구들이 간절하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못 해낼 것이 없어 보였다. 서로가 서로의 능력에 대해 신뢰했고, 자신들의 자리에서 언제나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들고 나타나는 그들의 등장은 참 든든했었다. 함께 모일 때 산술적 합 이상의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했고, 그들은 한 번도 기대를 배신한 적이 없었다. 


며칠의 취재와 며칠의 디자인 기간이 끝나면, 어쨌든 잡지라는 형태가 나올 것이다. 이번 작업이 끝나면 나는 팽.당해야 한다. 내가 팀에 있는 게 이 친구들에게 별로 이로운 일이 아닐 듯하다. 대학생으로 팀을 꾸려 그들의 내부적 성장과 외부에 대한 자극을 의도한 것이니까, 그렇게 가게 해야겠다. 그러니까 이번 한 번에 나는 되도록 많은 것을 보여주어야겠다. 다음 번 작업에는 그들이 더 나은 곳에 닿을 수 있도록 하고, 무엇보다 겨우 나 정도의 수준에 만족하지 말기를 당부해야겠다. 든든하고 아름다웠던, 일당백 친구들의 전설을 전해주어야겠다. 깊은 바다같았던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전해야겠다.


작업을 진행할 수록 내 부족함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번 일 끝나면 입 좀 닫아야겠다. 말 좀 줄이고, 부족한 내 공부나 좀 더 채워야겠다. 지난 3월부터 시작한 에프상하이 사진스터디도 슬슬 끝이 보이니까, 사이트 활동도 좀 줄이고 새로 책공부하는 작은 모임이나 꾸려 보아야겠다. 사회인의 신분으로 학생들 작업에 끼어드는 것이 어색했는데, 생각해 보니 내 마음은 한 번도 학생이 아닌 적이 없었다. 선생님 따라가다가 혼자 길 잃고 우는 학생이다. 





2009.05.23 20:54


블로그에 2009년 4월 27일 월요일에 쓴 글



베이스가 좋아진다. 요요마의 첼로 정도에서 느끼던 호감은 게리 카의 베이스 연주쯤으로 더 내려갔다. 저음은 고음보다 층간 소음이 잘 전해진다. 아파트에서 듣기에는 신경이 쓰이지만, 그래도 밤에 듣는 베이스 음악은 심장에 바로 닿아서 심장박동이 음에 반응한다. 아랫집 윗집에 조금 미안하지만.


악기 하나 배워야겠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있었는데, 그건 맘처럼 쉬운 게 아니다.


때가 되어서 악기를 배우게 될 때, 콘트라베이스나 안 되면 더블 베이스라도 배워야겠다. 더블 베이스보다 좀 더 큰게 콘트라베이스인가? 단지 그 차인가? 더 크면 음이 더 낮은가? 뭐 어쨌든, 악기는 정한 셈이다. 활로 켜는 것보다는 손가락으로 튕기는 게 더 나을 듯. 도구를 하나라도 덜 쓰니 다루기에 더 쉽지 않을까?


가족 재즈밴드라도 만들어야지. 근데, 온 가족이 다 베이스를 좋아하면 어쩌지? 













블로그에 2009년 4월 23일 목요일에 쓴 글



유난히 시계視界가 좋은 날이 있다. 오후 늦은 낮잠을 자고 일어난 오늘 저녁이 그렇다. 창 밖은 마침 어두워지는 중이었는데, 아주 멀리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작은 베란다를 실내로 끌어들여 놓은 내 방의 창문은 서쪽을 향해 둥글게 나있는데, 서쪽으로는 아파트 단지와 그 너머 낮은 건물들의 꼭대기가 이어져서 지상과 하늘의 경계를 만든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멀리 중산공원에 있는 롱즈멍 호텔의 야간조명이 보인다. 이렇게 시계가 좋은 날은 한 달에 잘 해야 한 번 정도 밖에 없다. 이런 날은 건물의 외관을 찍기에 좋은 날이다. 뿌연 날씨에 찍고 이 만하면 됐다고 자위하며 돌아선 건물들이 미련처럼 남아서 떠오른다. 마침 대기는 건조하고 하늘은 흐리고 낮아서 내가 좋아하는 날씨가 되었다. 이 날씨에 바람까지 세차게 불었다면, 그래서 저 하늘 너머에서 곧 태풍이라도 올 것 같은 날씨였다면 내 마음은 미리 날았겠다. 


퇴고를 시작한 원고는 진도가 잘 안 나간다. 문장을 마련하지 못 한 기억을 내용만으로 엮으려니까 그렇다. 내 글쓰기에 대해 생각할 때, 내 문장은 빠질 것이 없지만 내 기억력은 선택과 생략에 능하다. 그래서 닥친 상황에 대한 문장은 참 좋은 것을 알겠는데, 지나간 일에 대해 기억해 쓰려고 하면 문장은 맛도 안 나고 꼭 필요한 요점 외에 주변 상황들의 많은 부분을 생략해 버려서 쓰고 돌아본 문장은 문장이라고 부르기 부끄럽다. 내 다음 책은 아마 길에서 쓰게 될 것이다. 기억이 지나간 일들을 선택하고 선택받지 못한 이야기들을 지워버리기 전에, 싱싱한 비린내 나는 문장들을 묶어 내는 책이 될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쓰게 될지는 모르겠다만.


월드비전에 후원신청을 한 것이 한 달 가까웠는데, 오늘에야 이메일을 통해 내가 후원할 아이에 관한 내용을 받았다. 아마 신청할 때 쓴 한국 주소로 우편물로 발송되었던 모양이다. 이메일을 통해 정보를 받겠다는 문의 메일을 보내니 이제야 보내준다. 내가 도울 아이는 말리.에 사는 토고.라는 이름을 가진 일곱 살 남자 아이다. 말리가 어디에 있는 곳인지. 피부색이 검고, 눈이 크다. 사진 좀 잘 찍지 그랬나. 흙벽 앞에 세우고서, "자, 사진 찍자. 예쁘게 찍어야 사람들이 널 도와줄 거야. 말 잘 들어야지."하며 카메라가 폭력을 휘두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아이는 겁에 질려서, 팔려나가는 짐승의 눈빛으로, 자신이 받는 도움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도 모르는 표정으로 사진 속에 있다. 때묻은 푸른색 티셔츠를 입었다. 축구를 좋아한다고 쓰여 있고, 남자 형제 네 명에 보통의 건강상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름보다 윗줄에 아동 번호.라는 제목으로 이 아이는 몇 개의 숫자로 그 존재를 대신하고 있다.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모르겠구나. 얼마의 돈이 네 삶을 구하지는 못 할 듯한데. 내가 마음으로 편지를 쓴다고 해야 네가 그 뜻을 받아들이기도 아직 어린데. 힘 앞에 주눅 든 네 표정 앞에 나는 주눅 든다. 어쨌든, 한 아이의 눈빛 덕분에 나는 열심히 제대로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서로 돕고 살자. 나도 힘이 들 때는, 버텨야 할 이유를 생각하마. 부족한 내가 기꺼이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잊지 않으마. 나라도 세상에 있어서 어느 누구에게는 의지가 되니 그래도 사는 것이 낫다고 믿으마.


유난히 정신이 맑은 밤이 있다. 오후 늦은 낮잠을 자고 일어난 오늘 밤이 그렇다. 어제 늦게 잠든 덕분에 아침에는 늦잠을 잤고, 덕분에 요 며칠 새벽마다 하던 원고 퇴고를 오늘은 못 했다. 한 번 엉킨 일과는 계속 이어졌는데, 마침 별다른 일정도 할 일도 없었던 하루는 무료하게 갔다. 인터넷으로 영화도 보고 한국 쇼도 보면서 밝은 날을 보냈다. 며칠 분주하고 단단하게 살았던 뿌듯함으로 오늘 하루의 나태함 정도는 덮어도 좋은 것이라고 스스로 다독인다. 이렇게 정신이 맑으니까, 오늘은 편지라도 써야 하나. 어제 혜림이가 보내준 히긴즈 트리오라는 재즈밴드의 음악을 씨디로 구워놓고 아직 듣지 않았는데, 아랫집 윗집에게 조금 미안하기는 하지만 다 늦은 밤에라도 들어 보아야겠다. 부탁받은 승우 형 렌즈도 얼른 팔아줘야겠고, 허락의 전화를 해 준 승민씨 강의도 짜 보아야겠다.


조금 더 경쾌하게, 리듬을 타며 걷자. 다시 못 올 봄이지 않나. 






2009.05.23 20:53


블로그에 2009년 4월 21일 화요일에 쓴 글



1-2 



시간은 빨리 흘렀다. 1년 반을 예상하고 온 길이었다. 1년의 교환학생 과정을 보내야 했고, 그 전에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최소한의 중국어 실력을 확보하기 위해 한 학기 먼저 와서 따로 어학연수 과정을 듣기로 했다. 시간의 끝이 정해지면 남은 시간의 크기가 작아 보인다. 이 넓은 땅을 이해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배워가기에 일 년 육 개월의 시간은 턱없이 모자라 보였다. 어학반의 수업은 오전과 오후 수업이 하루씩 번갈아 있어서 하루 중의 반나절은 마땅히 할 것이 없었고 학교 바깥은 끝 간 데를 모를 신천지였다. 카메라 한 대와 지도 한 장, 나침반 하나를 챙겨서 틈 날 때마다 도시를 채집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도시는 거대했다. 지도 속에는 도시를 관통하는 강과 길이 섞여 있었다. 그 사이로 지하철과 버스 노선이 지도 속의 점들을 잇고 있다. 그 연결은 가늘어서 아슬아슬해 보였다. 2차원의 평면 속에 면적과 위치만으로 존재하는 그 곳에 무엇이 있는지는 직접 가 보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학교가 있던 곳은 새롭게 도심권이 형성되는 쉬자후이 지역이었고, 그 곳에서 화하이루를 따라 버스를 타면 온갖 백화점들이 늘어선 길을 지나 상하이의 몇 안 되는 전근대 건축물 예원의 서쪽 끝에서 버스는 멈춘다. 골동품 시장과 귀뚜라미 시장을 지나고 남방 정원의 흔적을 본 후에는 더 동쪽으로 걸어서 황포강의 야경이 유명한 와이탄에 닿거나 북쪽으로 걸어서 상하이의 가장 번화한 거리 난징루로 갈 수도 있다. 




이틀 썼는데, 몇 줄 안 되네. 이렇게라도 해야 얼른 수정이라도 할 듯. 







2009.05.23 20:52


블로그에 2009년 4월에 쓴 글



속 깊은 친구 몇 명을 가깝게 두고 있다는 것이 참 복 된 일인 것을 알겠다. 한국을 떠나 살면서 변한 것 중에 한 가지는 친구의 범위를 넓게 잡은 것이다. 형, 누나, 동생, 선배, 후배 등으로 나누어 갈래 지었던 사람들이, 사실은 그냥 친구였다고 이제 안다. 한국어의 존칭은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는 장점이 있지만, 관계를 서열화하는 단점도 있다. 몇 살 터울 정도는 그냥 친구로 좋다. 사실 나이라는 것을 따져묻는 것도 서열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한국인들에게서 특히 드러나는 모습이다. 좋은 사람들 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이 사실인 듯하다. 나이를 잊고 싶은데, 대충 그렇게 사는 것도 같은데, 나 혼자 잊는다고 잊어지는 게 아니다. 


때로 멘토가 되고, 때로 쉴 곳이 되고, 또 언제나 응원을 받을 수 있는 친구들의 존재는 축복이다. 내가 갖고 있는 복잡 다단한 문제들도 나를 아는 친구들의 입장에서 보면 단순해 보인다. 내 밖에서 나를 나로서 보아주는 그들이 있어서 가끔 벽에 부딪칠 때 그들을 생각하고, 그들은 내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훌륭한 답을 들고 웃으면서 내게 온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내가 나로서 오롯하게 있을 수 있는 응원이고 나다운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믿음이다.


어머니는 최근 몇 년 동안 많이 답답해 하신다. 그 때쯤의 여인이 한 번쯤 겪는다는 주부우울증인가 싶다가도, 그 증상을 보면 안타깝기는 어쩔 수 없다. 어머니께 내 좋은 친구들같은 친구들이 단 몇 명만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아버지는 젊어서 이루신 것들에 기대어 지금도 세상을 호령하며 지내신다. 이제 좀 더 낮고 부드러워지셔도 좋을 듯한데 당신 자신은 아직 그럴 뜻이 없으신 모양이다. 아버지께 멘토가 되어줄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몇 있었다면, 그래서 그 친구의 말이라면 온 마음을 열어서 듣는 아버지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친구들의 기대를 져버리지 말아야겠다. 그들에게 받은 힘으로 열심히 아름답게 살아야겠다. 힘들면 가서 기대고, 또 내가 잘 자라서 그들에게 꼭 같은 힘이 되어 주어야겠다. 그대들이 내게 얼마나 귀한 사람들인지, 알게 해야겠다. 






2009.05.23 20:51


블로그에 2009년 4월 19일 일요일에 쓴 글



1-1 



1. 맹인 연주자 앞에서 사진을 묻다.


바람이 차다. 두어 번의 여행으로 한국보다 따뜻한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겨울과 봄의 경계에 있는 날씨는 방심하기에 딱 좋을 만큼의 추위다. 한국의 추위가 정면으로 몰아쳐오는 것이었다면 이 곳의 추위는 바닥으로 낮게 깔려서 온다. 봄이 코앞인 것 같아서 한 낮의 느낌은 겨울을 이미 지나 보낸 듯한데 몸의 아래에서부터 조금씩 덤벼오는 추위는 스며들 듯이 온 몸을 감았다. 2월의 얇고 낮은 추위가 바다 건너 온 유학생을 처음 맞았다.

유학원에서 나온 가이드를 따라 짐짝처럼 실려 한 학기 동안 중국어를 배울 학교로 간다. 할 줄 아는 말이라고 해야 한 줌이 채 되지 않고, 가이드가 없다면 국제 미아 되기 딱이니 짐짝보다 나을 것도 없는 셈이다. 몇 장의 뜻 모를 종이에 이름을 쓰고 몇 권의 책을 정신 없이 받았다. 수속이 끝났다.


역할을 다한 가이드는 돌아갔다. 임시숙소로 배정 받은 방은 큰 길가에 있었다. 룸메이트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친구였다. 인사는 어색했다. 겨우 며칠 동안의 인연일 것을 서로 알았다. 짧게 인사하고, 룸메이트는 다른 수속을 위해 나가고, 해가 지고, 방은 넓었고, 방을 가득 채운 공기의 질감은 낯설었다. 이제, 혼자가 되었다. 시작은 언제나 무서운 것이다. 내 앞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고, 내가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확신도 없는 것이다. 상황이 내 뜻대로 움직여 준다는 보장도 없고,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내가 작정한 목적지에 가 닿으리라는 기대는 말 그대로 기대인 것이다. 이제껏 지나온 많은 시작들을 생각하며 곧 익숙해 질 것이라고 다독여 보지만 그래도 공중에 뜬 마음은 좀처럼 낯선 땅에 내려올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낯선 악기 소리가 산란한 마음을 깨웠다. 소리는 얇고 낮았다. 도로변에서 출발한 소리는 온통 비어서 막막한 공간 속으로 이른 봄 추위처럼 낮게 왔다. 생각해 보면, 특별히 인상적인 소리는 아니었다. 다만 그 순간에 공간은 너무 낯설고 넓었고 긴 저녁 시간 앞에서 나는 무엇이든 해야 했다. 카메라를 들고 소리를 따라갔다. 


맹인 할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차들을 등지고 앉아 얼후를 연주하고 계셨다. 중국의 전통 악기 얼후는 뱀가죽으로 덮은 울림통에 두 줄을 묶어 활로 켜서 소리를 낸다. 소리의 질감은 듣는 사람마다 다른 것이지만 이 십 수 년 만에 처음으로 긴 외국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 제법 어울렸다. 할아버지의 반대편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한참을 들었다. 저 소리에라도 동화될 수 있다면 적어도 혼자는 아닐 것이다. 할아버지의 등 뒤로 자동차의 불빛들이 흐르듯이 가고, 할아버지와 나 사이로 행인들이 지나갔다. 생경한 풍경이다. 사람들의 옷차림, 도로를 달리는 차들의 모습, 네온 사인 속에 들어 앉은 글씨들, 사람들이 지나며 내는 소리, 바람 속에 섞인 냄새. 무엇 하나 낯설지 않은 것이 없다. 손에 익은 카메라 하나만 겨우 익숙하다. 셔터를 만지작거리고 렌즈를 괜히 돌려본다. 할아버지 앞에 놓인 그릇에 동전 하나를 떨어트리고, 물었다.


“할아버지, 저는 여기 학교에 있는 유학생인데요.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보일 듯 말 듯, 그러나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한 줌도 되지 않는 단어로 대충 얽어낸 문장이 과연 제대로 된 것이었는지, 내 질문이 과연 정확한 것인지, 할아버지는 내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신 것인지, 그리고 내 요청에 대한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 것인지 아무 것도 확실한 것은 없었다. 단지 단어의 부족함 때문은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사람을 보여주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는 느낌은 묘했다. 맹인이 사진에 대해 갖는 감상은 어떤 것일까? 보이지 않는 세상을 포착해 액자에 담아 둔 장면은, 보이는 것과 떨어져 사는 사람에게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리고 내가 사진을 찍는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 할 그 앞에서 허락을 받는 나는 또 무엇인가? 멀찍한 곳에 떨어져 앉아서 최대한 작게 몸을 웅크리고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상하이, 긴 여행의 첫 사진이다. 






2009.05.23 20:51


블로그에 2009년 4월에 쓴 글



1. 맹인 연주자 앞에서 사진을 묻다


2. 옥탑방 작업실에 사는 물고기


3. 예술가, 그 발칙한 이름


4. 강, 도시의 시작


5. 낡은 가을 오후의 산책


6. 상하이를 상하이답게 하기 


7. 즈멍의 골목길


8. 여행, 길의 끝에서







시작합니다. 






2009.05.23 20:50


블로그에 2009년 4월 18일 토요일에 쓴 글



왼쪽 손바닥이 나갔다. 어제 운동 다녀와서 제법 큰 물집이 잡혔다. 일 때문에 밀려서 겨우 열흘 만에 운동을 갔더니 겨우 자리잡기 시작했던 손바닥 굳은살이 그 사이 풀려나고 있었던 모양이고, 지난 운동 때 깨먹은 죽도 때문에 새 죽도로 바꿨더니 손잡이 부분이 아직 거칠었던 모양이다. 이번 물집은 제법 커서, 가만 두면 다음 운동 때 더 문제가 될 것 같았다. 얼른 새 살 돋으라고 물집 잡힌 부분을 걷어냈다. 쓰라린다. 샴푸할 때 내가 왼손 바닥에 샴푸를 받는다는 걸 오늘 아침에 처음 알았다. 한 손으로 머리 감고 한 손으로 로션 바르니 왼손 바닥이 막 그립다. 키보드에 손을 얹을 때도 왼손 바닥이 아랫부분에 닿는다는 걸 또 처음 알았다. 새 살이 돋고, 다시 벗겨지는 일을 두어 번 더 반복해야 손바닥은 단단하게 버텨둘 거다. 그 동안에는 조심해서 써야 한다. 책 속에서, 모리 교수는 상처입은 제자에게 어서 벗어나려고 하지 말고 상처의 바닥까지 내려가라고 말한다. 바닥에 닿으면 자연스럽게 바닥을 박차고 오를 수 있으니까, 애써 바둥거리지 말라고 일러 주신다. 나는 마음 급한 어린이니까, 얼른 떼어내고 새 살 돋으라고 아직 덜 아문 피부를 공기 중에 드러내고 만다. 이 정도는 버틸 만하다고 마냥 혼자 믿으면서.


아침에 인터넷에서 본 글 중에, 낙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낙타는 사람과 함께 사막을 건널 때, 힘든 내색을 잘 안 한다고 한다. 묵묵히 걷고, 든든하게 걷는다고 한다. 그러다가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때가 오면,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죽는다고 했다. 그리고 글은, 그런 낙타의 행위를 배신이라고 쓰고 있었다. 낙타 혼자 가는 길이었다면 그런 묵묵한 실천이 미덕이겠지만, 다른 존재와 동행하는 길이기 때문에, 배신이라고 했다. 일방적 헌신이 미덕이 될 수 없는 관계가 동행이겠구나 싶었다. 내어줄 부분을 내어주고 받아줄 부분을 받아주는 연습도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모나님은 언젠가 내게 그런 충고를 했는데, 상대방의 호의를 받아주는 것도 연습해야 한다고 했다. 신세 지는 일에 서툰 반군은 밉지 않게 부탁하고 또 신세 지는 사람들 보면 그것도 참 좋은 재능인 듯해서 부럽다.


생각에 머물러 있던 일 몇 개를 진행시켜야겠다는 다짐. 더 미룰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일에 떠밀리고 쫓기기 전에, 내가 일을 몰아 가야한다는 다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답답함을 애써 지우고, 가능한 상황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한다는 자각. 그리고 아주 많이 늦기 전에, 꼭 야구장 응원을 가 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 







2009.05.23 20:48


블로그에 2009년 4월 10일 금요일에 쓴 글



바다에 다녀왔다. 바다의 등장은 갑작스러웠다.


한 달쯤 걸려서 이상에게 보낼 답장을 다 썼다. 이상은 편지마다에 책갈피를 넣어서 보내주었는데, 나는 게으르고 또 편지 봉투에 넣을 게 마땅찮아서 겨우 명함 한 장 넣었다. 명함이라... 이상이라면 명함을 명함 아니게 받아 줄 것을 안다. 편지 안에서, 몇 년째 아무 곳에도 하지 않던 칼 이야기를 다시 했다. 잊은 줄 알았다. 칼은 더 이상 어떤 화두도 아닌 줄 알았다. 내가 여전히 한 자루 칼에 기대어 있고 끝내 닿지 못 할 곳을 향해 계속 한 자루 칼을 갈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았다. 내 안으로 가지런하기, 온 몸으로 낮아지기. 제법 좋은 칼을 갈아 가고 있구나 싶다.


나보다 어리지만 내 존경을 받기에 충분한 경훈이와는 어제 저녁을 함께 먹었다. 녀석은 와이프와 함께 먹을 술국을 아마도 삥뜯어서 갖고 온 듯하다. 같이 먹자고 소주 한 병도 갖고 왔는데, 나는 겨우 물잔으로 회답했다. 아깝다. 바로 몇 시간 전에 나는 중고 씨디 두 장을 사고, 편의점 와인 코너 앞에서 얼마나 망설였던가. 꼭 한 잔 하고 싶었는데, 혼자 먹으면 일 년을 먹을 것 같은 와인 앞에서 아주 오랜만에 한참 고민했다. 녀석이 그렇게 올 줄 알았다만 한 병 질러 놓을 것을. 술 한 잔이 참 고픈 날. 내가 그런 생각을 했었다는 사실도 가물한,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존재마다의 탄생 때마다 저 끝에서 달려와 맺히고 폭발하는 우주와 우주의 맥박 같은 갈등들. 아,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제법 몇 년 떠벌리기도 했었는데.


숫자로 따지면 분명하게 어린 효빈이는, 도대체 어떤 시간을 거쳐온 것인지 가끔씩 던지는 한 마디 속에 막강한 내공을 언듯 보이고는 한다. 저 나이에 저런 내공이라면 도대체 저 아이가 내 나이쯤 되면 어떤 말들을 하게 될까? 기대가 된다. 효빈이에게 들려준 협곡의 양편에 앉은 두 사람의 이야기는 정말 십 년은 된 것이다. 


우연찮게 지난 생각의 토막들을 불러오게 되는 요즘이다. 그 때쯤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기특하기도 하고 또 치기 어린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고, 그 생각의 바탕에서 이렇게 걸어온 지금의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다. 나는, 자랐다.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문장을 써야 한다. 감정을 다만 소비시키고 마는 문장은 배설 외에 무엇도 안 된다. 그러면서 이런 문장들이나 쓰다니. 



2009.05.23 20:48


블로그에 2009년 4월 5일 일요일에 쓴 글



프랑스가 자랑하는 정신 톨레랑스 tolerance는 한국에서 '관용'이라는 단어로 번역된다.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정신.


톨레랑스의 정신은 긍정.에 가까운 것인가 싶다. 나와 다른 방식을 내치지 않고, 그것이 너의 방식이라고 긍정하는 일. 타인의 방식에 동의하고 함께 하지 않아도,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간격을 다만 긍정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배운다. 오래도록, 모든 것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럴 수 있다고 고집을 부렸다. 같은 민족이, 같은 피붙이가, 또 같은 공동체 안에서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가슴으로 안 것은 최근이었던가? 아니면 그 보다는 좀 더 일렀던가? 


물론, 노력으로 되지 않는 것들도 여전하다. 나는 누가 뭐래도, 아무래도 이명박 일당을 긍정하는 일은 불가능이라고 여긴다. 개념 없는 것들 하고는.


월요일 아침부터 또 이러고 있다.

작업이나 하자. 




2009.05.23 20:47


블로그에 2009년 4월에 쓴 글



밀린 일들 하겠다고 작정한 일요일이다. 늦잠 약간, 청소 대충, 낮잠 조금 많이, 옥수수 삶아 먹고, 대충 빈둥거리다 보니 해 떨어졌다. 방해 안 될 음악 골라 두고 제법 밀린 메일들 답장을 부지런히 쓰니 밤이 늦었다. 밀린 일들은?


이상.이 보내준 편지 두 통의 무게감이 좋다. 나는 아직 첫 번째 답장을 쓰는 중인데 두 번째 편지가 왔다. 반갑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공들인 답장을 해야겠다. 어쩌나, 두어 장은 수첩에, 두어 장은 메모지에 써 두었는데. 봉투에라도 공을 들일까. 아는 사람들의 주소를 물어두어야겠다. 뭐 게으른 반군이니까, 게다가 편지는 공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거니까 그리 쉽게 쓰지는 못 하겠지만, 그래도 물어 두었다가 이 사무치는 봄에 사방으로 편지 날려야겠다. 


결국에는 혼자 서는 것이니까, 게다가 나는 일반적.이라는 수식과는 조금 다른 모양으로 살게 되어버렸으니까, 나이.라는 게 별로 걸릴 게 없다.만, 일단 관계라는 걸 두고 보면 무시하고 지내던 숫자가 도드라진다. 더구나 존대가 분명한 한국인의 삶 속에서라면 더더욱. 부끄럽게 채워온 것 같진 않은데, 딱히 거창하게 채운 것도 없는 나이가 되었다. 나는 아직 사방이 거칠고, 나는 아직 무엇이든 덤벼서 깨질 수 있을 듯한데, 사방에서 이제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시선들이 무겁다. 어쩌나. 결국엔 혼자이겠지만, 내 시작은 혼자가 아니었으니 멋대로 살 수도 없는 노릇. 기꺼이 어깨에 짊어질 주변의 무게들. 거 참, 오늘 문장들 지저분하네.


퇴고.를 시작해야겠다. 더 미룰 수 없으니까, 제법 그럴듯한 수정안도 나왔으니까, 이제 엉덩이 좀 무겁게 해서, 하루에 몇 시간씩은 꼬박꼬박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만들어야겠다. 


밤이 늦었으니, 이제 일 좀 해야겠다. 



2009.05.21 08:21

아침에


  어제는 늦잠을 잤다. 며칠 일 때문에 바빠서 잠을 제대로 못 잤고, 제대로 못 잔 잠 본전 생각이 나서 푹 잤다. 그리고 낮잠도 길게 잤다. 오후 미팅만 아니었다면 종일 잤을 거다. 그리고 밤에도 일찍 잠들었다. 오늘 새벽의 깔끔함은 그렇게 이틀을 공들인 결과다.


  일 때문에 벌려두었던 책상 하나를 아침에 접었다. 지난주 스터디 때 사람들이 풀어놓고 간 종이컵들도 치웠다. 거실이 조금 넓어졌다. 


  해야 할 일들이 많다. 3월에 시작한 사진스터디는 이달 말이면 끝난다. 몇 명 작게라도 키워낸 것 같아서 제법 뿌듯하다. 동호회 전시 준비로 에프상하이는 새롭게 분주하겠지만, 매주 토요일마다 나를 묶어두던 일정은 이제 없어진다. 도와주던 유학생 잡지도 거의 되었다. 앞뒤 표지사진부터 내부 이미지 사진까지 찍었고, 편집과 디자인까지 잡지의 모든 부분에 내 손때가 묻었다. 유학생 잡지여야 하니까, 내 이름은 어디에도 안 담기겠지만, 내가 밤새서 내가 만든 녀석이라고, 여기라도 자랑질을 해야겠다. 호부호형 못 한 홍길동의 마음이 이런 거였구나. 


  새 책공부나 꾸려야겠다.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학자들의 책으로 커리를 짜고, 1년쯤 되는 커리를 짜서 몇 사람 함께 읽어야겠다. 시작은 프로이드로 할까 싶다.


  고양이같은 여자를 만나요. 혜림이가 일러주었다. 아, 여자는 여우와 곰 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고양이가 있구나. 감탄했다. 결코 침범할 수 없는 자신만의 우주를 갖고 있는 동물. 그런데도 옆에 머물고 있다는 존재감을 주는 동물. 아, 고양이라니. 주변에는 모두 곰같은 여자들이고, 나도 여우는 싫으니 곰같은 여자만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아, 고양이라니. 길고양이를 찾아 나서야겠다.


  아침에, 단정해졌다. 열심히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9.05.20 21:21


블로그에 2009년 3월 30일 월요일에 쓴 글



"그 때 나와 지금의 내가 만나서 말싸움을 하면 아마 그 때 내가 이길 거야. 그 때는 내가 좀 셋잖어. 뭐, 지금의 나는 웃지 않을까? 그러면서 생각하겠지. 아, 저 녀석이 방향을 잘 잡아서 잘 커야 할 텐데."


"요즘은 생각해. 오직 모를 뿐.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 아는데 모르는 척 하는 것 같고, 정말로 진심으로 모르는 거. 그렇게 되는 생각을 해. 낮아지겠다는 다짐은 역시 아는데 모르는 척 하겠다는 뜻 같고, 정말로 내가 처음부터 가장 낮은 곳에 있었던 것처럼."


메신저에서 오랜만에 만난 지혜와 나눈 대화들. 처음 만난 것이 봄날의 학교 도서관 앞. 잎이 파랬고 바람이 따뜻했다. 

"오빠는 생각 없이 지내서 참 좋겠어요." 지혜가 내게 건넨 첫 마디. 요즘에도 우리가 만나면 꺼내놓고 웃는 이야기. 내가 생각이 없나?


장비 잔뜩 지고 출장갈 때면, 서류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비행기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웠다. 나는 언제쯤이면 저런 단촐한 모습으로 길을 떠나볼까 했다. 한국 오고 갈 때 짐 부풀리는 걸 지독하게 피하려는 것도 어쩌면 그래서인 듯싶다. 출장을 빙자해서 놀고 쉬러 간다. 바닷가로 간다. 이번에는 카메라 장비 하나도 없다. 똑딱이 카메라 하나만 챙겼다. 노트북도 안 가져 간다. 이메일은 미리 자동답장 기능으로 설정해 두었다. 초대해 주는 사람 체면도 있는 거니까, 깔끔하게 입을 흰 셔츠 두 장, 그리고 이번 여름에 입으려고 사 둔 등산용 반바지, 책 한 권과 원고 뭉치. 맞다, 수영복. 쉬엄쉬엄 느리게 느리게 나른하게 햇볕에 널린 빨래마냥 널부러져 있다가 오려고 한다. 새벽에는 바다로 가고 저녁에는 수영장으로 가면서 물 속에 떠다니다가 와야겠다. 심심하면 책 읽고, 엽서도 쓰고, 또 원고도 써야겠다. 어쨌든 빨리 책이 되어 나와야 하는 거니까.


속도나 방향의 전환.같은 것.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바라는 것들. 눈 앞에 닥친 여러 상황에 대한 시원한 답들이, 널부러진 빨래 위로 내려와 앉아 주기를. 



2009.05.20 21:20

흐린 일요일 오후


블로그에 2009년 3월 29일 일요일에 쓴 글



흐린 일요일 오후


운동화처럼 신고 다니는, 비 맞은 구두에 약칠해서 그늘에 두었다. 대신 등산화끈 질끈 동여매고, 옷도 등산복 비슷하게 입고 쌀 사러 간다. 여행가는 기분으로. 마침 들고 나간 책도 김연수의 ‘여행할 권리’. 책 쓰는데 참고하라고 쥐루 누나가 보내준 책이다. 잘 나가는 소설가답게 작가는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재주가 좋다. 소소한 사건들을 씨줄 날줄 엮듯이 이어서 구성을 탄탄하게 하고 문장들은 재기 발랄해서 참 재미있다. 재미만 있는 줄 알았는데, 김사량이 중국으로 간 길을 따라 가는 다큐멘터리 이야기쯤에 이르면 작가적 사색의 내공도 드러난다. 좋은 책이고 많이 참고가 될 책이다.


근처 시장으로 가서 우선 김치찌개에 들어갈 마늘과 양파를 하나씩 사고, 옥수수도 하나쯤 사려다가 별로 좋은 녀석이 안 보여서 관둔다. 입구로 돌아나오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눈치보다가 어두운 계단으로 도망친다. 같이 안 놀아줄 모양이다. 비싸게 군다. 쌀집에서 그 중에 좋은 쌀 한 포대를 사서 어깨에 짊어지고 온다. 바쁘다는 핑계로 집에 쌀 떨어진 지 일주일이 넘었고, 며칠 동안 내 아침은 삼양라면과 짜파게티를 번갈았다.


에프상하이에서 만난 오래된미래.님이 월드비전 참가를 압박하셨다. 기꺼운 마음으로 하겠다 하겠다 하다가 오늘에야 등록한다. 내가 보내는 많지 않은, 그러나 적지도 않은 돈으로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어느 땅의 아이가 밥을 먹고 자라겠구나. 밥만 먹지 않고 어쩌면 공부도 하며 자라겠구나 싶다. 굳이 해외 아동이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나를 지독한 한국인으로 키워낸 한국의 민족주의 교육을 원망할 때가 있다고 답해야겠다. 나는 죽을 때까지 한국인으로 살겠지만, 내 다음 세대는 당당한 지구인으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어줍잖은 영토의 경계를 나누고 그 경계 밖에 있는 것들을 향해 날 세우는 것을 당연하게 가르친 교육은 사기다. 네가 버티지 않으면 경계 밖의 것들이 와서 너를 해치고 네 주변의 것들을 모두 가져갈 것이라는 내부적 협박이다. 교육은 그렇게 나와 내가 아닌 것들을 나누고 바깥 것들을 미워하게 가르쳤다. 도울 수 있다면, 내가 인지하는 공간의 가장 낮은 곳이 그 대상이 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우주인이 되지 못 하는 게 아쉬울 뿐이다. 해외 아동을 후원하는 일이 한 때 유행처럼 보인 적이 있다. 괜히 생각 없이 숟가락 하나 더하는 것 같아서 꺼리다가, 그런 유행이라면 얼마든지 해도 되겠다 싶어서 떠밀리는 마음으로 덜컥 신청했다. 자신에 대한 어떤 기대는 기꺼이 받아내기도 하고, 어떤 기대는 어쩔 수 없이 받아내기도 한다. 한 존재의 기대를 하나의 몸으로 받아내는 일은 무겁다. 집에서 풀 하나 키울 때도 그 풀이 제 온 생명을 내 보살핌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그 무게가 가볍지 않다. 이제 저 산 넘고 바다 건넌 어디에서, 한 아이가 내게 그 성장을 의탁하게 되었다. 아, 한 삶이 어떻게 다른 한 삶을 온전히 받아서 버티어 내나? 


이 나이까지 자란 나를 보면 나는 참 많은 혜택을 받으며 자랐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제대로 배울 기회도 평등하게 나눌 수 없었던 부모님 세대만 보아도 그렇다. 배움에 대한 앞선 세대의 갈증들. 당신을 입을 것 쓸 것 아껴가며 내게 주신 것들이 얼마였던지. 덕분에 나는 잘 자랐다. 빌어먹으실 국경 이라는 틀 때문에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라도, 최소한의 기회는 있어야 한다. 그들의 삶을 그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간절하게, 그렇게 생각한다. 이미 있는 기회를 버리고 대충 살겠다는 것들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기회조차 가져본 적 없는 아이들이나 기회를 자각하지 못 하는 청년들을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 곳 유학생들에 대한 생각도 같은 선상에 있다. 그러니까 능력이 있는데도 대충 사는 것들이나 제 한 몸 살 찌우며 살겠다는 것들은, 좀 맞아야 한다. 어쨌든, 힘들게 지낸 몇 년을 지나 이제 이 정도 돈을 내 힘으로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이게 작은 일이 아니다. 이게 돌려주기.의 시작이 될 모양이다. 인터넷 뱅킹 클릭 몇 번으로 끝난 이 작은 선택이, 어쩌면 내 다음 삶의 방향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 더듬이가 그렇게 말한다. 



2009.05.20 21:19

눈이 따끔거리는 아침


블로그에 2009년 3월 25일 수요일에 쓴 글



눈이 따끔거리는 아침


미리 약속을 했었다. 미팅 끝나고 연락 드리겠다고, 부르시니 가능하면 가겠노라고 했다. 미팅은 예정보다 한 시간 가까이 늦게 시작했고, 늦게 시작했으니 당연하게 늦게 끝났고, 집에 들러서 간단한 작업을 마무리하고 가겠다던 예정을 바꿔서, 남의 집에 너무 늦게 가는 것도 예의가 아닌 거니까 곧장 모나님 댁으로 갔다.


늦은 자를 위해 마련된 음식은 보기에 맛깔스러웠고 먹기에 편했다. 반가운 봄나물 달래가 두부와 함께 무쳐져서 상에 올랐고, 소담하게 담긴 잡곡밥 옆에는 깨를 갈아넣은 된장국?을 닮은 국도 있었다. 보기만해도 건강해질 것 같은 상차림에 연신 감탄했다.


두어 시간을 작정했던 잡담은 길어졌다. 온갖 차를 꺼내 마시며 온갖 음악을 바꿔 들어가며 온갖 이야기들을 이었다. 고흐를 좋아하는 건치 어린이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고, 원숭이와 얼굴 검은 할머니가 나오는 어릴 적 꿈에 대해 말하고, 도 닦은 사람들이 정말 공중부양을 할 수 있을지 가능성을 검토하기도 했다. 정치가 생활 속에 들어와야 된다는 이야기는 시작은 했으나 호응이 없어서 흐지부지했고, 홍콩에 출장 간 메튜도 잠시 이야기 속에 등장했고, 개그는 타이밍이라는 전제에 모두 동의한 후 실습도 했다. 몇 번은 성공하고 몇 번은 실패했다. 실패는 응징당했다. 에프상하이의 새 맴버들을 어떻게 좀 더 빠르게 식구로 만들 것인가 생각하는 척 하다가, 술을 많이 마셨던 한 때의 무용담을 들으며 찬 홍차 몇 잔 마시고 잠을 못 잤던 볼링장의 전설을 되불러 오기도 했다. 늦게 빈손으로 찾아간 손님에게 모나님은 씨디 두 장을 덜컥 주셔서 나는 득템.했다. 고흐의 별 쏟아지는 밤이 표지로 그려진 노트도 받았는데, 서로간의 암묵적 동의 하에 수첩 주인은 건치 어린이가 되는 것으로 했다. 온갖 종교를 불러내서 결국은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결론에 닿았고,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들을 해야 한다는데 공감했다. 아, 그것 말고도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등장하고 사라졌는지. 편집당한 이야기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이야기가 길어져서 새벽부터 촬영 들어가야 할 반군은 중간에 나왔다. 남은 두 분께, 참 고운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고맙다는 마음을 잔뜩 전했는데, 얼마나 닿았는지는 내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 것이다. 차마시며 노닥거리는 모임을 아예 정기 소모임으로 하자는 작당이 있었으나, 전개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다음에는 내 집에서 음악을 준비할 테니 마실거리 들고 오시라고 했다.


아, 잠 못 잔 아침의 뻑뻑한 눈이란. 




2009.05.20 21:18

수육


블로그에 2009년 3월 15일 일요일에 쓴 글


수육 


아는 형의 부탁으로 사진 촬영을 도와주러 갔다. 형의 여자친구분이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에 올릴 주얼리 사진이었다. 주얼리 사진은 워낙 전문적인 분야인데다 나는 그 쪽 전문이 아니니 애써 나설 것은 아닌데 뭐 쇼핑몰용 사진이니 크게 부담가질 것은 없었다. 촬영을 도와주고 리터칭 방법도 간단하게 일러주었다.


고맙다는 뜻으로 그 분은 수육을 삶아서 내어 오셨는데, 이른 점심을 먹고 한참을 아무 것도 목 먹은 속은 쓰릴 정도로 아팠고, 허기진 속을 채우려고 얼른 몇 개 먹고 나니 이상하게 속이 더 아팠다. 빈 속이이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오랜만에 수육을 제대로 먹을 기회였는데, 못 먹고 물러 나와야 하는가. 아 저 산처럼 쌓인 흰 비계덩어리여. 멀구나.


속이 점점 더 아파서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먼저 간다고 하고 나왔다.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데 느낌이 이상하다. 속이 쓰린 거랑은 어째 좀 다른 느낌. 설마? 지하철역까지 가볍게 뛰었다. 아, 체한 거구나. 너무 급하게 먹었구나. 아, 새우젓의 빈자리가 크구나.


집까지 오는 동안 가볍게 뛰고, 와서 소화제 먹으니 잘 때쯤에는 속이 편해진다. 자려고 눈 감으니 두고 온 수육이 아른거린다. 


내 치열하고 슬픈 지난 주말 이야기다. 





2009.05.20 21:15

노래 이야기 몇 개


블로그에 2009년 3월 12일 목요일에 쓴 글




어제는 종일 비가 왔다. 머무르는 비가 아니라 한 번 쏟아지고 말 비라서 종일 제법 세차게 왔다. 일기예보에는 오늘도 비가 온다고 했는데 새벽 나절에 비는 그친다. 하늘은 여전히 낮고 흐린데 빠르게 흐르고 바람도 세차게 부는 걸 보니 비는 더 안 올 모양이다. 그냥, 느낌이다. 바람이 좋아서, 외장하드에 들어있던 음악 꺼내서 듣는다. 컴퓨터로 음악을 들으면 포토샵 속도가 느려지고 또 따로 엠프도 있으니 굳이 그럴 필요도 없어서 최근에 컴퓨터로 음악 듣는 일은 잘 없다. 대학교 입학하고 부터 조금씩 긁어모아둔 음악이니 제법 십 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음악들이다. 내 또래도 안 듣는 옛노래들부터 최신 유행곡 월 별로 모아둔 것까지 제법 있다. 역시, 음악 들으며 글을 적으면 도대체 방향을 잡을 수가 없구나.


음악여행 라라라. 무슨 개그도 아닌 것이 음악프로그램이라고 하는데 요즘에 꼬박꼬박 챙겨 본다. 손지연.이라는 가수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알았고, 적우의 얼굴도 여기에서 처음 봤다. 강호동의 무릎팍도사. 이후로 기존 프로그램들이 개그쇼의 형식을 도입하는 듯한데, 어색할 것 같던 장면은 예상보다 훨씬 성공적인 듯하고, 가수를 불러놓고 노래 두어 곡 듣고 어색한 말 몇 마디 웃긴 척 하고 다시 노래 듣는 이 프로그램도 그 연장선에 있다. 진행방식은 그만그만한데, 불러세우는 가수들이 좋아서 그만하면 됐다 싶다.


이제는 떠나온 지 제법 된 내 작업실에는 낡고 큰 스피커가 네 귀퉁이에 있었다. 스피커보다 더 낡은 엠프도 있었다. 나보다 앞서 있었던 것들이다. 사람 귀가 간사하다는 것을 작업실에서 알았다. 그 낡은 것들에서 나와 나무 바닥을 울리며 내 귀에 닿던 소리는 컴퓨터 스피커의 그것과 비교도 안 되는 풍성함이었다. 2년 가까운 작업실 생활을 마치고 나왔을 때, 컴퓨터 스피커 소리는 귀가 아파서 얼마 들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미친 척 앰프를 샀다. 지름신의 가르침이 언제나 그렇듯, 처음에는 그저 저럼한 걸로 구색만 맞추면 되지 했던 것이 알아보는 사이에 점점 높아지고 높아져서 밥값 방값 걱정하던 그 때에 덜컥 분에 과한 앰프를 들였다. 내 집 거실의 절반을 차지하고 앉은 앰프와 스피커, 그리고 몇 장의 씨디들.


음악은 그저 작업하는 동안, 딴짓하는 동안 배경처럼 흐르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앰프 사고 스피커 사고 씨디도 몇 장 사면서 알게 된 것은, 음악은 그냥 음악만 듣는 거다. 진공관을 예열시키고, 음악을 고르고, 따뜻한 물 한 잔 따라 와서 적당한 거리에 자리 잡고 앉아서 음악 들으면, 좁은 거실에서 새로운 공간이 열린다. 아, 음악은 행복한 것이구나, 싶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음악에 대한 내 이해가 사진이나 문학에 대한 수준만큼 되었더라면 나는 하루 종일 음악을 듣고 살았을 테지만, 아직 얕고 얕아서 도대체 모를 음악이 많다.


어떤 날은 문득 깨닫는 날들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깨닫기도 하고 저녁 잠자리에 누워서 불끄고 깨닫기도 한다. 무엇을 깨달은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아, 내가 자랐구나 싶기도 하고 나를 둘러싼 껍질의 한 쪽이 깨어져 나가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흐리고 대지는 젖어 있고 바람이 세게 부는 날, 나는 조금씩 자라는 나를 느낀다. 아름다운 봄날의 흐린날이다.


새벽에 일어나 메일 열었는데 호텔 촬영 의뢰가 왔다. 포트폴리오와 견적을 보내고 서로 의견을 조율하고 눈치를 살펴야 하니까 의뢰가 촬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완벽하지 않다. 그래도, 하나 둘 오는 연락이 반갑다. 이번엔, 티엔진이다. 


새벽 맑은 정신에 적어두는 이런 주정같은 메모라니. 





2009.05.20 21:15

봄처녀 제 오시네


블로그에 2009년에 쓴 글





새벽 자전거는 들릴 듯 말 듯 콧노래 흥얼거리며 간다. 


봄처녀 제 오시네.

색동옷을 입으셨네.


봄과 처녀를 떼어놓을까? 아니면 봄처녀라고 붙여둘까? 떼어놓자니 두 단어의 개별성은 선명해지고 개별성의 두 단어 사이에서 생겨나는 관계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것 같다. 단어 둘을 붙여서 ‘봄처녀’라고 쓰면 새로운 존재의 탄생이다. 봄은 잡스러운 기운들이 새롭게 태어나는 계절이니까, 봄처녀가 좋겠다. 자전거는 어디쯤 와서 흩날리고 있을 봄처녀 색동 저고리 보러 바닷가로 간다.



봄은 떠나온 곳으로부터 온다. 대학시절 봄은 고등학교 너른 운동장을 몰아 다니는 모래바람이었고,바다 건너에서 맞는 봄은 고향 바닷가에 부는 비린내다. 봄에는 떠나온 모든 것이 그립고 봄바람은 가슴에 사무쳐서 이 계절을 지나는 일은 위태롭다. 위태로운 봄은 사태처럼 올 것이다. 한 번 두 번 신호를 보내다가 한 순간 와락, 덮쳐 올 것을 안다. 봄에 그리움은 꽃처럼 핀다. 아침 일곱 시 반, 집을 나선 자전거는 수주허를 따라 와이탄으로 가서 황포강을 건너는 배에 오른다. 주말 아침이라서 출근시간인데도 배는 제법 널널해 보인다. 자전거가 강을 건너가는 비용은 1.3원.



푸동으로 건너온 후 지도는 당분간 보지 않기로 한다. 저 동편 끝에는 너른 바다가 있다. 나침반 하나만 보며 가는 길, 개별 길들은 이름을 잃었다. 다만 방향성만 있는 길 위에서 자전거는 봄맞이 산책을 간다. 속도계도 보지 않기로 한다. 겨울용 자전거 복장도 벗어 던지고 가볍게 입고 나선 길, 지도를 포기한 자전거 앞에 지도에 나오지 않는 좁은 골목이며 흙길이 나와서 당황스러움과 경이로움을 동시에 준다. 시내를 벗어난 곳에서 간단한 음료수와 쵸코바 하나로 허기를 달랜다. 



골목길과 번듯한 차도를 번갈아가며 네 시간을 달려서 자전거는 바닷가에 닿는다. 三甲港산지아강. 마음 속 목적지로 두었던 곳이다. 몇 년 전에 버스를 타고 왔던 곳인데, 특별히 볼 것이라고는 없는 누런 바다라는 기억만 있다. 그 ‘별 볼 것은 없는 것’이 보고 싶어질 줄 몰랐다. 살아가며 보면 그런 때도 있다. 아무 것도 보지 못 하고, 한참이 지나서 보이는 것들이 있다. 아무 것도 보지 못 했고, 한참이 지나도 보이지 않는데, 어쩌면 보았었구나 싶은 기억의 흔적만 남는 때도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은 다만 보지 않으며 지나온 것들이었다. 무서워서 피하고 피했다는 사실이 다시 무서워져서 감추고 만다. 보이는 것들이 보이는 대로는 아닐 것이다. 산만큼 커 보이는 화물선도 수평선 끝으로 멀어져 가면 점으로 보일 듯하고, 저 끝에 한 점도 눈 앞까지 오면 태산만큼 클 듯하다. 도대체 모를 길 위에서 자전거는 방향을 잃고 다만 가는 것인데, 여정이 길어지면 자전거의 길은 결국 사람의 안으로 이어지는 모양이다. 자전거 여행자들의 목적지는 결국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그 어디쯤이다. 



이른 봄빛 아래 자전거를 세우고 바닷가 둑에 누워 낮잠도 잔다. 바닷가의 낮잠은 깊지 않아서 바람과 소리가 옅은 잠 속으로 들어온다. 멀리에서 지나가는 큰 배는 느리고 낮은 울음소리를 낸다. 항구에 정박하기를 기다리는 화물선들이 바다 가운데 떠 있다. 봄도 저기 어디쯤에 떠서 곧 이 땅에 닿을 것이다. 바다는 그 가운데 뜬 배와 그 앞을 지나는 작은 배와 물의 끝에서 그 배들을 바라보는 사람까지 모두 담아서 다만 넓고 깊어 보인다. 사람들은 서로 가까이 앉아서 마주보지 않고 멀리 먼 곳을 함께 본다. 그 자세로 오래들 있는다. 



쓰고 있던 고글을 벗으니 부신 하늘이 푸른 것을 알겠다. 오늘 하늘이 파랗다. 깊게 푸른 것이 아니고 성글게 푸르다. 순수하고 고집스럽게 푸른 것이 아니고 온갖 것들 오는대로 모두 받아준 푸른색이다. 그래서 저 빛깔 하늘 속에는 온갖 것들이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고향 뒷산에 지천으로 핀 봄나물 같은 하늘이다.



길게 한숨 자고 통과의례처럼 사발면 하나 먹고 난삽하게 가지 친 감정들을 쳐낸다. 바닷가의 감정들을 그대로 끌고 도시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먼지가 곱게 앉은 버스 종점의 편의점에는 사발면 먹는 동안 버스가 안 들어 오기를 빌어야 한다. 아, 라면은 다 익었고 저기 버스 온다. 흙먼지를 날리며.


아침에 탔던 배를 다 저녁에 타고 되돌아 간다. 시내로 들어오며 자전거는 다시 생활들 속으로 들어왔다. 채소 봉지를 들고 집으로 가는 자전거들과 오토바이들 속으로 자전거는 간다. 오전에 맑던 하늘이 흐려진다.



바퀴 구른 거리 91km 



2009.05.20 21:13


블로그에 2009년 3월 11일 수요일에 쓴 글




# 1


새벽에 버스는 아직 오지 않을 모양이다. 첫 버스를 기다리는데 풀숲에서 고양이가 운다. 작고 불안한 소리로 운다. 쪼그리고 앉아서 부르니까 회색털 고양이가 온다. 사람 손에 길러졌던 모양이다. 주저주저하다가 와서는 내 주변을 돌면서 몸을 비빈다. 아직 새끼다. 만져보니 목줄도 있다. 아, 사람 집에서 살았었구나. 어떻게 할까 하다가 목줄이라도 풀어주어야 할 것 같아서 만져보는데 어떤 방식으로 잠긴 것인지 잘 안 풀린다. 고양이는 장난치는 줄 알고 손가락을 깨물고 무릎 위로 올라와 배를 보이며 눕는다. 발톱 때문에 바지 여기저기가 상처난다. 안 된다. 이 놈아.


가만 보니 풀숲에 노란, 조금 덩치가 큰 녀석이 하나 더 있다. 이 녀석은 제법 사람을 경계하고 다가오지 않는다. 회색 새끼 고양이가 노란색 고양이를 따른다. 집 나와서 여태껏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에 그런 사연이 있었던 모양이다. 새끼 고양이는 노란색 고양이와 나 사이를 오고 가며 바쁘다. 고양이가 울면 풀숲 안으로 들어갔다가, 내가 손짓하고 부르면 무릎으로 올라온다.


버스 오는지 보는 사이에 노란색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간다. 이리 오라고 부르니 새끼 고양이는 몇 번 뒤돌아보며 멈칫거리다가 이내 노란 고양이를 따라 갔다. 갈등 끝의 결심 같은 걸 본 것 같다. 좋은 길잡이를 만난 고양이가 잘 살기를 빈다. 아, 끊어주지 못한 목줄이 아쉽다.


버스는 오지 않는다. 택시비가 아깝지만 어쩔 수 있나. 새벽 택시는 빠르다. 새벽 고가를 달리는 쾌감으로, 택시는 한 낮의 갈증을 달랠 모양이다.



# 2, # 3


난징루를 따라 끝까지 가면 그 곳에서 지하도를 통해 와이탄 강변에 갈 수 있다. 고흐의 그림들이 잔뜩 걸려있는 지하통로는 아마 그 옆에 있는 네덜란드 은행에서 돈을 댄 모양이다. 여기 지하도를 지나며 여기 그림들을 볼 때마다 이 그림들을 촬영한 사진가가 궁금해진다. 사진들은 고흐의 붓질을 최대한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 일반적인 그림 촬영 조명과는 다른 방식을 택했다. 전체 밝기를 유지하는 동시에 측면에서 강한 하이라이트 광원을 써서 고흐의 붓질은 사진 속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실력있는 사진가의 잘 찍은 사진이다. 김훈의 문장이 그런 것처럼, 고흐의 붓질은 그의 숨을 갉아서 캔버스에 뿌려둔 것같다. 그래서 마침내 더 갉아낼 숨이 없을 때, 고흐는 죽었는지도 모르겠다. 고흐의 그림같은 사진을 찍겠다고 벼른 게 몇 년인데, 게으른 사진가는 그럴 능력도, 용기도 없다. 나는 길게 살고 싶다.



# 4, # 5, #6


공사현장은 일찍부터 움직인다. 벌판에 높이를 쌓고 또 허물고 다시 쌓는 일은 도시에서 익숙한 풍경인데, 상하이는 그 익숙한 것이 너무 많아서 마치 상하이의 특징적인 모습인 듯하다. 초봄 아침에 바람은 아직 거세고 기온은 찬데, 노동자들의 작업복과 헬맷은 어찌나 원색으로 찬란들 하신지.



28mm 화각은 마음에 든다. 사진은 시원하고 통쾌하다. 그래도 자꾸만 비겁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45mm의 화각은 어려웠지만 비장했었다는 감상같은 것. 그래도 28mm를 계속 써야겠다. 쉽고 경쾌한 화각이다. 



2009.05.20 21:12


블로그에 2009년 3월 6일 금요일에 쓴 글



살아가는 일이 팍팍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버티듯 사는 하루는 힘겹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앞을 막아선다. 나는 왜 태어나서 이 세상을 버티며 있는 것일까? 나이 들어가는 아들의 반쪽을 걱정하는 어머니께 푸념처럼 물었던 적이 있다. 한 몸도 거추장스러운데 제 발로 걸어 어디를 가란 말인가.


"어머니, 이 험한 세상에 또 아이를 낳아서 살게 해야 되나요? 사는 건 힘든데 그냥 나 하나로 그 어려움을 그치면 안 될까요?"


"여봐, 아들. 고생이라니? 생각해 봐. 네가 살아온 날이 고생이었어? 얼마나 재밌는 일이 많았는데! 아이를 낳아서 이 험한 세상을 또 겪게 한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이 재미난 세상을 살게 해주겠다고 생각해야지."


아, 어머니는 위대하다. 겨우 서른 생을 살아온 아들은 찍 소리 못 하고 두 손 든다. 그래, 살아온 날들은 얼마나 빛나는 하루들이었던가. 나는 그 빛들 속에서 또 얼마나 속으로 빛나며 나를 채워 왔었나. 이 신나고 재미난 세상을 나 혼자만 누릴 것은 아니구나. 살면서 내가 배우고 느낀 재미를 내 아이에게 알려주어야겠구나.


대부분의 일들이 양면성을 갖지만, 어떤 것들은 의심할 것 없이 마냥 아름다운 것도 있다. 사랑도 그 중에 하나다. 짝사랑의 설래는 마음도 좋고, 갓 시작된 풋풋한 마음도 좋다. 가까워질 듯 여전히 그대로인 거리를 재는 긴장감도 좋고, 농익은 질척함도 좋다. 빛 바래가는 건조한 느낌도 나쁠 것 없고, 큰 자리 비어버린 뻥 뚤린 허전함도 뭐 거쳐야 할 것이다. 또래 친구들 중에 사랑에 대해 무덤덤한 녀석들을 보면 내 마음이 가빠진다. 아, 두 번 사는 세상 아닌데, 도대체 무얼 하고 있나. 


삼 주째 내리던 비가 그친다. 살짝살짝 그친다. 올듯 안 올듯 비가 그치고 날듯 말듯 햇빛도 나온다. 그렇게 봄이 올 모양이다. 나는 잘 쉬었다. 깊은 잠을 자고 영화도 보고 이런 저런 생각도 했다. 몸이 부드러워지고 정신은 말끔해졌다. 새로 검도를 시작했는데 칼을 휘두르는 근육은 많이 비어 있었고, 대신 빈 속에서 소리는 야무지게 뭉쳐 나왔다. 마침 일거리도 안 들어와서 아무 긴장도 없었다. 날 개이니 하나둘 작업 연락도 온다. 일요일에는 비가 안 온다면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멀리 나가보아야겠다. 토요일에 있을 사진스터디는 일찍 마쳐야겠다. 일요일을 위해. 그리고 만약에 비가 오면, 멀리 친구가 보내온 편지 한 통과 답장 쓸 종이 몇 장 들고 어디 편한 자리라도 찾아 나가야겠다.


사랑하자.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2009.05.20 21:11

dp1


블로그에 2009년 2월 21일에 쓴 글



새 카메라는 시그마에서 만든 무늬만 똑딱이 DP1이다. 새로 샀다.


내 밥줄로 쓰고 있는 SLR이 갖는 몇 가지 단점을 극복해보려는 시도다.


3년 넘게 일상적으로 45mm 화각을 써 왔다. 멀리 있는 것을 당기지 못 하고 가까이 있는 것을 밀어내지도 못 하는 화각이어서 이 랜즈를 쓰는 동안 나는 피사체 앞에 정면으로 마주서는 연습을 했다. 이집트인들이 그려내던 정면의 그림들처럼, 렌즈는 피사체를 보기 좋게 포장하지 말고 단지 본질 앞에 서기를 요구했다. 스며들기도 했고 덥쳐들기도 했던, 본질을 보겠다는 시도는 많은 부분에서 실패했다.


새 카메라는 28mm 고정 화각이다. 광각이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넓게 보이고 멀게 보인다. 코 앞에 섰던 피사체가 저만치 물러나며 나와 피사체 사이에 있었으나 보이지 않았던 공간을 도드라지게 한다. 작은 카메라를 쓰는 것도 처음이고 광각을 주로 구사하는 것도 처음이라서 카메라는 손에 잘 안 익는다. 작은 새 카메라가 내 손에 익숙해지고 28mm 화각이 눈에 익는데는 제법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낯선 것과 만나서 익숙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을 긍정해야 한다. 부대끼는 어색함과 불편함도 시간이 지나는 동안 맞아갈 것을 알고, 그 곳까지 가는 시간의 길이도 자연스러운 것을 알겠다. 다만 익숙하던 것이 멀어지는 데 걸릴 더 긴 시간도 함께 긍정할 수 있기를 빈다. 




2009.05.20 21:10


블로그에 2009년 2월 20일에 쓴 글



내가 사는 집 씽크대. 한 끼 식사에 그릇은 하나씩. 더 쓸 그릇이 없을 때까지 설거지 미루기.



요 며칠은 하는 일 없이 논다. 논다.기 보다는 빈둥거린다. 노는 것만도 못 하다. 여기 저기 사이트나 뒤적거리고 다른 사람들 블로그나 둘러 다닌다. 지나간 쇼프로그램도 보고 책도 몇 장 뒤적거린다.


베토벤바이러스.드라마를 대충 돌려가며 다시 봤다. 대사 중에,

"버나드 쇼가 죽을 때 이런 말을 했어.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뜨끔.했다. 


돈 버는 일이 많이 없다고 기죽어서 늘어져 있지 말아야겠다. 돈 버는 일이 많이 없으면 그 만큼 시간이 남고, 그 시간에 돈 안 버는 일이라도 하면 된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오늘을 후회하게 된다면, 돈을 못 벌어서 후회되는 시간이 아니라 채우지 못하고 빈둥거리며 성글게 보내버린 시간이기 때문일 테다. 좀 더 바지런하게 책도 보고 사람도 만나고 사고도 쳐서 풍성한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글도 부지런히 쓰고 사진도 신나게 찍어야 한다. 우물쭈물하면서 보내면 안 된다.


낙서처럼 적어두는 걸 보니 이 글은 며칠 지나서 지우겠구나.


왜 쓰나?






2009.05.20 21:07


블로그에 2009년 2월 19일에 쓴 글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진행형일 겁니다. 한 사람 보고 느끼는 호감부터 시작해서 만나고 사랑하고 싸우고 서먹하고 다시 화해하고 또 사랑하고 나중에 헤어지고 헤어진 다음에 그리워하고 후회하고 그러다가 잊고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나는 것까지. 그 시간들을 빼고 나면 깨어있는 시간이 참 짧을 것 같습니다.






2009.05.20 21:03

가기 전에 돌아본다


블로그에 2009년 1월에 쓴 글


아마 대통령 경호원들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다. 그들은 아침마다 깨끗한 속옷으로 갈아입는다고 했다. 매일이 생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만약에 오늘 죽어서 누군가 내 죽은 몸을 치워내게 될 때, 깨끗한 몸으로 보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아저씨 속옷같은 하얀 속옷은 비장한 각오와 잘 섞여 보이지 않았지만 그 하얀 색깔은 그들의 뜻과 맞아 보였다.


긴 여행이나 무모해보이는 여행 앞에서 나는 매번 뒤돌아본다. 집 나서기 전날에는 설겆이도 하고 사방에 널린 옷들도 제법 정리하고 쓰레기도 비워내고 집안도 정돈한다. 겁나서 그런다. 내가 다시 이 곳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 싶어서 그런다. 여행 떠나기 전날에는 매번 새 여행을 후회한다. 왜 떠나겠다고 했을까? 지금이라도 다시 짐을 풀고 앉으면 안 될까? 싶다. 꾸려놓은 짐들과 뱉어놓은 말들에 떠밀려서 내 여행은 시작된다. 출발하기 전날의 두려움은 익숙해질 듯한데 매번 낯설고, 다만 두려움에 주저하는 내 모습만 친근하다. 만나고 헤어질 때, 머물다가 떠나갈 때 내 지난 모습이 가지런하게 보였으면 좋겠다. 여기 저기 사방 흩어둔 난삽함 말고, 가지런하고 분명한 선들로 남았으면 좋겠다.


여행이라고 떠나는 것이 오랜만이다. 긴장하며 떠나는 여행은 몇 년만이다. 짧은 여행이 될 것인데 한참만에 가는 것이다 보니 마음 속에서는 더 길다. 일주일쯤 전에 가려던 것인데 날씨가 맞지 않아서 이제야 간다. 새벽마다 일어나서 하늘을 보고 다시 눕고 다시 눕고 했다. 짐은 대충 꾸려 두었다. 상하이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황푸강의 발원지로 간다. 강의 발원지라는 목적지는 별 의미 없다. 다만 어디든 가야했고 그래서 어디든 찍은 것이다. 자전거는 새벽 지하철을 타고 상하이의 남서쪽 외곽으로 가서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과거 황푸강의 발원지로 알려졌으나 이제 아닌 것으로 알려진 딩정호가 1차 목적지다. 아마 서너 시간이 못 걸릴 것이다. 거기서 다시 서쪽으로 가면 태호에 닿는다. 아마 점심 시간쯤일 것이다. 태호는 장쑤성과 절강성을 나눈다. 다시 남서쪽으로 국도를 타면 절강성 후조우에 닿는데, 느긋하려면 이 곳에서 하루 묵을 것이고, 마음이 쫓기면 더 가서 안시까지 갈 것이다. 안시에서 목적지 용왕산까지는 다섯 시간쯤 걸릴 것이다. 국도도 아니고 성도도 아니고 현도에 해당하는 길이라서 길사정이 좋지는 않을 것이고, 산을 향해 가는 길이니 경사도 있을 것이다. 도착 시간에 따라 당일 등산하거나, 산 아래에서 묵은 후 3일째 되는 날 등산하려고 한다. 1500미터가 넘는 산인데, 이 산 어디쯤에서 황포강은 발원한다. 하산한 후에는 최대한 수월한 방법을 찾아서 상하이로 돌아올 것이다. 자전거를 담을 수 있는 전용가방을 따로 가져간다. 자전거의 앞바퀴와 뒷바퀴를 빼면 들어가는 크기다. 아마 가까운 항주까지 자전거로 간 다음 상하이로 오는 기차에 자전거를 실어 오거나, 운이 좋으면 산 아래에서 상하이행 관광버스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행은 꽉 찬 3일쯤 걸릴 것이다.


지내다 보면, 여행이 고플 때도 있고, 여행이 절박할 때도 있다. 절박한 여행을 한참동안 미루어오다가, 내일 간다. 나는 건강하게 돌아오겠다. 




2009.05.20 18:48

돌아왔다.


  새 시대의 새 흐름에 동참하려고 블로그로 갔었다. 글로벌한 흐름에 동참하겠다고 구글 블로그 서비를 쓰기로 했다. 잘 움직이던 블로그는 중국에서 접속을 막아서 이제 여기서는 안 보인다. 블로그를 쓰며 여기 사이트가 거의 버려진 듯했는데, 겸사겸사 잘 되었다.


  돌아올 수 있어서 다행이다. 돌아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시간들도 많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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