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쓴다

[사진가의 현장] 노란색 와인을 만들어 주세요.



안녕하세요.

사진찍는 모비입니다. 이 게시판에는 촬영 현장 이야기를 올릴 작정입니다. 

상업사진이 취미사진과 구분되는 큰 지점 중에 하나는 아무래도 조명의 활용일 겁니다.

그래서 촬영 현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조명 활용에 초점을 맞춰서 하나씩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사진들을 되돌아 보는 의미도 있을 테고요. 이 글을 읽으시는, 사진을 취미로 하시는 분들께는 조명에 대한, 그리고 촬영 전반에 대한 작은 힌트라도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첫 이야기는, 비교적 최근에 작업한 인물 사진입니다. 아, 제가 주로 찍는 분야는 인물사진과 건축사진입니다. 두 분야는 사실 많이 다른데요. 뭐, 그때마다 그에 맞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번 촬영의 클라이언트는 중국 와인 브랜드였습니다. 우선 촬영지까지 가는 것부터가 난관입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클라이언트는 빠듯한 예산으로 촬영을 진행합니다. 촬영은 중국 우루무치 남쪽의 작은 도시에서 진행했습니다. 사실은 그곳에서 다시 한 시간 이상 차를 타야 하는 곳입니다. 대규모의 포도밭이 필요하니까 도시 근교로는 어려우니까요.


그럼 이때부터 몇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우선 예산 때문에 어시스턴트를 데려 갈 수가 없습니다. 혼자 비행기를 갈아타며 가야하니까 장비도 최소한으로 챙겨야 합니다. 기본적인 카메라 장비, 테더링 촬영과 데이터 백업에 필요한 노트북, 조명 두 개와 베터리 충전기 등, 4일 동안 필요한 옷가지 등 최소한으로 챙겨도 트렁크 네 개가 나옵니다. 자, 어쨌든 준비는 됐습니다.




비행기가 우루무치 남쪽, 티엔산 산맥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지방 도시의 작은 공항은 비행기에서 내리면 공항 건물까지 직접 걸어가야 합니다.


몇 장 안 되는 사진을 긴 시간 동안 작업하는 경우가 있고,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사진을 작업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 촬영은 후자였습니다. 회사의 전체 임원 사진을 다양한 형태로 찍어야 합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자신과의 타협이겠지요. 모든 클라이언트가 완벽한 수준에 도달한 사진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들이 원하는 쓰임에 부합하면 됩니다. 포토가 보기에 조명이 하나 부족해도, 각도가 조금 아쉬워도 그걸 하나하나 다 만져가며 작업할 수 없습니다. 한계를 인정하고 다음 컷으로 넘어가지 않으면 예정된 일정 안에 끝낼 수 없으니까요. 어디까지 고집을 부리고 어디서부터는 내려놓을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검은 배경천을 내려서 개인 프로필 작업을 우선 하루 동안 진행했습니다. 남자의 경우에는 조명 각도를 과감하게 써서 강한 인상을 만들었습니다. 여자의 경우에는 조명 두 개를 아래위로 써서 화사한 느낌으로 만듭니다. 남성을 조명하는 방식으로 여성을 조명하면, 상당한 경우에 좋은 반응을 얻기 어렵습니다.





욕심을 냈던 와인저장고 촬영은 삼 일째에 진행했습니다. 지하저장고는 상상보다 더 거대했고, 추웠습니다. 그리고 전량 프랑스에서 수입하는 와인통에 어울리지 않게 낮은 색온도, 그러니까 푸른빛이 도는 조명이 공간 전체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우선 이 푸른빛을 해결해야 합니다. 






프로포토 OCF 컬러젤입니다.




노란색과 더 노란색. 두 가지를 한 공간에 쓰면 색을 다양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조명 앞에 노란색 젤을 붙입니다. 이렇게 노란색으로 바꾼 조명을 강하게 쓰면 기존 실내 조명을 압도할 수 있습니다. 저장고 전체에 노랗고 붉은 기운을 넣어서 고풍스러운 내부에 어울리는 색을 만드는 것이지요. 두 조명에 쓰는 젤은 같은 색으로 쓸 때도 있지만, 저는 노란색과 좀 더 노란색, 두 가지를 씁니다. 그러면 사진 전체가 하나의 컬러로 묶이지 않고 그 안에서 다른 층을 만들어 낼 수 있거든요. 조명 하나는 인물에 맞추고, 나머지 하나는 배경을 가장 인상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위치에 둡니다. 인물에만 맞추면 이토록 매력적인 환경을 하나도 보여줄 수 없으니까요.


자, 조명은 준비됐습니다. 이제 인물을 불러야죠.

이 와이너리의 맛을 책임지는 담당자입니다. 와인을 체크하는 여러 동작을 보여달라고 주문한 뒤 그 중에서 가장 사진적으로 어울리는 동작으로 결정합니다. 옷이 조금 마음에 안 들고, 허리를 좀 더 세우고 싶고, 배를 좀 더 넣고 싶지만 일정상 계속 붙들고 있을 수 없습니다. 





저장고와 쇼룸을 돌아다니고, 저녁마다 와인으로 파티를 하며 4일의 일정을 마쳤습니다. 촬영은 4월 초였는데, 중국 신장 지역의 포도밭은 혹독한 겨울 동안 포도나무 줄기를 모두 땅 속에 묻어둡니다. 그리고 5월 즈음에 다시 줄기를 꺼내 지지대에 연결하면 올해의 포도가 시작되는 겁니다. 아쉽게도 잠시 둘러본 포도밭은 지지대 밖에 없는 황량한 흙바닥이었습니다. 포도덩굴은 볼 수 없었지만, 산맥 아래까지 끝간 데 없이 뻗은 그 규모는 상상의 경계 밖이었습니다. 신장은 올 때마다 사람이라는 존재를 너무 작게 만들지만, 그 황량한 땅을 끝끝내 개척해내는 사람을 또 위대해 보이게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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