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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머금고, 계단을 봤다






차마 그 자리에서 말을 못 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방심하고 걷다가 유리에 부딪치는 사람들. 어떻게 유리가 안 보이나? 


항주에 다녀왔다. 더운 날씨에 새벽 4시 반에 집을 나서서 밤 10시까지 운전과 촬영을 반복했다. 처음 생각과 달라서, 별로 가져가지도 않은 장비로 엉뚱한 것들을 찍어야 했다. 항주 주변의 위성도시 량주良诸라는 곳에 대형 부동산 개발회사가 만드는 고급 문화마을이 있다. 거기에 안도 다다오가 디자인한 건물이 한 채 있었다. 건물은 이제 막 공사가 끝나서 내부는 텅 비어있고, 사람도 없었다. 건물 옆 마당은 낮은 경사를 그대로 살렸는데, 마당 위에 올라가서 보면 그 경사에 걸친 직선의 길과 건물의 선이 묘하게 엇갈려서, 이 언덕의 높이와 언덕에 늘어놓듯 그린 길도 세심하게 의도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재밌네, 라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안도 다다오의 디자인이라는 말을 듣고 아하, 그 정도 급에서 다룬 거였구나, 싶었다. 노출콘크리트 벽면이 안도 다다오의 명함이기는 해도, 이제는 여러 곳에서 노출콘크리트 공법을 쓰니까 그것만으로는 그의 작품이라도 단정짓기는 어렵다. 


건물은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날카로운 예각으로 둘러싼 건물은 어느 모서리 하나 돌아설 때마다 다음에 무엇이 나올지 가벼운  기대가 생겼는데, 새로운 각에서 보이는 모습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마침 바깥으로 큰 계단에 보였다. 멋진 계단이었다. 얼른 보려고 나가는데, 꽝! 당연히 열린 문인 줄 알고 나갔는데 거기는 유리였다. 제법 세게 부딪쳐서, 위 아래 입술이 다 터졌다. 좀처럼 이런 실수는 안 하는데. 피를 머금고, 계단을 봤다. 좋더라. 그래도 나는 피를 봤으니까, 올라가지는 않고 그냥 보고 돌아나왔다.


좋은 건물은, 어쩔 수 없다. 작품이다. 좀 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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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툭 끊겼던 그 대목을









어제는 종일 폭우가 쏟아졌다. 아침 출근 길에 집 앞 사거리가 침수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두어 시간 있다가 다시 가려니 물이 더 불었다. 무릎까지 물에 빠지며 겨우 길을 건너서 지하철을 탔다. 종일 바지에서 냄새가 났다. 저녁 돌아가는 길에도 물은 완전히 빠지지 않았다. 아침 길에 본 침수된 자동차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오늘 아침에 날이 갰다. 길 가득, 어제 물 넘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만년필로 글씨 쓸 때, 종이의 질감에 민감해진다. 먹을 먹는 종이와 튕겨내는 종이가 다르다. 잉크의 굵기가 만드는 획의 질감도 있다. 펜이 흐르는 속도가 획에 그대로 드러난다. 글자마다에서, 생각이 툭 끊겼던 그 대목을, 만년필 획은 기록하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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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게 등떠밀리니 백지도 채워지고









원고 마감하느라 이틀 동안 힘들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시간에 쫓겼다. 파편난 몽롱한 정신을 이리저리 수습하며 한 문장씩 잇대어서 겨우 글을 쓴다. 사진 작업과 달라서 글을 쓰는 일은 멍한 정신으로는 좀처럼 안 된다. 마지 못해 적어낸 문장이 인쇄되어 누군가에게 읽힌다는 게 생각하면 참 무서운 일이다. 읽는 이들은, 이 문장을 내가 벼려낸 회심의 한 줄이라고 믿고 볼 것 아닌가. 그래도 이리 성실하게 등떠밀리니 백지도 채워지고 밥값도 번다. 이렇게 벌어서 우리 식구가 먹고 살고, 함께 살 집도 지으려고 한다. 따지고 보면 고마운 독촉이다.


새로 이사한 사무실은 시내 프랑스 조계지 가운데 낡은 집의 2층이다. 오래 되어서 아귀도 안 맞는 철문을 열고 들어서면 작지 않은 뒤뜰이 나오고, 관리 안 된 뒤뜰을 가로질러서 좁은 계단을 오르면 단칸방 사무실이다. 방은 세모꼴 천장이 대들보를 드러낸 구조다. 넓은 나무 테이블 두 개를 붙여서 여러 사람이 함께 쓴다. 시내 가운데라서 크기에 비해 임대료가 비싸다. 좋은 글을 써서 임대료에라도 보탬이 되면 좋겠다.

언젠가 내게 될 책을 생각하는데, 한 권의 책을 인쇄하는데 나무 줄기 몇 개쯤 베어내야 할까? 나무에게 못 할 짓 하는 책은 쓰지 말아얄 텐데. 나는 다만 내가 보는 상하이를 한 줌 단어로 적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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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운동장에 앉아 개미를 구경했다


 





 한국 다녀왔다. 제주로 들어가서 이틀을 보내고, 거제로 가서 이틀을 머물렀다. 제주에서 처리하려던 행정 업무는 실패했다. 대학 졸업하고 바로 중국으로 떠나왔으니 한국에서 치르는 소소한 일이 모두 처음하는 일이 된다. 동네 이장님을 만나서 인사하고, 나중에 마루가 다닐 학교 운동장에 앉아 개미를 구경했다. 장인어른 장모님께 집지을 땅을 보여드렸다. 좋은 땅이라고, 좋아하셨다. 거제에서는 아마도 중국 떠나온 후 처음으로, 그러니까 10년 넘어서 집안 성묘에 참석했다. 학교 다니기 전부터 매년 따라나서던 집안 행사였다. 새벽 다섯 시 넘겨 시작해서 오후 4시에 마쳤다. 어른 수십 명이 낫을 들고 넓은 무덤터 산비탈을 위에서부터 베어내려오던 기억은 이제 추억이다. 요즘은 모두 기계를 짊어지고 풀을 벤다. 나도 처음으로 기계를 짊어졌다. 아버지는 이제 허리도 조금 아프고, 다리도 저린다고 하셨다. 부지런히 일해서 빨리 지을 테니, 집 짓고 나면 제주에 자주 놀러오셔서 손자에게 낚시를 가르치시라고 말했다. 


  아내와 마루는 한국에 더 머문다. 아내는 논문 자료를 정리해야 하고, 마루는 한국에 있는 동안 기저귀 떼는 연습을 계속 할 것이다. 5일 만에 돌아온 집은 눅눅한 습기 냄새가 가득하다. 아내도 아기도 없는 집에서 밤 늦게까지 밀린 원고를 쓰다가 아무렇게나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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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하늘에 구멍이 나서,







소나기가 몇 번, 내리다가 끊어지고 또 내렸다. 비가 충분하지 않아서 내리다가 그친 비는 창문에 온통 얼룩만 남겼다. 흙먼지를 뿌린 것처럼 뿌옇다. 낮에 잠시 뜨거운 햇빛이 났다가 다시 흐렸다. 늦은 오후에 하늘은 여전히 회색 구름이 가득했는데 서쪽 하늘에 구멍이 나서 낮은 저녁햇빛이 먼 곳에서 왔다.


태풍이 지난 지 며칠 되었는데, 바람이 여전히 세차게 분다. 태어나서 한 번도 하늘을 본 적 없을 것 같은 옅은 초록 잎의 뒷면이 일제히 드러났다.

페인트 새로 칠한 바닥에 흙발자국을 찍는 것 같아서 블로그에 첫 글 쓰기가 어려웠다. 10년도 훨씬 넘은 독립 사이트 방식을 이제 블로그로 옮긴다. fshanghai와 spacewhu는 계속 두고, 개인 사이트만 옮긴다. 상하이 생활을 차곡차곡 적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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