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바쁘겠다.
여행잡지사 주최로 사천성 청두에 다녀온 적이 있다. 몇 달 된 일이다. 그 뒤에 한 번 더 연락을 받았는데, 꽤나 장기 여행을 제안했는데 다른 스케줄 때문에 못 갔었다. 며칠 전에 편집장 전화가 왔다. 장시성에, 약 20일 정도, 비용은 잡지사에서 부담하고, 돈을 지급하고, 사진 찍고, 글을 써라. 뭐 대충 이런 말들을 했다. 제안한 여행 기간 중에 다른 스케줄이 있었기 때문에 우선 알았다고 하고 끊었다. 그리고 급하게 연락해서 다른 스케줄을 조금 조정하려고 했는데, 조정이 안 되고 취소됐다. 그래도 선약인데, 많이 미안했다.
시간은 확보를 했으니 다시 편집장과 통화해서 정확한 내용을 물었다. 여행 기간 20일 동안 장시성 대부분 지역을 돌아보고 8만 자 원고를 쓰면 된다. 8만 글자면, 한글 기준으로 50장 정도 되는 모양이다. 날마다 꼬박 두 장씩 써야 하는 분량이다. 그냥 한글로 쓰면 된다는데, 그렇다면 한국에 낼 모양이다. 이 분량으로 책이 되지는 않을 것이고, 분량이 된다 한들 중국 전역도 아니고 장시성 한 곳에 대한 책은 수요도 없을 것인데, 도대체 의도를 파악하기 어렵다. 이야기를 쓰고, 실용적 정보를 보태는 수준에서 해주면 된다는데, 여행 안내서적이야 이미 많고 내 성격이 꼬치꼬치 캐물어가면서 차곡차곡 정리하는 작업에 서툰데, 그리고 그런 작업이라면 별로 달갑지 않은데 어렵게 되었다. 우선 난창.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래서 가능하면 내 호흡에 맞는 여행기를 써야겠다. 여행은 너댓 명이 함께 할 모양인데, 어떻게 그룹이 꾸려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제 잠들기 전에 누워서 여행서적을 폈다. 장시성에 대한 부분을 읽어보았는데 특별히 인상적인 내용은 없었다. 현대중국에 대해 쓸 수 있다면, 모택동과 연결시킬 부분은 많아 보였다. 그 부분이라면 예전에 보아둔 것들도 조금 있으니 어떻게 말을 엮어낼 수는 있겠지만, 문제는 잠재 독자들을 생각한다면, 그들이 도대체 모택동의 신화에 대해 호기심을 느낄 이유가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보이지 않아서 답답하기는 한데, 컴퓨터 앞에 앉아서 고민하는 것의 상당 부분은, 적어도 여행기에 관해서라면 괜한 걱정인 것을 이제 안다. 문장은 길 곳곳에 널려있는 것이어서, 현장에 가야 비로소 보이고 또 현장에 가면 어떻게든 보이는 것들이다. 나는 터벅터벅 걸으며 길에 널린 문장들을 주워담아 오면 된다. 와서 대충 줄 맞추어서 늘어두면 된다.
단체관광 형식은 아니라고 하니, 그에 맞는 준비가 필요하다. 트렁크 끌고 다니며 호텔에서 노닥거리고 가이드 깃발 따라 다니는 여행은 피했다. 우선 장기여행에 필요한 배낭을 사기로 했다. 마침 요즘 암벽등반 때문에 다니는 체육관 주변에는 등산용품 매장들이 여럿이다. 45리터 정도면 무난하다고 하니까, 그 쯤에서 보아둔 녀석으로 사야겠다. 다른 준비물들은 대충 갖고 있으니 어떻게 될 것이다. 장기 여행이라고는 하지만 야영을 하는 따위의 일은 없을 것이니 가져갈 짐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다만 예전 여행기의 경우 아무래도 문장을 만드는 부분에 집중했던 반면 이번에는 사진까지 제대로 된 원고용 사진을 만들어야 하니까 사진 장비를 조금 더 가져가야겠다. 그래 보아야 필드 사진이니 큰 조명들을 갖고 갈 것도 아니고, 그저 렌즈 하나쯤 더 넣고 작은 삼각대를 챙기는 정도다. 스트로보와 필터들도 가져 가야겠다. 풍경사진은 내가 선호하는 분야도, 잘 찍는 분야도 아니어서 어지간하면 나서서 찍지 않는데, 시키니 해야 한다. 해야 하니까, 상업 사진가로서 돈 받고 주문 받은 입장에서 기본적인 완성도는 해내야 한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바쁘겠다.
이 편집장은 예전에 인터뷰 기사를 쓰기도 했는데, 여행을 싫어한다는 여행 잡지사의 편집장이다. 하긴, 이런 식의 여행이라면 어쩌면 생각보다 빨리 질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 다녀 오면 8월이 다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