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은 자란다.
여름이다. 에어컨 바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게다가 편도선이 조금 부은 듯해서 집에서는 창문만 열어두고 있다. 에어컨은 켰다가 껐다가 한다. 맨몸으로 앉아 있어도 덥다. 컴퓨터랑 앰프가 거의 종일 켜져 있으니까 거기서 나오는 열도 만만치 않다. 더위가 목끝까지 차오르는 여름에는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다 털어내고 싶어진다. 가끔 사람까지 털어내게 되는 것이 문제긴 하다만.
면도했다. 깔끔하게 면도한 것은 몇 달만이다. 대충 수염이 자라는 대로 두고, 너무 길면 가위로 정리하면서 지냈다. 어제 밤에 더워서 잠을 설쳤는데, 그러면서 갑자기 답답해졌다. 아침에 새 면도날을 끼우고 싹 밀었다. 다음주 출장 전까지는 날마다 면도해서 좀 가벼워야겠다.
이발도 했다. 머리카락이 많이 길어서 답답했다. 보통 한국에 갈 때 이발하는데 이번에는 좀 오래 안 가서 머리카락이 많이 길었다. 묶고 다니기는 하는데, 답답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샤워하기 전에, 잘 드는 주방용 가위를 챙겼다. 우선 머리를 묶은 다음, 겨우 묶일 만큼만 남기고 나머지 부분을 가위로 잘랐다. 생각해 보면, 기억하는 안에서는 직접 이발한 적이 없다. 어릴 때는 동네 이발소에 다녔다. 또래 중에는 미장원이라고 이름 붙은 곳에 가는 녀석들도 있었는데, 대부분 어머니 손에 이끌려 갔었고, 그 아이들을 보며 이발소에 가는 것이 괜히 남자답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아주 어릴 때는 이발소에 가면 이발의자 팔걸이 위에 나무판자를 올려두고, 그 위에 앉았었다. 언제쯤 나도 이 나무판을 빼고 앉을 수 있을까 조급하기도 했었다.
마산에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자취방에서 10분쯤 걸어내려가면 인상 좋으신 노부부가 있는 이발소가 있었다. 고등학생 머리라고 해보아야 한 가지인데, 그 때는 그 한 가지 안에서도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이 참 여럿이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발할 때마다 어떻게든 조금 달라보이지 않을까 했는데 결과는 언제나 비슷했고, 그 비슷한 머리 모양새가 나쁘지 않아서 그 집을 단골로 삼았다. 고3은 어떤 특권이기도 하고 각오이기도 하다. 아마 두 번쯤 삭발을 했다. 대단한 각오가 있었다기 보다는 그냥 했다. 지금이나 그 때나 머리카락에 별 욕심을 내지 않았다.
군대에 있을 때는 직접 후임들 이발을 해주기도 했다. 군대 머리라는 것이 별 것 없고, 말년쯤 되니 심심하기도 했다. 대원 중에 임의로 이발병을 뽑아서 그 녀석이 보통 중대의 이발을 담당했는데, 이발병이 근무중이거나 하면 대충 손재주 있는 녀석들이 이발을 하기도 했다. 나는 손재주는 없었는데, 보기에 별로 어렵지 않았고, 나중에는 일도 별로 없으니 제법 심심하기도 해서 덩달아 했다. 보통 이발병이 이발을 해주면 고마움의 뜻으로 작은 군것질거리를 주곤 했는데, 나는 후임들에게 요구르트 주면서 제발 내가 이발하겠노라고 말하곤 했다. 바리깡 들고 이리 밀고 저리 밀면 어쨌든 머리카락이 짧아지기는 했으니까. 그러면 꼭 녀석들은 나한테 이발 받은 다음에 이발병 오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다듬고는 했다. 내 요구르트는 안 돌려주면서.
대학을 가고, 군대를 다녀와서 처음 머리를 볶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얼굴살이 없었는데, 말하고 행동하는 것과 섞여서 인상이 너무 강했다. 나는 모르는데 다들 그랬다고 했다. 어쩌자고 처음 머리를 볶았던 것인지 기억나지 않는데, 철사같이 곧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으니 부드럽게 물결치는 머리카락이 한 번쯤 부러웠던 것일 테다. 그렇게 머리를 볶은 다음이었는데, 지나가던 후배가 한 마디 했다.
"어, 선배. 이제 안 무서워 보여요."
아, 파마는 나의 운명이 되었다. 그리고 졸업할 때까지 일 년에 한 두번은 꼬박꼬박 머리를 볶았다. 살짝 염색을 한 적도 있었는데, 파마와 염색을 동시에 하니 머리결이 막막 갈라지는 것이 감당이 안 됐다. 그래서 이후에는 염색을 하지 않았다.
중국에 온 이후, 처음 온 상황에서 아무 곳에나 가서 이발하기가 무서웠다. 그 때 내가 본 것들이라고는 길가에 이발용 의자 하나 꺼내놓고 벽에 거울 걸어둔 다음 이미 회색도 한참 지난 것 같은 흰색 천으로 목부터 감은 후 기계식 바리깡을 들이미는 풍경들이었다. 기계충이라는 것도 생각났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머리카락이 길어졌다. 샤워 안 하고 따로 머리만 감는 일이 없으니까, 긴머리라고 해서 머리 감기가 더 번거롭지도 않았다. 오히려 긴 머리카락이 좋을 때도 있는데, 짧은 머리는 낮잠을 마음대로 잘 수 없다. 꼭 한 쪽이 눌려서 밖에 나가거나 사람 만나면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긴 머리는 묶으면 그만이라서 마음껏 낮잠을 잘 수 있다. 묶은 머리끈 아래로 한 줌쯤 되는 머리카락을 덜렁거리며 처음 집에 갔을 때 부모님은 깜짝 놀라셨고, 집 밖에 못 나가게 하셨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곧장 카드 쥐어주시면서 미용실로 보내셨다. 자르고, 볶고 돌아왔더니 어찌나 표정이 밝아지시던지. 시간이 지나서, 이제 부모님도 어지간한 머리 스타일에는 면역이 되신 듯하다. 한 번은 머리를 안 묶일 만큼 자르고 볶아서 갔더니, 아버지께서
"요번에는 스타일이 좀 다르네?" 하고 마셨다.
이제는 특별히 머리카락에 집착하지 않으니까 때마다 되는대로 깎는다. 그 뒤로 두어 번은 삭발도 했다. 너무 더워서 도대체 머리카락을 감당하기 싫었다. 떼어낼 수 있는 것은 뭐든 치워내고 싶었다. 밀어달라고 말했더니 미용실 사람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제법 목까지 오는 머리였다. 그걸 저기 옆에 서 있는 삭발 아저씨를 가리키며 저렇게 해달라고 했으니. 짧은 머리는 되려 더 자주 이발해야 하고 낮잠이라도 자면 바로 증거를 남긴다. 무엇보다, 이번에도 삭발을 할까 했더니 지난 번 머리를 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말린다. 이상하다. 그 때는 괜찮다고 말했던 그 사람들인데. 완전히 밀어버린 머리카락이 자라서 다시 묶을 만큼 되기에는 2년 정도 걸리는 것 같다.
직접 머리카락을 자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이발할 때가 되면 당연히 이발소든 미용실이든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왜 직접 자를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해봤을까? 가만 보면, 사람마다 머리카락은 비슷한 자리에 비슷한 모양으로 있는데, 그 비슷한 것들 속에서 어떤 차이를 만들어 내려니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또, 어떤 형태도 없이 그저 머리 위에 얹어둔 것 같은 남성들의 고만고만한 머리카락을 보면 어째 좀 아닌 것도 같다. 어쨌든, 기억하는 한에는 처음으로 내 손으로 가위를 쥐고 머리카락 한 웅큼을 잘라냈다. 묶은 후에 남은 부분은 자른 거라서 주로 뒷머리 부분이 잘려나갔다. 짧은 단발이 되었다. 별로 이상해 보이지는 않으니 다행이고, 묶으면 그나마 안 보이니 문제도 아니다. 문제가 되면 또 대순가? 머리카락은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