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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쓴다

살겠다고, 죽을 듯이 먹는다.

폭식. 짐승이든 사람이든 오래 굶주리면 폭식하는 습관이 생긴다고 한다. 언제 다시 먹을 지 알 수 없으니까, 일단 먹거리가 생기면 최대한 입 속에 밀어 넣는다. 살겠다고, 죽을 듯이 먹는다. 얼만큼 소화시킬 수 있을까, 계산 따위는 사치다. 우선 담아 넣어야 한다. 그러면 몸은 냉정하게 딱 가능한 만큼을 소화시키고 나머지는 내친다. 배탈이다.


11, 12월 촬영은 마감이다. 오는 촬영을 막지는 않겠지만, 조바심 내며 일거리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겠다. 이런저런 프로젝트가 이어져서 다 해내려면 많이 바쁘겠다.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고 글도 쓰고 디자인 작업도 해야 한다. 내 몸과 실력과 시간이 얼만큼 감당할 수 있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내 시간과 기술을 현장에서 팔아서 먹고 사는 사람이니까, 딱 몸을 움직인 만큼 번다. 가만 있으면 아무도 돈을 안 준다. 그래서 앞뒤 안 가리고 촬영 스케줄만 비어 있으면 오는 대로 일을 받았다. 후반 편집작업이나 원고 작업 시간 같은 것들은 일정에 안 넣었다. 안 되면 밤새서 해내면 된다 싶었다. 


어제 종일 촬영을 마치고, 오늘 오전 미팅을 마치고, 오후에 잠시 눕는다는 게 저녁이 가까워서야 일어났다. 또 졸린다. 몸이 버거운 모양이다. 그리고 오늘 하겠다고 적어둔 일거리들은 하나도 못 한 채로 수첩에 고스란히 남았다. 


행동은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이어지면 태도가 된다. 폭식하는 습관을 들인 것들은 상황이 개선되어도 좀처럼 먹는 방식을 고치기 어렵다. 일거리 앞에 조급하고 무엇이든 수주하고 보겠다는 절박함은 이제 태도가 되어버렸다. 어떤 작업이든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작가적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라 다음 작업을 받아내야 한다는 일용노동자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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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쓴다

퇴역 선장의 회고





사진관에서 준비했던 5월 가족의 달 이벤트, 그 첫 번째 촬영이 있었다. 두 아들과 딸이 아버지를 부축하고 사진관으로 들어온다. 한 장의 사진보다 한 때의 시간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그리고 이 시간을 통해 돌아볼 수 있도록, 사진관은 질문이 많다. 빛 좋은 곳에 앉아서 아버님께 묻는다.

아버님,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내가 33년 생이예요. 그런데 호적에는 36년 1월 25일로 올렸어요. 그때는 그랬어요. 내가 나이가 들어서 말이 시원찮아요. 옛날엔 안 그랬는데 이제 그렇습니다. 미안합니다.


아버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시고 가끔 엉뚱한 이야기를 하신다고 한다. 당신도 그런 자신을 아신다는 듯, 이야기에 앞서 양해를 구하신다. 문장의 끝까지 또박또박 말하는 모습에서 의식을 붙잡는 그의 노력이 드러난다. 두 아들과 딸은 한편으로 아버지를 부축하고 한편으로 아버지의 말에 살을 보탠다. 큰아들에게 어릴 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물었다.


아버지는 해외에서 배를 타셨어요. 그래서 1년에 한 번쯤 집에 오시고는 하셨죠. 아무래도 아들의 애정과 딸의 애정은 느낌이 좀 다르죠. 저도 어렸을 땐 집 밖으로 돌아다니기 바빴으니까요. 어렸을 때 방학 때면 아버지 배 타고 연안을 따라다녔던 기억은 나요. 너도 있었지 않냐?


이야기는 딸에게 넘어간다.


나도 방학 때 아빠 배 탔던 기억은 나요. 한 번은 바다 가운데였는데 아빠가 나를 바다에 빠트린 적이 있었어요. 나는 수영을 못 했는데, 그때 아빠랑 기관장 아저씨랑 선원분들이 함께 막 웃으셨어요. 그러니까 나는 물에 빠지긴 했지만 ‘이게 위험한 상황은 아니다. 나는 안전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무섭진 않았다는 기억이 있어요.


막내는 조금 다르다. 해외를 다니시던 아버지는 막내가 대학생일 무렵부터 한반도의 물길을 주로 다니셨다. 그래서 어릴 때 기억 중 대부분은 엄마가 차지한다. 다만 막내니까, 용돈을 참 많이 주셨던 아버지의 기억은 선명하다.


아버지는 글쓰기를 즐기셔서 끊임없이 편지를 적어 보내셨다. 당신의 아내에게는 연애편지 같은 애정의 편지를 계속 썼고, 한참 자라는 딸 단속도 이틀에 한 번 꼴로 보내는 편지로 대신했다. 딸은 쓸 말도 없는데 매번 써야 하는 답장이 늘 힘겨워서 편지 받는 일이 버거웠다고 한다. 땅에 발 디디고 사는 딸은 더 적을 말이 없는데, 반복되는 수평선만 보았을 아버지는 무슨 하실 말씀이 날마다 새롭고 끝없었을까? 아버지는 세상의 바다를 떠도는 선장 생활을 마치며 그동안 받았던 편지를 모두 갖고 오셨다. 그리고는 그동안 당신이 쓰셨던 편지를 따로 모아 놓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참 서운해하셨다고 한다. 딸의 말이다.


세 남매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동안 아버지는 조는 듯 고개를 숙이고 햇볕 아래 가만 앉아 있다. 2015년에 아내가 죽은 후 그는 조금씩 기력을 잃었다. 몸의 기력은 마음의 기력이기도 했던 것일까. 그는 치매 초기를 앓고 있다. 최근의 일부터, 먼 사람부터 하나씩 잊어간다. 그래서 아버지의 기억 중에 생생한 것은 지난 바다 위의 풍경이고, 세 자녀의 이름이다.


의자에 아버지를 앉히고 조명과 카메라를 맞추고, 리모컨을 넘겼다. 매일 보아서 더 이상 낯설게 없다 싶은 얼굴도 카메라 뷰파인더 안에 들어가면 새삼스러운 얼굴이 된다. 부모님을 조금 다른 거리에서 바라보기. 이번 이벤트에서 의도한 것이다. 아버지의 포즈를 고치며 세 자녀가 돌아가며 리모컨을 잡는다. 카메라는 넘겼으니 나는 계속 묻는다.


아버님, 다시 옛날로 돌아가서 다른 일을 해 볼 수 있다면 어떤 걸 하시겠어요?
모자 쓰는 일.
아니, 아빠. 어떤 직업을 갖고 싶냐고? 


아빠가 질문을 잘 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한 딸이 말을 고쳐 물었다. 그는 손을 들어 쓰고 있는 모자를 가리키며 다시 말했다.


이 모자 쓸 거야.



세상을 항해하는 선장의 모자. 아버지의 뜻은 확고했다. 다시 젊어지고 다시 직업을 가질 수 있다면 다시 이 모자를 쓰고 바다로 나갈 거다. 그는 도대체 바다의 무엇이, 바다의 어디가 그렇게 좋았을까? 



그럼 다시 배를 타시면 어디를 가 보고 싶으세요?
여기저기. 안 가 본 데 다 가고 싶어. 너하고 안 가 본 데.


 영국 여자에게 모자도 선물 받고 소련 여자에게 손톱깎기도 선물 받으며 잘 나가던 선장은 이제는 고개도 들기 힘든 기력으로, 여전히 바다가 좋다고, 시원해서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 너, 딸과 함께 못 가 본 온갖 곳을 가고 싶다.



여전히 아들, 딸이지만 이제 큰아들 나이도 환갑이다. 맞잡은 네 명의 손은 다 같이 주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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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일지

어쩌다가, 전시 일정이 잡혔다. 공간은 생겼지만 혼자 북을 치고 장구를 두드려야 하는 개인전이다. 오래 생각했던 아이디어 중에 하나를 꺼내 쓰기로 한다.


무엇이든 이름을 걸고 타인의 시간과 수고를 붙잡아 두려면 의외성과 개연성이 담겨야 한다.


1.

낚시바늘과 낚싯줄을 이용해서 돌을 매달았는데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바늘이 휘어졌다. 근처 낚시점에 가서 대형부시리를 잡는 14호 바늘을 사 왔다. 더 큰 바늘은 어선을 상대하는 어구점에 가야 살 수 있다고 했다. 바늘의 끝을 살짝 잘라내고 와이어에 연결했다. 돌의 무게감을 없애기 위해서.


2.

전체를 약간 뒤에서 비추는 라이팅 하나, 양변 라인을 보여주는 라이팅, 필요한 세부를 밝히는 라이팅, 배경을 구분하는 라이팅, 마지막으로 돌의 인상을 결정하는 라이팅을 세팅했다. 


3.

처음 시도 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곳곳에 부족한 것이 보인다. 우선 해결할 것은 주인공과 배경의 분리가 지나치게 단호하다. 50mm 렌즈를 썼는데, 개조한 중형바디에 연결해서 틸트시켜 봐야겠다.


4. 

돌은 검어서 혹시 디테일이 먹힐까 걱정했다. 그 걱정 때문에 결과적으로 전체 이미지가 다 보인다. 너무 보인다. 사람의 얼굴에 있는 그늘이 안 보인다. 


5.

강요배 선생님을 인터뷰할 때, 선생님께서 지나가듯 하신 말씀이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정말 스스로 인정할 만한 작품을 하면, 결국 사람들도 알아보더라 하셨다. 반대로, 대충 눈속임 하려 들면 그것도 드러날 것이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 지 몰라도, 최소한 나를 납득시킬 수 있는 사진들을 걸어야겠다.


6.

무슨 사진이든 모델은 중요하다. 한 동안 바닷가에 돌 찾으러 다니겠다.


7.

전시의 주제는 고래를 위한 포트레이트.

그 연작 중에서 이번 전시의 소재는 제주돌이다.



8.

조환진 선생을 만나야겠다. 내가 아는 한, 그 분만큼 제주돌에 대해 말해 줄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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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몽유적지, 강태영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항몽유적지가 있다. 몽골의 고려 침략에 맞서 싸운 삼별초가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곳이다. 흙을 쌓아올린 토성과 주춧돌만 남은 건물의 유적이 있다. 계절마다 여행객이 많이 찾는데 그들이 유난스러운 역사의식이 있어서는 아니다. 항몽유적지 곳곳에는 계절마다 색색의 꽃밭이 펼쳐지는데 여행객들에게는 이만하면 아주 훌륭한 사진 촬영 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예쁜 풍경을 찾아온 사람들은 그 땅에 깃든 이야기를 멀게든 가깝게든 만난다. 고리타분한 역사의 흔적을 어떻게든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려는 노력이 보기 좋다.


항몽유적지가 이렇게 변한 것이 오래된 이야기는 아니라고 한다.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와 노력이 있었겠지만, 그 가운데는 강태영이 있었다. 계장님, 소장님, 선생님 등 여러 호칭으로 불렸던 그는 매번 항몽유적지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보태면서 지금의 그곳을 설계했다. 해마다 이번에는 어느 밭에 어떤 꽃을 심을 지, 길 건너 예쁜 참빛살나무 숲을 항몽유적지 이름으로 구입해서 계속 유지할 수 없을 지, 포토존을 어떻게 만들어 사람들을 좀 더 불러모을 수 있을 지, 토성 둘레길을 둘러보는 답사코스를 좀 더 보강할 수 없을 지, 플리마켓을 유치해서 재미난 이벤트를 만들 수 없을 지, 항몽유적지를 좀 더 잘 보여주는 사진을 어떻게 찍을 지, 그리고 무엇보다 어떻게 이 땅에 깃든 정신을 더 널리 알릴 수 있을 지 고민했다. 


항몽유적지 주차장에서 북쪽 바다 방향으로 내려가면 작고 낡은 창고 건물이 하나 있다. 언덕 정비사업을 진행할 때 본래 철거하려던 것을 살렸다. 그리고 간단히 정비한 후 내외부에 항몽의 느낌을 전하는 글귀를 적었다.


더는 물러설 곳 없는 섬 제주,

두려움과 희망은

늘 바다 너머서 밀려왔다.


그날 하늘은 파랗고 땅은 붉었다.

그리고 자당화는 고왔다.



몽골군이 바다를 건너오는 그 날의 풍경을 적은 글귀는 강태영이 지은 것이다.


그를 오래 알고 지낸 것은 아니다. 많이 만나거나 길게 함께 머문 것도 아니다. 프로젝트 제안 때문에 처음 만났고, 사진관에서 진행한 사진수업에 참여하면서 함께 이야기하고 사진을 찍으러 나가고는 했다. 항몽유적지 산책 때 잠시 이야기 나누거나 그가 올리는 블로그 포스팅을 보면 대충 짐작은 된다. 그는 진심으로 일하는 사람이고 군더더기가 없는 사람이고 또 실력있는 사람이었다. 가까운 곳에 있으니까 종종 뵙고 여러 가지는 배울 수 있겠다 싶었다. 


늦은 밤에 자려고 누웠다가 부고를 들었다. 오래 알고 지낸 것이 아니어서 어떤 상황인지 몰랐다. 예전부터 아프셨던 모양이다. 사진 수업 중반 이후에 입원하셨는데 얼른 나으셔서 다시 오시라고 통화했었다. 수업이 모두 끝나고 한참 뒤 항몽유적지 행사장에서 만났는데 많이 수척하셨다. 말랐기는 해도 어떻든 병원 생활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오시는 모양이다 싶었는데.


컴퓨터를 뒤져서 외부촬영 수업 때 무심코 찍어두었던 사진 두 장을 찾았다. 작게 프린트해서 장례식장에 있는 가족에게 전했다. 선생님은 아프신 중에도 반치옥사진관의 사진수업에 대해 여러 번 말씀하셨다고 했다.


그러셨구나.



세상을 조금 바꾼 또 한 분을 기록해 둔다.


강태영 선생, 돌아 가시다.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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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D Reply

    비밀댓글입니다

-사진을 쓴다

저 표정은 얼마나 간절한 말을 하고 싶었을까

모녀가 와서 사진을 찍고 갔다. 엄마는 할머니가 되었고 딸은 마흔이 가깝다고 했다. 늦은 오후 빛이 예뻤다. 마당에 배경천을 걸고 찍었는데 웃자란, 미처 자르지 못한 잡초가 썩 멋있는 바탕이 되었다.


마당에서 찍은 사진은 비교적 쉽게 골랐다. 예쁜 표정들이 많아서 그 중에 가장 사랑스러운 것으로 정했다. 문제는 스튜디오 컷이었다. 흑백 사진  두 장을 열어놓고 한참을 고민했다. 두 사람이 마주보고 환하게 웃는 사진이 있다. 그리고 한 장은 엄마가 웃고 딸은 그런 엄마를 지긋이 내려보고 있는 장면이다. 아, 어떻게 하나. 당장 보기에는 함께 웃는 사진이 좋을 것 같은데 두 번째 사진에서 좀처럼 손을 못 떼겠다. 


욕심대로 하기로 한다. 첫 장은 컴퓨터 속에 묻어두기로 한다. 사진 속에 어떤 표정은, 평소 말로 하지 못 했던, 드러내지 못 했던 감정이야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 표정은 드러내지 못 해도 얼마나 간절한 말을 하고 싶어했을까 싶다. 


나는, 당신의 저 표정을 꼭 전해주고 싶다.


사진은 초상권 때문에 올리지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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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쓴다

어쩌다가

사진을 찍을 때는 언제나 최종 결과물을 염두에 두지만 딱 예상한 만큼의 이미지로 끝나는 촬영은 드물다. 그보다 못한 경우도 없지 않고, 더 많은 경우는 생각하지 못했던 이미지를 만들어 내면서 촬영은 끝난다. 제법 잘 나온 것 같은 사진들의 상당수는, 얻어 걸린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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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쓴다

서루. 윤서진 프로필



밀린 작업 이야기를 씁니다. 우선 프로필 작업입니다.


윤서진은 학생이면서 자신의 제품을 만들어 파는 디자이너이고 사업자입니다. 그의 작업 결과물은 주로 인스타그램에 올라가는데, 인스타를 비롯해서 필요한 곳에 쓸 수 있는 프로필 사진을 의뢰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번 촬영은 아빠의 선물이었다고 하더군요.


서루.라는 그의 브랜드는 한 명 한 명에게 꼭 맞춘 핸드메이드 의류와 패브릭 소품을 만들어 줍니다. 인스타에 올라오는 작업 결과물들은 봄날 새벽에 꾸는 꿈처럼 좀 아련하고 빛이 넘치는 느낌입니다.


프로필 사진은 증명사진과 용도가 조금 다릅니다.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정하고, 표정이나 포즈, 배경이나 조명을 통해서 그 느낌을 살려내려고 애씁니다. 윤서진의 작업과 닮은 사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서루의 제품을 구입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나중에 윤서진의 사진을 볼 때, 

‘아, 이런 사람이어서 이런 옷을 만들었구나’ 

싶게 브랜드와 어울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빛이 넘치는 사진을 제안하고 컨셉을 잡습니다.


한 컷은 실내에서, 한 컷은 야외에서 찍기로 했으니까 일기예보를 살펴서 날짜를 확정합니다. 






빛이 넘치는 사진을 위해 조명 위치와 렌즈 각도를 맞춰서 빛의 일부가 렌즈로 바로 닿도록 했습니다. 여러 방향으로 바라본 사진들 중에 최종 컷은 이렇게 결정!


다음은 야외로 나갑니다. 서루 브랜드와 잘 어울려야 하니까, 실제 작업에 쓰는 천 몇 장을 가져와 달라고 미리 부탁해 두었습니다. 아직 재단하지 않은 천은 큼지막한데 이것들이 바람에 날리는 순간이 셔터를 누르는 타이밍입니다. 사진을 만드는 것은 바람이고, 저는 셔터만 누릅니다.





촬영은 한 시간을 조금 넘겨서 마쳤습니다. 최종적으로 선택한 사진은 작게 프린트해서 흰 종이액자에 담겼습니다. 의도대로 잘 쓰이는 사진이 되면 좋겠습니다.






.

서루의 작업은 그의 인스타에서 볼 수 있습니다.

insta. saint_seo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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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쓴다

노회찬

바르고 선한 정치인이 또 한 명, 스스로 죽었다. 뵌 적 없지만 친근한 분이다. 며칠 동안 여러 생각이 오간다. 또 한 분에게 큰 빚을 졌다. 부채가 늘었다. 


자녀가 부정입학했다는 sns 유언비어에 대해 해명하면서, 수배 생활과 정치 생활로 때를 놓쳐 아이가 없다고 말하는 에피소드를 말해주니 아내가 운다.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그 말이 와닿는 모양이다. 그의 죽음 때문에 밤에 잠을 잘 못 잔다는 지인은 사는 방향에 대해 다시 고민한다고 했다. 


음,

그가 정의당에 남겼다는 유서를 보면서 그의 결정을 조금 짐작했다. 자식 대신 키워온 진보정치가 다시 외면받을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결정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 


허물은 자신에게 묻고 계속 정의당을 지지해달라는 마지막 부탁을 들었다. 큰 빚을 졌으니까, 그의 마지막 부탁은 어떻게든 좀 기억하고 들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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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돈

세 살 버릇이 여든 간다는데, 정돈하는 버릇을 만들지 못 했다. 공간의 정돈보다 어려운 것은 생활의 정돈이다. 해야할 일은 언제나 난삽한데 당장 눈앞에 닥친 것들이 일의 순서를 결정한다. 때를 놓치는 일이 많고, 엉켜버리는 일이 부지기수고, 완성도에 미치지 못 하는 일이 또 제법 된다.


몇 번 시도해 보았지만 실패만 계속하고 있다. 다만 절박함은 한결같다. 남은 인생을 이렇게 무질서하게 계속 살 수는 없다. 될 때까지 정돈을 시도해야 한다.

-사진을 쓴다

OSHADAI 라는 옷이 있는데요,





OSHADAI라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중국 브랜드이고요. 매장은 상하이에만 있습니다. 작은 독립 브랜드죠. 주로 옷을 만들고, 주방이나 거실에 쓰는 패브릭 제품이나 소품을 만듭니다. 한글로는 오사다이. 중국어로 쓰면 哦沙袋입니다. 哦는 '오!'라는 감탄사가 되고요. 사다이沙袋는 모래주머니라는 뜻입니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작은 모래주머니, 바로 그겁니다. 그러니까, 오!모래주머니! 라는 브랜드입니다.


한 명의 디자이너가 모든 것을 디자인하고, 고향의 작은 공장에서 수공예로 제품을 만들어 냅니다. 디자이너가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영감을 수집하고, 유럽과 일본 등지에서 패브릭을 구해 오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오사다이의 디자이너를 인터뷰하는 잡지의 에디터와 함께 포토 자격으로 갔었습니다. 그리고 한참 뒤에 연락 받았습니다. 제가 찍은 사진이 참 마음에 들었다고, 기존에 찍혔던 다른 많은 잡지의 사진과 달랐다고. 그러니까 자기 브랜드 화보 작업을 같이 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그게 벌써 몇 년 전입니다. 그 뒤로 우리는 1년에 두 번씩, 시즌 화보를 찍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는 이야기 나누는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시즌 촬영이 끝나면 보통 찜해 둔 외투를 아내에게 선물합니다. 물론 조금 할인은 받습니다. 소재가 무척 좋아서 입고 있으면 보기 좋습니다. 


대규모 브랜드가 아니어서 작업의 자유도는 훨씬 큽니다. 우리는 함께 모여서 아이디어를 산처럼 쌓아댑니다. 그렇게 쌓인 생각의 산에서 한 삽씩 퍼내면서 꼭 찍어야할 사진, 꼭 필요한 느낌만 남깁니다. 물론 현장에서 찍다보면 어느새 생각도 못한 계곡도 생기고 숲도 생기는 건 어쩔 수 없고요. 


나중에 한 마디 덧붙이더군요.


네 사진, 참 좋아.

그런데 그거 좋아할 사람, 많지 않을 걸?


칭찬인 지 욕인 지, 안타깝게도 지금까지는 대충 맞는 말 같네요.


오사다이의 여러 사진에 대해 나중에 더 적을 일이 있겠지만, 우선 오늘 적는 것은 2017 S/S 시즌 작업입니다. 2016년 겨울에 찍었으니까 한참 전이네요. 보통 한 시즌에 20장 조금 넘는 사진을 씁니다. 찍은 사진들 중에 몇 번 걸러내고 나면 그래도 200여 장 넘게 남는데, 그 사진들을 모두 프린트해서 펼쳐놓고 같이 스토리를 짜면서 남길 사진과 순서를 결정해 갑니다. 보여줘야 되는 옷, 드러나야 되는 디테일이 있으니까 선택의 기준은 냉정하고 잔인합니다.


이번 시즌에는 유난히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따로 있었습니다. 찍어두고 보니 그렇더라구요. 그래서 최종 인쇄 선택과 상관없이 별도의 스토리라인 하나를 적고 싶었습니다. 


저기, 나 따로 사진 좀 추려서 블로그에 올려도 될까?

그럼, 물론이지.


그래서 골랐습니다. 물론 이 대화는 몇 달 전이었고요. 하하.


덧붙일 이야기는 없습니다. 


다만, 사진가로서 이야기 하나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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