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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낼 것이 있는 얼굴이 좋다


















작업실은 아직 지어지지 않았고, 밥벌이 사진은 아직 제주에서 할 게 없다. 어슬렁 어슬렁 탐나는 얼굴만 찾아 다닌다. 이 얼굴들을 모아서 개인작업으로 해볼까 싶다.


무엇인가 꺼낼 것이 있는 얼굴이 좋다. 이미 다 드러난 얼굴은 내가 끼어들 공간이 없는가 싶고, 별다른 흥미가 안 생기는 얼굴은 또 그대로 욕심 안 난다. 드물기는 해도, 나만 꺼낼 수 있는 얼굴이 종종 있다.


가마가 있는 도예가의 작업실에 다녀왔다. 보물처럼 모셔둔 흙더미, 잘 못 구워져서 바닥에 붙어버린 접시, 다음 번 불 넣을 때 쓸 장작 더미, 수학기호처럼 칠판을 가득 채운 메모가 있었다.


여러 도자기 중에 하필 옹기를 선택한 작가는 옹기처럼 말했다. 말은 수식어가 적고 매끄럽게 다듬지 않아서 옹기 표면처럼 덤덤하고 까끌했다. 가을 빛에 잘 마른 질감이었다. 장인과 작가의 경계에 대해, 작품과 상품의 균형에 대해 마침 내 상황과 겹치는 부분도 있어서 여러 가지를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못 했다. 다음에 만나더라도 굳이 따져 묻게 될 것 같지는 않다. 답은 각자 찾자. 


동그란 테 안경을 쓴 얼굴을 무심한 척 자세히 살폈다. 됐다, 저 얼굴, 할 수 있겠다. 명함을 건네고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어떻게 찍을 지는 안 떠오르지만, 얼굴 하나 모아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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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조용한 방이다.



날은 아직 춥다. 아침 저녁이 쌀쌀하다. 요즘 매주 서너 번, 새벽 운동 간다. 제주종합운동장에 있는 야외인공암장에서 경희와 만나서 한 시간쯤 벽을 오른다. 아직은 홀드 잡을 때마다 손을 호호 불어야 한다. 하지만 해뜨는 시간이 조금씩 당겨지고, 운동하는 중에 어느새 날은 밝아서 맑은 날에는 벽 위부터 천천히 따뜻한 아침 빛이 닿는다. 좀 더 지나면 시원한, 그리고 좀 더 지나면 더운 새벽 운동을 할 수 있겠다.


새 차를 계약했다. 얼마 동안만 타자고 맘먹고 구입한 낡은 중고 자동차가 오늘 새벽에 드디어 탈났다. 시동이 안 걸려서 운동 못 갔다. 보험사를 부르고 어찌저찌해서 겨우 마루 어린이집 출근은 시켰다. 오래 못 버틸 걸 알겠다. 더는 안 될 것 같아서 전기자동차를 예약했다. 드림카를 산 것도 아니고, 은행 빚을 얻어 사는 것이고, 당장 손에 쥔 것도 아니니 별다른 감흥은 없다. 큰 지름 뒤에 아무 감흥이 없다는 사실이 어째 서글프다.


새 대출을 받았다. 다행스럽게도 집지을 땅값이 올라서, 얼마간 대출을 더 받을 수 있었다. 건축 견적을 따져보면 여전히 빠듯하다. 


네이버에 새 블로그를 만들었다. 아내와 함께 운영할, 내 제주 사진관 블로그다. 이런 저런 메뉴를 만들었다. 글쓰기는 참 편하게 만들어 놨더라. 그러면서 지금 쓰는 개인블로그에 대해 생각했다. 이 블로그는, 작고 조용한 방이다. 나는 이 방에서 가능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내 작은 이야기를 조근조근 할 것이다. 굳이 대상을 생각하며 테그를 달거나 존대를 하지 않아도 된다. 가만가만, 적을 것이다. 고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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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입감자 M/D Reply

    작고 조용한 방에 불쑥 들어와서 죄송합니다.
    현재 중국에서 거주하고 있으나 제주도로의 귀국을 고민하던중 반치옥님의 글과 사진들을 봤습니다.
    여러가지로 마음이 복잡한 상황에서 님의 흔적들이 제게 큰 용기를 주었습니다.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 반작 M/D

      안녕하세요. 이 댓글을 보실 지 모르겠지만,

      작고 조용한 방에 놀러오셔서 반갑습니다. 이런 안부라면 언제든 환영이지요.

      제주도로의 귀국... 반갑네요. 언제쯤 오시나요? 저는 여름쯤이면 집이 다 지어집니다. 놀러오세요. 맥주 한 잔, 차 한 잔 드릴게요.

  2. 수입감자 M/D Reply

    댓글 고맙습니다.
    빠르면 올해 하반기 늦어도 내년초에는 귀국하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물론 그전에라도 제주도에 갈 일이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꼭 뵙고싶네요.

    제 귀국결정에 반치옥님의 역활이 아주 컷기에, 맥주든 차든 술이든 제가 사야죠.

    아니면 혹시 상해 출장오실 계획이 있다면, 제가 찾아뵐 수도 있겠네요.
    저는 강소성 남경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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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배 선생님을 소개시켜 주세요.





인상적인 공연을 보거나 특별한 이야기를 듣거나, 좋은 음악을 듣거나 깊은 감동을 받으면, 


아, 저 사람 꼭 찍어보고 싶다.


생각이 든다. 내가 찍으면 저 사람 참 특별하게 찍어낼 수 있는데. 나만 찾아낼 수 있는 윤곽과 표정이 있을 텐데. 생각이 든다. 찍고 싶다는 갈증을 느끼면서 나, 점점 진짜 사진가가 되어가는 모양이다.





강요배.


찜했다. 처음 그림을 본 게 상하이 학고재에서 있었던 전시였다. 벽 하나 통째로 채운 바다 그림이었다. 마침 제주도 이주를 준비하던 때였으니까, 제주도에 가면 꼭 만나보고 싶다, 생각했다. 그러다가 이사 준비로 잠시 제주에 들렀을 때 마침 도립미술관에서 강요배 개인전이 있었다. 한쪽에서 화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었는데, 화가는 바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작업실을 두고 있었다. 제주 4.3을 다룬 그의 초기 작업도 봤다. 바다로 걸어가는 저 얼굴을, 느긋하게 한 일년쯤 따라다니면서 찍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빈 캔버스 앞에서 찍고, 물감을 개고 있을 때 찍고, 전시 준비중인 텅빈 갤러리에서 찍고, 산책가는 바다에서 찍고, 사나운 파도 앞에서 찍고, 물에 반쯤 담궈서 얼굴만 내놓고 찍고. 혼자 이런저런 구도를 상상하고 한 장 마다 어울리는 조명을 세웠다가 지웠다가 했다.


강요배를 취재해서 글쓴 사람을 발견해서 불쑥 연락했다. 


- 강요배 선생님을 소개시켜 주세요. 저는 사진찍는 사람인데요, 꼭 찍어보고 싶습니다.

- 아마 직접 연락하시는 게 나을 겁니다. 제주 화단의 어른이시라 그분 의견을 여쭤얄 겁니다.

- 건너건너 소개받으면 좀 쉽게 허락하실 줄 알았지요. 네, 알겠습니다.


대화는 대충 이렇게 끝났다. 장비는 상하이에 있고 찍고 싶다는 생각 뿐 찍어서 어디에 쓸지 생각도 없으니 당장에는 기약이 없다. 그래도 꾸깃꾸깃 접어 셔츠 윗주머니에 넣고 잊은 메모지처럼, 언젠가는 꼭 찍는다. 그런 그림을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내가 끝내주게 찍어낼 수 있다. 그거 하나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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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멜랑콜리 M/D Reply

    바다가 있어 그것을 그리고 싶고 그래서 그린 사람이라면
    정말 사진에 담고 싶은 피사체가 있어 그것을 찍고 싶어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을까요?
    화백의 그림과 그의 사진이 콜라보되는 전시회도 멋지겠네요.

  2. 수입감자 M/D Reply

    지난 설에 한국 고향에 갔을때 20여년전에 구입했던 강요배님의 화집을 들고 왔습니다.
    제주의 자연을 그림 화집입니다.
    강요배 선생님에 관한 얘기가 나와서 반가운 마음에 댓글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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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재간

소소재간




친구의 작업실 겸 작은 매장이 문을 열었다. 소소하게 떡을 마련해서 동네 이웃들에게 돌리고 치열하게 만든 소소한 것들이 판매 테이블 위에 자리를 잡았다. 며칠 전 갔을 때만 해도 워낙 진도가 안 나가서 이게 도대체 약속한 날짜에 될 일인가 싶었는데, 둘은 어엿하게 예고한 날짜에 문을 열었다. 며칠 밤을 새웠겠지만.


그래피티 작업을 하던 한디와 옷을 만들던 아내는 제주를 기억할 만한 작은 것들을 만들고 모아서 가게를 열었다. 자신들처럼 수줍게, 가게 이름도 소소.한 재간.이란다. 예쁜 이름이다.


이 섬은 멋지고 독창적인 사람들이 많이 모여든 곳이니까 그런 사람들을 닮은 가게도 많다. 그것들 모두 제 색깔로 빛났으면 좋겠다.  제주 정착 넉 달 만에, 나도 지인 가게라고 소개할 만한 곳이 하나 생겨서 좀 뿌듯하다. 한 뼘쯤 더 제주사람이 된 것 같아서.


개업축하하러 가서 나는 잡동사니를 넣어다닐 작은 천가방을, 아내는 아이패드를 넣을 파우치를 샀다. 마루는 개업 파티용으로 준비해 둔 사탕을 여러 개나 먹었다.


소소재간. 소소한 빛들이 오후마다 재잘거리기를 빈다.


- 귀덕사거리에서 보면 그래피티로 벽을 채운 가게가 보인다. 당근케익 가게 옆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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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느리게 가는데 세월은 참 빨리도 간다.






얘야, 시간은 느리게 가는데 세월은 참 빨리 간다.


백발의 할머니는 이제 가끔씩은 치매 기운도 있다고 했다. 마냥 꼿꼿해 보이시는데, 어떤 날은 하루 열두 통도 넘게 전화하신다고 했다. 마침 찾아뵈었을 때는 가만 방에 앉아 계시다가 우리 일행을 보고 말씀하셨다.


시간은 느리게 가는데 세월은 참 빨리도 간다. 사는 게 그렇다. 


아직 세월을 살아보지 않은 나는 다만 그 말이 아름답게만 들렸다. 


그러게요, 할머니. 여전히 참 정정하세요. 백발이 보기 좋아요.


아름다운 말을 잊을까 봐서, 돌아나와 얼른 메모장에 받아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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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18

1월18일 페이스북 메모를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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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비행기로 도착해서 택시 타고 집에 도착했다. 아내는 아직 밤 운전이 서투니까. 아내가 잘 교육시켜서, 문 열자마자 마루는 달려와서 안겼다. 새로 사 온 작은 자동차를 꺼내서 잠시 점수를 땄다. 와인레드 색깔이 매력적인 12cm 맥퀸 자동차다. 마루는 이게 뭐가 좋은 건지 모른다. 타오바오를 다 뒤져도 이 사이즈에 이 색깔은 하나 밖에 없었는데. 너는 아직 안목이 없다! 마루는 방으로 가서 갖고 있던 장난감들에게 새 장난감을 인사시켰다. 식구가 늘었다.


아이가 잠들고, 아내와 도란도란. 지난 열흘 넘는 시간 동안 출장 이야기도 하고, 만났던 사람들, 새로 한 생각들을 이야기했다.


없는 동안 바람이 빠져버린 자동차를 수리해야 하고 집 짓는데 필요한 사전 작업을 해야 하고 인허가 문제도 챙겨야 한다.


집 오니까 참 좋다.

다시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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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14


1월 14일. 페이스북 메모를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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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한 가지 통로만 가지는 것이 더 멋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이렇게도 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할 수 있는 사람 말고, 자신이 지닌 단 하나의 수단으로 밖에 전할 수 없는, 그래서 그 하나의 수단에 절대적으로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작가가 더 멋있다.


그 하나의 수단을 빼면 불구에 가까워서 차라리 안스럽다. 안스러워서 아름답고 멋있다. 여러 예술 장르를 넘나드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작가상은 아니다. 내 기준에서 보면 그들은 엔터테이너에 가깝다.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작은 창문만 가진 사람. 그 작은 창문으로 어떻게든 바깥을 보고 바깥에 소리치려는 작가의 절박함은 진심일 거다. 그런 작품을 듣고 보는 마음이 어찌 행복하지 않을까.


전인권의 노래 부르는 모습이 점점 힘겹다. 말도 점점 더 어눌해 진다. 그 어눌한 몇 마디 말을 마치고 노래를 시작할 때, 절박하고 절대적인 아름다움이 그에게 깃든다. 아, 예술가여.


어르신, 오래 건강하시라. 부디.


오랜만에 간 난징은 마침 날씨가 좋았다. 클라이언트는 준비가 덜 됐고, 나는 장비만 남겨두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다음주에 다시 가서 찍기로 했다. 기차 타고 오가는 시간이 휴식같아서, 추가촬영 요구를 가볍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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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08



낯선 것을 보여주는 사진은 시선을 끈다. 오지의 풍경, 이국의 사람, 갈 수 없는 곳을 찍은 사진은 그 내용으로 충분히 신선하다. 보는 재미가 있다.

낯설게 보여주는 사진도 시선을 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익숙하다고 믿었던 일상의 풍경이 한 장의 사진 속에서 생소한 대상으로 바뀌어 있을 때, 낯선 인상으로 드러날 때, 관람자의 당연함은 흔들리고 즐거운 충격을 받는다.

사진가는 다양한 방식으로 ‘낯설게 보여주기’를 시도한다. 카메라와 렌즈의 다양한 효과를 활용하거나 인상적인 빛을 발견하거나 때로 만들고 어울릴 수 없는 것을 한 화면에 조합하거나 시선이 포착할 수 없거나 포착하지 않는 순간을 노리기도 한다. 어떻게든 인식에 대한 기존의 공식을 깨려고 애쓴다.

사진가는, 당신의 확고한 질서에 균열 하나 내겠다고 악을 쓰는 악동이다.

뭐, 사진가 뿐이겠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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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07

주말이어서 아침 지하철역이 널널하다. 텅 빈 통로를 지나는데 여자 한 명이 내 앞을 가로질러 간다. 의식하지 못 했다가, 향기가 나서 알았다. 꽃향이다. 주말 아침부터 단장하고 저 사람은 어디로 가나.

외모와 장식에서부터 화려한 사람보다는 수수한 듯 차린 사람이 뿌린 향을 맡을 때 더 행복하다. 의외의 인상이 좋아서다. 수수함 속에 번져나오는 향은 하나의 점으로 상대에게 닿는다. 화려한 사람의 향수는 그 화려한 장식 가운데서 살기 위해 치고 박는 것 같아서 처절해 보인다. 덜 예쁘다. 파트라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를 읽으면서 냄새의 절대적인 영향력과 파괴적인 힘을 처음 의식했었다. 지나치면 좋을 게 없다는 말은 여기에도 통한다.

좋은 향을 뿌리고 길 가는 여자는 세상에 이로운 사람이다. 갑자기 맡는 향기는 건조한 걸음을 순식간에 화려한 산책길로 바꾼다. 향기는 지난 기억들 중에 좋은 것들만 끄집어 낸다. 잠시동안 나는 행복하고, 참 고마워서 속으로 인사한다. 고맙다, 여인아.




20년 좀 안 된, 중국에 처음 도착했던 날의 향기를 기억한다. 상하이 홍차오 공항 바깥, 버스 주차장이었지 아마. 사실 그 향은 잊었다. 다만 그 향을 맡았던 때의 인상만 남아 있다. 뿌린 지 한참 된 향수처럼 흐릿하기는 해도.
불쾌하지 않았다. 제법 낯설고, 신선했다. 아, 중국은 이런 냄새가 나는 곳이구나 싶었다. 그 뒤로도 한참동안 중국에 돌아오면 여권에 입국도장 찍듯 그 향을 찾았다. 반가움과 안도가 섞인 냄새였다. 한국이 편하지 않고, 어서 빨리 다시 도망치고 싶었던 때. 누구에게나 언제쯤은 있었을 것 같은 그런 때가, 내게는 그때였다.

나는 겨울에 따뜻하고 화려한 향을, 여름에는 시원하고 직선적인 향을 뿌렸다. 막 뿌린 향보다, 뿌리고 하루쯤 지난 외투를 다시 걸칠 때 맡는 은은한 향이 더 좋았다.

몇 년 된 클라이언트, 오사다이oshadai를 만날 때 향수를 뿌리지 않았다. 브랜드 성격이 과장하지 않고, 덧대지 않는 것이었다. 오사다이를 운영하는 다이디戴娣는 브랜드와 닮아서 화장도 거의 안 했다. 그런 자리니까, 내가 향수를 뿌리면 너무 튈 것 같아서 오사다이 미팅에 갈 때면 향 없이 갔다. 그때쯤 문득, 향수의 향이 내게 없는 것을 내게 덧대려는 것 같아서 향수를 안 써야겠다 결심했다. 좋은 향은 여전히 좋지만, 아내의 선크림 냄새가 나는 참 좋지만, 내가 쓸 향수는 더 사지 않는다. 겨울에 어쩔 수 없이 바르는 로션은 향이 없는 것으로 따로 구해 쓴다. 몇 년 됐다.

그런데 요 몇 년 여름 땀냄새는 왜 이리 심한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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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06

어제 비행기로 상하이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조금 짧아서, 열흘만에 들어와서 보름 안 되게 머문다. 이 도시는 또 비온다. 여기 없었던 지난 열흘 동안 계속 내리고 있었던 것처럼. 당연하지 않냐는 표정으로 비 온다.

한결같이 비 오고, 골목길이며 낡은 집이며 허물고 짓는 장면도 한결같아서 끊이지 않는다. 어느 날 보면 익숙했던 건물 하나가 반쯤 허물어져 있고, 다음에 보면 그 자리에 번듯한 새 건물이 들어서 있다. 순식간이다. ​

손짓 한 번에 가면을 바꾸는 변검만큼 빠르다.

낯선 곳에 온 여행자는 낡은 골목을 걸으면서 생소한 음식을 맛보고 이방인을 만나고 서툰 잠을 자면서 여행지의 인상을 몸에 새긴다. 몇 장의 사진도 찍는다. 여행자가 낯선 곳을 기념하는 방식은 대게 비슷하다.

도시도 나름의 방식으로 그 자신의 예전을 기념한다. 철거하던 중에 잊어버리고 남겨둔 작은 돌기둥으로, 용케 살아남아서 도로를 조금 먹고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로, 내부를 고쳤더라도 외관만은 100년도 더 된 모습인 주택으로, 사라지는 것만 긁어 모아둔 박물관으로.

여전히 익숙한 상하이지만, 집을 제주로 옮겼으니 이제 이 도시에 오는 것은 형식상 출장이다. 신분이 바뀌니 인상도 변한다. 나는 이 도시를 어떻게 기념해야 되는지 고민이다. 이렇게 몇 해가 더 지나고, 내가 이 도시에 머무는 시간이 조금씩 짧아질 때가 올 텐데.

나는 어떤 길, 어떤 음식, 어떤 사람, 또 어떤 장소와 냄새로 이 도시를 기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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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반작 M/D Reply

    흑백으로만 만들자. 그게 내가 기념하는 방식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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