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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사진가로 돌아간다








에이전시에 보낼 새 포트폴리오를 준비했다. 제품 사진도 있고, 음식 사진도 있고, 호텔 사진도 있지만 그래도 제일 많은 것은 인물 사진이다. 고르고 보면 내가 고른 사진의 인물 표정은 무겁다. 웃고 있어도 바닥은 어두운 것 같다. 나는 무거운 표정이 좋다. 사는 일은 어쨌든 종말로 가는 일방통행이다. 그 사이에서 얻는 작은 기쁨도 크게는 종말의 방향성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웃음 밑에도 어떤 비애는 깔려있는 것이 마땅하다. 역설적으로, 삶이 획득하는 아름다움의 상당 부분은 이 종말을 향하는 일방통행 때문에 생겨난다. 소설 모비딕.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종말을 향하는 비극 속에 담긴 아름다움을 잘 포착했기 때문이다. 이 비극과 아름다움은 수컷에게 어울린다고 한동안 생각했는데, 아마도 모든 사람에게 잘 맞을 것이다.



























반 년 가까이 글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 처음 몇 달은 준비 기간이었는데 마음은 글쓰는 일에 가 있었고, 나중 몇 달은 사진을 아주 접고 글을 썼다. 좋았다.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을 재료 삼아서 내가 세상에 내놓고 싶은 목소리를 마음껏 지르는 것이 참 좋았다. 내가 글을 정말 쓰고 싶어하고, 또 제법 쓸 줄 안다는 걸 이 몇 달을 통해 알았다. 


글을 쓰는 일은 즐거웠지만 일의 어떤 부분은 낯설고 힘들었다. 그래서 버티지 못 하고 쫓겨나듯 나왔다. 직업 사진가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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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그 자리에 그런 빛이 떨어지고 있었다.





산 다녀왔다. 1년 만이다. 벽은 높고 무서웠다. 싱싱한 생채기 몇 개 얻어 왔다.


어제는 창고로 쓰고 있는 방을 정리했다. 식당과 여러 방에 나누어 둔 선반들을 모두 한 방에 모으자고, 아내가 말했다. 정리하면서, 더는 쓰지 않는 것들을 버렸다. 벽에 설치하는 옷장, 망가진 공장용 선풍기 같은 것들이다. 작업실 끝내면서, 언젠가 쓸 지도 모른다며 차마 버리지 못 하고 꾸역꾸역 가져온 것들이다. 1년쯤 지나보니 알겠다. 그것들, 쓸 일 없을 거다.





청혼할 때 썼던 아내 사진들을 발견했다. 연애하면서 찍어둔 사진들을 크게 프린트하고 액자에 넣어서 갤러리를 빌려 걸었었다. 프린트하던 날, 집에 있는 아내 때문에 몰래 할 수가 없어서 생각다 못해 화를 내며 내쫓았었다. 그렇게 쫓아내두고 얼른 프린트를 했었다.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 이야기를 하며 같이 웃었다.





결혼이 4년 되어가니까, 이 사진들은 5년 더 된 것들이다. 4년 된 아내가, 5년 전 아내를 본다. 사진들은 다시 창고로 넣지 않고 집 곳곳에 그냥 두고 보기로 했다. 오래 보관하려면 상자에 넣어서 잘 두는 것이 좋은데, 그러자면 좀처럼 볼 수 없다. 아내는, 그냥 망가질 때까지 꺼내두고 보기로 했다. 아마, 마루가 사진들을 가만 두지 않을 거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그때 자기는 참 예뻤다고 스스로 보며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아내 사진은, 쓰촨 청두에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마침 그 자리에 그런 빛이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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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연습하고 있다.




태풍 온다. 상하이로 바로 들이치지는 않고 저기 남쪽 푸지엔성 어디로 오는 모양인데 비구름은 상하이까지 몰려와서 여기도 비 온다. 늦은 퇴근길에 장비는 많고 우산은 없어서 택시를 타고 왔다. 아내와 마루도 친구네 놀러 갔다가 마침 좀 전에 들어와서 마루와 목욕했다. 내일은 새벽부터 촬영에 나서야 하고 오늘 꼭 쓰겠다던 원고는 결국 다 못 썼는데, 모처럼 정신은 말끔하다.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의 사진이 그렇다고 해서, 배워얄 것 같아서 시작하고 비슷한 느낌을 열심히 연습중이다. 많이 보고 기억했다가 거리에서 비슷한 느낌인 듯하면 찍어보고, 집에 와서 비슷한 색감과 톤으로 보정해 본다. 쉽지 않다. 십 년 가까이 내가 해 온 사진은 한 장 이미지 안에 다양한 선을 이용해서 요소들의 관계를 드러내는 종류였다. 그런데 인스타그램에 어울리는 사진은 병적일 정도로 직각 구도에 의지하고 톤은 희멀거니 밝게 탈색시킨 것들이다. 물론 배울 것도 많다. 덕분에 몇 년 동안 욕심냈었는데 만들지 못 했던 색감에 가까워서 이번에 많이 연습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돌아보면 나는 무심한 듯한 공간에서 불편하고 불안정한 호흡을 발견하는 사진에 더 애착이 간다. 이번 작업들을 통해서 내 사진은 새로운 영양분을 얻을 테지만, 완전히 옮겨가지는 못 할 것 같다. 다행이다. 지난 십 년의 사진에서 작은 줏대라도 세울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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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쓴다





꼭, 쓴다.

달력에서 마감날짜가 사정 거리에 다가오면 마음은 미리부터 겁먹고 바쁘다. 이번 달에 써야 할 원고는 세 개다. 허공에 생각의 단서만 여기저기 펼쳐놓고 며칠이 가고, 적당한 사람을 섭외하고 실패하고 겨우 만나고 몇 마디를 주워 듣는데 며칠이 가고, 대충 할 말을 떠올리는 데 십수일 같은 며칠이 간다. 그리고 마감이 코앞에 온다. 좀 더 좋은 문장을 적고 싶다는 핑계로 결국 한 글자도 적지 못 한 채로 항상 여기까지 온다. 이제, 밤샘과 후회, 압박과 새벽빛, 도대체 성에 차지 않는 몇 줄의 문장이 뒤이을 거다.


꼭, 쓴다.

아직 마감이 3일 남았으니까, 오늘은 한 꼭지 글은 꼭 다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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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딱히



뭐, 딱히 할 말이 있다고는 못 한다. 아내와 마루는 다 건강하고 우리 셋이 함께 있을 때 셋은 같이 웃는다. 오늘 날씨는 흐리다고 하고 나는 전화기에서 블로그 쓰는 연습을 한다. 이른 사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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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머금고, 계단을 봤다






차마 그 자리에서 말을 못 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방심하고 걷다가 유리에 부딪치는 사람들. 어떻게 유리가 안 보이나? 


항주에 다녀왔다. 더운 날씨에 새벽 4시 반에 집을 나서서 밤 10시까지 운전과 촬영을 반복했다. 처음 생각과 달라서, 별로 가져가지도 않은 장비로 엉뚱한 것들을 찍어야 했다. 항주 주변의 위성도시 량주良诸라는 곳에 대형 부동산 개발회사가 만드는 고급 문화마을이 있다. 거기에 안도 다다오가 디자인한 건물이 한 채 있었다. 건물은 이제 막 공사가 끝나서 내부는 텅 비어있고, 사람도 없었다. 건물 옆 마당은 낮은 경사를 그대로 살렸는데, 마당 위에 올라가서 보면 그 경사에 걸친 직선의 길과 건물의 선이 묘하게 엇갈려서, 이 언덕의 높이와 언덕에 늘어놓듯 그린 길도 세심하게 의도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재밌네, 라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안도 다다오의 디자인이라는 말을 듣고 아하, 그 정도 급에서 다룬 거였구나, 싶었다. 노출콘크리트 벽면이 안도 다다오의 명함이기는 해도, 이제는 여러 곳에서 노출콘크리트 공법을 쓰니까 그것만으로는 그의 작품이라도 단정짓기는 어렵다. 


건물은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날카로운 예각으로 둘러싼 건물은 어느 모서리 하나 돌아설 때마다 다음에 무엇이 나올지 가벼운  기대가 생겼는데, 새로운 각에서 보이는 모습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마침 바깥으로 큰 계단에 보였다. 멋진 계단이었다. 얼른 보려고 나가는데, 꽝! 당연히 열린 문인 줄 알고 나갔는데 거기는 유리였다. 제법 세게 부딪쳐서, 위 아래 입술이 다 터졌다. 좀처럼 이런 실수는 안 하는데. 피를 머금고, 계단을 봤다. 좋더라. 그래도 나는 피를 봤으니까, 올라가지는 않고 그냥 보고 돌아나왔다.


좋은 건물은, 어쩔 수 없다. 작품이다. 좀 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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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툭 끊겼던 그 대목을









어제는 종일 폭우가 쏟아졌다. 아침 출근 길에 집 앞 사거리가 침수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두어 시간 있다가 다시 가려니 물이 더 불었다. 무릎까지 물에 빠지며 겨우 길을 건너서 지하철을 탔다. 종일 바지에서 냄새가 났다. 저녁 돌아가는 길에도 물은 완전히 빠지지 않았다. 아침 길에 본 침수된 자동차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오늘 아침에 날이 갰다. 길 가득, 어제 물 넘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만년필로 글씨 쓸 때, 종이의 질감에 민감해진다. 먹을 먹는 종이와 튕겨내는 종이가 다르다. 잉크의 굵기가 만드는 획의 질감도 있다. 펜이 흐르는 속도가 획에 그대로 드러난다. 글자마다에서, 생각이 툭 끊겼던 그 대목을, 만년필 획은 기록하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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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게 등떠밀리니 백지도 채워지고









원고 마감하느라 이틀 동안 힘들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시간에 쫓겼다. 파편난 몽롱한 정신을 이리저리 수습하며 한 문장씩 잇대어서 겨우 글을 쓴다. 사진 작업과 달라서 글을 쓰는 일은 멍한 정신으로는 좀처럼 안 된다. 마지 못해 적어낸 문장이 인쇄되어 누군가에게 읽힌다는 게 생각하면 참 무서운 일이다. 읽는 이들은, 이 문장을 내가 벼려낸 회심의 한 줄이라고 믿고 볼 것 아닌가. 그래도 이리 성실하게 등떠밀리니 백지도 채워지고 밥값도 번다. 이렇게 벌어서 우리 식구가 먹고 살고, 함께 살 집도 지으려고 한다. 따지고 보면 고마운 독촉이다.


새로 이사한 사무실은 시내 프랑스 조계지 가운데 낡은 집의 2층이다. 오래 되어서 아귀도 안 맞는 철문을 열고 들어서면 작지 않은 뒤뜰이 나오고, 관리 안 된 뒤뜰을 가로질러서 좁은 계단을 오르면 단칸방 사무실이다. 방은 세모꼴 천장이 대들보를 드러낸 구조다. 넓은 나무 테이블 두 개를 붙여서 여러 사람이 함께 쓴다. 시내 가운데라서 크기에 비해 임대료가 비싸다. 좋은 글을 써서 임대료에라도 보탬이 되면 좋겠다.

언젠가 내게 될 책을 생각하는데, 한 권의 책을 인쇄하는데 나무 줄기 몇 개쯤 베어내야 할까? 나무에게 못 할 짓 하는 책은 쓰지 말아얄 텐데. 나는 다만 내가 보는 상하이를 한 줌 단어로 적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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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운동장에 앉아 개미를 구경했다


 





 한국 다녀왔다. 제주로 들어가서 이틀을 보내고, 거제로 가서 이틀을 머물렀다. 제주에서 처리하려던 행정 업무는 실패했다. 대학 졸업하고 바로 중국으로 떠나왔으니 한국에서 치르는 소소한 일이 모두 처음하는 일이 된다. 동네 이장님을 만나서 인사하고, 나중에 마루가 다닐 학교 운동장에 앉아 개미를 구경했다. 장인어른 장모님께 집지을 땅을 보여드렸다. 좋은 땅이라고, 좋아하셨다. 거제에서는 아마도 중국 떠나온 후 처음으로, 그러니까 10년 넘어서 집안 성묘에 참석했다. 학교 다니기 전부터 매년 따라나서던 집안 행사였다. 새벽 다섯 시 넘겨 시작해서 오후 4시에 마쳤다. 어른 수십 명이 낫을 들고 넓은 무덤터 산비탈을 위에서부터 베어내려오던 기억은 이제 추억이다. 요즘은 모두 기계를 짊어지고 풀을 벤다. 나도 처음으로 기계를 짊어졌다. 아버지는 이제 허리도 조금 아프고, 다리도 저린다고 하셨다. 부지런히 일해서 빨리 지을 테니, 집 짓고 나면 제주에 자주 놀러오셔서 손자에게 낚시를 가르치시라고 말했다. 


  아내와 마루는 한국에 더 머문다. 아내는 논문 자료를 정리해야 하고, 마루는 한국에 있는 동안 기저귀 떼는 연습을 계속 할 것이다. 5일 만에 돌아온 집은 눅눅한 습기 냄새가 가득하다. 아내도 아기도 없는 집에서 밤 늦게까지 밀린 원고를 쓰다가 아무렇게나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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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하늘에 구멍이 나서,







소나기가 몇 번, 내리다가 끊어지고 또 내렸다. 비가 충분하지 않아서 내리다가 그친 비는 창문에 온통 얼룩만 남겼다. 흙먼지를 뿌린 것처럼 뿌옇다. 낮에 잠시 뜨거운 햇빛이 났다가 다시 흐렸다. 늦은 오후에 하늘은 여전히 회색 구름이 가득했는데 서쪽 하늘에 구멍이 나서 낮은 저녁햇빛이 먼 곳에서 왔다.


태풍이 지난 지 며칠 되었는데, 바람이 여전히 세차게 분다. 태어나서 한 번도 하늘을 본 적 없을 것 같은 옅은 초록 잎의 뒷면이 일제히 드러났다.

페인트 새로 칠한 바닥에 흙발자국을 찍는 것 같아서 블로그에 첫 글 쓰기가 어려웠다. 10년도 훨씬 넘은 독립 사이트 방식을 이제 블로그로 옮긴다. fshanghai와 spacewhu는 계속 두고, 개인 사이트만 옮긴다. 상하이 생활을 차곡차곡 적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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