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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ju/-Weather

내가 조금 더 큰 도토리다.

사부작 사부작 다시 몇 줄 적어 놓으려고. 올 하반기는 제법 기대하며 기다렸는데, 어떻게든 뭐든 해봐얄 것 같아서. 몇 종류의 SNS와 블로그, 홈페이지, 글을 적으려고 일주일 일정표를 짜놓았다. 월요일에는 어디를 쓰고 화요일은 어디를 쓰고 하는 식으로 일주일을 채워놓았다. 화요일은 여기, 가장 애착이 가지만 구석에 숨겨둔 것 같은 내 홈피. 전에 쓴 글은 1월이네. 그러니까 상반기의 시작에 쓰고 반 년을 지나 다시 쓰는구나. 조금 더 자주 쓰려고 마음은 먹었는데 두고 보아야지. 주제도 없지만, 여기는 적으려고.

 

마루는 자전거 레벨4를 달성했다. 섬의 아이는 항구의 빈 주차장에서 자전거를 배운다. 워낙 넓고 비어서 제 세상인데, 그래도 한쪽에 바다가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처음에는 주저했다. 네가 아무리 간들 바다까지는 한참이고 아빠가 그걸 그냥 보고 있을 리도 없단다. 몇 번 자전거를 타더니 자기는 몇 레벨이냐고 묻는다. 게임이 심취하신 초등 1학년이니까, 레벨이라는 개념이 재밌나 보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자전거 타기 레벨을 10단계로 정하고, 너는 그 중에 3레벨이라고 했다. 이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는 아이가 1레벨, 보조바퀴가 달린 네발 자전거를 타는 게 2레벨, 보조바퀴를 떼고 더듬더듬 탈 수 있는 게 3레벨이라고 알려주었다. 지금 마루가 타는 자전거는 안장에 앉으면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 까치발을 하면 겨우 닿을 듯 말듯. 그래서 균형 잡기가 쉽지 않다. 지난 몇 번의 연습으로 일단 처음에만 조금 잡아주면 제법 페달을 굴리며 잘 타는데, 균형을 잡아야 하는 출발은 아직 쉽지 않다. 그래서 비틀거리지 않고, 한 번에 출발할 수 있으면 레벨4가 된다고 알려주었다. 게임 같았을까? 아이는 갑자기 자전거 연습에 열이 올랐다. 레벨4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연속해서 10번! 넘어지지 않고 출발해야 한다. 웬 걸? 안 될줄 알았는데 아이는 한 번 두 번 하더니 어느새 10번을 채운다. 장하다, 아들. 너는 이제 자전거 레벨4다.

 

함께 자전거 타는 친구 이름을 들먹이며 그 친구는 아직 3이지 않냐고 묻는다. 그래, 하지만 그 친구도 금방 4단계가 될 거라고 알려주었다. 키재는 도토리 같은 것들. 아빠는 레벨8쯤 되는데. 내가 조금 더 큰 도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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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 후보자 촬영을 마치고,



# 1.

이제 날이 밝으면 아내와 아이와 함께 투표장으로 간다. 곰곰 생각해서 결정한 후보에게 앞으로 몇 년 잘 부탁한다고 투표할 작정이다.




# 2.

이번 지방선거에 나서는 세 명의 후보자를 촬영했다. 동등한 후보자의 지위는 오늘까지다. 투표일 저녁이 지나면 누구는 의원이 되고 누구는 야인으로 돌아가야 할 지도 모른다. 사진은 대상에게 애정이 생기는 작업이니까 나는 세 후보가 모두 잘 되기를 바라지만, 내 사진이 그 세 명의 소망을 이루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지만 꿈이 언제나 이루어 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투표일 하루 앞서 사진을 전했다. 당선되는 이에게는 선거 기간의 각오를 잊지 말라고, 또 낙선하는 이에게는 그 패기로부터 다시 응원받으라고 전하고 싶었다. 




# 3.

최선을 다해서 찍었다. 찍은 사진 중에 선거문법에 맞는 사진들은 뽑혀서 명함도 되고 현수막도 되고 공보물도 되고 선거벽보도 되었다. 그리고 내 컴퓨터에는 아깝게 탈락한 사진이 수 천 장이다. 그 중에 마음에 드는 것들 몇 장을 골라서 작게 프린트하고 봉투에 넣었다. 봉투 겉에는 후보들에게 전하는 이야기를 몇 줄 적었다.


# 4.

촬영장에 동행한 후보의 가족들은 참 든든해 보였다. 아버지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김영삼을 외치며 대통령 선거운동을 하셨고, 내가 중학생일 때 시의원 선거에 낙선하셨고, 내가 고등학생일 때 당선되셨다. 너무 어려서, 집 떠나 살아서, 아버지 선거를 한 번도 도운 적이 없다. 사진을 시작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니까 사진 제법 찍는다면서 아버지 선거 포스터 한 장 찍어드리지 못 했다. 아버지, 아버지.




# 5.

윤춘광 후보는 그 중에 가장 마음이 가는 후보다. 그에게 전하는 메모는 특히 마음 쓰였다.

"옳은 것을 마음껏 말할 수 있는 오늘이, 얼마나 많은 선배들의 헌신으로 얻어낸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꿋꿋한 세상의 선배로 남아주십시오."


# 6.

좀처럼 안 될 것 같은, 예쁘기는 하지만 이상적인 공약을 들고 나오는 후보들이 있다. 몽상가들이다. 흙을 움켜쥔 나무 뿌리처럼 현실에 처절하게 붙들려 사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말은 멀다. 그런 말보다는 생활에 가까운, 당장 눈에 보이는 변화를 주겠다는 말이 설득력 있다. 나도 당장 힘을 보태서 변화를 만들 수 있는 후보에게 투표할 작정이다. 그러나 한 걸음씩 걷는 자들의 도도한 흐름이 역사를 살려왔다면 걸음의 방향을 바꾸는 도전을 멈추지 않은 자들이 역사의 지향점을 만들어 왔다. 먹고 사는 일이 시급해서, 당장 내 지역과 내 나라가 처한 현실이 긴급해서 나는 표를 던지지만, 방향을 바꾸려는 자들의 목소리도 응원한다. 다음 선거 때는 그런 사람들의 포스터라도 찍어주고 싶다. 시켜만 주면.


# 7.

대통령이 가셨을 때 나는 한국에 없었다. 바다 건너 차려진 분향소만 겨우 들렀다. 그 뒤로 한참 동안 마땅히 있었어야 할 자리와 시간에 못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애써 외치고 노력해서 만든 좋은 시절에 나는 공으로 실려 간다. 빚진 거다. 그러니까 나도 내가 가진 힘을 보태야 마땅하다. 좋은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이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사진 몇 장 만들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라도, 시대에 분노하고 촛불을 들고 노란 리본을 매달던 사람들에게 진 신세를 갚을 수 있으면 좋겠다.


# 8.

이번 선거 프로젝트는 배경완과 함께 했다. 그는 서귀포 항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책을 만드는 사람이다. 오래 만나지 않았지만, 말이 헛도는 것을 경계하고 실체를 구하는 사람이다. 좋은 작업을 믿고 맡겨 주어서, 까다롭게 전체 과정을 감독해 주어서 순조롭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번 작업의 진행과 결과는 모두 배경완 덕분이다.





# 9.

후보에게 전하지도 았았고 어디에도 쓰이지 않았지만, 이번 작업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사진은 임시 스튜디오에서 텅 빈 공약판을 들고 선 후보의 사진이다. 텅 빈 감귤선과장에 급하게 차린 촬영세트에 후보는 서 있다. 정치인이라면 무릇, 보는 사람 없어도 신념을 지키고, 들어주는 이 없어도 신념을 외쳐야 한다. 부디 그래 주기를, 그래서 바르고 선한 정치인이 다시는 외롭게 쓰러지는 일 없기를 바라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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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배 작업노트 170317 2pm.

강요배 작업노트 170317 2pm.







오후 2시에 작업실 앞에 도착했다. 작업실은 큰 길에서 빗겨난 작은 길에 있다. 입구는 낮은 나무 대문이다. 대문 너머로 마당까지는 가파른 내리막이다. 이 내리막 덕분에 작업실은 길 밖에서는 지붕만 보인다. 엎드려서 감춘 작업실이다. 덩굴로 덮인 옛 작업실 옆에 새 작업실을 지었다. 2014년에 새로 지은 작업실은 노출콘크리트다. 보기 좋으라고 만든 것하고 달리, 아무 것도 덧대지 않은 그냥 콘크리트다.


선생은 마당에 서 계셨다. 한쪽 평상에는 한라봉 몇 개, 낫 하나와 방금 벗은 듯한 장갑이 놓여 있었다. 그림을 그리거나 정원 일을 하신다고 했다.


“차 갖고 오셨어요?”


선생의 첫 질문이다. 주변에서 전해 들어서 알고 있었다. 선생은 술을 많이 좋아하신다고 했다. 그러니까, 저 질문은 음료 선택을 위한 것이다. 술이냐? 아니냐?


다행히(?) 나는 차를 갖고 왔다. 낮술은 피한 셈이다.





작업실 안에는 작업중인 그림 몇 개가 있었다. 1993년 제주신문이 그림 아래 놓여있었다. 연동 개발을 시작한다는 기사가 메인이었다. 


마당 평상에 앉아서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했다. 선생은 빗겨 앉으셨다. 작업 의도를 설명하고, 고래를 위한 포트레이트. 글을 보여드렸다. 내가 찍을 사진에 대해 그보다 나은 설명이 없을 듯해서였다.


“허허, 그럼 내가 고래고, 반 선생이 에이헤브 선장인가?”


선생님, 싸우자고 제가 온 건 아니고요.;;


30분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국 가봤더니 거기 술이 참 좋았더라는 말씀도 빼놓지 않으셨다. 




40대에 10여년을 산으로 들로 다녔어요. 제주의 거의 모든 땅을.


이런 바다 저런 바다, 수백의 나무를 보았습니다.


이제는 끄집어 내어 쓰지요. 화면에 쏟아낸다, 관찰은 큰 문제가 아닌 시기지요.


율만 형성되면.


제주 구름, 제주 나무, 제주 돌.







몇 마디 말을 받아 적고, 첫 인사를 마쳤다.


1년쯤 찍어보자고 선생께 말씀드렸다. 


서로 부담 안 되게 합시다. 나도 편하게 할게요.

어디 한 번 해봅시다.


원하던 답이다.



강요배. 작업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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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ju/-Weather

강요배 선생님을 소개시켜 주세요.





인상적인 공연을 보거나 특별한 이야기를 듣거나, 좋은 음악을 듣거나 깊은 감동을 받으면, 


아, 저 사람 꼭 찍어보고 싶다.


생각이 든다. 내가 찍으면 저 사람 참 특별하게 찍어낼 수 있는데. 나만 찾아낼 수 있는 윤곽과 표정이 있을 텐데. 생각이 든다. 찍고 싶다는 갈증을 느끼면서 나, 점점 진짜 사진가가 되어가는 모양이다.





강요배.


찜했다. 처음 그림을 본 게 상하이 학고재에서 있었던 전시였다. 벽 하나 통째로 채운 바다 그림이었다. 마침 제주도 이주를 준비하던 때였으니까, 제주도에 가면 꼭 만나보고 싶다, 생각했다. 그러다가 이사 준비로 잠시 제주에 들렀을 때 마침 도립미술관에서 강요배 개인전이 있었다. 한쪽에서 화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었는데, 화가는 바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작업실을 두고 있었다. 제주 4.3을 다룬 그의 초기 작업도 봤다. 바다로 걸어가는 저 얼굴을, 느긋하게 한 일년쯤 따라다니면서 찍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빈 캔버스 앞에서 찍고, 물감을 개고 있을 때 찍고, 전시 준비중인 텅빈 갤러리에서 찍고, 산책가는 바다에서 찍고, 사나운 파도 앞에서 찍고, 물에 반쯤 담궈서 얼굴만 내놓고 찍고. 혼자 이런저런 구도를 상상하고 한 장 마다 어울리는 조명을 세웠다가 지웠다가 했다.


강요배를 취재해서 글쓴 사람을 발견해서 불쑥 연락했다. 


- 강요배 선생님을 소개시켜 주세요. 저는 사진찍는 사람인데요, 꼭 찍어보고 싶습니다.

- 아마 직접 연락하시는 게 나을 겁니다. 제주 화단의 어른이시라 그분 의견을 여쭤얄 겁니다.

- 건너건너 소개받으면 좀 쉽게 허락하실 줄 알았지요. 네, 알겠습니다.


대화는 대충 이렇게 끝났다. 장비는 상하이에 있고 찍고 싶다는 생각 뿐 찍어서 어디에 쓸지 생각도 없으니 당장에는 기약이 없다. 그래도 꾸깃꾸깃 접어 셔츠 윗주머니에 넣고 잊은 메모지처럼, 언젠가는 꼭 찍는다. 그런 그림을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내가 끝내주게 찍어낼 수 있다. 그거 하나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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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ju/제주마루

마루가 찍은 사진























이 사진들은 모두 마루가 찍었다. 내 카메라 Ricoh GR2를 썼다. 



마루가 사진찍는다. 오전에 아내는 회의하러 가고, 마루와 둘이서 바다에 갔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따뜻한 거 한 잔만 하자고 마루를 꼬드겼다. 바다 앞 카페에서 핫초코를 나눠마시는데, 마루가 사진찍는다. 그냥 시늉이 아니라, 진짜 찍는다.


아, 아들이 사진을 찍는다.


카페 안에 있는 큰 토토로 인형을 찍고, 색깔이 화려한 맥주병을 찍고, 아빠에게 브이.하라고 찍고,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를 찍는다. 카페를 나오다가 여러 색깔로 칠한 소라껍데기를 보며,


아빠, 정말 예쁘죠! 정말 예뻐서 내가 꼭 찍고 싶었어요.


하며 찍는다. 사진이 무엇인지, 사진을 찍는 행위가 무엇인지 이제 알기 시작한다. 다섯 살은 그런 나이인가. 사진도 제법이다. 초점이 나가도, 수평이 안 맞아도, 흔들려도 괜찮다. 다행스럽게도 네 아빠는 사진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고, 다양한 시선의 사진을 두루 잘 볼 수 있는 사람이다. 다행스럽게도. 


마루가 찍은 사진은 썩 좋다. 아이의 높이에서 찍은 사진은 내가 보는 세상과 달라서 신선하게 보인다. 조금씩, 사진으로 대화하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겠다.


유치원 고학년쯤 되면 여친 사진 찍어서 포토샵 돌린다고 아빠 컴을 뺏을 날이 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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