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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03

요 며칠 나는 많이 예민하다. 결제일이 다가오고 통장은 비어있는 이유가 가장 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 작업, 엉켜있는 일상이 모두 겹친 날들이다. 

 

아침에는 마루를 병원에 데려갔다. 낫는 듯 이어지던 감기가 콧물에 기침, 가래에 미열까지 따라왔다. 증상이 심하지 않아서 5일치 약을 받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이제 1교시는 넘겼다고, 습관처럼 학교가기 싫다고 말하는 아이 말에 그럼 가지 말라고 말하고 집으로 데려왔다. 불안을 느낀 아이는 학교에 가겠다고, 학교 앞에 내려달라고 말했지만 집까지 그냥 왔다. 학교 안 다녀도 된다고, 검정고시를 하고 다른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짜증이 나서 작업실로 올라오고, 아이는 엄마와 이야기하고 학교에 갔다. 아빠가 가지 말라고 했는데, 가도 되냐고 엄마에게 사정했다고 한다.

 

마루가 학교에 다녀야 하는 시간은 적게 잡아도 10년이 넘는다. 그 시간 동안 원하지 않는 곳에서 등떠밀려 시간을 잡아먹게 될까봐 두렵다. 그 관성이 이어지면 결국 직장생활이든 여타의 사회생활에서도 원하지 않는 공간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될까 두렵다. 그럴 거라면 당장 조금 두려워도 관성의 시간에서 아이를 빼내고, 좋아하는 것과 열심히 하고 싶은 것을 찾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내가 저지르고 후회하는 실수들을 내 아이는 조금이라도 비켜갈 수 있다면. 그래서 지금 내가 느끼는 이 패배감과 막막함을 조금 덜 겪을 수 있다면. 아이는 아이의 인생을 살겠지만, 그러니까 내 실패를 아이에게 투영하면 안 되겠지만.

 

학교를 마치고 태권도장에 다녀온 아이를 작업실로 불렀다. 우선 아침의 일을 사과하고, 감정적으로 쏟아냈던 이야기들을 차근차근 정리해서 다시 말해주었다. 목적 없이 등떠밀려 사는 시간의 무서움에 대해 말하고, 다른 대안들도 있으니 생각해 보자고 했다. 무엇보다, 지금 학교 생활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재밌게 만들 수 있을 지 고민하자고 했다. 쉬는시간은 10분 동안 운동장으로 나가지만 않으면 뭐든 해도 된다고 했다. 오케이. 그 시간은 재밌겠구나. 점심시간은 아이들과 어울려 즐겁다. 오늘은 양념치킨이 나왔는데 자기는 배가 불러서 많이 못 먹었다고 했다. 그럼 남는 것은 수업시간인데, 대학교 때 열심히 들었던 강의 이야기를 해주며 방법을 제안했지만 마루에게는 먼 이야기일 것이다. 

 

아내는 화를 냈다. 도대체 아이를 불러다가 또 몇 십분간 무슨 이야기를 쏟아냈냐고 따졌다. 나도 화를 냈다. 적어도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먼저 물어봤어야 하지 않냐고.

 

늦게까지 작업실에 앉아서 더듬더듬 사진 작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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