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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블로그 글

2015년 짧은 글 모음

2015.08.11 22:28

소나기가 몇 번,


소나기가 몇 번, 내리다가 끊어지고 또 내렸다. 비가 충분하지 않아서 내리다가 그친 비는 창문에 온통 얼룩만 남겼다. 흙먼지를 뿌린 것처럼 뿌옇다. 낮에 잠시 뜨거운 햇빛이 났다가 다시 흐렸다. 늦은 오후에 하늘은 여전히 회색 구름이 가득했는데 서쪽 하늘에 구멍이 나서 낮은 저녁햇빛이 먼 곳에서 왔다.


태풍이 지난 지 며칠 되었는데, 바람이 여전히 세차게 분다. 태어나서 한 번도 하늘을 본 적 없을 것 같은 옅은 초록 잎의 뒷면이 일제히 드러났다.


페인트 새로 칠한 바닥에 흙발자국을 찍는 것 같아서 블로그에 첫 글 쓰기가 어려웠다. 10년도 훨씬 넘은 독립 사이트 방식을 이제 블로그로 옮긴다. fshanghai와 spacewhu는 계속 두고, 개인 사이트만 옮긴다. 상하이 생활을 차곡차곡 적으려고 한다. 




2015.08.02 23:24

청년은 두어 정거장 가서 내렸다.


 




원고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꽃파는 청년을 만났다. 장대 양쪽에 거는 꽃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고 벽에 기대 있었다. 우리는 함께 10호선 지하철을 탔다. 꽃 두 바구니가 들어가서 지하철 한 칸이 온통 환해졌다. 저 친구를 인터뷰 할까 말까 한참 고민했다. 하루 종일 더위에 시달리며 사진찍고 돌아가는 길이어서 나는 그냥 관두었다.


지하철 안에서 몇몇이 말을 걸었는데 하나도 팔리지는 않았다. 청년은 두어 정거장 가서 내렸다. 당신 덕분에 지하철이 환해졌다는 인사를 못 했다.





2015.06.22 09:00

생각이 툭 끊겼던 그 대목을,







 






 




  만년필로 글씨 쓸 때, 종이의 질감에 민감해진다. 먹을 먹는 종이와 튕겨내는 종이가 다르다. 잉크의 굵기가 만드는 획의 질감도 있다. 펜이 흐르는 속도가 획에 그대로 드러난다. 글자마다에서, 생각이 툭 끊겼던 그 대목을, 만년필 획은 기록하고 있는 거다.






2015.06.18 16:38

오늘의 잘 한 일


쓰고 남은 휴지 몇 장, 공중 화장실에 두고 왔다.


엉덩이에 대보지도 않은 새것,


한 우주를 구원했다.


오늘의 착한 일.

끝.




2015.05.17 01:05

검은 옷들에게



인터뷰 촬영이 있었다. 이제 잡지 촬영 따위! 안 가려다가, 다녀오세요. 아내 한 마디에 네. 순종하고 다녀오기로 했다. 모델은 중국 현대예술의 4대천황 중 한 명이라고 불리는 화가였다. 화가를 촬영하는 장소는 대부분 넓디넓은 공간에 드문드문 작품이 있는 전시장이거나, 총천연색 물감자국이 난무하는 바닥에 어울리지 않게 순백의 캔버스만 가득한 작가의 작업실이다. 


오케이. 단색의 배경을 넓게 쓰고 화가를 작게 잡자.

조명은 두 가지 느낌으로 쓰자. 한 가지는 전체 공간을 밝게 쳐서 화면 전체가 화사하게, 또 다른 한 가지는 공간을 어둡게 가고 화가의 얼굴에 떨어지는 빛도 강하게. 그림 나오네. 두 장 중에 어느 장을 줘도 아트디렉터에게 항의 전화를 받을 일은 없겠지.


대충 머리 속으로 화면을 짜 두고 현장으로 갔다. 이런, 브랜드 론칭 행사장이네? 1층부터 레드카펫이 깔려있고 온갖 사람들이 웅성거리네? 단독 촬영인 줄 알았는데 미디어 연합 인터뷰에, 작가 작품이라고는 하나도 안 보이네? 건물 앞에는 벌써부터 통제선을 치고 필요한 사람, 허가받은 사람, 초대받은 사람만을 골라서 넣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아이 둘을 데리고 온 엄마는 정중한 사양의 말을 듣고 돌아섰다.


호기롭게 그려 왔던 이미지는 호기로운 속도로 무너졌다. 이제 수습을 걱정해야 한다.


30분을 확보해 주기로 했던 촬영 시간은 미디어 인터뷰가 길어져서 겨우 10분 남짓 쓸 수 있었다. 자연광이 들어오는 위치에 메인 조명을 두고, 반대편에 보조 조명을 올렸다. 그렇게 첫 번째 사진을 마치고, 얼른 건너편으로 옮겨서 강한 조명 느낌을 살려 두 번째 사진을 찍었다. 다행스럽게도, 에디터는 두 번째 사진에 환호했다. 우리는 작당했다. 


두 장면을 모두 넘기면 분명히 아트디렉터는 첫 번째 재미 없을 컷을 고를 것 같으니까, 아예 두 번째 사진만 넘기자. 


나는 10년 넘게 같이 일해 온 아트디렉터의 안목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만, 사진 취향이 다른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라, 첫 번째 장면을 묻어버리기로 합의했다. 기꺼이.


내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고, 이렇게 한껏 치장하고 있으니 아마 명품 브랜드가 맞을 것이다. 명품의 오프닝은 뭐랄까, 우스웠다. 3층짜리 매장 안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온통 검은색 옷을 입었다. 환한 매장 안에서 검은 파편들이 떠다니는 것 같았다. 입으라니까 입기는 했으나 도대체 왜 입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옷은 하나같이 어색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듯했다. 그 얼굴에서 전해오는 말이라는 건,


나, 여기에 잘 어울리고 있어.

나, 좀 되는 것 같아.


따위의 것들.


젊고 예쁜 여자들의 그 드러난 종아리며 늘씬한 허리선을 보면 몸매에 꼭 맞춘 옷이니 본인 것이 맞기는 할 텐데, 빌려입은 옷은 아니고 사람이 옷이 사람을 빌려 넣은 것처럼 어딘가 섞이지 않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때, 오호라.

나는 보고 말았다. 특히나 예뻤던 검은 옷이, 정돈한 표정과 구겨서 감춘 뱃살로 그럴 듯한 사람들을 상대하던 그 검은 옷이 1층에 있었다. 전자파리채를 휘두르면서.


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잘 못 본 게 아니었구나. 몇 시간 동안 거울 앞에서 치장하고, 비싼 사람들이 올 때 테이프 붙인 바닥면이 보일까 안 보일까를 고민하는 검은 옷. 없는 무게를 그렇게라도 만들어 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검은 옷. 나도 입었다고 어깨를 치켜세우고 말 몇 마디를 주고 받으며 서로의 검은색을 인정해 주는 검은 옷.


나는 안 보고 싶다. 안 엮이고 싶다.


나는 그 반대편에 서서 고래같은 사람들을 변호하는 글을 쓰려고 한다. 그들을 알리고 세우려고 한다.


행사장 한 켠에는 은발을 늘어뜨린 나이 든 남자 하나가 큰 덩치를 의자 위에 구겨놓듯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남자는 독일에서 왔고, 여기 전시된 도자기에 들어가는 세밀화를 그리는 일을 한다. 그림은 너무 작아서 돋보기가 장착된 간이 헬멧을 쓰고 그린다. 행사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상관하지 않고 작품처럼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사실, 작품처럼 앉은 남자는 매장이 준비한 상품이겠지. 이런 디테일은 이런 장인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 넣는다는. 그러니까 니네는 얼른 지갑을 열어 카드를 긁으라는.


이 봐요, 제가요. 실은 에디터인데요. 당신 인터뷰 좀 할 수 있을까요? 언제 한가해요?


남자는 뭐라고 답 하려는데, 제법 높아 보이는 검은 옷이 그의 답을 막았다.


남자는 영어가 서투니까, 아시아 담당 직원과 이야기하라고 나를 이끌었다. 이 뭐, 나보다 영어 잘 하더만. 당신은 들켰다. 이 남자는 회사의 소중한 자산이니까, 행여나 다른 루트를 통해 다른 일과 연결되지 않도록 하려는 뜻은 검은 옷만큼 선명하다. 존경하지 않더라도, 인정은 하고 있는 거지.

 

나는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당신의 섬세한 손길이 거쳐오고 닦아온 길에 대해 묻고 듣고 싶었다. 오프닝 파티에 장식품처럼 불려나온 당신을, 당신이 원하든 말든 변호하고 자랑하고 싶었거든.


인터뷰가 끝나가고 있었다. 촬영 중 흘려들은 그들의 질문은 ‘사회’, ‘시대’, ‘정부’ 따위의 단어들이 휘날리고 있었다.  검은 옷들 사이를 난무하는 단어들이란. 예술가에게 시대를 묻는다는 것이 우습다. 그들은 답을 모른다. 몰라야 맞다. 논리 밖에서 생각의 경계를 깨는 것이, 신나게 노는 것이 그들이 세상에 할 수 있는 기여의 전부다. 예술가를 논리 안에 묶지 마라. 제발.


검은 옷에게 명함 한 장을 받아왔다. 전자파리채를 휘두르던 그 옷이다. 예쁜 얼굴로 만면에 미소를 짓던 그 옷이다. 답장에 대한 기대 없이, 나는 언제든 은발의 남자가 다시 상하이에 오면 알려 달라는, 인터뷰를 하겠다는 제안서를 보내려고 한다. 무료변론을 지원하는 글쟁이의 각오로.


검은 옷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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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연습을 해야 하니까, 뭐가 되든 우선 꾸준히 써보려고 한다. 하루 중에 있었던 일을 골라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여 보는데, 쉽지 않다. 억지로 쓴 티가 여기저기 보인다. 이렇게라도, 붙들고 있다 보면 다시 되겠지. 손가락에 근육이 붙고 어느날 오버행 벽을 타는 암벽의 날들 처럼.





2015.05.05 15:08

저 사타구니와 가슴 위에


싫다. 기다리지 마라.


무대는 네 거절의 말을 듣던 그날의 나처럼 어둡고 멀었다. 더 물러설 곳이 있다면 얼마든지 그랬겠지만 등을 맞댄 곳은 길이 끊어진 벽이었다. 작전을 잘 못 짰다. 배수진을 치지 말았어야 했다. 병서에 이르기를, 죽음을 각오할 때에 이르러야 비로소 쓸 수 있는 진이라고 했다. 꽃신 신은 네 발 앞에 툭, 내던진 고백. 네 거절만큼 내 고백도 비린내 나는 풋내 밖에 담은 것이 없었다. 하긴, 비장한 풋내가 내가 가진 전부였다. 살아갈 시간은 막막했고 뒤돌아 본 내 기록은 가늘어서 끊어질 듯한 모래톱이었다. 각오할 죽음 따위가 있기나 했겠는가? 내 몸 하나 버티고 서기도 버거운, 나는 겨우 스물일곱이었다. 


성처럼 버티고 선 유리돔 안이니까, 사방의 빛을 끌어모은 찬란한 무대를 상상했었다. 관객석과 떨어져서 철망으로 가로막힌 무대는 적막하다. 무대를 가리고 있는 암막 커튼이 움찔거린다. 저 뒤에서 잠시 뒤의 공연을 준비하며 사방을 뛰어다니고 있을 써커스 단원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무거운 어둠은 관객의 목소리마저 가라앉게 해서, 서커스의 세상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바깥 일을 잠시 잊으라고 조용하지만 무거운 명령을 내린다. 객석 조명이 꺼지고, 관객들의 웅성거림도 꺼졌다. 고요. 무대 가운데 조명이 켜지고, 하늘에서 바닥을 향해 붉은 줄 하나가 추락한다. 이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무대를 주시하던 사람들이 지루해질 무렵, 웅성거림. 바로 그때를 기다려서 보이지 않는 꼭대기에서 여자가 줄을 타고 내려온다. 사타구니와 가슴을 겨우 가린 옷이 반짝거린다. 저 거다. 거대한 유리돔으로 들어온 빛을 차곡차곡 모아서 저 사타구니와 가슴 위에서 풀어내는 것이구나. 평면의 유리를 이어서 만든 원형의 돔 안에서 네 말은 네 마음의 어디쯤을 비추고 겹치고 반사했을까. 사방을 끌어와서 어디든 비출 것 같던 빛은, 어쩌면 거울 한 장의 빛만을 반복해서 굴절시켜 온 것은 아니었을까. 그럼, 그 한 장은 너이기나 했을까.


여자는 안전장치 하나 없어도 태연하다. 우아한 몸짓으로 줄을 타기도 하고 매달리기도 하고 어르기도 하고 껴안기도 하면서 내려온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진다. 


속이지 마라. 

붉은 줄에 매달려 유혹하던 탐스러운 허벅지야.

유리돔 같은 말들아.


위장에 걸린 풀을 되씹는 소처럼 네 거절의 장면을 몇 번이고 다시 불러세운다. 

너무 많은 것을 기록하는 사진처럼 숨소리 실린 목소리의 균열도 생생히 기억한다. 


서커스 여자의 몸짓은 점점 대담해진다. 관객이 위태로움에 익숙해 질때쯤 한 손을 놓기도 하고, 다시 익숙해질 만하면 일부러 조금 추락도 한다. 여자의 동작을 따라서 관객의 함성 소리가 파도처럼 출렁인다. 연기는 완벽에 가깝다. 위험한 동작 속에서도 여자의 미소는 얼굴 전체를 장악하고, 입술 끝 작은 떨림도 없다. 


너라도 붙잡으면 세상을 버틸 수 있다고 믿었던가. 겨우 내린 붉은 줄을 휘잡고 흔들고 껴안은 게 너였던가 아니었던가. 슬픈 표정과 단호한 말로 추락을 예고한 것도 너였던가 나였던가. 세상의 빛을 모두 끌어모은 듯 사타구니와 가슴으로 빛났던 건 아마도 너였겠지. 더 이상 관객이 웃지 않는 무대의 광대처럼, 나는 또 막다른 골목에 등을 대고 서 있다. 악단의 북소리가 커진다. 여자가 마지막 동작을 준비하고 있다.


죽음을 각오한 몸뚱이를 던져 보지도 못 하고, 등 뒤를 둘러친 강에 빠져 죽지도 않고 나는 지금까지 안녕하다. 여자는 무사히 공연을 마치고 마침내 땅으로 내려와서 관객들에게 인사한다. 사타구니와 가슴은 빛나지 않고 여자는 환하게 웃으며 몇 번이고 고개 숙인다. 무대, 암전.


그래도 기다리마. 사실은 보았다. 아닌 척 했지만, 동작마다에서 붉은 줄을 간절하게 붙잡고 있던 네 손, 그 손 위에 돋아나던 굵은 혈관의 흔적. 너무 먼 무대에서 온갖 빛 아래 서 있는 너는 다른 세상의 사람 같지만, 부여잡은 손에 튀어오르는 그 핏줄 말이야. 무사하고 싶다는, 이 잠시의 공연이 끝나면 박수갈채를 받고 또 얼마 간의 돈도 받아서 그만큼의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그러고 싶다는 바램과 그러고야 말겠다는 끈적거리는 의지의 독백같은 거. 내 손등에도 그런 혈관이 두엇 있다. 그러니까, 나도 기다리기로 한다. 스물일곱이 지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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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 스물 일곱이 어땠는지 기억 안 난다. 애써 뒤적거려 보면 몇몇 사건을 발견할 수 있겠다만, 안 그럴 란다. 일 때문에 부탁한 원고에 대해서 어떻게든 답을 해얄 것 같아서, 반대편의 입장을 상상하며 적었다. 주제와 톤을 원 글에 묶어두고 쓰려니 요즘 잘 쓰지 않은 느낌의 문장이 나왔다. 




2015.04.26 22:47

옆칸의 무사안녕을 빈다


15년 2월 12일.

검은 현무암 바위에 파도가 부딪쳐서 깨진다. 바람이 물의 몸을 입고 와서 온몸을 던진다. 마루는 거대한 현무암 바위 지대를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걸었다. 바위가 넓게 벌어진 곳은 아빠 손을 잡고, 그나마 나은 곳은 일부러 혼자 걸어 본다.


와, 마루가 여기까지 왔다.


아직 '나'라는 단어를 못 쓰는 마루는,


마루가 여기까지 왔다.


스스로에게 대견한 칭찬을 했다.


여기까지 왔다, 여기까지 왔다. 말이 예뻐서 마루를 따라 나도 말한다. 여기까지 왔다.




15년 2월 22일.

서점에서.

김연수는 참 맛있는 글을 쓴다. 그의 소설을 한 권도 제대로 읽은 적 없지만 언제나 쉭쉭 바람처럼 읽힌다.


너무 많은 책이다. 그 중에서 선택받아야 하는 거니까, 저자의 얼굴 사진으로 채운 표지들이 여럿이다. 표정은 대부분,

'니네 그거 모르지? 난 알아. 알아서 여기 이렇게 사진도 박았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공공화장실 변기 칸에 앉아 옆칸의 무사안녕을 빈다. 끄응. 신음소리의 끝이 작은 해방과 함께 하기를. 지금만큼 타인의 설사에 공감하는 때도 없으니까.



2015.04.21 19:03

땅과 하늘 사이에 있다는 거기 어디쯤이라도


 



멀리로 한라산이 흐리게 보인다. 구름의 덩어리는 산을 통째 밀어낼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산의 한쪽을 통째 밀며 올라온다. 빛은 그 구름 사이를 뚫어서 땅에는 그림자가 구름처럼 흐른다.


오름에 앉아있다. 소거죽에 붙어 살 것 같은 날벌레들이 많이 난다. 개미는 풀숲에 진을 친 것처럼 올라 붙는다. 멀리 보이는 도로에서는 개미만한 차들이 전쟁 난 개미처럼 꼬리를 물고 달린다. 


완만한 곡선으로 유순해보였던 오름은 막상 붙어들자 호된 경사를 내세웠다. 겨우 10분 남짓 오르는데 몸은 땀에 젖었다. 숨을 몰아쉬었다. 사방 가리는 것 없는 민둥머리 오름에 올라서 보면, 땅에서는 보이지 않던 리조트와 고급 빌라단지도 훤히 내려볼 수 있다. 넓고 푸른 초원 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작고 낡은 창고들은 그들이 거느린 초원의 넓이만큼 높고 귀해보인다. 다닥다닥 붙어앉은 저택들도 그들 앞에서는 웅성대는 한낱 무리에 불과하다.


부동산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는다. 눈은 여전히 완만한 곡선을 여유롭게 더듬는데,


계약서는요,

그러니까 제 말은요,

매도인 쪽에서는 그렇게 안 한다는데요,

따위의 말들.


오름에 앉아 통화하는 부동산은 어쩐지 땅과 하늘 사이에 있다는 거기 어디쯤이라도 거래해야 할 것 같지만,


네, 복사해서 보낼게요.

그럼 목요일 아침으로 일정 잡아주세요.

다른 착오 없어야 해요.


맞다. 부동산은 구름을 팔지 않지. 벌거벗은 몸을 내보이라고 말하지.



2015.04.21 18:04

괜히 김이 빠져서 내려놓았다


 



发现了一个老的护照。黑白的帅哥在里面。还有好多的章。

오래된 여권 하나를 발견했다. 홍콩에서 온 것이라고 했다. 

여권에는 당당하고 멋스러운 남자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찍힌 도장들.



有人跟我说,

“一块吧,一块。你就买吧!”

很想买。只付了一块钱可以买得到一个丰富的人生,那就早晨的散步非常成功的!

但是还是不买。不用花自己的钱再买多一个人生,一个人生已经够复杂了。

구경하던 사람은 내게 1원만 내고 얼른 사가라며 부추겼다. 탐났다. 단돈 1원에 흥미로운 인생 하나를 살 수 있다면 거저다. 저 풍성했을 인생을 건질 수만 있다면 새벽 산책은 남는 장사가 될 것이다. 주머니를 뒤졌는데 아쉽게도 동전이 없었다. 주인을 쳐다보며 정말 1원이면 되냐고 물었지만 주인은 대답이 없었다. 나도 괜히 김이 빠져서 아쉽지만 내려놓았다. 어쩌면 안 사기를 잘 했다. 인생 하나를 애써 받아 안을 필요는 없잖나. 하나를 살아내는 것만도 버거운 세상에서.


2014. 5. 27



2015.04.21 17:12

블루투스 키보드가 도착하기를.




 


 





한나절 내내 만년필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좋아서 쓰지만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선이 굵어서 답답했었다.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서 다 식은 커피 한 잔을 두고 재생지 색깔이 나는 냅킨 한 뭉텅이를 들고 와서 단단히 마음먹고 앉았다. 닙을 뽑았다가 꽂았다가 뺀 닙을 닦았다가 말렸다가 좁혔다가 눌렸다가 다른 만년필 닙이랑 바꿨다가 다시 돌렸다가. 만년필 관련 사이트를 십 수 페이지나 열어놓고 이런저런 시도를 다 했다. 어떤 방법을 써도 여전히 선은 굵고 종이 뒷면에는 번진 잉크 자국이 사방으로 지저분했다. 시도는 발악에 가까워졌다. 손은 온통 잉크에 물들고 잉크가 번진 냅킨 종이가 책상에 그득하다. 새 닙을 알아보기도 하고 가는 글씨에 좋다는 새 만년필도 알아보다가, 


그냥 만년필을 뒤집어쓰기로 했다. 


닙에는 이로 깨물어서 생긴 흠집이 생겼고, 조금 더 ‘내 만년필’이 되었다. 작은 불편함 하나 해결하느라 서너 시간을 보냈다. 익숙해진다는 것이 꼭 이렇다. 서먹한 것들끼리 어깨를 비비고 때로 생채기도 주고받는 시간을 보낸다. 어디 만년필 한 자루에 그칠까. 돌아보면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것 중 어느 것 하나 그렇지 않은 게 없었다. 최근에 몇 번을 넘어지면 배운 스케이트보드가 그렇고 여전히 서툰 내 사진도 그렇다. 그리고 여전히 치열하게 부딪치며 웃으며 살아가 주고 있는 가족들까지. 살다 보니, 어떤 불편함은 견디고 익숙해 지면 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 어떤 불편함은 애정으로 이어진다.


직업을 바꾼다. 당분간은 양다리를 걸치고, 점점 일의 무게중심을 옮겨 갈 작정이다. 사진을 손에서 놓는 일은 없을 테고, 여전히 사진이 내 밥벌이 수단이 될 테지만 그 비중을 줄일 작정이다. 글을 쓰고 꾸리는 일을 하기로 했다. 그러자고 보니 너무 오랫동안 독서랄 것도 없었고 문장이랄 것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글로 밥 벌어 먹고살겠다는 생각은 6년 전쯤 했는데, 그 뒤로 사진을 했으니 내 문장이나 독서는 그때 수준에서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 급한 마음에 이제라도 다시 글쓰기를 연습하고 독서를 이어가려고 한다. 숙제처럼 여백을 마주 보고 앉으니 여백은 끝 간 데 없이 넓어서 무섭다. 


직업으로서의 사진에 지쳤던 이유 중에 사소한 한 가지는 너무 많은 장비에 눌린다는 생각이었다. 공항에 가면 작은 서류가방 하나만 들고 비행기 타러 오는 사람들이 많이 부러웠다. 수십 킬로가 넘는 장비를 이고 지고 끌고 다녀야 하는 출장은 촬영도 하기 전에 짐에 눌려 지치기 다반사였다. 글을 쓰게 된다면 수첩 한 권과 펜 한 자루면 될 것 같았다. 깃털처럼 현장으로 날아가서 노트 빼곡하게 문장을 적어오는 장면을 상상하면 행복했다. 이제 그런 날이 올까 싶었는데, 나는 새 만년필을 찾고 있고 아이패드에 쓸 블루투스 키보드가 어서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저런 도구를 끌어모으는 나를 미워하지 마라. 어쩌겠는가. 도구의 인간.이라지 않던가.


사실, 만년필을 만지작거리는 몇 시간은 재미난 놀이 같았다.


2015.03.23 23:46

말미잘선인장


운전을 별로 즐기지 않는다. 촬영 장비 때문에 차를 쓰기는 해도, 일단 차가 있으니 여러 모로 편하기는 해도 운전은 어쩔 수 없이 한다. 특히나 시내에서 길이 막힐 때는 없던 짜증도 끓어오른다. 전 날 잠도 제대로 못 잔 오전에 막히는 길 위에 있으면 내가 왜 이 상황에 있어야 하는 지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서 촬영이 없고, 한 곳만 다녀오면 되는 외출은 가능하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려고 한다. 


가끔 좋은 운전도 있다. 촬영하러 가는 고속도로는 즐거운 길이다. 그런 날은 미리 음악을 골라두었다가 차를 고속도로에 올리면서 볼륨을 높인다. 쩌렁쩌렁한 노래소리에 맞춰 핸들을 두드리며 가는 길은 행복하다. 


선인장.이라는 노래가 에피톤프로젝트.의 노래라는 것을 얼마 전에야 알았다. 어느 이름 없는 여가수의, 좋지만 묻혀버린 노래라고 생각했었는데. 


선인장을 선물하고 간 친구가 있었다. 말미잘 한 마리를 전해주었던 친구도 있었다. 선인장처럼 상처입고, 말미잘처럼 고운 친구였다. 소화 못 한 풀더미를 되씹는 소처럼 고속도로를 달려 돌아왔다.



2015.03.23 23:35

성민 형.


잘 지내지요? 요즘에도 시는 계속 쓰나요?


김광석 노래 가끔 들을 때나, 김광석이 죽은 지 몇 해가 지났다고 누가 이야기할 때는 형들 생각이 납니다. 소금꽃 방에 공사용 스티로폼 깔고 앉아서 그럭저럭한 기타 반주에 그럭저럭한 노래를 밤을 새며 불렀었지요. 그때가 김광석 2주기였던 가요? 3주기였던 가요? 하여튼 그랬었어요.


다른 형들은, 후배들은 소식 아시는 게 있나요? 나는 보고싶은 친구들이 참 많습니다. 멀리 나와있다는 핑계로 멀어졌어요. 한 동안은 이름들을 손에 꼭 쥐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조금만 더 하면 된다, 그러면 내가 돌아간다. 비단 옷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가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겠노라. 했었지요. 그랬었습니다.


이제 시는 거의 안 읽습니다. 그렇게 됐네요. 읽지도 않으니 쓰는 일이야 뻔하지요. 그래도 사진을 계속 하면서, 사진을 대하는 태도가 시를 짓는 것과 비슷하기도 하겠다 생각합니다. 시의 바다는 너무 넓어서, 그 안에서 의미를 엮어낸 다는 것이 어째 소용없는 짓.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아름다운 시는 여전히 마음을 건드리고 치열한 시는 또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드는 데요, 그래도 시와 멀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형,


기약없는 약속이지만, 다시 보게 되면 어디 별 보이는 노천에 앉아서 맥주나 한 잔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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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짧은 글 모음

2014.12.17 10:20

[사진] 그림을 배경으로 선 모델


  Test Shoot.이라는 말머리로 그 동안 찍었던 촬영 현장 이야기를 정리한다. 작은 읽을거리라도 만들 수 있을까 싶다. 나름대로 내게는 정리하는 계기도 될 것이다. 주로  촬영과 관련된 현장의 상황, 조명의 설치 등에 대해 이야기할 작정이라 사진과 상관 없는 사람에게는 생뚱맞은 소리가 될 것도 같다.


  

  


2012년의 사진이다. 아마도 조명 두 개로 겨우 조명하던 시절이다. 인터뷰 촬영이었고, 모델은 나이가 제법 되는 여자라는 사전 정보만 가지고 갔다. 주어진 촬영 시간은 2시간 정도였다. 메이크업 시간을 빼면 실제 촬영 시간은 한 시간을 조금 넘는 수준일 것이다.


촬영은 가로 사진과 세로 사진을 모두 찍기로 했다. 그리고 사진 안에 텍스트가 들어갈 공간도 함께 넣기로 했다. 잡지 촬영의 경우 사진을 단독으로 쓰는 지, 또는 사진 위에 텍스트를 올릴 것인지에 따라 구도가 달라진다. 또 가로 사진의 경우 한 페이지에 넣을 지, 아니면 펼친 페이지 전체에 쓸 것인지에 따라서도 구도를 다르게 잡는다. 특히 풀페이지 사진의 경우 인물의 얼굴이 페이지 중간에 걸리는 불상사를 피하는 것이 절대 수칙이다. 그래서 풀페이지로 쓸 가능성이 있는 사진은 인물을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도록 구도를 잡는다.


장소는 호텔에 있는 레스토랑이었고, 식사 시간을 피해 일정을 잡았다. 레스토랑 층과 윗층의 프라이빗룸을 둘러보며 촬영 포인트 세 곳을 선정했다. 한 두 컷을 쓰는 인터뷰 사진의 경우에 나는 보통 세 곳 정도의 배경을 미리 골라둔다. 최대한 심플한 배경 한 곳, 배경에 디테일이 많은 곳 한 곳, 그리고 가장 안전한 배경 하나 정도를 더 고른다. 그렇게 해 두면 에디터나 잡지 아트디렉터에게 좀 더 다양한 선택지를 만들어 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촉박한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한 곳에서 수 분 안에 촬영을 마쳐야 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자연광이 들어오는 상황이었지만 충분한 느낌은 아니었다. 그래서 자연광을 보조광 내지는 필라이트로만 쓰고 조명을 따로 하기로 했다. 현장에 도착한 모델은 연륜에서 나오는 힘이 있었다. 비주얼 관련 컨설팅을 하는 사람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정확히 생각나지 않는다. 이미 많은 촬영 경험이 있어서 도착하자 마자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잘 알고 있었다. 옷이 가득 든 트렁크를 가지고 왔었다. 본인의 옷을 직접 준비해 오다. 보통 잡지 촬영은 에디터가 준비하지만 직접 가져오는 경우도 꽤나 된다. 남성은 본인의 옷으로 찍는 경우가 많고, 여성도 특히 비주얼 관련 종사자들은 직접 가져오는 경우도 많다. 무턱대고 내 옷을 입겠다는 고집이 아니라,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오랜 시간동안 고민한 결과이니까 에디터도 마음 편하게 동의한다.


  


한 시간 가까운 메이크업을 마치고 촬영을 시작했다. 우선 레스토랑 복도에 있는 그림 앞이 첫 포인트다. 그림은 높게 걸려서 아래 낮은 테이블을 두고 그 위에 올라서도록 했다. 상하이의 야경을 그린 그림인데 적당히 어두운 톤이어서 배경으로 쓸 만했다. 모델은 얼굴 윤곽이 깊은 편이어서 빛을 너무 측면으로 쓸 수 없었다. 정면에서 필라이트를 넣으면 모델 뒤에 있는 그림을 표현하기 어려울 듯해서 메인 조명 하나로 최대한 얼굴 전체를 비추도록 했다. 그리고 모델의 왼쪽 뒤에서 배경과 모델을 분리하는 라인 조명을 넣었다. 배경 그림에 하나의 라인을 만들면서 모델의 머리까지 닿는 빛을 위해서는 20도 정도의 그리드와 확산지를 덧댄 조명이 어울렸을 것 같은데, 아마 갖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없었다면 스누트를 썼을 것이다. 메인 조명은 흰색 우산을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서서 테스트했을 때보다 모델의 얼굴은 더 깊었기 때문에 조명 위치를 조금씩 조정하면서 촬영했다.


  

 

이 사진을 찍은 후 레스토랑 중간 대기실에서 한 장을 더 찍고, 실내로 이동해서 둥근 지붕을 활용해 한 장 더 찍었다. 그리고 야외광을 최대한 활용해서 한 장을 더 추가하고, 개인 책자 출판 때 쓰고 싶다고 요청해서 그림을 배경으로 한 장 더 찍었다.


  


  


  


에디터는 최종적으로 대기실에서 촬영한 컷을 사용했다.




촬영. 120430 @Indigo hotel Shangahi, CHINA

Client. Tatler Shanghai magazine




2014.05.08 09:10

이름 앞에 부끄럽기 싫다


새 명함이 나왔다. 영어 이름을 바꿨다. 새 영어 이름은 MoBe모비라고 지었다. 중국에 와서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영어 이름을 썼는데, 당장 써야 하니 급하게 아무렇게나 고른 이름은 Mark였다. 10년쯤 되었다. 지금 대부분 친구들이나 거래처 사람들은 나를 Mark라고 부른다. 오래 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벼르던 차에 새 이름으로 바꾸고 새 명함을 받았다.


이름이 바뀌면 많은 것이 따라 변할 것이다. 예전에 이름을 바꾼 친구가 있었는데, 오래 알아온 친구가 아니었는데도 새 이름을 부르니 내가 그동안 알던 사람은 어디로 가 버리고 다른 사람을 부르는 것 같아서, 그러니까 내가 아는 사람인데도 모르는 사람을 부르는 것 같아서 어색했다. 지금은 그 친구 옛 이름은 잊었는데, 어쩐지 그 친구를 잘 찾지 않게 되었다.


이름은 한 사람의 종합이다. 사진 작업을 구상하며 그 사람 위에 덧대어진 것들을 모두 지워보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우선 지워질 수 있는 것은 직업이었다. 나이를 지울 수 있었고, 관계를 지울 수 있었다. 옷을 지울 수 있었고 화장을 지울 수 있었다. 그리고 거의 끝까지 남는 것은 이름이었다. 이름은 이미 사람의 얼굴과 분리하기 어려웠다. 내게는 그랬다. 그 사람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불린 이름이다. 이름 글자 안에 하루하루를 차곡차곡 담아서 지금의 그 사람이 되었겠다 싶었다. 이름은 무거운 것이다. 어떤 약속의 담보로 내걸 수 있는 가장 무거운 것 중에 하나가 아마 이름 석 자의 무게이지 않을까 싶다. 이름 앞에 부끄럽기 싫다.


한 동안 사람들은 나를 옛이름으로 부르겠지만, 이제부터 새로 알게 되는 사람들에게 나는 MoBe입니다. 소개할 테다. 뜻과 발음은 소설 모비딕Moby Dick에서 땄다. by비보다 Be가 낫겠다 싶어서 MoBe라고 쓰기로 한다.





2014.04.22 18:49

[기억]뒤돌아보면 집들이 보였다


또 지난 사진들을 봤다. 컴퓨터를 새로 샀고, 사진 데이터를 새로 옮겼다. 지난 사진들을 어쩔까 하다가 남겨두었다. 그냥 보관만 하는 게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지난 사진들과 그 이야기를 좀 써볼까 생각했다. 그래서 사진을 열었다가 제법 지웠다. 사람 사진을 많이 지웠다. 그들이 아직도 내 컴퓨터 안에 자기들 사진이 남아 있다는 걸 알면, 젖살도 안 빠지고 여드름도 가시지 않은 얼굴이 바다 건너에 남아있다는 걸 알면 얼마나 불쾌하겠는가. 이제 나에게 잊혀지는 것이 맞지 않겠나.


사진은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한다. 내가 가진 사진은 2004년부터다. 처음 사진을 시작한 게 2002년, 군대를 다녀온 후였으니까 첫 두어 해 빼고는 모두 있는 셈이다. 제법 날려먹기도 하고, 지우기도 했지만 여전히 많이 있다. 그때, 나는 사진을 참 못 찍었구나. 의미없는 셔터를 아무렇게나 휘두르며 다녔구나. 내가 사진으로 밥벌어 먹는다는 사실이 새삼 고맙다. 적어도 한 가지 의미는 확실하니까 말이다.


지난 사진을 꺼내고, 사진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보려고 한다. 아마 상업사진에 대한 부분이 많을 것이다. 개인 사진은 어디 내놓기 부끄러울 만큼 못 났다. 이렇게라도, 사진을 꺼내보려고 한다.






 


사진은 05년 2월에 찍었다고 적혀 있다. 사진을 배우러 다니던 곳이 대학로에 있었는데, 길 건너편으로 비탈진 언덕에 집들은 쌓여 있었고, 좁고 구불구불한 계단을 따라 꼭대기까지 가면 위태로운 시멘트 경사벽 위까지 갈 수 있었다. 항상 짖는 개가 한 마리 있었고, 무당집이 있었다. 거기서 뒤돌아보면 집들이 보였다.







2014.02.18 23:09

종이 한 장 찢어지는 소리에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려다


어떤 대상을 잠시나마, 작게나마 위로하고 보듬어 안을 수 있는 사진이고 글이면 좋겠다. 몇 년 사이, 기준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한 번 무너지고 나니 사방에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만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안 보인다. 틀린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고 이럴 수 있구나, 저럴 수  있구나 싶다. 힘이 실린 말을 들으면 그게 맞나 싶어서 따라가고, 좋은 사진을 보면 또 저게 맞구나 싶어서 따라간다. 그래서 내가 잘 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점점 모호해졌다. 뿌리 없이 흔들리는 들풀같은 날들이다. 이름도 없는 초라한 날들이다.


그런 날들이 이어지면 마음이 급해져서 어디든 뿌리내리고 싶고 무엇이든 붙들고 싶어진다. 조바심이 난다. 다들 저만치 가는데 나는. 


일정을 못 맞춘 내 책임이 가장 크겠는데, 이번 책도 미끄러졌다. 한국  출판사 쪽과 미팅도 하고 이번에는 뭐가 되나 싶었는데 중국 측에서 올 해 일정이 너무 많다고 한국어판 출판을 연기하자고 했다. 맞다. 내가 늑장부리지 않았다면 작년에 나왔어야 할 책이니까 올해 일정에 반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쉽지만, 지은 죄가 있으니 마음껏 아쉬워하지 못 했다. 고등학교 때 낸 신춘문예 원고는 납으로 만든 추처럼 소리도 없이 가라앉아서 다시는 떠오르지 않았다. 중국에 와서 두어 해 동안 쓰고 다음었던 상하이 에세이는 출판사 몇 곳의 정중하고 단호한 거절에 멍들고 죽었다. 중국 몇 지역의 관광부서 의뢰로 만든 책은 동네 인쇄소 안내책 수준으로 멎었다. 그리고 이번 책은 중문판만 우선 나올 모양이다. 그래도, 이렇게 몇 권을 더 쓰면 서점에 내 책을 까는 날이 온다는 확신이 생겼다.


투정하는 문장은 실체가 없는 글이다. 좋은 글은 오래 묵은 생각과 단단한 정보로 쌓은 구조물이다. 그러니까 개인의 감상만으로 이어진 문장은 신기루에 그친다. 그런 문장이 많고 또 많이 읽히는 세상은 속이 빈 세상이기 쉽다. 그러니까 글 쓰는 사람은 가능한 그런 문장을 쓰면 안 된다. 그래도, 


종이 한 장 찢어지는 소리에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려다 소심한 마음이 들킬까 봐 얼른 제자리에 불러 앉히는 마음이 있잖은가. 매일을 버티는 심정으로 날마다 잇대어 사는 사람도 많잖은가. 어떤 날의 나처럼.


그러니까, 세상에 많을 테니까, 작은 위로라도 건넬 수 있다면, 나도 작은 소용이라도 있는 사람이지 않겠는가.


이 애달픈 세상에서.




2014.02.03 20:23

다시, 섬이다.


어쩌다가 지난 메일을 읽었다. 오래된 것들이다. 메일에서 사람들은 나를 섬.이라고 불렀다. 섬, 참 좋은 이름이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에 섬.이 있고, 장 그르니예의 책 중에 섬.이 있다. 나는 섬.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리고 아마 2009년을 전후한 때에, 나는 섬.이라는 이름을 썼었나 보다. 잊고 있었다.


내 아이의 이름은 마루.다. 아내가 김훈의 수필에서 따 온 이름이다. 나는 그 이름이 참 좋아서 마루.라고 마루를 부를 때마다 기분이 좋다. 아직 생기지도 않은 둘째도 이미 이름을 정했다. 그 아이는 나루.라고 부를 것이다. 마루가 바깥과 안을 잇는, 지상의 소통하는 공간이니까 나루는 물과 뭍을 잇는 공간이 될 것이다. 마루와 나루가 사는 시대는 국경의 경계를 우습게 넘을 테니까, 일부러 영어 이름을 따로 짓지 않아도 되도록 발음하기 쉽게 했다.


아내 이름은 이승희.다. 나는 아내.라고 부른다. 직접 부를 때는 여보.라고 부르고,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는 내 아내가요, 아내는요, 라고 시작한다. 아내는 후안 미로의 그림을 좋아하는데, 마침 미로의 그림에 있는 작가의 싸인과 아내의 장난스러운 싸인도 닮았다. 나는 아내의 새 영어 이름으로 미로.를 강력하게 밀고 있다. 아내의 반응은 시큰둥하지만.


내 이름 반치옥.은 발음하기 어려워서 별로 안 좋아한다. 할아버지께서 좋은 뜻으로 지으셨다는데, 어렵다. 그래도 워낙에나 독특해서 세상 천지가 다 검색되는 정보의 시대에서도 인터넷에 내 이름 쓰면 딱 나만 나온다. 영어 이름은 Mark인데 급하게 지어서 역시 많이 마음에 드는 이름은 아니다. 그런데 이미 그 이름으로 굳어서 다들 그렇게 부르니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도, 이름을 바꾸게 되면, 새 영어 이름은 섬.이라고 해야겠다. 또는 비애.라고 하는 것도 좋겠다. 섬은 Sum이라고 쓰자니 산수 시간 같아서 안 되겠고, Some라고 쓰자니 이것도 아니다. 어떻게 쓰나? 비애.라는 단어는 발음이 좀 여성스러운가? Vie쯤 되나? 이건 뜻이 있는 단어일 텐데, 다른 글자 조합으로 비슷한 발음이 나도록 찾아봐야겠다. 비애,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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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9 12:53

연말 파티가 있었다.




  



 연말 파티가 있었다. 사진을 가르치는 중국 친구들과 함께 소박하게 만났다. 본래 계획은 덩치를 조금 키워볼 생각이었는데, 다 만들어 둔 광고문구를 다른 곳에 올리는 게 귀찮아서 그냥 이 친구들만 초대한 꼴이 되었다. 테마는 이랬다. 


  미디어는 날마다 스타들의 매 순간을 비춘다. 그들의 사소한 것까지 대단한 것이라고 말하는 이면에는 스타가 아닌, 평범한 당신의 일상은 보잘 것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과연 그런가? 아닐 것이다. 당신의 드라마를 보여달라. 지난 한 해 당신이 찍은 많은 사진들은 특별한 일이 없다면 그냥 컴퓨터 구석에서 썩을 것이다. 당신의 1년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자. 지난 1년의 사진을 정리해서 서로 나누자.



  덕분에 나도 지난 사진을 정리했다. 점심 때부터 파티 시작 전까지 꼬박 정리했다. 나는 3만 장이 조금 넘는 사진을 찍었더라. 그 중 열에 아홉은 돈을 버는 사진이었다. 힘든 한 해였다고 생각했었다. 맞지 않는 사진들을 찍으면서, 맞지 않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며 날밤을 샌 일년이라고 생각했었다. 돌아보니, 좋아하는 사진도 제법 찍었던 일 년이었다. 좋은 일들도 제법 있었던 일 년이었다. 나는 세 가지 주제로 사진을 정리했다. 돈 번 사진들, 신장 출장에서 찍은 사진들, 그리고 아내와 마루 사진이었다.


  좋은 파티였다. 잉잉이 가져온 와인은 모처럼 맛 본 맛있는 와인이었다. 크리스티나의 요리 열전을 보고 우리는 내년 첫 모임은 크리스티나 집에서 하기로 했다. 새로 온 Joe는 재담꾼이었다. Sen은 자신의 심정을 대변하는 풍경들을 갖고 왔다. 



  신장 원고는 최후통첩을 받았다. 1월 중순까지 초고를 넘기겠다고 했다. 다른 말이 없어서 은근히 안심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그동안의 독촉을 토니가 그 큰 몸으로 다 막아주고 있었다. 사람 좋은 토니는 독촉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래, 너무 오래 끌었지. 이제 끝내야겠다. 한국 들어가기까지는 보름 정도가 남는다. 아무런  일정도, 촬영도 잡지 않을 작정이다. 동굴에 든 곰처럼 원고만 만지작거릴 작정이다. 뭐, 각오는 그렇다. 


다양한 주제를 가진, 중국에 대한 연작 형식의 책을 만들자는 종철 형의 제안은 좀 뜬금없지만 너무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좋은 책을 만들자는 제안은 개인적으로는 몇 년 동안 꿈꾼 후에 몇 년 동안 접어두었던 꿈이었다. 마침 힘든 시간이었고 사진에 대한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는 중이고 작업실 임대료는 여전히 무겁기만 한데 그 틈에 형이 그런 제안을 던졌다. 컬트 시장은 제법 성장했고, 어떻게 쓰든 색깔만 확실하게 낼 수 있다면 독자층은 있을 것이다. 통할 것이다. 게다가 종철 형이 함께 해준다면 강력할 것이다. 우리는 빵집에 앉아서 새 기획을 다듬었다. 속살속살 중국.이라는 제목은 솔직히 너무 마음에 안 들지만, 고민해서 얻어낸 제목 같아서 아무 말 안 했다. 제목을 듣는 순간 내 온 속살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형, 저는 그 제목 반대요.


아무리 컬트적이라고는 해도, 지금 내 문장은 너무 우울하고 지루하다. 안다. 형은 술술 읽히는 문장을 쓰겠다고 했고, 나는 내 문장은 순간마다 막아서는 문장이면 좋겠다고 했다. 어떤 씁쓸한, 복잡적인 감탄사가 읽는 내내 따라붙는 그런 문장이면 좋겠다. 하지만, 내 문장은 좀 더 경쾌하고  유치발랄해야 한다.


작정하는 책을 쓰려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미뤄두었던 책들을 다시 꺼내야 한다. 새 책도 많이 사고, 여러 곳에 자문을 구해 물어야 한다.


그러자면 사진에 대한 비중이 지금과는 조금 달라질 테고, 새 컴퓨터가 정말 꼭 그 녀석이어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그냥 작정한 것으로 사기로 한다. 경험상,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하더라.


한 해가, 끝났구나. 살아내느라 애썼다.


여전히, 한 마리 고래처럼 사는 세상을 꿈꾼다.







2013.12.16 20:22

이상.


오랜만에 반가운 친구가 다녀갔다. 안부를 묻고 답장을 적어야지 하는 사이에 안 보인다.


이름을 보고 '누구지?' 했었습니다. 섬.이라... 나도 잊었던 내 이름을 기억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나는 왜 섬을 잊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내가 생기고 아이가 생기고 나는 이제 섬이 아닌가? 생각하다가, 사는 동안은 누구나 섬이겠구나 싶었습니다.


나는 미안한 기억만 크게 남아있습니다. 두 번의 빙판길 말이지요. 왜 그렇게 서둘러야 했던지, 아마 말은 안 해도 깜짝 놀랐었지요? 나도 내가 빙판길을 그렇게 용감하게 (무모하게) 달려들 줄 몰랐습니다. 용케 차는 방향을 안 잃었고 덕분에 이렇게 지난 이야기를 합니다.


사람아, 아 사람아. 이름이 익숙해서 보니 책장에 있었습니다. 아, 또 사두고 안 읽은 책 중에 하나인 모양이다 싶었는데 책을 이리 저리 넘기다 보니 그 독특한 서술 방식이 기억이 났습니다. 사실,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데, 읽었다는 사실만 기억이 났습니다. 책 윗면을 보니 07년에 산 책이더군요. 오래 된 책입니다. 겉장이 제법 낡은 걸 보니 긴 시간에 걸쳐 이리저리 들고다니며 읽었던 모양입니다.


구불구불 가는 것은 맞는 듯한데, 나아가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걷고 있다는 것만 해도 좋은 겁니다. 그 무거운 걸음걸음이 제법 폼 나잖습니까.


참 많이 반갑습니다. 이상.






2013.12.10 15:45

서점 가고싶다.


지난 영화 필름을 수집하는 수집가 인터뷰를 다녀왔다. 리터칭할 사진이 밀렸는데 그것보다 신장 여행  원고가 더 급해서(마감 기한을 넘긴 지가 더 오래 되어서) 마침 상황이 맞아서 오후 내내 카페에 앉아 있다. 원고 쓰다가 생각나서 다른 미디어에 전화해 보니 오늘이 마감인 인터뷰 원고는 아무리 늦어도 내일까지 받아야 한다고 해서 결국 다른 작업을 다 접고 어제 다녀온 인터뷰 원고부터 쓴다. 마감도 너무 지나버리니 감각이 없다. 다만 모호한 불안감의 덩어리만 남는다. 마감 지난 지 하루 밖에 안 된, 그러니까 순서로 생각하면 좀 더 미뤄도 되는 인터뷰 원고를 지금 쓰게 될 줄이야.


연말에 나가는 원고니까,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_________연말이다. 또 한 해가 기록의 창고로 들어간다. 다 쓴 수첩을 속지만 빼서 표지에 ‘~2013. 12’라고 쓰고 책장의 한 모퉁이에 쌓는다. 몇 년 먼저 와서 벌써 색이 바랜 수첩들이 제법 탑을 쌓고 있다. 지우지 못 하고 찢어내지 못 하는 수첩에는 지난 한 때의 내가 오롯이 남아 있다. 잊었으면 하는 날도 있다. 남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은 이름, 중요하다고 따로 접어두고 찾지 못 하는 메모도 있다. 부끄럽고 미안한 한 해였다._________


원고 쓸 때는 언제나처럼, 웹을 돌아다닌다. 다니다가 새로 나온 책 동향 기사를 읽었다. 서점 간 것이 참 오래됐다는 생각이 불쑥 든다. 새로 나온 책들이 낯설어 보여서 그런가. 예전에는 그래도 한국에 가면 하루 오후 정도는 온전히 서점에 있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런 저런 책들을 뒤적거려 보고 제법 여러 권을 산 다음 박스로 포장해서 우선 한국 집으로 보내두는 것이 일이었다. 책은 나와 비슷하게 상하이에 도착하도록 했는데, 그러면 상하이 돌아와서 새 책을 한 권씩 꺼내서 뒤적거리며 책 바닥에 구입 날짜를 적는 것이 즐거운 일이었다. 사 두고 읽지 못 한 책들이 점점 늘어났지만 그게 대순가. 책은 우선 구입한 것만으로도 그 안에 있는 내용이 절반쯤은 내 것이 된 것 같은 만족감을 주곤 했었다.


핑계를 대자면 한두 개일까. 이제 서점은 스쳐지나고 만다. 들러도 긴 시간을 보내기 힘들고, 산다고 해도 한 두 권이다. 일 년에 한국은 한 번쯤 가니까, 일 년에 겨우 한 두 권을 사는 셈이다. 


인터뷰한 수집가는 정말 긁어모으듯이 무작위로 필름을 수집하고 있었다. 회사 곳곳에는 아직 포장도 뜯지 못 한 채 푸대자루에 담긴 필름들이 수북했다. 수집한 필름들을 다 볼 엄두를 못 낸다. 필름의 내용과 상태를 확인하기 위헤 중간중간 보는 것도 많다고 고백했다. 사실, 그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살짝 비웃었다. 그게 어제 일인데, 책을 대하는 나를 보니 그 비웃음을 비웃어야겠구나. 그 수집가의 즐거움을 진심으로 공감한다.


서점 가고싶다. 원고나 써야지.





2013.11.26 17:36

그러니까, 모든 사진은 자화상이다.


사진 스터디를 다시 시작했다. 이번에는 중국 친구들만 모아서 한다. 워낙 다양한 수준의 사람들이 오니까, 기술적인 부분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 주로 사진 숙제를 내고, 가져온 사진들을 강평한다. 그들이 어떤 기대를 가지고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다른 곳에서 얻기 힘든 사진에 관련된 생각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어쨌든 나는 결국 한 명 사진가이구나 싶다.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나는 잊었던 사진의 문제들을 다시 떠올리게 되고, 미루어 둔 개인 작업에 대해 다시 욕심내게 된다. 당장 급하니까, 돈 벌겠다고 시작한 사진이 아닌데 돈 버는 사진만 생각하면서 지내게 된다. 이 상황을 부정하거나 미워할 생각은 없다. 성실하게 돈 벌고, 매번 촬영마다 처음 찍는 사진처럼 긴장하며 찍고 있다. 촬영은 매번 도전이고, 조명은 항상 어렵다.


어떤 피사체를 대하든, 결국 내 의식이 피사체에 반사되어 나오는 것이 사진으로 남는다. 그러니까, 모든 사진은 자화상이다.


신장 다녀온 원고 작업 때문에 진도도 안 나가는 컴퓨터 앞에 며칠을 앉아 있다. 엉덩이도 아프고 허리도 아파서 괜히 서서 작업하는 컴퓨터 작업대도 알아보고 또 의자 위에 꿇어앉아서 쓰기도 한다. 마음이 바쁘니까, 몸이 게으르게 쉴 때도 마음이 쉬지 못 한다. 비효율이다. 불끈불끈, 새 작업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건 꼭 이럴 때다.




2013.11.16 23:10

아내가 없는 낮잠


지난 수요일부터 걸린 감기가 아직 한참이다. 자꾸 몸 눈치를 본다. 감기니까, 얼마든지 쉬어도 좋은 거라고, 틈 날 때마다 잠자도 된다고 살살 나를 꼬드긴다. 아직 아내는 내가 감기 걸린 줄은 모른다. 알면 속상할 테니까, 뭐라 그럴 거니까 말 안 했다. 통화는 가능한 안 하고, 동영상도 안 보낸다. 카톡으로 쓰고 만다.


아내가 없는 낮잠을 잤다. 고장난 노트북 충전기를 사느라 시내에 나갔다가 버거킹에 앉아서 밀린 원고를 조금 썼다. 많이 쓸 작정이었는데 원고가 그렇지 뭐, 겨우 한 페이지 보탰다. 집에 돌아와서 침대에 엎드려서 다시 원고를 끄적이다가 귤 서너 개 까 먹고 잤다. 깨고 나니 밤이다. 아, 길게 잤구나.


아내가 없는 집에서 늦은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이상한 패배감이 감돈다. 잘 잤냐고, 차려둔 거 좀 먹으라고 말해 주는 아내가 없구나. 뭐든 다 못 한 것 같아서, 덜 한 것 같고 어설프게 한 것 같아서, 지금 벌려 둔 일들을 떠올리기가 무서웠다. 무기력하게 저녁을 보내고 내일 새벽에 나설 암벽등반 장비를 꾸렸다.


깊은 밤이다. 하루는 이렇게 가고 원고는 겨우 한 페이지가 보태졌다.






2013.11.07 10:17

아부지


잘 주무셨어요?


저는 어제도 작업실에서 잤어요. 아내 한국 들어가고 나면 널널하게 운동도 다니고 못 본 영화도 맘껏 볼 줄 알았거든요. 근데 아내 들어가니까 더 바빠요. 아무리 바빠도 집에 와서 밥 먹고 자고 나가라는 아내가 없으니까 이제 일하다가 그냥 여기서 자요. 아침에 일어나면 꾸질꾸질해요. ㅎㅎ 오늘 밤쯤이면 아마 두 달 가까이 끌어오던 작업을 다 마쳐요. 다음 작업들도 해야지만 우선 큰 짐은 내려놓네요. 결제받으려면 또 두어 달 기다리긴 하겠지만요.


아침에 여기 사무실 단지 관리 직원이 왔어요. 소방 감독하는 기관에서 무슨 검사 나왔다나 봐요. 촬영 없는 날은 작업실이 좀 엉망인데 어제는 여기서 잠도 잤으니 밤새 마신 음료수 병이랑 빵봉지랑 그런 거 막 책상 주변 바닥에 너저분하고요. 컴퓨터로 사진 고치는 작업하느라 커튼도 다 닫아놓았으니 꼬질꼬질한 냄새도 잔뜩 나요. 아직 아침 이도 안 닦았는데 손님이 와버렸어요. ㅎㅎ


두 사람이랑 이런 저런 이야기하다가, 관리팀 직원이 그 소방 감독관한테 제 이야기를 하면서 참 예의바른 친구다, 했어요. 아침에 출근하거나 저녁에 퇴근할 때마다 마주치는 단지 내 사람들한테 꼬박꼬박 목례 인사를 하는데 그게 그렇게 보였나 봐요.


아부지는 아마 기억 못 하실 것 같은데, 이게 제가 중국 올 때 공항에서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거였어요. 


인사 잘 하고 다녀라.


그때 그 말 들었을 때는 좀 생뚱맞았어요. 아들 먼 길 떠나는데, 그것도 오래 떠나는데 갑자기 인사 잘 하고 다니라는 당부는 좀 이상했거든요. 그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상황에서는 뭔가 다른 이야기들이 더 어울리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근데요 아부지. 저 그 말대로 해요. 엘리베이터나 아파트 복도에서 갑자기 다른 사람이랑 마주치면 그게 참 어색하거든요. 그럴 때 아부지 충고 생각하면서 먼저 인사하려고 노력해요. 작업실 출근할 때도 앞에 수위 아저씨부터 청소 아주머니까지 전부 인사하고요. 옆 사무실 사람들 처음 이사왔을 때도 먼저 인사했어요. 그게, 그렇더라구요. 참 가벼운 것 같았던 아부지 당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리고 그 당부가 아버지 지나가는 말씀이 아니라 생활에서 참 많이 단련된 말이라는 걸 지나면서 알겠더라구요.


아부지, 항상 고마워요.


보고싶네요. ㅎ





2013.10.08 00:15

부끄럽지만, 그랬다.


  며칠 전에 읽은 내용이다. 잡스가 1984년 어느 행사에서 연설했다는 내용인데, 잡스는 사람들이 책 크기의 컴퓨터를 들고 다니는 세상에 대해 말한다. 전화도 되고, 배우기 쉽고, 순식간에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컴퓨터의 미래를 그린다.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당신을 상상해 보라고 하고, 그런 것을 만드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꿈은 20년쯤 걸려서 마침내 아이패드로 이루어진다.


  20년이다. 20년을 한결같이 꿈꿀 수 있는 사람, 그 꿈에 대한 확신과 꾸준한 열정이 만들어낸 결과. 나는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내 20년 뒤를 꿈꾼 적이 있는지 생각했다. 없었다. 겨우 1년쯤이나 생각했을까. 부끄럽지만, 그랬다. 


 두 번에 걸쳐, 보름 가깝게 다녀온 신장 지역 출장 원고를 정리하고 있다. 애초에 책을 내는 것이 계약 조건이었으니까 약속한 시간 안에 써야 한다. 오늘 우선 한 토막을 정리했다. 가능한 이번 달 안에 초고라도 정리해 보려고 한다. 


  내 20년을 고민한다. 




2013.07.17 18:53

작업노트 130717


스튜디오 조명을 외부에서 쓸 수 있도록 돕는 베터리팩을 샀다. 600와트 출력 조명을 동시에 세 개까지 쓸 수 있다. 교환용 베터리 하나를 추가로 구입했다. 


내년쯤에 열고 싶은 개인전을 위한 작업은 600와트 조명 두 개를 쓴다. 생각하는 전시 컨셉은 세 개인데, 내년에 그 첫 번째 작업을 전시하고 싶다. 전통적인 사진전 형태다. 두 번째 작업은 비디오 작업이고, 세 번째 작업은 첫 번째 작업과 연결되는데 설치미술의 형식도 빌리려고 한다. 첫 번째 작업보다는 두 번째가, 두 번째 작업보다는 세 번째가 더 규모가 크기 때문에 차례로 단계를 밟아가야 한다.


나는 몇 년 동안 잡지에 실리는 포트레이트 사진을 주로 찍었다. 비슷한 형태의 사진을 일반인을 모델로 작업하려고 한다. 첫 번째 작업과 세 번째 작업은 미디어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다룬다. 두 번째 작업은 관람객에게 공포와 충격을 주려는 것이 의도인데 얼마나 받아들여질지는 더 고민해야 한다.


당장에는 일이 밀려있고, 날씨도 너무 더워서 야외작업이 쉽지 않다. 수월하게 작업하기 위해서는 차량도 필요하다. 우선 주변 사람들부터 하나씩 시도해 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2013.06.28 14:22

기억이 덧붙기 쉬운 사진이어야 한다


  미팅 다녀왔다. 옷과 홈데코 소품을 만드는 디자이너였는데, 브로셔와 간단한 책자 의뢰였다. 지난 달에 잡지 인터뷰 촬영으로 만났었는데 그때 내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우선 지난 주에 아내와 마루를 데리고 산책 겸 시내에 있는 매장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오늘은 인쇄 디자인을 맡을 승일이와 함께 그의 쇼룸으로 찾아갔다. 가격적인 부분을 떠나서 우리는 한참 이야기했다. 디자이너는 여러 가지 참고자료를 보여주고 나는 또 거기에 의견을 보탰다. 디자이너는 오래 남는, 소장하고 싶은 브로셔를 원했다. 이번에 만들면 오래 쓸 작정이라고 했다. 매장에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인데, 새 제품은 계속 나오겠지만 브로셔를 따로 만들지 않을 테니까, 이 브로셔는 3년쯤 지나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매력적이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다음의 모든 말들은 3년이라는 단어 속으로 잠겨버리는 듯했다.


  사진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은 거의 사진을 보는 순간에 결정된다. 오래도록 보게 되는 사진, 또는 오래 지나서도 다시 꺼내보고 싶은 사진은 대부분 개인의 기억이 연관된 것이다. 내가 지나온 풍경이나 내가 만났던 사람 같은 것들. 신문의 사진은 하루를 버티면 된다. 달력의 사진은 한 달을 버티면 된다. 아, 도대체 어떤 사진이 3년을 버틸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사진이 3년이 지난 후 다시 꺼내보고 싶어질까? 지난 사진들을 다시 열어 보아야겠다. 


  고객의 기억과 닿아있는 사진이 아니라면, 고객의 기억이 덧붙기 쉬운  사진이어야 한다. 아마 그런 방향에서 작업하게 될 것이다. 제법 시간이 걸리겠지만 신나는 작업이 될 것이다. 게다가 디자이너이자 회사 대표인 이 사람의 안목은 어찌나 까다로운지. 디테일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이 작업이 끝나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견적부터 어떻게 해결하고.








2013.06.25 11:10

마루,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


 


요즘은 곧잘 보행기에 앉는다. 예전에 몸을 가누지 못 할 때는 앉혀 두면 바로 쓰러지고, 보행기에 붙은 놀이기구들에도 아무 관심이 없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아직 버튼을 누르면 소리가 난다는 인과관계를 아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이리 저리 누르고 돌리면서 잘 논다. 아직 뒤집지도 못 하면서 일어서는 것은 어찌나 좋아해서, 옆에서 잡아주면 걷고 구르며 논다.


  




  


  


  


  




 


  





2013.06.21 17:31

마루, 아빠가 안티


 



마루는 아직 뒤집기도 못 한다. 

뒤집어 놓으면 잠시 놀다가 힘들다고 끙끙거린다. 

그러면 가서 다시 뒤집어줘야 한다.


마루는 잠들면 온갖 몸부림을 치며 잔다.

기본 다리 하나는 침대 밖이다.



 





 



2013.06.21 17:21

내년에는 베이징에 가봐야겠다


 전국체전에 나가는 스포츠클라이밍 선수 선발을 겸한 클라이밍 대회가 베이징에서 있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 들었다. 시합 날짜는 토요일이었고, 그날 나는 촬영이 두 개 잡혀 있었다. 촬영이 없었다고 해도 지난 두어 달 암장에 나가지도 못 했으니 될 게 아니었다. 암장에 꾸준히 나갔다고 해도 지금 내 실력으로 입상권은 먼 이야기였을 것이다. 게다가 장소는 베이징이다. 그래도,


내년 중국 예선전에 나가고 싶다고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아내는 마루와 함께 응원가겠다고 했다. 


태권도를 처음 배운 건 초등학교 들어간 다음이었다. 기억에 아마도. 무척 다니고 싶어했었으니까 한참을 졸라서 겨우 허락을 얻었을 것이다. 그때 네 살 어린 동생도 함께 시작했다. 참 재미있었다. 작은 덩치에도 불구하고 몸은 제법 날랬으니까 곧 잘 했다. 그리고 나는 일 년을 채 못 다니고 그만 다녔다. 어느 날 관장님이 다음 대회에 나갈 사람들을 부르면서 내 이름도 불렀다. 그래보아야 시 군 대회쯤 되었을 텐데, 그래도 명색이 대회였다. 이 작은 몸을 격투기 대회에 내보내려 한단 말인가. 별도의 지정한 날 아침에 모여 승합차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가서 치르는 대회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한계 밖의 세계였다. 가 본 적도 없는 곳에서 아마도 일생을 태권도만 수련한, 그래서 한 대 얻어 맞기라도 하면 곧바로 뼈라도 부러질 것 같은 강한 상대들이 즐비한 세상일 것이다. 아, 그런 곳에 저 관장님은 어째 나를 보내려고 하나? 지난 번 시범 때 관장님 엉덩이를 걷어찬 것 밖에 없는데.


어떤 핑계를 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부모님도 이상하셨을 것이다. 좋아하고 뛰어다니던 아이가 갑자기 이리 저리 피하며 도장에 안 가겠다고 했으니까. 어쨌든 여차저차해서 나는 태권도를 그만 뒀다. 길에서 혹시라도 만날까 무서워 도장 근처로는 가지도 않고, 먼길로 빙빙 돌아다녔다. 동생은 계속 태권도를 했고 3단까지 땄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암벽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사실 안다. 그저 즐기는 수준이다. 밥 먹듯 운동하는 아이들과 비교할 수 없다. 그래도 가보고 싶다. (중국에서 암벽을 타는 한국인이 그리 많지는 않을 테니까,)운이 좋아서 선수라도 되면 전국체전이라는 곳에서 예선전이라도 뛰어볼 수 있는 거 아닌가. 또 안 되면 어떤가. 운동에 작은 동기부여라도 되지 않나. 열심히 운동해서, 내년에는 베이징에 가봐야겠다.


나중에 어쩌면 마루도 태권도장에서 도망칠 수 있고, 또 대회에 나가 예선전에서 떨어지고 상심할 수도 있다. 그때는 탈락 선배로서 마루 등을 토닥여 주고 까짓 것 그런 게 인생을 결정하는 건 아니라고 같이 웃어줄 수 있지 않을까. 웅변대회 결승에서 똑 떨어지고 서럽게 우는 내 손을 잡아주던 아버지처럼은 아니더라도. (아버지, 나만큼이나 서운해했던 아버지 표정이 생각날 것 같아요.ㅎ)






2013.05.28 17:55

마루. 아빠가 안티


 




마루는 주차중. 







  





내 어느덧 세상에 난 지도 다섯 달이 되었다. 살아보니, 세상은 별 게 없다.





  





낮잠을 위한 준비. 파리를 떄려잡을 죽도 한 자루, 숙면을 도와주는 공갈젖꼭지, 심심하면 흔들어 볼 노리개, 아이니까 아이패드. 작은 기린 인형은 놀이용이 아닌 식용으로 생각한다는 건 함정.




  




샤워하고 로션 바르다가,

어쩌다 보니 포청천 마루.







  





엄마 엄마!

나 이 났어요!

좁쌀같은 이가 두 개.





   




나에게 분유를 달라. 그렇지 않으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난장을 볼 것이다.





  




20mm 광각 팬케익 렌즈에 맛들인 아빠 때문에 요즘 찐빵으로 찍히는 마루. 귀여워 귀여워.


아빠는 당분간 광각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마루는 유모차에 누워 바라보는 나뭇잎을 좋아한다. 바람이 불어서 나뭇잎이 소리내며 휘날릴 때 마루는 자지러지듯 웃는다. 침대에 매달아 둔 작은 인형 모빌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거다. 햇살은 나뭇잎에 닿았다가 바람에 조각난다. 아직 뒤집기도 못 하는 마루지만, 마음으로는 벌써 몇 번이고 저 가지 끝에 닿았겠다.








2013년 5월 후반.

마루는 생후 다섯 달을 채워가고 있다.






2013.05.25 12:59

꿈. 태국에서 1년 살아보기


꿈.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었다가 지웠다. 게시판 세부 사항을 설정하다가 귀찮아서 관뒀다. 그냥 짧은 글 안에 작게 작게 적어야겠다. 가지고 싶은 것이나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 따위를 산책하는 심정으로 적어두려고 한다. 적어둔 대로 되면 좋고, 안 된다고 해도 가끔 다시 읽어보면 봄날 산책처럼 한가로울 수 있을 거니까.


마루가 학교 들어가기 한 해 전에, 1년쯤 태국에서 살고 싶다. 마루가 이제 다섯 달 됐으니까 학교 가려면 6년이 남았고(7년인가?) 그러면 5년 뒤가 되겠다. 지금이 2013년이니까 그럼 2018년이 되겠구나. 아내와 나는 태국요리를 좋아하니까, 그곳의 사람들도 좋아하니까 너무 붐비지 않는 곳으로 가서 1년만 살다가 오면 좋겠다. 아내는 태국요리를 배우겠다고 했다. 나는 한 달에 절반은 태국에 있고 절반은 상하이에 있어도 좋겠다. 그 전에 태국어를 배우고, 생활을 안정시켜 두어야 한다. 태국 어디쯤에 가서 살지 지도도 부지런히 보고, 그곳의 물가를 고려해서 생활비도 따져보아야 한다. 태국에서 외국인이 집을 렌트하는 문제도 알아보면 좋겠다. 아, 태국이라...




2013.05.07 11:30

조금 알게 됐다. 그때보다는.


새 여권을 만들었다. 외우기 편한 여권 번호가 아까워서 가능하면 오래 쓰려고 했는데 더는 쓸 수 없어서 이번에 전자여권으로 바꿨다. 지금 여권은 군 제대 후에 만든 것이니 10년 만이다. 중간에 속지를 한 번 추가했고, 연장도 한 번 했다. 속지를 추가할 때 두꺼워진 여권을 보면서 괜히 으쓱하기도 했고 기간 연장 때는 스탬프 하나 찍어주는 걸 보면서 싱겁기도 했다. 워낙 낡아서 중국 공항에서 두어 번 주의를 받기도 했다. 여권 접합 부분이 떨어지면 출국도 입국도 할 수 없으니 조심하라고 했다. 그 뒤로는 아내가 여권 커버를 마련해 주었다. 새로 받은 여권은 종이가 빳빳해서 길들지 않은 구두 같다. 아직 외우지 못한 새 여권 번호가 생겼고, 앞으로 10년 동안 쓸 새 여권 사진이 생겼다.


의류 촬영이 있는 날이었는데, 모델이 도착하기 전 이른 아침이었다. 조명을 세팅해두고 보니 마침 증명사진 찍기에도 무난해 보여서 촬영 준비하다가 갑자기 앉아서 찍었다. 대충 세수를 하고 삐져나온 머리카락을 물로 얌전히 붙였다. 바람소리 누나가 찍고 내가 직접 포토샵 작업을 했다. 다른 것은 그대로 두고 피부를 정리했다.


새 얼굴이 마음에 든다. 10년 전 사진과 비교하니 나이가 들었고, 편해졌다. 사진 두 장을 유심히 봤다. 10년 전 얼굴은 서툰 나를 감추려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마땅히 어때야는지 몰랐다. 이게 좋아 보이면 따라 하고, 저게 좋아 보이면 흉내 냈다. 그 서툴고 불안한 마음을 들키기 싫어서 괜히 더 당당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10년 전 나를 보면서 생각한다. 지금도 서툴지만, 그때보다는 낫다. 무엇을 해야는지 어디로 가야는지는 여전히 막막하지만, 어때야는지는 적어도 조금 알게 됐다. 그때보다는.


새 얼굴이 마음에 들어서 참 좋다.



2013.03.25 14:20

한 번씩,


  필요한 원고 사진을 찾느라 예전 사진들을 쭉 본다. 중간 중간 지워진, 지운 사진들이 적지 않아도 어느덧 10년 가까이 모인 사진들이 제법 된다. 자료 찾느라 열었다가 어디쯤에서 멈칫멈칫 하기도 하고 어디쯤은 얼른 넘어서기도 한다. 부끄러운 기억이 앞서고, 미안함 감정이 뒤따른다. 아, 다들 안녕하시겠지.


  사진은 너무 많은 것을 너무 또렷하게 기억한다고 적었었다. 그 미련함을 알면서도 지우지 않는다. 미련한 기억이라도 많으면 조금이라도 더 든든하다고 믿는 것일까. 아, 원고 써야지 하며 얼른 닫는다. 





2013.02.25 14:57

마루를 위한 여행 안내서


  어떤 아빠가 되어야 하나,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나 하는 생각은 일찍부터 했다. 짐작은 했었다. 아이는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집착의 대상이 될 것이다. 세상에서 그보다 온전히 내게 속하는 것도 없을 테니까. 조금만 방심하면 아이에게 집착해서 내 뜻대로 휘두르려고 들 것이다. 참 위함하겠다 싶다. 오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한다.


  부모의 마땅한 자리는 아마 여행 안내자 정도가 아닐까. 낯선 땅에 막 도착한 여행자가 스스로의 여행을 시작하기 전까지 그 땅의 대체적인 성격을 설명하고, 이곳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소개하고 위험한 것들을 경고하고 비상연락망도 알려주고, 생존에 대한 몇 가지 시범을 보여주어도 좋을 것이다. 다양한 길을 알려주되 길마다에 있을 모험들을 가감없이 아는 만큼 알려주면 될 것이다. 내가 가 보지 못 했던 길을 더 좋은 것처럼 말하거나 내가 다시 가고 싶은 길을 더 길게 말하지 않아야겠다.


  언제가 되든 마루가 제 여행을 시작할 때, 그동안 전해들은 가이드의 말이 든든한 힘이 될 수 있어야 한다. 




2013.02.24 22:21

마루는 기억하지 못 하겠지


  마루 손톱을 깎았다. 목욕하고 분유 먹고 잠든 사이에 몰래 깎았다. 손톱은 얇아서 셀로판 종이처럼 누르는 대로 구부러졌다. 행여 손톱을 자르다가 손가락까지 다칠까 조심스러웠다. 마루는 깊은 잠을 자는 것 같다가 깨어서 울었다. 열 개 손톱을 한참만에야 다 깎았다. 제 부모가 저 잠든 사이에 손톱을 깎은 줄을 마루는 아마 모를 거다. 아, 나도 비슷한 기억이 있었다. 학교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여느 날처럼 학교 간다고 문지방을 내려서는데 부모님 두 분이 그 앞에 서 계셨다. 이상했다. 평소와는 다른, 무언가 기대하는 미소로 두 분은 서 계셨다. 그리고 새 운동화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 이것이었구나. 학교가는 아이가 새 신발을 보고 기뻐하는 표정을 보고 싶어서 두 분 새벽이 조금은 설랬겠구나. 운동화가 닳았는지 더러운지 신경도 안 썼던 때 이야기다.


어떤 신발이었는지, 정확한 배경이 어땠는지, 아버지가 앞서고 어머니가 뒤에 섰던지 그 반대였는지 아니면 나란히 서 계셨는지  사실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무언가 다른 기대감으로 밝게 빛나던 젊은 아버지 어머니의 인상만 남아있다. 마루는 오늘을 기억하지 못 하겠지.


잠든 마루 손톱을 깎다가 그때 생각이 났다.





  




2013.01.17 19:13

한 번도 땅을 디딘 적 없는 발이다


  



한 번도 땅을 디딘 적 없는 발이다. 아무 것도 제 의지로 디뎌보지 않은 발, 새 발이다. 무엇을 디디고 설 지, 어디에 디디고 설 지를 아직 정하지 않은 발이다. 저 발을 어떤 풍경으로 인도하고 어떤 사람 앞으로 데려가고 또 어떤 경험 앞에 안내해야 하나? 가만 쳐다보고 이런 저런 것을 생각한다.


마루.라고 지었다. 아내가 김훈의 수필에서 따왔다. 정확하게 어느 대목인지 나는 읽은 기억이 없는데, 안과 바깥을 잇는 소통의 공간, 더 넓은 곳과 소통하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마루'라는 단어를 풀어 둔 구절이 있다고 한다. 참 마음에 들어서 아내는 일찍부터 아이의 이름으로 점찍어 두고 있었다. 더 찾아보면 마루는 우리말로 '하늘'이라는 뜻도 있고, 산의 봉우리라는 뜻도 있다. 내 아이 세대는 국적의 경계를 우습게 여길 테니까 발음하기 쉬운 이름으로 했다. 아버지께서도 선듯 허락해 주셔서 반마루.가 되었다.


자고 있는 아이를 가슴에 안고


"마루야, 너는 어떤 세상을 살래?" 물었는데, 마루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면서, 마루는 잘 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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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0 08:15

나는 예정된 촬영을 나서는 구나.


어제 출근길에 뮤지컬 명성황후 OST를 가져갔다. 딴에는 혼자라도 승리의 축배를 들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내에게 출구조사 결과를 전해듣고도 어쩐지 질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 피부에 와닿았던 그 기운들은 모두 같은 편이었다. 모두 상식의 편이라고 믿었다. 아직 개표율이 낮은 서울지역의 상황에 기대를 걸면서도, 50만표를 넘어 점점 격차를 키우는 것을 보며 패배를 인정했다.

 

명성황후 엔딩곡은 '애통하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안타까운 백성들의 처지를 걱정하는 황후의 말, 일본의 간악함에 분노하는 황후의 말이 뒤따른다. 그리고, 동녘의 붉은 해를 스스로 지키라는 당부와 합창으로 노래는 끝난다. 나는 별로 한 것이 없어서, 조용히 울었다.

 

승리한 것은 비상식이 아니라 다른 편에 있는 상식이었던 것일까? 그렇게 믿어야 하나?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는데도 해는 뜨고 사람들은 출근하고 나는 예정된 촬영을 나서는 구나. 살면서 이런 크기의 좌절을 몇 번이나 겪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많았다. 아버지와 처음 다투고 아버지의 작은 어깨를 보았던 때, 작문 시험지를 0점 받았던 때, 원하는 대학 불합격 전화 안내를 받았던 때, 크게 기대했던 계약이 깨졌던 때, 내 마음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때, 그리고 대통령께서 가셨던 그 날도 있다. 그 시간들을 지나면서 나는 오늘 살아있지 않나. 그 사건들을 계기로 조금 변하면서 여기까지 왔지 않나. 결론은, 살아야겠다.

 

좌절할 자격이 부족하다. 몸을 던져 선거운동을 한 것도 아니다. 현장에 뛰어들어 주먹을 쥔 것도 아니고, 하다 못해 웹 상에서 작은 투쟁이라도 한 것이 없다. 박근혜를 찍겠다는 지인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치열하게 그들을 설득할 시도도 못 했다. 나는 겨우 마음으로 응원했다. 나는 좌절할 자격도 부족하다.

 

성실하고 단단하게 살아야겠다. 당분간 포털사이트는 접속하지 않을 작정이다. 덕분에 에프상하이와 내 블로그, 웨이보에 다시 집중할 수 있겠다. 그래, 덕분이다.


 



2012.09.18 15:47

계절이 변해갈 때


  계절이 변해갈 때,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이 새삼스럽다. 가을이 온다. 저녁 샤워 마치면 몸에 닿는 바람이 더 이상 시원하지 않고 서늘하다. 새벽 출근길 햇빛을 피하지 않아도 된다. 의지와 상관 없이, 슬슬 하나둘 마무리 되어야 한다.


  세상의 끝에 닿으면, 조르바와 모비딕을 다시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조르바가 죽기 직전에 통곡했던 이유를 나는 아직 모르니까, 세상의 끝쯤에는 그런 답도 있지 않을까. 모비딕이 감추어 둔 사는 일의 신비같은 것도 거기에서는 두엇쯤 드러나지 않을까. 세상의 끝이니까. 그곳에서 나는 호탕한 마음으로 조르바를 먼저 읽고, 벌거벗은 단독자의 각오로 다시 모비딕을 읽을 것이다. 크고 낡은 흰고래 모비딕과 대칭점에 서 있는 것은 에이헤브 선장도 아니고 주인공 이슈메일은 더 아니다. 낡은 배 피쿼드 호와 세 갑판장으로 대표되는 그 배의 선원들이 고래의 맞은 편에 서서 같은 종말을 바라보고 나아간다. 죽음을 예견하면서도 끌려들어가고 마침내 침몰한다.


나는 요즘 사람마다의 잡지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글을 쓰고, 사람에게 묻고, 사진을 찍고, 잡지를 만드는 일들을 돈벌이로 해왔다. 이제 모두 함께 한다.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찍어서 인터뷰는 문장으로 만들고 사진과 함께 잡지로 엮어 낸다. 한 사람이 주인공인 잡지다. 그 잡지로 돈을 번다.



2012.09.10 10:06

산전수전 겪은 돈


  마지막으로 여기에 쓴 것이 지난 4월 말이구나. 오래 됐다. 4월 말쯤이면 작업실을 열고 두어 달이 지났을 무렵인가. 아득하다. 계획은 여럿이었는데 작은 계획들은 저들끼리 모이면서 덩치를 키워서 좀처럼 상대하기 어려울 만큼 거대해졌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나,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날마다 눈앞에 닥치는 것들을 겨우 넘으면서 지난 몇 달을 지나왔다. 많은 것이 여전히 모자르고 숨은 여전히 턱 아래 어디쯤까지 차오른 상태인 듯하다. 그래도, 한 눈에 다 담기지 않는 괴물처럼 몸집을 키운 계획의 덩어리에 작은 바람구멍이라도 내야 하니까, 그래야 조금씩 털어질 테니까, 다시 쓰기를 이어가야겠다. 새로 찍은 사진들도 많고, 새로 생긴 사람들, 새로 나눌 이야기도 많다. 정리해서 올려 두어야 하는 묵은 이야기들도 많다.


  아침에 시장에 갔다. 잠결에 아내의 주문서를 들었는데 대충 일곱 가지였다. 김치 다 먹었으니 새로 담그겠다고 말한 것이 벌써 한참인데 바쁘다는 핑계로 도와줄 수 없었다.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출근 전에 시장에 갔다. 우선 여기에서 파는 배추는 너무 물러서 김치 담그기에 적당하지 않으니까, 여기에서 와와차이.라고 부르는 조금 작은 배추를 샀다. 마늘, 양파, 감자, 부추, 생강, 두부, 매운 고추를 샀다. 대충 챙겨보다가 한 개가 모자라서 아내에게 전화해서 다시 물어야 했다.


  두부를 사고 100위엔 짜리 지폐를 내고 거스름돈을 받았다. 20위엔짜리 세 장과 10위엔짜리 세 장을 받았다. 아저씨는 두부를 담근 물에 손가락 하나를 적신 다음 돈을 셌다. 받아 보니 지폐는 뻣뻣한 기운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오래도록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온 돈인 듯싶었다. 게다가 특별히 구겨지거나 찢어진 부분도 없었다. 그러니까 오랜 시간 동안 여러 곳을 떠돌아 다녔지만 인상 곱게 늙어간 사람의 얼굴같은 돈이다. 곱게 받아서 집에 오는 내내 산전수전 다 겪은 돈을 생각했다. 


  저녁에는 새로 담근 김치를 먹겠구나.






2012.04.21 23:51

아침 공항에 앉아서



07:00

  아침 공항에 앉아서 비행기 출발 시각을 기다리며 지난 밤 파키스탄에서 발생한 비행기 추락사고 뉴스를 본다. 뉴스는 모자이크 처리 없이 잘려나가 기체에 깔린 죽은 몸을 보여주었다. 사고가 난 기종은 보잉737기종이라고 한다. 오늘 아침 내가 타고 갈 비행기는 어떤 기종일까?


23:50

  구이저우 성의 성도, 구이양에 와 있다. 내가 타고 온 비행기는 A321 기종이었다. 





2012.04.08 22:50

손글씨가 못 생겨진다.


  대학 때 썼던 노트 몇 권을 아직 갖고 있다. 대부분 안재흥 선생님 수업의 노트들이다. 열심히 들었던 강의였으니까, 그때 생각으론 아마 혼자라도 강의록을 보며 더 배울 것들이 있었던 모양이니까, 또 내 노력의 흔적들이 있었으니까 졸업 후 중국으로 오며 여러 책과 함께 가져왔었다. 전공과 전혀 상관 없는 사진가가 되기로 결심했으면서.


  며칠 전에 우연찮게 강의 노트를 꺼내봤다. 중간중간 밑줄을 긋고 제법 여기저기 반론도 적어 둔 자료집이 있었다. 필기 잘 하는 후배의 노트를 복사해 둔 것도 있었다. 그리고 시험을 준비하며 따로 정리한 요약 노트도 있었다. 그때도 벼락치기는 여전했던 거니까 바쁜 마음은 글씨에 그대로 드러났다. 흘러가듯 페이지를 채운 글씨들은 그러나 정돈되어 있었다. 백지에 바쁜 마음으로 적어도 단정하게 이어진 글씨들이 지금 보아도 예쁘다.


  손글씨가 점점 못 생겨진다. 몇 년째 속지를 바꿔가며 쓰고 있는 수첩 속에서, 내 글씨는 점점 더 못 생겨진다. 요즘에는 가끔 내 글씨가 참 미워 보인다. 제법 좋아하던 내 글씨가 몇 년 사이에 그렇게 되었다. 


  기억하기에, 누나는 참 예쁜 글씨를 썼다. 처음 글씨를 염두에 둔 것이 아마 중학교 무렵이었던 듯한데, 그때도 누나 글씨를 보며 부러워했던 것 같다. 가물하기는 해도. 스스로 필기하며 ‘내 글씨는 왜 이리 못 생겼나.’ 생각하기도 했었다. 이 기억은 분명하게도. 누나의 글씨를 부러워했던 정확한 기억은 고등학교 때다. 누나의 글씨는 기억나지 않고, 다만 그 글씨를 부러워했다는 기억은 난다. 그리고 더디고 성글기는 해도 꾸준히 글씨를 의식하며 글을 썼다. 제법 내 글씨가 마음에 들게 된 것은 대학에 입학하고도 제법 시간이 지난 뒤였지 싶다. 특징적인 형태를 갖춘 초기에는 그 특징을 과장하려는 서툰 의지가 글씨에 드러났을 것이다. 그리고 더 다듬어지면서 비로소 서툴고 과장된 의지는 속으로 숨고 쓰는 사람의 기질이 보이는 글씨가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글씨가 마음에 드니 여기저기 편지 쓰는 일도 많았다. 메일로 안부를 주고 받다가도 언제 한 번씩은 손글씨로 편지를 썼다. 백지에 쓰기도 하고 따로 편지지를 마련해서 쓰기도 했다. 선생님이나 친구에게 보내는 안부 편지도 있었고 연애 편지도 있었다. 


  처음 중국에 왔을 때 샤오싱 근처에 있는 정원에 들렀는데, 그곳에서 말로만 듣던 왕희지의 글씨를 처음 보았다. 오리인지 거위인지 몇 마리가 떠다니는 작은 연못 앞에 왕희지의 글씨 두 글자를 새긴 큰 비석이 있다. 선이 굵은, 단호하고 굳건한 글씨였다. 


  한 번 익힌 글씨가 망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한 번 배우고 나면 언제든 다시 탈 수 있는 자전거처럼, 한 번 익힌 글씨는 온전히 내 것이 되는 줄 알았다. 최근 수첩에 적은 내 글씨를 보면서, 쓰지 않으면 망가지는 것이 글씨라는 사실을 알았다.


  최근에야 새롭게 든 생각인데, 전통 한자 서예야 말로 추상 미술의 절정이지 싶다. 한국의 고암 이응노 화백이나 중국의 국보급 화가 우관중 같은 이는 공통적으로 말년에 문자 추상을 작업한다. 두 사람 모두 프랑스에서 공부했고, 서양적 회화 기법과 동양의 수묵 기법을 독창적으로 결합시킨 작품 세계로 인정받았다. 그렇지만 그들의 문자 추상 작업은 서예의 길과는 다른 길을 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서양 순수 추상의 발생기에 그것은 비명 소리에 가까웠다. 비명의 속뜻은 ‘에라, 어쩔 줄 모르겠다.’쯤 될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은 잔뜩 있는데, 현실에 있는 단어들은 그 감정들을 담기에 어딘지 모자르고, 그렇다고 고정된 형태 속에 가두기는 답답하니 비명을 내지르는 것 밖에. 그때의 추상미술은 소통하자는 제안이나 아름다움을 공유하자는 선의가 아니라 누구든 제발 내 비명을 듣고 나를 구하러 와 달라는 구조 요청같은 것이다. 비명에는 논리도, 형식도 없다. 배워야 지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쯤이 태동기 순수추상의 한계가 아니었을까.


  서예는 정제된 목소리다. 목소리지만 말이 아니고, 비명도 아니다. 논리로 구축된 언어가 아니다. 무게중심을 두는 것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에 서예는 이미지의 문법 구조를 따르면서 문자 언어의 문법 구조에 한 다리를 살짝 걸친다. 사실 걸치는 것이 한 다리까지는 아니고, 체중의 아주 작은 부분, 내 체중이 거기에 실린다는 느낌은 없지만, 막상 없으면 신체의 균형을 미묘하게 불안하게 만드는 딱 그만큼을 언어의 문법구조에 의지하고 있다. 긴 시간의 수련을 통해 획 하나에 담아내는 오롯한 기운. 수련을 거치며 글씨는 곧 주인과 동일체가 된다. 그리고 안성맞춤 짝으로서의 한자. 한자는 서예와 짝을 이루는 문자다. 글자마다에 태생적으로 뜻을 담고 있는 뜻글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예를 예술장르로서 파악할 때 그 무게중심은 문장의 뜻보다 글씨가 구축하는 이미지의 완결성에 치우친다. 이런 경지를, 현대 추상이 흉내내기는 어렵다. (로스코의 작업은 비슷한 경지에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며칠 전 아내와 함께 상하이 미술관에서 후안 미로의 전시를 보았다. 가기 전까지 미로가 누구인지 몰랐다. 아내는 내가 미로를 모른다는 사실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내 예술 배경은 참 얕다. 어쨌든,

생각보다 큰 전시였다. 크고 작은 미로의 작품들은 수 백 점이나 되었다. 미로는 자신만의 문자를 보여주었다. 그의 문자는 상형문자의 태동기에 있는 것 같았는데, 문자 언어로서의 소통성을 획득하기 이전에 있는 원시 문자를 보는 듯했다. 그의 세계 안에서 온전히 소통하는 문자들은 아름다웠다. 예술은 당대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라는 아도르노의 말을 지지하지만, 그래도 미로의 작업들은 아름다움을 통해 의식을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예술의 본래 목적이라는 오래된 말을 믿게 만든다.


  그러니까 결론은,

손글씨를 좀 써야겠다.




덧붙임.


1. 

안재흥 선생님께서는 주로 유럽정치와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해 강의하셨다. 나는 그 중에서 특히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된 강의들을 들었다. 선생님께서 개설하신 강의는 유럽정치를 제외하면 거의 모두 쫓아다니며 들었는데, 강의 제목은 달랐지만 모든 강의의 결론은 같은 지점에서 맺혔다.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그랬다. 선생님의 강의는 강의실 안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이후 내가 생각하는 방식의 바탕이 되었다. 나는 사람을 만나고 작업을 진행하는 모든 과정에서 여전히 선생님께 배운 것과 그 연장선에서 배우고 익힌 것들 위에서 생각한다.





2.

검색해 보니 샤오싱에 있는 정원의 이름은 난정?亭이다. 


  



3.

우관중은 중국의 서정적 풍경, 남방 지역의 마을 등을 그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그렸다. 그에 대해 일화 중 인성적인 것이 하나 있다. 우관중은 문화혁명 시기 지방으로 쫓겨 나 노동에 종사한다. 그림은 그릴 수 없었다. 언제 기회가 있어서 길을 나섰는데, 너무 그림이 그리고 싶었던 화가는 인상적인 풍경 앞에서 아내의 등에 캔버스를 올리고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런데 바람이 불어서 자꾸만 캔버스가 접히니까 답답한 화가는 그만 울어버렸다고 한다. 노 화백이 그림이 그리고 싶어서 우는 장면을 생각해 보면 작가의 위대함을 짐작할 수 있다.


  


  



4.

고암 이응노 화백은 군상 등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작품을 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언젠가 그의 그림과 똑같은 그림이 어느 작은 갤러리에 있었다고 한다. 그것을 본 지인이 와서 묻기를, 혹시 같은 작품을 두 개 그린 것이 아니냐? 하니 고암 화백은 "세상에 그릴 것이 얼마나 많은데 같은 걸 두 번이나 그리겠나."라고 했다고 한다. 위작이라는 말이었다. 작품 후반기에 문자 추상 작업을 많이 한 것으로 안다.


  


  


5.

로스코.는 색면 추상 작가다. 


  


6.

후안 미로.는 다다.의 시대를 관통한 작가다. 그의 작업은 당시 유행하던 의식의 흐름. 기법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2012.03.27 23:05

작업실에 암장이 있다.


  작업실에는 암장이 있다. 작업실 가운데 있는 콘크리트 기둥을 네 장의 합판으로 둘러싸서 만들었다. 합판 한 장의 규격은 122cm*244cm이고, 콘크리트 기둥은 네 면이 45cm의 정사각 기둥이다. 아래쪽은 높이 80cm까지 네 장의 합판을 세로로 길게 두르고, 그 위에 온전한 크기의 합판 네 장을 귀퉁이만 잘라서 얹었다. 위에 얹은 네 장의 합판은 아래쪽 폭이 45cm, 위쪽 폭은 122cm이다. 아래쪽에 붙인 네 장의 합판 두께를 미리 계산해서 기둥 두께에 보태야 했는데 처음 하는 일이라 서툴렀다. 그래서 아래 합판과 윗 합판은 아귀가 딱 들어맞지 않고 조금 엇나가 있다. 네 장의 큰 합판은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넓어져서, 이어 붙이면 앞쪽으로 기울어진 형태가 된다. 처음 생각에는 네 장 합판이 서로 붙어서 깔끔한 모습을 계획했던 것인데, 그랬을 경우 기울기가 충분하지 않아서 운동량이 부족할 것 같았다. 그래서 최종 형태는 합판의 모서리가 서로 닿지 않고 가운데 기둥이 들여다 보이는 모양이다. 기둥에는 따로 드릴 구멍을 내거나 볼트를 박지 않았다. 네 장의 합판을 와이어와 나무 지지대로 이어서 기둥에 밀착하도록 했다. 처음에 주문한 합판은 16mm짜리 였는데, 나중에 배송받은 해바라기 너트가 더 두꺼워서 다시 2mm짜리 두께의 합판을 네 장 더 사서 붙였다. 겨우 두께를 맞췄다. 합판이 힘을 받을 수 있도록 세로 지지대를 두 개씩 대었다. 그리고 합판 한 장에 약 40개 정도의 구멍을 뚫었다. 12mm 드릴 날을 따로 주문해야 했다. 인공 등반에 쓰는 홀더들은 일반적으로 10mm 볼트로 고정한다. 이때 충분한 지지력을 얻기 위해 합판 뒤쪽에 12mm 지름의 해바라기 너트를 미리 박고, 앞쪽에서는 해바라기 너트에 볼트를 고정하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홀더가 겉돌지 않고 지탱하는 힘도 강해진다. 네 면 중에 한 면은 홀더 대신 보드 위주로 만들었다. 손가락 근육과 등 근육을 단련하는 목적인데, 난이도가 높아질 수록 등과 겨드랑이 근육을 더 많이 쓰기 때문에 꼭 필요한 훈련이다. 합판은 근처 목재상에 주문했고, 홀더와 너트 볼트 등은 인터넷으로 구입했다. 중간에 몇 번의 설계 수정까지 겹쳐서, 모두 만드는 데는 2주 가까이 걸렸고, 4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었다. 삼중으로 안전 장치를 했으니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일은 없겠지만, 아마추어가 뚝딱거리며 만들었으니 살짝 삐걱거리기는 한다.



  


  암벽 등반을 운동으로 시작한 지 2년쯤 되었다. 중간에 반 년 넘게 쉬기는 했지만 나름 꾸준히 하고 있다. 상하이에는 산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어서 진짜 바위를 탈 기회가 적다. 그래서 운동은 주로 시내 몇 곳에 있는 인공암장에서 한다. 볼더링을 할 수 있는 구역이 있고, 높이 20미터쯤 되는 벽들이 몇 개 있다. 일요일에는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과 정기 모임이 있고, 평일에는 두 번 정도 따로 나가서 운동했다. 이제 작업실에 암장이 있으니까 실내 암장에는 일요일에만 가고 평일에는 틈틈이 작업실에서 매달린다. 작업하다가 지루하면, 밥 먹고 졸리면, 괜히 심심하면 암벽에 매달린다. 한 번 기둥을 돌아오는 데 2분 정도가 걸리니까, 다섯 바퀴를 돌면 10분이 조금 못 걸린다. 얼마 안 해도, 매일 꾸준히 하는 것이 제법 많은 도움이 된다.


  아내는 내가 너무 암벽만 좋아하니까, 다른 운동도 해 볼 것을 권한다. 동의하면서도, 당분간은 암장을 벗어날 생각이 없다. 예전에 했던 다른 운동들에 비하면 암벽은 내게 더 맞는 운동 같다. 대충 하기는 했어도 몇 년 동안 검도를 했으니 팔 힘의 기본은 다진 셈이고, 몸이 가벼우니 더 적은 힘으로 멀리 갈 수 있다. 상대와 승부를 겨루는 것도 아니고, 어제보다 조금 더 높이 가고 어제보다 조금 더 어려운 동작을 성공하면 된다. 


  매주 일요일 아침에는 일찍 깬다. 시계를 보고, '아직 시간이 안 됐네.'아쉬워하면서 다시 조금 더 잔다. 소풍가는 어린 아이 같다. 암장이 좋은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 아마 단순하기 때문인 듯하다. 몸이 바쁘지 않아도 마음이 바쁜 날들이다. 닥쳐올 일들을 생각하면 막막한 날들이다. 그런 중에 암벽에 있는 동안에는 다른 모든 것을 접어둘 수 있다. 다음 번 잡아야 할 홀더와 그 홀더를 잡기 위해 몸의 균형을 잡는 문제만 생각하면 된다. 어떻게 하면 떨어지지 않고 저기까지 갈 수 있을까? 문제는 단 한 가지면 된다. 실패하면 어떤가. 떨어지고 다시 붙으면 그만이다. 사방이 길이기도 하고 사방에 길이 없는 것도 같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막막한 평원에서 일요일마다 수직의 벽으로 탈출하는 셈이다. 벽을 오를 때, 안 좋은 버릇이기는 한데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간다. 암벽은 오르는 사람과 오르는 사람의 안전을 확보하는 사람이 한 가닥의 줄로 이어져 있으니까 둘 사이의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그러니까 이어폰으로 귀를 막는 것은 사실 위험한 행동이다. 자연암벽이나 처음 가는 코스에서는 조심해야겠지만, 인공암장에서 어려운 코스를 갈 때는 꼭 음악을 듣는다. 사방의 소리로부터 떨어져서 벽하고 나만 있다. 가다가, 가장 어려운 구간에 진입하기 전에 숨을 돌리면서 음악을 바꾼다. 가장 어려운 구간에서 듣는 음악은 언제나 한 곡이다. 응원가 같은 곡을 들으면서 점점 빨라지고 높아지는 음에 박자 맞추면서 공중에 혼자 매달려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세상에서 몇 발 떨어져 있을 수 있는 때가 흔하지는 않은 거니까.



  


  날씨가 제법 풀려서 곧 봄이 올 것을 알겠다. 맴버들과 두어 달 전부터 벼르고 있다. 다들 고만고만한 수준이니까 어려운 벽은 못 가겠지만, 아마 4월 중에는 항주에 있는 작은 바위 벽으로 갈 거다. 온몸이 뻐근하도록 바위를 타고 와야겠다.





2012.03.07 23:55

뭔가 적어얄 것 같아서,


  자정이 가깝다. 조금만 손보고 잘랬는데, 밤이다. 밖에는 빗물을 가르며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난다. 


  사이트를 고쳤다. 깔끔해졌다. 복잡한 것들을 다 치우고, 제로보드에서 지원하는 기본 기능만 활용해서 클릭 몇 번으로 만들었다. 클릭 몇 번이라고는 해도 이것저것 물어보고 고르느라 또 며칠은 걸렸다. 사이트를 고친 이유는, 새 작업실 사이트를 따로 오픈하면서 사진 관련 자료를 모두 옮겼기 때문이다. 새 작업실 사이트는 www.spacewhu.net이다.


  뭔들, 어느 시간인들 그렇지 않겠냐만 또 많은 것들이 변했다. 차근차근 적으려고 한다.


  몇 년간 생각만 하던 잡지를 또 부여잡는다. 이번에는 스튜디오에서 만드는 이미지 잡지다.


  좋은, 마음에 드는 새 집이다. 잘 써야겠다.






2012.01.08 08:41

책상을 정리하는 심정으로,


  책상을 정리하는 심정으로, 한 번쯤 깔끔하게 정돈하고 싶은 날들이다. 할 수 있는 말도 많지 않은데, 너무 오래 말하지 않고 지냈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지난 다음에, 천천히 복기해보고 싶어지는, 그러니까 내가 눈치채지 못 하고 놓치고 지나는 작은 조각들이 군데군데 박히는 날들이다.


  새 작업실을 열었다. 어수선하다. 한 동안 분주하게 내부 인테리어를 했다. 제한된 견적 안에서 하려니 직접 발로 뛰고 직접 손으로 만드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할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직접 하고, 직접 찾아서 주문하고 받아서 만들었다. 손과 시간이 많이 갔고, 결과물은 전문가의 작업에 한참 못 미쳤다.


  여전히, 세상에 빚지는 마음으로 산다. 한 평생 빚을 지고 산다. 미안한 마음만 자란다. 이런 텅 빈 문장은 안 좋다. 말 하려는 내용은 없고 다만 들어주기를 바라는 의지만 내세우는 비겁한 문장이다. 어서, 속이 단단한 문장을 쓸 수 있도록, 좋은 생활을 구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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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5 05:28

새벽에는 부끄러운 기억들만 떠오른다


어쩌다 보니 새벽이다. 좀처럼 없는 일이다. 새로 준비하는 작업실 때문에 부동산 사이트도 좀 보고, 이것 저것 뒤적거리다보니 새벽이다. 조용한 새벽에는 부끄러운 기억들만 떠오른다. 새벽이 그런 시간인 모양이다.


여행기도 좀 정리해서 올리고, 사는 이야기, 살고 싶은 이야기도 좀 더 적어서 풍성하게 해야겠다. 거미줄 치고 있는 모양새가 보기 딱하다. 




2011.08.07 21:03

수첩의 크기와 생각의 크기가


  태풍이 다녀갔다. 태풍이 온다고 해서, 예정되어 있던 촬영을 연기했는데 막상 촬영하기로 한 날은 태풍이 하늘의 흐린 구름까지 싹 걷어가서 맑았다. 그리고 오늘은 새벽부터 바람이 거세게 불고 비도 오다가 말다가 했다. 일요일마다 가는 암장에 가지 않고 아내와 함께 있었다. 저녁 즈음에는 태풍도 지나가서 아내와 집 앞 공원에서 산책했다. 공원 세 바퀴를 천천히 걸어서 걷는 동안 밝았던 하늘은 어두워지고 서쪽에는 모처럼 맑고 붉은 노을이 졌다. 어제 함께 본 인도 영화 이야기를 하며, 어떻게 사는 게 오늘을 잘 사는 것일까 이야기했다. 아내는 새로운 계획, 새로운 시간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분주해서 아내대로 기대에 찬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공원은 나무들로 가득차서 바람이 닿지 못 했다. 돌아오는 길에 작은 강에 걸친 다리 위에 서니 바람이 좋았다. 한참을 서 있었다. 센 바람이 부는 날이 좋다. 고개를 들면 뒤 아래를 감아 넘어가는 바람을 기억한다. 몇 년 전까지 나는 거기가 날개가 있었던 자리라고 말하고 다녔었다. 그 믿음은 여전하지만, 멈춰서서 그런 바람을 맞는 때가 적어졌다.


  준비하는 잡지 1차 시안이 이번주에는 나온다. 오래 걸렸다. 1차 시안이니까, 손댈 것도 많을 것이다. 최종 샘플이 나와서 여러 곳에 보이고 자문을 구하고 또 여행사들에게 거래를 제안하려면 아직 시간이 더 걸려야 한다. 많이 조급했다. 조급해서 마음도 다쳤다. 아직 오지 않은 날들 속에 있는 걱정거리들만 쏙 뽑아내 오늘에 불러서 나를 괴롭혔다. 그러지 말아야겠다 생각을 하면서도 쉽지 않았다. 등떠밀리지 말고,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즐기는 마음으로 해야겠다.


  수첩의 크기와 생각의 크기가 상관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문득 했다. 큰 그림을 그리는 데는 책상 가득 펼친 흰 종이가 좋다는 생각을 했다.





2011.06.16 13:10

통과의례를 생각했다



  동생을 통해서, 요즘 어머니가 다리가 불편하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마침 동생이 마땅찮은 꿈을 꾸어서 전화를 드리니 그렇더라고 했다. 알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꿈이 그렇다니 말은 하는데 누나와 형에게는 따로 알리지 말라고 하셨다고 한다. 비밀이란 게 영원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결국에는 이렇게 전해 듣는다. 누나에게 따로 말하지는 않았고, 아침에 전화드려서 모르는 척 안부를 물었다. 아내는 마늘 장아찌 만드는 법을 물었다. 어머니는 다 괜찮다고 받으셨는데, 아는 입장에서 들으니 마음이 무거웠다.


  오후에 사무실에 있는데 아내가 문자를 보냈다. 장모님께서 손가락 하나가 불편하셔서 오늘 수술을 하셨다고 한다. 예전부터 조금 불편하셨다는데 수술은 갑작스럽게 결정된 모양이다. 위급한 사태가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기는 하지만 수술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들어도 별로 가볍지 않다. 이틀 동안 입원도 하셔야 한다는데, 손 불편하시니 통화가 곤란할 것 같아서 우선 문자만 보내서 안부를 여쭌다.


  살아가는 일의 통과의례를 생각했다. 학교를 다니고 사춘기를 지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직장을 잡는 것들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람으로 겪는 통과의례다. 나도 거기쯤까지 와 있는 셈이다. 이제 더 겪어야 할 것을 생각해 보면, 아이를 낳고 아이 때문에 걱정하고 기뻐하는 것이 있고, 그리고 조금씩 불편해지는 몸의 부모님을 지켜보고 가슴 아파하다가, 결국 한 분씩 떠나보내는 것도 내가 겪어야 할 통과의례일 것이다. 생각만 해도, 분명히 올 시간이지만 차마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일 것 같다. 다 떠나보내고 내 이마에도 굵은 주름들이 나이 든 나무의 껍질처럼 단단해지면, 그때쯤에는 할 일을 모두 마친 심정으로 이제 사람의 일이 다 지나갔다고 돌아볼 수 있게 될까. 나는 그때를, 그리고 그때까지 이르는 시간들을 온전히 감당해낼 수 있을까. 


  부모님에게, 살아갈 수록 고마운 마음보다 미안한 마음이 커진다. 어릴 때는 고마운 마음도 몰랐다. 내 아버지보다 더 다정한 아버지, 내 어머니보다 더 상냥한 어머니를 바랬던 적도 있다. 그랬다. 부모님께 내가 은혜를 받는 것은 마땅히 고마운 일이지만, 그걸 또 두 분께 고스란히 돌려드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다. 내가 받은 것은 내 다음 세대에게 전해야 한다는, 내리사랑이 마땅한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두 분께 받는 사랑이 감당 못 할만큼 크다는 것을 알겠고, 내가 살아있는 동안 무엇을 하든 그 사랑을 다 돌려드리지 못 하겠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그 은혜를 돌려드려야 하는데 그렇게 못 하는 능력의 한계를 보면서 고마움은 미안함으로 변했다. 받은 사랑을 온전히 돌려드리는 것은 고사하더라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내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지만 어떤 시도도 부족하고 아쉬워만 보였다. 그리고 줄어드는 두 분의 시간과 여전히 제자리에 있는 나를 보면서 마음만 조급해진다. 무슨 짓을 한단들, 그 사랑을 갚을까.


  숙제처럼 한 주먹에 꼭 쥐고 있는 생각이 있다. 나는, 두 분의 전기를 쓰고 싶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어린 시절, 젊은 시절, 두 분이 만나서 함께 내달리던 시절의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전해듣기는 했지만 온전한 두 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었다. 어릴 때 아버지의 꿈은 무엇이었는지, 어머니와 어떻게 결혼을 결심했는지, 한 때의 가장 기쁜 일은, 또 가장 분한 일은 무엇이었는지, 처음 자동차를 사고 새벽마다 연습 운전을 가던 그 하얀색 중고차는 나중에 어떡했는지, 대통령 선거가 끝난 다음 날 고기파티를 열던 그 마음은 어땠는지, 자주 가서 잔뜩 낚아오시던 그 호수는 어디에 있는지, 한 번도 그 속을 본 적 없다는 산 정상의 동굴은 또 어디인지, 누나를 시집보내고, 처음 손자를 안던 날의 심정은 또 어땠는지, 나는 모른다.


  엄마 없는 아이로 할머니와 아빠의 손에 자라야 했던 어린 시절과, 시골에서 라디오로 세상 공부를 했다는 한 때, 아버지를 만났다는 봉사활동의 그 때, 시댁에서 친정으로 갈 때면 넘었다는 그 산길, 외할아버지 돌아가시고 그토록 서럽게 울던 어머니의 그 때를 나는 묻고 싶다.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 몸은 밖에 있으니 갈 수도 없다. 고기라고는 낚이지도 않는 바닷가 바위에 앉아 아버지께 묻고,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텃밭 바른 곳에 앉아서 물을 수 있으면 좋겠다. 너무 늦기 전에, 한 아이가 적는 그 부모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두 분을 조금 더 이해하는 것이, 내가 돌려드릴 수 있는 중에 하나일 것이다.


아버지는, 부모가 자식을 챙기는 마음은, 자식이 자식을 낳고 다시 그 자식이 자식을 낳아서 마침내 자식이 손자를 본 다음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되어보니 아마도 당신의 아버지 마음을 아셨나 보다. 누나네 아이들이 태어난 후로 아버지가 얻은 작은 깨달음이 그랬나 보다.


  언제부터 아버지 어머니 생각은 꼭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자식 셋을 든든하게 키워내시고 점점 힘이 빠져나가는 몸으로 그렇게 서 계신 것을 보면 저 힘을 모두 뽑아와서 우리 셋이, 내가 이렇게 서서 사람구실을 하는 것 같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되나.






2011.06.06 06:28

6.6 새벽


아내는 아직 잔다. 아마 어제 밤 늦게까지 작업을 했다. 나는 일찍 잠들어서 아내가 몇 시까지 작업을 했는지 모른다. 작업을 마친 아내가 침대로 와서 내게 몇 마디 말을 했었던 것도 같다. 


비온다. 음력으로 단오날이고, 양력으로 한국의 현충일이다. 이래저래 두 나라의 노는 날이다. 그리고 장인어른의 생신이다. 아침 일찍 전화드릴 생각으로 일어나서 전화했는데 안 받으신다. 멀리 떠나 있다는 핑계로 내 집안이나 아내 집안 일에 뭐 하나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서 마음은 불편하다. 찾아 뵙고 축하드리고 옆에서 이야기도 듣고 싶은데 상황이 그럴 수 없으니 답답하다.


집 앞 강에서는 단오를 맞아 용선 축제가 열린다. 색색의 용선이 등장하고, 사람들은 배 위에 줄 맞춰 앉아서 노를 젓는다. 제법 며칠 전부터 강변에 관람석도 만들고 광고판도 설치하면서 축제 분위기를 만드는 듯했다. 새벽에 내다보니 밖에는 비가 내리는데, 그래도 부지런한 사람들은 하얀색 비옷을 입고 벌써부터 강변에 나와 있다.


두 권의 책이 나왔다. 신장 지역의 병단을 취재했던 내용은 몇 명의 외국인이 체험한 병단.이라는 책으로 묶여 나왔다. 중문과 영문이 함께 있어서, 나는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 했다. 쓴 지도 오래 되어서, 내가 누구에게 원고 번역을 부탁했었던가도 잊었다. 나는 한글로 쓰고, 중문으로 번역을 부탁한 다음 보냈었다. 그리고 출판사 쪽에서 다시 영문 번역을 했을 테다. 내가 쓰고 내가 못 보는 글이 되었다. 책은, 우선 신장에서 내가 머물렀던 그 농부 아저씨 댁에 열 권을 보냈다. 좋아하고 고마워하셨다. 나머지 책들은 책장 구석에 숨겼다. 별도 떳떳한 책도 아닌 것 같아서다. 내가 느낀 것들을, 내가 본 것들을 쓰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어용기자의 글인 것 같다. 실제로, 민감한 이야기 두어 줄은 알아서 빼고 쓰지 않았던가. 

장시성을 여행하고 쓴 이야기도 책으로 나왔다. 책은, 총체적 부실이다. 시간에 떠밀려서 급하게 쓴 문장은 어쩌다가 헐겁고 어쩌다가 비좁고 전해야 할 내용도 빼먹고 감정만 들이밀어서 못났다. 정식 서점 판매형식이 아닌 현지 관광국의 주문 형식이라서 그런지 인쇄도 마음에 안 든다. 이 책도, 좀처럼 밖에 보이는 일은 없겠다.


새벽에 깨어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음악도 틀고 책도 한 권 꺼내 앉는다.




2011.04.20 20:11

할 수 있다면, 바다 근처에서


차이코프스키 5번 교향곡 4악장.은 응원가같은 곡이다. 집에 오는 길에 어쩌다가 들렸다. 꼭 그런 날에 이 곡이 들리는 것인지, 이 곡을 들을 때마다 그런 마음이 생겨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곡을 들을 때는 나는 언제나 긴장한 채로 출발선에 선 초보 달리기 선수같은 기분이 든다. 그 불안함과, 그 실패에 대한 약간의 예감과, 뒤쳐진다는 빈곤함 같은 것들이 한데 엉켜 있는데, 그 기운들 사이로 이 곡은 모두 다 잘 될 거라고 말하고 너는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응원처럼 솟아 오른다. 처음 이 곡을 인상적으로 들었던 몇 년 전 아침도 그랬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석 달치 집값을 송금하고, 마트에 들러서 오늘 저녁 마실 콜라와 혹시 필요할지 모르는 콜라 하나 더를 샀다. 빵집에 들러서 내일 아침에 먹을 맛은 없어보이지만 푸짐해 보이는 빵도 한 개 사서 왔다. 오늘은 뭔가 특별한 날이니까, 가방만 대충 벗고 짐만 대충 던져놓고 앉았다. 차이코프스키 5번에 4악장.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클래식 중에 하나. 


크리스티앙 볼탄스키.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라는데 나는 오늘 처음 알았다. 승희가 사 둔 예술잡지를 하루이틀 보는데, 퇴근길에 버스는 많이 막혀서 기사 여러 개를 읽었다. 작가에 대한 인터뷰가 있었는데, 삶에 대한 그 사람의 성찰도 좋았지만 인상적인 것은 그 사람의 짧은 호흡으로 이루어진 말들이었다. 인터뷰를 옮기며 인터뷰어가 얼마나 말을 정리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선생님의 목소리를 그대로 옮기겠습니다'라는 인터뷰어의 첫문장을 믿는다면, 아마도 짧은 호흡의 문장은 작가의 것이 맞을 것이다. 노작가는, 앞뒤 양념처럼 덧붙는 수식들을 다 떼어내고 꼭 필요한 단어들만 조합해서 담담하게 자신의 예술과 삶에 대해 말해준다. 작가의 작품을 본 적 없으니 작품에 대한 인상은 모르겠고, 탄생과 소멸의 우연성과 그 덧없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고양이와 달리 신의 우연에 저항함으로써 비로소 의미를 획득한다는 그의 말은 절박하고 아름답게 읽혔다. 몇몇 철학자는 찾기를 포기했고 또 몇몇은 얼버무리고 누구는 찾았다고 믿으면서 죽었던 삶의 이유를 발견하기 위해 이 작가는 얼마나 고민했을까. 발견했다기 보다는 선언한 듯한 그 결론에 이르고서 그는 얼마나 안도했을까. 그렇게 얻어낸 생각을 긴 시간 동안 다듬어서 이제 그의 말은 짧은가 보다. 인터뷰어는 작가의 외모에 대해 설명하면서 웃으면 반달눈이 된다고 적고 있다. 그의 작품을 보는 것도 좋겠지만, 그냥 이런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렇게 버티고 살고 있다는 것만 알아도 위안이 된다. 


드보르작 9번 교향곡 4악장. 차이코프스키가 출발선에서 등떠밀어주는 응원가라면, 드보르작 9번 4악장은 결승선에 서서 이제 막 들어오는 완주자를 맞이하는 노래 같다. 4악장의 도입부는 팡파레로 시작해서, 결승선을 통과한 이를 가만 달래며 숨을 고르게 하고 이제부터 펼칠 영광의 시대를 보여준다. 9번 교향곡은 제목부터가 '신세계로부터'이다. 자, 숨을 다 골랐으면 이제 영광의 시대로 가는 문을 열 차례다. 악기들이 내달리고 실패에 대한 일말의 의심도 없는 당당한 음들이 치고 오른다. 주름 없는 표정이다.


할 수 있다면 두 곡을 결혼식에 쓸 수 있다면 좋겠다. 그냥, 조금 무서우니까. 나는 승희를 사랑하고 또 그 사람을 믿고 의지하고 나 역시 그 사람의 의지가 될 테지만, 그래도 그 막막한 시작이라는 건 무서우니까 이런 응원가들이라도 들으면 좀 힘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굴려보아도 어울리는 장면은 없다. 축제에 쓰기에는, 너무 비장하고 깊다. 두 곡 모두 11분의 연주시간이다. 신부가 그 짧은 길을 11분 동안 걸어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손잡고 11분 동안 비장한 표정으로 퇴장할 수도 없지 않나.


내일 아침 비행기로 한국으로 간다. 드디어 간다. 그리고 일요일이면 결혼을 한다. 할 수 있다면, 바다 근처에서 승희와 함께 이 노래들을 크게 듣고 싶다.








2011.04.17 21:50

느리고 게을러야지


할 일은 언제나 많다. 그래도 사진만 찍고 살던 때는 제법 한가했는데, 간간이 들어오는 일거리로 어떻게 굶지는 않고 살아졌는데, 바빠진다. 마음에는 언제나 새로운 계획들이 가득하고, 아침 샤워기 아래에 서면 이미 가득한 계획들 위에 새롭고 신나는 계획들이 막 더 생겨난다. 결혼도 하고 온전히 내가 살펴야 할 가족도 생기는 거니까 비장한 마음도 더 있다. 그래도,


느리고 게으르게 살아야겠다. 나는 새벽 시간을 좋아하고 잘 쓰니까, 일어나는 시간을 조금 더 당겨서 오전과 이른 오후에 가능한 많은 일을 해야겠다. 오후 시간에 집중하기 위해서, 낮잠은 꼭 자야겠다. 그리고 특별하게 약속이 있거나 급한 마감이 있는 날이 아니라면 세 시쯤에는 퇴근을 해야겠다. 오후 시간에는 책을 좀 보거나, 승희와 자전거를 타거나 해야겠다. 일을 하는 것도 신나지만, 일 이외의 시간을 애써 챙겨야겠다. 그래야 사람이 사는 것 같겠다. 딱 한 번 밖에 없는 세상이니까, 귀하게 살다 가고싶다.



2011.04.17 17:47

많고 큰 빚들


승희는 지난 금요일에 한국에 가서 바쁘다. 주문해 둔 반지도 찾고, 나 대신 동생도 만나고, 결혼식에 참석할 수 없는, 하지만 인사 드려야 마땅한 분들도 뵙고 다닌다. 그리고 승희가 떠난 이틀 사이에 집은, 헛간 내지는 창고 내지는 잡스런 것들의 소굴. 정도가 되었다. 이러고 며칠 살다가, 한국 들어가기 전날에 청소 좀 해두고 가야겠다. 결혼 뒤에도, 아내의 외출이란 것은 이틀 정도면 족할 것 같다. 모처럼의 해방감, 멋대로 뒹굴어도 된다는 기분 같은 것은 하루면 족하다. 그렇다고 아내 출장이 하루 밖에 안 되면, 꼭 일요일 아침처럼, 맘껏 놀지 못 하고 다가올 월요일에 긴장해야 하니까. 이틀 넘어가면 어째 뭔가 빠진 것 같고, 뭘 해야 할지 딱히 손에 잡히는 것도 없고, 산책가자고 부추기는 사람도 없는 게 삶이 무료하고 심심하다. 승희 출장은 단기출장만 가라고 할까?


결혼이라고 앞두고 보니 이리저리 연락해서 인사드릴 곳들이 많다. 도와준 분들 얼굴들이 생각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만 쌓아둔 채 연락드리지 못 한 분들 얼굴이 생각난다. 새삼, 참 많고 큰 빚을 지고 살아온다고 안다. 언제 다 갚을까. 갚을 수나 있을까. 전화라도 드려야겠다.





2011.04.15 07:50

승희는 한국에 갔다


승희는 아침 비행기로 한국 갔다. 새벽에 깨어서 대충 먹고 어제 미리 챙겨둔 짐들을 들고 나섰다. 나는 푸동 공항에 갈 때 주로 지하철을 타는데, 승희는 짐 때문에 갈아타기가 힘들다고 주로 리무진 버스를 탄다. 작은 가방 안에 드레스를 접어 넣고, 한복 상자를 한 손에 들고 갔다. 아침에 화장은 눈썹 위에 파우더가 잔뜩 앉아서 눈썹이 흐려졌다. 작은 빨간색 트렁크를 짐칸에 싣고, 한복 가방은 버스 옆자리에 두었다. 버스는 여섯 시 반에 상하이역 앞을 출발해서 한 시간 조금 넘겨 공항에 닿을 것이다. 시간은 대충 맞아들어갈 거다. 리무진에 승희를 태워보내고 그 길로 출근했다. 평소보다 조금 빠른 출근길이다. 


어제 밤에는, 결혼식에 쓸 음악들을 고른다고 이것 저것 막 들었다. 오랜만에 이것 저것 바꿔가며 듣다가 정작 목적은 잊어먹고 맘에 드는 것 하나씩 꺼내서 여기저기 내키는 대로 산책하듯이 들었다. 음악은 걸음마다 풍경이 변하는 산책 같아서, 한 곡씩 듣고, 어쩌다가는 한 곡도 채 안 듣고 씨디 바꿔 넣으면 그 때마다 확연하게 다른 질감으로 좋았다. 드보르작 첼로 협주를 오랜만에 들었는데, 왜 이 걸 잊고 있었을까 싶었다. 음악은 결혼식에 어울리지는 않았다. 신랑 입장, 신부 입장, 사진 슬라이드의 배경 음악 어느 장면에 넣어보아도 좀처럼 어울리는 이미지가 나오지 않았다. 아쉽지만 드보르작은 식장에 입장하지 못 하겠구나. 아무래도, 클래식에 대해서라면 인상이 강한 음악이 쉽게 와 닿는다. 아직 많이 들어보지 않아서 그렇다. 어떤 장르에 대해, 어느 정도 내공이 쌓여야 비로소 감추어진 틈과 미세한 결을 읽어낼 수 있고 그 틈과 결의 변주에 감탄할 수 있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큰 덩어리를 보는 데 그친다. 내 클래식 듣기는 겨우 덩어리의 형태를 보는 수준이다. 사진이나 문장에 대한 이해와 비교해 보면 그 사실이 명확해진다. 어제 내 잡지를 디자인할 승일과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디자인에 대해 나는 잘 모르니까, 겨우 큰 덩어리만 보인다고 했다. 그러니까 당신이 잡지의 디자인을 상상력 밖으로 끌고 가 달라고 부탁했다. 


결혼식을 위해 신문을 만들었다. 어떻게든 조금 더 신나게 하려고, 웨딩사진으로 신문같은 잡지같은 결과물을 만들었다. 나중에 만들게 될 아시아트래블 매거진의 판형을 그대로 써서 그 안에 사진과 필요한 정보를 담았다. 비싼 돈을 들여 웨딩 앨범을 만들고 일 년에 한 번 볼까말까 하는 것 보다 더 좋겠다 싶었다. 12면의 신문에는 내 청혼편지와 인터넷에서 얻은 주례사, 웨딩 화보 등이 담긴다. 상하이에 오면 집으로 초대한다는 쿠폰도 작게 넣었다. 500부를 인쇄해서 400부는 한국에 가져가서 결혼식 하객들에게 드리고, 100부는 상하이에서 있을 결혼 파티에 나누어주려고 한다. 그런데 인쇄비를 따지니 앨범보다 비싸겠다. 승희가 알면 혼나겠다.


상하이는 어제부터 덥다. 봄이라고 좋아한 것이 삼 일 전인데, 어제부터 여름이다. 새벽에 지하철 에어컨 바람은 날카로웠다. 어떤 기운은 스며들고 어떤 기운은 찔러드는데, 무형이든 유형이든, 실재적이든 감정적이든 찔러드는 기운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름이라도 가볍게 입고 왔는데 새벽 지하철은 힘들었다. 새벽에 길은 성글고, 안개도 제법 있었다. 앞으로 출근 시간을 조금 더 앞당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계획하는 잡지의 형태가 다듬어지고 있다. 지금 작업하고 있는 쓰촨 건만 마치면, 그리고 결혼하고 신혼여행하고 다 마치면 본격적으로 잡지 작업에 들어갈 수 있다. 결혼하면 4월이 끝나고, 5월 한 달 동안 서로 일하고 상하이에서 결혼 파티도 해야한다. 6월 중순에 승희 일 때문에 함께 쓰촨에 다녀와야 하니까 신혼 여행은 그 다음이다. 어쩌면 쓰촨에서 곧장 여행을 시작할 수도 있다. 많은 후보지가 이름을 올렸다가 사라졌고, 최종 목적지는 아마 중국 남부지역이 될 듯하다. 보이차.로 알려진 푸얼차의 산지들을 찾아다니는 것이 우리 신혼여행의 주제다. 반쯤은 여행이고 반쯤은 일이 될 여행은 중국 남부 너댓 개 성을 지나야 하고, 아마 한 달쯤 걸릴 것이다. 다녀오면 그 이야기로 한 권을 책을 묶는 것이 우리의 의도다. 이렇게 저렇게 올 해 안에 우리가 계획하는 책이 두세 권이다. 하지만 책은, 나와 봐야 아는 것이다. 그럭저럭 상반기를 보내면 하반기에는 좀 더 일에 집중할 수 있을까.


승희가 한국에 가니까 슬슬 결혼식이 닥쳐온 것을 알겠다. 



2011.04.12 09:25

큰일났다


아침 출근길에 완연한 봄바람을 맞았다

아, 봄이구나

마음이 갈피를 못 잡고 들판을 떠다녀야 하는 봄이구나


들판에 나서지 못 해도, 도시의 대로변인들 어때

바람에 실려볼까


봄이다 큰일이다



2011.04.09 21:14

다음 직업은 목수로 정했다


평생 도예가로 살아온 사람이 나무를 만지는 목공이 되었다는 뉴스 기사를 읽었다. 그 사람이 다듬어 낸 나무들은 흙의 질감을 닮았을 듯도 하다. 아마, 그럴 것이다. 며칠 전 승희랑 이야기하면서 나중에 나도 목공이 되겠다고 했다. 나이 들면 어디 바다 근처에 집을 얻어서, 폐 목선에서 나오는 나무들을 얻어서 책상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앞으로 틈틈이 보이는 대로 자료를 모으고, 참고가 될 만한 것들을 눈여겨 보려고 한다. 마침 집 뒤에 폐목재가 모이는 곳이 있으니까 그곳도 둘러보면서 재미삼아 하나 둘 건드려 볼까도 싶다. 큰 것이야 안 되더라도 작은 손공구 하나씩 모아볼까도 싶다. 나중에 진짜 작업을 하게 되면 승희는 디자인은 자기가 맡겠다고 우긴다. 맡긴다고 안 했는데.


하나의 직업을 평생 가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다들 한 번쯤은 시달려보지 않았을까? 그 강박에서 풀려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삶은 유일하니까, 내가 나로 사는 것은 한 번에 그치니까, 그 한 번을 오로지 나를 기준으로 삼아 풍성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가능한 상황 안에서, 가능한 모든 것들을 겪어보려고 한다. 내 첫 직업은 사진사였다. 졸업 후에 곧장 중국으로 와서 최근까지 하고 있으니까 제법 10년 가까워 온다. 성취감으로는 아슬아슬했고, 경제적으로는 무참했다. 새로 시작하는 직업은 잡지를 만드는 일이다. 중국 여행지를 소개하는 한국어 잡지를 만들어서 한국과 중국에 유통시키는 일이다. 초반 얼마 동안에는 글도 사진도 내가 해야 한다. 참고하기 위해 다양한 잡지들을 두루 보고 있는데, 참 좋은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참 좋은 문장을 쓰는 사람들도 많다. 그 안에서 나는 내 공간, 내 색깔을 드러내야 한다. 글을 쓰고 잡지를 만드는 일은 한 곳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이란 것은 꼬리를 물어서, 아마 여러 갈래로 가지를 치게 될 것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설계도만 자꾸 스스로 번식해서, 여러 사람과 여러 조건들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닿는다. 승희는 이런 나를 다독여서 차근차근 하라고 한다. 가계부도 몇 번 바닥을 쳐 보니 단련이 된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잘 될 테니 차근차근 하라고 한다. 든든하고 고마운 말이다. 


 


승희의 일과 관련되어서 쓰촨의 젊은 작가 하오랑.이 오늘 집에 다녀갔다. 통통한 얼굴에는 중절모를 쓰고, 손가락 네 개에 반지를 끼고 왔다. 함께 점심을 먹고 간단한 인터뷰도 했다. 나는 떡볶이를 만들었는데 가쓰오부시 다시다가 잔뜩 들어간 맛은 달콤해서 나쁘지 않았다. 하오랑의 작품은 만화체의 회화인데, 트렌디한 인상이 맞아들어가서 최근 상업적으로 다양하게 이용된다고 한다. 작가 경력이 오래지 않아서 그의 작품세계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고, 비교적 쉽게 읽혔다. 말도 잘 통해서 우리는 밥, 빵, 과일, 차로 이어지는 내내 제법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처럼 집중해서 그림을 보고 작가와 겨루듯 이야기했다. 내가 읽어낸 코드가 크게 틀리지 않아서 속으로 으쓱했다. 승희는 앞으로 다양한 작가들을 인터뷰해서 평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작정이다. 


본래 출근할 작정이었다가 주말이고 날씨도 좋아서 오후에 두어 시간 산책했다. 자전거를 타며 끌며 근처 작은 샵들을 들락거리면서 승희와 걸어서 자전거샵까지 갔다. 계획하는 작업 중에 상하이 곳곳을 자전거로 다녀야 할 필요가 있어서, 승희가 탈 만한 자전거를 알아보고 있다. 제법 검색도 하고, 우리 통장 잔고도 생각하고, 또 무엇보다 승희에게 편한 종류의 자전거를 찾았다. 오늘 샵에 간 길에 대충 무난한 녀석으로 찜했다. 5월 초에는 사서, 가능하면 일주일에 두어 번은 시내를 다녀야 한다. 산책이면서, 일이다. 돌아오는 길에 파인애플 파는 과일차를 발견하고 승희는 지나치지 못 했다. 큰 걸 고른다고 골랐는데, 파인애플은 너무 익어서 물렀다.


좋은 문장, 좋은 사진을 쓰고 찍어야 하는데, 뜻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기다린다고 오는 것들이 아니다. 공부하고 사색해야 한다. 당장 써먹어야 하는 때는 닥쳐오고 마음은 바쁘고 가진 것은 제자리에 있다. 그래도, 승희는 지난 얼마 동안 내가 말한 것들이 그대로 이루어져 왔다고, 그러니까 좋은 생각만 하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될 것 같다.






2011.04.07 12:09

결혼





저, 결혼합니다.


한국 결혼식은 4.24(일)일 경남 거제도에서 하고,

중국에서는 5. 7(토)일 집에서 간단하게 파티를 할 예정입니다.!


혹시 거제도 관광 오실 분은 미리 말씀해 주시면,

전날 미리 작은 방을 준비해 두겠습니다.








2011.04.07 11:36

청혼



  몇 달 동안 사진들을 차곡차곡 모았다. 왜 찍기만 하고 주지도 않느냐고 원망도 많이 들었다. 그래도 모았다. 

 

  제법 수 백 장 중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진은 열 여섯 장이었다. 컬러가 예쁜 사진도 있었는데, 통일성을 위해 모두 흑백으로 하기로 했다. 처음 만난 무렵의 사진에서부터 얼마 전에 찍은 사진까지 다양했다. 라이트룸에서 기본 작업을 마친 후 포토샵에서 본격적인 작업을 했다. 색마다를 살펴서 흑백으로 바꾼 후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으로 나누어 톤을 잡고, 필요한 수정 작업을 한 후 전체적인 밸런스를 잡았다. 작업은 출장지에서 하기도 하고, 승희가 깨지 않은 새벽이나 외출 중일 때 해야 했다. 문제는 프린트에서 닥쳤는데,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며칠 승희는 집 밖으로 나갈 일이 없거나 나와 함께 나갈 일정 밖에 없었다. 리터칭 작업이야 어떻게 된다지만 프린트 작업을 새벽에 할 수는 없었다. 세 시간 이상 걸릴 작업에 눈치 못 챌 사람이 있을까. 결국, 내 쫓았다. 급한 마음에 집 좀 나가라고 보내버렸는데, 승희는 서운하고 화가 난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다. 뒤늦게 미안하지만 우선 프린트는 하고 본다. 몇 년 전부터 잘 쓰는 용지에 가로 13 세로 19인치 사이즈로 프린트했다. 액자로 만들면 부피나 무게가 부담스러우니까, 앞뒤로 두꺼운 매트지를 대기로 했다. 가로세로 사이즈는 77cm로 맞추어서, 가로 사진이나 세로 사진의 프레임 크기를 갖게 했다.

 


 


  전시장 섭외는 사진 작업과 함께 진행했다. 승희의 학교 후배인 롱롱은 모간산루 갤러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롱롱을 통해 마땅한 전시장들 몇 개를 우선 탐색하고 직접 둘러본 후 결정했다. 요즘 주머니 사정 별로 안 좋으니까, 롱롱이 일하고 있는 갤러리를 빌리는 것으로 했다. 두 시간 예정으로 빌리기로 했지만 롱롱의 도움으로 몇 시간을 더 썼다.

 

  작전대로 된다면, 승희는 조금 늦은 저녁, 전시 오프닝을 보기 위해 갤러리로 온다. 갤러리 안에는 승희의 사진들이 걸려있고, 사람들은 승희의 등장에 무심하게 그냥 사진들을 본다. 마치 승희가 안 보이는 것처럼. 그리고 대충 사진들을 봤을 무렵에 내가 등장해서 꽃 내밀고 편지를 읽는다. 아, 제법 그럴 듯한 청혼이지 않나.



 


 

  뜻대로 되는 일은 얼마나 적던가. 오전 일을 끝내고 근처 밥집에 앉아서 우선 청혼 편지를 가져온 편지지에 옮겨 적었다. 며칠 동안 고민하면서 수첩에 적고 노트북에 적어서 정리해둔 것이다. 그리고 옷을 맞추는 곳으로 가서 맡겨둔 옷을 찾았다. 다음은 액자집으로 가서 완성된 사진들을 받았는데, 열 여섯 장의 사진에 붙은 프레임은 많이 무거웠다. 사진들을 갤러리로 옮겨두고 다시 꽃을 사기 위해 근처 꽃시장으로 갔다. 장미를 살 생각이었는데, 노랗고 수수한 꽃이 참 좋아보여서 그걸로 샀다. 중국어 이름은 못 알아 들었는데, 나중에 사람들이 프래지어라고 말해 주었다.

 

  시계는 다섯 시를 조금 넘었다. 대충 준비물은 다 되었으니 이제 가져온 낚시줄로 액자들을 걸기만 하면 된다. 우선 기존에 있던 그림들을 내리고, 사진들을 적당한 위치에 배치했다. 롱롱의 도움으로 승희는 일곱 시쯤에 오기로 했다. 서두른다면 시간은 대충 맞을 것이다. 작전을 조금 바꾸어서, 일체 다른 사람들을 부르지 않고, 텅 빈 공간에 승희 한 명만 들이는 것으로 했다. 그리고 잠시 뒤에 내가 들어오기로 했다. 적당한 높이에 액자를 하나씩 건다. 두어 개쯤 걸었는데,

 

 

 

 

 

 

이 사람이 왔다.

 

 

 


 

 

 

뭐, 처음 해보는 청혼이 오죽일까. 이런 상황을 미리 대비하지 못 했다.

뭐, 그래도 승희는 조금 감동은 했고, 기분도 좋다 그러고.

뭐, 준비한 꽃도 전했고, 편지도 읽었고.

뭐, 아쉽지만 어쩌겠어. 그래도 결혼해 준다는데.

 

뭐, 이벤트는 언제나 미완성.

 


 

 

 

 



 

 

더운 여름에, 우리는 만났다. 무덥던 날들이었다. 작은 카메라를 들고, 치마처럼 펄렁이는 바지를 입고, 가벼운 신을 신고 너는 참 경쾌하게 걸었다. 좁은 길에 나뭇잎들은 짙었는데 그 사이로 비껴든 빛들이 네 짧은 머리카락 위에 떨어졌다.

 

가을에 그 연보라 머플러는 참 잘 어울리더라. 조금 긴 듯한, 나풀거리는 그 녀석을 우리는 참 좋아했다. 네가 한 번씩 다녀갈 때마다 집이 변신하던 것도 그 가을이었다.

 

길고 추웠던 겨울은 겹겹이 겹쳐입고 난로 앞에 꼭 붙어앉아서 나야 했다. 한 번 외출 때마다 껴입은 옷때문에 두 배씩 몸이 불어나는 계절이 이제 저만치 갔다. 다음 겨울은 아마 더 따뜻하겠다.

 

봄은 언덕 너머에 포복하고 있다가 와락 덥치듯 왔다. 축제를 펼칠 계절이다. 이번 봄은, 함께 맞는 첫 봄이다. 그래서 새 봄이다. 이 봄의 초입에서 나는 다 늦은 편지를 쓴다. 아무래도 김빠진 콜라같다. 그렇지 않아? 날짜는 정해졌고, 청첩장도 가야할 곳들로 갔다. 그리고 이제야 나는 결혼을 청하는 편지를 네 앞으로 쓴다. 함께 있어서 참 좋은 시간들이었으니까, 앞으로 긴 시간을 함께 있어 달라고 부탁하려고 한다.

 

이웃한 별처럼 살자. 두번 오지 않을 시간과 공간에서 우리도 별처럼 만났다. 그리고 시간은 살같이 흘러서 소멸할 때도 올 거다. 이 땅에 오기 전에 우리가 없었던 것처럼 소멸 뒤에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로 단 한 번 존재하는 이 순간이 안으로부터 바깥에 이르기까지 아름답기를 바란다. 이 세상에 잠시 머무는 동안, 별처럼 빛나는 한 세상을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사는 일은 아슬아슬하고 위태롭다. 앞으로 너와 내가 어떤 길을 거쳐 가게 될지 짐작할 수 없다. 빈약한 상상력의 경계 너머에 있는 일들이 무리지어 닥쳐올 것이다. 보이지 않는 길을 앞에 둔 답답함과 막막함은 덜어지지 않는다. 기대에 찬 출발을 앞두고 미안하고 또 부끄러운 일이다.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마음껏 봄날을 누리라고 말해주어야 하는데, 알 수 없는 길을 함께 가자고 나는 네게 손을 내민다.

 

하지만, 온통 봄날같지는 않은 세상이라도, 살아서 아름다울 거라는 것 또한 우리는 확신하고 있지 않니. 우리는 함께 길을 걷고, 함께 그림 앞에 서고, 마주앉아 밥을 먹고, 얼굴 보고 잠을 깨는 날들을 살 거다. 서로 다른 시공간을 지나왔지만, 공감하는 곳에 힘을 보태고 다른 것들을 조율하며 가서 마침내 서로에게 꼭 맞는 조각이 될 거다. 비틀거릴 때는 기둥이 될 것이고, 언제나 서로의 응원이 될 거다. 함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일들을 겪고, 더 풍성하고 용감한 세상을 살 거다.

 

축제를 살자.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사람처럼 매일이 처음이고 끝인 것처럼 살자. 대하는 모든 것들을 새로운 호기심으로 보고, 존재하는 것들이 본래부터 가진 신비들 앞에 감탄하자. 세상 낮은 것들과 온몸으로 공감하고, 스스로를 존중하고 아끼자. 온 시간 동안 배우고 익히며 이 세상에 온 것을, 그리고 함께 있는 것을 감사하자.

 

이웃한 별들처럼, 기대고 응원하자. 그래서 별처럼 온전히 소멸하는 그 때쯤에, 축제처럼 한 세상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둘이어서 이 축제가 몇 배쯤은 더 즐거웠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승희야,

좋은 꿈을 함께 꾸자.

우리, 잘 살자.

 

아침마다 눈부비는 너를, 사랑한다.

 

아, 잊을 뻔했다.

결혼하자.

 

 

2011. 4. 1

 

 

 

 

 

 

 




2011.03.30 08:48

아침 지하철에


  아침 지하철에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앉았다. 파리 한 마리가 꼭 실뭉치처럼, 가방 위에 얌전히 앉아 있다. 지하철이 덜컹거릴 때마다 가방도 들썩거릴 텐데 파리는 좀처럼 자리를 뜰 기미가 없다. 둘러보니까, 지하철 안에 파리가 안전하게 쉴 곳은 마땅찮아 보인다. 날아갈 기운도 시원찮은 것일까. 어쩌지 못 해서, 내릴 때까지 그 자리에 두었다. 


  갑자기 드러나는 풍경처럼 오는 문장이 있다. 준비 못한 마음이 어쩔 틈도 없이 덥치듯이 오는 문장들이다. 


  멜랑꼴리미학.이라는, 아마 작년 가을쯤에 산 듯한 책을 읽다가 관두었다. 입맛에 맞지 않았다. 대신 중국어 단어책을 출퇴근길에 보기로 했다. 출장을 가면 중국어로 된 자료를 잔뜩 받아 오는데, 아무래도 더 이상 중국어 자료를 못 본 척 넘길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기사를 쓰려면 방대한 중국어 자료를 외면할 수 없다. 여행길에 부족한 중국어로 주워 들은 몇 마디 말만 조합해서는 바닥이 뻔한 문장에 그칠 것이다. 아침에는 답답해서, 가방 속에 든 책은 안 꺼내고 음악이나 크게 들으면서 한 시간 출근길을 왔다. 






2011.02.25 12:35

마음만 동동


읽지 않은 책이 쌓여간다. 읽어야 할 것 같으니까, 읽고 싶으니까 사모으기는 하는데 좀처럼 안 읽는다. 일 바쁘다는 핑계로 함께 책 읽던 모임도 관두고 나니 더 안 읽는다. 책장 앞에 설 때마다, 뿌듯한 마음보다 답답한 마음이 더 커진다.

어설프기는 해도 사진사라는 명함으로 몇 해쯤 살았다. 직업을 바꿔서 십 년쯤 더 살아볼까 한다. 사진을 찍는 동안에도 손에서 놓지 않았던, 글쓰고 사람 모으고 몰려다니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볼까 한다. 결심은 이미 했고, 두어 달 준비한다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시작부터 실패를 생각하는 일은 잘 없으니까, 될 거라고 기대한다. 잘 될지 안 될지 확신은 못 해도, 재미있을 거라는 확신은 한다. 별처럼 명멸하는 삶이다. 빛나게 한 세상을 살아야 한다. 

내 블로그가 있고, 에프상하이 사이트가 있고, 승희와 함께 쓰는 블로그가 있다. 버려둔 웹진도 있다. 거기에 이번에 시작하는 작업 사이트까지 합치면 관리해야 하는 사이트가 다섯 개가 되는 셈이다. 하나도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다. 닦고 문지르면 다들 신날 곳인데 그러지 못 했다. 아마, 두어 개는 접어얄 것이다. 이제 직업으로서의 사진을 관두면, 에프상하이도 관둘까 싶다. 아쉽기는 해도, 생겨난 것이 사라지는 것은 순리에 맞다. 아니면 새 사이트와 통합해서 운영할 수도 있다. 그 때 가서 볼 일이다. 어떤 형태가 되든, 지금처럼 빈집 모양 버려진 꼴이 보기 싫다. 공간이 없어지면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시간 지나면 익숙해 진다. 필요하다면 새 공간이 저절로 생겨날 것이다.

한 달에 절반을 중국 각지로 출장다닌다. 그러니 원고는 많이 모이는데, 정작 원고를 가공할 시간이 부족하다. 결국 문제는 사람에서 멈춘다. 사진원고와 텍스트 원고를 한꺼번에 감당해낼 수 있는, 물론 중국어도 좀 되는 기자 하나만 더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국과 중국의 실무를 맡아줄 사람도 한 명쯤.

막대한 분량의 일을 해치우기 위해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정해진 시간틀 속으로 밀어넣는 형태가 아닐까. 가장 효율적인 일의 방식이 가장 좋은 삶의 방식일 수 있는지는 좀 더 고민해야 할 문제가 되겠지만 우선은 하려는 일이 기대되니까, 참 신난 한 때가 될 거라고 믿으니까 눈앞에 있는 일의 덩이를 해치우는 작업을 우선해야겠다.




2011.01.27 20:27

그 사람 없으니까,


승희는 한국에 갔다. 내가 안후이 출장일 때 가서 2월 말에나 온다. 안후이 출장은 예정대로 끝났고, 곧이어 있었던 이틀짜리 출장은 날씨 때문에 변경되어서 하루만 찍고 왔다. 설 연휴에는 구이저우의 소수민족 마을로 출장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현지 날씨가 엉망이라 안 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연휴를 꼬박 책상 앞에 앉아 보내야 한다. 출장 다녀온 안후이 성의 원고 작업을 비롯해 일거리는 천지다. 연휴 끝나는 날까지 작업 스케줄이나 짜고 사이사이 암장이나 다니면서 추운 겨울을 나야 한다.

장을 보아왔다. 그 사람이 없으니까 내가 살 것이라는 게 과일이나 과자, 빵이 전부다. 내일은 장에 가서 된장찌개 재료라도 좀 사와야겠다. 푸짐하게 해두면 3일은 먹을 수 있을 테다. 출장 다녀온 짐들을 풀어놓으니 방은 어느새 발디딜 곳을 살펴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 책상 아래에는 차곡차곡 쓰레기가 쌓인다. 야단치는 사람이 없으니 정리는 물 건너 일이다. 허전하다. 

좋은 것도 있다. 택시 내릴 때 영수증 안 받고, 마트가서 영수증 안 받아도 된다. 날마다 암장가도 뭐라 그럴 사람도 없다. 생각해 보니, 좋은 건 몇 개도 안 된다. 허전하다.

일이나 해야겠다. 연휴 작업 모드를 위해 모니터를 낮은 책상 위로 옮겨야겠다. 따뜻하게 난로 틀어두고, 일이나 해야겠다. 




2011.01.24 08:46

110124 마안산


  아침에 사이트 몇 곳을 둘러봤다. 오랜만에 가는 곳들이다. 책 리뷰도 읽고 정치 기사도 읽고 소설도 조금 보았다. 내용보다 인상적인 것은 날마다 새로운 계단을 하나씩 오르는 것처럼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는 그들의 컨텐츠였다. 기업이나 단체가 운영주체로 있는 곳은 또 그런대로 그럴 만하다고 하지만, 개인이 운영하는 블로그까지 단단하게 채워지는 것을 보면 참 부럽고 멋있어 보인다. 

  이번 출장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어제는 양말로 안 빨았다. 남은 양말로 충분하다. 내일 아침 비행기를 타고 상하이로 돌아간다. 긴 출장 중에 또 많은 것들을 계획했다. 돌아가면 하나씩 해야겠다.




2011.01.18 07:21

장갑을 꿰맸다



구멍 난 장갑을 꿰맸다. 아마 지난 출장 중에 어디 걸렸던 모양인데 검지 손가락 끝부분에 난 구멍은 조금씩 커졌다. 그냥 둘까 하다가 아직 많이 남은 출장 일정을 생각하니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았다. 장갑을 뒤집고 보니 생각보다 어려워서, 어디를 어떻게 꿰매야 하는 것인지 막막했다. 대충 아무렇게나 서툴게 몇 번 휘감았다. 손에 딱 맞던 장갑은 검지 부분이 조금 짧아졌다. 그래도 한 겨울 출장은 어떻게 버틸 만하겠다.

다시 이어진 출장은 이제 4일째인데, 벌써 한참이나 지난 것만 같다. 날마다 장소를 옮겨다니는 분주함 때문이다. 지난 번 장시성 출장 때는 날마다 옮겨다니기는 했어도 적어도 정해진 일정 안에서는 제법 쉬엄쉬엄 걸을 만했는데, 이번 출장의 일정은 더 빡빡하다. 어제는 장소 이동 중에 차 안에서 버거 하나로 점심을 해치웠다. 

집을 떠나있을 때는, 돌아가서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아진다. 새로운 계획도 막 생겨나서 얼른 집으로 돌아가 새로운 작업들을 시작하고 싶어진다. 

이번 출장은 25일에 끝나고, 돌아가면 곧장 다른 곳으로 짧은 출장을 간다. 그러면 1월이 간다. 설 연휴 동안 구이저우 성으로 가자는 제안이 있었는데, 현지 날씨가 나빠서 아마 진행되지는 못 할 듯하다. 조용히 집에서 안후이 지역의 책 원고를 쓰고, 연휴 끝나면 얼른 원고 넘기고 한국으로 가야겠다. 승희는 어제 한국으로 먼저 들어갔다.




2011.01.01 11:43

Studio Ditte


  오늘 아침에 뜨는 해를 보지는 못 했다. 어제는 fshanghai 맴버들 몇이 와서 같이 먹고 마셨다. 밤새 놀아볼까 했는데 다들 사정도 있고 또 지쳐서 그러지는 않았다. 그래도 정리하고 자려니 새벽 두 시가 가까웠다. 자는 사이에, 2010년은 어느새 2011년이다. 그랬던 것처럼, 한동안은 또 습관대로 2010이라고 쓰다가 얼른 2011이라고 고쳐쓸 것이다. 눈 뜨니 날이 밝아 있다.

  이틀 전에는 쑤저우에 다녀왔다. 작업했던 일 중에 빈틈이 보였는데, 그 빈틈이 결정적일 지는 1월 중순에야 알 수 있다. 하지만 1월 한 달 내내 나는 출장을 가니까, 문제가 될지 안 될지를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다. 뒷말 안 나오도록, 부족한 마무리를 해두기로 했다. 스냅 사진 한 장 찍겠다고 쑤저우로 갔다. 마침 승희도 일이 없어서 함께 갔다. 5분도 안 걸려서 해야할 사진을 해치우고, 쑤저우 시내를 좀 돌아다니다가 까페에 앉아서 오후를 보냈다. 새해 계획을 몇 가지 이야기했는데, 결혼과 작업 문제가 가장 컸다. 

  Studio Ditte는 실제적인 공간 이름은 아니고, 새해부터 승희와 내가 꾸릴 블로그 이름이다. 상하이.와 당대예술.을 주제로 잡고, 각종 리뷰와 인터뷰, 그리고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을 담기로 했다. 내 개인 블로그와 웹진 에프상하이를 통해 시도하던 작업들이 아마 스튜디오 디떼의 공간으로 몰릴 수도 있을 것이다. 뭐 좀 안타깝기는 하지만, 웹진의 실패를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올 한 해 동안, 승희와 내가 각각 100권 / 50권의 책에 대한 리뷰를 쓰기로 했다. 승희가 나보다 월등히 책 읽는 속도가 빠르고, 나는 출장 일정이 많아서 그렇게 정했다. 그리고 서로의 독서 목표를 달성하면 연말에 있을 보상도 정했다. 음악도 숙젳처럼 들어보기로 했다. 오늘은 그래도 새해 첫날이니까, '신세계로부터'라는 부제를 가진 교향곡을 들었다. 나는 교향곡이 좋은데, 승희는 차분한 소품들을 더 좋아한다. 장단점이 있는데, 교향곡을 들을 때는 아무래도 딴 짓을 할 수 없고 곡에만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배경음악으로 듣기에는 교향곡은 너무 정신없다. 그리고 소품은, 좀 심심한 면도 없지 않다.

  2011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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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30 22:01

아이


숨통을 조르는 것 같던 일이 우선 마무리되니까 마음에도 이런저런 틈이 생기고, 이것저것 돌아볼 수 있게 된다. 지난 에프상하이 출사에 다녀온 사진들인데, 특별할 것 없어도 그냥 두어 장 만져본다. 




2010.12.30 21:47

맥으로 갈아타기


모니터가 좀 작다 싶었다. 사진 작업에는 모니터 두 대를 쓰는데, 한 대는 2005년에 구입한 19인치 CRT 모니터이고, 다른 한 대는한두 해쯤 뒤에 구입한 19인치 LCD모니터다. 큰 사진을 작업할 때 19인치 사이즈의 모니터는 아무래도 아쉽다. 하지만 모니터 바꾸는 일은 작은 일이 아니라서 어지간하면 버티고 썼다.

노트북은 2004년에 중국에 처음 교환학생으로 올 때 산 것이다. 그 때 기준으로 거의 최고 등급의 녀석을 사서 이제껏 잘 썼다. 그런데 아무래도 오래 되고 보니 요즘에 나오는 프로그램을 돌리기에는 벅차고, 현장에서 카메라에 연결해서 사진 확인하는 용도로만 겨우 썼다. 

내년에는 장기 출장이 몇 번 더 있을 예정이고, 새 상업사진 촬영들도 의욕적으로 해보려고 한다. 그래서 겸사겸사 컴퓨터 작업환경을 바꾸기로 했다. 승희는 필요한 일이라면 그렇게 하라고, 따로 말리지도 않고 슬쩍 응원도 해주었다. 몇 가지 조합을 고려했는데, 결론은 애플의 맥북프로 노트북을 구입하고, 별도의 모니터를 구입해서 쓰기로 했다. 우선 노트북은 13인치 맥북프로를 구입했다. 한국에서 중고를 샀다. 1년쯤 쓰고 최신 버전으로 다시 구입할 생각을 해서, 우선 급한대로 한국에서 중고를 구입하면 되팔기 쉽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내가 매물을 찾고, 동생을 통해 거래하고 한국 다녀오는 바람소리 누나를 통해 전해받았다. 노트북은 제법 성능이 괜찮아서, 당장 몇 달 쓰고 내년에 바꾸려던 계획을 바꿔서 몇 년은 써보려고 한다. HDD를 떼어내고 SSD를 장착해서 속도를 높였다. 포토샵이나 라이트룸도 제법 잘 돌아간다. 

그리고 예정보다 조금 무리해서, 새로 나온 애플의 27인치 모니터를 샀다. 가능하면 좀 저렴하고 안정적인 성능을 내는 모니터를 구하려고 했는데, 이리 저리 따져보다가 결국 이 녀석을 구입하기로 했다. 중국 매장에서 판매하는 가격은 한국보다 40만원 정도가 더 비쌌는데, 오고 가는 수고와 기다리는 비용, 그리고 문제 발생시 처리의 수월함 등을 생각해서 여기서 구입했다. 화하이루에 크게 들어선 애플 매장으로 노트북을 가져가서 테스트 해보고, 다음날 다시 가서 샀다.

맥의 작업환경은 듣던 대로 윈도우와 조금 다르다. 우선 쾌적하다는 인상이 있는데 이것이 맥 OS X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새로운 운영시스템을 처음 접하기 때문인지는 좀 더 두고보아야 알 일이다. 그리고 작전대로이기는 한데, 아무래도 노트북이다보니 기존에 쓰던 데스크탑보다는 속도가 느리다. 많은 작업을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아마 적잖이 답답할 것 같다. 해결책은 맥 최고 버전의 데스크탑인 맥프로를 구입하거나, 맥북프로를 더 높은 사양으로 구입하거나, 아이맥을 구입하는 것인데 셋 다 여의치 않다. 당분간은 이대로 쓰고, 가능하면 이 속도에 내가 적응해야 한다. 하지만 장점도 있는데, 노트북을 메인으로 쓰게 되니 언제 어디에서든 필요한 모든 작업을 할 수 있다. 출장 중이든 한국에 있든 상관없이 곧장 작업을 시작하고 끝내고 클라이언트에게 전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장점이 이 조합을 최종 선택하게 된 결정적 이유다.


맥북앞에 앉으면, 막 일하고 싶어진다.


새로 오픈한 애플샵은, 정말 구경만 하려고 했다.


직원은 친절했다. 가져간 내 맥북으로 애플시네마27은 잘 돌아갔다. 이 때까지만 해도 결심은 안 했었다.


다음날...


LCD모니터는 승희가 쓰기로 하고, 사진작업에 좋은 CRT모니터는 필요한 곳에 보내기로 했다.


마지막 가시는 길,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2010.12.25 09:40

지난 8월에


장시성에 다녀왔다. Asia Travel이라는 중국 여행잡지의 일이었다. 한 달 동안 장시성 곳곳을 둘러보고 한국어 소개책자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사진을 찍고 글을 썼다. 본래 벌써 끝났어야 하는 작업인데 타고난 게으름 때문에 너무 오래 걸렸다. 어제서야 디자이너로부터 초벌본을 받아 보았다. 넉 달이나 걸린 셈이다.

지난 몇 달 동안,

아무래도 나를 가장 크게 바꾼 것은 승희다. 승희는 내게 없는 것들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정리정돈이 생활화되어 있는 사람이고, 요리도 잘 하는 사람이다. 본인의 관심 분야에 대한 다양하고 꾸준한 리서치도 몸에 익히고 있는 사람이다. 승희는 학부와 대학원에서는 역사를 공부했는데, 지금은 아트 마케팅으로 박사 과정에 있다. 예술이란 것은 어쩌면 비겁한 자들의 유희나 도피, 허영이거나 그 모두일 것인데 나나 승희, 그리고 내가 아는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어쨌든, 꼬박꼬박 관련 강좌를 찾아 듣고 또 본인의 앞길을 준비하는 모양새를 보면 예쁘고 기특하다. 내 생활의 많은 부분에 승희는 영향력을 행사해서 변하게 했다. 나는 조금 더 계획적이 되었고, 생활에 필요한 경제관념도 챙기고 있다. 등산복이나 입고 다니던 나를 이리 저리 끌고 다니면서 옷도 맞춰입게 하고 또 사게 한다. 물론 돈은 내 돈을 쓴다. 나를 자기가 아는 교수님 밑으로 밀어넣어 공부 시키려는 계획도 있다. 승희 덕분에 나는 세상을 조금 더 많이 즐길 것이다. 그리고 승희는, 여자다. 여자라는 생물의 이질감을 이렇게 크게 느껴본 것은 처음이다. 연애가 처음도 아닌데, 그 전까지는 왜 알지 못 했을까? 이제는 왜 여성과 남성은 다른 별에서 왔다고 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이런 외계 언어를 말하는 외계 생물과 부대끼며 이 땅의 많은 남성들은 살아내고 있었구나. 그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우리는 싸우기도 가끔 싸운다. 서로 다른 별의 언어로 싸우니까 이게 답이 나는 싸움이 아니다. 그러다가 시간 지나면 서로 안아주고 웃고 만다. 이런 외계인 같은 것. 이제 밤하늘을 보면 UFO를 기다리게 될 것 같다. 우리는 아마 내년 어느쯤에는 결혼도 할 것이다. 

나를 바꾼 것이 승희였다면, 나를 흔든 것은 장시성에 대한 원고작업이었다. 원인은 전적으로 내 게으름에 있다. 하지도 않으면서,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억눌려서 좀처럼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다른 많은 일들에 손을 놓아야 했다. 중간에 몇 번의, 마감 통보에 가까운 독촉이 없었다면 장시성은 아직도 내 머리 속이나 컴퓨터 이미지 데이터 속에 있었을 것이다. 처음의 기대와 달리, 어디 내보이기 부끄러운 수준의 책이 되겠지만, 어쨌든 마침표를 찍었다는 데 혼자 의미를 둔다. 내년 상반기까지 아마 서너 권의 책이 같은 시리즈로 더 나올 것이다.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하니까, 다음 작업은 이렇게 밀리지 않도록 해야겠다.

맥으로 갈아타기.를 시도 중이다. 8년 가까이 써서 이제는 도저히 노트북다운 성능을 내지 못 하는 노트북을 바꾸기로 하고 대안을 검토하던 중에 대뜸 맥 노트북을 구입했다. 이미지 작업에는 맥이 낫다는 이야기들을 여러 번 들었기 때문이고, 아이폰을 통해 접한 그들의 직관적인 인터페이스가 좋았기 때문이다. 맥 컴퓨터 중에서도 여러 가지 조합을 생각할 수 있었는데, 완벽하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최고의 데스크탑 맥프로.가 있고, 모니터 속에 본체를 숨긴 아이맥도 있다. 그리고 새로 나온 가장 얇은 노트북 맥북에어도 있고, 무거운 작업을 소화할 수 있는 노트북인 맥북프로.도 있다. 여러 조합을 몇날며칠 고민한 끝에 나는 13인치의 맥북프로를 구입했다. 그리고 모니터 역시 이런 저런 조합을 생각한 끝에 새로 나온 맥 모니터를 구입하기로 했다. 어제 매장에 노트북을 가져가서 직접 연결해서 테스트도 해 보았다. 좋더라. 잘 되더라. 갈아타기가 끝나면, 집에서는 외부 모니터를 연결해서 대형 화면으로 작업할 수 있고, 장기 출장 중에도 메인 컴퓨터를 그대로 가져가는 셈이니까 공간의 제약 없이 필요한 대부분의 작업을 해낼 수 있게 된다. 작업환경이 쾌적해질 것이다.

어느새 연말이다. 장시성 때문에 몇 달이 공으로 증발해버린 기분이다. 정신 차리니 12월이 열흘도 남지 않았다. 연말 인사도 못 했는데. 내년에는 잔뜩 기대되는 여러 새 작업들이 있다. 밀린 책들을 좀 읽어야 하니까 관련 팀을 꾸릴 것이다. 서너 명 정도 모여서 강도 높은 읽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반기 대학원 입학 준비도 해야 한다. 새 사진작업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석 달 정도는 또 여행 책자를 만들기 위한 출장도 다녀와야 한다. 호텔 포트폴리오도 준비되었고 영업을 도와줄 친구들도 섭외해 두었으니 진행해야 한다. 아, 결혼도 해야 한다. 바쁜 한 해가, 바쁜 것 보다 더 재미있는 한 해가 눈 앞에 왔다.

다음달 4일부터 귀주성으로 출장을 간다. 거의 한 달이 걸리는 길이다. 가서, 밤마다 인연들에게 새해 인사를 써야겠다. 때 늦은.



2010.12.17 14:15

Before & After, 근황


블로그라고 열어 두고 글 쓴 것이 석 달이 지났다. 그 동안 여러 가지가 변했다. 

아쉬운대로 집 인테리어를 했다. 3년 동안 살았고, 이사를 가려고 했는데 마땅한 조건에 마땅한 집이 없었다. 집주인의 요구대로 임대료를 올려서 주고, 2년을 더 계약했다. 좀 사람답게 살겠다고, 제법 이것 저것 고쳤다.

새 일들도 몇 개 더 하고, 새 장비도 생겼다. 

그리고 모든 변화의 중심이 되는 여자친구 승희도 있다.

바빠서, 연말인사를 두 해째 거른다. 작년에는 어영부영하다가 지났는데, 올해는 연말 인사 쓸 틈이 없다. 내년에는 더 많은 것이 변한다. 블로그도 정돈되어서 힘을 얻을 것이고, 새 사진 프로젝트도 시작한다. 승희와 함께 상하이.현대예술.을 주제로 하는 새 블로그도 만들기로 했다. 이름은 'studio ditte'로 생각해 두었다. 내년 하반기에는 학생도 될 것이다. 복단대에서 미학을 전공할까 하다가, 승희가 있는 학교에 젊고 좋은 선생님이 계신다고 해서 그 쪽에서 전시기획을 공부할까 싶다. 제목은 바뀌어도 하려는 공부의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Before



After

우선 바닥에는 카펫을 깔았다. 바깥 베란다를 막아서 옷방을 만들었다. 작업공간을 한쪽으로 보내고 나머지 공간에는 앉은뱅이 책상을 길게 놓았다. 필요한 커튼을 추가하고, 욕실과 창고, 주방에는 선반을 달았다. 카펫 작업을 제외하면 구멍 하나 뚫는 것부터 목재 자르기, 선반 붙이기 등 모든 작업을 직접 했다. 그리고 바깥에서 낡은 나무를 주워와서 벽에 매달았다. 승희가 감독하고, 내가 몸으로 떼웠다.



2010.09.07 20:09

10. 9. 7 홍코우 암장


장소. 홍코우 암장

시간. 오후 4:30~오후 6:00

내용. 볼더링




  홍코우 암장은 팔만 암장보다 조금 싸다. 1회 입장권이 40원이고, 6개월에 800원, 1년에 1200원이다. 신발 대여료도 5원이다. 직벽은 팔만 암장의 약 반 정도 높이 밖에 안 되고 볼더링 구간도 조금 더 적다. 이번에 거의 두어 달 만에 간 것인데, 많이 변해 있다. 우선 볼더들이 많이 움직였다. 기초 자세를 익힐 수 있는 구간은 팔만 암장보다 홍코우가 더 쉽게 되어 있다. 대신 그 구간을 제외하면 오히려 팔만보다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홍코우에 있다가 팔만에 처음 갔을 때 받은 인상은 '참 어렵다'는 것이었는데, 팔만에 있다가 홍코우에 오니 다시 어렵다는 인상을 받는다. 한 곳에서 일정 기간 이상 볼더링을 하면 우선 자신만의 길이 생긴다. 그리고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길들은 머리 속에서 지워진다. 갈 수 있는 것만 보이니까, 갈 만한 것만 있는 것 같아서 쉬워 보인다. 그러다가 새로운 곳에 가면 어렵고 쉬운 길들이 한꺼번에 덥쳐와서 도대체 길을 모르게 된다. 아마 어렵다는 인상은 그래서 받는 것이다.


  반창고를 잊고 안 가져갔다. 조금 탔더니 손가락 여기저기가 터져나가려고 한다. 지난 일요일 정기모임과 마찬가지로 팔도 금방 힘을 잃는다. 아무래도 틈틈히 악력 훈련을 따로 해야할 모양이다. 두어 달 만에 가는 곳이니까 내심 기대를 했었다. 예전에 못 가던 길도 이제는 무난하게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기대는 기대로 그쳤다. 나아진 것은 분명한데, 그 간격은 기대에 미치지 못 했다. 처음 시작하던 때보다 조금 더 부드러워진 몸짓과 조금 더 강해진 악력으로 다만 그쳤다.


 홍코우 암장은 작은 대신 사방의 벽과 천장에 모두 볼더를 박아두어서 제대로 스파이더맨이 되어볼 수 있다. 그리고 적어도 볼더링 테크닉에 관해서라면, 팔만 암장의 클라이머들은 상대가 안 되는 고수들이 이 곳에 제법 있다. 나는 오후 네 시쯤 가서, 고수들 오기 전에 슬쩍 빠져 나왔다. 평일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좁은 공간에 답답한 느낌이 든다. 팔만 암장의 볼더링이 어느 정도 몸에 익었다면 맴버들과 함께 이 곳에 다녀가는 것도 좋겠다. 


  암벽 훈련을 시작하면서 반복해서 듣는 이야기는 동료에 대한 것이다. 단순한 운동 파트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동지로서, 동료라는 단어는 여느 운동에서보다 더 큰 무게를 갖는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산에서 만나는 어떤 감동은 철저하게 단독자의 것이다. 동료에게 생명을 위탁하고 또 동료의 생명을 담보해주는 것은 맞지만, 그 부분이 산행의 근원적인 어떤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 싶다. 산을 걸으며 가장 큰 감동을 느끼는 순간은 사방 고요한 순간에 오로지 내 몸 하나로 거대한 산과 마주서는 그 때쯤이 아니었나 싶다. 오랜만에 혼자 암장에 가서 한 마디 말도 없이 벽에 붙고 떨어지고 다시 붙는 기분이 참 좋았다.



2010.08.27 10:47

카메라의 소멸은 세상의 소멸로 이어진다


  계획은 그랬다. 밤 10시쯤 상하이에 내리면 아슬아슬 지하철을 타고 온다. 한 달 만에 집 문을 열면 우선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고 앰프를 예열시킨다. 배낭을 풀어서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샤워를 한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느긋하게 앉아서 아무 음악이나 대충 걸어두고, 밤이니까 소리는 작게 듣는다. 빨래를 널고 내 침대에서 너르게 잠든다.

  계획이란 것이 얼마나 제한적인 것인지, 살아가는 일은 얼마나 많은 상상 밖의 전개를 펼쳐내는 일인지 알게 되는 때가 종종 있다. 그러니까 실제는 이랬다. 오전 일정을 마치고 난창 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2:30분. 비행기 예약 시각은 저녁 8:30분. 혹시나 싶어 일찍 가는 비행기를 알아보았지만 이미 좌석이 모두 차서 변경할 수 없다. 꼬박 저녁까지 기다려야 한다. 출발 시각이 되어서 카운터 앞에 가서야 날씨 문제로 비행 시각이 다시 연기되는 것을 확인했다. 며칠 전에 동북에서 발생한 비행기 사고 때문에 더 엄격해진 것이리라. 비행기는 밤 열 시에 떴다. 새로 생긴 홍차오 공항 제 2 청사는 그 전 공항보다 훨씬 시내에서 떨어져 있다. 이미 밤이 늦었으니 지하철은 없고, 택시를 타고 집 앞에 내리니 요금은 87원이 나왔다. 장기 출장이라 냉장고도 비웠으니 집에는 먹을 것이 없고 우선 급한대로 마트에서 빵 두어 개를 사서 집으로 왔다. 드디어 집이다. 그렇게 돌아오고 싶었던 집에 왔다. 조금 늦긴 했지만 이제 들어가서 계획들을 진행시키면 된다. 밤이 늦었으니 앰프 볼륨을 조금 더 낮추면 그만이다.

  문에는 수도요금 고지서 한 장, 국제택배 운송장이 한 장 끼워져 있다. 대충 수습하고 들어가서 30kg가 넘는 배낭을 우선 내렸다. 스탠드를 켰다. 불이 안 켜진다. 아, 가기 전에 플러그를 모두 뽑고 갔었다. 다시 켰다. 안 켜진다. 멀티탭의 전원을 올렸다. 다시 켰다. 안 켜진다. 아, 뭔가 이상하다. 혹시? 열쇠고리에 달린 작은 등을 켜서 두 장의 고지서를 다시 살핀다. 아, 택배 운송장이라고 생각했던 고지서는 다시 보니 단전통지서다. 7월달 요금을 미납했으니 18일부터 전기를 끊는다는 통지서. 이미 일주일 전이다. 시각은 밤 열 한 시를 벌써 지났다. 방 안은 사우나처럼 덥다. 일곱 시간 반을 공항에서 기다리고 겨우 도착해서 만난 것이 정전이다. 

  우선 마트에 다시 가서 큰 건전지를 샀다. 손전등에 넣어서 손전등을 욕실에 두고 샤워했다. 모기약을 켤 수 없으니 창문을 열면 안 된다. 샤워한 후의 시원한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얼른 자리에 누워 잤다. 얼마 남지 않은 휴대폰 베터리가 조마조마했다. 새벽에 일찍 깼다. 더위에 등떠밀려서 깼다. 대충 할 것들을 하고 가까운 전력공사 사무실을 검색해서 업무 시작 시간에 맞춰 갔다. 밀린 요금을 납부하고, 전기를 다시 이었다. 

  전기가 없어지는 세상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의 소설에서 카메라가 사라지는 세상을 그린 적이 있다. 카메라가 사라지면 카메라를 만든 사람이 사라지고 카메라의 재료가 사라진다. 그렇게 소급해서 올라가면 카메라의 소멸은 세상의 소멸로 이어진다. 세상의 소멸까지는 아니어도, 전기가 사라진 세상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라는 결론에 나는 닿았었다. 

  전기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몇 개는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다.

  샤워 (수도는 안 끊겼다)

  면도 (23일 동안 자란 수염을 밀었다)

  어쨌든, 돌아왔다.

 



2010.08.03 22:17

무서울 만했다


아파트 15층에서 뛰어내린 독신녀,


그곳에 가보면 틀림없이 베란다에


그녀의 신이 단정하게 놓여 있다


한강에 뛰어든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시멘트 바닥이든 시커먼 물이든


왜 사람들은 뛰어들기 전에


자신이 신었던 것을 가지런하게 놓고 갈까?


댓돌 위에 신발을 짝 맞게 정돈하고 방에 들어가,


임산부도 아이 낳으러 들어가기 전에


신발을 정돈하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 황지우, 신 벗고 들어가는 그곳. 중에서



출장 간다. 장시성의 수도인 난창으로 가서, 거기서부터 약 20일 동안 장시성 곳곳을 다녀보고 사진과 원고를 마련하는 출장이다. 출장이래도 다 같은 출장은 아닌 모양이다. 호텔 촬영같은 경우는 가서 며칠 동안 깔끔하게 작업하고 돌아오면 된다. 그런 출장은 내가 사진가라는 것을 더 분명하게 하고, 한 명의 일꾼으로 단단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런데 여행을 다니고 원고를 쓰는 출장은 꼭 뿌리내릴 곳 없이 물에 뜬 채로 흘러다니는 수초의 방식같다. 불안하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 하고 이렇게 떠돌다가 세상이 끝날 것만 같아서, 그러면 나는 이 땅에 온 아무 흔적도 이유도 애착도 성취도 없는 것 같아서 무섭다. 이번 출장이 애초에 이런 형태인 줄 알았다면 다시 한 번 생각했을 텐데, 나중에서야 정확한 내용을 알았다. 이미 결정해서 통보하기도 했거니와, 여행하고 사진찍고 돌아와서 글쓰면 돈도 준다니까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간다.


청소했다. 우선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통에 남은 빨래가 없도록 세탁기 돌려서 널었다. 발냄새 너무 나던 암벽화도 빨아서 그늘에 두었다. 쓰레기통을 비우고, 냉장고에 있던 오래되어서 못 먹는 먹거리들도 치워냈다. 읽겠다고 잔뜩 욕심만 부리며 책상 위에 쌓아두었던 책들도 책장으로 돌려보냈다. 앰프 옆에 널려있던 씨디들도 대충 모아서 집어 넣었다. 여행을 가기 전에, 장기 출장을 가기 전에는 주변을 정돈하는 버릇이 있다. 다들 그런 것인지 나만 그런 것인지 모르겠는데, 아마 시인 황지우는 그런 순간에서 어떤 비장함을 읽었던 모양이다. 대학 무렵에 여행은 무서웠다. 좋아서 떠났지만, 떠나기 전에는 언제나 관두고 싶었다. 대부분 혼자 또는 두엇이 떠나는 여행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편한 곳으로 쉬기 위해 가는 여행도 아니고 주로 야간산행이나 장거리 자전거 여행이었다. 그래서 무사히 돌아오는 일이 가장 큰 목표였다. 무서울 만했다. 여행이 반복되면서 출발 전에 무서울 것도 미리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무서울 것은 짐작해도, 정작 무서움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소파 위에 이번 출장길에 필요한 물건들을 차례로 늘어놓고 빠진 것은 없는지 살폈다. 여름이니까 옷가지들은 얇은 것들로 하고, 이번에는 사진 원고도 제법 만들어야 하니까 카메라 장비를 여행 때보다는 조금 더 챙겼다. 등산화도 챙겼다. 오래 걷는 날이 많을 것이고, 공산당의 유격지로 유명한 정강산은 제법 험할 것이다. 책은 세 권을 챙겼는데, 크기가 작고 가벼우면서도 오래 읽을 만한 것들로 골랐다. 아마 다 읽지는 못 할 것이다.


배낭 꾸리고 일찍 자야겠다. 좀 담담하게 다녀와야겠다.




2010.07.30 13:31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바쁘겠다.


여행잡지사 주최로 사천성 청두에 다녀온 적이 있다. 몇 달 된 일이다. 그 뒤에 한 번 더 연락을 받았는데, 꽤나 장기 여행을 제안했는데 다른 스케줄 때문에 못 갔었다. 며칠 전에 편집장 전화가 왔다. 장시성에, 약 20일 정도, 비용은 잡지사에서 부담하고, 돈을 지급하고, 사진 찍고, 글을 써라. 뭐 대충 이런 말들을 했다. 제안한 여행 기간 중에 다른 스케줄이 있었기 때문에 우선 알았다고 하고 끊었다. 그리고 급하게 연락해서 다른 스케줄을 조금 조정하려고 했는데, 조정이 안 되고 취소됐다. 그래도 선약인데, 많이 미안했다. 

시간은 확보를 했으니 다시 편집장과 통화해서 정확한 내용을 물었다. 여행 기간 20일 동안 장시성 대부분 지역을 돌아보고 8만 자 원고를 쓰면 된다. 8만 글자면, 한글 기준으로 50장 정도 되는 모양이다. 날마다 꼬박 두 장씩 써야 하는 분량이다. 그냥 한글로 쓰면 된다는데, 그렇다면 한국에 낼 모양이다. 이 분량으로 책이 되지는 않을 것이고, 분량이 된다 한들 중국 전역도 아니고 장시성 한 곳에 대한 책은 수요도 없을 것인데, 도대체 의도를 파악하기 어렵다. 이야기를 쓰고, 실용적 정보를 보태는 수준에서 해주면 된다는데, 여행 안내서적이야 이미 많고 내 성격이 꼬치꼬치 캐물어가면서 차곡차곡 정리하는 작업에 서툰데, 그리고 그런 작업이라면 별로 달갑지 않은데 어렵게 되었다. 우선 난창.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래서 가능하면 내 호흡에 맞는 여행기를 써야겠다. 여행은 너댓 명이 함께 할 모양인데, 어떻게 그룹이 꾸려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제 잠들기 전에 누워서 여행서적을 폈다. 장시성에 대한 부분을 읽어보았는데 특별히 인상적인 내용은 없었다. 현대중국에 대해 쓸 수 있다면, 모택동과 연결시킬 부분은 많아 보였다. 그 부분이라면 예전에 보아둔 것들도 조금 있으니 어떻게 말을 엮어낼 수는 있겠지만, 문제는 잠재 독자들을 생각한다면, 그들이 도대체 모택동의 신화에 대해 호기심을 느낄 이유가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보이지 않아서 답답하기는 한데, 컴퓨터 앞에 앉아서 고민하는 것의 상당 부분은, 적어도 여행기에 관해서라면 괜한 걱정인 것을 이제 안다. 문장은 길 곳곳에 널려있는 것이어서, 현장에 가야 비로소 보이고 또 현장에 가면 어떻게든 보이는 것들이다. 나는 터벅터벅 걸으며 길에 널린 문장들을 주워담아 오면 된다. 와서 대충 줄 맞추어서 늘어두면 된다.

단체관광 형식은 아니라고 하니, 그에 맞는 준비가 필요하다. 트렁크 끌고 다니며 호텔에서 노닥거리고 가이드 깃발 따라 다니는 여행은 피했다. 우선 장기여행에 필요한 배낭을 사기로 했다. 마침 요즘 암벽등반 때문에 다니는 체육관 주변에는 등산용품 매장들이 여럿이다. 45리터 정도면 무난하다고 하니까, 그 쯤에서 보아둔 녀석으로 사야겠다. 다른 준비물들은 대충 갖고 있으니 어떻게 될 것이다. 장기 여행이라고는 하지만 야영을 하는 따위의 일은 없을 것이니 가져갈 짐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다만 예전 여행기의 경우 아무래도 문장을 만드는 부분에 집중했던 반면 이번에는 사진까지 제대로 된 원고용 사진을 만들어야 하니까 사진 장비를 조금 더 가져가야겠다. 그래 보아야 필드 사진이니 큰 조명들을 갖고 갈 것도 아니고, 그저 렌즈 하나쯤 더 넣고 작은 삼각대를 챙기는 정도다. 스트로보와 필터들도 가져 가야겠다. 풍경사진은 내가 선호하는 분야도, 잘 찍는 분야도 아니어서 어지간하면 나서서 찍지 않는데, 시키니 해야 한다. 해야 하니까, 상업 사진가로서 돈 받고 주문 받은 입장에서 기본적인 완성도는 해내야 한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바쁘겠다.

이 편집장은 예전에 인터뷰 기사를 쓰기도 했는데, 여행을 싫어한다는 여행 잡지사의 편집장이다. 하긴, 이런 식의 여행이라면 어쩌면 생각보다 빨리 질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 다녀 오면 8월이 다 가겠다.




2010.07.30 10:49

머리카락은 자란다.


여름이다. 에어컨 바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게다가 편도선이 조금 부은 듯해서 집에서는 창문만 열어두고 있다. 에어컨은 켰다가 껐다가 한다. 맨몸으로 앉아 있어도 덥다. 컴퓨터랑 앰프가 거의 종일 켜져 있으니까 거기서 나오는 열도 만만치 않다. 더위가 목끝까지 차오르는 여름에는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다 털어내고 싶어진다. 가끔 사람까지 털어내게 되는 것이 문제긴 하다만.

면도했다. 깔끔하게 면도한 것은 몇 달만이다. 대충 수염이 자라는 대로 두고, 너무 길면 가위로 정리하면서 지냈다. 어제 밤에 더워서 잠을 설쳤는데, 그러면서 갑자기 답답해졌다. 아침에 새 면도날을 끼우고 싹 밀었다. 다음주 출장 전까지는 날마다 면도해서 좀 가벼워야겠다.

이발도 했다. 머리카락이 많이 길어서 답답했다. 보통 한국에 갈 때 이발하는데 이번에는 좀 오래 안 가서 머리카락이 많이 길었다. 묶고 다니기는 하는데, 답답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샤워하기 전에, 잘 드는 주방용 가위를 챙겼다. 우선 머리를 묶은 다음, 겨우 묶일 만큼만 남기고 나머지 부분을 가위로 잘랐다. 생각해 보면, 기억하는 안에서는 직접 이발한 적이 없다. 어릴 때는 동네 이발소에 다녔다. 또래 중에는 미장원이라고 이름 붙은 곳에 가는 녀석들도 있었는데, 대부분 어머니 손에 이끌려 갔었고, 그 아이들을 보며 이발소에 가는 것이 괜히 남자답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아주 어릴 때는 이발소에 가면 이발의자 팔걸이 위에 나무판자를 올려두고, 그 위에 앉았었다. 언제쯤 나도 이 나무판을 빼고 앉을 수 있을까 조급하기도 했었다.

마산에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자취방에서 10분쯤 걸어내려가면 인상 좋으신 노부부가 있는 이발소가 있었다. 고등학생 머리라고 해보아야 한 가지인데, 그 때는 그 한 가지 안에서도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이 참 여럿이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발할 때마다 어떻게든 조금 달라보이지 않을까 했는데 결과는 언제나 비슷했고, 그 비슷한 머리 모양새가 나쁘지 않아서 그 집을 단골로 삼았다. 고3은 어떤 특권이기도 하고 각오이기도 하다. 아마 두 번쯤 삭발을 했다. 대단한 각오가 있었다기 보다는 그냥 했다. 지금이나 그 때나 머리카락에 별 욕심을 내지 않았다.

군대에 있을 때는 직접 후임들 이발을 해주기도 했다. 군대 머리라는 것이 별 것 없고, 말년쯤 되니 심심하기도 했다. 대원 중에 임의로 이발병을 뽑아서 그 녀석이 보통 중대의 이발을 담당했는데, 이발병이 근무중이거나 하면 대충 손재주 있는 녀석들이 이발을 하기도 했다. 나는 손재주는 없었는데, 보기에 별로 어렵지 않았고, 나중에는 일도 별로 없으니 제법 심심하기도 해서 덩달아 했다. 보통 이발병이 이발을 해주면 고마움의 뜻으로 작은 군것질거리를 주곤 했는데, 나는 후임들에게 요구르트 주면서 제발 내가 이발하겠노라고 말하곤 했다. 바리깡 들고 이리 밀고 저리 밀면 어쨌든 머리카락이 짧아지기는 했으니까. 그러면 꼭 녀석들은 나한테 이발 받은 다음에 이발병 오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다듬고는 했다. 내 요구르트는 안 돌려주면서.

대학을 가고, 군대를 다녀와서 처음 머리를 볶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얼굴살이 없었는데, 말하고 행동하는 것과 섞여서 인상이 너무 강했다. 나는 모르는데 다들 그랬다고 했다. 어쩌자고 처음 머리를 볶았던 것인지 기억나지 않는데, 철사같이 곧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으니 부드럽게 물결치는 머리카락이 한 번쯤 부러웠던 것일 테다. 그렇게 머리를 볶은 다음이었는데, 지나가던 후배가 한 마디 했다.

"어, 선배. 이제 안 무서워 보여요."

아, 파마는 나의 운명이 되었다. 그리고 졸업할 때까지 일 년에 한 두번은 꼬박꼬박 머리를 볶았다. 살짝 염색을 한 적도 있었는데, 파마와 염색을 동시에 하니 머리결이 막막 갈라지는 것이 감당이 안 됐다. 그래서 이후에는 염색을 하지 않았다.

중국에 온 이후, 처음 온 상황에서 아무 곳에나 가서 이발하기가 무서웠다. 그 때 내가 본 것들이라고는 길가에 이발용 의자 하나 꺼내놓고 벽에 거울 걸어둔 다음 이미 회색도 한참 지난 것 같은 흰색 천으로 목부터 감은 후 기계식 바리깡을 들이미는 풍경들이었다. 기계충이라는 것도 생각났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머리카락이 길어졌다. 샤워 안 하고 따로 머리만 감는 일이 없으니까, 긴머리라고 해서 머리 감기가 더 번거롭지도 않았다. 오히려 긴 머리카락이 좋을 때도 있는데, 짧은 머리는 낮잠을 마음대로 잘 수 없다. 꼭 한 쪽이 눌려서 밖에 나가거나 사람 만나면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긴 머리는 묶으면 그만이라서 마음껏 낮잠을 잘 수 있다. 묶은 머리끈 아래로 한 줌쯤 되는 머리카락을 덜렁거리며 처음 집에 갔을 때 부모님은 깜짝 놀라셨고, 집 밖에 못 나가게 하셨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곧장 카드 쥐어주시면서 미용실로 보내셨다. 자르고, 볶고 돌아왔더니 어찌나 표정이 밝아지시던지. 시간이 지나서, 이제 부모님도 어지간한 머리 스타일에는 면역이 되신 듯하다. 한 번은 머리를 안 묶일 만큼 자르고 볶아서 갔더니, 아버지께서

"요번에는 스타일이 좀 다르네?" 하고 마셨다.

이제는 특별히 머리카락에 집착하지 않으니까 때마다 되는대로 깎는다. 그 뒤로 두어 번은 삭발도 했다. 너무 더워서 도대체 머리카락을 감당하기 싫었다. 떼어낼 수 있는 것은 뭐든 치워내고 싶었다. 밀어달라고 말했더니 미용실 사람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제법 목까지 오는 머리였다. 그걸 저기 옆에 서 있는 삭발 아저씨를 가리키며 저렇게 해달라고 했으니. 짧은 머리는 되려 더 자주 이발해야 하고 낮잠이라도 자면 바로 증거를 남긴다. 무엇보다, 이번에도 삭발을 할까 했더니 지난 번 머리를 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말린다. 이상하다. 그 때는 괜찮다고 말했던 그 사람들인데. 완전히 밀어버린 머리카락이 자라서 다시 묶을 만큼 되기에는 2년 정도 걸리는 것 같다.

직접 머리카락을 자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이발할 때가 되면 당연히 이발소든 미용실이든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왜 직접 자를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해봤을까? 가만 보면, 사람마다 머리카락은 비슷한 자리에 비슷한 모양으로 있는데, 그 비슷한 것들 속에서 어떤 차이를 만들어 내려니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또, 어떤 형태도 없이 그저 머리 위에 얹어둔 것 같은 남성들의 고만고만한 머리카락을 보면 어째 좀 아닌 것도 같다. 어쨌든, 기억하는 한에는 처음으로 내 손으로 가위를 쥐고 머리카락 한 웅큼을 잘라냈다. 묶은 후에 남은 부분은 자른 거라서 주로 뒷머리 부분이 잘려나갔다. 짧은 단발이 되었다. 별로 이상해 보이지는 않으니 다행이고, 묶으면 그나마 안 보이니 문제도 아니다. 문제가 되면 또 대순가? 머리카락은 자란다. 




2010.07.17 07:51

그 때처럼 찍고 쓸 수 있도록 애써 보아야겠다.


  웹진은, 7, 8월 두 달 동안 정돈해서 9월부터는 제대로 시작하려고 한다. 글을 써줄 사람들 대부분이 잠시 동안 한국으로 돌아가서 지금은 일지.를 제외하면 개점휴업이다. 그 사이에, 보아서 그럴 듯한 틀을 마저 다듬고 앞으로 올라올 원고들을 편집하는 틀도 만들어 두어야 한다. 꾸준히, 정기적으로 쓰도록 필진들도 다독여야 하고 좀 더 심사숙고한 원고들이 나올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맞춰 두어야 한다.학부유학생들을 좀 만나보아야 하고,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공부 목록도 꾸려 보아야 한다.

  에프상하이의 이서방에게 지나가는 말로 사진영업을 부탁했더니 진지하게 고려해 주겠다고 했다. 내가 작업한 호텔 인테리어 사진들을 포트폴리오로 만들면, 상하이와 주변 지역 4, 5성급 호텔 홍보팀에 전화해서 담당자 연락처를 받고, 그들에게 내 포트폴리오를 보내주면 되는 일이다. 초기 한 달은 별도의 금액을 지불하고, 이후에는 각 계약건에 대해 인센티브 방식으로 지급하겠다고 말했다. 일 좀 해야지.

  지난 홈페이지를 다시 보게 된 것은 많은 자극이 된다. 더 좋은 조건에 있는 지금, 그 때보다 더 적은 결과물을 내고 있다는 것은 완성도의 문제를 떠나 게으름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 때 찍은 사진은 너무 서툴고 그 때 쓴 문장들은 너무 부풀었더라. 그래도 반성하게 되는 것은, 왜 그 때처럼 따뜻한 사진들을 더 찍지 못 하는 것일까? 왜 그 때처럼 살가운 말들을 이제는 건네지 못 하는 것일까? 그 때보다 사진은 무서워졌고, 그 때보다 문장에 대한 결벽증이 심해졌다. 같은 사진, 같은 문장을 만들지는 못 하겠지만, 그 때처럼 찍고 쓸 수 있도록 애써 보아야겠다.

  암장에서는 두 달 정도 별도 레슨을 받을 것을 추천했다. 그저 힘만으로 벽에 붙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필수적인 기술들이 있고 그 기술들은 단지 오래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아마 그래야 할 모양이다. 그래도 다른 운동에 비하면 두 달 정도만 배워서 기본을 몸에 익힐 수 있다는 것은 비교적 쉬운 것이다. 신발과 분가루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거의 맨몸으로 벽에 붙어 한 뼘씩 나아갈 때 몸이 참 홀가분하다.  

  새로 주문한 책들에 떠밀려서 이번 여름에는 책을 좀 부지런히 읽기로 했다. 마침 바쁜 일도 없으니 두어 시간에서 대여섯 시간까지 책을 본다. 책들은 두껍고 속의 말들은 어려워서 빨리 읽히지 않는다. 자꾸 욕심만 나서 하루에 여러 권을 함께 뒤적이니까 진도는 더 안 나간다. 아침에 책장에서 빼서 대충 보다가 저녁에 다시 집어넣는 책이 여러 권이다. 하루를 세 등분으로 나누고, 첫 시간에는 주로 책을 보고, 낮 시간에는 다른 볼일을 보고, 저녁 시간에는 사진작업을 하는 형태의 생활을 구축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욕심난다고 하루 종일 책을 붙들고 있는 것보다, 하루에 두어 시간 이상 꾸준히 읽어나갈 수 있도록 틀을 만드는 작업이 더 필요하겠다.




2010.07.16 22:54

마음 속에서 우수님은 언제나 선생님이셨다.



  우수님이다. 지난 내 사이트에서 찾았다.

  이번 사진 스터디를 끝내며, 

  저도 이렇게 사진을 배웠습니다. 제 선생님께서 본인의 스튜디오를 개방해서, 사람 손 타면 망가지는 그 장비들을 마음껏 쓰게 하시고, 찍은 사진 보면서 야단 치시고 다시 찍으라고 하시고, 밥 사먹여 주시면서 데리고 여기 저기 다녀주시면서 그렇게 사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도, 그냥 받은 대로 돌려드리는 겁니다.

  말했다.

  중국에 와서 제일 처음 찍은 내 사진은, 맹인 얼후 연주자 앞에서 사진 허락을 받고 찍은 한 장이다. 앞을 못 보는 연주자는 시끄러운 도로변에 앉아서 얼후를 연주했는데, 되지도 않는 중국어로 무슨 이유에선지 그 앞에 가서 나를 소개하고 사진 허락을 받았다. 연주자는 내 카메라를 보지 못 할 것이고, 자동차의 소음은 셔터 소리를 감출 것인데 어쩐지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할머니와 눈맞추고 계신 우수님 사진을 보니, 내가 왜 그랬는지, 누가 내게 그러라고 세뇌시켰는지 비로소 알겠다.

  같이 있으면 언제나 우수님 우수님 했는데, 마음 속에서 우수님은 언제나 선생님이셨다.

  여기 사람들에게도 우수님을 소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수님 사진 아래는 이렇게 적혀있다.


새벽 다섯 시 생선 경매장.
날도 추운데 뭐 할려고 나왔냐는 우수님 말에,
노할머니께서는
"심심해서 구경할라꼬 나왔다 아이가."
답하셨단다.
그리고, 웃으셨단다.

피사체에 다가서기 위한 기술로써 뿐만 아니고, 그것보다
사람을 알기(智) 위한 감성으로써
한 발 가깝게 서서 웃음에 공감해야 한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의 깊게 패인 주름을 서투르게 담아두고
"인생"이니 "여로"니 따위의 제목으로
닳아진 외투에 신문지 덮고 있는 노숙자를 몰래 담아두고
"생의 뒷골목"이니 "그의 겨울"이니 따위의 제목으로
어설프게 조롱하면 안 된다.

길지 않은 길이라도 같이 걸어 보고
모자란 두어 마디 인사라도 건네 보고
그게 힘들다면 하다 못해
한 자리 가만 서서 눈이 아릴만큼 그의 얼굴을 바라본 후에
그렇게 한 후에야 조심스레 셔터를 눌러도 될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런 사진이
참 오래도록 꼭 같은 무게로 맘에 남을 것 같다.

사진찍는 사람은 모쪼록
그래야 할 것 같다.







040129 거제도
모델 - 우수님. 도촬...-.-;;
모델료를 드려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려중... ^^





2010.07.16 22:42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화를 내지 않을까.



  몇 년 전에 쓰던 홈페이지에 문제가 생긴 것을 오늘 알았다. 이제 쓰지 않는 공간이지만 접근만 차단되어 있을 뿐, 여전히 있기는 한 곳이다. 스팸 댓글을 생성하는 프로그램에 걸려서 게시물마다 댓글이 적게는 수 십 개에서 많게는 수 천 개씩 붙어 있었다. 현재 홈페이지와 블로그 역시 같은 서버를 쓰고 있어서 여기까지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다른 게시판들은 그나마 쓰기 권한이 내게만 있어서 나았는데, 방명록 게시판은 난장이었다. 제로보드 사이트에서 해법을 찾아보았지만 뾰족한 수는 없는 듯했다. 결국 스팸 댓글이 많이 달린 게시물을 삭제했다. 몇 년 동안 모였던 안부 인사 중에 1/3 정도를 삭제했다. 안타깝고, 미안했다. 내가 기록에 집착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았다.

  몇 시간 동안, 잊었던 그 곳을 찬찬히 다시 보았다. 다 보지는 못 했다. 그 때, 나는 참 부지런하고 에너지가 있었던 모양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짓을 어찌 그리 열심히 했는지. 사진 에세이도 많이 썼다. 문장들은 어찌나 닭살스럽게 억지 멋을 부렸는지. 지금 다시 그렇게 못 하는 이유를 생각하니까, 우선 사진을 좀 더 알게 되어서 그렇다. 부지런히 찍어도 좀처럼 마음에 드는 사진이 잘 안 나온다. 물론 그 때보다는 카메라를 무겁게 느끼고, 항상 휴대하지 않는 게으른 탓도 있다. 

  가장 애착이 남는 게시물들은 역시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 사람들이 남겨준 안부인사를 살피다가, 한국에 있는 텃밭 누나에게, 지미에게, 우수님에게 전화했다. 통화는 텃밭 누나만 됐다. 이 녀석이 왜 갑자기 전화를 하나 싶었겠다. 다들 그리워서 그랬는데. 

  이미지는, 게시판들 중에 사람에 대한 이야기만 따로 모아서 올려두던 게시판의 메인 이미지다. 실루엣으로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과 얼굴과 목소리와 느낌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그 무렵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뭐라고 할까? 그 좋은 카메라로, 그 실력으로, 그 한가함으로, 그렇게 좋은 피사체들이 많은 땅에서 왜 너는 그렇게도 게으른 사진을 찍고 있냐고,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화를 내지 않을까.




2010.07.08 21:11

반군의 귀환


  감기몸살을 앓았다. 몇 주쯤 전에 몸이 살짝 불안했었다. 어쩌면 감기가 올 모양이라고 생각도 했었는데, 그냥저냥 움직이니 하루 이틀쯤 지나고 어떻게 다시 움직일 만했었다. 그리고 끝난 줄 알았다. 잔기침이 생겼다. 무슨 일인가 했다. 에어컨을 새로 틀어서 그런가 싶기도 했다. 그 몸으로 자전거도 잘 타고 다니고 암장에서 벽도 탔다. 

  지난주 어느 날에 갑자기 기침이 심해졌다. 앉아 있어도 기침이 나고 길을 걸어도 기침이 나서 이상했다. 감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러기엔 몸은 제법 힘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서야 알아챘다. 아, 왔구나. 이틀 정도는 기침이 너무 심해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열도 나고 힘도 없었다. 에어컨을 끄고 일부러 땀을 흘리면서 시체처럼 이틀을 지냈다. 그런데도 몸은 별로 차도가 없으니 슬슬 짜증이 났다. 이 만큼 성의를 보였으면 낫는 척이라도 해얄 것 아니냐. 더 누워 있는다고 될 것도 아니어서 그냥 암장 갈 것 가고 대신 밥을 든든하게 먹었다. 약도 얻어 먹었다. 가능한 쉬었다. 

  오늘로 일주일쯤 되었다. 시작하던 그 때처럼 약간의 잔기침이 남은 것을 빼면 대충 다 나은 듯싶다. 아침에 미팅을 하나 하고, 빌어먹으실 아이폰을 또 수리하고, 식빵도 샀다. 오후 늦게 들어와서 낮잠도 좀 자고, 책도 보고 저녁 운동도 했다. 거의 일주일 동안 꺼져있던 앰프도 켜서 새 음악도 듣는다. 피빨아서 배 불뚝한 모기도 한 마리 잡았다. 

  올 만했다는 생각이 든다. 몇 달 잘 놀았다. 다니기도 여기 저기 다니고 일도 이 것 저 것 했다. 신나게 움직였으니 몸살 한 판쯤 앓아주는 것도 그럴 만하다 싶다. 이제 대충 수습했으니까, 다시 몇 달을 신나게 움직여야겠다. 



2010.06.28 08:12

7월이 오기 전에,


  장마인 모양이다. 며칠 전부터 비가 오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다. 가끔 비가 그쳐도 하늘은 여전히 낮고 어두워서 언제든지 다시 비를 쏟아부을 것 같다. 다음주 일기예보를 보아도 계속 비가 온다고 하니 당분간 빨래는 잘 안 마를 모양이고, 당분간 밖에서 움직이는 일이 번거로울 모양이다.

  6월도 끝물이다. 작년에도 그랬던 것 같은데, 올해도 유난히 빨리 간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딱히 무엇을 많이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시간은 참 잘 간다. 지금이 내 삶의 신나는 한 때라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느리지만 분명한 것은, 조금씩 더 부지런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7월이 오기 전에,

  우선 메일 몇 개를 정리하고 소식 몇 개를 보내야 한다.

  앞으로 두 달 정도 별다른 스터디가 없으니 그 동안 읽어야할 책들의 목록을 만들고, 나를 등 떠밀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웹진의 틀을 제대로 구축할 계획을 세워야 한다.

  

  




2010.06.26 10:39

몸이 적응해야 제법 벽을 타겠다


서늘하다. 며칠 연달아 비가 내려서 바깥이 많이 식었다. 그늘에 있어도 숨을 막아서던 습기도 물러가서 비는 오는데 상쾌하게 되었다. 창문들 닫고 자고 새벽에는 이불을 당겨 덮는다.

어제 이승희씨가 다녀갔다. 한참 멈추어있는 책 원고에 대한 의견을 물었는데, 다들 비슷한 모양이다. 중심을 잡아야 하고, 타겟을 확실히 해야하고, 좀 더 쉽게 읽힐 수 있어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리고 오늘 새벽 비몽사몽 중에 갑자기 원고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서둘러 깼다. 벌떡 일어나서 거실로 나왔다. 상하이를 사진으로 말할까 보다. 사진을 많이 담는 책이 아니라, 사진적인 장면을 문장으로 풀어내는 작업이 되지 않을까 싶다. 먼지 쌓인 원고들을 챙겨서 원고 속에 등장하는 장소들로 다시 가야겠다. 자전거를 타고 가야겠다. 어디 길가에 앉아서 그 길의 질감을 문장으로 옮겨야겠다. 그리고, 오직 사진가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를 보태야겠다.

베토벤과 말러는 끝판대장처럼 남겨두려고 한다. 우선은 쉽고 인상적으로 들리는 드보르작과 차이코프스키를 좋아하며 듣는데, 베토벤은 대충만 들어봐도 도대체 어렵고 말러는 워낙 다들 어렵다고 하고 또 호불호가 분명해서 시작도 못 하고 있다. 그러다가 어제 지나갈 일이 있어서 말러 교향곡 두 개를 사 왔다. 분석하며 들을 생각은 꿈도 못 꾼다. 다만, 말러의 교향곡들은 감정을 분해하고 해석해서 전하는 것이 아니라 폭풍처럼 몰아친다니까, 현대 회화쯤 되지 않나 싶고, 현대회화라면 제법 즐길 수 있으니까 말러도 어떻게 되어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진다. 교향곡을 들을 때는 밤 시간에, 볼륨을 높이고, 방 안에 불은 모두 끄고, 거실 가운데 서서 리모콘을 한 손에 들고 지휘하듯 듣는다. 온몸으로 들으면, 교향곡이 좀 더 가까이 들린다.

새로 온 책들을 보는데, 아무래도 좀 무게가 있는 책들은 뒤로 미루게 되고 가볍고 흥미로운 책들을 먼저 보게 된다. 일해야 되는데 일도 안 하고 본다. 균형을 좀 맞춰야겠는데, 가벼운 책들은 언제 봐도 재밌으니까 화장실에 있을 때나 토막 시간에 잠깐씩 보고, 제대로 책상에 앉아 있는 동안에는 읽고싶은 책보다 읽어야 되는 책들을 좀 보는 것이 맞다. 잘 안 되지만.

암벽화를 샀다. 암벽화는 일반 신발과 달라서 마찰력을 극대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발의 맨 앞과 맨 뒤의 힘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아주 작게 신는다. 그래서 신고 있으면 발가락이 아프다. 실내암장에 가서 매달려 봤는데, 처음에는 그럴 듯해보여도 잠시만 운동하면 곧 손 끝에 힘이 빠져서 버티기 힘들다. 한 동안 몸이 적응해야 제법 벽을 타겠다. 전신 운동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팔 힘이 충분하지 못 해서, 팔의 체력에 맞추니 하체는 거의 놀다시피 한다. 덕분에 두어 시간 운동하고 나와도 팔만 좀 버겁고 기분으로는 자전거라도 두어 시간 더 탈 것 같다. 자전거를 타고 암장까지 가서 벽을 타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면 되나? 사실 실제 암벽 등반에는 거의 관심이 없고, 실내 암장에서 운동삼아 하는 것이 딱이다. 그런데 자꾸만 쇼핑몰에서 새 배낭을 검색하고 있다. 나는 그런 적이 없는데, 요즘 들어 지름신께서 우리 집에 세들어 사는 것 같다. 



2010.06.25 07:16

이제 7시다


지난 밤에 일찍 자서 새벽에 일찍 깼다. 일도 조금 하고, 마침 비가 잠시 그쳐서 새벽 산책도 하고 아침도 먹었는데 시계 보니 이제 7시다.

큰 선물이라도 받은 기분이다.




2010.06.23 15:08

이런 책을 왜 보는지 가끔 이해하기 싫다


  주문했던 책들이 왔다. 처음 이용해본 택배는 조금 버벅대기도 했다. 한꺼번에 많은 책들이 오니까 그 중에 바깥쪽 몇 권은 제법 모서리가 무너진 것도 있다. 그래도 어쨌든 다들 큰 탈 없이 왔다. 책이 서른 네 권이고 음반이 네 장이다. 그리고 책에 딸려오는 사은품이 네 개다. 주문서에는 모두 마흔 두 개가 적혔다.


  하나씩 꺼내서 오늘 날짜를 적었다. 내가 내 돈 주고 오늘 구입했다는 표시다. 책장에 남은 공간에 아슬아슬해서 옆 방에 있는, 옷정리함으로 쓰는 좁은 책장을 가져올까 하다가 억지로 대충 넣으니 들어는 간다. 다음 책들을 살 때쯤이면 책장이 더 필요하게 될지 모르겠다.


  미학스터디 맴버들은 요상맞은 커리큘럼을 짰다. 미학책 1년쯤 읽으니 질린다고 좀 더 가벼운 책들로 가기로 했다. 서로 평소에 마음에 둔 책들을 아무렇게나 두어 권씩 말하다 보니 별 것이 다 나온다. 덧붙여 러시아 소설을 좀 보자고 했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은 그래서 온 것들이다. 두껍다. 안나 카레리나는 세 권이고, 죄와벌, 전쟁과 평화,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두 권씩이다. 톨스토이의 회고록은 아주 얇은 한 권이다. 돈 아깝다. 솔직히, 다 내 돈으로 사게 될줄 미리 알았다면 저 소설들을 사는 것은 심각하게 다시 고민했을 테다. 작지 않은 번거로움이 있더라도 중고를 구입하는 방법을 고려했을 것이다. 한국의 책들은 너무 화려해서, 도대체 그럴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 너무 겉치장만 해서 값을 올린다. 그러니 사고 싶은 마음이 드나 어디. 저 두꺼운 것들만 어떻게 했어도 10만원은 아꼈겠다. 그나저나 저것들을 언제 다 보나? 저것들 다 읽으면 러시아의 색을 조금은 알게 되나? 문학도 문학이지만 그 나라 음악도 위대하니까 왜 유독 그 나라는 그런가 궁금하다. 추운 곳이라서, 겨울 되면 밖에 못 나가니까 집 안에서만 놀아서 그런가?


  발터 벤야민의 전기소설, 노무현 대통령의 자서전, 한 역사학자의 자서전, 연암의 서간집, 재기발랄한 인터뷰집도 왔다. 가볍게 읽고 든든하게 챙길 수 있는 책들이다. 


  이번 여름 동안 니체를 좀 알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두어 권 주문했다. 갖고 있는데 읽지 않은 니체가 여러 명이니까, 다 모아서 읽으면 윤곽이라도 잡지 않을까?


  이상한 이론서들 몇 권도 있다. 문학스터디에서 다음 학기에 볼 책들이고, 또 두어 권은 평소에 마음에만 두었다가 이 참에 주문한 것들이다. 표지만 보고 구석에 던졌다. 내가 보면서도 도대체 이런 책을 왜 보는지 가끔 이해하기 싫다.


  미학에 관련된 책은 세 권쯤 된다. 특히 그 중에 수학을 아름다움과 연결시킨 책이 끌린다. 예술의 구성 방식에 대해 말할 때 모방 표현 형식 세 가지를 주로 드는데, 수학은 아무래도 형식과 닿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 말이, 상대성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미학이었다니까.


  주문한 음반들은 모두 한 가닥 하는 것들이다. 음악이나 예술의 바탕에는 그 감상을 통해 얻는 감동이 있을 것인데, 피부에 직접 와 닿는 1차원적 감동은 당분간 그냥 신경 안 쓰기로 했다. 음악도, 독서도 공부하는 마음으로 듣고 읽기로 한다. 황병기의 가야금 작품집 3집. 미궁. 집시 바이올리니스트 라카토시의 앨범 한 장. 그리고 파비오 비욘디의 요란한 사계. 이렇게 세 장이다. 아직 뜯지는 않았다. 마침 옆 집에서 공사를 해서 드릴 돌아가는 소리, 컴프레셔 에어 충전하는 소리 때문에 난리도 아니다. 저녁 때 조용하게 앉아서 불도 끄고 차분하게 노트 펴 놓고 들어봐야겠다.


  시켜놓고 보니, 쌓아두고 보니 마음이 넉넉하다. 다 읽으려면 오래 걸릴 것이고, 개중에는 결국 못 읽어내고 빚처럼 남는 책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집착이니 뭐니 해도 책은 그냥 편하게 집착하고 말아야겠다.

 





2010.06.23 15:03

도대체 이런 책을 왜 보는지 가끔 이해하기 싫다


  주문했던 책들이 왔다. 처음 이용해본 택배는 조금 버벅대기도 했다. 한꺼번에 많은 책들이 오니까 그 중에 바깥쪽 몇 권은 제법 모서리가 무너진 것도 있다. 그래도 어쨌든 다들 큰 탈 없이 왔다. 책이 서른 네 권이고 음반이 네 장이다. 그리고 책에 딸려오는 사은품이 네 개다. 주문서에는 모두 마흔 두 개가 적혔다.


  하나씩 꺼내서 오늘 날짜를 적었다. 내가 내 돈 주고 오늘 구입했다는 표시다. 책장에 남은 공간에 아슬아슬해서 옆 방에 있는, 옷정리함으로 쓰는 좁은 책장을 가져올까 하다가 억지로 대충 넣으니 들어는 간다. 다음 책들을 살 때쯤이면 책장이 더 필요하게 될지 모르겠다.


  미학스터디 맴버들은 요상맞은 커리큘럼을 짰다. 미학책 1년쯤 읽으니 질린다고 좀 더 가벼운 책들로 가기로 했다. 서로 평소에 마음에 둔 책들을 아무렇게나 두어 권씩 말하다 보니 별 것이 다 나온다. 덧붙여 러시아 소설을 좀 보자고 했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은 그래서 온 것들이다. 두껍다. 안나 카레리나는 세 권이고, 죄와벌, 전쟁과 평화,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두 권씩이다. 톨스토이의 회고록은 아주 얇은 한 권이다. 돈 아깝다. 솔직히, 다 내 돈으로 사게 될줄 미리 알았다면 저 소설들을 사는 것은 심각하게 다시 고민했을 테다. 작지 않은 번거로움이 있더라도 중고를 구입하는 방법을 고려했을 것이다. 한국의 책들은 너무 화려해서, 도대체 그럴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 너무 겉치장만 해서 값을 올린다. 그러니 사고 싶은 마음이 드나 어디. 저 두꺼운 것들만 어떻게 했어도 10만원은 아꼈겠다. 그나저나 저것들을 언제 다 보나? 저것들 다 읽으면 러시아의 색을 조금은 알게 되나? 문학도 문학이지만 그 나라 음악도 위대하니까 왜 유독 그 나라는 그런가 궁금하다. 추운 곳이라서, 겨울 되면 밖에 못 나가니까 집 안에서만 놀아서 그런가?


  발터 벤야민의 전기소설, 노무현 대통령의 자서전, 한 역사학자의 자서전, 연암의 서간집, 재기발랄한 인터뷰집도 왔다. 가볍게 읽고 든든하게 챙길 수 있는 책들이다. 


  이번 여름 동안 니체를 좀 알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두어 권 주문했다. 갖고 있는데 읽지 않은 니체가 여러 명이니까, 다 모아서 읽으면 윤곽이라도 잡지 않을까?


  이상한 이론서들 몇 권도 있다. 문학스터디에서 다음 학기에 볼 책들이고, 또 두어 권은 평소에 마음에만 두었다가 이 참에 주문한 것들이다. 표지만 보고 구석에 던졌다. 내가 보면서도 도대체 이런 책을 왜 보는지 가끔 이해하기 싫다.


  미학에 관련된 책은 세 권쯤 된다. 특히 그 중에 수학을 아름다움과 연결시킨 책이 끌린다. 예술의 구성 방식에 대해 말할 때 모방 표현 형식 세 가지를 주로 드는데, 수학은 아무래도 형식과 닿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 말이, 상대성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미학이었다니까.


  주문한 음반들은 모두 한 가닥 하는 것들이다. 음악이나 예술의 바탕에는 그 감상을 통해 얻는 감동이 있을 것인데, 피부에 직접 와 닿는 1차원적 감동은 당분간 그냥 신경 안 쓰기로 했다. 음악도, 독서도 공부하는 마음으로 듣고 읽기로 한다. 황병기의 가야금 작품집 3집. 미궁. 집시 바이올리니스트 라카토시의 앨범 한 장. 그리고 파비오 비욘디의 요란한 사계. 이렇게 세 장이다. 아직 뜯지는 않았다. 마침 옆 집에서 공사를 해서 드릴 돌아가는 소리, 컴프레셔 에어 충전하는 소리 때문에 난리도 아니다. 저녁 때 조용하게 앉아서 불도 끄고 차분하게 노트 펴 놓고 들어봐야겠다.


  시켜놓고 보니, 쌓아두고 보니 마음이 넉넉하다. 다 읽으려면 오래 걸릴 것이고, 개중에는 결국 못 읽어내고 빚처럼 남는 책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집착이니 뭐니 해도 책은 그냥 편하게 집착하고 말아야겠다.

 



2010.06.22 21:58

흙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도자기 빚는 곳에 다녀왔다. 바람소리 누나랑 보람이랑 같이 갔다. 보람이는 누나랑 친하다. 예전에 중국어를 배울 때 같은 학교에서 배웠다. 그리고 미국으로 그림을 공부하러 갔는데, 이번에 방학 동안 잠시 상하이 집에 왔고, 바람소리 누나랑 같이 놀았다. 나는 가가멜 스프같은 인도 커리를 먹는 집에서 누나 소개로 처음 만났다. 끼리끼리 논다고, 착한 속에 에너지를 품은 녀석이다. 누나랑 닮은 것도 같고 또 다른 것도 같다. 재미난 놀거리를 생각하는 두 사람 앞에서 툭 던진 말을 두 사람은 덥썩 물어서, 바로 떴다. 

  흙을 반죽하면서 공기방울을 빼고, 덩어리로 만든 흙을 물레 위에 올려서 돌려가며 그릇을 빚는다. 나는 무얼 만들까 하다가 스피커와 전등갓을 만들기로 작정했다. 집에서 갈 때 컴퓨터 스피커 유닛 하나를 떼어 갔다. 도자기로 인클로져를 만들면 그 소리는 짐작할 수 없겠지만, 특별하고 재미난 스피커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오로지 반사광만 나오는 작은 전등을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흙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세게 만지면 곧 망가졌고 약하게 하면 모양이 안 나왔다. 잘 안 되니까 오기가 생기기 보다는 될대로 되라는 심정이 되었다. 하다가 하다가 안 되니까 보기에 딱했는지 선생님이 다 해주다시피 도와주셨다. 스피커는 일찌기 포기했고, 전등도 될 게 아니더라. 가장 쉬운 걸로 하긴 해야겠는데 남들 다 하는 것은 또 하기 싫었다. 큰 쟁반을 만들었다. 가운데 작은 쟁반 하나가 더 담긴 모양이다. 그러니까 이게 완성되면 가운데는 밥을  담고 주변에는 반찬을 담을 수 있다. 가운데 국을 담고 주변에 밥이랑 반찬을 한꺼번에 담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밥 한 끼에 설거지 한 번만 하면 되는 놀라운 작품이 되는 거다. 도자기는 열흘 가까이 건조한 다음에 유약을 바르고 그림을 그려서 굽는다. 열흘쯤 뒤에 다시 한 번 더 소주로 가야한다. 보람이는 미국에 돌아가고 없을 테니까, 혼자 가거나 누나 꼬드겨서 가야겠다.

  일주일이나 밀린 스터디가 오늘 있었다. 푸코의 성의역사. 1권을 다뤘는데, 스터디 시작하고 두어 시간 지날 때까지 성.이라는 단어는 한 번도 안 나오고 이야기는 온갖 곳으로 흘렀다. 맴버들이 방학이라고 한국으로 다들 가서 세 명이서 했다. 다 못 하고, 다음 주에 마저 하기로 했다. 다음 학기에 할 책들을 거의 확정했는데, 이번 학기보다 더 재미없는 책들이다. 허. 주문은 해두었다만, 정말 재미는 없는 책들이다. 

  암벽등반을 배우기로 했다. 지난주에 첫 모임이 있었다. 오후에 실내암장에 가서 실제 연습했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재미있다. 작년 여름 계림과 양숴로 1주일 동안 자전거 여행을 갔을 때 어깨를 다쳤다. 산에서 괜히 과속하다가 공중 2회전 해서 어깨로 추락했었다. 그 다음 날에 암벽 등반을 체험하는 코스를 예약했었는데, 결국 못 하고 왔다. 그리고 어깨 때문에 1년 동안 운동다운 운동을 할 수 없었다. 이제 거의 나아서 다시 해야겠는데, 검도를 다시 하자니 우선 너무 멀다. 게다가 검도는 일주일에 한 두 번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니까 도저히 현실적으로 어렵다. 수영을 하자니 지금 체력으로 하기에는 또 부담이다. 재미도 있어야겠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해도 무난한 운동을 생각하다가 암벽등반 모임의 시작 공지를 읽었다. 서너 달 정도 그냥 즐기는 수준에서 배우고 기본적인 장비 사용법만 익히려고 한다. 그 다음에는 주로 실내 암장에서 볼더링(로프를 쓰는 높은 벽을 타는 것이 아니라, 메트가 깔린 낮은 곳에서 암벽 스킬을 익히는 훈련을 말한다) 위주로 운동하려는 것이 계획이다. 우선 암벽화와 등산용 분가루만 구입하면 된다.



2010.06.19 23:40

댄디는 참 재미있는 돌연변이 같은데


일 좀 하겠다고 다 저녁에 커피를 한 잔 마셨더니 제대로 걸려서 잠이 안 온다. 큰 컴퓨터 끄고 정면으로 돌아앉아서 음악 틀고 원고를 쓴다. 쓰다가 인터넷 켜서 여기 좀 들락거리고 저기 좀 들락거리니까 문장은 진도 나간 것이 없고 시간은 잘 때를 넘겼다. 내일도 새벽에 깨야 되는데 이 모양이다. 

간단하게라도 정리해 두어야 할 메모가 두 개 있는데, 하나는 벌써 한 달쯤 전에 있었던 발제 중에 '댄디'에 대한 내용이고, 다른 것은 '클래식의 신화'에 대한 것이다. 댄디.는 참 재미있는 돌연변이 같은데, 도닦는 것 중에 외형으로 도 닦으려 했던 것은 아마 그들이 유일하지 않나 싶다. 미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기특하기도 하고, 다르게 보면 우습기도 하다.

하우저의 문장 중에, 젊은 예술만이 대중이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허락한다는 내용이 있다. 상당히 그럴 듯한데, 그러니까 그 역사가 가장 오랜 회화와 음악은 이미 늙어서 대중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하우저는 하나의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역사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이어서 썼는데, 그러니까 클래식이 어렵대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 진입장벽은 높고, 그 밖에 있는 것들을 어느 정도는 소외시킨다. 재즈가 그 밉살스러운 왕관을 물려받으려고 한다.

대충 적어두고, 나중에 그럴 듯한 주석 좀 찾아가면서 적어야겠다.

게으름은 유전자에 새겨진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아마도 어릴 때부터 생겨난 습관일 것 같은데, 괜히 변명이라도 하려면 유전자 탓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러니까, 게으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벼락치기 하는 사람과 차근차근 해내는 사람은 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더 이상 부지런하려는 노력 따위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만둘 수 있겠는데. 아마 아니겠지?

웹진에 사람 모으는 재미가 있다. 아마 9월쯤에 정식으로 소문을 낼 것 같은데, 그 전까지 되도록 여러 사람을 모아서 좀 살가운 마당을 만들어 둘 수 있으면 좋겠다. 바람소리 누나와 보람이를 며칠 전에 꼬드겼고, 오늘은 또 새 사람 한 명에게 바람을 넣었다. 아마, 막강한 사람일 모양이다. 사람들이 모여서, 처음 작정한 만큼 서로에게 버팀이 되고 또 신나는 바람이 되어 주면 좋겠다. 되어가는 꼴을 보니, 아마 될 모양이다.





2010.06.16 22:10

아무 것도 읽히지 않았다.


어도비의 페이지 편집 프로그램 인디자인.을 설치하려다가 실패했다. 뒷문으로 하려다가 그랬다. 예전에는 잘 해서 썼는데 그 동안 뭐가 달라졌나 보다. 덕분에 같은 시리즈로 묶여 있는 포토샵까지 폭파됐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새로 나온 최신버전을 구해야겠다.

책 주문했다. 개인적으로 욕심나는 책들, 스터디 때문에 볼 책들을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한참이 지났다. 지나는 동안 책은 한 권씩 두 권씩 불어나서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내 책 구입은 전통적!으로 어머니와 누나에게 제법 신세를 졌는데, 이번에는 누나가 반쯤 해주기로 약속했다. 그 말만 믿고 이 책 저 책 막 주워담았다. 그런데 결제하려고 보니 얼마 이상은 공인인증서를 내라느니 막 복잡하게 해서, 어쩔 수 없이 한국 내 통장에 있는 돈으로 계좌이체하고 말았다. 책값이 60만원이다. 저녁이 우울했다. 다음에 한국 가면 대신 다른 책들을 사고, 누나 카드로 긁어야겠다. 봐주겠지 뭐.

은행카드를 잃어버렸다. 일 년에 두어 번은 꼭 현금인출기 안에 넣어두고 그냥 온다. 대부분의 경우는 은행에 가서 되찾아 오는데, 이번에는 없었다. 재발급을 신청하고, 손에는 현금 천 원이 남았는데, 새 카드를 받을 때까지 일주일 동안 천 원이면 충분하니까 별로 걱정은 안 했다. 조수 월급을 주긴 해야되는데 사정을 이야기하고 다음주에 주기로 했다. 그리고 어제, 인터넷이 끊겼다. 한 시간쯤 기다렸는데 복구가 안 되어서 전화해 물어보니 전화비가 넉 달이나 밀려 있었다. 인터넷은 써야 되니까, 자전거 타고 전화국에 가서 전화비를 냈다. 두어 달만 우선 내고 어떻게 해보려고 했는데 정지된 회선은 밀린 요금 전부를 납부해야 된다고 했다. 넉 달치 600원 조금 넘는 돈을 내고 나니 남은 돈은 채 100원이 안 됐다. 통장 들고 은행가서 찾으려니까 막상 간 곳이 VIP서비스 전용 지점이란다. 별 게 다. 같이 있던 바람소리 누나가 500원 빌려줘서 그냥 그걸로 쓰기로 했다. 이자 쳐서 줘야겠다.

방학이다. 나는 일하는 사람이니까 방학이 없는데,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 중에 학생들이 많아서(석박사 과정이라도 학생은 학생이다) 그들이 방학이니까 덩달아 방학이다. 진행하던 스터디들이 멈추고, 사람들이 한국으로 돌아간다. 몇 달 동안은 등떠밀려 읽어야 되는 어려운 책이 없어진다. 그러니까 그 동안, 다른 밀린 책들을 좀 보려고 한다. 마음은 그렇다. 순서를 짜고, 매일 두어 시간은 음악 틀어두고 그 앞에서 책을 보겠다는 각오. 그래서 몇 사람 뭉쳐서 일지.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자고 말했다. 게으르기 좋은 무렵이니까, 하루에 읽은 책, 하루에 들은 음악, 하루에 찍은 사진, 하루에 먹은 음식 따위를 제맘대로씩 적어서 여러 사람이서 하루를 기록해 보자고, 그걸로 서로에게 좀 부담감을 주고 자극이 되자고 말했다. 다시 생각하니 좀 우스운 짓이기는 한데, 그래도 내가 확실히 신뢰하는 몇 가지 중에 하나가 내 게으름이니까, 극복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해보려고 한다.

별 것도 아닌데 괜히 마음을 막아서서 다른 일을 못 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엑스포 원고도 그랬다. 특별히 어려운 것도 아니고, 취재도 다 해두었고, 내용도 있었고 사진도 있었다. 그냥 쭉 이어서 쓰고 말의 앞뒤만 이어두면 되는 것이었는데, 오래 걸렸다. 마음에 숙제처럼 걸려서 그 동안 괜히 다른 일도 못 하고, 마감은 벌써 넘겼고 그랬다. 다 적었고, 어쨌든 보냈다. 엑스포는 오래 하니까, 이번 달에 안 나가면 아마 다음달에 나갈 수도 있겠다. 청탁한 친구에게 미안하다.

새벽에 사진스터디 맴버들과 타이캉루에서 사진 찍었다. 상업촬영 아닌 촬영은 참 오랜만이었다. 세 시간쯤 찍었는데 도대체 아무 것도 읽히지 않았다. 돌아와서 보니 역시나 마음에 드는 사진은 한 장도 없다.




2010.06.03 05:09

밉다. 참 밉다.


자야지 자야지 하면서 개표 속보를 봤다. 온갖 사이트에서 많은 사람들이 밤새 개표현황을 중계해주었다.

서울에서, 경기에서, 

졌다.

그들은 다시 강을 헐어낼 것이고,

그들은 계속 가상의 적을 부풀려 국민들을 전장으로 내몰 것이다. 그들은 뒤에 숨어서.

그들은 계속 광장을 막아두고 일방적 강제를 계속할 것이고,

그들은 계속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불법적인 수단을 독점할 것이다.

밤 내내 개표속보를 보면서 빠져나오기 힘든 패배감에 젖었다.

밉다. 참 밉다.

그 사람들, 사태를 방관한 사람들 다 밉다.

자야겠다.




2010.06.02 21:54

왕의 귀환


오늘 아침까지 넘기기로 했던 원고가 있다. 엑스포를 주제로 한 것인데, 외국인의 시선으로 본 엑스포 관람기라고 했다. 내용은 아무렇게나 써도 된다고, 절반 이상이 비판 내용만 아니면 된다고 했다. 이 곳에서 몇 년 살다보니, 몇 개 쓰다보니, 자체검열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민감한 내용, 긁어 문제될 내용은 시작부터 빼고 가게 된다. 그래서, 압박이란 것이 무서운 것이다.

이틀 전 월요일 하루 종일 엑스포 현장에 있었다. 원고 재료를 모으고, 사진도 찍었다. 월요일 밤, 화요일 오전 정도 써서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분량도 적지 않은 데다가 다른 일들이 겹쳐서 결국 못 했다. 오늘 새벽에 일어나서 쓰려고 했는데 어영부영 필요한 추가 자료 모은다는 핑계로 오전을 보내고, 오후 늦게 다른 인터뷰 다녀오니 또 밤이다. 꼭 쓰고 자겠다고 커피도 한 캔 사 왔는데, 모니터 두 개에 인터넷 창 여러 개를 열어놓고 실시간 개표방송과 관련 속보들을 보고 있으니 시간은 자꾸 잘도 간다. 생각보다 선전해주는 것은 고마운데, 몇몇 곳은 어쩌면 안 될 모양이다. 

개표방송보다 더 인상적인 곳은 여러 사이트의 자유게시판들이다. 오디오 사이트도 유머 사이트도 자전거 사이트도 모두 한마음이다. 모두 간절하고, 모두 기뻐한다. 뉴스보다 빠르게 관련 소식들이 올라오고 기대에 찬 희망가들을 부른다. 고맙다.

인상적인 댓글이 있었다.


"서울시장 한명숙. 경기지사 유시민. 충남지사 안희정. 강원지사 이광재. 경남지사 김두관. 인천시장 송영길

이 분들이 청와대 첫 지자체장 회의 때 그 대문을 걸어들어가는 장면을 생각합니다.

왕의 귀환. 노무현의 귀환입니다."


원고는 아직 반도 못 썼는데, 어쩌겠는가. 같이 축배라도 들어야지.





2010.05.31 23:46

집에 오는 길이 유난히 어두웠다







  며칠 전에 개판쳤던 사진이 있다. 그래도 어떻게 작업은 끝났고, 끝났으니 아쉬운 대로 수습은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일이 좀 더 커질 모양이다. 반쯤 노닥거리며 반쯤 산책하면서 엑스포 현장에 취재하고 있었는데 연락이 왔다. 클라이언트 호출이다. 중간에서 조율하는 친구가 아마 꽤나 걸러주고 있는 모양인데, 그래도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도대체 수습할 수 없는 수정 방안을 이야기하며 우선 와서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댄다. 내일 점심 때 촬영한 사진들을 모두 가지고 가겠다고 했다.

  더 비참한 것은, 명백한 내 실수가 몇 개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껏 해둔 다음이라면 차라리 역부족이라고 생각하고 넘기겠지만, 차마 적기에도 민망한 초보적인 실수 몇 개가 겹쳤다. 사진은 두 번 꺼내보기 싫을 만큼 잘 못 나왔다. 새로운 경험이니까 결과물이 어쩌면 아쉬울 수 있다는 예상도 못 한 것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경험과 상관 없는 실수들이 잇따라 있다는 데는 어떤 핑계도 가져다 붙일 게 없다. 

  얼마 전 술마시면서, 세상 참 자신있다고, 주눅들어 있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 않냐고 호기를 부렸다. 생각해 보면, 무섭지 않았던 때가 별로 없었던 것도 같은데 나는 술 두어 잔에 무슨 호기를 그렇게 부렸던 것일까. 날마다 내가 과연 길 위에 있기나 한지 불안한데.

  왜 책을 읽고 왜 돈벌이가 아닌 다른 일에 열을 올리는지 알 것도 같다. 못 해도 누가 뭐라고 안 하니까 그런 거다. 목숨 거는 비장함 같은 것도 필요 없고, 순간마다 조여오는 압박감도 없으니까 그런 거다. 즐기면서, 책임같은 것도 없이, 그리고 게다가 의미까지 더해지니까 제법 그럴 듯해 보였던 거다. 모든 걸 걸지도 않고, 매번 마지막 승부를 거는 긴장도 없잖나. 인생의 큰 비밀을 알아버린 것일까.

  하루 종일 참 재미나게 엑스포 현장을 돌아다녔는데, 다 저녁에 전화 한 통으로 기분은 산산조각이 났다. 밥맛도 안 생기고, 사진도 그냥 막 찍고 대충 집에 가고싶어졌다. 원고는 이미 접었고. 일로 찍는 사진을 제대로 못 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비참했고, 전화 한 통에 뿌리도 없는 갈대처럼 휙 휘둘려버리는 내 줏대 없는 감정을 보니 화가 났다. 털어야지 털어야지 하는데 잘 안 됐다. 지하철 내려서 집에 오는 길이 유난히 어두웠다.




2010.05.29 09:51

유희열 스케치북을 보는데 김윤아가 나왔다



  술마신 다음 날에는 일찍 깬다. 몸이 불편하거나 목이 말라서 깨는 것이 아니고, 그냥 일찍 깬다. 늦잠을 잘 수 없다는 게 아마 몸이 밤새 열심히 술을 받아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알아채지 못해도 평소와 다르게 불편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예전에는 좀 더 쉬는 게 좋겠다 싶어서 일부러 더 누워있고는 했는데, 이제는 눈떠지면 그냥 일어난다. 일어나서 머리쓰는 일은 말고 그냥 편하게 할 일이 있으면 좀 하다가 밥도 먹고 노닥거리다가 다시 좀 더 잔다.

  오랜만에 기분 좋게 길게 한 잔 했다 싶었는데 돌아오며 보니 몇 마디는 생각을 앞질러 나간 말도 있었구나 싶다. 술이 그렇지 뭐.

  일어나서 무얼 할까 생각하다가 책장을 털었다. 주문한 씨디피가 오려면 아직 일주일도 더 남았는데, 씨디피를 영접하기 위해 방구조를 바꾸기로 마음 먹어두었던 일이다. 우선 한 동안 나와 있던 책장을 본래 자리로 돌렸다. 책을 모두 꺼내 한 쪽에 쌓아두고 책장을 닦아서 옮긴 다음 다시 순서대로 책을 돌려놓았다. 소파를 책장이 있던 자리로 밀고, 컴퓨터 책상 옆에 있던 큰 책상을 방 가운데로 옮겼다. 책상은 어디 기댈 곳도 없이 방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서 살짝 부딪칠 때마다 흔들거린다. 기존의 구조에서는 주로 컴퓨터 책상에 있거나 큰 책상에 있을 때 음악은 뒤에서 들리거나 옆에서 들린다. 2년을 벼른 씨디피도 주문한 마당에, 음악 듣는 시간을 조금 더 확보하고 이왕 듣는 것 좀 더 집중해서 들어보는 게 좋겠다 싶었다. 이제 책상 가운데 앉으면 음악 듣기에 딱 좋은 위치가 되었다. 뭐 제대로 들으려면 우선 이 컴퓨터를, 안 되면 인터넷만이라도 폭파시켜야 하겠지만.

  가구 옮긴 자리는 언제나 먼지가 수북하다. 책상에 있던 서류뭉치를 우선 소파 위에 두었는데, 나누어져 있는 것을 보니 어쨌든 나름 분류를 해두긴 했던 모양인데, 도대체 저 덩치들의 내용을 짐작할 수 없다. 버리지 못 하고 둔 것들 보니 정리해야 할 것들인 것 같은데, 언젠가 해야지 언젠가 하겠지 하는 것들이 모여서 결국 난삽해졌다. 한가한 오후에 한 장씩 꺼내서 살피고 더 소용없는 것들은 이제라도 버리고 버리면 안 될 것들은 어쩔 수 없이 또 대충 겹쳐서 두어야겠다. 언젠가 하겠지 생각하면서. 청소기 꺼내서 눈에 보이는 큰 먼지덩어리만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곰팡이 핀 음식물쓰레기통을 치웠다. 먹고 남은 망고씨는 곰팡이가 참 잘 핀다는 것을 알았다. 햄에 계란옷 입혀서 구워서 밥먹었다. 

  유희열 스케치북을 보는데 김윤아가 나왔다. 참 좋은 색을 가진 사람. 그 치열한 에너지를 잘 갈무리한 사람. 좋은 노래들을 부르고 간다.

다음 스터디 커리를 짜는데, 좀 가벼운, 평소에 읽고 싶었던 책들을 각자 골라서 함께 리스트를 만들자고 했다. 처음에 나는 성경, 코란, 불경, 자본론 같은 책을 생각했는데, 코란은 이슬람 문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접근하기 쉽지 않다고 해서 접었고, 불경은 종류가 많아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접었고, 두 개 접으니 시들해져서 성경도 접었다. 그래도 지나는 길에 바람소리 누나에게 물었더니 누나는 대뜸 금강경과 해제본을 빌려주었다. 금강경은 얇아서 아침에 화장실에서 보는데, 석가께서 하신 말씀 중에 우주의 기원에 대한 부분이 있었다. 

"모든 가루들은 영원한 자기의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인연 따라 생겨났다가 인연 따라 없어지며 일정 기간 잠시 존재하는 것들로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세계도 티끌처럼 그 실체가 없어서 영원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어쩌면 석가께서는 우주의 탄생까지 거슬러 보셨던 것은 아닐까. 빅뱅의 순간에 우주는 한 점으로부터 비롯하고, 결국 쿼크 단위로 내려가면 모든 존재는 그 '티끌'이 잠시 머물러 있는 결합 형태에 지나지 않게 된다. 천체물리학이 탄생하기도 전에, 이미 보셨던 것일까.

스케치북 마저 보고 낮잠 좀 자고 나가야겠다. 오늘은 82mm CPL 필터를 사야 한다.







2010.05.27 22:08

그러니까,



Lens test. Canon 50mm 1.4


Lens Test. Canon 16-35 2.8 2세대

그러니까, 요 며칠,

  렌즈라인업을 바꿨다. 우선 인테리어 작업에 쓰기 위해 16-35 렌즈를 새로 구했다. 한국에 다녀오는 봉식형이 수고롭게 대신 거래해 주었다. 1세대 렌즈와 2세대 렌즈는 가격차가 제법 있었는데, 작은 차이라도 분명하다면 새 버전을 사는 것이, 돈 버는 사진가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16-35가 와서 24-70렌즈를 방출하고 대신 50 .4 렌즈를 구했다. 마침 바람소리 누나가 50mm렌즈를 갖고 있고, 24-70을 써보고 싶다고 해서 당분간 바꿔 쓰기로 했다. 사실 현장에서 가장 무난하게 쓸 수 있는 렌즈가 24-70이다. 어디든 가져다 겨눌 수 있고 언제든 그럭저럭 쓸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렌즈다. 그런데 나는 그 랜즈가 덩치만 크고 무거워서 별로 안 좋다. 16-35가 와서 광각은 커버가 되니 차라리 50mm 정도 화각의 단초점 렌즈를 구하는 것이 화질 면에서 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물론 가장 즐겨쓰는 45mm 2.8 렌즈가 있지만 이 랜즈는 니콘용으로 나온 것을 어댑터를 끼워서 쓰는 것이라 초점이 수동이고, 그 선예도를 신뢰할 수 없고, 조리개값도 2.8이라 현장에서 쓰기에는 여러 모로 부족하다. 두 렌즈를 가져와서 테스트해보니 우선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현장에서 당분간 24-70없이 16-35, 50, 100, 80-200의 조합으로 써보고, 무리가 없다는 결론이 나면 24-70을 정말로 팔아야겠다. 

  며칠 계속해서 속이 안 좋았다. 약하게 체한 것같은데 잘 풀리지 않아서 먹을 때마다 불편했다. 어제 저녁 먹고 작업한다고 앉았는데 또 느낌이 안 좋아서, 소화제를 자꾸 먹는 것도 답이 아닌 것 같아서 달리기로 했다. 자전거를 탈까 하다가 밤중에 위험하고, 타면 너무 멀리 가게 될 것 같아서 간편하게 조깅 복장으로 입고 집 아래 강변을 뛰었다. 쉬엄쉬엄 걸으면 한 시간 좀 못 되게 걸리는 거리인 듯한데 부지런히 뛰어 오니까 10분이 걸렸다. 이 집에 사는 것이 3년 가까운데, 산책이 아닌 조깅으로 강변을 뛰어본 것은 처음이다. 겨우 10분 뛰었는데 몸은 땀을 제법 내고, 속은 깔끔하게 편해졌다.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몸은 참 단순한 것일 수도 있다. 먹고, 자고, 움직이는 데 엇박자가 있으면 아픈 것이다. 아픈 것의 대부분은 그 엇나간 박자를 제자리로 돌리면 자연처럼 돌아올 것이다. 소화제 괜히 먹었다. 다친 어깨 핑계를 대며 꾸준한 운동을 거른 것이 어느새 1년 가까워 온다. 하도 먹는 게 없고 운동도 안 하니 몸은 기초체력이 떨어졌다. 소화력이 딸리는 것도 연장선에서 읽힌다. 운동을 좀 하긴 해야겠는데, 하고싶기도 한데, 그러자니 먹는 걸 좀 더 잘 먹어야겠는데, 나는 도대체 요리는 왜 그리 어렵고 시장은 왜 그리 멀게만 느껴질까. 

  아침에 420명의 단체사진을 찍었다. 회의 중간에 찍는 거라서 허락된 시간은 아주 짧았다. 제한 시간 안에 420명을 줄세우고 분위기를 풀어서 몇 장의 사진을 찍는 작업이었다. 안 해 본 촬영이고 규모여서 거절할까 했는데 중간에 있는 친구가 내가 꼭 해줄 것을 부탁했고, 새로운 경험이 되겠다 싶어 하기로 했다. 촬영을 결정한 후로 3번의 사전 미팅을 했고, 분 단위의 시간계획표를 만들고 참가자들의 동선을 짰다. 자원봉사자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420명을 인솔할 것인지도 모두 계산하고 당일 현장에 동원될 소소한 물품까지 모두 목록으로 만들어서 진행했다. 큰 사이즈의 사진으로 뽑아야 해서 처음으로 중형 디지털 카메라를 빌려 촬영했다. 인상적이었는데, 워낙 시간이 촉박해서 천천히 기계를 감상할 틈이 없었다. 시간보다 마음이 바빴다. 작전대로 촬영은 끝났는데, 사진은 딱 개판쳤다. 아마 현장 야외 빛이 가장 큰 범인인 듯한데, 중형 디지털의 결과물은 기대 이하였다. 중형 디지털의 경우 통제된, 완벽한 조명 상태 하에서 가장 완벽한 결과물을 뽑아낸다는 말이 새삼 기억났다. 쫓긴 마음은 화면의 구석구석을 충분히 살피지도 못 했고, 가진 것조차 다 담아내지 못 했다. 후반 작업을 하는데 많이 부끄러웠다. 참 부끄러운 작업으로 남을 것 같다. 그렇게 찝찝한 기분으로 작업한 사진을 인쇄소로 넘기고,

  곧장 사천에 전화해서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씨디피를 주문했다. 크하. 어쩌겠나. 그렇다고 돌아가서 420명을 다시 불러세울 수도 없는 노릇인데. 반성해서 다음에 잘 해야지. 자작업체로서 제법 인정받는 곳 같은데, 최근 한국 유명 자작 오디오 업체에서도 이 곳에 내가 주문한 것과 같은 제품을 단체주문했다. 자작업체라서 완성품을 판매하지는 않고 직접 제작할 수 있도록 부품과 케이스 세트만 판매한다고 하는데 전화해서 사정하고 안 돼서 메신저 등록해서 사정했다. 조립비 일부를 더 부담하는 조건으로 완성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조립기간이 걸리고 하필 이번 주말은 업체 수련회가 있어서 제품은 다음 주말에나 겨우 받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씨디피를 사고 싶다고 마음 먹은 게 벌써 1년도 훨씬 전이고 그 사이에 많은 제품들이 상상속 쇼핑 바구니를 거쳐갔다. 그래도 합리적인 가격에, 스스로를 설득할 만한 실력의 제품을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제 당분간 오디오 장비에 눈독 들일 일은 없겠다. 

  씨디피 주문하고, 빨래하고, 노닥거렸다. 영화도 한 편 때리고 음악도 아무 거나 대충 들으면서 클래임 걸린 단체사진 수정해서 다시 보내고 또 노닥거렸다. 내일 미학스터디가 있는데, 지난 주 미팅 때문에 빠져서 지나간 줄 알았던 내 발제분량을 맴버들은 이번 주로 밀어놓았다. 덕분에 발제문을 좀 써야되는데 모르겠다. 다른 맴버들이 발제해 올 부분의 내용도 읽어야 되는데 관뒀다. 말년 병장같은 기분으로 늘어져있다. 내일 새벽에 대충 좀 보고 간단하게 발제문 써서 가야겠다. 사람이 때마다 열심히 하면 안 되는 거라고, 언젠가 어디선가 누군가 말했던 것도 같다. 그러면 미쳐버린다고 했다. 

  웹진이 슬슬 색깔을 내려고 한다. 새로 필진이 되어준 은영 누님은 르몽드 디플로마티끄의 기사를 재료로 연재를 하시겠다고 했다. 지윤이는 전공을 살려 상하이의 어떤 풍경들을 짧은 희곡 장면으로 구성하는 작업을 하기로 했다. 은진이는 역시 전공을 살려서 북송시대 기행문을 번역해 올리겠다고 한다. 인터뷰 연재 기사는 내일 첫 취재가 잡혀있다. 나는 가서 인터뷰는 안 하고 사진만 찍을 생각이다. 새 렌즈 두 개를 가져가서 써봐야겠다. 류란씨는 그 동안 썼던 다큐 관련 원고를 연재해 주겠다고 했다. 스스로는 한국인 커뮤니티에 조선족으로서 참여하는 것이 조금 신경쓰인다고 했는데, 그런 편견을 만들어낸 상황들에 일말의 책임이 있는 것 같아서 미안했다. 김지연 선생님도 오랜만에 소식이 닿을 모양인데, 딱 걸렸다. 거 봐라. 여기는 된다.

  그래도 양심상 내일 스터디에 쓸 책 좀 읽어보겠다고 앰프도 켜두고 책도 펼쳤는데,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됐나. 자야겠다. 자고 내일 새벽에 좀 봐야겠다. 스터디 하는 날은 항상 새벽에 벼락치기 공부를 해서 스터디 하는 날은 항상 종일 피곤하다.

  그러니까, 이렇게 짧은 생각들을 적어두는 것은 언젠가 이 다음의 나에게 보라고 쓰는 것일까? 나를 읽고 갈 불특정 다수를 향해서 나는 왜 쓰는 것일까? 세상에는 궁금한 것들이 이렇게나 많나.



2010.05.23 22:28

엑스포 단상


촬영 때문에 엑스포에 몇 번 다녀왔다. 사람 많은 곳을, 그리고 길게 줄 서서 기다리는 일을 내가 참 안 좋아한다는 것을 새삼 알았다. 개장 시간에 맞춰 갔음에도 불구하고 독일관 앞에 섰을 때 예상 대기시간은 세 시간이었다. 찍어야할 곳이 최소 다섯 곳이었는데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전화를 했다. 중국관과 사우디아라비아관만 찍기로 합의했다. 속으로는 세 시간을 안 기다려도 되니 다행이다 싶어서 얼른 줄에서 빠져나와 사우디아라비아관으로 갔다. 중국관은 워낙 보려는 사람이 많아서 별도의 시간 예약표를 주는데, 그러니까 그 표를 얻지 못하면 당일 중에 중국관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관 앞에서는 무슨 일이 생긴 듯했다. 경찰들 수십 명이 모여 있었다. 싸움이 벌어졌나? 누가 쓰러지기라도 했나? 그나저나 어디서부터 줄을 서야 하나? 이런, 경찰들은 몰려드는 관람객을 통제하기 위해 서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겨우 찾아서 줄의 끝에 섰을 때 옆에 서 있던 경찰이 말했다. 여기 서 계시면 입구까지 예상 소요 시간은 여섯 시간 정도입니다. 아, 여섯 시간이라니. 세 시간을 피해 도망왔더니 여섯 시간이란다. 이제 대안도 없다. 중국관이 안 되니 여기 밖에는 갈 곳이 없고, 결국 여섯 시간을 서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섯 시간 정도를 기다려서 드디어 들어갈 수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슬슬 스트레스가 쌓여서 관람은 즐겁지 않았다. 그나마 제법 서늘하고 흐린 날이었기 망정이지 한 여름이었다면 촬영이고 카메라고 다 던져버렸을 것이다. 금요일이어서 유난스러웠던 것일까? 지난 번 촬영 동안에는 비슷한 시간에 이렇게 길게 기다리는 곳이 없었던 듯 한데. 시간이 지나면서 엑스포 전시장에 대한 평가들이 나오는 것이고, 전시장들 역시 빈익빈부익부가 된다. 

지난 번 신장으로 목화따기 앵벌이를 보냈던 행사를 기획한 잡지사에서 연락이 왔다. 외국인의 시선으로 본 엑스포에 대한 기사를 청탁해 왔다. 시간도 촉박하고 고료도 얼마 안 줄 것 같아서 망설였는데, 아마 쓸 것이다. 엑스포에 대한 인상을 나름대로 정리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다. 영국 만국박람회부터 출발해서 엑스포에 대해 개관하고, 인터넷의 시대에 엑스포가 과연 의미가 있을지 묻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엑스포가 보여준 인상에 대해 적어야겠다. 한국 대전엑스포에 대한 기억도 쓸 것인데, 나는 가 보지 못 해서, 가 보지 못한 기억만 있다고 써야겠다.

좀 더 좋은, 제대로 된, 내용이 단단한 문장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껍데기만 번지르르한 문장들 말고, 소박하되 그 안에 든든한 먹을 거리가 있는, 읽어서 시간이 아깝지 않은 문장을 쓰고 싶다. 좀 더 단련해야 하고, 문장을 쓰기 전에 준비단계에서부터 차근차근 자료를 모으고 배치해서 글의 얼개를 잡아야 한다. 대충 기분대로 모니터 앞에 앉아서 끄적여내리는 글은 그 바닥이 뻔하고 밀도라고는 없고 읽어보아야 잠시 동안의 감정적 공감 말고는 얻을 게 없게 되고 만다.






2010.05.22 21:36

상하이 엑스포 북한관



상하이 엑스포, 북한관


북한관은, 엑스포 구역의 남동쪽 끝에 있다. 밖에는 인공기를 세로로 길게, 크게 그렸고 그 위에 한글로 조선.이라고 썼다. 기다리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 마음 먹으면 곧 들어가 볼 수 있다. 가운데 돌다리가 있고, 입구에서 들어가서 왼쪽에는 평양의 전경을 담은 대형 사진이 있다. 그 앞에는 주체사상탑 모형이 있다. 출구쪽 위에는 대형 모니터가 있어서 북한에 대한 영상을 보여준다. 영상 속에서, 백인관광객들이 버스에 올라 평양 곳곳을 둘러보고 즐거워하는 표정이 이어진다. 와 볼 만한 곳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 탑의 이름이 주체사상탑.이라는 것도 영상을 보고 알았다.

다리를 건너가면 분수대가 있다. 분수대의 가운데에 아이들 몇몇을 형상화한 모형이 있다. 아이는 비둘기를 날리는데, 그 너머 벽 위에 Paradise for Peoples 라고 적혀있다. 인민을 위한 파라다이스. 파라다이스.

엑스포가 막 개장했을 때, 연합뉴스의 이름으로 뜬 기사를 기억한다. 북한관이 얼마나 조악한지 감정적인 문장으로 쓰고, 개장 첫날부터 분수에서 물이 새는 이 나라의 전시관이 엑스포 끝까지 어떻게 버틸지 궁금하다는 내용이었다. 가 보니, 제법 관람객도 붐비고, 분수는 물이 새지 않고 잘 작동하고 있었다.

천안함과 관련하여 나라 꼴이 우습다. 도대체 말이 안 되는 이유를 내새워가며 정부는 한민족의 국가를, 다른 국가의 이름을 갖고 있지만 그 구성원 모두가 심정적으로 하나의 국가를 지지하는 상대 국가를 다시 한 번 주적의 위치에 놓으려고 한다. 증거라는 것은 빈약하다 못해 황당하기 짝이 없고, 돌아가는 모양새 역시 도저히 믿을 근거가 없다. 

아프리카 소국들의 전시관은 중국정부의 지원을 받아 지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프리카와 유럽 소국들의 국가관을 둘러보면서, 나라의 힘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전시장 크기와 그 화려함이 다른 어떤 것보다 국가의 힘이라는 것을 실제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전시장을 들여다 볼 때, 북한은 작고 가난한 나라 중 한 곳이었다. 

북한관 한 구석에서 오래 앉아 있었다.






2010.05.22 09:07

제발 좀 정치적이자.


딴지일보http://www.ddanzi.com/news/19680.html

자주 가는 사이트들이 있다. 직업이 되어버린 사진이 취미였을 때부터 사진 관련 커뮤니티는 단골이었다. 새 장비를 구해야 할 때는 특히나 더 해서 하루에 수 백 번씩 드나들었다. 오디오 장비 사이트도 하루에 두어 번은 꼭 간다. 내 것이 아니어도, 어느 집 거실이나 구석방에 잘 정돈되어 놓인 오디오를 보고 있으면 편안하고 좋다. 자전거 장비 사이트도 가고, 유머사이트도 간다. 포털사이트는 물론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특히 취미활동을 위해 모이는 곳에 가면 다들 비슷한 말을 한다. 가끔 정치적인 이슈에 대한 글이라도 하나 올라오면 다들 화를 낸다. 왜 이 곳까지 정치를 끌고 오냐고 말한다. 그 시끄럽고 더럽고 추악한 것을 이 즐거운 공간에 끌어오지 말라고 화를 내고 반대한다. 어떤 사이트들은 그래서 정치 이슈글이 올라오면 열람 자체를 차단하거나 회원 권한 자체를 제한하기도 한다.

바보들아. 나쁘고 못난 놈들아.

사람이 둘만 모여도 생겨나는 게, 그리고 생겨나야 마땅한 게 정치다. 정치는 교과서 속에 역사의 토막으로 남는 게 아니라, 지금 네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바탕을 이루고 있다. 갈등을 조율해야 하고 새로운 타협점을 탐색해야 하는 그 본성 때문에 정치는 또 마땅히 시끄러운 것이다. 그 소란이 싫다고 떨어져서 그냥 모른 척 살겠다는 것은 정말 바보짓이다. 그 무관심이 만들어낸 현실을 보고도 모르겠나. 시끄러운 것은 나쁜 것이라고, 가만 있으면 누군가 조용하게 모든 일을 처리해서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을 살게 해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은 너를 속이는 음모다. 태어나서 한 번도 투표해 본 적이 없다는 말은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하나? 쪽팔리지 않나? 고개도 못 들 만큼 부끄럽지 않나? 그 무관심이 만들어낸 이 현실에 도대체 책임감이라고는 없나?

사진찍고 놀고, 자전거타고 놀고, 음악들으며 쉬는 것이 어떻게 정치와 무관한가? 사람으로 숨쉬는 것부터 정치와 엮이지 않는 것이 없을 텐데. 실망해야 할 것은 덜 된 정치가들이다. 하지만 그 실망을 정치에 대한 무관심으로 연결시키면 그건 정말 그 못 된 정치가들의 의도를 충실히 따라주는 것 밖에는 안 된다.

아침 딴지일보에 안희정.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길다. 아침 나절 오며 가며 보는데 한참이 걸렸다. 안희정이라는 이름을 걸고 있지만, 내용은 노무현에 대한 부분이 많다. 오후에는 여러 사람 앞에서 말을 해야 되는데, 오전 내내 훌쩍거리고 앉았다.


내일이, 대통령께서 가신 지 꼭 1년 되는 날이다.





2010.05.21 22:17

미 정부, 인디언에 과거사 사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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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Document(2519,4)

美정부, 인디언에 과거사 사죄 | Daum 미디어다음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100521040903987&p=yonhap&RIGHT_COMM=R10

오바마 정부가, 과거 미국정부가 인디언에 대해 저지른 잘못을 사과했다. 역사에 기록된 인간집단 중 가장 완성형에 가까웠던 그들이 아닐까 싶다.

본래 당일 신문 기사 중 인상적인 기사를 스크랩하고 관련된 서적을 함께 엮어두는 것이 이 카테고리의 목적인데, 

그리고 오늘은 첫 시작인데,


졸려서 못 하겠다.;




2010.05.21 22:02

동그라미 동화


 

 

  국민학교를 마치고, 처음 학원이란 곳을 다녔다. 중학교에 가려면 아무래도 미리 공부해 둘 것이 있겠다는 부모님의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2층짜리 옛날 보건소 건물을 개조한 곳이었는데, 이름은 ‘제일학원’이었다. 아마. 강의실 창문은 철창살이 있었고, 처음 얼마 동안은 그 곳에서 병원 냄새를 맡았던 것도 같다. 기분 탓이었을 것이다. 그 곳에서 영어 I가 ‘나’를 뜻한다고 처음 배웠다. 첫날 I를 배우고, 모든 알파벳이 하나의 인칭을 뜻하는 줄 알았다. 다음날 You를 만나면서 깨지긴 했다만. 하루는 football을 배웠는데, 지각해서 늦게 온, 곱상하게 생겨서 하는 짓도 밉던 녀석이 문 열고 들어오면서 칠판에 적힌 football을 가볍게 읽어낼 때는 녀석이 좀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학원 2층에는 행정실이 있었고 그 곳에서는 아마 윈도우 3.x 버전이 깔린 컴퓨터와, 강의자료를 출력하는 토트프린터가 있었다. 아, 옆방에는 전자타자기도 있었다. 그리고, 동화책 몇 권이 유난스러운 책장도 있었다. 기억을 되짚어 보면,

 

 

 

 

 

 

 

1

 


 

한쪽 구석이 비어있는 동그라미가 주인공이었다.

노란색이었다.

동그라미는 제 비어있는 한 조각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섰다.

 

 

 

 

2

 


 

우여곡절.

동그라미는 그 여정에서 여러 조각들을 만났다. 제 빈 곳과 비슷해 보이는.

 

 

 

 

3

 


 

하지만

어떤 것은 너무 크거나

 

 

 

 

4

 


 

어떤 것은 너무 작았다

긴 여정의 끝에서

 

 

 

 

5

 


 

마침내 동그라미는 꼭 맞는 조각을 만나고, 그렇게 완전한 하나의 원이 된다.

그 후로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동화는 그렇게 끝났다. 기억에 따르면 그렇다.

 

 

 

 

6

 


 

그런데,

정말 그런 것일까?

 

 

 

 

7

 


 

처음부터 꼭 맞는 조각 같은 건,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

너도, 나도, 서툴고 모난 모양으로 시작하는 게 아닐까?

 

 

 

 

8

 


 

그렇게 모난 것끼리 엉켜서 굴러가다 보면

블록 사이로 흘러든 모래가 마침내 굳어지는 것처럼

서로의 서툰 틈을 메워서 마침내 둘도 없는 맞춤이 되는 게 아닐까?

그 때쯤에는 이미 둘도 아닌 게 되지 않을까?

 

 

 

 

9

 


 

어쩌면

작은 조각이라고 생각하고 우겨 넣으려고 했던 너는 나보다 큰 네모였을까

그래서 서투르게라도 구르던 그 몸짓마저 못 한다고 너를 원망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나는,

한 구석이 빈 조각난 동그라미가 아니고

혼자서는 어쩌지도 못 하는 작은 조각은 아니었을까

 

 

 

 

 

 

글. 반군

그림. 닥터멜




2010.05.17 23:12

평범한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말한다. 유별날 것 없고, 많고 흔한 사람들 중에 한 명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그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참 유별나 보이고, 유일해 보인다.

왜 사람들은, 스스로의 특별함을 모르나?



2010.05.17 11:53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새벽에 마무리 작업하고 아침에 프린트해서 힐튼에 보낼 사진들 작업을 마쳤다. 제법 오래 걸렸다. 조금 있다가 택배회사에서 오면 사진과 CD를 보내고, 최종 비용청구서를 메일로 보내면 된다. 그리고 사진에 별 문제가 없고, 청구서에 이견이 없으면 영수증을 발행하고, 며칠을 기다려 입금을 확인하면 이번 일은 끝난다. 예정되었던 호텔 작업이 모두 마무리 되었으니까, 그 동안 모인 사진들을 정리해서 홈페이지의 포트폴리오 부분을 업데이트해야 한다. 이 사진들 핑계로 포트폴리오 업데이트를 한참 동안이나 미루었다. 북경에 보내기로 약속했던 포트폴리오도 이제 보낼 수 있게 되었다.

  클라이언트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번 작업의 부족한 구석을 안다. 어떤 조명이 부족했는지, 어떤 리터칭이 모자랐는지, 그리고 현장에서 어떤 것을 놓쳤는지 사진 한 장마다 또렷이 드러나 있다. 아마 모든 프로 사진가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는데, 지나고 나서 아는 것이고, 그 자리로 돌아가서 다시 찍을 수 없으니 짐짓 모른 척 넘겨야 하는 것이다. 클라이언트가 알아채지 못 하기를 속으로 바라고, 다만 다음 작업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속으로 기억해야 한다. 내 기대치와 클라이언트의 기대치가 같지 않을 테니까 아마 그냥 넘어갈 것인데, 클라이언트를 만족시키는 것을 넘어서 감동시키지 못 하는 작업은 끝맛이 별로다.

  분주한 한 주가 가고 새 한 주가 왔다. 지난 주는 나답지 않게 바빠서 낮에는 계속 촬영을 했고 작업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새벽에 일찍 깼다. 주말 동안에는 부러 늦잠을 잤다. 이번 주는 별다른 촬영이 없어서 한가한 시간을 보낼 생각을 하며 지난 주를 지나왔는데, 바쁜 탓에 촬영을 제외한 다른 일거리들을 이번 주로 차곡차곡 밀어두었더니 막상 시작하고 보니까 그닥 한가한 시간이 되지는 못 할 모양이다. 급하지 않은 촬영이 한 개, 촬영 사전 미팅이 한 개, 밀린 후작업이 제법. 한가할 생각에 자전거 타자는 약속을 해두었는데 딱 하루만 탈 수 있겠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겠다. 일도 사람도 그렇겠다. 한 번에 여러 개 일을 펼쳐내는 것은 개별 일의 완성도를 아쉽게 만든다. 

  미학스터디는 어느새 1년도 넘었다. 일주일에 한 번 주로 오전에 만나서 책 내용을 요약하는 형식으로 돌아가며 발제하고 각자 이야기들을 덧붙인다. 지금 보는 책은 아놀트 하우저의 문학과예술의사회사. 3권이다. 맴버들이 최근 유난히 시간이 엉켜서 한 주씩 걸러서 보는데, 곧 3권이 끝나고 마지막 4권이 남았다. 진도 나가는 것을 보면 그렇게 빠른 것 같지도 않은데 한 주씩 차곡차곡 쌓아왔더니 어느새 두꺼운 책들을 제법 보아냈다. 혼자서는 못 했을 일이다.

  문학스터디는 제법 긴 방학을 지나서 얼마 전에 다시 열렸다. 들뢰즈의 철학을 다루는 노마디즘.을 보고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책 천의고원.에 대한 주석서 개념의 책으로 이진경이 썼다. 지난 주에는 6장을 다뤘는데, 선희는 탄탄한 요약 발제문을 만들어 왔다. 처음 스터디를 시작하던 무렵보다 훨씬 단단한 발제문이었다. 짧은 시간에 적지 않은 단련을 한 것 같아서 인상적이었다. 6장은 기관없는신체.에 대해 다루었는데, 나는 들뢰즈 식의, 또는 들뢰즈를 해석한 이진경 식의 해체-파괴-죽음에 대한 도식에 동의할 수 없었다. 소영 누나의 지적대로 들뢰즈와 가타리는 분명한 문제의식, 그리고 문제의식에 이어지는 목적의식을 갖고 그들의 이론을 구축한 듯하다. 때는 68혁명이 실패한 이후였고, 그들에게는 혁명 실패에 대한 원인분석과 새로운 방법론에 대한 탐구가 필요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논의의 무대를 인간과 그들의 사회.로 제한했는데, 그러니까 두 원저자의 생각이 서구식 한계를 갖는다는 이진경의 지적 역시 동의하기 어렵다. 기관없는신체의 동양적 구현이라는 곳에 대해, 두 원저자는 아마도 몰라서 못 간 것이 아니라 갈 필요가 없어서 안 간 듯하다. 성현 형은 언젠가 스터디에서 비판적 책읽기의 방법에 대해 말했었는데, 저자들의 방식으로 저자들의 논리를 깨는 것이 정공법이라고 했다. 해체.라는 개념은 사실 데리다의 특허같고, 들뢰즈의 이야기 속에서는 배제되는 개념인 듯한데, 6장에서는 분명한 저자들의 목소리로 해체.라는 단어가 언급되고 있다. 물론 탈지층화라는 개념이 더 빈번하고 분명하게 쓰인다. 어떤 유기적 위계질서에서 벗어난, 모든 것으로 변할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진 상태를 저자들은 기관없는신체.라는 용어로 설명하는데, 6장에서는 기관없는신체를 세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그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형태이고, 하나는 어떤 긍정적 에너지를 소멸한, 완벽하게 망가져서 해리되어 있는 형태의 신체다. 그리고 마지막은 암적 신체다. 이 암적인 기관없는신체는 개인과 사회를 죽음으로 이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는데, 저자들의 생각은 개인과 사회를 '탄생-죽음'의 닫힌 관계 속에 둔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러니까 탄생한 다음이고 죽기 이전인 상태에서 어떻게 탈지층화하고 새로운 가능성으로 재지층화할 것인가?라고 묻는다. 그런데, 재지층화하기 위해서 탈지층화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은 지적하면서 왜 탄생하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내 생각대로라면, 이들은 사실 같은 의미로 추상할 수 있는 해체 죽음 파괴 세 단어에 지극히 자의적인 가치를 부여해서 부정적인 상황에는 죽음 또는 파괴라는 단어를 부여하고 긍정적인 부분에는 해체라는 단어를 쓴다. 예를 들어 암적인 기관없는신체는 그 대상을 죽음으로 이끄는 파괴적인 역할을 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인간을 단위 개체로 파악할 때나 가능한 것이지, 암세포 입장에서는 그것은 자신의 생존 외에 무엇도 아니다. 반대도 생각할 수 있다. 지구를 단위 개체로 보면, 인류 이상 가는 암적 존재가 과연 있을까? 당면한 시대 앞에서, 그들은 마음이 급해서 인간사회 밖으로는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것일까?  스터디 말미에 왜 공부하냐는 질문이 덧붙었는데, 이 공부를 통해서 나를 온전히 긍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었던 것도 같다.

(사진 안 온다고 독촉 전화가 왔는데, 왜 택배 아저씨는 빨리 안 오시나!)

  사진강좌는 9주 일정 중에 이제 2주가 지났다. 본래 에프상하이 맴버들을 대상으로 소박하게 하던 것인데, 교민분들 중에 배우려는 분들이 많아서 이번에는 대외적으로 개방하고 규모를 키웠다. 대신 비교적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었던 내부 스터디와 달라서 한 주에 한 번, 두 시간으로 제한하니 해야할 말은 많고 시간은 항상 부족하다. 마음은 바빠서 말은 달리고 두 시간 내내 리듬도 없이 쏟아만 낸 말들은 아마도 듣기에 버거울 듯하다. 욕심대로 하면, 그곳에 와서 이야기를 듣는 분들이 단지 카메라를 다루는 테크닉적인 부분에 그치지 않고 사진을 찍는 이유, 그리고 자신만의 색깔을 내는 방법 등에 대해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덧붙이는데 그러다 보니 또 이야기가 항상 산으로 가서 중간마다 방향을 돌려세운다. 가벼운 마음으로,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멀리까지 와서 열심히 듣는 분들의 눈빛이 좋아서 좀 더 열심히 준비하고 끝나는 날까지 단단하게 할까 보다.

  그리고, 마침내 결국 오호라 그러니까 바로 내 말이. 웹진. 이름은 번진.이라고 붙였다. 성현 형이 지어주었다. 상하이 와이탄의 영문 표기인 번드Bund와 번진다.는 한글에서 연상시켜서 번진.이다. 은진이가 자기 말로는 방바닥을 다 물들이며 만들었다는, 번져나간 먹방울. 이미지를 받아서 포토샵에서 모양을 만들고 색을 넣어서 메인 아이콘으로 썼다. 거친 수준에서 디자인은 마쳤고, 바쁘다는 핑계로 지난 한 주 동안 버려두었는데 오늘 저녁쯤이면 게시판 세부 설정까지 모두 만져서 필진들의 원고를 옮길 수 있겠다. 당분간은 계속 테스트해야 하지만 어쨌든 되어가는 것이다. 처음 필진들을 모았을 때 후다닥 밀어부쳤어야 했는데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리듬이 많이 죽었고, 몇 명의 필진들이 떠났다. 물론 떠난 것만큼 새로운 필진들이 왔다. 많은 것이 예상에서 빗나갔지만, 고민한 문장을 읽고 싶은 수요가 있을 것이고 그런 컨텐츠들을 생산하려는 의욕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맞은 셈이다. 이제 번진.이 그 마당이 된다. 나는 그 곳에 인터뷰 원고, 여행 원고, 사진 해설 원고, 책리뷰 원고를 쓸 예정이고, 초보적인 수준에서 클래식 음악에 대한 감상도 써보고 싶다. 날마다 써도 못 쓸 분량이다. 나는 글빚을 지고 살 모양이다.

 진도 안 나가는 책 원고 문제도 있다.

 아마도 내년이 될, 대학원 진학 문제도 있다.

 밥 벌어먹고 사는 사진 문제는, 있다는 건 아는데 왜 항상 뒷전일까?

  새 일을 펼쳐낼 때, 가끔 내 몸이 하나라는 걸 잊는다. 두 시간 하는 스터디는 하루 이상의 시간을 투자해서 공부해야 하고, 사진스터디 덕분에 토요일 하루는 꼬박 반납이다. 이렇게 문어발처럼 펼쳐놓고 대충 수습만 하는 선에서 버티는 건 좋은 답이 아니다. 선택하고, 집중해야 한다. 진행중인 책들이 끝나면, 문학스터디와 미학스터디는 내려놓아야겠다. 그나마 그거라도 있으니 졸린 눈 비비며 이론서들을 읽는 것인데, 치우고 나면 어떤 방법으로 그 유머라고는 없는 책들 앞에 앉아있을지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당분간 접어야겠다. 고프면 읽겠지. 사진스터디도 7월에는 끝나니까, 끝나면 조용히 에프상하이에서 잠수타야겠다. 그리고 그렇게 모은 시간과 에너지를 당분간은 웹진에 모두 쏟아야겠다. 좋은 글들을 모으고, 사람들을 모으고, 모인 사람들이 놀게 해야하는데 마땅한 방법이 아직 떠오르지 않고, 다만 너무 서두르지 말고 느긋하게 해야겠다는 것만 겨우 안다. 어차피 두 스터디의 맴버들 대부분을 이미 필진으로 꼬드겨 놓았으니 그 사람들 보는 문제야 어려울 것이 없고, 내가 참가하지 않더라도 스터디 내용을 삥뜯어서 웹진에 기사로 올리면 그만이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스터디에 대해 알고 스스로의 내부에 있는, 알고 싶다는 욕망을 알아채게 해야겠다. 한 3년 동안 온갖 일을 다 만들어서 사람들을 펼쳐놓고, 3년 뒤 12월에 모조리 끌고 투표하러 가야지. ㅎㅎㅎ

  공짜표가 생겨서 문학스터디 맴버들과 연주회에 다녀왔다. 가끔 생기는 연주회표는 주로 성현형이랑 바람소리 누나랑 다녔는데, 마침 문학스터디 하는 중에 연락을 받아서 맴버들에게 표를 돌렸다. 레파토리에는 별로 호감가는 작곡가가 없어서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보로딘의 첫 곡은 어쩌다 보니 문 밖에서 들었고, 생상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악단과 바이올린이 어찌나 따로 놀아주시는지. 본래 그 곡이 그런 것인지, 내가 앉은 자리가 위치가 메롱이어서 바이올린 고음이 특히나 쏜 것인지, 아니면 악단과 독주자의 궁합이 안 맞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인상적이지 않았고, 생상은 역시 아무런 인상도 없는 작곡가로 쭉 갈 모양이다.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이었는데,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이다.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선입견이란, 현대음악가. 어려움. 괴팍함. 정도였다. 대충 말도 안 되는 불협화음이나 듣다가 말겠구나 싶었는데, 1,2악장은 상쾌한 동화처럼 시작한다. 천진한 아이가 마냥 신나서 봄날 오후에 들에서 논다. 러시아 민속음악의 어떤 조각들도 들어 있는 듯했다. 3악장에서 분위기는 돌변하는데, 아이는 어떤 사정인지 동화에서 깬다. 또는 3악장의 어떤 어른이 1,2악장을 회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팀 버튼의 빅 피쉬.가 생각났다. 어린 마음에 들었던 아버지의 마술같은 옛날 이야기는 자라서 생각하면 도대체 상식의 범주에 들지 않는 것이고, 아버지에게 속았다는, 아버지는 허풍꾼이라는 생각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바뀐다. 그리고 3악장의 중간에서, 잠시 쉰 다음에 첼로로 넘어가면서 이 부정적인 분위기는 반전된다. 4악장은? 당췌 못 읽었다. 그래도 기대 이상이었다. 모든 악장이 다 매력적이었고 바이올린 독주가 빠진 악단은 그 자체로 온전해 보였다. 아니 온전해 들렸다? 바람소리 누나에게 물어봐야겠다. 쇼스타코비치 5번은 어떤 연주가 좋은지.

  아놀트 하우저의 책에 따르면, 작곡가가 본격적으로 자의식을 갖고 클라이언트를 위한 곡이 아닌 스스로의 내면을 대변하는 곡을 생산하기 시작한 때는 베토벤보다 겨우 약간 앞선 시기부터다. 그 이후로 작곡가는 각 작품을 스스로와 동일시한다. 그렇지 않다는 이유로 바흐는 하우저에게 홀대받지만, 후대에 일어난 바흐 음악에 대한 재평가 작업은 의미가 있다. 어쨌든, 하나씩 알아가는 고전음악은 제법 재미가 있다. 다른 거창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한 명 한 명 작곡가의 거대한 우주와 겨루어나가는 재미가 좋다. 그가 펼쳐놓은 암호들 사이를 이리저리 파고 들어가서 마침내 무언가를 알아채는 기분은 책 읽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한 동안 이 안에서 놀아봐야겠다.

  대충 밀린 이야기들을 다 썼다. 택배 아저씨는 다녀갔고, 마지막 남은 김치찌개를 끓여서 점심을 먹어야겠다. 그리고 웹진과 맞짱뜨러 가야겠다.



2010.05.09 08:37

비 온다.


비 온다. 뽀송뽀송한 늦잠을 자고 늦게 깼다. 예쁘고 편안한 꿈을 꾸었다. 깨어서도 한참 이불 속에서 가물해져가는 꿈을 되씹었다. 창 밖에 부딪치는, 멀리 땅바닥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가 앉은 자리까지 들린다. 일요일이다. 분주한 한 주였다. 오전을 빈둥거릴 작정이다. 해야할 것들이 있고 다음주도 아마 적잖이 바쁠 듯하니까, 오늘 오전은 작정하고 빈둥거리고 오후에도 작업하다가 나른해지면 곧장 침대로 가서 이불 돌돌 말고 뒹굴어야겠다.

교민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진스터디를 시작했다. 지나고 보니, 좀 더 쉽게, 좀 더 직접 와닿는 것들을 알려드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2010.05.03 19:52

내 누나들


정원 가꾸는 사람을 취재하고 왔다. 내가 직접 꾸리는 인터뷰는 아니고, 한국측에서 취재 질문을 모두 보내주어서 나는 가서 적힌 대로 묻고 말하는 대로 받아 적으면 되는, 답답하기도 하고 맘 편하기도 한 인터뷰다. 삼 십 대 중반이라는 여인은 일본 국적의 중국인이라고 했는데, 시내 중심의 옛 주택에 세들어 살면서 정원을 가꾸고 있었다. 정원은 넓었고, 포근했다. 정원에 대한 인상이 참 좋아서, 잡지가 시키지 않은 질문도 몇 개 섞어서 했다. 그리고 다음에 꼭 놀러가겠다고 예약해 두었다. 한참 공사중인 거실에는 150인치 스크린이 걸리고 홈시어터 시스템이 구축될 것인데, 며칠 뒤에 친구들이 와서 축구를 보기로 했다고 한다. 다음에 갈 때 정원을 닮은, 여백이 넓은 사진을 한 장 선물하고 맘에 드는 화분이나 하나 삥뜯어 와야겠다. 그리고 그녀는 근처 안푸루.에 작은 가게를 열고 있는 친구도 소개시켜 주었는데, 프랑스에서 색채 디자인을 공부했다는 다른 그녀.는 내게 또 유용할 듯했다. 조만간에 호텔 작업 사진들을 몽땅 들고 가서 색에 대한 조언을 좀 구해야겠다. 사람을 만나서 그들의 세상에 대해 묻고 정리해서 쓰고 다른 사람들이 읽게 하는 작업은 매력적이다. 한 때의 열병처럼 또 찾아온 생각의 덩어리들은 사람이 사는 일에 대한 문제들이니까, 아마 그 답도 사람이 사는 이야기 속에 있을 것이다. 비슷한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서, 인터뷰 팀을 꾸릴까 보다. 그래서 지구인.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색깔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 관계 맺어야겠다. 

내일 아침 촬영 가기 전까지 작업해야 할 사진들은 거의 밤샘을 해야 할 분량인데, 최근 10년 사이에 술 마시고 논다고 두어 번 밤 샌 적은 있어도 일하면서는 그래 본 기억이 없어서, 오늘도 안 할 것이다. 아마. 그러니까 수면 시간을 조금 줄이는(많이는 아니고) 수준에서 작업은 눈치 못 챌 만큼, 혹 눈치를 채도 욕하지는 않을 만큼 날림으로 하게 될 것이다. 사는 게 그렇지 뭐.

텃밭 누야에게 메일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밀린 일기처럼 됐다. 누야는 오랜만에 차근차근 적어서 안부를 전해왔는데, 잊었던 풍경이 눈앞에 다시 펼치는 듯했다. 나도 그에 걸맞는 답장을 하려면 우선은 닥친 이 덩어리 일들을 어떻게 좀 안 보이는 곳으로 밀쳐야 하는데 그렇게 되려면 며칠은 걸려야 되고, 며칠은 더 목에 가시를 걸고 있어야겠다. 도꾸 안부도 물어야 되고, 가죽 놀이는 재밌는지 물어야 되고, 나는 여전하다고 써야 하는데.

영숙 누나는 들어온 소개팅도 못 할만큼 바쁘댄다. 나보다 더 내 밥을 걱정하는 것은 내가 한참 못 먹고 못 살던 하필 그 때에 나를 알아서다. 한국 갈 때마다 불러서 밥먹이는 사람이고, 머리가 아프면 소화제를 먹으라는 진리를 알려준 사람도 누나다. 참, 누나 동생 진숙씨 결혼식이 이 때쯤이었던 듯 한데. 축하한다는 말이라도 전해야 하는데. 연락을 해야겠다.

은경 누나가 중국에 놀러온다고 한 게 아마 이 쯤인데, 그러고 보니 딱 이 쯤인데 바쁘다는 핑계로 소식을 못 물었다. 일본에서 일하고 있는 누나는 영숙 누나랑 마치 바톤 터치하듯 배고프고 서러울 때 나를 불러 먹이셨다. 이번에 못 보고 그냥 보내면 두고 두고 미안하겠다. 어서 어서.

파블로 비욘디의 사계. 오이스트라흐의 베토벤 소나타. 내가 어떤 성향의 음악이 듣고 싶다고 할 때마다 바람소리 누나는 거기에 딱 맞는 연주자와 음악을 알려주고, 많은 경우에 음반까지 찾아서 빌려준다. 파블로 비욘디의 사계.는 당시의 악기로 연주한 원전 연주라고 하는데, 이게 물건이다. 이래서 이름을 사계.라고 붙였구나 싶다. 오이스트라흐와 오보린?의 바이올린 소나타 협주는... 이게... 또 물건이다. 두 명의 대가는 참...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팽팽하기도 하고 배려하기도 하는 듯한데, 아무 것도 모르고 들었을 때 나는 나이 든 연인이 연주하는 줄 알았다. 절대로 앞서지 않기 위해, 절대로 물러서지 않기 위해 그 절묘한 선 위에 있기 위해 둘은 얼마나 공들여서 연주했을까? 그 미묘한 한 점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이제 겨우 입문하는 입장에서 곡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 할 수는 없는 노릇인데, 그래도 한 곡씩 한 곡씩 좋아하는 곡들이 생기고, 그 곡들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 언제쯤 나는 또 쓸 것이다. 나는 누나에게 오디오 장비를 뽐뿌했는데, 누나는 내게 좋은 음악을 돌려주니까 어째 균형이 안 맞는다. 고마운 음악 길잡이다. 그러 누나에게 나는 카메라, 오디오, 자전거를 차례 차례 뽐뿌하고 있다.

"누나, 나 완전 아줌마 파마 하면 완전 이상할까? 머리가 너무 길었어" 낮에 문자 보냈더니 아직도 답이 없다. 내가 아무 이름도 안 붙이고 부르는 내 누나. 굶을 때는 카드를 하사하시어 나를 살리시고 기 죽을 때는 그래도 믿는다고 매형과 함께 더블로 응원하고 스타일이라고는 개뿔도 없었던 동생을 직접 고른 옷들로 덮었다. 같이 손 잡고 마트 가면 어찌나 마음 편하게 아무 물건이나 막 집게 되는지 원.  가족이 무엇인지, 나는 오래 걸려 알았다. 근데 누나, 이번에 준 카드는 잘 안 되더라?

나는 참 여러 누나들에게 빚지고 산다. 그러니까 내가 얼른 얼른 잘 자라서 내가 받은 만큼, 거기에 조금 보태서 세상에 돌려주어야 한다.


아, 정원이 어땠냐면...



2010.05.03 14:35

나, 잡지는 못 하는 걸까?


집이 마굿간이다. 여름은 3일 전에 갑자기 왔다. 외투 입고 다니다가 갑자기 반팔을 입는다. 아침 저녁으로는 아직 제법 선선한데 그것도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청소하고 싶다. 청소기 돌리고, 잡다한 것들 좀 들어내고 창문도 좀 열어서 꼬질꼬질한 냄새 좀 내보내고 겨울 두꺼운 옷들 세탁소에 가져다 주고 더불어 여름 옷들도 몇 개 사고 싶다. 이불도 빨아서 두꺼운 것들 좀 집어 넣고 뽀송뽀송한 이불을 덮어야겠다. 하루 푸지게 집안을 들었다 놓은 다음 저녁에는 한가하게 음악이나 틀고 창가에 앉아서 시원한 맥주나 한 잔쯤 했으면, 딱 좋겠다. 다음주 초까지는 도대체 시간이 없을 듯하고, 목을 조르는 급한 것들을 대충 치워내는 다음에는 목 바로 아래까지 치달아 있는 것들을 해치워야 한다. 아, 신나게 바쁜 한 때를 산다.

지난 천진 출장 중에, 한국에서 온 에디터는 내 사진 작업 방식이 잡지 에디터들이 선호하는 방식은 아니라고 했다. 녀석이야 워낙 오래 알고 지낸 사이니까 편하게 말해 주었다. 에디터는 몇 개의 작업이 있으면 리듬을 만들어서, 목숨 걸어야 될 작업과 평균만 해도 되는 작업, 그리고 대충 넘기면 되는 작업으로 나누어서 에너지를 배분한다고 했다. 그리고 포토 역시 그래야 한다고 했다. 메인 컷으로 쓸 사진에는 정말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 사진들은 속도감 있게 진행해야 한다고, 그래야 시간도 맞추고 에너지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속도와 속도 안에서도 안정적인 결과물을 뽑아내 주는 포토를 에디터들은 선호한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한 장 찍을 때마다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찍어대니 시간은 시간대로 걸리고 사람은 사람대로 지친다. 녀석의 말대로 잠시 방식을 바꾸어 속도감 있게 찍어 보았는데, 내게 '빠르게 찍는다'는 것은 곧 '대충 찍는다'라는 것임을 알았다. 결국 한 번 그래 보고 다시 내 방식대로 했다. 그렇구나 생각하고 넘겼는데,

어제 엑스포 촬영장에서 함께 작업한 에디터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작업은 정말 열심히 하는데 정작 자기 스타일이랑 맞는 사진은 별로 안 나온댄다. 아, 방법은 내가 잡지 사진을 안 찍거나, 잡지에서 요구하는대로 나는 없고 피사체들의 증명사진만 있는 그런 컷들을 만들어야 한다. 아마 내가 처음 잡지 사진을 시작하던 때의 버릇 때문인 듯한데, 내가 주로 찍은 사진은 잡지에 풀 페이지로 딱 한 컷 들어가는 포트레이트였다. 몇 장으로 상황을 설명하는 사진은 별로 찍은 적이 없었다. 한 장에, 승부를 걸어야 했다. 그 버릇 때문일까? 어떤 사진 한 장도 내 색깔이 없는, 아무나 찍을 수 있는 그런 사진은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잘 못 찍겠다. 잘 안 찍으니까 이제는 보려고 해도 그런 앵글은 눈이 알아서 거른다. 나, 잡지는 못 하는 걸까?

일하자. 여름도 오래지 않을 것이다.



2010.05.02 21:02

엑스포는, 체력전이더라.



양산을 쓰고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


시선에 속도감을 부여하도록 배치한 대형 스크린들. 스페인관

엑스포에 다녀왔다. 어제 정식 개장했으니 개장 이틀째이고, 노동절 연휴였다. 내 돈 내고 간다고 해도 부러 사람 많은 곳을 찾아다니지 않는 성격이니까 잘 안 갔을 텐데, 일이니 어쩔 수 없이 갔다. 앞으로 3일을 더 가야한다. 엑스포는, 체력전이더라. 해를 가릴 수 있는 모자든 양산이든 필요하고, 오래 걷기에 편한 신발이 필요하고, 입장을 기다리는 아주 많이 긴 시간 동안 지루하지 않을 파트너, 또는 놀이감이 필요하다.

오스트레일리아관의 스탭과 이야기하면서, 슬쩍 엑스포의 의의에 대해 물었다. 아무리 보아도, 돈지랄이다. 엑스포는 그 탄생에서부터 국력을 과시하고, 자국민에게 그들의 나라가 위대하다는 어떤 심리적 자신감을 심어주는 이벤트였다. 영국의, 프랑스의 엑스포가 그랬고, 한국의 엑스포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나마 과거의 엑스포는 시대가 갖는 공간적 시간적 제약 때문에 그 최소한의 정당성이라도 확보할 수 있었다. 먼 곳의 신기한 존재들을 불러모아 서로 보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인터넷도 잘 되잖나. 왜 이렇게까지 좁은 장소에 불러 모아야 하나? 좀처럼 납득하기 어렵다.

엑스포가 돈지랄이고 국력 과시용이라는 증거는 각국의 전시장에서도 드러난다. 유럽의 소국들은 단체관 속에서 파트를 나누어 쓴다. 크게 시선을 끄는 것도 없고, 그저 한 바퀴 휘 둘러나오면 되는 형태다. 들러리.라는 단어가 그 본래의 의미로 들어맞는다. 안스럽다. 어젠가? 뜬 인터넷 기사에 북한 전시관을 비웃는 내용이 있었다. 출처는 YTN 특파원이었다. 북한관이 폐쇄적이고, 볼 것도 없고, 개장 한 시간만에 분수 밑으로 물이 샌다는, 그래서 결론은 앞으로 엑스포가 펼쳐지는 6개월 동안 북한관이 과연 사람들을 얼마나 끌어모을지 모르겠다는 지랄같은 기사를 쓰셨더라. 단지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의 조합 속에 비꼬는 의도가 너무 분명하게 읽혔다. 그러고 싶나? 그러자면 유럽 소국들의 전시장도 한 번 까발려보시지 그랬나. 한 번 해보겠다는, 어떻게든 그래도 살아보겠다는, 먼 곳도 아닌 바로 옆의 피를 나눈 사람들이 사는 그 나라를 그렇게 바닥부터 긁어대고 싶으셨을까? 그렇게 기사 쓰셔서,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을까?

일이니까, 보고 싶은 곳을 다 가보지는 못 했다. 한국관도, 북한관도 못 봤다. 최대한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겠다는 얕은 꽤 때문에, 인기 없는(=유별난 볼거리가 없는) 전시관 몇 개를 보고, 마지막으로 나오기 전에 겨우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려서 스페인관을 보고 나왔다. 가우디의 나라답게, 잘 했더라. 나머지 3일은 기다리는 시간을 각오하더라도 좀 큰 전시관 위주로 동선을 짜도록 해야겠다.

당분간은 계속 관람객이 많을 모양이다. 초반에 볼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아니면 하루에 다 보겠다는 생각을 겸손하게 접으시고 긴 일정을 짜야 한다.





2010.05.01 22:27

MJ가 구축한 시대의 양분으로 오늘의 아이돌들은 산다


웹진에 열올리는 것이 제법 되었다. 사람들을 모았고, 그들에게 글을 쓰도록 부탁했고, 어서 쓰라고 독촉했고, 다른 사람의 글을 평가하라고 떠밀었다. 불러서 묻고, 물어서 들은 것들을 다시 적었다. 하루 걸러 하루씩 전화해서 새로 써야 할 글과 읽어야 할 글을 알려주고 있다. 

처음 웹진이라는 것을 만들겠다고,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 제법 오래 되어서, 막상 한참 열올리는 중에 돌아보니 왜 웹진을 만들겠다고 진심으로 나를 설득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은 나는데, 정말 그런 이유들이 나를 그렇게 들뜨게 했던 것인지 잘 모르게 되었다. 머리는 여전히 잊지 않고 있는데 가슴은 잊은 셈이다. 함께 편집작업을 맡아준 송지윤은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줄 몰랐다”고 말했다. 듣고 보니, 시킨 사람도 없고,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여하튼 별 소득 없어 보이는 일을 나는 왜 그토록 열심히 하려고 했던 것인지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무엇일까? 웹진은 인문학.과 예술.이라는 주제를 내걸었지만, 껍질 떼어내고 보자면 결국 ‘지적 허영’이다. 없어도 굶어 죽지 않고 얼어 죽지 않는 것이고, 있어도 특별히 배부르지 않고 아플 때 보험이 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 지적 허영이 탐났던 것일까. 못 다한 공부에 대한 자격지심 같은 것일까. 한 명의 사진사로 남는 게 싫어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그들과 함께 놀아보려는 것일까. 어쩌면.


애초에 내가 나를 설득했던 이유는 대충 이랬다.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 그들은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니, 그들에게 그 혜택을 돌려주라고 요구할 것. 그들이 받은 세상에게, 그들의 도움이 필요한 어디든. 그리고 그들을 모아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해 두면 재미난 일들이 많이 생길 것. 돈의 논리 앞에 소외 받고 내려앉은 인문학의 힘을 변호하고 드높일 것. 말 통하고 그런 심심한 것들로 더불어 즐거울 수 있는 사람들을 모을 것. 대충 이런 것들이 아니었나 싶다. 개인적으로는 부족한 공부를 이끌어줄 선생님들이 필요했고, 그런 공부를 통해 삶의 좀 더 깊은 곳까지 도달하고 싶었다.


두 개의 스터디, 사진 강의, 웹진, 그리고 소소한 원고들 몇 개 정도가 돈과 상관 없는 내 일이다.많지 않은 사진을 찍어서, 먹고 사는 일을 푼다. 시간은 부족하지 않다. 바쁘다 바쁘다 해도, 내가 괜히 벌려둔 일들 때문이지 먹고 사는 문제 때문은 아니다. 부족하다 부족하다 해도 스스로의 기준에 비해서지 어디 가서 욕먹을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남들처럼 좀 더 먹고 사는 일에 힘을 써야 하는 걸까? 시간이 있으면 밥 안 주는 공부 대신 좀 더 영업을 하고 좀 더 테크닉을 갈고 닦아서 좀 더 좋은 사진을 찍는 것에 모든 것을 던져야 하나? 그래서 좀 더 비싼 사진가가 되어서 어떤 클라이언트 앞에서도 기 안 죽고 콧대 높게 내가 원하는 사진만 작업하고 사고 싶은 것들을 사서 누리는 사진가가 되면 되나? 그러면, 얻고 싶은 것들을 얻을 수 있나?


풀었다고 생각한 문제들은, 마침내 발견했다고 생각한 답들은 언제나 잠시의 시간이 지나면 그 확신의 크기는 점점 작아지고 결국에는 다시 모호해졌다. 정말 그것이 한치의 의심도 필요 없는 진리여서가 아니라, 그것이 너에게 비추어서 바른 것이라는 설득으로 믿어야 할 모양이다. 믿음은 언제나 위태롭고 불안할 것이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외에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당장 무엇이든 뚫어낼 것 같은 기세도 멀지 않은 언젠가는 시들 때가 올 것이고, 확신의 크기와 상관 없이 웹진 작업에 지칠 때도 분명히 올 것이다. 재미있는 일이고 바른 일이고 또 필요한 일인 것은 분명하니까, 내가 지칠 때 다른 사람들의 힘을 빌어서 내가 기대 갈 수 있도록, 힘이 있고 마음이 닿는 동안에 열심히 그 공간을 구축해 놓아야겠다. 누구는 내가 가려는 그 곳에 좌표를 부여해 주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그 가치를 구하는 작업이 분명히 헛짓은 아니겠다.


쇼프로그램에 나온 가수들을 보다가 답답해져서 마이클 잭슨의 공연 실황 동영상을 봤다. 비단 한국의 특징은 아니겠지만, 아이돌 그룹의 단체 율동을 보고 있으면 그들의 몸짓은 그들이 부르는 노래와 별 상관은 없어 보이고, 그저 보기에 그럴 듯한 동작을 잔뜩 외운 다음 무대 위에서는 행여 순서 틀릴까, 다른 맴버들과 박자 안 맞을까 마음 졸여가며 움직여 대는 의미 없는 허우적거림 같다. 그러다가 이미 십 수 년, 어쩌면 그 보다 오랜 MJ의 춤을 보고 있으면, 음악이 몸 속을 꽉 채워서 마침내 더 이상 어쩌지 못 할 때 터져 나온, 음악이 그대로 형태를 바꾼 몸짓인 것을 알겠다. 나는 잘 몰랐고, 그의 죽음 이후에나 그의 영상을 뒤졌지만 그는 한 역사였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어떤 사람들은 시대를 구축하고, 그 다음의 세대는 그 유별난 인물이 구축해 둔 역사의 틀 안에서 그 양분으로 산다. 철학에서, 예술에서, 과학에서 우리는 그렇게 시대를 구축한 인물들을 떠올려 볼 수 있다. MJ가 구축한 시대의 양분으로 오늘의 아이돌들은 산다. 그 다음의 시대를 구축할 인물은 언제쯤 올까? 온다면, 알아볼 수나 있을까?



그나저나, 우리 필진들은 왜 그리 다들 굼뜨나. 쓰라는 거 빨리 안 쓰고.

















2010.04.30 10:12

천진의 빛은 상하이의 빛보다 맑아서





천진 역 앞에 있는 시계탑. 새벽.


제대로 조명빨. 새벽


이미 상업 아이콘이 된 모택동의 마스크.를 넘어서, 이제 그의 삶 자체가 아이콘이 되어버린 마오. 북경.


촬영이 없는 틈에 길을 산책. 천진.


촬영이 없을 때. 산책. 천진.


골목길. 아이들의 낙서. 그 위로 떨어지는 빛. 천진.


중국 각 지역의 지명을 딴 길의 이름표. 상하이와 닮은 도시의 탄생을 설명하는 증거.


사고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고 올라간 빌딩 옥상.에서 맞은 일출. 태어나서 처음, 지평선에서 뜨는 해를 보았다.

출장 다녀왔다. 천진에 다녀왔다. 5일 중에 3일은 일을 하고, 이틀은 오고 가고 노닥거렸다. 빈틈이 있었는데, 검토해야 하는 자료도 안 보고 읽어야 할 책도 안 보고 출장지 주변 길을 걸어다녔다. 천진의 빛은 상하이의 빛보다 맑아서, 빛은 제가 가 닿으려는 곳까지 더 깊이, 또렷하게 닿았다. 칼칼한 바람이 빛의 질감을 더 도드라지게 했다.

한 도시를, 한 땅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본 것은 천진인데, 그것들로 천진이라는 도시의 이미지를 구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얼기설기 엮어보려는 시도는 무모하다. 한 땅에 오래 살아 보아야 비로소 알까? 그래도 모를까? 아마 그 땅 위에 내리는 빛을 살피는 것은, 땅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2010.04.22 08:05

웹진은 진도가 더디다


간밤에 비가 세차게 왔다. 비가 창문을 두드려서 밤중에 두어 번 뒤척였다.

새벽에 깨어서 아무 음악이나 틀어두고 짜파게티 하나 먹고 한국에 보낼 책 기획서를 다시 준비했다. 몇 번째 보내는 것인지, 이제 잊었다.

엑스포 1년 전에, 6개월 전에, 하던 것인데, 며칠 뒤면 엑스포는 시작한다. 아,


웹진은 진도가 더디다. 진도가 더디다기 보다 내 마음이 급한 것이다. 모든 시작이 그랬던 것 같은데, 폭풍처럼 달려들 거라는 생각은, 마냥 혼자 생각이었다. 코딩을 할 줄 모르니까 기존에 있는 스킨만 가져다 놓은 디자인은 어설프기만 하고, 필진들은 각각의 일로 분주해서 필진게시판은 개점휴업이다. 웹진 나비.와 연구공간 수유의 웹진을 우선의 모범으로 삼을까 싶다. 천천히 긴 호흡으로 해야겠다. 당장 그럴 듯한 결과물을 기대하지 말고, 지치지 말아야겠다. 그나저나 저 엉덩이 무거운 필진들을 어떻게 좀 꼬드기나. 



2010.04.20 03:17

사방이 고요할 때 어두운 속에



시간을 잘 못 맞춰서 깨어나니 새벽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한밤중이다.

밤의 가운데 맑은 정신으로 있기는 아주 가끔 있는 일이다. 귀한 시간이다.

무얼 할까 돌아보니 옆집 눈치가 보여서 음악을 듣기는 어렵고,

밀린 원고나 쓸까 꺼내서 두어 줄 쓰고 나니 그것도 흥이 안 난다.

사방이 고요할 때 어두운 속에 혼자 있으면, 호수 가운데 모든 나무가 혼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같은 모양으로 아래로 드리운 그림자도 있고,

하늘 아래 혼자일 때도 하늘만은 같이 있어주지 않더냐는 시인의 말도 있었는데.



2010.04.18 20:43

와이탄, 강변이 다시 열렸다





엑스포 개장 준비 때문에 몇 년 동안 상하이는 도시 전체가 공사판이었다. 와이탄도 올 초부터였던가? 공사에 들어가서 한 동안 접근할 수 없었다. 

에프상하이 출사. 한국으로 돌아가는 둘과 필리핀으로 장기 여행을 가는 하나를 위한 조촐한 송별회. 봉식 형이 늦는다는 통보. 몇 가지 이유가 겹쳐서 오랜만에 어쩔 수 없이 출사를 갔다.

일하는 사진만 찍다가 가끔 별 생각 없이 카메라 들고 거리에 나서면, 셔터가 참 가볍고 경쾌할 때가 있다.

강변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일행은 근처 갤러리 카페에 피신해서 커피나 마시고 잡담이나 했다. 해 넘어갈 무렵에야 강변에 섰는데,

예전에는 보이되 잡히지 않던 이미지들이 하나 둘 내 카메라에 담기는 것이 새삼스럽다.

아, 내 사진이 조금 자랐구나. 이대로 가면 제법 사진에 힘이 붙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2010.04.17 09:32

드디어, 웹진



4:30pm. 홍방

어제 저녁에 웹진의 첫 오프라인 모임이 있었다.

아홉 명의 필진 중에 여덟이 모였다. 

아직 서투른 웹진 페이지를 함께 둘러보고, 앞으로 쓸 글에 대해, 할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 명 한 명 눈빛이 단단하고, 말마다 든든하게 들렸다. 


이번에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까, 마침내 될 것이다.

신나는 놀이터를 만든다. 

그대들을 믿고 나는 간다.





2010.04.16 08:11

as


출장지의 아침은 가능하면 혼자 먹는다. 일정들은 보통 아침 9시 전후에 시작한다. 그 전까지가 거의 유일한, 개인 시간. 저녁 시간은 또 다른 이야기. 그래서 최대한 비워내고 아직 말끔한 시간.을 혼자 보내기. 느긋하게 아침 먹으면서 무엇을 생각하거나, 메모하거나, 또는 아무 것도 안 생각하는 때. 이 고요한 아침이 분주한 하루를 버티고 이끄는 동력. 룸메이트도 늦잠 자기를 바라기도.

지도를 샀다. 호텔은 시내 지도의 경계 밖에 있어서 보이지 않고, 며칠 동안 예정된 목적지들은 성지도 속에서 청두와 겹쳐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

 

생활을 조금 더 간소하게 해야 한다.

 

좋은 것들, 아름다운 것들을 보았다. 자료를 보고 왔다. 많이 죽고 다쳤다. 그러나 숫자는 그 깊이를 재지 못 할 것. 지진과 관광은 참 극단에. 지진의 통곡을 병에 담아 판다는 인상.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기사에 쓸 수는 없겠지만.

 

그 내면의 모순은 없는가?

보고 싶지 않지. 가장 좋은 회복은. 다시 살려내는 것. 아이를 잃어버린 집에 새 아이가 태어났다. 따져 물을 것 없이 당연한 것인데, 답을 듣는 마음이 납득하지 않아. 미진한 마음.

맞다. 그 이외의 답을 생각하기는 어렵다. 관광객에게 입구에서 묵념을 받을 수도 없는 일.

두장옌. 재미난 곳. 그 지진의 상품화.

핑계가 잘 맞아 떨어졌다. 뭐, 관광 팀이니까.

 




2010.04.12 11:14

밀린 원고가 여섯 개



촬영을 위해 꽃을 준비 중인 플로리스트

오늘 내일 이틀 동안 촬영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아침에 연기 통보를 받았다. 

돈 버는 문제와 상관 없이, 있던 촬영이 갑자기 연기되거나 취소되면 공짜 시간이 생긴 것 같아서 마냥 기분이 좋다. 촬영에 대한 부담감에서 해방되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덕분에 늦잠을 좀 잔 것도 문제가 안 된다.

주말 동안 밀린 원고를 쓰겠다던 것이, 겨우 웹진에 보낼 원고 하나와 자기 소개서를 쓰는 데 그쳤다. 그리고 모처럼 잘 쉬었다.

촬영이 연기되었고, 덕분에 당분간 긴급한 스케줄이 없으니 밀린 일들을 좀 챙겨야겠다.

오늘은 교민매체에 보낼 원고 네 개를 마저 쓰고,(틀은 잡아두었다.)

웹진에 보낼 원고 두 개를 또 쓰고,

금요일 미팅에 앞서 웹진 사이트를 완벽하게 구동시키는 것까지가 목표다.

근데 자꾸 영화도 보고 싶고 낮잠도 자고 싶고 군것질도 하고 싶어지나...




2010.04.12 01:21

다음 세상에서도 사람으로 태어날까?


법정 스님께서 가셨다. 스님께서 가시기 전 마지막 말씀 중에, 이번 생에서 잘 못한 것들은 앞으로도 계속 참회하겠다.고 말씀하셨다. 남은 며칠 동안에 참회를 끝내시겠다는 말씀은 아닐 테니까, 스님은, 다음 세상에서 다시 생명을 갖고 오실 모양이다.

 


출처: [인터넷 교보문고] 신. 1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간 신.과 사이먼 싱의 책 빅뱅.을 빌렸다. 베르베르의 책은 인간과 천사의 시기를 거친 주인공들이 마침내 신.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는다는 소설이고, 빅뱅은 우주의 탄생에 대한 천체물리학 이야기를 일반인을 대상으로 쉽게 풀어 쓴 대중과학서적이다. 이번에는 제법 주목을 받는 신간이라고 해서 기대를 했었는데, 신.은 다 읽지 못 했다. 10년 동안 100번을 고쳐 썼다는 그의 첫 소설 개미.와, 인류의 사후세계를 화려하게 풀어낸 두 번째 소설 타나토노트. 정도가 베르나르의 절정이었다는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후에 나오는 그의 소설들은 매력적인 아이디어로 시작하지만 시간을 두고 익혀내지 못해서 이야기의 밀도는 성글고 사건의 연결은 필연성이 떨어진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선명하고 단호해서 이야기 속에 녹아나지 못 하고 독립된 채로 공중에 떠 있다. 이야기는 그 떠 있는 메시지만을 빤히 바라보며 나아가서 자연스러운 감정이입이 좀처럼 어렵다. 전체 여섯 권으로 나온 것인데, 결국 세 권을 채우지 못 하고 반납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우주의 어느 모처에 있는 섬에서 신이 되는 교육을 받는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우주관은 불교의 윤회사상을 밑재료 삼고 서구의 유일신 사상을 고명으로 올린 다음 그리스 신화를 드레싱해서 마무리한다. 인류는 윤회를 거듭하며 그 어느 순간에 깨달으면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 천사가 된다. 그리고 천사의 어느 단계를 지나면 신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이 땅의 많은 종교가 현세의 너머에 대해 비슷한 장면으로 설명한다. (신이 되는 문제는 예외다.) 때로 천국과 지옥을 말하고, 신들의 동산을 말하고, 인간이 그 안으로 들어가서 존재로서의 업을 벗는 과정을 그린다. 지금의 모습으로 태어나기 전의 삶에 대해, 그리고 죽은 다음 다시 살게 될 삶에 대해 말한다. 잘못을 계속 참회하시겠다는 법정 스님의 마지막 말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삶 전에, 나는 어떤 삶을 살았었을까? 사람이기는 했을까? 아니면 짐승이었을까? 나무였을까? 원시 단세포 생물은 아니었을까? 생물이기는 했을까? 아니, 존재하기는 했을까? 이 물음들은 다음 생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해볼 수 있다. 사후 세계라면 심판.을 추가할 수도 있다. 내 양심의 무게는 내 심장보다 무거울까? 가벼울까? 나는 천국에 갈까? 지옥에 갈까? 윤회의 고리 속에서, 나는 어떤 다음 생을 살게 될까? 몇 번의 생을 더 살면 윤회의 고리를 벗어날까?

 


출처: [인터넷 교보문고] 빅뱅

소설 속에 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책들로 눈을 돌렸을 때, 유쾌하고 기발한 생각이 우주로부터 왔다. 사이먼 싱의 책은 우주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Big Bang 이론이 어떻게 생겨나고 발전되었는지를 다룬다. 저자는 학자가 아닌 다큐멘터리 제작자로서, 직접 제작한 다큐멘터리에 기초해 이 책을 썼다. 빅뱅.이라는 단어로 인터넷을 뒤져보면 검색결과는 실로 방대하다. 빅뱅.은 우주와 관련해서 쓰이는 것보다 대중문화 속에서 쓰이는 빈도가 월등하다. 책은, 이미 일상의 범주로 편입되어 익숙하게 들리는 단어인 빅뱅.의 등장이 사실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고, 그 성장 또한 한 편의 무협소설처럼 드라마틱했다고 쓴다.

 

빅뱅 이론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책은 도입부에서 인류가 어떻게 우주에 대한 이성적인 사고를 시작했는지 역사를 더듬어 간다. 샤먼과 토템의 시대를 지나 신이 만물을 주관한다는 중세를 거친다. 그리고 그 말미에서 선구적인 과학자들에 의해 우주는 ‘결코 파악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 아닌 ‘아직 파악되지 않은 이성의 영역’으로 돌려진다. 그리고, 이제 빅뱅이 등장한다. 그 시초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다. 아인슈타인은 거울 앞에 서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그의 사고실험을 통해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을 차례로 완성한다. 그리고 이 상대성이론의 계산에 근거하여, 르메트르 등은 우주가 계속 팽창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우주의 계속적 팽창은, 시간을 되돌리면 그 어느 과거에서는 현재보다 더 작았을 것이라는 예상을 가능하게 하고, 결국 과거의 과거 언제쯤에 우주는 한 점에 모인다. 빅뱅.의 탄생이다. 이것이 1920년 대의 생각이다. 그리고 이 때부터 1960년대 빅뱅이 지배적인 우주론으로 인정받을 때까지, 약 50여 년간 빅뱅 이론을 둘러싼 무협 활극이 펼쳐진다.

 

과정을 요약해 보면, 아인슈타인은 본인이 상대성이론을 구축했지만, 이론을 적용할 경우에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우주의 계속적 팽창을 인정할 수 없었다. 당시에는 ‘우주는 정적이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아인슈타인 역시 우주가 한결같기를 원했고, 그래서 본인의 계산에 약간의 변형을 가함으로써 우주의 항상성을 지켜내려고 했다. 우주상수의 도입이 그것이다. “1917년,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하고 나서 1년 후에 아인슈타인은 그의 방정식의 해 중에서 우주 전체의 시공기하를 기술하는 것을 찾으려고 애썼다. 당시에 받아들여지고 있던 우주론의 견해에 따라 아인슈타인은 특히 균일하고 등방적이며, 유감스럽게도 정적인 해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해는 발견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우주론의 전제조건들을 만족하는 모델을 얻기 위해 아인슈타인은 소위 우주상수라는 항을 도입함으로써 그의 방정식을 멍청이로 만들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 항은 본래의 이론이 갖는 우아함을 크게 손상시켰으나, 먼 거리에서 중력의 끄는 힘을 상쇄하는 데는 쓰일 수 있었다.” 최초의 3분, p.60

이후 다른 학자들에 의해 우주의 계속적 팽창을 예견하는 계산들이 나오지만 아인슈타인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 때 새로운 무공이 등장하는데, 미국 윌슨 천문대의 수장으로 있던 허블은(우주 공간에 떠 있는 허블 우주망원경이 그의 이름을 땄다) 별들의 적색편이(도플러 효과를 천체관측에 활용한 것으로, 후퇴하는 별들은 본래의 파장보다 적색으로 몰린 파장을 낸다)를 관찰해냄으로써 마침내 우주의 계속적 팽창이 확인하고, 아인슈타인은 이 곳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 완벽한 아름다움에서 한 치 벗어났던 그의 상대성 이론도 우주상수를 제거함으로써 다시 온전한 아름다움을 획득한다.

 

(--아인슈타인은 처음 상대성이론을 완성한 후 그 완전한 단순성에 대해 ‘아름답다’는 찬사를 보냈다. (빅뱅 p.166) 그 후 어쩔 수 없이 우주상수를 도입해야 하는 상황 앞에서, 그 아름다움이 훼손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단순히 복잡한 것이 아름답기는 어렵다. 온갖 복잡한 엉킴도, 그 복합골절이 마침내 거대한 단순함 속에 읽힐 때, 존재는 아름다움을 획득한다. 상대성이론은 과학적 수식인 동시에, 아인슈타인의 미학이었을 것이다. --)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지금보다 우주의 별들이 더 가까이 있었다는 뜻이다. 더 가까워지고 더 가까워지면, 우 주는 한 점에 모인다. 우주의 팽창을확인하는 것은 역으로 빅뱅의 존재를 생각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빅뱅의 이전을 상상할 수 없었던 학자들은 여전히 그 이론에 동의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 리고 빅뱅이론의 가장 큰 라이벌인 ‘정상우주론’이 남아있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주 는 팽창하지만 일정 기간 동안에, 팽창하는 우주 사이에서 새로운 천체들이 생겨나고, 결국 우주의 단위 면적당 밀도는 일정하게 유지된다. 정상우주론은 그렇게 우주를 탄생과 종말의 선 위에서 비껴나게 만든다. 영원히 지속되는 우주는 그 자체로 완벽해 보였다. 한 동안 빅뱅이론과 정상우주론은 공존했다. 그러나 빅뱅이론이 예측한 우주배경복사가 1960년대 전파안테나를 통해 관측됨으로써, 마침내 활극은 끝난다. 이후 다양한 관측 결과가 빅뱅이론을 지지했고, 현 재 우주의 탄생에 대해 빅뱅이론은 지배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빅뱅은, 100억 년에서 200억년 사이 과거의 어느 순간에 우주는 폭발을 통해 탄생했고, 이 폭발을 통해 시공간이 탄생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었냐는 질문 자체는 성립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전’이라는 단어는 시간 단위인데, 시간이 빅뱅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현재의 과거로 가면 우주의 기원에 닿고, 현재의 미래로 가면 우주의 종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주는 계속 팽창할 것인가? 아니면 어느 순간 팽창을 멈추고 다시 수축할 것인가? 우주의 시작과 끝은 (적어도 현재까지는) 과학의 영역 밖에 있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한 질문들은 (역시, 적어도 현재까지는)종교가 그 답(이라고 믿는 것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 우주의 시작과 끝을 통해 내가 태어날 다음 세상을 짐작하는 작업을 해 볼 수 있다. 과학은 별로 동의하지 않는 것 같지만, 어쨌든 종교는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빅뱅의 이전, 그 창조의 순간이 바로 신의 영역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상태는 잠정적일 가능성이 높다. 과학은 갈 수 없는 곳은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다만 아직 가지 못 한 곳이 있을 뿐이다. 나는 이야기의 진로를 우주에서 종교로, 그리고 다시 다윈의 진화론으로 잡는다.

 


출처: [인터넷 교보문고] 만들어진 신

종교가 이야기하는 창조의 순간, 신의 영역에 대해 말하기 위해 한 권의 책을 더 불러온다. 얼마 전까지 손에 잡고 있던 책은 리차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다. 내가 이 책을 구입한 것은 2007년 11월이고, 출간된 지 석 달 남짓한 책인데도 불구하고 구입한 책은 23쇄 판이다. 많이 팔았다. 책은 다윈의 진화론에 그 생각의 뿌리를 두고 있다. 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도대체 동의할 수 없는, 비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양측의 입장이 소개되고, 도킨스는 진화론을 무기 삼아 유일신에 바탕하는 대부분의 종교의 교리, 경전을 반박한다. 반박이라고는 하지만 그 공격은 일방적이고 그 강도는 학대에 가깝다.

 

5장에서 소개하는 문화적 유전 단위, ‘밈’은 인상적인 부분이다. 물론 다윈의 이론을 문화에 적용시킨 것은 리차드 도킨스가 처음 시도한 것이 아니고, 밈이라는 단어 역시 그의 작품은 아니다. 다만, 나는 이 책에서 밈을 처음 알았다. 도킨스에 따르면, 다윈 이론을 적용할 수 있는 최소 단위는 ‘유전자’이다. 유전자는 그 자신의 보존과 번영을 위한 방향으로 진화한다. 개체의 행동은 어떤 경우에 비합리적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유전자 단위에서 볼 때 합리적인 것이 개체 단위로 확장되면서 생긴 오류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다위니즘을 문화의 영역으로 옮겨올 때, 유전자에 해당하는 단위가 바로 ‘밈’이다. 종교는 그런 ‘밈’의 부작용 또는 의도하지 않은 파생적 기능으로 설명된다. (다위니즘을 사회 조직에 그대로 적용할 때 발생하는 문명의 정글에 대해서는 여러 비판이 있어왔지만, 이 이야기에서 다루는 방향과는 다르다.)

 


출처: [인터넷 교보문고] 마지막 3분(사이언스 마스터스 3)


출처: [인터넷 교보문고] 최초의 3분

다음 세상에서 내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하려면, 우선 그 단위를 어디에 둘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자연에서 다위니즘의 단위가 ‘유전자’이고 문화로 적용하면 ‘밈’이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우주론에서 이야기를 전개할 때 기본으로 삼아 마땅할 단위는 무엇일까? 그 답을 위해 두 권의 책을 더 불러 온다. 스티븐 와인버그의 최초의 3분.과 폴 데이비스의 마지막 3분.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앞의 책은 빅뱅으로 우주가 생겨난 직후의 3분을 다룬다. 1976년에 처음 나와서 1993년에 2판이 나왔다. 천체물리학 분야는 최근의 성과가 두드러지는 영역이어서 20여 년의 시간차를 둔 책은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이 책의 경우는 2판에서 그저 최근의 성과를 마지막에 덧붙인 것이 전부다. 대중을 위해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다루는 내용은 물리학 수학 화학을 방대하게 써서, 관련 분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으면 좀처럼 쉽지 않다. 수식이 나오는 부분, 화학 반응이 나오는 부분을 중간중간 건너뛰며 읽으면 어느새 후기를 읽게 된다. 그리고 다음 책은 생겨났으니 사라지는 것이 마땅할 우주의 그 마지막을 상상해 본다. 한 권이 창세기.라면 한 권은 묵시록쯤 되는 셈이다. 마지막 3분.은 그 서문에서, 최초의 3분.과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가 만든 계보를 따른다고 말한다. 책은 문고판 크기에 좀처럼 우주와 어울리지 않는 서정적인 하드커버 제본이어서 들고 다니며 읽기에 좋다. 그리고 전체 내용과 별개로 우주의 미래를 상상하는 8장은 그럴 듯한 SF서정시라고 해도 좋겠다. 1994년에 출판해서 2005년에 한국어판이 나왔다.

 


출처: [인터넷 교보문고] 시간의 역사

우주에 대해 말할 때, 우선 그 무진장한 공간의 크기와 시간의 길이에 생각해야 한다. 상상의 영역 속에서, 시공간을 확장시켜야 한다. 두 책에 따르면, 우주는 빅뱅 직후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 급속히 팽창해서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우여곡절을 거치며 오늘에 닿아 있다. 그 시간의 단위에 대해 말하면, 지구의 종말을 계산해 볼 때 나오는 여러 경우의 수 중에 어떤 것은 지구의 종말 시간을 10의 1500승 년이라고 예측한다. 10 뒤에 0이 1499개 더 붙는 숫자인데, 써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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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0000000000000000년이다. 생활에서 통용되는 숫자 단위는 일, 십, 백, 천, 만, 억, 조 정도가 고작이다. 그 너머까지 간다 해도 경, 해, 자, 양, 구, 간, 정, 재, 극, 항하사, 아승기, 나유타, 불가사의까지다. 마지막의 불가사의는 10의 62승이다. 존재하는 숫자 단위의 마지막까지 간 다음 다시 0을 1438개 더 붙이는 숫자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공간의 크기 또한 다르지 않다. 광년.이라는 단위는 비교적 익숙하지만, 실제 그 거리를 체감하는 것을 불가능에 가깝다. 빛이 숨도 안 쉬고 1년을 가야 하는 이 거리가, 우주에서는 보잘것없는 단위가 된다.

 

그 광막한 시공간 속에서, 우주는 탄생했고 별은 진화해왔다. 빅뱅으로 생겨난 물질들이 극히 미미한 우주적 불균형 속에서 중력작용으로 모이기 시작했고, 마침내 별이 탄생한다. 그리고 내부 에너지를 모두 태운 별은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후 마침내 폭발로써 생을 마치는데, 그 때 초고온 속에서 생성된 다른 원소들은 폭발과 함께 우주 공간으로 튕겨져 나가 우주를 떠돌다가 다른 별의 탄생을 이끈다. 물리적 환생이고 윤회의 고리다. 아무런 증거 없이 그저 막연한 기대로 영혼이 윤회한다는 말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윤회다. 이 윤회의 개체 단위는 아마도 별일 것인데,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그 단위는 무한히 쪼개진다. 별이라는 개체는 그 구성성분으로 나누어지고, 기관, 분자, 원자로 쪼개진다. 원자는 쪼개지고 쪼개져서, 현재는 쿼크.를 그 최소단위로 본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최소 단위가 쿼크인 셈이다. 이제, 나의 윤회가 출발하는 시점에 다 왔다.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선언은 인간.이라는 개체를 그 기본 단위로 삼는다. 그러나 하나의 인간을 나누면, 기관으로 분리되고 분자로 분리되고 원자로 분리되어서 결국에는 쿼크의 조합으로 귀결된다. 생각.이라는 과정은 뇌 속에서 전기신호가 오고 가며 뉴런을 자극하는 물리적 과정이다. 따라서 입자 또는 파동 작용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아인슈타인의 이론대로 빛을 추월하는 속도는 존재하지 않는다면, 생각하는 과정 또한 빛(입자 또는 파동)의 상호 작용으로 구축되는 것이고, 생각의 종합체인 기억.이나 그 추상 형태인 인격 또는 영혼 역시 어떤 근원 물질들의 조합상태로 파악할 수 있다. 생각의 구성 입자와 별의 구성 입자가 같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잠시 샛길로 가면, 이 단계에서 영혼의 전송 내지 복사에 대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입자의 구성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한 후, 그 순간을 고정시켜 신호를 기록하고 다른 곳에서 그대로 재생시킨다면 영혼은 전송되거나 복사될 수도 있을 것이다. 디지털 신호를 재생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물질을 나누고 나누어 양자역학의 단계까지 나아가면 그 세계는 더 이상 물리적 명확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에너지 값의 불확정성이다. 공학자들의 거시 세계에서 에너지는 언제나 보존된다. 이 법칙은 아원자 양자 영역에서 배제된다. 에너지는 한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자발적이며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변한다. 관련된 시간 간격이 짧으면 짧을수록 이 같은 무작위적인 양자 요동이 더욱 커진다.” 마지막 3분. P.67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양자적인 대상의 모든 속성을 정확히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자는 정확한 위치와 정확한 운동량을 동시에 가질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전자는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에너지 값을 가질 수가 없다. 완벽한 물리적 고정값 대신 다만 확률로 말할 뿐이다. 하나의 물리적 조합은 쿼크 단위로 볼 경우, 고정된 불변의 형태가 아니라 다만 운동하는 입자들이 일정 수준의 확률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결합된 형태로 파악된다. 확장시켜 말하면, 당신이라는 하나의 개체는 불변의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무한의 조합이 운동하고 있는 어떤 상태.라고 보는 것이 더 그럴 듯하다. 그 운동이 수용 가능한 확률 안에 있을 때 당신으로서의 당신의 개체성은 유효한 것이고, 반대의 경우에 그 조합을 더 이상 당신이라고 부르지 못 할 것이다. 억지를 부린다면 여기에서 들뢰즈를 끌어와도 틀리지 않는 것인데, 고정된 어떠한 형태도 없고, 다만 현재의 당신은 하나의 배치.에 그친다고 설명할 수 있다. 그 조합은 앞뒤에 붙는 다른 구성 형태와 특정한 시간에 절대적으로 제한된다. 세상의 모든 고정된 것들이 허물어지는 경지다. 이제, 고정된 개체로서의 영혼을 허물 차례다.

 

여전히 유효한 물리학의 기본 법칙들 중 하나, 열평형 내지는 에너지 보존 법칙을 떠올릴 수 있다. 형태가 변한다고 해도 그 에너지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종교에서, 사람이 죽은 다음의 영혼은 다음 세상에서 다른 존재로 태어나거나, 심판대에서 그 잘잘못을 가려 밝은 곳으로 올라가거나 어두운 곳으로 떨어진다. 환생이든 천국이든 지옥이든, 그 판단들은 영혼을 더 이상 분리될 수 없는, 또는 변하지 않는 최소의 단위로 가정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별이 태어나서 죽고 다시 다른 별로 태어나는 과정을 적용시켜 본다면, 한 인간 개체가 생을 마치면 몸을 이루던 모든 구성 성분은 분해될 것이다. 영혼 또한 그 구성 성분을 빛의 입자와 파동이라고 생각할 때 분해 과정에서 자유로울 까닭은 없다. 그리고 분해된 입자의 일부는 다시 사람의 구성 성분이 될 수 있고, 또 일부는 바다가 될 수 있고, 일부는 컵이 되거나 일부는 종이가 되거나 일부는 바람이 되거나 일부는 전기가 되거나 일부는 소리가 되거나 일부는 아직 이름 붙지 않은 무엇이 될 것이다. 영혼이 더 이상 분해될 수 없다는 생각을 포기하면, 영혼이 고유한 최소의 개체 단위라는 생각을 포기하면 그 구성성분은 곳곳으로 나누어지고 재조합 될 수 있다는 결론에 닿는다. 환생일 수 있고 윤회일 수 있겠지만, 그 윤회는 영혼 개체를 단위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입자 단위의 윤회에 그칠 것이다. 물론 영혼이라는 조합 형태에 어떤 특수 지위를 부여할 수도 있다. 특이한 형태로서 일반적 물질의 분해 과정과 다른 방식의 분해 과정을 따를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영혼이라는 존재를 비물질적이고 초월적인 존재로 남게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부분 또한 과학이 닿을 수 없는 영역이 아니라 아직 닿지 못 한 영역으로 보는 것이 당대의 합리성에 부합한다.

 

여기서부터는 생각을 조금 거칠게 펼친다. 우선 아이디어 수준의 생각들을 나열하고, 이후 다음 원고들을 연재하면서 차근차근 다룰 작정이다.

 

영혼이 윤회의 최소 단위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하면 많은 것이 변한다. 우선, 환생에 대한 기존의 개념이 깨진다. 당신이 자각하는 당신.이라는 존재(영혼)는, 과거에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당신의 영혼은 어떤 다른 영혼이 환생한 것도 아니고, 죽은 뒤에 심판의 저울 위에 올려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당신의 물리적 숨이 끊어지고 당신 뇌에 산소 공급이 중단되어 세포들이 죽으면, 그리고 죽은 세포들이 부패하면 당신의 영혼을 이루던 물질들 또한 분해되고, 당신은 완벽하게 소멸한다. 설사 당신을 이루던 입자들이 다른 형태로 조합된다고 해도, 그 조합은 더 이상 당신이 아니다. 개체의 물리적 생명이 끝나면, 당신이 자각하는 세계도 소멸한다. 당신의 우주가 끝장난다. 많은 돈을 벌기? 대단한 책을 쓰기?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 먼 곳을 여행하기? 세상에 기여하기? 모두 부질없다. 당신 사후의 세계가 당신을 어떻게 기억하든, 그것은 그들의 우주일 뿐 당신의 우주는 아닐 것이다. 완전하고 분명한 소멸이다. 우주의 시간에 대해 생각하면 개체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더욱 분명하게 덧없어 보인다. 겨우 100년의 삶으로 우주의 시작과 끝을 재려는 시도는 주제 넘어 보이고, 겨루고 버티며 이루고 살아내려는 노력들은 허무해진다.

 

결국, 모든 것은 자기 완성, 노골적으로 쓴다면 자기 만족으로 귀결된다. 개체는 자기만족을 달성하기 위해 생존한다. 시대에 기여하겠다거나 역사에 남겠다는 의지 역시, 후대의 역사적 평가가 영혼에 다시 어떤 피드백을 주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기여한다는, 시대에 획을 긋는다는 그 생각이 보다 큰 자기만족을 주기 때문이다. 당대의 평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동조차도 그 행동이 스스로의 신념에 부합한다는, 결코 신념을 꺾지 않았다는 자기만족의 형태로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가장 일반적으로 역사적인 자기만족의 방식은 번식.이었을 것이다. 유전자에 입력된 생존의 본능은, 자신과 가장 닮은 유전자 조합, 즉 다음 세대를 생산해서 자신의 조합을 이어가게 하는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다. 예술이나 종교, 득도의 만족 또한 형태는 다를지라도 결국 같은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사진을 찍고 문장을 만들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내가 가진 것으로 내 세계에 기여하는 것이 나를 즐겁게 하니까, 여기에서 만족을 느끼니까 이렇게 움직인다.

 

생존의 본능은 유전자 단위에서 추구된다고 해도, 만족감의 단위는 인간 개체다. 한 명 지식인의 정보가 한 질의 백과사전을 넘을 수 없고, 한 명 역사의 힘이 한 대기중기를 넘을 수 없다고 해도 우리가 한 명의 지식인과 한 명의 역사를 대단하게 보는 것은 그 지식과 힘이 하나의 인간 개체를 통해 구현되고 있기 때문이고, 이는 일반적인 사고의 단위가 인간 개체에 있다는 뜻이다. 결국 자기 만족이나 자기 완성은 그 개체를 단위로 삼아야 할 듯하다. 그렇다면 조금 성급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행복해야 한다.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행복해야 한다. 행복은 삶의 목표가 되어야 마땅하다. 만약 자신의 불행을 100% 확신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까지 오로지 불행했고 현재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분명하게 불행 밖에 없을 것이라면, 죽는대도 말릴 수 없다. 당신이 죽으면, 당신의 불행한 우주는 끝이다. 다만, 그 확신에 일말의, 10의 마이너스 1500승 만큼의 불확실한 부분이라도 있다면, 살아라. 살아서 마지막 남은 그 불확실성이 제거되고 마침내 100%의 불행을 확신하게 만들어서 그 때 죽든지, 아니면 그 작은 가능성이 조금씩 자라나서 현실이 되는 것을 확인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단위를 인간 개체 대신 공동체에 맞추면, 종교와 도덕교육에 대한 단서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종교나 도덕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자료는 앞으로 검토해야겠지만, 유전자 단위의 생존 본능을 공동체에 대입시키면 해당 공동체의 지속을 위한 종교, 도덕의 역할을 조금 생각해 볼 수 있다. 질문 하나를 덧붙일 수 있는데, 내가 착하게 살고, 남에게 기여하려는 것은 내 유전자의 오래된 명령일까? 아니면 도덕 교육의 결과일까? 리차드 도킨스는 위의 책에서, 인간은 유전자의 명령만으로 착하게 살도록 되어 있다고 하는데 마음껏 동의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당대에 있어서의 종교의 절대적 필요성을 긍정하기도 어렵다.

 

앞으로 더 이어갈 이야기들은 이렇다.

1. 영혼이 입자 단위로 분해된다는 생각을 검증하기 위해, 유기물이 분해되는 과정에 대해 찾아보려고 한다.

2. 인류의 문명사와 비교하기 위해, 개미의 문명사에 대한 자료가 있는지 보려고 한다. 개미가 이룩한 거대한 집단 거주체계를 볼 때, 진딧물을 사육하는 것도 언젠가 어느 개미에게서 처음 발명되었을 것이고, 직업의 분화, 개미굴의 구축 등이 개미가 탄생하던 그 순간부터 함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개미들의 역사와 인류의 문명사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본능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문화를 구축한 다른 생명집단의 구조를 살피는 것은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이다. 이 넓은 우주에, 인류만 살기에는 좀 이상하잖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