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짧은 글 모음
2007.10.29 07:37
구해 놓은 박스 몇 개를 열어서 책을 넣었다. 잠자려다 말고 갑자기 일어나 책장을 털었다. 책은 늘어나고 책꽃이는 그대로여서 어떤 책들은 책 위에 누웠거나 책 앞에 기댔다. 그런 책들은 제법 먼지가 덮여있고 모양도 뒤틀려 있다. 책꽃이에 기대거나 누워있지도 못 한 책들은 작업실 여기저기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거나 촬영용 소품이 있는 자리 한 켠에 들어가 있다. 한 두 번 읽고 책장에 모시듯 넣어두는 깔끔한 책들에게 미안해서 되는대로 주변 사람들에게 빌려주었는데 여러 사람 손 거쳐오는 사이에 책들은 많이 상했다. 여기저기 망가진 부분들이 보여서 책 담는 동안 또 미안했다. 이렇게도 미안하고 저렇게도 미안하다면 그나마 많이 읽혀서 닳아 망가지는 편을 택하겠다.
상하이에 와서만 다섯 번째 집을 옮기고 책은 네 번 옮긴다. 책 옮기는 일이 이사 중에 제일 큰 일이다. 한국 다녀올 때마다 조금씩 구해오고 손님 올 때마다 몇 권씩 부탁해서 모은 책들이 이제 제법이다. 보고 있으면 든든해서 좋은데 이사갈 때는 발이라도 달려서 저것들이 차례로 걸어가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책은 무겁다. 책장이 하나쯤 더 있으면 좋겠지만 외국생활이라는 것이 언제 떠날지 모르고 언제든 떠날 마음을 한 구석에 남겨두는 것이라 새 가구 장만하는 일은 썩 기껍지 않다. 아마 새집에서도 운 나쁜 책들은 방 여기저기를 방황할 것이다.
책의 크기는 다양하다. A4 사이즈보다 큰 잡지도 있고 들고 다니기 좋은 문고판 크기도 있다. 책을 포장할 때는 책들마다의 크기를 잘 살펴서 상자 안에 가지런히 담아야 한다. 그래야 책이 덜 다치고 양도 많이 넣을 수 있다. 최근의 책들은 기본적인 판형에서 조금씩 변형한 것들이 제법 있다. 그래서 어떤 책은 조금 짧고 어떤 책은 조금 높거나 길다. 널리 통용되는 몇 개의 판형 외에 조금씩 다르게 만들어진 판형들은 책 싸는데 어려움을 준다. 책디자인에 대해 잘 모르니 무슨 이유가 있어서 그랬겠지 싶으면서도 들고 다닐 때 조금 더 불편하게 느껴지는 넓은 책들은 썩 반갑지 않다.
2007.10.26 10:25
이사를 가려고 한다. 작업실을 연 지 2년이 되어가고 작업실 소파에서 먹고 자는 일이 또 2년 가까워 온다. 승희 형과 작업실을 함께 쓰기로 하고, 줄어든 임대료로 집을 구하기로 했다. 여러 가지 조건들이 맞아 떨어져서 집을 구해 나가는 결정은 퍽이나 현명하고 시의적절한 판단이 되었다. 운영비에 대해 생각한다면 한 명 정도 파트너를 더 구하는 것이 좋은데 아직 마땅한 사람을 구하지 못 했다.
집은 작업실 앞에서 버스를 타고 20분쯤 가야 닿는 아파트 단지에 있다. 3주 정도 집을 보러 다녔는데 마음에 드는 집을 수용 가능한 가격대 안에서 구하는 일은 어려웠다. 촬영을 제외한 모든 작업을 수행하는데 부족하지 않을 작업실 겸 주거공간을 원했다. 처음에는 시내 중심에 있는 낡은 옛 건물들에 낡은 풍경처럼 들어앉을 생각을 했는데 혜정이의 충고를 듣고 몇 번 고민하다가 생각의 방향을 틀었다. 무한으로 낮아질 수 없다면 무한으로 높아지면 되겠다 싶었다. 낡은 풍경처럼 녹아들 수 없다면 높은 바람처럼 깃들면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구한 집은 대단위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고층 아파트다. 중국의 아파트는 단지 건축이 끝난 상태에서 분양되고 분양받은 사람들은 각자의 취향에 맞추어 집 내부 인테리어를 시작한다. 이번에 내가 들어가기로 결정한 집은 아직 인테리어가 되어있지 않은 집이다. 바닥은 시멘트가 그대로 드러나 있고 그 어떤 가구도 없으며 욕실 공간에는 파이프 라인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방을 구분하는 공간은 문이 없어서 그대로 뚫려 있고 천장에는 전선 끝에 달랑 매달린 전구가 드러나 있고 창문은 커튼도 없이 바깥 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내부 인테리어가 끝난 집은 훨씬 비싼 월세를 요구했고, 텔레비전도 안 보고 장식장도 소파도 필요 없는 나는 굳이 비싼 값을 치르면서 화려하게 치장한 집에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선택한 집은 무엇도 없어서 되려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이다. 공원과 강이 내려다보이는 북쪽 공간에는 큰 책상 두 개와 책장을 놓아 작업실로 쓰고, 그 보다 안쪽에 있는 공간은 가운데 침대만 덜렁 놓아두려고 한다. 작업실에서 침대로 쓰던 소파는 책상 옆 창가에 두어야겠다. 집주인 쪽에서 세탁기와 온수기, 냉장고 정도는 구해주기로 했으니 사는 데 큰 지장은 없을 것이다. 집 바로 아래는 대형 마트가 있고 5분만 걸으면 작가들이 뭉쳐 있는 모간산루가 있으니 살고 다니기에도 편할 것이다. 아무 것도 없어서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참 마음에 드는 집이다. 집은 새로 지은 아파트 26층에 있다.
옛날 큰 스승들은 소유를 곧잘 집착과 연결시켰다. 집착은 번뇌와 닿아 있다고 했다. 그 분들이 하신 말씀이니 아마 맞을 것이다. 다만 도 닦는 분들이야 소유를 멀리함으로 해서 집착과 담을 쌓는 것이 방법이겠지만, 현실에 발 붙여 사는 사람들은 소유와 그에 따른 집착을 긍정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텅 비어있는, 아직 계약서에 싸인도 하지 않은 아파트를 보며 이 곳에 오래 있고 싶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영업에 한 없이 서툰 나라도 어떻게 움직여서 일을 좀 더 많이 하고 그래서 이 집에 걱정 없이 오래 머물만큼의 돈을 벌어야겠다 싶다. 변화로 인해서 생겨나는 이런 자극들은 참 반갑다. 소유와 집착이 작은 동기가 되어가는 과정은 재미있다. 그런가? 움직여야 소유할 수 있기도 하고 소유했기 때문에 움직여야 하기도 하는 것일까? 사람 사이에도 그럴까? 내가 모든 준비를 끝낸 다음 너를 만나러 가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과, 너를 만났으니 나는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은 어쩌면 아주 조금밖에 다르지 않은 것일까? 함께 머물면 그 '함께'와 '머묾'을 위해서 나는 더 열정적으로 살게 되는 걸까?
다음주에는 이사를 해야겠다.
2007.10.11 23:37
바람이 서늘하다. 이불 걷어차는 새벽에는 가끔 깨고 이불 여며서 다시 잔다.
가을은 반전이 어울리는 계절이고 계기, 전환 같은 단어들이 어울린다.
반전이라.......
2007.09.29 07:10
살아남기.가 화두다. 아침에 인터넷에서 읽었는데, 카이스트가 교수 정년보장심사에서 예전과 달리 상당히 많은 인원을 탈락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그 여파로 교수사화에 긴장이 일고, 사회는 그런 긴장을 긍정하고 있다고 한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고, 교수 사회에 국한된 이야기도 아니다. 사방 모든 곳에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산다. 살아가는 목적이 단지 살아가는 것.이 되었다. 살아남은 자는 살아가는 것이고 살아남지 못 한 자는 살아가는 것이 아닌 게 되는 것일까?
한 번도 살아남기 위해 산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사진을 찍고 문장을 지어서 나는 나를 완성할 수 있으면 좋겠다. 완성.이란 끝끝내 닿지 못 할 목적지이겠지만 그 목적지를 향하는 길 위에서 언제나 걷고 있겠다고 다짐한다. 그 길위에서 살다가 그 길 위에서 죽을 때, 나는 비로소 아름다움을 완성하지 않겠냐고 생각한다.
사회는 오늘도 우열을 나누고 있다. 누가 더 잘 하고 누가 더 못 하는지 묻고, 어떤 것이 옳은지 어떤 것이 틀린지 가치를 매긴다. 그래서 잘 하고 옳은 것은 장려하고 못 하고 틀린 것은 공격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몰아낸다. 조금 다른 것을 색깔의 차이로 보지 않고 농도의 옅고 짙음으로 읽을 때 삶은 팍팍해진다.
세상 사람들이 저마다의 색깔로 아름다우면 안 되는가? 왜 자꾸 뒤를 몰아서 삶을 벼랑으로 내 모나.
2007.09.27 22:41
내 작업실은 내가 작업실로 쓰기 전에는 창고 건물 관계자들이 쓰던 회의실이었다. 간판은 회의실이었고 용도는 다용도였다. 회의도 하고 춤도 추고 강의도 했던 모양이다. 작업실을 준비하며 천장 한 가운데 있던 싸이키 조명 두 개를 떼어냈고 샹들리에 두 개 중에 하나를 떼어냈다. 공간의 네 귀퉁이에는 큰 스피커가 매달려 있고 텔레비젼이 가운데 두 개 매달려 있다. 스피커와 텔레비젼에 연결된 선을 따라 가면 옆 골방으로 이어지고 골방에는 엠프와 레이저디스크 플레이어를 비롯한 각종 음향장비들이 있어서 이 곳의 모든 소리와 영상을 그 곳에서 통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텔레비전 중에 고장난 하나는 버리고 다른 하나는 카메라와 연결해서 촬영용 모니터로 쓴다.
골방에 쌓여있는 음향장비들 중에서 엠프를 떼어오고, 골방으로 향하던 스피커들의 선을 따로 끌어내어서 컴퓨터 옆으로 오게 했다. 컴퓨터와 엠프를 연결했고 끌어온 선들을 엠프에 연결했다. 컴퓨터로 음악을 틀면 백 이십 제곱미터의 공간이 통째로 소리 낸다. 촬영이 있는 날에 모델과 이야기할 때는 음악을 낮추고, 일단 의사소통이 끝나고 셔터를 누르는 동안에는 공간 가득 음악을 채워서 서로의 고함소리가 겨우 닿도록 했다.
작업이 없고 할 일도 없는 날 늦은 밤에는 음악을 크게 틀고 작업실 한 가운데 의자 하나를 놓고 앉아 들었다. 가끔 와인도 한 잔씩 했다.
아마 내년에 나는 이 작업실에 없을 것인데, 작은 방에 앉아 작은 스피커로 음악 들게 될 어느 때는 오늘같이 음악 듣는 날이 그립게 떠오를 것이다.
2007.09.25 18:55
말이 생각을 앞질러 갈 때가 있다. 생각은 아직 다지지 못 했는데 말은 상대방의 추임새나 탄력이 붙은 말의 속도에 등떠밀려서 저만치 앞서 간다. 성급한 말인 것을 알면서도 다시 추스려넣을 수 없어서 답답하다.
아침부터 짐을 꾸려 공장 찍으러 다녀왔다. 추석이다. 내년 추석쯤에는 나도 집에 들러야겠다. 그럴 수 있겠다.
2007.09.20 07:20
큰 태풍이라고 했다. 자고 일어나니까 새벽 서쪽 하늘이 파랗게 맑고 동쪽 하늘은 흐리다. 하늘이 깨끗하다.
아직 고향에 살았던 때에 큰 바람이 지나고 나면 아버지와 바닷가로 갔었다. 큰 바람이 불어와서 바닷물을 뒤집어 놓으면 호흡이 어려워진 고기나 게 문어 낙지 같은 것들이 수면으로 뜨거나 해안가 바위에 붙어있고는 해서 뜰채 하나만 가져가서 잡아오고는 했다.
문장은 더디고 사진은 더딘 것도 못 된다. 사방 길바닥에 널려서 주워지기를 기다리는 문장들에게나 가야겠다. 큰 바람을 몰아가야겠다.
2007.09.10 18:50
하늘이 맑고 바람이 서늘하다. 서편 하늘은 아래는 붉고 위로 올라갈 수록 파랗게 변한다. 요 며칠은 계절 가는 것이 분명한데 모르는 척 딴청을 피웠다.
가을에 대한 대목은 어떻게 시작하던가?
컴퓨터가 망가져서 고쳐내는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불안불안하기는 한데 그래도 이제 제법 돌아간다.
나는 열심히 쓰고 있다. 나를 재촉하고 나를 몰아서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으로 적고 있다. 다 된 초고는 책상에 바른 자세로 앉아서 천천히 소리 내어 읽는다. 내가 내 문장을 소리내어 읽을 때처럼, 내 책을 보게 될 사람들이 그렇게 소리내어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바람이 참 좋다. 가을이 시작될 무렵의 바람은 가운데가 텅 빈 채로 불어온다. 어떡하나. 나는 그 빈 속을 채워줄 게 아무 것도 없는데. 너는 빈 대로 그렇게 살다가 가라.
2007.09.03 13:21
그러니까 오늘의 작전은 택배아저씨가 오시면 잡지사로 보낼 씨디 한 장을 보내고 점심을 먹은 후 소파에서 잠시 뒹굴거리고, 원고의 난징루 부분 초고를 저녁 전까지 마무리한 다음 저녁을 먹고 잠 자기 전까지 어제 마시다가 남은 와인을 마시면서 마감 닥친 커버 사진을 작업하는 것인데,
도대체 택배 아저씨는 왜 아직 아니 오시나. 그러니까 내가 일을 진행할 수가 없어서 지뢰찾기나 하면서 가려운 머리나 벅벅 긁어대면서 인터넷 식도락 기사나 들추고 있지 않나.
핑계 대마왕 반군.
2007.08.25 11:37
마음에 많이 안 드는 사진을 전해주고 대금 받아 돌아오는 길은 몽정한 새벽같은 기분이다. 돈은 빨간색 봉투에 황금실로 리본까지 두르고 들어 있다. 이런 엉망으로 만든 사진을 주었으니 돈을 조금쯤 돌려줄까 생각도 했었지만 두 달마다 내는 임대료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걱정하는 내 부지런함을 생각해서 봉투째 가져온다.
첩보에 따르면 지하철 3호선 역사 몇 곳에, 한 달쯤 전에 작업한 신인 배우들 사진이 아주 크다랗게 인쇄되어 붙어 있다고 한다. 3호선 타러 갈 핑계를 만들어서 역마다 내려봐야겠다.
모레는 웹진의 표지사진을 찍기로 했는데 한 컷 쓰겠다는데 여섯 벌을 찍어 달랜다. 찍는 만큼 받는 나로서는 받고 찍으면 되지만 언듯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오전 내내 인터넷에서 모델이 되는 아나운서의 자료와 사진이미지를 뒤적였다. 미리 알아보고 준비하는 과정은 모델과의 소통거리를 만들고 모델을 먼저 이해해서 기싸움의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다는 이점이 있지만, 자칫 준비한 자료와 이미 만들어버린 이미지 속에 모델을 가두어서 새로운 시도를 제한하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촬영 전까지 최대한 수집하고 분석하고 이해한 자료들을 촬영 시작과 동시에 모두 잊으려고 애쓴다. 조명이 켜지면, 모든 자료를 녹여서 해체시키고 내 안에 온전히 녹았을 거라고 믿고 만다. 그 다음부터 자연스레 뿜어내고 받아들이고 소통하며 사진.을 만드는 것은 더 이상 논리가 관여할 부분은 아니다. 이번 촬영은 Elle에서 소개했는데, 그래서 엘르를 용서하기로 했다. 지난 달 엘르와 처음 작업한, 3일에 걸쳐 찍는 네 커플의 시리즈 사진은 껌딱지 만하게 나왔다. 사진 나왔다는 소식 듣고 얼른 잡지 샀다가 그 사실을 확인한 후에 덮어서 멀리에 치워두고 아직 들춰보지 않았다. 이번 촬영을 마치면 근근 다음달 임대료를 준비할 수 있다. 도대체 프린터는 언제 사나?
마침 어제 수금한 돈으로 와인 한 병 샀다. 와인샵에 가면 49원에 살 수 있는데 집 근처 마트에서는 55원에 사야한다. 무거운 맛이 참 좋은데 값이 싸서 더 좋은 술이다. 한 동안 마시고 싶었는데 주머니가 비어 살 수 없었다. 며칠 뒤까지 초고를 넘기기로 했는데, 그 작업이 끝나면 한 잔 마셔도 좋겠다. 이제 문장이 막히면 냉장고 문 열어보면서 나를 닥달할 수 있겠다. 여름 끝무렵 작업실 옥상에서 맞는 밤바람은 혼자 잔 들기에 딱 좋다.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듭니다."
필립스의 예전 광고 카피다. 글쓰는 일이나 사진찍는 일이나 다른 여타 일에 이르기까지 작은 차이.의 거대한 간격.을 실감한다. 2%의 완성도가 걸작을 만든다. 2%가 보태어질 때 걸작이 되는 것은 좋은데, 2%가 빠졌을 때 평범함.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다. 평범함은 없다. 2% 부족한 결과물은 98% 모자란 결과물이다. 문장에서는 2%의 차이를 겨우 읽어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문제는 내가 이름 석 자 걸어서 돈 벌어먹는 사진에 있어서 아직 그 2%의 차이를 명확하게 가려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인터넷의 발달 덕분에 세계적인 사진 이미지를 모조리 참고할 수 있는 것은 좋지만, 덕분에 세계적인 사진 이미지.를 요구하는 클라이언트들과 만나는 일은 더욱 사진가를 곤란하게 하고, 이런 이런 이유로 이런 사진밖에 안 나온다고 말하는 것도 차마 사진가로서 못 할 짓이라 속에서만 답답하다.
사는 일은 헐겁다고 생각하는데, 헐거운 삶은 왜 이리 쉽지 않은가.
아, 동생이 제대했다. 내가 반군.이라고 부르는 유일한 녀석이다. 그 녀석 군대 가기 전에 중국에서 만났을 무렵에 나는 거실에 세들어 살며 거실을 방이라고 부르고 대나무 소파에서 잠잤었다. 제대할 때쯤에는 꼭 내 이름으로 작업실을 열고 내 이름으로 책 한 권도 쓰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작업실은 허덕이고 있지만 어쨌든 열었고, 책은 겨우겨우 잇대어 가고 있으니 조금 늦기는 했지만 영 틀려먹지는 않았다. 언제 다녀올까 싶었던 녀석이 벌써 왔다. 반군, 제대를 축하한다.
2007.08.17 23:39
맑은 저녁을 위한 포트레이트.
2007.08.13 14:11
하늘은 낮게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분다.
2007.08.11 20:07
이틀 일정으로 북경에 다녀왔다. 호텔에서 호텔로 택시 타고 가서 매니저를 찍고 다시 호텔에서 레스토랑으로 가서 사장을 찍고 새벽에 돌아와 몇 시간 자고 전날의 일정을 비슷하게 반복한 후 상하이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다.
북경은 맑았다가 흐렸고, 돌아오는 비행기를 기다릴 때 다시 맑았다. 공항에는 캐리어 들고 오가는 사람이 많았는데, 출장 때마다 30kg 가까운 장비를 지고 가는 나는 언제쯤 날씬한 캐리어 하나 들고 비행기를 타게 될까 생각했다.
한 달에 한 번쯤 출장을 간다. 꼭 창문쪽 좌석에 앉는다. 비행기가 막 뜰 때, 고도고 100m도 안 될 때 아래를 내려다 보며 '여기서 비행기가 추락하면 그냥 죽겠네.' 생각한다. 살아가는 일이 가볍다.
인터뷰 사진을 찍고 남은 메모리 전부를 하늘로 채웠다. 구름의 대륙에도 지형이 있다. 평원이 펼치고 강이 흐르고 산맥이 솟고, 바다는 멀어서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아서 미루어 짐작해야 했는데, 짐작의 저 끝 어디쯤에 바다는 분명이 있는 것 같았다. 비행기는 구름의 강을 길잡이 삼아 평원 위를 떠 갔다.
2007.07.26 23:03
아침에 잠시 나갔다가 왔더니 성균 형 연락이 왔다. 종일 작업실에 있을 거라고 말했다.
전기요금 걱정이 되는데 마침 머리도 아프니 잘 됐다 싶어 에어컨을 끄고 선풍기를 틀었다. 공장용 대형 선풍기는 책상 쪽으로 놓으면 태풍처럼 와서 책상 위에 있는 모든 문서를 날려버릴 기세다. 멀찍한 곳에 고개 돌려서 틀어 두니 내게 바람도 닿지 않는다. 옥탑방 작업실은 사방 열기를 끌어모아둔 것 같아서 가만 있어도 땀이 책상을 적신다.
형은 오후에 닭죽 한 그릇을 가지고 왔다. 어제가 복날이었다고, 불러서 같이 먹으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 했다고 직접 싸 왔다. 닭죽 한 그릇 주겠다고 온몸을 땀으로 적시며 온 형에게 나는 겨우 시원한 음료수 한 모금을 내어주고 고맙다는 말만 보태었다. 잠시 앉았던 형은 책 한 권 빌려 무더위 속으로 돌아나갔다.
전자렌지에 닭죽 한 그릇 데워 먹는데, 숟갈마다 어찌 그리 여러 사람 얼굴이 겹치나. 고마운 사람들, 미안한 사람들, 신세 진 사람들, 신세 갚아야 할 사람들 얼굴이 닭고기 한 조각씩 씹을 때마다, 뼈 한 조각씩 발라낼 때마다 눈 앞에 겹쳐서서 죽 뜨는 숟가락이 점점 무거워졌다. 바다 건너와서 그래도 닭죽 한 그릇 챙겨주는 사람이 있구나 생각하니 고맙고, 사방 상처만 새겨놓은 것도 같은 내가 이렇게 넙죽 받아먹어도 좋은가 생각하니 미안하고 슬프다. 죽 한 그릇이 참 넓고 깊다.
다 먹고 나서 전화 걸어서는, 겨우 고맙다.는 말 밖에 못 했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는데, 들어주었으면 싶은 말이 몇 마디 더 있었는데 나는 겨우 고맙다.고 하고 끊었다.
2007.07.20 16:08
촬영 갔다가 지난 번 바자 촬영 때 만났던 프로모터를 만났는데, 바자에서 내 사진이 스타일과 맞지 않아 안 쓸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몇 달 만에 듣는 소식 치고 썩 기분이 좋지는 않은.
바자와 처음 하는 작업이라 촬영 전에 이미 제법 많은 분량의 바자를 보고 갔었다. 내 사진이 그대들이 몇 달에 걸쳐 실어놓은 인터뷰 사진보다 분명히 나았다. 분명히 나았다.
사진이 셀렉되지 않았다고 특별히 분하지 않다. 어느새 생겨난 내 사진에 대한 고집이 반가울 따름이다.
2007.07.18 23:01
네 커플을 찍는, 정확하게는 세 커플 반을 찍는 엘르 촬영은 삼 일만에 끝났다. 모델들의 퇴근시간에 맞춰 진행된 촬영은 밤 열 시가 지나 마지막 컷을 찍었다. 사연있는 남자와 그 남자를 선택한 씩씩한 여자는 대여해온 금박 소파 위에서 재미나게 놀았다. 사연.에 주목한 나는 왁스의 음악을 준비해 두었는데, 음악과 상관 없이 커플은 잘 놀았고 오랜만에 왁스를 듣는 나는 촬영 내내 와인 한 잔 마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탭이 모두 돌아간 작업실에는 조각 케익 몇 개와 매콤한 치킨 버거 하나가 남았다. 케익은 너무 달아서 다 먹을 수 없어 두 개를 먹고 치킨 버거는 매운 맛을 참으며 먹었다. 그리고 보름도 훨씬 지난 와인 한 잔을 따르고 왁스를 더 크게 듣는다. 에디터와 아트디렉터는 어쩌나저쩌나 또 내 맘에 썩 들지 않는 컷을 치켜들고는 베스트.라고 외치며 갔다. 일말의 기대를 가져보지만 아마 일말의 기대마저 뭉개며 내일쯤에는 자신들의 베스트컷을 골라 후작업을 요청해 올 테다. 사진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은 이럴 때 표가 난다. 정말 제대로 된 고수는, 큰 느낌도 살리고 디테일도 훌륭하게 뽑아낸다.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느낌에 주목하고, 에디터는 깔끔하게 정돈된 포즈와 표정을 원한다.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 나는 힘이 없다.
최고기온. 38도를 찍었다. 습기로 가득 채워놓은 38도는 견디기 힘들다. 중국어에서는 이렇게 고온의 다습한 날씨를 먼.하다고 하는데, 한자로 쓰면 문 문자 안에 마음 심자가 들어 있다. 문 안에 들어 앉은 마음, 또는 문 안에서 나오지 못 하는 마음은 답답한 것일까. 더위가 무서워서 오늘은 하루 종일 에어컨을 의지했는데 전기요금 걱정에 트는 내내 마음은 조마조마했다. 켜고 끄기를 반복했다.
인터뷰이가 되는 연습. 길에서, 미술관에서 사람들을 만나 취재하는 인터뷰어의 입장에서 가끔씩 옮겨 와 취재당하는 인터뷰이가 된다. 주말에는 북경에 있는 잡지사 한 곳에서 인터뷰하러 온다고 한다. 잡지 이름을 말해주지 않는 것이 조금 걸리지만, 올 때 가져온다고 하니까 두고 볼 일이다. 다큐멘터리에 소개된 내 사진들에 대해 물으려고 한다는데, 다큐멘터리에 소개된 사진들은 한참 광각으로 시각을 왜곡시키고 느낌을 과장하던 무렵의 것이라, 지금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는 점이 조금 걸린다. 나는 무어라고 대답해 주어야 하나? 이번에 처음 작업한 엘르에서는 컨트리뷰트.페이지에 쓰고 싶다고 내 사진과 간단한 소개를 부탁해 왔다. 사진이야 준다지만, 어떻게 지금의 나를 200자 한자 속에 녹여 내나? 글쓰는 나에게도 어려운 주문이다.
황혼의 문턱에서 왁스는 사랑이 두렵다고 노래부른다. 꽃순이가 되어 바보같은 미소도 지어 본다. 언젠가 계절이 바뀌던 때에, 이제 여름이 갔다고, 여름은 다시 오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엘리베이터 아주머니에게 '아주머니, 무엇인들 다시 와 줄까요?' 속으로 물었다. 스쳐간 것이 다시 오지 않을 테고, 다시 와도 그 때 그 모습이 아닐 것이다. 책을 생각하며 나는 스쳐가는 것들의 이야기 말고 상하이에 머무르는 이야기를 하자고 다짐했는데, 찰나의 순간을 사는 존재들이 과연 머무름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괜한 욕심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잠시 점했다가 갈 것을 무엇 하겠다고 바락바락 내 흔적을 남기려고 애쓰는가 싶기도 하다.
오늘도, 말이 길다.
2007.07.18 16:28
분명히 한국 가기 전까지만 해도 좀 아슬아슬하긴 해도 프린터 구입할 돈이 수중에 있었는데, 뭐 계약 건이 조금 늦춰졌다고는 해도 계산상으로는 구입 가능했는데, 오늘 잔금 체크하니 임대료 내고 핼스장 연장하면 딱.이네?
연습장에 꾹꾹 눌러쓰는 오늘의 메모.
"돈 되면 곧장 프린터 지를 것.
지르고 볼 것!!"
2007.07.17 21:45
한국에 다녀오는 동안 썼던 메모들을 어제 저녁에 올렸다가 아침에 내렸다. 문장은 어떤 결기.를 전해야 하고 문장이 모인 글.은 생각과 삶의 정수.여야 한다. 아무래도 취한 기운에 올려두는 문장은 허무한 넋두리 느낌이 있어서 반갑지 않다. 메모는 다시 정리하고 다듬어야겠다.
어제 약속시간에 닥쳐 급하게 빵 한 조각 물고 육교를 건너는데 전화가 왔다. 투자회사인데 나를 좀 보아야겠단다. 오늘 가서 담당자를 만났는데, 오스트리아 출신의 친구는 영국의 면세지역에 본부를 두고 있는 자신들의 투자회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능하면 들어주려고 했는데 도저히 그럴 수 없어서 중간에 말을 끊었다.
"그래서요? 대체 왜 당신들 회사는 내게 전화를 한 거죠? 난 이제 막 시작한 사진가입니다. 돈도 없어요. 언제 투자할 수 있겠냐구요? 글쎄요. 몇 년은 걸리겠죠."
"그러게 말이예요. 당신을 내 데이터베이스에 끼워 넣은 그 빌어먹을 녀석은 대체 누구죠?"
입에 발린 몇 마디 인사를 반갑게 나누고 나왔다. 내 택시비는 어디서 보상받나?
신던 조리 신발이 떨어져서 새로 샀다. 한참 지친 목소리로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작전대로 카드 사용권한을 부여받았는데, 계산하려니 카드가 먹통이란다. 멀쩡한 지갑을 홀라당 털렸다. 반군네 지갑 현금보유고 0원.
상하이에 다시 온 순간부터 분주하다. 저녁에는 일찍 들어 와 두어 시간 저녁잠을 잤다. 마늘 장아찌와 김 몇 조각으로 저녁 먹고 잠시 쉬었다. 새로 사 온 책을 보며 쉬었다. 잠을 좀 잤더니 좀 살겠다.
이제, 일해야겠다.
2007.07.07 07:43
은경 누나네에서 아침 먹었다. 어제 푸동에서 촬영이 늦게 끝났고 작업실에 돌아오기에는 너무 늦어 은경 누나네에 갔다. 성균 형이 더위에 맞서며 맛나는 닭튀김 세트를 만들어 주어서 근사한 저녁을 먹었다. 형이 해주는 밥은 잡곡밥인데, 중간 중간 입 안에서 톡톡 터져서 씹는 맛이 좋다. 새벽에 형은 잠을 자고, 누나가 일찍 잠 깼다며 밥과 라면을 차려 주었다. 아침에 라면이 별로 끌리지 않아서 국물만 먹고 대신 밥을 가득 먹었다. 누나는 소파에서 고양이와 놀았고 나는 등 돌리고 테이블에 앉아 말 안 하고 먹었다.
혼자 밥 먹을 때, 먹는 일은 때로 고단하고 대부분의 시간에 경건하다. 밥숫갈이 밥그릇 한 번 긁을 때마다, 밥그릇 약간씩 점점 비어갈 때마다 먹는 일의 경건함이 온몸에 닿는다. 다 먹고 물러 앉아 물 한 컵 마시면 의식이라도 하나쯤 끝나는 것같다. 황지우는 뭐라고 쓰지 않았던가. 혼자 밥 먹는 늙은 사내의 뒷모습을 보며. 아마도 눈물이 난다.고 썼었지.
날씨가 덥다. 무척.
2007.07.05 19:16
낮 최고 기온이 36도를 찍었다. 체감온도는 더 높다. 아침 열 시 인터뷰로 시작해 저녁 일곱 시 로케이션 점검으로 하루가 끝났다. 한여름의 상하이를 걸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끈적끈적한 젤리 속을 걷는 기분이다. 걸음 걸음은 빈 공간 속을 흘러 나아가지 못 하고 사방을 가득 채운 습기의 젤리를 해치며 간다. 이 여름은 내 글의 또 하나 테마가 될 거다.
엘르에 다녀왔다. 주말 촬영을 잡았다. 초보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말에 힘을 실었다. 지난 번 바자 촬영은 아직 잡지에서 찾아볼 수 없고, 셀렉한 사진 연락도 없다. 엘르는 9월분 기사인데, 많이 일찍 결혼한 부부들을 찍는다고 했다.
조선 선비들이 문장 짓는 이야기를 묶어낸 책이 나왔다고 한다. 한국 가는 길에 사 와야겠다.
모간산루에서 포트레이트를 전문으로 그리는 이스라엘 화가를 인터뷰하고, 공동 작업을 하자고 약속했다. 몇 명의 모델을 골라서, 사진과 그림은 어떻게 모델을 기록하고 표현하는지 탐색해보자고 했다. 재미나겠다.
몇 줄 쓰지도 않았는데 사발면이 불었다.
2007.07.04 07:33
새벽에 명호가 떠났다. 남경으로 간다고 했다. 중국, 태국, 인도 등을 아우르는 1년 여정의 아시아 여행을 시작하는 녀석에게, 잘 가라. 무사히 와라. 인사하며 문 앞에서 보냈다. 어떤 떠나감은 돌아옴을 약속하고 어떤 떠나감은 돌아오는 것 따위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곧 다시 보자고 보내기도 하고, 오래오래 보지 말아서 모두 잊은 다음에야 보자고 보내기도 한다. 가고 보내는 것이 같다.
작년 겨울에 사서 쓰던 수첩이 마침 다 되어서 속지를 새로 갈았다. 다 쓴 수첩 겉에는 2006.11 2007.07 이라고 쓰고 서명했다.
2007.07.03 15:20
요 며칠 책이 풍년이다. 학교 후배 열대여섯이 다녀가며 선물이라고 책 몇 권을 가져다주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새 소설책과 들어보지 못 한 소설 몇 권인데, 열린책.이라는 출판사의 책들이다. 함께 오신 교수님은 조경학자의 시선으로 풀어낸 풍경 이야기 두 권과 건축관련 에세이집 한 권을 주셨다. 복단대 유학생 사이트에는 방학을 맞아, 졸업을 맞아 한국으로 돌아가는 유학생들이 중고장터에 책을 내어놓고 판다. 개인적인 생각에서야 책이란 것이 사람들 손을 떠돌아 다니며 읽히는 게 마땅하고, 다 읽었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면 되는 것이라고 믿어서 소설책 돈 받고 파는 것이 마땅찮았다. 생각을 바꾸어 괜찮은 소설들이 나오면 모조리 사서 모으기로 했다. 이번에 처음으로 몇 권을 샀는데, 여섯 권을 만오천 원에 샀다. 지난 일 년 상하이에서 학생으로 있었던 명호는 곧 일 년짜리 여행을 떠나는데, 내게 빌려간 책들 돌려주며 자기가 갖고 있었던 책 몇 권도 보태주었다. 나는 에어컨 밑에 소파 놓고 길고 게으르게 누워 책들 뒤적여 본다.
어제 아침 운동 가는 길에 작년 여름 출장길에 사서 신던 조리 슬리퍼 끈이 끊어졌다. 딱 일 년짜리였던 모양이다. 운동할 때 신는 운동화를 신고 돌아왔다. 아침에는 우산 손잡이에 묶여있는 끈이 끊어졌다. 이것 저것 끊어져나간다.
음,
일 년 가까이 만나오던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자연처럼 큰 흐름 안에 있기를 바랬지만 차근차근 쌓아온 시간은 단번에 끊어내기가 쉽지 않다. 감정은 여러 갈래로 오고 가서 모두 가려 적을 수 없고, 다만 헤어졌다고 쓴다.
2007.06.21 16:03
어제는 모간산루에 다녀왔다. 45mm, 17mm 렌즈 두 개와 수첩을 준비했다. 쓰겠다고 쓰겠다고 각오만 덧대어오던 책을 위한 첫 번째 취재다. 생각대로 진행된다면 내년 4월까지 원고를 마무리하고 8월에는 책이 되어 나올 수 있다. 그 때에는 연말 인사 보내는 사람들에게 메일을 보내서 책 좀 사 달라고 떼써 볼 작정이다. 책에는 상하이를 아우르는 열두 가지의 이야기가 담기는데, 이제까지 내 안에서 익어 온 온갖 문장들이 사방 펼쳐날 거다. 다만 사진의 방향성에 대해 확실한 답을 찾지는 못 했는데, 일관되고 구체적인 색을 가지는 동시에 허무맹랑하지 않은 사진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도대체 그런 사진은 어떤 사진일지 생각만 계속 하고 있다. 명색 직업이 사진가인데.
내일부터는 대통령 선거를 180일 앞두고 인터넷에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하거나 비방하는 표현을 쓰면 안 된다고 한다. 기사 아래는 수 많은 리플들이 달려서 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을 비난하고 있었다. 도대체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연말 대선은 흥미진진하겠다. 누가 된다고 해서 나라가 단 번에 좋아지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어떤 집단이 되느냐에 따라서 최근 수 년간 힘들게 다져온 나라가 한 방에 망가지는 경우는 생길 수 있다. 나라가 망할까 걱정하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개표를 지켜보아야 한다. 꼴이 꼴이 아닌 꼴이 되면 어떡하나. 해외 부재자 투표에 대해 알아보고, 안 되면 미리 들어가서 선거운동이라도 작게 하고 꼭 투표하고 와야겠다.
2007.06.08 12:20
한겨울을 빼면, 작업실에서 모델과 마주설 때는 대부분 맨발이다. 움직이기 편하고, 발바닥부터 머리끝까지 온통 렌즈 안에 몰려든다. 아침 아홉 시에 시작한 촬영은 자정을 조금 남겨두고 마지막 셔터를 끊었다. 열다섯 시간 이어진 촬영에서 발바닥은 까맣고 발등은 배경용 합판에 찍혀 상처가 났다. 왼쪽 어깨 근육이 뭉쳤다. 끝날 무렵에는 몸이 지쳤고, 큰 고함으로 몸을 떠받쳤다.
열다섯 시간의 촬영과 이어질 이틀의 후반작업이 끝나면 나는 마음에 두었던 프린터를 살 수 있다. 재주는 내가 부리고 돈은 프린터가 먹는 것 같아서 살짝 억울하기도 하다.
영어에서 셔터를 누르는 동작은 방아쇠를 당기는 동작과 닮은 취급을 받는다. 사진을 찍는 순간의 움직임을 'shoot'이라고 쓴다. 우리말에서 사진 찍는 순간을 일컫는 몇 개 단어가 있는데, 나는 그 중에 '끊다.'는 단어를 좋아한다. 사진은 연속하는 시공간 속에서 순간을 '끊어'내는 것인데, 그렇게 도드라진 순간의 앞뒤로는 보는 사람만큼의, 또는 보는 순간만큼의 공간이 새로 덧붙는 것이어서 시공간은 사진의 점.에서 비롯해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며 복층적이고 다면적인 이야기를 만든다. 생겨나는 이야기는 본래 있었던 것의 다른 모습일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이야기의 흐름일 수도 있다. 끊어서 만드는 사진이 공간 너머의 공간에 잇닿아 있다.
열흘 일정으로 한국에 간 혜정이가 돌아오려면 이틀이 남았는데, 작업과 촬영이 밀려 있는 이틀은 참 길어서 녀석 만나려면 아직 한참이 남은 것만 같다. 아이스와인 한 병을 사 온다고 했다. 사과에 치즈조각을 얹은 과일안주를 만들어달라고 졸라야겠다. 마침 강바람이 좋으니까.
2007.06.06 15:48
잠시 볕이 났다. 하늘은 여전히 구름으로 가득 찼는데 햇빛은 그 가운데 어디쯤을 깨며 오는 것 같기도 했고 구름이 비켜준 작은 틈으로 오는 것 같기도 했다. 서편 창문으로 빛 드는 걸 보며 낮잠을 잤는데 잠시 있다 눈 뜨니 다시 흐리다.
몇몇 유명한 사진가들은 그들의 글이나 책 속에서 한결같은 무서움에 대해 말하는데, 새 촬영을 시작할 때나 결과물을 받아볼 때 언제나 무섭다고 썼다. 엄살처럼 보이는 그 말들이 거의 대부분 사실임을 나도 비로소 안다. 촬영을 앞둔 날은 잠들기 직전까지 두근대는 가슴을 누르려고 애쓴다.
내일은 아침부터 밤까지 촬영이 이어진다. 몸과 마음을 한계까지 몰아갈 촬영이 끝나면, 어쩌면 마음에 두었던 프린터를 살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조금 조금씩 나아져서 제법 굶지 않을만큼 돈을 벌 수 있게 되면 무얼 해야하나 생각했다. 차곡차곡 모아서, 더 훌륭한 작업실을 갖겠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더 좋은 사진을 만들겠다. 돈이 모이는 것과 사진 실력이 나아지는 것 그리고 조건들이 맞추어지는 것이 함께 박자를 맞추어야 한다. 꼭, 보그에 내 이름으로 화보를 걸 테다.
성경아, 화내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어디. 정말 화가 날 때는 문장 앞에 앉을 수 없어서, 화날 때의 문장은 여기에 없단다. 나무가 자라면 둘레가 커지는데, 그 때 나무의 바깥 부분은 넓어져서 더 많은 공간의 호흡을 그 안에 품고, 나무의 안 부분은 더 단단해져서 굳은 뼈대가 된다고 했다. 함부로 아프지 말자.
2007.05.20 23:19
5월도 끝물입니다. 뭐라고 하는 사람 없어도 시간은 제법 빠르게 제 걸음을 갑니다. 잠자다가 일어나서, '담백하게 스며드는 문장을 쓰자. 찔러들어가지 말고, 강요하지 않고, 여기와 저쪽을 가르지 말고, 서투르게 단정 짓지 않는 담백한 문장을 쓰자.' 수첩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마음의 준비도 되어 가고, 소재도 제법 떠오르는데 첫 삽 뜨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또 '시작해서 탄력만 붙는다면 까짓 거 한 방일 거야.' 혼자 안심을 시켜봅니다.
낮에 햇빛은 많이 뜨겁고 옥탑방 작업실은 낮잠 자는 사이 땀으로 젖을만큼 데워지지만 해 떨어지면 제법 시원하고 가끔 서늘하기까지 한 바람이 붑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작업실 아래 펼친 강에 궤적을 남깁니다. 바람의 궤적은 강의 흐름에 올라타는 것 같지만 때로는 물의 궤적과 바람의 궤적이 합쳐서 둘 중 무엇도 아닌 새로운 모양의 궤적을 만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내가 너와 함께 걸을 때 그 궤적이 나도 너도 아니었던 것이 아마 그와 같았을까요. 그 안에서 바람도 강물도 제 각기 오롯했겠지요.
아마 이 여름의 중간 어디쯤에서, 나는 저 물의 궤적 위를 바람의 궤적처럼 떠돌아 볼 겁니다. 내심 작정하고 있는 글의 첫머리가 이 강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상하이의 현대와 근대를 잇대어 흐르는 강 위에서 내 이야기를 시작할 겁니다.
앓기 시작했던 것이 2월 중순쯤이었으니까 꼬박 석 달이 지났습니다. 이제 힘써서 움직이는데 거의 지장이 없습니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좋은 바람을 만나면 와인 한 잔 정도는 예의상 마셔줄 수 있는 만큼 되었습니다. 마침 며칠 전 잡지 광고에 들어갈 와인을 촬영했는데, 촬영 후에 와인은 작업실 냉장고로 들어갔습니다. 혼자 맞기 과분할 만큼 좋은 바람 앞에서 마주 보고 잔 들어도 좋았을 것을.
바람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불어오기도 하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불어가기도 합니다. 강물의 표면은 바람을 따라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궤적을 그리지만 끝끝내는 흘러서 바다에 닿겠지요. 저 바람도 끝끝내는 대양에 닿을 겁니다. 그렇다면서요? 그 큰 바다에는 참치가 산다면서요?
2007.05.19 23:09
밤 한 시 십오 분.
좀처럼 맑은 정신으로 깨어있기 힘든 시각. 가끔 낮잠을 길게 자는 날이 있는데, 저녁에 아침같은 기분으로 깨어나 잠시 머뭇거리면 맑은 밤이 온다. 그렇게 맞는 밤은 낯설다. 내가 일찍이 겪어보지 못 한 새로운 시간의 한 토막을 마주하고 앉아 생경한 공간에 떨어져 나와 앉는다. 그럴 때는 좀처럼 진도 안 나가던 문장도 두어 줄 쓸 수 있고, 몇 달 째 밀려서 거의 잊혀질 뻔했던 안부인사에 답장도 쓸 수 있다. 무엇보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한밤중의 공기는 한껏 유혹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어서 큰 창문을 모두 열고 와인 한 잔 마시면 뭔가 흥미진진하고 흥분되는 사건이 생겨날 것만 같다. 사건의 무대는 현실에 닿아있지만 판타지를 꿈꾸는 그 어디쯤이 좋다. 한바탕 꿈이어도 좋은 것이다.
2007.05.15 22:23
비 온다.
작업실 안에 앉아서 보면 잘 보이지 않는데, 발 씻으러 밖에 나가니 오는 듯 마는 듯 온다. 밤의 강빛은 가로등 불빛을 받아 나트륨색으로 반짝이는데, 그 반짝이는 표면 곳곳을 빗방울이 내려와 깬다.
낮잠을 자다가 더워서 깼다. 두려운 여름이 다시 왔다. 두 겹으로 겹쳐 덥던 이불에서 겉이불을 떼었다. 이불 두 장은 오랫동안 꼭 붙어 있어서 마치 하나 같았다. 이불의 부푼 부분과 이불의 가라앉은 부분 사이에서 두 이불은 들고 남이 같았는데, 두 장을 분리하며 본래 하나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었다. 둘이 하나가 되고 하나가 다시 둘이 되는 것이 그렇다.
일 년 반 넘게 내 작업실의 디자인 디렉터로 함께 일했던 세은 누나가 귀국을 결정했다. 용무를 말하지 않고 작업실에 들르겠다고 했을 때 이미 미루어 짐작했었는데 직접 들으니 잠시 멍. 했다. 가끔 함께 가는 식당이 있는데, 작년 연말에 둘이 앉아서 "내년에는 조금 더 풍성한 이야기를 하자."고 다짐했는데, 그 내년이 오지 않을 모양이다. 내 일을 자기 일처럼 해주어서 나는 참 고맙다. 누나가 돌아가면 다른 사람을 구해야겠지만 그 사람은 단지 메이크업일 뿐, 누나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겠다.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받고 보내는 일이 억지스럽지 않다.
2007.05.07 21:42
"평양성에 해 안 뜬대도 난 모르오. 웃은 죄 밖에."
장사익은 이렇게 불렀다.
존재와 존재간의 관계를 생각할 때, 일방이 일방을 일방적으로 기르거나 보호하거나 힘이 된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존재마다의 무게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너와 내가 존재와 존재로 만나서 손잡고 걸어간다. 좁은 화분 속에서 목마른 작업실 잔디를 보며 생각했다. 내가 잔디를 기른다는 생각은 아무리 뒤집어보아도 건방지다.
기르던 고양이 보낸 것이 제법이다. 길렀다기 보다는 그냥 옆에 두었고 녀석도 그냥 살아내었다. 야생에서 살던 녀석이 사방 벽으로 쌓인 공간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을 테다. 어느 밤에 내 마음대로 납치해서는 한 철 겨울을 같이 살다가 다시 보냈다. 납치하던 그 날처럼 그 자리에 내려두었다. 다음날 귀 한 쪽에 핏방울을 달고 덤불 속에서 쉬는 것을 보았는데, 그 다음부터 보이지 않았다. 철들고 동물과 함께 먹고 자는 것이 처음이었는데, 철들 무렵부터 혼자 살아온 나는 적응하지 못 했다. 발정난 녀석은 밤새 크고 서럽게 울었고 구석마다 소변을 누었다. 수술을 시키면 같이 살 수 있다고 했지만 차마 못 할 짓이라 그냥 보냈다. 하루를 살아도 고양이로 살라고 보냈다. 고양이는 제 구역을 갖고 산다고 하는데, 구역을 거느리고 살던 고양이는 내게 붙들려 있는 사이 제 구역을 필시 잃었을 것이고, 귀에 엉겨붙은 핏방울은 구역을 되찾으려는, 또는 새 구역을 개척하려는 의지와 그 의지에 반대되는 힘의 충돌이었을 테다. 녀석은 그렇게 살다가 죽을 것이다.
작업실 여기저기에 아직 녀석의 흔적이 많다. 새 배경지 꺼낼 때나 낡은 소품 챙겨들 때는 녀석 오줌냄새가 아직 많이 뭍어 있어서 모델 앞에 있는 나를 당황하게 한다. 책상 옆에는 녀석 귀에 든 진드기를 치워내는 소독약과 연고가 아직도 그대로 있다. 전부 다 치워낸다고 해도, 골목길에서 고양이 볼 때마다 꼬리 끝에 조금쯤 달려있는 것 같은 녀석 모습은 어떻게 치워지지 않는다. 잠은 잘 자는지, 간밤에 천둥소나기는 어디서 피했을지, 제 자리는 만들었을지, 쓰레기통은 영양가 있는 것들로 잘 골라다니는지. 그리고 안녕한지. 보내는 일이 그렇다. 함부로 데려와서, 그리고 함부로 보내서 미안하다. 다시는, 기르지 않으마.
요 며칠 장미꽃을 훔친다. 내 작업실이 있는 건물 옥상에는 나 말고도 다른 세입자분들이 계신데, 아마 그 분들이 씨앗을 뿌렸을 빨간 장미가 큰 화분 몇 개를 채워서는 난간가에 줄지어 있다. 며칠 전에 한 송이를 꺾어와서 조명 아래 두고 찍었는데 참 예뻤다. 찍은 장미꽃은 거꾸로 매달아 두었다. 다 마르면 다시 찍으려고 한다. 오늘은 풍성하게 핀 한 송이, 아직 어린 한 송이, 그리고 말라서 떨어지기 직전에 있는 한 송이를 꺾었다. 배경지 자를 때 쓰는 가위를 몰래 숨기고 나가서 보는 사람이 없는지 잘 살핀 후 꽃송이 약간 아래를 자른다. 장미를 훔쳐 작업실로 돌아오는 기분은 묘하다.
장미는 무거운 꽃이다. 집게에 물려 찍다가 잘 못 해서 바닥으로 떨어질 때는 '투-욱'. 둔탁한 소리가 난다. 검은 배경을 쓰고 꽃색깔도 아주 어둡게 뽑아내어서 마치 검은 장미가 암흑의 저편에서 느리게 건너오는 느낌이다. 한 동안 더 작업한 후에 좋은 종이를 골라 프린트하려고 한다. 언젠가 망원렌즈에 대해 쓰며 모든 피사체를 포트레이트의 대상으로 만든다고 썼다. 포트레이트는 주변에 있는 것들을 상관하지 않는다. 오로지 피사체의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며 묻고 또 묻는다. 검붉은 장미 앞에서 내가 만들어 내는 물음표들은 아직 인간의 언어로 형상화되지 않는 것들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들이다.
긴 노동절 연휴가 끝났다. 임대료 낼 때가 되었는데 벌어놓은 돈이 없어서 연휴도 반갑지 않았다. 잡지사며 클라이언트도 모두 놀아서 어찌해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겨우 장미 몇 송이를 꺾으며, 겨우 골목길 모퉁이 몇 개를 돌며 일주일을 보냈다. 김훈 선생의 새 책이 나왔다고 인터넷에서 읽었다. 그렇게 서둘러 서둘러 숨을 갉아내다가 저 양반 너무 일찍 쓰러지면 어떡하나, 괜한 걱정을 잠시 했다.
내게도 하려고 작정한 일이 있고 쓰려고 작정한 문장이 있다. 당당하지 못 할 것이 없고, 부끄러울 것도 없다.
2007.05.05 12:06
삶은 참 쉽지 않다.
밥을 사러 가야겠는데 계단은 잠겨 있고 엘리베이터 아주머니는 오실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돌아와서 유자차라도 마실까 하는데 도대체 굳게 잠긴 유리병은 열릴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알고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힘으로는 도저히 열 수가 없다.
카메라 렌즈에 필터가 굳게 물려 풀리지 않거나 유리병 마개가 너무 세게 잠겨서 안 열릴 때 대부분의 경우는 마찰력을 증가시킴으로써 열 수 있는데, 가장 무식하게는 힘을 더 쓰는 것이고, 고무줄 등을 감아서 시도할 수도 있다. 반대로 비누거품 등을 이용해 마찰력을 감소시키는 것도 방법이다. 포기하지 않고 손바닥이 빨개질 때까지 돌리고 돌리는 무모함. 이 십대는 무모해도 좋다. 어머니나 아버지는 조금 다른 방법을 쓰실 것도 같은데, 아버지는 아마 다른 공구를 쓰실 수도 있다. 결국 무모함의 연장선인 셈인데 남자는 사실 여자보다 조금 더 무모하다. 그래도 된다. 귀여우니까. 다른 방법들이 안 통할 때 어머니라면 아마 웃으시면서 잠시 그대로 두라고 하실 수도 있다. 나이들어감.의 현명함과 여성의 현명함은 자연스럽게 그런 결론을 내린다.
조금쯤 좌절해도 된다. 대책없이 무모해도 된다. '해도 된다.'는 의미는 시도해 보아도 좋다는 의미다. 절대.에 대한 가정이나 단서는 아니다. 그러니까, 무모한 것도 좌절하는 것도 잠시 거쳐가는 것으로 족하고, 잠시 거쳐가는 것이니까 무모한 좌절도 좋다. 청춘아, 잠시 쓰러져 있어도 좋다. 곧, 다시 걷자.
다시 숨을 가다듬고, 저 유리병이 열릴 때까지 젖 먹던 힘을 쓰겠다.
나는 아직 젊고, 게다가 무모한 수컷이니까.
2007.04.23 21:21
갑자기 생각이 나서.
많다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그렇지도 않네.
2007.04.22 19:40
읽고 있는 책이 도저히 진도가 안 나가서 덮었다. 중국 당대예술에 대한 교양서적인데 번역이 잘 안 된 것인지 읽기가 더디다. 얼마 전에 읽은 독일 소설가의 소설도 비슷했는데, 작가가 모국의 언어로 모국의 문화 속에 녹아있는 풍성한 이야기를 문장 속에 녹여 낼 때, 번역은 태생적인 한계를 갖는다. 시가 번역하기 힘들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소설도 일정부분 해당된다고 요즘 생각한다.
책 선물을 좋아한다. 내가 받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고, 주는 것도 좋아한다. 한 때는 도서상품권을 선물로 주기도 했는데, 선물이란 것이 내 뜻을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상품권보다는 내가 직접 골라주는 것이 더 낫겠구나 싶었다. 특히 오래된 친구나 선후배 사이에서는 책을 주고 받는 것으로 그 사람의 요즈음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새책 헌책을 가리지 않는 편인데, 책꽃이에서 하나 뽑아 보내달라고 하면 그 사람의 지금 모습과 지금의 나를 생각하는 인연의 마음까지 담겨 온다. 선물도 좋지만 막역한 사이에서는 강제로 강탈해 오는 짓도 곧잘 한다.
요즘 한국의 책은 너무한다 싶을만큼 질이 좋다. 좋은만큼 비싸다. 좋은 원고를 쓰고 좋은 기획을 한 작가와 기획자에게 수고에 상응하는 금전적 보상이 돌아가는 것은 맞겠지만, 비싼 종이와 두꺼운 표지에 책 값을 지불한다는 생각이 들 때는 슬며시 화도 나고 억울도 하다. 그 비싼 책을 한 번 읽고 책꽂이에 모셔두는 것이 답은 아닌 것 같아 주변 사람들에게 아무렇게나 빌려 주는데, 여러 사람 돌려읽는 사이 책이 낡아가는 것은 책의 마땅한 운명이라 생각하니 아쉬울 것이 없다. 다만 한 번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책들은 참 많이 아쉽다. 아끼는 김훈의 자전거여행과 필립퍼키스의 사진강의노트 두 권은 내가 최근에 발견한, 돌아오지 않는 책들이다.
대학교 때 한 친구와 이야기하며 나중에 나중에 나는 좋은 서재를 갖고 싶다고 말했더니 식탐에 준하는 책탐이라고 핀잔을 들었다. 책을 읽으려는 욕심이 아니라 책을 모으려는 욕심 아니냐고 물었다. 미처 생각해보지 못 했던 부분이라 당장 대답하지 않고, 그런지도 모르겠으니 곰곰히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답을 알지는 못 한다. 다만, 모든 문제에 꼭 대답을 해야하는 것은 아닌데, 책에 대한 문제는 내게 그런 종류다.
삼 일 동안 꼬박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급한 일 처리하는 것을 빼고는 꼬박 하얀거탑이라는 드라마 DVD를 봤다. 워낙 잘 만든 드라마라는 소문이 있고, 애정관계를 비비 꼬아둔 흔한 드라마도 아닌 것 같아 열심히 봤다. 시신을 기증하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자기 분야에 대한 집착과 그 집착 때문에 알면서도 묻어두어야 했던 소소한 생각들이 은근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재밌게 보고 돌아서니 어느새 삼 일이나 갔다. 잘 봤다는 생각인데, 속았다는 생각도 아주 조금은 든다.
거 참,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나?
2007.04.22 19:11
중국에서 길을 나선다는 것은 곧 모험과 마주할 각오를 한다는 의미다. 길 떠나는 사람에게 모험은 낯선 것이 아니지만 특히 중국에서, 특히 외국인의 입장이라면 그 모험은 조금 더 빈번하게 다가온다.
항주로 가는 차는 한참 달리는 중에 멈추었다. 하필 고속도로 중간이라 다른 차들은 여전히 ‘한참 달리는’ 중이고 멈춘 차는 달리는 차들이 만드는 쌘 바람에 휘둘리며 서 있다. 취재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수리를 하기도 다른 차를 부르기도 힘든 상황에서 기자와 디자이너는 속이 타고 그 사정을 아는 기사 아저씨는 의미도 없는 몸짓으로 분주하다.
강 건너 불을 보며 나는 급할 것이 없다. 작업실에 새로 세울 벽의 개략적인 설계도를 그려보고, 내가 중국에 머무는 동안 할 수 있는 작업과 봉사를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봉사라는 것은 내가 넘치게 받은 혜택의 일부를 내 손으로 돌려주는 것인데, 굳이 개인이 우주의 일부이고 우주 또한 개인의 일부라는 여러 선각자들의 말을 끌어오지 않더라도, 내가 받은 것은 어떤 형태로든 되돌아갈 것들이겠지만 가능하면 내 의지에 바탕해서 내 능력을 수단 삼아 돌려주면 좋겠다. 물론 꼼수도 없지는 않는데, 봉사라는 이름 아래 진행될 일련의 과정은 내 개인적인 작업의 일부일 것이고, 나는 그런 꼼수를 가능한 드러내지 않을 작정이다.
작업실 안에 세우려던 벽은 그 진행이 더뎠는데, 예전에 한 번 보았던 것에만 묶여 꼭 그렇게만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며칠 고민하며 여러 다른 부품들을 보는 사이 보다 새롭고 간단한(또한 보다 저렴한)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이제 벽을 세울 수 있겠다.
지나던 정비차량의 도움으로 기력을 회복한 자동차는 한 시간 여를 달리다가 다시 멈추었다. 이번에는 하얀 연기 꼬리를 길게 끌며 섰다. 목적지 항주까지는 아직 30분이 남았는데 자동차는 콜록거리며 연기를 뿜을 뿐 움직일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몇 달 전에 나는 내 사진을 크게 한 번 털어야 할까 생각했는데, 어제는 내 문장에 대해 같은 생각을 했다. 두 번 모두 생각의 단서는 혜정이가 주었다. 내 무거움에 대해 생각할 때, 무거움의 바닥까지 눌리는 것은 문장이다. 문장 쓸 때 나는 무엇도 놓치지 않으려는 섬세한 관찰력을 스스로에게 요구하는데, 그 기대치는 사진에 대한 것보다 크다. 말과 행동은 그와 달라서 적게 말하고 작게 움직이려고 하지만 움직이고 말하는 속에서는 가볍기를 바란다. 물론 그 가벼움은 경쾌해야 하는데, 경박하지 않고 무거움을 덧쓰지 않아야 한다. 가벼움은 단단하게 뿌리박은 갈대의 흔들림 같아서, 주변의 바람과 스스럼없어야 하지만 그 뿌리는 아련함 속에 분명해야 한다. 가볍되 경박하지 않아야 한다. 무거움을 덧쓰는 가벼움은 앞서 못지않게 경계할 것인데, 있지 않은 또는 없어도 좋을 무거움은 이로울 것이 없다.
내 문장에 가벼워질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 한참 가는 길에 온몸을 힘껏 떨어내면 자칫 가던 길을 잃을까 싶기 때문이다. 다만, 문장이 문장의 무게로 헛되게 버겁지 말기를, 그렇게 되도록 경계하며 애써야겠다. 문장에 싣는 무게는 문장으로부터 오지 않을 것이다. 단단하고 성실한 매일의 걸음, 거기서 온다. 경쾌하게 가벼운 문장과 호흡마다를 막아서는 무거운 문장에 대해 생각할 때 얼핏 박완서와 김훈의 문장을 떠올려볼 수 있다. 내게 박완서의 문장은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문장처럼 보이고, 김훈의 문장은 숨을 갉아가며 쥐어짜는 문장 같아 보인다. 작가마다 가지는 문체의 개성이겠지만, 개성이란 결국 세상을 대하는 태도 때문인 것도 같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란 또한 작가의 나이와 상관있는 것도 같다. 삶의 어느 변곡점을 지나면 과거를 살아가는 시간이 올 것 같은데, 어쩌면 그 변곡점을 지난 박완서와 아직 변곡점 못 미쳐 온 몸으로 세상을 밀고 나가는, 아직도 겨루어야 할 것이 많은 김훈의 문장일 수 있다.
두 번째 멈춘 차는 도대체 갈 생각을 안 한다. 거친 숨만 헐떡거린다.
2007.04.15 19:46
비 온다. 세차다. 갑자기 천둥이 치고 곧장 하늘을 통째 쪼개어 바닥으로 내리찍듯이 비 온다. 천둥소리를 무심결에 듣고 넘겼는데, 이어진 세찬 빗방울 소리가 천둥을 기억나게 했다. 비 오는 소리가 처연하다. 무엇도 담아두지 않은 사진에서 외로움을 읽어낸 사람이 외로운 사람인 것 처럼, 내리꽃는 빗방울이 처연한 것은 빗방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며칠 전에 끄적여 두었던 메모를 아직 옮기지 못 했다. 가만 놓아두면 날카로운 모서리가 조금씩 닳고 제 짝 아닌 접속사들은 토씨 하나씩 허물어져 내린다. 그리고 어느 저녁이나 새벽쯤에서 겨우 문장 한 줄 밀어올릴 힘이 목에까지 차오르면 메모 꺼내서 볕에 널 수 있다. 아리랑.을 읽었는데, 김산은 모든 것들에게 패하고 오로지 자신에 대해서만 승리하였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었다. 독한 놈이다.
이제 밤을 도와 세 장의 기사와 열대여섯 장의 사진을 만져야겠다.
존재마다의 경계가 새삼스레 도드라지는 밤이면 경계 너머 저기서부터 내 경계를 조각조각 허물어 오곤 했던 친구들이 보고싶어진다.
소나기는 시작처럼 갔다.
2007.02.24 18:52
하늘은 파랗다. 공항에 내려서 보는 한국 하늘은 언제나 파랗다.는 형용사를 앞세워 온다. 처음 받아보는 천 원권 새 지폐는 파란색이어서 낯설고, 깔끔하고 너른 실내에 어울리게 성큼성큼 건너 뛰는 택시 미터기 요금은 낯설어서 사람을 당황하게 한다. 택시 라디오에서는 양희은이 나와서 노래하고 이야기하는데,
"서른? 아직 아기죠." 했다.
짧은 문장에 길게 위로받았다. 조급함이 조금은 덜어졌다.
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 순대 사서 가져와 먹었다. 제일 적게 줄 수 있는 양을 물었더니 3천 원이라고 해서 그렇게 샀다. 공항 리무진을 타고 거스름돈으로 받은 새 천 원권 지폐를 냈다.
집은 변한 것이 없다. 어머니 흰 머리카락이 조금쯤 는 것도 같고 얼굴 주름이 조금쯤 선명해진 것도 같다. 아버지도 여전하시다. 아무리 생각해도 돈 될 것 같지 않은 일에 더 허송세월 하지 말라. 말씀 앞에서 당장 다음달 임대료를 마음에 숨긴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얼른 다시 가야 한다. 내 무대가 아직은 거기다. 길이 먼데 마음이 급해서 집에 있는 것이 편하지 않다.
2007.02.06 09:19
겨울이 가야 비로소 오는 것이 봄인 줄 알았다. 아직 겨울이 가지 않았는데 봄은 벌써 왔다. 겨울 끝머리 속에 녹아서 왔다. 한 번 두 번 신호를 보내다가 한 순간 와락, 덥쳐 올 것을 안다. 위태로운 봄이 그렇게 올 것이다.
작업실이 너무 넓어서 감당할 수 없다. 잠자고 일어나고 밥 먹고 씻어도 작업실은 아직 채워야할 빈칸이 너무 많다.
두어 줄 쓰다가 지우고 또 두어 줄 쓰다가 지우고.
2007.01.18 18:25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책 읽다가, 먹는 일을 생각했다. 다시 작업실에서 생활하는 날들이 시작되면 나는 어떻게 끼니를 이어야 하나? 생각했다. (문장을 쓰는데 시작.이라는 단어에서 호흡이 덜컥. 걸렸다. 과속 방지턱을 감속 없이 넘어가다 체한 자동차처럼. 다시.라는 부사가 자동차 끝머리에 걸렸다. 시작.은 무엇인가를, 어떤 행위를 처음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다시.라는 부사는 같은 상황 또는 연결되는 상황이 앞서 존재했다는 증거 아닌가. 시작.도 다시.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그것은 어떤 관대함일 것인데, 관대함을 베푸는 주체는 시간 정도가 아닐까 싶다.)
몇 달 안 된 집을 정리하고 다시 내 온 시간의 공간으로 작업실을 선택하는 것은 우선 금전적인 부담을 줄이려는 목적이고, 출근, 퇴근으로 나누어져 끊어지는 일의 리듬이 싫었기 때문이다. 내가 내는 집값에 비해 내가 집에서 얻는 효과가 적다는 판단도 한 몫 했다. 이미 겪어본 작업실 생활이니 조금은 더 대비할 수 있다.
새벽 촬영은 허탕을 쳤다. 촬영 약속한 곳에서 내부 연락에 문제가 생겨 약속한 장소에는 어떤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24시간 편의점에서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고, 대답 없는 철문을 세게 노크했다. 옆 아파트 초소의 관리원은, 아무리 두드려도 소용 없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돌아오는 택시는 여전히 야간할증인데, 중국 서부지역색이 강한 노래가 나왔다. 듣는 사람 적은 새벽 시간. DJ의 맨트 없이 잇달아 나오는 노래들 중에 섞여 있었다. 짧은 중국어 실력으로 듣기에 노래는 명백함.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명백함 보다는 선명함.에 더 어울리겠다고 혼자 생각했다. 선명함 또는 명백함을 노래하는 고원의 목소리는 지난 봄에 들렀던 윈난성 어디쯤을 떠올리게 했는데, 그 땅의 기운이란 것은 나와 너를 나누는 명백함이기 보다 모든 존재가 제 각기 가진 윤곽을 오롯이 드러내는 선명함과 어울렸기 때문이다. 고원의 선명함 속에서 존재는 서로 겨루지 않았고 각기 가진 색으로 아름다웠다. 고원에 서 보면 멀리 바다는 보이지 않았고 그 존재 또한 관념 속의 것이었지만 관념의 바다로 끝끝내 닿을 것이 분명한 강물은 거센 소리를 내며 발원하고 있었다. 내가 나서서 나를 보이고 증명하지 않아도 큰 흐름 속에서 나와 내 주변이 자연스럽게 선명했다.
새벽 두 시 반에 일어나 네 시 반에 돌아오는 택시를 타며, 나는 어떤 존재를 향해 내 무엇을 증명하려고 이렇게 아둥거리고 바둥거리는가 물었다. 답할 수 없었다. 다만 뿌리를 구름에 담군 고원을 생각했다.
본다.는 자체는 왜곡을 전제한다. 산 정상에 올라서서 보는 광활한 대지, 끝 간 데 없이 펼친 바다를 고작 손 가락 한 마디도 안 되는 동공으로 받아들여 시각 속에서 광활함으로 재구성하는 것은 곧 왜곡의 과정이다. 이 때 눈과 가장 닮은 왜곡을 만드는 것이 표준렌즈다.
2007.01.17 14:44
가끔 버거킹에 간다. 케이에프씨, 맥도널드와 다르게 패스트푸트 같지 않은 맛이 좋아서 간다. 고기 맛도 좋지만 함께 씹히는 양파와 토마토 맛도 좋다. 먹는 것도 가능하면 그 자리에서 먹고 오는데, 다른 곳으로 가져가는 사이에 소스가 빵에 스며들어 전체적인 맛을 눅눅하게 만드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내게 버거킹은 패스트푸드가 아니다. 어제는 마침 행사를 해서, 하나를 사면 하나를 더 주었다. 혼자 간 나는 덕분에 와퍼 두 개를 한꺼번에 먹었는데, 내가 본래 시킨 와퍼를 먼저 먹고 이벤트로 따라 나온 와퍼를 나중에 먹었다. 역시나 이벤트로 나온 와퍼는 얇았고 재료도 빈약했다. 나중에 먹길 잘 했다고, 만약 처음 먹었으면 맛 좋은 와퍼를 부른 배로 맞이해야 했을 것 아니냐고 스스로 대견해 했다. 삶의 지혜라는 것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이틀 뒤면 다시 여기 작업실에서 잠자는 생활을 시작한다. 하나 둘 준비하는데, 오늘은 가필이를 데리고 병원 다녀왔다. 녀석 몸에 사는 벼룩을 내가 들어오기 전에 어떻게든 떼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낯선 공간이 낯선 가필이는 내 외투 여기저기에 상처를 내고, 손바닥에 깊은 두 줄 상처를 더 만드는 것으로 반항했다. 벼룩 제거용 목욕, 귀 진드기 제거용 약품 등 450원 비용이 들었다. 법정 스님 말씀 중에, 난을 길러보면서 가진 것마다 집착이 따라오는 것을 새삼 알았다.고 하셨다. 어쩔 수 없다. 도 닦으며 살지 않을 바에야, 집착 또한 곁에 두어야 한다. 그래도, 450원은 아깝다.
2007.01.10 14:13
나는 좋은 문장, 좋은 글을 꼭. 쓰고 싶습니다.
2007.01.08 12:09
눈이 부신 가필군의 낮잠 자는 모양새.
2007.01.02 19:48
크기가 작은 두통. 난로 앞에 너무 오래 있었다. 창문을 열어 환기 시킬 때는 조금 낫는듯 하더니 찬 기운에 문 닫으니 다시 아프려고 한다.
대만 지진 때문으로 인터넷이 아픈 지 1주일이 되어 간다. 사이트 접속이 수월하지 않고 해야할 일 몇 가지도 덕분에 못 하고 있다. 우선, 연말인사의 답장에 대한 답장을 써야 하는데.
가필이는 몸살 감기가 걸렸을 수도 있다. 잠 자는 시간이 길어졌고 잠의 깊이도 깊어졌다. 이틀 전에는 문 열고 들어오는데도 모르고 자고 있었다. 말려 놓은 걸레를 가져와서 덮어주었다. 잘 덮고 잔다.
2007년이다. 올 해가 지나면 많은 것이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책과 사진작업, 작업실 문제와 내 다음 일들이다. 한 해 안에 윤곽을 확인하려는 것은 어쩌면 아직 젊은 조급함일 수도 있겠지만, 한 해 안에 윤곽이 드러나야 한다고 여전히 믿는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의 윤곽을 보탠 큰 윤곽, 그러니까 내가 과연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는 놈인가? 하는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철 든 후부터 꼭 껴안고 다니던 물음에 대한 윤곽이, 아마 올 해가 지나면 아주 조금은 선명함을 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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