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짧은 글 모음
2010.12.30 22:01
숨통을 조르는 것 같던 일이 우선 마무리되니까 마음에도 이런저런 틈이 생기고, 이것저것 돌아볼 수 있게 된다. 지난 에프상하이 출사에 다녀온 사진들인데, 특별할 것 없어도 그냥 두어 장 만져본다.
2010.12.30 21:47
모니터가 좀 작다 싶었다. 사진 작업에는 모니터 두 대를 쓰는데, 한 대는 2005년에 구입한 19인치 CRT 모니터이고, 다른 한 대는한두 해쯤 뒤에 구입한 19인치 LCD모니터다. 큰 사진을 작업할 때 19인치 사이즈의 모니터는 아무래도 아쉽다. 하지만 모니터 바꾸는 일은 작은 일이 아니라서 어지간하면 버티고 썼다.
노트북은 2004년에 중국에 처음 교환학생으로 올 때 산 것이다. 그 때 기준으로 거의 최고 등급의 녀석을 사서 이제껏 잘 썼다. 그런데 아무래도 오래 되고 보니 요즘에 나오는 프로그램을 돌리기에는 벅차고, 현장에서 카메라에 연결해서 사진 확인하는 용도로만 겨우 썼다.
내년에는 장기 출장이 몇 번 더 있을 예정이고, 새 상업사진 촬영들도 의욕적으로 해보려고 한다. 그래서 겸사겸사 컴퓨터 작업환경을 바꾸기로 했다. 승희는 필요한 일이라면 그렇게 하라고, 따로 말리지도 않고 슬쩍 응원도 해주었다. 몇 가지 조합을 고려했는데, 결론은 애플의 맥북프로 노트북을 구입하고, 별도의 모니터를 구입해서 쓰기로 했다. 우선 노트북은 13인치 맥북프로를 구입했다. 한국에서 중고를 샀다. 1년쯤 쓰고 최신 버전으로 다시 구입할 생각을 해서, 우선 급한대로 한국에서 중고를 구입하면 되팔기 쉽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내가 매물을 찾고, 동생을 통해 거래하고 한국 다녀오는 바람소리 누나를 통해 전해받았다. 노트북은 제법 성능이 괜찮아서, 당장 몇 달 쓰고 내년에 바꾸려던 계획을 바꿔서 몇 년은 써보려고 한다. HDD를 떼어내고 SSD를 장착해서 속도를 높였다. 포토샵이나 라이트룸도 제법 잘 돌아간다.
그리고 예정보다 조금 무리해서, 새로 나온 애플의 27인치 모니터를 샀다. 가능하면 좀 저렴하고 안정적인 성능을 내는 모니터를 구하려고 했는데, 이리 저리 따져보다가 결국 이 녀석을 구입하기로 했다. 중국 매장에서 판매하는 가격은 한국보다 40만원 정도가 더 비쌌는데, 오고 가는 수고와 기다리는 비용, 그리고 문제 발생시 처리의 수월함 등을 생각해서 여기서 구입했다. 화하이루에 크게 들어선 애플 매장으로 노트북을 가져가서 테스트 해보고, 다음날 다시 가서 샀다.
맥의 작업환경은 듣던 대로 윈도우와 조금 다르다. 우선 쾌적하다는 인상이 있는데 이것이 맥 OS X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새로운 운영시스템을 처음 접하기 때문인지는 좀 더 두고보아야 알 일이다. 그리고 작전대로이기는 한데, 아무래도 노트북이다보니 기존에 쓰던 데스크탑보다는 속도가 느리다. 많은 작업을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아마 적잖이 답답할 것 같다. 해결책은 맥 최고 버전의 데스크탑인 맥프로를 구입하거나, 맥북프로를 더 높은 사양으로 구입하거나, 아이맥을 구입하는 것인데 셋 다 여의치 않다. 당분간은 이대로 쓰고, 가능하면 이 속도에 내가 적응해야 한다. 하지만 장점도 있는데, 노트북을 메인으로 쓰게 되니 언제 어디에서든 필요한 모든 작업을 할 수 있다. 출장 중이든 한국에 있든 상관없이 곧장 작업을 시작하고 끝내고 클라이언트에게 전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장점이 이 조합을 최종 선택하게 된 결정적 이유다.
맥북앞에 앉으면, 막 일하고 싶어진다.
새로 오픈한 애플샵은, 정말 구경만 하려고 했다.
직원은 친절했다. 가져간 내 맥북으로 애플시네마27은 잘 돌아갔다. 이 때까지만 해도 결심은 안 했었다.
다음날...
LCD모니터는 승희가 쓰기로 하고, 사진작업에 좋은 CRT모니터는 필요한 곳에 보내기로 했다.
마지막 가시는 길,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2010.12.25 09:40
장시성에 다녀왔다. Asia Travel이라는 중국 여행잡지의 일이었다. 한 달 동안 장시성 곳곳을 둘러보고 한국어 소개책자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사진을 찍고 글을 썼다. 본래 벌써 끝났어야 하는 작업인데 타고난 게으름 때문에 너무 오래 걸렸다. 어제서야 디자이너로부터 초벌본을 받아 보았다. 넉 달이나 걸린 셈이다.
지난 몇 달 동안,
아무래도 나를 가장 크게 바꾼 것은 승희다. 승희는 내게 없는 것들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정리정돈이 생활화되어 있는 사람이고, 요리도 잘 하는 사람이다. 본인의 관심 분야에 대한 다양하고 꾸준한 리서치도 몸에 익히고 있는 사람이다. 승희는 학부와 대학원에서는 역사를 공부했는데, 지금은 아트 마케팅으로 박사 과정에 있다. 예술이란 것은 어쩌면 비겁한 자들의 유희나 도피, 허영이거나 그 모두일 것인데 나나 승희, 그리고 내가 아는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어쨌든, 꼬박꼬박 관련 강좌를 찾아 듣고 또 본인의 앞길을 준비하는 모양새를 보면 예쁘고 기특하다. 내 생활의 많은 부분에 승희는 영향력을 행사해서 변하게 했다. 나는 조금 더 계획적이 되었고, 생활에 필요한 경제관념도 챙기고 있다. 등산복이나 입고 다니던 나를 이리 저리 끌고 다니면서 옷도 맞춰입게 하고 또 사게 한다. 물론 돈은 내 돈을 쓴다. 나를 자기가 아는 교수님 밑으로 밀어넣어 공부 시키려는 계획도 있다. 승희 덕분에 나는 세상을 조금 더 많이 즐길 것이다. 그리고 승희는, 여자다. 여자라는 생물의 이질감을 이렇게 크게 느껴본 것은 처음이다. 연애가 처음도 아닌데, 그 전까지는 왜 알지 못 했을까? 이제는 왜 여성과 남성은 다른 별에서 왔다고 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이런 외계 언어를 말하는 외계 생물과 부대끼며 이 땅의 많은 남성들은 살아내고 있었구나. 그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우리는 싸우기도 가끔 싸운다. 서로 다른 별의 언어로 싸우니까 이게 답이 나는 싸움이 아니다. 그러다가 시간 지나면 서로 안아주고 웃고 만다. 이런 외계인 같은 것. 이제 밤하늘을 보면 UFO를 기다리게 될 것 같다. 우리는 아마 내년 어느쯤에는 결혼도 할 것이다.
나를 바꾼 것이 승희였다면, 나를 흔든 것은 장시성에 대한 원고작업이었다. 원인은 전적으로 내 게으름에 있다. 하지도 않으면서,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억눌려서 좀처럼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다른 많은 일들에 손을 놓아야 했다. 중간에 몇 번의, 마감 통보에 가까운 독촉이 없었다면 장시성은 아직도 내 머리 속이나 컴퓨터 이미지 데이터 속에 있었을 것이다. 처음의 기대와 달리, 어디 내보이기 부끄러운 수준의 책이 되겠지만, 어쨌든 마침표를 찍었다는 데 혼자 의미를 둔다. 내년 상반기까지 아마 서너 권의 책이 같은 시리즈로 더 나올 것이다.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하니까, 다음 작업은 이렇게 밀리지 않도록 해야겠다.
맥으로 갈아타기.를 시도 중이다. 8년 가까이 써서 이제는 도저히 노트북다운 성능을 내지 못 하는 노트북을 바꾸기로 하고 대안을 검토하던 중에 대뜸 맥 노트북을 구입했다. 이미지 작업에는 맥이 낫다는 이야기들을 여러 번 들었기 때문이고, 아이폰을 통해 접한 그들의 직관적인 인터페이스가 좋았기 때문이다. 맥 컴퓨터 중에서도 여러 가지 조합을 생각할 수 있었는데, 완벽하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최고의 데스크탑 맥프로.가 있고, 모니터 속에 본체를 숨긴 아이맥도 있다. 그리고 새로 나온 가장 얇은 노트북 맥북에어도 있고, 무거운 작업을 소화할 수 있는 노트북인 맥북프로.도 있다. 여러 조합을 몇날며칠 고민한 끝에 나는 13인치의 맥북프로를 구입했다. 그리고 모니터 역시 이런 저런 조합을 생각한 끝에 새로 나온 맥 모니터를 구입하기로 했다. 어제 매장에 노트북을 가져가서 직접 연결해서 테스트도 해 보았다. 좋더라. 잘 되더라. 갈아타기가 끝나면, 집에서는 외부 모니터를 연결해서 대형 화면으로 작업할 수 있고, 장기 출장 중에도 메인 컴퓨터를 그대로 가져가는 셈이니까 공간의 제약 없이 필요한 대부분의 작업을 해낼 수 있게 된다. 작업환경이 쾌적해질 것이다.
어느새 연말이다. 장시성 때문에 몇 달이 공으로 증발해버린 기분이다. 정신 차리니 12월이 열흘도 남지 않았다. 연말 인사도 못 했는데. 내년에는 잔뜩 기대되는 여러 새 작업들이 있다. 밀린 책들을 좀 읽어야 하니까 관련 팀을 꾸릴 것이다. 서너 명 정도 모여서 강도 높은 읽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반기 대학원 입학 준비도 해야 한다. 새 사진작업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석 달 정도는 또 여행 책자를 만들기 위한 출장도 다녀와야 한다. 호텔 포트폴리오도 준비되었고 영업을 도와줄 친구들도 섭외해 두었으니 진행해야 한다. 아, 결혼도 해야 한다. 바쁜 한 해가, 바쁜 것 보다 더 재미있는 한 해가 눈 앞에 왔다.
다음달 4일부터 귀주성으로 출장을 간다. 거의 한 달이 걸리는 길이다. 가서, 밤마다 인연들에게 새해 인사를 써야겠다. 때 늦은.
2010.12.17 14:15
블로그라고 열어 두고 글 쓴 것이 석 달이 지났다. 그 동안 여러 가지가 변했다.
아쉬운대로 집 인테리어를 했다. 3년 동안 살았고, 이사를 가려고 했는데 마땅한 조건에 마땅한 집이 없었다. 집주인의 요구대로 임대료를 올려서 주고, 2년을 더 계약했다. 좀 사람답게 살겠다고, 제법 이것 저것 고쳤다.
새 일들도 몇 개 더 하고, 새 장비도 생겼다.
그리고 모든 변화의 중심이 되는 여자친구 승희도 있다.
바빠서, 연말인사를 두 해째 거른다. 작년에는 어영부영하다가 지났는데, 올해는 연말 인사 쓸 틈이 없다. 내년에는 더 많은 것이 변한다. 블로그도 정돈되어서 힘을 얻을 것이고, 새 사진 프로젝트도 시작한다. 승희와 함께 상하이.현대예술.을 주제로 하는 새 블로그도 만들기로 했다. 이름은 'studio ditte'로 생각해 두었다. 내년 하반기에는 학생도 될 것이다. 복단대에서 미학을 전공할까 하다가, 승희가 있는 학교에 젊고 좋은 선생님이 계신다고 해서 그 쪽에서 전시기획을 공부할까 싶다. 제목은 바뀌어도 하려는 공부의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Before
After
우선 바닥에는 카펫을 깔았다. 바깥 베란다를 막아서 옷방을 만들었다. 작업공간을 한쪽으로 보내고 나머지 공간에는 앉은뱅이 책상을 길게 놓았다. 필요한 커튼을 추가하고, 욕실과 창고, 주방에는 선반을 달았다. 카펫 작업을 제외하면 구멍 하나 뚫는 것부터 목재 자르기, 선반 붙이기 등 모든 작업을 직접 했다. 그리고 바깥에서 낡은 나무를 주워와서 벽에 매달았다. 승희가 감독하고, 내가 몸으로 떼웠다.
2010.09.07 20:09
장소. 홍코우 암장
시간. 오후 4:30~오후 6:00
내용. 볼더링
홍코우 암장은 팔만 암장보다 조금 싸다. 1회 입장권이 40원이고, 6개월에 800원, 1년에 1200원이다. 신발 대여료도 5원이다. 직벽은 팔만 암장의 약 반 정도 높이 밖에 안 되고 볼더링 구간도 조금 더 적다. 이번에 거의 두어 달 만에 간 것인데, 많이 변해 있다. 우선 볼더들이 많이 움직였다. 기초 자세를 익힐 수 있는 구간은 팔만 암장보다 홍코우가 더 쉽게 되어 있다. 대신 그 구간을 제외하면 오히려 팔만보다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홍코우에 있다가 팔만에 처음 갔을 때 받은 인상은 '참 어렵다'는 것이었는데, 팔만에 있다가 홍코우에 오니 다시 어렵다는 인상을 받는다. 한 곳에서 일정 기간 이상 볼더링을 하면 우선 자신만의 길이 생긴다. 그리고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길들은 머리 속에서 지워진다. 갈 수 있는 것만 보이니까, 갈 만한 것만 있는 것 같아서 쉬워 보인다. 그러다가 새로운 곳에 가면 어렵고 쉬운 길들이 한꺼번에 덥쳐와서 도대체 길을 모르게 된다. 아마 어렵다는 인상은 그래서 받는 것이다.
반창고를 잊고 안 가져갔다. 조금 탔더니 손가락 여기저기가 터져나가려고 한다. 지난 일요일 정기모임과 마찬가지로 팔도 금방 힘을 잃는다. 아무래도 틈틈히 악력 훈련을 따로 해야할 모양이다. 두어 달 만에 가는 곳이니까 내심 기대를 했었다. 예전에 못 가던 길도 이제는 무난하게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기대는 기대로 그쳤다. 나아진 것은 분명한데, 그 간격은 기대에 미치지 못 했다. 처음 시작하던 때보다 조금 더 부드러워진 몸짓과 조금 더 강해진 악력으로 다만 그쳤다.
홍코우 암장은 작은 대신 사방의 벽과 천장에 모두 볼더를 박아두어서 제대로 스파이더맨이 되어볼 수 있다. 그리고 적어도 볼더링 테크닉에 관해서라면, 팔만 암장의 클라이머들은 상대가 안 되는 고수들이 이 곳에 제법 있다. 나는 오후 네 시쯤 가서, 고수들 오기 전에 슬쩍 빠져 나왔다. 평일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좁은 공간에 답답한 느낌이 든다. 팔만 암장의 볼더링이 어느 정도 몸에 익었다면 맴버들과 함께 이 곳에 다녀가는 것도 좋겠다.
암벽 훈련을 시작하면서 반복해서 듣는 이야기는 동료에 대한 것이다. 단순한 운동 파트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동지로서, 동료라는 단어는 여느 운동에서보다 더 큰 무게를 갖는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산에서 만나는 어떤 감동은 철저하게 단독자의 것이다. 동료에게 생명을 위탁하고 또 동료의 생명을 담보해주는 것은 맞지만, 그 부분이 산행의 근원적인 어떤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 싶다. 산을 걸으며 가장 큰 감동을 느끼는 순간은 사방 고요한 순간에 오로지 내 몸 하나로 거대한 산과 마주서는 그 때쯤이 아니었나 싶다. 오랜만에 혼자 암장에 가서 한 마디 말도 없이 벽에 붙고 떨어지고 다시 붙는 기분이 참 좋았다.
2010.08.27 10:47
계획은 그랬다. 밤 10시쯤 상하이에 내리면 아슬아슬 지하철을 타고 온다. 한 달 만에 집 문을 열면 우선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고 앰프를 예열시킨다. 배낭을 풀어서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샤워를 한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느긋하게 앉아서 아무 음악이나 대충 걸어두고, 밤이니까 소리는 작게 듣는다. 빨래를 널고 내 침대에서 너르게 잠든다.
계획이란 것이 얼마나 제한적인 것인지, 살아가는 일은 얼마나 많은 상상 밖의 전개를 펼쳐내는 일인지 알게 되는 때가 종종 있다. 그러니까 실제는 이랬다. 오전 일정을 마치고 난창 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2:30분. 비행기 예약 시각은 저녁 8:30분. 혹시나 싶어 일찍 가는 비행기를 알아보았지만 이미 좌석이 모두 차서 변경할 수 없다. 꼬박 저녁까지 기다려야 한다. 출발 시각이 되어서 카운터 앞에 가서야 날씨 문제로 비행 시각이 다시 연기되는 것을 확인했다. 며칠 전에 동북에서 발생한 비행기 사고 때문에 더 엄격해진 것이리라. 비행기는 밤 열 시에 떴다. 새로 생긴 홍차오 공항 제 2 청사는 그 전 공항보다 훨씬 시내에서 떨어져 있다. 이미 밤이 늦었으니 지하철은 없고, 택시를 타고 집 앞에 내리니 요금은 87원이 나왔다. 장기 출장이라 냉장고도 비웠으니 집에는 먹을 것이 없고 우선 급한대로 마트에서 빵 두어 개를 사서 집으로 왔다. 드디어 집이다. 그렇게 돌아오고 싶었던 집에 왔다. 조금 늦긴 했지만 이제 들어가서 계획들을 진행시키면 된다. 밤이 늦었으니 앰프 볼륨을 조금 더 낮추면 그만이다.
문에는 수도요금 고지서 한 장, 국제택배 운송장이 한 장 끼워져 있다. 대충 수습하고 들어가서 30kg가 넘는 배낭을 우선 내렸다. 스탠드를 켰다. 불이 안 켜진다. 아, 가기 전에 플러그를 모두 뽑고 갔었다. 다시 켰다. 안 켜진다. 멀티탭의 전원을 올렸다. 다시 켰다. 안 켜진다. 아, 뭔가 이상하다. 혹시? 열쇠고리에 달린 작은 등을 켜서 두 장의 고지서를 다시 살핀다. 아, 택배 운송장이라고 생각했던 고지서는 다시 보니 단전통지서다. 7월달 요금을 미납했으니 18일부터 전기를 끊는다는 통지서. 이미 일주일 전이다. 시각은 밤 열 한 시를 벌써 지났다. 방 안은 사우나처럼 덥다. 일곱 시간 반을 공항에서 기다리고 겨우 도착해서 만난 것이 정전이다.
우선 마트에 다시 가서 큰 건전지를 샀다. 손전등에 넣어서 손전등을 욕실에 두고 샤워했다. 모기약을 켤 수 없으니 창문을 열면 안 된다. 샤워한 후의 시원한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얼른 자리에 누워 잤다. 얼마 남지 않은 휴대폰 베터리가 조마조마했다. 새벽에 일찍 깼다. 더위에 등떠밀려서 깼다. 대충 할 것들을 하고 가까운 전력공사 사무실을 검색해서 업무 시작 시간에 맞춰 갔다. 밀린 요금을 납부하고, 전기를 다시 이었다.
전기가 없어지는 세상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의 소설에서 카메라가 사라지는 세상을 그린 적이 있다. 카메라가 사라지면 카메라를 만든 사람이 사라지고 카메라의 재료가 사라진다. 그렇게 소급해서 올라가면 카메라의 소멸은 세상의 소멸로 이어진다. 세상의 소멸까지는 아니어도, 전기가 사라진 세상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라는 결론에 나는 닿았었다.
전기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몇 개는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다.
샤워 (수도는 안 끊겼다)
면도 (23일 동안 자란 수염을 밀었다)
어쨌든, 돌아왔다.
2010.08.03 22:17
아파트 15층에서 뛰어내린 독신녀,
그곳에 가보면 틀림없이 베란다에
그녀의 신이 단정하게 놓여 있다
한강에 뛰어든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시멘트 바닥이든 시커먼 물이든
왜 사람들은 뛰어들기 전에
자신이 신었던 것을 가지런하게 놓고 갈까?
댓돌 위에 신발을 짝 맞게 정돈하고 방에 들어가,
임산부도 아이 낳으러 들어가기 전에
신발을 정돈하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 황지우, 신 벗고 들어가는 그곳. 중에서
출장 간다. 장시성의 수도인 난창으로 가서, 거기서부터 약 20일 동안 장시성 곳곳을 다녀보고 사진과 원고를 마련하는 출장이다. 출장이래도 다 같은 출장은 아닌 모양이다. 호텔 촬영같은 경우는 가서 며칠 동안 깔끔하게 작업하고 돌아오면 된다. 그런 출장은 내가 사진가라는 것을 더 분명하게 하고, 한 명의 일꾼으로 단단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런데 여행을 다니고 원고를 쓰는 출장은 꼭 뿌리내릴 곳 없이 물에 뜬 채로 흘러다니는 수초의 방식같다. 불안하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 하고 이렇게 떠돌다가 세상이 끝날 것만 같아서, 그러면 나는 이 땅에 온 아무 흔적도 이유도 애착도 성취도 없는 것 같아서 무섭다. 이번 출장이 애초에 이런 형태인 줄 알았다면 다시 한 번 생각했을 텐데, 나중에서야 정확한 내용을 알았다. 이미 결정해서 통보하기도 했거니와, 여행하고 사진찍고 돌아와서 글쓰면 돈도 준다니까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간다.
청소했다. 우선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통에 남은 빨래가 없도록 세탁기 돌려서 널었다. 발냄새 너무 나던 암벽화도 빨아서 그늘에 두었다. 쓰레기통을 비우고, 냉장고에 있던 오래되어서 못 먹는 먹거리들도 치워냈다. 읽겠다고 잔뜩 욕심만 부리며 책상 위에 쌓아두었던 책들도 책장으로 돌려보냈다. 앰프 옆에 널려있던 씨디들도 대충 모아서 집어 넣었다. 여행을 가기 전에, 장기 출장을 가기 전에는 주변을 정돈하는 버릇이 있다. 다들 그런 것인지 나만 그런 것인지 모르겠는데, 아마 시인 황지우는 그런 순간에서 어떤 비장함을 읽었던 모양이다. 대학 무렵에 여행은 무서웠다. 좋아서 떠났지만, 떠나기 전에는 언제나 관두고 싶었다. 대부분 혼자 또는 두엇이 떠나는 여행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편한 곳으로 쉬기 위해 가는 여행도 아니고 주로 야간산행이나 장거리 자전거 여행이었다. 그래서 무사히 돌아오는 일이 가장 큰 목표였다. 무서울 만했다. 여행이 반복되면서 출발 전에 무서울 것도 미리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무서울 것은 짐작해도, 정작 무서움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소파 위에 이번 출장길에 필요한 물건들을 차례로 늘어놓고 빠진 것은 없는지 살폈다. 여름이니까 옷가지들은 얇은 것들로 하고, 이번에는 사진 원고도 제법 만들어야 하니까 카메라 장비를 여행 때보다는 조금 더 챙겼다. 등산화도 챙겼다. 오래 걷는 날이 많을 것이고, 공산당의 유격지로 유명한 정강산은 제법 험할 것이다. 책은 세 권을 챙겼는데, 크기가 작고 가벼우면서도 오래 읽을 만한 것들로 골랐다. 아마 다 읽지는 못 할 것이다.
배낭 꾸리고 일찍 자야겠다. 좀 담담하게 다녀와야겠다.
2010.07.30 13:31
여행잡지사 주최로 사천성 청두에 다녀온 적이 있다. 몇 달 된 일이다. 그 뒤에 한 번 더 연락을 받았는데, 꽤나 장기 여행을 제안했는데 다른 스케줄 때문에 못 갔었다. 며칠 전에 편집장 전화가 왔다. 장시성에, 약 20일 정도, 비용은 잡지사에서 부담하고, 돈을 지급하고, 사진 찍고, 글을 써라. 뭐 대충 이런 말들을 했다. 제안한 여행 기간 중에 다른 스케줄이 있었기 때문에 우선 알았다고 하고 끊었다. 그리고 급하게 연락해서 다른 스케줄을 조금 조정하려고 했는데, 조정이 안 되고 취소됐다. 그래도 선약인데, 많이 미안했다.
시간은 확보를 했으니 다시 편집장과 통화해서 정확한 내용을 물었다. 여행 기간 20일 동안 장시성 대부분 지역을 돌아보고 8만 자 원고를 쓰면 된다. 8만 글자면, 한글 기준으로 50장 정도 되는 모양이다. 날마다 꼬박 두 장씩 써야 하는 분량이다. 그냥 한글로 쓰면 된다는데, 그렇다면 한국에 낼 모양이다. 이 분량으로 책이 되지는 않을 것이고, 분량이 된다 한들 중국 전역도 아니고 장시성 한 곳에 대한 책은 수요도 없을 것인데, 도대체 의도를 파악하기 어렵다. 이야기를 쓰고, 실용적 정보를 보태는 수준에서 해주면 된다는데, 여행 안내서적이야 이미 많고 내 성격이 꼬치꼬치 캐물어가면서 차곡차곡 정리하는 작업에 서툰데, 그리고 그런 작업이라면 별로 달갑지 않은데 어렵게 되었다. 우선 난창.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래서 가능하면 내 호흡에 맞는 여행기를 써야겠다. 여행은 너댓 명이 함께 할 모양인데, 어떻게 그룹이 꾸려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제 잠들기 전에 누워서 여행서적을 폈다. 장시성에 대한 부분을 읽어보았는데 특별히 인상적인 내용은 없었다. 현대중국에 대해 쓸 수 있다면, 모택동과 연결시킬 부분은 많아 보였다. 그 부분이라면 예전에 보아둔 것들도 조금 있으니 어떻게 말을 엮어낼 수는 있겠지만, 문제는 잠재 독자들을 생각한다면, 그들이 도대체 모택동의 신화에 대해 호기심을 느낄 이유가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보이지 않아서 답답하기는 한데, 컴퓨터 앞에 앉아서 고민하는 것의 상당 부분은, 적어도 여행기에 관해서라면 괜한 걱정인 것을 이제 안다. 문장은 길 곳곳에 널려있는 것이어서, 현장에 가야 비로소 보이고 또 현장에 가면 어떻게든 보이는 것들이다. 나는 터벅터벅 걸으며 길에 널린 문장들을 주워담아 오면 된다. 와서 대충 줄 맞추어서 늘어두면 된다.
단체관광 형식은 아니라고 하니, 그에 맞는 준비가 필요하다. 트렁크 끌고 다니며 호텔에서 노닥거리고 가이드 깃발 따라 다니는 여행은 피했다. 우선 장기여행에 필요한 배낭을 사기로 했다. 마침 요즘 암벽등반 때문에 다니는 체육관 주변에는 등산용품 매장들이 여럿이다. 45리터 정도면 무난하다고 하니까, 그 쯤에서 보아둔 녀석으로 사야겠다. 다른 준비물들은 대충 갖고 있으니 어떻게 될 것이다. 장기 여행이라고는 하지만 야영을 하는 따위의 일은 없을 것이니 가져갈 짐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다만 예전 여행기의 경우 아무래도 문장을 만드는 부분에 집중했던 반면 이번에는 사진까지 제대로 된 원고용 사진을 만들어야 하니까 사진 장비를 조금 더 가져가야겠다. 그래 보아야 필드 사진이니 큰 조명들을 갖고 갈 것도 아니고, 그저 렌즈 하나쯤 더 넣고 작은 삼각대를 챙기는 정도다. 스트로보와 필터들도 가져 가야겠다. 풍경사진은 내가 선호하는 분야도, 잘 찍는 분야도 아니어서 어지간하면 나서서 찍지 않는데, 시키니 해야 한다. 해야 하니까, 상업 사진가로서 돈 받고 주문 받은 입장에서 기본적인 완성도는 해내야 한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바쁘겠다.
이 편집장은 예전에 인터뷰 기사를 쓰기도 했는데, 여행을 싫어한다는 여행 잡지사의 편집장이다. 하긴, 이런 식의 여행이라면 어쩌면 생각보다 빨리 질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 다녀 오면 8월이 다 가겠다.
2010.07.30 10:49
여름이다. 에어컨 바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게다가 편도선이 조금 부은 듯해서 집에서는 창문만 열어두고 있다. 에어컨은 켰다가 껐다가 한다. 맨몸으로 앉아 있어도 덥다. 컴퓨터랑 앰프가 거의 종일 켜져 있으니까 거기서 나오는 열도 만만치 않다. 더위가 목끝까지 차오르는 여름에는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다 털어내고 싶어진다. 가끔 사람까지 털어내게 되는 것이 문제긴 하다만.
면도했다. 깔끔하게 면도한 것은 몇 달만이다. 대충 수염이 자라는 대로 두고, 너무 길면 가위로 정리하면서 지냈다. 어제 밤에 더워서 잠을 설쳤는데, 그러면서 갑자기 답답해졌다. 아침에 새 면도날을 끼우고 싹 밀었다. 다음주 출장 전까지는 날마다 면도해서 좀 가벼워야겠다.
이발도 했다. 머리카락이 많이 길어서 답답했다. 보통 한국에 갈 때 이발하는데 이번에는 좀 오래 안 가서 머리카락이 많이 길었다. 묶고 다니기는 하는데, 답답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샤워하기 전에, 잘 드는 주방용 가위를 챙겼다. 우선 머리를 묶은 다음, 겨우 묶일 만큼만 남기고 나머지 부분을 가위로 잘랐다. 생각해 보면, 기억하는 안에서는 직접 이발한 적이 없다. 어릴 때는 동네 이발소에 다녔다. 또래 중에는 미장원이라고 이름 붙은 곳에 가는 녀석들도 있었는데, 대부분 어머니 손에 이끌려 갔었고, 그 아이들을 보며 이발소에 가는 것이 괜히 남자답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아주 어릴 때는 이발소에 가면 이발의자 팔걸이 위에 나무판자를 올려두고, 그 위에 앉았었다. 언제쯤 나도 이 나무판을 빼고 앉을 수 있을까 조급하기도 했었다.
마산에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자취방에서 10분쯤 걸어내려가면 인상 좋으신 노부부가 있는 이발소가 있었다. 고등학생 머리라고 해보아야 한 가지인데, 그 때는 그 한 가지 안에서도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이 참 여럿이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발할 때마다 어떻게든 조금 달라보이지 않을까 했는데 결과는 언제나 비슷했고, 그 비슷한 머리 모양새가 나쁘지 않아서 그 집을 단골로 삼았다. 고3은 어떤 특권이기도 하고 각오이기도 하다. 아마 두 번쯤 삭발을 했다. 대단한 각오가 있었다기 보다는 그냥 했다. 지금이나 그 때나 머리카락에 별 욕심을 내지 않았다.
군대에 있을 때는 직접 후임들 이발을 해주기도 했다. 군대 머리라는 것이 별 것 없고, 말년쯤 되니 심심하기도 했다. 대원 중에 임의로 이발병을 뽑아서 그 녀석이 보통 중대의 이발을 담당했는데, 이발병이 근무중이거나 하면 대충 손재주 있는 녀석들이 이발을 하기도 했다. 나는 손재주는 없었는데, 보기에 별로 어렵지 않았고, 나중에는 일도 별로 없으니 제법 심심하기도 해서 덩달아 했다. 보통 이발병이 이발을 해주면 고마움의 뜻으로 작은 군것질거리를 주곤 했는데, 나는 후임들에게 요구르트 주면서 제발 내가 이발하겠노라고 말하곤 했다. 바리깡 들고 이리 밀고 저리 밀면 어쨌든 머리카락이 짧아지기는 했으니까. 그러면 꼭 녀석들은 나한테 이발 받은 다음에 이발병 오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다듬고는 했다. 내 요구르트는 안 돌려주면서.
대학을 가고, 군대를 다녀와서 처음 머리를 볶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얼굴살이 없었는데, 말하고 행동하는 것과 섞여서 인상이 너무 강했다. 나는 모르는데 다들 그랬다고 했다. 어쩌자고 처음 머리를 볶았던 것인지 기억나지 않는데, 철사같이 곧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으니 부드럽게 물결치는 머리카락이 한 번쯤 부러웠던 것일 테다. 그렇게 머리를 볶은 다음이었는데, 지나가던 후배가 한 마디 했다.
"어, 선배. 이제 안 무서워 보여요."
아, 파마는 나의 운명이 되었다. 그리고 졸업할 때까지 일 년에 한 두번은 꼬박꼬박 머리를 볶았다. 살짝 염색을 한 적도 있었는데, 파마와 염색을 동시에 하니 머리결이 막막 갈라지는 것이 감당이 안 됐다. 그래서 이후에는 염색을 하지 않았다.
중국에 온 이후, 처음 온 상황에서 아무 곳에나 가서 이발하기가 무서웠다. 그 때 내가 본 것들이라고는 길가에 이발용 의자 하나 꺼내놓고 벽에 거울 걸어둔 다음 이미 회색도 한참 지난 것 같은 흰색 천으로 목부터 감은 후 기계식 바리깡을 들이미는 풍경들이었다. 기계충이라는 것도 생각났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머리카락이 길어졌다. 샤워 안 하고 따로 머리만 감는 일이 없으니까, 긴머리라고 해서 머리 감기가 더 번거롭지도 않았다. 오히려 긴 머리카락이 좋을 때도 있는데, 짧은 머리는 낮잠을 마음대로 잘 수 없다. 꼭 한 쪽이 눌려서 밖에 나가거나 사람 만나면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긴 머리는 묶으면 그만이라서 마음껏 낮잠을 잘 수 있다. 묶은 머리끈 아래로 한 줌쯤 되는 머리카락을 덜렁거리며 처음 집에 갔을 때 부모님은 깜짝 놀라셨고, 집 밖에 못 나가게 하셨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곧장 카드 쥐어주시면서 미용실로 보내셨다. 자르고, 볶고 돌아왔더니 어찌나 표정이 밝아지시던지. 시간이 지나서, 이제 부모님도 어지간한 머리 스타일에는 면역이 되신 듯하다. 한 번은 머리를 안 묶일 만큼 자르고 볶아서 갔더니, 아버지께서
"요번에는 스타일이 좀 다르네?" 하고 마셨다.
이제는 특별히 머리카락에 집착하지 않으니까 때마다 되는대로 깎는다. 그 뒤로 두어 번은 삭발도 했다. 너무 더워서 도대체 머리카락을 감당하기 싫었다. 떼어낼 수 있는 것은 뭐든 치워내고 싶었다. 밀어달라고 말했더니 미용실 사람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제법 목까지 오는 머리였다. 그걸 저기 옆에 서 있는 삭발 아저씨를 가리키며 저렇게 해달라고 했으니. 짧은 머리는 되려 더 자주 이발해야 하고 낮잠이라도 자면 바로 증거를 남긴다. 무엇보다, 이번에도 삭발을 할까 했더니 지난 번 머리를 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말린다. 이상하다. 그 때는 괜찮다고 말했던 그 사람들인데. 완전히 밀어버린 머리카락이 자라서 다시 묶을 만큼 되기에는 2년 정도 걸리는 것 같다.
직접 머리카락을 자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이발할 때가 되면 당연히 이발소든 미용실이든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왜 직접 자를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해봤을까? 가만 보면, 사람마다 머리카락은 비슷한 자리에 비슷한 모양으로 있는데, 그 비슷한 것들 속에서 어떤 차이를 만들어 내려니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또, 어떤 형태도 없이 그저 머리 위에 얹어둔 것 같은 남성들의 고만고만한 머리카락을 보면 어째 좀 아닌 것도 같다. 어쨌든, 기억하는 한에는 처음으로 내 손으로 가위를 쥐고 머리카락 한 웅큼을 잘라냈다. 묶은 후에 남은 부분은 자른 거라서 주로 뒷머리 부분이 잘려나갔다. 짧은 단발이 되었다. 별로 이상해 보이지는 않으니 다행이고, 묶으면 그나마 안 보이니 문제도 아니다. 문제가 되면 또 대순가? 머리카락은 자란다.
2010.07.17 07:51
웹진은, 7, 8월 두 달 동안 정돈해서 9월부터는 제대로 시작하려고 한다. 글을 써줄 사람들 대부분이 잠시 동안 한국으로 돌아가서 지금은 일지.를 제외하면 개점휴업이다. 그 사이에, 보아서 그럴 듯한 틀을 마저 다듬고 앞으로 올라올 원고들을 편집하는 틀도 만들어 두어야 한다. 꾸준히, 정기적으로 쓰도록 필진들도 다독여야 하고 좀 더 심사숙고한 원고들이 나올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맞춰 두어야 한다.학부유학생들을 좀 만나보아야 하고,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공부 목록도 꾸려 보아야 한다.
에프상하이의 이서방에게 지나가는 말로 사진영업을 부탁했더니 진지하게 고려해 주겠다고 했다. 내가 작업한 호텔 인테리어 사진들을 포트폴리오로 만들면, 상하이와 주변 지역 4, 5성급 호텔 홍보팀에 전화해서 담당자 연락처를 받고, 그들에게 내 포트폴리오를 보내주면 되는 일이다. 초기 한 달은 별도의 금액을 지불하고, 이후에는 각 계약건에 대해 인센티브 방식으로 지급하겠다고 말했다. 일 좀 해야지.
지난 홈페이지를 다시 보게 된 것은 많은 자극이 된다. 더 좋은 조건에 있는 지금, 그 때보다 더 적은 결과물을 내고 있다는 것은 완성도의 문제를 떠나 게으름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 때 찍은 사진은 너무 서툴고 그 때 쓴 문장들은 너무 부풀었더라. 그래도 반성하게 되는 것은, 왜 그 때처럼 따뜻한 사진들을 더 찍지 못 하는 것일까? 왜 그 때처럼 살가운 말들을 이제는 건네지 못 하는 것일까? 그 때보다 사진은 무서워졌고, 그 때보다 문장에 대한 결벽증이 심해졌다. 같은 사진, 같은 문장을 만들지는 못 하겠지만, 그 때처럼 찍고 쓸 수 있도록 애써 보아야겠다.
암장에서는 두 달 정도 별도 레슨을 받을 것을 추천했다. 그저 힘만으로 벽에 붙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필수적인 기술들이 있고 그 기술들은 단지 오래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아마 그래야 할 모양이다. 그래도 다른 운동에 비하면 두 달 정도만 배워서 기본을 몸에 익힐 수 있다는 것은 비교적 쉬운 것이다. 신발과 분가루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거의 맨몸으로 벽에 붙어 한 뼘씩 나아갈 때 몸이 참 홀가분하다.
새로 주문한 책들에 떠밀려서 이번 여름에는 책을 좀 부지런히 읽기로 했다. 마침 바쁜 일도 없으니 두어 시간에서 대여섯 시간까지 책을 본다. 책들은 두껍고 속의 말들은 어려워서 빨리 읽히지 않는다. 자꾸 욕심만 나서 하루에 여러 권을 함께 뒤적이니까 진도는 더 안 나간다. 아침에 책장에서 빼서 대충 보다가 저녁에 다시 집어넣는 책이 여러 권이다. 하루를 세 등분으로 나누고, 첫 시간에는 주로 책을 보고, 낮 시간에는 다른 볼일을 보고, 저녁 시간에는 사진작업을 하는 형태의 생활을 구축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욕심난다고 하루 종일 책을 붙들고 있는 것보다, 하루에 두어 시간 이상 꾸준히 읽어나갈 수 있도록 틀을 만드는 작업이 더 필요하겠다.
2010.07.16 22:54
우수님이다. 지난 내 사이트에서 찾았다.
이번 사진 스터디를 끝내며,
저도 이렇게 사진을 배웠습니다. 제 선생님께서 본인의 스튜디오를 개방해서, 사람 손 타면 망가지는 그 장비들을 마음껏 쓰게 하시고, 찍은 사진 보면서 야단 치시고 다시 찍으라고 하시고, 밥 사먹여 주시면서 데리고 여기 저기 다녀주시면서 그렇게 사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도, 그냥 받은 대로 돌려드리는 겁니다.
말했다.
중국에 와서 제일 처음 찍은 내 사진은, 맹인 얼후 연주자 앞에서 사진 허락을 받고 찍은 한 장이다. 앞을 못 보는 연주자는 시끄러운 도로변에 앉아서 얼후를 연주했는데, 되지도 않는 중국어로 무슨 이유에선지 그 앞에 가서 나를 소개하고 사진 허락을 받았다. 연주자는 내 카메라를 보지 못 할 것이고, 자동차의 소음은 셔터 소리를 감출 것인데 어쩐지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할머니와 눈맞추고 계신 우수님 사진을 보니, 내가 왜 그랬는지, 누가 내게 그러라고 세뇌시켰는지 비로소 알겠다.
같이 있으면 언제나 우수님 우수님 했는데, 마음 속에서 우수님은 언제나 선생님이셨다.
여기 사람들에게도 우수님을 소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수님 사진 아래는 이렇게 적혀있다.
새벽 다섯 시 생선 경매장.
날도 추운데 뭐 할려고 나왔냐는 우수님 말에,
노할머니께서는
"심심해서 구경할라꼬 나왔다 아이가."
답하셨단다.
그리고, 웃으셨단다.
피사체에 다가서기 위한 기술로써 뿐만 아니고, 그것보다
사람을 알기(智) 위한 감성으로써
한 발 가깝게 서서 웃음에 공감해야 한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의 깊게 패인 주름을 서투르게 담아두고
"인생"이니 "여로"니 따위의 제목으로
닳아진 외투에 신문지 덮고 있는 노숙자를 몰래 담아두고
"생의 뒷골목"이니 "그의 겨울"이니 따위의 제목으로
어설프게 조롱하면 안 된다.
길지 않은 길이라도 같이 걸어 보고
모자란 두어 마디 인사라도 건네 보고
그게 힘들다면 하다 못해
한 자리 가만 서서 눈이 아릴만큼 그의 얼굴을 바라본 후에
그렇게 한 후에야 조심스레 셔터를 눌러도 될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런 사진이
참 오래도록 꼭 같은 무게로 맘에 남을 것 같다.
사진찍는 사람은 모쪼록
그래야 할 것 같다.
040129 거제도
모델 - 우수님. 도촬...-.-;;
모델료를 드려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려중... ^^
2010.07.16 22:42
몇 년 전에 쓰던 홈페이지에 문제가 생긴 것을 오늘 알았다. 이제 쓰지 않는 공간이지만 접근만 차단되어 있을 뿐, 여전히 있기는 한 곳이다. 스팸 댓글을 생성하는 프로그램에 걸려서 게시물마다 댓글이 적게는 수 십 개에서 많게는 수 천 개씩 붙어 있었다. 현재 홈페이지와 블로그 역시 같은 서버를 쓰고 있어서 여기까지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다른 게시판들은 그나마 쓰기 권한이 내게만 있어서 나았는데, 방명록 게시판은 난장이었다. 제로보드 사이트에서 해법을 찾아보았지만 뾰족한 수는 없는 듯했다. 결국 스팸 댓글이 많이 달린 게시물을 삭제했다. 몇 년 동안 모였던 안부 인사 중에 1/3 정도를 삭제했다. 안타깝고, 미안했다. 내가 기록에 집착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았다.
몇 시간 동안, 잊었던 그 곳을 찬찬히 다시 보았다. 다 보지는 못 했다. 그 때, 나는 참 부지런하고 에너지가 있었던 모양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짓을 어찌 그리 열심히 했는지. 사진 에세이도 많이 썼다. 문장들은 어찌나 닭살스럽게 억지 멋을 부렸는지. 지금 다시 그렇게 못 하는 이유를 생각하니까, 우선 사진을 좀 더 알게 되어서 그렇다. 부지런히 찍어도 좀처럼 마음에 드는 사진이 잘 안 나온다. 물론 그 때보다는 카메라를 무겁게 느끼고, 항상 휴대하지 않는 게으른 탓도 있다.
가장 애착이 남는 게시물들은 역시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 사람들이 남겨준 안부인사를 살피다가, 한국에 있는 텃밭 누나에게, 지미에게, 우수님에게 전화했다. 통화는 텃밭 누나만 됐다. 이 녀석이 왜 갑자기 전화를 하나 싶었겠다. 다들 그리워서 그랬는데.
이미지는, 게시판들 중에 사람에 대한 이야기만 따로 모아서 올려두던 게시판의 메인 이미지다. 실루엣으로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과 얼굴과 목소리와 느낌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그 무렵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뭐라고 할까? 그 좋은 카메라로, 그 실력으로, 그 한가함으로, 그렇게 좋은 피사체들이 많은 땅에서 왜 너는 그렇게도 게으른 사진을 찍고 있냐고,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화를 내지 않을까.
2010.07.08 21:11
감기몸살을 앓았다. 몇 주쯤 전에 몸이 살짝 불안했었다. 어쩌면 감기가 올 모양이라고 생각도 했었는데, 그냥저냥 움직이니 하루 이틀쯤 지나고 어떻게 다시 움직일 만했었다. 그리고 끝난 줄 알았다. 잔기침이 생겼다. 무슨 일인가 했다. 에어컨을 새로 틀어서 그런가 싶기도 했다. 그 몸으로 자전거도 잘 타고 다니고 암장에서 벽도 탔다.
지난주 어느 날에 갑자기 기침이 심해졌다. 앉아 있어도 기침이 나고 길을 걸어도 기침이 나서 이상했다. 감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러기엔 몸은 제법 힘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서야 알아챘다. 아, 왔구나. 이틀 정도는 기침이 너무 심해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열도 나고 힘도 없었다. 에어컨을 끄고 일부러 땀을 흘리면서 시체처럼 이틀을 지냈다. 그런데도 몸은 별로 차도가 없으니 슬슬 짜증이 났다. 이 만큼 성의를 보였으면 낫는 척이라도 해얄 것 아니냐. 더 누워 있는다고 될 것도 아니어서 그냥 암장 갈 것 가고 대신 밥을 든든하게 먹었다. 약도 얻어 먹었다. 가능한 쉬었다.
오늘로 일주일쯤 되었다. 시작하던 그 때처럼 약간의 잔기침이 남은 것을 빼면 대충 다 나은 듯싶다. 아침에 미팅을 하나 하고, 빌어먹으실 아이폰을 또 수리하고, 식빵도 샀다. 오후 늦게 들어와서 낮잠도 좀 자고, 책도 보고 저녁 운동도 했다. 거의 일주일 동안 꺼져있던 앰프도 켜서 새 음악도 듣는다. 피빨아서 배 불뚝한 모기도 한 마리 잡았다.
올 만했다는 생각이 든다. 몇 달 잘 놀았다. 다니기도 여기 저기 다니고 일도 이 것 저 것 했다. 신나게 움직였으니 몸살 한 판쯤 앓아주는 것도 그럴 만하다 싶다. 이제 대충 수습했으니까, 다시 몇 달을 신나게 움직여야겠다.
2010.06.28 08:12
장마인 모양이다. 며칠 전부터 비가 오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다. 가끔 비가 그쳐도 하늘은 여전히 낮고 어두워서 언제든지 다시 비를 쏟아부을 것 같다. 다음주 일기예보를 보아도 계속 비가 온다고 하니 당분간 빨래는 잘 안 마를 모양이고, 당분간 밖에서 움직이는 일이 번거로울 모양이다.
6월도 끝물이다. 작년에도 그랬던 것 같은데, 올해도 유난히 빨리 간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딱히 무엇을 많이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시간은 참 잘 간다. 지금이 내 삶의 신나는 한 때라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느리지만 분명한 것은, 조금씩 더 부지런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7월이 오기 전에,
우선 메일 몇 개를 정리하고 소식 몇 개를 보내야 한다.
앞으로 두 달 정도 별다른 스터디가 없으니 그 동안 읽어야할 책들의 목록을 만들고, 나를 등 떠밀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웹진의 틀을 제대로 구축할 계획을 세워야 한다.
2010.06.26 10:39
서늘하다. 며칠 연달아 비가 내려서 바깥이 많이 식었다. 그늘에 있어도 숨을 막아서던 습기도 물러가서 비는 오는데 상쾌하게 되었다. 창문들 닫고 자고 새벽에는 이불을 당겨 덮는다.
어제 이승희씨가 다녀갔다. 한참 멈추어있는 책 원고에 대한 의견을 물었는데, 다들 비슷한 모양이다. 중심을 잡아야 하고, 타겟을 확실히 해야하고, 좀 더 쉽게 읽힐 수 있어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리고 오늘 새벽 비몽사몽 중에 갑자기 원고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서둘러 깼다. 벌떡 일어나서 거실로 나왔다. 상하이를 사진으로 말할까 보다. 사진을 많이 담는 책이 아니라, 사진적인 장면을 문장으로 풀어내는 작업이 되지 않을까 싶다. 먼지 쌓인 원고들을 챙겨서 원고 속에 등장하는 장소들로 다시 가야겠다. 자전거를 타고 가야겠다. 어디 길가에 앉아서 그 길의 질감을 문장으로 옮겨야겠다. 그리고, 오직 사진가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를 보태야겠다.
베토벤과 말러는 끝판대장처럼 남겨두려고 한다. 우선은 쉽고 인상적으로 들리는 드보르작과 차이코프스키를 좋아하며 듣는데, 베토벤은 대충만 들어봐도 도대체 어렵고 말러는 워낙 다들 어렵다고 하고 또 호불호가 분명해서 시작도 못 하고 있다. 그러다가 어제 지나갈 일이 있어서 말러 교향곡 두 개를 사 왔다. 분석하며 들을 생각은 꿈도 못 꾼다. 다만, 말러의 교향곡들은 감정을 분해하고 해석해서 전하는 것이 아니라 폭풍처럼 몰아친다니까, 현대 회화쯤 되지 않나 싶고, 현대회화라면 제법 즐길 수 있으니까 말러도 어떻게 되어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진다. 교향곡을 들을 때는 밤 시간에, 볼륨을 높이고, 방 안에 불은 모두 끄고, 거실 가운데 서서 리모콘을 한 손에 들고 지휘하듯 듣는다. 온몸으로 들으면, 교향곡이 좀 더 가까이 들린다.
새로 온 책들을 보는데, 아무래도 좀 무게가 있는 책들은 뒤로 미루게 되고 가볍고 흥미로운 책들을 먼저 보게 된다. 일해야 되는데 일도 안 하고 본다. 균형을 좀 맞춰야겠는데, 가벼운 책들은 언제 봐도 재밌으니까 화장실에 있을 때나 토막 시간에 잠깐씩 보고, 제대로 책상에 앉아 있는 동안에는 읽고싶은 책보다 읽어야 되는 책들을 좀 보는 것이 맞다. 잘 안 되지만.
암벽화를 샀다. 암벽화는 일반 신발과 달라서 마찰력을 극대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발의 맨 앞과 맨 뒤의 힘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아주 작게 신는다. 그래서 신고 있으면 발가락이 아프다. 실내암장에 가서 매달려 봤는데, 처음에는 그럴 듯해보여도 잠시만 운동하면 곧 손 끝에 힘이 빠져서 버티기 힘들다. 한 동안 몸이 적응해야 제법 벽을 타겠다. 전신 운동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팔 힘이 충분하지 못 해서, 팔의 체력에 맞추니 하체는 거의 놀다시피 한다. 덕분에 두어 시간 운동하고 나와도 팔만 좀 버겁고 기분으로는 자전거라도 두어 시간 더 탈 것 같다. 자전거를 타고 암장까지 가서 벽을 타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면 되나? 사실 실제 암벽 등반에는 거의 관심이 없고, 실내 암장에서 운동삼아 하는 것이 딱이다. 그런데 자꾸만 쇼핑몰에서 새 배낭을 검색하고 있다. 나는 그런 적이 없는데, 요즘 들어 지름신께서 우리 집에 세들어 사는 것 같다.
2010.06.25 07:16
지난 밤에 일찍 자서 새벽에 일찍 깼다. 일도 조금 하고, 마침 비가 잠시 그쳐서 새벽 산책도 하고 아침도 먹었는데 시계 보니 이제 7시다.
큰 선물이라도 받은 기분이다.
2010.06.23 15:08
주문했던 책들이 왔다. 처음 이용해본 택배는 조금 버벅대기도 했다. 한꺼번에 많은 책들이 오니까 그 중에 바깥쪽 몇 권은 제법 모서리가 무너진 것도 있다. 그래도 어쨌든 다들 큰 탈 없이 왔다. 책이 서른 네 권이고 음반이 네 장이다. 그리고 책에 딸려오는 사은품이 네 개다. 주문서에는 모두 마흔 두 개가 적혔다.
하나씩 꺼내서 오늘 날짜를 적었다. 내가 내 돈 주고 오늘 구입했다는 표시다. 책장에 남은 공간에 아슬아슬해서 옆 방에 있는, 옷정리함으로 쓰는 좁은 책장을 가져올까 하다가 억지로 대충 넣으니 들어는 간다. 다음 책들을 살 때쯤이면 책장이 더 필요하게 될지 모르겠다.
미학스터디 맴버들은 요상맞은 커리큘럼을 짰다. 미학책 1년쯤 읽으니 질린다고 좀 더 가벼운 책들로 가기로 했다. 서로 평소에 마음에 둔 책들을 아무렇게나 두어 권씩 말하다 보니 별 것이 다 나온다. 덧붙여 러시아 소설을 좀 보자고 했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은 그래서 온 것들이다. 두껍다. 안나 카레리나는 세 권이고, 죄와벌, 전쟁과 평화,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두 권씩이다. 톨스토이의 회고록은 아주 얇은 한 권이다. 돈 아깝다. 솔직히, 다 내 돈으로 사게 될줄 미리 알았다면 저 소설들을 사는 것은 심각하게 다시 고민했을 테다. 작지 않은 번거로움이 있더라도 중고를 구입하는 방법을 고려했을 것이다. 한국의 책들은 너무 화려해서, 도대체 그럴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 너무 겉치장만 해서 값을 올린다. 그러니 사고 싶은 마음이 드나 어디. 저 두꺼운 것들만 어떻게 했어도 10만원은 아꼈겠다. 그나저나 저것들을 언제 다 보나? 저것들 다 읽으면 러시아의 색을 조금은 알게 되나? 문학도 문학이지만 그 나라 음악도 위대하니까 왜 유독 그 나라는 그런가 궁금하다. 추운 곳이라서, 겨울 되면 밖에 못 나가니까 집 안에서만 놀아서 그런가?
발터 벤야민의 전기소설, 노무현 대통령의 자서전, 한 역사학자의 자서전, 연암의 서간집, 재기발랄한 인터뷰집도 왔다. 가볍게 읽고 든든하게 챙길 수 있는 책들이다.
이번 여름 동안 니체를 좀 알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두어 권 주문했다. 갖고 있는데 읽지 않은 니체가 여러 명이니까, 다 모아서 읽으면 윤곽이라도 잡지 않을까?
이상한 이론서들 몇 권도 있다. 문학스터디에서 다음 학기에 볼 책들이고, 또 두어 권은 평소에 마음에만 두었다가 이 참에 주문한 것들이다. 표지만 보고 구석에 던졌다. 내가 보면서도 도대체 이런 책을 왜 보는지 가끔 이해하기 싫다.
미학에 관련된 책은 세 권쯤 된다. 특히 그 중에 수학을 아름다움과 연결시킨 책이 끌린다. 예술의 구성 방식에 대해 말할 때 모방 표현 형식 세 가지를 주로 드는데, 수학은 아무래도 형식과 닿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 말이, 상대성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미학이었다니까.
주문한 음반들은 모두 한 가닥 하는 것들이다. 음악이나 예술의 바탕에는 그 감상을 통해 얻는 감동이 있을 것인데, 피부에 직접 와 닿는 1차원적 감동은 당분간 그냥 신경 안 쓰기로 했다. 음악도, 독서도 공부하는 마음으로 듣고 읽기로 한다. 황병기의 가야금 작품집 3집. 미궁. 집시 바이올리니스트 라카토시의 앨범 한 장. 그리고 파비오 비욘디의 요란한 사계. 이렇게 세 장이다. 아직 뜯지는 않았다. 마침 옆 집에서 공사를 해서 드릴 돌아가는 소리, 컴프레셔 에어 충전하는 소리 때문에 난리도 아니다. 저녁 때 조용하게 앉아서 불도 끄고 차분하게 노트 펴 놓고 들어봐야겠다.
시켜놓고 보니, 쌓아두고 보니 마음이 넉넉하다. 다 읽으려면 오래 걸릴 것이고, 개중에는 결국 못 읽어내고 빚처럼 남는 책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집착이니 뭐니 해도 책은 그냥 편하게 집착하고 말아야겠다.
2010.06.23 15:03
주문했던 책들이 왔다. 처음 이용해본 택배는 조금 버벅대기도 했다. 한꺼번에 많은 책들이 오니까 그 중에 바깥쪽 몇 권은 제법 모서리가 무너진 것도 있다. 그래도 어쨌든 다들 큰 탈 없이 왔다. 책이 서른 네 권이고 음반이 네 장이다. 그리고 책에 딸려오는 사은품이 네 개다. 주문서에는 모두 마흔 두 개가 적혔다.
하나씩 꺼내서 오늘 날짜를 적었다. 내가 내 돈 주고 오늘 구입했다는 표시다. 책장에 남은 공간에 아슬아슬해서 옆 방에 있는, 옷정리함으로 쓰는 좁은 책장을 가져올까 하다가 억지로 대충 넣으니 들어는 간다. 다음 책들을 살 때쯤이면 책장이 더 필요하게 될지 모르겠다.
미학스터디 맴버들은 요상맞은 커리큘럼을 짰다. 미학책 1년쯤 읽으니 질린다고 좀 더 가벼운 책들로 가기로 했다. 서로 평소에 마음에 둔 책들을 아무렇게나 두어 권씩 말하다 보니 별 것이 다 나온다. 덧붙여 러시아 소설을 좀 보자고 했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은 그래서 온 것들이다. 두껍다. 안나 카레리나는 세 권이고, 죄와벌, 전쟁과 평화,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두 권씩이다. 톨스토이의 회고록은 아주 얇은 한 권이다. 돈 아깝다. 솔직히, 다 내 돈으로 사게 될줄 미리 알았다면 저 소설들을 사는 것은 심각하게 다시 고민했을 테다. 작지 않은 번거로움이 있더라도 중고를 구입하는 방법을 고려했을 것이다. 한국의 책들은 너무 화려해서, 도대체 그럴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 너무 겉치장만 해서 값을 올린다. 그러니 사고 싶은 마음이 드나 어디. 저 두꺼운 것들만 어떻게 했어도 10만원은 아꼈겠다. 그나저나 저것들을 언제 다 보나? 저것들 다 읽으면 러시아의 색을 조금은 알게 되나? 문학도 문학이지만 그 나라 음악도 위대하니까 왜 유독 그 나라는 그런가 궁금하다. 추운 곳이라서, 겨울 되면 밖에 못 나가니까 집 안에서만 놀아서 그런가?
발터 벤야민의 전기소설, 노무현 대통령의 자서전, 한 역사학자의 자서전, 연암의 서간집, 재기발랄한 인터뷰집도 왔다. 가볍게 읽고 든든하게 챙길 수 있는 책들이다.
이번 여름 동안 니체를 좀 알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두어 권 주문했다. 갖고 있는데 읽지 않은 니체가 여러 명이니까, 다 모아서 읽으면 윤곽이라도 잡지 않을까?
이상한 이론서들 몇 권도 있다. 문학스터디에서 다음 학기에 볼 책들이고, 또 두어 권은 평소에 마음에만 두었다가 이 참에 주문한 것들이다. 표지만 보고 구석에 던졌다. 내가 보면서도 도대체 이런 책을 왜 보는지 가끔 이해하기 싫다.
미학에 관련된 책은 세 권쯤 된다. 특히 그 중에 수학을 아름다움과 연결시킨 책이 끌린다. 예술의 구성 방식에 대해 말할 때 모방 표현 형식 세 가지를 주로 드는데, 수학은 아무래도 형식과 닿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 말이, 상대성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미학이었다니까.
주문한 음반들은 모두 한 가닥 하는 것들이다. 음악이나 예술의 바탕에는 그 감상을 통해 얻는 감동이 있을 것인데, 피부에 직접 와 닿는 1차원적 감동은 당분간 그냥 신경 안 쓰기로 했다. 음악도, 독서도 공부하는 마음으로 듣고 읽기로 한다. 황병기의 가야금 작품집 3집. 미궁. 집시 바이올리니스트 라카토시의 앨범 한 장. 그리고 파비오 비욘디의 요란한 사계. 이렇게 세 장이다. 아직 뜯지는 않았다. 마침 옆 집에서 공사를 해서 드릴 돌아가는 소리, 컴프레셔 에어 충전하는 소리 때문에 난리도 아니다. 저녁 때 조용하게 앉아서 불도 끄고 차분하게 노트 펴 놓고 들어봐야겠다.
시켜놓고 보니, 쌓아두고 보니 마음이 넉넉하다. 다 읽으려면 오래 걸릴 것이고, 개중에는 결국 못 읽어내고 빚처럼 남는 책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집착이니 뭐니 해도 책은 그냥 편하게 집착하고 말아야겠다.
2010.06.22 21:58
도자기 빚는 곳에 다녀왔다. 바람소리 누나랑 보람이랑 같이 갔다. 보람이는 누나랑 친하다. 예전에 중국어를 배울 때 같은 학교에서 배웠다. 그리고 미국으로 그림을 공부하러 갔는데, 이번에 방학 동안 잠시 상하이 집에 왔고, 바람소리 누나랑 같이 놀았다. 나는 가가멜 스프같은 인도 커리를 먹는 집에서 누나 소개로 처음 만났다. 끼리끼리 논다고, 착한 속에 에너지를 품은 녀석이다. 누나랑 닮은 것도 같고 또 다른 것도 같다. 재미난 놀거리를 생각하는 두 사람 앞에서 툭 던진 말을 두 사람은 덥썩 물어서, 바로 떴다.
흙을 반죽하면서 공기방울을 빼고, 덩어리로 만든 흙을 물레 위에 올려서 돌려가며 그릇을 빚는다. 나는 무얼 만들까 하다가 스피커와 전등갓을 만들기로 작정했다. 집에서 갈 때 컴퓨터 스피커 유닛 하나를 떼어 갔다. 도자기로 인클로져를 만들면 그 소리는 짐작할 수 없겠지만, 특별하고 재미난 스피커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오로지 반사광만 나오는 작은 전등을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흙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세게 만지면 곧 망가졌고 약하게 하면 모양이 안 나왔다. 잘 안 되니까 오기가 생기기 보다는 될대로 되라는 심정이 되었다. 하다가 하다가 안 되니까 보기에 딱했는지 선생님이 다 해주다시피 도와주셨다. 스피커는 일찌기 포기했고, 전등도 될 게 아니더라. 가장 쉬운 걸로 하긴 해야겠는데 남들 다 하는 것은 또 하기 싫었다. 큰 쟁반을 만들었다. 가운데 작은 쟁반 하나가 더 담긴 모양이다. 그러니까 이게 완성되면 가운데는 밥을 담고 주변에는 반찬을 담을 수 있다. 가운데 국을 담고 주변에 밥이랑 반찬을 한꺼번에 담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밥 한 끼에 설거지 한 번만 하면 되는 놀라운 작품이 되는 거다. 도자기는 열흘 가까이 건조한 다음에 유약을 바르고 그림을 그려서 굽는다. 열흘쯤 뒤에 다시 한 번 더 소주로 가야한다. 보람이는 미국에 돌아가고 없을 테니까, 혼자 가거나 누나 꼬드겨서 가야겠다.
일주일이나 밀린 스터디가 오늘 있었다. 푸코의 성의역사. 1권을 다뤘는데, 스터디 시작하고 두어 시간 지날 때까지 성.이라는 단어는 한 번도 안 나오고 이야기는 온갖 곳으로 흘렀다. 맴버들이 방학이라고 한국으로 다들 가서 세 명이서 했다. 다 못 하고, 다음 주에 마저 하기로 했다. 다음 학기에 할 책들을 거의 확정했는데, 이번 학기보다 더 재미없는 책들이다. 허. 주문은 해두었다만, 정말 재미는 없는 책들이다.
암벽등반을 배우기로 했다. 지난주에 첫 모임이 있었다. 오후에 실내암장에 가서 실제 연습했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재미있다. 작년 여름 계림과 양숴로 1주일 동안 자전거 여행을 갔을 때 어깨를 다쳤다. 산에서 괜히 과속하다가 공중 2회전 해서 어깨로 추락했었다. 그 다음 날에 암벽 등반을 체험하는 코스를 예약했었는데, 결국 못 하고 왔다. 그리고 어깨 때문에 1년 동안 운동다운 운동을 할 수 없었다. 이제 거의 나아서 다시 해야겠는데, 검도를 다시 하자니 우선 너무 멀다. 게다가 검도는 일주일에 한 두 번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니까 도저히 현실적으로 어렵다. 수영을 하자니 지금 체력으로 하기에는 또 부담이다. 재미도 있어야겠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해도 무난한 운동을 생각하다가 암벽등반 모임의 시작 공지를 읽었다. 서너 달 정도 그냥 즐기는 수준에서 배우고 기본적인 장비 사용법만 익히려고 한다. 그 다음에는 주로 실내 암장에서 볼더링(로프를 쓰는 높은 벽을 타는 것이 아니라, 메트가 깔린 낮은 곳에서 암벽 스킬을 익히는 훈련을 말한다) 위주로 운동하려는 것이 계획이다. 우선 암벽화와 등산용 분가루만 구입하면 된다.
2010.06.19 23:40
일 좀 하겠다고 다 저녁에 커피를 한 잔 마셨더니 제대로 걸려서 잠이 안 온다. 큰 컴퓨터 끄고 정면으로 돌아앉아서 음악 틀고 원고를 쓴다. 쓰다가 인터넷 켜서 여기 좀 들락거리고 저기 좀 들락거리니까 문장은 진도 나간 것이 없고 시간은 잘 때를 넘겼다. 내일도 새벽에 깨야 되는데 이 모양이다.
간단하게라도 정리해 두어야 할 메모가 두 개 있는데, 하나는 벌써 한 달쯤 전에 있었던 발제 중에 '댄디'에 대한 내용이고, 다른 것은 '클래식의 신화'에 대한 것이다. 댄디.는 참 재미있는 돌연변이 같은데, 도닦는 것 중에 외형으로 도 닦으려 했던 것은 아마 그들이 유일하지 않나 싶다. 미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기특하기도 하고, 다르게 보면 우습기도 하다.
하우저의 문장 중에, 젊은 예술만이 대중이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허락한다는 내용이 있다. 상당히 그럴 듯한데, 그러니까 그 역사가 가장 오랜 회화와 음악은 이미 늙어서 대중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하우저는 하나의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역사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이어서 썼는데, 그러니까 클래식이 어렵대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 진입장벽은 높고, 그 밖에 있는 것들을 어느 정도는 소외시킨다. 재즈가 그 밉살스러운 왕관을 물려받으려고 한다.
대충 적어두고, 나중에 그럴 듯한 주석 좀 찾아가면서 적어야겠다.
게으름은 유전자에 새겨진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아마도 어릴 때부터 생겨난 습관일 것 같은데, 괜히 변명이라도 하려면 유전자 탓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러니까, 게으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벼락치기 하는 사람과 차근차근 해내는 사람은 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더 이상 부지런하려는 노력 따위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만둘 수 있겠는데. 아마 아니겠지?
웹진에 사람 모으는 재미가 있다. 아마 9월쯤에 정식으로 소문을 낼 것 같은데, 그 전까지 되도록 여러 사람을 모아서 좀 살가운 마당을 만들어 둘 수 있으면 좋겠다. 바람소리 누나와 보람이를 며칠 전에 꼬드겼고, 오늘은 또 새 사람 한 명에게 바람을 넣었다. 아마, 막강한 사람일 모양이다. 사람들이 모여서, 처음 작정한 만큼 서로에게 버팀이 되고 또 신나는 바람이 되어 주면 좋겠다. 되어가는 꼴을 보니, 아마 될 모양이다.
2010.06.16 22:10
어도비의 페이지 편집 프로그램 인디자인.을 설치하려다가 실패했다. 뒷문으로 하려다가 그랬다. 예전에는 잘 해서 썼는데 그 동안 뭐가 달라졌나 보다. 덕분에 같은 시리즈로 묶여 있는 포토샵까지 폭파됐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새로 나온 최신버전을 구해야겠다.
책 주문했다. 개인적으로 욕심나는 책들, 스터디 때문에 볼 책들을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한참이 지났다. 지나는 동안 책은 한 권씩 두 권씩 불어나서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내 책 구입은 전통적!으로 어머니와 누나에게 제법 신세를 졌는데, 이번에는 누나가 반쯤 해주기로 약속했다. 그 말만 믿고 이 책 저 책 막 주워담았다. 그런데 결제하려고 보니 얼마 이상은 공인인증서를 내라느니 막 복잡하게 해서, 어쩔 수 없이 한국 내 통장에 있는 돈으로 계좌이체하고 말았다. 책값이 60만원이다. 저녁이 우울했다. 다음에 한국 가면 대신 다른 책들을 사고, 누나 카드로 긁어야겠다. 봐주겠지 뭐.
은행카드를 잃어버렸다. 일 년에 두어 번은 꼭 현금인출기 안에 넣어두고 그냥 온다. 대부분의 경우는 은행에 가서 되찾아 오는데, 이번에는 없었다. 재발급을 신청하고, 손에는 현금 천 원이 남았는데, 새 카드를 받을 때까지 일주일 동안 천 원이면 충분하니까 별로 걱정은 안 했다. 조수 월급을 주긴 해야되는데 사정을 이야기하고 다음주에 주기로 했다. 그리고 어제, 인터넷이 끊겼다. 한 시간쯤 기다렸는데 복구가 안 되어서 전화해 물어보니 전화비가 넉 달이나 밀려 있었다. 인터넷은 써야 되니까, 자전거 타고 전화국에 가서 전화비를 냈다. 두어 달만 우선 내고 어떻게 해보려고 했는데 정지된 회선은 밀린 요금 전부를 납부해야 된다고 했다. 넉 달치 600원 조금 넘는 돈을 내고 나니 남은 돈은 채 100원이 안 됐다. 통장 들고 은행가서 찾으려니까 막상 간 곳이 VIP서비스 전용 지점이란다. 별 게 다. 같이 있던 바람소리 누나가 500원 빌려줘서 그냥 그걸로 쓰기로 했다. 이자 쳐서 줘야겠다.
방학이다. 나는 일하는 사람이니까 방학이 없는데,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 중에 학생들이 많아서(석박사 과정이라도 학생은 학생이다) 그들이 방학이니까 덩달아 방학이다. 진행하던 스터디들이 멈추고, 사람들이 한국으로 돌아간다. 몇 달 동안은 등떠밀려 읽어야 되는 어려운 책이 없어진다. 그러니까 그 동안, 다른 밀린 책들을 좀 보려고 한다. 마음은 그렇다. 순서를 짜고, 매일 두어 시간은 음악 틀어두고 그 앞에서 책을 보겠다는 각오. 그래서 몇 사람 뭉쳐서 일지.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자고 말했다. 게으르기 좋은 무렵이니까, 하루에 읽은 책, 하루에 들은 음악, 하루에 찍은 사진, 하루에 먹은 음식 따위를 제맘대로씩 적어서 여러 사람이서 하루를 기록해 보자고, 그걸로 서로에게 좀 부담감을 주고 자극이 되자고 말했다. 다시 생각하니 좀 우스운 짓이기는 한데, 그래도 내가 확실히 신뢰하는 몇 가지 중에 하나가 내 게으름이니까, 극복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해보려고 한다.
별 것도 아닌데 괜히 마음을 막아서서 다른 일을 못 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엑스포 원고도 그랬다. 특별히 어려운 것도 아니고, 취재도 다 해두었고, 내용도 있었고 사진도 있었다. 그냥 쭉 이어서 쓰고 말의 앞뒤만 이어두면 되는 것이었는데, 오래 걸렸다. 마음에 숙제처럼 걸려서 그 동안 괜히 다른 일도 못 하고, 마감은 벌써 넘겼고 그랬다. 다 적었고, 어쨌든 보냈다. 엑스포는 오래 하니까, 이번 달에 안 나가면 아마 다음달에 나갈 수도 있겠다. 청탁한 친구에게 미안하다.
새벽에 사진스터디 맴버들과 타이캉루에서 사진 찍었다. 상업촬영 아닌 촬영은 참 오랜만이었다. 세 시간쯤 찍었는데 도대체 아무 것도 읽히지 않았다. 돌아와서 보니 역시나 마음에 드는 사진은 한 장도 없다.
2010.06.03 05:09
자야지 자야지 하면서 개표 속보를 봤다. 온갖 사이트에서 많은 사람들이 밤새 개표현황을 중계해주었다.
서울에서, 경기에서,
졌다.
그들은 다시 강을 헐어낼 것이고,
그들은 계속 가상의 적을 부풀려 국민들을 전장으로 내몰 것이다. 그들은 뒤에 숨어서.
그들은 계속 광장을 막아두고 일방적 강제를 계속할 것이고,
그들은 계속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불법적인 수단을 독점할 것이다.
밤 내내 개표속보를 보면서 빠져나오기 힘든 패배감에 젖었다.
밉다. 참 밉다.
그 사람들, 사태를 방관한 사람들 다 밉다.
자야겠다.
2010.06.02 21:54
오늘 아침까지 넘기기로 했던 원고가 있다. 엑스포를 주제로 한 것인데, 외국인의 시선으로 본 엑스포 관람기라고 했다. 내용은 아무렇게나 써도 된다고, 절반 이상이 비판 내용만 아니면 된다고 했다. 이 곳에서 몇 년 살다보니, 몇 개 쓰다보니, 자체검열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민감한 내용, 긁어 문제될 내용은 시작부터 빼고 가게 된다. 그래서, 압박이란 것이 무서운 것이다.
이틀 전 월요일 하루 종일 엑스포 현장에 있었다. 원고 재료를 모으고, 사진도 찍었다. 월요일 밤, 화요일 오전 정도 써서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분량도 적지 않은 데다가 다른 일들이 겹쳐서 결국 못 했다. 오늘 새벽에 일어나서 쓰려고 했는데 어영부영 필요한 추가 자료 모은다는 핑계로 오전을 보내고, 오후 늦게 다른 인터뷰 다녀오니 또 밤이다. 꼭 쓰고 자겠다고 커피도 한 캔 사 왔는데, 모니터 두 개에 인터넷 창 여러 개를 열어놓고 실시간 개표방송과 관련 속보들을 보고 있으니 시간은 자꾸 잘도 간다. 생각보다 선전해주는 것은 고마운데, 몇몇 곳은 어쩌면 안 될 모양이다.
개표방송보다 더 인상적인 곳은 여러 사이트의 자유게시판들이다. 오디오 사이트도 유머 사이트도 자전거 사이트도 모두 한마음이다. 모두 간절하고, 모두 기뻐한다. 뉴스보다 빠르게 관련 소식들이 올라오고 기대에 찬 희망가들을 부른다. 고맙다.
인상적인 댓글이 있었다.
"서울시장 한명숙. 경기지사 유시민. 충남지사 안희정. 강원지사 이광재. 경남지사 김두관. 인천시장 송영길
이 분들이 청와대 첫 지자체장 회의 때 그 대문을 걸어들어가는 장면을 생각합니다.
왕의 귀환. 노무현의 귀환입니다."
원고는 아직 반도 못 썼는데, 어쩌겠는가. 같이 축배라도 들어야지.
2010.05.31 23:46
며칠 전에 개판쳤던 사진이 있다. 그래도 어떻게 작업은 끝났고, 끝났으니 아쉬운 대로 수습은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일이 좀 더 커질 모양이다. 반쯤 노닥거리며 반쯤 산책하면서 엑스포 현장에 취재하고 있었는데 연락이 왔다. 클라이언트 호출이다. 중간에서 조율하는 친구가 아마 꽤나 걸러주고 있는 모양인데, 그래도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도대체 수습할 수 없는 수정 방안을 이야기하며 우선 와서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댄다. 내일 점심 때 촬영한 사진들을 모두 가지고 가겠다고 했다.
더 비참한 것은, 명백한 내 실수가 몇 개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껏 해둔 다음이라면 차라리 역부족이라고 생각하고 넘기겠지만, 차마 적기에도 민망한 초보적인 실수 몇 개가 겹쳤다. 사진은 두 번 꺼내보기 싫을 만큼 잘 못 나왔다. 새로운 경험이니까 결과물이 어쩌면 아쉬울 수 있다는 예상도 못 한 것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경험과 상관 없는 실수들이 잇따라 있다는 데는 어떤 핑계도 가져다 붙일 게 없다.
얼마 전 술마시면서, 세상 참 자신있다고, 주눅들어 있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 않냐고 호기를 부렸다. 생각해 보면, 무섭지 않았던 때가 별로 없었던 것도 같은데 나는 술 두어 잔에 무슨 호기를 그렇게 부렸던 것일까. 날마다 내가 과연 길 위에 있기나 한지 불안한데.
왜 책을 읽고 왜 돈벌이가 아닌 다른 일에 열을 올리는지 알 것도 같다. 못 해도 누가 뭐라고 안 하니까 그런 거다. 목숨 거는 비장함 같은 것도 필요 없고, 순간마다 조여오는 압박감도 없으니까 그런 거다. 즐기면서, 책임같은 것도 없이, 그리고 게다가 의미까지 더해지니까 제법 그럴 듯해 보였던 거다. 모든 걸 걸지도 않고, 매번 마지막 승부를 거는 긴장도 없잖나. 인생의 큰 비밀을 알아버린 것일까.
하루 종일 참 재미나게 엑스포 현장을 돌아다녔는데, 다 저녁에 전화 한 통으로 기분은 산산조각이 났다. 밥맛도 안 생기고, 사진도 그냥 막 찍고 대충 집에 가고싶어졌다. 원고는 이미 접었고. 일로 찍는 사진을 제대로 못 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비참했고, 전화 한 통에 뿌리도 없는 갈대처럼 휙 휘둘려버리는 내 줏대 없는 감정을 보니 화가 났다. 털어야지 털어야지 하는데 잘 안 됐다. 지하철 내려서 집에 오는 길이 유난히 어두웠다.
2010.05.29 09:51
술마신 다음 날에는 일찍 깬다. 몸이 불편하거나 목이 말라서 깨는 것이 아니고, 그냥 일찍 깬다. 늦잠을 잘 수 없다는 게 아마 몸이 밤새 열심히 술을 받아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알아채지 못해도 평소와 다르게 불편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예전에는 좀 더 쉬는 게 좋겠다 싶어서 일부러 더 누워있고는 했는데, 이제는 눈떠지면 그냥 일어난다. 일어나서 머리쓰는 일은 말고 그냥 편하게 할 일이 있으면 좀 하다가 밥도 먹고 노닥거리다가 다시 좀 더 잔다.
오랜만에 기분 좋게 길게 한 잔 했다 싶었는데 돌아오며 보니 몇 마디는 생각을 앞질러 나간 말도 있었구나 싶다. 술이 그렇지 뭐.
일어나서 무얼 할까 생각하다가 책장을 털었다. 주문한 씨디피가 오려면 아직 일주일도 더 남았는데, 씨디피를 영접하기 위해 방구조를 바꾸기로 마음 먹어두었던 일이다. 우선 한 동안 나와 있던 책장을 본래 자리로 돌렸다. 책을 모두 꺼내 한 쪽에 쌓아두고 책장을 닦아서 옮긴 다음 다시 순서대로 책을 돌려놓았다. 소파를 책장이 있던 자리로 밀고, 컴퓨터 책상 옆에 있던 큰 책상을 방 가운데로 옮겼다. 책상은 어디 기댈 곳도 없이 방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서 살짝 부딪칠 때마다 흔들거린다. 기존의 구조에서는 주로 컴퓨터 책상에 있거나 큰 책상에 있을 때 음악은 뒤에서 들리거나 옆에서 들린다. 2년을 벼른 씨디피도 주문한 마당에, 음악 듣는 시간을 조금 더 확보하고 이왕 듣는 것 좀 더 집중해서 들어보는 게 좋겠다 싶었다. 이제 책상 가운데 앉으면 음악 듣기에 딱 좋은 위치가 되었다. 뭐 제대로 들으려면 우선 이 컴퓨터를, 안 되면 인터넷만이라도 폭파시켜야 하겠지만.
가구 옮긴 자리는 언제나 먼지가 수북하다. 책상에 있던 서류뭉치를 우선 소파 위에 두었는데, 나누어져 있는 것을 보니 어쨌든 나름 분류를 해두긴 했던 모양인데, 도대체 저 덩치들의 내용을 짐작할 수 없다. 버리지 못 하고 둔 것들 보니 정리해야 할 것들인 것 같은데, 언젠가 해야지 언젠가 하겠지 하는 것들이 모여서 결국 난삽해졌다. 한가한 오후에 한 장씩 꺼내서 살피고 더 소용없는 것들은 이제라도 버리고 버리면 안 될 것들은 어쩔 수 없이 또 대충 겹쳐서 두어야겠다. 언젠가 하겠지 생각하면서. 청소기 꺼내서 눈에 보이는 큰 먼지덩어리만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곰팡이 핀 음식물쓰레기통을 치웠다. 먹고 남은 망고씨는 곰팡이가 참 잘 핀다는 것을 알았다. 햄에 계란옷 입혀서 구워서 밥먹었다.
유희열 스케치북을 보는데 김윤아가 나왔다. 참 좋은 색을 가진 사람. 그 치열한 에너지를 잘 갈무리한 사람. 좋은 노래들을 부르고 간다.
다음 스터디 커리를 짜는데, 좀 가벼운, 평소에 읽고 싶었던 책들을 각자 골라서 함께 리스트를 만들자고 했다. 처음에 나는 성경, 코란, 불경, 자본론 같은 책을 생각했는데, 코란은 이슬람 문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접근하기 쉽지 않다고 해서 접었고, 불경은 종류가 많아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접었고, 두 개 접으니 시들해져서 성경도 접었다. 그래도 지나는 길에 바람소리 누나에게 물었더니 누나는 대뜸 금강경과 해제본을 빌려주었다. 금강경은 얇아서 아침에 화장실에서 보는데, 석가께서 하신 말씀 중에 우주의 기원에 대한 부분이 있었다.
"모든 가루들은 영원한 자기의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인연 따라 생겨났다가 인연 따라 없어지며 일정 기간 잠시 존재하는 것들로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세계도 티끌처럼 그 실체가 없어서 영원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어쩌면 석가께서는 우주의 탄생까지 거슬러 보셨던 것은 아닐까. 빅뱅의 순간에 우주는 한 점으로부터 비롯하고, 결국 쿼크 단위로 내려가면 모든 존재는 그 '티끌'이 잠시 머물러 있는 결합 형태에 지나지 않게 된다. 천체물리학이 탄생하기도 전에, 이미 보셨던 것일까.
스케치북 마저 보고 낮잠 좀 자고 나가야겠다. 오늘은 82mm CPL 필터를 사야 한다.
2010.05.27 22:08
Lens test. Canon 50mm 1.4
Lens Test. Canon 16-35 2.8 2세대
그러니까, 요 며칠,
렌즈라인업을 바꿨다. 우선 인테리어 작업에 쓰기 위해 16-35 렌즈를 새로 구했다. 한국에 다녀오는 봉식형이 수고롭게 대신 거래해 주었다. 1세대 렌즈와 2세대 렌즈는 가격차가 제법 있었는데, 작은 차이라도 분명하다면 새 버전을 사는 것이, 돈 버는 사진가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16-35가 와서 24-70렌즈를 방출하고 대신 50 .4 렌즈를 구했다. 마침 바람소리 누나가 50mm렌즈를 갖고 있고, 24-70을 써보고 싶다고 해서 당분간 바꿔 쓰기로 했다. 사실 현장에서 가장 무난하게 쓸 수 있는 렌즈가 24-70이다. 어디든 가져다 겨눌 수 있고 언제든 그럭저럭 쓸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렌즈다. 그런데 나는 그 랜즈가 덩치만 크고 무거워서 별로 안 좋다. 16-35가 와서 광각은 커버가 되니 차라리 50mm 정도 화각의 단초점 렌즈를 구하는 것이 화질 면에서 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물론 가장 즐겨쓰는 45mm 2.8 렌즈가 있지만 이 랜즈는 니콘용으로 나온 것을 어댑터를 끼워서 쓰는 것이라 초점이 수동이고, 그 선예도를 신뢰할 수 없고, 조리개값도 2.8이라 현장에서 쓰기에는 여러 모로 부족하다. 두 렌즈를 가져와서 테스트해보니 우선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현장에서 당분간 24-70없이 16-35, 50, 100, 80-200의 조합으로 써보고, 무리가 없다는 결론이 나면 24-70을 정말로 팔아야겠다.
며칠 계속해서 속이 안 좋았다. 약하게 체한 것같은데 잘 풀리지 않아서 먹을 때마다 불편했다. 어제 저녁 먹고 작업한다고 앉았는데 또 느낌이 안 좋아서, 소화제를 자꾸 먹는 것도 답이 아닌 것 같아서 달리기로 했다. 자전거를 탈까 하다가 밤중에 위험하고, 타면 너무 멀리 가게 될 것 같아서 간편하게 조깅 복장으로 입고 집 아래 강변을 뛰었다. 쉬엄쉬엄 걸으면 한 시간 좀 못 되게 걸리는 거리인 듯한데 부지런히 뛰어 오니까 10분이 걸렸다. 이 집에 사는 것이 3년 가까운데, 산책이 아닌 조깅으로 강변을 뛰어본 것은 처음이다. 겨우 10분 뛰었는데 몸은 땀을 제법 내고, 속은 깔끔하게 편해졌다.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몸은 참 단순한 것일 수도 있다. 먹고, 자고, 움직이는 데 엇박자가 있으면 아픈 것이다. 아픈 것의 대부분은 그 엇나간 박자를 제자리로 돌리면 자연처럼 돌아올 것이다. 소화제 괜히 먹었다. 다친 어깨 핑계를 대며 꾸준한 운동을 거른 것이 어느새 1년 가까워 온다. 하도 먹는 게 없고 운동도 안 하니 몸은 기초체력이 떨어졌다. 소화력이 딸리는 것도 연장선에서 읽힌다. 운동을 좀 하긴 해야겠는데, 하고싶기도 한데, 그러자니 먹는 걸 좀 더 잘 먹어야겠는데, 나는 도대체 요리는 왜 그리 어렵고 시장은 왜 그리 멀게만 느껴질까.
아침에 420명의 단체사진을 찍었다. 회의 중간에 찍는 거라서 허락된 시간은 아주 짧았다. 제한 시간 안에 420명을 줄세우고 분위기를 풀어서 몇 장의 사진을 찍는 작업이었다. 안 해 본 촬영이고 규모여서 거절할까 했는데 중간에 있는 친구가 내가 꼭 해줄 것을 부탁했고, 새로운 경험이 되겠다 싶어 하기로 했다. 촬영을 결정한 후로 3번의 사전 미팅을 했고, 분 단위의 시간계획표를 만들고 참가자들의 동선을 짰다. 자원봉사자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420명을 인솔할 것인지도 모두 계산하고 당일 현장에 동원될 소소한 물품까지 모두 목록으로 만들어서 진행했다. 큰 사이즈의 사진으로 뽑아야 해서 처음으로 중형 디지털 카메라를 빌려 촬영했다. 인상적이었는데, 워낙 시간이 촉박해서 천천히 기계를 감상할 틈이 없었다. 시간보다 마음이 바빴다. 작전대로 촬영은 끝났는데, 사진은 딱 개판쳤다. 아마 현장 야외 빛이 가장 큰 범인인 듯한데, 중형 디지털의 결과물은 기대 이하였다. 중형 디지털의 경우 통제된, 완벽한 조명 상태 하에서 가장 완벽한 결과물을 뽑아낸다는 말이 새삼 기억났다. 쫓긴 마음은 화면의 구석구석을 충분히 살피지도 못 했고, 가진 것조차 다 담아내지 못 했다. 후반 작업을 하는데 많이 부끄러웠다. 참 부끄러운 작업으로 남을 것 같다. 그렇게 찝찝한 기분으로 작업한 사진을 인쇄소로 넘기고,
곧장 사천에 전화해서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씨디피를 주문했다. 크하. 어쩌겠나. 그렇다고 돌아가서 420명을 다시 불러세울 수도 없는 노릇인데. 반성해서 다음에 잘 해야지. 자작업체로서 제법 인정받는 곳 같은데, 최근 한국 유명 자작 오디오 업체에서도 이 곳에 내가 주문한 것과 같은 제품을 단체주문했다. 자작업체라서 완성품을 판매하지는 않고 직접 제작할 수 있도록 부품과 케이스 세트만 판매한다고 하는데 전화해서 사정하고 안 돼서 메신저 등록해서 사정했다. 조립비 일부를 더 부담하는 조건으로 완성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조립기간이 걸리고 하필 이번 주말은 업체 수련회가 있어서 제품은 다음 주말에나 겨우 받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씨디피를 사고 싶다고 마음 먹은 게 벌써 1년도 훨씬 전이고 그 사이에 많은 제품들이 상상속 쇼핑 바구니를 거쳐갔다. 그래도 합리적인 가격에, 스스로를 설득할 만한 실력의 제품을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제 당분간 오디오 장비에 눈독 들일 일은 없겠다.
씨디피 주문하고, 빨래하고, 노닥거렸다. 영화도 한 편 때리고 음악도 아무 거나 대충 들으면서 클래임 걸린 단체사진 수정해서 다시 보내고 또 노닥거렸다. 내일 미학스터디가 있는데, 지난 주 미팅 때문에 빠져서 지나간 줄 알았던 내 발제분량을 맴버들은 이번 주로 밀어놓았다. 덕분에 발제문을 좀 써야되는데 모르겠다. 다른 맴버들이 발제해 올 부분의 내용도 읽어야 되는데 관뒀다. 말년 병장같은 기분으로 늘어져있다. 내일 새벽에 대충 좀 보고 간단하게 발제문 써서 가야겠다. 사람이 때마다 열심히 하면 안 되는 거라고, 언젠가 어디선가 누군가 말했던 것도 같다. 그러면 미쳐버린다고 했다.
웹진이 슬슬 색깔을 내려고 한다. 새로 필진이 되어준 은영 누님은 르몽드 디플로마티끄의 기사를 재료로 연재를 하시겠다고 했다. 지윤이는 전공을 살려 상하이의 어떤 풍경들을 짧은 희곡 장면으로 구성하는 작업을 하기로 했다. 은진이는 역시 전공을 살려서 북송시대 기행문을 번역해 올리겠다고 한다. 인터뷰 연재 기사는 내일 첫 취재가 잡혀있다. 나는 가서 인터뷰는 안 하고 사진만 찍을 생각이다. 새 렌즈 두 개를 가져가서 써봐야겠다. 류란씨는 그 동안 썼던 다큐 관련 원고를 연재해 주겠다고 했다. 스스로는 한국인 커뮤니티에 조선족으로서 참여하는 것이 조금 신경쓰인다고 했는데, 그런 편견을 만들어낸 상황들에 일말의 책임이 있는 것 같아서 미안했다. 김지연 선생님도 오랜만에 소식이 닿을 모양인데, 딱 걸렸다. 거 봐라. 여기는 된다.
그래도 양심상 내일 스터디에 쓸 책 좀 읽어보겠다고 앰프도 켜두고 책도 펼쳤는데,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됐나. 자야겠다. 자고 내일 새벽에 좀 봐야겠다. 스터디 하는 날은 항상 새벽에 벼락치기 공부를 해서 스터디 하는 날은 항상 종일 피곤하다.
그러니까, 이렇게 짧은 생각들을 적어두는 것은 언젠가 이 다음의 나에게 보라고 쓰는 것일까? 나를 읽고 갈 불특정 다수를 향해서 나는 왜 쓰는 것일까? 세상에는 궁금한 것들이 이렇게나 많나.
2010.05.23 22:28
촬영 때문에 엑스포에 몇 번 다녀왔다. 사람 많은 곳을, 그리고 길게 줄 서서 기다리는 일을 내가 참 안 좋아한다는 것을 새삼 알았다. 개장 시간에 맞춰 갔음에도 불구하고 독일관 앞에 섰을 때 예상 대기시간은 세 시간이었다. 찍어야할 곳이 최소 다섯 곳이었는데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전화를 했다. 중국관과 사우디아라비아관만 찍기로 합의했다. 속으로는 세 시간을 안 기다려도 되니 다행이다 싶어서 얼른 줄에서 빠져나와 사우디아라비아관으로 갔다. 중국관은 워낙 보려는 사람이 많아서 별도의 시간 예약표를 주는데, 그러니까 그 표를 얻지 못하면 당일 중에 중국관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관 앞에서는 무슨 일이 생긴 듯했다. 경찰들 수십 명이 모여 있었다. 싸움이 벌어졌나? 누가 쓰러지기라도 했나? 그나저나 어디서부터 줄을 서야 하나? 이런, 경찰들은 몰려드는 관람객을 통제하기 위해 서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겨우 찾아서 줄의 끝에 섰을 때 옆에 서 있던 경찰이 말했다. 여기 서 계시면 입구까지 예상 소요 시간은 여섯 시간 정도입니다. 아, 여섯 시간이라니. 세 시간을 피해 도망왔더니 여섯 시간이란다. 이제 대안도 없다. 중국관이 안 되니 여기 밖에는 갈 곳이 없고, 결국 여섯 시간을 서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섯 시간 정도를 기다려서 드디어 들어갈 수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슬슬 스트레스가 쌓여서 관람은 즐겁지 않았다. 그나마 제법 서늘하고 흐린 날이었기 망정이지 한 여름이었다면 촬영이고 카메라고 다 던져버렸을 것이다. 금요일이어서 유난스러웠던 것일까? 지난 번 촬영 동안에는 비슷한 시간에 이렇게 길게 기다리는 곳이 없었던 듯 한데. 시간이 지나면서 엑스포 전시장에 대한 평가들이 나오는 것이고, 전시장들 역시 빈익빈부익부가 된다.
지난 번 신장으로 목화따기 앵벌이를 보냈던 행사를 기획한 잡지사에서 연락이 왔다. 외국인의 시선으로 본 엑스포에 대한 기사를 청탁해 왔다. 시간도 촉박하고 고료도 얼마 안 줄 것 같아서 망설였는데, 아마 쓸 것이다. 엑스포에 대한 인상을 나름대로 정리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다. 영국 만국박람회부터 출발해서 엑스포에 대해 개관하고, 인터넷의 시대에 엑스포가 과연 의미가 있을지 묻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엑스포가 보여준 인상에 대해 적어야겠다. 한국 대전엑스포에 대한 기억도 쓸 것인데, 나는 가 보지 못 해서, 가 보지 못한 기억만 있다고 써야겠다.
좀 더 좋은, 제대로 된, 내용이 단단한 문장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껍데기만 번지르르한 문장들 말고, 소박하되 그 안에 든든한 먹을 거리가 있는, 읽어서 시간이 아깝지 않은 문장을 쓰고 싶다. 좀 더 단련해야 하고, 문장을 쓰기 전에 준비단계에서부터 차근차근 자료를 모으고 배치해서 글의 얼개를 잡아야 한다. 대충 기분대로 모니터 앞에 앉아서 끄적여내리는 글은 그 바닥이 뻔하고 밀도라고는 없고 읽어보아야 잠시 동안의 감정적 공감 말고는 얻을 게 없게 되고 만다.
2010.05.22 21:36
상하이 엑스포, 북한관
북한관은, 엑스포 구역의 남동쪽 끝에 있다. 밖에는 인공기를 세로로 길게, 크게 그렸고 그 위에 한글로 조선.이라고 썼다. 기다리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 마음 먹으면 곧 들어가 볼 수 있다. 가운데 돌다리가 있고, 입구에서 들어가서 왼쪽에는 평양의 전경을 담은 대형 사진이 있다. 그 앞에는 주체사상탑 모형이 있다. 출구쪽 위에는 대형 모니터가 있어서 북한에 대한 영상을 보여준다. 영상 속에서, 백인관광객들이 버스에 올라 평양 곳곳을 둘러보고 즐거워하는 표정이 이어진다. 와 볼 만한 곳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 탑의 이름이 주체사상탑.이라는 것도 영상을 보고 알았다.
다리를 건너가면 분수대가 있다. 분수대의 가운데에 아이들 몇몇을 형상화한 모형이 있다. 아이는 비둘기를 날리는데, 그 너머 벽 위에 Paradise for Peoples 라고 적혀있다. 인민을 위한 파라다이스. 파라다이스.
엑스포가 막 개장했을 때, 연합뉴스의 이름으로 뜬 기사를 기억한다. 북한관이 얼마나 조악한지 감정적인 문장으로 쓰고, 개장 첫날부터 분수에서 물이 새는 이 나라의 전시관이 엑스포 끝까지 어떻게 버틸지 궁금하다는 내용이었다. 가 보니, 제법 관람객도 붐비고, 분수는 물이 새지 않고 잘 작동하고 있었다.
천안함과 관련하여 나라 꼴이 우습다. 도대체 말이 안 되는 이유를 내새워가며 정부는 한민족의 국가를, 다른 국가의 이름을 갖고 있지만 그 구성원 모두가 심정적으로 하나의 국가를 지지하는 상대 국가를 다시 한 번 주적의 위치에 놓으려고 한다. 증거라는 것은 빈약하다 못해 황당하기 짝이 없고, 돌아가는 모양새 역시 도저히 믿을 근거가 없다.
아프리카 소국들의 전시관은 중국정부의 지원을 받아 지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프리카와 유럽 소국들의 국가관을 둘러보면서, 나라의 힘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전시장 크기와 그 화려함이 다른 어떤 것보다 국가의 힘이라는 것을 실제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전시장을 들여다 볼 때, 북한은 작고 가난한 나라 중 한 곳이었다.
북한관 한 구석에서 오래 앉아 있었다.
2010.05.22 09:07
딴지일보http://www.ddanzi.com/news/19680.html
자주 가는 사이트들이 있다. 직업이 되어버린 사진이 취미였을 때부터 사진 관련 커뮤니티는 단골이었다. 새 장비를 구해야 할 때는 특히나 더 해서 하루에 수 백 번씩 드나들었다. 오디오 장비 사이트도 하루에 두어 번은 꼭 간다. 내 것이 아니어도, 어느 집 거실이나 구석방에 잘 정돈되어 놓인 오디오를 보고 있으면 편안하고 좋다. 자전거 장비 사이트도 가고, 유머사이트도 간다. 포털사이트는 물론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특히 취미활동을 위해 모이는 곳에 가면 다들 비슷한 말을 한다. 가끔 정치적인 이슈에 대한 글이라도 하나 올라오면 다들 화를 낸다. 왜 이 곳까지 정치를 끌고 오냐고 말한다. 그 시끄럽고 더럽고 추악한 것을 이 즐거운 공간에 끌어오지 말라고 화를 내고 반대한다. 어떤 사이트들은 그래서 정치 이슈글이 올라오면 열람 자체를 차단하거나 회원 권한 자체를 제한하기도 한다.
바보들아. 나쁘고 못난 놈들아.
사람이 둘만 모여도 생겨나는 게, 그리고 생겨나야 마땅한 게 정치다. 정치는 교과서 속에 역사의 토막으로 남는 게 아니라, 지금 네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바탕을 이루고 있다. 갈등을 조율해야 하고 새로운 타협점을 탐색해야 하는 그 본성 때문에 정치는 또 마땅히 시끄러운 것이다. 그 소란이 싫다고 떨어져서 그냥 모른 척 살겠다는 것은 정말 바보짓이다. 그 무관심이 만들어낸 현실을 보고도 모르겠나. 시끄러운 것은 나쁜 것이라고, 가만 있으면 누군가 조용하게 모든 일을 처리해서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을 살게 해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은 너를 속이는 음모다. 태어나서 한 번도 투표해 본 적이 없다는 말은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하나? 쪽팔리지 않나? 고개도 못 들 만큼 부끄럽지 않나? 그 무관심이 만들어낸 이 현실에 도대체 책임감이라고는 없나?
사진찍고 놀고, 자전거타고 놀고, 음악들으며 쉬는 것이 어떻게 정치와 무관한가? 사람으로 숨쉬는 것부터 정치와 엮이지 않는 것이 없을 텐데. 실망해야 할 것은 덜 된 정치가들이다. 하지만 그 실망을 정치에 대한 무관심으로 연결시키면 그건 정말 그 못 된 정치가들의 의도를 충실히 따라주는 것 밖에는 안 된다.
아침 딴지일보에 안희정.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길다. 아침 나절 오며 가며 보는데 한참이 걸렸다. 안희정이라는 이름을 걸고 있지만, 내용은 노무현에 대한 부분이 많다. 오후에는 여러 사람 앞에서 말을 해야 되는데, 오전 내내 훌쩍거리고 앉았다.
내일이, 대통령께서 가신 지 꼭 1년 되는 날이다.
2010.05.21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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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Document(2519,4)
美정부, 인디언에 과거사 사죄 | Daum 미디어다음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100521040903987&p=yonhap&RIGHT_COMM=R10
오바마 정부가, 과거 미국정부가 인디언에 대해 저지른 잘못을 사과했다. 역사에 기록된 인간집단 중 가장 완성형에 가까웠던 그들이 아닐까 싶다.
본래 당일 신문 기사 중 인상적인 기사를 스크랩하고 관련된 서적을 함께 엮어두는 것이 이 카테고리의 목적인데,
그리고 오늘은 첫 시작인데,
졸려서 못 하겠다.;
2010.05.21 22:02
국민학교를 마치고, 처음 학원이란 곳을 다녔다. 중학교에 가려면 아무래도 미리 공부해 둘 것이 있겠다는 부모님의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2층짜리 옛날 보건소 건물을 개조한 곳이었는데, 이름은 ‘제일학원’이었다. 아마. 강의실 창문은 철창살이 있었고, 처음 얼마 동안은 그 곳에서 병원 냄새를 맡았던 것도 같다. 기분 탓이었을 것이다. 그 곳에서 영어 I가 ‘나’를 뜻한다고 처음 배웠다. 첫날 I를 배우고, 모든 알파벳이 하나의 인칭을 뜻하는 줄 알았다. 다음날 You를 만나면서 깨지긴 했다만. 하루는 football을 배웠는데, 지각해서 늦게 온, 곱상하게 생겨서 하는 짓도 밉던 녀석이 문 열고 들어오면서 칠판에 적힌 football을 가볍게 읽어낼 때는 녀석이 좀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학원 2층에는 행정실이 있었고 그 곳에서는 아마 윈도우 3.x 버전이 깔린 컴퓨터와, 강의자료를 출력하는 토트프린터가 있었다. 아, 옆방에는 전자타자기도 있었다. 그리고, 동화책 몇 권이 유난스러운 책장도 있었다. 기억을 되짚어 보면,
1
한쪽 구석이 비어있는 동그라미가 주인공이었다.
노란색이었다.
동그라미는 제 비어있는 한 조각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섰다.
2
우여곡절.
동그라미는 그 여정에서 여러 조각들을 만났다. 제 빈 곳과 비슷해 보이는.
3
하지만
어떤 것은 너무 크거나
4
어떤 것은 너무 작았다
긴 여정의 끝에서
5
마침내 동그라미는 꼭 맞는 조각을 만나고, 그렇게 완전한 하나의 원이 된다.
그 후로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동화는 그렇게 끝났다. 기억에 따르면 그렇다.
6
그런데,
정말 그런 것일까?
7
처음부터 꼭 맞는 조각 같은 건,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
너도, 나도, 서툴고 모난 모양으로 시작하는 게 아닐까?
8
그렇게 모난 것끼리 엉켜서 굴러가다 보면
블록 사이로 흘러든 모래가 마침내 굳어지는 것처럼
서로의 서툰 틈을 메워서 마침내 둘도 없는 맞춤이 되는 게 아닐까?
그 때쯤에는 이미 둘도 아닌 게 되지 않을까?
9
어쩌면
작은 조각이라고 생각하고 우겨 넣으려고 했던 너는 나보다 큰 네모였을까
그래서 서투르게라도 구르던 그 몸짓마저 못 한다고 너를 원망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나는,
한 구석이 빈 조각난 동그라미가 아니고
혼자서는 어쩌지도 못 하는 작은 조각은 아니었을까
글. 반군
그림. 닥터멜
2010.05.17 23:12
만나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말한다. 유별날 것 없고, 많고 흔한 사람들 중에 한 명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그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참 유별나 보이고, 유일해 보인다.
왜 사람들은, 스스로의 특별함을 모르나?
2010.05.17 11:53
새벽에 마무리 작업하고 아침에 프린트해서 힐튼에 보낼 사진들 작업을 마쳤다. 제법 오래 걸렸다. 조금 있다가 택배회사에서 오면 사진과 CD를 보내고, 최종 비용청구서를 메일로 보내면 된다. 그리고 사진에 별 문제가 없고, 청구서에 이견이 없으면 영수증을 발행하고, 며칠을 기다려 입금을 확인하면 이번 일은 끝난다. 예정되었던 호텔 작업이 모두 마무리 되었으니까, 그 동안 모인 사진들을 정리해서 홈페이지의 포트폴리오 부분을 업데이트해야 한다. 이 사진들 핑계로 포트폴리오 업데이트를 한참 동안이나 미루었다. 북경에 보내기로 약속했던 포트폴리오도 이제 보낼 수 있게 되었다.
클라이언트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번 작업의 부족한 구석을 안다. 어떤 조명이 부족했는지, 어떤 리터칭이 모자랐는지, 그리고 현장에서 어떤 것을 놓쳤는지 사진 한 장마다 또렷이 드러나 있다. 아마 모든 프로 사진가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는데, 지나고 나서 아는 것이고, 그 자리로 돌아가서 다시 찍을 수 없으니 짐짓 모른 척 넘겨야 하는 것이다. 클라이언트가 알아채지 못 하기를 속으로 바라고, 다만 다음 작업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속으로 기억해야 한다. 내 기대치와 클라이언트의 기대치가 같지 않을 테니까 아마 그냥 넘어갈 것인데, 클라이언트를 만족시키는 것을 넘어서 감동시키지 못 하는 작업은 끝맛이 별로다.
분주한 한 주가 가고 새 한 주가 왔다. 지난 주는 나답지 않게 바빠서 낮에는 계속 촬영을 했고 작업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새벽에 일찍 깼다. 주말 동안에는 부러 늦잠을 잤다. 이번 주는 별다른 촬영이 없어서 한가한 시간을 보낼 생각을 하며 지난 주를 지나왔는데, 바쁜 탓에 촬영을 제외한 다른 일거리들을 이번 주로 차곡차곡 밀어두었더니 막상 시작하고 보니까 그닥 한가한 시간이 되지는 못 할 모양이다. 급하지 않은 촬영이 한 개, 촬영 사전 미팅이 한 개, 밀린 후작업이 제법. 한가할 생각에 자전거 타자는 약속을 해두었는데 딱 하루만 탈 수 있겠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겠다. 일도 사람도 그렇겠다. 한 번에 여러 개 일을 펼쳐내는 것은 개별 일의 완성도를 아쉽게 만든다.
미학스터디는 어느새 1년도 넘었다. 일주일에 한 번 주로 오전에 만나서 책 내용을 요약하는 형식으로 돌아가며 발제하고 각자 이야기들을 덧붙인다. 지금 보는 책은 아놀트 하우저의 문학과예술의사회사. 3권이다. 맴버들이 최근 유난히 시간이 엉켜서 한 주씩 걸러서 보는데, 곧 3권이 끝나고 마지막 4권이 남았다. 진도 나가는 것을 보면 그렇게 빠른 것 같지도 않은데 한 주씩 차곡차곡 쌓아왔더니 어느새 두꺼운 책들을 제법 보아냈다. 혼자서는 못 했을 일이다.
문학스터디는 제법 긴 방학을 지나서 얼마 전에 다시 열렸다. 들뢰즈의 철학을 다루는 노마디즘.을 보고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책 천의고원.에 대한 주석서 개념의 책으로 이진경이 썼다. 지난 주에는 6장을 다뤘는데, 선희는 탄탄한 요약 발제문을 만들어 왔다. 처음 스터디를 시작하던 무렵보다 훨씬 단단한 발제문이었다. 짧은 시간에 적지 않은 단련을 한 것 같아서 인상적이었다. 6장은 기관없는신체.에 대해 다루었는데, 나는 들뢰즈 식의, 또는 들뢰즈를 해석한 이진경 식의 해체-파괴-죽음에 대한 도식에 동의할 수 없었다. 소영 누나의 지적대로 들뢰즈와 가타리는 분명한 문제의식, 그리고 문제의식에 이어지는 목적의식을 갖고 그들의 이론을 구축한 듯하다. 때는 68혁명이 실패한 이후였고, 그들에게는 혁명 실패에 대한 원인분석과 새로운 방법론에 대한 탐구가 필요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논의의 무대를 인간과 그들의 사회.로 제한했는데, 그러니까 두 원저자의 생각이 서구식 한계를 갖는다는 이진경의 지적 역시 동의하기 어렵다. 기관없는신체의 동양적 구현이라는 곳에 대해, 두 원저자는 아마도 몰라서 못 간 것이 아니라 갈 필요가 없어서 안 간 듯하다. 성현 형은 언젠가 스터디에서 비판적 책읽기의 방법에 대해 말했었는데, 저자들의 방식으로 저자들의 논리를 깨는 것이 정공법이라고 했다. 해체.라는 개념은 사실 데리다의 특허같고, 들뢰즈의 이야기 속에서는 배제되는 개념인 듯한데, 6장에서는 분명한 저자들의 목소리로 해체.라는 단어가 언급되고 있다. 물론 탈지층화라는 개념이 더 빈번하고 분명하게 쓰인다. 어떤 유기적 위계질서에서 벗어난, 모든 것으로 변할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진 상태를 저자들은 기관없는신체.라는 용어로 설명하는데, 6장에서는 기관없는신체를 세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그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형태이고, 하나는 어떤 긍정적 에너지를 소멸한, 완벽하게 망가져서 해리되어 있는 형태의 신체다. 그리고 마지막은 암적 신체다. 이 암적인 기관없는신체는 개인과 사회를 죽음으로 이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는데, 저자들의 생각은 개인과 사회를 '탄생-죽음'의 닫힌 관계 속에 둔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러니까 탄생한 다음이고 죽기 이전인 상태에서 어떻게 탈지층화하고 새로운 가능성으로 재지층화할 것인가?라고 묻는다. 그런데, 재지층화하기 위해서 탈지층화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은 지적하면서 왜 탄생하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내 생각대로라면, 이들은 사실 같은 의미로 추상할 수 있는 해체 죽음 파괴 세 단어에 지극히 자의적인 가치를 부여해서 부정적인 상황에는 죽음 또는 파괴라는 단어를 부여하고 긍정적인 부분에는 해체라는 단어를 쓴다. 예를 들어 암적인 기관없는신체는 그 대상을 죽음으로 이끄는 파괴적인 역할을 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인간을 단위 개체로 파악할 때나 가능한 것이지, 암세포 입장에서는 그것은 자신의 생존 외에 무엇도 아니다. 반대도 생각할 수 있다. 지구를 단위 개체로 보면, 인류 이상 가는 암적 존재가 과연 있을까? 당면한 시대 앞에서, 그들은 마음이 급해서 인간사회 밖으로는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것일까? 스터디 말미에 왜 공부하냐는 질문이 덧붙었는데, 이 공부를 통해서 나를 온전히 긍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었던 것도 같다.
(사진 안 온다고 독촉 전화가 왔는데, 왜 택배 아저씨는 빨리 안 오시나!)
사진강좌는 9주 일정 중에 이제 2주가 지났다. 본래 에프상하이 맴버들을 대상으로 소박하게 하던 것인데, 교민분들 중에 배우려는 분들이 많아서 이번에는 대외적으로 개방하고 규모를 키웠다. 대신 비교적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었던 내부 스터디와 달라서 한 주에 한 번, 두 시간으로 제한하니 해야할 말은 많고 시간은 항상 부족하다. 마음은 바빠서 말은 달리고 두 시간 내내 리듬도 없이 쏟아만 낸 말들은 아마도 듣기에 버거울 듯하다. 욕심대로 하면, 그곳에 와서 이야기를 듣는 분들이 단지 카메라를 다루는 테크닉적인 부분에 그치지 않고 사진을 찍는 이유, 그리고 자신만의 색깔을 내는 방법 등에 대해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덧붙이는데 그러다 보니 또 이야기가 항상 산으로 가서 중간마다 방향을 돌려세운다. 가벼운 마음으로,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멀리까지 와서 열심히 듣는 분들의 눈빛이 좋아서 좀 더 열심히 준비하고 끝나는 날까지 단단하게 할까 보다.
그리고, 마침내 결국 오호라 그러니까 바로 내 말이. 웹진. 이름은 번진.이라고 붙였다. 성현 형이 지어주었다. 상하이 와이탄의 영문 표기인 번드Bund와 번진다.는 한글에서 연상시켜서 번진.이다. 은진이가 자기 말로는 방바닥을 다 물들이며 만들었다는, 번져나간 먹방울. 이미지를 받아서 포토샵에서 모양을 만들고 색을 넣어서 메인 아이콘으로 썼다. 거친 수준에서 디자인은 마쳤고, 바쁘다는 핑계로 지난 한 주 동안 버려두었는데 오늘 저녁쯤이면 게시판 세부 설정까지 모두 만져서 필진들의 원고를 옮길 수 있겠다. 당분간은 계속 테스트해야 하지만 어쨌든 되어가는 것이다. 처음 필진들을 모았을 때 후다닥 밀어부쳤어야 했는데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리듬이 많이 죽었고, 몇 명의 필진들이 떠났다. 물론 떠난 것만큼 새로운 필진들이 왔다. 많은 것이 예상에서 빗나갔지만, 고민한 문장을 읽고 싶은 수요가 있을 것이고 그런 컨텐츠들을 생산하려는 의욕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맞은 셈이다. 이제 번진.이 그 마당이 된다. 나는 그 곳에 인터뷰 원고, 여행 원고, 사진 해설 원고, 책리뷰 원고를 쓸 예정이고, 초보적인 수준에서 클래식 음악에 대한 감상도 써보고 싶다. 날마다 써도 못 쓸 분량이다. 나는 글빚을 지고 살 모양이다.
진도 안 나가는 책 원고 문제도 있다.
아마도 내년이 될, 대학원 진학 문제도 있다.
밥 벌어먹고 사는 사진 문제는, 있다는 건 아는데 왜 항상 뒷전일까?
새 일을 펼쳐낼 때, 가끔 내 몸이 하나라는 걸 잊는다. 두 시간 하는 스터디는 하루 이상의 시간을 투자해서 공부해야 하고, 사진스터디 덕분에 토요일 하루는 꼬박 반납이다. 이렇게 문어발처럼 펼쳐놓고 대충 수습만 하는 선에서 버티는 건 좋은 답이 아니다. 선택하고, 집중해야 한다. 진행중인 책들이 끝나면, 문학스터디와 미학스터디는 내려놓아야겠다. 그나마 그거라도 있으니 졸린 눈 비비며 이론서들을 읽는 것인데, 치우고 나면 어떤 방법으로 그 유머라고는 없는 책들 앞에 앉아있을지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당분간 접어야겠다. 고프면 읽겠지. 사진스터디도 7월에는 끝나니까, 끝나면 조용히 에프상하이에서 잠수타야겠다. 그리고 그렇게 모은 시간과 에너지를 당분간은 웹진에 모두 쏟아야겠다. 좋은 글들을 모으고, 사람들을 모으고, 모인 사람들이 놀게 해야하는데 마땅한 방법이 아직 떠오르지 않고, 다만 너무 서두르지 말고 느긋하게 해야겠다는 것만 겨우 안다. 어차피 두 스터디의 맴버들 대부분을 이미 필진으로 꼬드겨 놓았으니 그 사람들 보는 문제야 어려울 것이 없고, 내가 참가하지 않더라도 스터디 내용을 삥뜯어서 웹진에 기사로 올리면 그만이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스터디에 대해 알고 스스로의 내부에 있는, 알고 싶다는 욕망을 알아채게 해야겠다. 한 3년 동안 온갖 일을 다 만들어서 사람들을 펼쳐놓고, 3년 뒤 12월에 모조리 끌고 투표하러 가야지. ㅎㅎㅎ
공짜표가 생겨서 문학스터디 맴버들과 연주회에 다녀왔다. 가끔 생기는 연주회표는 주로 성현형이랑 바람소리 누나랑 다녔는데, 마침 문학스터디 하는 중에 연락을 받아서 맴버들에게 표를 돌렸다. 레파토리에는 별로 호감가는 작곡가가 없어서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보로딘의 첫 곡은 어쩌다 보니 문 밖에서 들었고, 생상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악단과 바이올린이 어찌나 따로 놀아주시는지. 본래 그 곡이 그런 것인지, 내가 앉은 자리가 위치가 메롱이어서 바이올린 고음이 특히나 쏜 것인지, 아니면 악단과 독주자의 궁합이 안 맞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인상적이지 않았고, 생상은 역시 아무런 인상도 없는 작곡가로 쭉 갈 모양이다.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이었는데,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이다.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선입견이란, 현대음악가. 어려움. 괴팍함. 정도였다. 대충 말도 안 되는 불협화음이나 듣다가 말겠구나 싶었는데, 1,2악장은 상쾌한 동화처럼 시작한다. 천진한 아이가 마냥 신나서 봄날 오후에 들에서 논다. 러시아 민속음악의 어떤 조각들도 들어 있는 듯했다. 3악장에서 분위기는 돌변하는데, 아이는 어떤 사정인지 동화에서 깬다. 또는 3악장의 어떤 어른이 1,2악장을 회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팀 버튼의 빅 피쉬.가 생각났다. 어린 마음에 들었던 아버지의 마술같은 옛날 이야기는 자라서 생각하면 도대체 상식의 범주에 들지 않는 것이고, 아버지에게 속았다는, 아버지는 허풍꾼이라는 생각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바뀐다. 그리고 3악장의 중간에서, 잠시 쉰 다음에 첼로로 넘어가면서 이 부정적인 분위기는 반전된다. 4악장은? 당췌 못 읽었다. 그래도 기대 이상이었다. 모든 악장이 다 매력적이었고 바이올린 독주가 빠진 악단은 그 자체로 온전해 보였다. 아니 온전해 들렸다? 바람소리 누나에게 물어봐야겠다. 쇼스타코비치 5번은 어떤 연주가 좋은지.
아놀트 하우저의 책에 따르면, 작곡가가 본격적으로 자의식을 갖고 클라이언트를 위한 곡이 아닌 스스로의 내면을 대변하는 곡을 생산하기 시작한 때는 베토벤보다 겨우 약간 앞선 시기부터다. 그 이후로 작곡가는 각 작품을 스스로와 동일시한다. 그렇지 않다는 이유로 바흐는 하우저에게 홀대받지만, 후대에 일어난 바흐 음악에 대한 재평가 작업은 의미가 있다. 어쨌든, 하나씩 알아가는 고전음악은 제법 재미가 있다. 다른 거창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한 명 한 명 작곡가의 거대한 우주와 겨루어나가는 재미가 좋다. 그가 펼쳐놓은 암호들 사이를 이리저리 파고 들어가서 마침내 무언가를 알아채는 기분은 책 읽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한 동안 이 안에서 놀아봐야겠다.
대충 밀린 이야기들을 다 썼다. 택배 아저씨는 다녀갔고, 마지막 남은 김치찌개를 끓여서 점심을 먹어야겠다. 그리고 웹진과 맞짱뜨러 가야겠다.
2010.05.09 08:37
비 온다. 뽀송뽀송한 늦잠을 자고 늦게 깼다. 예쁘고 편안한 꿈을 꾸었다. 깨어서도 한참 이불 속에서 가물해져가는 꿈을 되씹었다. 창 밖에 부딪치는, 멀리 땅바닥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가 앉은 자리까지 들린다. 일요일이다. 분주한 한 주였다. 오전을 빈둥거릴 작정이다. 해야할 것들이 있고 다음주도 아마 적잖이 바쁠 듯하니까, 오늘 오전은 작정하고 빈둥거리고 오후에도 작업하다가 나른해지면 곧장 침대로 가서 이불 돌돌 말고 뒹굴어야겠다.
교민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진스터디를 시작했다. 지나고 보니, 좀 더 쉽게, 좀 더 직접 와닿는 것들을 알려드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2010.05.03 19:52
정원 가꾸는 사람을 취재하고 왔다. 내가 직접 꾸리는 인터뷰는 아니고, 한국측에서 취재 질문을 모두 보내주어서 나는 가서 적힌 대로 묻고 말하는 대로 받아 적으면 되는, 답답하기도 하고 맘 편하기도 한 인터뷰다. 삼 십 대 중반이라는 여인은 일본 국적의 중국인이라고 했는데, 시내 중심의 옛 주택에 세들어 살면서 정원을 가꾸고 있었다. 정원은 넓었고, 포근했다. 정원에 대한 인상이 참 좋아서, 잡지가 시키지 않은 질문도 몇 개 섞어서 했다. 그리고 다음에 꼭 놀러가겠다고 예약해 두었다. 한참 공사중인 거실에는 150인치 스크린이 걸리고 홈시어터 시스템이 구축될 것인데, 며칠 뒤에 친구들이 와서 축구를 보기로 했다고 한다. 다음에 갈 때 정원을 닮은, 여백이 넓은 사진을 한 장 선물하고 맘에 드는 화분이나 하나 삥뜯어 와야겠다. 그리고 그녀는 근처 안푸루.에 작은 가게를 열고 있는 친구도 소개시켜 주었는데, 프랑스에서 색채 디자인을 공부했다는 다른 그녀.는 내게 또 유용할 듯했다. 조만간에 호텔 작업 사진들을 몽땅 들고 가서 색에 대한 조언을 좀 구해야겠다. 사람을 만나서 그들의 세상에 대해 묻고 정리해서 쓰고 다른 사람들이 읽게 하는 작업은 매력적이다. 한 때의 열병처럼 또 찾아온 생각의 덩어리들은 사람이 사는 일에 대한 문제들이니까, 아마 그 답도 사람이 사는 이야기 속에 있을 것이다. 비슷한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서, 인터뷰 팀을 꾸릴까 보다. 그래서 지구인.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색깔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 관계 맺어야겠다.
내일 아침 촬영 가기 전까지 작업해야 할 사진들은 거의 밤샘을 해야 할 분량인데, 최근 10년 사이에 술 마시고 논다고 두어 번 밤 샌 적은 있어도 일하면서는 그래 본 기억이 없어서, 오늘도 안 할 것이다. 아마. 그러니까 수면 시간을 조금 줄이는(많이는 아니고) 수준에서 작업은 눈치 못 챌 만큼, 혹 눈치를 채도 욕하지는 않을 만큼 날림으로 하게 될 것이다. 사는 게 그렇지 뭐.
텃밭 누야에게 메일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밀린 일기처럼 됐다. 누야는 오랜만에 차근차근 적어서 안부를 전해왔는데, 잊었던 풍경이 눈앞에 다시 펼치는 듯했다. 나도 그에 걸맞는 답장을 하려면 우선은 닥친 이 덩어리 일들을 어떻게 좀 안 보이는 곳으로 밀쳐야 하는데 그렇게 되려면 며칠은 걸려야 되고, 며칠은 더 목에 가시를 걸고 있어야겠다. 도꾸 안부도 물어야 되고, 가죽 놀이는 재밌는지 물어야 되고, 나는 여전하다고 써야 하는데.
영숙 누나는 들어온 소개팅도 못 할만큼 바쁘댄다. 나보다 더 내 밥을 걱정하는 것은 내가 한참 못 먹고 못 살던 하필 그 때에 나를 알아서다. 한국 갈 때마다 불러서 밥먹이는 사람이고, 머리가 아프면 소화제를 먹으라는 진리를 알려준 사람도 누나다. 참, 누나 동생 진숙씨 결혼식이 이 때쯤이었던 듯 한데. 축하한다는 말이라도 전해야 하는데. 연락을 해야겠다.
은경 누나가 중국에 놀러온다고 한 게 아마 이 쯤인데, 그러고 보니 딱 이 쯤인데 바쁘다는 핑계로 소식을 못 물었다. 일본에서 일하고 있는 누나는 영숙 누나랑 마치 바톤 터치하듯 배고프고 서러울 때 나를 불러 먹이셨다. 이번에 못 보고 그냥 보내면 두고 두고 미안하겠다. 어서 어서.
파블로 비욘디의 사계. 오이스트라흐의 베토벤 소나타. 내가 어떤 성향의 음악이 듣고 싶다고 할 때마다 바람소리 누나는 거기에 딱 맞는 연주자와 음악을 알려주고, 많은 경우에 음반까지 찾아서 빌려준다. 파블로 비욘디의 사계.는 당시의 악기로 연주한 원전 연주라고 하는데, 이게 물건이다. 이래서 이름을 사계.라고 붙였구나 싶다. 오이스트라흐와 오보린?의 바이올린 소나타 협주는... 이게... 또 물건이다. 두 명의 대가는 참...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팽팽하기도 하고 배려하기도 하는 듯한데, 아무 것도 모르고 들었을 때 나는 나이 든 연인이 연주하는 줄 알았다. 절대로 앞서지 않기 위해, 절대로 물러서지 않기 위해 그 절묘한 선 위에 있기 위해 둘은 얼마나 공들여서 연주했을까? 그 미묘한 한 점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이제 겨우 입문하는 입장에서 곡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 할 수는 없는 노릇인데, 그래도 한 곡씩 한 곡씩 좋아하는 곡들이 생기고, 그 곡들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 언제쯤 나는 또 쓸 것이다. 나는 누나에게 오디오 장비를 뽐뿌했는데, 누나는 내게 좋은 음악을 돌려주니까 어째 균형이 안 맞는다. 고마운 음악 길잡이다. 그러 누나에게 나는 카메라, 오디오, 자전거를 차례 차례 뽐뿌하고 있다.
"누나, 나 완전 아줌마 파마 하면 완전 이상할까? 머리가 너무 길었어" 낮에 문자 보냈더니 아직도 답이 없다. 내가 아무 이름도 안 붙이고 부르는 내 누나. 굶을 때는 카드를 하사하시어 나를 살리시고 기 죽을 때는 그래도 믿는다고 매형과 함께 더블로 응원하고 스타일이라고는 개뿔도 없었던 동생을 직접 고른 옷들로 덮었다. 같이 손 잡고 마트 가면 어찌나 마음 편하게 아무 물건이나 막 집게 되는지 원. 가족이 무엇인지, 나는 오래 걸려 알았다. 근데 누나, 이번에 준 카드는 잘 안 되더라?
나는 참 여러 누나들에게 빚지고 산다. 그러니까 내가 얼른 얼른 잘 자라서 내가 받은 만큼, 거기에 조금 보태서 세상에 돌려주어야 한다.
아, 정원이 어땠냐면...
2010.05.03 14:35
집이 마굿간이다. 여름은 3일 전에 갑자기 왔다. 외투 입고 다니다가 갑자기 반팔을 입는다. 아침 저녁으로는 아직 제법 선선한데 그것도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청소하고 싶다. 청소기 돌리고, 잡다한 것들 좀 들어내고 창문도 좀 열어서 꼬질꼬질한 냄새 좀 내보내고 겨울 두꺼운 옷들 세탁소에 가져다 주고 더불어 여름 옷들도 몇 개 사고 싶다. 이불도 빨아서 두꺼운 것들 좀 집어 넣고 뽀송뽀송한 이불을 덮어야겠다. 하루 푸지게 집안을 들었다 놓은 다음 저녁에는 한가하게 음악이나 틀고 창가에 앉아서 시원한 맥주나 한 잔쯤 했으면, 딱 좋겠다. 다음주 초까지는 도대체 시간이 없을 듯하고, 목을 조르는 급한 것들을 대충 치워내는 다음에는 목 바로 아래까지 치달아 있는 것들을 해치워야 한다. 아, 신나게 바쁜 한 때를 산다.
지난 천진 출장 중에, 한국에서 온 에디터는 내 사진 작업 방식이 잡지 에디터들이 선호하는 방식은 아니라고 했다. 녀석이야 워낙 오래 알고 지낸 사이니까 편하게 말해 주었다. 에디터는 몇 개의 작업이 있으면 리듬을 만들어서, 목숨 걸어야 될 작업과 평균만 해도 되는 작업, 그리고 대충 넘기면 되는 작업으로 나누어서 에너지를 배분한다고 했다. 그리고 포토 역시 그래야 한다고 했다. 메인 컷으로 쓸 사진에는 정말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 사진들은 속도감 있게 진행해야 한다고, 그래야 시간도 맞추고 에너지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속도와 속도 안에서도 안정적인 결과물을 뽑아내 주는 포토를 에디터들은 선호한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한 장 찍을 때마다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찍어대니 시간은 시간대로 걸리고 사람은 사람대로 지친다. 녀석의 말대로 잠시 방식을 바꾸어 속도감 있게 찍어 보았는데, 내게 '빠르게 찍는다'는 것은 곧 '대충 찍는다'라는 것임을 알았다. 결국 한 번 그래 보고 다시 내 방식대로 했다. 그렇구나 생각하고 넘겼는데,
어제 엑스포 촬영장에서 함께 작업한 에디터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작업은 정말 열심히 하는데 정작 자기 스타일이랑 맞는 사진은 별로 안 나온댄다. 아, 방법은 내가 잡지 사진을 안 찍거나, 잡지에서 요구하는대로 나는 없고 피사체들의 증명사진만 있는 그런 컷들을 만들어야 한다. 아마 내가 처음 잡지 사진을 시작하던 때의 버릇 때문인 듯한데, 내가 주로 찍은 사진은 잡지에 풀 페이지로 딱 한 컷 들어가는 포트레이트였다. 몇 장으로 상황을 설명하는 사진은 별로 찍은 적이 없었다. 한 장에, 승부를 걸어야 했다. 그 버릇 때문일까? 어떤 사진 한 장도 내 색깔이 없는, 아무나 찍을 수 있는 그런 사진은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잘 못 찍겠다. 잘 안 찍으니까 이제는 보려고 해도 그런 앵글은 눈이 알아서 거른다. 나, 잡지는 못 하는 걸까?
일하자. 여름도 오래지 않을 것이다.
2010.05.02 21:02
양산을 쓰고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
시선에 속도감을 부여하도록 배치한 대형 스크린들. 스페인관
엑스포에 다녀왔다. 어제 정식 개장했으니 개장 이틀째이고, 노동절 연휴였다. 내 돈 내고 간다고 해도 부러 사람 많은 곳을 찾아다니지 않는 성격이니까 잘 안 갔을 텐데, 일이니 어쩔 수 없이 갔다. 앞으로 3일을 더 가야한다. 엑스포는, 체력전이더라. 해를 가릴 수 있는 모자든 양산이든 필요하고, 오래 걷기에 편한 신발이 필요하고, 입장을 기다리는 아주 많이 긴 시간 동안 지루하지 않을 파트너, 또는 놀이감이 필요하다.
오스트레일리아관의 스탭과 이야기하면서, 슬쩍 엑스포의 의의에 대해 물었다. 아무리 보아도, 돈지랄이다. 엑스포는 그 탄생에서부터 국력을 과시하고, 자국민에게 그들의 나라가 위대하다는 어떤 심리적 자신감을 심어주는 이벤트였다. 영국의, 프랑스의 엑스포가 그랬고, 한국의 엑스포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나마 과거의 엑스포는 시대가 갖는 공간적 시간적 제약 때문에 그 최소한의 정당성이라도 확보할 수 있었다. 먼 곳의 신기한 존재들을 불러모아 서로 보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인터넷도 잘 되잖나. 왜 이렇게까지 좁은 장소에 불러 모아야 하나? 좀처럼 납득하기 어렵다.
엑스포가 돈지랄이고 국력 과시용이라는 증거는 각국의 전시장에서도 드러난다. 유럽의 소국들은 단체관 속에서 파트를 나누어 쓴다. 크게 시선을 끄는 것도 없고, 그저 한 바퀴 휘 둘러나오면 되는 형태다. 들러리.라는 단어가 그 본래의 의미로 들어맞는다. 안스럽다. 어젠가? 뜬 인터넷 기사에 북한 전시관을 비웃는 내용이 있었다. 출처는 YTN 특파원이었다. 북한관이 폐쇄적이고, 볼 것도 없고, 개장 한 시간만에 분수 밑으로 물이 샌다는, 그래서 결론은 앞으로 엑스포가 펼쳐지는 6개월 동안 북한관이 과연 사람들을 얼마나 끌어모을지 모르겠다는 지랄같은 기사를 쓰셨더라. 단지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의 조합 속에 비꼬는 의도가 너무 분명하게 읽혔다. 그러고 싶나? 그러자면 유럽 소국들의 전시장도 한 번 까발려보시지 그랬나. 한 번 해보겠다는, 어떻게든 그래도 살아보겠다는, 먼 곳도 아닌 바로 옆의 피를 나눈 사람들이 사는 그 나라를 그렇게 바닥부터 긁어대고 싶으셨을까? 그렇게 기사 쓰셔서,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을까?
일이니까, 보고 싶은 곳을 다 가보지는 못 했다. 한국관도, 북한관도 못 봤다. 최대한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겠다는 얕은 꽤 때문에, 인기 없는(=유별난 볼거리가 없는) 전시관 몇 개를 보고, 마지막으로 나오기 전에 겨우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려서 스페인관을 보고 나왔다. 가우디의 나라답게, 잘 했더라. 나머지 3일은 기다리는 시간을 각오하더라도 좀 큰 전시관 위주로 동선을 짜도록 해야겠다.
당분간은 계속 관람객이 많을 모양이다. 초반에 볼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아니면 하루에 다 보겠다는 생각을 겸손하게 접으시고 긴 일정을 짜야 한다.
2010.05.01 22:27
웹진에 열올리는 것이 제법 되었다. 사람들을 모았고, 그들에게 글을 쓰도록 부탁했고, 어서 쓰라고 독촉했고, 다른 사람의 글을 평가하라고 떠밀었다. 불러서 묻고, 물어서 들은 것들을 다시 적었다. 하루 걸러 하루씩 전화해서 새로 써야 할 글과 읽어야 할 글을 알려주고 있다.
처음 웹진이라는 것을 만들겠다고,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 제법 오래 되어서, 막상 한참 열올리는 중에 돌아보니 왜 웹진을 만들겠다고 진심으로 나를 설득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은 나는데, 정말 그런 이유들이 나를 그렇게 들뜨게 했던 것인지 잘 모르게 되었다. 머리는 여전히 잊지 않고 있는데 가슴은 잊은 셈이다. 함께 편집작업을 맡아준 송지윤은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줄 몰랐다”고 말했다. 듣고 보니, 시킨 사람도 없고,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여하튼 별 소득 없어 보이는 일을 나는 왜 그토록 열심히 하려고 했던 것인지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무엇일까? 웹진은 인문학.과 예술.이라는 주제를 내걸었지만, 껍질 떼어내고 보자면 결국 ‘지적 허영’이다. 없어도 굶어 죽지 않고 얼어 죽지 않는 것이고, 있어도 특별히 배부르지 않고 아플 때 보험이 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 지적 허영이 탐났던 것일까. 못 다한 공부에 대한 자격지심 같은 것일까. 한 명의 사진사로 남는 게 싫어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그들과 함께 놀아보려는 것일까. 어쩌면.
애초에 내가 나를 설득했던 이유는 대충 이랬다.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 그들은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니, 그들에게 그 혜택을 돌려주라고 요구할 것. 그들이 받은 세상에게, 그들의 도움이 필요한 어디든. 그리고 그들을 모아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해 두면 재미난 일들이 많이 생길 것. 돈의 논리 앞에 소외 받고 내려앉은 인문학의 힘을 변호하고 드높일 것. 말 통하고 그런 심심한 것들로 더불어 즐거울 수 있는 사람들을 모을 것. 대충 이런 것들이 아니었나 싶다. 개인적으로는 부족한 공부를 이끌어줄 선생님들이 필요했고, 그런 공부를 통해 삶의 좀 더 깊은 곳까지 도달하고 싶었다.
두 개의 스터디, 사진 강의, 웹진, 그리고 소소한 원고들 몇 개 정도가 돈과 상관 없는 내 일이다.많지 않은 사진을 찍어서, 먹고 사는 일을 푼다. 시간은 부족하지 않다. 바쁘다 바쁘다 해도, 내가 괜히 벌려둔 일들 때문이지 먹고 사는 문제 때문은 아니다. 부족하다 부족하다 해도 스스로의 기준에 비해서지 어디 가서 욕먹을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남들처럼 좀 더 먹고 사는 일에 힘을 써야 하는 걸까? 시간이 있으면 밥 안 주는 공부 대신 좀 더 영업을 하고 좀 더 테크닉을 갈고 닦아서 좀 더 좋은 사진을 찍는 것에 모든 것을 던져야 하나? 그래서 좀 더 비싼 사진가가 되어서 어떤 클라이언트 앞에서도 기 안 죽고 콧대 높게 내가 원하는 사진만 작업하고 사고 싶은 것들을 사서 누리는 사진가가 되면 되나? 그러면, 얻고 싶은 것들을 얻을 수 있나?
풀었다고 생각한 문제들은, 마침내 발견했다고 생각한 답들은 언제나 잠시의 시간이 지나면 그 확신의 크기는 점점 작아지고 결국에는 다시 모호해졌다. 정말 그것이 한치의 의심도 필요 없는 진리여서가 아니라, 그것이 너에게 비추어서 바른 것이라는 설득으로 믿어야 할 모양이다. 믿음은 언제나 위태롭고 불안할 것이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외에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당장 무엇이든 뚫어낼 것 같은 기세도 멀지 않은 언젠가는 시들 때가 올 것이고, 확신의 크기와 상관 없이 웹진 작업에 지칠 때도 분명히 올 것이다. 재미있는 일이고 바른 일이고 또 필요한 일인 것은 분명하니까, 내가 지칠 때 다른 사람들의 힘을 빌어서 내가 기대 갈 수 있도록, 힘이 있고 마음이 닿는 동안에 열심히 그 공간을 구축해 놓아야겠다. 누구는 내가 가려는 그 곳에 좌표를 부여해 주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그 가치를 구하는 작업이 분명히 헛짓은 아니겠다.
쇼프로그램에 나온 가수들을 보다가 답답해져서 마이클 잭슨의 공연 실황 동영상을 봤다. 비단 한국의 특징은 아니겠지만, 아이돌 그룹의 단체 율동을 보고 있으면 그들의 몸짓은 그들이 부르는 노래와 별 상관은 없어 보이고, 그저 보기에 그럴 듯한 동작을 잔뜩 외운 다음 무대 위에서는 행여 순서 틀릴까, 다른 맴버들과 박자 안 맞을까 마음 졸여가며 움직여 대는 의미 없는 허우적거림 같다. 그러다가 이미 십 수 년, 어쩌면 그 보다 오랜 MJ의 춤을 보고 있으면, 음악이 몸 속을 꽉 채워서 마침내 더 이상 어쩌지 못 할 때 터져 나온, 음악이 그대로 형태를 바꾼 몸짓인 것을 알겠다. 나는 잘 몰랐고, 그의 죽음 이후에나 그의 영상을 뒤졌지만 그는 한 역사였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어떤 사람들은 시대를 구축하고, 그 다음의 세대는 그 유별난 인물이 구축해 둔 역사의 틀 안에서 그 양분으로 산다. 철학에서, 예술에서, 과학에서 우리는 그렇게 시대를 구축한 인물들을 떠올려 볼 수 있다. MJ가 구축한 시대의 양분으로 오늘의 아이돌들은 산다. 그 다음의 시대를 구축할 인물은 언제쯤 올까? 온다면, 알아볼 수나 있을까?
그나저나, 우리 필진들은 왜 그리 다들 굼뜨나. 쓰라는 거 빨리 안 쓰고.
2010.04.30 10:12
천진 역 앞에 있는 시계탑. 새벽.
제대로 조명빨. 새벽
이미 상업 아이콘이 된 모택동의 마스크.를 넘어서, 이제 그의 삶 자체가 아이콘이 되어버린 마오. 북경.
촬영이 없는 틈에 길을 산책. 천진.
촬영이 없을 때. 산책. 천진.
골목길. 아이들의 낙서. 그 위로 떨어지는 빛. 천진.
중국 각 지역의 지명을 딴 길의 이름표. 상하이와 닮은 도시의 탄생을 설명하는 증거.
사고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고 올라간 빌딩 옥상.에서 맞은 일출. 태어나서 처음, 지평선에서 뜨는 해를 보았다.
출장 다녀왔다. 천진에 다녀왔다. 5일 중에 3일은 일을 하고, 이틀은 오고 가고 노닥거렸다. 빈틈이 있었는데, 검토해야 하는 자료도 안 보고 읽어야 할 책도 안 보고 출장지 주변 길을 걸어다녔다. 천진의 빛은 상하이의 빛보다 맑아서, 빛은 제가 가 닿으려는 곳까지 더 깊이, 또렷하게 닿았다. 칼칼한 바람이 빛의 질감을 더 도드라지게 했다.
한 도시를, 한 땅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본 것은 천진인데, 그것들로 천진이라는 도시의 이미지를 구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얼기설기 엮어보려는 시도는 무모하다. 한 땅에 오래 살아 보아야 비로소 알까? 그래도 모를까? 아마 그 땅 위에 내리는 빛을 살피는 것은, 땅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2010.04.22 08:05
간밤에 비가 세차게 왔다. 비가 창문을 두드려서 밤중에 두어 번 뒤척였다.
새벽에 깨어서 아무 음악이나 틀어두고 짜파게티 하나 먹고 한국에 보낼 책 기획서를 다시 준비했다. 몇 번째 보내는 것인지, 이제 잊었다.
엑스포 1년 전에, 6개월 전에, 하던 것인데, 며칠 뒤면 엑스포는 시작한다. 아,
웹진은 진도가 더디다. 진도가 더디다기 보다 내 마음이 급한 것이다. 모든 시작이 그랬던 것 같은데, 폭풍처럼 달려들 거라는 생각은, 마냥 혼자 생각이었다. 코딩을 할 줄 모르니까 기존에 있는 스킨만 가져다 놓은 디자인은 어설프기만 하고, 필진들은 각각의 일로 분주해서 필진게시판은 개점휴업이다. 웹진 나비.와 연구공간 수유의 웹진을 우선의 모범으로 삼을까 싶다. 천천히 긴 호흡으로 해야겠다. 당장 그럴 듯한 결과물을 기대하지 말고, 지치지 말아야겠다. 그나저나 저 엉덩이 무거운 필진들을 어떻게 좀 꼬드기나.
2010.04.20 03:17
시간을 잘 못 맞춰서 깨어나니 새벽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한밤중이다.
밤의 가운데 맑은 정신으로 있기는 아주 가끔 있는 일이다. 귀한 시간이다.
무얼 할까 돌아보니 옆집 눈치가 보여서 음악을 듣기는 어렵고,
밀린 원고나 쓸까 꺼내서 두어 줄 쓰고 나니 그것도 흥이 안 난다.
사방이 고요할 때 어두운 속에 혼자 있으면, 호수 가운데 모든 나무가 혼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같은 모양으로 아래로 드리운 그림자도 있고,
하늘 아래 혼자일 때도 하늘만은 같이 있어주지 않더냐는 시인의 말도 있었는데.
2010.04.18 20:43
엑스포 개장 준비 때문에 몇 년 동안 상하이는 도시 전체가 공사판이었다. 와이탄도 올 초부터였던가? 공사에 들어가서 한 동안 접근할 수 없었다.
에프상하이 출사. 한국으로 돌아가는 둘과 필리핀으로 장기 여행을 가는 하나를 위한 조촐한 송별회. 봉식 형이 늦는다는 통보. 몇 가지 이유가 겹쳐서 오랜만에 어쩔 수 없이 출사를 갔다.
일하는 사진만 찍다가 가끔 별 생각 없이 카메라 들고 거리에 나서면, 셔터가 참 가볍고 경쾌할 때가 있다.
강변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일행은 근처 갤러리 카페에 피신해서 커피나 마시고 잡담이나 했다. 해 넘어갈 무렵에야 강변에 섰는데,
예전에는 보이되 잡히지 않던 이미지들이 하나 둘 내 카메라에 담기는 것이 새삼스럽다.
아, 내 사진이 조금 자랐구나. 이대로 가면 제법 사진에 힘이 붙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2010.04.17 09:32
4:30pm. 홍방
어제 저녁에 웹진의 첫 오프라인 모임이 있었다.
아홉 명의 필진 중에 여덟이 모였다.
아직 서투른 웹진 페이지를 함께 둘러보고, 앞으로 쓸 글에 대해, 할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 명 한 명 눈빛이 단단하고, 말마다 든든하게 들렸다.
이번에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까, 마침내 될 것이다.
신나는 놀이터를 만든다.
그대들을 믿고 나는 간다.
2010.04.16 08:11
출장지의 아침은 가능하면 혼자 먹는다. 일정들은 보통 아침 9시 전후에 시작한다. 그 전까지가 거의 유일한, 개인 시간. 저녁 시간은 또 다른 이야기. 그래서 최대한 비워내고 아직 말끔한 시간.을 혼자 보내기. 느긋하게 아침 먹으면서 무엇을 생각하거나, 메모하거나, 또는 아무 것도 안 생각하는 때. 이 고요한 아침이 분주한 하루를 버티고 이끄는 동력. 룸메이트도 늦잠 자기를 바라기도.
지도를 샀다. 호텔은 시내 지도의 경계 밖에 있어서 보이지 않고, 며칠 동안 예정된 목적지들은 성지도 속에서 청두와 겹쳐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
생활을 조금 더 간소하게 해야 한다.
좋은 것들, 아름다운 것들을 보았다. 자료를 보고 왔다. 많이 죽고 다쳤다. 그러나 숫자는 그 깊이를 재지 못 할 것. 지진과 관광은 참 극단에. 지진의 통곡을 병에 담아 판다는 인상.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기사에 쓸 수는 없겠지만.
그 내면의 모순은 없는가?
보고 싶지 않지. 가장 좋은 회복은. 다시 살려내는 것. 아이를 잃어버린 집에 새 아이가 태어났다. 따져 물을 것 없이 당연한 것인데, 답을 듣는 마음이 납득하지 않아. 미진한 마음.
맞다. 그 이외의 답을 생각하기는 어렵다. 관광객에게 입구에서 묵념을 받을 수도 없는 일.
두장옌. 재미난 곳. 그 지진의 상품화.
핑계가 잘 맞아 떨어졌다. 뭐, 관광 팀이니까.
2010.04.12 11:14
촬영을 위해 꽃을 준비 중인 플로리스트
오늘 내일 이틀 동안 촬영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아침에 연기 통보를 받았다.
돈 버는 문제와 상관 없이, 있던 촬영이 갑자기 연기되거나 취소되면 공짜 시간이 생긴 것 같아서 마냥 기분이 좋다. 촬영에 대한 부담감에서 해방되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덕분에 늦잠을 좀 잔 것도 문제가 안 된다.
주말 동안 밀린 원고를 쓰겠다던 것이, 겨우 웹진에 보낼 원고 하나와 자기 소개서를 쓰는 데 그쳤다. 그리고 모처럼 잘 쉬었다.
촬영이 연기되었고, 덕분에 당분간 긴급한 스케줄이 없으니 밀린 일들을 좀 챙겨야겠다.
오늘은 교민매체에 보낼 원고 네 개를 마저 쓰고,(틀은 잡아두었다.)
웹진에 보낼 원고 두 개를 또 쓰고,
금요일 미팅에 앞서 웹진 사이트를 완벽하게 구동시키는 것까지가 목표다.
근데 자꾸 영화도 보고 싶고 낮잠도 자고 싶고 군것질도 하고 싶어지나...
2010.04.12 01:21
법정 스님께서 가셨다. 스님께서 가시기 전 마지막 말씀 중에, 이번 생에서 잘 못한 것들은 앞으로도 계속 참회하겠다.고 말씀하셨다. 남은 며칠 동안에 참회를 끝내시겠다는 말씀은 아닐 테니까, 스님은, 다음 세상에서 다시 생명을 갖고 오실 모양이다.
출처: [인터넷 교보문고] 신. 1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간 신.과 사이먼 싱의 책 빅뱅.을 빌렸다. 베르베르의 책은 인간과 천사의 시기를 거친 주인공들이 마침내 신.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는다는 소설이고, 빅뱅은 우주의 탄생에 대한 천체물리학 이야기를 일반인을 대상으로 쉽게 풀어 쓴 대중과학서적이다. 이번에는 제법 주목을 받는 신간이라고 해서 기대를 했었는데, 신.은 다 읽지 못 했다. 10년 동안 100번을 고쳐 썼다는 그의 첫 소설 개미.와, 인류의 사후세계를 화려하게 풀어낸 두 번째 소설 타나토노트. 정도가 베르나르의 절정이었다는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후에 나오는 그의 소설들은 매력적인 아이디어로 시작하지만 시간을 두고 익혀내지 못해서 이야기의 밀도는 성글고 사건의 연결은 필연성이 떨어진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선명하고 단호해서 이야기 속에 녹아나지 못 하고 독립된 채로 공중에 떠 있다. 이야기는 그 떠 있는 메시지만을 빤히 바라보며 나아가서 자연스러운 감정이입이 좀처럼 어렵다. 전체 여섯 권으로 나온 것인데, 결국 세 권을 채우지 못 하고 반납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우주의 어느 모처에 있는 섬에서 신이 되는 교육을 받는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우주관은 불교의 윤회사상을 밑재료 삼고 서구의 유일신 사상을 고명으로 올린 다음 그리스 신화를 드레싱해서 마무리한다. 인류는 윤회를 거듭하며 그 어느 순간에 깨달으면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 천사가 된다. 그리고 천사의 어느 단계를 지나면 신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이 땅의 많은 종교가 현세의 너머에 대해 비슷한 장면으로 설명한다. (신이 되는 문제는 예외다.) 때로 천국과 지옥을 말하고, 신들의 동산을 말하고, 인간이 그 안으로 들어가서 존재로서의 업을 벗는 과정을 그린다. 지금의 모습으로 태어나기 전의 삶에 대해, 그리고 죽은 다음 다시 살게 될 삶에 대해 말한다. 잘못을 계속 참회하시겠다는 법정 스님의 마지막 말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삶 전에, 나는 어떤 삶을 살았었을까? 사람이기는 했을까? 아니면 짐승이었을까? 나무였을까? 원시 단세포 생물은 아니었을까? 생물이기는 했을까? 아니, 존재하기는 했을까? 이 물음들은 다음 생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해볼 수 있다. 사후 세계라면 심판.을 추가할 수도 있다. 내 양심의 무게는 내 심장보다 무거울까? 가벼울까? 나는 천국에 갈까? 지옥에 갈까? 윤회의 고리 속에서, 나는 어떤 다음 생을 살게 될까? 몇 번의 생을 더 살면 윤회의 고리를 벗어날까?
출처: [인터넷 교보문고] 빅뱅
소설 속에 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책들로 눈을 돌렸을 때, 유쾌하고 기발한 생각이 우주로부터 왔다. 사이먼 싱의 책은 우주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Big Bang 이론이 어떻게 생겨나고 발전되었는지를 다룬다. 저자는 학자가 아닌 다큐멘터리 제작자로서, 직접 제작한 다큐멘터리에 기초해 이 책을 썼다. 빅뱅.이라는 단어로 인터넷을 뒤져보면 검색결과는 실로 방대하다. 빅뱅.은 우주와 관련해서 쓰이는 것보다 대중문화 속에서 쓰이는 빈도가 월등하다. 책은, 이미 일상의 범주로 편입되어 익숙하게 들리는 단어인 빅뱅.의 등장이 사실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고, 그 성장 또한 한 편의 무협소설처럼 드라마틱했다고 쓴다.
빅뱅 이론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책은 도입부에서 인류가 어떻게 우주에 대한 이성적인 사고를 시작했는지 역사를 더듬어 간다. 샤먼과 토템의 시대를 지나 신이 만물을 주관한다는 중세를 거친다. 그리고 그 말미에서 선구적인 과학자들에 의해 우주는 ‘결코 파악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 아닌 ‘아직 파악되지 않은 이성의 영역’으로 돌려진다. 그리고, 이제 빅뱅이 등장한다. 그 시초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다. 아인슈타인은 거울 앞에 서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그의 사고실험을 통해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을 차례로 완성한다. 그리고 이 상대성이론의 계산에 근거하여, 르메트르 등은 우주가 계속 팽창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우주의 계속적 팽창은, 시간을 되돌리면 그 어느 과거에서는 현재보다 더 작았을 것이라는 예상을 가능하게 하고, 결국 과거의 과거 언제쯤에 우주는 한 점에 모인다. 빅뱅.의 탄생이다. 이것이 1920년 대의 생각이다. 그리고 이 때부터 1960년대 빅뱅이 지배적인 우주론으로 인정받을 때까지, 약 50여 년간 빅뱅 이론을 둘러싼 무협 활극이 펼쳐진다.
과정을 요약해 보면, 아인슈타인은 본인이 상대성이론을 구축했지만, 이론을 적용할 경우에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우주의 계속적 팽창을 인정할 수 없었다. 당시에는 ‘우주는 정적이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아인슈타인 역시 우주가 한결같기를 원했고, 그래서 본인의 계산에 약간의 변형을 가함으로써 우주의 항상성을 지켜내려고 했다. 우주상수의 도입이 그것이다. “1917년,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하고 나서 1년 후에 아인슈타인은 그의 방정식의 해 중에서 우주 전체의 시공기하를 기술하는 것을 찾으려고 애썼다. 당시에 받아들여지고 있던 우주론의 견해에 따라 아인슈타인은 특히 균일하고 등방적이며, 유감스럽게도 정적인 해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해는 발견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우주론의 전제조건들을 만족하는 모델을 얻기 위해 아인슈타인은 소위 우주상수라는 항을 도입함으로써 그의 방정식을 멍청이로 만들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 항은 본래의 이론이 갖는 우아함을 크게 손상시켰으나, 먼 거리에서 중력의 끄는 힘을 상쇄하는 데는 쓰일 수 있었다.” 최초의 3분, p.60
이후 다른 학자들에 의해 우주의 계속적 팽창을 예견하는 계산들이 나오지만 아인슈타인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 때 새로운 무공이 등장하는데, 미국 윌슨 천문대의 수장으로 있던 허블은(우주 공간에 떠 있는 허블 우주망원경이 그의 이름을 땄다) 별들의 적색편이(도플러 효과를 천체관측에 활용한 것으로, 후퇴하는 별들은 본래의 파장보다 적색으로 몰린 파장을 낸다)를 관찰해냄으로써 마침내 우주의 계속적 팽창이 확인하고, 아인슈타인은 이 곳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 완벽한 아름다움에서 한 치 벗어났던 그의 상대성 이론도 우주상수를 제거함으로써 다시 온전한 아름다움을 획득한다.
(--아인슈타인은 처음 상대성이론을 완성한 후 그 완전한 단순성에 대해 ‘아름답다’는 찬사를 보냈다. (빅뱅 p.166) 그 후 어쩔 수 없이 우주상수를 도입해야 하는 상황 앞에서, 그 아름다움이 훼손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단순히 복잡한 것이 아름답기는 어렵다. 온갖 복잡한 엉킴도, 그 복합골절이 마침내 거대한 단순함 속에 읽힐 때, 존재는 아름다움을 획득한다. 상대성이론은 과학적 수식인 동시에, 아인슈타인의 미학이었을 것이다. --)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지금보다 우주의 별들이 더 가까이 있었다는 뜻이다. 더 가까워지고 더 가까워지면, 우 주는 한 점에 모인다. 우주의 팽창을확인하는 것은 역으로 빅뱅의 존재를 생각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빅뱅의 이전을 상상할 수 없었던 학자들은 여전히 그 이론에 동의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 리고 빅뱅이론의 가장 큰 라이벌인 ‘정상우주론’이 남아있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주 는 팽창하지만 일정 기간 동안에, 팽창하는 우주 사이에서 새로운 천체들이 생겨나고, 결국 우주의 단위 면적당 밀도는 일정하게 유지된다. 정상우주론은 그렇게 우주를 탄생과 종말의 선 위에서 비껴나게 만든다. 영원히 지속되는 우주는 그 자체로 완벽해 보였다. 한 동안 빅뱅이론과 정상우주론은 공존했다. 그러나 빅뱅이론이 예측한 우주배경복사가 1960년대 전파안테나를 통해 관측됨으로써, 마침내 활극은 끝난다. 이후 다양한 관측 결과가 빅뱅이론을 지지했고, 현 재 우주의 탄생에 대해 빅뱅이론은 지배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빅뱅은, 100억 년에서 200억년 사이 과거의 어느 순간에 우주는 폭발을 통해 탄생했고, 이 폭발을 통해 시공간이 탄생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었냐는 질문 자체는 성립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전’이라는 단어는 시간 단위인데, 시간이 빅뱅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현재의 과거로 가면 우주의 기원에 닿고, 현재의 미래로 가면 우주의 종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주는 계속 팽창할 것인가? 아니면 어느 순간 팽창을 멈추고 다시 수축할 것인가? 우주의 시작과 끝은 (적어도 현재까지는) 과학의 영역 밖에 있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한 질문들은 (역시, 적어도 현재까지는)종교가 그 답(이라고 믿는 것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 우주의 시작과 끝을 통해 내가 태어날 다음 세상을 짐작하는 작업을 해 볼 수 있다. 과학은 별로 동의하지 않는 것 같지만, 어쨌든 종교는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빅뱅의 이전, 그 창조의 순간이 바로 신의 영역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상태는 잠정적일 가능성이 높다. 과학은 갈 수 없는 곳은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다만 아직 가지 못 한 곳이 있을 뿐이다. 나는 이야기의 진로를 우주에서 종교로, 그리고 다시 다윈의 진화론으로 잡는다.
종교가 이야기하는 창조의 순간, 신의 영역에 대해 말하기 위해 한 권의 책을 더 불러온다. 얼마 전까지 손에 잡고 있던 책은 리차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다. 내가 이 책을 구입한 것은 2007년 11월이고, 출간된 지 석 달 남짓한 책인데도 불구하고 구입한 책은 23쇄 판이다. 많이 팔았다. 책은 다윈의 진화론에 그 생각의 뿌리를 두고 있다. 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도대체 동의할 수 없는, 비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양측의 입장이 소개되고, 도킨스는 진화론을 무기 삼아 유일신에 바탕하는 대부분의 종교의 교리, 경전을 반박한다. 반박이라고는 하지만 그 공격은 일방적이고 그 강도는 학대에 가깝다.
5장에서 소개하는 문화적 유전 단위, ‘밈’은 인상적인 부분이다. 물론 다윈의 이론을 문화에 적용시킨 것은 리차드 도킨스가 처음 시도한 것이 아니고, 밈이라는 단어 역시 그의 작품은 아니다. 다만, 나는 이 책에서 밈을 처음 알았다. 도킨스에 따르면, 다윈 이론을 적용할 수 있는 최소 단위는 ‘유전자’이다. 유전자는 그 자신의 보존과 번영을 위한 방향으로 진화한다. 개체의 행동은 어떤 경우에 비합리적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유전자 단위에서 볼 때 합리적인 것이 개체 단위로 확장되면서 생긴 오류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다위니즘을 문화의 영역으로 옮겨올 때, 유전자에 해당하는 단위가 바로 ‘밈’이다. 종교는 그런 ‘밈’의 부작용 또는 의도하지 않은 파생적 기능으로 설명된다. (다위니즘을 사회 조직에 그대로 적용할 때 발생하는 문명의 정글에 대해서는 여러 비판이 있어왔지만, 이 이야기에서 다루는 방향과는 다르다.)
출처: [인터넷 교보문고] 마지막 3분(사이언스 마스터스 3)
다음 세상에서 내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하려면, 우선 그 단위를 어디에 둘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자연에서 다위니즘의 단위가 ‘유전자’이고 문화로 적용하면 ‘밈’이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우주론에서 이야기를 전개할 때 기본으로 삼아 마땅할 단위는 무엇일까? 그 답을 위해 두 권의 책을 더 불러 온다. 스티븐 와인버그의 최초의 3분.과 폴 데이비스의 마지막 3분.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앞의 책은 빅뱅으로 우주가 생겨난 직후의 3분을 다룬다. 1976년에 처음 나와서 1993년에 2판이 나왔다. 천체물리학 분야는 최근의 성과가 두드러지는 영역이어서 20여 년의 시간차를 둔 책은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이 책의 경우는 2판에서 그저 최근의 성과를 마지막에 덧붙인 것이 전부다. 대중을 위해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다루는 내용은 물리학 수학 화학을 방대하게 써서, 관련 분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으면 좀처럼 쉽지 않다. 수식이 나오는 부분, 화학 반응이 나오는 부분을 중간중간 건너뛰며 읽으면 어느새 후기를 읽게 된다. 그리고 다음 책은 생겨났으니 사라지는 것이 마땅할 우주의 그 마지막을 상상해 본다. 한 권이 창세기.라면 한 권은 묵시록쯤 되는 셈이다. 마지막 3분.은 그 서문에서, 최초의 3분.과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가 만든 계보를 따른다고 말한다. 책은 문고판 크기에 좀처럼 우주와 어울리지 않는 서정적인 하드커버 제본이어서 들고 다니며 읽기에 좋다. 그리고 전체 내용과 별개로 우주의 미래를 상상하는 8장은 그럴 듯한 SF서정시라고 해도 좋겠다. 1994년에 출판해서 2005년에 한국어판이 나왔다.
우주에 대해 말할 때, 우선 그 무진장한 공간의 크기와 시간의 길이에 생각해야 한다. 상상의 영역 속에서, 시공간을 확장시켜야 한다. 두 책에 따르면, 우주는 빅뱅 직후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 급속히 팽창해서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우여곡절을 거치며 오늘에 닿아 있다. 그 시간의 단위에 대해 말하면, 지구의 종말을 계산해 볼 때 나오는 여러 경우의 수 중에 어떤 것은 지구의 종말 시간을 10의 1500승 년이라고 예측한다. 10 뒤에 0이 1499개 더 붙는 숫자인데, 써 보면,
1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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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0000000000000000년이다. 생활에서 통용되는 숫자 단위는 일, 십, 백, 천, 만, 억, 조 정도가 고작이다. 그 너머까지 간다 해도 경, 해, 자, 양, 구, 간, 정, 재, 극, 항하사, 아승기, 나유타, 불가사의까지다. 마지막의 불가사의는 10의 62승이다. 존재하는 숫자 단위의 마지막까지 간 다음 다시 0을 1438개 더 붙이는 숫자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공간의 크기 또한 다르지 않다. 광년.이라는 단위는 비교적 익숙하지만, 실제 그 거리를 체감하는 것을 불가능에 가깝다. 빛이 숨도 안 쉬고 1년을 가야 하는 이 거리가, 우주에서는 보잘것없는 단위가 된다.
그 광막한 시공간 속에서, 우주는 탄생했고 별은 진화해왔다. 빅뱅으로 생겨난 물질들이 극히 미미한 우주적 불균형 속에서 중력작용으로 모이기 시작했고, 마침내 별이 탄생한다. 그리고 내부 에너지를 모두 태운 별은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후 마침내 폭발로써 생을 마치는데, 그 때 초고온 속에서 생성된 다른 원소들은 폭발과 함께 우주 공간으로 튕겨져 나가 우주를 떠돌다가 다른 별의 탄생을 이끈다. 물리적 환생이고 윤회의 고리다. 아무런 증거 없이 그저 막연한 기대로 영혼이 윤회한다는 말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윤회다. 이 윤회의 개체 단위는 아마도 별일 것인데,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그 단위는 무한히 쪼개진다. 별이라는 개체는 그 구성성분으로 나누어지고, 기관, 분자, 원자로 쪼개진다. 원자는 쪼개지고 쪼개져서, 현재는 쿼크.를 그 최소단위로 본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최소 단위가 쿼크인 셈이다. 이제, 나의 윤회가 출발하는 시점에 다 왔다.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선언은 인간.이라는 개체를 그 기본 단위로 삼는다. 그러나 하나의 인간을 나누면, 기관으로 분리되고 분자로 분리되고 원자로 분리되어서 결국에는 쿼크의 조합으로 귀결된다. 생각.이라는 과정은 뇌 속에서 전기신호가 오고 가며 뉴런을 자극하는 물리적 과정이다. 따라서 입자 또는 파동 작용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아인슈타인의 이론대로 빛을 추월하는 속도는 존재하지 않는다면, 생각하는 과정 또한 빛(입자 또는 파동)의 상호 작용으로 구축되는 것이고, 생각의 종합체인 기억.이나 그 추상 형태인 인격 또는 영혼 역시 어떤 근원 물질들의 조합상태로 파악할 수 있다. 생각의 구성 입자와 별의 구성 입자가 같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잠시 샛길로 가면, 이 단계에서 영혼의 전송 내지 복사에 대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입자의 구성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한 후, 그 순간을 고정시켜 신호를 기록하고 다른 곳에서 그대로 재생시킨다면 영혼은 전송되거나 복사될 수도 있을 것이다. 디지털 신호를 재생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물질을 나누고 나누어 양자역학의 단계까지 나아가면 그 세계는 더 이상 물리적 명확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에너지 값의 불확정성이다. 공학자들의 거시 세계에서 에너지는 언제나 보존된다. 이 법칙은 아원자 양자 영역에서 배제된다. 에너지는 한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자발적이며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변한다. 관련된 시간 간격이 짧으면 짧을수록 이 같은 무작위적인 양자 요동이 더욱 커진다.” 마지막 3분. P.67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양자적인 대상의 모든 속성을 정확히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자는 정확한 위치와 정확한 운동량을 동시에 가질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전자는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에너지 값을 가질 수가 없다. 완벽한 물리적 고정값 대신 다만 확률로 말할 뿐이다. 하나의 물리적 조합은 쿼크 단위로 볼 경우, 고정된 불변의 형태가 아니라 다만 운동하는 입자들이 일정 수준의 확률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결합된 형태로 파악된다. 확장시켜 말하면, 당신이라는 하나의 개체는 불변의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무한의 조합이 운동하고 있는 어떤 상태.라고 보는 것이 더 그럴 듯하다. 그 운동이 수용 가능한 확률 안에 있을 때 당신으로서의 당신의 개체성은 유효한 것이고, 반대의 경우에 그 조합을 더 이상 당신이라고 부르지 못 할 것이다. 억지를 부린다면 여기에서 들뢰즈를 끌어와도 틀리지 않는 것인데, 고정된 어떠한 형태도 없고, 다만 현재의 당신은 하나의 배치.에 그친다고 설명할 수 있다. 그 조합은 앞뒤에 붙는 다른 구성 형태와 특정한 시간에 절대적으로 제한된다. 세상의 모든 고정된 것들이 허물어지는 경지다. 이제, 고정된 개체로서의 영혼을 허물 차례다.
여전히 유효한 물리학의 기본 법칙들 중 하나, 열평형 내지는 에너지 보존 법칙을 떠올릴 수 있다. 형태가 변한다고 해도 그 에너지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종교에서, 사람이 죽은 다음의 영혼은 다음 세상에서 다른 존재로 태어나거나, 심판대에서 그 잘잘못을 가려 밝은 곳으로 올라가거나 어두운 곳으로 떨어진다. 환생이든 천국이든 지옥이든, 그 판단들은 영혼을 더 이상 분리될 수 없는, 또는 변하지 않는 최소의 단위로 가정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별이 태어나서 죽고 다시 다른 별로 태어나는 과정을 적용시켜 본다면, 한 인간 개체가 생을 마치면 몸을 이루던 모든 구성 성분은 분해될 것이다. 영혼 또한 그 구성 성분을 빛의 입자와 파동이라고 생각할 때 분해 과정에서 자유로울 까닭은 없다. 그리고 분해된 입자의 일부는 다시 사람의 구성 성분이 될 수 있고, 또 일부는 바다가 될 수 있고, 일부는 컵이 되거나 일부는 종이가 되거나 일부는 바람이 되거나 일부는 전기가 되거나 일부는 소리가 되거나 일부는 아직 이름 붙지 않은 무엇이 될 것이다. 영혼이 더 이상 분해될 수 없다는 생각을 포기하면, 영혼이 고유한 최소의 개체 단위라는 생각을 포기하면 그 구성성분은 곳곳으로 나누어지고 재조합 될 수 있다는 결론에 닿는다. 환생일 수 있고 윤회일 수 있겠지만, 그 윤회는 영혼 개체를 단위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입자 단위의 윤회에 그칠 것이다. 물론 영혼이라는 조합 형태에 어떤 특수 지위를 부여할 수도 있다. 특이한 형태로서 일반적 물질의 분해 과정과 다른 방식의 분해 과정을 따를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영혼이라는 존재를 비물질적이고 초월적인 존재로 남게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부분 또한 과학이 닿을 수 없는 영역이 아니라 아직 닿지 못 한 영역으로 보는 것이 당대의 합리성에 부합한다.
여기서부터는 생각을 조금 거칠게 펼친다. 우선 아이디어 수준의 생각들을 나열하고, 이후 다음 원고들을 연재하면서 차근차근 다룰 작정이다.
영혼이 윤회의 최소 단위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하면 많은 것이 변한다. 우선, 환생에 대한 기존의 개념이 깨진다. 당신이 자각하는 당신.이라는 존재(영혼)는, 과거에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당신의 영혼은 어떤 다른 영혼이 환생한 것도 아니고, 죽은 뒤에 심판의 저울 위에 올려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당신의 물리적 숨이 끊어지고 당신 뇌에 산소 공급이 중단되어 세포들이 죽으면, 그리고 죽은 세포들이 부패하면 당신의 영혼을 이루던 물질들 또한 분해되고, 당신은 완벽하게 소멸한다. 설사 당신을 이루던 입자들이 다른 형태로 조합된다고 해도, 그 조합은 더 이상 당신이 아니다. 개체의 물리적 생명이 끝나면, 당신이 자각하는 세계도 소멸한다. 당신의 우주가 끝장난다. 많은 돈을 벌기? 대단한 책을 쓰기?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 먼 곳을 여행하기? 세상에 기여하기? 모두 부질없다. 당신 사후의 세계가 당신을 어떻게 기억하든, 그것은 그들의 우주일 뿐 당신의 우주는 아닐 것이다. 완전하고 분명한 소멸이다. 우주의 시간에 대해 생각하면 개체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더욱 분명하게 덧없어 보인다. 겨우 100년의 삶으로 우주의 시작과 끝을 재려는 시도는 주제 넘어 보이고, 겨루고 버티며 이루고 살아내려는 노력들은 허무해진다.
결국, 모든 것은 자기 완성, 노골적으로 쓴다면 자기 만족으로 귀결된다. 개체는 자기만족을 달성하기 위해 생존한다. 시대에 기여하겠다거나 역사에 남겠다는 의지 역시, 후대의 역사적 평가가 영혼에 다시 어떤 피드백을 주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기여한다는, 시대에 획을 긋는다는 그 생각이 보다 큰 자기만족을 주기 때문이다. 당대의 평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동조차도 그 행동이 스스로의 신념에 부합한다는, 결코 신념을 꺾지 않았다는 자기만족의 형태로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가장 일반적으로 역사적인 자기만족의 방식은 번식.이었을 것이다. 유전자에 입력된 생존의 본능은, 자신과 가장 닮은 유전자 조합, 즉 다음 세대를 생산해서 자신의 조합을 이어가게 하는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다. 예술이나 종교, 득도의 만족 또한 형태는 다를지라도 결국 같은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사진을 찍고 문장을 만들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내가 가진 것으로 내 세계에 기여하는 것이 나를 즐겁게 하니까, 여기에서 만족을 느끼니까 이렇게 움직인다.
생존의 본능은 유전자 단위에서 추구된다고 해도, 만족감의 단위는 인간 개체다. 한 명 지식인의 정보가 한 질의 백과사전을 넘을 수 없고, 한 명 역사의 힘이 한 대기중기를 넘을 수 없다고 해도 우리가 한 명의 지식인과 한 명의 역사를 대단하게 보는 것은 그 지식과 힘이 하나의 인간 개체를 통해 구현되고 있기 때문이고, 이는 일반적인 사고의 단위가 인간 개체에 있다는 뜻이다. 결국 자기 만족이나 자기 완성은 그 개체를 단위로 삼아야 할 듯하다. 그렇다면 조금 성급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행복해야 한다.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행복해야 한다. 행복은 삶의 목표가 되어야 마땅하다. 만약 자신의 불행을 100% 확신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까지 오로지 불행했고 현재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분명하게 불행 밖에 없을 것이라면, 죽는대도 말릴 수 없다. 당신이 죽으면, 당신의 불행한 우주는 끝이다. 다만, 그 확신에 일말의, 10의 마이너스 1500승 만큼의 불확실한 부분이라도 있다면, 살아라. 살아서 마지막 남은 그 불확실성이 제거되고 마침내 100%의 불행을 확신하게 만들어서 그 때 죽든지, 아니면 그 작은 가능성이 조금씩 자라나서 현실이 되는 것을 확인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단위를 인간 개체 대신 공동체에 맞추면, 종교와 도덕교육에 대한 단서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종교나 도덕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자료는 앞으로 검토해야겠지만, 유전자 단위의 생존 본능을 공동체에 대입시키면 해당 공동체의 지속을 위한 종교, 도덕의 역할을 조금 생각해 볼 수 있다. 질문 하나를 덧붙일 수 있는데, 내가 착하게 살고, 남에게 기여하려는 것은 내 유전자의 오래된 명령일까? 아니면 도덕 교육의 결과일까? 리차드 도킨스는 위의 책에서, 인간은 유전자의 명령만으로 착하게 살도록 되어 있다고 하는데 마음껏 동의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당대에 있어서의 종교의 절대적 필요성을 긍정하기도 어렵다.
앞으로 더 이어갈 이야기들은 이렇다.
1. 영혼이 입자 단위로 분해된다는 생각을 검증하기 위해, 유기물이 분해되는 과정에 대해 찾아보려고 한다.
2. 인류의 문명사와 비교하기 위해, 개미의 문명사에 대한 자료가 있는지 보려고 한다. 개미가 이룩한 거대한 집단 거주체계를 볼 때, 진딧물을 사육하는 것도 언젠가 어느 개미에게서 처음 발명되었을 것이고, 직업의 분화, 개미굴의 구축 등이 개미가 탄생하던 그 순간부터 함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개미들의 역사와 인류의 문명사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본능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문화를 구축한 다른 생명집단의 구조를 살피는 것은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이다. 이 넓은 우주에, 인류만 살기에는 좀 이상하잖나.
3. 일련의 생각들을 조합하면, 자기완성, 자기만족이라는 것은 결국 현세에 행복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데, 그렇다면 역사에서 이미 여러 번 등장했던 인간 중심의 쾌락주의 철학에 대해 다시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들이 말하는 쾌락주의가 단지 방탕한 성욕의 세계가 아니었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들의 생각은 어디까지 나아갔던 것일까? 그리고 쾌락주의는 왜 지배적인 사상이 되지 못 했을까?
사족.
1. 우주에 대한 이 생각들은 얼마 전에야 구체화되었지만, 꽤나 확고하다. 작은 비밀을 알아낸 것 같은 마음이다. 그러나 분명히 해 둘 것은, 겨우 서른 둘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삶에 대한 통찰은 이제까지 변해왔고 앞으로도 변할 것이다. 그러니까, 겨우 서른 둘의 서투른 생각이다.
2. 과학에 대한 신뢰는 합리성, 이성에 기초하고 있다. 인류는 샤먼의 시대, 종교의 시대를 거쳐 과학과 이성이 지배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중세의 사람들이 원시 샤먼의 세계를 비웃듯이 우리는 이성의 이름으로 중세를 비웃고, 중세 사람들이 신 이외의 세상을 상상하지 못 했듯이 우리는 과학과 이성을 맹신한다. 그러나 정말, 이것이 끝일까? 신의 세계 다음에 이성의 세계가 왔듯이, 이성의 세계 저 너머에서 다른 무엇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3. 우주에 대한 소개서를 이야기할 때 빼면 섭섭할 책도 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그 책이다. 1980년에 출판된 책으로, 역시 다큐멘터리를 만든 후 그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된 책이다. 우주에 대해 알고 싶어할 때 가장 좋은 안내자가 되어 줄 수 있는 책이다.
4. 불교의 윤회론은 여러 방면에서 우주학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 스님들에게 코스모스를 교양필수로 듣게 하면 아마도 득도하는 비율이 확 늘 것 같다.
사람들은 나를 반군이라고 부르고, 나는 동생을 반군이라고 부른다. 동생은 내가 반군이라고 부르는, 세상에 단 한 명이다. 아마, 우리는 서로를 신뢰하고 서로의 미래를 확신한다.
동생은 사흘 전 밤비행기를 타고 왔다. 하루는 내 스케줄을 종일 따라다녔고, 하루는 여행 준비를 핑계 삼아 몇 가지 소소한 물건들을 샀다. 사고 보니, 운동화 한 켤레를 빼면 모두 여행과 상관 없는 것들이다.
새벽에 일찍 깨었다. 화장실에 앉아 어제 배달된 한국잡지를 보았는데, 패션 스타일 잡지 속에서 뜬금없이 인문학을 주제로 몇 페이지를 채우고 있었다. 아, 인문학의 창조적 작업이 아니라, 인문학을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소비하고 있는 것이구나. 역시, 믿을 만한 자본의 능력이다.
동생은 경영을 전공한다. 피붙이 눈으로 보는 것이기는 하지만, 꽤 잘 한다. 나하고는 성격도 달라서 한 자리에 엉덩이 오래 붙이고 공부하는 것도 잘 한다. 앞으로도 반군은 잘 할 것이다. 사방으로 튀고 엉뚱한 공부만 하고 사고칠 궁리를 하는 형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가끔 동생은 너무 돈과 상관 없이 지내는 듯한 형이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돈 버는 일을 학교 내내 배우고 있는 녀석이니 오죽할까.
한 동안은 돈을 더 벌기 위해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 결국 지금 내가 돈과 상관 없는, 헛지랄을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도 했었다. 나는 자본의 빌어먹으실 가능성을 믿는다. 예술에 대해 말할 때, 과거에는 시대가 지난 후에야 인정 받는, 사후의 예술가가 많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갈수록 재능 있는 예술가는 당대에 인정받기 쉬워진다. 자본의 세상이 고도화되면서, 민감한 자본의 촉수는 뭔가 ‘될 만한 것’을 놓치지 않으려 필사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본의 힘이다. 그러니까, 열심히만 사고를 치면, 자본의 민감하고 필사적인 더듬이, 그 촉수에 걸릴 것이다. 이미 있는 자본의 가치를 얻어내기 위한 방향 설정보다는, 자본을 꼬드기는 창조적인 작업이, 더 재밌잖나. 4월에는 출장이 여러 갠데, 사실 돈 되는 출장은 그 중에 하나 밖에 아니다. 나머지는 시간을 시간대로 쓰면서 돈은 전혀 안 되는 것인데, 이 나이 무렵이라면, 돈 대신 좋은 경험들을 얻을 수 있는 출장도 기껍다. 언제나 되든 뒤를 보게 될 때, 무엇을 했는가를 후회하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무엇도 열심히 하지 않은 시간들을 다만 피눈물 흘리며 부끄러워 할 것 같다.
필사적으로 돈 벌어서 지탱해야 할 집안 사정이 아니고, 별다른 생각 없이 시키는 일을 하며 주는 돈을 받아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도 아니다. 고마운 일이다. 반군과 며칠을 보내며, 가족의 고마움을 다시 생각한다.
함께 여행을 가자던 약속은 오래 되었다. 앞으로는 더더욱 함께 시간을 내기 어려울 것이다. 기다리고 기대하던 여행을 시작하려고 한다. 두어 시간이 지나면 두 반군은 자전거를 버스에 싣고 황산으로 간다. 하루는 산을 타고, 그 다음날부터는 자전거 여행을 시작한다. 며칠을 길 위에서 자전거 타고, 출장 일정이 잡혀 있는 형은 먼저 상하이로 돌아올 것이고, 지도와 나침반을 건네 받은 동생은 며칠을 더 달려서 형이 출장 가고 없는 집으로 귀환할 것이다.
동생에게는 김훈의 자전거여행.을 가져가게 했고, 나는 오랜만에 시집 두 권을 챙겼다. 숙제처럼 떠안은 최승자의 시집과 내 든든한 등받이 허만하의 시집이다. 아주 잘근잘근 씹어먹고 와야겠다.
언제나처럼, 여행의 목적은 무사 생존 귀환이다.
2010.03.21 23:43
오전에, 밀린 원고 중에 겨우 하나를 썼다. 이틀 전에 끝내야 되는 겨우 두 장짜리 원고였다.
오후부터 꼬박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웹진 디자인했다.
막힐 때마다 사방에 전화 돌려가며 묻고 물었다. 서버 관리회사까지 국제전화를 하고 보니 일요일 저녁이다.
그럭저럭 고비는 넘겼다.
열 명의 필진이 준비하고 있다. 디자인도 그럭저럭 폼은 잡아 간다.
종일 앉아 있었더니 엉덩이에 뿔이 막 나려고 한다.
다음 수요일에는 한국에서 동생이 와서 함께 여행을 가야 되고,
4월 초에는 5일 동안 출장을 가야 하고,
다녀오면 곧장 4일 동안 촬영을 해야 하는데,
그 사이에 어떻게든 대학원 원서를 넣어야 한다. 어쩌면 내년에 입학하겠다.
아, 미역국을 끓였다. 태어나서 처음, 마트가 아닌 정육점에서 소고기를 사고
스터디 맴버들이 알려준 대로 만들었는데,
왜 알려준 그 모양이랑 맛이 안 나올까?
자자. 늦었다.
2010.03.20 22:56
5:30pm. hilton
고양이를 만났다. 탐났다. 고양이는,
소파며 침대며 온갖 천을 긁고
불러도 오지 않고
종일 창 밖을 보며 지나온 몇 번의 생을 반추하거나 다음의 생을 무심하게 건너다 볼 것이다. 고양이는,
이번 생이란 그저 먼 곳에 서서 누적된 전생의 시간들을 돌아보는 것 밖에 아니다.
그러니까 고양이로 태어난다는 것은, 매듭을 지은 삶의 그 다음에 오는 영혼의 한 때가 아닐까.
그 완벽하게 독립한 우주를 곁에 두고 싶다는 것은, 소유욕일까?
너르고 푹신한 양탄자를 볕이 좋은 창가에 두어,
누구의 위협도 없는 곳에서, 누구의 시선도 방해하지 않는 곳에서 마음껏 네 우주를 돌아볼 수 있게 하고 싶다.
그리고 그로 인해 나의 우주가 또한 풍성하기를 바란다.
같은 실수를, 뼈저리게 두고두고 미안하고 아쉬웠던 실수를 반복할 수 없다.
이 고양이, 꼭 잡고싶다.
2010.03.18 22:15
7:50pm. 역
일 다녀왔다. 밤은 늦었다. 써야할 글 몇 줄과 보내야 할 연락 몇 건이 있다.
법정 스님께서는, 이생에의 글빚을 남기고 싶지 않으니, 부디 쓴 글들을 거두어 달라고 마지막 글빚을 남기고 가셨다.
글빚을 지는 사람도 있고, 말빚을 지는 사람도 있다. 세상에 빚지고 사는 사람들이고, 진 빚을 다 갚지 못 하고 가는 사람들이고, 빚에 빚을 보태고 가는 사람들이다.
나는, 어떤 빚을 질까.
메모만 얼른 옮겨두고, 자야겠다.
2010.03.16 00:03
자려고 누웠는데 눈이 말똥거려서 노트북을 켜고 스텐드도 켜고 오늘 운 좋게 빌린 시집 두 권도 가져와서 뒤적이다가, 쓴다.
어제는 책을 제법 읽었다. 오전에는 미학스터디에 발제할 책 분량을 보고, 오후에는 만들어진 신.과 마지막 3분.을 마저 다 보았다.
오늘은 아침에 글을 좀 쓰려다가, 부지런을 떨었는데 다 못 쓰고 인터뷰 준비해서 오후 내내 송지윤과 이인경을 인터뷰했다.
교민잡지에서 올해, 책읽기.에 대한 캠패인을 한다고 해서, 마침 잘 되었다 싶어 인터뷰를 기획했다.
날마다 새로운 책이 홍수를 이루고, 책에 대한 정보를 사방에서 얻어볼 수 있는 시대에 어떤 형태의 책 관련 기사가 어울릴까 고민했다.
아침에 보니 법정스님께서 마지막까지 보시던 책들에 대한 기사도 있었다.
그러니까 내 기획은,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독서리스트, 읽은 책 리스트, 읽고싶은 책 리스트, 초심자에게 추천할 책 리스트를 받고 그 리스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송지윤과 이인경은 극작을 공부하는 사람들인데, 이야기는 애초에 작정했던 대로, 따로 방향을 두지 않고 사방으로 펼쳐서 조금 난삽했다.
책에 대해 마음껏 듣고 말해서, 편했다.
웹진의 필진이 되어줄 사람들이 하나 둘 소식을 전해왔다. 오늘 밤이 마감이었는데, 몇 명은 아직 안 보냈다. 송지윤과 이인경도 그렇고, 웹진의 필진이 되어줄 사람들이 보내온 글들은 하나같이 둥글고 소박했다. 어찌나 겸손들 하신지. 부디 그 겸손을 잠시 내려놓고 가진 밑천을 당당하게 드러내 보이라고 부탁했는데, 그들의 겸손은 그들이 가진 것과 분리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대들이 가진 깊고 고요한 생각들이, 세상을 향해 펼친 민감한, 그래서 상처입기도 쉬운 그 더듬이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게 해주고 싶다. 그리고 세상에 그대들을 내어놓고 드높이고 싶다. 그대들이 조금 더 대접받는 사태를 만들고 싶다.
내일 있을 스터디가 연기되어서 늦게까지 깨어있어도 별 일 없다. 못 다 쓴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내일 오전 중에 마무리해야겠다. 발제문은 며칠 더 미뤄도 되겠다. 빌려온 시집 두 권을 차근차근 읽기 위해, 내일은 날씨가 좋으면 자전거를 타고 강으로 가도 좋겠다. 가서 읽어보고, 욕심이 나면 슬그머니 내 책장에 넣어두고 모른 척 할 수도 있다. 그들은 내게 좋은 시집을 추천해 주었는데, 나는 듣는 자리였으니까, 내가 아끼는 시집들을 드러내 놓지는 않았다. 바다 건너 이 땅에도 시집의 무게를 절감하는 사람들이 있었구나. 몰랐다.
2010.03.11 23:11
웹진 페이지 설계
+웹진을 만드는 동기
소박한 뜻에서 출발합니다.
상하이에서 발행되는 대부분의 교민매체의 컨텐츠는 1.중국매체에서 가져온 단순 번역물 2.쇼핑,식당 관련 소개성 기사 3.부동산, 경제 관련 실무 기사 등입니다. 다양한 독자층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벼운 내용으로 채워야 할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양보하고 생각해도, 컨텐츠의 완성도나 다루는 소재 등 아쉬운 부분을 어쩔 수 없습니다. 상하이에 거주하는 교민이 10만에 가깝다고 하는데, 겨우 표면을 더듬어 낸 기사보다, 좀 더 고민하고 공부해서 만들어 낸 문장을 읽고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컨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노는, 마당같은 웹진을 생각했습니다.
상하이, 또는 중국을 무대로 공부하고 고민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학교를 무대로 하고 계신 분들은, 아마 이 곳에서 열심히 자신의 속을 채워나가고 있을 겁니다. 많든 적든, 채운 것들을 정리해서 엮어내고 결과물로 생산하는 과정이 있다면 공부가 좀 더 재밌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혼자 있으면 좀처럼 시작하기 어려운 것들도, 옆에서 괜히 바람 넣어주고 옆구리 한 번 찔러주면 등 떠밀려서 못 이기듯 하나씩 되어가는 것들이 있지요. 웹진의 자극으로, 그런 작은 결과물들이 탄생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양한 커뮤니티가 있습니다. 동종 업계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나누기도 하고, 공통의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이기도 하지요. 웹진은 초기 시기에는 그 색깔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인문학과 예술을 중심 주제로 다루려고 합니다. 상하이, 또는 중국을 무대로 하는 분들 중에서 인문학, 예술을 전공하거나 좋아하는 분들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작업 주제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유하거나, 다른 루트를 소개받거나, 연관 아이디어를 나눌 수도 있겠지요. 꼭 그게 아니어도, 창의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다양한 프로젝트에 힘 있게 대응할 수 있을 겁니다. 생각하자면, 다양한 가능성들이 파생될 겁니다.
+웹진 운영 방안
웹진은 그 어떤 영리적 의도도 없습니다. 이후에 불특정 프로젝트 등을 통해 돈.이 관련된다면, 필진들 사이에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정할 겁니다. 믿으셔도 됩니다.
fshanghai 사이트가 있습니다. 현재는 사진동호회 성격으로 운영되는 곳인데, 이 곳의 webzine 페이지를 활용하려고 합니다. 페이지는 새로 설계해서, 웹진에 필요한 기능들을 구현할 겁니다. 이후에 필요하다면 따로 사이트를 분리하는 것도 가능하겠지요.
한 달 2회 발행을 기준으로 합니다.
현재 생각하는 기본적 형태는, 사이트 게시판 형태입니다. 페이지 메인에는 매 호의 전체 내용을 설명하는 안내 페이지가 jpg 파일 형태로 만들어져서 보일 겁니다. 그리고 그 아래는 웹진 게시판, 독자 게시판, 필진 전용 게시판 등이 배치될 겁니다.
웹진은 필진들의 블로그와 연동시킵니다. 필진들이 개별 블로그에 쓰는 새 컨텐츠는 원하는 경우에 한해 곧장 웹진 메인페이지로 연결될 겁니다. 또한 생산한 컨텐츠에 대해서는 다른 필진이나 독자의 피드백 의견을 댓글로 반영하고, 그 중에 다룰 만한 내용은 다음호에 별도의 기사로 구성할 수도 있을 겁니다. 개별 아이디어에 의지해 생산된 문장에 그치지 않고, 아이디어는 제안, 수정 등의 과정을 거쳐 보강되고, 완성된 컨텐츠 역시 다양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성하려고 합니다. 그게, 공들여 문장을 만드는 필진들에 대한 긍정의 반작용이 될 수 있겠지요. 뭐, 기능들이 실제로 구현될지는 닥쳐봐야 알 겁니다. ;;
초기에 한해, 웹진 홍보는 필진들의 개별 인맥을 활용합니다. 웹진이 발행되고 해당 호에 대한 목차이미지가 만들어지면, 필진들은 목차이미지를 첨부한 초대 메일을, 이 웹진에 관심이 있을 만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발송하시면 됩니다. 무작정 살포하는 것보다는 훨씬 단단한 독자층을 구축할 수 있을 겁니다. 예상은 그렇다는 거지요. 다단계. 비슷하지요? 그냥 비슷.만 한 겁니다. 몇 명 소개해도 소개비 같은 걸 기대하시면 안 됩니다.
+필진 시스템
필진은 이 웹진의 핵심입니다. 웹진은 필진의 원고 구성에 대해 따로 방향을 설정하거나 제한하지 않을 겁니다. 각 필진은 원하는 주제를 정하고, 필진들 사이에서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해당 주제에 대한 기사를 한 달에 2건 기준으로 작성하시면 됩니다. 웹진이라는 특성상, 분량 제한은 없습니다. 많아도, 적어도 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참고할 수 있는 시각 이미지를 첨부하셔도 됩니다. 글만 있는 페이지보다는 읽기에 편하려는 의도입니다.
당연히 생산한 컨텐츠에 대한 일체의 저작권과, 웹진 외부로 나가는 사용권 일체는 개별 필자에게 있을 겁니다. 웹진에 쓸 기사가 되는 동시에 각자의 데이터베이스가 되는 원고를 모은다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쓰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옆에서 닦달해주고, 진도 늦으면 옆구리도 찔러주는 시스템. 나쁘지 않겠지요? 독자 반응도 알려드릴 겁니다. 그렇다고 너무 독자 눈치보는 원고를 구성하지는 마시고요.
필진들에게 일방적 원고 생산을 강요하는 시스템이 되지 않도록, 최대한 그럴 듯한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이 되는 방법을 좀 더 고민해 보겠습니다.
2010.03.11 23:07
4pm. 신천지
촬영과 촬영 사이에 커피숍에 있다가 볕이 좋아서 밖에 나와 기다렸다.
사방 천지 봄빛 안 닿는 곳이 없다.
나의 우주.에 대한 서툴고 기특한 생각을 했다. 한 자리에서 맴을 돌면서 노트에 적었다.
저녁 먹고 잠시 쉬었다가 밀린 일들을 한다.
두통이 있다.
2010.03.10 22:43
6pm. 집
감자. 고구마. 호박. 당근. 버섯. 마늘. 피망. 두부.
쌀뜨물 받아서 끓이고 된장 풀어서 끓이고 재료 넣어서 끓이면 된장찌개가 된다.
별 생각없이 대충 집어넣은 것들이, 재료마다의 맛을 국물 속에 풀어놓는 것을 보면 기특하다.
방학 마치고 돌아온 미학스터디 맴버들을 만났다.
송지윤에게 웹진의 전체 방향을 설명하고 편집맴버가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몇 명의 필진을 더 모았다. 웹진 페이지의 전체적인 레이아웃을 정했다.
일 좀 하려니, 밤이다.
2010.03.10 00:26
5pm. 이케야
문화원에서 빌린 책을 반납하고 새 책 두 권을 빌렸다.
동호회 전시회에서 추가 프린트한 사진들을 오늘 마지막으로 전달했다.
읽은 책에 대한 감상문을 적어야 되는데,
이 달부터 새로 쓰기로 한 독서리스트 원고의 컨셉을 잡아야 되는데,
책 원고를 빨리 정리해야 되는데,
웹진 시안을 잡아야 되는데,
포트폴리오 마무리 작업을 마저 해야 되는데,
빌려온 프로젝터를 연결해서 영화 보며 짜파게티 두 개를 끓여먹으니 밤이다.
끝발을 휘날리며 눈가루가 날리고, 바람은 성벽을 넘는 점령군처럼 호되게 창 밖에서 불었다.
2010.03.07 00:08
오전에 물건을 전해주고 오후 내내 카페에서 책 읽었다. 카페에는 컴퓨터가 없고, 카페는 겨울에 춥지 않다. 나른하게 앉아 오래 읽으니 책은 진도가 많이 나갔다.
저녁에 바람소리 누나와 성현 형과 연주회에 갔다. 작년 교향악단 촬영 때 말해두었던 표다.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했다. 작곡가에 대한 선입견이 피아노를 도드라지게 했다.
백건우는 익숙한 길을 걷는 연륜 있는 아저씨처럼 입장했다. 사방을 둘러보며 무대를 단정하게 하고 피아노에 앉았다.
오케스트라는 넋두리하는 주인공을 둘러선 동네 주민들 같았다. 악단은 피아노에게 맞서는 역할도 아닌 듯했고, 완벽한 거리 너머에서 다만 듣는 청중도 아닌 듯했다. 피아노의 신세한탄이 좀 더 수월하도록 가끔은 추임새도 넣고, 피아노의 말을 되새김질하기도 하고, 겪어봐서 안다며 같이 장단도 맞춰주는 동네 주민들의 수근거림 같았다. 감정을 풀어내며 해방시킨 피아노는 2악장에서 좀 더 편안해졌고, 마침내 피아노의 이야기에 감정을 이입한 악단은 3악장 너머부터 앞으로 나서서 피아노보다 더 피아노를 응원하는 듯도 했다. 이야기 듣다가 본인보다 더 흥분하는 사람처럼. 3악장 너머에서, 내 읽기는 방향을 잃었다. 음악에 내러티브를 부여하려는 시도는 거칠고 무모하고 어리다. 괜한 짓이다.
백건우는 안개처럼 와서 형태도 없이 다만 피아노 앞에 흐린 추상으로 잠시 뭉쳤다가 다시 흩어지듯이 갔다. 허리 숙여 인사하고 나갈 때 두 팔을 모으지도 않고 몸에 붙이지도 않고 다만 아래로 늘어뜨렸다.
2010.03.05 23:54
4:30pm 엑스포 오스트레일리아관
한참동안 별다른 이유도 없이 미루어두었던 택배 몇 개를 보냈다.
신장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냈다. 출장 다녀와서 11월이면 보내주겠다던 사진들을 해 넘기고 봄이 가까워서야 보냈다.
짧은 편지를 함께 넣었다.
벌써 보내야할 영수증을 보냈다. 음식 컷 몇 개 찍은 것이 고작이라 큰 금액이 아니라서 그런가. 책상 한켠에 밀어두던 영수증이다.
며칠 전 찍은 사진들을 씨디에 구워서 보냈다. 별로 내키지 않는 촬영이었는데, 마음에 두었던 CDP 살 작정으로 찍었던 사진이다. 마침 어시스턴트 월급 줄 무렵이라, 그것 주고 왕복 교통비에 밥값 하니 빈손이더라.
오후에 공사가 한창인 엑스포 전시구역에 가서 촬영했다.
오스트레일리아관의 영상을 담당하는 인물이었다.
어시가 개인사정으로 못 와서 혼자 갔는데, 비 오는데 무거운 장비를 들고 전시장 꼭대기까지 오르내리려니 괜히 어시가 미워졌다.
한국에서 건영이가 와서, 함께 저녁 먹었다. 아이는 내 손을 피했고, 아내는 여전히 어려보였다.
이서방네 가서 바람소리 누나와 메카닉 형과 이서방네 부부와 차 마시고 잡담하며 놀았다.
돌아오니 견적을 묻는 메일이 한 통, 왜 촬영 아이디어를 빨리 안 보내냐는 독촉이 한 통 와 있다.
2010.03.04 23:12
아이돌 그룹이 대세다. 남자그룹은 별로 관심이 없으니, 여자그룹들을 보자면,
미끈한 아이들이 떼로 나온다. 춤의 특장은 긴 다리선과 골반이다.
늘씬한 다리.들이 떼.로 나와서 골반.을 흔들어대니 눈이 호강한다.
그런데, 대충 비슷하게 생긴 애들이 대충 비슷하게 들리는 노래를 한다. 가사는 말초적이고 곧장 와닿고,
그러니까, 빨리 소비시켜야 하니까. 소화되길 기다릴 틈이 없지.
클래식. 왜 30분씩 비슷한 멜로디를 반복하나?
그들 또한 당대의 대중을 상대한 것은 맞는데. 작곡가의 자의식은 어느 시대에 처음 생겼을까?
문학과 시각예술을 통해서, 미루어 짐작하는 클래식의 깊이.
그 넓고 깊은 정신의 깊이.
앨범마다 다르고 녹음마다 다른.
오디오에 쓴 돈을 생각하면, 마땅히 좀 들어야겠다.
집중해서 듣기. 그 배경을 공부하며.
2010.03.04 22:59
웹진.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지낸 것이 제법 몇 년 되었다. 아이디어만 내고 접은 것도 있고, 제법 시안도 만들어 보고 사람도 모았던 것이 또 두어 번이다.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시도를, 또 한다.
상하이에서 출간되고 있는 한국어 활자매체들이 다루는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아무래도 다양한 독자층을 아우르는 기사를 구성하려다 보니 나오는 기사라는 것이 우선 소비지향적이고 바탕은 흐리고 내용은 깊지 못 하다. 나부터 생각해 보아도, 조금 미안한 말이기는 하지만 교민매체에 보내는 글은 대충 날림으로 쓰는 것들이다. 만족시켜야 할 기대치같은 것이 없으니, 못 쓴다고 해도 어떤 피드백도 없으니 그 때 그 때 떼우는 식으로 쓰고 만다. 그렇게 쓴 문장들은 여간해서는 다시 들춰보지 않는다.
웹진은 상하이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깊이있는, 그리고 오래 고민한 생각들을 싣는다. 10여 명이 넘는 필진은 본인이 쓰려고 하는 주제를 자유롭게 정하고, 정한 주제에 대한 글을 한 달에 두 차례 정도 쓴다. 원고 생산 주기는 개인이 정하고, 웹진은 그 때 그 때 모이는 원고들로 발행한다. 상업적 연계를 생각하지 않고 필진들의 자발적 기고로 운영한다. 개별 필진은 웹진의 내용이 되는 동시에 각자의 데이터베이스가 될 원고를 생산한다. 필진들에게, 웹진은 새로운 주제로 글을 쓸 수 있도록 자극을 주고, 생산한 컨텐츠를 여럿에게 보임으로써 창작에 대한 쾌감을 주고, 또 어떤 이유로든 차곡차곡 상하이와 관련된 본인의 자료를 축적하는 기회를 준다. 현재는 얼마 되지 않는 인맥을 동원해서 한 명 한 명 필진을 발굴해야 한다. 상하이에 대한 인문학적 컨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과, 컨텐츠를 문장으로 가공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찾는다. 원고가 그저 ‘아이디어의 파편적 나열’에 그치지 않도록, 원고 생산은 아이디어 제안 - 필진들 사이의 공유 및 아이디어 수정 - 원고 작성 ? 수정 - 편집 등의 과정을 거친다. 웹진은 아이디어 수준에서 머물던 원고가 단단하고 짜여진 결과물이 될 수 있도록 자극한다. 또한 창조적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고 네트워크를 구축해서, 이후에 발생할 다양한 프로젝트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 언제나 빠지지 않는 유학생에 대한 고민도 웹진을 통해 일부 답을 얻을 수 있다. 웹진을 통해 구축된 인적 자원들은 마땅한 조언자가 없는 유학생들에게 인문학적 지원을 해야 한다.
한국에서 돌아온 성현 형을 낮에 만났다. 많은 힘을 보태줄 형이니까 몰래 기다렸다. 형은 개항 시기의 상하이를 소재로 하는 글을 구상할 수 있겠다고 하셨다. 열흘쯤 전에 곽승민을 만나서 합류하겠다는 답을 들었다. 상하이에 있는 명품 브랜드의 개별 예술 컬렉션에 대한 글을 쓸 수 있겠다고 했다. 유학생 박지원은 학부생이지만 차분하게 긴 문장을 써낼 수 있을 모양이다. 택시 기사분들을 취재해서 그들이 알고있는 상하이의 어느 구석진 이야기를 담아보겠다고 했다. 욕심은 나는데 아직 뜻을 물어보지 못 한 사람도 대여섯 있다. 극작을 공부한 사람이 있고, 전쟁사를 좋아했다는 디자이너도 있다. 가진 책들을 모아서 책방을 만들고 빌려준다는 소문 속의 인물도 있고, 성현 형이 꼬드겨주겠다고 한 사람도 있다. 공부 마치고 한국 돌아가 있는 녀석도 있다. 다들 와서 북적거리면 좋겠다.
시간이 흘러서 자리를 잡으면 찾아와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시작은 소박하고 초라할 것이 뻔하다. 웹진에는 레스토랑 소개도 없을 것이고 놀기 좋은 클럽 이야기도 없을 것이고 광고를 가장한 매장 인터뷰도 없을 것이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공들여 만들어낸 문장은 아마 진득하게 읽어야할 수준일 것이고 결국 제한된 독자층을 겨우 확보할 것이다. 필진들은 개별 인맥을 활용해서 새 호가 출간될 때마다 특정 그룹에게 안내문을 발송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불특정 다수에게 ‘살포’하는 것보다 훨씬 양질의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다. 시작은, 그럴 것이다.
처음 생각한 형태는 수집된 원고를 편집, 배치한 후 PDF페이지로 만드는 것인데, 그러면 웹진을 운영하는 페이지에는 전체 내용을 올리고, 별도로 제작된 안내 페이지 하나만 첨부해서 독자들에게 안내 메일을 보낼 수 있다. 메일을 받은 사람들은 안내 페이지를 통해 업데이트된 웹진의 전체적 내용을 파악하고, 웹진 페이지에 접속해서 필요한 기사를 읽을 수 있다. 성현 형은 약간 다른, ‘팀블로그’ 형태를 제안했는데, 전자가 페이지 디자인에 많은 힘이 필요하다면 후자는 바탕이 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힘을 써야 해서, 어느 것이 더 만들기 쉬운가?는 선택의 기준이 되지 못 하겠고, 결국 독자들의 보다 나은 접근성을 확보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어떤 형태를 선택하든, 웹진의 큰 틀은 블로그 형식을 따를 것인데, 필진들은 가능한 개별 블로그를 운영하고, 블로그에 새로 쓰는 원고는 웹진의 메인페이지와 연결되어 자동으로 리스트에 추가된다.
상하이에 사는 한국인은 10만에 육박한다는 모양이다. 더 된다는 말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 살 것이다. 그 중에 지금의 교민매체가 생산하는 컨텐츠에 만족하지 않는, 아무나 발품 좀 팔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아닌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컨텐츠를 구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웹진을 읽고 또 웹진을 채운다.
우선 필진을 더 섭외하고, 각각이 정한 주제에 대한 첫 번째 준비 원고를 받아서 시안 수준의 웹진을 만들어 보아야 한다. 그런 후에 다들 함께 돌려보며 무엇인가 되어간다는 실감도 하고, 다듬어서 진짜를 만든다.
필진을 섭외하기 위해, 그들에게 대충 설명하기 위해서 웹진에 대한 생각들을 거칠게라도 풀어내야 했다.
2010.02.27 23:00
3:30pm. 뚜오룬루
흐리고 바람이 불고 빗방울이 조금씩 날렸다.
오전에 사진액자 작업을 맡기고 오디오 매장에 갔다.
어떤 음악, 어떤 오디오 장비에서 나오는 현소리는
근육을 그 결대로 찢어낸다. 결마다 풀려난 근육의 가닥들이 사방으로 펼치고 음들이 그 사이 마다에서 팽창한다.
오후에 뚜오룬루에서 사람들과 사진 찍고 놀았다.
2010.02.24 22:44
4pm. 하미루
오전에 흐리고 오후에 맑고 밤에 번개가 치고 비가 왔다.
어제 밤에 늦게 자고 아침에 일찍 깨서 종일 졸렸다.
전시사진을 찾으러 온 바람소리 누나가 충청도쌀, 경상도쌀, 강원도쌀, 전라도쌀 햇반을 사다 주었다.
사람들 불러놓고 블라인트 테스트를 할까 보다.
오후에 이발했다.
2010.02.22 17:12
지구 온난화는 착한 거짓말? | Daum 미디어다음http://media.daum.net/digital/view.html?cateid=100019&newsid=20100220040307380&p=mk
지구온난화는 허구라고 주장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인류의 환경오염이 지구온난화를 유발한다는 이론에 대해 반대하는 다큐멘터리다. 이름은 잊었다. 다수의 과학자들이 나와서 '지구표면온도의 상승'과 '인류의 환경 오염', 특히 이산화탄소 배출은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지구표면온도의 변화는 태양의 흑점 변화와 더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는데, 이는 지구기온 변화의 추이를 살펴보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그들이 제시한 그래프에서 지구의 온도는 때로 상승하거나 때로 하강했는데, 마침 지금이 상승기에 있는 것이고, 환경보호론자들은 이를 과장하여 인류에게 커다란 위협이 닥친 것으로, 그래서 오늘 당장이라도 전지구적인 환경보호와 이산화탄소 감소에 나서야 한다고 지구인을 속인다고 말한다. 지구는 자연적인 기온상승기에 있고, 이 단계가 끝나면 기온은 다시 하강할 것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번 겨울 북반구 곳곳에 겨울추위가 닥쳤다. 일부 언론은, 곧 새로운 소빙하기.가 시작될 수 있다는 예측을 인용해 보도했다. 지구온난화의 이론으로 본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전개를 기사로 다룬 것이다. 그동안 일부에서만 다루어지던 온난화의 허구성에 대한 내용을 언론들이 하나둘씩 풀어놓기 시작하고 있다.
인류의 환경오염이 지구온난화를 유발한다는 주장은 왜 여전히 힘이 셀까? 다큐멘터리는, '녹색산업'(이 정부의 말뿐인 그것과 별개로,)이라고 부르는 일련의 산업형태가 이미 거대해져서 그것을 더 이상 침몰시킬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녹색산업에 연관되어 있고, 그 연관을 통해 돈을 벌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그럴 듯하다. 자본은 모든 것을 삼켰다. 물론 이들의 주장에 대한 비판도 있는데, 지구온난화와 인류의 환경오염이 큰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은 석유재벌들이 그들 산업의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뒷돈을 주어 만들어낸 연구결과라는 주장이다. 이것도 그럴 듯하다. 두 그럴 듯함 사이에서 한쪽에 무조건 손을 들어줄 배짱은 없어서 다만 그런 주장들이 있구나 하며 넘겼는데, 돌아가는 모양새가 갈 수록 온난화의 허구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속였다면, 나쁘다.
환경보호는 필요한 것이고 마땅한 것이다. 두 발로 땅을 딛고 선 '인간'이 홀로 누리는 땅이 아니니까, 동물과 더불어 식물과 더불어 그리고 여러 존재와 더불어 있는 공간이니까, 이 공간을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으로 함부로 쓰면 안 되는 것이고, 이 땅에 잠시 머물고 가면 다음 세대가 또 이 공간을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마땅하다. 발전이라는 면죄부 아래, 너무 함부로 살았다. 그러나 조작된 정보를 앞세워 지구가 당장 쓰러질 지경이며, 지구가 쓰러지면 지구가 불쌍한 것은 우리가 알 바 아니나 당장 당신이 더 살 수 없다고 협박하며 몰아세우는 거짓말은, 기만이다. 당신이 내뿜는 호흡, 당신이 쓰고 버린 온갖 제품들 때문에 이산화탄소가 증가하고 그 무지몽매함이 하필 당신 머리 위도 아닌 남극 하늘을 찔러 두 팔을 다 펼쳐도 품을 수 없이 큰 구멍을 냈다는 말은, 인류에 대한 원죄 선언처럼 들린다.
이야기의 옳고 그름은 더 두고보아야 할 일이고, 이대로 간다면 지구가 끓어올라 종말을 맞지 않더라도 쓰레기에 뒤덮여(월-E. 그러니까, 내 말이.)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지 못 한다. 그러니까, 시장에 갈 때는 장바구니를 들고 가야 한다는.
기후변화 그래프 - 출처: 지구 온난화는 착한 거짓말? | Daum 미디어다음
2010.02.22 16:37
3pm. 방
제대로 봄이다.
밤을 새고 어질한 정신으로 아침 장에 가서 쌀을 주문하고 과일과 고구마를 샀다.
점심 먹고 잤다.
오후에 깨었는데, 빛이 방 안에 들고 사방이 고요하다. 멀리에서 차 지나가는 소리는 아득하게 들린다.
빛만 보아도 봄인 것을 알겠다.
많은 것이 마음 속에서 빛 보겠다고 뜀박질을 한다.
2010.02.22 00:18
12pm. 집
필요하다고 꺼내둔 책들이, 며칠째 그 자리에 있다.
날씨가 풀렸다. 종일 창문을 열어두었다.
2010.02.19 22:04
3pm 광동루.
최저기온이 올랐다. 예보에서 내일부터는 추위가 물러간다고 한다.
오후에 갤러리에 가서 승민.을 만났다. 미학으로 석사를 시작하는 문제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만들려는 웹진의 필진이 되어주기로 했다.
2010.02.18 21:53
2pm. 철로 위 육교
색들이 바람에 올라타고 버티며, 봐라, 나도 이렇게 있다.
아침에 흐렸다. 낮에 맑아졌다. 바람이 불고, 기온이 낮았다.
입학을 위한 수학계획서를 초안만 잡고 다 못 썼다.
잠시 나가서 주문받은 칼럼에 쓸 추가사진들을 찍어왔다.
책 기획서를 손 못 댔다.
2010.02.18 21:46
수학 계획서
.. 대학에서 정치외교와 중국지역학을 공부. 현대중국정치에 대해, 그리고 포스트모던에 대해 배웠다. 그 때 인상적이었던 것. 기준의 부정. 다양성의 인정. 안재흥 교수님. 그 인상 강함.
.. 상하이에서 상업 사진가로, 잡지의 포트레이트를 주로 찍음. 사진에서, 단체로 읽을 수 없는 표정. 피사체와의 거리를 넘는 문제 등. 그리고?
.. 그러면서 미술사와 미학, 현대 예술 전반에 대해 공부하고, 현대 사진에 대해 고민했다. 내가 이해하는 사진사의 전개는~. 나다르 앗제 스타글리츠 현대사진. 그러나 사진을 활용한 현대미술보다는 현대예술로서의 사진에 관심.
.. 관심 분야는, ‘이미지 언어’ 그 간격은 넘기 어려운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러나, 사진 등장 이후 그 논의는 활발해짐. 그 전에는 도상해석학. 이건 완전 논리로 읽는 선형성.
소쉬르 벤야민 데리다 들뢰즈
.. 전후 미학 인식. 예술의 사회 기여에 대해 공감. 그럼, 사진을 베이스로 해서.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으로 사진 이미지의 홍수. 일상으로, ‘대화’의 개념 속으로 들어온 사진. 그 사진은 ‘문자 언어’가 아닌, 그러나 문자 언어가 갖는 일상의 소통성을 갖고, 더 빠르고 직접적이고 소통적인 방식. 이미지를 뿌리는. 이 사태를 미학은 어떻게 읽어낼 수 있나?
.. 궁극적으로, 세상을 읽는 내 시선을 다지기.
.. 그래서, 앞으로의 관심 분야는, 할 수 있다면,
.. 우선 이미지를 문자 언오와 차별적 위치에서 다룬 다양한 저작의 검토, 특히 그 선형성의 반대편에서 이야기하는 것들. 문자 언어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시각 언어의 문법의 가능성을 탐색
.. 미디어 범주가 아닌, 개인들 간의 네트워크에서 사진이 어떻게 ‘언어’로 기능하고 있는지 관련 자료를 탐색, 그리고 그 전망은? 개입 가능성은?
.. 현대 사진 미학에 대한 기본을 잡는 공부. 이 부분은 많이 부족함.
2010.02.18 21:15
홈페이지를 다시 만졌다. 1. 사용중인 제로보드를 xe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하고, 2. 글쓰는 작업을 더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블로그를 연결하고, 3. 그에 따라 index페이지를 수정했다.
1.
막강한 스킨들로 유명한 제로보드는 홈페이지가 대세일 무렵 없어서는 안 되는 게시판 제작 툴이었다. 제로보드가 나오기 전에 일반적인 유저들은 게시판을 만드는 모든 코드를 직접 인코딩해야 했다. 그 형태 또한 조악했다. 제로보드의 탄생은 코드를 모르는 일반인들도 세련된 게시판을 보다 쉽게 만들 수 있도록 지원했다. xe 버전은 제로보드의 최신버전인데, 이미 대세가 블로그로 옮겨간 후라 이전 4 버전만큼 대중적 호응을 얻어내지는 못 하고 있다. 기존 내 홈페이지는 ver.4를 기반으로 만들었는데, 이번에 고치면서 제로보드도 업그레이드했다. 기존 버전과 차별성이 커서 덮어쓰기 방법으로 할 수 없고, 완전히 새로운 프로그램을 ftp에 업로드하는 방식으로 했다. 기존 버전으로도 원하는 기능을 구현하는 데는 크게 무리가 없었고, 달라 보아야 뭐가 많이 다를까 싶었는데, zeroboard xe. 4 이건 정말 물건이다. 기존 4버전은 게시판의 기본 형태는 고정되어 있고, 이름 그대로 보이는 모양만을 수정하는 'skin'이라는 것을 적용해서 다양한 비주얼을 구현했다. 그러던 중에 드림퀘스트.라는 유저가 제작한 스킨이 등장하는데, 게시판의 비주얼만 고치는 것이 아니라 게시판을 구현하는 여러 변수들을 스킨에서 직접 변경할 수 있게 해서, 테그를 전혀 사용하지 못 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게시판 형태, 표시항목 등을 선택할 수 있도록 구현했다. fshanghai와 내 홈페이지의 이전 버전에서도 모두 드림퀘스트의 게시판, 갤러리 스킨을 사용했다. 이후 몇 가지 스킨들이 비슷한 형태로 등장했고, 제로보드는 업그레이드 과정에서 이런 흐름들을 완전하게 통합했다. 세계적인 게시판 툴인 제로보드는 한국의 개인이 처음 개발했고, 이후 개발은 오픈소스 형태로 진행되어서 원하는 누구든 참여해서 아이디어를 보태고 그렇게 더해진 아이디어는 더 유용한 기능들을 포함하는 계속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2.
기존 홈페이지는 aphorism에 있는 토막글과 portfolio에 있는 사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사진의 경우 업데이트가 늦어져서 언제나 있는 사진들만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글쓰기 비중을 좀 더 늘리고 내가 쓴 문장들을 다양한 마당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 블로그를 연결해야할 필요성이 있었다. 제로보드를 xe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한 가장 큰 이유는 xe버전에서 지원하는 textyle 모듈이다. 이 모듈은 제로보드에서 블로그를 구현하는 전용툴인데, 대부분의 블로그가 서비스 제공업체가 마련한 공간과 틀에 기반하는 것과 달리, 텍스타일은 각자의 서버에 직접 설치하여 운영할 수 있다. 단지 소속의 문제가 아니라, 글쓰는 입장에서 볼 때 웹상에서 문장을 만드는 작업에 필요한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기능은 '글감수집기'라는 것인데, 웹서핑 중 마음에 드는 내용이나 이미지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버튼 하나로 스크랩한 다음 곧장 본인이 글 쓰는 과정 안으로 삽입시킬 수 있다. 또한 블로그에서 구현할 수 있는 RSS 기능은 원하는 대상 블로그의 새글을 사이트 방문 없이 자동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주고, 내가 생산하는 정보와 문장을 같은 형태로 전파할 수 있게 한다. 블로그와 트위터가 대세다. 트위터는 단문 위주의 글쓰기 전략을 채택해서 생각의 조각들, 단편적이고 순간적인 문장들을 소통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는 짧고 빠르게, 순간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적절할 수 있어도 긴 호흡의 문장을 생산해야 하는 글쟁이들에게 어울리는 마당은 아닌 듯하다. 어쨌든, 블로그를 연다.
3.
기존 index 페이지는 두 개의 플래시 파일로 움직인다. 로고를 보여주는 메인프레임, 메뉴프레임을 모두 플래시로 제작했다. 플래시는 동적인 화면을 구현하는 최고의 툴로 일반인들의 호응을 받아왔지만, 내가 쓰는 아이폰의 경우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아서 휴대폰으로는 내 사이트에 접속할 수 없었다. 앞으로 플래시 사용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추세라고 하니, 이 참에 메인프레임만 남기고 메뉴바는 드림위버의 비해이비어.기능을 써서 최대한 간단하게 만들었다. 사실, 내 경우에 드림위버나 플래시 등은 홈페이지 업그레이드 할 때나 겨우 한 번씩 쓰는데, 잘 해야 1년에 한 번이고 그러면 할 때마다 프로그램은 처음 보는 것 같아서 세세한 효과를 구현하려면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는 만큼의 시간이 걸린다. 보기에 예쁜 슬라이드 메뉴를 플래시로 구현하는 작업을 다시 할 마음이 도저히 안 들었다. 비해이비어. 역시 인터넷을 검색해서 대충 사용법을 보고 따라했는데, 반 밖에 안 됐다. 포트폴리오 서브 메뉴는 한 번 나타나면 사라질 줄을 모르더라. 아, 그냥 둘란다.
홈페이지를 수정하면, 꼭 새집에 이사 온 기분이다. 기존에 썼던 글들을 우선 모두 옮겨왔는데, 각 글마다 제목을 달고 내용에 맞는 테그를 만들고 성격에 맞게 카테고리 별로 분류하려면 이게 적지 않은 일감이 된다. 쉬엄쉬엄 하련다. 앞으로 하려는 작업, 쓰려는 글들에 어울리는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었고, 비어있는 카테고리를 채울 아이디어들도 잔뜩 부풀렸다. 우선 기존 글들의 재배치 작업과 포트폴리오의 업데이트가 끝나면 이번 이사는 대충 정리가 된다.
새로운 마당이다.
2010.02.16 23:15
1 내가 무엇을 할까
2 올해 목표들
3 마인드맵
그러니까 내 말이 그렇단느
열라 어렵습니다...
아... 그래도 좋다니까.
2010.02.04 22:41
토니가 오랜만에 연락이 와서 파티가 있으니 다녀가라고 했다. 거의 1년만이다. 가서 보니 토니가 제작년에 론칭한 TV프로그램 관련 행사였다. 우리는 2005년에 만났다. 토니는 상하이에 살고 있는, 아시아 국가의 젊은이들이 말하는 꿈.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었는데, 운 좋게 그 중 한국 젊은이를 대표해서 내가 참여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주일을 꼬박 따라다니며 그들은 내 하루하루를 찍었다. 촬영을 쉬거나 이동 중에, 그리고 인터뷰를 하며 우리는 서로의 꿈에 대해 말하고 들었다. 그 꿈을 하나씩 하나씩 이뤄가는 토니를 보니 괜히 마음이 급해서 파티에 오래 앉아있지 못 했다.
몸은 제자리에 있고, 마음만 방향도 없이 쫓긴다.
2010.02.02 11:27
속이 조금씩 나으니 먹고 싶은 것들이 많아진다. 오랜만에 찌개를 끓여서 먹는데 그것도 두어 끼 먹으니 슬슬 질리고 냉동시켜 둔 피자 조각을 데워 먹어도 먹으면서 다른 음식 생각이 난다.
아, 곱창 먹고싶다. 곱창집에나 갈까.
2010.01.31 23:20
비 온다.
어두운 밖에서 바람에 날린 빗방울이 닫힌 유리창을 친다.
길에 사람들이 우산 쓰고 지나간다. 높은 곳에서 보면 색색 우산만 오고 간다.
비 올 때는, 육첩방은 남의 나라에서 시 쓰던 젊었던 시인 생각이 자꾸 난다.
2010.01.31 15:25
동호회 사진전시가 끝났다. 전시장에 있던 사진들을 모두 걷어내고, 같이 저녁 먹고 노래방에 가고 볼링장에 갔다. 잘 놀았다. 새벽까지 놀고 들어와서 마음껏 늦잠을 잤다. 일어나니 오른팔이 뻐근하다.
여기 저기 서툴고 아쉽고 부족한 전시였다. 어쨌든 버티는 수준에서 수습은 했다. 부족하고 서툴고 아쉬운 것들을 조금씩 채워서, 다음 전시를 준비해야겠다.
장대높이뛰기 선수의 경기를 볼 때, 대부분의 미디어와 관람객들이 주목하는 순간은 선수가 가장 높은 곳에 이르러서 장대의 힘에서 벗어나고, 휘어진 몸이 바를 넘어가는 찰나의 지점이다. 그 때, 사건은 폭발하는 힘으로 드러난다. 절정이다.
다른 순간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선수는 자기 키의 몇 배나 되는 장대를 들고 뛰어온다. 점점 속도를 높인다. 그리고 무한한 지상의 넓이 속에서, 단 하나의 점을 정해서 그 점에 장대를 꽂는다. 하나의 점이 하나의 점을 만나는 그 때에, 선수의 몸 안에 있는 긴장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온 몸의 근육이 그 한 점이 몰린다. 선수가 높이의 절정에 다다른 순간은 보기에 명확하지만 그 다음의 전개는 너무 뻔한 것이다. 이미 완성된 사건이고 폭발한 긴장이다. 모든 것이 드러나버린 사태다. 그에 비해 장대를 꽂아 넣는 그 순간의 선수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는 한 점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완벽하게 응축된 힘이 그 안에서 당장이라도 튀어날 듯 구겨져 있는 사태다.
조금 더 멀리 가 볼 수도 있다. 출발선에 서서 양 손으로 장대를 들고 있는 선수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이제, 신호음이 울리면 선수는 장대를 다시 쥐고 저 땅의 한 점을 향해서 달리고, 높이의 한 절정을 향해서 날아오를 것이다. 가만히 서서 그 어디쯤을 바라보는 그 때, 긴장은 좀 더 낮고 도도하게 흐른다. 그 긴장감은 좀처럼 밖에서 알아채기 힘든 것이지만 분명하게 있는 것이다. 사건.으로 진행되기 이전에, 모든 긴장은 어떤 방향으로든 전개가 가능한 잠재태로 있다.
그러나 이와 분명하게 구분해야 할 장면도 있는데, 경기와 상관 없이, 선수가 마음에 드는 여자와 만나 점심 먹는 상황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때, 경기의 긴장이란 없는 것이다. 잠재태로 존재하는 긴장감은 좀처럼 포착하기 쉽지 않아서, 밥 먹는 사진과 출발선 앞에 선 사진을 구분하는 것은 제법 훈련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가끔은, 훈련 없이 타고난 감각으로 해내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더라만.
사진의 낫고 못함은 따지기 어려운 문제이고, 높이의 한 점에 다다른 사진과 땅의 한 점을 정확하게 찍어낸 사진, 그리고 잠재태로 있는 긴장을 포착한 사진의 우열은 없을 것이다. 다만, 선호의 문제만 있을 것이다. 내가 구하려는 사진은, 바닥을 도도하게 흐르는 긴장이 깃든 사진이다.
에프상하이에서 활동하다가 한국으로 간 혜림이는 좋은 사진을 찍는다. 사진의 옳고 그름을 말하기는 어렵고, 더 좋은 사진과 덜 좋은 사진을 구분 짓는 것도 어려운데, 그래도 깊은 사진과 얕은 사진은 있지 않나 싶다. 여기 있을 때 녀석은 참 못 찍었는데, 한국 가서 잠시 동안에 무슨 일들을 겪은 것인지, 이제는 부러울 만큼 좋은 사진들을 찍는다. 아주 깊은 사진들을 찍는다. 일우에서 진행한 사진교육과정 수료를 기념하는 전시를 준비하는 중인데, 그 사진들이 참 깊다. 이제 그렇게 좋은 사진을 찍으니까, 예전 사진은 참 못 찍었다고 마음껏 말할 수 있다.
겨울잠은 이만하면 되었다 싶다. 잘 쉬었다. 슬슬 좀이 쑤셔서, 이제 뭐 좀 해야겠다 싶다. 어제는 한참 만에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오랜만에 풍경 앞에 들이미는 렌즈가 좀처럼 익숙하지 않았다. 보는 눈은 조금 나아졌는데 좀처럼 찍는 눈이 나아지지 않는다. 공부가 게으른 탓이기도 하고, 겨루듯이 찍어내야 하는 사진이 좀처럼 미운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도 좀, 더 해봐야겠다. 이제 개인전 준비를 하고 싶은데, 생각해 둔 컨셉은 두어 개가 있는데 아직 둘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조금 더 시안 작업을 해 보고, 둘 중에 하나를 발전시키거나 안 되면 둘 다 접고 새로운 컨셉을 생각해야 한다.
어깨가 제법 나아간다. 지난 여름의 절정에서 다쳤으니 그럭저럭 반 년 됐다. 아직까지 마음껏 움직이기에는 통증이 있는데, 그래도 80% 정도는 회복한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어깨 핑계로 피해다니던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겠다.
겨울이 가는 소리가 선명하다.
2010.01.28 23:36
머리에 태엽이 모조리 풀려나버린 것일까. 꼭 해야하는 일이 아닌, 차근차근 해야하는 일들이 좀처럼 손에 안 잡힌다. 스케줄 잡혀있는 촬영만 겨우겨우 하고, 날짜 맞춰서 넘겨야할 사진 작업만 겨우겨우 하면서 며칠을 보낸다. 인터넷을 볼 때도 제법 긴 기사는 대충 보게 되고 어디 노닥거리는 잡담에나 눈길이 머문다. 인문학 책은 펼쳤다가 그냥 접는 요즘이고, 페이지 가득 좁게 몰려선 글씨들은 어지럽다.
도대체 무엇을 잘 못 먹은 것일까? 라면이었을까? 그 피자였을까? 순대국밥이었나? 길거리 옥수수? 양고기 잔뜩 먹은 훠궈? 그 전 날 서둘러 먹은 삼겹살?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는 범인들이 여럿 뭉쳐서, 배탈이 났다. 하루 이틀은 배탈이었는데, 단지 배탈에 그치는 것 같지는 않고, 꼭 심하게 상한 음식을 먹은 것처럼 상태가 메롱이다. 어제부터는 일체 다른 음식을 끊고 죽만 끓여서 먹는다. 흰죽만 먹으니까 배가 금방 고파서 과일 아주 조금을 보태 먹는다. 일단 밥을 하고, 밥을 다시 냄비에 담아서 물을 부어 끓인다. 한번 호되게 끓인 다음 불을 약하게 해서 죽이 냄비 바닥에 붙지 않도록 가끔 저어주면서 더 끓인다. 그러면 쌀은 그 경계를 허물면서 풀어지고, 죽이 된다. 맨죽은 밍밍한 맛인데, 가끔 시간을 잘 못 재어서 바닥쪽의 죽이 조금 타면, 고소한 누룽지 죽이 된다. 압력밥솥으로 죽 끓이는 법을 찾아보았는데, 죽 기능이 있는 밥솥을 사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을 못 찾았다. 며칠 더 속을 다독여서 몸이 나으면, 김치찌개를 해먹어야겠다. 도대체 범인은 어떤 놈일까?
긴 문장을 쓰는 버릇을 들여야겠다. 짤막짤막한 몇 줄 메모는 생각을 이어나가고 살붙이는 연습을 할 수 없다. 단편적인 감정의 배설에 그치기 쉽다. 파편처럼 떠오르는 생각들을 잘 펼쳐두고, 그 사이에 있는 연관성을 살펴 배열하고, 부족한 부분은 새로운 생각으로 채워서 단아하고 단단한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서, 가능하면 긴 호흡의 문장을 쓰는 연습을 좀 해야겠다.
2010.01.27 19:26
장진. 참 좋은 감독. 참 좋아하는, 실망시키지 않는 감독.
간첩 리철진.을 처음 보았을 때 그를 알아보지 못 했다. 이것 저것 보면서, 차츰 하나하나씩 보아가면서 장진의 영화에 대한 기대가 생겼다.
영화마다 배역을 바꿔 나오는 같은 배우들은 이제 익숙한 동네사람들 같다. 단단한 연기력으로 만들어내는 캐릭터들은 살갑다.
휴가.라고 생각한다. 이것 저것 영화도 보고 책도 안 읽고 늦잠을 자고 빈둥거려 본다. 길고 길 설 연휴 기간 동안에는 어디 산에나 다녀올까 상하이 시내에서 빡빡한 출사를 다녀볼까 집에서 영화나 잔뜩 볼까 자전거를 탈까 생각도 한다. 당분간은 더, 나는 늘어져 있으려고 한다.
응원들이 고맙다. 그대들의 응원을 배신하지 말아야겠다.
2010.01.26 23:16
겨울 맞은 곰처럼 잔다. 일찍 누워서 늦게까지 잔다. 따뜻한 이불을 열면 바깥은 어느새 밝아있고 그래도 몸은 여전히 노곤해서 좀처럼 이불 밖으로 나오기 어렵다. 몇 달을 이어오던 일의 긴장도 사라졌고, 급한 일거리도 없는 겨울날들을, 나른하게 보낸다. 때 되면 다시 움직일 것을 알아서, 부러 일찍 일어나려고 애쓰지 않는다.
꿈은 언제나 페이드인.으로 시작되는데, 큰스님 한 분이 오신 모양이다. 여러 매체에서 큰스님을 인터뷰하기 위해 모였다. 작은 방이었는데, 몇 명 몰려들어가니 너무 빡빡해졌는지 서둘러 문을 닫았다. 나는 운 좋게 들어가서 인터뷰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었다. 무거운 나무 책상이 있는, 서재 같았다. 큰스님이 책상 의자에 앉으시고, 취재진들은 반대편에 옹기종기 둘러앉았다. 나는 아마 두 번째로 질문했는데, 제법 간절한 질문이었는데 어떤 질문이었는지 잊었다. 그리고 내 다음 차례는 한 여기자였는데, 깨어나서 나중에 생각하니 예전 잡지 촬영 때 몇 번 함께 일한 소피아.였다. 하여튼 소피아는 질문 대신 대뜸 옆에 있는 텔레비전을 틀고 다큐멘터리를 틀었다. 아마 다큐 속에 질문할 내용이 있는 모양이었다.
다큐는 역시 페이드인.으로 계림 정도의 산속 풍경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작은 동산들이 있었고, 그 곳곳에는 좁고 높은 탑들이 빽빽하게 서 있었다. 카메라가 그 탑들 사이로 언덕을 지나갈 때, 개울가에 서 있는 할머니 한 분이 보였다. 카메라는 할머니 얼굴을 클로즈업. 족히 200살은 넘어 보이는, 굵은 주름이 얼굴에 깊다. 할머니는 미간에 난 눈썹들을 손으로 뽑고 계신다.
"아내를 버렸어."
"아내를 버렸어."
아, 할머니가 아니라 할아버지이신 모양이다. 할아버지는 잠시 후 개울을 건너는데, 뒷모습의 할아버지 뒤에 대나무 줄기 두 개가 끌려가고 있다. 자세히 보니 대나무는 할아버지 목에 줄로 매달려 있는데, 지팡이가 없는 할아버지가 혹시 넘어질 것 같으면, 목에 연결되어 가랑이 사이로 흘러나온 대나무 줄기가 버팀이 된다.
개울을 건너던 할아버지는 얕은 물 속에서 작은 돌멩이 하나를 줍는데, 아, 돌멩이가 예사롭지 않다. 돌멩이는 둥근데, 투명해서 그 안이 보이고, 그 안에서는 색색의 원형 띠들이 회전하고 있다. 마치, 우주가 그 안에 있는 듯하다. 처음 할아버지가 들어올린 돌멩이는 보라색 띠들이 돌고 있고, 다음 들어올린 것은 검은색 띠들이 있다.
꼬마 하나가 등장해서, 할아버지는 지구를 지키는 군대였다고 말해준다. 마을은 신비롭고 할아버지는 자꾸만 돌멩이를 들었다가 놓는다. 이 마을에서는 온갖 것들이 상서롭다. 풍뎅이는 만개한 꽃송이 위에 앉는데, 꽃송이 위에 붙어있는, 돌멩이를 닮은 꽃잎은 낙하산처럼 생겨서, 풍뎅이가 그 아래를 잡으니 바람을 타고 나른다.
다큐를 열심히 보고 있는데, 뒤에서 꼬마 하나가 갑자기 토한다. 방 구석에는 어느새 작은 하수도가 생겨 있어서, 아이는 그 곳에 쭈그리고 앉아 토하고, 또 다른 사람이 등을 두드려 준다. 무엇이 아이를 토하게 했을까.
그리고, 전화벨이 울리고 나는 잠에서 깼다. 아, 그 마을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프로이드가 이럴 때는 좀 필요하다.
말싸움은, 중학교 때까지 했다. 잘 안 졌다. 말로 상대를 주눅들게도 했고, 권위를 갖기도 했다. 그리고, 참 많이 다치게도 했다. 고등학교 때는 대충 한 번 정도만 호되게 목소리를 높인 기억이 나고, 그 뒤로는 말싸움같은 거, 안 했다.
생산적인 논쟁은 거절할 이유가 없다. 서로의 생각의 경계를 키우고 다독이는 말들이 오고가는 것이야 좋다. 가끔, 진흙탕에 들어가 말로 상대를 상처내고 나를 더럽힐 때가 있다. 좀처럼 없어도, 가끔 있다. 아니다 아니다 싶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해야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할 때도 있고, 아니다 아니다 싶으면서도 어느 순간 제 분에 못 이겨 돌아보면 진흙탕에 온몸을 담그고 있는 때도 있다. 그렇게 나도 상대도 만신창이가 되어 마주보면, 더 보탤 말이 없다.
2010.01.19 22:20
꿈을 꾸었다. 앞에 놓여 있는 길이 나는 많이 무서운 모양이다. 꿈 속의 이야기는 잊었는데, 감상만 남았다.
주어를 생략하고 몇 개의 단편적인 단어들만 나열해서 감정의 조각들만 파편처럼 박아두는 문장은 비겁하고 구차하다.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으면서 알아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문장들은 유치하다. 더 튼튼하고 손에 잡히는 문장을 써야 한다.
동호회 사진전은 보름 동안 한다. 대부분 직장인들이라 전시장을 지키기 어려워서, 결국 내가 있는다. 지난 몇 달 동안 나를 몰아세우던 급한 일들도 대충 정리가 되고 마음은 한가로워서, 모처럼 온 시간을 느긋하게 누리기로 한다. 스터디도 방학에 돌입했으니 한숨 쉬어가며 더듬거리듯 읽어야할 책에서도 해방이다. 그 동안 밀린 책들을 위주로 보름 동안 가만 전시장 구석에 앉아 책이나 읽는 것이 나의 계획이다.
2010.01.15 22:18
방구석이 개판이다. 바닥에는 온갖 쓰레기들이 널렸고 책상 위에도 망치부터 드라이버까지 널렸다. 작은 테이블 위에는 프린트 용지 박스가 쌓여 있고 소파는 가방과 옷들이 점령했다. 에프상하이 전시 준비를 핑계로 집을 작업실로 썼다. 프린트와 제단과 목공 작업까지 하고 나니 꼴이 개판이다.
일 월이 반쯤 지났는데, 내 새해는 아직 오지 않았거나 벌써 멀리 가버린 것일까.
사방을 할퀸 한 해였다. 서툴고 부끄러운 한 때였다. 내가 상처낸 주변이 많다.
다시 학생이 된다고 하니까, 여러 사람이 축하하고 응원한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그랬어야 한다는 듯이 기다린 듯 축하해 주었다. 그들은 내게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성현 형에게 전해 들은 괜찮은 교수님은, 알고 보니 다른 길을 통해 꽤 가깝게 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럭저럭, 인연은 닿을 모양이고 그래서 겸사겸사 가 보게 될 모양이다.
지난 해 5월에 모여서 첫 준비모임을 가진, 에프상하이 전시가 내일 시작한다. 아마추어들이 모여서 하는 전시고, 처음 하는 전시니까 서툰 것이 많다. 부족한 전시다. 프로들에게, 와서 보라고 초대하지 않았다. 내세울 전시는 아니어도, 부끄럽지 않은 전시는 될 것이다. 돌아보면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제법 시간을 들였고 보이지 않는 소소한 것들로 몸은 바빴지 않나.
문학스터디와 미학스터디는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방학이 되었다. 어렵고 더딘 책들에서 잠시 놓여날 수 있게 되었으니, 가벼운 책들을 좀 더 속도를 높여서 읽어 두어야겠다. 학부 유학생들과 함께 문장 쓰는 공부도 해보면 좋겠는데, 괜히 시작했다가 나중에 일에 떠밀리면 안 될 것 같아서 엄두가 안 난다. 글 쓰는 사람이 주변에 몇 명 있으니까 그들이 뭉치면 제법 힘을 쓸 수 있겠는데, 다들 바쁜 사람들이니 돈도 안 되고 배울 것도 없는 모임에 힘쓰라고 차마 못 하겠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 작은 모임도 있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함부로 시작 못 하겠다. 음악에는 내가 아는 게 없으니 붙잡고 이끌어줄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마땅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다. 아마 여행잡지에 기사 쓰는 일을 하게 될 듯하고, 가을 학기에 학생이 되려면 준비할 것도 많다. 책도 이번에는 정말 마무리해야 하고, 개인 작업도 얼른 해야 무게 있는 전시도 할 수 있다.
방구석이 개판이다.
2010.01.01 22:38
대학원으로 가서, 다시 학생이 되겠다는 말을 어머니는 무척 반가워하셨다. 그렇게 간다고 할 거, 가라고 할 때 졸업하고 바로 갔으면 좋았지 않았냐고 하셨다. 언제나 내 편에서 응원을 보내주시는 어머니시지만, 모처럼 기꺼이 반기는 어머니 목소리를 들으니 그 동안 어머니 답답하셨을 마음이 닿아서 조금 미안했다. 그래도, 허송하며 지내오지 않았다고, 되어가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니도 잘 믿어주시고, 또 응원해 주셨다.
전업 학생이지는 못 할 것이다. 해오던 일이 있으니 상업 사진도 계속 하게 될 것이고, 생각해둔 개인 작업들도 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생활의 중심을 학생의 신분으로 돌리게 되면, 다른 일들 때문에 공부를 덜 하게 되는 사태는 막아야겠다. 발제문 대충 써서 아쉬운 마음이 남는, 그러면서 일도 어설프게 하는 상황은 반갑지 않을 것이다. 차근차근 필요한 자격을 준비하고, 제법 기본적인 학비며 생활비라도 벌어두어야 하고, 또 교수님도 알아보고 내가 공부할 방향도 잡아 보아야겠다. 순조롭게 된다면, 올 가을부터는 다시 학생이 된다.
새해의 첫 날에 무엇을 할까 하다가, 오전에 급한 일들 대충 해두고 집을 나섰다. 마침 자잘한 볼 일 몇 개를 보아야 해서, 차분하고 느리게 두어 시간 걸어서 볼일들을 처리했다. 모간산루에 가서 동호회 사진전에 쓸 엽서랑 사진 판넬 시안을 좀 구하고, 세탁소에 들러 한국에 입고 갈 바지 세탁을 부탁하고, 은행에서 송금을 하고, 백화점에 가서 조카들에게 줄 늦은 돌선물을 찾아보았다. 새로 생긴 백화점에는 유아용품 코너가 없어서 아무 것도 사지 못 하고 겨우 점심만 먹고 돌아왔다.
어떤 때는, 내가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부족한 나를 한 번에 끌어 올릴, 계획 없는 내 일상에 틀을 잡고 방만한 나를 몰아서 내가 가 닿으려는 곳으로 밀어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그러지 말아야겠다. 우선 내 힘으로 나를 세우고, 내 힘이 마땅히 쓰일 곳에 있는 사람을 찾아야겠다. 우선, 내가 스스로 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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