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짧은 글 모음
2015.08.11 22:28
소나기가 몇 번, 내리다가 끊어지고 또 내렸다. 비가 충분하지 않아서 내리다가 그친 비는 창문에 온통 얼룩만 남겼다. 흙먼지를 뿌린 것처럼 뿌옇다. 낮에 잠시 뜨거운 햇빛이 났다가 다시 흐렸다. 늦은 오후에 하늘은 여전히 회색 구름이 가득했는데 서쪽 하늘에 구멍이 나서 낮은 저녁햇빛이 먼 곳에서 왔다.
태풍이 지난 지 며칠 되었는데, 바람이 여전히 세차게 분다. 태어나서 한 번도 하늘을 본 적 없을 것 같은 옅은 초록 잎의 뒷면이 일제히 드러났다.
페인트 새로 칠한 바닥에 흙발자국을 찍는 것 같아서 블로그에 첫 글 쓰기가 어려웠다. 10년도 훨씬 넘은 독립 사이트 방식을 이제 블로그로 옮긴다. fshanghai와 spacewhu는 계속 두고, 개인 사이트만 옮긴다. 상하이 생활을 차곡차곡 적으려고 한다.
2015.08.02 23:24
원고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꽃파는 청년을 만났다. 장대 양쪽에 거는 꽃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고 벽에 기대 있었다. 우리는 함께 10호선 지하철을 탔다. 꽃 두 바구니가 들어가서 지하철 한 칸이 온통 환해졌다. 저 친구를 인터뷰 할까 말까 한참 고민했다. 하루 종일 더위에 시달리며 사진찍고 돌아가는 길이어서 나는 그냥 관두었다.
지하철 안에서 몇몇이 말을 걸었는데 하나도 팔리지는 않았다. 청년은 두어 정거장 가서 내렸다. 당신 덕분에 지하철이 환해졌다는 인사를 못 했다.
2015.06.22 09:00
만년필로 글씨 쓸 때, 종이의 질감에 민감해진다. 먹을 먹는 종이와 튕겨내는 종이가 다르다. 잉크의 굵기가 만드는 획의 질감도 있다. 펜이 흐르는 속도가 획에 그대로 드러난다. 글자마다에서, 생각이 툭 끊겼던 그 대목을, 만년필 획은 기록하고 있는 거다.
2015.06.18 16:38
쓰고 남은 휴지 몇 장, 공중 화장실에 두고 왔다.
엉덩이에 대보지도 않은 새것,
한 우주를 구원했다.
오늘의 착한 일.
끝.
2015.05.17 01:05
인터뷰 촬영이 있었다. 이제 잡지 촬영 따위! 안 가려다가, 다녀오세요. 아내 한 마디에 네. 순종하고 다녀오기로 했다. 모델은 중국 현대예술의 4대천황 중 한 명이라고 불리는 화가였다. 화가를 촬영하는 장소는 대부분 넓디넓은 공간에 드문드문 작품이 있는 전시장이거나, 총천연색 물감자국이 난무하는 바닥에 어울리지 않게 순백의 캔버스만 가득한 작가의 작업실이다.
오케이. 단색의 배경을 넓게 쓰고 화가를 작게 잡자.
조명은 두 가지 느낌으로 쓰자. 한 가지는 전체 공간을 밝게 쳐서 화면 전체가 화사하게, 또 다른 한 가지는 공간을 어둡게 가고 화가의 얼굴에 떨어지는 빛도 강하게. 그림 나오네. 두 장 중에 어느 장을 줘도 아트디렉터에게 항의 전화를 받을 일은 없겠지.
대충 머리 속으로 화면을 짜 두고 현장으로 갔다. 이런, 브랜드 론칭 행사장이네? 1층부터 레드카펫이 깔려있고 온갖 사람들이 웅성거리네? 단독 촬영인 줄 알았는데 미디어 연합 인터뷰에, 작가 작품이라고는 하나도 안 보이네? 건물 앞에는 벌써부터 통제선을 치고 필요한 사람, 허가받은 사람, 초대받은 사람만을 골라서 넣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아이 둘을 데리고 온 엄마는 정중한 사양의 말을 듣고 돌아섰다.
호기롭게 그려 왔던 이미지는 호기로운 속도로 무너졌다. 이제 수습을 걱정해야 한다.
30분을 확보해 주기로 했던 촬영 시간은 미디어 인터뷰가 길어져서 겨우 10분 남짓 쓸 수 있었다. 자연광이 들어오는 위치에 메인 조명을 두고, 반대편에 보조 조명을 올렸다. 그렇게 첫 번째 사진을 마치고, 얼른 건너편으로 옮겨서 강한 조명 느낌을 살려 두 번째 사진을 찍었다. 다행스럽게도, 에디터는 두 번째 사진에 환호했다. 우리는 작당했다.
두 장면을 모두 넘기면 분명히 아트디렉터는 첫 번째 재미 없을 컷을 고를 것 같으니까, 아예 두 번째 사진만 넘기자.
나는 10년 넘게 같이 일해 온 아트디렉터의 안목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만, 사진 취향이 다른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라, 첫 번째 장면을 묻어버리기로 합의했다. 기꺼이.
내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고, 이렇게 한껏 치장하고 있으니 아마 명품 브랜드가 맞을 것이다. 명품의 오프닝은 뭐랄까, 우스웠다. 3층짜리 매장 안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온통 검은색 옷을 입었다. 환한 매장 안에서 검은 파편들이 떠다니는 것 같았다. 입으라니까 입기는 했으나 도대체 왜 입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옷은 하나같이 어색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듯했다. 그 얼굴에서 전해오는 말이라는 건,
나, 여기에 잘 어울리고 있어.
나, 좀 되는 것 같아.
따위의 것들.
젊고 예쁜 여자들의 그 드러난 종아리며 늘씬한 허리선을 보면 몸매에 꼭 맞춘 옷이니 본인 것이 맞기는 할 텐데, 빌려입은 옷은 아니고 사람이 옷이 사람을 빌려 넣은 것처럼 어딘가 섞이지 않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때, 오호라.
나는 보고 말았다. 특히나 예뻤던 검은 옷이, 정돈한 표정과 구겨서 감춘 뱃살로 그럴 듯한 사람들을 상대하던 그 검은 옷이 1층에 있었다. 전자파리채를 휘두르면서.
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잘 못 본 게 아니었구나. 몇 시간 동안 거울 앞에서 치장하고, 비싼 사람들이 올 때 테이프 붙인 바닥면이 보일까 안 보일까를 고민하는 검은 옷. 없는 무게를 그렇게라도 만들어 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검은 옷. 나도 입었다고 어깨를 치켜세우고 말 몇 마디를 주고 받으며 서로의 검은색을 인정해 주는 검은 옷.
나는 안 보고 싶다. 안 엮이고 싶다.
나는 그 반대편에 서서 고래같은 사람들을 변호하는 글을 쓰려고 한다. 그들을 알리고 세우려고 한다.
행사장 한 켠에는 은발을 늘어뜨린 나이 든 남자 하나가 큰 덩치를 의자 위에 구겨놓듯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남자는 독일에서 왔고, 여기 전시된 도자기에 들어가는 세밀화를 그리는 일을 한다. 그림은 너무 작아서 돋보기가 장착된 간이 헬멧을 쓰고 그린다. 행사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상관하지 않고 작품처럼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사실, 작품처럼 앉은 남자는 매장이 준비한 상품이겠지. 이런 디테일은 이런 장인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 넣는다는. 그러니까 니네는 얼른 지갑을 열어 카드를 긁으라는.
이 봐요, 제가요. 실은 에디터인데요. 당신 인터뷰 좀 할 수 있을까요? 언제 한가해요?
남자는 뭐라고 답 하려는데, 제법 높아 보이는 검은 옷이 그의 답을 막았다.
남자는 영어가 서투니까, 아시아 담당 직원과 이야기하라고 나를 이끌었다. 이 뭐, 나보다 영어 잘 하더만. 당신은 들켰다. 이 남자는 회사의 소중한 자산이니까, 행여나 다른 루트를 통해 다른 일과 연결되지 않도록 하려는 뜻은 검은 옷만큼 선명하다. 존경하지 않더라도, 인정은 하고 있는 거지.
나는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당신의 섬세한 손길이 거쳐오고 닦아온 길에 대해 묻고 듣고 싶었다. 오프닝 파티에 장식품처럼 불려나온 당신을, 당신이 원하든 말든 변호하고 자랑하고 싶었거든.
인터뷰가 끝나가고 있었다. 촬영 중 흘려들은 그들의 질문은 ‘사회’, ‘시대’, ‘정부’ 따위의 단어들이 휘날리고 있었다. 검은 옷들 사이를 난무하는 단어들이란. 예술가에게 시대를 묻는다는 것이 우습다. 그들은 답을 모른다. 몰라야 맞다. 논리 밖에서 생각의 경계를 깨는 것이, 신나게 노는 것이 그들이 세상에 할 수 있는 기여의 전부다. 예술가를 논리 안에 묶지 마라. 제발.
검은 옷에게 명함 한 장을 받아왔다. 전자파리채를 휘두르던 그 옷이다. 예쁜 얼굴로 만면에 미소를 짓던 그 옷이다. 답장에 대한 기대 없이, 나는 언제든 은발의 남자가 다시 상하이에 오면 알려 달라는, 인터뷰를 하겠다는 제안서를 보내려고 한다. 무료변론을 지원하는 글쟁이의 각오로.
검은 옷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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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연습을 해야 하니까, 뭐가 되든 우선 꾸준히 써보려고 한다. 하루 중에 있었던 일을 골라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여 보는데, 쉽지 않다. 억지로 쓴 티가 여기저기 보인다. 이렇게라도, 붙들고 있다 보면 다시 되겠지. 손가락에 근육이 붙고 어느날 오버행 벽을 타는 암벽의 날들 처럼.
2015.05.05 15:08
싫다. 기다리지 마라.
무대는 네 거절의 말을 듣던 그날의 나처럼 어둡고 멀었다. 더 물러설 곳이 있다면 얼마든지 그랬겠지만 등을 맞댄 곳은 길이 끊어진 벽이었다. 작전을 잘 못 짰다. 배수진을 치지 말았어야 했다. 병서에 이르기를, 죽음을 각오할 때에 이르러야 비로소 쓸 수 있는 진이라고 했다. 꽃신 신은 네 발 앞에 툭, 내던진 고백. 네 거절만큼 내 고백도 비린내 나는 풋내 밖에 담은 것이 없었다. 하긴, 비장한 풋내가 내가 가진 전부였다. 살아갈 시간은 막막했고 뒤돌아 본 내 기록은 가늘어서 끊어질 듯한 모래톱이었다. 각오할 죽음 따위가 있기나 했겠는가? 내 몸 하나 버티고 서기도 버거운, 나는 겨우 스물일곱이었다.
성처럼 버티고 선 유리돔 안이니까, 사방의 빛을 끌어모은 찬란한 무대를 상상했었다. 관객석과 떨어져서 철망으로 가로막힌 무대는 적막하다. 무대를 가리고 있는 암막 커튼이 움찔거린다. 저 뒤에서 잠시 뒤의 공연을 준비하며 사방을 뛰어다니고 있을 써커스 단원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무거운 어둠은 관객의 목소리마저 가라앉게 해서, 서커스의 세상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바깥 일을 잠시 잊으라고 조용하지만 무거운 명령을 내린다. 객석 조명이 꺼지고, 관객들의 웅성거림도 꺼졌다. 고요. 무대 가운데 조명이 켜지고, 하늘에서 바닥을 향해 붉은 줄 하나가 추락한다. 이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무대를 주시하던 사람들이 지루해질 무렵, 웅성거림. 바로 그때를 기다려서 보이지 않는 꼭대기에서 여자가 줄을 타고 내려온다. 사타구니와 가슴을 겨우 가린 옷이 반짝거린다. 저 거다. 거대한 유리돔으로 들어온 빛을 차곡차곡 모아서 저 사타구니와 가슴 위에서 풀어내는 것이구나. 평면의 유리를 이어서 만든 원형의 돔 안에서 네 말은 네 마음의 어디쯤을 비추고 겹치고 반사했을까. 사방을 끌어와서 어디든 비출 것 같던 빛은, 어쩌면 거울 한 장의 빛만을 반복해서 굴절시켜 온 것은 아니었을까. 그럼, 그 한 장은 너이기나 했을까.
여자는 안전장치 하나 없어도 태연하다. 우아한 몸짓으로 줄을 타기도 하고 매달리기도 하고 어르기도 하고 껴안기도 하면서 내려온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진다.
속이지 마라.
붉은 줄에 매달려 유혹하던 탐스러운 허벅지야.
유리돔 같은 말들아.
위장에 걸린 풀을 되씹는 소처럼 네 거절의 장면을 몇 번이고 다시 불러세운다.
너무 많은 것을 기록하는 사진처럼 숨소리 실린 목소리의 균열도 생생히 기억한다.
서커스 여자의 몸짓은 점점 대담해진다. 관객이 위태로움에 익숙해 질때쯤 한 손을 놓기도 하고, 다시 익숙해질 만하면 일부러 조금 추락도 한다. 여자의 동작을 따라서 관객의 함성 소리가 파도처럼 출렁인다. 연기는 완벽에 가깝다. 위험한 동작 속에서도 여자의 미소는 얼굴 전체를 장악하고, 입술 끝 작은 떨림도 없다.
너라도 붙잡으면 세상을 버틸 수 있다고 믿었던가. 겨우 내린 붉은 줄을 휘잡고 흔들고 껴안은 게 너였던가 아니었던가. 슬픈 표정과 단호한 말로 추락을 예고한 것도 너였던가 나였던가. 세상의 빛을 모두 끌어모은 듯 사타구니와 가슴으로 빛났던 건 아마도 너였겠지. 더 이상 관객이 웃지 않는 무대의 광대처럼, 나는 또 막다른 골목에 등을 대고 서 있다. 악단의 북소리가 커진다. 여자가 마지막 동작을 준비하고 있다.
죽음을 각오한 몸뚱이를 던져 보지도 못 하고, 등 뒤를 둘러친 강에 빠져 죽지도 않고 나는 지금까지 안녕하다. 여자는 무사히 공연을 마치고 마침내 땅으로 내려와서 관객들에게 인사한다. 사타구니와 가슴은 빛나지 않고 여자는 환하게 웃으며 몇 번이고 고개 숙인다. 무대, 암전.
그래도 기다리마. 사실은 보았다. 아닌 척 했지만, 동작마다에서 붉은 줄을 간절하게 붙잡고 있던 네 손, 그 손 위에 돋아나던 굵은 혈관의 흔적. 너무 먼 무대에서 온갖 빛 아래 서 있는 너는 다른 세상의 사람 같지만, 부여잡은 손에 튀어오르는 그 핏줄 말이야. 무사하고 싶다는, 이 잠시의 공연이 끝나면 박수갈채를 받고 또 얼마 간의 돈도 받아서 그만큼의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그러고 싶다는 바램과 그러고야 말겠다는 끈적거리는 의지의 독백같은 거. 내 손등에도 그런 혈관이 두엇 있다. 그러니까, 나도 기다리기로 한다. 스물일곱이 지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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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 스물 일곱이 어땠는지 기억 안 난다. 애써 뒤적거려 보면 몇몇 사건을 발견할 수 있겠다만, 안 그럴 란다. 일 때문에 부탁한 원고에 대해서 어떻게든 답을 해얄 것 같아서, 반대편의 입장을 상상하며 적었다. 주제와 톤을 원 글에 묶어두고 쓰려니 요즘 잘 쓰지 않은 느낌의 문장이 나왔다.
2015.04.26 22:47
15년 2월 12일.
검은 현무암 바위에 파도가 부딪쳐서 깨진다. 바람이 물의 몸을 입고 와서 온몸을 던진다. 마루는 거대한 현무암 바위 지대를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걸었다. 바위가 넓게 벌어진 곳은 아빠 손을 잡고, 그나마 나은 곳은 일부러 혼자 걸어 본다.
와, 마루가 여기까지 왔다.
아직 '나'라는 단어를 못 쓰는 마루는,
마루가 여기까지 왔다.
스스로에게 대견한 칭찬을 했다.
여기까지 왔다, 여기까지 왔다. 말이 예뻐서 마루를 따라 나도 말한다. 여기까지 왔다.
15년 2월 22일.
서점에서.
김연수는 참 맛있는 글을 쓴다. 그의 소설을 한 권도 제대로 읽은 적 없지만 언제나 쉭쉭 바람처럼 읽힌다.
너무 많은 책이다. 그 중에서 선택받아야 하는 거니까, 저자의 얼굴 사진으로 채운 표지들이 여럿이다. 표정은 대부분,
'니네 그거 모르지? 난 알아. 알아서 여기 이렇게 사진도 박았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공공화장실 변기 칸에 앉아 옆칸의 무사안녕을 빈다. 끄응. 신음소리의 끝이 작은 해방과 함께 하기를. 지금만큼 타인의 설사에 공감하는 때도 없으니까.
2015.04.21 19:03
멀리로 한라산이 흐리게 보인다. 구름의 덩어리는 산을 통째 밀어낼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산의 한쪽을 통째 밀며 올라온다. 빛은 그 구름 사이를 뚫어서 땅에는 그림자가 구름처럼 흐른다.
오름에 앉아있다. 소거죽에 붙어 살 것 같은 날벌레들이 많이 난다. 개미는 풀숲에 진을 친 것처럼 올라 붙는다. 멀리 보이는 도로에서는 개미만한 차들이 전쟁 난 개미처럼 꼬리를 물고 달린다.
완만한 곡선으로 유순해보였던 오름은 막상 붙어들자 호된 경사를 내세웠다. 겨우 10분 남짓 오르는데 몸은 땀에 젖었다. 숨을 몰아쉬었다. 사방 가리는 것 없는 민둥머리 오름에 올라서 보면, 땅에서는 보이지 않던 리조트와 고급 빌라단지도 훤히 내려볼 수 있다. 넓고 푸른 초원 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작고 낡은 창고들은 그들이 거느린 초원의 넓이만큼 높고 귀해보인다. 다닥다닥 붙어앉은 저택들도 그들 앞에서는 웅성대는 한낱 무리에 불과하다.
부동산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는다. 눈은 여전히 완만한 곡선을 여유롭게 더듬는데,
계약서는요,
그러니까 제 말은요,
매도인 쪽에서는 그렇게 안 한다는데요,
따위의 말들.
오름에 앉아 통화하는 부동산은 어쩐지 땅과 하늘 사이에 있다는 거기 어디쯤이라도 거래해야 할 것 같지만,
네, 복사해서 보낼게요.
그럼 목요일 아침으로 일정 잡아주세요.
다른 착오 없어야 해요.
맞다. 부동산은 구름을 팔지 않지. 벌거벗은 몸을 내보이라고 말하지.
2015.04.21 18:04
发现了一个老的护照。黑白的帅哥在里面。还有好多的章。
오래된 여권 하나를 발견했다. 홍콩에서 온 것이라고 했다.
여권에는 당당하고 멋스러운 남자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찍힌 도장들.
有人跟我说,
“一块吧,一块。你就买吧!”
很想买。只付了一块钱可以买得到一个丰富的人生,那就早晨的散步非常成功的!
但是还是不买。不用花自己的钱再买多一个人生,一个人生已经够复杂了。
구경하던 사람은 내게 1원만 내고 얼른 사가라며 부추겼다. 탐났다. 단돈 1원에 흥미로운 인생 하나를 살 수 있다면 거저다. 저 풍성했을 인생을 건질 수만 있다면 새벽 산책은 남는 장사가 될 것이다. 주머니를 뒤졌는데 아쉽게도 동전이 없었다. 주인을 쳐다보며 정말 1원이면 되냐고 물었지만 주인은 대답이 없었다. 나도 괜히 김이 빠져서 아쉽지만 내려놓았다. 어쩌면 안 사기를 잘 했다. 인생 하나를 애써 받아 안을 필요는 없잖나. 하나를 살아내는 것만도 버거운 세상에서.
2014. 5. 27
2015.04.21 17:12
한나절 내내 만년필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좋아서 쓰지만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선이 굵어서 답답했었다.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서 다 식은 커피 한 잔을 두고 재생지 색깔이 나는 냅킨 한 뭉텅이를 들고 와서 단단히 마음먹고 앉았다. 닙을 뽑았다가 꽂았다가 뺀 닙을 닦았다가 말렸다가 좁혔다가 눌렸다가 다른 만년필 닙이랑 바꿨다가 다시 돌렸다가. 만년필 관련 사이트를 십 수 페이지나 열어놓고 이런저런 시도를 다 했다. 어떤 방법을 써도 여전히 선은 굵고 종이 뒷면에는 번진 잉크 자국이 사방으로 지저분했다. 시도는 발악에 가까워졌다. 손은 온통 잉크에 물들고 잉크가 번진 냅킨 종이가 책상에 그득하다. 새 닙을 알아보기도 하고 가는 글씨에 좋다는 새 만년필도 알아보다가,
그냥 만년필을 뒤집어쓰기로 했다.
닙에는 이로 깨물어서 생긴 흠집이 생겼고, 조금 더 ‘내 만년필’이 되었다. 작은 불편함 하나 해결하느라 서너 시간을 보냈다. 익숙해진다는 것이 꼭 이렇다. 서먹한 것들끼리 어깨를 비비고 때로 생채기도 주고받는 시간을 보낸다. 어디 만년필 한 자루에 그칠까. 돌아보면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것 중 어느 것 하나 그렇지 않은 게 없었다. 최근에 몇 번을 넘어지면 배운 스케이트보드가 그렇고 여전히 서툰 내 사진도 그렇다. 그리고 여전히 치열하게 부딪치며 웃으며 살아가 주고 있는 가족들까지. 살다 보니, 어떤 불편함은 견디고 익숙해 지면 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 어떤 불편함은 애정으로 이어진다.
직업을 바꾼다. 당분간은 양다리를 걸치고, 점점 일의 무게중심을 옮겨 갈 작정이다. 사진을 손에서 놓는 일은 없을 테고, 여전히 사진이 내 밥벌이 수단이 될 테지만 그 비중을 줄일 작정이다. 글을 쓰고 꾸리는 일을 하기로 했다. 그러자고 보니 너무 오랫동안 독서랄 것도 없었고 문장이랄 것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글로 밥 벌어 먹고살겠다는 생각은 6년 전쯤 했는데, 그 뒤로 사진을 했으니 내 문장이나 독서는 그때 수준에서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 급한 마음에 이제라도 다시 글쓰기를 연습하고 독서를 이어가려고 한다. 숙제처럼 여백을 마주 보고 앉으니 여백은 끝 간 데 없이 넓어서 무섭다.
직업으로서의 사진에 지쳤던 이유 중에 사소한 한 가지는 너무 많은 장비에 눌린다는 생각이었다. 공항에 가면 작은 서류가방 하나만 들고 비행기 타러 오는 사람들이 많이 부러웠다. 수십 킬로가 넘는 장비를 이고 지고 끌고 다녀야 하는 출장은 촬영도 하기 전에 짐에 눌려 지치기 다반사였다. 글을 쓰게 된다면 수첩 한 권과 펜 한 자루면 될 것 같았다. 깃털처럼 현장으로 날아가서 노트 빼곡하게 문장을 적어오는 장면을 상상하면 행복했다. 이제 그런 날이 올까 싶었는데, 나는 새 만년필을 찾고 있고 아이패드에 쓸 블루투스 키보드가 어서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저런 도구를 끌어모으는 나를 미워하지 마라. 어쩌겠는가. 도구의 인간.이라지 않던가.
사실, 만년필을 만지작거리는 몇 시간은 재미난 놀이 같았다.
2015.03.23 23:46
운전을 별로 즐기지 않는다. 촬영 장비 때문에 차를 쓰기는 해도, 일단 차가 있으니 여러 모로 편하기는 해도 운전은 어쩔 수 없이 한다. 특히나 시내에서 길이 막힐 때는 없던 짜증도 끓어오른다. 전 날 잠도 제대로 못 잔 오전에 막히는 길 위에 있으면 내가 왜 이 상황에 있어야 하는 지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서 촬영이 없고, 한 곳만 다녀오면 되는 외출은 가능하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려고 한다.
가끔 좋은 운전도 있다. 촬영하러 가는 고속도로는 즐거운 길이다. 그런 날은 미리 음악을 골라두었다가 차를 고속도로에 올리면서 볼륨을 높인다. 쩌렁쩌렁한 노래소리에 맞춰 핸들을 두드리며 가는 길은 행복하다.
선인장.이라는 노래가 에피톤프로젝트.의 노래라는 것을 얼마 전에야 알았다. 어느 이름 없는 여가수의, 좋지만 묻혀버린 노래라고 생각했었는데.
선인장을 선물하고 간 친구가 있었다. 말미잘 한 마리를 전해주었던 친구도 있었다. 선인장처럼 상처입고, 말미잘처럼 고운 친구였다. 소화 못 한 풀더미를 되씹는 소처럼 고속도로를 달려 돌아왔다.
2015.03.23 23:35
잘 지내지요? 요즘에도 시는 계속 쓰나요?
김광석 노래 가끔 들을 때나, 김광석이 죽은 지 몇 해가 지났다고 누가 이야기할 때는 형들 생각이 납니다. 소금꽃 방에 공사용 스티로폼 깔고 앉아서 그럭저럭한 기타 반주에 그럭저럭한 노래를 밤을 새며 불렀었지요. 그때가 김광석 2주기였던 가요? 3주기였던 가요? 하여튼 그랬었어요.
다른 형들은, 후배들은 소식 아시는 게 있나요? 나는 보고싶은 친구들이 참 많습니다. 멀리 나와있다는 핑계로 멀어졌어요. 한 동안은 이름들을 손에 꼭 쥐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조금만 더 하면 된다, 그러면 내가 돌아간다. 비단 옷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가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겠노라. 했었지요. 그랬었습니다.
이제 시는 거의 안 읽습니다. 그렇게 됐네요. 읽지도 않으니 쓰는 일이야 뻔하지요. 그래도 사진을 계속 하면서, 사진을 대하는 태도가 시를 짓는 것과 비슷하기도 하겠다 생각합니다. 시의 바다는 너무 넓어서, 그 안에서 의미를 엮어낸 다는 것이 어째 소용없는 짓.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아름다운 시는 여전히 마음을 건드리고 치열한 시는 또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드는 데요, 그래도 시와 멀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형,
기약없는 약속이지만, 다시 보게 되면 어디 별 보이는 노천에 앉아서 맥주나 한 잔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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