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은 밥상을 덮는 한 장의 조각보를 겨우 들고,
사진리뷰 세 개를 해야하는데 겨우 하나를 마쳤다. 하기로 한 다른 잡무는 거의 마쳤다. 더 하면 너무 늦어질 것 같으니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 한다.
기티는 아침에 발을 다쳐서 절뚝거리며 왔다. 내일부터 며칠 자리를 비우니까 심하면 오늘 병원에 데려갈까 하다가 두고보기로 한다. 다행히 저녁 때가 되니 아침보다 훨씬 수월하게 걷는다.
민박등록에 필요한 점검을 나왔는데, 마침 보일러실 문이 잠겼다. 필요한 설비를 다 설치하고 문을 닫는다는 것이 문고리가 고장나며 안에서 잠겨버렸다. 한참 열쇠를 찾았는데 못 찾았다. 담당 주무관은 헛걸음했다. 미안했다. 오후에 기술자를 불러 문을 따고 손잡이를 갈았다.
어머님 아버님이 오셨다. 곧 아버님 팔순인데, 가족 다 같이 해외여행 간 적이 없다고 아쉬워하셔서 짧게 대만을 다녀오려고 한다. 두 분을 모시러 공항에 가며, 오늘이 우리 결혼기념일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오늘 뭔가 있었는데? 하며 아내가 겨우 떠올렸다. 사납지 않아도 멈추지 않는 파도가 이는 바다처럼, 날마다 눈앞에 닥친 일들을 해치우며 살다 보니 오늘이다. 나보다 나은 점이 참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평소 생각대로 말해줬다. 고맙다.
내일 점심비행기로 대만으로 가서 목요일에 돌아온다. 마루와 새벽수영을 할 테고, 아버님 다리가 쉽게 지치시니 많은 것을 보기보다 맛있는 것들을 먹는 일정으로 잡았다.
오래된 인연들과 한참만에 다시 연락이 닿으면 마음과 기억은 순식간에 그때 언저리로 달려간다. 온전치 않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겠지만, 어쩌면 그때는 하나의 색을 가진 한 장 보자기 같았을 수도 있었을까. 하나의 색이라고 믿고, 또 하나의 색으로 쭉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시간이 있었던가. 찢어지고 기우는 온갖 시간을 지나서, 식은 밥상을 덮는 한 장의 조각보를 손에 들고 선 것 같다. 부끄럽지도 밉지도 않고, 기워낸 자리마다 연민과 애정의 기억들.
자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