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저당잡히는 기분
은행에 들러 서류를 마저 썼다. 열흘쯤 전에 와서 대출관련 서류들을 쓰고, 오늘 다시 와서 통장 발급을 위한 업무를 처리했다. 지난 번에 이어서, 정체가 모호한 수십 장의 서류에 주소와 이름을 썼다. 주소는 내 집과 땅을 담보잡힌다는 것이고, 이름은 모든 사태의 책임을 내가 진다는 뜻이다. 서류를 가득 채우고 있는 글자들은 빼곡한데, 설명은 두어 마디로 끝난다. 간단한 설명과 복잡한 서류 사이는 멀어 보이는데, 그 간격을 제대로 따져볼 수 없다. 대충 눈대충하며 적어넣는 내 이름들. 인생을 저당잡히는 기분.
이렇게라도 내가 원하는 돈을 얻고, 그 돈으로 집을 짓고, 그 집으로 다시 돈을 모아야지. 뭐든, 해봐야지. 안 하고 내려놓으면 안 되니까. 시도하는 것만으로 의미는 생기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