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지금처럼.
사주를 봤다. 촬영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오신 분 중에 명리공부를 하는 분이 계셨다. 사진관에서의 내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고, 사주를 좀 봐주겠다고 하셨다. 내가 태어난 시각은 도둑맞은 어머니의 수첩과 함께 사라졌으니까 생일만 말씀드렸다.
한참을 살펴보시고 이런저런 상황과 대조해가며 그 분은 내가 태어난 시각이 아침 7:50분에서 조금 뒤까지. 그 사이쯤일 거라고 추리해 주셨다. 여러 이야기들을 해주셨고 대충 언제쯤부터 대충 어떻게 될 거라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다음날 길을 걷다가 문득 생각했는데, 그렇다면 나는 그때를 대비해서 뭘 어떻게 할까? 자문했다. 대답은 지금처럼.
아, 나는 그렇게 살고 있었구나. 어느새.
'다시 태어나도 이 생을 반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살아야 한다던 철학자의 말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때는 도저히 닿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처럼.
좋네. 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