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낼 것이 있는 얼굴이 좋다
작업실은 아직 지어지지 않았고, 밥벌이 사진은 아직 제주에서 할 게 없다. 어슬렁 어슬렁 탐나는 얼굴만 찾아 다닌다. 이 얼굴들을 모아서 개인작업으로 해볼까 싶다.
무엇인가 꺼낼 것이 있는 얼굴이 좋다. 이미 다 드러난 얼굴은 내가 끼어들 공간이 없는가 싶고, 별다른 흥미가 안 생기는 얼굴은 또 그대로 욕심 안 난다. 드물기는 해도, 나만 꺼낼 수 있는 얼굴이 종종 있다.
가마가 있는 도예가의 작업실에 다녀왔다. 보물처럼 모셔둔 흙더미, 잘 못 구워져서 바닥에 붙어버린 접시, 다음 번 불 넣을 때 쓸 장작 더미, 수학기호처럼 칠판을 가득 채운 메모가 있었다.
여러 도자기 중에 하필 옹기를 선택한 작가는 옹기처럼 말했다. 말은 수식어가 적고 매끄럽게 다듬지 않아서 옹기 표면처럼 덤덤하고 까끌했다. 가을 빛에 잘 마른 질감이었다. 장인과 작가의 경계에 대해, 작품과 상품의 균형에 대해 마침 내 상황과 겹치는 부분도 있어서 여러 가지를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못 했다. 다음에 만나더라도 굳이 따져 묻게 될 것 같지는 않다. 답은 각자 찾자.
동그란 테 안경을 쓴 얼굴을 무심한 척 자세히 살폈다. 됐다, 저 얼굴, 할 수 있겠다. 명함을 건네고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어떻게 찍을 지는 안 떠오르지만, 얼굴 하나 모아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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