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나, 제왕의 생애
나, 제왕의 생애 / 쑤퉁 / 문현선 / AGARA / 2013
원제. 我的帝王生涯 2005
원고 마감을 마치고, 쉬운 마음으로, 사실은 다음 번에 쓸 원고의 재료가 될까 싶어 붙잡은 책이다. 위화.와 함께 현대 중국문학의 대표작가라는 소개는 허풍일 수도 있겠지만, 읽어 보지 뭐, 라는 생각이었다. 재미있어서, 잡은 다음날 다 읽었다.
첫 장, 도입부터 힘이 있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부왕께서 승하하신 날 새벽에는 서리가 내렸고, 깨진 노른자 같은 태양은 동척산 기슭 뒤편에 걸려 있었다.
새는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소재다. 줄타기가 전면에 등장하는 소재라면 새는 완전히 숨은 것도 아니면서 완벽하게 전면에 나서지도 않는다. 수면에 뜬 꽃같다. 그런데 표지에까지 등장하는 것을 보면, 내가 새를 너무 가볍게 읽었는가.
소설은 한 나라의 왕이 적는 1인칭 서술이다.
적어두지 않으면, 아마 금방 잊을 것이다. 내용은 물론이고 읽었다는 사실조차 잊을 것이다. 급하게 읽은 책은 대부분 그랬다.
읽어 보니, 작가에 대한 평가는 전혀 과장이 없어 보인다. 이런 소설이라면 당대를 대표할 만해도 좋다. 다만 내가 모르고 있었다.
그의 소설은 몇 작품이 이미 영화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중편 처첩성군.은 공리가 출연한 홍등.으로, 부녀생활.은 장쯔이가 출연한 재스민 꽃이 피다.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캐릭터의 힘이 좋고 장면 서술도 탁월하다. 특히 색에 대한 표현도 좋아서 영화 제작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야기가 담고 있는 의미도 단선적이지 않고 단순하지도 않아서 재미있다.
노란색 비단 저고리가 순식간에 들오리의 피로 붉게 물드는 것을 보았다. 85
피로 얼룩진 새로운 섭국의 지도를 보았다. 섭국 지도는 원래 커다란 새의 모양과 비슷했는데, 부왕 때에 새의 오른쪽 날개가 동쪽 접경의 서국에 잘려나갔고, 내 대에 이르러서는 새의 왼쪽 날개가 사라졌다. 이제 내 나라 섭국의 영토는 죽은 새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 새는 다시는 날아오르지 못 할 것처럼 보였다. 124
인간은 초초함과 공포, 거칠게 날뛰는 욕망으로 엮인 생명의 끈 한 가닥을 잡고 있다. 누구든 그 끈을 놓으면 그 즉시 어두운 지옥으로 떨어진다. 나는 부왕이 그 끈을 놓음으로써 죽음에 이른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266
기뻐 날뛰며 내 옷소매를 끌고 ..
내 소맷자락이 그에게 질질 끌려가다가 결국 찢어지고 말았다. …
나는 그를 향해 내 나머지 소매 한쪽을 휘두르면서 마찬가지로 크게 소리쳤다. …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소매를 한 번 떨치는 것으로 충분했다. 모든 것이 각자의 날갯짓과 꿈일 뿐이었다. 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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