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사진
아흔일곱 할머니의 영정사진
제주 서북쪽 섬, 비양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할머니는 일흔다섯까지 물질을 하는 해녀로 살았다. 무릎 수술을 한 후 물질도 그만 두고 목발을 짚어야 하지만 아직 정정하다. 젊을 때 이야기를 묻고, 가족 이야기를 물으니까 할머니 눈가가 젖는다.
"엄마, 또 우신다."
딸은 별일 아니라는 듯 슬며시 엄마의 눈물을 닦았다. 아이 여덞을 낳아서 셋은 죽었고, 지금은 다섯이 남았다. 막내가 마흔을 넘겼고, 손주들도 시집 장가를 갔다. 할머니의 소원은 남은 손자 장가가는 걸 보는 일이다.
비양도의 세세한 물길을 모두 알고 있는 할머니에게 한 번쯤 돌아가고 싶은 시절을 물었다.
"지금이 제일 좋아. 젊어서는 고생했지. 이제 아이들도 다 크고 말도 잘 듣고 나 잘 살펴주고. 지금이 좋아."
"우문에 현답이네요."
따라온 큰며느리가 말했다.
비양도 섬집에는 할머니 혼자 사시는데, 방 하나는 비었으니 꼭 비양도에 놀러와서 묵어가라고 하신다.
비양도가 갑자기 훅,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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