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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짧은 글 모음


2011.12.05 05:28

새벽에는 부끄러운 기억들만 떠오른다


어쩌다 보니 새벽이다. 좀처럼 없는 일이다. 새로 준비하는 작업실 때문에 부동산 사이트도 좀 보고, 이것 저것 뒤적거리다보니 새벽이다. 조용한 새벽에는 부끄러운 기억들만 떠오른다. 새벽이 그런 시간인 모양이다.


여행기도 좀 정리해서 올리고, 사는 이야기, 살고 싶은 이야기도 좀 더 적어서 풍성하게 해야겠다. 거미줄 치고 있는 모양새가 보기 딱하다. 




2011.08.07 21:03

수첩의 크기와 생각의 크기가


  태풍이 다녀갔다. 태풍이 온다고 해서, 예정되어 있던 촬영을 연기했는데 막상 촬영하기로 한 날은 태풍이 하늘의 흐린 구름까지 싹 걷어가서 맑았다. 그리고 오늘은 새벽부터 바람이 거세게 불고 비도 오다가 말다가 했다. 일요일마다 가는 암장에 가지 않고 아내와 함께 있었다. 저녁 즈음에는 태풍도 지나가서 아내와 집 앞 공원에서 산책했다. 공원 세 바퀴를 천천히 걸어서 걷는 동안 밝았던 하늘은 어두워지고 서쪽에는 모처럼 맑고 붉은 노을이 졌다. 어제 함께 본 인도 영화 이야기를 하며, 어떻게 사는 게 오늘을 잘 사는 것일까 이야기했다. 아내는 새로운 계획, 새로운 시간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분주해서 아내대로 기대에 찬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공원은 나무들로 가득차서 바람이 닿지 못 했다. 돌아오는 길에 작은 강에 걸친 다리 위에 서니 바람이 좋았다. 한참을 서 있었다. 센 바람이 부는 날이 좋다. 고개를 들면 뒤 아래를 감아 넘어가는 바람을 기억한다. 몇 년 전까지 나는 거기가 날개가 있었던 자리라고 말하고 다녔었다. 그 믿음은 여전하지만, 멈춰서서 그런 바람을 맞는 때가 적어졌다.


  준비하는 잡지 1차 시안이 이번주에는 나온다. 오래 걸렸다. 1차 시안이니까, 손댈 것도 많을 것이다. 최종 샘플이 나와서 여러 곳에 보이고 자문을 구하고 또 여행사들에게 거래를 제안하려면 아직 시간이 더 걸려야 한다. 많이 조급했다. 조급해서 마음도 다쳤다. 아직 오지 않은 날들 속에 있는 걱정거리들만 쏙 뽑아내 오늘에 불러서 나를 괴롭혔다. 그러지 말아야겠다 생각을 하면서도 쉽지 않았다. 등떠밀리지 말고,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즐기는 마음으로 해야겠다.


  수첩의 크기와 생각의 크기가 상관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문득 했다. 큰 그림을 그리는 데는 책상 가득 펼친 흰 종이가 좋다는 생각을 했다.





2011.06.16 13:10

통과의례를 생각했다



  동생을 통해서, 요즘 어머니가 다리가 불편하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마침 동생이 마땅찮은 꿈을 꾸어서 전화를 드리니 그렇더라고 했다. 알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꿈이 그렇다니 말은 하는데 누나와 형에게는 따로 알리지 말라고 하셨다고 한다. 비밀이란 게 영원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결국에는 이렇게 전해 듣는다. 누나에게 따로 말하지는 않았고, 아침에 전화드려서 모르는 척 안부를 물었다. 아내는 마늘 장아찌 만드는 법을 물었다. 어머니는 다 괜찮다고 받으셨는데, 아는 입장에서 들으니 마음이 무거웠다.


  오후에 사무실에 있는데 아내가 문자를 보냈다. 장모님께서 손가락 하나가 불편하셔서 오늘 수술을 하셨다고 한다. 예전부터 조금 불편하셨다는데 수술은 갑작스럽게 결정된 모양이다. 위급한 사태가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기는 하지만 수술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들어도 별로 가볍지 않다. 이틀 동안 입원도 하셔야 한다는데, 손 불편하시니 통화가 곤란할 것 같아서 우선 문자만 보내서 안부를 여쭌다.


  살아가는 일의 통과의례를 생각했다. 학교를 다니고 사춘기를 지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직장을 잡는 것들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람으로 겪는 통과의례다. 나도 거기쯤까지 와 있는 셈이다. 이제 더 겪어야 할 것을 생각해 보면, 아이를 낳고 아이 때문에 걱정하고 기뻐하는 것이 있고, 그리고 조금씩 불편해지는 몸의 부모님을 지켜보고 가슴 아파하다가, 결국 한 분씩 떠나보내는 것도 내가 겪어야 할 통과의례일 것이다. 생각만 해도, 분명히 올 시간이지만 차마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일 것 같다. 다 떠나보내고 내 이마에도 굵은 주름들이 나이 든 나무의 껍질처럼 단단해지면, 그때쯤에는 할 일을 모두 마친 심정으로 이제 사람의 일이 다 지나갔다고 돌아볼 수 있게 될까. 나는 그때를, 그리고 그때까지 이르는 시간들을 온전히 감당해낼 수 있을까. 


  부모님에게, 살아갈 수록 고마운 마음보다 미안한 마음이 커진다. 어릴 때는 고마운 마음도 몰랐다. 내 아버지보다 더 다정한 아버지, 내 어머니보다 더 상냥한 어머니를 바랬던 적도 있다. 그랬다. 부모님께 내가 은혜를 받는 것은 마땅히 고마운 일이지만, 그걸 또 두 분께 고스란히 돌려드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다. 내가 받은 것은 내 다음 세대에게 전해야 한다는, 내리사랑이 마땅한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두 분께 받는 사랑이 감당 못 할만큼 크다는 것을 알겠고, 내가 살아있는 동안 무엇을 하든 그 사랑을 다 돌려드리지 못 하겠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그 은혜를 돌려드려야 하는데 그렇게 못 하는 능력의 한계를 보면서 고마움은 미안함으로 변했다. 받은 사랑을 온전히 돌려드리는 것은 고사하더라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내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지만 어떤 시도도 부족하고 아쉬워만 보였다. 그리고 줄어드는 두 분의 시간과 여전히 제자리에 있는 나를 보면서 마음만 조급해진다. 무슨 짓을 한단들, 그 사랑을 갚을까.


  숙제처럼 한 주먹에 꼭 쥐고 있는 생각이 있다. 나는, 두 분의 전기를 쓰고 싶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어린 시절, 젊은 시절, 두 분이 만나서 함께 내달리던 시절의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전해듣기는 했지만 온전한 두 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었다. 어릴 때 아버지의 꿈은 무엇이었는지, 어머니와 어떻게 결혼을 결심했는지, 한 때의 가장 기쁜 일은, 또 가장 분한 일은 무엇이었는지, 처음 자동차를 사고 새벽마다 연습 운전을 가던 그 하얀색 중고차는 나중에 어떡했는지, 대통령 선거가 끝난 다음 날 고기파티를 열던 그 마음은 어땠는지, 자주 가서 잔뜩 낚아오시던 그 호수는 어디에 있는지, 한 번도 그 속을 본 적 없다는 산 정상의 동굴은 또 어디인지, 누나를 시집보내고, 처음 손자를 안던 날의 심정은 또 어땠는지, 나는 모른다.


  엄마 없는 아이로 할머니와 아빠의 손에 자라야 했던 어린 시절과, 시골에서 라디오로 세상 공부를 했다는 한 때, 아버지를 만났다는 봉사활동의 그 때, 시댁에서 친정으로 갈 때면 넘었다는 그 산길, 외할아버지 돌아가시고 그토록 서럽게 울던 어머니의 그 때를 나는 묻고 싶다.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 몸은 밖에 있으니 갈 수도 없다. 고기라고는 낚이지도 않는 바닷가 바위에 앉아 아버지께 묻고,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텃밭 바른 곳에 앉아서 물을 수 있으면 좋겠다. 너무 늦기 전에, 한 아이가 적는 그 부모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두 분을 조금 더 이해하는 것이, 내가 돌려드릴 수 있는 중에 하나일 것이다.


아버지는, 부모가 자식을 챙기는 마음은, 자식이 자식을 낳고 다시 그 자식이 자식을 낳아서 마침내 자식이 손자를 본 다음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되어보니 아마도 당신의 아버지 마음을 아셨나 보다. 누나네 아이들이 태어난 후로 아버지가 얻은 작은 깨달음이 그랬나 보다.


  언제부터 아버지 어머니 생각은 꼭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자식 셋을 든든하게 키워내시고 점점 힘이 빠져나가는 몸으로 그렇게 서 계신 것을 보면 저 힘을 모두 뽑아와서 우리 셋이, 내가 이렇게 서서 사람구실을 하는 것 같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되나.






2011.06.06 06:28

6.6 새벽


아내는 아직 잔다. 아마 어제 밤 늦게까지 작업을 했다. 나는 일찍 잠들어서 아내가 몇 시까지 작업을 했는지 모른다. 작업을 마친 아내가 침대로 와서 내게 몇 마디 말을 했었던 것도 같다. 


비온다. 음력으로 단오날이고, 양력으로 한국의 현충일이다. 이래저래 두 나라의 노는 날이다. 그리고 장인어른의 생신이다. 아침 일찍 전화드릴 생각으로 일어나서 전화했는데 안 받으신다. 멀리 떠나 있다는 핑계로 내 집안이나 아내 집안 일에 뭐 하나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서 마음은 불편하다. 찾아 뵙고 축하드리고 옆에서 이야기도 듣고 싶은데 상황이 그럴 수 없으니 답답하다.


집 앞 강에서는 단오를 맞아 용선 축제가 열린다. 색색의 용선이 등장하고, 사람들은 배 위에 줄 맞춰 앉아서 노를 젓는다. 제법 며칠 전부터 강변에 관람석도 만들고 광고판도 설치하면서 축제 분위기를 만드는 듯했다. 새벽에 내다보니 밖에는 비가 내리는데, 그래도 부지런한 사람들은 하얀색 비옷을 입고 벌써부터 강변에 나와 있다.


두 권의 책이 나왔다. 신장 지역의 병단을 취재했던 내용은 몇 명의 외국인이 체험한 병단.이라는 책으로 묶여 나왔다. 중문과 영문이 함께 있어서, 나는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 했다. 쓴 지도 오래 되어서, 내가 누구에게 원고 번역을 부탁했었던가도 잊었다. 나는 한글로 쓰고, 중문으로 번역을 부탁한 다음 보냈었다. 그리고 출판사 쪽에서 다시 영문 번역을 했을 테다. 내가 쓰고 내가 못 보는 글이 되었다. 책은, 우선 신장에서 내가 머물렀던 그 농부 아저씨 댁에 열 권을 보냈다. 좋아하고 고마워하셨다. 나머지 책들은 책장 구석에 숨겼다. 별도 떳떳한 책도 아닌 것 같아서다. 내가 느낀 것들을, 내가 본 것들을 쓰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어용기자의 글인 것 같다. 실제로, 민감한 이야기 두어 줄은 알아서 빼고 쓰지 않았던가. 

장시성을 여행하고 쓴 이야기도 책으로 나왔다. 책은, 총체적 부실이다. 시간에 떠밀려서 급하게 쓴 문장은 어쩌다가 헐겁고 어쩌다가 비좁고 전해야 할 내용도 빼먹고 감정만 들이밀어서 못났다. 정식 서점 판매형식이 아닌 현지 관광국의 주문 형식이라서 그런지 인쇄도 마음에 안 든다. 이 책도, 좀처럼 밖에 보이는 일은 없겠다.


새벽에 깨어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음악도 틀고 책도 한 권 꺼내 앉는다.




2011.04.20 20:11

할 수 있다면, 바다 근처에서


차이코프스키 5번 교향곡 4악장.은 응원가같은 곡이다. 집에 오는 길에 어쩌다가 들렸다. 꼭 그런 날에 이 곡이 들리는 것인지, 이 곡을 들을 때마다 그런 마음이 생겨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곡을 들을 때는 나는 언제나 긴장한 채로 출발선에 선 초보 달리기 선수같은 기분이 든다. 그 불안함과, 그 실패에 대한 약간의 예감과, 뒤쳐진다는 빈곤함 같은 것들이 한데 엉켜 있는데, 그 기운들 사이로 이 곡은 모두 다 잘 될 거라고 말하고 너는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응원처럼 솟아 오른다. 처음 이 곡을 인상적으로 들었던 몇 년 전 아침도 그랬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석 달치 집값을 송금하고, 마트에 들러서 오늘 저녁 마실 콜라와 혹시 필요할지 모르는 콜라 하나 더를 샀다. 빵집에 들러서 내일 아침에 먹을 맛은 없어보이지만 푸짐해 보이는 빵도 한 개 사서 왔다. 오늘은 뭔가 특별한 날이니까, 가방만 대충 벗고 짐만 대충 던져놓고 앉았다. 차이코프스키 5번에 4악장.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클래식 중에 하나. 


크리스티앙 볼탄스키.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라는데 나는 오늘 처음 알았다. 승희가 사 둔 예술잡지를 하루이틀 보는데, 퇴근길에 버스는 많이 막혀서 기사 여러 개를 읽었다. 작가에 대한 인터뷰가 있었는데, 삶에 대한 그 사람의 성찰도 좋았지만 인상적인 것은 그 사람의 짧은 호흡으로 이루어진 말들이었다. 인터뷰를 옮기며 인터뷰어가 얼마나 말을 정리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선생님의 목소리를 그대로 옮기겠습니다'라는 인터뷰어의 첫문장을 믿는다면, 아마도 짧은 호흡의 문장은 작가의 것이 맞을 것이다. 노작가는, 앞뒤 양념처럼 덧붙는 수식들을 다 떼어내고 꼭 필요한 단어들만 조합해서 담담하게 자신의 예술과 삶에 대해 말해준다. 작가의 작품을 본 적 없으니 작품에 대한 인상은 모르겠고, 탄생과 소멸의 우연성과 그 덧없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고양이와 달리 신의 우연에 저항함으로써 비로소 의미를 획득한다는 그의 말은 절박하고 아름답게 읽혔다. 몇몇 철학자는 찾기를 포기했고 또 몇몇은 얼버무리고 누구는 찾았다고 믿으면서 죽었던 삶의 이유를 발견하기 위해 이 작가는 얼마나 고민했을까. 발견했다기 보다는 선언한 듯한 그 결론에 이르고서 그는 얼마나 안도했을까. 그렇게 얻어낸 생각을 긴 시간 동안 다듬어서 이제 그의 말은 짧은가 보다. 인터뷰어는 작가의 외모에 대해 설명하면서 웃으면 반달눈이 된다고 적고 있다. 그의 작품을 보는 것도 좋겠지만, 그냥 이런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렇게 버티고 살고 있다는 것만 알아도 위안이 된다. 


드보르작 9번 교향곡 4악장. 차이코프스키가 출발선에서 등떠밀어주는 응원가라면, 드보르작 9번 4악장은 결승선에 서서 이제 막 들어오는 완주자를 맞이하는 노래 같다. 4악장의 도입부는 팡파레로 시작해서, 결승선을 통과한 이를 가만 달래며 숨을 고르게 하고 이제부터 펼칠 영광의 시대를 보여준다. 9번 교향곡은 제목부터가 '신세계로부터'이다. 자, 숨을 다 골랐으면 이제 영광의 시대로 가는 문을 열 차례다. 악기들이 내달리고 실패에 대한 일말의 의심도 없는 당당한 음들이 치고 오른다. 주름 없는 표정이다.


할 수 있다면 두 곡을 결혼식에 쓸 수 있다면 좋겠다. 그냥, 조금 무서우니까. 나는 승희를 사랑하고 또 그 사람을 믿고 의지하고 나 역시 그 사람의 의지가 될 테지만, 그래도 그 막막한 시작이라는 건 무서우니까 이런 응원가들이라도 들으면 좀 힘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굴려보아도 어울리는 장면은 없다. 축제에 쓰기에는, 너무 비장하고 깊다. 두 곡 모두 11분의 연주시간이다. 신부가 그 짧은 길을 11분 동안 걸어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손잡고 11분 동안 비장한 표정으로 퇴장할 수도 없지 않나.


내일 아침 비행기로 한국으로 간다. 드디어 간다. 그리고 일요일이면 결혼을 한다. 할 수 있다면, 바다 근처에서 승희와 함께 이 노래들을 크게 듣고 싶다.








2011.04.17 21:50

느리고 게을러야지


할 일은 언제나 많다. 그래도 사진만 찍고 살던 때는 제법 한가했는데, 간간이 들어오는 일거리로 어떻게 굶지는 않고 살아졌는데, 바빠진다. 마음에는 언제나 새로운 계획들이 가득하고, 아침 샤워기 아래에 서면 이미 가득한 계획들 위에 새롭고 신나는 계획들이 막 더 생겨난다. 결혼도 하고 온전히 내가 살펴야 할 가족도 생기는 거니까 비장한 마음도 더 있다. 그래도,


느리고 게으르게 살아야겠다. 나는 새벽 시간을 좋아하고 잘 쓰니까, 일어나는 시간을 조금 더 당겨서 오전과 이른 오후에 가능한 많은 일을 해야겠다. 오후 시간에 집중하기 위해서, 낮잠은 꼭 자야겠다. 그리고 특별하게 약속이 있거나 급한 마감이 있는 날이 아니라면 세 시쯤에는 퇴근을 해야겠다. 오후 시간에는 책을 좀 보거나, 승희와 자전거를 타거나 해야겠다. 일을 하는 것도 신나지만, 일 이외의 시간을 애써 챙겨야겠다. 그래야 사람이 사는 것 같겠다. 딱 한 번 밖에 없는 세상이니까, 귀하게 살다 가고싶다.



2011.04.17 17:47

많고 큰 빚들


승희는 지난 금요일에 한국에 가서 바쁘다. 주문해 둔 반지도 찾고, 나 대신 동생도 만나고, 결혼식에 참석할 수 없는, 하지만 인사 드려야 마땅한 분들도 뵙고 다닌다. 그리고 승희가 떠난 이틀 사이에 집은, 헛간 내지는 창고 내지는 잡스런 것들의 소굴. 정도가 되었다. 이러고 며칠 살다가, 한국 들어가기 전날에 청소 좀 해두고 가야겠다. 결혼 뒤에도, 아내의 외출이란 것은 이틀 정도면 족할 것 같다. 모처럼의 해방감, 멋대로 뒹굴어도 된다는 기분 같은 것은 하루면 족하다. 그렇다고 아내 출장이 하루 밖에 안 되면, 꼭 일요일 아침처럼, 맘껏 놀지 못 하고 다가올 월요일에 긴장해야 하니까. 이틀 넘어가면 어째 뭔가 빠진 것 같고, 뭘 해야 할지 딱히 손에 잡히는 것도 없고, 산책가자고 부추기는 사람도 없는 게 삶이 무료하고 심심하다. 승희 출장은 단기출장만 가라고 할까?


결혼이라고 앞두고 보니 이리저리 연락해서 인사드릴 곳들이 많다. 도와준 분들 얼굴들이 생각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만 쌓아둔 채 연락드리지 못 한 분들 얼굴이 생각난다. 새삼, 참 많고 큰 빚을 지고 살아온다고 안다. 언제 다 갚을까. 갚을 수나 있을까. 전화라도 드려야겠다.





2011.04.15 07:50

승희는 한국에 갔다


승희는 아침 비행기로 한국 갔다. 새벽에 깨어서 대충 먹고 어제 미리 챙겨둔 짐들을 들고 나섰다. 나는 푸동 공항에 갈 때 주로 지하철을 타는데, 승희는 짐 때문에 갈아타기가 힘들다고 주로 리무진 버스를 탄다. 작은 가방 안에 드레스를 접어 넣고, 한복 상자를 한 손에 들고 갔다. 아침에 화장은 눈썹 위에 파우더가 잔뜩 앉아서 눈썹이 흐려졌다. 작은 빨간색 트렁크를 짐칸에 싣고, 한복 가방은 버스 옆자리에 두었다. 버스는 여섯 시 반에 상하이역 앞을 출발해서 한 시간 조금 넘겨 공항에 닿을 것이다. 시간은 대충 맞아들어갈 거다. 리무진에 승희를 태워보내고 그 길로 출근했다. 평소보다 조금 빠른 출근길이다. 


어제 밤에는, 결혼식에 쓸 음악들을 고른다고 이것 저것 막 들었다. 오랜만에 이것 저것 바꿔가며 듣다가 정작 목적은 잊어먹고 맘에 드는 것 하나씩 꺼내서 여기저기 내키는 대로 산책하듯이 들었다. 음악은 걸음마다 풍경이 변하는 산책 같아서, 한 곡씩 듣고, 어쩌다가는 한 곡도 채 안 듣고 씨디 바꿔 넣으면 그 때마다 확연하게 다른 질감으로 좋았다. 드보르작 첼로 협주를 오랜만에 들었는데, 왜 이 걸 잊고 있었을까 싶었다. 음악은 결혼식에 어울리지는 않았다. 신랑 입장, 신부 입장, 사진 슬라이드의 배경 음악 어느 장면에 넣어보아도 좀처럼 어울리는 이미지가 나오지 않았다. 아쉽지만 드보르작은 식장에 입장하지 못 하겠구나. 아무래도, 클래식에 대해서라면 인상이 강한 음악이 쉽게 와 닿는다. 아직 많이 들어보지 않아서 그렇다. 어떤 장르에 대해, 어느 정도 내공이 쌓여야 비로소 감추어진 틈과 미세한 결을 읽어낼 수 있고 그 틈과 결의 변주에 감탄할 수 있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큰 덩어리를 보는 데 그친다. 내 클래식 듣기는 겨우 덩어리의 형태를 보는 수준이다. 사진이나 문장에 대한 이해와 비교해 보면 그 사실이 명확해진다. 어제 내 잡지를 디자인할 승일과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디자인에 대해 나는 잘 모르니까, 겨우 큰 덩어리만 보인다고 했다. 그러니까 당신이 잡지의 디자인을 상상력 밖으로 끌고 가 달라고 부탁했다. 


결혼식을 위해 신문을 만들었다. 어떻게든 조금 더 신나게 하려고, 웨딩사진으로 신문같은 잡지같은 결과물을 만들었다. 나중에 만들게 될 아시아트래블 매거진의 판형을 그대로 써서 그 안에 사진과 필요한 정보를 담았다. 비싼 돈을 들여 웨딩 앨범을 만들고 일 년에 한 번 볼까말까 하는 것 보다 더 좋겠다 싶었다. 12면의 신문에는 내 청혼편지와 인터넷에서 얻은 주례사, 웨딩 화보 등이 담긴다. 상하이에 오면 집으로 초대한다는 쿠폰도 작게 넣었다. 500부를 인쇄해서 400부는 한국에 가져가서 결혼식 하객들에게 드리고, 100부는 상하이에서 있을 결혼 파티에 나누어주려고 한다. 그런데 인쇄비를 따지니 앨범보다 비싸겠다. 승희가 알면 혼나겠다.


상하이는 어제부터 덥다. 봄이라고 좋아한 것이 삼 일 전인데, 어제부터 여름이다. 새벽에 지하철 에어컨 바람은 날카로웠다. 어떤 기운은 스며들고 어떤 기운은 찔러드는데, 무형이든 유형이든, 실재적이든 감정적이든 찔러드는 기운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름이라도 가볍게 입고 왔는데 새벽 지하철은 힘들었다. 새벽에 길은 성글고, 안개도 제법 있었다. 앞으로 출근 시간을 조금 더 앞당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계획하는 잡지의 형태가 다듬어지고 있다. 지금 작업하고 있는 쓰촨 건만 마치면, 그리고 결혼하고 신혼여행하고 다 마치면 본격적으로 잡지 작업에 들어갈 수 있다. 결혼하면 4월이 끝나고, 5월 한 달 동안 서로 일하고 상하이에서 결혼 파티도 해야한다. 6월 중순에 승희 일 때문에 함께 쓰촨에 다녀와야 하니까 신혼 여행은 그 다음이다. 어쩌면 쓰촨에서 곧장 여행을 시작할 수도 있다. 많은 후보지가 이름을 올렸다가 사라졌고, 최종 목적지는 아마 중국 남부지역이 될 듯하다. 보이차.로 알려진 푸얼차의 산지들을 찾아다니는 것이 우리 신혼여행의 주제다. 반쯤은 여행이고 반쯤은 일이 될 여행은 중국 남부 너댓 개 성을 지나야 하고, 아마 한 달쯤 걸릴 것이다. 다녀오면 그 이야기로 한 권을 책을 묶는 것이 우리의 의도다. 이렇게 저렇게 올 해 안에 우리가 계획하는 책이 두세 권이다. 하지만 책은, 나와 봐야 아는 것이다. 그럭저럭 상반기를 보내면 하반기에는 좀 더 일에 집중할 수 있을까.


승희가 한국에 가니까 슬슬 결혼식이 닥쳐온 것을 알겠다. 



2011.04.12 09:25

큰일났다


아침 출근길에 완연한 봄바람을 맞았다

아, 봄이구나

마음이 갈피를 못 잡고 들판을 떠다녀야 하는 봄이구나


들판에 나서지 못 해도, 도시의 대로변인들 어때

바람에 실려볼까


봄이다 큰일이다



2011.04.09 21:14

다음 직업은 목수로 정했다


평생 도예가로 살아온 사람이 나무를 만지는 목공이 되었다는 뉴스 기사를 읽었다. 그 사람이 다듬어 낸 나무들은 흙의 질감을 닮았을 듯도 하다. 아마, 그럴 것이다. 며칠 전 승희랑 이야기하면서 나중에 나도 목공이 되겠다고 했다. 나이 들면 어디 바다 근처에 집을 얻어서, 폐 목선에서 나오는 나무들을 얻어서 책상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앞으로 틈틈이 보이는 대로 자료를 모으고, 참고가 될 만한 것들을 눈여겨 보려고 한다. 마침 집 뒤에 폐목재가 모이는 곳이 있으니까 그곳도 둘러보면서 재미삼아 하나 둘 건드려 볼까도 싶다. 큰 것이야 안 되더라도 작은 손공구 하나씩 모아볼까도 싶다. 나중에 진짜 작업을 하게 되면 승희는 디자인은 자기가 맡겠다고 우긴다. 맡긴다고 안 했는데.


하나의 직업을 평생 가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다들 한 번쯤은 시달려보지 않았을까? 그 강박에서 풀려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삶은 유일하니까, 내가 나로 사는 것은 한 번에 그치니까, 그 한 번을 오로지 나를 기준으로 삼아 풍성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가능한 상황 안에서, 가능한 모든 것들을 겪어보려고 한다. 내 첫 직업은 사진사였다. 졸업 후에 곧장 중국으로 와서 최근까지 하고 있으니까 제법 10년 가까워 온다. 성취감으로는 아슬아슬했고, 경제적으로는 무참했다. 새로 시작하는 직업은 잡지를 만드는 일이다. 중국 여행지를 소개하는 한국어 잡지를 만들어서 한국과 중국에 유통시키는 일이다. 초반 얼마 동안에는 글도 사진도 내가 해야 한다. 참고하기 위해 다양한 잡지들을 두루 보고 있는데, 참 좋은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참 좋은 문장을 쓰는 사람들도 많다. 그 안에서 나는 내 공간, 내 색깔을 드러내야 한다. 글을 쓰고 잡지를 만드는 일은 한 곳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이란 것은 꼬리를 물어서, 아마 여러 갈래로 가지를 치게 될 것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설계도만 자꾸 스스로 번식해서, 여러 사람과 여러 조건들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닿는다. 승희는 이런 나를 다독여서 차근차근 하라고 한다. 가계부도 몇 번 바닥을 쳐 보니 단련이 된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잘 될 테니 차근차근 하라고 한다. 든든하고 고마운 말이다. 


 


승희의 일과 관련되어서 쓰촨의 젊은 작가 하오랑.이 오늘 집에 다녀갔다. 통통한 얼굴에는 중절모를 쓰고, 손가락 네 개에 반지를 끼고 왔다. 함께 점심을 먹고 간단한 인터뷰도 했다. 나는 떡볶이를 만들었는데 가쓰오부시 다시다가 잔뜩 들어간 맛은 달콤해서 나쁘지 않았다. 하오랑의 작품은 만화체의 회화인데, 트렌디한 인상이 맞아들어가서 최근 상업적으로 다양하게 이용된다고 한다. 작가 경력이 오래지 않아서 그의 작품세계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고, 비교적 쉽게 읽혔다. 말도 잘 통해서 우리는 밥, 빵, 과일, 차로 이어지는 내내 제법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처럼 집중해서 그림을 보고 작가와 겨루듯 이야기했다. 내가 읽어낸 코드가 크게 틀리지 않아서 속으로 으쓱했다. 승희는 앞으로 다양한 작가들을 인터뷰해서 평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작정이다. 


본래 출근할 작정이었다가 주말이고 날씨도 좋아서 오후에 두어 시간 산책했다. 자전거를 타며 끌며 근처 작은 샵들을 들락거리면서 승희와 걸어서 자전거샵까지 갔다. 계획하는 작업 중에 상하이 곳곳을 자전거로 다녀야 할 필요가 있어서, 승희가 탈 만한 자전거를 알아보고 있다. 제법 검색도 하고, 우리 통장 잔고도 생각하고, 또 무엇보다 승희에게 편한 종류의 자전거를 찾았다. 오늘 샵에 간 길에 대충 무난한 녀석으로 찜했다. 5월 초에는 사서, 가능하면 일주일에 두어 번은 시내를 다녀야 한다. 산책이면서, 일이다. 돌아오는 길에 파인애플 파는 과일차를 발견하고 승희는 지나치지 못 했다. 큰 걸 고른다고 골랐는데, 파인애플은 너무 익어서 물렀다.


좋은 문장, 좋은 사진을 쓰고 찍어야 하는데, 뜻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기다린다고 오는 것들이 아니다. 공부하고 사색해야 한다. 당장 써먹어야 하는 때는 닥쳐오고 마음은 바쁘고 가진 것은 제자리에 있다. 그래도, 승희는 지난 얼마 동안 내가 말한 것들이 그대로 이루어져 왔다고, 그러니까 좋은 생각만 하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될 것 같다.






2011.04.07 12:09

결혼





저, 결혼합니다.


한국 결혼식은 4.24(일)일 경남 거제도에서 하고,

중국에서는 5. 7(토)일 집에서 간단하게 파티를 할 예정입니다.!


혹시 거제도 관광 오실 분은 미리 말씀해 주시면,

전날 미리 작은 방을 준비해 두겠습니다.








2011.04.07 11:36

청혼



  몇 달 동안 사진들을 차곡차곡 모았다. 왜 찍기만 하고 주지도 않느냐고 원망도 많이 들었다. 그래도 모았다. 

 

  제법 수 백 장 중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진은 열 여섯 장이었다. 컬러가 예쁜 사진도 있었는데, 통일성을 위해 모두 흑백으로 하기로 했다. 처음 만난 무렵의 사진에서부터 얼마 전에 찍은 사진까지 다양했다. 라이트룸에서 기본 작업을 마친 후 포토샵에서 본격적인 작업을 했다. 색마다를 살펴서 흑백으로 바꾼 후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으로 나누어 톤을 잡고, 필요한 수정 작업을 한 후 전체적인 밸런스를 잡았다. 작업은 출장지에서 하기도 하고, 승희가 깨지 않은 새벽이나 외출 중일 때 해야 했다. 문제는 프린트에서 닥쳤는데,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며칠 승희는 집 밖으로 나갈 일이 없거나 나와 함께 나갈 일정 밖에 없었다. 리터칭 작업이야 어떻게 된다지만 프린트 작업을 새벽에 할 수는 없었다. 세 시간 이상 걸릴 작업에 눈치 못 챌 사람이 있을까. 결국, 내 쫓았다. 급한 마음에 집 좀 나가라고 보내버렸는데, 승희는 서운하고 화가 난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다. 뒤늦게 미안하지만 우선 프린트는 하고 본다. 몇 년 전부터 잘 쓰는 용지에 가로 13 세로 19인치 사이즈로 프린트했다. 액자로 만들면 부피나 무게가 부담스러우니까, 앞뒤로 두꺼운 매트지를 대기로 했다. 가로세로 사이즈는 77cm로 맞추어서, 가로 사진이나 세로 사진의 프레임 크기를 갖게 했다.

 


 


  전시장 섭외는 사진 작업과 함께 진행했다. 승희의 학교 후배인 롱롱은 모간산루 갤러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롱롱을 통해 마땅한 전시장들 몇 개를 우선 탐색하고 직접 둘러본 후 결정했다. 요즘 주머니 사정 별로 안 좋으니까, 롱롱이 일하고 있는 갤러리를 빌리는 것으로 했다. 두 시간 예정으로 빌리기로 했지만 롱롱의 도움으로 몇 시간을 더 썼다.

 

  작전대로 된다면, 승희는 조금 늦은 저녁, 전시 오프닝을 보기 위해 갤러리로 온다. 갤러리 안에는 승희의 사진들이 걸려있고, 사람들은 승희의 등장에 무심하게 그냥 사진들을 본다. 마치 승희가 안 보이는 것처럼. 그리고 대충 사진들을 봤을 무렵에 내가 등장해서 꽃 내밀고 편지를 읽는다. 아, 제법 그럴 듯한 청혼이지 않나.



 


 

  뜻대로 되는 일은 얼마나 적던가. 오전 일을 끝내고 근처 밥집에 앉아서 우선 청혼 편지를 가져온 편지지에 옮겨 적었다. 며칠 동안 고민하면서 수첩에 적고 노트북에 적어서 정리해둔 것이다. 그리고 옷을 맞추는 곳으로 가서 맡겨둔 옷을 찾았다. 다음은 액자집으로 가서 완성된 사진들을 받았는데, 열 여섯 장의 사진에 붙은 프레임은 많이 무거웠다. 사진들을 갤러리로 옮겨두고 다시 꽃을 사기 위해 근처 꽃시장으로 갔다. 장미를 살 생각이었는데, 노랗고 수수한 꽃이 참 좋아보여서 그걸로 샀다. 중국어 이름은 못 알아 들었는데, 나중에 사람들이 프래지어라고 말해 주었다.

 

  시계는 다섯 시를 조금 넘었다. 대충 준비물은 다 되었으니 이제 가져온 낚시줄로 액자들을 걸기만 하면 된다. 우선 기존에 있던 그림들을 내리고, 사진들을 적당한 위치에 배치했다. 롱롱의 도움으로 승희는 일곱 시쯤에 오기로 했다. 서두른다면 시간은 대충 맞을 것이다. 작전을 조금 바꾸어서, 일체 다른 사람들을 부르지 않고, 텅 빈 공간에 승희 한 명만 들이는 것으로 했다. 그리고 잠시 뒤에 내가 들어오기로 했다. 적당한 높이에 액자를 하나씩 건다. 두어 개쯤 걸었는데,

 

 

 

 

 

 

이 사람이 왔다.

 

 

 


 

 

 

뭐, 처음 해보는 청혼이 오죽일까. 이런 상황을 미리 대비하지 못 했다.

뭐, 그래도 승희는 조금 감동은 했고, 기분도 좋다 그러고.

뭐, 준비한 꽃도 전했고, 편지도 읽었고.

뭐, 아쉽지만 어쩌겠어. 그래도 결혼해 준다는데.

 

뭐, 이벤트는 언제나 미완성.

 


 

 

 

 



 

 

더운 여름에, 우리는 만났다. 무덥던 날들이었다. 작은 카메라를 들고, 치마처럼 펄렁이는 바지를 입고, 가벼운 신을 신고 너는 참 경쾌하게 걸었다. 좁은 길에 나뭇잎들은 짙었는데 그 사이로 비껴든 빛들이 네 짧은 머리카락 위에 떨어졌다.

 

가을에 그 연보라 머플러는 참 잘 어울리더라. 조금 긴 듯한, 나풀거리는 그 녀석을 우리는 참 좋아했다. 네가 한 번씩 다녀갈 때마다 집이 변신하던 것도 그 가을이었다.

 

길고 추웠던 겨울은 겹겹이 겹쳐입고 난로 앞에 꼭 붙어앉아서 나야 했다. 한 번 외출 때마다 껴입은 옷때문에 두 배씩 몸이 불어나는 계절이 이제 저만치 갔다. 다음 겨울은 아마 더 따뜻하겠다.

 

봄은 언덕 너머에 포복하고 있다가 와락 덥치듯 왔다. 축제를 펼칠 계절이다. 이번 봄은, 함께 맞는 첫 봄이다. 그래서 새 봄이다. 이 봄의 초입에서 나는 다 늦은 편지를 쓴다. 아무래도 김빠진 콜라같다. 그렇지 않아? 날짜는 정해졌고, 청첩장도 가야할 곳들로 갔다. 그리고 이제야 나는 결혼을 청하는 편지를 네 앞으로 쓴다. 함께 있어서 참 좋은 시간들이었으니까, 앞으로 긴 시간을 함께 있어 달라고 부탁하려고 한다.

 

이웃한 별처럼 살자. 두번 오지 않을 시간과 공간에서 우리도 별처럼 만났다. 그리고 시간은 살같이 흘러서 소멸할 때도 올 거다. 이 땅에 오기 전에 우리가 없었던 것처럼 소멸 뒤에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로 단 한 번 존재하는 이 순간이 안으로부터 바깥에 이르기까지 아름답기를 바란다. 이 세상에 잠시 머무는 동안, 별처럼 빛나는 한 세상을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사는 일은 아슬아슬하고 위태롭다. 앞으로 너와 내가 어떤 길을 거쳐 가게 될지 짐작할 수 없다. 빈약한 상상력의 경계 너머에 있는 일들이 무리지어 닥쳐올 것이다. 보이지 않는 길을 앞에 둔 답답함과 막막함은 덜어지지 않는다. 기대에 찬 출발을 앞두고 미안하고 또 부끄러운 일이다.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마음껏 봄날을 누리라고 말해주어야 하는데, 알 수 없는 길을 함께 가자고 나는 네게 손을 내민다.

 

하지만, 온통 봄날같지는 않은 세상이라도, 살아서 아름다울 거라는 것 또한 우리는 확신하고 있지 않니. 우리는 함께 길을 걷고, 함께 그림 앞에 서고, 마주앉아 밥을 먹고, 얼굴 보고 잠을 깨는 날들을 살 거다. 서로 다른 시공간을 지나왔지만, 공감하는 곳에 힘을 보태고 다른 것들을 조율하며 가서 마침내 서로에게 꼭 맞는 조각이 될 거다. 비틀거릴 때는 기둥이 될 것이고, 언제나 서로의 응원이 될 거다. 함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일들을 겪고, 더 풍성하고 용감한 세상을 살 거다.

 

축제를 살자.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사람처럼 매일이 처음이고 끝인 것처럼 살자. 대하는 모든 것들을 새로운 호기심으로 보고, 존재하는 것들이 본래부터 가진 신비들 앞에 감탄하자. 세상 낮은 것들과 온몸으로 공감하고, 스스로를 존중하고 아끼자. 온 시간 동안 배우고 익히며 이 세상에 온 것을, 그리고 함께 있는 것을 감사하자.

 

이웃한 별들처럼, 기대고 응원하자. 그래서 별처럼 온전히 소멸하는 그 때쯤에, 축제처럼 한 세상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둘이어서 이 축제가 몇 배쯤은 더 즐거웠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승희야,

좋은 꿈을 함께 꾸자.

우리, 잘 살자.

 

아침마다 눈부비는 너를, 사랑한다.

 

아, 잊을 뻔했다.

결혼하자.

 

 

2011. 4. 1

 

 

 

 

 

 

 




2011.03.30 08:48

아침 지하철에


  아침 지하철에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앉았다. 파리 한 마리가 꼭 실뭉치처럼, 가방 위에 얌전히 앉아 있다. 지하철이 덜컹거릴 때마다 가방도 들썩거릴 텐데 파리는 좀처럼 자리를 뜰 기미가 없다. 둘러보니까, 지하철 안에 파리가 안전하게 쉴 곳은 마땅찮아 보인다. 날아갈 기운도 시원찮은 것일까. 어쩌지 못 해서, 내릴 때까지 그 자리에 두었다. 


  갑자기 드러나는 풍경처럼 오는 문장이 있다. 준비 못한 마음이 어쩔 틈도 없이 덥치듯이 오는 문장들이다. 


  멜랑꼴리미학.이라는, 아마 작년 가을쯤에 산 듯한 책을 읽다가 관두었다. 입맛에 맞지 않았다. 대신 중국어 단어책을 출퇴근길에 보기로 했다. 출장을 가면 중국어로 된 자료를 잔뜩 받아 오는데, 아무래도 더 이상 중국어 자료를 못 본 척 넘길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기사를 쓰려면 방대한 중국어 자료를 외면할 수 없다. 여행길에 부족한 중국어로 주워 들은 몇 마디 말만 조합해서는 바닥이 뻔한 문장에 그칠 것이다. 아침에는 답답해서, 가방 속에 든 책은 안 꺼내고 음악이나 크게 들으면서 한 시간 출근길을 왔다. 






2011.02.25 12:35

마음만 동동


읽지 않은 책이 쌓여간다. 읽어야 할 것 같으니까, 읽고 싶으니까 사모으기는 하는데 좀처럼 안 읽는다. 일 바쁘다는 핑계로 함께 책 읽던 모임도 관두고 나니 더 안 읽는다. 책장 앞에 설 때마다, 뿌듯한 마음보다 답답한 마음이 더 커진다.

어설프기는 해도 사진사라는 명함으로 몇 해쯤 살았다. 직업을 바꿔서 십 년쯤 더 살아볼까 한다. 사진을 찍는 동안에도 손에서 놓지 않았던, 글쓰고 사람 모으고 몰려다니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볼까 한다. 결심은 이미 했고, 두어 달 준비한다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시작부터 실패를 생각하는 일은 잘 없으니까, 될 거라고 기대한다. 잘 될지 안 될지 확신은 못 해도, 재미있을 거라는 확신은 한다. 별처럼 명멸하는 삶이다. 빛나게 한 세상을 살아야 한다. 

내 블로그가 있고, 에프상하이 사이트가 있고, 승희와 함께 쓰는 블로그가 있다. 버려둔 웹진도 있다. 거기에 이번에 시작하는 작업 사이트까지 합치면 관리해야 하는 사이트가 다섯 개가 되는 셈이다. 하나도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다. 닦고 문지르면 다들 신날 곳인데 그러지 못 했다. 아마, 두어 개는 접어얄 것이다. 이제 직업으로서의 사진을 관두면, 에프상하이도 관둘까 싶다. 아쉽기는 해도, 생겨난 것이 사라지는 것은 순리에 맞다. 아니면 새 사이트와 통합해서 운영할 수도 있다. 그 때 가서 볼 일이다. 어떤 형태가 되든, 지금처럼 빈집 모양 버려진 꼴이 보기 싫다. 공간이 없어지면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시간 지나면 익숙해 진다. 필요하다면 새 공간이 저절로 생겨날 것이다.

한 달에 절반을 중국 각지로 출장다닌다. 그러니 원고는 많이 모이는데, 정작 원고를 가공할 시간이 부족하다. 결국 문제는 사람에서 멈춘다. 사진원고와 텍스트 원고를 한꺼번에 감당해낼 수 있는, 물론 중국어도 좀 되는 기자 하나만 더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국과 중국의 실무를 맡아줄 사람도 한 명쯤.

막대한 분량의 일을 해치우기 위해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정해진 시간틀 속으로 밀어넣는 형태가 아닐까. 가장 효율적인 일의 방식이 가장 좋은 삶의 방식일 수 있는지는 좀 더 고민해야 할 문제가 되겠지만 우선은 하려는 일이 기대되니까, 참 신난 한 때가 될 거라고 믿으니까 눈앞에 있는 일의 덩이를 해치우는 작업을 우선해야겠다.




2011.01.27 20:27

그 사람 없으니까,


승희는 한국에 갔다. 내가 안후이 출장일 때 가서 2월 말에나 온다. 안후이 출장은 예정대로 끝났고, 곧이어 있었던 이틀짜리 출장은 날씨 때문에 변경되어서 하루만 찍고 왔다. 설 연휴에는 구이저우의 소수민족 마을로 출장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현지 날씨가 엉망이라 안 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연휴를 꼬박 책상 앞에 앉아 보내야 한다. 출장 다녀온 안후이 성의 원고 작업을 비롯해 일거리는 천지다. 연휴 끝나는 날까지 작업 스케줄이나 짜고 사이사이 암장이나 다니면서 추운 겨울을 나야 한다.

장을 보아왔다. 그 사람이 없으니까 내가 살 것이라는 게 과일이나 과자, 빵이 전부다. 내일은 장에 가서 된장찌개 재료라도 좀 사와야겠다. 푸짐하게 해두면 3일은 먹을 수 있을 테다. 출장 다녀온 짐들을 풀어놓으니 방은 어느새 발디딜 곳을 살펴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 책상 아래에는 차곡차곡 쓰레기가 쌓인다. 야단치는 사람이 없으니 정리는 물 건너 일이다. 허전하다. 

좋은 것도 있다. 택시 내릴 때 영수증 안 받고, 마트가서 영수증 안 받아도 된다. 날마다 암장가도 뭐라 그럴 사람도 없다. 생각해 보니, 좋은 건 몇 개도 안 된다. 허전하다.

일이나 해야겠다. 연휴 작업 모드를 위해 모니터를 낮은 책상 위로 옮겨야겠다. 따뜻하게 난로 틀어두고, 일이나 해야겠다. 




2011.01.24 08:46

110124 마안산


  아침에 사이트 몇 곳을 둘러봤다. 오랜만에 가는 곳들이다. 책 리뷰도 읽고 정치 기사도 읽고 소설도 조금 보았다. 내용보다 인상적인 것은 날마다 새로운 계단을 하나씩 오르는 것처럼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는 그들의 컨텐츠였다. 기업이나 단체가 운영주체로 있는 곳은 또 그런대로 그럴 만하다고 하지만, 개인이 운영하는 블로그까지 단단하게 채워지는 것을 보면 참 부럽고 멋있어 보인다. 

  이번 출장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어제는 양말로 안 빨았다. 남은 양말로 충분하다. 내일 아침 비행기를 타고 상하이로 돌아간다. 긴 출장 중에 또 많은 것들을 계획했다. 돌아가면 하나씩 해야겠다.




2011.01.18 07:21

장갑을 꿰맸다



구멍 난 장갑을 꿰맸다. 아마 지난 출장 중에 어디 걸렸던 모양인데 검지 손가락 끝부분에 난 구멍은 조금씩 커졌다. 그냥 둘까 하다가 아직 많이 남은 출장 일정을 생각하니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았다. 장갑을 뒤집고 보니 생각보다 어려워서, 어디를 어떻게 꿰매야 하는 것인지 막막했다. 대충 아무렇게나 서툴게 몇 번 휘감았다. 손에 딱 맞던 장갑은 검지 부분이 조금 짧아졌다. 그래도 한 겨울 출장은 어떻게 버틸 만하겠다.

다시 이어진 출장은 이제 4일째인데, 벌써 한참이나 지난 것만 같다. 날마다 장소를 옮겨다니는 분주함 때문이다. 지난 번 장시성 출장 때는 날마다 옮겨다니기는 했어도 적어도 정해진 일정 안에서는 제법 쉬엄쉬엄 걸을 만했는데, 이번 출장의 일정은 더 빡빡하다. 어제는 장소 이동 중에 차 안에서 버거 하나로 점심을 해치웠다. 

집을 떠나있을 때는, 돌아가서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아진다. 새로운 계획도 막 생겨나서 얼른 집으로 돌아가 새로운 작업들을 시작하고 싶어진다. 

이번 출장은 25일에 끝나고, 돌아가면 곧장 다른 곳으로 짧은 출장을 간다. 그러면 1월이 간다. 설 연휴 동안 구이저우 성으로 가자는 제안이 있었는데, 현지 날씨가 나빠서 아마 진행되지는 못 할 듯하다. 조용히 집에서 안후이 지역의 책 원고를 쓰고, 연휴 끝나면 얼른 원고 넘기고 한국으로 가야겠다. 승희는 어제 한국으로 먼저 들어갔다.




2011.01.01 11:43

Studio Ditte


  오늘 아침에 뜨는 해를 보지는 못 했다. 어제는 fshanghai 맴버들 몇이 와서 같이 먹고 마셨다. 밤새 놀아볼까 했는데 다들 사정도 있고 또 지쳐서 그러지는 않았다. 그래도 정리하고 자려니 새벽 두 시가 가까웠다. 자는 사이에, 2010년은 어느새 2011년이다. 그랬던 것처럼, 한동안은 또 습관대로 2010이라고 쓰다가 얼른 2011이라고 고쳐쓸 것이다. 눈 뜨니 날이 밝아 있다.

  이틀 전에는 쑤저우에 다녀왔다. 작업했던 일 중에 빈틈이 보였는데, 그 빈틈이 결정적일 지는 1월 중순에야 알 수 있다. 하지만 1월 한 달 내내 나는 출장을 가니까, 문제가 될지 안 될지를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다. 뒷말 안 나오도록, 부족한 마무리를 해두기로 했다. 스냅 사진 한 장 찍겠다고 쑤저우로 갔다. 마침 승희도 일이 없어서 함께 갔다. 5분도 안 걸려서 해야할 사진을 해치우고, 쑤저우 시내를 좀 돌아다니다가 까페에 앉아서 오후를 보냈다. 새해 계획을 몇 가지 이야기했는데, 결혼과 작업 문제가 가장 컸다. 

  Studio Ditte는 실제적인 공간 이름은 아니고, 새해부터 승희와 내가 꾸릴 블로그 이름이다. 상하이.와 당대예술.을 주제로 잡고, 각종 리뷰와 인터뷰, 그리고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을 담기로 했다. 내 개인 블로그와 웹진 에프상하이를 통해 시도하던 작업들이 아마 스튜디오 디떼의 공간으로 몰릴 수도 있을 것이다. 뭐 좀 안타깝기는 하지만, 웹진의 실패를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올 한 해 동안, 승희와 내가 각각 100권 / 50권의 책에 대한 리뷰를 쓰기로 했다. 승희가 나보다 월등히 책 읽는 속도가 빠르고, 나는 출장 일정이 많아서 그렇게 정했다. 그리고 서로의 독서 목표를 달성하면 연말에 있을 보상도 정했다. 음악도 숙젳처럼 들어보기로 했다. 오늘은 그래도 새해 첫날이니까, '신세계로부터'라는 부제를 가진 교향곡을 들었다. 나는 교향곡이 좋은데, 승희는 차분한 소품들을 더 좋아한다. 장단점이 있는데, 교향곡을 들을 때는 아무래도 딴 짓을 할 수 없고 곡에만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배경음악으로 듣기에는 교향곡은 너무 정신없다. 그리고 소품은, 좀 심심한 면도 없지 않다.

  2011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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