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ju/Backstage

6.13 지방선거 후보자 촬영을 마치고,



# 1.

이제 날이 밝으면 아내와 아이와 함께 투표장으로 간다. 곰곰 생각해서 결정한 후보에게 앞으로 몇 년 잘 부탁한다고 투표할 작정이다.




# 2.

이번 지방선거에 나서는 세 명의 후보자를 촬영했다. 동등한 후보자의 지위는 오늘까지다. 투표일 저녁이 지나면 누구는 의원이 되고 누구는 야인으로 돌아가야 할 지도 모른다. 사진은 대상에게 애정이 생기는 작업이니까 나는 세 후보가 모두 잘 되기를 바라지만, 내 사진이 그 세 명의 소망을 이루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지만 꿈이 언제나 이루어 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투표일 하루 앞서 사진을 전했다. 당선되는 이에게는 선거 기간의 각오를 잊지 말라고, 또 낙선하는 이에게는 그 패기로부터 다시 응원받으라고 전하고 싶었다. 




# 3.

최선을 다해서 찍었다. 찍은 사진 중에 선거문법에 맞는 사진들은 뽑혀서 명함도 되고 현수막도 되고 공보물도 되고 선거벽보도 되었다. 그리고 내 컴퓨터에는 아깝게 탈락한 사진이 수 천 장이다. 그 중에 마음에 드는 것들 몇 장을 골라서 작게 프린트하고 봉투에 넣었다. 봉투 겉에는 후보들에게 전하는 이야기를 몇 줄 적었다.


# 4.

촬영장에 동행한 후보의 가족들은 참 든든해 보였다. 아버지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김영삼을 외치며 대통령 선거운동을 하셨고, 내가 중학생일 때 시의원 선거에 낙선하셨고, 내가 고등학생일 때 당선되셨다. 너무 어려서, 집 떠나 살아서, 아버지 선거를 한 번도 도운 적이 없다. 사진을 시작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니까 사진 제법 찍는다면서 아버지 선거 포스터 한 장 찍어드리지 못 했다. 아버지, 아버지.




# 5.

윤춘광 후보는 그 중에 가장 마음이 가는 후보다. 그에게 전하는 메모는 특히 마음 쓰였다.

"옳은 것을 마음껏 말할 수 있는 오늘이, 얼마나 많은 선배들의 헌신으로 얻어낸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꿋꿋한 세상의 선배로 남아주십시오."


# 6.

좀처럼 안 될 것 같은, 예쁘기는 하지만 이상적인 공약을 들고 나오는 후보들이 있다. 몽상가들이다. 흙을 움켜쥔 나무 뿌리처럼 현실에 처절하게 붙들려 사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말은 멀다. 그런 말보다는 생활에 가까운, 당장 눈에 보이는 변화를 주겠다는 말이 설득력 있다. 나도 당장 힘을 보태서 변화를 만들 수 있는 후보에게 투표할 작정이다. 그러나 한 걸음씩 걷는 자들의 도도한 흐름이 역사를 살려왔다면 걸음의 방향을 바꾸는 도전을 멈추지 않은 자들이 역사의 지향점을 만들어 왔다. 먹고 사는 일이 시급해서, 당장 내 지역과 내 나라가 처한 현실이 긴급해서 나는 표를 던지지만, 방향을 바꾸려는 자들의 목소리도 응원한다. 다음 선거 때는 그런 사람들의 포스터라도 찍어주고 싶다. 시켜만 주면.


# 7.

대통령이 가셨을 때 나는 한국에 없었다. 바다 건너 차려진 분향소만 겨우 들렀다. 그 뒤로 한참 동안 마땅히 있었어야 할 자리와 시간에 못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애써 외치고 노력해서 만든 좋은 시절에 나는 공으로 실려 간다. 빚진 거다. 그러니까 나도 내가 가진 힘을 보태야 마땅하다. 좋은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이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사진 몇 장 만들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라도, 시대에 분노하고 촛불을 들고 노란 리본을 매달던 사람들에게 진 신세를 갚을 수 있으면 좋겠다.


# 8.

이번 선거 프로젝트는 배경완과 함께 했다. 그는 서귀포 항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책을 만드는 사람이다. 오래 만나지 않았지만, 말이 헛도는 것을 경계하고 실체를 구하는 사람이다. 좋은 작업을 믿고 맡겨 주어서, 까다롭게 전체 과정을 감독해 주어서 순조롭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번 작업의 진행과 결과는 모두 배경완 덕분이다.





# 9.

후보에게 전하지도 았았고 어디에도 쓰이지 않았지만, 이번 작업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사진은 임시 스튜디오에서 텅 빈 공약판을 들고 선 후보의 사진이다. 텅 빈 감귤선과장에 급하게 차린 촬영세트에 후보는 서 있다. 정치인이라면 무릇, 보는 사람 없어도 신념을 지키고, 들어주는 이 없어도 신념을 외쳐야 한다. 부디 그래 주기를, 그래서 바르고 선한 정치인이 다시는 외롭게 쓰러지는 일 없기를 바라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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