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하게 등떠밀리니 백지도 채워지고
원고 마감하느라 이틀 동안 힘들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시간에 쫓겼다. 파편난 몽롱한 정신을 이리저리 수습하며 한 문장씩 잇대어서 겨우 글을 쓴다. 사진 작업과 달라서 글을 쓰는 일은 멍한 정신으로는 좀처럼 안 된다. 마지 못해 적어낸 문장이 인쇄되어 누군가에게 읽힌다는 게 생각하면 참 무서운 일이다. 읽는 이들은, 이 문장을 내가 벼려낸 회심의 한 줄이라고 믿고 볼 것 아닌가. 그래도 이리 성실하게 등떠밀리니 백지도 채워지고 밥값도 번다. 이렇게 벌어서 우리 식구가 먹고 살고, 함께 살 집도 지으려고 한다. 따지고 보면 고마운 독촉이다.
새로 이사한 사무실은 시내 프랑스 조계지 가운데 낡은 집의 2층이다. 오래 되어서 아귀도 안 맞는 철문을 열고 들어서면 작지 않은 뒤뜰이 나오고, 관리 안 된 뒤뜰을 가로질러서 좁은 계단을 오르면 단칸방 사무실이다. 방은 세모꼴 천장이 대들보를 드러낸 구조다. 넓은 나무 테이블 두 개를 붙여서 여러 사람이 함께 쓴다. 시내 가운데라서 크기에 비해 임대료가 비싸다. 좋은 글을 써서 임대료에라도 보탬이 되면 좋겠다.
언젠가 내게 될 책을 생각하는데, 한 권의 책을 인쇄하는데 나무 줄기 몇 개쯤 베어내야 할까? 나무에게 못 할 짓 하는 책은 쓰지 말아얄 텐데. 나는 다만 내가 보는 상하이를 한 줌 단어로 적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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