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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ju/-Weather

꺼낼 것이 있는 얼굴이 좋다


















작업실은 아직 지어지지 않았고, 밥벌이 사진은 아직 제주에서 할 게 없다. 어슬렁 어슬렁 탐나는 얼굴만 찾아 다닌다. 이 얼굴들을 모아서 개인작업으로 해볼까 싶다.


무엇인가 꺼낼 것이 있는 얼굴이 좋다. 이미 다 드러난 얼굴은 내가 끼어들 공간이 없는가 싶고, 별다른 흥미가 안 생기는 얼굴은 또 그대로 욕심 안 난다. 드물기는 해도, 나만 꺼낼 수 있는 얼굴이 종종 있다.


가마가 있는 도예가의 작업실에 다녀왔다. 보물처럼 모셔둔 흙더미, 잘 못 구워져서 바닥에 붙어버린 접시, 다음 번 불 넣을 때 쓸 장작 더미, 수학기호처럼 칠판을 가득 채운 메모가 있었다.


여러 도자기 중에 하필 옹기를 선택한 작가는 옹기처럼 말했다. 말은 수식어가 적고 매끄럽게 다듬지 않아서 옹기 표면처럼 덤덤하고 까끌했다. 가을 빛에 잘 마른 질감이었다. 장인과 작가의 경계에 대해, 작품과 상품의 균형에 대해 마침 내 상황과 겹치는 부분도 있어서 여러 가지를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못 했다. 다음에 만나더라도 굳이 따져 묻게 될 것 같지는 않다. 답은 각자 찾자. 


동그란 테 안경을 쓴 얼굴을 무심한 척 자세히 살폈다. 됐다, 저 얼굴, 할 수 있겠다. 명함을 건네고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어떻게 찍을 지는 안 떠오르지만, 얼굴 하나 모아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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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ju/-Weather

작고 조용한 방이다.



날은 아직 춥다. 아침 저녁이 쌀쌀하다. 요즘 매주 서너 번, 새벽 운동 간다. 제주종합운동장에 있는 야외인공암장에서 경희와 만나서 한 시간쯤 벽을 오른다. 아직은 홀드 잡을 때마다 손을 호호 불어야 한다. 하지만 해뜨는 시간이 조금씩 당겨지고, 운동하는 중에 어느새 날은 밝아서 맑은 날에는 벽 위부터 천천히 따뜻한 아침 빛이 닿는다. 좀 더 지나면 시원한, 그리고 좀 더 지나면 더운 새벽 운동을 할 수 있겠다.


새 차를 계약했다. 얼마 동안만 타자고 맘먹고 구입한 낡은 중고 자동차가 오늘 새벽에 드디어 탈났다. 시동이 안 걸려서 운동 못 갔다. 보험사를 부르고 어찌저찌해서 겨우 마루 어린이집 출근은 시켰다. 오래 못 버틸 걸 알겠다. 더는 안 될 것 같아서 전기자동차를 예약했다. 드림카를 산 것도 아니고, 은행 빚을 얻어 사는 것이고, 당장 손에 쥔 것도 아니니 별다른 감흥은 없다. 큰 지름 뒤에 아무 감흥이 없다는 사실이 어째 서글프다.


새 대출을 받았다. 다행스럽게도 집지을 땅값이 올라서, 얼마간 대출을 더 받을 수 있었다. 건축 견적을 따져보면 여전히 빠듯하다. 


네이버에 새 블로그를 만들었다. 아내와 함께 운영할, 내 제주 사진관 블로그다. 이런 저런 메뉴를 만들었다. 글쓰기는 참 편하게 만들어 놨더라. 그러면서 지금 쓰는 개인블로그에 대해 생각했다. 이 블로그는, 작고 조용한 방이다. 나는 이 방에서 가능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내 작은 이야기를 조근조근 할 것이다. 굳이 대상을 생각하며 테그를 달거나 존대를 하지 않아도 된다. 가만가만, 적을 것이다. 고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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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ju/-Weather

프로포토 Profoto Off-Camera Flash system B1, B2



프로포토 Profoto Off-Camera Flash system B1, B2 조명 사용기

빛? 만들어 쓰세요.










일러두기


- 여기 사용기에 쓴 사진들은 모두 profoto air B1, B2를 사용해 촬영했습니다.

- 리뷰나 사진을 다른 곳에 가져가실 때는 출처를 정확하게 적어주십시오.

- 제품 사진들은 프로포토 코리아 공식 사이트에서 스크랩했습니다. 

- 지속광을 쓰는 인테리어 촬영은 이 조명을 쓰는 경우가 드뭅니다. 그래서 리뷰는 인물사진으로 구성했습니다.

- 어차피 프로포토를 써야하는 상업작가들에게는 별 의미없는 이야기일 겁니다. 더 나은 조명이 있다면 더 나은 사진을 만들 여지가 많은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썼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직업사진가입니다. 중국과 제주를 오가며 주로 인물사진과 건축사진을 찍습니다. 직업사진가라는 타이틀이 사진 실력에 대한 기준은 아닙니다. 다만, 사진으로 밥을 벌어먹고 삽니다. 밥벌이니까 절박하고 치열하게 찍습니다. 직업이란 그런 것 아닙니까. 


 모든 직업에 있어서, 밥을 벌어먹는 과정에는 온갖 변수들이 침범합니다. 그 변수를 통제하고 때로 변수에 집어삼켜지기도 하면서 끝끝내 주어진 일을 해냅니다. 다들, 비슷하게 삽니다.


사진촬영 현장도 다르지 않습니다. 언제나 상상 밖에서 달려드는 변수와 싸우지요. 초점은 문제 없는지, 노출값은 잘 잡았는지, 메이크업이 갑자기 몸살 났다고 안 나오지는 않는지, 클라이언트가 일정을 바꾸진 않는지, 옷, 날씨, 장소, 모델. 심지어 베터리와 메모리, 작은데 꼭 필요한 케이블 하나까지. 언제나 완벽한 준비는 없는 것 같아서, 다 챙겼다고 생각해도 어쩐지 하나쯤 빼먹은 것 같아서 항상 불안에 떱니다. 그때쯤이면 진인사대천명.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준비를 다 했고, 그럼에도 문제가 발생한다면 어떻게든 수습만 하자고, 클라이언트는 모르게 하자고 혼잣말을 합니다. 임기응변은 직업인의 덕목입니다. 촬영은 그 변수들을 통제하고 타협하고 어쩔 수 없을 땐 무릎 꿇고 수습책을 찾으면서 결과물을 만듭니다.


 변수에 휘둘리는 나약하고 안스러운 직업사진가로서, 조명장비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많지 않은 몇 종류의 조명을 거쳤습니다. 지난 2년 동안은 Profoto에서 만든 휴대용 조명 profoto B1을 메인으로 쓰고 있습니다. 이 조명을 사용하기 시작한 후로 다른 조명은 잘 안 씁니다. 그러니까, 정착했다고 말해도 좋은 겁니다. 현재까지는요. 이게, 참 좋거든요. 이 좋은 걸 좀 소문내야겠다 싶어서 그동안 이 조명을 써서 찍은 사진들을 모으고 그때의 상황을 되살려서 이야기를 적으려고 합니다. 


프로포토에서 금전적 지원을 받은 것, 없습니다. 프로포토에 아는 친인척, 없습니다. 써 보니 좋아서, 사진도 한 번쯤 정리해야 할 것 같아서 적는 후기입니다. 그러니까 주최측의 농간은 의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뭐, 프로포토에서 기특하다고 조명이라도 하나 옛다하고 싸게 준다면 사람 된 도리로 그것까지 마다할 수야 있겠습니까. 


촬영 현장의 다양한 변수들 중에서도 조명은 제법 문제가 큰, 대접받는 변수입니다. 사진의 많은 부분은 빛을 포착하고 다루는 과정이지요. 원하는 양의 빛을 원하는 질감으로, 의도하는 부분까지 닿게 만들어야 합니다. 많은 상업사진에서 빛은 ‘인공 조명’입니다. 이 과정에서 사진가는 조명 장비에 의지하는데 이 조명이란 녀석이 말을 잘 안 듣습니다. 광량, 형태, 질감 등 신경 써야 할 것이 여럿입니다. 게다가 드물지 않게, 사진가의 의도를 무시하는 엉뚱한 빛을 쏘아대기도 합니다. 너무 밝은가? 그림자가 너무 짙은가? 서로 다른 빛이 너무 어색한가?


이 막막하고 난잡한 순간이, 프로포토의 조명이 힘을 발휘하는 지점입니다. 현장에서 느끼는 대로라면, 프로포토는 이 대단한 변수를 상수에 가깝게 바꿉니다. 상수는 고정된 값이지요. 이미 정해진 것이고, 따로 개입할 여지가 없는 겁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기하급수로 늘어나는 변수의 조합을 처리해야 하는 작업에서 큰 변수 하나를 날려버릴 수 있는 겁니다. 뭐, 살짝 과장하자면, 이쯤 되면 축복입니다. 


살펴봅시다. 촬영장에 축복처럼 쏟아지는 빛에 대해서.








프로포토는 스웨덴 태생의 사진조명 브랜드입니다. 상업사진판에서 조명으로는 제법 수위를 다투지요. 그들의 웹사이트를 보면 4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고 합니다. 다양한 사진 조명과, 그들이 쉐이핑 툴이라고 부르는 조명 액세서리를 만듭니다.


스튜디오용 파워팩, 전원을 연결해서 단독으로 쓰는 모노헤드 등 다양한 조명이 있는데, 그 중에 제가 쓰고 있는, 오늘 소개하려는 조명은 야외에서 쓸 수 있는 휴대용 조명입니다. 정식 명칭은 Profoto Off-Camera Flash system입니다. 줄여서 OCF입니다. 이 조명은 어떻게 하면 프로포토의 안정적인 조명을 야외에서, 별도의 전원 공급장치 없이 동일한 완성도로 구현할 수 있는가라는 고민에 대한 답일 겁니다.


그리고 그 고민의 연장선에서, OCF 시리즈에 특화된 다양한 라이트 쉐이핑툴을 함께 출시했습니다. 다양한 소프트박스와 뷰티디쉬, 컬러젤 등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 시리즈에 대응해서, 휴대하기 쉽도록 가볍고, 접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조명 컨트롤은 전용리모콘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현재 니콘, 캐논, 소니까지 발매되어 있습니다. 세 브랜드 외의 카메라는 공용 리모콘을 쓸 수 있는데 그 경우 TTL과 고속동조기능을 쓸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OCF조명과 OCF 쉐이핑툴, 리모콘이 세트메뉴입니다.




Off-Camera Flash에 현재까지 라인업은 B1과 B2 두 가지입니다. B1은 약 2년 동안 사용했고, B2는 프로포토코리아에서 진행한 리뷰프로그램으로 단 두 번의 촬영에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사용기 내용은 B1 비중이 높고, 제가 이해하는 프로포토는 아무래도 B1을 통해 얻은 것이 대부분입니다. 우선 B1을 이야기하고, 이어서 B2 이야기를 해보지요.





B1.


B1은,

http://profoto.com/offcameraflash/ko/the-products/b1/

이렇게 생겼습니다.


Spec.




이 조명을 선택한 첫 번째 이유는 단연 전원 공급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휴대성이었습니다. 콘센트로부터의 독립이지요. 어디든 마음에 드는 배경에 모델을 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충분한 광량, 심플한 조작체계도 선택의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외부 촬영에서 전원 공급은 큰 변수입니다. 좋은 배경을 찾으면 가장 먼저 할 일은 어디서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는지, 몇 미터짜리 전원 연장선을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이었습니다. 도저히 방법이 없으면, 아쉽지만 그 배경은 포기해야 했지요.


제 경우에, 미리 답사하지 못 한 촬영현장일 경우에는 15미터 연장케이블 2개, 8미터 연장케이블 1개, 혹시 몰라서 외부촬영용 대형 베터리 1개, 그리고 이도 저도 안 될 경우를 대비해서 휴대용 스트로보도 2개 준비합니다. 그래도 막상 현장에 도착해 보면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 닥치고 조명을 어떻게 가동할까 고민해야 할 때가 많았습니다. 변수의 세상이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B1 광고를 봤습니다. 훅, 가슴으로 밀고 들어오는 그 녀석을 거부하지 못 했습니다. 가격이 참 잔인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갖고 싶었습니다. 저 장비를 가진다면, 상상하던 모든 사진을 찍을 수 있겠다고 스스로를 최면 걸었습니다. 직업이라는 좋은 핑계도 있었습니다. B1은 두 가지 패키지로 판매됩니다. 조명 하나와 베터리, 충전기로 구성된 To-Go 키트, 조명 2개, 베터리 2개, 고속충전기가 포함된 Location 키트입니다. 고속충전기로 충전하면 완충까지 2시간이 안 걸리는 정도입니다. 저는 로케이션 키트에 베터리 두 개를 추가로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니콘 전용 리모콘도 구입했습니다. 이후에 추가로 컬러젤과 반도어를 구입했습니다.


득.템.!


이 장점은 큽니다. 고민의 큰 단계를 줄이거든요. 간편하기가 완전군장과 맨몸구보 차이입니다. 스킨스쿠버와 스노클링의 차이 정도 됩니다. 암벽으로는 인공등반과 볼더링입니다. 몸은 가벼워서 경쾌해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촬영에 대응할 수 있습니다. 훨씬 간편하게, 안정적으로요. 






바다 가운데서든,



바위 위에서든 마음껏 조명을 쓸 수 있습니다.





인터뷰 촬영 현장에서 일반적인 상황은 이렇습니다.


미디어들은 몰려들어서 인터뷰 순서를 기다리고 있고, 

공간은 협소하거나 넓은데 사람으로 가득 차 있고,

오가는 사람들 때문에 바닥에 전원선을 늘어놓기는 걸리적거리고

무엇보다 모델은 바쁩니다. 


이 와중에, 

현장에 적당한 배경을 고르고 모델을 세웁니다.

조명을 세우고, 찍습니다. 끝.

어때요? 참 쉽죠?


B1이 내세우는 장점은 휴대성과 안정성 외에도 1. 강력한 광량 2. 짧은 발광지속시간 3. TTL 등입니다. 하나하나가 멋진 기능이지만 세부 설명은 후반부에서 실제 촬영 샘플로 대신하겠습니다. 이런 기능들이 조합되면 결국 쉬운 촬영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합니다.


이 장소에서 광량이 부족하지 않을까? 저 배경까지 함께 밝아지는 건 아닐까? 거리가 너무 먼데 동조는 문제 없을까? 저 자리에 콘센트가 없는데 어떻게 연결하지? 모델이 움직이는데 흐려지지 않을까? 자연광이 너무 밝은데 스트로보가 안 터지면 어떡하지? 연속촬영을 해야하는데 발광이 따라와 줄까? 짧은 시간 안에 세 곳의 배경을 충분히 이동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했을 다양한 변수들을 이제 별로 신경 안 씁니다. 많은 변수들을 자연스럽게 잊게 만드는 것, 저는 그게 B1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예쁩니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선, 일체의 군더더기 없는 완성도. 기능성만으로 도달한 극점! 잡았을 때 속이 꽉 찬 듯한 질감과 든든한 만듦새까지. 예쁘다는데, 무슨 말을 더 보탤까요.






#Smaple 01







모델은 오랜만에 상하이에 들린, 그림값이 아주 비싼 중국 화가입니다. 장소는 어느 브랜드샵의 개장 파티. 종일 붐비는 곳에, 여러 미디어가 함께 취재하는 상황입니다. 제게 주어진 시간은 10분 남짓합니다. 잡지 아트디렉터의 선택지를 넓혀주기 위해 느낌이 다른 2개의 배경을 선정하고, 우선 한 장소에 모델이 있을 자리를 정한 다음 거기에 맞는 조명을 세팅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두 번째 자리까지 미리 준비해 두고 역시 그에 맞는 조명을 계산해 둡니다.


합동인터뷰가 끝나고 모델이 옵니다. 시작합시다. 첫 번째 자리에 모델을 앉히고 촬영 컨셉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합니다. 그리고 몇 장 테스트 촬영을 해서 조명을 세밀하게 조정합니다. 3분쯤 찍고 모델에게 잠시 양해를 구합니다. 두 번째 촬영 장소에는 미리 소파를 가져다 두었습니다. 이제 조명을 옮길 차례. 미리 테이핑해둔 자리에 얼른 조명을 옮기고, 생각해 둔 쉐이핑툴을 조명 앞에 설치합니다. 다시 모델에게 컨셉을 설명하고, 3분 정도 촬영합니다. 끝났습니다. 모델은 후반 인터뷰 장소로 이동합니다.


미리 도착해서 한 시간 가량 전체 장소를 둘러보고 장비를 꺼내서 준비해둡니다. 모델이 들어온 뒤 전체 과정은 15분 정도에 끝납니다. 이 과정에서 프로포토 B1이니까 가능했던 몇 가지 순간이 있습니다. 가장 큰 것은 케이블이 없었다는 겁니다. 촬영 배경을 옮길 때 수 십 명의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케이블을 연결하고, 촬영 내내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혹시나 선이 걸리지 않을까 내내 신경써야 합니다. 무엇보다 시간이 더 걸립니다. 또 있습니다. 전용리모콘은 TTL을 지원합니다. 우선 모델을 앉히고, TTL 모드로 한 장 찍습니다. 기본 광량은 조명이 알아서 결정합니다. 화면으로 사진을 확인한 후에 광량을 조금만 더하고 빼면 원하는 조명효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노출계로 일일이 노출치를 확인하는 수고와 시간을 덜어줍니다. 안정적인 광량과 신경 안 써도 되는 광질은 기본입니다.





#Smaple 02







#Smaple 03






전원을 공급받기 어려운 공간에서 진행하는 촬영도 충분합니다. 유기농 먹거리를 중국 전역에 회원제로 공급하는 회사의 임원들은 옥수수밭 앞에 섰습니다. 옷은 수수한 컨셉이고, 메이크업도 살짝만 했습니다. 유기농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조명도 쓰지 않은 듯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그렇다고 정말 안 쓸 수는 없습니다. 베이징의 날씨는 본래 스모그로 충만해서 흐립니다. 거기에 조명이 없으면 사진은 눅눅해 보일 겁니다. 빛을 살짝만 보탭니다. 살짝이라고는 하지만 밝은 날 야외에서, 여러 명을 동시에 조명하려면 휴대용 스트로보 광량으로는 어렵습니다. 옥수수밭에서 옆건물까지는 500미터쯤 됩니다. B1이 없다면, 이 배경은 처음부터 고려 대상도 아니었을 겁니다.


30년째 자전거를 만들어 온, 중국 자전거 천국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공장장입니다. 자전거로 가득찬 공간은 어디서도 전기를 끌어올 수 없습니다. 빽빽하게 들어서서 조명 옮기기도 쉽지 않고요. 전원선이 없는 B1이니까, 충분한 광량으로 쉽게 조명할 수 있습니다. 빽빽한 인상을 강조하기 위해서 망원렌즈를 썼습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리모콘으로 바로 광량을 조절해가면서 촬영하니까 더 쉽게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Smaple 04









역시 벌판에서 진행한 촬영입니다. 푸른 빛이 도는 새벽을 의도한 것은 맞지만 몇 장은 해가 떠오르는 새벽 느낌을 찍기로 했습니다. 어시스턴트 한 명에 B1 하나면 됩니다. 그리고 아이템 하나를 추가합니다. OCF 컬러젤입니다. 노란색을 선택합니다. 새벽 첫 빛의 느낌을 흉내낼 수 있습니다. 





본래 오전 강한 빛이 있는 자리였는데 재료 준비하고 이리저리 배치하는 사이에 빛이 슬금슬금 가버리려고 합니다. 빛이 오던 방향과 높이를 생각해서 최대한 비슷하게 B1을 세우고 최대광량으로 조명합니다. 따뜻한 느낌만 살짝 보태면, 아침 식사준비 자리가 생겨납니다.












#Smaple 05













실내암장은 개인적인 취미이기도 해서 꼭 작업해 보고 싶었던 공간입니다. 힘쓰는 클라이머의 등근육은 참 예쁩니다. 근육의 선을 살리기 위해서는 조명의 각도와 크기가 중요합니다. 모델의 등에 가능한 날카로운 빛을 주기 위해서, 길쭉한 소프트박스를 장착한 B1 하나를 클라이밍 벽 위에 올렸습니다. 기존 조명이었다면 쉽지 않겠지만 상관 없습니다. 원하는 곳 어디든 B1을 놓을 수 있으니까요. 이 빛이 벽의 가운데를 비추는데 좌우로는 넒고 앞뒤로는 좁은 빛입니다. 그리고 반도어를 장착한 B1 한 대로 모델의 옆 라인을 조명합니다. 조명 두 대 앞에는 모두 푸른색 젤을 붙여서 역동적인 컬러를 만듭니다.






새 인공암벽 공사현장입니다. 암벽 자체가 파란색이라 파란색 조명을 한 번 더 보탭니다.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작업하는 높이에 B1을 올립니다. 원하는 부분에만 빛을 보내도록 조명 앞에 OCF 반도어를 부착했습니다. 10미터 떨어진 아래에 있지만 방향을 맞추고 나면 광량은 문제가 안 됩니다. 조절은 리모콘 몫입니다. 주변 자연광에 어울리도록 TTL 모드로 촬영한 후 다시 메뉴얼 모드로 바꿔서 원하는 만큼 보태면 됩니다. 






#Smaple 06








늦은 오후 빛이 들어오는 공장 안에서 제품을 검사하고 있는 연륜의 공장장이 필요했습니다. 날씨는 흐린데 창문까지 멀어서 빛을 만들어야 합니다. 노란색 컬러젤을 부착한 B1 하나를 먼 곳에 둡니다. 그리고 얼굴에 맞출 B1 하나를 모델 정면에 둡니다. 늦은 오후빛으로 충만한 공장이 나타났습니다.



#Smaple 07









구두를 만드는 여러 과정에는 숙련된 장인들이 본인의 과정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손을 클로즈업으로 작업한 후, 한 명 한 명에게 다른 배경 컬러를 써서 작업했습니다. 인물에게 좁게 떨어지는 빛 하나, 배경을 밝히는 빛 하나. 모두 B1입니다.




B2.



한국 제주에 정착하면서 조명에 대해 고민이 생겼습니다. 일은 여전히 중국에 많고, 제주에서도 일을 준비해야 하니까요. 처음에는 매번 카메라와 조명을 트렁크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이게 두어 번 해보니 촬영도 하기 전에 장비 옮기는 일에 먼저 지쳤습니다. 그래서 조명 세트를 양쪽에 모두 두는 가능성을 생각했고, 그러자니 마침 관심있었던 B2가 궁금해졌습니다. B1을 쓰면서 느꼈던 유일한 단점은 무겁다는 것이었습니다. 드물지 않게, 모델의 머리 위에서 내려오는 빛이 필요한데 B1의 무게로는 그런 위치까지 조명을 올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실내라면 붐스텐드를 써서 올릴 수 있겠지만 야외에서 스탭 한 명이 장대 끝에 매달린 B1을 들고 있기는 어렵습니다. 2년 동안 B1을 쓰면서 더 가볍게 쓸 수 있는 B2는 어떨까 항상 궁금했습니다. 리뷰 모집 안내를 보고 마침 B2를 써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겨우 두 번의 촬영 밖에 할 수 없었지만 그때 찍은 사진과 그때 받은 인상으로 B2 이야기를 적습니다.


말하자면 첫인상입니다. 첫인상이 나중까지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이것밖에 제가 말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B2는,

http://profoto.com/offcameraflash/ko/the-products/b2/

이렇게 생겼습니다.




B2의 가장 강력한 힘은 역시 휴대성입니다. B1과 달리, 발광부와 전원부가 분리된 형태입니다. 조절부와 전원부는 하나로 합쳐져 있고, 발광부와 케이블로 연결합니다. 헤드는 정말 가벼워서 한 손으로 들고 다른 손으로 카메라를 들면서 촬영할 수도 있습니다. 베터리팩 하나에 헤드를 두 개까지 장착할 수 있어서 동시에 두 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실제 활용에서 더 유용했던 부분은 이 휴대용 조명에 최적화된 OCF 라이트쉐이핑 툴입니다. 별도의 어시스턴트 없이 단독으로 움직인다면 소프트박스, 뷰티디쉬 등 기존의 쉐이핑 툴은 부피 때문에 휴대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OCF 툴은 간편한 휴대가 가능하면서 원하는 대부분의 조명효과를 가능하게 만듭니다. 너무 익숙해져서 당연한 듯 쓰는 TTL 기능과 짧은 듀레이션 타임, 고속동조 기능 역시 절대적인 강점입니다. 이 기능들의 조합은 어떤 상황에서든 무엇이든 조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만듭니다.






#Smaple 08








발레리나.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이 치마를 때리면서 발레리나의 다리 선이 잘 드러나도록 기본 노출을 잡았습니다. 조명 세팅은 모델의 오른쪽, 화각 너머에 있는 창문에서 빛이 들어온다고 가정했습니다. 그리고 발레리나의 등근육 질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빛은 너무 부드럽지 않게, 강해야 했습니다. 안쪽에서 오는 빛은 노란색 젤을 붙여서 더 자연스러운 색감이 나오도록 했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위에서 뷰티디쉬 화이트로 조명해서 등근육의 선을 살려냈습니다.










#Smaple 09










음악가. 

바다에서 찍은 사진은, 주광에서, 멀리에서 소프트박스까지 끼우고 쓰기에는 광량이 부족했습니다. 샤프닝 툴을 모두 제거하고 시도했지만 여전히 광량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이 배경은 실패했습니다. 대안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조명을 가까이 두고 양쪽으로 조명해서 흑인의 피부에 집중한 사진을 몇 장 찍고, 해가 지기를 기다렸습니다. 붉게 타는 노을을 기다렸지만 흐린 날씨 때문에 저녁 붉은 빛은 없고 푸르게 어두워갔습니다. 때가 됐고, 조명이 힘을 쓸 만한 밝기가 만들어졌습니다. 바위벽 앞에 모델을 세우고, 조명을 벽 위에서 탑조명으로 세팅했습니다. 후작업으로 조명을 지워내고 결과물을 완성했습니다. 






B2를 리뷰하면서 개인적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부분은 낮의 태양광을 누를 만한 광량이 가능한가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무게는 합격이니까, 광량만 만족한다면 충분히 B1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프로포토 웹사이트에 올라온 내용에 따르면 B2 헤드 하나는 일반적인 스트로보 세 개를 합친 광량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히지만 스트로보 3개가 아쉬운 순간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부분은 B1이 유일한 선택이겠다 싶습니다. Profoto B2는 한낮의 태양과 정면으로 승부를 걸기는 어려웠습니다. 인물의 전신과 주변 환경을 함께 보여야 하는데, 한낮의 태양과 맞서서, 수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라이트쉐이핑 툴까지 장착하면 광량이 부족했습니다. 대안은 두 가지였는데, 촬영범위를 좁히거나, 태양이 기우는 시간대를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발레리나 촬영에서는 실내로 들어가서 광량 부족을 해결했고, 흑인연주자는 저녁 시간을 기다려서 작업했습니다.


기대했던 만큼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제대로 세팅하고 쓴다면 B1이 맞겠다 싶습니다. B2는 계속 이동하며, 조명의 미세한 조정보다는 부족한 빛을 채우는 역할에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바람 많이 부는 야외에서 쉐이핑툴을 장착한 조명은 따로 지탱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넘어집니다. 그러니까 결국 조명 하나에 스탭 하나가 따라붙어야 합니다. 게다가 넓은 공간에서 촬영하려고 할 경우 모델을 중심으로 조명 두 개가 충분히 떨어진 거리에 있어야 하는데 하나의 배터리팩을 공유해야 하는 B2 로케이션 키트의 한계 때문에 조명 두 개를 충분히 벌려놓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후반 촬영에서는 조명 하나만 사용하는 형태로 진행했습니다.


프로포토에서 제공하는 촬영영상에는 B2로 능숙하게 작업하는 작가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겨우 두 번 촬영으로 결론을 내리기가 조심스럽습니다. 제가 B1에 익숙해서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거나 제 결론은, B1을 추가로 구성하는 겁니다. 당분간은 체력을 키워서 제주와 상하이를 오갈 때마다 장비를 옮겨다니는 것이고요.






상업사진에서 상황에 꼭 맞는 장비도 있고, 그만하면 충분한 장비도 있고, 대안이 없는 장비도 있습니다. 조명이나 라이트 쉐이핑툴, 특수랜즈, 미세조정 헤드 등등. 그러나 많은 경우에, 이정도면 충분하다는 것들이 더 많습니다. 휴대성만 갖고 이야기한다면 작은 스트로보도 얼마든지 가능하지요. 이 어마무시한 가격을 감당하지 않아도 대안은 있는 겁니다. 


우선 스트로보를 고민해볼 수 있습니다. 요즘 나오는 휴대용 스트로보와 무선동조기를 활용하면 대부분의 촬영이 가능합니다. 광량이 부족하면 몇 개 묶어서 쓰면 됩니다. 재충전 속도, 발광 속도의 문제는 있겠네요. 상황에 따라 몇 개의 반사판을 더한다거나, 스트로보만 가지고도 비슷한 효과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애쓴다면 가능합니다. 애.쓴.다.면 말이지요. 다만 더 까다롭지요. 시간과 사람과 에너지가 더 필요합니다. 


더 저렴한 브랜드에서 비슷한 형태로 나오는 조명도 대안입니다. 얄미울 만큼 빠르게 카피 제품도 나옵니다. 현대 사진에서 조명브랜드가 만드는 차이는 생각만큼 크지 않습니다. 예전에 비하면 말이지요. 안정적이고 균일한 광량, 정확한 색온도 등 프로포토가 전통적으로 내세우는 장점은 이제 많이 힘을 잃었습니다. 디지털로 넘어오면서, 그리고 중국을 선두주자로 다양한 조명 브랜드가 상향 평준화된 기술로 스튜디오 조명을 만들어 내면서 대부분의 스튜디오 조명이 쓸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 줍니다. 가끔 안 맞는 색온도? 크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한 번씩 광량이 튀면? 한 장 더 찍으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조명 참 좋아요라고 말하는 것은, 이들이 끊임없이 더 나은 조명을 고민하고, 그 고민을 제품에 담아내면서 결국에는 사진가들에게 더 절실한 조명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프로포토 B1,B2를 권하는 것은 다른 조명들이 여전히 변수의 영역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외부 로케이션 촬영에 있어서라는 단서를 달자면 말이지요. B1을 쓰면서 제 작업 방식은 많이 간단해졌습니다. 











#Smaple 10


같은 조건으로, 빛을 살짝만 보탰습니다. 맑은 날 오후이기는 했지만 그늘이 섞여있어서 자연광만으로는 모든 배경을 활용할 수 없었습니다. 선남선녀 모델을 어중간한 질감으로 죽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강한 질감의 빛이 필요했으니까 은색 뷰티디쉬를 알맹이만 쓰기로 합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이 조명은 음, 비쌉니다. 객관적으로 비쌉니다. 사진을 직업으로 하고, 사진으로 장비값 이상의 금전적 가치를 생산하는 사람이라면 가격 탓하지 말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땅에 풀린 수 많은 카메라 중에 그걸로 밥벌어 먹는 사람의 비율이라고 해봐야 얼마나 되겠습니까. 미미할 겁니다. 이런 조명을 그들만의 전유물로 남겨 두기에는 이 조명은 마땅히 좀 더 많은 사람이 써도 될 만큼 좋고, 그렇게 더 많은 사람이 쓰려고 보면, 그러니까 그냥 비싼 겁니다. 


B1 조명 하나가 포함된 키트 가격은 250만원 전후인 것으로 압니다. 헤드 두 개에 고속충전기까지 포함된 로케이션 키트는 500만원 넘습니다. B2 역시 하나짜리는 250 전후, 두 개 세트는 400 가깝습니다. 리모콘이 50만원 입니다. 쉐이핑툴만 해도 소프트박스 하나가 20만원 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조명이 있다고 한 번 염두에 두면 좋겠다 싶습니다. 꼭 기억하고 있다가, 노려보고 있다가, 기회가 되면 적극적으로 써 보고, 또 더 기회가 되면 구입해서 촬영에 활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원하는 빛을 구현해 낼 수 있는가라는 부분이 물론 첫 번째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 기본을 해결하고 나면, 얼마나 더 쉽고 빠르게, 그리고 안정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다가옵니다. 쉽고 빠르게, 그리고 안정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면 나머지 에너지를 온전하게 사진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변수를 제거하고 그만큼의 주의력을 더 창의적인 사진을 만드는 것에 투자할 수 있다면 한 번 해볼 만한 시도입니다. 이왕 찍는 사진, 이 놈이라면 좀 더 재미있는 사진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빛, 만들어 쓰세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덧붙이며,

- 제품에 대한 더 자세한 소개는 프로포토코리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profoto.com/offcameraflash/ko/

- 프로포토코리아, 장비 좀 빌려주세요.

- 사진 필요하신 분, 저 일거리 좀 주세요. 

- Spacewhu.net 에서 더 많은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 혹시 궁금하신 부분이 있다면 아는 데까지 답해드리겠습니다.




Mobe Ban 반치옥

직업사진가. 

forgogh@gmail.com


페이스북 www.facebook.com/mobe.ban

인스타 www.instagram.com/mobe_ban

블로그 forgogh.net / 웹사이트 spacewh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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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배 선생님을 소개시켜 주세요.





인상적인 공연을 보거나 특별한 이야기를 듣거나, 좋은 음악을 듣거나 깊은 감동을 받으면, 


아, 저 사람 꼭 찍어보고 싶다.


생각이 든다. 내가 찍으면 저 사람 참 특별하게 찍어낼 수 있는데. 나만 찾아낼 수 있는 윤곽과 표정이 있을 텐데. 생각이 든다. 찍고 싶다는 갈증을 느끼면서 나, 점점 진짜 사진가가 되어가는 모양이다.





강요배.


찜했다. 처음 그림을 본 게 상하이 학고재에서 있었던 전시였다. 벽 하나 통째로 채운 바다 그림이었다. 마침 제주도 이주를 준비하던 때였으니까, 제주도에 가면 꼭 만나보고 싶다, 생각했다. 그러다가 이사 준비로 잠시 제주에 들렀을 때 마침 도립미술관에서 강요배 개인전이 있었다. 한쪽에서 화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었는데, 화가는 바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작업실을 두고 있었다. 제주 4.3을 다룬 그의 초기 작업도 봤다. 바다로 걸어가는 저 얼굴을, 느긋하게 한 일년쯤 따라다니면서 찍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빈 캔버스 앞에서 찍고, 물감을 개고 있을 때 찍고, 전시 준비중인 텅빈 갤러리에서 찍고, 산책가는 바다에서 찍고, 사나운 파도 앞에서 찍고, 물에 반쯤 담궈서 얼굴만 내놓고 찍고. 혼자 이런저런 구도를 상상하고 한 장 마다 어울리는 조명을 세웠다가 지웠다가 했다.


강요배를 취재해서 글쓴 사람을 발견해서 불쑥 연락했다. 


- 강요배 선생님을 소개시켜 주세요. 저는 사진찍는 사람인데요, 꼭 찍어보고 싶습니다.

- 아마 직접 연락하시는 게 나을 겁니다. 제주 화단의 어른이시라 그분 의견을 여쭤얄 겁니다.

- 건너건너 소개받으면 좀 쉽게 허락하실 줄 알았지요. 네, 알겠습니다.


대화는 대충 이렇게 끝났다. 장비는 상하이에 있고 찍고 싶다는 생각 뿐 찍어서 어디에 쓸지 생각도 없으니 당장에는 기약이 없다. 그래도 꾸깃꾸깃 접어 셔츠 윗주머니에 넣고 잊은 메모지처럼, 언젠가는 꼭 찍는다. 그런 그림을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내가 끝내주게 찍어낼 수 있다. 그거 하나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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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재간

소소재간




친구의 작업실 겸 작은 매장이 문을 열었다. 소소하게 떡을 마련해서 동네 이웃들에게 돌리고 치열하게 만든 소소한 것들이 판매 테이블 위에 자리를 잡았다. 며칠 전 갔을 때만 해도 워낙 진도가 안 나가서 이게 도대체 약속한 날짜에 될 일인가 싶었는데, 둘은 어엿하게 예고한 날짜에 문을 열었다. 며칠 밤을 새웠겠지만.


그래피티 작업을 하던 한디와 옷을 만들던 아내는 제주를 기억할 만한 작은 것들을 만들고 모아서 가게를 열었다. 자신들처럼 수줍게, 가게 이름도 소소.한 재간.이란다. 예쁜 이름이다.


이 섬은 멋지고 독창적인 사람들이 많이 모여든 곳이니까 그런 사람들을 닮은 가게도 많다. 그것들 모두 제 색깔로 빛났으면 좋겠다.  제주 정착 넉 달 만에, 나도 지인 가게라고 소개할 만한 곳이 하나 생겨서 좀 뿌듯하다. 한 뼘쯤 더 제주사람이 된 것 같아서.


개업축하하러 가서 나는 잡동사니를 넣어다닐 작은 천가방을, 아내는 아이패드를 넣을 파우치를 샀다. 마루는 개업 파티용으로 준비해 둔 사탕을 여러 개나 먹었다.


소소재간. 소소한 빛들이 오후마다 재잘거리기를 빈다.


- 귀덕사거리에서 보면 그래피티로 벽을 채운 가게가 보인다. 당근케익 가게 옆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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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느리게 가는데 세월은 참 빨리도 간다.






얘야, 시간은 느리게 가는데 세월은 참 빨리 간다.


백발의 할머니는 이제 가끔씩은 치매 기운도 있다고 했다. 마냥 꼿꼿해 보이시는데, 어떤 날은 하루 열두 통도 넘게 전화하신다고 했다. 마침 찾아뵈었을 때는 가만 방에 앉아 계시다가 우리 일행을 보고 말씀하셨다.


시간은 느리게 가는데 세월은 참 빨리도 간다. 사는 게 그렇다. 


아직 세월을 살아보지 않은 나는 다만 그 말이 아름답게만 들렸다. 


그러게요, 할머니. 여전히 참 정정하세요. 백발이 보기 좋아요.


아름다운 말을 잊을까 봐서, 돌아나와 얼른 메모장에 받아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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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18

1월18일 페이스북 메모를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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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비행기로 도착해서 택시 타고 집에 도착했다. 아내는 아직 밤 운전이 서투니까. 아내가 잘 교육시켜서, 문 열자마자 마루는 달려와서 안겼다. 새로 사 온 작은 자동차를 꺼내서 잠시 점수를 땄다. 와인레드 색깔이 매력적인 12cm 맥퀸 자동차다. 마루는 이게 뭐가 좋은 건지 모른다. 타오바오를 다 뒤져도 이 사이즈에 이 색깔은 하나 밖에 없었는데. 너는 아직 안목이 없다! 마루는 방으로 가서 갖고 있던 장난감들에게 새 장난감을 인사시켰다. 식구가 늘었다.


아이가 잠들고, 아내와 도란도란. 지난 열흘 넘는 시간 동안 출장 이야기도 하고, 만났던 사람들, 새로 한 생각들을 이야기했다.


없는 동안 바람이 빠져버린 자동차를 수리해야 하고 집 짓는데 필요한 사전 작업을 해야 하고 인허가 문제도 챙겨야 한다.


집 오니까 참 좋다.

다시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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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14


1월 14일. 페이스북 메모를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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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한 가지 통로만 가지는 것이 더 멋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이렇게도 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할 수 있는 사람 말고, 자신이 지닌 단 하나의 수단으로 밖에 전할 수 없는, 그래서 그 하나의 수단에 절대적으로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작가가 더 멋있다.


그 하나의 수단을 빼면 불구에 가까워서 차라리 안스럽다. 안스러워서 아름답고 멋있다. 여러 예술 장르를 넘나드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작가상은 아니다. 내 기준에서 보면 그들은 엔터테이너에 가깝다.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작은 창문만 가진 사람. 그 작은 창문으로 어떻게든 바깥을 보고 바깥에 소리치려는 작가의 절박함은 진심일 거다. 그런 작품을 듣고 보는 마음이 어찌 행복하지 않을까.


전인권의 노래 부르는 모습이 점점 힘겹다. 말도 점점 더 어눌해 진다. 그 어눌한 몇 마디 말을 마치고 노래를 시작할 때, 절박하고 절대적인 아름다움이 그에게 깃든다. 아, 예술가여.


어르신, 오래 건강하시라. 부디.


오랜만에 간 난징은 마침 날씨가 좋았다. 클라이언트는 준비가 덜 됐고, 나는 장비만 남겨두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다음주에 다시 가서 찍기로 했다. 기차 타고 오가는 시간이 휴식같아서, 추가촬영 요구를 가볍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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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08



낯선 것을 보여주는 사진은 시선을 끈다. 오지의 풍경, 이국의 사람, 갈 수 없는 곳을 찍은 사진은 그 내용으로 충분히 신선하다. 보는 재미가 있다.

낯설게 보여주는 사진도 시선을 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익숙하다고 믿었던 일상의 풍경이 한 장의 사진 속에서 생소한 대상으로 바뀌어 있을 때, 낯선 인상으로 드러날 때, 관람자의 당연함은 흔들리고 즐거운 충격을 받는다.

사진가는 다양한 방식으로 ‘낯설게 보여주기’를 시도한다. 카메라와 렌즈의 다양한 효과를 활용하거나 인상적인 빛을 발견하거나 때로 만들고 어울릴 수 없는 것을 한 화면에 조합하거나 시선이 포착할 수 없거나 포착하지 않는 순간을 노리기도 한다. 어떻게든 인식에 대한 기존의 공식을 깨려고 애쓴다.

사진가는, 당신의 확고한 질서에 균열 하나 내겠다고 악을 쓰는 악동이다.

뭐, 사진가 뿐이겠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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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07

주말이어서 아침 지하철역이 널널하다. 텅 빈 통로를 지나는데 여자 한 명이 내 앞을 가로질러 간다. 의식하지 못 했다가, 향기가 나서 알았다. 꽃향이다. 주말 아침부터 단장하고 저 사람은 어디로 가나.

외모와 장식에서부터 화려한 사람보다는 수수한 듯 차린 사람이 뿌린 향을 맡을 때 더 행복하다. 의외의 인상이 좋아서다. 수수함 속에 번져나오는 향은 하나의 점으로 상대에게 닿는다. 화려한 사람의 향수는 그 화려한 장식 가운데서 살기 위해 치고 박는 것 같아서 처절해 보인다. 덜 예쁘다. 파트라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를 읽으면서 냄새의 절대적인 영향력과 파괴적인 힘을 처음 의식했었다. 지나치면 좋을 게 없다는 말은 여기에도 통한다.

좋은 향을 뿌리고 길 가는 여자는 세상에 이로운 사람이다. 갑자기 맡는 향기는 건조한 걸음을 순식간에 화려한 산책길로 바꾼다. 향기는 지난 기억들 중에 좋은 것들만 끄집어 낸다. 잠시동안 나는 행복하고, 참 고마워서 속으로 인사한다. 고맙다, 여인아.




20년 좀 안 된, 중국에 처음 도착했던 날의 향기를 기억한다. 상하이 홍차오 공항 바깥, 버스 주차장이었지 아마. 사실 그 향은 잊었다. 다만 그 향을 맡았던 때의 인상만 남아 있다. 뿌린 지 한참 된 향수처럼 흐릿하기는 해도.
불쾌하지 않았다. 제법 낯설고, 신선했다. 아, 중국은 이런 냄새가 나는 곳이구나 싶었다. 그 뒤로도 한참동안 중국에 돌아오면 여권에 입국도장 찍듯 그 향을 찾았다. 반가움과 안도가 섞인 냄새였다. 한국이 편하지 않고, 어서 빨리 다시 도망치고 싶었던 때. 누구에게나 언제쯤은 있었을 것 같은 그런 때가, 내게는 그때였다.

나는 겨울에 따뜻하고 화려한 향을, 여름에는 시원하고 직선적인 향을 뿌렸다. 막 뿌린 향보다, 뿌리고 하루쯤 지난 외투를 다시 걸칠 때 맡는 은은한 향이 더 좋았다.

몇 년 된 클라이언트, 오사다이oshadai를 만날 때 향수를 뿌리지 않았다. 브랜드 성격이 과장하지 않고, 덧대지 않는 것이었다. 오사다이를 운영하는 다이디戴娣는 브랜드와 닮아서 화장도 거의 안 했다. 그런 자리니까, 내가 향수를 뿌리면 너무 튈 것 같아서 오사다이 미팅에 갈 때면 향 없이 갔다. 그때쯤 문득, 향수의 향이 내게 없는 것을 내게 덧대려는 것 같아서 향수를 안 써야겠다 결심했다. 좋은 향은 여전히 좋지만, 아내의 선크림 냄새가 나는 참 좋지만, 내가 쓸 향수는 더 사지 않는다. 겨울에 어쩔 수 없이 바르는 로션은 향이 없는 것으로 따로 구해 쓴다. 몇 년 됐다.

그런데 요 몇 년 여름 땀냄새는 왜 이리 심한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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