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 기온이 조금 낮아졌다. 밤이 아주 조금 서늘해졌다. 또 한 계절이 간다. 아내는 마루를 보며, 매일 보고 있었는데 언제 저렇게 자랐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시간 가는 것이 그렇다.
더듬거리며 겨우 두어 줄 적어 두는 것은 몸풀기라고 생각한다. 갯바위에 서 있으면 한 번 두 번 작은 물이 오다가 이내 큰 파도가 온다. 작은 두어 줄 글 다음에는 큰 문장도 쓸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예전과 다른 문장.
내가 있고 지켜보는 내가 있다. 그 간격을 잘 조율하는 작업은 죽어야 끝난다. 하나의 내가 다른 나를 눈치보고, 하나의 내가 다른 나를 설득한다. 어떤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둘 사이의 간격이 좁은, 또는 거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또 어떤 수행자들은 수련을 통해서 둘 사이의 간격을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줄이기도 한다. 나는 겨우 다른 나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게 되었다.
매일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적어야겠다 결심한 것이 며칠 됐다. 태도라는 게 쉽게 변하지는 않아서, 이 결심도 벼락치기로 겨우겨우 해치우듯 하고 있다. 보통은 저녁 다 먹고 잘 때쯤 되면 '아, 안 했구나.' 싶어서 급하게 운동 조금 하고 라이트룸 열어서 사진 한 장을 인스타에 올리고 이 페이지를 열어서 메모를 적는다.
적고 싶은 생각이 없지 않지만 거의 대부분 짧게 숙제처럼 적고 마치는 가장 큰 이유는 졸음이다. 너무 졸려서 도대체 작정하고 적을 수 없다. 오전에 좀 멀쩡한 정신으로 적으면 좋을 텐데 일이 없는 오전도 마음만 바빠서 웹을 열어서 글 쓰겠다는 마음은 못 먹는다. 그렇게 텅 빈 오전이 가고 오후에는 비어 보낸 오전을 반성하며 일 조금 하면 이내 저녁이 온다. 밥 먹고 나면 졸리고.
육지 다녀올 일이 있었다. 휴대폰을 안 챙겼다는 걸 공항에 도착해서 알았다. 3일 일정을 하루 당겨서 급하게 돌아왔다. 겨우 이틀 다녀왔는데 몸은 일주일쯤 떠나있었던 것처럼, 좀처럼 적응이 안 된다.
바람
어제 아내를 돕겠다고 한참 해변에 있었다. 날씨가 흐리고 파도가 제법 높았다. 흐린 바다 저편에 작은 바위섬이 하나 있었다. 제법 킬로미터 단위로 떨어져 있는 섬이다. 몸은 조개껍질을 주우며 머리는 저 섬으로 건너가는 방법을 생각했다.
1. 오리발을 차고 헤엄쳐서 간다.
안 된다. 이 섬과 저 섬 사이에 흐르는 조류가 만만할 리 없다. 아마 중간 어디쯤에서 조류에 쓸려 난바다로 흘러갈 것이다. 설사 조류가 없다고 해도, 저기까지는 좀 무섭다.
2. 카약을 타고 노 저어 간다.
이것도 무모하다. 역시 문제는 조류다. 시작부터 포기한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어디 중간쯤 가다가 두 팔에 힘 빠지면 카약은 나뭇잎처럼 망망대해를 흘러야 한다. 집에 못 돌아온다.
음, 지치지 않고 저기까지 가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결론 내렸다. 바람을 타야 한다. 오늘 낮에 인터넷을 좀 뒤졌다. 딩기요트라는 것이 있다. 작고, 배우기 어렵지 않고, 강력하고, 무엇보다 제주에서 강습받을 수 있다. 물론 수업료도 이성적이다. 바람을 타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저기 섬이 문제일까. 제주 한 바퀴를 돌아볼 수도 있을 테다.
결심했다.
요트를 배워야겠다.
낚시를 좀 더 잘 하고 싶은데 제대로 배우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고 나는 인내가 부족하니까 자꾸 이런 저런 곁가지를 생각한다. 우선 생각보다 바다에 나갈 수 있는 날이 적은데 그건 당장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수영하러 갈 때 낚시줄에 미끼를 꿰어서 물 속을 보면서 낚시했는데 큰 고기들은 제법 똑똑한지 보고도 안 문다. 밑밥을 뭉쳐서 미끼와 함께 던져도 보았는데 작은 것들만 모인다.
카약을 찾아보는데 이게 가격도 가격이지만 크기도 커서 이걸 사서 타려면 우선 차를 바꿔야 하나 싶고, 그럴 수는 없으니까 구경만 한다. 그래, 제주는 바람도 많고 파도도 거친 땅이지. 카약은 아마 안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