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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게 등떠밀리니 백지도 채워지고









원고 마감하느라 이틀 동안 힘들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시간에 쫓겼다. 파편난 몽롱한 정신을 이리저리 수습하며 한 문장씩 잇대어서 겨우 글을 쓴다. 사진 작업과 달라서 글을 쓰는 일은 멍한 정신으로는 좀처럼 안 된다. 마지 못해 적어낸 문장이 인쇄되어 누군가에게 읽힌다는 게 생각하면 참 무서운 일이다. 읽는 이들은, 이 문장을 내가 벼려낸 회심의 한 줄이라고 믿고 볼 것 아닌가. 그래도 이리 성실하게 등떠밀리니 백지도 채워지고 밥값도 번다. 이렇게 벌어서 우리 식구가 먹고 살고, 함께 살 집도 지으려고 한다. 따지고 보면 고마운 독촉이다.


새로 이사한 사무실은 시내 프랑스 조계지 가운데 낡은 집의 2층이다. 오래 되어서 아귀도 안 맞는 철문을 열고 들어서면 작지 않은 뒤뜰이 나오고, 관리 안 된 뒤뜰을 가로질러서 좁은 계단을 오르면 단칸방 사무실이다. 방은 세모꼴 천장이 대들보를 드러낸 구조다. 넓은 나무 테이블 두 개를 붙여서 여러 사람이 함께 쓴다. 시내 가운데라서 크기에 비해 임대료가 비싸다. 좋은 글을 써서 임대료에라도 보탬이 되면 좋겠다.

언젠가 내게 될 책을 생각하는데, 한 권의 책을 인쇄하는데 나무 줄기 몇 개쯤 베어내야 할까? 나무에게 못 할 짓 하는 책은 쓰지 말아얄 텐데. 나는 다만 내가 보는 상하이를 한 줌 단어로 적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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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운동장에 앉아 개미를 구경했다


 





 한국 다녀왔다. 제주로 들어가서 이틀을 보내고, 거제로 가서 이틀을 머물렀다. 제주에서 처리하려던 행정 업무는 실패했다. 대학 졸업하고 바로 중국으로 떠나왔으니 한국에서 치르는 소소한 일이 모두 처음하는 일이 된다. 동네 이장님을 만나서 인사하고, 나중에 마루가 다닐 학교 운동장에 앉아 개미를 구경했다. 장인어른 장모님께 집지을 땅을 보여드렸다. 좋은 땅이라고, 좋아하셨다. 거제에서는 아마도 중국 떠나온 후 처음으로, 그러니까 10년 넘어서 집안 성묘에 참석했다. 학교 다니기 전부터 매년 따라나서던 집안 행사였다. 새벽 다섯 시 넘겨 시작해서 오후 4시에 마쳤다. 어른 수십 명이 낫을 들고 넓은 무덤터 산비탈을 위에서부터 베어내려오던 기억은 이제 추억이다. 요즘은 모두 기계를 짊어지고 풀을 벤다. 나도 처음으로 기계를 짊어졌다. 아버지는 이제 허리도 조금 아프고, 다리도 저린다고 하셨다. 부지런히 일해서 빨리 지을 테니, 집 짓고 나면 제주에 자주 놀러오셔서 손자에게 낚시를 가르치시라고 말했다. 


  아내와 마루는 한국에 더 머문다. 아내는 논문 자료를 정리해야 하고, 마루는 한국에 있는 동안 기저귀 떼는 연습을 계속 할 것이다. 5일 만에 돌아온 집은 눅눅한 습기 냄새가 가득하다. 아내도 아기도 없는 집에서 밤 늦게까지 밀린 원고를 쓰다가 아무렇게나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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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하늘에 구멍이 나서,







소나기가 몇 번, 내리다가 끊어지고 또 내렸다. 비가 충분하지 않아서 내리다가 그친 비는 창문에 온통 얼룩만 남겼다. 흙먼지를 뿌린 것처럼 뿌옇다. 낮에 잠시 뜨거운 햇빛이 났다가 다시 흐렸다. 늦은 오후에 하늘은 여전히 회색 구름이 가득했는데 서쪽 하늘에 구멍이 나서 낮은 저녁햇빛이 먼 곳에서 왔다.


태풍이 지난 지 며칠 되었는데, 바람이 여전히 세차게 분다. 태어나서 한 번도 하늘을 본 적 없을 것 같은 옅은 초록 잎의 뒷면이 일제히 드러났다.

페인트 새로 칠한 바닥에 흙발자국을 찍는 것 같아서 블로그에 첫 글 쓰기가 어려웠다. 10년도 훨씬 넘은 독립 사이트 방식을 이제 블로그로 옮긴다. fshanghai와 spacewhu는 계속 두고, 개인 사이트만 옮긴다. 상하이 생활을 차곡차곡 적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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