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ju/제주마루

마루가 찍은 사진























이 사진들은 모두 마루가 찍었다. 내 카메라 Ricoh GR2를 썼다. 



마루가 사진찍는다. 오전에 아내는 회의하러 가고, 마루와 둘이서 바다에 갔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따뜻한 거 한 잔만 하자고 마루를 꼬드겼다. 바다 앞 카페에서 핫초코를 나눠마시는데, 마루가 사진찍는다. 그냥 시늉이 아니라, 진짜 찍는다.


아, 아들이 사진을 찍는다.


카페 안에 있는 큰 토토로 인형을 찍고, 색깔이 화려한 맥주병을 찍고, 아빠에게 브이.하라고 찍고,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를 찍는다. 카페를 나오다가 여러 색깔로 칠한 소라껍데기를 보며,


아빠, 정말 예쁘죠! 정말 예뻐서 내가 꼭 찍고 싶었어요.


하며 찍는다. 사진이 무엇인지, 사진을 찍는 행위가 무엇인지 이제 알기 시작한다. 다섯 살은 그런 나이인가. 사진도 제법이다. 초점이 나가도, 수평이 안 맞아도, 흔들려도 괜찮다. 다행스럽게도 네 아빠는 사진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고, 다양한 시선의 사진을 두루 잘 볼 수 있는 사람이다. 다행스럽게도. 


마루가 찍은 사진은 썩 좋다. 아이의 높이에서 찍은 사진은 내가 보는 세상과 달라서 신선하게 보인다. 조금씩, 사진으로 대화하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겠다.


유치원 고학년쯤 되면 여친 사진 찍어서 포토샵 돌린다고 아빠 컴을 뺏을 날이 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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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18

1월18일 페이스북 메모를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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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비행기로 도착해서 택시 타고 집에 도착했다. 아내는 아직 밤 운전이 서투니까. 아내가 잘 교육시켜서, 문 열자마자 마루는 달려와서 안겼다. 새로 사 온 작은 자동차를 꺼내서 잠시 점수를 땄다. 와인레드 색깔이 매력적인 12cm 맥퀸 자동차다. 마루는 이게 뭐가 좋은 건지 모른다. 타오바오를 다 뒤져도 이 사이즈에 이 색깔은 하나 밖에 없었는데. 너는 아직 안목이 없다! 마루는 방으로 가서 갖고 있던 장난감들에게 새 장난감을 인사시켰다. 식구가 늘었다.


아이가 잠들고, 아내와 도란도란. 지난 열흘 넘는 시간 동안 출장 이야기도 하고, 만났던 사람들, 새로 한 생각들을 이야기했다.


없는 동안 바람이 빠져버린 자동차를 수리해야 하고 집 짓는데 필요한 사전 작업을 해야 하고 인허가 문제도 챙겨야 한다.


집 오니까 참 좋다.

다시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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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14


1월 14일. 페이스북 메모를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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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한 가지 통로만 가지는 것이 더 멋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이렇게도 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할 수 있는 사람 말고, 자신이 지닌 단 하나의 수단으로 밖에 전할 수 없는, 그래서 그 하나의 수단에 절대적으로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작가가 더 멋있다.


그 하나의 수단을 빼면 불구에 가까워서 차라리 안스럽다. 안스러워서 아름답고 멋있다. 여러 예술 장르를 넘나드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작가상은 아니다. 내 기준에서 보면 그들은 엔터테이너에 가깝다.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작은 창문만 가진 사람. 그 작은 창문으로 어떻게든 바깥을 보고 바깥에 소리치려는 작가의 절박함은 진심일 거다. 그런 작품을 듣고 보는 마음이 어찌 행복하지 않을까.


전인권의 노래 부르는 모습이 점점 힘겹다. 말도 점점 더 어눌해 진다. 그 어눌한 몇 마디 말을 마치고 노래를 시작할 때, 절박하고 절대적인 아름다움이 그에게 깃든다. 아, 예술가여.


어르신, 오래 건강하시라. 부디.


오랜만에 간 난징은 마침 날씨가 좋았다. 클라이언트는 준비가 덜 됐고, 나는 장비만 남겨두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다음주에 다시 가서 찍기로 했다. 기차 타고 오가는 시간이 휴식같아서, 추가촬영 요구를 가볍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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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08



낯선 것을 보여주는 사진은 시선을 끈다. 오지의 풍경, 이국의 사람, 갈 수 없는 곳을 찍은 사진은 그 내용으로 충분히 신선하다. 보는 재미가 있다.

낯설게 보여주는 사진도 시선을 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익숙하다고 믿었던 일상의 풍경이 한 장의 사진 속에서 생소한 대상으로 바뀌어 있을 때, 낯선 인상으로 드러날 때, 관람자의 당연함은 흔들리고 즐거운 충격을 받는다.

사진가는 다양한 방식으로 ‘낯설게 보여주기’를 시도한다. 카메라와 렌즈의 다양한 효과를 활용하거나 인상적인 빛을 발견하거나 때로 만들고 어울릴 수 없는 것을 한 화면에 조합하거나 시선이 포착할 수 없거나 포착하지 않는 순간을 노리기도 한다. 어떻게든 인식에 대한 기존의 공식을 깨려고 애쓴다.

사진가는, 당신의 확고한 질서에 균열 하나 내겠다고 악을 쓰는 악동이다.

뭐, 사진가 뿐이겠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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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07

주말이어서 아침 지하철역이 널널하다. 텅 빈 통로를 지나는데 여자 한 명이 내 앞을 가로질러 간다. 의식하지 못 했다가, 향기가 나서 알았다. 꽃향이다. 주말 아침부터 단장하고 저 사람은 어디로 가나.

외모와 장식에서부터 화려한 사람보다는 수수한 듯 차린 사람이 뿌린 향을 맡을 때 더 행복하다. 의외의 인상이 좋아서다. 수수함 속에 번져나오는 향은 하나의 점으로 상대에게 닿는다. 화려한 사람의 향수는 그 화려한 장식 가운데서 살기 위해 치고 박는 것 같아서 처절해 보인다. 덜 예쁘다. 파트라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를 읽으면서 냄새의 절대적인 영향력과 파괴적인 힘을 처음 의식했었다. 지나치면 좋을 게 없다는 말은 여기에도 통한다.

좋은 향을 뿌리고 길 가는 여자는 세상에 이로운 사람이다. 갑자기 맡는 향기는 건조한 걸음을 순식간에 화려한 산책길로 바꾼다. 향기는 지난 기억들 중에 좋은 것들만 끄집어 낸다. 잠시동안 나는 행복하고, 참 고마워서 속으로 인사한다. 고맙다, 여인아.




20년 좀 안 된, 중국에 처음 도착했던 날의 향기를 기억한다. 상하이 홍차오 공항 바깥, 버스 주차장이었지 아마. 사실 그 향은 잊었다. 다만 그 향을 맡았던 때의 인상만 남아 있다. 뿌린 지 한참 된 향수처럼 흐릿하기는 해도.
불쾌하지 않았다. 제법 낯설고, 신선했다. 아, 중국은 이런 냄새가 나는 곳이구나 싶었다. 그 뒤로도 한참동안 중국에 돌아오면 여권에 입국도장 찍듯 그 향을 찾았다. 반가움과 안도가 섞인 냄새였다. 한국이 편하지 않고, 어서 빨리 다시 도망치고 싶었던 때. 누구에게나 언제쯤은 있었을 것 같은 그런 때가, 내게는 그때였다.

나는 겨울에 따뜻하고 화려한 향을, 여름에는 시원하고 직선적인 향을 뿌렸다. 막 뿌린 향보다, 뿌리고 하루쯤 지난 외투를 다시 걸칠 때 맡는 은은한 향이 더 좋았다.

몇 년 된 클라이언트, 오사다이oshadai를 만날 때 향수를 뿌리지 않았다. 브랜드 성격이 과장하지 않고, 덧대지 않는 것이었다. 오사다이를 운영하는 다이디戴娣는 브랜드와 닮아서 화장도 거의 안 했다. 그런 자리니까, 내가 향수를 뿌리면 너무 튈 것 같아서 오사다이 미팅에 갈 때면 향 없이 갔다. 그때쯤 문득, 향수의 향이 내게 없는 것을 내게 덧대려는 것 같아서 향수를 안 써야겠다 결심했다. 좋은 향은 여전히 좋지만, 아내의 선크림 냄새가 나는 참 좋지만, 내가 쓸 향수는 더 사지 않는다. 겨울에 어쩔 수 없이 바르는 로션은 향이 없는 것으로 따로 구해 쓴다. 몇 년 됐다.

그런데 요 몇 년 여름 땀냄새는 왜 이리 심한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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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06

어제 비행기로 상하이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조금 짧아서, 열흘만에 들어와서 보름 안 되게 머문다. 이 도시는 또 비온다. 여기 없었던 지난 열흘 동안 계속 내리고 있었던 것처럼. 당연하지 않냐는 표정으로 비 온다.

한결같이 비 오고, 골목길이며 낡은 집이며 허물고 짓는 장면도 한결같아서 끊이지 않는다. 어느 날 보면 익숙했던 건물 하나가 반쯤 허물어져 있고, 다음에 보면 그 자리에 번듯한 새 건물이 들어서 있다. 순식간이다. ​

손짓 한 번에 가면을 바꾸는 변검만큼 빠르다.

낯선 곳에 온 여행자는 낡은 골목을 걸으면서 생소한 음식을 맛보고 이방인을 만나고 서툰 잠을 자면서 여행지의 인상을 몸에 새긴다. 몇 장의 사진도 찍는다. 여행자가 낯선 곳을 기념하는 방식은 대게 비슷하다.

도시도 나름의 방식으로 그 자신의 예전을 기념한다. 철거하던 중에 잊어버리고 남겨둔 작은 돌기둥으로, 용케 살아남아서 도로를 조금 먹고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로, 내부를 고쳤더라도 외관만은 100년도 더 된 모습인 주택으로, 사라지는 것만 긁어 모아둔 박물관으로.

여전히 익숙한 상하이지만, 집을 제주로 옮겼으니 이제 이 도시에 오는 것은 형식상 출장이다. 신분이 바뀌니 인상도 변한다. 나는 이 도시를 어떻게 기념해야 되는지 고민이다. 이렇게 몇 해가 더 지나고, 내가 이 도시에 머무는 시간이 조금씩 짧아질 때가 올 텐데.

나는 어떤 길, 어떤 음식, 어떤 사람, 또 어떤 장소와 냄새로 이 도시를 기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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