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oto B2 테스트 촬영. 발레리나, 연주자
profoto의 휴대용 조명 B2 리뷰어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봤다. 프로포토는 상업사진가들이 가장 신뢰하는 조명 브랜드 중에 하나이고, B2는 프로포토에서 만든 신형 휴대용 조명이다. 마침 2년 정도 전부터 B1 두 대를 쓰고 있었다. 제주와 상하이를 오가는 생활을 시작하면서 매번 조명과 카메라 장비를 가져다니는 게 여간 힘들지 않았다. 비행기 수화물 규정은 갈수록 까다로워져서, 드물게 생긴 B1 베터리 네 개는 매번 공항에서 꺼내고 넣기를 반복해야 했다. 상하이와 제주에 따로 조명을 마련해야 하나 고민중이었는데 마침 B2를 써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얼른 신청했다.
프로포토 조명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리뷰로 쓸 생각이니 접어두고, 촬영 이야기만 간단하게 적는다.
카메라를 제외한 모든 촬영 장비는 모두 상하이에 두고 왔다. 조명 삼각대도 없고, 라이트닝 툴도 없다. 필터도 없고, 무엇보다 내 든든한 어시, 알렌도 없다. 그리고 부러진 발은 깁스를 떼어낸 지 며칠 되지도 않았다. 나도 절뚝거리고, 촬영도 절뚝거릴 것이다. 어쨌든 리뷰용 조명은 받아들었으니 진행은 해야겠고.
# 1.
무용가는 언제나 탐나는 피사체다. 예술가는 다양한 소재와 기술, 방식으로 세상을 표현한다. 그 중에 다른 도구의 도움 없이 오로지 몸 하나로 표현할 수 있는 예술은 춤과 노래다. 손가락 마디 끝까지 감정을 담고 무대를 장악하는 몸짓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춤추는 사람의 몸은 참 예뻐서 볼 때마다 갖고 싶다.
낮은 기온에 바람도 분다. 모델은 괜찮다며 포즈를 잡아준다. 외부 광이 치마를 넘어오는 정도의 밝기를 기준으로 삼고, 거기에 맞춰 다른 조명을 설치했다. 무용가의 잔근육을 강조하는 것이 이번 조명의 핵심이다. 나는 포트레이트 사진가니까, 사진 속에 모델의 이야기가 담기면 좋겠다고, 생각만 그렇게 했다.
이동 중에 우리는 발레와 한국무용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국무용은 발레에 비해 무용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이 더 길고, 시간이 지날 수록 표현 또한 더 나은 경지에 이른다고 했다. 이나경은 그 과정을 '짙어진다'는 단어로 말했다.
아, 짙어진다.
귀한 단어 하나를 건졌다. 기술의 성숙이나 관록, 숙련 등의 개념을 생각하기는 했었다. 짙어진다.는 떠올려본 적 없는 단어다.
"현대예술과 달리 전통예술은 어떤 원형을 보다 완벽하게 재현하는 데 목표를 둔다. 현대예술에서 강조하는 새로움, 창의성에 대한 추구가 없는 전통예술가는 어디서 가치를 찾아야 하나?"
예전에 경극 배우를 인터뷰할 때 던진 질문이었다. 배우는 뭐라고 답하기는 했는데, 사실 기억에 안 남아있다. 그때의 내가 짙어진다.는 단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있었다면 그런 질문은 하지 않았어도 될 텐데.라고, 이나경의 짙어진다.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김훈은 그의 글에서, 나이가 들 수록 주먹 안에 쥔 모래알처럼 단어가 빠져나간다고 적었다. 그래서 한 줌 되지 않는 단어로 겨우 쓴다.고 적었다. 기억하기에는.
내가 갖고 있는 한 줌 안 되는 단어의 목록에 짙어진다.를 보탠다.
날씨는 예상과 달랐고 열악한 현장 상황은 답답했다. 그래서 결과물은 또 의도와 달랐지만 그게 한 두 번이던가.
오늘 촬영은 여기까지요.
# 2.
리뷰용 조명을 받아들고 제주로 내려오는 공항에서 악기 가방을 맨 흑인 연주자를 봤다. 대충 눈치를 보니 우리는 목적지가 같구나. 그렇다면, 나는 당신을 찍어야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고, 촬영하기로 약속했다. 며칠 뒤, 서귀포 아프리카 박물관에서 마마두를 다시 만났다. 여기 박물관에서 연주자로 일하는 마마두는 세네갈 사람이다. 동료로 만나서 결혼한 아내와 이제 갓 한 살을 넘긴 아들은 세네갈에 살고 있다. 어쩌면 마마두도 몇 달 뒤에 세네갈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대충 지도를 보고, 대충 여기쯤 풍경이라도 하나 있겠지 싶은 곳으로 차를 몰았다. 썰물에 바다가 밀려나가고 작은 물웅덩이 건너편에 세우고 웃통을 벗겼다. 신발도 벗겼다. 바람은 불지만 미안 미안. 얼른 찍고 끝내줄게.
음, 상황은 마음같지 않았다. B2는 내가 익숙한 B1보다 광량이 부족했고, 겨우 며칠 전에 목발을 놓은 내 다리는 여전히 절뚝거렸고, 바위는 거칠었고, 급하게 구한 일당 어시는 빛을 볼 줄 몰랐다. 미안해, 마마두. 옷 다시 입으세요.
리뷰용으로 제공해야 하는 사진 몇 장을 아쉬운 대로 찍고, 장소를 옮겼다. 슬슬 해가 지려고 한다. 기대했던 붉은 노을은 없지만 뭔가 찍기는 해야 한다. 이제 막 수능을 마친 고3 알바생을 험한 바위 위로 올리고 조명을 맡겼다. 우리, 딱 한 장만 하자.
겨우 마음에 드는 한 컷을 건지고 깜깜해진 해변에서 조명을 정리했다.
돌아와서 생각하니, 마마두의 연주를 모르겠다. 연주자를 찍는데 음악이 기억에 안 남았다. 서툰 촬영이었다.
# 1.
# 2.
'@Jeju > Backstag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웃는 눈이 닮았다. (0) | 2022.02.27 |
---|---|
퇴역 선장의 회고 (0) | 2019.05.23 |
작업일지 (0) | 2018.12.20 |
6.13 지방선거 후보자 촬영을 마치고, (0) | 2018.06.13 |
강요배 작업노트 170317 2pm. (2) | 2017.03.19 |
명함을 자주 바꿨다는 건
명함을 새로 만들었다. 크기가 손바닥보다 크고, 세 번 접는다. 접은 것을 다 펴면 길이는 A4 종이의 긴 변 만하다. 명함 안에는 사진을 인쇄했다. 내가 찍은 포트레이트 사진 몇 장, 패션 사진 몇 장을 실어서 내가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고 알려줄 수 있도록 했다. 또 QR 코드도 넣어서 명함에 실리지 않은 다른 사진들도 볼 수 있도록 했다. 나는 내 사진을 파는 데 서투니까, 명함이라도 이렇게 만들면 말 몇 마디 대신 한 번이라도 사진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결정했다. 우선 100장만 만들어서 다 쓰고, 아쉬운 부분을 수정하고 새로운 사진들로 바꿔가며 계속 만들 작정이다.
기억하는, 제대로 만든 첫 명함은 상하이에 와서 사진을 직업으로 삼으면서 만들었던 것이다. 짙은 회색의 얇은 코팅지를 썼고, 말라 죽어서 땅바닥의 갈라짐을 몸 위에 새겨놓은 숭어 한 마리의 사진이 있었다. 뒷면에는 for gogh 로고를 넣었다. 그러니까, 15년쯤 전이다. 이 명함을 얼마나 오래 썼는 지는 모르겠다. 받아든 사람들은 나름 특이하다며 반겨주었다. 물고기 명함은 우연찮게도 수주허苏州河 강변 작업실에 사는 동안 썼다. 스티로폼 바닥에 깔고 담요 덥고 잠을 잤던 그곳에서는 커다란 창문을 열면 바로 앞으로 누런 강이 흘렀는데, 나는 명함에 있는 물고기를 수 백 배쯤 확대한 거대한 물고기가 저 누런 강물 아래로 헤엄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꽤 자주 진지하게 했다. 내 물고기 사진을 아주 크게 인쇄해서 작업실 바깥 벽에 걸면, 아주 멀리서도 이 물고기를 볼 수 있겠구나 생각도 했다. 돈이 없어서, 못 했다.
끈적끈적한 탁한 붉은색을 좋아하게 되면서 명함에도 꼭 한 글자 정도는 와인레드 컬러를 썼다. 강변 작업실을 말아먹고 사는 동안, 잠시 여행잡지를 만들겠다고 한국과 중국을 오가던 동안 명함은 점점 단순해졌지만 핏빛같은 붉은 색을 꼭 조금씩 남겨 두었다. 명함은, 자주 바꿨다. 주소가 바뀌기도 했고, 직업이 바뀌기도 했다. 최근에는 작년에 잠시 열올리다가 관둔 직업 글쟁이 명함도 있다. 그 명함 받아들던 날, ‘이번 명함은 참 오래 쓸 것 같아요.’했던 말이 무색하게 일은 6개월 만에 끝났다. 서랍에 남은, 다 못 쓴 명함들은 불편한 마음으로 하나씩 찢어 버렸다. 회사생활이 아닌 내 일을 하면서 살아왔다. 명함을 자주 바꿨다는 건 아마도 방황했다는 뜻일 거다.
건축전시회에 갔다가 재밌는 명함을 봤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 명함과 다를 게 없는데 두께가 상당했다. 명함 안에는 A3 사이즈의 종이가 아주 여러 번 접혀 있었다. 일반 명함 용지 두 장을 앞뒤로 삼아서 기본적인 명함 정보를 담고, 사이에 들어가는 종이를 모두 펴면 건축사무소의 포트폴리오 이미지들이 펼쳐지는 형태였다. 오, 인상적이다! 이런 식이면 나도 내 포트폴리오 명함을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곰곰히 따져보고 관뒀다. 우선 접힌 면이 완벽하고 앞뒤 명함 종이의 네 귀가 딱 맞아들어가는 이런 완성도를 쉽게 구현하기 어려울 것 같았고, 사진 한 장이 너무 많이 접히면 보기 안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몇 번 수정한 끝에 지금 형태의 명함으로 결정했다.
명함에 내가 글쓰는 사람인 걸 꼭 넣으라는 말은 아내의 생각이었다. 낯뜨겁게 쓰기는 뭣해서, 인터뷰어.라고 썼다. 그리고 텍스트를 조밀하게 배치해서 이미지처럼 보이도록 했다. 역시, 내가 좋아하는 붉은 색을 조금 넣었다.
새로 만든 명함은 일반적인 명함 사이즈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느 정도 규격화된 것도 아니다. 크기가 커서 휴대하기 불편하고 또 구겨지기 쉽다. 몇 곳 샵에서 명함 케이스로 쓸 만한 다른 통이 있을까 찾아봤지만 모두 크거나 작았다. 마침 인조가죽으로 만든 휴대폰 파우치가 디자인도 심플하고 가격도 저렴했다. 하지만 이 명함이 기존에 있는 어느 휴대폰 사이즈와 비슷한 지 알 길이 없었다. 급한 대로 종이봉투에 넣어다니고 있었는데 마침 가죽공예를 하는 병수와 수정 부부가 놀러왔다. 작년 연말 파티에 왔을 때, 이왕 가죽공예를 할 거면 한국에 잠시 가서 배우고 오는 것도 좋겠다는 조언을 했었는데 그 사이 결심을 했고, 한국에 다녀온 지 얼마 안 됐다고 했다. 명함첩 이야기를 했더니 고맙게도 선물을 해주겠단다. 수정 씨는 크기도 작고 별 것도 없을 것 같은 명함첩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부탁한 사람이 미안할 만큼 많은 고민을 했다. 가죽의 선택에서부터 디자인, 그리고 마감과 실의 선택까지.
그래서 받은 명함첩이다. 명함 15장 정도를 넣을 수 있으면 좋겠고, 구겨지지 않으면 좋겠다는 주문을 수정 씨는 이렇게 소화했다. 작은 나무토막을 덧대서 틀을 잡고, 두툼한 가죽으로 마무리했다. 맞춤 옷처럼, 명함에 딱 맞다. 기존에 가지고 다니는 수첩과 휴대폰 케이스와 같이 있으면 한 쌍처럼 어울린다. 텅 빈 면을 어떻게 처리할까 하다가 명함에 있는 글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손때가 타면 글씨는 조금씩 흐려지고 지워지겠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을 거다.
새 명함이 나왔으니, 명함 잘 돌리고 사진도 더 많이 찍어야겠다.
'@Jeju > -Weath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0107 (0) | 2017.01.07 |
---|---|
170106 (1) | 2017.01.06 |
봐야지. 만나야지. (0) | 2016.03.24 |
직업 사진가로 돌아간다 (0) | 2015.10.31 |
마침 그 자리에 그런 빛이 떨어지고 있었다. (0) | 2015.10.18 |
2015년 짧은 글 모음
2015.08.11 22:28
소나기가 몇 번, 내리다가 끊어지고 또 내렸다. 비가 충분하지 않아서 내리다가 그친 비는 창문에 온통 얼룩만 남겼다. 흙먼지를 뿌린 것처럼 뿌옇다. 낮에 잠시 뜨거운 햇빛이 났다가 다시 흐렸다. 늦은 오후에 하늘은 여전히 회색 구름이 가득했는데 서쪽 하늘에 구멍이 나서 낮은 저녁햇빛이 먼 곳에서 왔다.
태풍이 지난 지 며칠 되었는데, 바람이 여전히 세차게 분다. 태어나서 한 번도 하늘을 본 적 없을 것 같은 옅은 초록 잎의 뒷면이 일제히 드러났다.
페인트 새로 칠한 바닥에 흙발자국을 찍는 것 같아서 블로그에 첫 글 쓰기가 어려웠다. 10년도 훨씬 넘은 독립 사이트 방식을 이제 블로그로 옮긴다. fshanghai와 spacewhu는 계속 두고, 개인 사이트만 옮긴다. 상하이 생활을 차곡차곡 적으려고 한다.
2015.08.02 23:24
원고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꽃파는 청년을 만났다. 장대 양쪽에 거는 꽃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고 벽에 기대 있었다. 우리는 함께 10호선 지하철을 탔다. 꽃 두 바구니가 들어가서 지하철 한 칸이 온통 환해졌다. 저 친구를 인터뷰 할까 말까 한참 고민했다. 하루 종일 더위에 시달리며 사진찍고 돌아가는 길이어서 나는 그냥 관두었다.
지하철 안에서 몇몇이 말을 걸었는데 하나도 팔리지는 않았다. 청년은 두어 정거장 가서 내렸다. 당신 덕분에 지하철이 환해졌다는 인사를 못 했다.
2015.06.22 09:00
만년필로 글씨 쓸 때, 종이의 질감에 민감해진다. 먹을 먹는 종이와 튕겨내는 종이가 다르다. 잉크의 굵기가 만드는 획의 질감도 있다. 펜이 흐르는 속도가 획에 그대로 드러난다. 글자마다에서, 생각이 툭 끊겼던 그 대목을, 만년필 획은 기록하고 있는 거다.
2015.06.18 16:38
쓰고 남은 휴지 몇 장, 공중 화장실에 두고 왔다.
엉덩이에 대보지도 않은 새것,
한 우주를 구원했다.
오늘의 착한 일.
끝.
2015.05.17 01:05
인터뷰 촬영이 있었다. 이제 잡지 촬영 따위! 안 가려다가, 다녀오세요. 아내 한 마디에 네. 순종하고 다녀오기로 했다. 모델은 중국 현대예술의 4대천황 중 한 명이라고 불리는 화가였다. 화가를 촬영하는 장소는 대부분 넓디넓은 공간에 드문드문 작품이 있는 전시장이거나, 총천연색 물감자국이 난무하는 바닥에 어울리지 않게 순백의 캔버스만 가득한 작가의 작업실이다.
오케이. 단색의 배경을 넓게 쓰고 화가를 작게 잡자.
조명은 두 가지 느낌으로 쓰자. 한 가지는 전체 공간을 밝게 쳐서 화면 전체가 화사하게, 또 다른 한 가지는 공간을 어둡게 가고 화가의 얼굴에 떨어지는 빛도 강하게. 그림 나오네. 두 장 중에 어느 장을 줘도 아트디렉터에게 항의 전화를 받을 일은 없겠지.
대충 머리 속으로 화면을 짜 두고 현장으로 갔다. 이런, 브랜드 론칭 행사장이네? 1층부터 레드카펫이 깔려있고 온갖 사람들이 웅성거리네? 단독 촬영인 줄 알았는데 미디어 연합 인터뷰에, 작가 작품이라고는 하나도 안 보이네? 건물 앞에는 벌써부터 통제선을 치고 필요한 사람, 허가받은 사람, 초대받은 사람만을 골라서 넣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아이 둘을 데리고 온 엄마는 정중한 사양의 말을 듣고 돌아섰다.
호기롭게 그려 왔던 이미지는 호기로운 속도로 무너졌다. 이제 수습을 걱정해야 한다.
30분을 확보해 주기로 했던 촬영 시간은 미디어 인터뷰가 길어져서 겨우 10분 남짓 쓸 수 있었다. 자연광이 들어오는 위치에 메인 조명을 두고, 반대편에 보조 조명을 올렸다. 그렇게 첫 번째 사진을 마치고, 얼른 건너편으로 옮겨서 강한 조명 느낌을 살려 두 번째 사진을 찍었다. 다행스럽게도, 에디터는 두 번째 사진에 환호했다. 우리는 작당했다.
두 장면을 모두 넘기면 분명히 아트디렉터는 첫 번째 재미 없을 컷을 고를 것 같으니까, 아예 두 번째 사진만 넘기자.
나는 10년 넘게 같이 일해 온 아트디렉터의 안목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만, 사진 취향이 다른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라, 첫 번째 장면을 묻어버리기로 합의했다. 기꺼이.
내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고, 이렇게 한껏 치장하고 있으니 아마 명품 브랜드가 맞을 것이다. 명품의 오프닝은 뭐랄까, 우스웠다. 3층짜리 매장 안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온통 검은색 옷을 입었다. 환한 매장 안에서 검은 파편들이 떠다니는 것 같았다. 입으라니까 입기는 했으나 도대체 왜 입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옷은 하나같이 어색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듯했다. 그 얼굴에서 전해오는 말이라는 건,
나, 여기에 잘 어울리고 있어.
나, 좀 되는 것 같아.
따위의 것들.
젊고 예쁜 여자들의 그 드러난 종아리며 늘씬한 허리선을 보면 몸매에 꼭 맞춘 옷이니 본인 것이 맞기는 할 텐데, 빌려입은 옷은 아니고 사람이 옷이 사람을 빌려 넣은 것처럼 어딘가 섞이지 않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때, 오호라.
나는 보고 말았다. 특히나 예뻤던 검은 옷이, 정돈한 표정과 구겨서 감춘 뱃살로 그럴 듯한 사람들을 상대하던 그 검은 옷이 1층에 있었다. 전자파리채를 휘두르면서.
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잘 못 본 게 아니었구나. 몇 시간 동안 거울 앞에서 치장하고, 비싼 사람들이 올 때 테이프 붙인 바닥면이 보일까 안 보일까를 고민하는 검은 옷. 없는 무게를 그렇게라도 만들어 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검은 옷. 나도 입었다고 어깨를 치켜세우고 말 몇 마디를 주고 받으며 서로의 검은색을 인정해 주는 검은 옷.
나는 안 보고 싶다. 안 엮이고 싶다.
나는 그 반대편에 서서 고래같은 사람들을 변호하는 글을 쓰려고 한다. 그들을 알리고 세우려고 한다.
행사장 한 켠에는 은발을 늘어뜨린 나이 든 남자 하나가 큰 덩치를 의자 위에 구겨놓듯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남자는 독일에서 왔고, 여기 전시된 도자기에 들어가는 세밀화를 그리는 일을 한다. 그림은 너무 작아서 돋보기가 장착된 간이 헬멧을 쓰고 그린다. 행사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상관하지 않고 작품처럼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사실, 작품처럼 앉은 남자는 매장이 준비한 상품이겠지. 이런 디테일은 이런 장인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 넣는다는. 그러니까 니네는 얼른 지갑을 열어 카드를 긁으라는.
이 봐요, 제가요. 실은 에디터인데요. 당신 인터뷰 좀 할 수 있을까요? 언제 한가해요?
남자는 뭐라고 답 하려는데, 제법 높아 보이는 검은 옷이 그의 답을 막았다.
남자는 영어가 서투니까, 아시아 담당 직원과 이야기하라고 나를 이끌었다. 이 뭐, 나보다 영어 잘 하더만. 당신은 들켰다. 이 남자는 회사의 소중한 자산이니까, 행여나 다른 루트를 통해 다른 일과 연결되지 않도록 하려는 뜻은 검은 옷만큼 선명하다. 존경하지 않더라도, 인정은 하고 있는 거지.
나는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당신의 섬세한 손길이 거쳐오고 닦아온 길에 대해 묻고 듣고 싶었다. 오프닝 파티에 장식품처럼 불려나온 당신을, 당신이 원하든 말든 변호하고 자랑하고 싶었거든.
인터뷰가 끝나가고 있었다. 촬영 중 흘려들은 그들의 질문은 ‘사회’, ‘시대’, ‘정부’ 따위의 단어들이 휘날리고 있었다. 검은 옷들 사이를 난무하는 단어들이란. 예술가에게 시대를 묻는다는 것이 우습다. 그들은 답을 모른다. 몰라야 맞다. 논리 밖에서 생각의 경계를 깨는 것이, 신나게 노는 것이 그들이 세상에 할 수 있는 기여의 전부다. 예술가를 논리 안에 묶지 마라. 제발.
검은 옷에게 명함 한 장을 받아왔다. 전자파리채를 휘두르던 그 옷이다. 예쁜 얼굴로 만면에 미소를 짓던 그 옷이다. 답장에 대한 기대 없이, 나는 언제든 은발의 남자가 다시 상하이에 오면 알려 달라는, 인터뷰를 하겠다는 제안서를 보내려고 한다. 무료변론을 지원하는 글쟁이의 각오로.
검은 옷들에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글쓰기 연습을 해야 하니까, 뭐가 되든 우선 꾸준히 써보려고 한다. 하루 중에 있었던 일을 골라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여 보는데, 쉽지 않다. 억지로 쓴 티가 여기저기 보인다. 이렇게라도, 붙들고 있다 보면 다시 되겠지. 손가락에 근육이 붙고 어느날 오버행 벽을 타는 암벽의 날들 처럼.
2015.05.05 15:08
싫다. 기다리지 마라.
무대는 네 거절의 말을 듣던 그날의 나처럼 어둡고 멀었다. 더 물러설 곳이 있다면 얼마든지 그랬겠지만 등을 맞댄 곳은 길이 끊어진 벽이었다. 작전을 잘 못 짰다. 배수진을 치지 말았어야 했다. 병서에 이르기를, 죽음을 각오할 때에 이르러야 비로소 쓸 수 있는 진이라고 했다. 꽃신 신은 네 발 앞에 툭, 내던진 고백. 네 거절만큼 내 고백도 비린내 나는 풋내 밖에 담은 것이 없었다. 하긴, 비장한 풋내가 내가 가진 전부였다. 살아갈 시간은 막막했고 뒤돌아 본 내 기록은 가늘어서 끊어질 듯한 모래톱이었다. 각오할 죽음 따위가 있기나 했겠는가? 내 몸 하나 버티고 서기도 버거운, 나는 겨우 스물일곱이었다.
성처럼 버티고 선 유리돔 안이니까, 사방의 빛을 끌어모은 찬란한 무대를 상상했었다. 관객석과 떨어져서 철망으로 가로막힌 무대는 적막하다. 무대를 가리고 있는 암막 커튼이 움찔거린다. 저 뒤에서 잠시 뒤의 공연을 준비하며 사방을 뛰어다니고 있을 써커스 단원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무거운 어둠은 관객의 목소리마저 가라앉게 해서, 서커스의 세상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바깥 일을 잠시 잊으라고 조용하지만 무거운 명령을 내린다. 객석 조명이 꺼지고, 관객들의 웅성거림도 꺼졌다. 고요. 무대 가운데 조명이 켜지고, 하늘에서 바닥을 향해 붉은 줄 하나가 추락한다. 이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무대를 주시하던 사람들이 지루해질 무렵, 웅성거림. 바로 그때를 기다려서 보이지 않는 꼭대기에서 여자가 줄을 타고 내려온다. 사타구니와 가슴을 겨우 가린 옷이 반짝거린다. 저 거다. 거대한 유리돔으로 들어온 빛을 차곡차곡 모아서 저 사타구니와 가슴 위에서 풀어내는 것이구나. 평면의 유리를 이어서 만든 원형의 돔 안에서 네 말은 네 마음의 어디쯤을 비추고 겹치고 반사했을까. 사방을 끌어와서 어디든 비출 것 같던 빛은, 어쩌면 거울 한 장의 빛만을 반복해서 굴절시켜 온 것은 아니었을까. 그럼, 그 한 장은 너이기나 했을까.
여자는 안전장치 하나 없어도 태연하다. 우아한 몸짓으로 줄을 타기도 하고 매달리기도 하고 어르기도 하고 껴안기도 하면서 내려온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진다.
속이지 마라.
붉은 줄에 매달려 유혹하던 탐스러운 허벅지야.
유리돔 같은 말들아.
위장에 걸린 풀을 되씹는 소처럼 네 거절의 장면을 몇 번이고 다시 불러세운다.
너무 많은 것을 기록하는 사진처럼 숨소리 실린 목소리의 균열도 생생히 기억한다.
서커스 여자의 몸짓은 점점 대담해진다. 관객이 위태로움에 익숙해 질때쯤 한 손을 놓기도 하고, 다시 익숙해질 만하면 일부러 조금 추락도 한다. 여자의 동작을 따라서 관객의 함성 소리가 파도처럼 출렁인다. 연기는 완벽에 가깝다. 위험한 동작 속에서도 여자의 미소는 얼굴 전체를 장악하고, 입술 끝 작은 떨림도 없다.
너라도 붙잡으면 세상을 버틸 수 있다고 믿었던가. 겨우 내린 붉은 줄을 휘잡고 흔들고 껴안은 게 너였던가 아니었던가. 슬픈 표정과 단호한 말로 추락을 예고한 것도 너였던가 나였던가. 세상의 빛을 모두 끌어모은 듯 사타구니와 가슴으로 빛났던 건 아마도 너였겠지. 더 이상 관객이 웃지 않는 무대의 광대처럼, 나는 또 막다른 골목에 등을 대고 서 있다. 악단의 북소리가 커진다. 여자가 마지막 동작을 준비하고 있다.
죽음을 각오한 몸뚱이를 던져 보지도 못 하고, 등 뒤를 둘러친 강에 빠져 죽지도 않고 나는 지금까지 안녕하다. 여자는 무사히 공연을 마치고 마침내 땅으로 내려와서 관객들에게 인사한다. 사타구니와 가슴은 빛나지 않고 여자는 환하게 웃으며 몇 번이고 고개 숙인다. 무대, 암전.
그래도 기다리마. 사실은 보았다. 아닌 척 했지만, 동작마다에서 붉은 줄을 간절하게 붙잡고 있던 네 손, 그 손 위에 돋아나던 굵은 혈관의 흔적. 너무 먼 무대에서 온갖 빛 아래 서 있는 너는 다른 세상의 사람 같지만, 부여잡은 손에 튀어오르는 그 핏줄 말이야. 무사하고 싶다는, 이 잠시의 공연이 끝나면 박수갈채를 받고 또 얼마 간의 돈도 받아서 그만큼의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그러고 싶다는 바램과 그러고야 말겠다는 끈적거리는 의지의 독백같은 거. 내 손등에도 그런 혈관이 두엇 있다. 그러니까, 나도 기다리기로 한다. 스물일곱이 지났지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사실, 내 스물 일곱이 어땠는지 기억 안 난다. 애써 뒤적거려 보면 몇몇 사건을 발견할 수 있겠다만, 안 그럴 란다. 일 때문에 부탁한 원고에 대해서 어떻게든 답을 해얄 것 같아서, 반대편의 입장을 상상하며 적었다. 주제와 톤을 원 글에 묶어두고 쓰려니 요즘 잘 쓰지 않은 느낌의 문장이 나왔다.
2015.04.26 22:47
15년 2월 12일.
검은 현무암 바위에 파도가 부딪쳐서 깨진다. 바람이 물의 몸을 입고 와서 온몸을 던진다. 마루는 거대한 현무암 바위 지대를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걸었다. 바위가 넓게 벌어진 곳은 아빠 손을 잡고, 그나마 나은 곳은 일부러 혼자 걸어 본다.
와, 마루가 여기까지 왔다.
아직 '나'라는 단어를 못 쓰는 마루는,
마루가 여기까지 왔다.
스스로에게 대견한 칭찬을 했다.
여기까지 왔다, 여기까지 왔다. 말이 예뻐서 마루를 따라 나도 말한다. 여기까지 왔다.
15년 2월 22일.
서점에서.
김연수는 참 맛있는 글을 쓴다. 그의 소설을 한 권도 제대로 읽은 적 없지만 언제나 쉭쉭 바람처럼 읽힌다.
너무 많은 책이다. 그 중에서 선택받아야 하는 거니까, 저자의 얼굴 사진으로 채운 표지들이 여럿이다. 표정은 대부분,
'니네 그거 모르지? 난 알아. 알아서 여기 이렇게 사진도 박았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공공화장실 변기 칸에 앉아 옆칸의 무사안녕을 빈다. 끄응. 신음소리의 끝이 작은 해방과 함께 하기를. 지금만큼 타인의 설사에 공감하는 때도 없으니까.
2015.04.21 19:03
멀리로 한라산이 흐리게 보인다. 구름의 덩어리는 산을 통째 밀어낼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산의 한쪽을 통째 밀며 올라온다. 빛은 그 구름 사이를 뚫어서 땅에는 그림자가 구름처럼 흐른다.
오름에 앉아있다. 소거죽에 붙어 살 것 같은 날벌레들이 많이 난다. 개미는 풀숲에 진을 친 것처럼 올라 붙는다. 멀리 보이는 도로에서는 개미만한 차들이 전쟁 난 개미처럼 꼬리를 물고 달린다.
완만한 곡선으로 유순해보였던 오름은 막상 붙어들자 호된 경사를 내세웠다. 겨우 10분 남짓 오르는데 몸은 땀에 젖었다. 숨을 몰아쉬었다. 사방 가리는 것 없는 민둥머리 오름에 올라서 보면, 땅에서는 보이지 않던 리조트와 고급 빌라단지도 훤히 내려볼 수 있다. 넓고 푸른 초원 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작고 낡은 창고들은 그들이 거느린 초원의 넓이만큼 높고 귀해보인다. 다닥다닥 붙어앉은 저택들도 그들 앞에서는 웅성대는 한낱 무리에 불과하다.
부동산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는다. 눈은 여전히 완만한 곡선을 여유롭게 더듬는데,
계약서는요,
그러니까 제 말은요,
매도인 쪽에서는 그렇게 안 한다는데요,
따위의 말들.
오름에 앉아 통화하는 부동산은 어쩐지 땅과 하늘 사이에 있다는 거기 어디쯤이라도 거래해야 할 것 같지만,
네, 복사해서 보낼게요.
그럼 목요일 아침으로 일정 잡아주세요.
다른 착오 없어야 해요.
맞다. 부동산은 구름을 팔지 않지. 벌거벗은 몸을 내보이라고 말하지.
2015.04.21 18:04
发现了一个老的护照。黑白的帅哥在里面。还有好多的章。
오래된 여권 하나를 발견했다. 홍콩에서 온 것이라고 했다.
여권에는 당당하고 멋스러운 남자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찍힌 도장들.
有人跟我说,
“一块吧,一块。你就买吧!”
很想买。只付了一块钱可以买得到一个丰富的人生,那就早晨的散步非常成功的!
但是还是不买。不用花自己的钱再买多一个人生,一个人生已经够复杂了。
구경하던 사람은 내게 1원만 내고 얼른 사가라며 부추겼다. 탐났다. 단돈 1원에 흥미로운 인생 하나를 살 수 있다면 거저다. 저 풍성했을 인생을 건질 수만 있다면 새벽 산책은 남는 장사가 될 것이다. 주머니를 뒤졌는데 아쉽게도 동전이 없었다. 주인을 쳐다보며 정말 1원이면 되냐고 물었지만 주인은 대답이 없었다. 나도 괜히 김이 빠져서 아쉽지만 내려놓았다. 어쩌면 안 사기를 잘 했다. 인생 하나를 애써 받아 안을 필요는 없잖나. 하나를 살아내는 것만도 버거운 세상에서.
2014. 5. 27
2015.04.21 17:12
한나절 내내 만년필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좋아서 쓰지만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선이 굵어서 답답했었다.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서 다 식은 커피 한 잔을 두고 재생지 색깔이 나는 냅킨 한 뭉텅이를 들고 와서 단단히 마음먹고 앉았다. 닙을 뽑았다가 꽂았다가 뺀 닙을 닦았다가 말렸다가 좁혔다가 눌렸다가 다른 만년필 닙이랑 바꿨다가 다시 돌렸다가. 만년필 관련 사이트를 십 수 페이지나 열어놓고 이런저런 시도를 다 했다. 어떤 방법을 써도 여전히 선은 굵고 종이 뒷면에는 번진 잉크 자국이 사방으로 지저분했다. 시도는 발악에 가까워졌다. 손은 온통 잉크에 물들고 잉크가 번진 냅킨 종이가 책상에 그득하다. 새 닙을 알아보기도 하고 가는 글씨에 좋다는 새 만년필도 알아보다가,
그냥 만년필을 뒤집어쓰기로 했다.
닙에는 이로 깨물어서 생긴 흠집이 생겼고, 조금 더 ‘내 만년필’이 되었다. 작은 불편함 하나 해결하느라 서너 시간을 보냈다. 익숙해진다는 것이 꼭 이렇다. 서먹한 것들끼리 어깨를 비비고 때로 생채기도 주고받는 시간을 보낸다. 어디 만년필 한 자루에 그칠까. 돌아보면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것 중 어느 것 하나 그렇지 않은 게 없었다. 최근에 몇 번을 넘어지면 배운 스케이트보드가 그렇고 여전히 서툰 내 사진도 그렇다. 그리고 여전히 치열하게 부딪치며 웃으며 살아가 주고 있는 가족들까지. 살다 보니, 어떤 불편함은 견디고 익숙해 지면 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 어떤 불편함은 애정으로 이어진다.
직업을 바꾼다. 당분간은 양다리를 걸치고, 점점 일의 무게중심을 옮겨 갈 작정이다. 사진을 손에서 놓는 일은 없을 테고, 여전히 사진이 내 밥벌이 수단이 될 테지만 그 비중을 줄일 작정이다. 글을 쓰고 꾸리는 일을 하기로 했다. 그러자고 보니 너무 오랫동안 독서랄 것도 없었고 문장이랄 것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글로 밥 벌어 먹고살겠다는 생각은 6년 전쯤 했는데, 그 뒤로 사진을 했으니 내 문장이나 독서는 그때 수준에서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 급한 마음에 이제라도 다시 글쓰기를 연습하고 독서를 이어가려고 한다. 숙제처럼 여백을 마주 보고 앉으니 여백은 끝 간 데 없이 넓어서 무섭다.
직업으로서의 사진에 지쳤던 이유 중에 사소한 한 가지는 너무 많은 장비에 눌린다는 생각이었다. 공항에 가면 작은 서류가방 하나만 들고 비행기 타러 오는 사람들이 많이 부러웠다. 수십 킬로가 넘는 장비를 이고 지고 끌고 다녀야 하는 출장은 촬영도 하기 전에 짐에 눌려 지치기 다반사였다. 글을 쓰게 된다면 수첩 한 권과 펜 한 자루면 될 것 같았다. 깃털처럼 현장으로 날아가서 노트 빼곡하게 문장을 적어오는 장면을 상상하면 행복했다. 이제 그런 날이 올까 싶었는데, 나는 새 만년필을 찾고 있고 아이패드에 쓸 블루투스 키보드가 어서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저런 도구를 끌어모으는 나를 미워하지 마라. 어쩌겠는가. 도구의 인간.이라지 않던가.
사실, 만년필을 만지작거리는 몇 시간은 재미난 놀이 같았다.
2015.03.23 23:46
운전을 별로 즐기지 않는다. 촬영 장비 때문에 차를 쓰기는 해도, 일단 차가 있으니 여러 모로 편하기는 해도 운전은 어쩔 수 없이 한다. 특히나 시내에서 길이 막힐 때는 없던 짜증도 끓어오른다. 전 날 잠도 제대로 못 잔 오전에 막히는 길 위에 있으면 내가 왜 이 상황에 있어야 하는 지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서 촬영이 없고, 한 곳만 다녀오면 되는 외출은 가능하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려고 한다.
가끔 좋은 운전도 있다. 촬영하러 가는 고속도로는 즐거운 길이다. 그런 날은 미리 음악을 골라두었다가 차를 고속도로에 올리면서 볼륨을 높인다. 쩌렁쩌렁한 노래소리에 맞춰 핸들을 두드리며 가는 길은 행복하다.
선인장.이라는 노래가 에피톤프로젝트.의 노래라는 것을 얼마 전에야 알았다. 어느 이름 없는 여가수의, 좋지만 묻혀버린 노래라고 생각했었는데.
선인장을 선물하고 간 친구가 있었다. 말미잘 한 마리를 전해주었던 친구도 있었다. 선인장처럼 상처입고, 말미잘처럼 고운 친구였다. 소화 못 한 풀더미를 되씹는 소처럼 고속도로를 달려 돌아왔다.
2015.03.23 23:35
잘 지내지요? 요즘에도 시는 계속 쓰나요?
김광석 노래 가끔 들을 때나, 김광석이 죽은 지 몇 해가 지났다고 누가 이야기할 때는 형들 생각이 납니다. 소금꽃 방에 공사용 스티로폼 깔고 앉아서 그럭저럭한 기타 반주에 그럭저럭한 노래를 밤을 새며 불렀었지요. 그때가 김광석 2주기였던 가요? 3주기였던 가요? 하여튼 그랬었어요.
다른 형들은, 후배들은 소식 아시는 게 있나요? 나는 보고싶은 친구들이 참 많습니다. 멀리 나와있다는 핑계로 멀어졌어요. 한 동안은 이름들을 손에 꼭 쥐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조금만 더 하면 된다, 그러면 내가 돌아간다. 비단 옷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가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겠노라. 했었지요. 그랬었습니다.
이제 시는 거의 안 읽습니다. 그렇게 됐네요. 읽지도 않으니 쓰는 일이야 뻔하지요. 그래도 사진을 계속 하면서, 사진을 대하는 태도가 시를 짓는 것과 비슷하기도 하겠다 생각합니다. 시의 바다는 너무 넓어서, 그 안에서 의미를 엮어낸 다는 것이 어째 소용없는 짓.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아름다운 시는 여전히 마음을 건드리고 치열한 시는 또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드는 데요, 그래도 시와 멀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형,
기약없는 약속이지만, 다시 보게 되면 어디 별 보이는 노천에 앉아서 맥주나 한 잔 하죠.
'지난 블로그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년 짧은 글 모음 (0) | 2016.04.08 |
---|---|
2013년 짧은 글 모음 (0) | 2016.04.08 |
2012년 짧은 글 모음 (0) | 2016.04.08 |
2011년 짧은 글 모음 (0) | 2016.04.08 |
2010년 짧은 글 모음 (0) | 2016.04.08 |
2014년 짧은 글 모음
2014.12.17 10:20
Test Shoot.이라는 말머리로 그 동안 찍었던 촬영 현장 이야기를 정리한다. 작은 읽을거리라도 만들 수 있을까 싶다. 나름대로 내게는 정리하는 계기도 될 것이다. 주로 촬영과 관련된 현장의 상황, 조명의 설치 등에 대해 이야기할 작정이라 사진과 상관 없는 사람에게는 생뚱맞은 소리가 될 것도 같다.
2012년의 사진이다. 아마도 조명 두 개로 겨우 조명하던 시절이다. 인터뷰 촬영이었고, 모델은 나이가 제법 되는 여자라는 사전 정보만 가지고 갔다. 주어진 촬영 시간은 2시간 정도였다. 메이크업 시간을 빼면 실제 촬영 시간은 한 시간을 조금 넘는 수준일 것이다.
촬영은 가로 사진과 세로 사진을 모두 찍기로 했다. 그리고 사진 안에 텍스트가 들어갈 공간도 함께 넣기로 했다. 잡지 촬영의 경우 사진을 단독으로 쓰는 지, 또는 사진 위에 텍스트를 올릴 것인지에 따라 구도가 달라진다. 또 가로 사진의 경우 한 페이지에 넣을 지, 아니면 펼친 페이지 전체에 쓸 것인지에 따라서도 구도를 다르게 잡는다. 특히 풀페이지 사진의 경우 인물의 얼굴이 페이지 중간에 걸리는 불상사를 피하는 것이 절대 수칙이다. 그래서 풀페이지로 쓸 가능성이 있는 사진은 인물을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도록 구도를 잡는다.
장소는 호텔에 있는 레스토랑이었고, 식사 시간을 피해 일정을 잡았다. 레스토랑 층과 윗층의 프라이빗룸을 둘러보며 촬영 포인트 세 곳을 선정했다. 한 두 컷을 쓰는 인터뷰 사진의 경우에 나는 보통 세 곳 정도의 배경을 미리 골라둔다. 최대한 심플한 배경 한 곳, 배경에 디테일이 많은 곳 한 곳, 그리고 가장 안전한 배경 하나 정도를 더 고른다. 그렇게 해 두면 에디터나 잡지 아트디렉터에게 좀 더 다양한 선택지를 만들어 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촉박한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한 곳에서 수 분 안에 촬영을 마쳐야 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자연광이 들어오는 상황이었지만 충분한 느낌은 아니었다. 그래서 자연광을 보조광 내지는 필라이트로만 쓰고 조명을 따로 하기로 했다. 현장에 도착한 모델은 연륜에서 나오는 힘이 있었다. 비주얼 관련 컨설팅을 하는 사람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정확히 생각나지 않는다. 이미 많은 촬영 경험이 있어서 도착하자 마자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잘 알고 있었다. 옷이 가득 든 트렁크를 가지고 왔었다. 본인의 옷을 직접 준비해 오다. 보통 잡지 촬영은 에디터가 준비하지만 직접 가져오는 경우도 꽤나 된다. 남성은 본인의 옷으로 찍는 경우가 많고, 여성도 특히 비주얼 관련 종사자들은 직접 가져오는 경우도 많다. 무턱대고 내 옷을 입겠다는 고집이 아니라,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오랜 시간동안 고민한 결과이니까 에디터도 마음 편하게 동의한다.
한 시간 가까운 메이크업을 마치고 촬영을 시작했다. 우선 레스토랑 복도에 있는 그림 앞이 첫 포인트다. 그림은 높게 걸려서 아래 낮은 테이블을 두고 그 위에 올라서도록 했다. 상하이의 야경을 그린 그림인데 적당히 어두운 톤이어서 배경으로 쓸 만했다. 모델은 얼굴 윤곽이 깊은 편이어서 빛을 너무 측면으로 쓸 수 없었다. 정면에서 필라이트를 넣으면 모델 뒤에 있는 그림을 표현하기 어려울 듯해서 메인 조명 하나로 최대한 얼굴 전체를 비추도록 했다. 그리고 모델의 왼쪽 뒤에서 배경과 모델을 분리하는 라인 조명을 넣었다. 배경 그림에 하나의 라인을 만들면서 모델의 머리까지 닿는 빛을 위해서는 20도 정도의 그리드와 확산지를 덧댄 조명이 어울렸을 것 같은데, 아마 갖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없었다면 스누트를 썼을 것이다. 메인 조명은 흰색 우산을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서서 테스트했을 때보다 모델의 얼굴은 더 깊었기 때문에 조명 위치를 조금씩 조정하면서 촬영했다.
이 사진을 찍은 후 레스토랑 중간 대기실에서 한 장을 더 찍고, 실내로 이동해서 둥근 지붕을 활용해 한 장 더 찍었다. 그리고 야외광을 최대한 활용해서 한 장을 더 추가하고, 개인 책자 출판 때 쓰고 싶다고 요청해서 그림을 배경으로 한 장 더 찍었다.
에디터는 최종적으로 대기실에서 촬영한 컷을 사용했다.
촬영. 120430 @Indigo hotel Shangahi, CHINA
Client. Tatler Shanghai magazine
2014.05.08 09:10
새 명함이 나왔다. 영어 이름을 바꿨다. 새 영어 이름은 MoBe모비라고 지었다. 중국에 와서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영어 이름을 썼는데, 당장 써야 하니 급하게 아무렇게나 고른 이름은 Mark였다. 10년쯤 되었다. 지금 대부분 친구들이나 거래처 사람들은 나를 Mark라고 부른다. 오래 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벼르던 차에 새 이름으로 바꾸고 새 명함을 받았다.
이름이 바뀌면 많은 것이 따라 변할 것이다. 예전에 이름을 바꾼 친구가 있었는데, 오래 알아온 친구가 아니었는데도 새 이름을 부르니 내가 그동안 알던 사람은 어디로 가 버리고 다른 사람을 부르는 것 같아서, 그러니까 내가 아는 사람인데도 모르는 사람을 부르는 것 같아서 어색했다. 지금은 그 친구 옛 이름은 잊었는데, 어쩐지 그 친구를 잘 찾지 않게 되었다.
이름은 한 사람의 종합이다. 사진 작업을 구상하며 그 사람 위에 덧대어진 것들을 모두 지워보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우선 지워질 수 있는 것은 직업이었다. 나이를 지울 수 있었고, 관계를 지울 수 있었다. 옷을 지울 수 있었고 화장을 지울 수 있었다. 그리고 거의 끝까지 남는 것은 이름이었다. 이름은 이미 사람의 얼굴과 분리하기 어려웠다. 내게는 그랬다. 그 사람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불린 이름이다. 이름 글자 안에 하루하루를 차곡차곡 담아서 지금의 그 사람이 되었겠다 싶었다. 이름은 무거운 것이다. 어떤 약속의 담보로 내걸 수 있는 가장 무거운 것 중에 하나가 아마 이름 석 자의 무게이지 않을까 싶다. 이름 앞에 부끄럽기 싫다.
한 동안 사람들은 나를 옛이름으로 부르겠지만, 이제부터 새로 알게 되는 사람들에게 나는 MoBe입니다. 소개할 테다. 뜻과 발음은 소설 모비딕Moby Dick에서 땄다. by비보다 Be가 낫겠다 싶어서 MoBe라고 쓰기로 한다.
2014.04.22 18:49
또 지난 사진들을 봤다. 컴퓨터를 새로 샀고, 사진 데이터를 새로 옮겼다. 지난 사진들을 어쩔까 하다가 남겨두었다. 그냥 보관만 하는 게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지난 사진들과 그 이야기를 좀 써볼까 생각했다. 그래서 사진을 열었다가 제법 지웠다. 사람 사진을 많이 지웠다. 그들이 아직도 내 컴퓨터 안에 자기들 사진이 남아 있다는 걸 알면, 젖살도 안 빠지고 여드름도 가시지 않은 얼굴이 바다 건너에 남아있다는 걸 알면 얼마나 불쾌하겠는가. 이제 나에게 잊혀지는 것이 맞지 않겠나.
사진은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한다. 내가 가진 사진은 2004년부터다. 처음 사진을 시작한 게 2002년, 군대를 다녀온 후였으니까 첫 두어 해 빼고는 모두 있는 셈이다. 제법 날려먹기도 하고, 지우기도 했지만 여전히 많이 있다. 그때, 나는 사진을 참 못 찍었구나. 의미없는 셔터를 아무렇게나 휘두르며 다녔구나. 내가 사진으로 밥벌어 먹는다는 사실이 새삼 고맙다. 적어도 한 가지 의미는 확실하니까 말이다.
지난 사진을 꺼내고, 사진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보려고 한다. 아마 상업사진에 대한 부분이 많을 것이다. 개인 사진은 어디 내놓기 부끄러울 만큼 못 났다. 이렇게라도, 사진을 꺼내보려고 한다.
사진은 05년 2월에 찍었다고 적혀 있다. 사진을 배우러 다니던 곳이 대학로에 있었는데, 길 건너편으로 비탈진 언덕에 집들은 쌓여 있었고, 좁고 구불구불한 계단을 따라 꼭대기까지 가면 위태로운 시멘트 경사벽 위까지 갈 수 있었다. 항상 짖는 개가 한 마리 있었고, 무당집이 있었다. 거기서 뒤돌아보면 집들이 보였다.
2014.02.18 23:09
종이 한 장 찢어지는 소리에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려다
어떤 대상을 잠시나마, 작게나마 위로하고 보듬어 안을 수 있는 사진이고 글이면 좋겠다. 몇 년 사이, 기준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한 번 무너지고 나니 사방에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만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안 보인다. 틀린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고 이럴 수 있구나, 저럴 수 있구나 싶다. 힘이 실린 말을 들으면 그게 맞나 싶어서 따라가고, 좋은 사진을 보면 또 저게 맞구나 싶어서 따라간다. 그래서 내가 잘 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점점 모호해졌다. 뿌리 없이 흔들리는 들풀같은 날들이다. 이름도 없는 초라한 날들이다.
그런 날들이 이어지면 마음이 급해져서 어디든 뿌리내리고 싶고 무엇이든 붙들고 싶어진다. 조바심이 난다. 다들 저만치 가는데 나는.
일정을 못 맞춘 내 책임이 가장 크겠는데, 이번 책도 미끄러졌다. 한국 출판사 쪽과 미팅도 하고 이번에는 뭐가 되나 싶었는데 중국 측에서 올 해 일정이 너무 많다고 한국어판 출판을 연기하자고 했다. 맞다. 내가 늑장부리지 않았다면 작년에 나왔어야 할 책이니까 올해 일정에 반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쉽지만, 지은 죄가 있으니 마음껏 아쉬워하지 못 했다. 고등학교 때 낸 신춘문예 원고는 납으로 만든 추처럼 소리도 없이 가라앉아서 다시는 떠오르지 않았다. 중국에 와서 두어 해 동안 쓰고 다음었던 상하이 에세이는 출판사 몇 곳의 정중하고 단호한 거절에 멍들고 죽었다. 중국 몇 지역의 관광부서 의뢰로 만든 책은 동네 인쇄소 안내책 수준으로 멎었다. 그리고 이번 책은 중문판만 우선 나올 모양이다. 그래도, 이렇게 몇 권을 더 쓰면 서점에 내 책을 까는 날이 온다는 확신이 생겼다.
투정하는 문장은 실체가 없는 글이다. 좋은 글은 오래 묵은 생각과 단단한 정보로 쌓은 구조물이다. 그러니까 개인의 감상만으로 이어진 문장은 신기루에 그친다. 그런 문장이 많고 또 많이 읽히는 세상은 속이 빈 세상이기 쉽다. 그러니까 글 쓰는 사람은 가능한 그런 문장을 쓰면 안 된다. 그래도,
종이 한 장 찢어지는 소리에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려다 소심한 마음이 들킬까 봐 얼른 제자리에 불러 앉히는 마음이 있잖은가. 매일을 버티는 심정으로 날마다 잇대어 사는 사람도 많잖은가. 어떤 날의 나처럼.
그러니까, 세상에 많을 테니까, 작은 위로라도 건넬 수 있다면, 나도 작은 소용이라도 있는 사람이지 않겠는가.
이 애달픈 세상에서.
2014.02.03 20:23
어쩌다가 지난 메일을 읽었다. 오래된 것들이다. 메일에서 사람들은 나를 섬.이라고 불렀다. 섬, 참 좋은 이름이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에 섬.이 있고, 장 그르니예의 책 중에 섬.이 있다. 나는 섬.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리고 아마 2009년을 전후한 때에, 나는 섬.이라는 이름을 썼었나 보다. 잊고 있었다.
내 아이의 이름은 마루.다. 아내가 김훈의 수필에서 따 온 이름이다. 나는 그 이름이 참 좋아서 마루.라고 마루를 부를 때마다 기분이 좋다. 아직 생기지도 않은 둘째도 이미 이름을 정했다. 그 아이는 나루.라고 부를 것이다. 마루가 바깥과 안을 잇는, 지상의 소통하는 공간이니까 나루는 물과 뭍을 잇는 공간이 될 것이다. 마루와 나루가 사는 시대는 국경의 경계를 우습게 넘을 테니까, 일부러 영어 이름을 따로 짓지 않아도 되도록 발음하기 쉽게 했다.
아내 이름은 이승희.다. 나는 아내.라고 부른다. 직접 부를 때는 여보.라고 부르고,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는 내 아내가요, 아내는요, 라고 시작한다. 아내는 후안 미로의 그림을 좋아하는데, 마침 미로의 그림에 있는 작가의 싸인과 아내의 장난스러운 싸인도 닮았다. 나는 아내의 새 영어 이름으로 미로.를 강력하게 밀고 있다. 아내의 반응은 시큰둥하지만.
내 이름 반치옥.은 발음하기 어려워서 별로 안 좋아한다. 할아버지께서 좋은 뜻으로 지으셨다는데, 어렵다. 그래도 워낙에나 독특해서 세상 천지가 다 검색되는 정보의 시대에서도 인터넷에 내 이름 쓰면 딱 나만 나온다. 영어 이름은 Mark인데 급하게 지어서 역시 많이 마음에 드는 이름은 아니다. 그런데 이미 그 이름으로 굳어서 다들 그렇게 부르니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도, 이름을 바꾸게 되면, 새 영어 이름은 섬.이라고 해야겠다. 또는 비애.라고 하는 것도 좋겠다. 섬은 Sum이라고 쓰자니 산수 시간 같아서 안 되겠고, Some라고 쓰자니 이것도 아니다. 어떻게 쓰나? 비애.라는 단어는 발음이 좀 여성스러운가? Vie쯤 되나? 이건 뜻이 있는 단어일 텐데, 다른 글자 조합으로 비슷한 발음이 나도록 찾아봐야겠다. 비애, 좋네.
'지난 블로그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년 짧은 글 모음 (0) | 2016.04.08 |
---|---|
2013년 짧은 글 모음 (0) | 2016.04.08 |
2012년 짧은 글 모음 (0) | 2016.04.08 |
2011년 짧은 글 모음 (0) | 2016.04.08 |
2010년 짧은 글 모음 (0) | 2016.04.08 |
2013년 짧은 글 모음
2013.12.29 12:53
연말 파티가 있었다. 사진을 가르치는 중국 친구들과 함께 소박하게 만났다. 본래 계획은 덩치를 조금 키워볼 생각이었는데, 다 만들어 둔 광고문구를 다른 곳에 올리는 게 귀찮아서 그냥 이 친구들만 초대한 꼴이 되었다. 테마는 이랬다.
미디어는 날마다 스타들의 매 순간을 비춘다. 그들의 사소한 것까지 대단한 것이라고 말하는 이면에는 스타가 아닌, 평범한 당신의 일상은 보잘 것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과연 그런가? 아닐 것이다. 당신의 드라마를 보여달라. 지난 한 해 당신이 찍은 많은 사진들은 특별한 일이 없다면 그냥 컴퓨터 구석에서 썩을 것이다. 당신의 1년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자. 지난 1년의 사진을 정리해서 서로 나누자.
덕분에 나도 지난 사진을 정리했다. 점심 때부터 파티 시작 전까지 꼬박 정리했다. 나는 3만 장이 조금 넘는 사진을 찍었더라. 그 중 열에 아홉은 돈을 버는 사진이었다. 힘든 한 해였다고 생각했었다. 맞지 않는 사진들을 찍으면서, 맞지 않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며 날밤을 샌 일년이라고 생각했었다. 돌아보니, 좋아하는 사진도 제법 찍었던 일 년이었다. 좋은 일들도 제법 있었던 일 년이었다. 나는 세 가지 주제로 사진을 정리했다. 돈 번 사진들, 신장 출장에서 찍은 사진들, 그리고 아내와 마루 사진이었다.
좋은 파티였다. 잉잉이 가져온 와인은 모처럼 맛 본 맛있는 와인이었다. 크리스티나의 요리 열전을 보고 우리는 내년 첫 모임은 크리스티나 집에서 하기로 했다. 새로 온 Joe는 재담꾼이었다. Sen은 자신의 심정을 대변하는 풍경들을 갖고 왔다.
신장 원고는 최후통첩을 받았다. 1월 중순까지 초고를 넘기겠다고 했다. 다른 말이 없어서 은근히 안심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그동안의 독촉을 토니가 그 큰 몸으로 다 막아주고 있었다. 사람 좋은 토니는 독촉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래, 너무 오래 끌었지. 이제 끝내야겠다. 한국 들어가기까지는 보름 정도가 남는다. 아무런 일정도, 촬영도 잡지 않을 작정이다. 동굴에 든 곰처럼 원고만 만지작거릴 작정이다. 뭐, 각오는 그렇다.
다양한 주제를 가진, 중국에 대한 연작 형식의 책을 만들자는 종철 형의 제안은 좀 뜬금없지만 너무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좋은 책을 만들자는 제안은 개인적으로는 몇 년 동안 꿈꾼 후에 몇 년 동안 접어두었던 꿈이었다. 마침 힘든 시간이었고 사진에 대한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는 중이고 작업실 임대료는 여전히 무겁기만 한데 그 틈에 형이 그런 제안을 던졌다. 컬트 시장은 제법 성장했고, 어떻게 쓰든 색깔만 확실하게 낼 수 있다면 독자층은 있을 것이다. 통할 것이다. 게다가 종철 형이 함께 해준다면 강력할 것이다. 우리는 빵집에 앉아서 새 기획을 다듬었다. 속살속살 중국.이라는 제목은 솔직히 너무 마음에 안 들지만, 고민해서 얻어낸 제목 같아서 아무 말 안 했다. 제목을 듣는 순간 내 온 속살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형, 저는 그 제목 반대요.
아무리 컬트적이라고는 해도, 지금 내 문장은 너무 우울하고 지루하다. 안다. 형은 술술 읽히는 문장을 쓰겠다고 했고, 나는 내 문장은 순간마다 막아서는 문장이면 좋겠다고 했다. 어떤 씁쓸한, 복잡적인 감탄사가 읽는 내내 따라붙는 그런 문장이면 좋겠다. 하지만, 내 문장은 좀 더 경쾌하고 유치발랄해야 한다.
작정하는 책을 쓰려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미뤄두었던 책들을 다시 꺼내야 한다. 새 책도 많이 사고, 여러 곳에 자문을 구해 물어야 한다.
그러자면 사진에 대한 비중이 지금과는 조금 달라질 테고, 새 컴퓨터가 정말 꼭 그 녀석이어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그냥 작정한 것으로 사기로 한다. 경험상,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하더라.
한 해가, 끝났구나. 살아내느라 애썼다.
여전히, 한 마리 고래처럼 사는 세상을 꿈꾼다.
2013.12.16 20:22
오랜만에 반가운 친구가 다녀갔다. 안부를 묻고 답장을 적어야지 하는 사이에 안 보인다.
이름을 보고 '누구지?' 했었습니다. 섬.이라... 나도 잊었던 내 이름을 기억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나는 왜 섬을 잊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내가 생기고 아이가 생기고 나는 이제 섬이 아닌가? 생각하다가, 사는 동안은 누구나 섬이겠구나 싶었습니다.
나는 미안한 기억만 크게 남아있습니다. 두 번의 빙판길 말이지요. 왜 그렇게 서둘러야 했던지, 아마 말은 안 해도 깜짝 놀랐었지요? 나도 내가 빙판길을 그렇게 용감하게 (무모하게) 달려들 줄 몰랐습니다. 용케 차는 방향을 안 잃었고 덕분에 이렇게 지난 이야기를 합니다.
사람아, 아 사람아. 이름이 익숙해서 보니 책장에 있었습니다. 아, 또 사두고 안 읽은 책 중에 하나인 모양이다 싶었는데 책을 이리 저리 넘기다 보니 그 독특한 서술 방식이 기억이 났습니다. 사실,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데, 읽었다는 사실만 기억이 났습니다. 책 윗면을 보니 07년에 산 책이더군요. 오래 된 책입니다. 겉장이 제법 낡은 걸 보니 긴 시간에 걸쳐 이리저리 들고다니며 읽었던 모양입니다.
구불구불 가는 것은 맞는 듯한데, 나아가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걷고 있다는 것만 해도 좋은 겁니다. 그 무거운 걸음걸음이 제법 폼 나잖습니까.
참 많이 반갑습니다. 이상.
2013.12.10 15:45
지난 영화 필름을 수집하는 수집가 인터뷰를 다녀왔다. 리터칭할 사진이 밀렸는데 그것보다 신장 여행 원고가 더 급해서(마감 기한을 넘긴 지가 더 오래 되어서) 마침 상황이 맞아서 오후 내내 카페에 앉아 있다. 원고 쓰다가 생각나서 다른 미디어에 전화해 보니 오늘이 마감인 인터뷰 원고는 아무리 늦어도 내일까지 받아야 한다고 해서 결국 다른 작업을 다 접고 어제 다녀온 인터뷰 원고부터 쓴다. 마감도 너무 지나버리니 감각이 없다. 다만 모호한 불안감의 덩어리만 남는다. 마감 지난 지 하루 밖에 안 된, 그러니까 순서로 생각하면 좀 더 미뤄도 되는 인터뷰 원고를 지금 쓰게 될 줄이야.
연말에 나가는 원고니까,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_________연말이다. 또 한 해가 기록의 창고로 들어간다. 다 쓴 수첩을 속지만 빼서 표지에 ‘~2013. 12’라고 쓰고 책장의 한 모퉁이에 쌓는다. 몇 년 먼저 와서 벌써 색이 바랜 수첩들이 제법 탑을 쌓고 있다. 지우지 못 하고 찢어내지 못 하는 수첩에는 지난 한 때의 내가 오롯이 남아 있다. 잊었으면 하는 날도 있다. 남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은 이름, 중요하다고 따로 접어두고 찾지 못 하는 메모도 있다. 부끄럽고 미안한 한 해였다._________
원고 쓸 때는 언제나처럼, 웹을 돌아다닌다. 다니다가 새로 나온 책 동향 기사를 읽었다. 서점 간 것이 참 오래됐다는 생각이 불쑥 든다. 새로 나온 책들이 낯설어 보여서 그런가. 예전에는 그래도 한국에 가면 하루 오후 정도는 온전히 서점에 있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런 저런 책들을 뒤적거려 보고 제법 여러 권을 산 다음 박스로 포장해서 우선 한국 집으로 보내두는 것이 일이었다. 책은 나와 비슷하게 상하이에 도착하도록 했는데, 그러면 상하이 돌아와서 새 책을 한 권씩 꺼내서 뒤적거리며 책 바닥에 구입 날짜를 적는 것이 즐거운 일이었다. 사 두고 읽지 못 한 책들이 점점 늘어났지만 그게 대순가. 책은 우선 구입한 것만으로도 그 안에 있는 내용이 절반쯤은 내 것이 된 것 같은 만족감을 주곤 했었다.
핑계를 대자면 한두 개일까. 이제 서점은 스쳐지나고 만다. 들러도 긴 시간을 보내기 힘들고, 산다고 해도 한 두 권이다. 일 년에 한국은 한 번쯤 가니까, 일 년에 겨우 한 두 권을 사는 셈이다.
인터뷰한 수집가는 정말 긁어모으듯이 무작위로 필름을 수집하고 있었다. 회사 곳곳에는 아직 포장도 뜯지 못 한 채 푸대자루에 담긴 필름들이 수북했다. 수집한 필름들을 다 볼 엄두를 못 낸다. 필름의 내용과 상태를 확인하기 위헤 중간중간 보는 것도 많다고 고백했다. 사실, 그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살짝 비웃었다. 그게 어제 일인데, 책을 대하는 나를 보니 그 비웃음을 비웃어야겠구나. 그 수집가의 즐거움을 진심으로 공감한다.
서점 가고싶다. 원고나 써야지.
2013.11.26 17:36
사진 스터디를 다시 시작했다. 이번에는 중국 친구들만 모아서 한다. 워낙 다양한 수준의 사람들이 오니까, 기술적인 부분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 주로 사진 숙제를 내고, 가져온 사진들을 강평한다. 그들이 어떤 기대를 가지고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다른 곳에서 얻기 힘든 사진에 관련된 생각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어쨌든 나는 결국 한 명 사진가이구나 싶다.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나는 잊었던 사진의 문제들을 다시 떠올리게 되고, 미루어 둔 개인 작업에 대해 다시 욕심내게 된다. 당장 급하니까, 돈 벌겠다고 시작한 사진이 아닌데 돈 버는 사진만 생각하면서 지내게 된다. 이 상황을 부정하거나 미워할 생각은 없다. 성실하게 돈 벌고, 매번 촬영마다 처음 찍는 사진처럼 긴장하며 찍고 있다. 촬영은 매번 도전이고, 조명은 항상 어렵다.
어떤 피사체를 대하든, 결국 내 의식이 피사체에 반사되어 나오는 것이 사진으로 남는다. 그러니까, 모든 사진은 자화상이다.
신장 다녀온 원고 작업 때문에 진도도 안 나가는 컴퓨터 앞에 며칠을 앉아 있다. 엉덩이도 아프고 허리도 아파서 괜히 서서 작업하는 컴퓨터 작업대도 알아보고 또 의자 위에 꿇어앉아서 쓰기도 한다. 마음이 바쁘니까, 몸이 게으르게 쉴 때도 마음이 쉬지 못 한다. 비효율이다. 불끈불끈, 새 작업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건 꼭 이럴 때다.
2013.11.16 23:10
지난 수요일부터 걸린 감기가 아직 한참이다. 자꾸 몸 눈치를 본다. 감기니까, 얼마든지 쉬어도 좋은 거라고, 틈 날 때마다 잠자도 된다고 살살 나를 꼬드긴다. 아직 아내는 내가 감기 걸린 줄은 모른다. 알면 속상할 테니까, 뭐라 그럴 거니까 말 안 했다. 통화는 가능한 안 하고, 동영상도 안 보낸다. 카톡으로 쓰고 만다.
아내가 없는 낮잠을 잤다. 고장난 노트북 충전기를 사느라 시내에 나갔다가 버거킹에 앉아서 밀린 원고를 조금 썼다. 많이 쓸 작정이었는데 원고가 그렇지 뭐, 겨우 한 페이지 보탰다. 집에 돌아와서 침대에 엎드려서 다시 원고를 끄적이다가 귤 서너 개 까 먹고 잤다. 깨고 나니 밤이다. 아, 길게 잤구나.
아내가 없는 집에서 늦은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이상한 패배감이 감돈다. 잘 잤냐고, 차려둔 거 좀 먹으라고 말해 주는 아내가 없구나. 뭐든 다 못 한 것 같아서, 덜 한 것 같고 어설프게 한 것 같아서, 지금 벌려 둔 일들을 떠올리기가 무서웠다. 무기력하게 저녁을 보내고 내일 새벽에 나설 암벽등반 장비를 꾸렸다.
깊은 밤이다. 하루는 이렇게 가고 원고는 겨우 한 페이지가 보태졌다.
2013.11.07 10:17
잘 주무셨어요?
저는 어제도 작업실에서 잤어요. 아내 한국 들어가고 나면 널널하게 운동도 다니고 못 본 영화도 맘껏 볼 줄 알았거든요. 근데 아내 들어가니까 더 바빠요. 아무리 바빠도 집에 와서 밥 먹고 자고 나가라는 아내가 없으니까 이제 일하다가 그냥 여기서 자요. 아침에 일어나면 꾸질꾸질해요. ㅎㅎ 오늘 밤쯤이면 아마 두 달 가까이 끌어오던 작업을 다 마쳐요. 다음 작업들도 해야지만 우선 큰 짐은 내려놓네요. 결제받으려면 또 두어 달 기다리긴 하겠지만요.
아침에 여기 사무실 단지 관리 직원이 왔어요. 소방 감독하는 기관에서 무슨 검사 나왔다나 봐요. 촬영 없는 날은 작업실이 좀 엉망인데 어제는 여기서 잠도 잤으니 밤새 마신 음료수 병이랑 빵봉지랑 그런 거 막 책상 주변 바닥에 너저분하고요. 컴퓨터로 사진 고치는 작업하느라 커튼도 다 닫아놓았으니 꼬질꼬질한 냄새도 잔뜩 나요. 아직 아침 이도 안 닦았는데 손님이 와버렸어요. ㅎㅎ
두 사람이랑 이런 저런 이야기하다가, 관리팀 직원이 그 소방 감독관한테 제 이야기를 하면서 참 예의바른 친구다, 했어요. 아침에 출근하거나 저녁에 퇴근할 때마다 마주치는 단지 내 사람들한테 꼬박꼬박 목례 인사를 하는데 그게 그렇게 보였나 봐요.
아부지는 아마 기억 못 하실 것 같은데, 이게 제가 중국 올 때 공항에서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거였어요.
인사 잘 하고 다녀라.
그때 그 말 들었을 때는 좀 생뚱맞았어요. 아들 먼 길 떠나는데, 그것도 오래 떠나는데 갑자기 인사 잘 하고 다니라는 당부는 좀 이상했거든요. 그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상황에서는 뭔가 다른 이야기들이 더 어울리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근데요 아부지. 저 그 말대로 해요. 엘리베이터나 아파트 복도에서 갑자기 다른 사람이랑 마주치면 그게 참 어색하거든요. 그럴 때 아부지 충고 생각하면서 먼저 인사하려고 노력해요. 작업실 출근할 때도 앞에 수위 아저씨부터 청소 아주머니까지 전부 인사하고요. 옆 사무실 사람들 처음 이사왔을 때도 먼저 인사했어요. 그게, 그렇더라구요. 참 가벼운 것 같았던 아부지 당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리고 그 당부가 아버지 지나가는 말씀이 아니라 생활에서 참 많이 단련된 말이라는 걸 지나면서 알겠더라구요.
아부지, 항상 고마워요.
보고싶네요. ㅎ
2013.10.08 00:15
며칠 전에 읽은 내용이다. 잡스가 1984년 어느 행사에서 연설했다는 내용인데, 잡스는 사람들이 책 크기의 컴퓨터를 들고 다니는 세상에 대해 말한다. 전화도 되고, 배우기 쉽고, 순식간에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컴퓨터의 미래를 그린다.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당신을 상상해 보라고 하고, 그런 것을 만드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꿈은 20년쯤 걸려서 마침내 아이패드로 이루어진다.
20년이다. 20년을 한결같이 꿈꿀 수 있는 사람, 그 꿈에 대한 확신과 꾸준한 열정이 만들어낸 결과. 나는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내 20년 뒤를 꿈꾼 적이 있는지 생각했다. 없었다. 겨우 1년쯤이나 생각했을까. 부끄럽지만, 그랬다.
두 번에 걸쳐, 보름 가깝게 다녀온 신장 지역 출장 원고를 정리하고 있다. 애초에 책을 내는 것이 계약 조건이었으니까 약속한 시간 안에 써야 한다. 오늘 우선 한 토막을 정리했다. 가능한 이번 달 안에 초고라도 정리해 보려고 한다.
내 20년을 고민한다.
2013.07.17 18:53
스튜디오 조명을 외부에서 쓸 수 있도록 돕는 베터리팩을 샀다. 600와트 출력 조명을 동시에 세 개까지 쓸 수 있다. 교환용 베터리 하나를 추가로 구입했다.
내년쯤에 열고 싶은 개인전을 위한 작업은 600와트 조명 두 개를 쓴다. 생각하는 전시 컨셉은 세 개인데, 내년에 그 첫 번째 작업을 전시하고 싶다. 전통적인 사진전 형태다. 두 번째 작업은 비디오 작업이고, 세 번째 작업은 첫 번째 작업과 연결되는데 설치미술의 형식도 빌리려고 한다. 첫 번째 작업보다는 두 번째가, 두 번째 작업보다는 세 번째가 더 규모가 크기 때문에 차례로 단계를 밟아가야 한다.
나는 몇 년 동안 잡지에 실리는 포트레이트 사진을 주로 찍었다. 비슷한 형태의 사진을 일반인을 모델로 작업하려고 한다. 첫 번째 작업과 세 번째 작업은 미디어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다룬다. 두 번째 작업은 관람객에게 공포와 충격을 주려는 것이 의도인데 얼마나 받아들여질지는 더 고민해야 한다.
당장에는 일이 밀려있고, 날씨도 너무 더워서 야외작업이 쉽지 않다. 수월하게 작업하기 위해서는 차량도 필요하다. 우선 주변 사람들부터 하나씩 시도해 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2013.06.28 14:22
미팅 다녀왔다. 옷과 홈데코 소품을 만드는 디자이너였는데, 브로셔와 간단한 책자 의뢰였다. 지난 달에 잡지 인터뷰 촬영으로 만났었는데 그때 내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우선 지난 주에 아내와 마루를 데리고 산책 겸 시내에 있는 매장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오늘은 인쇄 디자인을 맡을 승일이와 함께 그의 쇼룸으로 찾아갔다. 가격적인 부분을 떠나서 우리는 한참 이야기했다. 디자이너는 여러 가지 참고자료를 보여주고 나는 또 거기에 의견을 보탰다. 디자이너는 오래 남는, 소장하고 싶은 브로셔를 원했다. 이번에 만들면 오래 쓸 작정이라고 했다. 매장에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인데, 새 제품은 계속 나오겠지만 브로셔를 따로 만들지 않을 테니까, 이 브로셔는 3년쯤 지나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매력적이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다음의 모든 말들은 3년이라는 단어 속으로 잠겨버리는 듯했다.
사진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은 거의 사진을 보는 순간에 결정된다. 오래도록 보게 되는 사진, 또는 오래 지나서도 다시 꺼내보고 싶은 사진은 대부분 개인의 기억이 연관된 것이다. 내가 지나온 풍경이나 내가 만났던 사람 같은 것들. 신문의 사진은 하루를 버티면 된다. 달력의 사진은 한 달을 버티면 된다. 아, 도대체 어떤 사진이 3년을 버틸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사진이 3년이 지난 후 다시 꺼내보고 싶어질까? 지난 사진들을 다시 열어 보아야겠다.
고객의 기억과 닿아있는 사진이 아니라면, 고객의 기억이 덧붙기 쉬운 사진이어야 한다. 아마 그런 방향에서 작업하게 될 것이다. 제법 시간이 걸리겠지만 신나는 작업이 될 것이다. 게다가 디자이너이자 회사 대표인 이 사람의 안목은 어찌나 까다로운지. 디테일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이 작업이 끝나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견적부터 어떻게 해결하고.
2013.06.25 11:10
요즘은 곧잘 보행기에 앉는다. 예전에 몸을 가누지 못 할 때는 앉혀 두면 바로 쓰러지고, 보행기에 붙은 놀이기구들에도 아무 관심이 없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아직 버튼을 누르면 소리가 난다는 인과관계를 아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이리 저리 누르고 돌리면서 잘 논다. 아직 뒤집지도 못 하면서 일어서는 것은 어찌나 좋아해서, 옆에서 잡아주면 걷고 구르며 논다.
2013.06.21 17:31
마루는 아직 뒤집기도 못 한다.
뒤집어 놓으면 잠시 놀다가 힘들다고 끙끙거린다.
그러면 가서 다시 뒤집어줘야 한다.
마루는 잠들면 온갖 몸부림을 치며 잔다.
기본 다리 하나는 침대 밖이다.
2013.06.21 17:21
전국체전에 나가는 스포츠클라이밍 선수 선발을 겸한 클라이밍 대회가 베이징에서 있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 들었다. 시합 날짜는 토요일이었고, 그날 나는 촬영이 두 개 잡혀 있었다. 촬영이 없었다고 해도 지난 두어 달 암장에 나가지도 못 했으니 될 게 아니었다. 암장에 꾸준히 나갔다고 해도 지금 내 실력으로 입상권은 먼 이야기였을 것이다. 게다가 장소는 베이징이다. 그래도,
내년 중국 예선전에 나가고 싶다고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아내는 마루와 함께 응원가겠다고 했다.
태권도를 처음 배운 건 초등학교 들어간 다음이었다. 기억에 아마도. 무척 다니고 싶어했었으니까 한참을 졸라서 겨우 허락을 얻었을 것이다. 그때 네 살 어린 동생도 함께 시작했다. 참 재미있었다. 작은 덩치에도 불구하고 몸은 제법 날랬으니까 곧 잘 했다. 그리고 나는 일 년을 채 못 다니고 그만 다녔다. 어느 날 관장님이 다음 대회에 나갈 사람들을 부르면서 내 이름도 불렀다. 그래보아야 시 군 대회쯤 되었을 텐데, 그래도 명색이 대회였다. 이 작은 몸을 격투기 대회에 내보내려 한단 말인가. 별도의 지정한 날 아침에 모여 승합차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가서 치르는 대회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한계 밖의 세계였다. 가 본 적도 없는 곳에서 아마도 일생을 태권도만 수련한, 그래서 한 대 얻어 맞기라도 하면 곧바로 뼈라도 부러질 것 같은 강한 상대들이 즐비한 세상일 것이다. 아, 그런 곳에 저 관장님은 어째 나를 보내려고 하나? 지난 번 시범 때 관장님 엉덩이를 걷어찬 것 밖에 없는데.
어떤 핑계를 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부모님도 이상하셨을 것이다. 좋아하고 뛰어다니던 아이가 갑자기 이리 저리 피하며 도장에 안 가겠다고 했으니까. 어쨌든 여차저차해서 나는 태권도를 그만 뒀다. 길에서 혹시라도 만날까 무서워 도장 근처로는 가지도 않고, 먼길로 빙빙 돌아다녔다. 동생은 계속 태권도를 했고 3단까지 땄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암벽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사실 안다. 그저 즐기는 수준이다. 밥 먹듯 운동하는 아이들과 비교할 수 없다. 그래도 가보고 싶다. (중국에서 암벽을 타는 한국인이 그리 많지는 않을 테니까,)운이 좋아서 선수라도 되면 전국체전이라는 곳에서 예선전이라도 뛰어볼 수 있는 거 아닌가. 또 안 되면 어떤가. 운동에 작은 동기부여라도 되지 않나. 열심히 운동해서, 내년에는 베이징에 가봐야겠다.
나중에 어쩌면 마루도 태권도장에서 도망칠 수 있고, 또 대회에 나가 예선전에서 떨어지고 상심할 수도 있다. 그때는 탈락 선배로서 마루 등을 토닥여 주고 까짓 것 그런 게 인생을 결정하는 건 아니라고 같이 웃어줄 수 있지 않을까. 웅변대회 결승에서 똑 떨어지고 서럽게 우는 내 손을 잡아주던 아버지처럼은 아니더라도. (아버지, 나만큼이나 서운해했던 아버지 표정이 생각날 것 같아요.ㅎ)
2013.05.28 17:55
마루는 주차중.
내 어느덧 세상에 난 지도 다섯 달이 되었다. 살아보니, 세상은 별 게 없다.
낮잠을 위한 준비. 파리를 떄려잡을 죽도 한 자루, 숙면을 도와주는 공갈젖꼭지, 심심하면 흔들어 볼 노리개, 아이니까 아이패드. 작은 기린 인형은 놀이용이 아닌 식용으로 생각한다는 건 함정.
샤워하고 로션 바르다가,
어쩌다 보니 포청천 마루.
엄마 엄마!
나 이 났어요!
좁쌀같은 이가 두 개.
나에게 분유를 달라. 그렇지 않으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난장을 볼 것이다.
20mm 광각 팬케익 렌즈에 맛들인 아빠 때문에 요즘 찐빵으로 찍히는 마루. 귀여워 귀여워.
아빠는 당분간 광각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마루는 유모차에 누워 바라보는 나뭇잎을 좋아한다. 바람이 불어서 나뭇잎이 소리내며 휘날릴 때 마루는 자지러지듯 웃는다. 침대에 매달아 둔 작은 인형 모빌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거다. 햇살은 나뭇잎에 닿았다가 바람에 조각난다. 아직 뒤집기도 못 하는 마루지만, 마음으로는 벌써 몇 번이고 저 가지 끝에 닿았겠다.
2013년 5월 후반.
마루는 생후 다섯 달을 채워가고 있다.
2013.05.25 12:59
꿈.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었다가 지웠다. 게시판 세부 사항을 설정하다가 귀찮아서 관뒀다. 그냥 짧은 글 안에 작게 작게 적어야겠다. 가지고 싶은 것이나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 따위를 산책하는 심정으로 적어두려고 한다. 적어둔 대로 되면 좋고, 안 된다고 해도 가끔 다시 읽어보면 봄날 산책처럼 한가로울 수 있을 거니까.
마루가 학교 들어가기 한 해 전에, 1년쯤 태국에서 살고 싶다. 마루가 이제 다섯 달 됐으니까 학교 가려면 6년이 남았고(7년인가?) 그러면 5년 뒤가 되겠다. 지금이 2013년이니까 그럼 2018년이 되겠구나. 아내와 나는 태국요리를 좋아하니까, 그곳의 사람들도 좋아하니까 너무 붐비지 않는 곳으로 가서 1년만 살다가 오면 좋겠다. 아내는 태국요리를 배우겠다고 했다. 나는 한 달에 절반은 태국에 있고 절반은 상하이에 있어도 좋겠다. 그 전에 태국어를 배우고, 생활을 안정시켜 두어야 한다. 태국 어디쯤에 가서 살지 지도도 부지런히 보고, 그곳의 물가를 고려해서 생활비도 따져보아야 한다. 태국에서 외국인이 집을 렌트하는 문제도 알아보면 좋겠다. 아, 태국이라...
2013.05.07 11:30
새 여권을 만들었다. 외우기 편한 여권 번호가 아까워서 가능하면 오래 쓰려고 했는데 더는 쓸 수 없어서 이번에 전자여권으로 바꿨다. 지금 여권은 군 제대 후에 만든 것이니 10년 만이다. 중간에 속지를 한 번 추가했고, 연장도 한 번 했다. 속지를 추가할 때 두꺼워진 여권을 보면서 괜히 으쓱하기도 했고 기간 연장 때는 스탬프 하나 찍어주는 걸 보면서 싱겁기도 했다. 워낙 낡아서 중국 공항에서 두어 번 주의를 받기도 했다. 여권 접합 부분이 떨어지면 출국도 입국도 할 수 없으니 조심하라고 했다. 그 뒤로는 아내가 여권 커버를 마련해 주었다. 새로 받은 여권은 종이가 빳빳해서 길들지 않은 구두 같다. 아직 외우지 못한 새 여권 번호가 생겼고, 앞으로 10년 동안 쓸 새 여권 사진이 생겼다.
의류 촬영이 있는 날이었는데, 모델이 도착하기 전 이른 아침이었다. 조명을 세팅해두고 보니 마침 증명사진 찍기에도 무난해 보여서 촬영 준비하다가 갑자기 앉아서 찍었다. 대충 세수를 하고 삐져나온 머리카락을 물로 얌전히 붙였다. 바람소리 누나가 찍고 내가 직접 포토샵 작업을 했다. 다른 것은 그대로 두고 피부를 정리했다.
새 얼굴이 마음에 든다. 10년 전 사진과 비교하니 나이가 들었고, 편해졌다. 사진 두 장을 유심히 봤다. 10년 전 얼굴은 서툰 나를 감추려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마땅히 어때야는지 몰랐다. 이게 좋아 보이면 따라 하고, 저게 좋아 보이면 흉내 냈다. 그 서툴고 불안한 마음을 들키기 싫어서 괜히 더 당당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10년 전 나를 보면서 생각한다. 지금도 서툴지만, 그때보다는 낫다. 무엇을 해야는지 어디로 가야는지는 여전히 막막하지만, 어때야는지는 적어도 조금 알게 됐다. 그때보다는.
새 얼굴이 마음에 들어서 참 좋다.
2013.03.25 14:20
필요한 원고 사진을 찾느라 예전 사진들을 쭉 본다. 중간 중간 지워진, 지운 사진들이 적지 않아도 어느덧 10년 가까이 모인 사진들이 제법 된다. 자료 찾느라 열었다가 어디쯤에서 멈칫멈칫 하기도 하고 어디쯤은 얼른 넘어서기도 한다. 부끄러운 기억이 앞서고, 미안함 감정이 뒤따른다. 아, 다들 안녕하시겠지.
사진은 너무 많은 것을 너무 또렷하게 기억한다고 적었었다. 그 미련함을 알면서도 지우지 않는다. 미련한 기억이라도 많으면 조금이라도 더 든든하다고 믿는 것일까. 아, 원고 써야지 하며 얼른 닫는다.
2013.02.25 14:57
어떤 아빠가 되어야 하나,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나 하는 생각은 일찍부터 했다. 짐작은 했었다. 아이는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집착의 대상이 될 것이다. 세상에서 그보다 온전히 내게 속하는 것도 없을 테니까. 조금만 방심하면 아이에게 집착해서 내 뜻대로 휘두르려고 들 것이다. 참 위함하겠다 싶다. 오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한다.
부모의 마땅한 자리는 아마 여행 안내자 정도가 아닐까. 낯선 땅에 막 도착한 여행자가 스스로의 여행을 시작하기 전까지 그 땅의 대체적인 성격을 설명하고, 이곳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소개하고 위험한 것들을 경고하고 비상연락망도 알려주고, 생존에 대한 몇 가지 시범을 보여주어도 좋을 것이다. 다양한 길을 알려주되 길마다에 있을 모험들을 가감없이 아는 만큼 알려주면 될 것이다. 내가 가 보지 못 했던 길을 더 좋은 것처럼 말하거나 내가 다시 가고 싶은 길을 더 길게 말하지 않아야겠다.
언제가 되든 마루가 제 여행을 시작할 때, 그동안 전해들은 가이드의 말이 든든한 힘이 될 수 있어야 한다.
2013.02.24 22:21
마루 손톱을 깎았다. 목욕하고 분유 먹고 잠든 사이에 몰래 깎았다. 손톱은 얇아서 셀로판 종이처럼 누르는 대로 구부러졌다. 행여 손톱을 자르다가 손가락까지 다칠까 조심스러웠다. 마루는 깊은 잠을 자는 것 같다가 깨어서 울었다. 열 개 손톱을 한참만에야 다 깎았다. 제 부모가 저 잠든 사이에 손톱을 깎은 줄을 마루는 아마 모를 거다. 아, 나도 비슷한 기억이 있었다. 학교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여느 날처럼 학교 간다고 문지방을 내려서는데 부모님 두 분이 그 앞에 서 계셨다. 이상했다. 평소와는 다른, 무언가 기대하는 미소로 두 분은 서 계셨다. 그리고 새 운동화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 이것이었구나. 학교가는 아이가 새 신발을 보고 기뻐하는 표정을 보고 싶어서 두 분 새벽이 조금은 설랬겠구나. 운동화가 닳았는지 더러운지 신경도 안 썼던 때 이야기다.
어떤 신발이었는지, 정확한 배경이 어땠는지, 아버지가 앞서고 어머니가 뒤에 섰던지 그 반대였는지 아니면 나란히 서 계셨는지 사실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무언가 다른 기대감으로 밝게 빛나던 젊은 아버지 어머니의 인상만 남아있다. 마루는 오늘을 기억하지 못 하겠지.
잠든 마루 손톱을 깎다가 그때 생각이 났다.
2013.01.17 19:13
한 번도 땅을 디딘 적 없는 발이다. 아무 것도 제 의지로 디뎌보지 않은 발, 새 발이다. 무엇을 디디고 설 지, 어디에 디디고 설 지를 아직 정하지 않은 발이다. 저 발을 어떤 풍경으로 인도하고 어떤 사람 앞으로 데려가고 또 어떤 경험 앞에 안내해야 하나? 가만 쳐다보고 이런 저런 것을 생각한다.
마루.라고 지었다. 아내가 김훈의 수필에서 따왔다. 정확하게 어느 대목인지 나는 읽은 기억이 없는데, 안과 바깥을 잇는 소통의 공간, 더 넓은 곳과 소통하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마루'라는 단어를 풀어 둔 구절이 있다고 한다. 참 마음에 들어서 아내는 일찍부터 아이의 이름으로 점찍어 두고 있었다. 더 찾아보면 마루는 우리말로 '하늘'이라는 뜻도 있고, 산의 봉우리라는 뜻도 있다. 내 아이 세대는 국적의 경계를 우습게 여길 테니까 발음하기 쉬운 이름으로 했다. 아버지께서도 선듯 허락해 주셔서 반마루.가 되었다.
자고 있는 아이를 가슴에 안고
"마루야, 너는 어떤 세상을 살래?" 물었는데, 마루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면서, 마루는 잘 큰다.
'지난 블로그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년 짧은 글 모음 (0) | 2016.04.08 |
---|---|
2014년 짧은 글 모음 (0) | 2016.04.08 |
2012년 짧은 글 모음 (0) | 2016.04.08 |
2011년 짧은 글 모음 (0) | 2016.04.08 |
2010년 짧은 글 모음 (0) | 2016.04.08 |
2012년 짧은 글 모음
2012.12.20 08:15
어제 출근길에 뮤지컬 명성황후 OST를 가져갔다. 딴에는 혼자라도 승리의 축배를 들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내에게 출구조사 결과를 전해듣고도 어쩐지 질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 피부에 와닿았던 그 기운들은 모두 같은 편이었다. 모두 상식의 편이라고 믿었다. 아직 개표율이 낮은 서울지역의 상황에 기대를 걸면서도, 50만표를 넘어 점점 격차를 키우는 것을 보며 패배를 인정했다.
명성황후 엔딩곡은 '애통하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안타까운 백성들의 처지를 걱정하는 황후의 말, 일본의 간악함에 분노하는 황후의 말이 뒤따른다. 그리고, 동녘의 붉은 해를 스스로 지키라는 당부와 합창으로 노래는 끝난다. 나는 별로 한 것이 없어서, 조용히 울었다.
승리한 것은 비상식이 아니라 다른 편에 있는 상식이었던 것일까? 그렇게 믿어야 하나?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는데도 해는 뜨고 사람들은 출근하고 나는 예정된 촬영을 나서는 구나. 살면서 이런 크기의 좌절을 몇 번이나 겪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많았다. 아버지와 처음 다투고 아버지의 작은 어깨를 보았던 때, 작문 시험지를 0점 받았던 때, 원하는 대학 불합격 전화 안내를 받았던 때, 크게 기대했던 계약이 깨졌던 때, 내 마음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때, 그리고 대통령께서 가셨던 그 날도 있다. 그 시간들을 지나면서 나는 오늘 살아있지 않나. 그 사건들을 계기로 조금 변하면서 여기까지 왔지 않나. 결론은, 살아야겠다.
좌절할 자격이 부족하다. 몸을 던져 선거운동을 한 것도 아니다. 현장에 뛰어들어 주먹을 쥔 것도 아니고, 하다 못해 웹 상에서 작은 투쟁이라도 한 것이 없다. 박근혜를 찍겠다는 지인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치열하게 그들을 설득할 시도도 못 했다. 나는 겨우 마음으로 응원했다. 나는 좌절할 자격도 부족하다.
성실하고 단단하게 살아야겠다. 당분간 포털사이트는 접속하지 않을 작정이다. 덕분에 에프상하이와 내 블로그, 웨이보에 다시 집중할 수 있겠다. 그래, 덕분이다.
2012.09.18 15:47
계절이 변해갈 때,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이 새삼스럽다. 가을이 온다. 저녁 샤워 마치면 몸에 닿는 바람이 더 이상 시원하지 않고 서늘하다. 새벽 출근길 햇빛을 피하지 않아도 된다. 의지와 상관 없이, 슬슬 하나둘 마무리 되어야 한다.
세상의 끝에 닿으면, 조르바와 모비딕을 다시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조르바가 죽기 직전에 통곡했던 이유를 나는 아직 모르니까, 세상의 끝쯤에는 그런 답도 있지 않을까. 모비딕이 감추어 둔 사는 일의 신비같은 것도 거기에서는 두엇쯤 드러나지 않을까. 세상의 끝이니까. 그곳에서 나는 호탕한 마음으로 조르바를 먼저 읽고, 벌거벗은 단독자의 각오로 다시 모비딕을 읽을 것이다. 크고 낡은 흰고래 모비딕과 대칭점에 서 있는 것은 에이헤브 선장도 아니고 주인공 이슈메일은 더 아니다. 낡은 배 피쿼드 호와 세 갑판장으로 대표되는 그 배의 선원들이 고래의 맞은 편에 서서 같은 종말을 바라보고 나아간다. 죽음을 예견하면서도 끌려들어가고 마침내 침몰한다.
나는 요즘 사람마다의 잡지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글을 쓰고, 사람에게 묻고, 사진을 찍고, 잡지를 만드는 일들을 돈벌이로 해왔다. 이제 모두 함께 한다.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찍어서 인터뷰는 문장으로 만들고 사진과 함께 잡지로 엮어 낸다. 한 사람이 주인공인 잡지다. 그 잡지로 돈을 번다.
2012.09.10 10:06
마지막으로 여기에 쓴 것이 지난 4월 말이구나. 오래 됐다. 4월 말쯤이면 작업실을 열고 두어 달이 지났을 무렵인가. 아득하다. 계획은 여럿이었는데 작은 계획들은 저들끼리 모이면서 덩치를 키워서 좀처럼 상대하기 어려울 만큼 거대해졌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나,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날마다 눈앞에 닥치는 것들을 겨우 넘으면서 지난 몇 달을 지나왔다. 많은 것이 여전히 모자르고 숨은 여전히 턱 아래 어디쯤까지 차오른 상태인 듯하다. 그래도, 한 눈에 다 담기지 않는 괴물처럼 몸집을 키운 계획의 덩어리에 작은 바람구멍이라도 내야 하니까, 그래야 조금씩 털어질 테니까, 다시 쓰기를 이어가야겠다. 새로 찍은 사진들도 많고, 새로 생긴 사람들, 새로 나눌 이야기도 많다. 정리해서 올려 두어야 하는 묵은 이야기들도 많다.
아침에 시장에 갔다. 잠결에 아내의 주문서를 들었는데 대충 일곱 가지였다. 김치 다 먹었으니 새로 담그겠다고 말한 것이 벌써 한참인데 바쁘다는 핑계로 도와줄 수 없었다.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출근 전에 시장에 갔다. 우선 여기에서 파는 배추는 너무 물러서 김치 담그기에 적당하지 않으니까, 여기에서 와와차이.라고 부르는 조금 작은 배추를 샀다. 마늘, 양파, 감자, 부추, 생강, 두부, 매운 고추를 샀다. 대충 챙겨보다가 한 개가 모자라서 아내에게 전화해서 다시 물어야 했다.
두부를 사고 100위엔 짜리 지폐를 내고 거스름돈을 받았다. 20위엔짜리 세 장과 10위엔짜리 세 장을 받았다. 아저씨는 두부를 담근 물에 손가락 하나를 적신 다음 돈을 셌다. 받아 보니 지폐는 뻣뻣한 기운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오래도록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온 돈인 듯싶었다. 게다가 특별히 구겨지거나 찢어진 부분도 없었다. 그러니까 오랜 시간 동안 여러 곳을 떠돌아 다녔지만 인상 곱게 늙어간 사람의 얼굴같은 돈이다. 곱게 받아서 집에 오는 내내 산전수전 다 겪은 돈을 생각했다.
저녁에는 새로 담근 김치를 먹겠구나.
2012.04.21 23:51
07:00
아침 공항에 앉아서 비행기 출발 시각을 기다리며 지난 밤 파키스탄에서 발생한 비행기 추락사고 뉴스를 본다. 뉴스는 모자이크 처리 없이 잘려나가 기체에 깔린 죽은 몸을 보여주었다. 사고가 난 기종은 보잉737기종이라고 한다. 오늘 아침 내가 타고 갈 비행기는 어떤 기종일까?
23:50
구이저우 성의 성도, 구이양에 와 있다. 내가 타고 온 비행기는 A321 기종이었다.
2012.04.08 22:50
대학 때 썼던 노트 몇 권을 아직 갖고 있다. 대부분 안재흥 선생님 수업의 노트들이다. 열심히 들었던 강의였으니까, 그때 생각으론 아마 혼자라도 강의록을 보며 더 배울 것들이 있었던 모양이니까, 또 내 노력의 흔적들이 있었으니까 졸업 후 중국으로 오며 여러 책과 함께 가져왔었다. 전공과 전혀 상관 없는 사진가가 되기로 결심했으면서.
며칠 전에 우연찮게 강의 노트를 꺼내봤다. 중간중간 밑줄을 긋고 제법 여기저기 반론도 적어 둔 자료집이 있었다. 필기 잘 하는 후배의 노트를 복사해 둔 것도 있었다. 그리고 시험을 준비하며 따로 정리한 요약 노트도 있었다. 그때도 벼락치기는 여전했던 거니까 바쁜 마음은 글씨에 그대로 드러났다. 흘러가듯 페이지를 채운 글씨들은 그러나 정돈되어 있었다. 백지에 바쁜 마음으로 적어도 단정하게 이어진 글씨들이 지금 보아도 예쁘다.
손글씨가 점점 못 생겨진다. 몇 년째 속지를 바꿔가며 쓰고 있는 수첩 속에서, 내 글씨는 점점 더 못 생겨진다. 요즘에는 가끔 내 글씨가 참 미워 보인다. 제법 좋아하던 내 글씨가 몇 년 사이에 그렇게 되었다.
기억하기에, 누나는 참 예쁜 글씨를 썼다. 처음 글씨를 염두에 둔 것이 아마 중학교 무렵이었던 듯한데, 그때도 누나 글씨를 보며 부러워했던 것 같다. 가물하기는 해도. 스스로 필기하며 ‘내 글씨는 왜 이리 못 생겼나.’ 생각하기도 했었다. 이 기억은 분명하게도. 누나의 글씨를 부러워했던 정확한 기억은 고등학교 때다. 누나의 글씨는 기억나지 않고, 다만 그 글씨를 부러워했다는 기억은 난다. 그리고 더디고 성글기는 해도 꾸준히 글씨를 의식하며 글을 썼다. 제법 내 글씨가 마음에 들게 된 것은 대학에 입학하고도 제법 시간이 지난 뒤였지 싶다. 특징적인 형태를 갖춘 초기에는 그 특징을 과장하려는 서툰 의지가 글씨에 드러났을 것이다. 그리고 더 다듬어지면서 비로소 서툴고 과장된 의지는 속으로 숨고 쓰는 사람의 기질이 보이는 글씨가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글씨가 마음에 드니 여기저기 편지 쓰는 일도 많았다. 메일로 안부를 주고 받다가도 언제 한 번씩은 손글씨로 편지를 썼다. 백지에 쓰기도 하고 따로 편지지를 마련해서 쓰기도 했다. 선생님이나 친구에게 보내는 안부 편지도 있었고 연애 편지도 있었다.
처음 중국에 왔을 때 샤오싱 근처에 있는 정원에 들렀는데, 그곳에서 말로만 듣던 왕희지의 글씨를 처음 보았다. 오리인지 거위인지 몇 마리가 떠다니는 작은 연못 앞에 왕희지의 글씨 두 글자를 새긴 큰 비석이 있다. 선이 굵은, 단호하고 굳건한 글씨였다.
한 번 익힌 글씨가 망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한 번 배우고 나면 언제든 다시 탈 수 있는 자전거처럼, 한 번 익힌 글씨는 온전히 내 것이 되는 줄 알았다. 최근 수첩에 적은 내 글씨를 보면서, 쓰지 않으면 망가지는 것이 글씨라는 사실을 알았다.
최근에야 새롭게 든 생각인데, 전통 한자 서예야 말로 추상 미술의 절정이지 싶다. 한국의 고암 이응노 화백이나 중국의 국보급 화가 우관중 같은 이는 공통적으로 말년에 문자 추상을 작업한다. 두 사람 모두 프랑스에서 공부했고, 서양적 회화 기법과 동양의 수묵 기법을 독창적으로 결합시킨 작품 세계로 인정받았다. 그렇지만 그들의 문자 추상 작업은 서예의 길과는 다른 길을 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서양 순수 추상의 발생기에 그것은 비명 소리에 가까웠다. 비명의 속뜻은 ‘에라, 어쩔 줄 모르겠다.’쯤 될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은 잔뜩 있는데, 현실에 있는 단어들은 그 감정들을 담기에 어딘지 모자르고, 그렇다고 고정된 형태 속에 가두기는 답답하니 비명을 내지르는 것 밖에. 그때의 추상미술은 소통하자는 제안이나 아름다움을 공유하자는 선의가 아니라 누구든 제발 내 비명을 듣고 나를 구하러 와 달라는 구조 요청같은 것이다. 비명에는 논리도, 형식도 없다. 배워야 지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쯤이 태동기 순수추상의 한계가 아니었을까.
서예는 정제된 목소리다. 목소리지만 말이 아니고, 비명도 아니다. 논리로 구축된 언어가 아니다. 무게중심을 두는 것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에 서예는 이미지의 문법 구조를 따르면서 문자 언어의 문법 구조에 한 다리를 살짝 걸친다. 사실 걸치는 것이 한 다리까지는 아니고, 체중의 아주 작은 부분, 내 체중이 거기에 실린다는 느낌은 없지만, 막상 없으면 신체의 균형을 미묘하게 불안하게 만드는 딱 그만큼을 언어의 문법구조에 의지하고 있다. 긴 시간의 수련을 통해 획 하나에 담아내는 오롯한 기운. 수련을 거치며 글씨는 곧 주인과 동일체가 된다. 그리고 안성맞춤 짝으로서의 한자. 한자는 서예와 짝을 이루는 문자다. 글자마다에 태생적으로 뜻을 담고 있는 뜻글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예를 예술장르로서 파악할 때 그 무게중심은 문장의 뜻보다 글씨가 구축하는 이미지의 완결성에 치우친다. 이런 경지를, 현대 추상이 흉내내기는 어렵다. (로스코의 작업은 비슷한 경지에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며칠 전 아내와 함께 상하이 미술관에서 후안 미로의 전시를 보았다. 가기 전까지 미로가 누구인지 몰랐다. 아내는 내가 미로를 모른다는 사실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내 예술 배경은 참 얕다. 어쨌든,
생각보다 큰 전시였다. 크고 작은 미로의 작품들은 수 백 점이나 되었다. 미로는 자신만의 문자를 보여주었다. 그의 문자는 상형문자의 태동기에 있는 것 같았는데, 문자 언어로서의 소통성을 획득하기 이전에 있는 원시 문자를 보는 듯했다. 그의 세계 안에서 온전히 소통하는 문자들은 아름다웠다. 예술은 당대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라는 아도르노의 말을 지지하지만, 그래도 미로의 작업들은 아름다움을 통해 의식을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예술의 본래 목적이라는 오래된 말을 믿게 만든다.
그러니까 결론은,
손글씨를 좀 써야겠다.
덧붙임.
1.
안재흥 선생님께서는 주로 유럽정치와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해 강의하셨다. 나는 그 중에서 특히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된 강의들을 들었다. 선생님께서 개설하신 강의는 유럽정치를 제외하면 거의 모두 쫓아다니며 들었는데, 강의 제목은 달랐지만 모든 강의의 결론은 같은 지점에서 맺혔다.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그랬다. 선생님의 강의는 강의실 안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이후 내가 생각하는 방식의 바탕이 되었다. 나는 사람을 만나고 작업을 진행하는 모든 과정에서 여전히 선생님께 배운 것과 그 연장선에서 배우고 익힌 것들 위에서 생각한다.
2.
검색해 보니 샤오싱에 있는 정원의 이름은 난정?亭이다.
3.
우관중은 중국의 서정적 풍경, 남방 지역의 마을 등을 그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그렸다. 그에 대해 일화 중 인성적인 것이 하나 있다. 우관중은 문화혁명 시기 지방으로 쫓겨 나 노동에 종사한다. 그림은 그릴 수 없었다. 언제 기회가 있어서 길을 나섰는데, 너무 그림이 그리고 싶었던 화가는 인상적인 풍경 앞에서 아내의 등에 캔버스를 올리고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런데 바람이 불어서 자꾸만 캔버스가 접히니까 답답한 화가는 그만 울어버렸다고 한다. 노 화백이 그림이 그리고 싶어서 우는 장면을 생각해 보면 작가의 위대함을 짐작할 수 있다.
4.
고암 이응노 화백은 군상 등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작품을 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언젠가 그의 그림과 똑같은 그림이 어느 작은 갤러리에 있었다고 한다. 그것을 본 지인이 와서 묻기를, 혹시 같은 작품을 두 개 그린 것이 아니냐? 하니 고암 화백은 "세상에 그릴 것이 얼마나 많은데 같은 걸 두 번이나 그리겠나."라고 했다고 한다. 위작이라는 말이었다. 작품 후반기에 문자 추상 작업을 많이 한 것으로 안다.
5.
로스코.는 색면 추상 작가다.
6.
후안 미로.는 다다.의 시대를 관통한 작가다. 그의 작업은 당시 유행하던 의식의 흐름. 기법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2012.03.27 23:05
작업실에는 암장이 있다. 작업실 가운데 있는 콘크리트 기둥을 네 장의 합판으로 둘러싸서 만들었다. 합판 한 장의 규격은 122cm*244cm이고, 콘크리트 기둥은 네 면이 45cm의 정사각 기둥이다. 아래쪽은 높이 80cm까지 네 장의 합판을 세로로 길게 두르고, 그 위에 온전한 크기의 합판 네 장을 귀퉁이만 잘라서 얹었다. 위에 얹은 네 장의 합판은 아래쪽 폭이 45cm, 위쪽 폭은 122cm이다. 아래쪽에 붙인 네 장의 합판 두께를 미리 계산해서 기둥 두께에 보태야 했는데 처음 하는 일이라 서툴렀다. 그래서 아래 합판과 윗 합판은 아귀가 딱 들어맞지 않고 조금 엇나가 있다. 네 장의 큰 합판은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넓어져서, 이어 붙이면 앞쪽으로 기울어진 형태가 된다. 처음 생각에는 네 장 합판이 서로 붙어서 깔끔한 모습을 계획했던 것인데, 그랬을 경우 기울기가 충분하지 않아서 운동량이 부족할 것 같았다. 그래서 최종 형태는 합판의 모서리가 서로 닿지 않고 가운데 기둥이 들여다 보이는 모양이다. 기둥에는 따로 드릴 구멍을 내거나 볼트를 박지 않았다. 네 장의 합판을 와이어와 나무 지지대로 이어서 기둥에 밀착하도록 했다. 처음에 주문한 합판은 16mm짜리 였는데, 나중에 배송받은 해바라기 너트가 더 두꺼워서 다시 2mm짜리 두께의 합판을 네 장 더 사서 붙였다. 겨우 두께를 맞췄다. 합판이 힘을 받을 수 있도록 세로 지지대를 두 개씩 대었다. 그리고 합판 한 장에 약 40개 정도의 구멍을 뚫었다. 12mm 드릴 날을 따로 주문해야 했다. 인공 등반에 쓰는 홀더들은 일반적으로 10mm 볼트로 고정한다. 이때 충분한 지지력을 얻기 위해 합판 뒤쪽에 12mm 지름의 해바라기 너트를 미리 박고, 앞쪽에서는 해바라기 너트에 볼트를 고정하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홀더가 겉돌지 않고 지탱하는 힘도 강해진다. 네 면 중에 한 면은 홀더 대신 보드 위주로 만들었다. 손가락 근육과 등 근육을 단련하는 목적인데, 난이도가 높아질 수록 등과 겨드랑이 근육을 더 많이 쓰기 때문에 꼭 필요한 훈련이다. 합판은 근처 목재상에 주문했고, 홀더와 너트 볼트 등은 인터넷으로 구입했다. 중간에 몇 번의 설계 수정까지 겹쳐서, 모두 만드는 데는 2주 가까이 걸렸고, 4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었다. 삼중으로 안전 장치를 했으니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일은 없겠지만, 아마추어가 뚝딱거리며 만들었으니 살짝 삐걱거리기는 한다.
암벽 등반을 운동으로 시작한 지 2년쯤 되었다. 중간에 반 년 넘게 쉬기는 했지만 나름 꾸준히 하고 있다. 상하이에는 산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어서 진짜 바위를 탈 기회가 적다. 그래서 운동은 주로 시내 몇 곳에 있는 인공암장에서 한다. 볼더링을 할 수 있는 구역이 있고, 높이 20미터쯤 되는 벽들이 몇 개 있다. 일요일에는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과 정기 모임이 있고, 평일에는 두 번 정도 따로 나가서 운동했다. 이제 작업실에 암장이 있으니까 실내 암장에는 일요일에만 가고 평일에는 틈틈이 작업실에서 매달린다. 작업하다가 지루하면, 밥 먹고 졸리면, 괜히 심심하면 암벽에 매달린다. 한 번 기둥을 돌아오는 데 2분 정도가 걸리니까, 다섯 바퀴를 돌면 10분이 조금 못 걸린다. 얼마 안 해도, 매일 꾸준히 하는 것이 제법 많은 도움이 된다.
아내는 내가 너무 암벽만 좋아하니까, 다른 운동도 해 볼 것을 권한다. 동의하면서도, 당분간은 암장을 벗어날 생각이 없다. 예전에 했던 다른 운동들에 비하면 암벽은 내게 더 맞는 운동 같다. 대충 하기는 했어도 몇 년 동안 검도를 했으니 팔 힘의 기본은 다진 셈이고, 몸이 가벼우니 더 적은 힘으로 멀리 갈 수 있다. 상대와 승부를 겨루는 것도 아니고, 어제보다 조금 더 높이 가고 어제보다 조금 더 어려운 동작을 성공하면 된다.
매주 일요일 아침에는 일찍 깬다. 시계를 보고, '아직 시간이 안 됐네.'아쉬워하면서 다시 조금 더 잔다. 소풍가는 어린 아이 같다. 암장이 좋은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 아마 단순하기 때문인 듯하다. 몸이 바쁘지 않아도 마음이 바쁜 날들이다. 닥쳐올 일들을 생각하면 막막한 날들이다. 그런 중에 암벽에 있는 동안에는 다른 모든 것을 접어둘 수 있다. 다음 번 잡아야 할 홀더와 그 홀더를 잡기 위해 몸의 균형을 잡는 문제만 생각하면 된다. 어떻게 하면 떨어지지 않고 저기까지 갈 수 있을까? 문제는 단 한 가지면 된다. 실패하면 어떤가. 떨어지고 다시 붙으면 그만이다. 사방이 길이기도 하고 사방에 길이 없는 것도 같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막막한 평원에서 일요일마다 수직의 벽으로 탈출하는 셈이다. 벽을 오를 때, 안 좋은 버릇이기는 한데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간다. 암벽은 오르는 사람과 오르는 사람의 안전을 확보하는 사람이 한 가닥의 줄로 이어져 있으니까 둘 사이의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그러니까 이어폰으로 귀를 막는 것은 사실 위험한 행동이다. 자연암벽이나 처음 가는 코스에서는 조심해야겠지만, 인공암장에서 어려운 코스를 갈 때는 꼭 음악을 듣는다. 사방의 소리로부터 떨어져서 벽하고 나만 있다. 가다가, 가장 어려운 구간에 진입하기 전에 숨을 돌리면서 음악을 바꾼다. 가장 어려운 구간에서 듣는 음악은 언제나 한 곡이다. 응원가 같은 곡을 들으면서 점점 빨라지고 높아지는 음에 박자 맞추면서 공중에 혼자 매달려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세상에서 몇 발 떨어져 있을 수 있는 때가 흔하지는 않은 거니까.
날씨가 제법 풀려서 곧 봄이 올 것을 알겠다. 맴버들과 두어 달 전부터 벼르고 있다. 다들 고만고만한 수준이니까 어려운 벽은 못 가겠지만, 아마 4월 중에는 항주에 있는 작은 바위 벽으로 갈 거다. 온몸이 뻐근하도록 바위를 타고 와야겠다.
2012.03.07 23:55
자정이 가깝다. 조금만 손보고 잘랬는데, 밤이다. 밖에는 빗물을 가르며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난다.
사이트를 고쳤다. 깔끔해졌다. 복잡한 것들을 다 치우고, 제로보드에서 지원하는 기본 기능만 활용해서 클릭 몇 번으로 만들었다. 클릭 몇 번이라고는 해도 이것저것 물어보고 고르느라 또 며칠은 걸렸다. 사이트를 고친 이유는, 새 작업실 사이트를 따로 오픈하면서 사진 관련 자료를 모두 옮겼기 때문이다. 새 작업실 사이트는 www.spacewhu.net이다.
뭔들, 어느 시간인들 그렇지 않겠냐만 또 많은 것들이 변했다. 차근차근 적으려고 한다.
몇 년간 생각만 하던 잡지를 또 부여잡는다. 이번에는 스튜디오에서 만드는 이미지 잡지다.
좋은, 마음에 드는 새 집이다. 잘 써야겠다.
2012.01.08 08:41
책상을 정리하는 심정으로, 한 번쯤 깔끔하게 정돈하고 싶은 날들이다. 할 수 있는 말도 많지 않은데, 너무 오래 말하지 않고 지냈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지난 다음에, 천천히 복기해보고 싶어지는, 그러니까 내가 눈치채지 못 하고 놓치고 지나는 작은 조각들이 군데군데 박히는 날들이다.
새 작업실을 열었다. 어수선하다. 한 동안 분주하게 내부 인테리어를 했다. 제한된 견적 안에서 하려니 직접 발로 뛰고 직접 손으로 만드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할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직접 하고, 직접 찾아서 주문하고 받아서 만들었다. 손과 시간이 많이 갔고, 결과물은 전문가의 작업에 한참 못 미쳤다.
여전히, 세상에 빚지는 마음으로 산다. 한 평생 빚을 지고 산다. 미안한 마음만 자란다. 이런 텅 빈 문장은 안 좋다. 말 하려는 내용은 없고 다만 들어주기를 바라는 의지만 내세우는 비겁한 문장이다. 어서, 속이 단단한 문장을 쓸 수 있도록, 좋은 생활을 구축해야겠다.
'지난 블로그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년 짧은 글 모음 (0) | 2016.04.08 |
---|---|
2013년 짧은 글 모음 (0) | 2016.04.08 |
2011년 짧은 글 모음 (0) | 2016.04.08 |
2010년 짧은 글 모음 (0) | 2016.04.08 |
2009년 짧은 글 모음 (0) | 2016.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