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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역꾸역, 버티는, 살아내는, 아름다움, 예쁘다,

 

 

손을 펴 보았다. 학교까지 마루를 배웅하는 짧은 길, 돌아오는데 아침 빛이 낮게 온다. 손을 펴서 조금만 좌우로 돌려보면 작은 손바닥 안에도 깊고 높은 지형이 있다고, 빛이 알려준다. 작구나. 숨기는 것 없이 온전히 드러내는 빛 아래서 손바닥을 보며 생각했다. 이 작은 손에 몇 개의 단어나 온전히 담을 수 있을까 싶어졌다. 손안에 쥔 모래알처럼 단어가 빠져나간다던 소설가의 말처럼.

단어 하나하나가 작고 둥근 돌멩이의 몸을 가졌다면, 그 단어들을 하나씩 쌓아가는 문장은 참 위태롭겠다. 문장은 위태로운 단어의 돌탑이고, 그런 돌탑을 모아 만든 이야기는 산사태 직전의 돌숲 같을까. 곧 허물어질 것 같은 문장들 사이에서 나는 어느 하나에도 의지하기 어렵겠다. 단단한 생각의 구조물이라고 오해하고 기대면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 어쩌면 젤리처럼 뭉개질 수 있다. 
 
내가 길어올린 몇 개의 단어를 웅얼거려 본다. 

꾸역꾸역, 버티는, 살아내는, 아름다움, 예쁘다, 

잘 쓰는, 제법 익숙하게 다루는 단어들. 꼬리를 무는 단어들은 힘겨운 날들에서 출발해서 마침내 얻어낸 아름다움일 수 있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최면이나 설득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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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를 마쳤다.

원고를 마쳤다. 한 달 조금 더 걸렸다. 친구 경완이 브런치에서 진행하는 공모전 소식을 알려줬다. 마침 맞출 수 있을 것 같아서 조금 서둘렀다. 역시 마감은 없던 힘도 만들어 준다.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얼마나 됐나?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 꼭 끝내주는 책을 쓴다!라는 선언을 종이 위에 휘갈겨 쓴 다음 컴퓨터 옆 벽에 붙여두었었다. 상하이에 있을 때부터, 아내를 만나기 전부터였으니까 그것도 아마 15년쯤 되었을까. 상하이에서 이사할 때도, 제주로 올 때도 그 메모를 갖고 왔었다. 지금은 찾을 수 없지만 버리지는 않았을 테니 어디 서류더미 사이에 있을 것이다.

 

그 오랜 다짐을 어제 마무리한 셈이다. 아직 정식 책이 된 것도 아니고, 책이 될 운명인지 아닌지도 모르지만 나름대로 목차를 짜고 필요한 사진들을 배치해서 마무리했다. 공모전 사이트에 올리고 나니 매듭 하나를 지었다는 후련함이 남았다. 되기를 바라고, 되면 좋겠지만 안 되어도 어쩔 수 없다. 끝내주는 책은 아닐 지라도, 15년의 숙제를 작게나마 풀 수 있었으니까.

 

아침에 인터뷰집 한 권을 잠깐 읽었는데 어찌나 다음 장이 궁금해 지는지. 글은 이렇게 써야 하는데, 싶다. 나는 문장을 길게 쓰는 편인데, 긴 문장은 따라오려면 읽겠다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시험 참고서도 아니고, 유행하는 책도 아니라면 굳이 그런 노력을 들일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니까, 문장 문장을 조금 더 짧게 끊어 쓰고 좀 더 흡입력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다음 글쓰기의 숙제를 받은 셈이다.

 

이번 글은(차마 아직 책이라고 못 부르겠다.) 이렇게 마쳤으니 다음 책을(여기서는 책이라고 써도 양심의 가책이 없다.) 생각한다. 두 가지 이야기를 쓸 것인데, 하나는 중년 남성들의 사진인터뷰집이다. 사진관의 지향점이 점점 뚜렷해진다. 나는 나이 든 남자들을 가장 많이 찍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나누어주는 이야기들을 받아 적으려고 한다. 앞으로 1년 정도면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두 번째는 더 설레는 작업인데, 나의 항해일지.라고 제목 붙였다. 서문의 첫 문단은 벌써 썼다. 제주에 와서 갖게 된 꿈, 항해.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없지만, 차근차근 배우고 성장하고 또 경험해서 나의 요트를 타고 대양으로 나가려고 한다. 그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것이 두 번째 작업이다. 대중의 일반적인 관심사는 아니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이번에 마친 원고에 대해서는 당분간 돌아보지 않으려고 한다. 조금 묵혀두었다가 다시 꺼내보면, 그때는 부족한 것들이 더 드러나서 고쳐쓰기 좋은 상태가 되어 있을 테니까. 글을 묵혀두면 그 뼈대가 드러나는 이 과정을 사진적인 묘사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도 생각해 보아야겠다.

 

어제는 조금 늦게 잤고, 오늘 일어나는 것도 조금 늦었다. 덕분에 책 두어 장, 화장실 한 번, 일기 조금 썼는데 날이 밝는다. 조금 있으면 마루가 깨고 분주한 아침이 온다. 여기까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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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되었다

운동을 시작하고 꼭 한 달이 되는 날이다. 내게는 중요한 작은 성취니까, 기록해 두자. 

왼쪽 팔꿈치와 오른쪽 어깨가 아픈 지는 오래 됐다. 각각 테이스엘보, 회전근개파열 가능성 진단을 받았다. 왼쪽 무릎도 조금씩 이상해지려고 했다. 엘보는 거의 3, 4년쯤 된 것 같고, 어깨도 2년쯤 됐다. 최근에는 특히 어깨가 심하게 아팠다. 잠잘 때도 아파서 오른쪽으로 돌아눕기가 어려웠고, 아침에 일어날 때도 팔을 딛기 어려워서 몸을 빙글 돌려 일어나고는 했다. 일상 생활 중에도 통증 때문에 지장이 많았고, 특히 출장 촬영 때 조명 장비를 들어야할 때는 문제가 컸다. 여러 개인병원을 다니며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았지만, 비슷한 진단에 서로 다른 처방을 주었고 그때만 잠시 낫는 듯하다가 조금 지나면 다시 돌아왔다. 

그래,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보다. 이제 더 이상은 예전처럼 일하기 어렵겠다. 근력을 조금 덜 쓰고 일하고, 몸을 조금 덜 움직이고 돈을 버는 방법을 고민해야겠다. 클라이밍도 이제 다시는 못 하겠구나. 몸은 어떻게든 알아서 방법을 찾겠지. 아픈 부분을 조금 덜 쓰는 대신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겠지. 

대충 그렇게 생각하면 됐지만 어쩐지 조금 서글펐다. 요령도 생겼다. 두 팔의 아픈 부위는 달랐으니까, 팔꿈치에 무리가 가는 동작은 오른팔을 쓰고, 어깨에 부담이 가는 동작은 왼팔을 쓰는 식이었다. 미봉책.

그러던 중에, 여름 포구에서 다이빙을 하며 놀던 날이었다. 제법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는데 오른쪽 어깨가 깨질 듯이 아팠다. 순간적으로 팔이 수면을 치면서 저항을 받은 모양이었다. 아, 큰일났다.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어서, 필요하면 수술이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지인에게 병원을 소개받았다. 그리고 MRI를 찍었다. 그 전에도 mri가 정확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초음파를 통해서 보아도 회전근개 문제라고 하고 증상도 꼭 회전근개 문제였기 때문에 그에 맞는 치료를 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의사는 내 mri를 본 후, 회전근개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 부위에 염증소견이 조금 있고, 약간 붓기는 했지만 회전근개 근육 자체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달랑 진통소염제 처방을 했다. 한 알이다. 한 번에 한 알씩, 하루에 두 번. 정말로 이걸로 되나?

저, 그럼 운동해도 되나요?
네, 뭐 근육은 문제가 없으니까, 하실 수 있으면 얼마든지 해도 됩니다.

해도 된다. 그래서 시작한 운동이 오늘로 딱 한 달이다. 농담처럼, 받아서 태어난 체력은 다 썼다. 이제는 만들어 써야 하는 나이다.라고 주변에 말한다. 나는 암벽 운동을 멈춘 뒤로 딱히 운동이라고 한 게 없다. 가끔 카약을 타고 자전거를 타지만 그때뿐이지.

작정하고 근력운동을 시작했다. 시간을 길게 잡으면 부담스러우니까, 짧게 하는 대신 강도를 높였다. 하루에 15분씩 상체와 하체를 번갈아 했다. 며칠 하고 조금 익숙해진 뒤에는 운동을 조금씩 추가해서 지금은 30분쯤 한다. 한 달 동안 딱 하루를 걸렀는데 그날은 새벽 5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한라산을 걸었던 날이니까 예외로 해도 괜찮다. 결과는 생각보다 금방 나타났다. 가장 먼저 변하는 것은 체력이다. 하루를 좀 더 밀어부칠 수 있는 체력이 생기니까 생산적인 에너지가 따라왔다. 하고 싶었고 하려고 했으나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씩 시도했다. 아플 조짐이 보이던 무릎은 어떤 통증의 기미도 없다. 왼쪽 팔꿈치도 많이 회복됐다. 오른쪽 어깨는 여전히 통증이 남아있지만 적어도 필요한 때 필요한 힘을 낼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중량을 들고 돌리고 몸을 끌어올리는 모든 운동 동작에서 어깨는 아무 문제없이 작동하고 있다. 다시는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든 육체적 시도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겨우 한 달만에.

요즘 내 일과는 새벽 4시에 시작한다. 일어나서 물 한 잔 마시고 곧장 글을 쓰기 시작한다. 6시까지 글을 쓰고, 운동을 시작해서 마치고 샤워까지 하면 7시다. 아침을 먹고 이런저런 업무를 처리하다가 11시가 되면 낮잠을 잔다. 1시간 조금 안 되게 자고 일어나서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다시 일상. 하루를 그렇게 보내고 11시 전에 잠든다.

겨우 한 달이다. 지난 경험에 비추어 보면, 대부분의 운동이나 경험이 몸에 익는 데는 석 달쯤 걸렸던 것 같다. 최소한 석 달은 해야 몸이 조금 적응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아직 두 달은 더 긴장속에 운동해야 하고, 이제 겨우 열흘쯤 된 글쓰기는 앞으로 석 달을 더 지속해봐야 몸에 겨우 익을 것이다. 

작은데 단단한 성취가 이토록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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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리니까 아무 말이나.

졸린데, 사진 카피하는 동안 잠시만.

 

며칠 동안 드문드문 이어졌던 영상 촬영이 오늘로 끝났다. 별 것 없는 동네사진관 사진가 한 명을 위해서 여러 스탭이 고생해주었다. 오늘은 조환진 선생을 찾아가 돌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진찍는 장면, 공천포 바닷가에서 카페지니의 최유진 대표를 모델로 풍경사진같은 인물사진을 찍는 장면을 촬영했다. 

 

이제 요청받은 사진 몇 장을 전해주면 내 일은 끝난다. 내가 하는 작업, 내가 생각하는 사진에 대해 말했는데 아직 서툰 생각들이지만 단어를 써서 문장으로 구축하다 보니 괜히 커졌다. 가진 것보다 너무 좋게 보여질까봐 겁난다. 빈 것을 아닌 척한 것은 아닌가 싶어서.

 

졸리니까 아무 말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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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것보다 너무 크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연하게, 한 명의 사진가로 방송에 소개된다. 미팅을 하고, 일정을 잡고, 촬영팀이 와서 몇 번에 나누어 내 사진작업과 생활과 생각에 대해 묻고 찍는다. 평소의 생각, 평소의 작업을 보여준다고 마음 먹었지만 촬영이 이어질 수록 불안한 마음이 커진다. 나는 한낱 작은 사진관의 사진가이고 겨우 말하려는 것을 서툰 작업으로 내보이는 것이 고작인데,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너무 크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찍는 사진보다 너무 대단하게 보여주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그렇게 보이고 싶지 않은데, 말과 행동은 보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보다 더 깊은 곳에서 나오면 어쩌나 싶다. 행동하는 나와 지켜보는 나 사이의 간격을 줄이는 일이 나는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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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은 드러나고 기만은 물러가라.

마루는 열 살이다. 아침에 깰 때마다 아이를 바라본다. 같이 아침을 먹고, 학교까지 가는 3분 남짓한 길을 손잡고 걷는다. 걸으면서 매번 말해준다. “아빠가 마루 손잡고 학교 가는 거 얼마나 좋아하는 지 알지?” 마루의 대답은 간결하다. “네!” 횡단보도까지 바래다준 후에는 “인사 잘 하고, 오늘도 멋진 하루를 보내.” 인사한다. 마루는 또 “네!” 하고 학교로 뛰어간다. 

요즘은 매일 태권도를 다녀서 5시를 조금 넘겨 집에 온다. 씻고, 게임하고, 저녁먹고, 영상보고, 아내가 읽어주는 책을 듣는 것이 마루의 일상이다. 대부분 셋이 같이 잠드는데, 어쩌다가 마루가 먼저 잠드는 날이면 아내와 조용히 아이 옆에서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본다. 어쩌면 저렇게 예쁜지 감탄하면서.

그렇게 자란 아이가, 날마다 나를 조금씩 닮아가는 아이가 열 살이다. 저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얼마나 힘들까. 그게 만약 당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부당하게 당한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생각한다. 하물며 목숨이야,

그런 아이들이 침몰하는 배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 하고 죽은 것이 8년 전이다. 죽음을 예감한 아이들이 학생증을 꺼내 목에 걸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아내는 울었다. 다시, 그날이다. 감당하기 벅찬 어려움이 닥쳤을 때 마루는 아빠엄마를 찾는다. 언제 어디에 있든 내가 찾으면 아빠엄마가 나타나서 나를 구해줄 것이라는 확신이 마루에게는 있다. 세상 대부분의 아이들은 비슷한 확신을 갖는다. 답을 주지 않더라고, 언제든 부모가 옆에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모든 부모는 그런 아이들의 기대에 기꺼이 부응한다는 각오가 있다. 

무슨 말을 더 하랴. 그 아이들을 가슴에 묻고 여전히 한을 품고 사는 그 부모님들이 너무 마음 아프다. 온몸과 마음으로 아빠엄마를 찾았을 때 그 부름에 대답해주지 못 했다는 그 한의 크기는 가늠할 수 없이 크고 깊은데,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그 원통함은 조롱의 대상이 되어 있다. 그들이 죽은 아이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마음에 내려놓을 수 있도록, 비밀은 드러나고 기만은 물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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