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저당잡히는 기분
은행에 들러 서류를 마저 썼다. 열흘쯤 전에 와서 대출관련 서류들을 쓰고, 오늘 다시 와서 통장 발급을 위한 업무를 처리했다. 지난 번에 이어서, 정체가 모호한 수십 장의 서류에 주소와 이름을 썼다. 주소는 내 집과 땅을 담보잡힌다는 것이고, 이름은 모든 사태의 책임을 내가 진다는 뜻이다. 서류를 가득 채우고 있는 글자들은 빼곡한데, 설명은 두어 마디로 끝난다. 간단한 설명과 복잡한 서류 사이는 멀어 보이는데, 그 간격을 제대로 따져볼 수 없다. 대충 눈대충하며 적어넣는 내 이름들. 인생을 저당잡히는 기분.
이렇게라도 내가 원하는 돈을 얻고, 그 돈으로 집을 짓고, 그 집으로 다시 돈을 모아야지. 뭐든, 해봐야지. 안 하고 내려놓으면 안 되니까. 시도하는 것만으로 의미는 생기는 거니까.
식은 밥상을 덮는 한 장의 조각보를 겨우 들고,
사진리뷰 세 개를 해야하는데 겨우 하나를 마쳤다. 하기로 한 다른 잡무는 거의 마쳤다. 더 하면 너무 늦어질 것 같으니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 한다.
기티는 아침에 발을 다쳐서 절뚝거리며 왔다. 내일부터 며칠 자리를 비우니까 심하면 오늘 병원에 데려갈까 하다가 두고보기로 한다. 다행히 저녁 때가 되니 아침보다 훨씬 수월하게 걷는다.
민박등록에 필요한 점검을 나왔는데, 마침 보일러실 문이 잠겼다. 필요한 설비를 다 설치하고 문을 닫는다는 것이 문고리가 고장나며 안에서 잠겨버렸다. 한참 열쇠를 찾았는데 못 찾았다. 담당 주무관은 헛걸음했다. 미안했다. 오후에 기술자를 불러 문을 따고 손잡이를 갈았다.
어머님 아버님이 오셨다. 곧 아버님 팔순인데, 가족 다 같이 해외여행 간 적이 없다고 아쉬워하셔서 짧게 대만을 다녀오려고 한다. 두 분을 모시러 공항에 가며, 오늘이 우리 결혼기념일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오늘 뭔가 있었는데? 하며 아내가 겨우 떠올렸다. 사납지 않아도 멈추지 않는 파도가 이는 바다처럼, 날마다 눈앞에 닥친 일들을 해치우며 살다 보니 오늘이다. 나보다 나은 점이 참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평소 생각대로 말해줬다. 고맙다.
내일 점심비행기로 대만으로 가서 목요일에 돌아온다. 마루와 새벽수영을 할 테고, 아버님 다리가 쉽게 지치시니 많은 것을 보기보다 맛있는 것들을 먹는 일정으로 잡았다.
오래된 인연들과 한참만에 다시 연락이 닿으면 마음과 기억은 순식간에 그때 언저리로 달려간다. 온전치 않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겠지만, 어쩌면 그때는 하나의 색을 가진 한 장 보자기 같았을 수도 있었을까. 하나의 색이라고 믿고, 또 하나의 색으로 쭉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시간이 있었던가. 찢어지고 기우는 온갖 시간을 지나서, 식은 밥상을 덮는 한 장의 조각보를 손에 들고 선 것 같다. 부끄럽지도 밉지도 않고, 기워낸 자리마다 연민과 애정의 기억들.
자러 가자.
마루가 유튜브를 시작했다.
마루가 유튜브를 시작했다. 예전에 내가 개설해서 제주에서 사는 마루의 일상을 몇 개 올린 채널이 있었는데, 마루는 그게 싫댄다. 자기가 직접 원하는 영상만 올리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새 채널을 하나 팠다. 이름은 구국이새.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해달라는 대로 해줬다.
패드에서 낙서(내가 보기에는...) 비슷한 그림을 몇 개 에니메이션으로 묶어서 올리고서는 재밌다며 혼자 낄낄거리며 웃는다. 아빠는 구독자가 160명도 넘는다고, 아빠를 우러러보라는 식으로 이야기해줬다. 마루도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우리 아빠는 구독자 100명도 넘는다고 자랑을 하곤 했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갑자기 실실 웃으면서 거실로 나온다. 또 무슨 사고를 쳤을까 싶어 물어보니, 어제 밤에 마루가 올려놓고 잔 짧은 영상이 오늘 아침에 확인해 보니 조회수가 1500회를 넘겼다는 거다. 그럴 리가? 잘 못 봤겠지.
낚시터에서 고기 손질하다가 생선심장이 뛰는 것을 찍어둔 것이 있는데, 그걸 올렸더니 글쎄 조회수가 그렇게 나왔다고 한다. 이런. 나는 공들여 준비하고 찍고 편집하고 올린 것들 중에서도 400회 좀 넘는 것이 제일 많이 본 것인데...
재미를 붙인 녀석이 별 요상한 것들을 만들어 올린다. 별 것 아닌 것 같으면서도 가만 보면 나는 도저히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기괴하고 창의적인 것들이다. 아, 시대가 이렇게 다른 거구나 싶다.
그나저나, 마루 구독자가 나를 넘어서는 날이 어쩌면 생각보다 빨리 오겠다.
공인인증서와 싸움했다
그런 아이들이 있다. 가려움을 참지 못해 계속해서 몸을 긁어대는 아이들. 그러면 상처가 덧나고 더 가려워진다고 말려보아도 당장의 고통을 잊기 위해 더 느리지만 큰 고통을 제 스스로 가하는.
일상이 비틀리면서, 아슬아슬한 날들이라고 생각한다. 스트레스가 심해서 뒷목이 거의 고정값처럼 뻣뻣하고, 뒷통수 한쪽에 감각이 이상해진 것이 제법 되었다. 처음에는 이 무슨 일인가 싶어 병원도 가고 한의원도 다녔는데, 어느새 조금씩 익숙해졌다. 무섭게.
그러다가 오늘에야 문득, 내가 나를 할퀴어대고 있었구나 하는 작은 깨달음이 왔다. 아무도 나를 등떠밀지 않았는데, 혼자서 손톱을 세우고 시간을 들이고 자꾸 생각을 보태가면서 나를 상처내고 있었던가. 적어도 그러지는 말아야겠다고 오늘 종일 생각했다. 주문처럼, 내가 나를 할퀴지는 말아야지. 입속으로 웅얼거렸다.
은행에 가서 대출을 문의했다. 지금 조건에서 주택담보로 받기에는 중간에 거쳐야 하는 단계가 너무 많고 불편하다. 그래서 숙박업을 사업항목에 추가하고 시설비 항목으로 사업자대출을 받는 방법을 쓰기로 했다. 어차피 대출받아서 집을 짓고 에어비엔비를 돌리려던 것인데, 순서가 조금 바뀌었다.
오후 내내 공인인증서와 싸움했다.
나의 항해일지
어제 연습을 오늘 쓴다.
날씨가 흐렸다. 김녕쪽으로 넘어가니 안개가 짙고 비가 내리고 있었다. 9시 조금 넘겨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고 범장했다. 바람은 동풍이고 다른 날보다 조금 잔잔해서 연습하기 좋겠다는 인상이었다. 물은 이제껏 본 적 없을 정도로 높이 차올랐다.
배에 올라서 테킹하며 동쪽으로 올랐다. 동쪽에는 해안이 있어서 가상의 목표점을 그리기 쉬웠다. 롤테킹을 연습했다. 타기 전에 육지에서 15분 가까이 동작의 순서를 반복하며 익혔다. 밀고 쿵 잡고 앉고 밀고 쿵. 바람이 클 때는 무서워서 시도하지 못 했는데 오늘은 마음껏 해볼 수 있었다. 하는 동안 시트가 자꾸 발에 감겨서 애를 먹기도 했다.
자이빙은 여전히 무섭다. 센 바람에서 자이빙하면 세일이 바람을 양껏 안아서 곧장 배를 뒤집으려 든다. 살금살금 겨우 한다. 자이빙을 준비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댄다.
중간에 코치님이 오셔서 방파제 쪽에서 부르셨다. 그 앞으로 가서 테킹 동작을 반복하고, 코치님이 부족한 부분을 지적해 주셨다. 조금 더 여유를 갖고 한 박자 느리게 움직일 것.
1시간 정도 연습하고 마쳤다. 로그를 보니 여전히 테킹 각도가 많이 아쉽다. 각의 끝이 단정하지 않아서 방향을 잡는데 다시 시간을 쓰는 각도가 많고, 들어온 각과 나가는 각이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단정하지 않은 각도는 기술이 부족한 것이고, 맞아떨어지지 않는 각은 바람을 읽어내는 것이 서툴기 때문이다.
연습 마친 후 코치님과 앉아서 이야기했는데, 지나가는 말처럼 어쩌면 5월쯤에 태국에 다녀오셔야할 수도 있다고 했다. 지인 중에 선장 한 분이 요트 딜리버리를 의뢰받았는데, 혼자 하기 어려우니 코치님께 같이 가서 배를 가져오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태국에서 한국까지는 1주일이 걸린다고 한다. 매력적이다. 어디 영상 기록맴버 필요하면 데려가 달라고 할까 생각했다. 아내에게 이야기하니 휴식 겸 다녀오라고 하는데...
요트클럽은 올 연말쯤 J24 요트를 한 대 가질 거라고 한다. 팀 단위 세일링 연습을 할 수 있다고 하니 기대한다.
나의 항해일지
트라우마라는 단어는 너무 만연한 것 같아서 잘 쓰지 않으려고 하는 단어다. 신체적 부상에 따르는 정신적 후유증. 살면서 크게 겪어본 적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요며칠 바다에서의 내 상황은 트라우마라는 단어 외에 쓸 것이 없다. 지난 겨울 그날, 세 번의 전복 이후 바다는 어찌나 무서운지.
오늘은 코치님도 육지에 가셔서 바다에 아무도 없었다. 바람은 북서풍이 6m/s로 불었는데 파도의 골이 깊었다. 오전 10시 조금 전에 도착해서 준비하고, 배를 채비해서 나갔다. 큰 숨을 여러 번 내쉬고서야 바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의 90도 방향으로 만들어지는 코스를 빔리치라고 부른다. 우선 긴장도 풀겸 빔치리코스를 여러 번 오갔다. 부드럽고 정확한 테킹 동작을 여러 번 해보고, 이제 되겠다 싶어서 뱃머리를 돌려 우선 런코스를 타고 풍하로 갔다. 거기서 다시 테킹. 바람이 불어오는 쪽에 가상의 목표를 정하고 홀드 코스를 따라 지그재그로 바람을 거슬러 갔다. 계속 정확하고 부드러운 테킹을 신경쓰며 배를 몰았다. 서너 번 그렇게 타고, 스타트라인에서 배를 멈추고 기다리는 연습을 조금 했다. 런코스에서 조금 더 속도를 높이기 위해 시트를 당기는 연습도 해보았다. 유튜브에서 본 것들이다.
구해줄 수 없으니 조심해서 타라는 코치님의 당부도 있었고, 이 바다에서 한 번 뒤집히면 제법 고생을 할 것 같아서 겁도 많이 났다. 항을 많이 벗어나지 않고 조심해서 타다가 결국 한 번 빠졌다. 배가 뒤집힌 것은 아니고,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에 발이 안 걸리면서 빠졌다. 다행히 물은 생각보다 차갑지 않았고, 메인시트를 잡고 있어서 금방 다시 올라왔지만 놀란 마음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우선 배를 바람 방향으로 세워서 잠시 숨을 돌리려고 했는데 파도가 높아서 그마저 쉽지 않았다. 잠깐 더 타고 서둘러 귀항했다.
만약에, 지난 겨울 캡사이즈 이후로 배를 더 이상 타지 않았다면 이 두려움을 평생동안 갖고가야 했을까. 다행스럽게 나는 적당히 나이가 들었고, 경험치도 쌓였다. 많은 종류의 두려움은 직시하고 도전하며 극복해낼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지금은 다시 배에 오를 때마다 가슴이 떨리고 무섭지만, 이 상황에 더 자주 나를 노출시키면 조금씩 나아지고 마침내 예전보다 훨씬 바람을 잘 읽고 배를 잘 움직일 수 있게 될 것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