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줄만 적자.
두 줄만 적자. 마루와 처음 습관을 약속하며, 너무 거창하지 않은, 작은 변화를 만들자고 했다. 그래서 하루에 딱 두 줄만 적으면 되겠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에 적을 두 줄을 위해 하루의 작은 이벤트마다 이걸 적을까? 어떻게 적을까? 생각한다. 두 줄에 적어 내리기엔 하루가 너무 풍성하지. 게다가 오늘 펼쳐질 하루에 대한 생각까지 더해지면, 후.
오늘부터 당분간 비 예보가 없고 기온은 조금씩 오른다. 줄 서 있는 작업들을 차근차근, 해내야지.
홍신자
오늘 오후에는 무용가 홍신자 선생의 사진을 찍는다. 정확한 컨셉과 시안이 없는, 즉흥성을 발휘해야 하는 촬영이다. 며칠 동안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머리 속에 그렸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내 질문은 크게 두 개인데,
예술은 시대가 선택하는 것인데, 백남준과 존 케이지의 시대는 왜 홍신자의 춤을 선택했던 것일까?
여든을 훌쩍 넘긴 무용가가 이제야 마침내 다다르게 된 몸짓이 있을까?
화려한 이력의 그 대신에, 지금 그의 얼굴과 몸짓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내려고 한다. 오늘은 집짓는 일을 잠시 멈추고, 온전히 촬영에 집중해야겠다.
아빠의 유산
중년 이상의 어른들을 촬영할 때 자주 묻는 질문이 있다. 자녀와 함께 왔다는 전제가 있을 때 이야기다.
당신이 가진 것 중에 아이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대화 뒤에는 다음 질문이 하나 더 있다.
아이가 가능하면 닮지 않기를 바라는 당신 모습은 어떤 겁니까? 앞선 질문이 미끼에 가깝다면 이 질문에서 주인공은 윗쪽을 한 번 쳐다보고, 한숨을 한 번 내쉬기도 한다. 잠깐 생각한 후 내어놓는 대답은 그의 지난 시간을 관통해 온 것들이다.
지난 주말, 아빠가 도움이 필요하니 미팅을 좀 하자고 마루에게 요청했다. 나는 노트북과 커피 한 잔, 마루는 노트와 핫초코 한 잔을 놓고 회의실에 앉았다. 화면을 켜서 준비한 내용을 보여주며 마루의 의견을 물었다.
네가 가장 닮지 않았으면 하는 나의 습관은 꾸준하지 못한 태도다. 그걸 고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데 쉽지 않다. 이번에는 네가 좀 도와주면 좋겠다. 작은 습관을 서로 만들고 파트너가 되어 서로 살피자.
마루는 아침 7시 이전에 일어나는 습관을 정하고 보상으로 모닝커피를,
나는 새벽 글쓰기와 아침 운동, 컨텐츠 만들기를 우선 정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첫 글을 이렇게 적어둔다. 하루 2줄만 적기로 했는데…
오노 가즈오
오노 가즈오(Ohno Kazuo, 1906-2010)
오늘 새벽 오조리 촬영을 마치고 제이와 미겔에게 갔다. 작년 겨울 전시 때문에 서울에서 만난 후 올 들어 처음 본다. 둘은 여전했고, 처음 뵙는 홍신자 선생님은 힘을 뺀 모습이었다. 다음주에 작은 촬영을 하기로 했는데 어떤 요구가 있는 것인지 확인하지 못 했다. 촬영을 하게 되면, 왜 그 시대는 홍신자의 춤을 선택했던 것이냐고 물어봐야겠다.
대화 중에 오노 가즈오의 이름이 나왔고, 미겔은 그의 사진을 내게 보여주었다. 전설적인 부토 무용가. 그의 얼굴을 보며 주름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주름은 나이가 들며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어서 불가항력이다. 나는 나이든 얼굴을 좋아하고 주름은 그의 역사라고 생각하지만 오노 가즈오의 얼굴은 달랐다. 그 주름은 춤을 위해 그가 적극적으로 얼굴에 새겨넣은 듯했다. 보통의 무용가가 발을 딛고 서는 춤의 무대를 필요로 하는 것과 조금 다르게 부토는 무용가의 얼굴을 춤의 무대로 쓰는 듯하다. 홍 선생님은 오노 가즈오가 80세를 넘겨 비로소 무용의 전성기를 맞았다고 했는데, 어쩌면 그는 자신의 무용에 필요한 주름을 새기는데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주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었던 자리다.
아, 정성 가득한 미겔의 아침식사에 감사. 아침부터 생마늘을 먹는 건 마늘 좋아하는 나도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맛있었어요. 올리브기름과 토마토와 생마늘 조합.
내년에 다시 보자
계절이 바뀌었다, 불쑥. 더운 하루를 각오하고 땀흘려 일할 준비를 마치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아침 기온이 훅, 다르다. 또 한 번의 여름이 간다. 올 여름은 집지으며 잘 놀았다. 아마 가을도 비슷한 일상이 이어지고, 제법 손 시릴 때쯤 되어야 마무리되겠지만, 여름 집짓기는 마무리될 모양이다. 카약은 꺼내지도 못 했고, 새벽 바다수영도 못 했다. 요트도 겨우 한 번 다녀왔다. 그렇게 보낸 여름이지만 꽉 채웠다는 감상으로 적을 수 있는 것은, 집짓는 일이 정말 재미있기 때문이다. 구상을 하고, 구상을 구체화시키는 계산을 하고, 필요한 자재와 장비를 사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르고 용접하고 나르고 쌓고 허물고 바르고 닦아내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다. 스케일을 아주 많이 키운 레고놀이. 팀은 합이 잘 맞고 아내는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고 마루는 한결같이 잘 놀고. 대출받은 통장 잔고가 아직은 바닥나지 않았고.
여름, 내년에 다시 보자. 내년에는 하던 대로 바다에서.
타블렛이 말썽이네.
새벽 6시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나는 절단기를 연결해서 데크 프레임을 잘랐다. 아내는 뒷마당에 보도블럭을 깔았다. 중간에 태연이 와서 도와줬다. 12시 조금 전에 마쳤다. 뜯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어제 밤 6시쯤이었으니까, 만 하루도 안 돼서 데크 해체를 모두 마쳤다. 스스로 대견했다.
주말 학교동아리 활동을 마치고 온 마루와 아내와 태연과 함께 하귀에 갔다. 철물점에 들렀는데 찾는 제품이 없어서 L앙카 추가분만 구입해서 왔다. 점심으로 갈비탕과 냉면을 먹었다.
돌아와서 남은 해체 작업을 한 시간쯤 더 하고, 샤워하고 잠깐 누웠다. 몸은 피곤했는데 잠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쉬니까 훨씬 나아졌다. 건축사진 작업을 조금 더 하다가 수산리 주택 추가 촬영을 갔다. 마치고 당근으로 예약한 스킬쏘를 구입했다.
돌아와서 다시 컴퓨터 작업하다가 저녁을 먹고 다시 작업실에 왔다.
내일은 새벽 건축촬영을 다녀와서 오전은 아내와 또 작업하고, 오후에는 리터칭 작업을 하고 밤에는 출장 준비를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