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항해일지
올 첫 요트연습을 다녀왔다. 지난 토요일에 갔었는데 바람이 좋지 않아서 이론수업만 들었었다. 오늘은 바람이 적당해서 타기 좋았다. 작년 겨울 마지막 연습날에 바람이 거셌다. 그날 나는 자이빙에서 한 번, 런 코스에서 두 번 전복됐다. 제법 센 바람에도 곧잘 탄다고 자신감이 붙어있던 때라 마음 준비도 없었다. 배는 뒤집어졌고, 익숙하게 배운대로 다시 올라오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파도가 너무 높고 배는 옆으로 쓰러진 것이 아니라 완전히 뒤집혔는데 다시 뒤집는데 한참 걸렸다. 겨우 다시 올라탔는데 마스트가 댕강 부러져 있었다. 감독선에 이끌려 해안으로 돌아왔다. 그래,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점심을 먹고, 몸을 데우고 다시 바다로 나갔다. 이때까지는 각오가 제법 날카로웠다. 그리고 다시 오후 훈련. 오전에 전복됐던 자이빙은 순조롭게 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런 코스. 이번에도 휘청. 전복이다. 조류가 빠른 날이었는데, 뒤집어지고 내가 잠깐 당황하는 사이 배는 내게서 빠르게 멀어지려고 했다. 뒤집혀서 물속에 잠긴 돛이 큰 면적으로 조류를 받으니 내달리듯 멀어졌다. 서둘러 헤엄쳐서 겨우 배를 붙잡았지만 뒤집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천신만고 끝에 뒤집고 배에 올라타니 뭘 더 해볼 기운이 없다. 그리고 채 얼마 되지 않아서 또 전복. 겨우 올라와서 서둘러 제일 가까운 해안가를 향해 배를 몰았다. 뭍으로 올라서 정신을 차렸다. 더 이상의 연습은 어렵고, 직선 거리 100미터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방파제를 돌아가야 하는 정박지까지 가는 것도 무서웠다. 애써 태연한 척하며 배를 몰아 돌아왔다.
그렇게 지난 줄 알았는데, 그 기억이 너무 무섭게 남아있었다. 그 전까지는 바람부는 바다를 보면 '오늘 신나게 탈 수 있겠다'했는데, 오늘은 근처까지 가서 바람부는 바다를 보고 괜히 무서워졌다. 코치님의 이론설명을 듣는 동안에도 가슴이 콩닥거렸다.
출항.
어차피 멀리 가지 말라고 했으니, 가까운 곳에서 우선 몸을 풀었다. 15분쯤 움직이니까 다시 조금씩 감이 왔다. 4월에 있을 시합 준비에 맞춰 연습했다. 멈췄다가 출발하는 연습, 정확하게 각도를 재서 꺽는 연습, 잡은 방향을 유지하는 연습을 했다.
다행이 전복 없이 오늘 연습을 마쳤다.
나의 항해일지에 전복이라는 소제목으로 다음 이야기를 써야겠다.
유튜브를 잘 보고 있다는 구독자의 전화를 받았다. 아직 몇 개 올리지 않았고, 올렸다 한들 내가 하는 이야기가 뭐 대단한 도움이 될 것도 아닌데 좋아해 준다니 고맙다. 유튜브는 개중에 나랑도 잘 맞는 것 같아서, 앞으로 꾸준히 계속 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요트 연습장을 오고가며 컨텐츠를 생각했다.
그런 곳이 있었던가
어젯밤에 사진스터디 모집 글을 썼다. 이번에는 사진기초반부터 인물사진 응용반까지 모두 여섯 개 클래스로 나눴다. 하나씩 차례로 개설하고, 올해는 쭉 이어가야겠다.
아침을 먹고 지민이네 가족과 함께 바리메오름 주차장으로 갔다. 작은바리메오름을 올랐다. 아직 흙이 드러난 겨울인데 복수초가 많이 피었다. 흙바닥을 배경으로 노란색 꽃이 뚜렷했다.
마루는 지민이네 놀러가고 집에 와서 간단히 점심 먹고 나는 요트 타러 갔다. 4월 23일 오전에 있을 도민체전 준비를 시작했다.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오늘은 바람이 없어서 어렵겠다고, 이론수업으로 대체했다.
코치님은 시합의 기초지식 중심으로 설명하셨다. 스타트 법과, 위반하면 벌점을 받는 규칙에 대해 들었다. 그리고 범장과 해장 연습을 했다. 요트학교 뒤편에 버려진 호비16 바디가 자꾸 눈길이 간다. 오래돼서 돛과 돛대는 이미 없고, 바디도 염분에 삭아서 거의 폐기 수준이지만, 저걸 가져와서 좀 고쳐 타볼까 생각도 한다. 고치고 꾸미는 재미도 없진 않을 텐데... 괜히 청승인가 싶어서 선뜻 시작하지 못하겠다. 저걸 고쳐서 본래 것보다 크기가 작은 돛을 달고 5마력짜리 선외기도 하나 달아서 가까운 바다에 낚시 다니면 좋겠다.
집에 오니 아내는 정원 일이 한참이다. 혼자 놀고 온 것이 눈치 보이니까 얼른 장화로 갈아신고 삽을 들었다. 아내가 시키는 대로 수국을 삽질해서 파내고 마당 가운데 쪽으로 옮겨 심었다. 이제 저 수국들이 다시 무사히 자리를 잡고 무성해지면 그 사이에 낮은 의자 하나를 놓아주어야지. 그러면 사진관에 오는 사람들이 참 좋아하겠다.
건축촬영 의뢰를 받았다. 재작년 아산 주택과 작년 홍원항 주택을 의뢰했던 건축사님이다. 두 건을 의뢰하셨는데 하나는 천안, 하나는 논산이다. 거리가 있으니 두 곳을 오가며 하기는 어렵겠고, 우선 천안을 이틀 정도 찍고 논산으로 이동해서 다시 이틀을 찍어야겠다. 5일짜리 출장을 준비해야겠다.
저녁은 치킨을 시켜먹었는데 내가 주문을 잘 못했다. 나는 후라이드 치킨에 매운 간장 양념을 찍어먹겠다고 했는데, 받아와서 열어보니 매운 양념간장 치킨이 들어있다. 맛있는데 매워서 많이 못 먹었다. 아내는 눅눅해서 마음에 안 든다고 몇 개 안 먹었다. 내일 아침에 밥이랑 먹어야지. 먹은 지 몇 시간이나 지났는데 속이 쓰리다. 아...
중국에서 제주도로 오는 비행길이 다시 열였다고, 다이디가 연락해 왔다. 거의 3년 동안 못 왔으니 얼마나 오고 싶을까. 설레는 마음이 채팅창 너머로 느껴졌다. 이번에 오면 같이 산책이라도 다녀야겠다. 그 사이 새로 알게 된 맛집이나 카페도 같이 데려가야겠다. 그런데 그런 곳이 있었던가...
유튜브 컨텐츠 하나를 찍고 오늘을 끝내려는데 어째 이리 손이 안 가나... 그래도 하고 자야지.
20년 만에,
새벽 5:30에 알람을 맞춰두고 잤다. 알람을 듣고 깨었다가 한참을 뒤척이고 6시에 거실로 나왔다. 어제 쓰다 만 와디즈 스토리를 마저 쓰다가 7시에 버핏과 스쿼트로 운동했다. 샤워하고 아침을 먹고 마루를 보내고 작업실에 왔다. 잠깐 작업하는데 뒷머리 저린 것이 더 심해진 것 같아서 작업할 수 없었다. 한의원에 다녀오겠다고 했는데 증상이 계속되니 병원에 다녀오라고 아내가 말했다. 김앤김신경외과에 가서 진료했다. 증상을 듣고 목 엑스레이를 찍었다. 일자목 때문이라고, 경추 4번과 5번 사이에 오른쪽에 조금 변성이 있다고 했다. 약을 처방받고, 메켄지 운동을 하라고 했다.
병원 갈 때부터 뒷골이 불편하고 몸도 쳐지고 눈도 한쪽이 침침했는데 그게 모두 딱 들어맞는 증상이었다. 교과서처럼. 아마 요 며칠 아침부터 밤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게 무리한 모양이다. 집에 돌아와서 김밥으로 아내와 점심 먹고 도저히 작업을 할 수 없어서 잤다. 잠깐 잔다고 했는데 두 시간을 훌쩍 넘겼다. 일어나서 한의원으로 갔다. 병원과 한의원의 처방이 같았으니 치료는 계속 받던 한의원에서 받고,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기로 했다.
치료를 마치고 태권도장으로 가서 마루를 픽업했다.
마루가 계란찜을 하고 나는 어제 태연에게 받은 뱅에돔을 구웠다. 아내는 마당에서 물 주느라 늦게 들어왔는데 식탁을 보고 놀라워 했다.
저녁 먹고 다시 작업실에 와서 어제 오늘 못다 쓴 와디즈 원고를 드디어 마쳤다. 여러 행정 관련 정보를 마저 채우면 내일은 업로드해서 심사를 기다릴 수 있다.
제품촬영 견적서를 보냈다. 사진관에서 쓰는 견적서 폼이 너무 볼품없어서 새로 꾸미던 중이었는데, 새로 형식을 만들어 보내느라 오래 걸렸다. 한동안 조금씩 수정하며 최종본을 만들고 몇 년은 그 형태로 쓰려고 한다.
시니어모델 프로필 촬영 문의를 받았다. 나는 나이든 얼굴을 좋아하는데, 시니어모델은 재밌을 것 같다. 성사되면, 또 쭉 이어지면 좋겠다.
집에 있던 태블릿 거치대를 가져와서 노트북을 세웠다. 모니터 거치대로 마련해서 모니터를 높이려고 한다. 목을 가능한 위로 세울 수 있는 자세를 만들어야겠다. 그래야 문제없이 오래 일할 수 있다. 의자 높이를 낮췄다. 시선이 조금 더 위를 봐야 해서 고개가 펴진다. 당분간은 이렇게 써야겠다. 모니터 보는 시간을 조금 줄이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그건 마음대로 안 되니까.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나무에 새순이 돋는다. 정원에 나갈 때마다 새순 올라오는 것을 보는 게 요 며칠 즐겁다. 아침에 아내와 마당에 앉아서 대화했다. 올 연말까지 정말 열심히 해보고, 그래도 가능성이 안 보이면 사진관을 접고 그 자리에 차라리 숙박용 집을 지어서 팬션으로 운영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겠다고 했다. 사진을 직업으로 삼고 20년 만에, 처음 그런 말을 했다.
나는 이제껏 정말 온전히 돈을 벌기 위해 애쓴 적은 없는 것 같아서, 올해는 진짜 제대로 사진관으로 돈을 벌어보겠다고 마음 먹고 있는데, 그렇게 마음을 먹고 했는데도 안 된다면, 내 밥벌이로서의 사진은 별로 가망이 없는 것은 아닌가. 20년 만에, 처음 그런 생각을 했다.
230309 소나기처럼 후두둑
하루 종일 와디즈에 올릴 펀딩 글을 만들었다. 오늘은 꼭 올리려고 다짐했는데 못 했다. 펀딩 글을 다 쓰고 나면 다른 것도 하려고 3개쯤 더 줄세워 뒀는데 결국 오늘은 어렵겠다. 시간을 조금 더 밀도있게 쓰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한다.
오전 일찍 한의원에 다녀왔다. 오른쪽 뒷목이 계속 뻐근하고 뒷통수 감각이 이상해서 몇 번 다녀왔는데 오늘도 갔다. 한동안 더 다녀야겠다. 오는 길에 다이소에 들러서 건전지와 케이블을 샀다.
그 뒤로는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만 있었네. 오후에 오기로 했던 서귀포 친구 경완은 컨디션이 안 좋아서 내일 오겠다고 전화했다. 내일은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내일도 안 되면 조만간 내가 서귀포로 가서 만나야겠다. 지원했던 예술가 지원사업은 떨어졌다. 떨어졌다고 진행하지 않을 것은 아니지만, 규모를 줄이고 소박하게 시작해야겠다. 규모보다, 금액보다 사실 더 원했던 것은 지원사업 핑계로 나를 등떠밀게 되는 상황이었다. 한다고 돈까지 받고 마감 날짜까지 있으니 어떻게든 해내게 될 그 상황을 원했는데, 안 됐으니 이번에는 어쩔 수 없다. 더듬더듬 내디뎌 봐야지.
5월 가족촬영을 예약했던 분께 문자가 왔다. 어머니 몸이 안 좋아져서 진행하기 어렵겠다고 취소하셨다. 이번 촬영을 위해서 어머니가 운동도 한다고 하셨는데, 순조롭지 않았던 모양이다. 걱정이 많으시겠다고, 촬영은 괜찮으니 얼른 회복하시면 좋겠다고 답했다.
제품촬영 견적 의뢰 전화를 받았다. 기본견적서를 만들어서 보내주겠다고 했다.
옆집 태연이 저녁에 불쑥 와서 뱅에돔 한 마리를 주고 갔다. 그의 지인이 낚시가서 잡아 나눠준 두 마리 중에 큰 것 한 마리를 내게 준 것이다. 내일쯤 구워먹어야겠다.
내일은 새벽부터 오늘 하던 작업을 마무리하고 싶은데, 요며칠 아침에 깨는 것이 어렵다. 새벽 5:30에는 깨어야 작업 조금 하고 아침운동하면 마루가 깨는 시간이 되는데, 오늘도 마루 깰 때 같이 깼다. 그러니까 아침 시간이 후두둑 소나기처럼 쏟아져서 지나가버린다.
내일은 반드시, 이 작업을 마무리하겠다.
230307 들떴던 마음이
어제는 저녁 에스프레소라운지 책모임이 있었다. 이번에는 재테크가 주제였고, 읽기로 한 책은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였다. 지난 달 모임이 없어서, 오랜만에 넷이 만났다. 예전에는 거들떠보지 않는 종류의 책이었는데, 많이 부분이 와 닿았다. 마루에게는 조금 더 일찍 보여주면 좋겠다. 태연은 전문가적 견해에서, 경희는 결심하는 태도에서 인상적이었다. 진희는 반대편의 생각을 갖고 와서, 덕분에 이야기 나누는 폭이 넓어졌다. 나는 사진관 마당에 글램핑장을 만드는 문제를 케이스스터디로 던졌는데 생각하지 못했던 각도에서 의견들을 주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집에 오는 길에 아내에게 전화해서 잠들지 말라고 하고, 졸린 아내를 붙잡고 늦게까지 부동산 이야기를 계속했다.
오늘은 오전에 행정업무로 분주했다. 아내와 잠깐 외출을 했다. 곽지에 곧 경매로 나올 집을 보러 갔는데, 그 옆집이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 은행에 전화해서 주택토지 담보 대출의 여력에 대해 문의했다. 결론은 우선 우리가 돈을 좀 모은 다음에 대출을 활용하는 것으로 났다. 이틀동안 들떴던 마음이 조금 차분해졌다.
오후에는 전날 이경 선생님이 맡겨두고 가신 그림을 촬영했다. 계속했던 작업이어서 긴장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찍었다. 2주 전에 촬영하고 간 모델이 오늘 와서 사진을 찾아갔다. 작은 치즈컵케익을 선물로 가져오셨다. 나는 비용을 다 받았는데. 생각해보니 지난 촬영이 상담 같았다고, 고맙다고 인사하셨다. 모델을 마주하고 사진을 건네줄 때는 언제나 조마조마하다. 사진이 마음에 안 들면 어쩌나 싶다. 다행스럽게도 좋아해 주셨다.
만년필을 정비했다. 안료잉크는 번지지 않고 더 진하게 나와서 좋은데 며칠만 쓰지 않으면 막히기 쉽상이다. 특히 나는 세필을 좋아해서 더 그렇다. 조금씩 막히는 것들을 대충 잉크로 뚫어가며 썼는데 어제 완전히 막혀서 둘 다 나오지 않았다. 뜨거운 물을 받아서 만년필을 분해한 다음 담궈두고 휘저었다. 몇 분 그렇게 두었다가 한 번 더 반복했다. 다시 잉크를 넣으니 부드럽게 잘 나온다. 괜히 뭐라도 써야할 것 같은, 조금 신나는 기분이 되었다. 사진과 함께 넣어줄 엽서를 쓰는데 생각도 덩달아 부드러웠다. 가능하면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손글씨를 쓰고, 가끔 정비해가며 써야겠다.
저녁에는 사진관 홍보를 위한 컨텐츠 기획을 마저 해야한다. 내일 오전에는 유튜브 영상 하나를 찍고, 사진강의 공지도 만들어 올려야겠다. 더 미루지 말고.
230305 성실한 시간들을 살고싶다
오전부터 사진작업을 계속했다. 급하게 부탁받고 증명사진을 찍었다. 이제 고등학생이 된 지 이틀 된 모델은 낯설지만 호기심도 있는 날들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함께 했던 친구들과 헤어져서 아쉽지만, 또 새로운 친구가 생길 것을 믿는다. 학교는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가야한다.
오후에는 모처럼 바닷가 산책을 했다. 몇 년 전부터 마음에만 두고 있었던 요트 모형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요즘 간절해져서 마땅한 나무재료를 찾으러 갔다. 오랫동안 바닷가를 떠돌며 모양이 다듬어진 원목을 찾았는데 완벽하게 어울리는 것은 없었다. 갯바위 냄새가 좋았다. 날씨가 제법 따뜻해져서 이제 전갱이 낚시를 할 수 있겠다.
돌아와서 아내와 마당에 글램핑 사이트 만드는 이야기를 했다. 낯선 여행자들이 오고가는 날들이 올까.
저녁에는 사진관에서 태연씨 경매강의가 있어서 1층을 비워주고 나는 2층에서 작업했다. 열심히 사는, 좋은 자극이 많이 되는 친구다.
답답하고 조급하지만 일이 되지 않는 날, 허무하게 흘려보낸 것 같은 날들이 이어질 때가 있다. 그때는 시위를 당기는 중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큰 행위가 드러나지 않아도, 긴장의 활시위를 천천히 보이지 않는 속도로 당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괜찮다, 괜찮다.
더 이상 당길 곳이 없을 만큼 당겨지면 마침내 쏘아져나갈 거니까. 내 시간도 그럴 거니까 지금 이 답답한 시간도 괜찮다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해야 내가 나를 버리지 않고 버틸 수 있다.
성실한 시간들을 살고 싶다. 그래서 아주 나중에 아주 오래 전 인연들을 다시 만나게 되면, 차곡차곡 잘 살아서 마침내 여기에 닿았다고, 편안하고 단단한 인사를 건네고 싶다. 기꺼이 손을 마주잡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