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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역 선장의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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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 추락하다
드론, 추락하다
서귀포 사진이 몇 장 필요하게 생겼다. 새벽부터 장비를 챙겨 한라산을 넘어 왔다. 차 타고. 솔오름 전망대 도착 시간은 아직 해도 뜨기 전이다. 해 뜨기를 기다려 다시 봐도, 이 빛이 아니네. 아침 빛에 여긴 쓸 수 없구나. 차를 몰아 정방폭포 주차장으로 간다. 여기서는 서귀포항과 섶섬, 문섬까지 찍을 수 있다. 오늘은 카메라보다 드론이다. 자, 준비하시고, 날리세요.
아차, 메모리가 없다.
몇 년에 한 번씩 꼭 벌어지는 실수다. 매번 신경쓴다고 해도 꼭 방심하는 한 때가 있다. 그게 대충 몇 년 주기다. 캐시메모리에 저장한다고 해도 답이 안 나온다. 날 밝기를 기다려 아무 거나 작은 용량으로 하나 사서 끼울까? 또 아차, 드론 베터리 충전기도 안 가져왔다. 베터리 두 개 중에 하나는 새벽에 이미 다 썼고, 남은 하나라고 해 봐야 고작 30분쯤 날리면 방전될 텐데. 안 된다. 결국 다시 산을 넘어 왕복 두 시간을 다녀오기로 한다.
집에 도착하니 아직 아침 시간이다. 아들은 일어나서 내복 차림으로 밥을 먹고, 아내는 벌써 새벽 텃밭 일을 한참 마쳤다. 새벽에 쓴 베터리를 충전기에 걸고, 메모리를 챙긴다. 전기자동차 베터리도 잠시지만 충전기에 걸어둔다.
심기일전. 다시 산을 넘어 도착한 고근산. 산 정상 바로 아래까지 도로라더니. 나는 몇 발짝이면 될 줄 알았다. 아니네. 나는 왜 구두를 신고 왔을까.
어쨌든 정상. 고근산은 가운데가 움푹 파인, 전형적인 제주 오름의 형태. 산이라고 이름 붙어 있지만. 드론을 날린다. 한라산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니까, 드론은 북동쪽으로 뜬다. 빛이 예쁘지 않다. 엇갈린 방향. 오늘 아침에 찍었어야 한다. 어쨌든 아쉬운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중. 잠시 딴 곳을 봤던가, 잠시 다른 생각을 했던가. 갑자기 모니터에 뜨는 마이너스 고도 알림. 뭐, 산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고 얼른 고도를 올리려는데, 덜컹. 화면이 흔들린다. 그리고 이내 화면을 가득 채우는 나뭇가지. 아, 추락이다.
다시 떠라. 제발 떠라 드론.
화면은 고정됐고, 움직이지 않는다. 추락이다. 다행인 것은 흔들리는 화면이 오래 가지 않았으니 아마도 나뭇가지에 걸려서 바닥까지 떨어지지는 않은 듯하다.
대충 드론이 날아오던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보이는 것은 없다. 기척도 없다. 얼른 벗어 놓은 카메라를 메고 드론 가방을 챙겨 들었다. 저 숲을 가로질러 가야 한다. 내가 서 있는 곳은 작은 분화구의 남서쪽이고 드론은 분화구를 가로질러 동쪽 어디쯤에서 떨어진 것 같았다. 돌아오는 중에 부딪쳤으니 아마도 산사면의 오르막 어디에 있을 것이다. 화면에는 아직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 한손에 조종기를 들고 곧장 분화구를 가로질러 뛴다. 길은 없었다. 덤불과 가시가 몸에 엉켰다.
다행히 멀지 않았다. 화면을 보며 방향을 수정하며 5분쯤 걸었다. 작은 등산로 근처였다. 자, 화면에 뜬다. 드론은 지금 내 머리 위에 있다.
급하게 하지 말자 혼자 다독이며 우선 근처에 짐을 내렸다. 외투를 벗고, 장갑을 꼈다. 그리고 반경 10미터를 다 뒤진다고 생각하고 숲으로 들어갔다. 나무 꼭대기 어디 걸렸을 거야. 딱 보일 거야. 그 흰 덩치가 이 초록의 숲에 있으니까 바로 보일 거야.
크게 두 바퀴를 돌았지만 울창한 숲 어디에도 드론은 없다.
아, 없다.
굵은 나무 한 그루를 타고 중간까지 올라가서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없다. 없다.
이건 사막에서 모래 찾기다. 계속 붙들고 있다는 건 무모하다. 머리가 자꾸 설득한다.
자, 상황을 수습해야지.
촬영은 마감이 급하니까,
우선 어떻게든 드론을 빌려서 내일 마저 찍자.
드론은 필요하니까 새 드론은 할부로 주문해야 하나. 돈 나올 구석이 없는데.
새 기종으로 바꿔야 하나? 그러면 지금 있는 조정기와 여분 베터리가 갈 데가 없는데.
어쨌든 찍어야 된다. 모레쯤 마감시킨다고 보면 내일 하루는 있다. 오늘 얼른 돌아가서 드론을 빌리러 가 보자. 안 빌려주면?
온갖 생각이 정신 없다.
다시 숲길로 나와 이리 저리 둘러본다. 조종기 화면에는 이미 ‘기체연결 끊김’메시지. 이제 어떡하나.
우왕좌왕하는데, 휭.
작은 바람이 분다. 휭.
아, 휭.
뭐지? 휭.
멈춰서 가만 들어보자. 작지만 분명히 난다. 저 소리, 드론 모터 돌아가는 소리 같은데…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드론은 없다. 잘 못 들었나. 근처에 고장난 안테나라도 있나. 내 이어폰에서 신호간섭이라도 있나. 휭.
혹시나 싶어 이리 저리 돌아보는데 딱 한 자리. 분명히 여기 한 자리에서만 소리가 난다. 아무리 봐도 아무 것도 안 보이지만, 분명히 이 자리에서 소리가 난다. 정확하게 드론이 있다고 지도에 표시된 그 자리다.
아! 있다. 저기 있다. 저기 저 위에 빨간 불빛 있다. 드론 꼬리 불빛. 그 옆에 나뭇가지랑 다른 모양도 조금 보인다. 아, 저 솔잎 뭉치 안에 저기! 지도는 정확했다. 반경 10미터를 뒤진다는 내 각오를 비웃듯이, 드론은 1미터 오차 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내가 몰랐을 뿐.
소리가 아니었다면 절대 볼 수 없는 모양으로, 저 높은 곳에 드론이 매달려 있다. 됐다. 보았으니 됐다.
이제 꺼내러 가자. 이럴 때 쓰려고 10년 넘게 클라이밍을 배웠다. 신발끈 묶고, 둥치에 난 가지를 이리 저리 잡아가며, 혹시 부러질 지 모르니까 체중을 잘 나눠 실어야 한다. 나는 왜 구두를 신고 왔을까. 나무는 높았다. 높으면 뭐? 드론이 저기 있는데. 드론은 다행이 날개 하나 부러진 게 없이 나뭇가지 사이에서 잎과 엉켜서 걸려 있었다. 꺼내서, 무사히 땅으로 내려왔다.
긴장이 풀리고 다리가 떨렸다. 날아다니는 녀석이니까 언젠가 떨어질 수 밖에 없겠지만, 지금은 안 된다. 클라이언트는 마감을 재촉하고 있고, 다시 살 돈도 시간도 없다. 지금은 안 된다.
운이 좋았다. 추락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드론이 무사히 돌아오기 위한 모든 조건이 좋았다. 추락지점이 멀지 않았고, 접근하기 어려운 바다나 절벽도 아니었다. 나무에 잘 걸린 덕분에 망가지지도 않았고, 추락지점에 도착할 때까지 위치가 표시되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추락위치를 파악하는 기능은 따로 있었다.) 그리고 높은 곳에 걸린 드론을 갖고 오는 건 다행히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새벽 메모리를 놓고 온 일부터 추락까지. 아내는 오늘 별로 안 좋다며 일찍 돌아오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클라이언트의 독촉이 있다. 초록 풀즙을 뒤집어쓴 녀석을 갖고 내려와서 다시 시동을 건다. 날아라 드론, 밥값 벌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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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이미 떠버렸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 구엄포구까지는 차를 타면 10분쯤 걸린다. 한라산을 대각선으로 넘어 남쪽바다까지는 보통 한 시간쯤 걸린다.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어서 공천포구로 왔다. 제법 일찍 출발했는데 오는 동안 해는 수평선 너머로 떠올랐다. 계절이 바뀌면서 새벽이 빨리 온다. 딱히 일출을 찍어얄 것도 없었다지만 해는 벌써 떠버렸고, 오전 내내 카메라 들고 돌아다니면서 사진 한 장만 건지면 되니까 재촉할 것도 없다. 따뜻한 차 안에 앉아서 점점 높아지는 해 보면서 메모장을 연다.
계간지의 표지사진을 의뢰받았다. 이런 종류의 사진은 어렵다. 나는 상업사진가인데, 상업사진은 대부분의 경우 클라이언트와 클라이언트의 요구가 분명하다. 찍어야하는 대상과 구사해야 하는 기술의 내용이 뚜렷하다. 그런데 이번 작업은 무언지는 모르지만 무언가를 찍어서 클라이언트의 기대치를 넘는 동시에 불특정 다수의 시선을 붙잡아야 한다. 이쯤되면 주관식 문제 중에서도 특히 질문은 짧은데 답은 길게 써야될 것 같은 문제쯤 된다. 게다가 나는 풍경사진에 내세울 것도 없는데. 이 답 안 나오는 문제지를 받아들고 어디든 가서 뭐든 해봐야 하니까, 공천포 바다에 있다.
몇 번 그런 경험이 있다. 클라이언트와 에이전시, 스탭들까지 열댓 명이 스튜디오에 들어차서 모두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는데 좀처럼 사진은 안 나올 때, 문 닫힌 스튜디오에는 도망칠 구멍도 없다. 그럴 때는 괜히 조명을 이리저리 옮겨보면서 혼자 속으로 고함을 친다.
괜찮다. 시간은 어쨌든 간다. 어떻게든 끝은 난다.
그런 생각으로 버티고는 했다. 그런 때에 비한다면야 이 정도 부담감은 껌이다. 옆에서 미심쩍은 눈빛으로 지켜보는 클라이언트가 있길 하나 당장 두 시간 후에 마감이길 하나. 아직 시간도 있고, 발품만큼 사진이 나올 거라는 믿음도 있다. 그리고 나는 주말 이 아침에 벌써 산 너머 바다에 와 있지 않나. 어제 새벽은 중문으로 가서 찍었고 오늘은 여기 남동쪽을 걷는다. 아직 며칠 여유가 있으니 몇 번은 더 와서 어딨는 지 모르는 한 장을 찾아다닐 작정이다. 일을 핑계 삼아 한가롭다. 문장이든 사진이든, 길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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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을 자리가 저긴데
오후에 집 아래 구엄포구에서 열리는 플리마켓에 다녀왔다. 본래 아내가 나가는데 오늘은 마침 3.1절이고, 마루는 어린이집을 안 가고, 그러면 아내가 플리마켓을 가는 동안 내가 마루를 살펴야 하고, 마루를 살피는 것보다는 플리마켓이 편할 것 같아서 대뜸 내가 가겠노라고 나섰다.
새로 만든 상품이 없으니까 이제는 상품성이 다해 가는 엽서와 책갈피 등을 챙겼다. 포구에 도착해서 자리를 배정받고, 테이블을 펼치고 가져온 것들을 정돈했다.
손님은 많았는데 우리 엽서를 찾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빛은 따가워서 남쪽을 바라보고 앉은 얼굴이 다 탔다. 오랜만에 가져간 책을 펼쳐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물건이 안 팔리니까 책도 안 읽히고 시간도 안 갔다. 내가 앉은 뒤편으로 바다가 펼쳐 있고 그 너머에는 구엄방파제가 있다. 방파제 끝에는 언제나처럼 낚시하는 사람들이 몇몇 섰다. 뭐가 얼마나 잡히는 지는 몰라도, 저기 서 있는 게 어딘가. 내가 있을 자리가 저긴데. 여기가 아닌데. 오후 내내 속으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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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가지런하기 어렵다.
지난 겨울 동안 썼던 장작이 바닥을 드러냈다. 작업실 공간 전체를 데우려니 나무 한 짐 타는 게 금방이다. 마당에 널려있던 목재 팔레트 몇 개를 모아놓고 직쏘로 끊어낸 다음 기계톱으로 썰었다. 썰어 낸 장작이 한쪽에 무더기로 쌓였다.
장작이라면 마땅히 마당 한 켠이나 집 벽 바깥쪽에 가지런히 높게 쌓여야 한다. 온갖 이미지 속에서 내가 본 장작이 모두 그랬으니까. 그러나 막상 만들어 보니 어디 가서 돈 주고 사 오는 장작이 아닌 이상 좀처럼 가지런하기 어렵다. 우선 구해 오는 나무가 목재 팔레트부터 공사장 자투리 나무, 바닷가에서 주워오는 나무들까지 출신 성분이 다양하다. 생긴 것이 다르고 붙은 모양이 제각각이라 대충 난로 입구에 걸리지 않을 크기로 자르면 그만이다. 이리 저리 박힌 못은 하나하나 뽑는 것보다 태운 후에 못만 따로 걷어내는 것이 빠르다는 걸 알게 됐다. 각진 나무, 둥근 나무, 구부러진 나무, 못 박힌 나무들을 어떻게 쌓아봐도 차곡차곡이 안 된다. 어지러운 날들이 정신 없이 쌓인 한 달, 일 년이 꼭 저럴까 싶다.
매일을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일과로 움직였다던,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그 사람의 산책 시간을 보며 시계를 맞췄다던 철학자를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언제부터 였나 그럴 수도 있었겠다 생각이 들었다. 요즘 같아서는 공감을 넘어 부럽기도 하다. 무언가 집중하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끊어내야 비로소 가능한 삶의 형태같기 때문이다.
산 속이나 신의 전당에 들어가 사는 수도자의 삶이 아닌 이상, 일상이 가지런하기는 어렵다. 잘 정돈된 삶은 돈 주고 사다쓰는 장작 같아서, 비슷해 보이는 삶도 들여다 보면 아무렇게나 쌓아 둔 장작더미 같을 거다. 한 사람의 일이, 하루의 사건이 키 맞춰 자른 나무토막처럼 열 맞춰 오지는 않는다.
괜찮다. 조금 엉클어져도 삐딱거리면서 간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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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거다.
요즘 혼자 있을 때 자주 생각한다. 진인사대천명. 사람의 할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 먹고 사는 일이 쉽지 않으니까, 왜 안 되는 지 생각하다보면 끝에는 저 물음이 남는다. 나는 내가 할 일을 정말 다 했나? 해볼 수 있는 시도를 다 해 봤나? 질문처럼 한결같은 답이다. 나는 아직 다 안 했다. 더 해볼 수 있는 시도가 남았다. 그러니까, 무슨 다른 거창한 문제가 있어서 안 되는 게 아니다. 아직 다 안 했다. 더 하자. 하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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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몽유적지, 강태영 (1) | 2018.11.12 |
작업일지
어쩌다가, 전시 일정이 잡혔다. 공간은 생겼지만 혼자 북을 치고 장구를 두드려야 하는 개인전이다. 오래 생각했던 아이디어 중에 하나를 꺼내 쓰기로 한다.
무엇이든 이름을 걸고 타인의 시간과 수고를 붙잡아 두려면 의외성과 개연성이 담겨야 한다.
1.
낚시바늘과 낚싯줄을 이용해서 돌을 매달았는데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바늘이 휘어졌다. 근처 낚시점에 가서 대형부시리를 잡는 14호 바늘을 사 왔다. 더 큰 바늘은 어선을 상대하는 어구점에 가야 살 수 있다고 했다. 바늘의 끝을 살짝 잘라내고 와이어에 연결했다. 돌의 무게감을 없애기 위해서.
2.
전체를 약간 뒤에서 비추는 라이팅 하나, 양변 라인을 보여주는 라이팅, 필요한 세부를 밝히는 라이팅, 배경을 구분하는 라이팅, 마지막으로 돌의 인상을 결정하는 라이팅을 세팅했다.
3.
처음 시도 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곳곳에 부족한 것이 보인다. 우선 해결할 것은 주인공과 배경의 분리가 지나치게 단호하다. 50mm 렌즈를 썼는데, 개조한 중형바디에 연결해서 틸트시켜 봐야겠다.
4.
돌은 검어서 혹시 디테일이 먹힐까 걱정했다. 그 걱정 때문에 결과적으로 전체 이미지가 다 보인다. 너무 보인다. 사람의 얼굴에 있는 그늘이 안 보인다.
5.
강요배 선생님을 인터뷰할 때, 선생님께서 지나가듯 하신 말씀이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정말 스스로 인정할 만한 작품을 하면, 결국 사람들도 알아보더라 하셨다. 반대로, 대충 눈속임 하려 들면 그것도 드러날 것이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 지 몰라도, 최소한 나를 납득시킬 수 있는 사진들을 걸어야겠다.
6.
무슨 사진이든 모델은 중요하다. 한 동안 바닷가에 돌 찾으러 다니겠다.
7.
전시의 주제는 고래를 위한 포트레이트.
그 연작 중에서 이번 전시의 소재는 제주돌이다.
8.
조환진 선생을 만나야겠다. 내가 아는 한, 그 분만큼 제주돌에 대해 말해 줄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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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 후보자 촬영을 마치고, (0) | 2018.06.13 |
강요배 작업노트 170317 2pm. (2) | 2017.03.19 |
profoto B2 테스트 촬영. 발레리나, 연주자 (0) | 2017.01.04 |
이 새벽에 잠이 안 오니까
전혀 정치적이지 않은 이유로 한 동안 제주 녹색당 당사에 다닐 일이 있었다. 이유야 알 수 없지만 그곳 벽에는 지난 지방선거 때 제주도시사 후보로 나왔던 녹색당 후보의 선거공약을 적은 내용이 아직도 남아있다.
미래비전- 국제자유도시 명칭을 폐기하고 생태환경특별자치도를 선포한다.
기본권 - 전도민 기본소득을 실시한다.
자치 - 읍면동장 직선제로 기초자치를 부활시킨다.
환경 - 관광객 환경부담금 3만원을 부과한다.
평화 - 강정 해군기지를 철수하고 탈핵평화조례를 제정한다.
민생 - 무상 공영버스를 도입하고 보행자 중심 교통도시를 선언한다.
노동 - 외주화 없는 제주를 만들고 비정규직 제로를 달성한다.
농업 -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제를 실시하고 Non GMO 선언한다.
여성 - 낙태죄를 폐지한다.
몇 번 가면서 꼼꼼히 볼 기회가 없었는데 어제는 잠시 쉬는 동안 하나하나 읽었다. 아, 예쁜 생각들이다. 이대로만 되면 이 섬 참 좋겠다. 상황으로 따져보아서 어려운 것도 있고, 받아들여지기에는 저항이 많은 것도 있지만, 이런 상상과 기백, 참 좋아보인다.
갈 수 없는 길이라고 포기하지 않고, 가야하는 길이라면 어떻게든 걸어보자던 역사의 선배들 덕분에 우리는 지금 여기까지 와서 살고 있다.
제주에 들어와있는 예멘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활동을 지난 몇 달간 했다. 시작은 내 집 근처에 예멘인들이 들어왔다는 뉴스와 그 뉴스에 덧붙는 나쁜 댓글 때문이었다. 물어물어 연락해서,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 물었더니 한국어 봉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어서 일상처럼 보여주는 작업을 하고 싶었는데, 그들의 얼굴이 노출될 경우 한국보다 예멘에서 그들이나 가족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해서 그럴 수 없었다. 나는 겨우 몇 달이었지만, 여러 사람이 헌신적으로 그 낯선 외국인들을 돕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한국어 교육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지만 더듬더듬하며 함께 배우고 익혔다. 거리가 멀어서, 먹고 사는 일이 시급해서 나는 여기까지 하고 멈춘다.
이 새벽에 잠이 안 오니까 또 이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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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몽유적지, 강태영 (1) | 2018.11.12 |
저 표정은 얼마나 간절한 말을 하고 싶었을까 (0) | 2018.10.11 |
쓸 데 없는 것을 적는다
한 해, 버티느라 애썼다.
12월에 되면서 아내와 서로 대견하다는 듯 말한다. 경제적으로 쉽지 않은 한 해였다. 한 달 한 달 대출 이자와 카드 대금 대기가 빠듯했다. 은행의 독촉은 참 부지런하고 한결같았다. 한 해 시달린 마음의 대부분은 금전적인 것이었다.
내년에는 더 재밌을 거야. 잘 될 거야.
계획하고 있는 이런 저런 아이템들을 가지고 아내와 서로 응원한다. 할 수 없는 것에 너무 마음을 낭비하지 않기로,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한다. 금전적인 부분이 당장 어떻게 한 방에 해결되지는 않을 테니까, 거기에 너무 시달리지 말자고 다짐한다. 해 볼 수 있는, 하고 싶은 일은 내년에도 많이 있으니까, 부지런히 재미있자고 마음 먹는다.
뭐든 적으려고 보니 쓸 데 없는 것을 적는다.
그 사이에 접점이 여럿이면 좋겠다
관이 주최하는 토크콘서트에 다녀왔다. 좀처럼 갈 일이 없는데 관심 있는 인물이 주최한다고 하고 믿고 따르는 분이 가보라고 해서 갔다.
언어의 차이를 알았다. 같은 말 안에서 사람마다 손 안에 넣어 쓰는 단어가 조금 달랐는데, 마치 다른 언어 같았다. 관이라는 것은 구체적이고 단단하고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할 수 있는 언어를 구사했다. 그리고 그런 언어를 들려달라고 요청했다.
조직에 소속된 게 별로 없는 나를 비롯한 내 주변의 사람들은 조금 다른 언어를 쓴다. 그 언어는 끝간 데를 모르고 시작과 마침에 거칠 것도 없다.
나이 들수록 쓸 수 있는 단어가 줄어간다던, 겨우 한 줌의 단어로 쓴다던 김훈의 말을 돌아오는 내내 생각했다.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점점 줄어간다는 아쉬움보다 이 한줌의 단어를 마침내 완벽하게 구현한다는 확신이 어쩌면 더 크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의 단어, 나의 언어가 점점 확고해 진다. 나는 나의 말을 한다. 당신은 당신의 말을 하라. 그 사이에 접점이 여럿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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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몽유적지, 강태영 (1) | 2018.1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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