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165건

카테고리 없음

230307 들떴던 마음이

어제는 저녁 에스프레소라운지 책모임이 있었다. 이번에는 재테크가 주제였고, 읽기로 한 책은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였다. 지난 달 모임이 없어서, 오랜만에 넷이 만났다. 예전에는 거들떠보지 않는 종류의 책이었는데, 많이 부분이 와 닿았다. 마루에게는 조금 더 일찍 보여주면 좋겠다. 태연은 전문가적 견해에서, 경희는 결심하는 태도에서 인상적이었다. 진희는 반대편의 생각을 갖고 와서, 덕분에 이야기 나누는 폭이 넓어졌다. 나는 사진관 마당에 글램핑장을 만드는 문제를 케이스스터디로 던졌는데 생각하지 못했던 각도에서 의견들을 주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집에 오는 길에 아내에게 전화해서 잠들지 말라고 하고, 졸린 아내를 붙잡고 늦게까지 부동산 이야기를 계속했다.

 

오늘은 오전에 행정업무로 분주했다. 아내와 잠깐 외출을 했다. 곽지에 곧 경매로 나올 집을 보러 갔는데, 그 옆집이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 은행에 전화해서 주택토지 담보 대출의 여력에 대해 문의했다. 결론은 우선 우리가 돈을 좀 모은 다음에 대출을 활용하는 것으로 났다. 이틀동안 들떴던 마음이 조금 차분해졌다.

 

오후에는 전날 이경 선생님이 맡겨두고 가신 그림을 촬영했다. 계속했던 작업이어서 긴장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찍었다. 2주 전에 촬영하고 간 모델이 오늘 와서 사진을 찾아갔다. 작은 치즈컵케익을 선물로 가져오셨다. 나는 비용을 다 받았는데. 생각해보니 지난 촬영이 상담 같았다고, 고맙다고 인사하셨다. 모델을 마주하고 사진을 건네줄 때는 언제나 조마조마하다. 사진이 마음에 안 들면 어쩌나 싶다. 다행스럽게도 좋아해 주셨다. 

 

만년필을 정비했다. 안료잉크는 번지지 않고 더 진하게 나와서 좋은데 며칠만 쓰지 않으면 막히기 쉽상이다. 특히 나는 세필을 좋아해서 더 그렇다. 조금씩 막히는 것들을 대충 잉크로 뚫어가며 썼는데 어제 완전히 막혀서 둘 다 나오지 않았다. 뜨거운 물을 받아서 만년필을 분해한 다음 담궈두고 휘저었다. 몇 분 그렇게 두었다가 한 번 더 반복했다. 다시 잉크를 넣으니 부드럽게 잘 나온다. 괜히 뭐라도 써야할 것 같은, 조금 신나는 기분이 되었다. 사진과 함께 넣어줄 엽서를 쓰는데 생각도 덩달아 부드러웠다. 가능하면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손글씨를 쓰고, 가끔 정비해가며 써야겠다.

 

저녁에는 사진관 홍보를 위한 컨텐츠 기획을 마저 해야한다. 내일 오전에는 유튜브 영상 하나를 찍고, 사진강의 공지도 만들어 올려야겠다. 더 미루지 말고.

,
카테고리 없음

230305 성실한 시간들을 살고싶다

오전부터 사진작업을 계속했다. 급하게 부탁받고 증명사진을 찍었다. 이제 고등학생이 된 지 이틀 된 모델은 낯설지만 호기심도 있는 날들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함께 했던 친구들과 헤어져서 아쉽지만, 또 새로운 친구가 생길 것을 믿는다. 학교는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가야한다.

 

오후에는 모처럼 바닷가 산책을 했다. 몇 년 전부터 마음에만 두고 있었던 요트 모형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요즘 간절해져서 마땅한 나무재료를 찾으러 갔다. 오랫동안 바닷가를 떠돌며 모양이 다듬어진 원목을 찾았는데 완벽하게 어울리는 것은 없었다. 갯바위 냄새가 좋았다. 날씨가 제법 따뜻해져서 이제 전갱이 낚시를 할 수 있겠다.

 

돌아와서 아내와 마당에 글램핑 사이트 만드는 이야기를 했다. 낯선 여행자들이 오고가는 날들이 올까.

 

저녁에는 사진관에서 태연씨 경매강의가 있어서 1층을 비워주고 나는 2층에서 작업했다. 열심히 사는, 좋은 자극이 많이 되는 친구다.

 

답답하고 조급하지만 일이 되지 않는 날, 허무하게 흘려보낸 것 같은 날들이 이어질 때가 있다. 그때는 시위를 당기는 중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큰 행위가 드러나지 않아도, 긴장의 활시위를 천천히 보이지 않는 속도로 당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괜찮다, 괜찮다.

더 이상 당길 곳이 없을 만큼 당겨지면 마침내 쏘아져나갈 거니까. 내 시간도 그럴 거니까 지금 이 답답한 시간도 괜찮다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해야 내가 나를 버리지 않고 버틸 수 있다.

 

성실한 시간들을 살고 싶다. 그래서 아주 나중에 아주 오래 인연들을 다시 만나게 되면, 차곡차곡 살아서 마침내 여기에 닿았다고, 편안하고 단단한 인사를 건네고 싶다. 기꺼이 손을 마주잡고 싶다.

 

,
카테고리 없음

230304

종일 컴퓨터 앞에 있었다. 늦은 오후에 피자를 먹었다. 요트학교 연락을 받았다. 4월 말에 있을 도민체전에 출전할 예정이다.

,
카테고리 없음

230203

요 며칠 나는 많이 예민하다. 결제일이 다가오고 통장은 비어있는 이유가 가장 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 작업, 엉켜있는 일상이 모두 겹친 날들이다. 

 

아침에는 마루를 병원에 데려갔다. 낫는 듯 이어지던 감기가 콧물에 기침, 가래에 미열까지 따라왔다. 증상이 심하지 않아서 5일치 약을 받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이제 1교시는 넘겼다고, 습관처럼 학교가기 싫다고 말하는 아이 말에 그럼 가지 말라고 말하고 집으로 데려왔다. 불안을 느낀 아이는 학교에 가겠다고, 학교 앞에 내려달라고 말했지만 집까지 그냥 왔다. 학교 안 다녀도 된다고, 검정고시를 하고 다른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짜증이 나서 작업실로 올라오고, 아이는 엄마와 이야기하고 학교에 갔다. 아빠가 가지 말라고 했는데, 가도 되냐고 엄마에게 사정했다고 한다.

 

마루가 학교에 다녀야 하는 시간은 적게 잡아도 10년이 넘는다. 그 시간 동안 원하지 않는 곳에서 등떠밀려 시간을 잡아먹게 될까봐 두렵다. 그 관성이 이어지면 결국 직장생활이든 여타의 사회생활에서도 원하지 않는 공간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될까 두렵다. 그럴 거라면 당장 조금 두려워도 관성의 시간에서 아이를 빼내고, 좋아하는 것과 열심히 하고 싶은 것을 찾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내가 저지르고 후회하는 실수들을 내 아이는 조금이라도 비켜갈 수 있다면. 그래서 지금 내가 느끼는 이 패배감과 막막함을 조금 덜 겪을 수 있다면. 아이는 아이의 인생을 살겠지만, 그러니까 내 실패를 아이에게 투영하면 안 되겠지만.

 

학교를 마치고 태권도장에 다녀온 아이를 작업실로 불렀다. 우선 아침의 일을 사과하고, 감정적으로 쏟아냈던 이야기들을 차근차근 정리해서 다시 말해주었다. 목적 없이 등떠밀려 사는 시간의 무서움에 대해 말하고, 다른 대안들도 있으니 생각해 보자고 했다. 무엇보다, 지금 학교 생활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재밌게 만들 수 있을 지 고민하자고 했다. 쉬는시간은 10분 동안 운동장으로 나가지만 않으면 뭐든 해도 된다고 했다. 오케이. 그 시간은 재밌겠구나. 점심시간은 아이들과 어울려 즐겁다. 오늘은 양념치킨이 나왔는데 자기는 배가 불러서 많이 못 먹었다고 했다. 그럼 남는 것은 수업시간인데, 대학교 때 열심히 들었던 강의 이야기를 해주며 방법을 제안했지만 마루에게는 먼 이야기일 것이다. 

 

아내는 화를 냈다. 도대체 아이를 불러다가 또 몇 십분간 무슨 이야기를 쏟아냈냐고 따졌다. 나도 화를 냈다. 적어도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먼저 물어봤어야 하지 않냐고.

 

늦게까지 작업실에 앉아서 더듬더듬 사진 작업을 했다. 

,
카테고리 없음

230302

5시에 알람을 해뒀는데 6시쯤 깼다. 블로그 글 하나를 쓰고 10분 동안 스쿼트를 했다.

 

마루는 오늘 개학했다. 4학년이다. 두 달을 쉬고 개학하고,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고, 친한 친구들 여럿과 같은 반이 되었는데도 한결같이 학교가기 싫다는 아들과 함께 오랜만에 골목 끝까지 걸었다.

아내와 나가서 병원, 약국, 마트, 다이소, 철물점, 농약가게를 차례로 돌았다. 아내 대장내시경 검진결과는 큰 문제가 없다고 하고, 마루 감기약을 샀다. 고속충전 어댑터와 건전지, 분리수거용 바구니 몇 개를 샀다. 요즘 읽는 책 중에 자산과 부채에 대해 아내와 말했다. 아내에게 만들어주기로 한 작업용 테이블에 필요한 자재를 위한 견적을 받았다. 테이블쏘나 스킬쏘가 필요한데 차마 말은 못 꺼냈다. 잔디밭과 집 뒷쪽에 뿌릴 잡초억제제를 샀다. 

지난주 촬영한 사진들을 골랐다. 너무 많이 찍어서 고르기 어렵다. 정도껏 할 걸. 

뒷통수가 자꾸 당겨서 한의원에 갔다. 침치료를 했는데 그 순간에는 괜찮은 듯했는데 다시 불편한 느낌이 올라왔다. 당분간 계속 치료해야겠다.

진성 형이 잠시 다녀갔다. 잠깐 앉아서 차 한 잔 마셨다.

아내는 저녁으로 또띠야와 월남쌈을 차렸다. 내가 기분이 많이 안 좋아보여서 아내가 분위기를 살폈다. 카드 결제일이 가깝고 통장이 비어서 그러니 며칠만 지나면 괜찮을 거라고 안심시켰다.

유튜브를 켜놓고 사진 작업을 마저했다. 왼쪽 뒷통수도 아프려고 한다.

하려고 작정했던 작업량의 절반도 채 못 했는데 밤이다. 내일 새벽에는 메모 몇 개를 정리해야 해서 일찍 일어나야 한다. 그러니까 오늘 밤이 너무 늦으면 안 되는데 일은 얼마 못 해서 더 짜증이 난다.

 

조금만, 조금만 기온이 올라가면 근처 방파제에라도 낚시를 좀 다녀와야겠다. 

,
카테고리 없음

머리카락을 또 잘랐다

아담스테이 촬영이 어제로 끝났다. 3일 동안 이어졌다. 몇 번 사전 답사를 하고, 이틀은 건물과 공간을 찍고, 마지막 하루는 모델을 섭외해서 진행했다. 순조롭게 마쳤다. 3일 동안 새벽 일출 시간에 현장에 도착해야 하니까 일찍 깼다.

 

아침에 모처럼 해뜬 후에 일어났다. 아침에 지민 아버님 증명사진을 찍었다. 지난해 연말파티에서 경품으로 드린 것이다. 그리고 지민네 가족과 함께 서귀포 암장에 갔다. 두 시간 가까이 운동하고 우동과 김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마루는 지민이네 차에 태워 보내고 나는 아내와 함께 다음 촬영해야 하는 현장을 답사하러 갔다. 건축은 외부가 거의 마무리된 상태였고, 완공되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우선 건축사무소 쪽과 일정을 조율해야겠다. 그리고 성엽형네 하소로커피에 갔다. 몇 년 사이에 실내에 심은 나무는 키가 훌쩍 자라서 천장에 닿았다. 카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시작하던 때, 한가롭던 풍경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낯설었다. 그 몇 년의 시간동안 카페와 사진관을 비교하느라 마음이 괜히 바빠졌다. 서둘러 커피를 마시고 집으로 왔다.

 

아내가 카페에 가방을 두고 와서 다시 갔다. 오는 길에 지민이네에 들러서 마루를 데려 왔다. 어느새 긴 머리카락을 또 잘랐다. 

,
카테고리 없음

나을 뻔했다

제주문화예술재단에서 지원하는 사업에 신청했고 어제 면접심사가 있었다. 5분 발표에 5분 질의응답 형식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생각해서 발표했는데, 심사위원들의 질문을 받고 집에 돌아와 생각하니 놓친 부분이 자꾸 떠올라서 미련이 남는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끝났고, 지금 떠오른 이야기들을 다시 전할 기회는 없지만 떠올리고 잊는 것보다는 정리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는 사진작업으로 등록되어 있고, 이번 작업도 사진이 포함되어 있지만 내용 소개는 인터뷰와 영상촬영에 치중됐다. 사진은 이미 바탕에 깔고 있으니 그 이야기는 더 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내용을 잘 말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사진가로서 작업하는 내용을 충분히 말하고, 그 과정에서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 설명했어야 한다. 사진작업의 과정이 영상기록으로 남아서, 사진이 만들어지기 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보여준다는 멘트 정도가 추가됐으면 어땠을까 싶다.

 

예산 관련 질문도 있었는데, 사진작업인데 예산편성에서 사진 관련 비용은 안 보인다는 질문이 있었다. 나는 사진관련 작업은 내가 직접 할 수 있으니,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을 위주로 예산을 편성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답도 아쉽다. 올해는 컨텐츠 제작 위주로 편성했고, 사진전이나 도록 발간 등 비용은 내년 예산안에 반영했다고 말하는 것이 나을 뻔했다. 

 

 아쉬움이 많은 면접이 되었다. 다만 이런 뒤늦은 생각들을 잘 정리해서 작업에 반영해야겠다. 

,
@Jeju/-Weather

꾸역꾸역, 버티는, 살아내는, 아름다움, 예쁘다,

 

 

손을 펴 보았다. 학교까지 마루를 배웅하는 짧은 길, 돌아오는데 아침 빛이 낮게 온다. 손을 펴서 조금만 좌우로 돌려보면 작은 손바닥 안에도 깊고 높은 지형이 있다고, 빛이 알려준다. 작구나. 숨기는 것 없이 온전히 드러내는 빛 아래서 손바닥을 보며 생각했다. 이 작은 손에 몇 개의 단어나 온전히 담을 수 있을까 싶어졌다. 손안에 쥔 모래알처럼 단어가 빠져나간다던 소설가의 말처럼.

단어 하나하나가 작고 둥근 돌멩이의 몸을 가졌다면, 그 단어들을 하나씩 쌓아가는 문장은 참 위태롭겠다. 문장은 위태로운 단어의 돌탑이고, 그런 돌탑을 모아 만든 이야기는 산사태 직전의 돌숲 같을까. 곧 허물어질 것 같은 문장들 사이에서 나는 어느 하나에도 의지하기 어렵겠다. 단단한 생각의 구조물이라고 오해하고 기대면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 어쩌면 젤리처럼 뭉개질 수 있다. 
 
내가 길어올린 몇 개의 단어를 웅얼거려 본다. 

꾸역꾸역, 버티는, 살아내는, 아름다움, 예쁘다, 

잘 쓰는, 제법 익숙하게 다루는 단어들. 꼬리를 무는 단어들은 힘겨운 날들에서 출발해서 마침내 얻어낸 아름다움일 수 있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최면이나 설득일 수 있다.

'@Jeju > -Weath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업이 걸린 풍경  (0) 2024.04.05
오늘 저녁은 돈까슨가?  (0) 2024.03.25
원고를 마쳤다.  (0) 2022.09.29
안부를 전하고, 묻는다.  (0) 2020.10.30
조르바의 마음은 거칠 곳 없다.  (0) 2020.08.08
,
@Jeju/-Weather

원고를 마쳤다.

원고를 마쳤다. 한 달 조금 더 걸렸다. 친구 경완이 브런치에서 진행하는 공모전 소식을 알려줬다. 마침 맞출 수 있을 것 같아서 조금 서둘렀다. 역시 마감은 없던 힘도 만들어 준다.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얼마나 됐나?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 꼭 끝내주는 책을 쓴다!라는 선언을 종이 위에 휘갈겨 쓴 다음 컴퓨터 옆 벽에 붙여두었었다. 상하이에 있을 때부터, 아내를 만나기 전부터였으니까 그것도 아마 15년쯤 되었을까. 상하이에서 이사할 때도, 제주로 올 때도 그 메모를 갖고 왔었다. 지금은 찾을 수 없지만 버리지는 않았을 테니 어디 서류더미 사이에 있을 것이다.

 

그 오랜 다짐을 어제 마무리한 셈이다. 아직 정식 책이 된 것도 아니고, 책이 될 운명인지 아닌지도 모르지만 나름대로 목차를 짜고 필요한 사진들을 배치해서 마무리했다. 공모전 사이트에 올리고 나니 매듭 하나를 지었다는 후련함이 남았다. 되기를 바라고, 되면 좋겠지만 안 되어도 어쩔 수 없다. 끝내주는 책은 아닐 지라도, 15년의 숙제를 작게나마 풀 수 있었으니까.

 

아침에 인터뷰집 한 권을 잠깐 읽었는데 어찌나 다음 장이 궁금해 지는지. 글은 이렇게 써야 하는데, 싶다. 나는 문장을 길게 쓰는 편인데, 긴 문장은 따라오려면 읽겠다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시험 참고서도 아니고, 유행하는 책도 아니라면 굳이 그런 노력을 들일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니까, 문장 문장을 조금 더 짧게 끊어 쓰고 좀 더 흡입력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다음 글쓰기의 숙제를 받은 셈이다.

 

이번 글은(차마 아직 책이라고 못 부르겠다.) 이렇게 마쳤으니 다음 책을(여기서는 책이라고 써도 양심의 가책이 없다.) 생각한다. 두 가지 이야기를 쓸 것인데, 하나는 중년 남성들의 사진인터뷰집이다. 사진관의 지향점이 점점 뚜렷해진다. 나는 나이 든 남자들을 가장 많이 찍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나누어주는 이야기들을 받아 적으려고 한다. 앞으로 1년 정도면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두 번째는 더 설레는 작업인데, 나의 항해일지.라고 제목 붙였다. 서문의 첫 문단은 벌써 썼다. 제주에 와서 갖게 된 꿈, 항해.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없지만, 차근차근 배우고 성장하고 또 경험해서 나의 요트를 타고 대양으로 나가려고 한다. 그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것이 두 번째 작업이다. 대중의 일반적인 관심사는 아니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이번에 마친 원고에 대해서는 당분간 돌아보지 않으려고 한다. 조금 묵혀두었다가 다시 꺼내보면, 그때는 부족한 것들이 더 드러나서 고쳐쓰기 좋은 상태가 되어 있을 테니까. 글을 묵혀두면 그 뼈대가 드러나는 이 과정을 사진적인 묘사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도 생각해 보아야겠다.

 

어제는 조금 늦게 잤고, 오늘 일어나는 것도 조금 늦었다. 덕분에 책 두어 장, 화장실 한 번, 일기 조금 썼는데 날이 밝는다. 조금 있으면 마루가 깨고 분주한 아침이 온다. 여기까지 해야겠다.

,
카테고리 없음

한 달이 되었다

운동을 시작하고 꼭 한 달이 되는 날이다. 내게는 중요한 작은 성취니까, 기록해 두자. 

왼쪽 팔꿈치와 오른쪽 어깨가 아픈 지는 오래 됐다. 각각 테이스엘보, 회전근개파열 가능성 진단을 받았다. 왼쪽 무릎도 조금씩 이상해지려고 했다. 엘보는 거의 3, 4년쯤 된 것 같고, 어깨도 2년쯤 됐다. 최근에는 특히 어깨가 심하게 아팠다. 잠잘 때도 아파서 오른쪽으로 돌아눕기가 어려웠고, 아침에 일어날 때도 팔을 딛기 어려워서 몸을 빙글 돌려 일어나고는 했다. 일상 생활 중에도 통증 때문에 지장이 많았고, 특히 출장 촬영 때 조명 장비를 들어야할 때는 문제가 컸다. 여러 개인병원을 다니며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았지만, 비슷한 진단에 서로 다른 처방을 주었고 그때만 잠시 낫는 듯하다가 조금 지나면 다시 돌아왔다. 

그래,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보다. 이제 더 이상은 예전처럼 일하기 어렵겠다. 근력을 조금 덜 쓰고 일하고, 몸을 조금 덜 움직이고 돈을 버는 방법을 고민해야겠다. 클라이밍도 이제 다시는 못 하겠구나. 몸은 어떻게든 알아서 방법을 찾겠지. 아픈 부분을 조금 덜 쓰는 대신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겠지. 

대충 그렇게 생각하면 됐지만 어쩐지 조금 서글펐다. 요령도 생겼다. 두 팔의 아픈 부위는 달랐으니까, 팔꿈치에 무리가 가는 동작은 오른팔을 쓰고, 어깨에 부담이 가는 동작은 왼팔을 쓰는 식이었다. 미봉책.

그러던 중에, 여름 포구에서 다이빙을 하며 놀던 날이었다. 제법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는데 오른쪽 어깨가 깨질 듯이 아팠다. 순간적으로 팔이 수면을 치면서 저항을 받은 모양이었다. 아, 큰일났다.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어서, 필요하면 수술이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지인에게 병원을 소개받았다. 그리고 MRI를 찍었다. 그 전에도 mri가 정확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초음파를 통해서 보아도 회전근개 문제라고 하고 증상도 꼭 회전근개 문제였기 때문에 그에 맞는 치료를 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의사는 내 mri를 본 후, 회전근개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 부위에 염증소견이 조금 있고, 약간 붓기는 했지만 회전근개 근육 자체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달랑 진통소염제 처방을 했다. 한 알이다. 한 번에 한 알씩, 하루에 두 번. 정말로 이걸로 되나?

저, 그럼 운동해도 되나요?
네, 뭐 근육은 문제가 없으니까, 하실 수 있으면 얼마든지 해도 됩니다.

해도 된다. 그래서 시작한 운동이 오늘로 딱 한 달이다. 농담처럼, 받아서 태어난 체력은 다 썼다. 이제는 만들어 써야 하는 나이다.라고 주변에 말한다. 나는 암벽 운동을 멈춘 뒤로 딱히 운동이라고 한 게 없다. 가끔 카약을 타고 자전거를 타지만 그때뿐이지.

작정하고 근력운동을 시작했다. 시간을 길게 잡으면 부담스러우니까, 짧게 하는 대신 강도를 높였다. 하루에 15분씩 상체와 하체를 번갈아 했다. 며칠 하고 조금 익숙해진 뒤에는 운동을 조금씩 추가해서 지금은 30분쯤 한다. 한 달 동안 딱 하루를 걸렀는데 그날은 새벽 5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한라산을 걸었던 날이니까 예외로 해도 괜찮다. 결과는 생각보다 금방 나타났다. 가장 먼저 변하는 것은 체력이다. 하루를 좀 더 밀어부칠 수 있는 체력이 생기니까 생산적인 에너지가 따라왔다. 하고 싶었고 하려고 했으나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씩 시도했다. 아플 조짐이 보이던 무릎은 어떤 통증의 기미도 없다. 왼쪽 팔꿈치도 많이 회복됐다. 오른쪽 어깨는 여전히 통증이 남아있지만 적어도 필요한 때 필요한 힘을 낼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중량을 들고 돌리고 몸을 끌어올리는 모든 운동 동작에서 어깨는 아무 문제없이 작동하고 있다. 다시는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든 육체적 시도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겨우 한 달만에.

요즘 내 일과는 새벽 4시에 시작한다. 일어나서 물 한 잔 마시고 곧장 글을 쓰기 시작한다. 6시까지 글을 쓰고, 운동을 시작해서 마치고 샤워까지 하면 7시다. 아침을 먹고 이런저런 업무를 처리하다가 11시가 되면 낮잠을 잔다. 1시간 조금 안 되게 자고 일어나서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다시 일상. 하루를 그렇게 보내고 11시 전에 잠든다.

겨우 한 달이다. 지난 경험에 비추어 보면, 대부분의 운동이나 경험이 몸에 익는 데는 석 달쯤 걸렸던 것 같다. 최소한 석 달은 해야 몸이 조금 적응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아직 두 달은 더 긴장속에 운동해야 하고, 이제 겨우 열흘쯤 된 글쓰기는 앞으로 석 달을 더 지속해봐야 몸에 겨우 익을 것이다. 

작은데 단단한 성취가 이토록 반갑다.

,
 [ 1 ]  [ 2 ]  [ 3 ]  [ 4 ]  [ 5 ]  [ 6 ]  [ 7 ]  [ 8 ]  [ ··· ]  [ 17 ] 

검색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