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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을 또 잘랐다

아담스테이 촬영이 어제로 끝났다. 3일 동안 이어졌다. 몇 번 사전 답사를 하고, 이틀은 건물과 공간을 찍고, 마지막 하루는 모델을 섭외해서 진행했다. 순조롭게 마쳤다. 3일 동안 새벽 일출 시간에 현장에 도착해야 하니까 일찍 깼다.

 

아침에 모처럼 해뜬 후에 일어났다. 아침에 지민 아버님 증명사진을 찍었다. 지난해 연말파티에서 경품으로 드린 것이다. 그리고 지민네 가족과 함께 서귀포 암장에 갔다. 두 시간 가까이 운동하고 우동과 김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마루는 지민이네 차에 태워 보내고 나는 아내와 함께 다음 촬영해야 하는 현장을 답사하러 갔다. 건축은 외부가 거의 마무리된 상태였고, 완공되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우선 건축사무소 쪽과 일정을 조율해야겠다. 그리고 성엽형네 하소로커피에 갔다. 몇 년 사이에 실내에 심은 나무는 키가 훌쩍 자라서 천장에 닿았다. 카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시작하던 때, 한가롭던 풍경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낯설었다. 그 몇 년의 시간동안 카페와 사진관을 비교하느라 마음이 괜히 바빠졌다. 서둘러 커피를 마시고 집으로 왔다.

 

아내가 카페에 가방을 두고 와서 다시 갔다. 오는 길에 지민이네에 들러서 마루를 데려 왔다. 어느새 긴 머리카락을 또 잘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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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을 뻔했다

제주문화예술재단에서 지원하는 사업에 신청했고 어제 면접심사가 있었다. 5분 발표에 5분 질의응답 형식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생각해서 발표했는데, 심사위원들의 질문을 받고 집에 돌아와 생각하니 놓친 부분이 자꾸 떠올라서 미련이 남는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끝났고, 지금 떠오른 이야기들을 다시 전할 기회는 없지만 떠올리고 잊는 것보다는 정리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는 사진작업으로 등록되어 있고, 이번 작업도 사진이 포함되어 있지만 내용 소개는 인터뷰와 영상촬영에 치중됐다. 사진은 이미 바탕에 깔고 있으니 그 이야기는 더 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내용을 잘 말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사진가로서 작업하는 내용을 충분히 말하고, 그 과정에서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 설명했어야 한다. 사진작업의 과정이 영상기록으로 남아서, 사진이 만들어지기 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보여준다는 멘트 정도가 추가됐으면 어땠을까 싶다.

 

예산 관련 질문도 있었는데, 사진작업인데 예산편성에서 사진 관련 비용은 안 보인다는 질문이 있었다. 나는 사진관련 작업은 내가 직접 할 수 있으니,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을 위주로 예산을 편성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답도 아쉽다. 올해는 컨텐츠 제작 위주로 편성했고, 사진전이나 도록 발간 등 비용은 내년 예산안에 반영했다고 말하는 것이 나을 뻔했다. 

 

 아쉬움이 많은 면접이 되었다. 다만 이런 뒤늦은 생각들을 잘 정리해서 작업에 반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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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ju/-Weather

꾸역꾸역, 버티는, 살아내는, 아름다움, 예쁘다,

 

 

손을 펴 보았다. 학교까지 마루를 배웅하는 짧은 길, 돌아오는데 아침 빛이 낮게 온다. 손을 펴서 조금만 좌우로 돌려보면 작은 손바닥 안에도 깊고 높은 지형이 있다고, 빛이 알려준다. 작구나. 숨기는 것 없이 온전히 드러내는 빛 아래서 손바닥을 보며 생각했다. 이 작은 손에 몇 개의 단어나 온전히 담을 수 있을까 싶어졌다. 손안에 쥔 모래알처럼 단어가 빠져나간다던 소설가의 말처럼.

단어 하나하나가 작고 둥근 돌멩이의 몸을 가졌다면, 그 단어들을 하나씩 쌓아가는 문장은 참 위태롭겠다. 문장은 위태로운 단어의 돌탑이고, 그런 돌탑을 모아 만든 이야기는 산사태 직전의 돌숲 같을까. 곧 허물어질 것 같은 문장들 사이에서 나는 어느 하나에도 의지하기 어렵겠다. 단단한 생각의 구조물이라고 오해하고 기대면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 어쩌면 젤리처럼 뭉개질 수 있다. 
 
내가 길어올린 몇 개의 단어를 웅얼거려 본다. 

꾸역꾸역, 버티는, 살아내는, 아름다움, 예쁘다, 

잘 쓰는, 제법 익숙하게 다루는 단어들. 꼬리를 무는 단어들은 힘겨운 날들에서 출발해서 마침내 얻어낸 아름다움일 수 있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최면이나 설득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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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ju/-Weather

원고를 마쳤다.

원고를 마쳤다. 한 달 조금 더 걸렸다. 친구 경완이 브런치에서 진행하는 공모전 소식을 알려줬다. 마침 맞출 수 있을 것 같아서 조금 서둘렀다. 역시 마감은 없던 힘도 만들어 준다.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얼마나 됐나?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 꼭 끝내주는 책을 쓴다!라는 선언을 종이 위에 휘갈겨 쓴 다음 컴퓨터 옆 벽에 붙여두었었다. 상하이에 있을 때부터, 아내를 만나기 전부터였으니까 그것도 아마 15년쯤 되었을까. 상하이에서 이사할 때도, 제주로 올 때도 그 메모를 갖고 왔었다. 지금은 찾을 수 없지만 버리지는 않았을 테니 어디 서류더미 사이에 있을 것이다.

 

그 오랜 다짐을 어제 마무리한 셈이다. 아직 정식 책이 된 것도 아니고, 책이 될 운명인지 아닌지도 모르지만 나름대로 목차를 짜고 필요한 사진들을 배치해서 마무리했다. 공모전 사이트에 올리고 나니 매듭 하나를 지었다는 후련함이 남았다. 되기를 바라고, 되면 좋겠지만 안 되어도 어쩔 수 없다. 끝내주는 책은 아닐 지라도, 15년의 숙제를 작게나마 풀 수 있었으니까.

 

아침에 인터뷰집 한 권을 잠깐 읽었는데 어찌나 다음 장이 궁금해 지는지. 글은 이렇게 써야 하는데, 싶다. 나는 문장을 길게 쓰는 편인데, 긴 문장은 따라오려면 읽겠다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시험 참고서도 아니고, 유행하는 책도 아니라면 굳이 그런 노력을 들일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니까, 문장 문장을 조금 더 짧게 끊어 쓰고 좀 더 흡입력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다음 글쓰기의 숙제를 받은 셈이다.

 

이번 글은(차마 아직 책이라고 못 부르겠다.) 이렇게 마쳤으니 다음 책을(여기서는 책이라고 써도 양심의 가책이 없다.) 생각한다. 두 가지 이야기를 쓸 것인데, 하나는 중년 남성들의 사진인터뷰집이다. 사진관의 지향점이 점점 뚜렷해진다. 나는 나이 든 남자들을 가장 많이 찍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나누어주는 이야기들을 받아 적으려고 한다. 앞으로 1년 정도면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두 번째는 더 설레는 작업인데, 나의 항해일지.라고 제목 붙였다. 서문의 첫 문단은 벌써 썼다. 제주에 와서 갖게 된 꿈, 항해.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없지만, 차근차근 배우고 성장하고 또 경험해서 나의 요트를 타고 대양으로 나가려고 한다. 그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것이 두 번째 작업이다. 대중의 일반적인 관심사는 아니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이번에 마친 원고에 대해서는 당분간 돌아보지 않으려고 한다. 조금 묵혀두었다가 다시 꺼내보면, 그때는 부족한 것들이 더 드러나서 고쳐쓰기 좋은 상태가 되어 있을 테니까. 글을 묵혀두면 그 뼈대가 드러나는 이 과정을 사진적인 묘사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도 생각해 보아야겠다.

 

어제는 조금 늦게 잤고, 오늘 일어나는 것도 조금 늦었다. 덕분에 책 두어 장, 화장실 한 번, 일기 조금 썼는데 날이 밝는다. 조금 있으면 마루가 깨고 분주한 아침이 온다. 여기까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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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되었다

운동을 시작하고 꼭 한 달이 되는 날이다. 내게는 중요한 작은 성취니까, 기록해 두자. 

왼쪽 팔꿈치와 오른쪽 어깨가 아픈 지는 오래 됐다. 각각 테이스엘보, 회전근개파열 가능성 진단을 받았다. 왼쪽 무릎도 조금씩 이상해지려고 했다. 엘보는 거의 3, 4년쯤 된 것 같고, 어깨도 2년쯤 됐다. 최근에는 특히 어깨가 심하게 아팠다. 잠잘 때도 아파서 오른쪽으로 돌아눕기가 어려웠고, 아침에 일어날 때도 팔을 딛기 어려워서 몸을 빙글 돌려 일어나고는 했다. 일상 생활 중에도 통증 때문에 지장이 많았고, 특히 출장 촬영 때 조명 장비를 들어야할 때는 문제가 컸다. 여러 개인병원을 다니며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았지만, 비슷한 진단에 서로 다른 처방을 주었고 그때만 잠시 낫는 듯하다가 조금 지나면 다시 돌아왔다. 

그래,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보다. 이제 더 이상은 예전처럼 일하기 어렵겠다. 근력을 조금 덜 쓰고 일하고, 몸을 조금 덜 움직이고 돈을 버는 방법을 고민해야겠다. 클라이밍도 이제 다시는 못 하겠구나. 몸은 어떻게든 알아서 방법을 찾겠지. 아픈 부분을 조금 덜 쓰는 대신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겠지. 

대충 그렇게 생각하면 됐지만 어쩐지 조금 서글펐다. 요령도 생겼다. 두 팔의 아픈 부위는 달랐으니까, 팔꿈치에 무리가 가는 동작은 오른팔을 쓰고, 어깨에 부담이 가는 동작은 왼팔을 쓰는 식이었다. 미봉책.

그러던 중에, 여름 포구에서 다이빙을 하며 놀던 날이었다. 제법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는데 오른쪽 어깨가 깨질 듯이 아팠다. 순간적으로 팔이 수면을 치면서 저항을 받은 모양이었다. 아, 큰일났다.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어서, 필요하면 수술이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지인에게 병원을 소개받았다. 그리고 MRI를 찍었다. 그 전에도 mri가 정확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초음파를 통해서 보아도 회전근개 문제라고 하고 증상도 꼭 회전근개 문제였기 때문에 그에 맞는 치료를 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의사는 내 mri를 본 후, 회전근개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 부위에 염증소견이 조금 있고, 약간 붓기는 했지만 회전근개 근육 자체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달랑 진통소염제 처방을 했다. 한 알이다. 한 번에 한 알씩, 하루에 두 번. 정말로 이걸로 되나?

저, 그럼 운동해도 되나요?
네, 뭐 근육은 문제가 없으니까, 하실 수 있으면 얼마든지 해도 됩니다.

해도 된다. 그래서 시작한 운동이 오늘로 딱 한 달이다. 농담처럼, 받아서 태어난 체력은 다 썼다. 이제는 만들어 써야 하는 나이다.라고 주변에 말한다. 나는 암벽 운동을 멈춘 뒤로 딱히 운동이라고 한 게 없다. 가끔 카약을 타고 자전거를 타지만 그때뿐이지.

작정하고 근력운동을 시작했다. 시간을 길게 잡으면 부담스러우니까, 짧게 하는 대신 강도를 높였다. 하루에 15분씩 상체와 하체를 번갈아 했다. 며칠 하고 조금 익숙해진 뒤에는 운동을 조금씩 추가해서 지금은 30분쯤 한다. 한 달 동안 딱 하루를 걸렀는데 그날은 새벽 5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한라산을 걸었던 날이니까 예외로 해도 괜찮다. 결과는 생각보다 금방 나타났다. 가장 먼저 변하는 것은 체력이다. 하루를 좀 더 밀어부칠 수 있는 체력이 생기니까 생산적인 에너지가 따라왔다. 하고 싶었고 하려고 했으나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씩 시도했다. 아플 조짐이 보이던 무릎은 어떤 통증의 기미도 없다. 왼쪽 팔꿈치도 많이 회복됐다. 오른쪽 어깨는 여전히 통증이 남아있지만 적어도 필요한 때 필요한 힘을 낼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중량을 들고 돌리고 몸을 끌어올리는 모든 운동 동작에서 어깨는 아무 문제없이 작동하고 있다. 다시는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든 육체적 시도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겨우 한 달만에.

요즘 내 일과는 새벽 4시에 시작한다. 일어나서 물 한 잔 마시고 곧장 글을 쓰기 시작한다. 6시까지 글을 쓰고, 운동을 시작해서 마치고 샤워까지 하면 7시다. 아침을 먹고 이런저런 업무를 처리하다가 11시가 되면 낮잠을 잔다. 1시간 조금 안 되게 자고 일어나서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다시 일상. 하루를 그렇게 보내고 11시 전에 잠든다.

겨우 한 달이다. 지난 경험에 비추어 보면, 대부분의 운동이나 경험이 몸에 익는 데는 석 달쯤 걸렸던 것 같다. 최소한 석 달은 해야 몸이 조금 적응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아직 두 달은 더 긴장속에 운동해야 하고, 이제 겨우 열흘쯤 된 글쓰기는 앞으로 석 달을 더 지속해봐야 몸에 겨우 익을 것이다. 

작은데 단단한 성취가 이토록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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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리니까 아무 말이나.

졸린데, 사진 카피하는 동안 잠시만.

 

며칠 동안 드문드문 이어졌던 영상 촬영이 오늘로 끝났다. 별 것 없는 동네사진관 사진가 한 명을 위해서 여러 스탭이 고생해주었다. 오늘은 조환진 선생을 찾아가 돌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진찍는 장면, 공천포 바닷가에서 카페지니의 최유진 대표를 모델로 풍경사진같은 인물사진을 찍는 장면을 촬영했다. 

 

이제 요청받은 사진 몇 장을 전해주면 내 일은 끝난다. 내가 하는 작업, 내가 생각하는 사진에 대해 말했는데 아직 서툰 생각들이지만 단어를 써서 문장으로 구축하다 보니 괜히 커졌다. 가진 것보다 너무 좋게 보여질까봐 겁난다. 빈 것을 아닌 척한 것은 아닌가 싶어서.

 

졸리니까 아무 말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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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것보다 너무 크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연하게, 한 명의 사진가로 방송에 소개된다. 미팅을 하고, 일정을 잡고, 촬영팀이 와서 몇 번에 나누어 내 사진작업과 생활과 생각에 대해 묻고 찍는다. 평소의 생각, 평소의 작업을 보여준다고 마음 먹었지만 촬영이 이어질 수록 불안한 마음이 커진다. 나는 한낱 작은 사진관의 사진가이고 겨우 말하려는 것을 서툰 작업으로 내보이는 것이 고작인데,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너무 크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찍는 사진보다 너무 대단하게 보여주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그렇게 보이고 싶지 않은데, 말과 행동은 보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보다 더 깊은 곳에서 나오면 어쩌나 싶다. 행동하는 나와 지켜보는 나 사이의 간격을 줄이는 일이 나는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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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은 드러나고 기만은 물러가라.

마루는 열 살이다. 아침에 깰 때마다 아이를 바라본다. 같이 아침을 먹고, 학교까지 가는 3분 남짓한 길을 손잡고 걷는다. 걸으면서 매번 말해준다. “아빠가 마루 손잡고 학교 가는 거 얼마나 좋아하는 지 알지?” 마루의 대답은 간결하다. “네!” 횡단보도까지 바래다준 후에는 “인사 잘 하고, 오늘도 멋진 하루를 보내.” 인사한다. 마루는 또 “네!” 하고 학교로 뛰어간다. 

요즘은 매일 태권도를 다녀서 5시를 조금 넘겨 집에 온다. 씻고, 게임하고, 저녁먹고, 영상보고, 아내가 읽어주는 책을 듣는 것이 마루의 일상이다. 대부분 셋이 같이 잠드는데, 어쩌다가 마루가 먼저 잠드는 날이면 아내와 조용히 아이 옆에서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본다. 어쩌면 저렇게 예쁜지 감탄하면서.

그렇게 자란 아이가, 날마다 나를 조금씩 닮아가는 아이가 열 살이다. 저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얼마나 힘들까. 그게 만약 당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부당하게 당한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생각한다. 하물며 목숨이야,

그런 아이들이 침몰하는 배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 하고 죽은 것이 8년 전이다. 죽음을 예감한 아이들이 학생증을 꺼내 목에 걸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아내는 울었다. 다시, 그날이다. 감당하기 벅찬 어려움이 닥쳤을 때 마루는 아빠엄마를 찾는다. 언제 어디에 있든 내가 찾으면 아빠엄마가 나타나서 나를 구해줄 것이라는 확신이 마루에게는 있다. 세상 대부분의 아이들은 비슷한 확신을 갖는다. 답을 주지 않더라고, 언제든 부모가 옆에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모든 부모는 그런 아이들의 기대에 기꺼이 부응한다는 각오가 있다. 

무슨 말을 더 하랴. 그 아이들을 가슴에 묻고 여전히 한을 품고 사는 그 부모님들이 너무 마음 아프다. 온몸과 마음으로 아빠엄마를 찾았을 때 그 부름에 대답해주지 못 했다는 그 한의 크기는 가늠할 수 없이 크고 깊은데,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그 원통함은 조롱의 대상이 되어 있다. 그들이 죽은 아이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마음에 내려놓을 수 있도록, 비밀은 드러나고 기만은 물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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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데우스

호모데우스
210204-220402

32 좋은 통찰. 지식이 가장 중요한 경제적 자원이 되면서 전쟁의 채산성이 떨어졌고
38 우리사진의 힘에 내재된 위험들
40 죽음의 최후 체호프의 법칙
44 죽음의 평등이 깨진다
51 행복
74 신성을 획득하기
87 죽음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사진으로 소화하는 법은?
106 인류의 시대
117 그렇다면, 육종에 길들여진, 스트레스 받지 않는 동물의 종도 탄생할까?
118 유전자의 선택과 저항
122 알고리즘
126 감각과 감정이라는 알고리즘
132 잔디밭에서 바비큐를 먹으며 축일을 기념하는 현대 유대교 가정
134 신과 인간의 약속. 나머지를 배경으로 만드는
138 수렵시대-동물들의 욕구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생존과 직결. 그래서 애니미즘이 자연스럽게. 농경-신과 인간의 1:1 만남. 그래서 성경, 길가메시 서사 등은 농경시대의 산물
140 과학혁명은 신도 침묵시켰다
159 의식의 진화적 이점
172 튜링테스트
187 호모사피엔스의 지구정복-여럿이 소통하는 능력. 집단지성
203 상상의 질서에 대한 믿음
246 고통을 느끼지 않는 허구. 허구도 중요하다. 그러나 허구는 도구다. 도구를 위해 피흘리지 마라.
277 근대의 계약. 인간은 힘을 가지는 대가로 의미를 포기하는데 동의한다.
279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288 경제 성장은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해 줄까?
290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과학의 땅에서 종교의 땅으로 건너왔다.
295 과학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지를 발견한 것
326 중세유럽 지식=성경*논리 / 과학혁명 지식=경험적 데이터 * 수학 / 인본주의 지식 = 경험 * 감수성
331 인본주의는 삶을 경험이라는 수단을 통해 무지에서 계몽으로 가는 점진적인 내적변화 과정으로 본다.
3332 중세의 주인공은 내적 변화를 겪지 않았다. 그러나
346 민주적 투표는 기본에 동의하는 사람들 사이의 의견 불일치를 해결하는 방법
362 양차 세계대전은 종교전쟁
369 1914-2014 백년 동안 이데올로기의 부침
379 전통종교가 장초적 힘을 가졌던 시대
435 남는 인간은 뭘 하나?
451 21세기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외부 알고리즘이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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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9 경험은 공유되지 않으면 가치 없고, 우리는 자기 안에서 의미를 발견할 필요가 없다. 경험을 데이터로 전화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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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고 서럽고 무력한 날이다.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 아직 밖은 어두운데 멀리서 운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진 빚을 못 갚았다. 새벽에 대선 결과를 확인하고 잠이 안 와서 컴퓨터를 켜고 밀린 작업을 한다. 밀린 일만 열심히 생각하면 조금 괜찮을까 싶어서. 안타깝고 서럽고 무력한 날이다.

 

마루도 곧잘 이재명 대통령 이야기를 했다. 이제 아이가 잠에서 깨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주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이재명이라는 이름 뒤에 붙는 대통령이라는 수식어를 떼어줘야겠다. 열살 아이에게 어떻게 알려주어야 할까. 권력의 폭력과 비밀스러운 부정이 만연할 것인데, 약한 것들을 짓밟고 다른 것들을 비웃는 것이 당연해 보일 텐데. 아이에게 해줄 말을 한 마디씩 생각하다가 가슴이 막힌다. 왜 정의로워야 하는지, 왜 혐오와 조롱의 시대 속에 물들면 안 되는지 나는 잘 설명해 줄 수 있을까. 가진 모든 것을 내어놓고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워왔던 사람들이 이렇게 패배하는 장면을 앞에 두고, 나는 마루를 잘 설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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