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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짧은 글 모음
2015.08.11 22:28
소나기가 몇 번, 내리다가 끊어지고 또 내렸다. 비가 충분하지 않아서 내리다가 그친 비는 창문에 온통 얼룩만 남겼다. 흙먼지를 뿌린 것처럼 뿌옇다. 낮에 잠시 뜨거운 햇빛이 났다가 다시 흐렸다. 늦은 오후에 하늘은 여전히 회색 구름이 가득했는데 서쪽 하늘에 구멍이 나서 낮은 저녁햇빛이 먼 곳에서 왔다.
태풍이 지난 지 며칠 되었는데, 바람이 여전히 세차게 분다. 태어나서 한 번도 하늘을 본 적 없을 것 같은 옅은 초록 잎의 뒷면이 일제히 드러났다.
페인트 새로 칠한 바닥에 흙발자국을 찍는 것 같아서 블로그에 첫 글 쓰기가 어려웠다. 10년도 훨씬 넘은 독립 사이트 방식을 이제 블로그로 옮긴다. fshanghai와 spacewhu는 계속 두고, 개인 사이트만 옮긴다. 상하이 생활을 차곡차곡 적으려고 한다.
2015.08.02 23:24
원고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꽃파는 청년을 만났다. 장대 양쪽에 거는 꽃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고 벽에 기대 있었다. 우리는 함께 10호선 지하철을 탔다. 꽃 두 바구니가 들어가서 지하철 한 칸이 온통 환해졌다. 저 친구를 인터뷰 할까 말까 한참 고민했다. 하루 종일 더위에 시달리며 사진찍고 돌아가는 길이어서 나는 그냥 관두었다.
지하철 안에서 몇몇이 말을 걸었는데 하나도 팔리지는 않았다. 청년은 두어 정거장 가서 내렸다. 당신 덕분에 지하철이 환해졌다는 인사를 못 했다.
2015.06.22 09:00
만년필로 글씨 쓸 때, 종이의 질감에 민감해진다. 먹을 먹는 종이와 튕겨내는 종이가 다르다. 잉크의 굵기가 만드는 획의 질감도 있다. 펜이 흐르는 속도가 획에 그대로 드러난다. 글자마다에서, 생각이 툭 끊겼던 그 대목을, 만년필 획은 기록하고 있는 거다.
2015.06.18 16:38
쓰고 남은 휴지 몇 장, 공중 화장실에 두고 왔다.
엉덩이에 대보지도 않은 새것,
한 우주를 구원했다.
오늘의 착한 일.
끝.
2015.05.17 01:05
인터뷰 촬영이 있었다. 이제 잡지 촬영 따위! 안 가려다가, 다녀오세요. 아내 한 마디에 네. 순종하고 다녀오기로 했다. 모델은 중국 현대예술의 4대천황 중 한 명이라고 불리는 화가였다. 화가를 촬영하는 장소는 대부분 넓디넓은 공간에 드문드문 작품이 있는 전시장이거나, 총천연색 물감자국이 난무하는 바닥에 어울리지 않게 순백의 캔버스만 가득한 작가의 작업실이다.
오케이. 단색의 배경을 넓게 쓰고 화가를 작게 잡자.
조명은 두 가지 느낌으로 쓰자. 한 가지는 전체 공간을 밝게 쳐서 화면 전체가 화사하게, 또 다른 한 가지는 공간을 어둡게 가고 화가의 얼굴에 떨어지는 빛도 강하게. 그림 나오네. 두 장 중에 어느 장을 줘도 아트디렉터에게 항의 전화를 받을 일은 없겠지.
대충 머리 속으로 화면을 짜 두고 현장으로 갔다. 이런, 브랜드 론칭 행사장이네? 1층부터 레드카펫이 깔려있고 온갖 사람들이 웅성거리네? 단독 촬영인 줄 알았는데 미디어 연합 인터뷰에, 작가 작품이라고는 하나도 안 보이네? 건물 앞에는 벌써부터 통제선을 치고 필요한 사람, 허가받은 사람, 초대받은 사람만을 골라서 넣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아이 둘을 데리고 온 엄마는 정중한 사양의 말을 듣고 돌아섰다.
호기롭게 그려 왔던 이미지는 호기로운 속도로 무너졌다. 이제 수습을 걱정해야 한다.
30분을 확보해 주기로 했던 촬영 시간은 미디어 인터뷰가 길어져서 겨우 10분 남짓 쓸 수 있었다. 자연광이 들어오는 위치에 메인 조명을 두고, 반대편에 보조 조명을 올렸다. 그렇게 첫 번째 사진을 마치고, 얼른 건너편으로 옮겨서 강한 조명 느낌을 살려 두 번째 사진을 찍었다. 다행스럽게도, 에디터는 두 번째 사진에 환호했다. 우리는 작당했다.
두 장면을 모두 넘기면 분명히 아트디렉터는 첫 번째 재미 없을 컷을 고를 것 같으니까, 아예 두 번째 사진만 넘기자.
나는 10년 넘게 같이 일해 온 아트디렉터의 안목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만, 사진 취향이 다른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라, 첫 번째 장면을 묻어버리기로 합의했다. 기꺼이.
내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고, 이렇게 한껏 치장하고 있으니 아마 명품 브랜드가 맞을 것이다. 명품의 오프닝은 뭐랄까, 우스웠다. 3층짜리 매장 안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온통 검은색 옷을 입었다. 환한 매장 안에서 검은 파편들이 떠다니는 것 같았다. 입으라니까 입기는 했으나 도대체 왜 입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옷은 하나같이 어색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듯했다. 그 얼굴에서 전해오는 말이라는 건,
나, 여기에 잘 어울리고 있어.
나, 좀 되는 것 같아.
따위의 것들.
젊고 예쁜 여자들의 그 드러난 종아리며 늘씬한 허리선을 보면 몸매에 꼭 맞춘 옷이니 본인 것이 맞기는 할 텐데, 빌려입은 옷은 아니고 사람이 옷이 사람을 빌려 넣은 것처럼 어딘가 섞이지 않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때, 오호라.
나는 보고 말았다. 특히나 예뻤던 검은 옷이, 정돈한 표정과 구겨서 감춘 뱃살로 그럴 듯한 사람들을 상대하던 그 검은 옷이 1층에 있었다. 전자파리채를 휘두르면서.
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잘 못 본 게 아니었구나. 몇 시간 동안 거울 앞에서 치장하고, 비싼 사람들이 올 때 테이프 붙인 바닥면이 보일까 안 보일까를 고민하는 검은 옷. 없는 무게를 그렇게라도 만들어 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검은 옷. 나도 입었다고 어깨를 치켜세우고 말 몇 마디를 주고 받으며 서로의 검은색을 인정해 주는 검은 옷.
나는 안 보고 싶다. 안 엮이고 싶다.
나는 그 반대편에 서서 고래같은 사람들을 변호하는 글을 쓰려고 한다. 그들을 알리고 세우려고 한다.
행사장 한 켠에는 은발을 늘어뜨린 나이 든 남자 하나가 큰 덩치를 의자 위에 구겨놓듯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남자는 독일에서 왔고, 여기 전시된 도자기에 들어가는 세밀화를 그리는 일을 한다. 그림은 너무 작아서 돋보기가 장착된 간이 헬멧을 쓰고 그린다. 행사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상관하지 않고 작품처럼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사실, 작품처럼 앉은 남자는 매장이 준비한 상품이겠지. 이런 디테일은 이런 장인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 넣는다는. 그러니까 니네는 얼른 지갑을 열어 카드를 긁으라는.
이 봐요, 제가요. 실은 에디터인데요. 당신 인터뷰 좀 할 수 있을까요? 언제 한가해요?
남자는 뭐라고 답 하려는데, 제법 높아 보이는 검은 옷이 그의 답을 막았다.
남자는 영어가 서투니까, 아시아 담당 직원과 이야기하라고 나를 이끌었다. 이 뭐, 나보다 영어 잘 하더만. 당신은 들켰다. 이 남자는 회사의 소중한 자산이니까, 행여나 다른 루트를 통해 다른 일과 연결되지 않도록 하려는 뜻은 검은 옷만큼 선명하다. 존경하지 않더라도, 인정은 하고 있는 거지.
나는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당신의 섬세한 손길이 거쳐오고 닦아온 길에 대해 묻고 듣고 싶었다. 오프닝 파티에 장식품처럼 불려나온 당신을, 당신이 원하든 말든 변호하고 자랑하고 싶었거든.
인터뷰가 끝나가고 있었다. 촬영 중 흘려들은 그들의 질문은 ‘사회’, ‘시대’, ‘정부’ 따위의 단어들이 휘날리고 있었다. 검은 옷들 사이를 난무하는 단어들이란. 예술가에게 시대를 묻는다는 것이 우습다. 그들은 답을 모른다. 몰라야 맞다. 논리 밖에서 생각의 경계를 깨는 것이, 신나게 노는 것이 그들이 세상에 할 수 있는 기여의 전부다. 예술가를 논리 안에 묶지 마라. 제발.
검은 옷에게 명함 한 장을 받아왔다. 전자파리채를 휘두르던 그 옷이다. 예쁜 얼굴로 만면에 미소를 짓던 그 옷이다. 답장에 대한 기대 없이, 나는 언제든 은발의 남자가 다시 상하이에 오면 알려 달라는, 인터뷰를 하겠다는 제안서를 보내려고 한다. 무료변론을 지원하는 글쟁이의 각오로.
검은 옷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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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연습을 해야 하니까, 뭐가 되든 우선 꾸준히 써보려고 한다. 하루 중에 있었던 일을 골라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여 보는데, 쉽지 않다. 억지로 쓴 티가 여기저기 보인다. 이렇게라도, 붙들고 있다 보면 다시 되겠지. 손가락에 근육이 붙고 어느날 오버행 벽을 타는 암벽의 날들 처럼.
2015.05.05 15:08
싫다. 기다리지 마라.
무대는 네 거절의 말을 듣던 그날의 나처럼 어둡고 멀었다. 더 물러설 곳이 있다면 얼마든지 그랬겠지만 등을 맞댄 곳은 길이 끊어진 벽이었다. 작전을 잘 못 짰다. 배수진을 치지 말았어야 했다. 병서에 이르기를, 죽음을 각오할 때에 이르러야 비로소 쓸 수 있는 진이라고 했다. 꽃신 신은 네 발 앞에 툭, 내던진 고백. 네 거절만큼 내 고백도 비린내 나는 풋내 밖에 담은 것이 없었다. 하긴, 비장한 풋내가 내가 가진 전부였다. 살아갈 시간은 막막했고 뒤돌아 본 내 기록은 가늘어서 끊어질 듯한 모래톱이었다. 각오할 죽음 따위가 있기나 했겠는가? 내 몸 하나 버티고 서기도 버거운, 나는 겨우 스물일곱이었다.
성처럼 버티고 선 유리돔 안이니까, 사방의 빛을 끌어모은 찬란한 무대를 상상했었다. 관객석과 떨어져서 철망으로 가로막힌 무대는 적막하다. 무대를 가리고 있는 암막 커튼이 움찔거린다. 저 뒤에서 잠시 뒤의 공연을 준비하며 사방을 뛰어다니고 있을 써커스 단원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무거운 어둠은 관객의 목소리마저 가라앉게 해서, 서커스의 세상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바깥 일을 잠시 잊으라고 조용하지만 무거운 명령을 내린다. 객석 조명이 꺼지고, 관객들의 웅성거림도 꺼졌다. 고요. 무대 가운데 조명이 켜지고, 하늘에서 바닥을 향해 붉은 줄 하나가 추락한다. 이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무대를 주시하던 사람들이 지루해질 무렵, 웅성거림. 바로 그때를 기다려서 보이지 않는 꼭대기에서 여자가 줄을 타고 내려온다. 사타구니와 가슴을 겨우 가린 옷이 반짝거린다. 저 거다. 거대한 유리돔으로 들어온 빛을 차곡차곡 모아서 저 사타구니와 가슴 위에서 풀어내는 것이구나. 평면의 유리를 이어서 만든 원형의 돔 안에서 네 말은 네 마음의 어디쯤을 비추고 겹치고 반사했을까. 사방을 끌어와서 어디든 비출 것 같던 빛은, 어쩌면 거울 한 장의 빛만을 반복해서 굴절시켜 온 것은 아니었을까. 그럼, 그 한 장은 너이기나 했을까.
여자는 안전장치 하나 없어도 태연하다. 우아한 몸짓으로 줄을 타기도 하고 매달리기도 하고 어르기도 하고 껴안기도 하면서 내려온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진다.
속이지 마라.
붉은 줄에 매달려 유혹하던 탐스러운 허벅지야.
유리돔 같은 말들아.
위장에 걸린 풀을 되씹는 소처럼 네 거절의 장면을 몇 번이고 다시 불러세운다.
너무 많은 것을 기록하는 사진처럼 숨소리 실린 목소리의 균열도 생생히 기억한다.
서커스 여자의 몸짓은 점점 대담해진다. 관객이 위태로움에 익숙해 질때쯤 한 손을 놓기도 하고, 다시 익숙해질 만하면 일부러 조금 추락도 한다. 여자의 동작을 따라서 관객의 함성 소리가 파도처럼 출렁인다. 연기는 완벽에 가깝다. 위험한 동작 속에서도 여자의 미소는 얼굴 전체를 장악하고, 입술 끝 작은 떨림도 없다.
너라도 붙잡으면 세상을 버틸 수 있다고 믿었던가. 겨우 내린 붉은 줄을 휘잡고 흔들고 껴안은 게 너였던가 아니었던가. 슬픈 표정과 단호한 말로 추락을 예고한 것도 너였던가 나였던가. 세상의 빛을 모두 끌어모은 듯 사타구니와 가슴으로 빛났던 건 아마도 너였겠지. 더 이상 관객이 웃지 않는 무대의 광대처럼, 나는 또 막다른 골목에 등을 대고 서 있다. 악단의 북소리가 커진다. 여자가 마지막 동작을 준비하고 있다.
죽음을 각오한 몸뚱이를 던져 보지도 못 하고, 등 뒤를 둘러친 강에 빠져 죽지도 않고 나는 지금까지 안녕하다. 여자는 무사히 공연을 마치고 마침내 땅으로 내려와서 관객들에게 인사한다. 사타구니와 가슴은 빛나지 않고 여자는 환하게 웃으며 몇 번이고 고개 숙인다. 무대, 암전.
그래도 기다리마. 사실은 보았다. 아닌 척 했지만, 동작마다에서 붉은 줄을 간절하게 붙잡고 있던 네 손, 그 손 위에 돋아나던 굵은 혈관의 흔적. 너무 먼 무대에서 온갖 빛 아래 서 있는 너는 다른 세상의 사람 같지만, 부여잡은 손에 튀어오르는 그 핏줄 말이야. 무사하고 싶다는, 이 잠시의 공연이 끝나면 박수갈채를 받고 또 얼마 간의 돈도 받아서 그만큼의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그러고 싶다는 바램과 그러고야 말겠다는 끈적거리는 의지의 독백같은 거. 내 손등에도 그런 혈관이 두엇 있다. 그러니까, 나도 기다리기로 한다. 스물일곱이 지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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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 스물 일곱이 어땠는지 기억 안 난다. 애써 뒤적거려 보면 몇몇 사건을 발견할 수 있겠다만, 안 그럴 란다. 일 때문에 부탁한 원고에 대해서 어떻게든 답을 해얄 것 같아서, 반대편의 입장을 상상하며 적었다. 주제와 톤을 원 글에 묶어두고 쓰려니 요즘 잘 쓰지 않은 느낌의 문장이 나왔다.
2015.04.26 22:47
15년 2월 12일.
검은 현무암 바위에 파도가 부딪쳐서 깨진다. 바람이 물의 몸을 입고 와서 온몸을 던진다. 마루는 거대한 현무암 바위 지대를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걸었다. 바위가 넓게 벌어진 곳은 아빠 손을 잡고, 그나마 나은 곳은 일부러 혼자 걸어 본다.
와, 마루가 여기까지 왔다.
아직 '나'라는 단어를 못 쓰는 마루는,
마루가 여기까지 왔다.
스스로에게 대견한 칭찬을 했다.
여기까지 왔다, 여기까지 왔다. 말이 예뻐서 마루를 따라 나도 말한다. 여기까지 왔다.
15년 2월 22일.
서점에서.
김연수는 참 맛있는 글을 쓴다. 그의 소설을 한 권도 제대로 읽은 적 없지만 언제나 쉭쉭 바람처럼 읽힌다.
너무 많은 책이다. 그 중에서 선택받아야 하는 거니까, 저자의 얼굴 사진으로 채운 표지들이 여럿이다. 표정은 대부분,
'니네 그거 모르지? 난 알아. 알아서 여기 이렇게 사진도 박았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공공화장실 변기 칸에 앉아 옆칸의 무사안녕을 빈다. 끄응. 신음소리의 끝이 작은 해방과 함께 하기를. 지금만큼 타인의 설사에 공감하는 때도 없으니까.
2015.04.21 19:03
멀리로 한라산이 흐리게 보인다. 구름의 덩어리는 산을 통째 밀어낼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산의 한쪽을 통째 밀며 올라온다. 빛은 그 구름 사이를 뚫어서 땅에는 그림자가 구름처럼 흐른다.
오름에 앉아있다. 소거죽에 붙어 살 것 같은 날벌레들이 많이 난다. 개미는 풀숲에 진을 친 것처럼 올라 붙는다. 멀리 보이는 도로에서는 개미만한 차들이 전쟁 난 개미처럼 꼬리를 물고 달린다.
완만한 곡선으로 유순해보였던 오름은 막상 붙어들자 호된 경사를 내세웠다. 겨우 10분 남짓 오르는데 몸은 땀에 젖었다. 숨을 몰아쉬었다. 사방 가리는 것 없는 민둥머리 오름에 올라서 보면, 땅에서는 보이지 않던 리조트와 고급 빌라단지도 훤히 내려볼 수 있다. 넓고 푸른 초원 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작고 낡은 창고들은 그들이 거느린 초원의 넓이만큼 높고 귀해보인다. 다닥다닥 붙어앉은 저택들도 그들 앞에서는 웅성대는 한낱 무리에 불과하다.
부동산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는다. 눈은 여전히 완만한 곡선을 여유롭게 더듬는데,
계약서는요,
그러니까 제 말은요,
매도인 쪽에서는 그렇게 안 한다는데요,
따위의 말들.
오름에 앉아 통화하는 부동산은 어쩐지 땅과 하늘 사이에 있다는 거기 어디쯤이라도 거래해야 할 것 같지만,
네, 복사해서 보낼게요.
그럼 목요일 아침으로 일정 잡아주세요.
다른 착오 없어야 해요.
맞다. 부동산은 구름을 팔지 않지. 벌거벗은 몸을 내보이라고 말하지.
2015.04.21 18:04
发现了一个老的护照。黑白的帅哥在里面。还有好多的章。
오래된 여권 하나를 발견했다. 홍콩에서 온 것이라고 했다.
여권에는 당당하고 멋스러운 남자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찍힌 도장들.
有人跟我说,
“一块吧,一块。你就买吧!”
很想买。只付了一块钱可以买得到一个丰富的人生,那就早晨的散步非常成功的!
但是还是不买。不用花自己的钱再买多一个人生,一个人生已经够复杂了。
구경하던 사람은 내게 1원만 내고 얼른 사가라며 부추겼다. 탐났다. 단돈 1원에 흥미로운 인생 하나를 살 수 있다면 거저다. 저 풍성했을 인생을 건질 수만 있다면 새벽 산책은 남는 장사가 될 것이다. 주머니를 뒤졌는데 아쉽게도 동전이 없었다. 주인을 쳐다보며 정말 1원이면 되냐고 물었지만 주인은 대답이 없었다. 나도 괜히 김이 빠져서 아쉽지만 내려놓았다. 어쩌면 안 사기를 잘 했다. 인생 하나를 애써 받아 안을 필요는 없잖나. 하나를 살아내는 것만도 버거운 세상에서.
2014. 5. 27
2015.04.21 17:12
한나절 내내 만년필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좋아서 쓰지만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선이 굵어서 답답했었다.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서 다 식은 커피 한 잔을 두고 재생지 색깔이 나는 냅킨 한 뭉텅이를 들고 와서 단단히 마음먹고 앉았다. 닙을 뽑았다가 꽂았다가 뺀 닙을 닦았다가 말렸다가 좁혔다가 눌렸다가 다른 만년필 닙이랑 바꿨다가 다시 돌렸다가. 만년필 관련 사이트를 십 수 페이지나 열어놓고 이런저런 시도를 다 했다. 어떤 방법을 써도 여전히 선은 굵고 종이 뒷면에는 번진 잉크 자국이 사방으로 지저분했다. 시도는 발악에 가까워졌다. 손은 온통 잉크에 물들고 잉크가 번진 냅킨 종이가 책상에 그득하다. 새 닙을 알아보기도 하고 가는 글씨에 좋다는 새 만년필도 알아보다가,
그냥 만년필을 뒤집어쓰기로 했다.
닙에는 이로 깨물어서 생긴 흠집이 생겼고, 조금 더 ‘내 만년필’이 되었다. 작은 불편함 하나 해결하느라 서너 시간을 보냈다. 익숙해진다는 것이 꼭 이렇다. 서먹한 것들끼리 어깨를 비비고 때로 생채기도 주고받는 시간을 보낸다. 어디 만년필 한 자루에 그칠까. 돌아보면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것 중 어느 것 하나 그렇지 않은 게 없었다. 최근에 몇 번을 넘어지면 배운 스케이트보드가 그렇고 여전히 서툰 내 사진도 그렇다. 그리고 여전히 치열하게 부딪치며 웃으며 살아가 주고 있는 가족들까지. 살다 보니, 어떤 불편함은 견디고 익숙해 지면 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 어떤 불편함은 애정으로 이어진다.
직업을 바꾼다. 당분간은 양다리를 걸치고, 점점 일의 무게중심을 옮겨 갈 작정이다. 사진을 손에서 놓는 일은 없을 테고, 여전히 사진이 내 밥벌이 수단이 될 테지만 그 비중을 줄일 작정이다. 글을 쓰고 꾸리는 일을 하기로 했다. 그러자고 보니 너무 오랫동안 독서랄 것도 없었고 문장이랄 것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글로 밥 벌어 먹고살겠다는 생각은 6년 전쯤 했는데, 그 뒤로 사진을 했으니 내 문장이나 독서는 그때 수준에서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 급한 마음에 이제라도 다시 글쓰기를 연습하고 독서를 이어가려고 한다. 숙제처럼 여백을 마주 보고 앉으니 여백은 끝 간 데 없이 넓어서 무섭다.
직업으로서의 사진에 지쳤던 이유 중에 사소한 한 가지는 너무 많은 장비에 눌린다는 생각이었다. 공항에 가면 작은 서류가방 하나만 들고 비행기 타러 오는 사람들이 많이 부러웠다. 수십 킬로가 넘는 장비를 이고 지고 끌고 다녀야 하는 출장은 촬영도 하기 전에 짐에 눌려 지치기 다반사였다. 글을 쓰게 된다면 수첩 한 권과 펜 한 자루면 될 것 같았다. 깃털처럼 현장으로 날아가서 노트 빼곡하게 문장을 적어오는 장면을 상상하면 행복했다. 이제 그런 날이 올까 싶었는데, 나는 새 만년필을 찾고 있고 아이패드에 쓸 블루투스 키보드가 어서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저런 도구를 끌어모으는 나를 미워하지 마라. 어쩌겠는가. 도구의 인간.이라지 않던가.
사실, 만년필을 만지작거리는 몇 시간은 재미난 놀이 같았다.
2015.03.23 23:46
운전을 별로 즐기지 않는다. 촬영 장비 때문에 차를 쓰기는 해도, 일단 차가 있으니 여러 모로 편하기는 해도 운전은 어쩔 수 없이 한다. 특히나 시내에서 길이 막힐 때는 없던 짜증도 끓어오른다. 전 날 잠도 제대로 못 잔 오전에 막히는 길 위에 있으면 내가 왜 이 상황에 있어야 하는 지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서 촬영이 없고, 한 곳만 다녀오면 되는 외출은 가능하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려고 한다.
가끔 좋은 운전도 있다. 촬영하러 가는 고속도로는 즐거운 길이다. 그런 날은 미리 음악을 골라두었다가 차를 고속도로에 올리면서 볼륨을 높인다. 쩌렁쩌렁한 노래소리에 맞춰 핸들을 두드리며 가는 길은 행복하다.
선인장.이라는 노래가 에피톤프로젝트.의 노래라는 것을 얼마 전에야 알았다. 어느 이름 없는 여가수의, 좋지만 묻혀버린 노래라고 생각했었는데.
선인장을 선물하고 간 친구가 있었다. 말미잘 한 마리를 전해주었던 친구도 있었다. 선인장처럼 상처입고, 말미잘처럼 고운 친구였다. 소화 못 한 풀더미를 되씹는 소처럼 고속도로를 달려 돌아왔다.
2015.03.23 23:35
잘 지내지요? 요즘에도 시는 계속 쓰나요?
김광석 노래 가끔 들을 때나, 김광석이 죽은 지 몇 해가 지났다고 누가 이야기할 때는 형들 생각이 납니다. 소금꽃 방에 공사용 스티로폼 깔고 앉아서 그럭저럭한 기타 반주에 그럭저럭한 노래를 밤을 새며 불렀었지요. 그때가 김광석 2주기였던 가요? 3주기였던 가요? 하여튼 그랬었어요.
다른 형들은, 후배들은 소식 아시는 게 있나요? 나는 보고싶은 친구들이 참 많습니다. 멀리 나와있다는 핑계로 멀어졌어요. 한 동안은 이름들을 손에 꼭 쥐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조금만 더 하면 된다, 그러면 내가 돌아간다. 비단 옷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가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겠노라. 했었지요. 그랬었습니다.
이제 시는 거의 안 읽습니다. 그렇게 됐네요. 읽지도 않으니 쓰는 일이야 뻔하지요. 그래도 사진을 계속 하면서, 사진을 대하는 태도가 시를 짓는 것과 비슷하기도 하겠다 생각합니다. 시의 바다는 너무 넓어서, 그 안에서 의미를 엮어낸 다는 것이 어째 소용없는 짓.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아름다운 시는 여전히 마음을 건드리고 치열한 시는 또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드는 데요, 그래도 시와 멀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형,
기약없는 약속이지만, 다시 보게 되면 어디 별 보이는 노천에 앉아서 맥주나 한 잔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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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짧은 글 모음
2014.12.17 10:20
Test Shoot.이라는 말머리로 그 동안 찍었던 촬영 현장 이야기를 정리한다. 작은 읽을거리라도 만들 수 있을까 싶다. 나름대로 내게는 정리하는 계기도 될 것이다. 주로 촬영과 관련된 현장의 상황, 조명의 설치 등에 대해 이야기할 작정이라 사진과 상관 없는 사람에게는 생뚱맞은 소리가 될 것도 같다.
2012년의 사진이다. 아마도 조명 두 개로 겨우 조명하던 시절이다. 인터뷰 촬영이었고, 모델은 나이가 제법 되는 여자라는 사전 정보만 가지고 갔다. 주어진 촬영 시간은 2시간 정도였다. 메이크업 시간을 빼면 실제 촬영 시간은 한 시간을 조금 넘는 수준일 것이다.
촬영은 가로 사진과 세로 사진을 모두 찍기로 했다. 그리고 사진 안에 텍스트가 들어갈 공간도 함께 넣기로 했다. 잡지 촬영의 경우 사진을 단독으로 쓰는 지, 또는 사진 위에 텍스트를 올릴 것인지에 따라 구도가 달라진다. 또 가로 사진의 경우 한 페이지에 넣을 지, 아니면 펼친 페이지 전체에 쓸 것인지에 따라서도 구도를 다르게 잡는다. 특히 풀페이지 사진의 경우 인물의 얼굴이 페이지 중간에 걸리는 불상사를 피하는 것이 절대 수칙이다. 그래서 풀페이지로 쓸 가능성이 있는 사진은 인물을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도록 구도를 잡는다.
장소는 호텔에 있는 레스토랑이었고, 식사 시간을 피해 일정을 잡았다. 레스토랑 층과 윗층의 프라이빗룸을 둘러보며 촬영 포인트 세 곳을 선정했다. 한 두 컷을 쓰는 인터뷰 사진의 경우에 나는 보통 세 곳 정도의 배경을 미리 골라둔다. 최대한 심플한 배경 한 곳, 배경에 디테일이 많은 곳 한 곳, 그리고 가장 안전한 배경 하나 정도를 더 고른다. 그렇게 해 두면 에디터나 잡지 아트디렉터에게 좀 더 다양한 선택지를 만들어 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촉박한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한 곳에서 수 분 안에 촬영을 마쳐야 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자연광이 들어오는 상황이었지만 충분한 느낌은 아니었다. 그래서 자연광을 보조광 내지는 필라이트로만 쓰고 조명을 따로 하기로 했다. 현장에 도착한 모델은 연륜에서 나오는 힘이 있었다. 비주얼 관련 컨설팅을 하는 사람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정확히 생각나지 않는다. 이미 많은 촬영 경험이 있어서 도착하자 마자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잘 알고 있었다. 옷이 가득 든 트렁크를 가지고 왔었다. 본인의 옷을 직접 준비해 오다. 보통 잡지 촬영은 에디터가 준비하지만 직접 가져오는 경우도 꽤나 된다. 남성은 본인의 옷으로 찍는 경우가 많고, 여성도 특히 비주얼 관련 종사자들은 직접 가져오는 경우도 많다. 무턱대고 내 옷을 입겠다는 고집이 아니라,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오랜 시간동안 고민한 결과이니까 에디터도 마음 편하게 동의한다.
한 시간 가까운 메이크업을 마치고 촬영을 시작했다. 우선 레스토랑 복도에 있는 그림 앞이 첫 포인트다. 그림은 높게 걸려서 아래 낮은 테이블을 두고 그 위에 올라서도록 했다. 상하이의 야경을 그린 그림인데 적당히 어두운 톤이어서 배경으로 쓸 만했다. 모델은 얼굴 윤곽이 깊은 편이어서 빛을 너무 측면으로 쓸 수 없었다. 정면에서 필라이트를 넣으면 모델 뒤에 있는 그림을 표현하기 어려울 듯해서 메인 조명 하나로 최대한 얼굴 전체를 비추도록 했다. 그리고 모델의 왼쪽 뒤에서 배경과 모델을 분리하는 라인 조명을 넣었다. 배경 그림에 하나의 라인을 만들면서 모델의 머리까지 닿는 빛을 위해서는 20도 정도의 그리드와 확산지를 덧댄 조명이 어울렸을 것 같은데, 아마 갖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없었다면 스누트를 썼을 것이다. 메인 조명은 흰색 우산을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서서 테스트했을 때보다 모델의 얼굴은 더 깊었기 때문에 조명 위치를 조금씩 조정하면서 촬영했다.
이 사진을 찍은 후 레스토랑 중간 대기실에서 한 장을 더 찍고, 실내로 이동해서 둥근 지붕을 활용해 한 장 더 찍었다. 그리고 야외광을 최대한 활용해서 한 장을 더 추가하고, 개인 책자 출판 때 쓰고 싶다고 요청해서 그림을 배경으로 한 장 더 찍었다.
에디터는 최종적으로 대기실에서 촬영한 컷을 사용했다.
촬영. 120430 @Indigo hotel Shangahi, CHINA
Client. Tatler Shanghai magazine
2014.05.08 09:10
새 명함이 나왔다. 영어 이름을 바꿨다. 새 영어 이름은 MoBe모비라고 지었다. 중국에 와서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영어 이름을 썼는데, 당장 써야 하니 급하게 아무렇게나 고른 이름은 Mark였다. 10년쯤 되었다. 지금 대부분 친구들이나 거래처 사람들은 나를 Mark라고 부른다. 오래 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벼르던 차에 새 이름으로 바꾸고 새 명함을 받았다.
이름이 바뀌면 많은 것이 따라 변할 것이다. 예전에 이름을 바꾼 친구가 있었는데, 오래 알아온 친구가 아니었는데도 새 이름을 부르니 내가 그동안 알던 사람은 어디로 가 버리고 다른 사람을 부르는 것 같아서, 그러니까 내가 아는 사람인데도 모르는 사람을 부르는 것 같아서 어색했다. 지금은 그 친구 옛 이름은 잊었는데, 어쩐지 그 친구를 잘 찾지 않게 되었다.
이름은 한 사람의 종합이다. 사진 작업을 구상하며 그 사람 위에 덧대어진 것들을 모두 지워보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우선 지워질 수 있는 것은 직업이었다. 나이를 지울 수 있었고, 관계를 지울 수 있었다. 옷을 지울 수 있었고 화장을 지울 수 있었다. 그리고 거의 끝까지 남는 것은 이름이었다. 이름은 이미 사람의 얼굴과 분리하기 어려웠다. 내게는 그랬다. 그 사람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불린 이름이다. 이름 글자 안에 하루하루를 차곡차곡 담아서 지금의 그 사람이 되었겠다 싶었다. 이름은 무거운 것이다. 어떤 약속의 담보로 내걸 수 있는 가장 무거운 것 중에 하나가 아마 이름 석 자의 무게이지 않을까 싶다. 이름 앞에 부끄럽기 싫다.
한 동안 사람들은 나를 옛이름으로 부르겠지만, 이제부터 새로 알게 되는 사람들에게 나는 MoBe입니다. 소개할 테다. 뜻과 발음은 소설 모비딕Moby Dick에서 땄다. by비보다 Be가 낫겠다 싶어서 MoBe라고 쓰기로 한다.
2014.04.22 18:49
또 지난 사진들을 봤다. 컴퓨터를 새로 샀고, 사진 데이터를 새로 옮겼다. 지난 사진들을 어쩔까 하다가 남겨두었다. 그냥 보관만 하는 게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지난 사진들과 그 이야기를 좀 써볼까 생각했다. 그래서 사진을 열었다가 제법 지웠다. 사람 사진을 많이 지웠다. 그들이 아직도 내 컴퓨터 안에 자기들 사진이 남아 있다는 걸 알면, 젖살도 안 빠지고 여드름도 가시지 않은 얼굴이 바다 건너에 남아있다는 걸 알면 얼마나 불쾌하겠는가. 이제 나에게 잊혀지는 것이 맞지 않겠나.
사진은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한다. 내가 가진 사진은 2004년부터다. 처음 사진을 시작한 게 2002년, 군대를 다녀온 후였으니까 첫 두어 해 빼고는 모두 있는 셈이다. 제법 날려먹기도 하고, 지우기도 했지만 여전히 많이 있다. 그때, 나는 사진을 참 못 찍었구나. 의미없는 셔터를 아무렇게나 휘두르며 다녔구나. 내가 사진으로 밥벌어 먹는다는 사실이 새삼 고맙다. 적어도 한 가지 의미는 확실하니까 말이다.
지난 사진을 꺼내고, 사진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보려고 한다. 아마 상업사진에 대한 부분이 많을 것이다. 개인 사진은 어디 내놓기 부끄러울 만큼 못 났다. 이렇게라도, 사진을 꺼내보려고 한다.
사진은 05년 2월에 찍었다고 적혀 있다. 사진을 배우러 다니던 곳이 대학로에 있었는데, 길 건너편으로 비탈진 언덕에 집들은 쌓여 있었고, 좁고 구불구불한 계단을 따라 꼭대기까지 가면 위태로운 시멘트 경사벽 위까지 갈 수 있었다. 항상 짖는 개가 한 마리 있었고, 무당집이 있었다. 거기서 뒤돌아보면 집들이 보였다.
2014.02.18 23:09
종이 한 장 찢어지는 소리에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려다
어떤 대상을 잠시나마, 작게나마 위로하고 보듬어 안을 수 있는 사진이고 글이면 좋겠다. 몇 년 사이, 기준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한 번 무너지고 나니 사방에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만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안 보인다. 틀린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고 이럴 수 있구나, 저럴 수 있구나 싶다. 힘이 실린 말을 들으면 그게 맞나 싶어서 따라가고, 좋은 사진을 보면 또 저게 맞구나 싶어서 따라간다. 그래서 내가 잘 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점점 모호해졌다. 뿌리 없이 흔들리는 들풀같은 날들이다. 이름도 없는 초라한 날들이다.
그런 날들이 이어지면 마음이 급해져서 어디든 뿌리내리고 싶고 무엇이든 붙들고 싶어진다. 조바심이 난다. 다들 저만치 가는데 나는.
일정을 못 맞춘 내 책임이 가장 크겠는데, 이번 책도 미끄러졌다. 한국 출판사 쪽과 미팅도 하고 이번에는 뭐가 되나 싶었는데 중국 측에서 올 해 일정이 너무 많다고 한국어판 출판을 연기하자고 했다. 맞다. 내가 늑장부리지 않았다면 작년에 나왔어야 할 책이니까 올해 일정에 반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쉽지만, 지은 죄가 있으니 마음껏 아쉬워하지 못 했다. 고등학교 때 낸 신춘문예 원고는 납으로 만든 추처럼 소리도 없이 가라앉아서 다시는 떠오르지 않았다. 중국에 와서 두어 해 동안 쓰고 다음었던 상하이 에세이는 출판사 몇 곳의 정중하고 단호한 거절에 멍들고 죽었다. 중국 몇 지역의 관광부서 의뢰로 만든 책은 동네 인쇄소 안내책 수준으로 멎었다. 그리고 이번 책은 중문판만 우선 나올 모양이다. 그래도, 이렇게 몇 권을 더 쓰면 서점에 내 책을 까는 날이 온다는 확신이 생겼다.
투정하는 문장은 실체가 없는 글이다. 좋은 글은 오래 묵은 생각과 단단한 정보로 쌓은 구조물이다. 그러니까 개인의 감상만으로 이어진 문장은 신기루에 그친다. 그런 문장이 많고 또 많이 읽히는 세상은 속이 빈 세상이기 쉽다. 그러니까 글 쓰는 사람은 가능한 그런 문장을 쓰면 안 된다. 그래도,
종이 한 장 찢어지는 소리에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려다 소심한 마음이 들킬까 봐 얼른 제자리에 불러 앉히는 마음이 있잖은가. 매일을 버티는 심정으로 날마다 잇대어 사는 사람도 많잖은가. 어떤 날의 나처럼.
그러니까, 세상에 많을 테니까, 작은 위로라도 건넬 수 있다면, 나도 작은 소용이라도 있는 사람이지 않겠는가.
이 애달픈 세상에서.
2014.02.03 20:23
어쩌다가 지난 메일을 읽었다. 오래된 것들이다. 메일에서 사람들은 나를 섬.이라고 불렀다. 섬, 참 좋은 이름이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에 섬.이 있고, 장 그르니예의 책 중에 섬.이 있다. 나는 섬.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리고 아마 2009년을 전후한 때에, 나는 섬.이라는 이름을 썼었나 보다. 잊고 있었다.
내 아이의 이름은 마루.다. 아내가 김훈의 수필에서 따 온 이름이다. 나는 그 이름이 참 좋아서 마루.라고 마루를 부를 때마다 기분이 좋다. 아직 생기지도 않은 둘째도 이미 이름을 정했다. 그 아이는 나루.라고 부를 것이다. 마루가 바깥과 안을 잇는, 지상의 소통하는 공간이니까 나루는 물과 뭍을 잇는 공간이 될 것이다. 마루와 나루가 사는 시대는 국경의 경계를 우습게 넘을 테니까, 일부러 영어 이름을 따로 짓지 않아도 되도록 발음하기 쉽게 했다.
아내 이름은 이승희.다. 나는 아내.라고 부른다. 직접 부를 때는 여보.라고 부르고,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는 내 아내가요, 아내는요, 라고 시작한다. 아내는 후안 미로의 그림을 좋아하는데, 마침 미로의 그림에 있는 작가의 싸인과 아내의 장난스러운 싸인도 닮았다. 나는 아내의 새 영어 이름으로 미로.를 강력하게 밀고 있다. 아내의 반응은 시큰둥하지만.
내 이름 반치옥.은 발음하기 어려워서 별로 안 좋아한다. 할아버지께서 좋은 뜻으로 지으셨다는데, 어렵다. 그래도 워낙에나 독특해서 세상 천지가 다 검색되는 정보의 시대에서도 인터넷에 내 이름 쓰면 딱 나만 나온다. 영어 이름은 Mark인데 급하게 지어서 역시 많이 마음에 드는 이름은 아니다. 그런데 이미 그 이름으로 굳어서 다들 그렇게 부르니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도, 이름을 바꾸게 되면, 새 영어 이름은 섬.이라고 해야겠다. 또는 비애.라고 하는 것도 좋겠다. 섬은 Sum이라고 쓰자니 산수 시간 같아서 안 되겠고, Some라고 쓰자니 이것도 아니다. 어떻게 쓰나? 비애.라는 단어는 발음이 좀 여성스러운가? Vie쯤 되나? 이건 뜻이 있는 단어일 텐데, 다른 글자 조합으로 비슷한 발음이 나도록 찾아봐야겠다. 비애,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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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9 12:53
연말 파티가 있었다. 사진을 가르치는 중국 친구들과 함께 소박하게 만났다. 본래 계획은 덩치를 조금 키워볼 생각이었는데, 다 만들어 둔 광고문구를 다른 곳에 올리는 게 귀찮아서 그냥 이 친구들만 초대한 꼴이 되었다. 테마는 이랬다.
미디어는 날마다 스타들의 매 순간을 비춘다. 그들의 사소한 것까지 대단한 것이라고 말하는 이면에는 스타가 아닌, 평범한 당신의 일상은 보잘 것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과연 그런가? 아닐 것이다. 당신의 드라마를 보여달라. 지난 한 해 당신이 찍은 많은 사진들은 특별한 일이 없다면 그냥 컴퓨터 구석에서 썩을 것이다. 당신의 1년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자. 지난 1년의 사진을 정리해서 서로 나누자.
덕분에 나도 지난 사진을 정리했다. 점심 때부터 파티 시작 전까지 꼬박 정리했다. 나는 3만 장이 조금 넘는 사진을 찍었더라. 그 중 열에 아홉은 돈을 버는 사진이었다. 힘든 한 해였다고 생각했었다. 맞지 않는 사진들을 찍으면서, 맞지 않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며 날밤을 샌 일년이라고 생각했었다. 돌아보니, 좋아하는 사진도 제법 찍었던 일 년이었다. 좋은 일들도 제법 있었던 일 년이었다. 나는 세 가지 주제로 사진을 정리했다. 돈 번 사진들, 신장 출장에서 찍은 사진들, 그리고 아내와 마루 사진이었다.
좋은 파티였다. 잉잉이 가져온 와인은 모처럼 맛 본 맛있는 와인이었다. 크리스티나의 요리 열전을 보고 우리는 내년 첫 모임은 크리스티나 집에서 하기로 했다. 새로 온 Joe는 재담꾼이었다. Sen은 자신의 심정을 대변하는 풍경들을 갖고 왔다.
신장 원고는 최후통첩을 받았다. 1월 중순까지 초고를 넘기겠다고 했다. 다른 말이 없어서 은근히 안심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그동안의 독촉을 토니가 그 큰 몸으로 다 막아주고 있었다. 사람 좋은 토니는 독촉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래, 너무 오래 끌었지. 이제 끝내야겠다. 한국 들어가기까지는 보름 정도가 남는다. 아무런 일정도, 촬영도 잡지 않을 작정이다. 동굴에 든 곰처럼 원고만 만지작거릴 작정이다. 뭐, 각오는 그렇다.
다양한 주제를 가진, 중국에 대한 연작 형식의 책을 만들자는 종철 형의 제안은 좀 뜬금없지만 너무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좋은 책을 만들자는 제안은 개인적으로는 몇 년 동안 꿈꾼 후에 몇 년 동안 접어두었던 꿈이었다. 마침 힘든 시간이었고 사진에 대한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는 중이고 작업실 임대료는 여전히 무겁기만 한데 그 틈에 형이 그런 제안을 던졌다. 컬트 시장은 제법 성장했고, 어떻게 쓰든 색깔만 확실하게 낼 수 있다면 독자층은 있을 것이다. 통할 것이다. 게다가 종철 형이 함께 해준다면 강력할 것이다. 우리는 빵집에 앉아서 새 기획을 다듬었다. 속살속살 중국.이라는 제목은 솔직히 너무 마음에 안 들지만, 고민해서 얻어낸 제목 같아서 아무 말 안 했다. 제목을 듣는 순간 내 온 속살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형, 저는 그 제목 반대요.
아무리 컬트적이라고는 해도, 지금 내 문장은 너무 우울하고 지루하다. 안다. 형은 술술 읽히는 문장을 쓰겠다고 했고, 나는 내 문장은 순간마다 막아서는 문장이면 좋겠다고 했다. 어떤 씁쓸한, 복잡적인 감탄사가 읽는 내내 따라붙는 그런 문장이면 좋겠다. 하지만, 내 문장은 좀 더 경쾌하고 유치발랄해야 한다.
작정하는 책을 쓰려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미뤄두었던 책들을 다시 꺼내야 한다. 새 책도 많이 사고, 여러 곳에 자문을 구해 물어야 한다.
그러자면 사진에 대한 비중이 지금과는 조금 달라질 테고, 새 컴퓨터가 정말 꼭 그 녀석이어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그냥 작정한 것으로 사기로 한다. 경험상,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하더라.
한 해가, 끝났구나. 살아내느라 애썼다.
여전히, 한 마리 고래처럼 사는 세상을 꿈꾼다.
2013.12.16 20:22
오랜만에 반가운 친구가 다녀갔다. 안부를 묻고 답장을 적어야지 하는 사이에 안 보인다.
이름을 보고 '누구지?' 했었습니다. 섬.이라... 나도 잊었던 내 이름을 기억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나는 왜 섬을 잊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내가 생기고 아이가 생기고 나는 이제 섬이 아닌가? 생각하다가, 사는 동안은 누구나 섬이겠구나 싶었습니다.
나는 미안한 기억만 크게 남아있습니다. 두 번의 빙판길 말이지요. 왜 그렇게 서둘러야 했던지, 아마 말은 안 해도 깜짝 놀랐었지요? 나도 내가 빙판길을 그렇게 용감하게 (무모하게) 달려들 줄 몰랐습니다. 용케 차는 방향을 안 잃었고 덕분에 이렇게 지난 이야기를 합니다.
사람아, 아 사람아. 이름이 익숙해서 보니 책장에 있었습니다. 아, 또 사두고 안 읽은 책 중에 하나인 모양이다 싶었는데 책을 이리 저리 넘기다 보니 그 독특한 서술 방식이 기억이 났습니다. 사실,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데, 읽었다는 사실만 기억이 났습니다. 책 윗면을 보니 07년에 산 책이더군요. 오래 된 책입니다. 겉장이 제법 낡은 걸 보니 긴 시간에 걸쳐 이리저리 들고다니며 읽었던 모양입니다.
구불구불 가는 것은 맞는 듯한데, 나아가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걷고 있다는 것만 해도 좋은 겁니다. 그 무거운 걸음걸음이 제법 폼 나잖습니까.
참 많이 반갑습니다. 이상.
2013.12.10 15:45
지난 영화 필름을 수집하는 수집가 인터뷰를 다녀왔다. 리터칭할 사진이 밀렸는데 그것보다 신장 여행 원고가 더 급해서(마감 기한을 넘긴 지가 더 오래 되어서) 마침 상황이 맞아서 오후 내내 카페에 앉아 있다. 원고 쓰다가 생각나서 다른 미디어에 전화해 보니 오늘이 마감인 인터뷰 원고는 아무리 늦어도 내일까지 받아야 한다고 해서 결국 다른 작업을 다 접고 어제 다녀온 인터뷰 원고부터 쓴다. 마감도 너무 지나버리니 감각이 없다. 다만 모호한 불안감의 덩어리만 남는다. 마감 지난 지 하루 밖에 안 된, 그러니까 순서로 생각하면 좀 더 미뤄도 되는 인터뷰 원고를 지금 쓰게 될 줄이야.
연말에 나가는 원고니까,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_________연말이다. 또 한 해가 기록의 창고로 들어간다. 다 쓴 수첩을 속지만 빼서 표지에 ‘~2013. 12’라고 쓰고 책장의 한 모퉁이에 쌓는다. 몇 년 먼저 와서 벌써 색이 바랜 수첩들이 제법 탑을 쌓고 있다. 지우지 못 하고 찢어내지 못 하는 수첩에는 지난 한 때의 내가 오롯이 남아 있다. 잊었으면 하는 날도 있다. 남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은 이름, 중요하다고 따로 접어두고 찾지 못 하는 메모도 있다. 부끄럽고 미안한 한 해였다._________
원고 쓸 때는 언제나처럼, 웹을 돌아다닌다. 다니다가 새로 나온 책 동향 기사를 읽었다. 서점 간 것이 참 오래됐다는 생각이 불쑥 든다. 새로 나온 책들이 낯설어 보여서 그런가. 예전에는 그래도 한국에 가면 하루 오후 정도는 온전히 서점에 있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런 저런 책들을 뒤적거려 보고 제법 여러 권을 산 다음 박스로 포장해서 우선 한국 집으로 보내두는 것이 일이었다. 책은 나와 비슷하게 상하이에 도착하도록 했는데, 그러면 상하이 돌아와서 새 책을 한 권씩 꺼내서 뒤적거리며 책 바닥에 구입 날짜를 적는 것이 즐거운 일이었다. 사 두고 읽지 못 한 책들이 점점 늘어났지만 그게 대순가. 책은 우선 구입한 것만으로도 그 안에 있는 내용이 절반쯤은 내 것이 된 것 같은 만족감을 주곤 했었다.
핑계를 대자면 한두 개일까. 이제 서점은 스쳐지나고 만다. 들러도 긴 시간을 보내기 힘들고, 산다고 해도 한 두 권이다. 일 년에 한국은 한 번쯤 가니까, 일 년에 겨우 한 두 권을 사는 셈이다.
인터뷰한 수집가는 정말 긁어모으듯이 무작위로 필름을 수집하고 있었다. 회사 곳곳에는 아직 포장도 뜯지 못 한 채 푸대자루에 담긴 필름들이 수북했다. 수집한 필름들을 다 볼 엄두를 못 낸다. 필름의 내용과 상태를 확인하기 위헤 중간중간 보는 것도 많다고 고백했다. 사실, 그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살짝 비웃었다. 그게 어제 일인데, 책을 대하는 나를 보니 그 비웃음을 비웃어야겠구나. 그 수집가의 즐거움을 진심으로 공감한다.
서점 가고싶다. 원고나 써야지.
2013.11.26 17:36
사진 스터디를 다시 시작했다. 이번에는 중국 친구들만 모아서 한다. 워낙 다양한 수준의 사람들이 오니까, 기술적인 부분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 주로 사진 숙제를 내고, 가져온 사진들을 강평한다. 그들이 어떤 기대를 가지고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다른 곳에서 얻기 힘든 사진에 관련된 생각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어쨌든 나는 결국 한 명 사진가이구나 싶다.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나는 잊었던 사진의 문제들을 다시 떠올리게 되고, 미루어 둔 개인 작업에 대해 다시 욕심내게 된다. 당장 급하니까, 돈 벌겠다고 시작한 사진이 아닌데 돈 버는 사진만 생각하면서 지내게 된다. 이 상황을 부정하거나 미워할 생각은 없다. 성실하게 돈 벌고, 매번 촬영마다 처음 찍는 사진처럼 긴장하며 찍고 있다. 촬영은 매번 도전이고, 조명은 항상 어렵다.
어떤 피사체를 대하든, 결국 내 의식이 피사체에 반사되어 나오는 것이 사진으로 남는다. 그러니까, 모든 사진은 자화상이다.
신장 다녀온 원고 작업 때문에 진도도 안 나가는 컴퓨터 앞에 며칠을 앉아 있다. 엉덩이도 아프고 허리도 아파서 괜히 서서 작업하는 컴퓨터 작업대도 알아보고 또 의자 위에 꿇어앉아서 쓰기도 한다. 마음이 바쁘니까, 몸이 게으르게 쉴 때도 마음이 쉬지 못 한다. 비효율이다. 불끈불끈, 새 작업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건 꼭 이럴 때다.
2013.11.16 23:10
지난 수요일부터 걸린 감기가 아직 한참이다. 자꾸 몸 눈치를 본다. 감기니까, 얼마든지 쉬어도 좋은 거라고, 틈 날 때마다 잠자도 된다고 살살 나를 꼬드긴다. 아직 아내는 내가 감기 걸린 줄은 모른다. 알면 속상할 테니까, 뭐라 그럴 거니까 말 안 했다. 통화는 가능한 안 하고, 동영상도 안 보낸다. 카톡으로 쓰고 만다.
아내가 없는 낮잠을 잤다. 고장난 노트북 충전기를 사느라 시내에 나갔다가 버거킹에 앉아서 밀린 원고를 조금 썼다. 많이 쓸 작정이었는데 원고가 그렇지 뭐, 겨우 한 페이지 보탰다. 집에 돌아와서 침대에 엎드려서 다시 원고를 끄적이다가 귤 서너 개 까 먹고 잤다. 깨고 나니 밤이다. 아, 길게 잤구나.
아내가 없는 집에서 늦은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이상한 패배감이 감돈다. 잘 잤냐고, 차려둔 거 좀 먹으라고 말해 주는 아내가 없구나. 뭐든 다 못 한 것 같아서, 덜 한 것 같고 어설프게 한 것 같아서, 지금 벌려 둔 일들을 떠올리기가 무서웠다. 무기력하게 저녁을 보내고 내일 새벽에 나설 암벽등반 장비를 꾸렸다.
깊은 밤이다. 하루는 이렇게 가고 원고는 겨우 한 페이지가 보태졌다.
2013.11.07 10:17
잘 주무셨어요?
저는 어제도 작업실에서 잤어요. 아내 한국 들어가고 나면 널널하게 운동도 다니고 못 본 영화도 맘껏 볼 줄 알았거든요. 근데 아내 들어가니까 더 바빠요. 아무리 바빠도 집에 와서 밥 먹고 자고 나가라는 아내가 없으니까 이제 일하다가 그냥 여기서 자요. 아침에 일어나면 꾸질꾸질해요. ㅎㅎ 오늘 밤쯤이면 아마 두 달 가까이 끌어오던 작업을 다 마쳐요. 다음 작업들도 해야지만 우선 큰 짐은 내려놓네요. 결제받으려면 또 두어 달 기다리긴 하겠지만요.
아침에 여기 사무실 단지 관리 직원이 왔어요. 소방 감독하는 기관에서 무슨 검사 나왔다나 봐요. 촬영 없는 날은 작업실이 좀 엉망인데 어제는 여기서 잠도 잤으니 밤새 마신 음료수 병이랑 빵봉지랑 그런 거 막 책상 주변 바닥에 너저분하고요. 컴퓨터로 사진 고치는 작업하느라 커튼도 다 닫아놓았으니 꼬질꼬질한 냄새도 잔뜩 나요. 아직 아침 이도 안 닦았는데 손님이 와버렸어요. ㅎㅎ
두 사람이랑 이런 저런 이야기하다가, 관리팀 직원이 그 소방 감독관한테 제 이야기를 하면서 참 예의바른 친구다, 했어요. 아침에 출근하거나 저녁에 퇴근할 때마다 마주치는 단지 내 사람들한테 꼬박꼬박 목례 인사를 하는데 그게 그렇게 보였나 봐요.
아부지는 아마 기억 못 하실 것 같은데, 이게 제가 중국 올 때 공항에서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거였어요.
인사 잘 하고 다녀라.
그때 그 말 들었을 때는 좀 생뚱맞았어요. 아들 먼 길 떠나는데, 그것도 오래 떠나는데 갑자기 인사 잘 하고 다니라는 당부는 좀 이상했거든요. 그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상황에서는 뭔가 다른 이야기들이 더 어울리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근데요 아부지. 저 그 말대로 해요. 엘리베이터나 아파트 복도에서 갑자기 다른 사람이랑 마주치면 그게 참 어색하거든요. 그럴 때 아부지 충고 생각하면서 먼저 인사하려고 노력해요. 작업실 출근할 때도 앞에 수위 아저씨부터 청소 아주머니까지 전부 인사하고요. 옆 사무실 사람들 처음 이사왔을 때도 먼저 인사했어요. 그게, 그렇더라구요. 참 가벼운 것 같았던 아부지 당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리고 그 당부가 아버지 지나가는 말씀이 아니라 생활에서 참 많이 단련된 말이라는 걸 지나면서 알겠더라구요.
아부지, 항상 고마워요.
보고싶네요. ㅎ
2013.10.08 00:15
며칠 전에 읽은 내용이다. 잡스가 1984년 어느 행사에서 연설했다는 내용인데, 잡스는 사람들이 책 크기의 컴퓨터를 들고 다니는 세상에 대해 말한다. 전화도 되고, 배우기 쉽고, 순식간에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컴퓨터의 미래를 그린다.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당신을 상상해 보라고 하고, 그런 것을 만드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꿈은 20년쯤 걸려서 마침내 아이패드로 이루어진다.
20년이다. 20년을 한결같이 꿈꿀 수 있는 사람, 그 꿈에 대한 확신과 꾸준한 열정이 만들어낸 결과. 나는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내 20년 뒤를 꿈꾼 적이 있는지 생각했다. 없었다. 겨우 1년쯤이나 생각했을까. 부끄럽지만, 그랬다.
두 번에 걸쳐, 보름 가깝게 다녀온 신장 지역 출장 원고를 정리하고 있다. 애초에 책을 내는 것이 계약 조건이었으니까 약속한 시간 안에 써야 한다. 오늘 우선 한 토막을 정리했다. 가능한 이번 달 안에 초고라도 정리해 보려고 한다.
내 20년을 고민한다.
2013.07.17 18:53
스튜디오 조명을 외부에서 쓸 수 있도록 돕는 베터리팩을 샀다. 600와트 출력 조명을 동시에 세 개까지 쓸 수 있다. 교환용 베터리 하나를 추가로 구입했다.
내년쯤에 열고 싶은 개인전을 위한 작업은 600와트 조명 두 개를 쓴다. 생각하는 전시 컨셉은 세 개인데, 내년에 그 첫 번째 작업을 전시하고 싶다. 전통적인 사진전 형태다. 두 번째 작업은 비디오 작업이고, 세 번째 작업은 첫 번째 작업과 연결되는데 설치미술의 형식도 빌리려고 한다. 첫 번째 작업보다는 두 번째가, 두 번째 작업보다는 세 번째가 더 규모가 크기 때문에 차례로 단계를 밟아가야 한다.
나는 몇 년 동안 잡지에 실리는 포트레이트 사진을 주로 찍었다. 비슷한 형태의 사진을 일반인을 모델로 작업하려고 한다. 첫 번째 작업과 세 번째 작업은 미디어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다룬다. 두 번째 작업은 관람객에게 공포와 충격을 주려는 것이 의도인데 얼마나 받아들여질지는 더 고민해야 한다.
당장에는 일이 밀려있고, 날씨도 너무 더워서 야외작업이 쉽지 않다. 수월하게 작업하기 위해서는 차량도 필요하다. 우선 주변 사람들부터 하나씩 시도해 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2013.06.28 14:22
미팅 다녀왔다. 옷과 홈데코 소품을 만드는 디자이너였는데, 브로셔와 간단한 책자 의뢰였다. 지난 달에 잡지 인터뷰 촬영으로 만났었는데 그때 내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우선 지난 주에 아내와 마루를 데리고 산책 겸 시내에 있는 매장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오늘은 인쇄 디자인을 맡을 승일이와 함께 그의 쇼룸으로 찾아갔다. 가격적인 부분을 떠나서 우리는 한참 이야기했다. 디자이너는 여러 가지 참고자료를 보여주고 나는 또 거기에 의견을 보탰다. 디자이너는 오래 남는, 소장하고 싶은 브로셔를 원했다. 이번에 만들면 오래 쓸 작정이라고 했다. 매장에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인데, 새 제품은 계속 나오겠지만 브로셔를 따로 만들지 않을 테니까, 이 브로셔는 3년쯤 지나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매력적이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다음의 모든 말들은 3년이라는 단어 속으로 잠겨버리는 듯했다.
사진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은 거의 사진을 보는 순간에 결정된다. 오래도록 보게 되는 사진, 또는 오래 지나서도 다시 꺼내보고 싶은 사진은 대부분 개인의 기억이 연관된 것이다. 내가 지나온 풍경이나 내가 만났던 사람 같은 것들. 신문의 사진은 하루를 버티면 된다. 달력의 사진은 한 달을 버티면 된다. 아, 도대체 어떤 사진이 3년을 버틸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사진이 3년이 지난 후 다시 꺼내보고 싶어질까? 지난 사진들을 다시 열어 보아야겠다.
고객의 기억과 닿아있는 사진이 아니라면, 고객의 기억이 덧붙기 쉬운 사진이어야 한다. 아마 그런 방향에서 작업하게 될 것이다. 제법 시간이 걸리겠지만 신나는 작업이 될 것이다. 게다가 디자이너이자 회사 대표인 이 사람의 안목은 어찌나 까다로운지. 디테일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이 작업이 끝나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견적부터 어떻게 해결하고.
2013.06.25 11:10
요즘은 곧잘 보행기에 앉는다. 예전에 몸을 가누지 못 할 때는 앉혀 두면 바로 쓰러지고, 보행기에 붙은 놀이기구들에도 아무 관심이 없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아직 버튼을 누르면 소리가 난다는 인과관계를 아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이리 저리 누르고 돌리면서 잘 논다. 아직 뒤집지도 못 하면서 일어서는 것은 어찌나 좋아해서, 옆에서 잡아주면 걷고 구르며 논다.
2013.06.21 17:31
마루는 아직 뒤집기도 못 한다.
뒤집어 놓으면 잠시 놀다가 힘들다고 끙끙거린다.
그러면 가서 다시 뒤집어줘야 한다.
마루는 잠들면 온갖 몸부림을 치며 잔다.
기본 다리 하나는 침대 밖이다.
2013.06.21 17:21
전국체전에 나가는 스포츠클라이밍 선수 선발을 겸한 클라이밍 대회가 베이징에서 있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 들었다. 시합 날짜는 토요일이었고, 그날 나는 촬영이 두 개 잡혀 있었다. 촬영이 없었다고 해도 지난 두어 달 암장에 나가지도 못 했으니 될 게 아니었다. 암장에 꾸준히 나갔다고 해도 지금 내 실력으로 입상권은 먼 이야기였을 것이다. 게다가 장소는 베이징이다. 그래도,
내년 중국 예선전에 나가고 싶다고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아내는 마루와 함께 응원가겠다고 했다.
태권도를 처음 배운 건 초등학교 들어간 다음이었다. 기억에 아마도. 무척 다니고 싶어했었으니까 한참을 졸라서 겨우 허락을 얻었을 것이다. 그때 네 살 어린 동생도 함께 시작했다. 참 재미있었다. 작은 덩치에도 불구하고 몸은 제법 날랬으니까 곧 잘 했다. 그리고 나는 일 년을 채 못 다니고 그만 다녔다. 어느 날 관장님이 다음 대회에 나갈 사람들을 부르면서 내 이름도 불렀다. 그래보아야 시 군 대회쯤 되었을 텐데, 그래도 명색이 대회였다. 이 작은 몸을 격투기 대회에 내보내려 한단 말인가. 별도의 지정한 날 아침에 모여 승합차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가서 치르는 대회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한계 밖의 세계였다. 가 본 적도 없는 곳에서 아마도 일생을 태권도만 수련한, 그래서 한 대 얻어 맞기라도 하면 곧바로 뼈라도 부러질 것 같은 강한 상대들이 즐비한 세상일 것이다. 아, 그런 곳에 저 관장님은 어째 나를 보내려고 하나? 지난 번 시범 때 관장님 엉덩이를 걷어찬 것 밖에 없는데.
어떤 핑계를 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부모님도 이상하셨을 것이다. 좋아하고 뛰어다니던 아이가 갑자기 이리 저리 피하며 도장에 안 가겠다고 했으니까. 어쨌든 여차저차해서 나는 태권도를 그만 뒀다. 길에서 혹시라도 만날까 무서워 도장 근처로는 가지도 않고, 먼길로 빙빙 돌아다녔다. 동생은 계속 태권도를 했고 3단까지 땄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암벽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사실 안다. 그저 즐기는 수준이다. 밥 먹듯 운동하는 아이들과 비교할 수 없다. 그래도 가보고 싶다. (중국에서 암벽을 타는 한국인이 그리 많지는 않을 테니까,)운이 좋아서 선수라도 되면 전국체전이라는 곳에서 예선전이라도 뛰어볼 수 있는 거 아닌가. 또 안 되면 어떤가. 운동에 작은 동기부여라도 되지 않나. 열심히 운동해서, 내년에는 베이징에 가봐야겠다.
나중에 어쩌면 마루도 태권도장에서 도망칠 수 있고, 또 대회에 나가 예선전에서 떨어지고 상심할 수도 있다. 그때는 탈락 선배로서 마루 등을 토닥여 주고 까짓 것 그런 게 인생을 결정하는 건 아니라고 같이 웃어줄 수 있지 않을까. 웅변대회 결승에서 똑 떨어지고 서럽게 우는 내 손을 잡아주던 아버지처럼은 아니더라도. (아버지, 나만큼이나 서운해했던 아버지 표정이 생각날 것 같아요.ㅎ)
2013.05.28 17:55
마루는 주차중.
내 어느덧 세상에 난 지도 다섯 달이 되었다. 살아보니, 세상은 별 게 없다.
낮잠을 위한 준비. 파리를 떄려잡을 죽도 한 자루, 숙면을 도와주는 공갈젖꼭지, 심심하면 흔들어 볼 노리개, 아이니까 아이패드. 작은 기린 인형은 놀이용이 아닌 식용으로 생각한다는 건 함정.
샤워하고 로션 바르다가,
어쩌다 보니 포청천 마루.
엄마 엄마!
나 이 났어요!
좁쌀같은 이가 두 개.
나에게 분유를 달라. 그렇지 않으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난장을 볼 것이다.
20mm 광각 팬케익 렌즈에 맛들인 아빠 때문에 요즘 찐빵으로 찍히는 마루. 귀여워 귀여워.
아빠는 당분간 광각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마루는 유모차에 누워 바라보는 나뭇잎을 좋아한다. 바람이 불어서 나뭇잎이 소리내며 휘날릴 때 마루는 자지러지듯 웃는다. 침대에 매달아 둔 작은 인형 모빌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거다. 햇살은 나뭇잎에 닿았다가 바람에 조각난다. 아직 뒤집기도 못 하는 마루지만, 마음으로는 벌써 몇 번이고 저 가지 끝에 닿았겠다.
2013년 5월 후반.
마루는 생후 다섯 달을 채워가고 있다.
2013.05.25 12:59
꿈.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었다가 지웠다. 게시판 세부 사항을 설정하다가 귀찮아서 관뒀다. 그냥 짧은 글 안에 작게 작게 적어야겠다. 가지고 싶은 것이나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 따위를 산책하는 심정으로 적어두려고 한다. 적어둔 대로 되면 좋고, 안 된다고 해도 가끔 다시 읽어보면 봄날 산책처럼 한가로울 수 있을 거니까.
마루가 학교 들어가기 한 해 전에, 1년쯤 태국에서 살고 싶다. 마루가 이제 다섯 달 됐으니까 학교 가려면 6년이 남았고(7년인가?) 그러면 5년 뒤가 되겠다. 지금이 2013년이니까 그럼 2018년이 되겠구나. 아내와 나는 태국요리를 좋아하니까, 그곳의 사람들도 좋아하니까 너무 붐비지 않는 곳으로 가서 1년만 살다가 오면 좋겠다. 아내는 태국요리를 배우겠다고 했다. 나는 한 달에 절반은 태국에 있고 절반은 상하이에 있어도 좋겠다. 그 전에 태국어를 배우고, 생활을 안정시켜 두어야 한다. 태국 어디쯤에 가서 살지 지도도 부지런히 보고, 그곳의 물가를 고려해서 생활비도 따져보아야 한다. 태국에서 외국인이 집을 렌트하는 문제도 알아보면 좋겠다. 아, 태국이라...
2013.05.07 11:30
새 여권을 만들었다. 외우기 편한 여권 번호가 아까워서 가능하면 오래 쓰려고 했는데 더는 쓸 수 없어서 이번에 전자여권으로 바꿨다. 지금 여권은 군 제대 후에 만든 것이니 10년 만이다. 중간에 속지를 한 번 추가했고, 연장도 한 번 했다. 속지를 추가할 때 두꺼워진 여권을 보면서 괜히 으쓱하기도 했고 기간 연장 때는 스탬프 하나 찍어주는 걸 보면서 싱겁기도 했다. 워낙 낡아서 중국 공항에서 두어 번 주의를 받기도 했다. 여권 접합 부분이 떨어지면 출국도 입국도 할 수 없으니 조심하라고 했다. 그 뒤로는 아내가 여권 커버를 마련해 주었다. 새로 받은 여권은 종이가 빳빳해서 길들지 않은 구두 같다. 아직 외우지 못한 새 여권 번호가 생겼고, 앞으로 10년 동안 쓸 새 여권 사진이 생겼다.
의류 촬영이 있는 날이었는데, 모델이 도착하기 전 이른 아침이었다. 조명을 세팅해두고 보니 마침 증명사진 찍기에도 무난해 보여서 촬영 준비하다가 갑자기 앉아서 찍었다. 대충 세수를 하고 삐져나온 머리카락을 물로 얌전히 붙였다. 바람소리 누나가 찍고 내가 직접 포토샵 작업을 했다. 다른 것은 그대로 두고 피부를 정리했다.
새 얼굴이 마음에 든다. 10년 전 사진과 비교하니 나이가 들었고, 편해졌다. 사진 두 장을 유심히 봤다. 10년 전 얼굴은 서툰 나를 감추려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마땅히 어때야는지 몰랐다. 이게 좋아 보이면 따라 하고, 저게 좋아 보이면 흉내 냈다. 그 서툴고 불안한 마음을 들키기 싫어서 괜히 더 당당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10년 전 나를 보면서 생각한다. 지금도 서툴지만, 그때보다는 낫다. 무엇을 해야는지 어디로 가야는지는 여전히 막막하지만, 어때야는지는 적어도 조금 알게 됐다. 그때보다는.
새 얼굴이 마음에 들어서 참 좋다.
2013.03.25 14:20
필요한 원고 사진을 찾느라 예전 사진들을 쭉 본다. 중간 중간 지워진, 지운 사진들이 적지 않아도 어느덧 10년 가까이 모인 사진들이 제법 된다. 자료 찾느라 열었다가 어디쯤에서 멈칫멈칫 하기도 하고 어디쯤은 얼른 넘어서기도 한다. 부끄러운 기억이 앞서고, 미안함 감정이 뒤따른다. 아, 다들 안녕하시겠지.
사진은 너무 많은 것을 너무 또렷하게 기억한다고 적었었다. 그 미련함을 알면서도 지우지 않는다. 미련한 기억이라도 많으면 조금이라도 더 든든하다고 믿는 것일까. 아, 원고 써야지 하며 얼른 닫는다.
2013.02.25 14:57
어떤 아빠가 되어야 하나,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나 하는 생각은 일찍부터 했다. 짐작은 했었다. 아이는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집착의 대상이 될 것이다. 세상에서 그보다 온전히 내게 속하는 것도 없을 테니까. 조금만 방심하면 아이에게 집착해서 내 뜻대로 휘두르려고 들 것이다. 참 위함하겠다 싶다. 오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한다.
부모의 마땅한 자리는 아마 여행 안내자 정도가 아닐까. 낯선 땅에 막 도착한 여행자가 스스로의 여행을 시작하기 전까지 그 땅의 대체적인 성격을 설명하고, 이곳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소개하고 위험한 것들을 경고하고 비상연락망도 알려주고, 생존에 대한 몇 가지 시범을 보여주어도 좋을 것이다. 다양한 길을 알려주되 길마다에 있을 모험들을 가감없이 아는 만큼 알려주면 될 것이다. 내가 가 보지 못 했던 길을 더 좋은 것처럼 말하거나 내가 다시 가고 싶은 길을 더 길게 말하지 않아야겠다.
언제가 되든 마루가 제 여행을 시작할 때, 그동안 전해들은 가이드의 말이 든든한 힘이 될 수 있어야 한다.
2013.02.24 22:21
마루 손톱을 깎았다. 목욕하고 분유 먹고 잠든 사이에 몰래 깎았다. 손톱은 얇아서 셀로판 종이처럼 누르는 대로 구부러졌다. 행여 손톱을 자르다가 손가락까지 다칠까 조심스러웠다. 마루는 깊은 잠을 자는 것 같다가 깨어서 울었다. 열 개 손톱을 한참만에야 다 깎았다. 제 부모가 저 잠든 사이에 손톱을 깎은 줄을 마루는 아마 모를 거다. 아, 나도 비슷한 기억이 있었다. 학교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여느 날처럼 학교 간다고 문지방을 내려서는데 부모님 두 분이 그 앞에 서 계셨다. 이상했다. 평소와는 다른, 무언가 기대하는 미소로 두 분은 서 계셨다. 그리고 새 운동화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 이것이었구나. 학교가는 아이가 새 신발을 보고 기뻐하는 표정을 보고 싶어서 두 분 새벽이 조금은 설랬겠구나. 운동화가 닳았는지 더러운지 신경도 안 썼던 때 이야기다.
어떤 신발이었는지, 정확한 배경이 어땠는지, 아버지가 앞서고 어머니가 뒤에 섰던지 그 반대였는지 아니면 나란히 서 계셨는지 사실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무언가 다른 기대감으로 밝게 빛나던 젊은 아버지 어머니의 인상만 남아있다. 마루는 오늘을 기억하지 못 하겠지.
잠든 마루 손톱을 깎다가 그때 생각이 났다.
2013.01.17 19:13
한 번도 땅을 디딘 적 없는 발이다. 아무 것도 제 의지로 디뎌보지 않은 발, 새 발이다. 무엇을 디디고 설 지, 어디에 디디고 설 지를 아직 정하지 않은 발이다. 저 발을 어떤 풍경으로 인도하고 어떤 사람 앞으로 데려가고 또 어떤 경험 앞에 안내해야 하나? 가만 쳐다보고 이런 저런 것을 생각한다.
마루.라고 지었다. 아내가 김훈의 수필에서 따왔다. 정확하게 어느 대목인지 나는 읽은 기억이 없는데, 안과 바깥을 잇는 소통의 공간, 더 넓은 곳과 소통하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마루'라는 단어를 풀어 둔 구절이 있다고 한다. 참 마음에 들어서 아내는 일찍부터 아이의 이름으로 점찍어 두고 있었다. 더 찾아보면 마루는 우리말로 '하늘'이라는 뜻도 있고, 산의 봉우리라는 뜻도 있다. 내 아이 세대는 국적의 경계를 우습게 여길 테니까 발음하기 쉬운 이름으로 했다. 아버지께서도 선듯 허락해 주셔서 반마루.가 되었다.
자고 있는 아이를 가슴에 안고
"마루야, 너는 어떤 세상을 살래?" 물었는데, 마루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면서, 마루는 잘 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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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0 08:15
어제 출근길에 뮤지컬 명성황후 OST를 가져갔다. 딴에는 혼자라도 승리의 축배를 들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내에게 출구조사 결과를 전해듣고도 어쩐지 질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 피부에 와닿았던 그 기운들은 모두 같은 편이었다. 모두 상식의 편이라고 믿었다. 아직 개표율이 낮은 서울지역의 상황에 기대를 걸면서도, 50만표를 넘어 점점 격차를 키우는 것을 보며 패배를 인정했다.
명성황후 엔딩곡은 '애통하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안타까운 백성들의 처지를 걱정하는 황후의 말, 일본의 간악함에 분노하는 황후의 말이 뒤따른다. 그리고, 동녘의 붉은 해를 스스로 지키라는 당부와 합창으로 노래는 끝난다. 나는 별로 한 것이 없어서, 조용히 울었다.
승리한 것은 비상식이 아니라 다른 편에 있는 상식이었던 것일까? 그렇게 믿어야 하나?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는데도 해는 뜨고 사람들은 출근하고 나는 예정된 촬영을 나서는 구나. 살면서 이런 크기의 좌절을 몇 번이나 겪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많았다. 아버지와 처음 다투고 아버지의 작은 어깨를 보았던 때, 작문 시험지를 0점 받았던 때, 원하는 대학 불합격 전화 안내를 받았던 때, 크게 기대했던 계약이 깨졌던 때, 내 마음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때, 그리고 대통령께서 가셨던 그 날도 있다. 그 시간들을 지나면서 나는 오늘 살아있지 않나. 그 사건들을 계기로 조금 변하면서 여기까지 왔지 않나. 결론은, 살아야겠다.
좌절할 자격이 부족하다. 몸을 던져 선거운동을 한 것도 아니다. 현장에 뛰어들어 주먹을 쥔 것도 아니고, 하다 못해 웹 상에서 작은 투쟁이라도 한 것이 없다. 박근혜를 찍겠다는 지인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치열하게 그들을 설득할 시도도 못 했다. 나는 겨우 마음으로 응원했다. 나는 좌절할 자격도 부족하다.
성실하고 단단하게 살아야겠다. 당분간 포털사이트는 접속하지 않을 작정이다. 덕분에 에프상하이와 내 블로그, 웨이보에 다시 집중할 수 있겠다. 그래, 덕분이다.
2012.09.18 15:47
계절이 변해갈 때,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이 새삼스럽다. 가을이 온다. 저녁 샤워 마치면 몸에 닿는 바람이 더 이상 시원하지 않고 서늘하다. 새벽 출근길 햇빛을 피하지 않아도 된다. 의지와 상관 없이, 슬슬 하나둘 마무리 되어야 한다.
세상의 끝에 닿으면, 조르바와 모비딕을 다시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조르바가 죽기 직전에 통곡했던 이유를 나는 아직 모르니까, 세상의 끝쯤에는 그런 답도 있지 않을까. 모비딕이 감추어 둔 사는 일의 신비같은 것도 거기에서는 두엇쯤 드러나지 않을까. 세상의 끝이니까. 그곳에서 나는 호탕한 마음으로 조르바를 먼저 읽고, 벌거벗은 단독자의 각오로 다시 모비딕을 읽을 것이다. 크고 낡은 흰고래 모비딕과 대칭점에 서 있는 것은 에이헤브 선장도 아니고 주인공 이슈메일은 더 아니다. 낡은 배 피쿼드 호와 세 갑판장으로 대표되는 그 배의 선원들이 고래의 맞은 편에 서서 같은 종말을 바라보고 나아간다. 죽음을 예견하면서도 끌려들어가고 마침내 침몰한다.
나는 요즘 사람마다의 잡지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글을 쓰고, 사람에게 묻고, 사진을 찍고, 잡지를 만드는 일들을 돈벌이로 해왔다. 이제 모두 함께 한다.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찍어서 인터뷰는 문장으로 만들고 사진과 함께 잡지로 엮어 낸다. 한 사람이 주인공인 잡지다. 그 잡지로 돈을 번다.
2012.09.10 10:06
마지막으로 여기에 쓴 것이 지난 4월 말이구나. 오래 됐다. 4월 말쯤이면 작업실을 열고 두어 달이 지났을 무렵인가. 아득하다. 계획은 여럿이었는데 작은 계획들은 저들끼리 모이면서 덩치를 키워서 좀처럼 상대하기 어려울 만큼 거대해졌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나,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날마다 눈앞에 닥치는 것들을 겨우 넘으면서 지난 몇 달을 지나왔다. 많은 것이 여전히 모자르고 숨은 여전히 턱 아래 어디쯤까지 차오른 상태인 듯하다. 그래도, 한 눈에 다 담기지 않는 괴물처럼 몸집을 키운 계획의 덩어리에 작은 바람구멍이라도 내야 하니까, 그래야 조금씩 털어질 테니까, 다시 쓰기를 이어가야겠다. 새로 찍은 사진들도 많고, 새로 생긴 사람들, 새로 나눌 이야기도 많다. 정리해서 올려 두어야 하는 묵은 이야기들도 많다.
아침에 시장에 갔다. 잠결에 아내의 주문서를 들었는데 대충 일곱 가지였다. 김치 다 먹었으니 새로 담그겠다고 말한 것이 벌써 한참인데 바쁘다는 핑계로 도와줄 수 없었다.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출근 전에 시장에 갔다. 우선 여기에서 파는 배추는 너무 물러서 김치 담그기에 적당하지 않으니까, 여기에서 와와차이.라고 부르는 조금 작은 배추를 샀다. 마늘, 양파, 감자, 부추, 생강, 두부, 매운 고추를 샀다. 대충 챙겨보다가 한 개가 모자라서 아내에게 전화해서 다시 물어야 했다.
두부를 사고 100위엔 짜리 지폐를 내고 거스름돈을 받았다. 20위엔짜리 세 장과 10위엔짜리 세 장을 받았다. 아저씨는 두부를 담근 물에 손가락 하나를 적신 다음 돈을 셌다. 받아 보니 지폐는 뻣뻣한 기운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오래도록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온 돈인 듯싶었다. 게다가 특별히 구겨지거나 찢어진 부분도 없었다. 그러니까 오랜 시간 동안 여러 곳을 떠돌아 다녔지만 인상 곱게 늙어간 사람의 얼굴같은 돈이다. 곱게 받아서 집에 오는 내내 산전수전 다 겪은 돈을 생각했다.
저녁에는 새로 담근 김치를 먹겠구나.
2012.04.21 23:51
07:00
아침 공항에 앉아서 비행기 출발 시각을 기다리며 지난 밤 파키스탄에서 발생한 비행기 추락사고 뉴스를 본다. 뉴스는 모자이크 처리 없이 잘려나가 기체에 깔린 죽은 몸을 보여주었다. 사고가 난 기종은 보잉737기종이라고 한다. 오늘 아침 내가 타고 갈 비행기는 어떤 기종일까?
23:50
구이저우 성의 성도, 구이양에 와 있다. 내가 타고 온 비행기는 A321 기종이었다.
2012.04.08 22:50
대학 때 썼던 노트 몇 권을 아직 갖고 있다. 대부분 안재흥 선생님 수업의 노트들이다. 열심히 들었던 강의였으니까, 그때 생각으론 아마 혼자라도 강의록을 보며 더 배울 것들이 있었던 모양이니까, 또 내 노력의 흔적들이 있었으니까 졸업 후 중국으로 오며 여러 책과 함께 가져왔었다. 전공과 전혀 상관 없는 사진가가 되기로 결심했으면서.
며칠 전에 우연찮게 강의 노트를 꺼내봤다. 중간중간 밑줄을 긋고 제법 여기저기 반론도 적어 둔 자료집이 있었다. 필기 잘 하는 후배의 노트를 복사해 둔 것도 있었다. 그리고 시험을 준비하며 따로 정리한 요약 노트도 있었다. 그때도 벼락치기는 여전했던 거니까 바쁜 마음은 글씨에 그대로 드러났다. 흘러가듯 페이지를 채운 글씨들은 그러나 정돈되어 있었다. 백지에 바쁜 마음으로 적어도 단정하게 이어진 글씨들이 지금 보아도 예쁘다.
손글씨가 점점 못 생겨진다. 몇 년째 속지를 바꿔가며 쓰고 있는 수첩 속에서, 내 글씨는 점점 더 못 생겨진다. 요즘에는 가끔 내 글씨가 참 미워 보인다. 제법 좋아하던 내 글씨가 몇 년 사이에 그렇게 되었다.
기억하기에, 누나는 참 예쁜 글씨를 썼다. 처음 글씨를 염두에 둔 것이 아마 중학교 무렵이었던 듯한데, 그때도 누나 글씨를 보며 부러워했던 것 같다. 가물하기는 해도. 스스로 필기하며 ‘내 글씨는 왜 이리 못 생겼나.’ 생각하기도 했었다. 이 기억은 분명하게도. 누나의 글씨를 부러워했던 정확한 기억은 고등학교 때다. 누나의 글씨는 기억나지 않고, 다만 그 글씨를 부러워했다는 기억은 난다. 그리고 더디고 성글기는 해도 꾸준히 글씨를 의식하며 글을 썼다. 제법 내 글씨가 마음에 들게 된 것은 대학에 입학하고도 제법 시간이 지난 뒤였지 싶다. 특징적인 형태를 갖춘 초기에는 그 특징을 과장하려는 서툰 의지가 글씨에 드러났을 것이다. 그리고 더 다듬어지면서 비로소 서툴고 과장된 의지는 속으로 숨고 쓰는 사람의 기질이 보이는 글씨가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글씨가 마음에 드니 여기저기 편지 쓰는 일도 많았다. 메일로 안부를 주고 받다가도 언제 한 번씩은 손글씨로 편지를 썼다. 백지에 쓰기도 하고 따로 편지지를 마련해서 쓰기도 했다. 선생님이나 친구에게 보내는 안부 편지도 있었고 연애 편지도 있었다.
처음 중국에 왔을 때 샤오싱 근처에 있는 정원에 들렀는데, 그곳에서 말로만 듣던 왕희지의 글씨를 처음 보았다. 오리인지 거위인지 몇 마리가 떠다니는 작은 연못 앞에 왕희지의 글씨 두 글자를 새긴 큰 비석이 있다. 선이 굵은, 단호하고 굳건한 글씨였다.
한 번 익힌 글씨가 망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한 번 배우고 나면 언제든 다시 탈 수 있는 자전거처럼, 한 번 익힌 글씨는 온전히 내 것이 되는 줄 알았다. 최근 수첩에 적은 내 글씨를 보면서, 쓰지 않으면 망가지는 것이 글씨라는 사실을 알았다.
최근에야 새롭게 든 생각인데, 전통 한자 서예야 말로 추상 미술의 절정이지 싶다. 한국의 고암 이응노 화백이나 중국의 국보급 화가 우관중 같은 이는 공통적으로 말년에 문자 추상을 작업한다. 두 사람 모두 프랑스에서 공부했고, 서양적 회화 기법과 동양의 수묵 기법을 독창적으로 결합시킨 작품 세계로 인정받았다. 그렇지만 그들의 문자 추상 작업은 서예의 길과는 다른 길을 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서양 순수 추상의 발생기에 그것은 비명 소리에 가까웠다. 비명의 속뜻은 ‘에라, 어쩔 줄 모르겠다.’쯤 될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은 잔뜩 있는데, 현실에 있는 단어들은 그 감정들을 담기에 어딘지 모자르고, 그렇다고 고정된 형태 속에 가두기는 답답하니 비명을 내지르는 것 밖에. 그때의 추상미술은 소통하자는 제안이나 아름다움을 공유하자는 선의가 아니라 누구든 제발 내 비명을 듣고 나를 구하러 와 달라는 구조 요청같은 것이다. 비명에는 논리도, 형식도 없다. 배워야 지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쯤이 태동기 순수추상의 한계가 아니었을까.
서예는 정제된 목소리다. 목소리지만 말이 아니고, 비명도 아니다. 논리로 구축된 언어가 아니다. 무게중심을 두는 것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에 서예는 이미지의 문법 구조를 따르면서 문자 언어의 문법 구조에 한 다리를 살짝 걸친다. 사실 걸치는 것이 한 다리까지는 아니고, 체중의 아주 작은 부분, 내 체중이 거기에 실린다는 느낌은 없지만, 막상 없으면 신체의 균형을 미묘하게 불안하게 만드는 딱 그만큼을 언어의 문법구조에 의지하고 있다. 긴 시간의 수련을 통해 획 하나에 담아내는 오롯한 기운. 수련을 거치며 글씨는 곧 주인과 동일체가 된다. 그리고 안성맞춤 짝으로서의 한자. 한자는 서예와 짝을 이루는 문자다. 글자마다에 태생적으로 뜻을 담고 있는 뜻글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예를 예술장르로서 파악할 때 그 무게중심은 문장의 뜻보다 글씨가 구축하는 이미지의 완결성에 치우친다. 이런 경지를, 현대 추상이 흉내내기는 어렵다. (로스코의 작업은 비슷한 경지에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며칠 전 아내와 함께 상하이 미술관에서 후안 미로의 전시를 보았다. 가기 전까지 미로가 누구인지 몰랐다. 아내는 내가 미로를 모른다는 사실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내 예술 배경은 참 얕다. 어쨌든,
생각보다 큰 전시였다. 크고 작은 미로의 작품들은 수 백 점이나 되었다. 미로는 자신만의 문자를 보여주었다. 그의 문자는 상형문자의 태동기에 있는 것 같았는데, 문자 언어로서의 소통성을 획득하기 이전에 있는 원시 문자를 보는 듯했다. 그의 세계 안에서 온전히 소통하는 문자들은 아름다웠다. 예술은 당대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라는 아도르노의 말을 지지하지만, 그래도 미로의 작업들은 아름다움을 통해 의식을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예술의 본래 목적이라는 오래된 말을 믿게 만든다.
그러니까 결론은,
손글씨를 좀 써야겠다.
덧붙임.
1.
안재흥 선생님께서는 주로 유럽정치와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해 강의하셨다. 나는 그 중에서 특히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된 강의들을 들었다. 선생님께서 개설하신 강의는 유럽정치를 제외하면 거의 모두 쫓아다니며 들었는데, 강의 제목은 달랐지만 모든 강의의 결론은 같은 지점에서 맺혔다.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그랬다. 선생님의 강의는 강의실 안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이후 내가 생각하는 방식의 바탕이 되었다. 나는 사람을 만나고 작업을 진행하는 모든 과정에서 여전히 선생님께 배운 것과 그 연장선에서 배우고 익힌 것들 위에서 생각한다.
2.
검색해 보니 샤오싱에 있는 정원의 이름은 난정?亭이다.
3.
우관중은 중국의 서정적 풍경, 남방 지역의 마을 등을 그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그렸다. 그에 대해 일화 중 인성적인 것이 하나 있다. 우관중은 문화혁명 시기 지방으로 쫓겨 나 노동에 종사한다. 그림은 그릴 수 없었다. 언제 기회가 있어서 길을 나섰는데, 너무 그림이 그리고 싶었던 화가는 인상적인 풍경 앞에서 아내의 등에 캔버스를 올리고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런데 바람이 불어서 자꾸만 캔버스가 접히니까 답답한 화가는 그만 울어버렸다고 한다. 노 화백이 그림이 그리고 싶어서 우는 장면을 생각해 보면 작가의 위대함을 짐작할 수 있다.
4.
고암 이응노 화백은 군상 등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작품을 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언젠가 그의 그림과 똑같은 그림이 어느 작은 갤러리에 있었다고 한다. 그것을 본 지인이 와서 묻기를, 혹시 같은 작품을 두 개 그린 것이 아니냐? 하니 고암 화백은 "세상에 그릴 것이 얼마나 많은데 같은 걸 두 번이나 그리겠나."라고 했다고 한다. 위작이라는 말이었다. 작품 후반기에 문자 추상 작업을 많이 한 것으로 안다.
5.
로스코.는 색면 추상 작가다.
6.
후안 미로.는 다다.의 시대를 관통한 작가다. 그의 작업은 당시 유행하던 의식의 흐름. 기법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2012.03.27 23:05
작업실에는 암장이 있다. 작업실 가운데 있는 콘크리트 기둥을 네 장의 합판으로 둘러싸서 만들었다. 합판 한 장의 규격은 122cm*244cm이고, 콘크리트 기둥은 네 면이 45cm의 정사각 기둥이다. 아래쪽은 높이 80cm까지 네 장의 합판을 세로로 길게 두르고, 그 위에 온전한 크기의 합판 네 장을 귀퉁이만 잘라서 얹었다. 위에 얹은 네 장의 합판은 아래쪽 폭이 45cm, 위쪽 폭은 122cm이다. 아래쪽에 붙인 네 장의 합판 두께를 미리 계산해서 기둥 두께에 보태야 했는데 처음 하는 일이라 서툴렀다. 그래서 아래 합판과 윗 합판은 아귀가 딱 들어맞지 않고 조금 엇나가 있다. 네 장의 큰 합판은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넓어져서, 이어 붙이면 앞쪽으로 기울어진 형태가 된다. 처음 생각에는 네 장 합판이 서로 붙어서 깔끔한 모습을 계획했던 것인데, 그랬을 경우 기울기가 충분하지 않아서 운동량이 부족할 것 같았다. 그래서 최종 형태는 합판의 모서리가 서로 닿지 않고 가운데 기둥이 들여다 보이는 모양이다. 기둥에는 따로 드릴 구멍을 내거나 볼트를 박지 않았다. 네 장의 합판을 와이어와 나무 지지대로 이어서 기둥에 밀착하도록 했다. 처음에 주문한 합판은 16mm짜리 였는데, 나중에 배송받은 해바라기 너트가 더 두꺼워서 다시 2mm짜리 두께의 합판을 네 장 더 사서 붙였다. 겨우 두께를 맞췄다. 합판이 힘을 받을 수 있도록 세로 지지대를 두 개씩 대었다. 그리고 합판 한 장에 약 40개 정도의 구멍을 뚫었다. 12mm 드릴 날을 따로 주문해야 했다. 인공 등반에 쓰는 홀더들은 일반적으로 10mm 볼트로 고정한다. 이때 충분한 지지력을 얻기 위해 합판 뒤쪽에 12mm 지름의 해바라기 너트를 미리 박고, 앞쪽에서는 해바라기 너트에 볼트를 고정하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홀더가 겉돌지 않고 지탱하는 힘도 강해진다. 네 면 중에 한 면은 홀더 대신 보드 위주로 만들었다. 손가락 근육과 등 근육을 단련하는 목적인데, 난이도가 높아질 수록 등과 겨드랑이 근육을 더 많이 쓰기 때문에 꼭 필요한 훈련이다. 합판은 근처 목재상에 주문했고, 홀더와 너트 볼트 등은 인터넷으로 구입했다. 중간에 몇 번의 설계 수정까지 겹쳐서, 모두 만드는 데는 2주 가까이 걸렸고, 4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었다. 삼중으로 안전 장치를 했으니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일은 없겠지만, 아마추어가 뚝딱거리며 만들었으니 살짝 삐걱거리기는 한다.
암벽 등반을 운동으로 시작한 지 2년쯤 되었다. 중간에 반 년 넘게 쉬기는 했지만 나름 꾸준히 하고 있다. 상하이에는 산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어서 진짜 바위를 탈 기회가 적다. 그래서 운동은 주로 시내 몇 곳에 있는 인공암장에서 한다. 볼더링을 할 수 있는 구역이 있고, 높이 20미터쯤 되는 벽들이 몇 개 있다. 일요일에는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과 정기 모임이 있고, 평일에는 두 번 정도 따로 나가서 운동했다. 이제 작업실에 암장이 있으니까 실내 암장에는 일요일에만 가고 평일에는 틈틈이 작업실에서 매달린다. 작업하다가 지루하면, 밥 먹고 졸리면, 괜히 심심하면 암벽에 매달린다. 한 번 기둥을 돌아오는 데 2분 정도가 걸리니까, 다섯 바퀴를 돌면 10분이 조금 못 걸린다. 얼마 안 해도, 매일 꾸준히 하는 것이 제법 많은 도움이 된다.
아내는 내가 너무 암벽만 좋아하니까, 다른 운동도 해 볼 것을 권한다. 동의하면서도, 당분간은 암장을 벗어날 생각이 없다. 예전에 했던 다른 운동들에 비하면 암벽은 내게 더 맞는 운동 같다. 대충 하기는 했어도 몇 년 동안 검도를 했으니 팔 힘의 기본은 다진 셈이고, 몸이 가벼우니 더 적은 힘으로 멀리 갈 수 있다. 상대와 승부를 겨루는 것도 아니고, 어제보다 조금 더 높이 가고 어제보다 조금 더 어려운 동작을 성공하면 된다.
매주 일요일 아침에는 일찍 깬다. 시계를 보고, '아직 시간이 안 됐네.'아쉬워하면서 다시 조금 더 잔다. 소풍가는 어린 아이 같다. 암장이 좋은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 아마 단순하기 때문인 듯하다. 몸이 바쁘지 않아도 마음이 바쁜 날들이다. 닥쳐올 일들을 생각하면 막막한 날들이다. 그런 중에 암벽에 있는 동안에는 다른 모든 것을 접어둘 수 있다. 다음 번 잡아야 할 홀더와 그 홀더를 잡기 위해 몸의 균형을 잡는 문제만 생각하면 된다. 어떻게 하면 떨어지지 않고 저기까지 갈 수 있을까? 문제는 단 한 가지면 된다. 실패하면 어떤가. 떨어지고 다시 붙으면 그만이다. 사방이 길이기도 하고 사방에 길이 없는 것도 같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막막한 평원에서 일요일마다 수직의 벽으로 탈출하는 셈이다. 벽을 오를 때, 안 좋은 버릇이기는 한데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간다. 암벽은 오르는 사람과 오르는 사람의 안전을 확보하는 사람이 한 가닥의 줄로 이어져 있으니까 둘 사이의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그러니까 이어폰으로 귀를 막는 것은 사실 위험한 행동이다. 자연암벽이나 처음 가는 코스에서는 조심해야겠지만, 인공암장에서 어려운 코스를 갈 때는 꼭 음악을 듣는다. 사방의 소리로부터 떨어져서 벽하고 나만 있다. 가다가, 가장 어려운 구간에 진입하기 전에 숨을 돌리면서 음악을 바꾼다. 가장 어려운 구간에서 듣는 음악은 언제나 한 곡이다. 응원가 같은 곡을 들으면서 점점 빨라지고 높아지는 음에 박자 맞추면서 공중에 혼자 매달려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세상에서 몇 발 떨어져 있을 수 있는 때가 흔하지는 않은 거니까.
날씨가 제법 풀려서 곧 봄이 올 것을 알겠다. 맴버들과 두어 달 전부터 벼르고 있다. 다들 고만고만한 수준이니까 어려운 벽은 못 가겠지만, 아마 4월 중에는 항주에 있는 작은 바위 벽으로 갈 거다. 온몸이 뻐근하도록 바위를 타고 와야겠다.
2012.03.07 23:55
자정이 가깝다. 조금만 손보고 잘랬는데, 밤이다. 밖에는 빗물을 가르며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난다.
사이트를 고쳤다. 깔끔해졌다. 복잡한 것들을 다 치우고, 제로보드에서 지원하는 기본 기능만 활용해서 클릭 몇 번으로 만들었다. 클릭 몇 번이라고는 해도 이것저것 물어보고 고르느라 또 며칠은 걸렸다. 사이트를 고친 이유는, 새 작업실 사이트를 따로 오픈하면서 사진 관련 자료를 모두 옮겼기 때문이다. 새 작업실 사이트는 www.spacewhu.net이다.
뭔들, 어느 시간인들 그렇지 않겠냐만 또 많은 것들이 변했다. 차근차근 적으려고 한다.
몇 년간 생각만 하던 잡지를 또 부여잡는다. 이번에는 스튜디오에서 만드는 이미지 잡지다.
좋은, 마음에 드는 새 집이다. 잘 써야겠다.
2012.01.08 08:41
책상을 정리하는 심정으로, 한 번쯤 깔끔하게 정돈하고 싶은 날들이다. 할 수 있는 말도 많지 않은데, 너무 오래 말하지 않고 지냈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지난 다음에, 천천히 복기해보고 싶어지는, 그러니까 내가 눈치채지 못 하고 놓치고 지나는 작은 조각들이 군데군데 박히는 날들이다.
새 작업실을 열었다. 어수선하다. 한 동안 분주하게 내부 인테리어를 했다. 제한된 견적 안에서 하려니 직접 발로 뛰고 직접 손으로 만드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할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직접 하고, 직접 찾아서 주문하고 받아서 만들었다. 손과 시간이 많이 갔고, 결과물은 전문가의 작업에 한참 못 미쳤다.
여전히, 세상에 빚지는 마음으로 산다. 한 평생 빚을 지고 산다. 미안한 마음만 자란다. 이런 텅 빈 문장은 안 좋다. 말 하려는 내용은 없고 다만 들어주기를 바라는 의지만 내세우는 비겁한 문장이다. 어서, 속이 단단한 문장을 쓸 수 있도록, 좋은 생활을 구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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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5 05:28
어쩌다 보니 새벽이다. 좀처럼 없는 일이다. 새로 준비하는 작업실 때문에 부동산 사이트도 좀 보고, 이것 저것 뒤적거리다보니 새벽이다. 조용한 새벽에는 부끄러운 기억들만 떠오른다. 새벽이 그런 시간인 모양이다.
여행기도 좀 정리해서 올리고, 사는 이야기, 살고 싶은 이야기도 좀 더 적어서 풍성하게 해야겠다. 거미줄 치고 있는 모양새가 보기 딱하다.
2011.08.07 21:03
태풍이 다녀갔다. 태풍이 온다고 해서, 예정되어 있던 촬영을 연기했는데 막상 촬영하기로 한 날은 태풍이 하늘의 흐린 구름까지 싹 걷어가서 맑았다. 그리고 오늘은 새벽부터 바람이 거세게 불고 비도 오다가 말다가 했다. 일요일마다 가는 암장에 가지 않고 아내와 함께 있었다. 저녁 즈음에는 태풍도 지나가서 아내와 집 앞 공원에서 산책했다. 공원 세 바퀴를 천천히 걸어서 걷는 동안 밝았던 하늘은 어두워지고 서쪽에는 모처럼 맑고 붉은 노을이 졌다. 어제 함께 본 인도 영화 이야기를 하며, 어떻게 사는 게 오늘을 잘 사는 것일까 이야기했다. 아내는 새로운 계획, 새로운 시간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분주해서 아내대로 기대에 찬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공원은 나무들로 가득차서 바람이 닿지 못 했다. 돌아오는 길에 작은 강에 걸친 다리 위에 서니 바람이 좋았다. 한참을 서 있었다. 센 바람이 부는 날이 좋다. 고개를 들면 뒤 아래를 감아 넘어가는 바람을 기억한다. 몇 년 전까지 나는 거기가 날개가 있었던 자리라고 말하고 다녔었다. 그 믿음은 여전하지만, 멈춰서서 그런 바람을 맞는 때가 적어졌다.
준비하는 잡지 1차 시안이 이번주에는 나온다. 오래 걸렸다. 1차 시안이니까, 손댈 것도 많을 것이다. 최종 샘플이 나와서 여러 곳에 보이고 자문을 구하고 또 여행사들에게 거래를 제안하려면 아직 시간이 더 걸려야 한다. 많이 조급했다. 조급해서 마음도 다쳤다. 아직 오지 않은 날들 속에 있는 걱정거리들만 쏙 뽑아내 오늘에 불러서 나를 괴롭혔다. 그러지 말아야겠다 생각을 하면서도 쉽지 않았다. 등떠밀리지 말고,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즐기는 마음으로 해야겠다.
수첩의 크기와 생각의 크기가 상관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문득 했다. 큰 그림을 그리는 데는 책상 가득 펼친 흰 종이가 좋다는 생각을 했다.
2011.06.16 13:10
동생을 통해서, 요즘 어머니가 다리가 불편하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마침 동생이 마땅찮은 꿈을 꾸어서 전화를 드리니 그렇더라고 했다. 알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꿈이 그렇다니 말은 하는데 누나와 형에게는 따로 알리지 말라고 하셨다고 한다. 비밀이란 게 영원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결국에는 이렇게 전해 듣는다. 누나에게 따로 말하지는 않았고, 아침에 전화드려서 모르는 척 안부를 물었다. 아내는 마늘 장아찌 만드는 법을 물었다. 어머니는 다 괜찮다고 받으셨는데, 아는 입장에서 들으니 마음이 무거웠다.
오후에 사무실에 있는데 아내가 문자를 보냈다. 장모님께서 손가락 하나가 불편하셔서 오늘 수술을 하셨다고 한다. 예전부터 조금 불편하셨다는데 수술은 갑작스럽게 결정된 모양이다. 위급한 사태가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기는 하지만 수술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들어도 별로 가볍지 않다. 이틀 동안 입원도 하셔야 한다는데, 손 불편하시니 통화가 곤란할 것 같아서 우선 문자만 보내서 안부를 여쭌다.
살아가는 일의 통과의례를 생각했다. 학교를 다니고 사춘기를 지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직장을 잡는 것들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람으로 겪는 통과의례다. 나도 거기쯤까지 와 있는 셈이다. 이제 더 겪어야 할 것을 생각해 보면, 아이를 낳고 아이 때문에 걱정하고 기뻐하는 것이 있고, 그리고 조금씩 불편해지는 몸의 부모님을 지켜보고 가슴 아파하다가, 결국 한 분씩 떠나보내는 것도 내가 겪어야 할 통과의례일 것이다. 생각만 해도, 분명히 올 시간이지만 차마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일 것 같다. 다 떠나보내고 내 이마에도 굵은 주름들이 나이 든 나무의 껍질처럼 단단해지면, 그때쯤에는 할 일을 모두 마친 심정으로 이제 사람의 일이 다 지나갔다고 돌아볼 수 있게 될까. 나는 그때를, 그리고 그때까지 이르는 시간들을 온전히 감당해낼 수 있을까.
부모님에게, 살아갈 수록 고마운 마음보다 미안한 마음이 커진다. 어릴 때는 고마운 마음도 몰랐다. 내 아버지보다 더 다정한 아버지, 내 어머니보다 더 상냥한 어머니를 바랬던 적도 있다. 그랬다. 부모님께 내가 은혜를 받는 것은 마땅히 고마운 일이지만, 그걸 또 두 분께 고스란히 돌려드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다. 내가 받은 것은 내 다음 세대에게 전해야 한다는, 내리사랑이 마땅한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두 분께 받는 사랑이 감당 못 할만큼 크다는 것을 알겠고, 내가 살아있는 동안 무엇을 하든 그 사랑을 다 돌려드리지 못 하겠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그 은혜를 돌려드려야 하는데 그렇게 못 하는 능력의 한계를 보면서 고마움은 미안함으로 변했다. 받은 사랑을 온전히 돌려드리는 것은 고사하더라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내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지만 어떤 시도도 부족하고 아쉬워만 보였다. 그리고 줄어드는 두 분의 시간과 여전히 제자리에 있는 나를 보면서 마음만 조급해진다. 무슨 짓을 한단들, 그 사랑을 갚을까.
숙제처럼 한 주먹에 꼭 쥐고 있는 생각이 있다. 나는, 두 분의 전기를 쓰고 싶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어린 시절, 젊은 시절, 두 분이 만나서 함께 내달리던 시절의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전해듣기는 했지만 온전한 두 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었다. 어릴 때 아버지의 꿈은 무엇이었는지, 어머니와 어떻게 결혼을 결심했는지, 한 때의 가장 기쁜 일은, 또 가장 분한 일은 무엇이었는지, 처음 자동차를 사고 새벽마다 연습 운전을 가던 그 하얀색 중고차는 나중에 어떡했는지, 대통령 선거가 끝난 다음 날 고기파티를 열던 그 마음은 어땠는지, 자주 가서 잔뜩 낚아오시던 그 호수는 어디에 있는지, 한 번도 그 속을 본 적 없다는 산 정상의 동굴은 또 어디인지, 누나를 시집보내고, 처음 손자를 안던 날의 심정은 또 어땠는지, 나는 모른다.
엄마 없는 아이로 할머니와 아빠의 손에 자라야 했던 어린 시절과, 시골에서 라디오로 세상 공부를 했다는 한 때, 아버지를 만났다는 봉사활동의 그 때, 시댁에서 친정으로 갈 때면 넘었다는 그 산길, 외할아버지 돌아가시고 그토록 서럽게 울던 어머니의 그 때를 나는 묻고 싶다.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 몸은 밖에 있으니 갈 수도 없다. 고기라고는 낚이지도 않는 바닷가 바위에 앉아 아버지께 묻고,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텃밭 바른 곳에 앉아서 물을 수 있으면 좋겠다. 너무 늦기 전에, 한 아이가 적는 그 부모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두 분을 조금 더 이해하는 것이, 내가 돌려드릴 수 있는 중에 하나일 것이다.
아버지는, 부모가 자식을 챙기는 마음은, 자식이 자식을 낳고 다시 그 자식이 자식을 낳아서 마침내 자식이 손자를 본 다음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되어보니 아마도 당신의 아버지 마음을 아셨나 보다. 누나네 아이들이 태어난 후로 아버지가 얻은 작은 깨달음이 그랬나 보다.
언제부터 아버지 어머니 생각은 꼭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자식 셋을 든든하게 키워내시고 점점 힘이 빠져나가는 몸으로 그렇게 서 계신 것을 보면 저 힘을 모두 뽑아와서 우리 셋이, 내가 이렇게 서서 사람구실을 하는 것 같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되나.
2011.06.06 06:28
아내는 아직 잔다. 아마 어제 밤 늦게까지 작업을 했다. 나는 일찍 잠들어서 아내가 몇 시까지 작업을 했는지 모른다. 작업을 마친 아내가 침대로 와서 내게 몇 마디 말을 했었던 것도 같다.
비온다. 음력으로 단오날이고, 양력으로 한국의 현충일이다. 이래저래 두 나라의 노는 날이다. 그리고 장인어른의 생신이다. 아침 일찍 전화드릴 생각으로 일어나서 전화했는데 안 받으신다. 멀리 떠나 있다는 핑계로 내 집안이나 아내 집안 일에 뭐 하나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서 마음은 불편하다. 찾아 뵙고 축하드리고 옆에서 이야기도 듣고 싶은데 상황이 그럴 수 없으니 답답하다.
집 앞 강에서는 단오를 맞아 용선 축제가 열린다. 색색의 용선이 등장하고, 사람들은 배 위에 줄 맞춰 앉아서 노를 젓는다. 제법 며칠 전부터 강변에 관람석도 만들고 광고판도 설치하면서 축제 분위기를 만드는 듯했다. 새벽에 내다보니 밖에는 비가 내리는데, 그래도 부지런한 사람들은 하얀색 비옷을 입고 벌써부터 강변에 나와 있다.
두 권의 책이 나왔다. 신장 지역의 병단을 취재했던 내용은 몇 명의 외국인이 체험한 병단.이라는 책으로 묶여 나왔다. 중문과 영문이 함께 있어서, 나는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 했다. 쓴 지도 오래 되어서, 내가 누구에게 원고 번역을 부탁했었던가도 잊었다. 나는 한글로 쓰고, 중문으로 번역을 부탁한 다음 보냈었다. 그리고 출판사 쪽에서 다시 영문 번역을 했을 테다. 내가 쓰고 내가 못 보는 글이 되었다. 책은, 우선 신장에서 내가 머물렀던 그 농부 아저씨 댁에 열 권을 보냈다. 좋아하고 고마워하셨다. 나머지 책들은 책장 구석에 숨겼다. 별도 떳떳한 책도 아닌 것 같아서다. 내가 느낀 것들을, 내가 본 것들을 쓰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어용기자의 글인 것 같다. 실제로, 민감한 이야기 두어 줄은 알아서 빼고 쓰지 않았던가.
장시성을 여행하고 쓴 이야기도 책으로 나왔다. 책은, 총체적 부실이다. 시간에 떠밀려서 급하게 쓴 문장은 어쩌다가 헐겁고 어쩌다가 비좁고 전해야 할 내용도 빼먹고 감정만 들이밀어서 못났다. 정식 서점 판매형식이 아닌 현지 관광국의 주문 형식이라서 그런지 인쇄도 마음에 안 든다. 이 책도, 좀처럼 밖에 보이는 일은 없겠다.
새벽에 깨어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음악도 틀고 책도 한 권 꺼내 앉는다.
2011.04.20 20:11
차이코프스키 5번 교향곡 4악장.은 응원가같은 곡이다. 집에 오는 길에 어쩌다가 들렸다. 꼭 그런 날에 이 곡이 들리는 것인지, 이 곡을 들을 때마다 그런 마음이 생겨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곡을 들을 때는 나는 언제나 긴장한 채로 출발선에 선 초보 달리기 선수같은 기분이 든다. 그 불안함과, 그 실패에 대한 약간의 예감과, 뒤쳐진다는 빈곤함 같은 것들이 한데 엉켜 있는데, 그 기운들 사이로 이 곡은 모두 다 잘 될 거라고 말하고 너는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응원처럼 솟아 오른다. 처음 이 곡을 인상적으로 들었던 몇 년 전 아침도 그랬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석 달치 집값을 송금하고, 마트에 들러서 오늘 저녁 마실 콜라와 혹시 필요할지 모르는 콜라 하나 더를 샀다. 빵집에 들러서 내일 아침에 먹을 맛은 없어보이지만 푸짐해 보이는 빵도 한 개 사서 왔다. 오늘은 뭔가 특별한 날이니까, 가방만 대충 벗고 짐만 대충 던져놓고 앉았다. 차이코프스키 5번에 4악장.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클래식 중에 하나.
크리스티앙 볼탄스키.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라는데 나는 오늘 처음 알았다. 승희가 사 둔 예술잡지를 하루이틀 보는데, 퇴근길에 버스는 많이 막혀서 기사 여러 개를 읽었다. 작가에 대한 인터뷰가 있었는데, 삶에 대한 그 사람의 성찰도 좋았지만 인상적인 것은 그 사람의 짧은 호흡으로 이루어진 말들이었다. 인터뷰를 옮기며 인터뷰어가 얼마나 말을 정리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선생님의 목소리를 그대로 옮기겠습니다'라는 인터뷰어의 첫문장을 믿는다면, 아마도 짧은 호흡의 문장은 작가의 것이 맞을 것이다. 노작가는, 앞뒤 양념처럼 덧붙는 수식들을 다 떼어내고 꼭 필요한 단어들만 조합해서 담담하게 자신의 예술과 삶에 대해 말해준다. 작가의 작품을 본 적 없으니 작품에 대한 인상은 모르겠고, 탄생과 소멸의 우연성과 그 덧없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고양이와 달리 신의 우연에 저항함으로써 비로소 의미를 획득한다는 그의 말은 절박하고 아름답게 읽혔다. 몇몇 철학자는 찾기를 포기했고 또 몇몇은 얼버무리고 누구는 찾았다고 믿으면서 죽었던 삶의 이유를 발견하기 위해 이 작가는 얼마나 고민했을까. 발견했다기 보다는 선언한 듯한 그 결론에 이르고서 그는 얼마나 안도했을까. 그렇게 얻어낸 생각을 긴 시간 동안 다듬어서 이제 그의 말은 짧은가 보다. 인터뷰어는 작가의 외모에 대해 설명하면서 웃으면 반달눈이 된다고 적고 있다. 그의 작품을 보는 것도 좋겠지만, 그냥 이런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렇게 버티고 살고 있다는 것만 알아도 위안이 된다.
드보르작 9번 교향곡 4악장. 차이코프스키가 출발선에서 등떠밀어주는 응원가라면, 드보르작 9번 4악장은 결승선에 서서 이제 막 들어오는 완주자를 맞이하는 노래 같다. 4악장의 도입부는 팡파레로 시작해서, 결승선을 통과한 이를 가만 달래며 숨을 고르게 하고 이제부터 펼칠 영광의 시대를 보여준다. 9번 교향곡은 제목부터가 '신세계로부터'이다. 자, 숨을 다 골랐으면 이제 영광의 시대로 가는 문을 열 차례다. 악기들이 내달리고 실패에 대한 일말의 의심도 없는 당당한 음들이 치고 오른다. 주름 없는 표정이다.
할 수 있다면 두 곡을 결혼식에 쓸 수 있다면 좋겠다. 그냥, 조금 무서우니까. 나는 승희를 사랑하고 또 그 사람을 믿고 의지하고 나 역시 그 사람의 의지가 될 테지만, 그래도 그 막막한 시작이라는 건 무서우니까 이런 응원가들이라도 들으면 좀 힘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굴려보아도 어울리는 장면은 없다. 축제에 쓰기에는, 너무 비장하고 깊다. 두 곡 모두 11분의 연주시간이다. 신부가 그 짧은 길을 11분 동안 걸어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손잡고 11분 동안 비장한 표정으로 퇴장할 수도 없지 않나.
내일 아침 비행기로 한국으로 간다. 드디어 간다. 그리고 일요일이면 결혼을 한다. 할 수 있다면, 바다 근처에서 승희와 함께 이 노래들을 크게 듣고 싶다.
2011.04.17 21:50
할 일은 언제나 많다. 그래도 사진만 찍고 살던 때는 제법 한가했는데, 간간이 들어오는 일거리로 어떻게 굶지는 않고 살아졌는데, 바빠진다. 마음에는 언제나 새로운 계획들이 가득하고, 아침 샤워기 아래에 서면 이미 가득한 계획들 위에 새롭고 신나는 계획들이 막 더 생겨난다. 결혼도 하고 온전히 내가 살펴야 할 가족도 생기는 거니까 비장한 마음도 더 있다. 그래도,
느리고 게으르게 살아야겠다. 나는 새벽 시간을 좋아하고 잘 쓰니까, 일어나는 시간을 조금 더 당겨서 오전과 이른 오후에 가능한 많은 일을 해야겠다. 오후 시간에 집중하기 위해서, 낮잠은 꼭 자야겠다. 그리고 특별하게 약속이 있거나 급한 마감이 있는 날이 아니라면 세 시쯤에는 퇴근을 해야겠다. 오후 시간에는 책을 좀 보거나, 승희와 자전거를 타거나 해야겠다. 일을 하는 것도 신나지만, 일 이외의 시간을 애써 챙겨야겠다. 그래야 사람이 사는 것 같겠다. 딱 한 번 밖에 없는 세상이니까, 귀하게 살다 가고싶다.
2011.04.17 17:47
승희는 지난 금요일에 한국에 가서 바쁘다. 주문해 둔 반지도 찾고, 나 대신 동생도 만나고, 결혼식에 참석할 수 없는, 하지만 인사 드려야 마땅한 분들도 뵙고 다닌다. 그리고 승희가 떠난 이틀 사이에 집은, 헛간 내지는 창고 내지는 잡스런 것들의 소굴. 정도가 되었다. 이러고 며칠 살다가, 한국 들어가기 전날에 청소 좀 해두고 가야겠다. 결혼 뒤에도, 아내의 외출이란 것은 이틀 정도면 족할 것 같다. 모처럼의 해방감, 멋대로 뒹굴어도 된다는 기분 같은 것은 하루면 족하다. 그렇다고 아내 출장이 하루 밖에 안 되면, 꼭 일요일 아침처럼, 맘껏 놀지 못 하고 다가올 월요일에 긴장해야 하니까. 이틀 넘어가면 어째 뭔가 빠진 것 같고, 뭘 해야 할지 딱히 손에 잡히는 것도 없고, 산책가자고 부추기는 사람도 없는 게 삶이 무료하고 심심하다. 승희 출장은 단기출장만 가라고 할까?
결혼이라고 앞두고 보니 이리저리 연락해서 인사드릴 곳들이 많다. 도와준 분들 얼굴들이 생각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만 쌓아둔 채 연락드리지 못 한 분들 얼굴이 생각난다. 새삼, 참 많고 큰 빚을 지고 살아온다고 안다. 언제 다 갚을까. 갚을 수나 있을까. 전화라도 드려야겠다.
2011.04.15 07:50
승희는 아침 비행기로 한국 갔다. 새벽에 깨어서 대충 먹고 어제 미리 챙겨둔 짐들을 들고 나섰다. 나는 푸동 공항에 갈 때 주로 지하철을 타는데, 승희는 짐 때문에 갈아타기가 힘들다고 주로 리무진 버스를 탄다. 작은 가방 안에 드레스를 접어 넣고, 한복 상자를 한 손에 들고 갔다. 아침에 화장은 눈썹 위에 파우더가 잔뜩 앉아서 눈썹이 흐려졌다. 작은 빨간색 트렁크를 짐칸에 싣고, 한복 가방은 버스 옆자리에 두었다. 버스는 여섯 시 반에 상하이역 앞을 출발해서 한 시간 조금 넘겨 공항에 닿을 것이다. 시간은 대충 맞아들어갈 거다. 리무진에 승희를 태워보내고 그 길로 출근했다. 평소보다 조금 빠른 출근길이다.
어제 밤에는, 결혼식에 쓸 음악들을 고른다고 이것 저것 막 들었다. 오랜만에 이것 저것 바꿔가며 듣다가 정작 목적은 잊어먹고 맘에 드는 것 하나씩 꺼내서 여기저기 내키는 대로 산책하듯이 들었다. 음악은 걸음마다 풍경이 변하는 산책 같아서, 한 곡씩 듣고, 어쩌다가는 한 곡도 채 안 듣고 씨디 바꿔 넣으면 그 때마다 확연하게 다른 질감으로 좋았다. 드보르작 첼로 협주를 오랜만에 들었는데, 왜 이 걸 잊고 있었을까 싶었다. 음악은 결혼식에 어울리지는 않았다. 신랑 입장, 신부 입장, 사진 슬라이드의 배경 음악 어느 장면에 넣어보아도 좀처럼 어울리는 이미지가 나오지 않았다. 아쉽지만 드보르작은 식장에 입장하지 못 하겠구나. 아무래도, 클래식에 대해서라면 인상이 강한 음악이 쉽게 와 닿는다. 아직 많이 들어보지 않아서 그렇다. 어떤 장르에 대해, 어느 정도 내공이 쌓여야 비로소 감추어진 틈과 미세한 결을 읽어낼 수 있고 그 틈과 결의 변주에 감탄할 수 있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큰 덩어리를 보는 데 그친다. 내 클래식 듣기는 겨우 덩어리의 형태를 보는 수준이다. 사진이나 문장에 대한 이해와 비교해 보면 그 사실이 명확해진다. 어제 내 잡지를 디자인할 승일과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디자인에 대해 나는 잘 모르니까, 겨우 큰 덩어리만 보인다고 했다. 그러니까 당신이 잡지의 디자인을 상상력 밖으로 끌고 가 달라고 부탁했다.
결혼식을 위해 신문을 만들었다. 어떻게든 조금 더 신나게 하려고, 웨딩사진으로 신문같은 잡지같은 결과물을 만들었다. 나중에 만들게 될 아시아트래블 매거진의 판형을 그대로 써서 그 안에 사진과 필요한 정보를 담았다. 비싼 돈을 들여 웨딩 앨범을 만들고 일 년에 한 번 볼까말까 하는 것 보다 더 좋겠다 싶었다. 12면의 신문에는 내 청혼편지와 인터넷에서 얻은 주례사, 웨딩 화보 등이 담긴다. 상하이에 오면 집으로 초대한다는 쿠폰도 작게 넣었다. 500부를 인쇄해서 400부는 한국에 가져가서 결혼식 하객들에게 드리고, 100부는 상하이에서 있을 결혼 파티에 나누어주려고 한다. 그런데 인쇄비를 따지니 앨범보다 비싸겠다. 승희가 알면 혼나겠다.
상하이는 어제부터 덥다. 봄이라고 좋아한 것이 삼 일 전인데, 어제부터 여름이다. 새벽에 지하철 에어컨 바람은 날카로웠다. 어떤 기운은 스며들고 어떤 기운은 찔러드는데, 무형이든 유형이든, 실재적이든 감정적이든 찔러드는 기운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름이라도 가볍게 입고 왔는데 새벽 지하철은 힘들었다. 새벽에 길은 성글고, 안개도 제법 있었다. 앞으로 출근 시간을 조금 더 앞당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계획하는 잡지의 형태가 다듬어지고 있다. 지금 작업하고 있는 쓰촨 건만 마치면, 그리고 결혼하고 신혼여행하고 다 마치면 본격적으로 잡지 작업에 들어갈 수 있다. 결혼하면 4월이 끝나고, 5월 한 달 동안 서로 일하고 상하이에서 결혼 파티도 해야한다. 6월 중순에 승희 일 때문에 함께 쓰촨에 다녀와야 하니까 신혼 여행은 그 다음이다. 어쩌면 쓰촨에서 곧장 여행을 시작할 수도 있다. 많은 후보지가 이름을 올렸다가 사라졌고, 최종 목적지는 아마 중국 남부지역이 될 듯하다. 보이차.로 알려진 푸얼차의 산지들을 찾아다니는 것이 우리 신혼여행의 주제다. 반쯤은 여행이고 반쯤은 일이 될 여행은 중국 남부 너댓 개 성을 지나야 하고, 아마 한 달쯤 걸릴 것이다. 다녀오면 그 이야기로 한 권을 책을 묶는 것이 우리의 의도다. 이렇게 저렇게 올 해 안에 우리가 계획하는 책이 두세 권이다. 하지만 책은, 나와 봐야 아는 것이다. 그럭저럭 상반기를 보내면 하반기에는 좀 더 일에 집중할 수 있을까.
승희가 한국에 가니까 슬슬 결혼식이 닥쳐온 것을 알겠다.
2011.04.12 09:25
아침 출근길에 완연한 봄바람을 맞았다
아, 봄이구나
마음이 갈피를 못 잡고 들판을 떠다녀야 하는 봄이구나
들판에 나서지 못 해도, 도시의 대로변인들 어때
바람에 실려볼까
봄이다 큰일이다
2011.04.09 21:14
평생 도예가로 살아온 사람이 나무를 만지는 목공이 되었다는 뉴스 기사를 읽었다. 그 사람이 다듬어 낸 나무들은 흙의 질감을 닮았을 듯도 하다. 아마, 그럴 것이다. 며칠 전 승희랑 이야기하면서 나중에 나도 목공이 되겠다고 했다. 나이 들면 어디 바다 근처에 집을 얻어서, 폐 목선에서 나오는 나무들을 얻어서 책상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앞으로 틈틈이 보이는 대로 자료를 모으고, 참고가 될 만한 것들을 눈여겨 보려고 한다. 마침 집 뒤에 폐목재가 모이는 곳이 있으니까 그곳도 둘러보면서 재미삼아 하나 둘 건드려 볼까도 싶다. 큰 것이야 안 되더라도 작은 손공구 하나씩 모아볼까도 싶다. 나중에 진짜 작업을 하게 되면 승희는 디자인은 자기가 맡겠다고 우긴다. 맡긴다고 안 했는데.
하나의 직업을 평생 가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다들 한 번쯤은 시달려보지 않았을까? 그 강박에서 풀려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삶은 유일하니까, 내가 나로 사는 것은 한 번에 그치니까, 그 한 번을 오로지 나를 기준으로 삼아 풍성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가능한 상황 안에서, 가능한 모든 것들을 겪어보려고 한다. 내 첫 직업은 사진사였다. 졸업 후에 곧장 중국으로 와서 최근까지 하고 있으니까 제법 10년 가까워 온다. 성취감으로는 아슬아슬했고, 경제적으로는 무참했다. 새로 시작하는 직업은 잡지를 만드는 일이다. 중국 여행지를 소개하는 한국어 잡지를 만들어서 한국과 중국에 유통시키는 일이다. 초반 얼마 동안에는 글도 사진도 내가 해야 한다. 참고하기 위해 다양한 잡지들을 두루 보고 있는데, 참 좋은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참 좋은 문장을 쓰는 사람들도 많다. 그 안에서 나는 내 공간, 내 색깔을 드러내야 한다. 글을 쓰고 잡지를 만드는 일은 한 곳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이란 것은 꼬리를 물어서, 아마 여러 갈래로 가지를 치게 될 것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설계도만 자꾸 스스로 번식해서, 여러 사람과 여러 조건들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닿는다. 승희는 이런 나를 다독여서 차근차근 하라고 한다. 가계부도 몇 번 바닥을 쳐 보니 단련이 된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잘 될 테니 차근차근 하라고 한다. 든든하고 고마운 말이다.
승희의 일과 관련되어서 쓰촨의 젊은 작가 하오랑.이 오늘 집에 다녀갔다. 통통한 얼굴에는 중절모를 쓰고, 손가락 네 개에 반지를 끼고 왔다. 함께 점심을 먹고 간단한 인터뷰도 했다. 나는 떡볶이를 만들었는데 가쓰오부시 다시다가 잔뜩 들어간 맛은 달콤해서 나쁘지 않았다. 하오랑의 작품은 만화체의 회화인데, 트렌디한 인상이 맞아들어가서 최근 상업적으로 다양하게 이용된다고 한다. 작가 경력이 오래지 않아서 그의 작품세계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고, 비교적 쉽게 읽혔다. 말도 잘 통해서 우리는 밥, 빵, 과일, 차로 이어지는 내내 제법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처럼 집중해서 그림을 보고 작가와 겨루듯 이야기했다. 내가 읽어낸 코드가 크게 틀리지 않아서 속으로 으쓱했다. 승희는 앞으로 다양한 작가들을 인터뷰해서 평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작정이다.
본래 출근할 작정이었다가 주말이고 날씨도 좋아서 오후에 두어 시간 산책했다. 자전거를 타며 끌며 근처 작은 샵들을 들락거리면서 승희와 걸어서 자전거샵까지 갔다. 계획하는 작업 중에 상하이 곳곳을 자전거로 다녀야 할 필요가 있어서, 승희가 탈 만한 자전거를 알아보고 있다. 제법 검색도 하고, 우리 통장 잔고도 생각하고, 또 무엇보다 승희에게 편한 종류의 자전거를 찾았다. 오늘 샵에 간 길에 대충 무난한 녀석으로 찜했다. 5월 초에는 사서, 가능하면 일주일에 두어 번은 시내를 다녀야 한다. 산책이면서, 일이다. 돌아오는 길에 파인애플 파는 과일차를 발견하고 승희는 지나치지 못 했다. 큰 걸 고른다고 골랐는데, 파인애플은 너무 익어서 물렀다.
좋은 문장, 좋은 사진을 쓰고 찍어야 하는데, 뜻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기다린다고 오는 것들이 아니다. 공부하고 사색해야 한다. 당장 써먹어야 하는 때는 닥쳐오고 마음은 바쁘고 가진 것은 제자리에 있다. 그래도, 승희는 지난 얼마 동안 내가 말한 것들이 그대로 이루어져 왔다고, 그러니까 좋은 생각만 하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될 것 같다.
2011.04.07 12:09
저, 결혼합니다.
한국 결혼식은 4.24(일)일 경남 거제도에서 하고,
중국에서는 5. 7(토)일 집에서 간단하게 파티를 할 예정입니다.!
혹시 거제도 관광 오실 분은 미리 말씀해 주시면,
전날 미리 작은 방을 준비해 두겠습니다.
2011.04.07 11:36
몇 달 동안 사진들을 차곡차곡 모았다. 왜 찍기만 하고 주지도 않느냐고 원망도 많이 들었다. 그래도 모았다.
제법 수 백 장 중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진은 열 여섯 장이었다. 컬러가 예쁜 사진도 있었는데, 통일성을 위해 모두 흑백으로 하기로 했다. 처음 만난 무렵의 사진에서부터 얼마 전에 찍은 사진까지 다양했다. 라이트룸에서 기본 작업을 마친 후 포토샵에서 본격적인 작업을 했다. 색마다를 살펴서 흑백으로 바꾼 후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으로 나누어 톤을 잡고, 필요한 수정 작업을 한 후 전체적인 밸런스를 잡았다. 작업은 출장지에서 하기도 하고, 승희가 깨지 않은 새벽이나 외출 중일 때 해야 했다. 문제는 프린트에서 닥쳤는데,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며칠 승희는 집 밖으로 나갈 일이 없거나 나와 함께 나갈 일정 밖에 없었다. 리터칭 작업이야 어떻게 된다지만 프린트 작업을 새벽에 할 수는 없었다. 세 시간 이상 걸릴 작업에 눈치 못 챌 사람이 있을까. 결국, 내 쫓았다. 급한 마음에 집 좀 나가라고 보내버렸는데, 승희는 서운하고 화가 난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다. 뒤늦게 미안하지만 우선 프린트는 하고 본다. 몇 년 전부터 잘 쓰는 용지에 가로 13 세로 19인치 사이즈로 프린트했다. 액자로 만들면 부피나 무게가 부담스러우니까, 앞뒤로 두꺼운 매트지를 대기로 했다. 가로세로 사이즈는 77cm로 맞추어서, 가로 사진이나 세로 사진의 프레임 크기를 갖게 했다.
전시장 섭외는 사진 작업과 함께 진행했다. 승희의 학교 후배인 롱롱은 모간산루 갤러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롱롱을 통해 마땅한 전시장들 몇 개를 우선 탐색하고 직접 둘러본 후 결정했다. 요즘 주머니 사정 별로 안 좋으니까, 롱롱이 일하고 있는 갤러리를 빌리는 것으로 했다. 두 시간 예정으로 빌리기로 했지만 롱롱의 도움으로 몇 시간을 더 썼다.
작전대로 된다면, 승희는 조금 늦은 저녁, 전시 오프닝을 보기 위해 갤러리로 온다. 갤러리 안에는 승희의 사진들이 걸려있고, 사람들은 승희의 등장에 무심하게 그냥 사진들을 본다. 마치 승희가 안 보이는 것처럼. 그리고 대충 사진들을 봤을 무렵에 내가 등장해서 꽃 내밀고 편지를 읽는다. 아, 제법 그럴 듯한 청혼이지 않나.
뜻대로 되는 일은 얼마나 적던가. 오전 일을 끝내고 근처 밥집에 앉아서 우선 청혼 편지를 가져온 편지지에 옮겨 적었다. 며칠 동안 고민하면서 수첩에 적고 노트북에 적어서 정리해둔 것이다. 그리고 옷을 맞추는 곳으로 가서 맡겨둔 옷을 찾았다. 다음은 액자집으로 가서 완성된 사진들을 받았는데, 열 여섯 장의 사진에 붙은 프레임은 많이 무거웠다. 사진들을 갤러리로 옮겨두고 다시 꽃을 사기 위해 근처 꽃시장으로 갔다. 장미를 살 생각이었는데, 노랗고 수수한 꽃이 참 좋아보여서 그걸로 샀다. 중국어 이름은 못 알아 들었는데, 나중에 사람들이 프래지어라고 말해 주었다.
시계는 다섯 시를 조금 넘었다. 대충 준비물은 다 되었으니 이제 가져온 낚시줄로 액자들을 걸기만 하면 된다. 우선 기존에 있던 그림들을 내리고, 사진들을 적당한 위치에 배치했다. 롱롱의 도움으로 승희는 일곱 시쯤에 오기로 했다. 서두른다면 시간은 대충 맞을 것이다. 작전을 조금 바꾸어서, 일체 다른 사람들을 부르지 않고, 텅 빈 공간에 승희 한 명만 들이는 것으로 했다. 그리고 잠시 뒤에 내가 들어오기로 했다. 적당한 높이에 액자를 하나씩 건다. 두어 개쯤 걸었는데,
이 사람이 왔다.
뭐, 처음 해보는 청혼이 오죽일까. 이런 상황을 미리 대비하지 못 했다.
뭐, 그래도 승희는 조금 감동은 했고, 기분도 좋다 그러고.
뭐, 준비한 꽃도 전했고, 편지도 읽었고.
뭐, 아쉽지만 어쩌겠어. 그래도 결혼해 준다는데.
뭐, 이벤트는 언제나 미완성.
더운 여름에, 우리는 만났다. 무덥던 날들이었다. 작은 카메라를 들고, 치마처럼 펄렁이는 바지를 입고, 가벼운 신을 신고 너는 참 경쾌하게 걸었다. 좁은 길에 나뭇잎들은 짙었는데 그 사이로 비껴든 빛들이 네 짧은 머리카락 위에 떨어졌다.
가을에 그 연보라 머플러는 참 잘 어울리더라. 조금 긴 듯한, 나풀거리는 그 녀석을 우리는 참 좋아했다. 네가 한 번씩 다녀갈 때마다 집이 변신하던 것도 그 가을이었다.
길고 추웠던 겨울은 겹겹이 겹쳐입고 난로 앞에 꼭 붙어앉아서 나야 했다. 한 번 외출 때마다 껴입은 옷때문에 두 배씩 몸이 불어나는 계절이 이제 저만치 갔다. 다음 겨울은 아마 더 따뜻하겠다.
봄은 언덕 너머에 포복하고 있다가 와락 덥치듯 왔다. 축제를 펼칠 계절이다. 이번 봄은, 함께 맞는 첫 봄이다. 그래서 새 봄이다. 이 봄의 초입에서 나는 다 늦은 편지를 쓴다. 아무래도 김빠진 콜라같다. 그렇지 않아? 날짜는 정해졌고, 청첩장도 가야할 곳들로 갔다. 그리고 이제야 나는 결혼을 청하는 편지를 네 앞으로 쓴다. 함께 있어서 참 좋은 시간들이었으니까, 앞으로 긴 시간을 함께 있어 달라고 부탁하려고 한다.
이웃한 별처럼 살자. 두번 오지 않을 시간과 공간에서 우리도 별처럼 만났다. 그리고 시간은 살같이 흘러서 소멸할 때도 올 거다. 이 땅에 오기 전에 우리가 없었던 것처럼 소멸 뒤에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로 단 한 번 존재하는 이 순간이 안으로부터 바깥에 이르기까지 아름답기를 바란다. 이 세상에 잠시 머무는 동안, 별처럼 빛나는 한 세상을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사는 일은 아슬아슬하고 위태롭다. 앞으로 너와 내가 어떤 길을 거쳐 가게 될지 짐작할 수 없다. 빈약한 상상력의 경계 너머에 있는 일들이 무리지어 닥쳐올 것이다. 보이지 않는 길을 앞에 둔 답답함과 막막함은 덜어지지 않는다. 기대에 찬 출발을 앞두고 미안하고 또 부끄러운 일이다.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마음껏 봄날을 누리라고 말해주어야 하는데, 알 수 없는 길을 함께 가자고 나는 네게 손을 내민다.
하지만, 온통 봄날같지는 않은 세상이라도, 살아서 아름다울 거라는 것 또한 우리는 확신하고 있지 않니. 우리는 함께 길을 걷고, 함께 그림 앞에 서고, 마주앉아 밥을 먹고, 얼굴 보고 잠을 깨는 날들을 살 거다. 서로 다른 시공간을 지나왔지만, 공감하는 곳에 힘을 보태고 다른 것들을 조율하며 가서 마침내 서로에게 꼭 맞는 조각이 될 거다. 비틀거릴 때는 기둥이 될 것이고, 언제나 서로의 응원이 될 거다. 함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일들을 겪고, 더 풍성하고 용감한 세상을 살 거다.
축제를 살자.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사람처럼 매일이 처음이고 끝인 것처럼 살자. 대하는 모든 것들을 새로운 호기심으로 보고, 존재하는 것들이 본래부터 가진 신비들 앞에 감탄하자. 세상 낮은 것들과 온몸으로 공감하고, 스스로를 존중하고 아끼자. 온 시간 동안 배우고 익히며 이 세상에 온 것을, 그리고 함께 있는 것을 감사하자.
이웃한 별들처럼, 기대고 응원하자. 그래서 별처럼 온전히 소멸하는 그 때쯤에, 축제처럼 한 세상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둘이어서 이 축제가 몇 배쯤은 더 즐거웠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승희야,
좋은 꿈을 함께 꾸자.
우리, 잘 살자.
아침마다 눈부비는 너를, 사랑한다.
아, 잊을 뻔했다.
결혼하자.
2011. 4. 1
2011.03.30 08:48
아침 지하철에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앉았다. 파리 한 마리가 꼭 실뭉치처럼, 가방 위에 얌전히 앉아 있다. 지하철이 덜컹거릴 때마다 가방도 들썩거릴 텐데 파리는 좀처럼 자리를 뜰 기미가 없다. 둘러보니까, 지하철 안에 파리가 안전하게 쉴 곳은 마땅찮아 보인다. 날아갈 기운도 시원찮은 것일까. 어쩌지 못 해서, 내릴 때까지 그 자리에 두었다.
갑자기 드러나는 풍경처럼 오는 문장이 있다. 준비 못한 마음이 어쩔 틈도 없이 덥치듯이 오는 문장들이다.
멜랑꼴리미학.이라는, 아마 작년 가을쯤에 산 듯한 책을 읽다가 관두었다. 입맛에 맞지 않았다. 대신 중국어 단어책을 출퇴근길에 보기로 했다. 출장을 가면 중국어로 된 자료를 잔뜩 받아 오는데, 아무래도 더 이상 중국어 자료를 못 본 척 넘길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기사를 쓰려면 방대한 중국어 자료를 외면할 수 없다. 여행길에 부족한 중국어로 주워 들은 몇 마디 말만 조합해서는 바닥이 뻔한 문장에 그칠 것이다. 아침에는 답답해서, 가방 속에 든 책은 안 꺼내고 음악이나 크게 들으면서 한 시간 출근길을 왔다.
2011.02.25 12:35
읽지 않은 책이 쌓여간다. 읽어야 할 것 같으니까, 읽고 싶으니까 사모으기는 하는데 좀처럼 안 읽는다. 일 바쁘다는 핑계로 함께 책 읽던 모임도 관두고 나니 더 안 읽는다. 책장 앞에 설 때마다, 뿌듯한 마음보다 답답한 마음이 더 커진다.
어설프기는 해도 사진사라는 명함으로 몇 해쯤 살았다. 직업을 바꿔서 십 년쯤 더 살아볼까 한다. 사진을 찍는 동안에도 손에서 놓지 않았던, 글쓰고 사람 모으고 몰려다니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볼까 한다. 결심은 이미 했고, 두어 달 준비한다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시작부터 실패를 생각하는 일은 잘 없으니까, 될 거라고 기대한다. 잘 될지 안 될지 확신은 못 해도, 재미있을 거라는 확신은 한다. 별처럼 명멸하는 삶이다. 빛나게 한 세상을 살아야 한다.
내 블로그가 있고, 에프상하이 사이트가 있고, 승희와 함께 쓰는 블로그가 있다. 버려둔 웹진도 있다. 거기에 이번에 시작하는 작업 사이트까지 합치면 관리해야 하는 사이트가 다섯 개가 되는 셈이다. 하나도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다. 닦고 문지르면 다들 신날 곳인데 그러지 못 했다. 아마, 두어 개는 접어얄 것이다. 이제 직업으로서의 사진을 관두면, 에프상하이도 관둘까 싶다. 아쉽기는 해도, 생겨난 것이 사라지는 것은 순리에 맞다. 아니면 새 사이트와 통합해서 운영할 수도 있다. 그 때 가서 볼 일이다. 어떤 형태가 되든, 지금처럼 빈집 모양 버려진 꼴이 보기 싫다. 공간이 없어지면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시간 지나면 익숙해 진다. 필요하다면 새 공간이 저절로 생겨날 것이다.
한 달에 절반을 중국 각지로 출장다닌다. 그러니 원고는 많이 모이는데, 정작 원고를 가공할 시간이 부족하다. 결국 문제는 사람에서 멈춘다. 사진원고와 텍스트 원고를 한꺼번에 감당해낼 수 있는, 물론 중국어도 좀 되는 기자 하나만 더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국과 중국의 실무를 맡아줄 사람도 한 명쯤.
막대한 분량의 일을 해치우기 위해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정해진 시간틀 속으로 밀어넣는 형태가 아닐까. 가장 효율적인 일의 방식이 가장 좋은 삶의 방식일 수 있는지는 좀 더 고민해야 할 문제가 되겠지만 우선은 하려는 일이 기대되니까, 참 신난 한 때가 될 거라고 믿으니까 눈앞에 있는 일의 덩이를 해치우는 작업을 우선해야겠다.
2011.01.27 20:27
승희는 한국에 갔다. 내가 안후이 출장일 때 가서 2월 말에나 온다. 안후이 출장은 예정대로 끝났고, 곧이어 있었던 이틀짜리 출장은 날씨 때문에 변경되어서 하루만 찍고 왔다. 설 연휴에는 구이저우의 소수민족 마을로 출장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현지 날씨가 엉망이라 안 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연휴를 꼬박 책상 앞에 앉아 보내야 한다. 출장 다녀온 안후이 성의 원고 작업을 비롯해 일거리는 천지다. 연휴 끝나는 날까지 작업 스케줄이나 짜고 사이사이 암장이나 다니면서 추운 겨울을 나야 한다.
장을 보아왔다. 그 사람이 없으니까 내가 살 것이라는 게 과일이나 과자, 빵이 전부다. 내일은 장에 가서 된장찌개 재료라도 좀 사와야겠다. 푸짐하게 해두면 3일은 먹을 수 있을 테다. 출장 다녀온 짐들을 풀어놓으니 방은 어느새 발디딜 곳을 살펴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 책상 아래에는 차곡차곡 쓰레기가 쌓인다. 야단치는 사람이 없으니 정리는 물 건너 일이다. 허전하다.
좋은 것도 있다. 택시 내릴 때 영수증 안 받고, 마트가서 영수증 안 받아도 된다. 날마다 암장가도 뭐라 그럴 사람도 없다. 생각해 보니, 좋은 건 몇 개도 안 된다. 허전하다.
일이나 해야겠다. 연휴 작업 모드를 위해 모니터를 낮은 책상 위로 옮겨야겠다. 따뜻하게 난로 틀어두고, 일이나 해야겠다.
2011.01.24 08:46
아침에 사이트 몇 곳을 둘러봤다. 오랜만에 가는 곳들이다. 책 리뷰도 읽고 정치 기사도 읽고 소설도 조금 보았다. 내용보다 인상적인 것은 날마다 새로운 계단을 하나씩 오르는 것처럼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는 그들의 컨텐츠였다. 기업이나 단체가 운영주체로 있는 곳은 또 그런대로 그럴 만하다고 하지만, 개인이 운영하는 블로그까지 단단하게 채워지는 것을 보면 참 부럽고 멋있어 보인다.
이번 출장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어제는 양말로 안 빨았다. 남은 양말로 충분하다. 내일 아침 비행기를 타고 상하이로 돌아간다. 긴 출장 중에 또 많은 것들을 계획했다. 돌아가면 하나씩 해야겠다.
2011.01.18 07:21
구멍 난 장갑을 꿰맸다. 아마 지난 출장 중에 어디 걸렸던 모양인데 검지 손가락 끝부분에 난 구멍은 조금씩 커졌다. 그냥 둘까 하다가 아직 많이 남은 출장 일정을 생각하니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았다. 장갑을 뒤집고 보니 생각보다 어려워서, 어디를 어떻게 꿰매야 하는 것인지 막막했다. 대충 아무렇게나 서툴게 몇 번 휘감았다. 손에 딱 맞던 장갑은 검지 부분이 조금 짧아졌다. 그래도 한 겨울 출장은 어떻게 버틸 만하겠다.
다시 이어진 출장은 이제 4일째인데, 벌써 한참이나 지난 것만 같다. 날마다 장소를 옮겨다니는 분주함 때문이다. 지난 번 장시성 출장 때는 날마다 옮겨다니기는 했어도 적어도 정해진 일정 안에서는 제법 쉬엄쉬엄 걸을 만했는데, 이번 출장의 일정은 더 빡빡하다. 어제는 장소 이동 중에 차 안에서 버거 하나로 점심을 해치웠다.
집을 떠나있을 때는, 돌아가서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아진다. 새로운 계획도 막 생겨나서 얼른 집으로 돌아가 새로운 작업들을 시작하고 싶어진다.
이번 출장은 25일에 끝나고, 돌아가면 곧장 다른 곳으로 짧은 출장을 간다. 그러면 1월이 간다. 설 연휴 동안 구이저우 성으로 가자는 제안이 있었는데, 현지 날씨가 나빠서 아마 진행되지는 못 할 듯하다. 조용히 집에서 안후이 지역의 책 원고를 쓰고, 연휴 끝나면 얼른 원고 넘기고 한국으로 가야겠다. 승희는 어제 한국으로 먼저 들어갔다.
2011.01.01 11:43
오늘 아침에 뜨는 해를 보지는 못 했다. 어제는 fshanghai 맴버들 몇이 와서 같이 먹고 마셨다. 밤새 놀아볼까 했는데 다들 사정도 있고 또 지쳐서 그러지는 않았다. 그래도 정리하고 자려니 새벽 두 시가 가까웠다. 자는 사이에, 2010년은 어느새 2011년이다. 그랬던 것처럼, 한동안은 또 습관대로 2010이라고 쓰다가 얼른 2011이라고 고쳐쓸 것이다. 눈 뜨니 날이 밝아 있다.
이틀 전에는 쑤저우에 다녀왔다. 작업했던 일 중에 빈틈이 보였는데, 그 빈틈이 결정적일 지는 1월 중순에야 알 수 있다. 하지만 1월 한 달 내내 나는 출장을 가니까, 문제가 될지 안 될지를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다. 뒷말 안 나오도록, 부족한 마무리를 해두기로 했다. 스냅 사진 한 장 찍겠다고 쑤저우로 갔다. 마침 승희도 일이 없어서 함께 갔다. 5분도 안 걸려서 해야할 사진을 해치우고, 쑤저우 시내를 좀 돌아다니다가 까페에 앉아서 오후를 보냈다. 새해 계획을 몇 가지 이야기했는데, 결혼과 작업 문제가 가장 컸다.
Studio Ditte는 실제적인 공간 이름은 아니고, 새해부터 승희와 내가 꾸릴 블로그 이름이다. 상하이.와 당대예술.을 주제로 잡고, 각종 리뷰와 인터뷰, 그리고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을 담기로 했다. 내 개인 블로그와 웹진 에프상하이를 통해 시도하던 작업들이 아마 스튜디오 디떼의 공간으로 몰릴 수도 있을 것이다. 뭐 좀 안타깝기는 하지만, 웹진의 실패를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올 한 해 동안, 승희와 내가 각각 100권 / 50권의 책에 대한 리뷰를 쓰기로 했다. 승희가 나보다 월등히 책 읽는 속도가 빠르고, 나는 출장 일정이 많아서 그렇게 정했다. 그리고 서로의 독서 목표를 달성하면 연말에 있을 보상도 정했다. 음악도 숙젳처럼 들어보기로 했다. 오늘은 그래도 새해 첫날이니까, '신세계로부터'라는 부제를 가진 교향곡을 들었다. 나는 교향곡이 좋은데, 승희는 차분한 소품들을 더 좋아한다. 장단점이 있는데, 교향곡을 들을 때는 아무래도 딴 짓을 할 수 없고 곡에만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배경음악으로 듣기에는 교향곡은 너무 정신없다. 그리고 소품은, 좀 심심한 면도 없지 않다.
2011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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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짧은 글 모음
2010.12.30 22:01
숨통을 조르는 것 같던 일이 우선 마무리되니까 마음에도 이런저런 틈이 생기고, 이것저것 돌아볼 수 있게 된다. 지난 에프상하이 출사에 다녀온 사진들인데, 특별할 것 없어도 그냥 두어 장 만져본다.
2010.12.30 21:47
모니터가 좀 작다 싶었다. 사진 작업에는 모니터 두 대를 쓰는데, 한 대는 2005년에 구입한 19인치 CRT 모니터이고, 다른 한 대는한두 해쯤 뒤에 구입한 19인치 LCD모니터다. 큰 사진을 작업할 때 19인치 사이즈의 모니터는 아무래도 아쉽다. 하지만 모니터 바꾸는 일은 작은 일이 아니라서 어지간하면 버티고 썼다.
노트북은 2004년에 중국에 처음 교환학생으로 올 때 산 것이다. 그 때 기준으로 거의 최고 등급의 녀석을 사서 이제껏 잘 썼다. 그런데 아무래도 오래 되고 보니 요즘에 나오는 프로그램을 돌리기에는 벅차고, 현장에서 카메라에 연결해서 사진 확인하는 용도로만 겨우 썼다.
내년에는 장기 출장이 몇 번 더 있을 예정이고, 새 상업사진 촬영들도 의욕적으로 해보려고 한다. 그래서 겸사겸사 컴퓨터 작업환경을 바꾸기로 했다. 승희는 필요한 일이라면 그렇게 하라고, 따로 말리지도 않고 슬쩍 응원도 해주었다. 몇 가지 조합을 고려했는데, 결론은 애플의 맥북프로 노트북을 구입하고, 별도의 모니터를 구입해서 쓰기로 했다. 우선 노트북은 13인치 맥북프로를 구입했다. 한국에서 중고를 샀다. 1년쯤 쓰고 최신 버전으로 다시 구입할 생각을 해서, 우선 급한대로 한국에서 중고를 구입하면 되팔기 쉽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내가 매물을 찾고, 동생을 통해 거래하고 한국 다녀오는 바람소리 누나를 통해 전해받았다. 노트북은 제법 성능이 괜찮아서, 당장 몇 달 쓰고 내년에 바꾸려던 계획을 바꿔서 몇 년은 써보려고 한다. HDD를 떼어내고 SSD를 장착해서 속도를 높였다. 포토샵이나 라이트룸도 제법 잘 돌아간다.
그리고 예정보다 조금 무리해서, 새로 나온 애플의 27인치 모니터를 샀다. 가능하면 좀 저렴하고 안정적인 성능을 내는 모니터를 구하려고 했는데, 이리 저리 따져보다가 결국 이 녀석을 구입하기로 했다. 중국 매장에서 판매하는 가격은 한국보다 40만원 정도가 더 비쌌는데, 오고 가는 수고와 기다리는 비용, 그리고 문제 발생시 처리의 수월함 등을 생각해서 여기서 구입했다. 화하이루에 크게 들어선 애플 매장으로 노트북을 가져가서 테스트 해보고, 다음날 다시 가서 샀다.
맥의 작업환경은 듣던 대로 윈도우와 조금 다르다. 우선 쾌적하다는 인상이 있는데 이것이 맥 OS X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새로운 운영시스템을 처음 접하기 때문인지는 좀 더 두고보아야 알 일이다. 그리고 작전대로이기는 한데, 아무래도 노트북이다보니 기존에 쓰던 데스크탑보다는 속도가 느리다. 많은 작업을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아마 적잖이 답답할 것 같다. 해결책은 맥 최고 버전의 데스크탑인 맥프로를 구입하거나, 맥북프로를 더 높은 사양으로 구입하거나, 아이맥을 구입하는 것인데 셋 다 여의치 않다. 당분간은 이대로 쓰고, 가능하면 이 속도에 내가 적응해야 한다. 하지만 장점도 있는데, 노트북을 메인으로 쓰게 되니 언제 어디에서든 필요한 모든 작업을 할 수 있다. 출장 중이든 한국에 있든 상관없이 곧장 작업을 시작하고 끝내고 클라이언트에게 전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장점이 이 조합을 최종 선택하게 된 결정적 이유다.
맥북앞에 앉으면, 막 일하고 싶어진다.
새로 오픈한 애플샵은, 정말 구경만 하려고 했다.
직원은 친절했다. 가져간 내 맥북으로 애플시네마27은 잘 돌아갔다. 이 때까지만 해도 결심은 안 했었다.
다음날...
LCD모니터는 승희가 쓰기로 하고, 사진작업에 좋은 CRT모니터는 필요한 곳에 보내기로 했다.
마지막 가시는 길,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2010.12.25 09:40
장시성에 다녀왔다. Asia Travel이라는 중국 여행잡지의 일이었다. 한 달 동안 장시성 곳곳을 둘러보고 한국어 소개책자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사진을 찍고 글을 썼다. 본래 벌써 끝났어야 하는 작업인데 타고난 게으름 때문에 너무 오래 걸렸다. 어제서야 디자이너로부터 초벌본을 받아 보았다. 넉 달이나 걸린 셈이다.
지난 몇 달 동안,
아무래도 나를 가장 크게 바꾼 것은 승희다. 승희는 내게 없는 것들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정리정돈이 생활화되어 있는 사람이고, 요리도 잘 하는 사람이다. 본인의 관심 분야에 대한 다양하고 꾸준한 리서치도 몸에 익히고 있는 사람이다. 승희는 학부와 대학원에서는 역사를 공부했는데, 지금은 아트 마케팅으로 박사 과정에 있다. 예술이란 것은 어쩌면 비겁한 자들의 유희나 도피, 허영이거나 그 모두일 것인데 나나 승희, 그리고 내가 아는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어쨌든, 꼬박꼬박 관련 강좌를 찾아 듣고 또 본인의 앞길을 준비하는 모양새를 보면 예쁘고 기특하다. 내 생활의 많은 부분에 승희는 영향력을 행사해서 변하게 했다. 나는 조금 더 계획적이 되었고, 생활에 필요한 경제관념도 챙기고 있다. 등산복이나 입고 다니던 나를 이리 저리 끌고 다니면서 옷도 맞춰입게 하고 또 사게 한다. 물론 돈은 내 돈을 쓴다. 나를 자기가 아는 교수님 밑으로 밀어넣어 공부 시키려는 계획도 있다. 승희 덕분에 나는 세상을 조금 더 많이 즐길 것이다. 그리고 승희는, 여자다. 여자라는 생물의 이질감을 이렇게 크게 느껴본 것은 처음이다. 연애가 처음도 아닌데, 그 전까지는 왜 알지 못 했을까? 이제는 왜 여성과 남성은 다른 별에서 왔다고 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이런 외계 언어를 말하는 외계 생물과 부대끼며 이 땅의 많은 남성들은 살아내고 있었구나. 그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우리는 싸우기도 가끔 싸운다. 서로 다른 별의 언어로 싸우니까 이게 답이 나는 싸움이 아니다. 그러다가 시간 지나면 서로 안아주고 웃고 만다. 이런 외계인 같은 것. 이제 밤하늘을 보면 UFO를 기다리게 될 것 같다. 우리는 아마 내년 어느쯤에는 결혼도 할 것이다.
나를 바꾼 것이 승희였다면, 나를 흔든 것은 장시성에 대한 원고작업이었다. 원인은 전적으로 내 게으름에 있다. 하지도 않으면서,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억눌려서 좀처럼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다른 많은 일들에 손을 놓아야 했다. 중간에 몇 번의, 마감 통보에 가까운 독촉이 없었다면 장시성은 아직도 내 머리 속이나 컴퓨터 이미지 데이터 속에 있었을 것이다. 처음의 기대와 달리, 어디 내보이기 부끄러운 수준의 책이 되겠지만, 어쨌든 마침표를 찍었다는 데 혼자 의미를 둔다. 내년 상반기까지 아마 서너 권의 책이 같은 시리즈로 더 나올 것이다.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하니까, 다음 작업은 이렇게 밀리지 않도록 해야겠다.
맥으로 갈아타기.를 시도 중이다. 8년 가까이 써서 이제는 도저히 노트북다운 성능을 내지 못 하는 노트북을 바꾸기로 하고 대안을 검토하던 중에 대뜸 맥 노트북을 구입했다. 이미지 작업에는 맥이 낫다는 이야기들을 여러 번 들었기 때문이고, 아이폰을 통해 접한 그들의 직관적인 인터페이스가 좋았기 때문이다. 맥 컴퓨터 중에서도 여러 가지 조합을 생각할 수 있었는데, 완벽하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최고의 데스크탑 맥프로.가 있고, 모니터 속에 본체를 숨긴 아이맥도 있다. 그리고 새로 나온 가장 얇은 노트북 맥북에어도 있고, 무거운 작업을 소화할 수 있는 노트북인 맥북프로.도 있다. 여러 조합을 몇날며칠 고민한 끝에 나는 13인치의 맥북프로를 구입했다. 그리고 모니터 역시 이런 저런 조합을 생각한 끝에 새로 나온 맥 모니터를 구입하기로 했다. 어제 매장에 노트북을 가져가서 직접 연결해서 테스트도 해 보았다. 좋더라. 잘 되더라. 갈아타기가 끝나면, 집에서는 외부 모니터를 연결해서 대형 화면으로 작업할 수 있고, 장기 출장 중에도 메인 컴퓨터를 그대로 가져가는 셈이니까 공간의 제약 없이 필요한 대부분의 작업을 해낼 수 있게 된다. 작업환경이 쾌적해질 것이다.
어느새 연말이다. 장시성 때문에 몇 달이 공으로 증발해버린 기분이다. 정신 차리니 12월이 열흘도 남지 않았다. 연말 인사도 못 했는데. 내년에는 잔뜩 기대되는 여러 새 작업들이 있다. 밀린 책들을 좀 읽어야 하니까 관련 팀을 꾸릴 것이다. 서너 명 정도 모여서 강도 높은 읽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반기 대학원 입학 준비도 해야 한다. 새 사진작업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석 달 정도는 또 여행 책자를 만들기 위한 출장도 다녀와야 한다. 호텔 포트폴리오도 준비되었고 영업을 도와줄 친구들도 섭외해 두었으니 진행해야 한다. 아, 결혼도 해야 한다. 바쁜 한 해가, 바쁜 것 보다 더 재미있는 한 해가 눈 앞에 왔다.
다음달 4일부터 귀주성으로 출장을 간다. 거의 한 달이 걸리는 길이다. 가서, 밤마다 인연들에게 새해 인사를 써야겠다. 때 늦은.
2010.12.17 14:15
블로그라고 열어 두고 글 쓴 것이 석 달이 지났다. 그 동안 여러 가지가 변했다.
아쉬운대로 집 인테리어를 했다. 3년 동안 살았고, 이사를 가려고 했는데 마땅한 조건에 마땅한 집이 없었다. 집주인의 요구대로 임대료를 올려서 주고, 2년을 더 계약했다. 좀 사람답게 살겠다고, 제법 이것 저것 고쳤다.
새 일들도 몇 개 더 하고, 새 장비도 생겼다.
그리고 모든 변화의 중심이 되는 여자친구 승희도 있다.
바빠서, 연말인사를 두 해째 거른다. 작년에는 어영부영하다가 지났는데, 올해는 연말 인사 쓸 틈이 없다. 내년에는 더 많은 것이 변한다. 블로그도 정돈되어서 힘을 얻을 것이고, 새 사진 프로젝트도 시작한다. 승희와 함께 상하이.현대예술.을 주제로 하는 새 블로그도 만들기로 했다. 이름은 'studio ditte'로 생각해 두었다. 내년 하반기에는 학생도 될 것이다. 복단대에서 미학을 전공할까 하다가, 승희가 있는 학교에 젊고 좋은 선생님이 계신다고 해서 그 쪽에서 전시기획을 공부할까 싶다. 제목은 바뀌어도 하려는 공부의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Before
After
우선 바닥에는 카펫을 깔았다. 바깥 베란다를 막아서 옷방을 만들었다. 작업공간을 한쪽으로 보내고 나머지 공간에는 앉은뱅이 책상을 길게 놓았다. 필요한 커튼을 추가하고, 욕실과 창고, 주방에는 선반을 달았다. 카펫 작업을 제외하면 구멍 하나 뚫는 것부터 목재 자르기, 선반 붙이기 등 모든 작업을 직접 했다. 그리고 바깥에서 낡은 나무를 주워와서 벽에 매달았다. 승희가 감독하고, 내가 몸으로 떼웠다.
2010.09.07 20:09
장소. 홍코우 암장
시간. 오후 4:30~오후 6:00
내용. 볼더링
홍코우 암장은 팔만 암장보다 조금 싸다. 1회 입장권이 40원이고, 6개월에 800원, 1년에 1200원이다. 신발 대여료도 5원이다. 직벽은 팔만 암장의 약 반 정도 높이 밖에 안 되고 볼더링 구간도 조금 더 적다. 이번에 거의 두어 달 만에 간 것인데, 많이 변해 있다. 우선 볼더들이 많이 움직였다. 기초 자세를 익힐 수 있는 구간은 팔만 암장보다 홍코우가 더 쉽게 되어 있다. 대신 그 구간을 제외하면 오히려 팔만보다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홍코우에 있다가 팔만에 처음 갔을 때 받은 인상은 '참 어렵다'는 것이었는데, 팔만에 있다가 홍코우에 오니 다시 어렵다는 인상을 받는다. 한 곳에서 일정 기간 이상 볼더링을 하면 우선 자신만의 길이 생긴다. 그리고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길들은 머리 속에서 지워진다. 갈 수 있는 것만 보이니까, 갈 만한 것만 있는 것 같아서 쉬워 보인다. 그러다가 새로운 곳에 가면 어렵고 쉬운 길들이 한꺼번에 덥쳐와서 도대체 길을 모르게 된다. 아마 어렵다는 인상은 그래서 받는 것이다.
반창고를 잊고 안 가져갔다. 조금 탔더니 손가락 여기저기가 터져나가려고 한다. 지난 일요일 정기모임과 마찬가지로 팔도 금방 힘을 잃는다. 아무래도 틈틈히 악력 훈련을 따로 해야할 모양이다. 두어 달 만에 가는 곳이니까 내심 기대를 했었다. 예전에 못 가던 길도 이제는 무난하게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기대는 기대로 그쳤다. 나아진 것은 분명한데, 그 간격은 기대에 미치지 못 했다. 처음 시작하던 때보다 조금 더 부드러워진 몸짓과 조금 더 강해진 악력으로 다만 그쳤다.
홍코우 암장은 작은 대신 사방의 벽과 천장에 모두 볼더를 박아두어서 제대로 스파이더맨이 되어볼 수 있다. 그리고 적어도 볼더링 테크닉에 관해서라면, 팔만 암장의 클라이머들은 상대가 안 되는 고수들이 이 곳에 제법 있다. 나는 오후 네 시쯤 가서, 고수들 오기 전에 슬쩍 빠져 나왔다. 평일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좁은 공간에 답답한 느낌이 든다. 팔만 암장의 볼더링이 어느 정도 몸에 익었다면 맴버들과 함께 이 곳에 다녀가는 것도 좋겠다.
암벽 훈련을 시작하면서 반복해서 듣는 이야기는 동료에 대한 것이다. 단순한 운동 파트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동지로서, 동료라는 단어는 여느 운동에서보다 더 큰 무게를 갖는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산에서 만나는 어떤 감동은 철저하게 단독자의 것이다. 동료에게 생명을 위탁하고 또 동료의 생명을 담보해주는 것은 맞지만, 그 부분이 산행의 근원적인 어떤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 싶다. 산을 걸으며 가장 큰 감동을 느끼는 순간은 사방 고요한 순간에 오로지 내 몸 하나로 거대한 산과 마주서는 그 때쯤이 아니었나 싶다. 오랜만에 혼자 암장에 가서 한 마디 말도 없이 벽에 붙고 떨어지고 다시 붙는 기분이 참 좋았다.
2010.08.27 10:47
계획은 그랬다. 밤 10시쯤 상하이에 내리면 아슬아슬 지하철을 타고 온다. 한 달 만에 집 문을 열면 우선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고 앰프를 예열시킨다. 배낭을 풀어서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샤워를 한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느긋하게 앉아서 아무 음악이나 대충 걸어두고, 밤이니까 소리는 작게 듣는다. 빨래를 널고 내 침대에서 너르게 잠든다.
계획이란 것이 얼마나 제한적인 것인지, 살아가는 일은 얼마나 많은 상상 밖의 전개를 펼쳐내는 일인지 알게 되는 때가 종종 있다. 그러니까 실제는 이랬다. 오전 일정을 마치고 난창 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2:30분. 비행기 예약 시각은 저녁 8:30분. 혹시나 싶어 일찍 가는 비행기를 알아보았지만 이미 좌석이 모두 차서 변경할 수 없다. 꼬박 저녁까지 기다려야 한다. 출발 시각이 되어서 카운터 앞에 가서야 날씨 문제로 비행 시각이 다시 연기되는 것을 확인했다. 며칠 전에 동북에서 발생한 비행기 사고 때문에 더 엄격해진 것이리라. 비행기는 밤 열 시에 떴다. 새로 생긴 홍차오 공항 제 2 청사는 그 전 공항보다 훨씬 시내에서 떨어져 있다. 이미 밤이 늦었으니 지하철은 없고, 택시를 타고 집 앞에 내리니 요금은 87원이 나왔다. 장기 출장이라 냉장고도 비웠으니 집에는 먹을 것이 없고 우선 급한대로 마트에서 빵 두어 개를 사서 집으로 왔다. 드디어 집이다. 그렇게 돌아오고 싶었던 집에 왔다. 조금 늦긴 했지만 이제 들어가서 계획들을 진행시키면 된다. 밤이 늦었으니 앰프 볼륨을 조금 더 낮추면 그만이다.
문에는 수도요금 고지서 한 장, 국제택배 운송장이 한 장 끼워져 있다. 대충 수습하고 들어가서 30kg가 넘는 배낭을 우선 내렸다. 스탠드를 켰다. 불이 안 켜진다. 아, 가기 전에 플러그를 모두 뽑고 갔었다. 다시 켰다. 안 켜진다. 멀티탭의 전원을 올렸다. 다시 켰다. 안 켜진다. 아, 뭔가 이상하다. 혹시? 열쇠고리에 달린 작은 등을 켜서 두 장의 고지서를 다시 살핀다. 아, 택배 운송장이라고 생각했던 고지서는 다시 보니 단전통지서다. 7월달 요금을 미납했으니 18일부터 전기를 끊는다는 통지서. 이미 일주일 전이다. 시각은 밤 열 한 시를 벌써 지났다. 방 안은 사우나처럼 덥다. 일곱 시간 반을 공항에서 기다리고 겨우 도착해서 만난 것이 정전이다.
우선 마트에 다시 가서 큰 건전지를 샀다. 손전등에 넣어서 손전등을 욕실에 두고 샤워했다. 모기약을 켤 수 없으니 창문을 열면 안 된다. 샤워한 후의 시원한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얼른 자리에 누워 잤다. 얼마 남지 않은 휴대폰 베터리가 조마조마했다. 새벽에 일찍 깼다. 더위에 등떠밀려서 깼다. 대충 할 것들을 하고 가까운 전력공사 사무실을 검색해서 업무 시작 시간에 맞춰 갔다. 밀린 요금을 납부하고, 전기를 다시 이었다.
전기가 없어지는 세상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의 소설에서 카메라가 사라지는 세상을 그린 적이 있다. 카메라가 사라지면 카메라를 만든 사람이 사라지고 카메라의 재료가 사라진다. 그렇게 소급해서 올라가면 카메라의 소멸은 세상의 소멸로 이어진다. 세상의 소멸까지는 아니어도, 전기가 사라진 세상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라는 결론에 나는 닿았었다.
전기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몇 개는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다.
샤워 (수도는 안 끊겼다)
면도 (23일 동안 자란 수염을 밀었다)
어쨌든, 돌아왔다.
2010.08.03 22:17
아파트 15층에서 뛰어내린 독신녀,
그곳에 가보면 틀림없이 베란다에
그녀의 신이 단정하게 놓여 있다
한강에 뛰어든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시멘트 바닥이든 시커먼 물이든
왜 사람들은 뛰어들기 전에
자신이 신었던 것을 가지런하게 놓고 갈까?
댓돌 위에 신발을 짝 맞게 정돈하고 방에 들어가,
임산부도 아이 낳으러 들어가기 전에
신발을 정돈하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 황지우, 신 벗고 들어가는 그곳. 중에서
출장 간다. 장시성의 수도인 난창으로 가서, 거기서부터 약 20일 동안 장시성 곳곳을 다녀보고 사진과 원고를 마련하는 출장이다. 출장이래도 다 같은 출장은 아닌 모양이다. 호텔 촬영같은 경우는 가서 며칠 동안 깔끔하게 작업하고 돌아오면 된다. 그런 출장은 내가 사진가라는 것을 더 분명하게 하고, 한 명의 일꾼으로 단단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런데 여행을 다니고 원고를 쓰는 출장은 꼭 뿌리내릴 곳 없이 물에 뜬 채로 흘러다니는 수초의 방식같다. 불안하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 하고 이렇게 떠돌다가 세상이 끝날 것만 같아서, 그러면 나는 이 땅에 온 아무 흔적도 이유도 애착도 성취도 없는 것 같아서 무섭다. 이번 출장이 애초에 이런 형태인 줄 알았다면 다시 한 번 생각했을 텐데, 나중에서야 정확한 내용을 알았다. 이미 결정해서 통보하기도 했거니와, 여행하고 사진찍고 돌아와서 글쓰면 돈도 준다니까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간다.
청소했다. 우선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통에 남은 빨래가 없도록 세탁기 돌려서 널었다. 발냄새 너무 나던 암벽화도 빨아서 그늘에 두었다. 쓰레기통을 비우고, 냉장고에 있던 오래되어서 못 먹는 먹거리들도 치워냈다. 읽겠다고 잔뜩 욕심만 부리며 책상 위에 쌓아두었던 책들도 책장으로 돌려보냈다. 앰프 옆에 널려있던 씨디들도 대충 모아서 집어 넣었다. 여행을 가기 전에, 장기 출장을 가기 전에는 주변을 정돈하는 버릇이 있다. 다들 그런 것인지 나만 그런 것인지 모르겠는데, 아마 시인 황지우는 그런 순간에서 어떤 비장함을 읽었던 모양이다. 대학 무렵에 여행은 무서웠다. 좋아서 떠났지만, 떠나기 전에는 언제나 관두고 싶었다. 대부분 혼자 또는 두엇이 떠나는 여행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편한 곳으로 쉬기 위해 가는 여행도 아니고 주로 야간산행이나 장거리 자전거 여행이었다. 그래서 무사히 돌아오는 일이 가장 큰 목표였다. 무서울 만했다. 여행이 반복되면서 출발 전에 무서울 것도 미리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무서울 것은 짐작해도, 정작 무서움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소파 위에 이번 출장길에 필요한 물건들을 차례로 늘어놓고 빠진 것은 없는지 살폈다. 여름이니까 옷가지들은 얇은 것들로 하고, 이번에는 사진 원고도 제법 만들어야 하니까 카메라 장비를 여행 때보다는 조금 더 챙겼다. 등산화도 챙겼다. 오래 걷는 날이 많을 것이고, 공산당의 유격지로 유명한 정강산은 제법 험할 것이다. 책은 세 권을 챙겼는데, 크기가 작고 가벼우면서도 오래 읽을 만한 것들로 골랐다. 아마 다 읽지는 못 할 것이다.
배낭 꾸리고 일찍 자야겠다. 좀 담담하게 다녀와야겠다.
2010.07.30 13:31
여행잡지사 주최로 사천성 청두에 다녀온 적이 있다. 몇 달 된 일이다. 그 뒤에 한 번 더 연락을 받았는데, 꽤나 장기 여행을 제안했는데 다른 스케줄 때문에 못 갔었다. 며칠 전에 편집장 전화가 왔다. 장시성에, 약 20일 정도, 비용은 잡지사에서 부담하고, 돈을 지급하고, 사진 찍고, 글을 써라. 뭐 대충 이런 말들을 했다. 제안한 여행 기간 중에 다른 스케줄이 있었기 때문에 우선 알았다고 하고 끊었다. 그리고 급하게 연락해서 다른 스케줄을 조금 조정하려고 했는데, 조정이 안 되고 취소됐다. 그래도 선약인데, 많이 미안했다.
시간은 확보를 했으니 다시 편집장과 통화해서 정확한 내용을 물었다. 여행 기간 20일 동안 장시성 대부분 지역을 돌아보고 8만 자 원고를 쓰면 된다. 8만 글자면, 한글 기준으로 50장 정도 되는 모양이다. 날마다 꼬박 두 장씩 써야 하는 분량이다. 그냥 한글로 쓰면 된다는데, 그렇다면 한국에 낼 모양이다. 이 분량으로 책이 되지는 않을 것이고, 분량이 된다 한들 중국 전역도 아니고 장시성 한 곳에 대한 책은 수요도 없을 것인데, 도대체 의도를 파악하기 어렵다. 이야기를 쓰고, 실용적 정보를 보태는 수준에서 해주면 된다는데, 여행 안내서적이야 이미 많고 내 성격이 꼬치꼬치 캐물어가면서 차곡차곡 정리하는 작업에 서툰데, 그리고 그런 작업이라면 별로 달갑지 않은데 어렵게 되었다. 우선 난창.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래서 가능하면 내 호흡에 맞는 여행기를 써야겠다. 여행은 너댓 명이 함께 할 모양인데, 어떻게 그룹이 꾸려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제 잠들기 전에 누워서 여행서적을 폈다. 장시성에 대한 부분을 읽어보았는데 특별히 인상적인 내용은 없었다. 현대중국에 대해 쓸 수 있다면, 모택동과 연결시킬 부분은 많아 보였다. 그 부분이라면 예전에 보아둔 것들도 조금 있으니 어떻게 말을 엮어낼 수는 있겠지만, 문제는 잠재 독자들을 생각한다면, 그들이 도대체 모택동의 신화에 대해 호기심을 느낄 이유가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보이지 않아서 답답하기는 한데, 컴퓨터 앞에 앉아서 고민하는 것의 상당 부분은, 적어도 여행기에 관해서라면 괜한 걱정인 것을 이제 안다. 문장은 길 곳곳에 널려있는 것이어서, 현장에 가야 비로소 보이고 또 현장에 가면 어떻게든 보이는 것들이다. 나는 터벅터벅 걸으며 길에 널린 문장들을 주워담아 오면 된다. 와서 대충 줄 맞추어서 늘어두면 된다.
단체관광 형식은 아니라고 하니, 그에 맞는 준비가 필요하다. 트렁크 끌고 다니며 호텔에서 노닥거리고 가이드 깃발 따라 다니는 여행은 피했다. 우선 장기여행에 필요한 배낭을 사기로 했다. 마침 요즘 암벽등반 때문에 다니는 체육관 주변에는 등산용품 매장들이 여럿이다. 45리터 정도면 무난하다고 하니까, 그 쯤에서 보아둔 녀석으로 사야겠다. 다른 준비물들은 대충 갖고 있으니 어떻게 될 것이다. 장기 여행이라고는 하지만 야영을 하는 따위의 일은 없을 것이니 가져갈 짐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다만 예전 여행기의 경우 아무래도 문장을 만드는 부분에 집중했던 반면 이번에는 사진까지 제대로 된 원고용 사진을 만들어야 하니까 사진 장비를 조금 더 가져가야겠다. 그래 보아야 필드 사진이니 큰 조명들을 갖고 갈 것도 아니고, 그저 렌즈 하나쯤 더 넣고 작은 삼각대를 챙기는 정도다. 스트로보와 필터들도 가져 가야겠다. 풍경사진은 내가 선호하는 분야도, 잘 찍는 분야도 아니어서 어지간하면 나서서 찍지 않는데, 시키니 해야 한다. 해야 하니까, 상업 사진가로서 돈 받고 주문 받은 입장에서 기본적인 완성도는 해내야 한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바쁘겠다.
이 편집장은 예전에 인터뷰 기사를 쓰기도 했는데, 여행을 싫어한다는 여행 잡지사의 편집장이다. 하긴, 이런 식의 여행이라면 어쩌면 생각보다 빨리 질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 다녀 오면 8월이 다 가겠다.
2010.07.30 10:49
여름이다. 에어컨 바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게다가 편도선이 조금 부은 듯해서 집에서는 창문만 열어두고 있다. 에어컨은 켰다가 껐다가 한다. 맨몸으로 앉아 있어도 덥다. 컴퓨터랑 앰프가 거의 종일 켜져 있으니까 거기서 나오는 열도 만만치 않다. 더위가 목끝까지 차오르는 여름에는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다 털어내고 싶어진다. 가끔 사람까지 털어내게 되는 것이 문제긴 하다만.
면도했다. 깔끔하게 면도한 것은 몇 달만이다. 대충 수염이 자라는 대로 두고, 너무 길면 가위로 정리하면서 지냈다. 어제 밤에 더워서 잠을 설쳤는데, 그러면서 갑자기 답답해졌다. 아침에 새 면도날을 끼우고 싹 밀었다. 다음주 출장 전까지는 날마다 면도해서 좀 가벼워야겠다.
이발도 했다. 머리카락이 많이 길어서 답답했다. 보통 한국에 갈 때 이발하는데 이번에는 좀 오래 안 가서 머리카락이 많이 길었다. 묶고 다니기는 하는데, 답답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샤워하기 전에, 잘 드는 주방용 가위를 챙겼다. 우선 머리를 묶은 다음, 겨우 묶일 만큼만 남기고 나머지 부분을 가위로 잘랐다. 생각해 보면, 기억하는 안에서는 직접 이발한 적이 없다. 어릴 때는 동네 이발소에 다녔다. 또래 중에는 미장원이라고 이름 붙은 곳에 가는 녀석들도 있었는데, 대부분 어머니 손에 이끌려 갔었고, 그 아이들을 보며 이발소에 가는 것이 괜히 남자답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아주 어릴 때는 이발소에 가면 이발의자 팔걸이 위에 나무판자를 올려두고, 그 위에 앉았었다. 언제쯤 나도 이 나무판을 빼고 앉을 수 있을까 조급하기도 했었다.
마산에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자취방에서 10분쯤 걸어내려가면 인상 좋으신 노부부가 있는 이발소가 있었다. 고등학생 머리라고 해보아야 한 가지인데, 그 때는 그 한 가지 안에서도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이 참 여럿이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발할 때마다 어떻게든 조금 달라보이지 않을까 했는데 결과는 언제나 비슷했고, 그 비슷한 머리 모양새가 나쁘지 않아서 그 집을 단골로 삼았다. 고3은 어떤 특권이기도 하고 각오이기도 하다. 아마 두 번쯤 삭발을 했다. 대단한 각오가 있었다기 보다는 그냥 했다. 지금이나 그 때나 머리카락에 별 욕심을 내지 않았다.
군대에 있을 때는 직접 후임들 이발을 해주기도 했다. 군대 머리라는 것이 별 것 없고, 말년쯤 되니 심심하기도 했다. 대원 중에 임의로 이발병을 뽑아서 그 녀석이 보통 중대의 이발을 담당했는데, 이발병이 근무중이거나 하면 대충 손재주 있는 녀석들이 이발을 하기도 했다. 나는 손재주는 없었는데, 보기에 별로 어렵지 않았고, 나중에는 일도 별로 없으니 제법 심심하기도 해서 덩달아 했다. 보통 이발병이 이발을 해주면 고마움의 뜻으로 작은 군것질거리를 주곤 했는데, 나는 후임들에게 요구르트 주면서 제발 내가 이발하겠노라고 말하곤 했다. 바리깡 들고 이리 밀고 저리 밀면 어쨌든 머리카락이 짧아지기는 했으니까. 그러면 꼭 녀석들은 나한테 이발 받은 다음에 이발병 오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다듬고는 했다. 내 요구르트는 안 돌려주면서.
대학을 가고, 군대를 다녀와서 처음 머리를 볶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얼굴살이 없었는데, 말하고 행동하는 것과 섞여서 인상이 너무 강했다. 나는 모르는데 다들 그랬다고 했다. 어쩌자고 처음 머리를 볶았던 것인지 기억나지 않는데, 철사같이 곧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으니 부드럽게 물결치는 머리카락이 한 번쯤 부러웠던 것일 테다. 그렇게 머리를 볶은 다음이었는데, 지나가던 후배가 한 마디 했다.
"어, 선배. 이제 안 무서워 보여요."
아, 파마는 나의 운명이 되었다. 그리고 졸업할 때까지 일 년에 한 두번은 꼬박꼬박 머리를 볶았다. 살짝 염색을 한 적도 있었는데, 파마와 염색을 동시에 하니 머리결이 막막 갈라지는 것이 감당이 안 됐다. 그래서 이후에는 염색을 하지 않았다.
중국에 온 이후, 처음 온 상황에서 아무 곳에나 가서 이발하기가 무서웠다. 그 때 내가 본 것들이라고는 길가에 이발용 의자 하나 꺼내놓고 벽에 거울 걸어둔 다음 이미 회색도 한참 지난 것 같은 흰색 천으로 목부터 감은 후 기계식 바리깡을 들이미는 풍경들이었다. 기계충이라는 것도 생각났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머리카락이 길어졌다. 샤워 안 하고 따로 머리만 감는 일이 없으니까, 긴머리라고 해서 머리 감기가 더 번거롭지도 않았다. 오히려 긴 머리카락이 좋을 때도 있는데, 짧은 머리는 낮잠을 마음대로 잘 수 없다. 꼭 한 쪽이 눌려서 밖에 나가거나 사람 만나면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긴 머리는 묶으면 그만이라서 마음껏 낮잠을 잘 수 있다. 묶은 머리끈 아래로 한 줌쯤 되는 머리카락을 덜렁거리며 처음 집에 갔을 때 부모님은 깜짝 놀라셨고, 집 밖에 못 나가게 하셨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곧장 카드 쥐어주시면서 미용실로 보내셨다. 자르고, 볶고 돌아왔더니 어찌나 표정이 밝아지시던지. 시간이 지나서, 이제 부모님도 어지간한 머리 스타일에는 면역이 되신 듯하다. 한 번은 머리를 안 묶일 만큼 자르고 볶아서 갔더니, 아버지께서
"요번에는 스타일이 좀 다르네?" 하고 마셨다.
이제는 특별히 머리카락에 집착하지 않으니까 때마다 되는대로 깎는다. 그 뒤로 두어 번은 삭발도 했다. 너무 더워서 도대체 머리카락을 감당하기 싫었다. 떼어낼 수 있는 것은 뭐든 치워내고 싶었다. 밀어달라고 말했더니 미용실 사람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제법 목까지 오는 머리였다. 그걸 저기 옆에 서 있는 삭발 아저씨를 가리키며 저렇게 해달라고 했으니. 짧은 머리는 되려 더 자주 이발해야 하고 낮잠이라도 자면 바로 증거를 남긴다. 무엇보다, 이번에도 삭발을 할까 했더니 지난 번 머리를 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말린다. 이상하다. 그 때는 괜찮다고 말했던 그 사람들인데. 완전히 밀어버린 머리카락이 자라서 다시 묶을 만큼 되기에는 2년 정도 걸리는 것 같다.
직접 머리카락을 자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이발할 때가 되면 당연히 이발소든 미용실이든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왜 직접 자를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해봤을까? 가만 보면, 사람마다 머리카락은 비슷한 자리에 비슷한 모양으로 있는데, 그 비슷한 것들 속에서 어떤 차이를 만들어 내려니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또, 어떤 형태도 없이 그저 머리 위에 얹어둔 것 같은 남성들의 고만고만한 머리카락을 보면 어째 좀 아닌 것도 같다. 어쨌든, 기억하는 한에는 처음으로 내 손으로 가위를 쥐고 머리카락 한 웅큼을 잘라냈다. 묶은 후에 남은 부분은 자른 거라서 주로 뒷머리 부분이 잘려나갔다. 짧은 단발이 되었다. 별로 이상해 보이지는 않으니 다행이고, 묶으면 그나마 안 보이니 문제도 아니다. 문제가 되면 또 대순가? 머리카락은 자란다.
2010.07.17 07:51
웹진은, 7, 8월 두 달 동안 정돈해서 9월부터는 제대로 시작하려고 한다. 글을 써줄 사람들 대부분이 잠시 동안 한국으로 돌아가서 지금은 일지.를 제외하면 개점휴업이다. 그 사이에, 보아서 그럴 듯한 틀을 마저 다듬고 앞으로 올라올 원고들을 편집하는 틀도 만들어 두어야 한다. 꾸준히, 정기적으로 쓰도록 필진들도 다독여야 하고 좀 더 심사숙고한 원고들이 나올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맞춰 두어야 한다.학부유학생들을 좀 만나보아야 하고,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공부 목록도 꾸려 보아야 한다.
에프상하이의 이서방에게 지나가는 말로 사진영업을 부탁했더니 진지하게 고려해 주겠다고 했다. 내가 작업한 호텔 인테리어 사진들을 포트폴리오로 만들면, 상하이와 주변 지역 4, 5성급 호텔 홍보팀에 전화해서 담당자 연락처를 받고, 그들에게 내 포트폴리오를 보내주면 되는 일이다. 초기 한 달은 별도의 금액을 지불하고, 이후에는 각 계약건에 대해 인센티브 방식으로 지급하겠다고 말했다. 일 좀 해야지.
지난 홈페이지를 다시 보게 된 것은 많은 자극이 된다. 더 좋은 조건에 있는 지금, 그 때보다 더 적은 결과물을 내고 있다는 것은 완성도의 문제를 떠나 게으름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 때 찍은 사진은 너무 서툴고 그 때 쓴 문장들은 너무 부풀었더라. 그래도 반성하게 되는 것은, 왜 그 때처럼 따뜻한 사진들을 더 찍지 못 하는 것일까? 왜 그 때처럼 살가운 말들을 이제는 건네지 못 하는 것일까? 그 때보다 사진은 무서워졌고, 그 때보다 문장에 대한 결벽증이 심해졌다. 같은 사진, 같은 문장을 만들지는 못 하겠지만, 그 때처럼 찍고 쓸 수 있도록 애써 보아야겠다.
암장에서는 두 달 정도 별도 레슨을 받을 것을 추천했다. 그저 힘만으로 벽에 붙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필수적인 기술들이 있고 그 기술들은 단지 오래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아마 그래야 할 모양이다. 그래도 다른 운동에 비하면 두 달 정도만 배워서 기본을 몸에 익힐 수 있다는 것은 비교적 쉬운 것이다. 신발과 분가루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거의 맨몸으로 벽에 붙어 한 뼘씩 나아갈 때 몸이 참 홀가분하다.
새로 주문한 책들에 떠밀려서 이번 여름에는 책을 좀 부지런히 읽기로 했다. 마침 바쁜 일도 없으니 두어 시간에서 대여섯 시간까지 책을 본다. 책들은 두껍고 속의 말들은 어려워서 빨리 읽히지 않는다. 자꾸 욕심만 나서 하루에 여러 권을 함께 뒤적이니까 진도는 더 안 나간다. 아침에 책장에서 빼서 대충 보다가 저녁에 다시 집어넣는 책이 여러 권이다. 하루를 세 등분으로 나누고, 첫 시간에는 주로 책을 보고, 낮 시간에는 다른 볼일을 보고, 저녁 시간에는 사진작업을 하는 형태의 생활을 구축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욕심난다고 하루 종일 책을 붙들고 있는 것보다, 하루에 두어 시간 이상 꾸준히 읽어나갈 수 있도록 틀을 만드는 작업이 더 필요하겠다.
2010.07.16 22:54
우수님이다. 지난 내 사이트에서 찾았다.
이번 사진 스터디를 끝내며,
저도 이렇게 사진을 배웠습니다. 제 선생님께서 본인의 스튜디오를 개방해서, 사람 손 타면 망가지는 그 장비들을 마음껏 쓰게 하시고, 찍은 사진 보면서 야단 치시고 다시 찍으라고 하시고, 밥 사먹여 주시면서 데리고 여기 저기 다녀주시면서 그렇게 사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도, 그냥 받은 대로 돌려드리는 겁니다.
말했다.
중국에 와서 제일 처음 찍은 내 사진은, 맹인 얼후 연주자 앞에서 사진 허락을 받고 찍은 한 장이다. 앞을 못 보는 연주자는 시끄러운 도로변에 앉아서 얼후를 연주했는데, 되지도 않는 중국어로 무슨 이유에선지 그 앞에 가서 나를 소개하고 사진 허락을 받았다. 연주자는 내 카메라를 보지 못 할 것이고, 자동차의 소음은 셔터 소리를 감출 것인데 어쩐지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할머니와 눈맞추고 계신 우수님 사진을 보니, 내가 왜 그랬는지, 누가 내게 그러라고 세뇌시켰는지 비로소 알겠다.
같이 있으면 언제나 우수님 우수님 했는데, 마음 속에서 우수님은 언제나 선생님이셨다.
여기 사람들에게도 우수님을 소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수님 사진 아래는 이렇게 적혀있다.
새벽 다섯 시 생선 경매장.
날도 추운데 뭐 할려고 나왔냐는 우수님 말에,
노할머니께서는
"심심해서 구경할라꼬 나왔다 아이가."
답하셨단다.
그리고, 웃으셨단다.
피사체에 다가서기 위한 기술로써 뿐만 아니고, 그것보다
사람을 알기(智) 위한 감성으로써
한 발 가깝게 서서 웃음에 공감해야 한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의 깊게 패인 주름을 서투르게 담아두고
"인생"이니 "여로"니 따위의 제목으로
닳아진 외투에 신문지 덮고 있는 노숙자를 몰래 담아두고
"생의 뒷골목"이니 "그의 겨울"이니 따위의 제목으로
어설프게 조롱하면 안 된다.
길지 않은 길이라도 같이 걸어 보고
모자란 두어 마디 인사라도 건네 보고
그게 힘들다면 하다 못해
한 자리 가만 서서 눈이 아릴만큼 그의 얼굴을 바라본 후에
그렇게 한 후에야 조심스레 셔터를 눌러도 될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런 사진이
참 오래도록 꼭 같은 무게로 맘에 남을 것 같다.
사진찍는 사람은 모쪼록
그래야 할 것 같다.
040129 거제도
모델 - 우수님. 도촬...-.-;;
모델료를 드려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려중... ^^
2010.07.16 22:42
몇 년 전에 쓰던 홈페이지에 문제가 생긴 것을 오늘 알았다. 이제 쓰지 않는 공간이지만 접근만 차단되어 있을 뿐, 여전히 있기는 한 곳이다. 스팸 댓글을 생성하는 프로그램에 걸려서 게시물마다 댓글이 적게는 수 십 개에서 많게는 수 천 개씩 붙어 있었다. 현재 홈페이지와 블로그 역시 같은 서버를 쓰고 있어서 여기까지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다른 게시판들은 그나마 쓰기 권한이 내게만 있어서 나았는데, 방명록 게시판은 난장이었다. 제로보드 사이트에서 해법을 찾아보았지만 뾰족한 수는 없는 듯했다. 결국 스팸 댓글이 많이 달린 게시물을 삭제했다. 몇 년 동안 모였던 안부 인사 중에 1/3 정도를 삭제했다. 안타깝고, 미안했다. 내가 기록에 집착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았다.
몇 시간 동안, 잊었던 그 곳을 찬찬히 다시 보았다. 다 보지는 못 했다. 그 때, 나는 참 부지런하고 에너지가 있었던 모양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짓을 어찌 그리 열심히 했는지. 사진 에세이도 많이 썼다. 문장들은 어찌나 닭살스럽게 억지 멋을 부렸는지. 지금 다시 그렇게 못 하는 이유를 생각하니까, 우선 사진을 좀 더 알게 되어서 그렇다. 부지런히 찍어도 좀처럼 마음에 드는 사진이 잘 안 나온다. 물론 그 때보다는 카메라를 무겁게 느끼고, 항상 휴대하지 않는 게으른 탓도 있다.
가장 애착이 남는 게시물들은 역시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 사람들이 남겨준 안부인사를 살피다가, 한국에 있는 텃밭 누나에게, 지미에게, 우수님에게 전화했다. 통화는 텃밭 누나만 됐다. 이 녀석이 왜 갑자기 전화를 하나 싶었겠다. 다들 그리워서 그랬는데.
이미지는, 게시판들 중에 사람에 대한 이야기만 따로 모아서 올려두던 게시판의 메인 이미지다. 실루엣으로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과 얼굴과 목소리와 느낌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그 무렵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뭐라고 할까? 그 좋은 카메라로, 그 실력으로, 그 한가함으로, 그렇게 좋은 피사체들이 많은 땅에서 왜 너는 그렇게도 게으른 사진을 찍고 있냐고,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화를 내지 않을까.
2010.07.08 21:11
감기몸살을 앓았다. 몇 주쯤 전에 몸이 살짝 불안했었다. 어쩌면 감기가 올 모양이라고 생각도 했었는데, 그냥저냥 움직이니 하루 이틀쯤 지나고 어떻게 다시 움직일 만했었다. 그리고 끝난 줄 알았다. 잔기침이 생겼다. 무슨 일인가 했다. 에어컨을 새로 틀어서 그런가 싶기도 했다. 그 몸으로 자전거도 잘 타고 다니고 암장에서 벽도 탔다.
지난주 어느 날에 갑자기 기침이 심해졌다. 앉아 있어도 기침이 나고 길을 걸어도 기침이 나서 이상했다. 감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러기엔 몸은 제법 힘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서야 알아챘다. 아, 왔구나. 이틀 정도는 기침이 너무 심해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열도 나고 힘도 없었다. 에어컨을 끄고 일부러 땀을 흘리면서 시체처럼 이틀을 지냈다. 그런데도 몸은 별로 차도가 없으니 슬슬 짜증이 났다. 이 만큼 성의를 보였으면 낫는 척이라도 해얄 것 아니냐. 더 누워 있는다고 될 것도 아니어서 그냥 암장 갈 것 가고 대신 밥을 든든하게 먹었다. 약도 얻어 먹었다. 가능한 쉬었다.
오늘로 일주일쯤 되었다. 시작하던 그 때처럼 약간의 잔기침이 남은 것을 빼면 대충 다 나은 듯싶다. 아침에 미팅을 하나 하고, 빌어먹으실 아이폰을 또 수리하고, 식빵도 샀다. 오후 늦게 들어와서 낮잠도 좀 자고, 책도 보고 저녁 운동도 했다. 거의 일주일 동안 꺼져있던 앰프도 켜서 새 음악도 듣는다. 피빨아서 배 불뚝한 모기도 한 마리 잡았다.
올 만했다는 생각이 든다. 몇 달 잘 놀았다. 다니기도 여기 저기 다니고 일도 이 것 저 것 했다. 신나게 움직였으니 몸살 한 판쯤 앓아주는 것도 그럴 만하다 싶다. 이제 대충 수습했으니까, 다시 몇 달을 신나게 움직여야겠다.
2010.06.28 08:12
장마인 모양이다. 며칠 전부터 비가 오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다. 가끔 비가 그쳐도 하늘은 여전히 낮고 어두워서 언제든지 다시 비를 쏟아부을 것 같다. 다음주 일기예보를 보아도 계속 비가 온다고 하니 당분간 빨래는 잘 안 마를 모양이고, 당분간 밖에서 움직이는 일이 번거로울 모양이다.
6월도 끝물이다. 작년에도 그랬던 것 같은데, 올해도 유난히 빨리 간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딱히 무엇을 많이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시간은 참 잘 간다. 지금이 내 삶의 신나는 한 때라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느리지만 분명한 것은, 조금씩 더 부지런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7월이 오기 전에,
우선 메일 몇 개를 정리하고 소식 몇 개를 보내야 한다.
앞으로 두 달 정도 별다른 스터디가 없으니 그 동안 읽어야할 책들의 목록을 만들고, 나를 등 떠밀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웹진의 틀을 제대로 구축할 계획을 세워야 한다.
2010.06.26 10:39
서늘하다. 며칠 연달아 비가 내려서 바깥이 많이 식었다. 그늘에 있어도 숨을 막아서던 습기도 물러가서 비는 오는데 상쾌하게 되었다. 창문들 닫고 자고 새벽에는 이불을 당겨 덮는다.
어제 이승희씨가 다녀갔다. 한참 멈추어있는 책 원고에 대한 의견을 물었는데, 다들 비슷한 모양이다. 중심을 잡아야 하고, 타겟을 확실히 해야하고, 좀 더 쉽게 읽힐 수 있어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리고 오늘 새벽 비몽사몽 중에 갑자기 원고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서둘러 깼다. 벌떡 일어나서 거실로 나왔다. 상하이를 사진으로 말할까 보다. 사진을 많이 담는 책이 아니라, 사진적인 장면을 문장으로 풀어내는 작업이 되지 않을까 싶다. 먼지 쌓인 원고들을 챙겨서 원고 속에 등장하는 장소들로 다시 가야겠다. 자전거를 타고 가야겠다. 어디 길가에 앉아서 그 길의 질감을 문장으로 옮겨야겠다. 그리고, 오직 사진가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를 보태야겠다.
베토벤과 말러는 끝판대장처럼 남겨두려고 한다. 우선은 쉽고 인상적으로 들리는 드보르작과 차이코프스키를 좋아하며 듣는데, 베토벤은 대충만 들어봐도 도대체 어렵고 말러는 워낙 다들 어렵다고 하고 또 호불호가 분명해서 시작도 못 하고 있다. 그러다가 어제 지나갈 일이 있어서 말러 교향곡 두 개를 사 왔다. 분석하며 들을 생각은 꿈도 못 꾼다. 다만, 말러의 교향곡들은 감정을 분해하고 해석해서 전하는 것이 아니라 폭풍처럼 몰아친다니까, 현대 회화쯤 되지 않나 싶고, 현대회화라면 제법 즐길 수 있으니까 말러도 어떻게 되어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진다. 교향곡을 들을 때는 밤 시간에, 볼륨을 높이고, 방 안에 불은 모두 끄고, 거실 가운데 서서 리모콘을 한 손에 들고 지휘하듯 듣는다. 온몸으로 들으면, 교향곡이 좀 더 가까이 들린다.
새로 온 책들을 보는데, 아무래도 좀 무게가 있는 책들은 뒤로 미루게 되고 가볍고 흥미로운 책들을 먼저 보게 된다. 일해야 되는데 일도 안 하고 본다. 균형을 좀 맞춰야겠는데, 가벼운 책들은 언제 봐도 재밌으니까 화장실에 있을 때나 토막 시간에 잠깐씩 보고, 제대로 책상에 앉아 있는 동안에는 읽고싶은 책보다 읽어야 되는 책들을 좀 보는 것이 맞다. 잘 안 되지만.
암벽화를 샀다. 암벽화는 일반 신발과 달라서 마찰력을 극대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발의 맨 앞과 맨 뒤의 힘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아주 작게 신는다. 그래서 신고 있으면 발가락이 아프다. 실내암장에 가서 매달려 봤는데, 처음에는 그럴 듯해보여도 잠시만 운동하면 곧 손 끝에 힘이 빠져서 버티기 힘들다. 한 동안 몸이 적응해야 제법 벽을 타겠다. 전신 운동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팔 힘이 충분하지 못 해서, 팔의 체력에 맞추니 하체는 거의 놀다시피 한다. 덕분에 두어 시간 운동하고 나와도 팔만 좀 버겁고 기분으로는 자전거라도 두어 시간 더 탈 것 같다. 자전거를 타고 암장까지 가서 벽을 타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면 되나? 사실 실제 암벽 등반에는 거의 관심이 없고, 실내 암장에서 운동삼아 하는 것이 딱이다. 그런데 자꾸만 쇼핑몰에서 새 배낭을 검색하고 있다. 나는 그런 적이 없는데, 요즘 들어 지름신께서 우리 집에 세들어 사는 것 같다.
2010.06.25 07:16
지난 밤에 일찍 자서 새벽에 일찍 깼다. 일도 조금 하고, 마침 비가 잠시 그쳐서 새벽 산책도 하고 아침도 먹었는데 시계 보니 이제 7시다.
큰 선물이라도 받은 기분이다.
2010.06.23 15:08
주문했던 책들이 왔다. 처음 이용해본 택배는 조금 버벅대기도 했다. 한꺼번에 많은 책들이 오니까 그 중에 바깥쪽 몇 권은 제법 모서리가 무너진 것도 있다. 그래도 어쨌든 다들 큰 탈 없이 왔다. 책이 서른 네 권이고 음반이 네 장이다. 그리고 책에 딸려오는 사은품이 네 개다. 주문서에는 모두 마흔 두 개가 적혔다.
하나씩 꺼내서 오늘 날짜를 적었다. 내가 내 돈 주고 오늘 구입했다는 표시다. 책장에 남은 공간에 아슬아슬해서 옆 방에 있는, 옷정리함으로 쓰는 좁은 책장을 가져올까 하다가 억지로 대충 넣으니 들어는 간다. 다음 책들을 살 때쯤이면 책장이 더 필요하게 될지 모르겠다.
미학스터디 맴버들은 요상맞은 커리큘럼을 짰다. 미학책 1년쯤 읽으니 질린다고 좀 더 가벼운 책들로 가기로 했다. 서로 평소에 마음에 둔 책들을 아무렇게나 두어 권씩 말하다 보니 별 것이 다 나온다. 덧붙여 러시아 소설을 좀 보자고 했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은 그래서 온 것들이다. 두껍다. 안나 카레리나는 세 권이고, 죄와벌, 전쟁과 평화,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두 권씩이다. 톨스토이의 회고록은 아주 얇은 한 권이다. 돈 아깝다. 솔직히, 다 내 돈으로 사게 될줄 미리 알았다면 저 소설들을 사는 것은 심각하게 다시 고민했을 테다. 작지 않은 번거로움이 있더라도 중고를 구입하는 방법을 고려했을 것이다. 한국의 책들은 너무 화려해서, 도대체 그럴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 너무 겉치장만 해서 값을 올린다. 그러니 사고 싶은 마음이 드나 어디. 저 두꺼운 것들만 어떻게 했어도 10만원은 아꼈겠다. 그나저나 저것들을 언제 다 보나? 저것들 다 읽으면 러시아의 색을 조금은 알게 되나? 문학도 문학이지만 그 나라 음악도 위대하니까 왜 유독 그 나라는 그런가 궁금하다. 추운 곳이라서, 겨울 되면 밖에 못 나가니까 집 안에서만 놀아서 그런가?
발터 벤야민의 전기소설, 노무현 대통령의 자서전, 한 역사학자의 자서전, 연암의 서간집, 재기발랄한 인터뷰집도 왔다. 가볍게 읽고 든든하게 챙길 수 있는 책들이다.
이번 여름 동안 니체를 좀 알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두어 권 주문했다. 갖고 있는데 읽지 않은 니체가 여러 명이니까, 다 모아서 읽으면 윤곽이라도 잡지 않을까?
이상한 이론서들 몇 권도 있다. 문학스터디에서 다음 학기에 볼 책들이고, 또 두어 권은 평소에 마음에만 두었다가 이 참에 주문한 것들이다. 표지만 보고 구석에 던졌다. 내가 보면서도 도대체 이런 책을 왜 보는지 가끔 이해하기 싫다.
미학에 관련된 책은 세 권쯤 된다. 특히 그 중에 수학을 아름다움과 연결시킨 책이 끌린다. 예술의 구성 방식에 대해 말할 때 모방 표현 형식 세 가지를 주로 드는데, 수학은 아무래도 형식과 닿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 말이, 상대성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미학이었다니까.
주문한 음반들은 모두 한 가닥 하는 것들이다. 음악이나 예술의 바탕에는 그 감상을 통해 얻는 감동이 있을 것인데, 피부에 직접 와 닿는 1차원적 감동은 당분간 그냥 신경 안 쓰기로 했다. 음악도, 독서도 공부하는 마음으로 듣고 읽기로 한다. 황병기의 가야금 작품집 3집. 미궁. 집시 바이올리니스트 라카토시의 앨범 한 장. 그리고 파비오 비욘디의 요란한 사계. 이렇게 세 장이다. 아직 뜯지는 않았다. 마침 옆 집에서 공사를 해서 드릴 돌아가는 소리, 컴프레셔 에어 충전하는 소리 때문에 난리도 아니다. 저녁 때 조용하게 앉아서 불도 끄고 차분하게 노트 펴 놓고 들어봐야겠다.
시켜놓고 보니, 쌓아두고 보니 마음이 넉넉하다. 다 읽으려면 오래 걸릴 것이고, 개중에는 결국 못 읽어내고 빚처럼 남는 책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집착이니 뭐니 해도 책은 그냥 편하게 집착하고 말아야겠다.
2010.06.23 15:03
주문했던 책들이 왔다. 처음 이용해본 택배는 조금 버벅대기도 했다. 한꺼번에 많은 책들이 오니까 그 중에 바깥쪽 몇 권은 제법 모서리가 무너진 것도 있다. 그래도 어쨌든 다들 큰 탈 없이 왔다. 책이 서른 네 권이고 음반이 네 장이다. 그리고 책에 딸려오는 사은품이 네 개다. 주문서에는 모두 마흔 두 개가 적혔다.
하나씩 꺼내서 오늘 날짜를 적었다. 내가 내 돈 주고 오늘 구입했다는 표시다. 책장에 남은 공간에 아슬아슬해서 옆 방에 있는, 옷정리함으로 쓰는 좁은 책장을 가져올까 하다가 억지로 대충 넣으니 들어는 간다. 다음 책들을 살 때쯤이면 책장이 더 필요하게 될지 모르겠다.
미학스터디 맴버들은 요상맞은 커리큘럼을 짰다. 미학책 1년쯤 읽으니 질린다고 좀 더 가벼운 책들로 가기로 했다. 서로 평소에 마음에 둔 책들을 아무렇게나 두어 권씩 말하다 보니 별 것이 다 나온다. 덧붙여 러시아 소설을 좀 보자고 했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은 그래서 온 것들이다. 두껍다. 안나 카레리나는 세 권이고, 죄와벌, 전쟁과 평화,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두 권씩이다. 톨스토이의 회고록은 아주 얇은 한 권이다. 돈 아깝다. 솔직히, 다 내 돈으로 사게 될줄 미리 알았다면 저 소설들을 사는 것은 심각하게 다시 고민했을 테다. 작지 않은 번거로움이 있더라도 중고를 구입하는 방법을 고려했을 것이다. 한국의 책들은 너무 화려해서, 도대체 그럴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 너무 겉치장만 해서 값을 올린다. 그러니 사고 싶은 마음이 드나 어디. 저 두꺼운 것들만 어떻게 했어도 10만원은 아꼈겠다. 그나저나 저것들을 언제 다 보나? 저것들 다 읽으면 러시아의 색을 조금은 알게 되나? 문학도 문학이지만 그 나라 음악도 위대하니까 왜 유독 그 나라는 그런가 궁금하다. 추운 곳이라서, 겨울 되면 밖에 못 나가니까 집 안에서만 놀아서 그런가?
발터 벤야민의 전기소설, 노무현 대통령의 자서전, 한 역사학자의 자서전, 연암의 서간집, 재기발랄한 인터뷰집도 왔다. 가볍게 읽고 든든하게 챙길 수 있는 책들이다.
이번 여름 동안 니체를 좀 알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두어 권 주문했다. 갖고 있는데 읽지 않은 니체가 여러 명이니까, 다 모아서 읽으면 윤곽이라도 잡지 않을까?
이상한 이론서들 몇 권도 있다. 문학스터디에서 다음 학기에 볼 책들이고, 또 두어 권은 평소에 마음에만 두었다가 이 참에 주문한 것들이다. 표지만 보고 구석에 던졌다. 내가 보면서도 도대체 이런 책을 왜 보는지 가끔 이해하기 싫다.
미학에 관련된 책은 세 권쯤 된다. 특히 그 중에 수학을 아름다움과 연결시킨 책이 끌린다. 예술의 구성 방식에 대해 말할 때 모방 표현 형식 세 가지를 주로 드는데, 수학은 아무래도 형식과 닿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 말이, 상대성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미학이었다니까.
주문한 음반들은 모두 한 가닥 하는 것들이다. 음악이나 예술의 바탕에는 그 감상을 통해 얻는 감동이 있을 것인데, 피부에 직접 와 닿는 1차원적 감동은 당분간 그냥 신경 안 쓰기로 했다. 음악도, 독서도 공부하는 마음으로 듣고 읽기로 한다. 황병기의 가야금 작품집 3집. 미궁. 집시 바이올리니스트 라카토시의 앨범 한 장. 그리고 파비오 비욘디의 요란한 사계. 이렇게 세 장이다. 아직 뜯지는 않았다. 마침 옆 집에서 공사를 해서 드릴 돌아가는 소리, 컴프레셔 에어 충전하는 소리 때문에 난리도 아니다. 저녁 때 조용하게 앉아서 불도 끄고 차분하게 노트 펴 놓고 들어봐야겠다.
시켜놓고 보니, 쌓아두고 보니 마음이 넉넉하다. 다 읽으려면 오래 걸릴 것이고, 개중에는 결국 못 읽어내고 빚처럼 남는 책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집착이니 뭐니 해도 책은 그냥 편하게 집착하고 말아야겠다.
2010.06.22 21:58
도자기 빚는 곳에 다녀왔다. 바람소리 누나랑 보람이랑 같이 갔다. 보람이는 누나랑 친하다. 예전에 중국어를 배울 때 같은 학교에서 배웠다. 그리고 미국으로 그림을 공부하러 갔는데, 이번에 방학 동안 잠시 상하이 집에 왔고, 바람소리 누나랑 같이 놀았다. 나는 가가멜 스프같은 인도 커리를 먹는 집에서 누나 소개로 처음 만났다. 끼리끼리 논다고, 착한 속에 에너지를 품은 녀석이다. 누나랑 닮은 것도 같고 또 다른 것도 같다. 재미난 놀거리를 생각하는 두 사람 앞에서 툭 던진 말을 두 사람은 덥썩 물어서, 바로 떴다.
흙을 반죽하면서 공기방울을 빼고, 덩어리로 만든 흙을 물레 위에 올려서 돌려가며 그릇을 빚는다. 나는 무얼 만들까 하다가 스피커와 전등갓을 만들기로 작정했다. 집에서 갈 때 컴퓨터 스피커 유닛 하나를 떼어 갔다. 도자기로 인클로져를 만들면 그 소리는 짐작할 수 없겠지만, 특별하고 재미난 스피커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오로지 반사광만 나오는 작은 전등을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흙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세게 만지면 곧 망가졌고 약하게 하면 모양이 안 나왔다. 잘 안 되니까 오기가 생기기 보다는 될대로 되라는 심정이 되었다. 하다가 하다가 안 되니까 보기에 딱했는지 선생님이 다 해주다시피 도와주셨다. 스피커는 일찌기 포기했고, 전등도 될 게 아니더라. 가장 쉬운 걸로 하긴 해야겠는데 남들 다 하는 것은 또 하기 싫었다. 큰 쟁반을 만들었다. 가운데 작은 쟁반 하나가 더 담긴 모양이다. 그러니까 이게 완성되면 가운데는 밥을 담고 주변에는 반찬을 담을 수 있다. 가운데 국을 담고 주변에 밥이랑 반찬을 한꺼번에 담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밥 한 끼에 설거지 한 번만 하면 되는 놀라운 작품이 되는 거다. 도자기는 열흘 가까이 건조한 다음에 유약을 바르고 그림을 그려서 굽는다. 열흘쯤 뒤에 다시 한 번 더 소주로 가야한다. 보람이는 미국에 돌아가고 없을 테니까, 혼자 가거나 누나 꼬드겨서 가야겠다.
일주일이나 밀린 스터디가 오늘 있었다. 푸코의 성의역사. 1권을 다뤘는데, 스터디 시작하고 두어 시간 지날 때까지 성.이라는 단어는 한 번도 안 나오고 이야기는 온갖 곳으로 흘렀다. 맴버들이 방학이라고 한국으로 다들 가서 세 명이서 했다. 다 못 하고, 다음 주에 마저 하기로 했다. 다음 학기에 할 책들을 거의 확정했는데, 이번 학기보다 더 재미없는 책들이다. 허. 주문은 해두었다만, 정말 재미는 없는 책들이다.
암벽등반을 배우기로 했다. 지난주에 첫 모임이 있었다. 오후에 실내암장에 가서 실제 연습했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재미있다. 작년 여름 계림과 양숴로 1주일 동안 자전거 여행을 갔을 때 어깨를 다쳤다. 산에서 괜히 과속하다가 공중 2회전 해서 어깨로 추락했었다. 그 다음 날에 암벽 등반을 체험하는 코스를 예약했었는데, 결국 못 하고 왔다. 그리고 어깨 때문에 1년 동안 운동다운 운동을 할 수 없었다. 이제 거의 나아서 다시 해야겠는데, 검도를 다시 하자니 우선 너무 멀다. 게다가 검도는 일주일에 한 두 번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니까 도저히 현실적으로 어렵다. 수영을 하자니 지금 체력으로 하기에는 또 부담이다. 재미도 있어야겠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해도 무난한 운동을 생각하다가 암벽등반 모임의 시작 공지를 읽었다. 서너 달 정도 그냥 즐기는 수준에서 배우고 기본적인 장비 사용법만 익히려고 한다. 그 다음에는 주로 실내 암장에서 볼더링(로프를 쓰는 높은 벽을 타는 것이 아니라, 메트가 깔린 낮은 곳에서 암벽 스킬을 익히는 훈련을 말한다) 위주로 운동하려는 것이 계획이다. 우선 암벽화와 등산용 분가루만 구입하면 된다.
2010.06.19 23:40
일 좀 하겠다고 다 저녁에 커피를 한 잔 마셨더니 제대로 걸려서 잠이 안 온다. 큰 컴퓨터 끄고 정면으로 돌아앉아서 음악 틀고 원고를 쓴다. 쓰다가 인터넷 켜서 여기 좀 들락거리고 저기 좀 들락거리니까 문장은 진도 나간 것이 없고 시간은 잘 때를 넘겼다. 내일도 새벽에 깨야 되는데 이 모양이다.
간단하게라도 정리해 두어야 할 메모가 두 개 있는데, 하나는 벌써 한 달쯤 전에 있었던 발제 중에 '댄디'에 대한 내용이고, 다른 것은 '클래식의 신화'에 대한 것이다. 댄디.는 참 재미있는 돌연변이 같은데, 도닦는 것 중에 외형으로 도 닦으려 했던 것은 아마 그들이 유일하지 않나 싶다. 미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기특하기도 하고, 다르게 보면 우습기도 하다.
하우저의 문장 중에, 젊은 예술만이 대중이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허락한다는 내용이 있다. 상당히 그럴 듯한데, 그러니까 그 역사가 가장 오랜 회화와 음악은 이미 늙어서 대중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하우저는 하나의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역사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이어서 썼는데, 그러니까 클래식이 어렵대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 진입장벽은 높고, 그 밖에 있는 것들을 어느 정도는 소외시킨다. 재즈가 그 밉살스러운 왕관을 물려받으려고 한다.
대충 적어두고, 나중에 그럴 듯한 주석 좀 찾아가면서 적어야겠다.
게으름은 유전자에 새겨진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아마도 어릴 때부터 생겨난 습관일 것 같은데, 괜히 변명이라도 하려면 유전자 탓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러니까, 게으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벼락치기 하는 사람과 차근차근 해내는 사람은 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더 이상 부지런하려는 노력 따위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만둘 수 있겠는데. 아마 아니겠지?
웹진에 사람 모으는 재미가 있다. 아마 9월쯤에 정식으로 소문을 낼 것 같은데, 그 전까지 되도록 여러 사람을 모아서 좀 살가운 마당을 만들어 둘 수 있으면 좋겠다. 바람소리 누나와 보람이를 며칠 전에 꼬드겼고, 오늘은 또 새 사람 한 명에게 바람을 넣었다. 아마, 막강한 사람일 모양이다. 사람들이 모여서, 처음 작정한 만큼 서로에게 버팀이 되고 또 신나는 바람이 되어 주면 좋겠다. 되어가는 꼴을 보니, 아마 될 모양이다.
2010.06.16 22:10
어도비의 페이지 편집 프로그램 인디자인.을 설치하려다가 실패했다. 뒷문으로 하려다가 그랬다. 예전에는 잘 해서 썼는데 그 동안 뭐가 달라졌나 보다. 덕분에 같은 시리즈로 묶여 있는 포토샵까지 폭파됐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새로 나온 최신버전을 구해야겠다.
책 주문했다. 개인적으로 욕심나는 책들, 스터디 때문에 볼 책들을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한참이 지났다. 지나는 동안 책은 한 권씩 두 권씩 불어나서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내 책 구입은 전통적!으로 어머니와 누나에게 제법 신세를 졌는데, 이번에는 누나가 반쯤 해주기로 약속했다. 그 말만 믿고 이 책 저 책 막 주워담았다. 그런데 결제하려고 보니 얼마 이상은 공인인증서를 내라느니 막 복잡하게 해서, 어쩔 수 없이 한국 내 통장에 있는 돈으로 계좌이체하고 말았다. 책값이 60만원이다. 저녁이 우울했다. 다음에 한국 가면 대신 다른 책들을 사고, 누나 카드로 긁어야겠다. 봐주겠지 뭐.
은행카드를 잃어버렸다. 일 년에 두어 번은 꼭 현금인출기 안에 넣어두고 그냥 온다. 대부분의 경우는 은행에 가서 되찾아 오는데, 이번에는 없었다. 재발급을 신청하고, 손에는 현금 천 원이 남았는데, 새 카드를 받을 때까지 일주일 동안 천 원이면 충분하니까 별로 걱정은 안 했다. 조수 월급을 주긴 해야되는데 사정을 이야기하고 다음주에 주기로 했다. 그리고 어제, 인터넷이 끊겼다. 한 시간쯤 기다렸는데 복구가 안 되어서 전화해 물어보니 전화비가 넉 달이나 밀려 있었다. 인터넷은 써야 되니까, 자전거 타고 전화국에 가서 전화비를 냈다. 두어 달만 우선 내고 어떻게 해보려고 했는데 정지된 회선은 밀린 요금 전부를 납부해야 된다고 했다. 넉 달치 600원 조금 넘는 돈을 내고 나니 남은 돈은 채 100원이 안 됐다. 통장 들고 은행가서 찾으려니까 막상 간 곳이 VIP서비스 전용 지점이란다. 별 게 다. 같이 있던 바람소리 누나가 500원 빌려줘서 그냥 그걸로 쓰기로 했다. 이자 쳐서 줘야겠다.
방학이다. 나는 일하는 사람이니까 방학이 없는데,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 중에 학생들이 많아서(석박사 과정이라도 학생은 학생이다) 그들이 방학이니까 덩달아 방학이다. 진행하던 스터디들이 멈추고, 사람들이 한국으로 돌아간다. 몇 달 동안은 등떠밀려 읽어야 되는 어려운 책이 없어진다. 그러니까 그 동안, 다른 밀린 책들을 좀 보려고 한다. 마음은 그렇다. 순서를 짜고, 매일 두어 시간은 음악 틀어두고 그 앞에서 책을 보겠다는 각오. 그래서 몇 사람 뭉쳐서 일지.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자고 말했다. 게으르기 좋은 무렵이니까, 하루에 읽은 책, 하루에 들은 음악, 하루에 찍은 사진, 하루에 먹은 음식 따위를 제맘대로씩 적어서 여러 사람이서 하루를 기록해 보자고, 그걸로 서로에게 좀 부담감을 주고 자극이 되자고 말했다. 다시 생각하니 좀 우스운 짓이기는 한데, 그래도 내가 확실히 신뢰하는 몇 가지 중에 하나가 내 게으름이니까, 극복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해보려고 한다.
별 것도 아닌데 괜히 마음을 막아서서 다른 일을 못 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엑스포 원고도 그랬다. 특별히 어려운 것도 아니고, 취재도 다 해두었고, 내용도 있었고 사진도 있었다. 그냥 쭉 이어서 쓰고 말의 앞뒤만 이어두면 되는 것이었는데, 오래 걸렸다. 마음에 숙제처럼 걸려서 그 동안 괜히 다른 일도 못 하고, 마감은 벌써 넘겼고 그랬다. 다 적었고, 어쨌든 보냈다. 엑스포는 오래 하니까, 이번 달에 안 나가면 아마 다음달에 나갈 수도 있겠다. 청탁한 친구에게 미안하다.
새벽에 사진스터디 맴버들과 타이캉루에서 사진 찍었다. 상업촬영 아닌 촬영은 참 오랜만이었다. 세 시간쯤 찍었는데 도대체 아무 것도 읽히지 않았다. 돌아와서 보니 역시나 마음에 드는 사진은 한 장도 없다.
2010.06.03 05:09
자야지 자야지 하면서 개표 속보를 봤다. 온갖 사이트에서 많은 사람들이 밤새 개표현황을 중계해주었다.
서울에서, 경기에서,
졌다.
그들은 다시 강을 헐어낼 것이고,
그들은 계속 가상의 적을 부풀려 국민들을 전장으로 내몰 것이다. 그들은 뒤에 숨어서.
그들은 계속 광장을 막아두고 일방적 강제를 계속할 것이고,
그들은 계속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불법적인 수단을 독점할 것이다.
밤 내내 개표속보를 보면서 빠져나오기 힘든 패배감에 젖었다.
밉다. 참 밉다.
그 사람들, 사태를 방관한 사람들 다 밉다.
자야겠다.
2010.06.02 21:54
오늘 아침까지 넘기기로 했던 원고가 있다. 엑스포를 주제로 한 것인데, 외국인의 시선으로 본 엑스포 관람기라고 했다. 내용은 아무렇게나 써도 된다고, 절반 이상이 비판 내용만 아니면 된다고 했다. 이 곳에서 몇 년 살다보니, 몇 개 쓰다보니, 자체검열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민감한 내용, 긁어 문제될 내용은 시작부터 빼고 가게 된다. 그래서, 압박이란 것이 무서운 것이다.
이틀 전 월요일 하루 종일 엑스포 현장에 있었다. 원고 재료를 모으고, 사진도 찍었다. 월요일 밤, 화요일 오전 정도 써서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분량도 적지 않은 데다가 다른 일들이 겹쳐서 결국 못 했다. 오늘 새벽에 일어나서 쓰려고 했는데 어영부영 필요한 추가 자료 모은다는 핑계로 오전을 보내고, 오후 늦게 다른 인터뷰 다녀오니 또 밤이다. 꼭 쓰고 자겠다고 커피도 한 캔 사 왔는데, 모니터 두 개에 인터넷 창 여러 개를 열어놓고 실시간 개표방송과 관련 속보들을 보고 있으니 시간은 자꾸 잘도 간다. 생각보다 선전해주는 것은 고마운데, 몇몇 곳은 어쩌면 안 될 모양이다.
개표방송보다 더 인상적인 곳은 여러 사이트의 자유게시판들이다. 오디오 사이트도 유머 사이트도 자전거 사이트도 모두 한마음이다. 모두 간절하고, 모두 기뻐한다. 뉴스보다 빠르게 관련 소식들이 올라오고 기대에 찬 희망가들을 부른다. 고맙다.
인상적인 댓글이 있었다.
"서울시장 한명숙. 경기지사 유시민. 충남지사 안희정. 강원지사 이광재. 경남지사 김두관. 인천시장 송영길
이 분들이 청와대 첫 지자체장 회의 때 그 대문을 걸어들어가는 장면을 생각합니다.
왕의 귀환. 노무현의 귀환입니다."
원고는 아직 반도 못 썼는데, 어쩌겠는가. 같이 축배라도 들어야지.
2010.05.31 23:46
며칠 전에 개판쳤던 사진이 있다. 그래도 어떻게 작업은 끝났고, 끝났으니 아쉬운 대로 수습은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일이 좀 더 커질 모양이다. 반쯤 노닥거리며 반쯤 산책하면서 엑스포 현장에 취재하고 있었는데 연락이 왔다. 클라이언트 호출이다. 중간에서 조율하는 친구가 아마 꽤나 걸러주고 있는 모양인데, 그래도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도대체 수습할 수 없는 수정 방안을 이야기하며 우선 와서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댄다. 내일 점심 때 촬영한 사진들을 모두 가지고 가겠다고 했다.
더 비참한 것은, 명백한 내 실수가 몇 개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껏 해둔 다음이라면 차라리 역부족이라고 생각하고 넘기겠지만, 차마 적기에도 민망한 초보적인 실수 몇 개가 겹쳤다. 사진은 두 번 꺼내보기 싫을 만큼 잘 못 나왔다. 새로운 경험이니까 결과물이 어쩌면 아쉬울 수 있다는 예상도 못 한 것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경험과 상관 없는 실수들이 잇따라 있다는 데는 어떤 핑계도 가져다 붙일 게 없다.
얼마 전 술마시면서, 세상 참 자신있다고, 주눅들어 있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 않냐고 호기를 부렸다. 생각해 보면, 무섭지 않았던 때가 별로 없었던 것도 같은데 나는 술 두어 잔에 무슨 호기를 그렇게 부렸던 것일까. 날마다 내가 과연 길 위에 있기나 한지 불안한데.
왜 책을 읽고 왜 돈벌이가 아닌 다른 일에 열을 올리는지 알 것도 같다. 못 해도 누가 뭐라고 안 하니까 그런 거다. 목숨 거는 비장함 같은 것도 필요 없고, 순간마다 조여오는 압박감도 없으니까 그런 거다. 즐기면서, 책임같은 것도 없이, 그리고 게다가 의미까지 더해지니까 제법 그럴 듯해 보였던 거다. 모든 걸 걸지도 않고, 매번 마지막 승부를 거는 긴장도 없잖나. 인생의 큰 비밀을 알아버린 것일까.
하루 종일 참 재미나게 엑스포 현장을 돌아다녔는데, 다 저녁에 전화 한 통으로 기분은 산산조각이 났다. 밥맛도 안 생기고, 사진도 그냥 막 찍고 대충 집에 가고싶어졌다. 원고는 이미 접었고. 일로 찍는 사진을 제대로 못 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비참했고, 전화 한 통에 뿌리도 없는 갈대처럼 휙 휘둘려버리는 내 줏대 없는 감정을 보니 화가 났다. 털어야지 털어야지 하는데 잘 안 됐다. 지하철 내려서 집에 오는 길이 유난히 어두웠다.
2010.05.29 09:51
술마신 다음 날에는 일찍 깬다. 몸이 불편하거나 목이 말라서 깨는 것이 아니고, 그냥 일찍 깬다. 늦잠을 잘 수 없다는 게 아마 몸이 밤새 열심히 술을 받아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알아채지 못해도 평소와 다르게 불편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예전에는 좀 더 쉬는 게 좋겠다 싶어서 일부러 더 누워있고는 했는데, 이제는 눈떠지면 그냥 일어난다. 일어나서 머리쓰는 일은 말고 그냥 편하게 할 일이 있으면 좀 하다가 밥도 먹고 노닥거리다가 다시 좀 더 잔다.
오랜만에 기분 좋게 길게 한 잔 했다 싶었는데 돌아오며 보니 몇 마디는 생각을 앞질러 나간 말도 있었구나 싶다. 술이 그렇지 뭐.
일어나서 무얼 할까 생각하다가 책장을 털었다. 주문한 씨디피가 오려면 아직 일주일도 더 남았는데, 씨디피를 영접하기 위해 방구조를 바꾸기로 마음 먹어두었던 일이다. 우선 한 동안 나와 있던 책장을 본래 자리로 돌렸다. 책을 모두 꺼내 한 쪽에 쌓아두고 책장을 닦아서 옮긴 다음 다시 순서대로 책을 돌려놓았다. 소파를 책장이 있던 자리로 밀고, 컴퓨터 책상 옆에 있던 큰 책상을 방 가운데로 옮겼다. 책상은 어디 기댈 곳도 없이 방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서 살짝 부딪칠 때마다 흔들거린다. 기존의 구조에서는 주로 컴퓨터 책상에 있거나 큰 책상에 있을 때 음악은 뒤에서 들리거나 옆에서 들린다. 2년을 벼른 씨디피도 주문한 마당에, 음악 듣는 시간을 조금 더 확보하고 이왕 듣는 것 좀 더 집중해서 들어보는 게 좋겠다 싶었다. 이제 책상 가운데 앉으면 음악 듣기에 딱 좋은 위치가 되었다. 뭐 제대로 들으려면 우선 이 컴퓨터를, 안 되면 인터넷만이라도 폭파시켜야 하겠지만.
가구 옮긴 자리는 언제나 먼지가 수북하다. 책상에 있던 서류뭉치를 우선 소파 위에 두었는데, 나누어져 있는 것을 보니 어쨌든 나름 분류를 해두긴 했던 모양인데, 도대체 저 덩치들의 내용을 짐작할 수 없다. 버리지 못 하고 둔 것들 보니 정리해야 할 것들인 것 같은데, 언젠가 해야지 언젠가 하겠지 하는 것들이 모여서 결국 난삽해졌다. 한가한 오후에 한 장씩 꺼내서 살피고 더 소용없는 것들은 이제라도 버리고 버리면 안 될 것들은 어쩔 수 없이 또 대충 겹쳐서 두어야겠다. 언젠가 하겠지 생각하면서. 청소기 꺼내서 눈에 보이는 큰 먼지덩어리만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곰팡이 핀 음식물쓰레기통을 치웠다. 먹고 남은 망고씨는 곰팡이가 참 잘 핀다는 것을 알았다. 햄에 계란옷 입혀서 구워서 밥먹었다.
유희열 스케치북을 보는데 김윤아가 나왔다. 참 좋은 색을 가진 사람. 그 치열한 에너지를 잘 갈무리한 사람. 좋은 노래들을 부르고 간다.
다음 스터디 커리를 짜는데, 좀 가벼운, 평소에 읽고 싶었던 책들을 각자 골라서 함께 리스트를 만들자고 했다. 처음에 나는 성경, 코란, 불경, 자본론 같은 책을 생각했는데, 코란은 이슬람 문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접근하기 쉽지 않다고 해서 접었고, 불경은 종류가 많아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접었고, 두 개 접으니 시들해져서 성경도 접었다. 그래도 지나는 길에 바람소리 누나에게 물었더니 누나는 대뜸 금강경과 해제본을 빌려주었다. 금강경은 얇아서 아침에 화장실에서 보는데, 석가께서 하신 말씀 중에 우주의 기원에 대한 부분이 있었다.
"모든 가루들은 영원한 자기의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인연 따라 생겨났다가 인연 따라 없어지며 일정 기간 잠시 존재하는 것들로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세계도 티끌처럼 그 실체가 없어서 영원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어쩌면 석가께서는 우주의 탄생까지 거슬러 보셨던 것은 아닐까. 빅뱅의 순간에 우주는 한 점으로부터 비롯하고, 결국 쿼크 단위로 내려가면 모든 존재는 그 '티끌'이 잠시 머물러 있는 결합 형태에 지나지 않게 된다. 천체물리학이 탄생하기도 전에, 이미 보셨던 것일까.
스케치북 마저 보고 낮잠 좀 자고 나가야겠다. 오늘은 82mm CPL 필터를 사야 한다.
2010.05.27 22:08
Lens test. Canon 50mm 1.4
Lens Test. Canon 16-35 2.8 2세대
그러니까, 요 며칠,
렌즈라인업을 바꿨다. 우선 인테리어 작업에 쓰기 위해 16-35 렌즈를 새로 구했다. 한국에 다녀오는 봉식형이 수고롭게 대신 거래해 주었다. 1세대 렌즈와 2세대 렌즈는 가격차가 제법 있었는데, 작은 차이라도 분명하다면 새 버전을 사는 것이, 돈 버는 사진가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16-35가 와서 24-70렌즈를 방출하고 대신 50 .4 렌즈를 구했다. 마침 바람소리 누나가 50mm렌즈를 갖고 있고, 24-70을 써보고 싶다고 해서 당분간 바꿔 쓰기로 했다. 사실 현장에서 가장 무난하게 쓸 수 있는 렌즈가 24-70이다. 어디든 가져다 겨눌 수 있고 언제든 그럭저럭 쓸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렌즈다. 그런데 나는 그 랜즈가 덩치만 크고 무거워서 별로 안 좋다. 16-35가 와서 광각은 커버가 되니 차라리 50mm 정도 화각의 단초점 렌즈를 구하는 것이 화질 면에서 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물론 가장 즐겨쓰는 45mm 2.8 렌즈가 있지만 이 랜즈는 니콘용으로 나온 것을 어댑터를 끼워서 쓰는 것이라 초점이 수동이고, 그 선예도를 신뢰할 수 없고, 조리개값도 2.8이라 현장에서 쓰기에는 여러 모로 부족하다. 두 렌즈를 가져와서 테스트해보니 우선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현장에서 당분간 24-70없이 16-35, 50, 100, 80-200의 조합으로 써보고, 무리가 없다는 결론이 나면 24-70을 정말로 팔아야겠다.
며칠 계속해서 속이 안 좋았다. 약하게 체한 것같은데 잘 풀리지 않아서 먹을 때마다 불편했다. 어제 저녁 먹고 작업한다고 앉았는데 또 느낌이 안 좋아서, 소화제를 자꾸 먹는 것도 답이 아닌 것 같아서 달리기로 했다. 자전거를 탈까 하다가 밤중에 위험하고, 타면 너무 멀리 가게 될 것 같아서 간편하게 조깅 복장으로 입고 집 아래 강변을 뛰었다. 쉬엄쉬엄 걸으면 한 시간 좀 못 되게 걸리는 거리인 듯한데 부지런히 뛰어 오니까 10분이 걸렸다. 이 집에 사는 것이 3년 가까운데, 산책이 아닌 조깅으로 강변을 뛰어본 것은 처음이다. 겨우 10분 뛰었는데 몸은 땀을 제법 내고, 속은 깔끔하게 편해졌다.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몸은 참 단순한 것일 수도 있다. 먹고, 자고, 움직이는 데 엇박자가 있으면 아픈 것이다. 아픈 것의 대부분은 그 엇나간 박자를 제자리로 돌리면 자연처럼 돌아올 것이다. 소화제 괜히 먹었다. 다친 어깨 핑계를 대며 꾸준한 운동을 거른 것이 어느새 1년 가까워 온다. 하도 먹는 게 없고 운동도 안 하니 몸은 기초체력이 떨어졌다. 소화력이 딸리는 것도 연장선에서 읽힌다. 운동을 좀 하긴 해야겠는데, 하고싶기도 한데, 그러자니 먹는 걸 좀 더 잘 먹어야겠는데, 나는 도대체 요리는 왜 그리 어렵고 시장은 왜 그리 멀게만 느껴질까.
아침에 420명의 단체사진을 찍었다. 회의 중간에 찍는 거라서 허락된 시간은 아주 짧았다. 제한 시간 안에 420명을 줄세우고 분위기를 풀어서 몇 장의 사진을 찍는 작업이었다. 안 해 본 촬영이고 규모여서 거절할까 했는데 중간에 있는 친구가 내가 꼭 해줄 것을 부탁했고, 새로운 경험이 되겠다 싶어 하기로 했다. 촬영을 결정한 후로 3번의 사전 미팅을 했고, 분 단위의 시간계획표를 만들고 참가자들의 동선을 짰다. 자원봉사자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420명을 인솔할 것인지도 모두 계산하고 당일 현장에 동원될 소소한 물품까지 모두 목록으로 만들어서 진행했다. 큰 사이즈의 사진으로 뽑아야 해서 처음으로 중형 디지털 카메라를 빌려 촬영했다. 인상적이었는데, 워낙 시간이 촉박해서 천천히 기계를 감상할 틈이 없었다. 시간보다 마음이 바빴다. 작전대로 촬영은 끝났는데, 사진은 딱 개판쳤다. 아마 현장 야외 빛이 가장 큰 범인인 듯한데, 중형 디지털의 결과물은 기대 이하였다. 중형 디지털의 경우 통제된, 완벽한 조명 상태 하에서 가장 완벽한 결과물을 뽑아낸다는 말이 새삼 기억났다. 쫓긴 마음은 화면의 구석구석을 충분히 살피지도 못 했고, 가진 것조차 다 담아내지 못 했다. 후반 작업을 하는데 많이 부끄러웠다. 참 부끄러운 작업으로 남을 것 같다. 그렇게 찝찝한 기분으로 작업한 사진을 인쇄소로 넘기고,
곧장 사천에 전화해서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씨디피를 주문했다. 크하. 어쩌겠나. 그렇다고 돌아가서 420명을 다시 불러세울 수도 없는 노릇인데. 반성해서 다음에 잘 해야지. 자작업체로서 제법 인정받는 곳 같은데, 최근 한국 유명 자작 오디오 업체에서도 이 곳에 내가 주문한 것과 같은 제품을 단체주문했다. 자작업체라서 완성품을 판매하지는 않고 직접 제작할 수 있도록 부품과 케이스 세트만 판매한다고 하는데 전화해서 사정하고 안 돼서 메신저 등록해서 사정했다. 조립비 일부를 더 부담하는 조건으로 완성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조립기간이 걸리고 하필 이번 주말은 업체 수련회가 있어서 제품은 다음 주말에나 겨우 받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씨디피를 사고 싶다고 마음 먹은 게 벌써 1년도 훨씬 전이고 그 사이에 많은 제품들이 상상속 쇼핑 바구니를 거쳐갔다. 그래도 합리적인 가격에, 스스로를 설득할 만한 실력의 제품을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제 당분간 오디오 장비에 눈독 들일 일은 없겠다.
씨디피 주문하고, 빨래하고, 노닥거렸다. 영화도 한 편 때리고 음악도 아무 거나 대충 들으면서 클래임 걸린 단체사진 수정해서 다시 보내고 또 노닥거렸다. 내일 미학스터디가 있는데, 지난 주 미팅 때문에 빠져서 지나간 줄 알았던 내 발제분량을 맴버들은 이번 주로 밀어놓았다. 덕분에 발제문을 좀 써야되는데 모르겠다. 다른 맴버들이 발제해 올 부분의 내용도 읽어야 되는데 관뒀다. 말년 병장같은 기분으로 늘어져있다. 내일 새벽에 대충 좀 보고 간단하게 발제문 써서 가야겠다. 사람이 때마다 열심히 하면 안 되는 거라고, 언젠가 어디선가 누군가 말했던 것도 같다. 그러면 미쳐버린다고 했다.
웹진이 슬슬 색깔을 내려고 한다. 새로 필진이 되어준 은영 누님은 르몽드 디플로마티끄의 기사를 재료로 연재를 하시겠다고 했다. 지윤이는 전공을 살려 상하이의 어떤 풍경들을 짧은 희곡 장면으로 구성하는 작업을 하기로 했다. 은진이는 역시 전공을 살려서 북송시대 기행문을 번역해 올리겠다고 한다. 인터뷰 연재 기사는 내일 첫 취재가 잡혀있다. 나는 가서 인터뷰는 안 하고 사진만 찍을 생각이다. 새 렌즈 두 개를 가져가서 써봐야겠다. 류란씨는 그 동안 썼던 다큐 관련 원고를 연재해 주겠다고 했다. 스스로는 한국인 커뮤니티에 조선족으로서 참여하는 것이 조금 신경쓰인다고 했는데, 그런 편견을 만들어낸 상황들에 일말의 책임이 있는 것 같아서 미안했다. 김지연 선생님도 오랜만에 소식이 닿을 모양인데, 딱 걸렸다. 거 봐라. 여기는 된다.
그래도 양심상 내일 스터디에 쓸 책 좀 읽어보겠다고 앰프도 켜두고 책도 펼쳤는데,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됐나. 자야겠다. 자고 내일 새벽에 좀 봐야겠다. 스터디 하는 날은 항상 새벽에 벼락치기 공부를 해서 스터디 하는 날은 항상 종일 피곤하다.
그러니까, 이렇게 짧은 생각들을 적어두는 것은 언젠가 이 다음의 나에게 보라고 쓰는 것일까? 나를 읽고 갈 불특정 다수를 향해서 나는 왜 쓰는 것일까? 세상에는 궁금한 것들이 이렇게나 많나.
2010.05.23 22:28
촬영 때문에 엑스포에 몇 번 다녀왔다. 사람 많은 곳을, 그리고 길게 줄 서서 기다리는 일을 내가 참 안 좋아한다는 것을 새삼 알았다. 개장 시간에 맞춰 갔음에도 불구하고 독일관 앞에 섰을 때 예상 대기시간은 세 시간이었다. 찍어야할 곳이 최소 다섯 곳이었는데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전화를 했다. 중국관과 사우디아라비아관만 찍기로 합의했다. 속으로는 세 시간을 안 기다려도 되니 다행이다 싶어서 얼른 줄에서 빠져나와 사우디아라비아관으로 갔다. 중국관은 워낙 보려는 사람이 많아서 별도의 시간 예약표를 주는데, 그러니까 그 표를 얻지 못하면 당일 중에 중국관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관 앞에서는 무슨 일이 생긴 듯했다. 경찰들 수십 명이 모여 있었다. 싸움이 벌어졌나? 누가 쓰러지기라도 했나? 그나저나 어디서부터 줄을 서야 하나? 이런, 경찰들은 몰려드는 관람객을 통제하기 위해 서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겨우 찾아서 줄의 끝에 섰을 때 옆에 서 있던 경찰이 말했다. 여기 서 계시면 입구까지 예상 소요 시간은 여섯 시간 정도입니다. 아, 여섯 시간이라니. 세 시간을 피해 도망왔더니 여섯 시간이란다. 이제 대안도 없다. 중국관이 안 되니 여기 밖에는 갈 곳이 없고, 결국 여섯 시간을 서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섯 시간 정도를 기다려서 드디어 들어갈 수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슬슬 스트레스가 쌓여서 관람은 즐겁지 않았다. 그나마 제법 서늘하고 흐린 날이었기 망정이지 한 여름이었다면 촬영이고 카메라고 다 던져버렸을 것이다. 금요일이어서 유난스러웠던 것일까? 지난 번 촬영 동안에는 비슷한 시간에 이렇게 길게 기다리는 곳이 없었던 듯 한데. 시간이 지나면서 엑스포 전시장에 대한 평가들이 나오는 것이고, 전시장들 역시 빈익빈부익부가 된다.
지난 번 신장으로 목화따기 앵벌이를 보냈던 행사를 기획한 잡지사에서 연락이 왔다. 외국인의 시선으로 본 엑스포에 대한 기사를 청탁해 왔다. 시간도 촉박하고 고료도 얼마 안 줄 것 같아서 망설였는데, 아마 쓸 것이다. 엑스포에 대한 인상을 나름대로 정리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다. 영국 만국박람회부터 출발해서 엑스포에 대해 개관하고, 인터넷의 시대에 엑스포가 과연 의미가 있을지 묻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엑스포가 보여준 인상에 대해 적어야겠다. 한국 대전엑스포에 대한 기억도 쓸 것인데, 나는 가 보지 못 해서, 가 보지 못한 기억만 있다고 써야겠다.
좀 더 좋은, 제대로 된, 내용이 단단한 문장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껍데기만 번지르르한 문장들 말고, 소박하되 그 안에 든든한 먹을 거리가 있는, 읽어서 시간이 아깝지 않은 문장을 쓰고 싶다. 좀 더 단련해야 하고, 문장을 쓰기 전에 준비단계에서부터 차근차근 자료를 모으고 배치해서 글의 얼개를 잡아야 한다. 대충 기분대로 모니터 앞에 앉아서 끄적여내리는 글은 그 바닥이 뻔하고 밀도라고는 없고 읽어보아야 잠시 동안의 감정적 공감 말고는 얻을 게 없게 되고 만다.
2010.05.22 21:36
상하이 엑스포, 북한관
북한관은, 엑스포 구역의 남동쪽 끝에 있다. 밖에는 인공기를 세로로 길게, 크게 그렸고 그 위에 한글로 조선.이라고 썼다. 기다리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 마음 먹으면 곧 들어가 볼 수 있다. 가운데 돌다리가 있고, 입구에서 들어가서 왼쪽에는 평양의 전경을 담은 대형 사진이 있다. 그 앞에는 주체사상탑 모형이 있다. 출구쪽 위에는 대형 모니터가 있어서 북한에 대한 영상을 보여준다. 영상 속에서, 백인관광객들이 버스에 올라 평양 곳곳을 둘러보고 즐거워하는 표정이 이어진다. 와 볼 만한 곳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 탑의 이름이 주체사상탑.이라는 것도 영상을 보고 알았다.
다리를 건너가면 분수대가 있다. 분수대의 가운데에 아이들 몇몇을 형상화한 모형이 있다. 아이는 비둘기를 날리는데, 그 너머 벽 위에 Paradise for Peoples 라고 적혀있다. 인민을 위한 파라다이스. 파라다이스.
엑스포가 막 개장했을 때, 연합뉴스의 이름으로 뜬 기사를 기억한다. 북한관이 얼마나 조악한지 감정적인 문장으로 쓰고, 개장 첫날부터 분수에서 물이 새는 이 나라의 전시관이 엑스포 끝까지 어떻게 버틸지 궁금하다는 내용이었다. 가 보니, 제법 관람객도 붐비고, 분수는 물이 새지 않고 잘 작동하고 있었다.
천안함과 관련하여 나라 꼴이 우습다. 도대체 말이 안 되는 이유를 내새워가며 정부는 한민족의 국가를, 다른 국가의 이름을 갖고 있지만 그 구성원 모두가 심정적으로 하나의 국가를 지지하는 상대 국가를 다시 한 번 주적의 위치에 놓으려고 한다. 증거라는 것은 빈약하다 못해 황당하기 짝이 없고, 돌아가는 모양새 역시 도저히 믿을 근거가 없다.
아프리카 소국들의 전시관은 중국정부의 지원을 받아 지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프리카와 유럽 소국들의 국가관을 둘러보면서, 나라의 힘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전시장 크기와 그 화려함이 다른 어떤 것보다 국가의 힘이라는 것을 실제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전시장을 들여다 볼 때, 북한은 작고 가난한 나라 중 한 곳이었다.
북한관 한 구석에서 오래 앉아 있었다.
2010.05.22 09:07
딴지일보http://www.ddanzi.com/news/19680.html
자주 가는 사이트들이 있다. 직업이 되어버린 사진이 취미였을 때부터 사진 관련 커뮤니티는 단골이었다. 새 장비를 구해야 할 때는 특히나 더 해서 하루에 수 백 번씩 드나들었다. 오디오 장비 사이트도 하루에 두어 번은 꼭 간다. 내 것이 아니어도, 어느 집 거실이나 구석방에 잘 정돈되어 놓인 오디오를 보고 있으면 편안하고 좋다. 자전거 장비 사이트도 가고, 유머사이트도 간다. 포털사이트는 물론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특히 취미활동을 위해 모이는 곳에 가면 다들 비슷한 말을 한다. 가끔 정치적인 이슈에 대한 글이라도 하나 올라오면 다들 화를 낸다. 왜 이 곳까지 정치를 끌고 오냐고 말한다. 그 시끄럽고 더럽고 추악한 것을 이 즐거운 공간에 끌어오지 말라고 화를 내고 반대한다. 어떤 사이트들은 그래서 정치 이슈글이 올라오면 열람 자체를 차단하거나 회원 권한 자체를 제한하기도 한다.
바보들아. 나쁘고 못난 놈들아.
사람이 둘만 모여도 생겨나는 게, 그리고 생겨나야 마땅한 게 정치다. 정치는 교과서 속에 역사의 토막으로 남는 게 아니라, 지금 네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바탕을 이루고 있다. 갈등을 조율해야 하고 새로운 타협점을 탐색해야 하는 그 본성 때문에 정치는 또 마땅히 시끄러운 것이다. 그 소란이 싫다고 떨어져서 그냥 모른 척 살겠다는 것은 정말 바보짓이다. 그 무관심이 만들어낸 현실을 보고도 모르겠나. 시끄러운 것은 나쁜 것이라고, 가만 있으면 누군가 조용하게 모든 일을 처리해서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을 살게 해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은 너를 속이는 음모다. 태어나서 한 번도 투표해 본 적이 없다는 말은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하나? 쪽팔리지 않나? 고개도 못 들 만큼 부끄럽지 않나? 그 무관심이 만들어낸 이 현실에 도대체 책임감이라고는 없나?
사진찍고 놀고, 자전거타고 놀고, 음악들으며 쉬는 것이 어떻게 정치와 무관한가? 사람으로 숨쉬는 것부터 정치와 엮이지 않는 것이 없을 텐데. 실망해야 할 것은 덜 된 정치가들이다. 하지만 그 실망을 정치에 대한 무관심으로 연결시키면 그건 정말 그 못 된 정치가들의 의도를 충실히 따라주는 것 밖에는 안 된다.
아침 딴지일보에 안희정.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길다. 아침 나절 오며 가며 보는데 한참이 걸렸다. 안희정이라는 이름을 걸고 있지만, 내용은 노무현에 대한 부분이 많다. 오후에는 여러 사람 앞에서 말을 해야 되는데, 오전 내내 훌쩍거리고 앉았다.
내일이, 대통령께서 가신 지 꼭 1년 되는 날이다.
2010.05.21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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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Document(2519,4)
美정부, 인디언에 과거사 사죄 | Daum 미디어다음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100521040903987&p=yonhap&RIGHT_COMM=R10
오바마 정부가, 과거 미국정부가 인디언에 대해 저지른 잘못을 사과했다. 역사에 기록된 인간집단 중 가장 완성형에 가까웠던 그들이 아닐까 싶다.
본래 당일 신문 기사 중 인상적인 기사를 스크랩하고 관련된 서적을 함께 엮어두는 것이 이 카테고리의 목적인데,
그리고 오늘은 첫 시작인데,
졸려서 못 하겠다.;
2010.05.21 22:02
국민학교를 마치고, 처음 학원이란 곳을 다녔다. 중학교에 가려면 아무래도 미리 공부해 둘 것이 있겠다는 부모님의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2층짜리 옛날 보건소 건물을 개조한 곳이었는데, 이름은 ‘제일학원’이었다. 아마. 강의실 창문은 철창살이 있었고, 처음 얼마 동안은 그 곳에서 병원 냄새를 맡았던 것도 같다. 기분 탓이었을 것이다. 그 곳에서 영어 I가 ‘나’를 뜻한다고 처음 배웠다. 첫날 I를 배우고, 모든 알파벳이 하나의 인칭을 뜻하는 줄 알았다. 다음날 You를 만나면서 깨지긴 했다만. 하루는 football을 배웠는데, 지각해서 늦게 온, 곱상하게 생겨서 하는 짓도 밉던 녀석이 문 열고 들어오면서 칠판에 적힌 football을 가볍게 읽어낼 때는 녀석이 좀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학원 2층에는 행정실이 있었고 그 곳에서는 아마 윈도우 3.x 버전이 깔린 컴퓨터와, 강의자료를 출력하는 토트프린터가 있었다. 아, 옆방에는 전자타자기도 있었다. 그리고, 동화책 몇 권이 유난스러운 책장도 있었다. 기억을 되짚어 보면,
1
한쪽 구석이 비어있는 동그라미가 주인공이었다.
노란색이었다.
동그라미는 제 비어있는 한 조각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섰다.
2
우여곡절.
동그라미는 그 여정에서 여러 조각들을 만났다. 제 빈 곳과 비슷해 보이는.
3
하지만
어떤 것은 너무 크거나
4
어떤 것은 너무 작았다
긴 여정의 끝에서
5
마침내 동그라미는 꼭 맞는 조각을 만나고, 그렇게 완전한 하나의 원이 된다.
그 후로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동화는 그렇게 끝났다. 기억에 따르면 그렇다.
6
그런데,
정말 그런 것일까?
7
처음부터 꼭 맞는 조각 같은 건,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
너도, 나도, 서툴고 모난 모양으로 시작하는 게 아닐까?
8
그렇게 모난 것끼리 엉켜서 굴러가다 보면
블록 사이로 흘러든 모래가 마침내 굳어지는 것처럼
서로의 서툰 틈을 메워서 마침내 둘도 없는 맞춤이 되는 게 아닐까?
그 때쯤에는 이미 둘도 아닌 게 되지 않을까?
9
어쩌면
작은 조각이라고 생각하고 우겨 넣으려고 했던 너는 나보다 큰 네모였을까
그래서 서투르게라도 구르던 그 몸짓마저 못 한다고 너를 원망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나는,
한 구석이 빈 조각난 동그라미가 아니고
혼자서는 어쩌지도 못 하는 작은 조각은 아니었을까
글. 반군
그림. 닥터멜
2010.05.17 23:12
만나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말한다. 유별날 것 없고, 많고 흔한 사람들 중에 한 명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그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참 유별나 보이고, 유일해 보인다.
왜 사람들은, 스스로의 특별함을 모르나?
2010.05.17 11:53
새벽에 마무리 작업하고 아침에 프린트해서 힐튼에 보낼 사진들 작업을 마쳤다. 제법 오래 걸렸다. 조금 있다가 택배회사에서 오면 사진과 CD를 보내고, 최종 비용청구서를 메일로 보내면 된다. 그리고 사진에 별 문제가 없고, 청구서에 이견이 없으면 영수증을 발행하고, 며칠을 기다려 입금을 확인하면 이번 일은 끝난다. 예정되었던 호텔 작업이 모두 마무리 되었으니까, 그 동안 모인 사진들을 정리해서 홈페이지의 포트폴리오 부분을 업데이트해야 한다. 이 사진들 핑계로 포트폴리오 업데이트를 한참 동안이나 미루었다. 북경에 보내기로 약속했던 포트폴리오도 이제 보낼 수 있게 되었다.
클라이언트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번 작업의 부족한 구석을 안다. 어떤 조명이 부족했는지, 어떤 리터칭이 모자랐는지, 그리고 현장에서 어떤 것을 놓쳤는지 사진 한 장마다 또렷이 드러나 있다. 아마 모든 프로 사진가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는데, 지나고 나서 아는 것이고, 그 자리로 돌아가서 다시 찍을 수 없으니 짐짓 모른 척 넘겨야 하는 것이다. 클라이언트가 알아채지 못 하기를 속으로 바라고, 다만 다음 작업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속으로 기억해야 한다. 내 기대치와 클라이언트의 기대치가 같지 않을 테니까 아마 그냥 넘어갈 것인데, 클라이언트를 만족시키는 것을 넘어서 감동시키지 못 하는 작업은 끝맛이 별로다.
분주한 한 주가 가고 새 한 주가 왔다. 지난 주는 나답지 않게 바빠서 낮에는 계속 촬영을 했고 작업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새벽에 일찍 깼다. 주말 동안에는 부러 늦잠을 잤다. 이번 주는 별다른 촬영이 없어서 한가한 시간을 보낼 생각을 하며 지난 주를 지나왔는데, 바쁜 탓에 촬영을 제외한 다른 일거리들을 이번 주로 차곡차곡 밀어두었더니 막상 시작하고 보니까 그닥 한가한 시간이 되지는 못 할 모양이다. 급하지 않은 촬영이 한 개, 촬영 사전 미팅이 한 개, 밀린 후작업이 제법. 한가할 생각에 자전거 타자는 약속을 해두었는데 딱 하루만 탈 수 있겠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겠다. 일도 사람도 그렇겠다. 한 번에 여러 개 일을 펼쳐내는 것은 개별 일의 완성도를 아쉽게 만든다.
미학스터디는 어느새 1년도 넘었다. 일주일에 한 번 주로 오전에 만나서 책 내용을 요약하는 형식으로 돌아가며 발제하고 각자 이야기들을 덧붙인다. 지금 보는 책은 아놀트 하우저의 문학과예술의사회사. 3권이다. 맴버들이 최근 유난히 시간이 엉켜서 한 주씩 걸러서 보는데, 곧 3권이 끝나고 마지막 4권이 남았다. 진도 나가는 것을 보면 그렇게 빠른 것 같지도 않은데 한 주씩 차곡차곡 쌓아왔더니 어느새 두꺼운 책들을 제법 보아냈다. 혼자서는 못 했을 일이다.
문학스터디는 제법 긴 방학을 지나서 얼마 전에 다시 열렸다. 들뢰즈의 철학을 다루는 노마디즘.을 보고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책 천의고원.에 대한 주석서 개념의 책으로 이진경이 썼다. 지난 주에는 6장을 다뤘는데, 선희는 탄탄한 요약 발제문을 만들어 왔다. 처음 스터디를 시작하던 무렵보다 훨씬 단단한 발제문이었다. 짧은 시간에 적지 않은 단련을 한 것 같아서 인상적이었다. 6장은 기관없는신체.에 대해 다루었는데, 나는 들뢰즈 식의, 또는 들뢰즈를 해석한 이진경 식의 해체-파괴-죽음에 대한 도식에 동의할 수 없었다. 소영 누나의 지적대로 들뢰즈와 가타리는 분명한 문제의식, 그리고 문제의식에 이어지는 목적의식을 갖고 그들의 이론을 구축한 듯하다. 때는 68혁명이 실패한 이후였고, 그들에게는 혁명 실패에 대한 원인분석과 새로운 방법론에 대한 탐구가 필요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논의의 무대를 인간과 그들의 사회.로 제한했는데, 그러니까 두 원저자의 생각이 서구식 한계를 갖는다는 이진경의 지적 역시 동의하기 어렵다. 기관없는신체의 동양적 구현이라는 곳에 대해, 두 원저자는 아마도 몰라서 못 간 것이 아니라 갈 필요가 없어서 안 간 듯하다. 성현 형은 언젠가 스터디에서 비판적 책읽기의 방법에 대해 말했었는데, 저자들의 방식으로 저자들의 논리를 깨는 것이 정공법이라고 했다. 해체.라는 개념은 사실 데리다의 특허같고, 들뢰즈의 이야기 속에서는 배제되는 개념인 듯한데, 6장에서는 분명한 저자들의 목소리로 해체.라는 단어가 언급되고 있다. 물론 탈지층화라는 개념이 더 빈번하고 분명하게 쓰인다. 어떤 유기적 위계질서에서 벗어난, 모든 것으로 변할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진 상태를 저자들은 기관없는신체.라는 용어로 설명하는데, 6장에서는 기관없는신체를 세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그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형태이고, 하나는 어떤 긍정적 에너지를 소멸한, 완벽하게 망가져서 해리되어 있는 형태의 신체다. 그리고 마지막은 암적 신체다. 이 암적인 기관없는신체는 개인과 사회를 죽음으로 이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는데, 저자들의 생각은 개인과 사회를 '탄생-죽음'의 닫힌 관계 속에 둔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러니까 탄생한 다음이고 죽기 이전인 상태에서 어떻게 탈지층화하고 새로운 가능성으로 재지층화할 것인가?라고 묻는다. 그런데, 재지층화하기 위해서 탈지층화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은 지적하면서 왜 탄생하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내 생각대로라면, 이들은 사실 같은 의미로 추상할 수 있는 해체 죽음 파괴 세 단어에 지극히 자의적인 가치를 부여해서 부정적인 상황에는 죽음 또는 파괴라는 단어를 부여하고 긍정적인 부분에는 해체라는 단어를 쓴다. 예를 들어 암적인 기관없는신체는 그 대상을 죽음으로 이끄는 파괴적인 역할을 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인간을 단위 개체로 파악할 때나 가능한 것이지, 암세포 입장에서는 그것은 자신의 생존 외에 무엇도 아니다. 반대도 생각할 수 있다. 지구를 단위 개체로 보면, 인류 이상 가는 암적 존재가 과연 있을까? 당면한 시대 앞에서, 그들은 마음이 급해서 인간사회 밖으로는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것일까? 스터디 말미에 왜 공부하냐는 질문이 덧붙었는데, 이 공부를 통해서 나를 온전히 긍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었던 것도 같다.
(사진 안 온다고 독촉 전화가 왔는데, 왜 택배 아저씨는 빨리 안 오시나!)
사진강좌는 9주 일정 중에 이제 2주가 지났다. 본래 에프상하이 맴버들을 대상으로 소박하게 하던 것인데, 교민분들 중에 배우려는 분들이 많아서 이번에는 대외적으로 개방하고 규모를 키웠다. 대신 비교적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었던 내부 스터디와 달라서 한 주에 한 번, 두 시간으로 제한하니 해야할 말은 많고 시간은 항상 부족하다. 마음은 바빠서 말은 달리고 두 시간 내내 리듬도 없이 쏟아만 낸 말들은 아마도 듣기에 버거울 듯하다. 욕심대로 하면, 그곳에 와서 이야기를 듣는 분들이 단지 카메라를 다루는 테크닉적인 부분에 그치지 않고 사진을 찍는 이유, 그리고 자신만의 색깔을 내는 방법 등에 대해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덧붙이는데 그러다 보니 또 이야기가 항상 산으로 가서 중간마다 방향을 돌려세운다. 가벼운 마음으로,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멀리까지 와서 열심히 듣는 분들의 눈빛이 좋아서 좀 더 열심히 준비하고 끝나는 날까지 단단하게 할까 보다.
그리고, 마침내 결국 오호라 그러니까 바로 내 말이. 웹진. 이름은 번진.이라고 붙였다. 성현 형이 지어주었다. 상하이 와이탄의 영문 표기인 번드Bund와 번진다.는 한글에서 연상시켜서 번진.이다. 은진이가 자기 말로는 방바닥을 다 물들이며 만들었다는, 번져나간 먹방울. 이미지를 받아서 포토샵에서 모양을 만들고 색을 넣어서 메인 아이콘으로 썼다. 거친 수준에서 디자인은 마쳤고, 바쁘다는 핑계로 지난 한 주 동안 버려두었는데 오늘 저녁쯤이면 게시판 세부 설정까지 모두 만져서 필진들의 원고를 옮길 수 있겠다. 당분간은 계속 테스트해야 하지만 어쨌든 되어가는 것이다. 처음 필진들을 모았을 때 후다닥 밀어부쳤어야 했는데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리듬이 많이 죽었고, 몇 명의 필진들이 떠났다. 물론 떠난 것만큼 새로운 필진들이 왔다. 많은 것이 예상에서 빗나갔지만, 고민한 문장을 읽고 싶은 수요가 있을 것이고 그런 컨텐츠들을 생산하려는 의욕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맞은 셈이다. 이제 번진.이 그 마당이 된다. 나는 그 곳에 인터뷰 원고, 여행 원고, 사진 해설 원고, 책리뷰 원고를 쓸 예정이고, 초보적인 수준에서 클래식 음악에 대한 감상도 써보고 싶다. 날마다 써도 못 쓸 분량이다. 나는 글빚을 지고 살 모양이다.
진도 안 나가는 책 원고 문제도 있다.
아마도 내년이 될, 대학원 진학 문제도 있다.
밥 벌어먹고 사는 사진 문제는, 있다는 건 아는데 왜 항상 뒷전일까?
새 일을 펼쳐낼 때, 가끔 내 몸이 하나라는 걸 잊는다. 두 시간 하는 스터디는 하루 이상의 시간을 투자해서 공부해야 하고, 사진스터디 덕분에 토요일 하루는 꼬박 반납이다. 이렇게 문어발처럼 펼쳐놓고 대충 수습만 하는 선에서 버티는 건 좋은 답이 아니다. 선택하고, 집중해야 한다. 진행중인 책들이 끝나면, 문학스터디와 미학스터디는 내려놓아야겠다. 그나마 그거라도 있으니 졸린 눈 비비며 이론서들을 읽는 것인데, 치우고 나면 어떤 방법으로 그 유머라고는 없는 책들 앞에 앉아있을지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당분간 접어야겠다. 고프면 읽겠지. 사진스터디도 7월에는 끝나니까, 끝나면 조용히 에프상하이에서 잠수타야겠다. 그리고 그렇게 모은 시간과 에너지를 당분간은 웹진에 모두 쏟아야겠다. 좋은 글들을 모으고, 사람들을 모으고, 모인 사람들이 놀게 해야하는데 마땅한 방법이 아직 떠오르지 않고, 다만 너무 서두르지 말고 느긋하게 해야겠다는 것만 겨우 안다. 어차피 두 스터디의 맴버들 대부분을 이미 필진으로 꼬드겨 놓았으니 그 사람들 보는 문제야 어려울 것이 없고, 내가 참가하지 않더라도 스터디 내용을 삥뜯어서 웹진에 기사로 올리면 그만이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스터디에 대해 알고 스스로의 내부에 있는, 알고 싶다는 욕망을 알아채게 해야겠다. 한 3년 동안 온갖 일을 다 만들어서 사람들을 펼쳐놓고, 3년 뒤 12월에 모조리 끌고 투표하러 가야지. ㅎㅎㅎ
공짜표가 생겨서 문학스터디 맴버들과 연주회에 다녀왔다. 가끔 생기는 연주회표는 주로 성현형이랑 바람소리 누나랑 다녔는데, 마침 문학스터디 하는 중에 연락을 받아서 맴버들에게 표를 돌렸다. 레파토리에는 별로 호감가는 작곡가가 없어서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보로딘의 첫 곡은 어쩌다 보니 문 밖에서 들었고, 생상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악단과 바이올린이 어찌나 따로 놀아주시는지. 본래 그 곡이 그런 것인지, 내가 앉은 자리가 위치가 메롱이어서 바이올린 고음이 특히나 쏜 것인지, 아니면 악단과 독주자의 궁합이 안 맞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인상적이지 않았고, 생상은 역시 아무런 인상도 없는 작곡가로 쭉 갈 모양이다.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이었는데,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이다.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선입견이란, 현대음악가. 어려움. 괴팍함. 정도였다. 대충 말도 안 되는 불협화음이나 듣다가 말겠구나 싶었는데, 1,2악장은 상쾌한 동화처럼 시작한다. 천진한 아이가 마냥 신나서 봄날 오후에 들에서 논다. 러시아 민속음악의 어떤 조각들도 들어 있는 듯했다. 3악장에서 분위기는 돌변하는데, 아이는 어떤 사정인지 동화에서 깬다. 또는 3악장의 어떤 어른이 1,2악장을 회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팀 버튼의 빅 피쉬.가 생각났다. 어린 마음에 들었던 아버지의 마술같은 옛날 이야기는 자라서 생각하면 도대체 상식의 범주에 들지 않는 것이고, 아버지에게 속았다는, 아버지는 허풍꾼이라는 생각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바뀐다. 그리고 3악장의 중간에서, 잠시 쉰 다음에 첼로로 넘어가면서 이 부정적인 분위기는 반전된다. 4악장은? 당췌 못 읽었다. 그래도 기대 이상이었다. 모든 악장이 다 매력적이었고 바이올린 독주가 빠진 악단은 그 자체로 온전해 보였다. 아니 온전해 들렸다? 바람소리 누나에게 물어봐야겠다. 쇼스타코비치 5번은 어떤 연주가 좋은지.
아놀트 하우저의 책에 따르면, 작곡가가 본격적으로 자의식을 갖고 클라이언트를 위한 곡이 아닌 스스로의 내면을 대변하는 곡을 생산하기 시작한 때는 베토벤보다 겨우 약간 앞선 시기부터다. 그 이후로 작곡가는 각 작품을 스스로와 동일시한다. 그렇지 않다는 이유로 바흐는 하우저에게 홀대받지만, 후대에 일어난 바흐 음악에 대한 재평가 작업은 의미가 있다. 어쨌든, 하나씩 알아가는 고전음악은 제법 재미가 있다. 다른 거창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한 명 한 명 작곡가의 거대한 우주와 겨루어나가는 재미가 좋다. 그가 펼쳐놓은 암호들 사이를 이리저리 파고 들어가서 마침내 무언가를 알아채는 기분은 책 읽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한 동안 이 안에서 놀아봐야겠다.
대충 밀린 이야기들을 다 썼다. 택배 아저씨는 다녀갔고, 마지막 남은 김치찌개를 끓여서 점심을 먹어야겠다. 그리고 웹진과 맞짱뜨러 가야겠다.
2010.05.09 08:37
비 온다. 뽀송뽀송한 늦잠을 자고 늦게 깼다. 예쁘고 편안한 꿈을 꾸었다. 깨어서도 한참 이불 속에서 가물해져가는 꿈을 되씹었다. 창 밖에 부딪치는, 멀리 땅바닥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가 앉은 자리까지 들린다. 일요일이다. 분주한 한 주였다. 오전을 빈둥거릴 작정이다. 해야할 것들이 있고 다음주도 아마 적잖이 바쁠 듯하니까, 오늘 오전은 작정하고 빈둥거리고 오후에도 작업하다가 나른해지면 곧장 침대로 가서 이불 돌돌 말고 뒹굴어야겠다.
교민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진스터디를 시작했다. 지나고 보니, 좀 더 쉽게, 좀 더 직접 와닿는 것들을 알려드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2010.05.03 19:52
정원 가꾸는 사람을 취재하고 왔다. 내가 직접 꾸리는 인터뷰는 아니고, 한국측에서 취재 질문을 모두 보내주어서 나는 가서 적힌 대로 묻고 말하는 대로 받아 적으면 되는, 답답하기도 하고 맘 편하기도 한 인터뷰다. 삼 십 대 중반이라는 여인은 일본 국적의 중국인이라고 했는데, 시내 중심의 옛 주택에 세들어 살면서 정원을 가꾸고 있었다. 정원은 넓었고, 포근했다. 정원에 대한 인상이 참 좋아서, 잡지가 시키지 않은 질문도 몇 개 섞어서 했다. 그리고 다음에 꼭 놀러가겠다고 예약해 두었다. 한참 공사중인 거실에는 150인치 스크린이 걸리고 홈시어터 시스템이 구축될 것인데, 며칠 뒤에 친구들이 와서 축구를 보기로 했다고 한다. 다음에 갈 때 정원을 닮은, 여백이 넓은 사진을 한 장 선물하고 맘에 드는 화분이나 하나 삥뜯어 와야겠다. 그리고 그녀는 근처 안푸루.에 작은 가게를 열고 있는 친구도 소개시켜 주었는데, 프랑스에서 색채 디자인을 공부했다는 다른 그녀.는 내게 또 유용할 듯했다. 조만간에 호텔 작업 사진들을 몽땅 들고 가서 색에 대한 조언을 좀 구해야겠다. 사람을 만나서 그들의 세상에 대해 묻고 정리해서 쓰고 다른 사람들이 읽게 하는 작업은 매력적이다. 한 때의 열병처럼 또 찾아온 생각의 덩어리들은 사람이 사는 일에 대한 문제들이니까, 아마 그 답도 사람이 사는 이야기 속에 있을 것이다. 비슷한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서, 인터뷰 팀을 꾸릴까 보다. 그래서 지구인.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색깔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 관계 맺어야겠다.
내일 아침 촬영 가기 전까지 작업해야 할 사진들은 거의 밤샘을 해야 할 분량인데, 최근 10년 사이에 술 마시고 논다고 두어 번 밤 샌 적은 있어도 일하면서는 그래 본 기억이 없어서, 오늘도 안 할 것이다. 아마. 그러니까 수면 시간을 조금 줄이는(많이는 아니고) 수준에서 작업은 눈치 못 챌 만큼, 혹 눈치를 채도 욕하지는 않을 만큼 날림으로 하게 될 것이다. 사는 게 그렇지 뭐.
텃밭 누야에게 메일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밀린 일기처럼 됐다. 누야는 오랜만에 차근차근 적어서 안부를 전해왔는데, 잊었던 풍경이 눈앞에 다시 펼치는 듯했다. 나도 그에 걸맞는 답장을 하려면 우선은 닥친 이 덩어리 일들을 어떻게 좀 안 보이는 곳으로 밀쳐야 하는데 그렇게 되려면 며칠은 걸려야 되고, 며칠은 더 목에 가시를 걸고 있어야겠다. 도꾸 안부도 물어야 되고, 가죽 놀이는 재밌는지 물어야 되고, 나는 여전하다고 써야 하는데.
영숙 누나는 들어온 소개팅도 못 할만큼 바쁘댄다. 나보다 더 내 밥을 걱정하는 것은 내가 한참 못 먹고 못 살던 하필 그 때에 나를 알아서다. 한국 갈 때마다 불러서 밥먹이는 사람이고, 머리가 아프면 소화제를 먹으라는 진리를 알려준 사람도 누나다. 참, 누나 동생 진숙씨 결혼식이 이 때쯤이었던 듯 한데. 축하한다는 말이라도 전해야 하는데. 연락을 해야겠다.
은경 누나가 중국에 놀러온다고 한 게 아마 이 쯤인데, 그러고 보니 딱 이 쯤인데 바쁘다는 핑계로 소식을 못 물었다. 일본에서 일하고 있는 누나는 영숙 누나랑 마치 바톤 터치하듯 배고프고 서러울 때 나를 불러 먹이셨다. 이번에 못 보고 그냥 보내면 두고 두고 미안하겠다. 어서 어서.
파블로 비욘디의 사계. 오이스트라흐의 베토벤 소나타. 내가 어떤 성향의 음악이 듣고 싶다고 할 때마다 바람소리 누나는 거기에 딱 맞는 연주자와 음악을 알려주고, 많은 경우에 음반까지 찾아서 빌려준다. 파블로 비욘디의 사계.는 당시의 악기로 연주한 원전 연주라고 하는데, 이게 물건이다. 이래서 이름을 사계.라고 붙였구나 싶다. 오이스트라흐와 오보린?의 바이올린 소나타 협주는... 이게... 또 물건이다. 두 명의 대가는 참...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팽팽하기도 하고 배려하기도 하는 듯한데, 아무 것도 모르고 들었을 때 나는 나이 든 연인이 연주하는 줄 알았다. 절대로 앞서지 않기 위해, 절대로 물러서지 않기 위해 그 절묘한 선 위에 있기 위해 둘은 얼마나 공들여서 연주했을까? 그 미묘한 한 점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이제 겨우 입문하는 입장에서 곡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 할 수는 없는 노릇인데, 그래도 한 곡씩 한 곡씩 좋아하는 곡들이 생기고, 그 곡들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 언제쯤 나는 또 쓸 것이다. 나는 누나에게 오디오 장비를 뽐뿌했는데, 누나는 내게 좋은 음악을 돌려주니까 어째 균형이 안 맞는다. 고마운 음악 길잡이다. 그러 누나에게 나는 카메라, 오디오, 자전거를 차례 차례 뽐뿌하고 있다.
"누나, 나 완전 아줌마 파마 하면 완전 이상할까? 머리가 너무 길었어" 낮에 문자 보냈더니 아직도 답이 없다. 내가 아무 이름도 안 붙이고 부르는 내 누나. 굶을 때는 카드를 하사하시어 나를 살리시고 기 죽을 때는 그래도 믿는다고 매형과 함께 더블로 응원하고 스타일이라고는 개뿔도 없었던 동생을 직접 고른 옷들로 덮었다. 같이 손 잡고 마트 가면 어찌나 마음 편하게 아무 물건이나 막 집게 되는지 원. 가족이 무엇인지, 나는 오래 걸려 알았다. 근데 누나, 이번에 준 카드는 잘 안 되더라?
나는 참 여러 누나들에게 빚지고 산다. 그러니까 내가 얼른 얼른 잘 자라서 내가 받은 만큼, 거기에 조금 보태서 세상에 돌려주어야 한다.
아, 정원이 어땠냐면...
2010.05.03 14:35
집이 마굿간이다. 여름은 3일 전에 갑자기 왔다. 외투 입고 다니다가 갑자기 반팔을 입는다. 아침 저녁으로는 아직 제법 선선한데 그것도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청소하고 싶다. 청소기 돌리고, 잡다한 것들 좀 들어내고 창문도 좀 열어서 꼬질꼬질한 냄새 좀 내보내고 겨울 두꺼운 옷들 세탁소에 가져다 주고 더불어 여름 옷들도 몇 개 사고 싶다. 이불도 빨아서 두꺼운 것들 좀 집어 넣고 뽀송뽀송한 이불을 덮어야겠다. 하루 푸지게 집안을 들었다 놓은 다음 저녁에는 한가하게 음악이나 틀고 창가에 앉아서 시원한 맥주나 한 잔쯤 했으면, 딱 좋겠다. 다음주 초까지는 도대체 시간이 없을 듯하고, 목을 조르는 급한 것들을 대충 치워내는 다음에는 목 바로 아래까지 치달아 있는 것들을 해치워야 한다. 아, 신나게 바쁜 한 때를 산다.
지난 천진 출장 중에, 한국에서 온 에디터는 내 사진 작업 방식이 잡지 에디터들이 선호하는 방식은 아니라고 했다. 녀석이야 워낙 오래 알고 지낸 사이니까 편하게 말해 주었다. 에디터는 몇 개의 작업이 있으면 리듬을 만들어서, 목숨 걸어야 될 작업과 평균만 해도 되는 작업, 그리고 대충 넘기면 되는 작업으로 나누어서 에너지를 배분한다고 했다. 그리고 포토 역시 그래야 한다고 했다. 메인 컷으로 쓸 사진에는 정말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 사진들은 속도감 있게 진행해야 한다고, 그래야 시간도 맞추고 에너지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속도와 속도 안에서도 안정적인 결과물을 뽑아내 주는 포토를 에디터들은 선호한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한 장 찍을 때마다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찍어대니 시간은 시간대로 걸리고 사람은 사람대로 지친다. 녀석의 말대로 잠시 방식을 바꾸어 속도감 있게 찍어 보았는데, 내게 '빠르게 찍는다'는 것은 곧 '대충 찍는다'라는 것임을 알았다. 결국 한 번 그래 보고 다시 내 방식대로 했다. 그렇구나 생각하고 넘겼는데,
어제 엑스포 촬영장에서 함께 작업한 에디터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작업은 정말 열심히 하는데 정작 자기 스타일이랑 맞는 사진은 별로 안 나온댄다. 아, 방법은 내가 잡지 사진을 안 찍거나, 잡지에서 요구하는대로 나는 없고 피사체들의 증명사진만 있는 그런 컷들을 만들어야 한다. 아마 내가 처음 잡지 사진을 시작하던 때의 버릇 때문인 듯한데, 내가 주로 찍은 사진은 잡지에 풀 페이지로 딱 한 컷 들어가는 포트레이트였다. 몇 장으로 상황을 설명하는 사진은 별로 찍은 적이 없었다. 한 장에, 승부를 걸어야 했다. 그 버릇 때문일까? 어떤 사진 한 장도 내 색깔이 없는, 아무나 찍을 수 있는 그런 사진은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잘 못 찍겠다. 잘 안 찍으니까 이제는 보려고 해도 그런 앵글은 눈이 알아서 거른다. 나, 잡지는 못 하는 걸까?
일하자. 여름도 오래지 않을 것이다.
2010.05.02 21:02
양산을 쓰고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
시선에 속도감을 부여하도록 배치한 대형 스크린들. 스페인관
엑스포에 다녀왔다. 어제 정식 개장했으니 개장 이틀째이고, 노동절 연휴였다. 내 돈 내고 간다고 해도 부러 사람 많은 곳을 찾아다니지 않는 성격이니까 잘 안 갔을 텐데, 일이니 어쩔 수 없이 갔다. 앞으로 3일을 더 가야한다. 엑스포는, 체력전이더라. 해를 가릴 수 있는 모자든 양산이든 필요하고, 오래 걷기에 편한 신발이 필요하고, 입장을 기다리는 아주 많이 긴 시간 동안 지루하지 않을 파트너, 또는 놀이감이 필요하다.
오스트레일리아관의 스탭과 이야기하면서, 슬쩍 엑스포의 의의에 대해 물었다. 아무리 보아도, 돈지랄이다. 엑스포는 그 탄생에서부터 국력을 과시하고, 자국민에게 그들의 나라가 위대하다는 어떤 심리적 자신감을 심어주는 이벤트였다. 영국의, 프랑스의 엑스포가 그랬고, 한국의 엑스포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나마 과거의 엑스포는 시대가 갖는 공간적 시간적 제약 때문에 그 최소한의 정당성이라도 확보할 수 있었다. 먼 곳의 신기한 존재들을 불러모아 서로 보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인터넷도 잘 되잖나. 왜 이렇게까지 좁은 장소에 불러 모아야 하나? 좀처럼 납득하기 어렵다.
엑스포가 돈지랄이고 국력 과시용이라는 증거는 각국의 전시장에서도 드러난다. 유럽의 소국들은 단체관 속에서 파트를 나누어 쓴다. 크게 시선을 끄는 것도 없고, 그저 한 바퀴 휘 둘러나오면 되는 형태다. 들러리.라는 단어가 그 본래의 의미로 들어맞는다. 안스럽다. 어젠가? 뜬 인터넷 기사에 북한 전시관을 비웃는 내용이 있었다. 출처는 YTN 특파원이었다. 북한관이 폐쇄적이고, 볼 것도 없고, 개장 한 시간만에 분수 밑으로 물이 샌다는, 그래서 결론은 앞으로 엑스포가 펼쳐지는 6개월 동안 북한관이 과연 사람들을 얼마나 끌어모을지 모르겠다는 지랄같은 기사를 쓰셨더라. 단지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의 조합 속에 비꼬는 의도가 너무 분명하게 읽혔다. 그러고 싶나? 그러자면 유럽 소국들의 전시장도 한 번 까발려보시지 그랬나. 한 번 해보겠다는, 어떻게든 그래도 살아보겠다는, 먼 곳도 아닌 바로 옆의 피를 나눈 사람들이 사는 그 나라를 그렇게 바닥부터 긁어대고 싶으셨을까? 그렇게 기사 쓰셔서,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을까?
일이니까, 보고 싶은 곳을 다 가보지는 못 했다. 한국관도, 북한관도 못 봤다. 최대한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겠다는 얕은 꽤 때문에, 인기 없는(=유별난 볼거리가 없는) 전시관 몇 개를 보고, 마지막으로 나오기 전에 겨우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려서 스페인관을 보고 나왔다. 가우디의 나라답게, 잘 했더라. 나머지 3일은 기다리는 시간을 각오하더라도 좀 큰 전시관 위주로 동선을 짜도록 해야겠다.
당분간은 계속 관람객이 많을 모양이다. 초반에 볼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아니면 하루에 다 보겠다는 생각을 겸손하게 접으시고 긴 일정을 짜야 한다.
2010.05.01 22:27
웹진에 열올리는 것이 제법 되었다. 사람들을 모았고, 그들에게 글을 쓰도록 부탁했고, 어서 쓰라고 독촉했고, 다른 사람의 글을 평가하라고 떠밀었다. 불러서 묻고, 물어서 들은 것들을 다시 적었다. 하루 걸러 하루씩 전화해서 새로 써야 할 글과 읽어야 할 글을 알려주고 있다.
처음 웹진이라는 것을 만들겠다고,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 제법 오래 되어서, 막상 한참 열올리는 중에 돌아보니 왜 웹진을 만들겠다고 진심으로 나를 설득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은 나는데, 정말 그런 이유들이 나를 그렇게 들뜨게 했던 것인지 잘 모르게 되었다. 머리는 여전히 잊지 않고 있는데 가슴은 잊은 셈이다. 함께 편집작업을 맡아준 송지윤은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줄 몰랐다”고 말했다. 듣고 보니, 시킨 사람도 없고,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여하튼 별 소득 없어 보이는 일을 나는 왜 그토록 열심히 하려고 했던 것인지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무엇일까? 웹진은 인문학.과 예술.이라는 주제를 내걸었지만, 껍질 떼어내고 보자면 결국 ‘지적 허영’이다. 없어도 굶어 죽지 않고 얼어 죽지 않는 것이고, 있어도 특별히 배부르지 않고 아플 때 보험이 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 지적 허영이 탐났던 것일까. 못 다한 공부에 대한 자격지심 같은 것일까. 한 명의 사진사로 남는 게 싫어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그들과 함께 놀아보려는 것일까. 어쩌면.
애초에 내가 나를 설득했던 이유는 대충 이랬다.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 그들은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니, 그들에게 그 혜택을 돌려주라고 요구할 것. 그들이 받은 세상에게, 그들의 도움이 필요한 어디든. 그리고 그들을 모아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해 두면 재미난 일들이 많이 생길 것. 돈의 논리 앞에 소외 받고 내려앉은 인문학의 힘을 변호하고 드높일 것. 말 통하고 그런 심심한 것들로 더불어 즐거울 수 있는 사람들을 모을 것. 대충 이런 것들이 아니었나 싶다. 개인적으로는 부족한 공부를 이끌어줄 선생님들이 필요했고, 그런 공부를 통해 삶의 좀 더 깊은 곳까지 도달하고 싶었다.
두 개의 스터디, 사진 강의, 웹진, 그리고 소소한 원고들 몇 개 정도가 돈과 상관 없는 내 일이다.많지 않은 사진을 찍어서, 먹고 사는 일을 푼다. 시간은 부족하지 않다. 바쁘다 바쁘다 해도, 내가 괜히 벌려둔 일들 때문이지 먹고 사는 문제 때문은 아니다. 부족하다 부족하다 해도 스스로의 기준에 비해서지 어디 가서 욕먹을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남들처럼 좀 더 먹고 사는 일에 힘을 써야 하는 걸까? 시간이 있으면 밥 안 주는 공부 대신 좀 더 영업을 하고 좀 더 테크닉을 갈고 닦아서 좀 더 좋은 사진을 찍는 것에 모든 것을 던져야 하나? 그래서 좀 더 비싼 사진가가 되어서 어떤 클라이언트 앞에서도 기 안 죽고 콧대 높게 내가 원하는 사진만 작업하고 사고 싶은 것들을 사서 누리는 사진가가 되면 되나? 그러면, 얻고 싶은 것들을 얻을 수 있나?
풀었다고 생각한 문제들은, 마침내 발견했다고 생각한 답들은 언제나 잠시의 시간이 지나면 그 확신의 크기는 점점 작아지고 결국에는 다시 모호해졌다. 정말 그것이 한치의 의심도 필요 없는 진리여서가 아니라, 그것이 너에게 비추어서 바른 것이라는 설득으로 믿어야 할 모양이다. 믿음은 언제나 위태롭고 불안할 것이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외에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당장 무엇이든 뚫어낼 것 같은 기세도 멀지 않은 언젠가는 시들 때가 올 것이고, 확신의 크기와 상관 없이 웹진 작업에 지칠 때도 분명히 올 것이다. 재미있는 일이고 바른 일이고 또 필요한 일인 것은 분명하니까, 내가 지칠 때 다른 사람들의 힘을 빌어서 내가 기대 갈 수 있도록, 힘이 있고 마음이 닿는 동안에 열심히 그 공간을 구축해 놓아야겠다. 누구는 내가 가려는 그 곳에 좌표를 부여해 주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그 가치를 구하는 작업이 분명히 헛짓은 아니겠다.
쇼프로그램에 나온 가수들을 보다가 답답해져서 마이클 잭슨의 공연 실황 동영상을 봤다. 비단 한국의 특징은 아니겠지만, 아이돌 그룹의 단체 율동을 보고 있으면 그들의 몸짓은 그들이 부르는 노래와 별 상관은 없어 보이고, 그저 보기에 그럴 듯한 동작을 잔뜩 외운 다음 무대 위에서는 행여 순서 틀릴까, 다른 맴버들과 박자 안 맞을까 마음 졸여가며 움직여 대는 의미 없는 허우적거림 같다. 그러다가 이미 십 수 년, 어쩌면 그 보다 오랜 MJ의 춤을 보고 있으면, 음악이 몸 속을 꽉 채워서 마침내 더 이상 어쩌지 못 할 때 터져 나온, 음악이 그대로 형태를 바꾼 몸짓인 것을 알겠다. 나는 잘 몰랐고, 그의 죽음 이후에나 그의 영상을 뒤졌지만 그는 한 역사였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어떤 사람들은 시대를 구축하고, 그 다음의 세대는 그 유별난 인물이 구축해 둔 역사의 틀 안에서 그 양분으로 산다. 철학에서, 예술에서, 과학에서 우리는 그렇게 시대를 구축한 인물들을 떠올려 볼 수 있다. MJ가 구축한 시대의 양분으로 오늘의 아이돌들은 산다. 그 다음의 시대를 구축할 인물은 언제쯤 올까? 온다면, 알아볼 수나 있을까?
그나저나, 우리 필진들은 왜 그리 다들 굼뜨나. 쓰라는 거 빨리 안 쓰고.
2010.04.30 10:12
천진 역 앞에 있는 시계탑. 새벽.
제대로 조명빨. 새벽
이미 상업 아이콘이 된 모택동의 마스크.를 넘어서, 이제 그의 삶 자체가 아이콘이 되어버린 마오. 북경.
촬영이 없는 틈에 길을 산책. 천진.
촬영이 없을 때. 산책. 천진.
골목길. 아이들의 낙서. 그 위로 떨어지는 빛. 천진.
중국 각 지역의 지명을 딴 길의 이름표. 상하이와 닮은 도시의 탄생을 설명하는 증거.
사고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고 올라간 빌딩 옥상.에서 맞은 일출. 태어나서 처음, 지평선에서 뜨는 해를 보았다.
출장 다녀왔다. 천진에 다녀왔다. 5일 중에 3일은 일을 하고, 이틀은 오고 가고 노닥거렸다. 빈틈이 있었는데, 검토해야 하는 자료도 안 보고 읽어야 할 책도 안 보고 출장지 주변 길을 걸어다녔다. 천진의 빛은 상하이의 빛보다 맑아서, 빛은 제가 가 닿으려는 곳까지 더 깊이, 또렷하게 닿았다. 칼칼한 바람이 빛의 질감을 더 도드라지게 했다.
한 도시를, 한 땅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본 것은 천진인데, 그것들로 천진이라는 도시의 이미지를 구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얼기설기 엮어보려는 시도는 무모하다. 한 땅에 오래 살아 보아야 비로소 알까? 그래도 모를까? 아마 그 땅 위에 내리는 빛을 살피는 것은, 땅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2010.04.22 08:05
간밤에 비가 세차게 왔다. 비가 창문을 두드려서 밤중에 두어 번 뒤척였다.
새벽에 깨어서 아무 음악이나 틀어두고 짜파게티 하나 먹고 한국에 보낼 책 기획서를 다시 준비했다. 몇 번째 보내는 것인지, 이제 잊었다.
엑스포 1년 전에, 6개월 전에, 하던 것인데, 며칠 뒤면 엑스포는 시작한다. 아,
웹진은 진도가 더디다. 진도가 더디다기 보다 내 마음이 급한 것이다. 모든 시작이 그랬던 것 같은데, 폭풍처럼 달려들 거라는 생각은, 마냥 혼자 생각이었다. 코딩을 할 줄 모르니까 기존에 있는 스킨만 가져다 놓은 디자인은 어설프기만 하고, 필진들은 각각의 일로 분주해서 필진게시판은 개점휴업이다. 웹진 나비.와 연구공간 수유의 웹진을 우선의 모범으로 삼을까 싶다. 천천히 긴 호흡으로 해야겠다. 당장 그럴 듯한 결과물을 기대하지 말고, 지치지 말아야겠다. 그나저나 저 엉덩이 무거운 필진들을 어떻게 좀 꼬드기나.
2010.04.20 03:17
시간을 잘 못 맞춰서 깨어나니 새벽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한밤중이다.
밤의 가운데 맑은 정신으로 있기는 아주 가끔 있는 일이다. 귀한 시간이다.
무얼 할까 돌아보니 옆집 눈치가 보여서 음악을 듣기는 어렵고,
밀린 원고나 쓸까 꺼내서 두어 줄 쓰고 나니 그것도 흥이 안 난다.
사방이 고요할 때 어두운 속에 혼자 있으면, 호수 가운데 모든 나무가 혼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같은 모양으로 아래로 드리운 그림자도 있고,
하늘 아래 혼자일 때도 하늘만은 같이 있어주지 않더냐는 시인의 말도 있었는데.
2010.04.18 20:43
엑스포 개장 준비 때문에 몇 년 동안 상하이는 도시 전체가 공사판이었다. 와이탄도 올 초부터였던가? 공사에 들어가서 한 동안 접근할 수 없었다.
에프상하이 출사. 한국으로 돌아가는 둘과 필리핀으로 장기 여행을 가는 하나를 위한 조촐한 송별회. 봉식 형이 늦는다는 통보. 몇 가지 이유가 겹쳐서 오랜만에 어쩔 수 없이 출사를 갔다.
일하는 사진만 찍다가 가끔 별 생각 없이 카메라 들고 거리에 나서면, 셔터가 참 가볍고 경쾌할 때가 있다.
강변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일행은 근처 갤러리 카페에 피신해서 커피나 마시고 잡담이나 했다. 해 넘어갈 무렵에야 강변에 섰는데,
예전에는 보이되 잡히지 않던 이미지들이 하나 둘 내 카메라에 담기는 것이 새삼스럽다.
아, 내 사진이 조금 자랐구나. 이대로 가면 제법 사진에 힘이 붙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2010.04.17 09:32
4:30pm. 홍방
어제 저녁에 웹진의 첫 오프라인 모임이 있었다.
아홉 명의 필진 중에 여덟이 모였다.
아직 서투른 웹진 페이지를 함께 둘러보고, 앞으로 쓸 글에 대해, 할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 명 한 명 눈빛이 단단하고, 말마다 든든하게 들렸다.
이번에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까, 마침내 될 것이다.
신나는 놀이터를 만든다.
그대들을 믿고 나는 간다.
2010.04.16 08:11
출장지의 아침은 가능하면 혼자 먹는다. 일정들은 보통 아침 9시 전후에 시작한다. 그 전까지가 거의 유일한, 개인 시간. 저녁 시간은 또 다른 이야기. 그래서 최대한 비워내고 아직 말끔한 시간.을 혼자 보내기. 느긋하게 아침 먹으면서 무엇을 생각하거나, 메모하거나, 또는 아무 것도 안 생각하는 때. 이 고요한 아침이 분주한 하루를 버티고 이끄는 동력. 룸메이트도 늦잠 자기를 바라기도.
지도를 샀다. 호텔은 시내 지도의 경계 밖에 있어서 보이지 않고, 며칠 동안 예정된 목적지들은 성지도 속에서 청두와 겹쳐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
생활을 조금 더 간소하게 해야 한다.
좋은 것들, 아름다운 것들을 보았다. 자료를 보고 왔다. 많이 죽고 다쳤다. 그러나 숫자는 그 깊이를 재지 못 할 것. 지진과 관광은 참 극단에. 지진의 통곡을 병에 담아 판다는 인상.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기사에 쓸 수는 없겠지만.
그 내면의 모순은 없는가?
보고 싶지 않지. 가장 좋은 회복은. 다시 살려내는 것. 아이를 잃어버린 집에 새 아이가 태어났다. 따져 물을 것 없이 당연한 것인데, 답을 듣는 마음이 납득하지 않아. 미진한 마음.
맞다. 그 이외의 답을 생각하기는 어렵다. 관광객에게 입구에서 묵념을 받을 수도 없는 일.
두장옌. 재미난 곳. 그 지진의 상품화.
핑계가 잘 맞아 떨어졌다. 뭐, 관광 팀이니까.
2010.04.12 11:14
촬영을 위해 꽃을 준비 중인 플로리스트
오늘 내일 이틀 동안 촬영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아침에 연기 통보를 받았다.
돈 버는 문제와 상관 없이, 있던 촬영이 갑자기 연기되거나 취소되면 공짜 시간이 생긴 것 같아서 마냥 기분이 좋다. 촬영에 대한 부담감에서 해방되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덕분에 늦잠을 좀 잔 것도 문제가 안 된다.
주말 동안 밀린 원고를 쓰겠다던 것이, 겨우 웹진에 보낼 원고 하나와 자기 소개서를 쓰는 데 그쳤다. 그리고 모처럼 잘 쉬었다.
촬영이 연기되었고, 덕분에 당분간 긴급한 스케줄이 없으니 밀린 일들을 좀 챙겨야겠다.
오늘은 교민매체에 보낼 원고 네 개를 마저 쓰고,(틀은 잡아두었다.)
웹진에 보낼 원고 두 개를 또 쓰고,
금요일 미팅에 앞서 웹진 사이트를 완벽하게 구동시키는 것까지가 목표다.
근데 자꾸 영화도 보고 싶고 낮잠도 자고 싶고 군것질도 하고 싶어지나...
2010.04.12 01:21
법정 스님께서 가셨다. 스님께서 가시기 전 마지막 말씀 중에, 이번 생에서 잘 못한 것들은 앞으로도 계속 참회하겠다.고 말씀하셨다. 남은 며칠 동안에 참회를 끝내시겠다는 말씀은 아닐 테니까, 스님은, 다음 세상에서 다시 생명을 갖고 오실 모양이다.
출처: [인터넷 교보문고] 신. 1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간 신.과 사이먼 싱의 책 빅뱅.을 빌렸다. 베르베르의 책은 인간과 천사의 시기를 거친 주인공들이 마침내 신.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는다는 소설이고, 빅뱅은 우주의 탄생에 대한 천체물리학 이야기를 일반인을 대상으로 쉽게 풀어 쓴 대중과학서적이다. 이번에는 제법 주목을 받는 신간이라고 해서 기대를 했었는데, 신.은 다 읽지 못 했다. 10년 동안 100번을 고쳐 썼다는 그의 첫 소설 개미.와, 인류의 사후세계를 화려하게 풀어낸 두 번째 소설 타나토노트. 정도가 베르나르의 절정이었다는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후에 나오는 그의 소설들은 매력적인 아이디어로 시작하지만 시간을 두고 익혀내지 못해서 이야기의 밀도는 성글고 사건의 연결은 필연성이 떨어진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선명하고 단호해서 이야기 속에 녹아나지 못 하고 독립된 채로 공중에 떠 있다. 이야기는 그 떠 있는 메시지만을 빤히 바라보며 나아가서 자연스러운 감정이입이 좀처럼 어렵다. 전체 여섯 권으로 나온 것인데, 결국 세 권을 채우지 못 하고 반납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우주의 어느 모처에 있는 섬에서 신이 되는 교육을 받는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우주관은 불교의 윤회사상을 밑재료 삼고 서구의 유일신 사상을 고명으로 올린 다음 그리스 신화를 드레싱해서 마무리한다. 인류는 윤회를 거듭하며 그 어느 순간에 깨달으면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 천사가 된다. 그리고 천사의 어느 단계를 지나면 신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이 땅의 많은 종교가 현세의 너머에 대해 비슷한 장면으로 설명한다. (신이 되는 문제는 예외다.) 때로 천국과 지옥을 말하고, 신들의 동산을 말하고, 인간이 그 안으로 들어가서 존재로서의 업을 벗는 과정을 그린다. 지금의 모습으로 태어나기 전의 삶에 대해, 그리고 죽은 다음 다시 살게 될 삶에 대해 말한다. 잘못을 계속 참회하시겠다는 법정 스님의 마지막 말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삶 전에, 나는 어떤 삶을 살았었을까? 사람이기는 했을까? 아니면 짐승이었을까? 나무였을까? 원시 단세포 생물은 아니었을까? 생물이기는 했을까? 아니, 존재하기는 했을까? 이 물음들은 다음 생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해볼 수 있다. 사후 세계라면 심판.을 추가할 수도 있다. 내 양심의 무게는 내 심장보다 무거울까? 가벼울까? 나는 천국에 갈까? 지옥에 갈까? 윤회의 고리 속에서, 나는 어떤 다음 생을 살게 될까? 몇 번의 생을 더 살면 윤회의 고리를 벗어날까?
출처: [인터넷 교보문고] 빅뱅
소설 속에 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책들로 눈을 돌렸을 때, 유쾌하고 기발한 생각이 우주로부터 왔다. 사이먼 싱의 책은 우주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Big Bang 이론이 어떻게 생겨나고 발전되었는지를 다룬다. 저자는 학자가 아닌 다큐멘터리 제작자로서, 직접 제작한 다큐멘터리에 기초해 이 책을 썼다. 빅뱅.이라는 단어로 인터넷을 뒤져보면 검색결과는 실로 방대하다. 빅뱅.은 우주와 관련해서 쓰이는 것보다 대중문화 속에서 쓰이는 빈도가 월등하다. 책은, 이미 일상의 범주로 편입되어 익숙하게 들리는 단어인 빅뱅.의 등장이 사실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고, 그 성장 또한 한 편의 무협소설처럼 드라마틱했다고 쓴다.
빅뱅 이론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책은 도입부에서 인류가 어떻게 우주에 대한 이성적인 사고를 시작했는지 역사를 더듬어 간다. 샤먼과 토템의 시대를 지나 신이 만물을 주관한다는 중세를 거친다. 그리고 그 말미에서 선구적인 과학자들에 의해 우주는 ‘결코 파악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 아닌 ‘아직 파악되지 않은 이성의 영역’으로 돌려진다. 그리고, 이제 빅뱅이 등장한다. 그 시초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다. 아인슈타인은 거울 앞에 서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그의 사고실험을 통해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을 차례로 완성한다. 그리고 이 상대성이론의 계산에 근거하여, 르메트르 등은 우주가 계속 팽창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우주의 계속적 팽창은, 시간을 되돌리면 그 어느 과거에서는 현재보다 더 작았을 것이라는 예상을 가능하게 하고, 결국 과거의 과거 언제쯤에 우주는 한 점에 모인다. 빅뱅.의 탄생이다. 이것이 1920년 대의 생각이다. 그리고 이 때부터 1960년대 빅뱅이 지배적인 우주론으로 인정받을 때까지, 약 50여 년간 빅뱅 이론을 둘러싼 무협 활극이 펼쳐진다.
과정을 요약해 보면, 아인슈타인은 본인이 상대성이론을 구축했지만, 이론을 적용할 경우에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우주의 계속적 팽창을 인정할 수 없었다. 당시에는 ‘우주는 정적이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아인슈타인 역시 우주가 한결같기를 원했고, 그래서 본인의 계산에 약간의 변형을 가함으로써 우주의 항상성을 지켜내려고 했다. 우주상수의 도입이 그것이다. “1917년,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하고 나서 1년 후에 아인슈타인은 그의 방정식의 해 중에서 우주 전체의 시공기하를 기술하는 것을 찾으려고 애썼다. 당시에 받아들여지고 있던 우주론의 견해에 따라 아인슈타인은 특히 균일하고 등방적이며, 유감스럽게도 정적인 해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해는 발견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우주론의 전제조건들을 만족하는 모델을 얻기 위해 아인슈타인은 소위 우주상수라는 항을 도입함으로써 그의 방정식을 멍청이로 만들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 항은 본래의 이론이 갖는 우아함을 크게 손상시켰으나, 먼 거리에서 중력의 끄는 힘을 상쇄하는 데는 쓰일 수 있었다.” 최초의 3분, p.60
이후 다른 학자들에 의해 우주의 계속적 팽창을 예견하는 계산들이 나오지만 아인슈타인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 때 새로운 무공이 등장하는데, 미국 윌슨 천문대의 수장으로 있던 허블은(우주 공간에 떠 있는 허블 우주망원경이 그의 이름을 땄다) 별들의 적색편이(도플러 효과를 천체관측에 활용한 것으로, 후퇴하는 별들은 본래의 파장보다 적색으로 몰린 파장을 낸다)를 관찰해냄으로써 마침내 우주의 계속적 팽창이 확인하고, 아인슈타인은 이 곳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 완벽한 아름다움에서 한 치 벗어났던 그의 상대성 이론도 우주상수를 제거함으로써 다시 온전한 아름다움을 획득한다.
(--아인슈타인은 처음 상대성이론을 완성한 후 그 완전한 단순성에 대해 ‘아름답다’는 찬사를 보냈다. (빅뱅 p.166) 그 후 어쩔 수 없이 우주상수를 도입해야 하는 상황 앞에서, 그 아름다움이 훼손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단순히 복잡한 것이 아름답기는 어렵다. 온갖 복잡한 엉킴도, 그 복합골절이 마침내 거대한 단순함 속에 읽힐 때, 존재는 아름다움을 획득한다. 상대성이론은 과학적 수식인 동시에, 아인슈타인의 미학이었을 것이다. --)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지금보다 우주의 별들이 더 가까이 있었다는 뜻이다. 더 가까워지고 더 가까워지면, 우 주는 한 점에 모인다. 우주의 팽창을확인하는 것은 역으로 빅뱅의 존재를 생각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빅뱅의 이전을 상상할 수 없었던 학자들은 여전히 그 이론에 동의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 리고 빅뱅이론의 가장 큰 라이벌인 ‘정상우주론’이 남아있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주 는 팽창하지만 일정 기간 동안에, 팽창하는 우주 사이에서 새로운 천체들이 생겨나고, 결국 우주의 단위 면적당 밀도는 일정하게 유지된다. 정상우주론은 그렇게 우주를 탄생과 종말의 선 위에서 비껴나게 만든다. 영원히 지속되는 우주는 그 자체로 완벽해 보였다. 한 동안 빅뱅이론과 정상우주론은 공존했다. 그러나 빅뱅이론이 예측한 우주배경복사가 1960년대 전파안테나를 통해 관측됨으로써, 마침내 활극은 끝난다. 이후 다양한 관측 결과가 빅뱅이론을 지지했고, 현 재 우주의 탄생에 대해 빅뱅이론은 지배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빅뱅은, 100억 년에서 200억년 사이 과거의 어느 순간에 우주는 폭발을 통해 탄생했고, 이 폭발을 통해 시공간이 탄생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었냐는 질문 자체는 성립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전’이라는 단어는 시간 단위인데, 시간이 빅뱅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현재의 과거로 가면 우주의 기원에 닿고, 현재의 미래로 가면 우주의 종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주는 계속 팽창할 것인가? 아니면 어느 순간 팽창을 멈추고 다시 수축할 것인가? 우주의 시작과 끝은 (적어도 현재까지는) 과학의 영역 밖에 있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한 질문들은 (역시, 적어도 현재까지는)종교가 그 답(이라고 믿는 것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 우주의 시작과 끝을 통해 내가 태어날 다음 세상을 짐작하는 작업을 해 볼 수 있다. 과학은 별로 동의하지 않는 것 같지만, 어쨌든 종교는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빅뱅의 이전, 그 창조의 순간이 바로 신의 영역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상태는 잠정적일 가능성이 높다. 과학은 갈 수 없는 곳은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다만 아직 가지 못 한 곳이 있을 뿐이다. 나는 이야기의 진로를 우주에서 종교로, 그리고 다시 다윈의 진화론으로 잡는다.
종교가 이야기하는 창조의 순간, 신의 영역에 대해 말하기 위해 한 권의 책을 더 불러온다. 얼마 전까지 손에 잡고 있던 책은 리차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다. 내가 이 책을 구입한 것은 2007년 11월이고, 출간된 지 석 달 남짓한 책인데도 불구하고 구입한 책은 23쇄 판이다. 많이 팔았다. 책은 다윈의 진화론에 그 생각의 뿌리를 두고 있다. 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도대체 동의할 수 없는, 비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양측의 입장이 소개되고, 도킨스는 진화론을 무기 삼아 유일신에 바탕하는 대부분의 종교의 교리, 경전을 반박한다. 반박이라고는 하지만 그 공격은 일방적이고 그 강도는 학대에 가깝다.
5장에서 소개하는 문화적 유전 단위, ‘밈’은 인상적인 부분이다. 물론 다윈의 이론을 문화에 적용시킨 것은 리차드 도킨스가 처음 시도한 것이 아니고, 밈이라는 단어 역시 그의 작품은 아니다. 다만, 나는 이 책에서 밈을 처음 알았다. 도킨스에 따르면, 다윈 이론을 적용할 수 있는 최소 단위는 ‘유전자’이다. 유전자는 그 자신의 보존과 번영을 위한 방향으로 진화한다. 개체의 행동은 어떤 경우에 비합리적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유전자 단위에서 볼 때 합리적인 것이 개체 단위로 확장되면서 생긴 오류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다위니즘을 문화의 영역으로 옮겨올 때, 유전자에 해당하는 단위가 바로 ‘밈’이다. 종교는 그런 ‘밈’의 부작용 또는 의도하지 않은 파생적 기능으로 설명된다. (다위니즘을 사회 조직에 그대로 적용할 때 발생하는 문명의 정글에 대해서는 여러 비판이 있어왔지만, 이 이야기에서 다루는 방향과는 다르다.)
출처: [인터넷 교보문고] 마지막 3분(사이언스 마스터스 3)
다음 세상에서 내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하려면, 우선 그 단위를 어디에 둘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자연에서 다위니즘의 단위가 ‘유전자’이고 문화로 적용하면 ‘밈’이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우주론에서 이야기를 전개할 때 기본으로 삼아 마땅할 단위는 무엇일까? 그 답을 위해 두 권의 책을 더 불러 온다. 스티븐 와인버그의 최초의 3분.과 폴 데이비스의 마지막 3분.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앞의 책은 빅뱅으로 우주가 생겨난 직후의 3분을 다룬다. 1976년에 처음 나와서 1993년에 2판이 나왔다. 천체물리학 분야는 최근의 성과가 두드러지는 영역이어서 20여 년의 시간차를 둔 책은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이 책의 경우는 2판에서 그저 최근의 성과를 마지막에 덧붙인 것이 전부다. 대중을 위해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다루는 내용은 물리학 수학 화학을 방대하게 써서, 관련 분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으면 좀처럼 쉽지 않다. 수식이 나오는 부분, 화학 반응이 나오는 부분을 중간중간 건너뛰며 읽으면 어느새 후기를 읽게 된다. 그리고 다음 책은 생겨났으니 사라지는 것이 마땅할 우주의 그 마지막을 상상해 본다. 한 권이 창세기.라면 한 권은 묵시록쯤 되는 셈이다. 마지막 3분.은 그 서문에서, 최초의 3분.과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가 만든 계보를 따른다고 말한다. 책은 문고판 크기에 좀처럼 우주와 어울리지 않는 서정적인 하드커버 제본이어서 들고 다니며 읽기에 좋다. 그리고 전체 내용과 별개로 우주의 미래를 상상하는 8장은 그럴 듯한 SF서정시라고 해도 좋겠다. 1994년에 출판해서 2005년에 한국어판이 나왔다.
우주에 대해 말할 때, 우선 그 무진장한 공간의 크기와 시간의 길이에 생각해야 한다. 상상의 영역 속에서, 시공간을 확장시켜야 한다. 두 책에 따르면, 우주는 빅뱅 직후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 급속히 팽창해서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우여곡절을 거치며 오늘에 닿아 있다. 그 시간의 단위에 대해 말하면, 지구의 종말을 계산해 볼 때 나오는 여러 경우의 수 중에 어떤 것은 지구의 종말 시간을 10의 1500승 년이라고 예측한다. 10 뒤에 0이 1499개 더 붙는 숫자인데, 써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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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0000000000000000년이다. 생활에서 통용되는 숫자 단위는 일, 십, 백, 천, 만, 억, 조 정도가 고작이다. 그 너머까지 간다 해도 경, 해, 자, 양, 구, 간, 정, 재, 극, 항하사, 아승기, 나유타, 불가사의까지다. 마지막의 불가사의는 10의 62승이다. 존재하는 숫자 단위의 마지막까지 간 다음 다시 0을 1438개 더 붙이는 숫자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공간의 크기 또한 다르지 않다. 광년.이라는 단위는 비교적 익숙하지만, 실제 그 거리를 체감하는 것을 불가능에 가깝다. 빛이 숨도 안 쉬고 1년을 가야 하는 이 거리가, 우주에서는 보잘것없는 단위가 된다.
그 광막한 시공간 속에서, 우주는 탄생했고 별은 진화해왔다. 빅뱅으로 생겨난 물질들이 극히 미미한 우주적 불균형 속에서 중력작용으로 모이기 시작했고, 마침내 별이 탄생한다. 그리고 내부 에너지를 모두 태운 별은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후 마침내 폭발로써 생을 마치는데, 그 때 초고온 속에서 생성된 다른 원소들은 폭발과 함께 우주 공간으로 튕겨져 나가 우주를 떠돌다가 다른 별의 탄생을 이끈다. 물리적 환생이고 윤회의 고리다. 아무런 증거 없이 그저 막연한 기대로 영혼이 윤회한다는 말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윤회다. 이 윤회의 개체 단위는 아마도 별일 것인데,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그 단위는 무한히 쪼개진다. 별이라는 개체는 그 구성성분으로 나누어지고, 기관, 분자, 원자로 쪼개진다. 원자는 쪼개지고 쪼개져서, 현재는 쿼크.를 그 최소단위로 본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최소 단위가 쿼크인 셈이다. 이제, 나의 윤회가 출발하는 시점에 다 왔다.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선언은 인간.이라는 개체를 그 기본 단위로 삼는다. 그러나 하나의 인간을 나누면, 기관으로 분리되고 분자로 분리되고 원자로 분리되어서 결국에는 쿼크의 조합으로 귀결된다. 생각.이라는 과정은 뇌 속에서 전기신호가 오고 가며 뉴런을 자극하는 물리적 과정이다. 따라서 입자 또는 파동 작용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아인슈타인의 이론대로 빛을 추월하는 속도는 존재하지 않는다면, 생각하는 과정 또한 빛(입자 또는 파동)의 상호 작용으로 구축되는 것이고, 생각의 종합체인 기억.이나 그 추상 형태인 인격 또는 영혼 역시 어떤 근원 물질들의 조합상태로 파악할 수 있다. 생각의 구성 입자와 별의 구성 입자가 같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잠시 샛길로 가면, 이 단계에서 영혼의 전송 내지 복사에 대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입자의 구성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한 후, 그 순간을 고정시켜 신호를 기록하고 다른 곳에서 그대로 재생시킨다면 영혼은 전송되거나 복사될 수도 있을 것이다. 디지털 신호를 재생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물질을 나누고 나누어 양자역학의 단계까지 나아가면 그 세계는 더 이상 물리적 명확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에너지 값의 불확정성이다. 공학자들의 거시 세계에서 에너지는 언제나 보존된다. 이 법칙은 아원자 양자 영역에서 배제된다. 에너지는 한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자발적이며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변한다. 관련된 시간 간격이 짧으면 짧을수록 이 같은 무작위적인 양자 요동이 더욱 커진다.” 마지막 3분. P.67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양자적인 대상의 모든 속성을 정확히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자는 정확한 위치와 정확한 운동량을 동시에 가질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전자는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에너지 값을 가질 수가 없다. 완벽한 물리적 고정값 대신 다만 확률로 말할 뿐이다. 하나의 물리적 조합은 쿼크 단위로 볼 경우, 고정된 불변의 형태가 아니라 다만 운동하는 입자들이 일정 수준의 확률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결합된 형태로 파악된다. 확장시켜 말하면, 당신이라는 하나의 개체는 불변의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무한의 조합이 운동하고 있는 어떤 상태.라고 보는 것이 더 그럴 듯하다. 그 운동이 수용 가능한 확률 안에 있을 때 당신으로서의 당신의 개체성은 유효한 것이고, 반대의 경우에 그 조합을 더 이상 당신이라고 부르지 못 할 것이다. 억지를 부린다면 여기에서 들뢰즈를 끌어와도 틀리지 않는 것인데, 고정된 어떠한 형태도 없고, 다만 현재의 당신은 하나의 배치.에 그친다고 설명할 수 있다. 그 조합은 앞뒤에 붙는 다른 구성 형태와 특정한 시간에 절대적으로 제한된다. 세상의 모든 고정된 것들이 허물어지는 경지다. 이제, 고정된 개체로서의 영혼을 허물 차례다.
여전히 유효한 물리학의 기본 법칙들 중 하나, 열평형 내지는 에너지 보존 법칙을 떠올릴 수 있다. 형태가 변한다고 해도 그 에너지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종교에서, 사람이 죽은 다음의 영혼은 다음 세상에서 다른 존재로 태어나거나, 심판대에서 그 잘잘못을 가려 밝은 곳으로 올라가거나 어두운 곳으로 떨어진다. 환생이든 천국이든 지옥이든, 그 판단들은 영혼을 더 이상 분리될 수 없는, 또는 변하지 않는 최소의 단위로 가정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별이 태어나서 죽고 다시 다른 별로 태어나는 과정을 적용시켜 본다면, 한 인간 개체가 생을 마치면 몸을 이루던 모든 구성 성분은 분해될 것이다. 영혼 또한 그 구성 성분을 빛의 입자와 파동이라고 생각할 때 분해 과정에서 자유로울 까닭은 없다. 그리고 분해된 입자의 일부는 다시 사람의 구성 성분이 될 수 있고, 또 일부는 바다가 될 수 있고, 일부는 컵이 되거나 일부는 종이가 되거나 일부는 바람이 되거나 일부는 전기가 되거나 일부는 소리가 되거나 일부는 아직 이름 붙지 않은 무엇이 될 것이다. 영혼이 더 이상 분해될 수 없다는 생각을 포기하면, 영혼이 고유한 최소의 개체 단위라는 생각을 포기하면 그 구성성분은 곳곳으로 나누어지고 재조합 될 수 있다는 결론에 닿는다. 환생일 수 있고 윤회일 수 있겠지만, 그 윤회는 영혼 개체를 단위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입자 단위의 윤회에 그칠 것이다. 물론 영혼이라는 조합 형태에 어떤 특수 지위를 부여할 수도 있다. 특이한 형태로서 일반적 물질의 분해 과정과 다른 방식의 분해 과정을 따를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영혼이라는 존재를 비물질적이고 초월적인 존재로 남게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부분 또한 과학이 닿을 수 없는 영역이 아니라 아직 닿지 못 한 영역으로 보는 것이 당대의 합리성에 부합한다.
여기서부터는 생각을 조금 거칠게 펼친다. 우선 아이디어 수준의 생각들을 나열하고, 이후 다음 원고들을 연재하면서 차근차근 다룰 작정이다.
영혼이 윤회의 최소 단위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하면 많은 것이 변한다. 우선, 환생에 대한 기존의 개념이 깨진다. 당신이 자각하는 당신.이라는 존재(영혼)는, 과거에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당신의 영혼은 어떤 다른 영혼이 환생한 것도 아니고, 죽은 뒤에 심판의 저울 위에 올려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당신의 물리적 숨이 끊어지고 당신 뇌에 산소 공급이 중단되어 세포들이 죽으면, 그리고 죽은 세포들이 부패하면 당신의 영혼을 이루던 물질들 또한 분해되고, 당신은 완벽하게 소멸한다. 설사 당신을 이루던 입자들이 다른 형태로 조합된다고 해도, 그 조합은 더 이상 당신이 아니다. 개체의 물리적 생명이 끝나면, 당신이 자각하는 세계도 소멸한다. 당신의 우주가 끝장난다. 많은 돈을 벌기? 대단한 책을 쓰기?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 먼 곳을 여행하기? 세상에 기여하기? 모두 부질없다. 당신 사후의 세계가 당신을 어떻게 기억하든, 그것은 그들의 우주일 뿐 당신의 우주는 아닐 것이다. 완전하고 분명한 소멸이다. 우주의 시간에 대해 생각하면 개체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더욱 분명하게 덧없어 보인다. 겨우 100년의 삶으로 우주의 시작과 끝을 재려는 시도는 주제 넘어 보이고, 겨루고 버티며 이루고 살아내려는 노력들은 허무해진다.
결국, 모든 것은 자기 완성, 노골적으로 쓴다면 자기 만족으로 귀결된다. 개체는 자기만족을 달성하기 위해 생존한다. 시대에 기여하겠다거나 역사에 남겠다는 의지 역시, 후대의 역사적 평가가 영혼에 다시 어떤 피드백을 주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기여한다는, 시대에 획을 긋는다는 그 생각이 보다 큰 자기만족을 주기 때문이다. 당대의 평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동조차도 그 행동이 스스로의 신념에 부합한다는, 결코 신념을 꺾지 않았다는 자기만족의 형태로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가장 일반적으로 역사적인 자기만족의 방식은 번식.이었을 것이다. 유전자에 입력된 생존의 본능은, 자신과 가장 닮은 유전자 조합, 즉 다음 세대를 생산해서 자신의 조합을 이어가게 하는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다. 예술이나 종교, 득도의 만족 또한 형태는 다를지라도 결국 같은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사진을 찍고 문장을 만들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내가 가진 것으로 내 세계에 기여하는 것이 나를 즐겁게 하니까, 여기에서 만족을 느끼니까 이렇게 움직인다.
생존의 본능은 유전자 단위에서 추구된다고 해도, 만족감의 단위는 인간 개체다. 한 명 지식인의 정보가 한 질의 백과사전을 넘을 수 없고, 한 명 역사의 힘이 한 대기중기를 넘을 수 없다고 해도 우리가 한 명의 지식인과 한 명의 역사를 대단하게 보는 것은 그 지식과 힘이 하나의 인간 개체를 통해 구현되고 있기 때문이고, 이는 일반적인 사고의 단위가 인간 개체에 있다는 뜻이다. 결국 자기 만족이나 자기 완성은 그 개체를 단위로 삼아야 할 듯하다. 그렇다면 조금 성급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행복해야 한다.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행복해야 한다. 행복은 삶의 목표가 되어야 마땅하다. 만약 자신의 불행을 100% 확신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까지 오로지 불행했고 현재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분명하게 불행 밖에 없을 것이라면, 죽는대도 말릴 수 없다. 당신이 죽으면, 당신의 불행한 우주는 끝이다. 다만, 그 확신에 일말의, 10의 마이너스 1500승 만큼의 불확실한 부분이라도 있다면, 살아라. 살아서 마지막 남은 그 불확실성이 제거되고 마침내 100%의 불행을 확신하게 만들어서 그 때 죽든지, 아니면 그 작은 가능성이 조금씩 자라나서 현실이 되는 것을 확인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단위를 인간 개체 대신 공동체에 맞추면, 종교와 도덕교육에 대한 단서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종교나 도덕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자료는 앞으로 검토해야겠지만, 유전자 단위의 생존 본능을 공동체에 대입시키면 해당 공동체의 지속을 위한 종교, 도덕의 역할을 조금 생각해 볼 수 있다. 질문 하나를 덧붙일 수 있는데, 내가 착하게 살고, 남에게 기여하려는 것은 내 유전자의 오래된 명령일까? 아니면 도덕 교육의 결과일까? 리차드 도킨스는 위의 책에서, 인간은 유전자의 명령만으로 착하게 살도록 되어 있다고 하는데 마음껏 동의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당대에 있어서의 종교의 절대적 필요성을 긍정하기도 어렵다.
앞으로 더 이어갈 이야기들은 이렇다.
1. 영혼이 입자 단위로 분해된다는 생각을 검증하기 위해, 유기물이 분해되는 과정에 대해 찾아보려고 한다.
2. 인류의 문명사와 비교하기 위해, 개미의 문명사에 대한 자료가 있는지 보려고 한다. 개미가 이룩한 거대한 집단 거주체계를 볼 때, 진딧물을 사육하는 것도 언젠가 어느 개미에게서 처음 발명되었을 것이고, 직업의 분화, 개미굴의 구축 등이 개미가 탄생하던 그 순간부터 함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개미들의 역사와 인류의 문명사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본능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문화를 구축한 다른 생명집단의 구조를 살피는 것은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이다. 이 넓은 우주에, 인류만 살기에는 좀 이상하잖나.
3. 일련의 생각들을 조합하면, 자기완성, 자기만족이라는 것은 결국 현세에 행복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데, 그렇다면 역사에서 이미 여러 번 등장했던 인간 중심의 쾌락주의 철학에 대해 다시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들이 말하는 쾌락주의가 단지 방탕한 성욕의 세계가 아니었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들의 생각은 어디까지 나아갔던 것일까? 그리고 쾌락주의는 왜 지배적인 사상이 되지 못 했을까?
사족.
1. 우주에 대한 이 생각들은 얼마 전에야 구체화되었지만, 꽤나 확고하다. 작은 비밀을 알아낸 것 같은 마음이다. 그러나 분명히 해 둘 것은, 겨우 서른 둘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삶에 대한 통찰은 이제까지 변해왔고 앞으로도 변할 것이다. 그러니까, 겨우 서른 둘의 서투른 생각이다.
2. 과학에 대한 신뢰는 합리성, 이성에 기초하고 있다. 인류는 샤먼의 시대, 종교의 시대를 거쳐 과학과 이성이 지배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중세의 사람들이 원시 샤먼의 세계를 비웃듯이 우리는 이성의 이름으로 중세를 비웃고, 중세 사람들이 신 이외의 세상을 상상하지 못 했듯이 우리는 과학과 이성을 맹신한다. 그러나 정말, 이것이 끝일까? 신의 세계 다음에 이성의 세계가 왔듯이, 이성의 세계 저 너머에서 다른 무엇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3. 우주에 대한 소개서를 이야기할 때 빼면 섭섭할 책도 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그 책이다. 1980년에 출판된 책으로, 역시 다큐멘터리를 만든 후 그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된 책이다. 우주에 대해 알고 싶어할 때 가장 좋은 안내자가 되어 줄 수 있는 책이다.
4. 불교의 윤회론은 여러 방면에서 우주학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 스님들에게 코스모스를 교양필수로 듣게 하면 아마도 득도하는 비율이 확 늘 것 같다.
사람들은 나를 반군이라고 부르고, 나는 동생을 반군이라고 부른다. 동생은 내가 반군이라고 부르는, 세상에 단 한 명이다. 아마, 우리는 서로를 신뢰하고 서로의 미래를 확신한다.
동생은 사흘 전 밤비행기를 타고 왔다. 하루는 내 스케줄을 종일 따라다녔고, 하루는 여행 준비를 핑계 삼아 몇 가지 소소한 물건들을 샀다. 사고 보니, 운동화 한 켤레를 빼면 모두 여행과 상관 없는 것들이다.
새벽에 일찍 깨었다. 화장실에 앉아 어제 배달된 한국잡지를 보았는데, 패션 스타일 잡지 속에서 뜬금없이 인문학을 주제로 몇 페이지를 채우고 있었다. 아, 인문학의 창조적 작업이 아니라, 인문학을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소비하고 있는 것이구나. 역시, 믿을 만한 자본의 능력이다.
동생은 경영을 전공한다. 피붙이 눈으로 보는 것이기는 하지만, 꽤 잘 한다. 나하고는 성격도 달라서 한 자리에 엉덩이 오래 붙이고 공부하는 것도 잘 한다. 앞으로도 반군은 잘 할 것이다. 사방으로 튀고 엉뚱한 공부만 하고 사고칠 궁리를 하는 형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가끔 동생은 너무 돈과 상관 없이 지내는 듯한 형이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돈 버는 일을 학교 내내 배우고 있는 녀석이니 오죽할까.
한 동안은 돈을 더 벌기 위해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 결국 지금 내가 돈과 상관 없는, 헛지랄을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도 했었다. 나는 자본의 빌어먹으실 가능성을 믿는다. 예술에 대해 말할 때, 과거에는 시대가 지난 후에야 인정 받는, 사후의 예술가가 많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갈수록 재능 있는 예술가는 당대에 인정받기 쉬워진다. 자본의 세상이 고도화되면서, 민감한 자본의 촉수는 뭔가 ‘될 만한 것’을 놓치지 않으려 필사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본의 힘이다. 그러니까, 열심히만 사고를 치면, 자본의 민감하고 필사적인 더듬이, 그 촉수에 걸릴 것이다. 이미 있는 자본의 가치를 얻어내기 위한 방향 설정보다는, 자본을 꼬드기는 창조적인 작업이, 더 재밌잖나. 4월에는 출장이 여러 갠데, 사실 돈 되는 출장은 그 중에 하나 밖에 아니다. 나머지는 시간을 시간대로 쓰면서 돈은 전혀 안 되는 것인데, 이 나이 무렵이라면, 돈 대신 좋은 경험들을 얻을 수 있는 출장도 기껍다. 언제나 되든 뒤를 보게 될 때, 무엇을 했는가를 후회하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무엇도 열심히 하지 않은 시간들을 다만 피눈물 흘리며 부끄러워 할 것 같다.
필사적으로 돈 벌어서 지탱해야 할 집안 사정이 아니고, 별다른 생각 없이 시키는 일을 하며 주는 돈을 받아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도 아니다. 고마운 일이다. 반군과 며칠을 보내며, 가족의 고마움을 다시 생각한다.
함께 여행을 가자던 약속은 오래 되었다. 앞으로는 더더욱 함께 시간을 내기 어려울 것이다. 기다리고 기대하던 여행을 시작하려고 한다. 두어 시간이 지나면 두 반군은 자전거를 버스에 싣고 황산으로 간다. 하루는 산을 타고, 그 다음날부터는 자전거 여행을 시작한다. 며칠을 길 위에서 자전거 타고, 출장 일정이 잡혀 있는 형은 먼저 상하이로 돌아올 것이고, 지도와 나침반을 건네 받은 동생은 며칠을 더 달려서 형이 출장 가고 없는 집으로 귀환할 것이다.
동생에게는 김훈의 자전거여행.을 가져가게 했고, 나는 오랜만에 시집 두 권을 챙겼다. 숙제처럼 떠안은 최승자의 시집과 내 든든한 등받이 허만하의 시집이다. 아주 잘근잘근 씹어먹고 와야겠다.
언제나처럼, 여행의 목적은 무사 생존 귀환이다.
2010.03.21 23:43
오전에, 밀린 원고 중에 겨우 하나를 썼다. 이틀 전에 끝내야 되는 겨우 두 장짜리 원고였다.
오후부터 꼬박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웹진 디자인했다.
막힐 때마다 사방에 전화 돌려가며 묻고 물었다. 서버 관리회사까지 국제전화를 하고 보니 일요일 저녁이다.
그럭저럭 고비는 넘겼다.
열 명의 필진이 준비하고 있다. 디자인도 그럭저럭 폼은 잡아 간다.
종일 앉아 있었더니 엉덩이에 뿔이 막 나려고 한다.
다음 수요일에는 한국에서 동생이 와서 함께 여행을 가야 되고,
4월 초에는 5일 동안 출장을 가야 하고,
다녀오면 곧장 4일 동안 촬영을 해야 하는데,
그 사이에 어떻게든 대학원 원서를 넣어야 한다. 어쩌면 내년에 입학하겠다.
아, 미역국을 끓였다. 태어나서 처음, 마트가 아닌 정육점에서 소고기를 사고
스터디 맴버들이 알려준 대로 만들었는데,
왜 알려준 그 모양이랑 맛이 안 나올까?
자자. 늦었다.
2010.03.20 22:56
5:30pm. hilton
고양이를 만났다. 탐났다. 고양이는,
소파며 침대며 온갖 천을 긁고
불러도 오지 않고
종일 창 밖을 보며 지나온 몇 번의 생을 반추하거나 다음의 생을 무심하게 건너다 볼 것이다. 고양이는,
이번 생이란 그저 먼 곳에 서서 누적된 전생의 시간들을 돌아보는 것 밖에 아니다.
그러니까 고양이로 태어난다는 것은, 매듭을 지은 삶의 그 다음에 오는 영혼의 한 때가 아닐까.
그 완벽하게 독립한 우주를 곁에 두고 싶다는 것은, 소유욕일까?
너르고 푹신한 양탄자를 볕이 좋은 창가에 두어,
누구의 위협도 없는 곳에서, 누구의 시선도 방해하지 않는 곳에서 마음껏 네 우주를 돌아볼 수 있게 하고 싶다.
그리고 그로 인해 나의 우주가 또한 풍성하기를 바란다.
같은 실수를, 뼈저리게 두고두고 미안하고 아쉬웠던 실수를 반복할 수 없다.
이 고양이, 꼭 잡고싶다.
2010.03.18 22:15
7:50pm. 역
일 다녀왔다. 밤은 늦었다. 써야할 글 몇 줄과 보내야 할 연락 몇 건이 있다.
법정 스님께서는, 이생에의 글빚을 남기고 싶지 않으니, 부디 쓴 글들을 거두어 달라고 마지막 글빚을 남기고 가셨다.
글빚을 지는 사람도 있고, 말빚을 지는 사람도 있다. 세상에 빚지고 사는 사람들이고, 진 빚을 다 갚지 못 하고 가는 사람들이고, 빚에 빚을 보태고 가는 사람들이다.
나는, 어떤 빚을 질까.
메모만 얼른 옮겨두고, 자야겠다.
2010.03.16 00:03
자려고 누웠는데 눈이 말똥거려서 노트북을 켜고 스텐드도 켜고 오늘 운 좋게 빌린 시집 두 권도 가져와서 뒤적이다가, 쓴다.
어제는 책을 제법 읽었다. 오전에는 미학스터디에 발제할 책 분량을 보고, 오후에는 만들어진 신.과 마지막 3분.을 마저 다 보았다.
오늘은 아침에 글을 좀 쓰려다가, 부지런을 떨었는데 다 못 쓰고 인터뷰 준비해서 오후 내내 송지윤과 이인경을 인터뷰했다.
교민잡지에서 올해, 책읽기.에 대한 캠패인을 한다고 해서, 마침 잘 되었다 싶어 인터뷰를 기획했다.
날마다 새로운 책이 홍수를 이루고, 책에 대한 정보를 사방에서 얻어볼 수 있는 시대에 어떤 형태의 책 관련 기사가 어울릴까 고민했다.
아침에 보니 법정스님께서 마지막까지 보시던 책들에 대한 기사도 있었다.
그러니까 내 기획은,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독서리스트, 읽은 책 리스트, 읽고싶은 책 리스트, 초심자에게 추천할 책 리스트를 받고 그 리스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송지윤과 이인경은 극작을 공부하는 사람들인데, 이야기는 애초에 작정했던 대로, 따로 방향을 두지 않고 사방으로 펼쳐서 조금 난삽했다.
책에 대해 마음껏 듣고 말해서, 편했다.
웹진의 필진이 되어줄 사람들이 하나 둘 소식을 전해왔다. 오늘 밤이 마감이었는데, 몇 명은 아직 안 보냈다. 송지윤과 이인경도 그렇고, 웹진의 필진이 되어줄 사람들이 보내온 글들은 하나같이 둥글고 소박했다. 어찌나 겸손들 하신지. 부디 그 겸손을 잠시 내려놓고 가진 밑천을 당당하게 드러내 보이라고 부탁했는데, 그들의 겸손은 그들이 가진 것과 분리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대들이 가진 깊고 고요한 생각들이, 세상을 향해 펼친 민감한, 그래서 상처입기도 쉬운 그 더듬이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게 해주고 싶다. 그리고 세상에 그대들을 내어놓고 드높이고 싶다. 그대들이 조금 더 대접받는 사태를 만들고 싶다.
내일 있을 스터디가 연기되어서 늦게까지 깨어있어도 별 일 없다. 못 다 쓴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내일 오전 중에 마무리해야겠다. 발제문은 며칠 더 미뤄도 되겠다. 빌려온 시집 두 권을 차근차근 읽기 위해, 내일은 날씨가 좋으면 자전거를 타고 강으로 가도 좋겠다. 가서 읽어보고, 욕심이 나면 슬그머니 내 책장에 넣어두고 모른 척 할 수도 있다. 그들은 내게 좋은 시집을 추천해 주었는데, 나는 듣는 자리였으니까, 내가 아끼는 시집들을 드러내 놓지는 않았다. 바다 건너 이 땅에도 시집의 무게를 절감하는 사람들이 있었구나. 몰랐다.
2010.03.11 23:11
웹진 페이지 설계
+웹진을 만드는 동기
소박한 뜻에서 출발합니다.
상하이에서 발행되는 대부분의 교민매체의 컨텐츠는 1.중국매체에서 가져온 단순 번역물 2.쇼핑,식당 관련 소개성 기사 3.부동산, 경제 관련 실무 기사 등입니다. 다양한 독자층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벼운 내용으로 채워야 할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양보하고 생각해도, 컨텐츠의 완성도나 다루는 소재 등 아쉬운 부분을 어쩔 수 없습니다. 상하이에 거주하는 교민이 10만에 가깝다고 하는데, 겨우 표면을 더듬어 낸 기사보다, 좀 더 고민하고 공부해서 만들어 낸 문장을 읽고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컨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노는, 마당같은 웹진을 생각했습니다.
상하이, 또는 중국을 무대로 공부하고 고민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학교를 무대로 하고 계신 분들은, 아마 이 곳에서 열심히 자신의 속을 채워나가고 있을 겁니다. 많든 적든, 채운 것들을 정리해서 엮어내고 결과물로 생산하는 과정이 있다면 공부가 좀 더 재밌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혼자 있으면 좀처럼 시작하기 어려운 것들도, 옆에서 괜히 바람 넣어주고 옆구리 한 번 찔러주면 등 떠밀려서 못 이기듯 하나씩 되어가는 것들이 있지요. 웹진의 자극으로, 그런 작은 결과물들이 탄생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양한 커뮤니티가 있습니다. 동종 업계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나누기도 하고, 공통의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이기도 하지요. 웹진은 초기 시기에는 그 색깔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인문학과 예술을 중심 주제로 다루려고 합니다. 상하이, 또는 중국을 무대로 하는 분들 중에서 인문학, 예술을 전공하거나 좋아하는 분들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작업 주제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유하거나, 다른 루트를 소개받거나, 연관 아이디어를 나눌 수도 있겠지요. 꼭 그게 아니어도, 창의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다양한 프로젝트에 힘 있게 대응할 수 있을 겁니다. 생각하자면, 다양한 가능성들이 파생될 겁니다.
+웹진 운영 방안
웹진은 그 어떤 영리적 의도도 없습니다. 이후에 불특정 프로젝트 등을 통해 돈.이 관련된다면, 필진들 사이에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정할 겁니다. 믿으셔도 됩니다.
fshanghai 사이트가 있습니다. 현재는 사진동호회 성격으로 운영되는 곳인데, 이 곳의 webzine 페이지를 활용하려고 합니다. 페이지는 새로 설계해서, 웹진에 필요한 기능들을 구현할 겁니다. 이후에 필요하다면 따로 사이트를 분리하는 것도 가능하겠지요.
한 달 2회 발행을 기준으로 합니다.
현재 생각하는 기본적 형태는, 사이트 게시판 형태입니다. 페이지 메인에는 매 호의 전체 내용을 설명하는 안내 페이지가 jpg 파일 형태로 만들어져서 보일 겁니다. 그리고 그 아래는 웹진 게시판, 독자 게시판, 필진 전용 게시판 등이 배치될 겁니다.
웹진은 필진들의 블로그와 연동시킵니다. 필진들이 개별 블로그에 쓰는 새 컨텐츠는 원하는 경우에 한해 곧장 웹진 메인페이지로 연결될 겁니다. 또한 생산한 컨텐츠에 대해서는 다른 필진이나 독자의 피드백 의견을 댓글로 반영하고, 그 중에 다룰 만한 내용은 다음호에 별도의 기사로 구성할 수도 있을 겁니다. 개별 아이디어에 의지해 생산된 문장에 그치지 않고, 아이디어는 제안, 수정 등의 과정을 거쳐 보강되고, 완성된 컨텐츠 역시 다양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성하려고 합니다. 그게, 공들여 문장을 만드는 필진들에 대한 긍정의 반작용이 될 수 있겠지요. 뭐, 기능들이 실제로 구현될지는 닥쳐봐야 알 겁니다. ;;
초기에 한해, 웹진 홍보는 필진들의 개별 인맥을 활용합니다. 웹진이 발행되고 해당 호에 대한 목차이미지가 만들어지면, 필진들은 목차이미지를 첨부한 초대 메일을, 이 웹진에 관심이 있을 만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발송하시면 됩니다. 무작정 살포하는 것보다는 훨씬 단단한 독자층을 구축할 수 있을 겁니다. 예상은 그렇다는 거지요. 다단계. 비슷하지요? 그냥 비슷.만 한 겁니다. 몇 명 소개해도 소개비 같은 걸 기대하시면 안 됩니다.
+필진 시스템
필진은 이 웹진의 핵심입니다. 웹진은 필진의 원고 구성에 대해 따로 방향을 설정하거나 제한하지 않을 겁니다. 각 필진은 원하는 주제를 정하고, 필진들 사이에서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해당 주제에 대한 기사를 한 달에 2건 기준으로 작성하시면 됩니다. 웹진이라는 특성상, 분량 제한은 없습니다. 많아도, 적어도 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참고할 수 있는 시각 이미지를 첨부하셔도 됩니다. 글만 있는 페이지보다는 읽기에 편하려는 의도입니다.
당연히 생산한 컨텐츠에 대한 일체의 저작권과, 웹진 외부로 나가는 사용권 일체는 개별 필자에게 있을 겁니다. 웹진에 쓸 기사가 되는 동시에 각자의 데이터베이스가 되는 원고를 모은다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쓰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옆에서 닦달해주고, 진도 늦으면 옆구리도 찔러주는 시스템. 나쁘지 않겠지요? 독자 반응도 알려드릴 겁니다. 그렇다고 너무 독자 눈치보는 원고를 구성하지는 마시고요.
필진들에게 일방적 원고 생산을 강요하는 시스템이 되지 않도록, 최대한 그럴 듯한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이 되는 방법을 좀 더 고민해 보겠습니다.
2010.03.11 23:07
4pm. 신천지
촬영과 촬영 사이에 커피숍에 있다가 볕이 좋아서 밖에 나와 기다렸다.
사방 천지 봄빛 안 닿는 곳이 없다.
나의 우주.에 대한 서툴고 기특한 생각을 했다. 한 자리에서 맴을 돌면서 노트에 적었다.
저녁 먹고 잠시 쉬었다가 밀린 일들을 한다.
두통이 있다.
2010.03.10 22:43
6pm. 집
감자. 고구마. 호박. 당근. 버섯. 마늘. 피망. 두부.
쌀뜨물 받아서 끓이고 된장 풀어서 끓이고 재료 넣어서 끓이면 된장찌개가 된다.
별 생각없이 대충 집어넣은 것들이, 재료마다의 맛을 국물 속에 풀어놓는 것을 보면 기특하다.
방학 마치고 돌아온 미학스터디 맴버들을 만났다.
송지윤에게 웹진의 전체 방향을 설명하고 편집맴버가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몇 명의 필진을 더 모았다. 웹진 페이지의 전체적인 레이아웃을 정했다.
일 좀 하려니, 밤이다.
2010.03.10 00:26
5pm. 이케야
문화원에서 빌린 책을 반납하고 새 책 두 권을 빌렸다.
동호회 전시회에서 추가 프린트한 사진들을 오늘 마지막으로 전달했다.
읽은 책에 대한 감상문을 적어야 되는데,
이 달부터 새로 쓰기로 한 독서리스트 원고의 컨셉을 잡아야 되는데,
책 원고를 빨리 정리해야 되는데,
웹진 시안을 잡아야 되는데,
포트폴리오 마무리 작업을 마저 해야 되는데,
빌려온 프로젝터를 연결해서 영화 보며 짜파게티 두 개를 끓여먹으니 밤이다.
끝발을 휘날리며 눈가루가 날리고, 바람은 성벽을 넘는 점령군처럼 호되게 창 밖에서 불었다.
2010.03.07 00:08
오전에 물건을 전해주고 오후 내내 카페에서 책 읽었다. 카페에는 컴퓨터가 없고, 카페는 겨울에 춥지 않다. 나른하게 앉아 오래 읽으니 책은 진도가 많이 나갔다.
저녁에 바람소리 누나와 성현 형과 연주회에 갔다. 작년 교향악단 촬영 때 말해두었던 표다.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했다. 작곡가에 대한 선입견이 피아노를 도드라지게 했다.
백건우는 익숙한 길을 걷는 연륜 있는 아저씨처럼 입장했다. 사방을 둘러보며 무대를 단정하게 하고 피아노에 앉았다.
오케스트라는 넋두리하는 주인공을 둘러선 동네 주민들 같았다. 악단은 피아노에게 맞서는 역할도 아닌 듯했고, 완벽한 거리 너머에서 다만 듣는 청중도 아닌 듯했다. 피아노의 신세한탄이 좀 더 수월하도록 가끔은 추임새도 넣고, 피아노의 말을 되새김질하기도 하고, 겪어봐서 안다며 같이 장단도 맞춰주는 동네 주민들의 수근거림 같았다. 감정을 풀어내며 해방시킨 피아노는 2악장에서 좀 더 편안해졌고, 마침내 피아노의 이야기에 감정을 이입한 악단은 3악장 너머부터 앞으로 나서서 피아노보다 더 피아노를 응원하는 듯도 했다. 이야기 듣다가 본인보다 더 흥분하는 사람처럼. 3악장 너머에서, 내 읽기는 방향을 잃었다. 음악에 내러티브를 부여하려는 시도는 거칠고 무모하고 어리다. 괜한 짓이다.
백건우는 안개처럼 와서 형태도 없이 다만 피아노 앞에 흐린 추상으로 잠시 뭉쳤다가 다시 흩어지듯이 갔다. 허리 숙여 인사하고 나갈 때 두 팔을 모으지도 않고 몸에 붙이지도 않고 다만 아래로 늘어뜨렸다.
2010.03.05 23:54
4:30pm 엑스포 오스트레일리아관
한참동안 별다른 이유도 없이 미루어두었던 택배 몇 개를 보냈다.
신장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냈다. 출장 다녀와서 11월이면 보내주겠다던 사진들을 해 넘기고 봄이 가까워서야 보냈다.
짧은 편지를 함께 넣었다.
벌써 보내야할 영수증을 보냈다. 음식 컷 몇 개 찍은 것이 고작이라 큰 금액이 아니라서 그런가. 책상 한켠에 밀어두던 영수증이다.
며칠 전 찍은 사진들을 씨디에 구워서 보냈다. 별로 내키지 않는 촬영이었는데, 마음에 두었던 CDP 살 작정으로 찍었던 사진이다. 마침 어시스턴트 월급 줄 무렵이라, 그것 주고 왕복 교통비에 밥값 하니 빈손이더라.
오후에 공사가 한창인 엑스포 전시구역에 가서 촬영했다.
오스트레일리아관의 영상을 담당하는 인물이었다.
어시가 개인사정으로 못 와서 혼자 갔는데, 비 오는데 무거운 장비를 들고 전시장 꼭대기까지 오르내리려니 괜히 어시가 미워졌다.
한국에서 건영이가 와서, 함께 저녁 먹었다. 아이는 내 손을 피했고, 아내는 여전히 어려보였다.
이서방네 가서 바람소리 누나와 메카닉 형과 이서방네 부부와 차 마시고 잡담하며 놀았다.
돌아오니 견적을 묻는 메일이 한 통, 왜 촬영 아이디어를 빨리 안 보내냐는 독촉이 한 통 와 있다.
2010.03.04 23:12
아이돌 그룹이 대세다. 남자그룹은 별로 관심이 없으니, 여자그룹들을 보자면,
미끈한 아이들이 떼로 나온다. 춤의 특장은 긴 다리선과 골반이다.
늘씬한 다리.들이 떼.로 나와서 골반.을 흔들어대니 눈이 호강한다.
그런데, 대충 비슷하게 생긴 애들이 대충 비슷하게 들리는 노래를 한다. 가사는 말초적이고 곧장 와닿고,
그러니까, 빨리 소비시켜야 하니까. 소화되길 기다릴 틈이 없지.
클래식. 왜 30분씩 비슷한 멜로디를 반복하나?
그들 또한 당대의 대중을 상대한 것은 맞는데. 작곡가의 자의식은 어느 시대에 처음 생겼을까?
문학과 시각예술을 통해서, 미루어 짐작하는 클래식의 깊이.
그 넓고 깊은 정신의 깊이.
앨범마다 다르고 녹음마다 다른.
오디오에 쓴 돈을 생각하면, 마땅히 좀 들어야겠다.
집중해서 듣기. 그 배경을 공부하며.
2010.03.04 22:59
웹진.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지낸 것이 제법 몇 년 되었다. 아이디어만 내고 접은 것도 있고, 제법 시안도 만들어 보고 사람도 모았던 것이 또 두어 번이다.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시도를, 또 한다.
상하이에서 출간되고 있는 한국어 활자매체들이 다루는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아무래도 다양한 독자층을 아우르는 기사를 구성하려다 보니 나오는 기사라는 것이 우선 소비지향적이고 바탕은 흐리고 내용은 깊지 못 하다. 나부터 생각해 보아도, 조금 미안한 말이기는 하지만 교민매체에 보내는 글은 대충 날림으로 쓰는 것들이다. 만족시켜야 할 기대치같은 것이 없으니, 못 쓴다고 해도 어떤 피드백도 없으니 그 때 그 때 떼우는 식으로 쓰고 만다. 그렇게 쓴 문장들은 여간해서는 다시 들춰보지 않는다.
웹진은 상하이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깊이있는, 그리고 오래 고민한 생각들을 싣는다. 10여 명이 넘는 필진은 본인이 쓰려고 하는 주제를 자유롭게 정하고, 정한 주제에 대한 글을 한 달에 두 차례 정도 쓴다. 원고 생산 주기는 개인이 정하고, 웹진은 그 때 그 때 모이는 원고들로 발행한다. 상업적 연계를 생각하지 않고 필진들의 자발적 기고로 운영한다. 개별 필진은 웹진의 내용이 되는 동시에 각자의 데이터베이스가 될 원고를 생산한다. 필진들에게, 웹진은 새로운 주제로 글을 쓸 수 있도록 자극을 주고, 생산한 컨텐츠를 여럿에게 보임으로써 창작에 대한 쾌감을 주고, 또 어떤 이유로든 차곡차곡 상하이와 관련된 본인의 자료를 축적하는 기회를 준다. 현재는 얼마 되지 않는 인맥을 동원해서 한 명 한 명 필진을 발굴해야 한다. 상하이에 대한 인문학적 컨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과, 컨텐츠를 문장으로 가공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찾는다. 원고가 그저 ‘아이디어의 파편적 나열’에 그치지 않도록, 원고 생산은 아이디어 제안 - 필진들 사이의 공유 및 아이디어 수정 - 원고 작성 ? 수정 - 편집 등의 과정을 거친다. 웹진은 아이디어 수준에서 머물던 원고가 단단하고 짜여진 결과물이 될 수 있도록 자극한다. 또한 창조적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고 네트워크를 구축해서, 이후에 발생할 다양한 프로젝트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 언제나 빠지지 않는 유학생에 대한 고민도 웹진을 통해 일부 답을 얻을 수 있다. 웹진을 통해 구축된 인적 자원들은 마땅한 조언자가 없는 유학생들에게 인문학적 지원을 해야 한다.
한국에서 돌아온 성현 형을 낮에 만났다. 많은 힘을 보태줄 형이니까 몰래 기다렸다. 형은 개항 시기의 상하이를 소재로 하는 글을 구상할 수 있겠다고 하셨다. 열흘쯤 전에 곽승민을 만나서 합류하겠다는 답을 들었다. 상하이에 있는 명품 브랜드의 개별 예술 컬렉션에 대한 글을 쓸 수 있겠다고 했다. 유학생 박지원은 학부생이지만 차분하게 긴 문장을 써낼 수 있을 모양이다. 택시 기사분들을 취재해서 그들이 알고있는 상하이의 어느 구석진 이야기를 담아보겠다고 했다. 욕심은 나는데 아직 뜻을 물어보지 못 한 사람도 대여섯 있다. 극작을 공부한 사람이 있고, 전쟁사를 좋아했다는 디자이너도 있다. 가진 책들을 모아서 책방을 만들고 빌려준다는 소문 속의 인물도 있고, 성현 형이 꼬드겨주겠다고 한 사람도 있다. 공부 마치고 한국 돌아가 있는 녀석도 있다. 다들 와서 북적거리면 좋겠다.
시간이 흘러서 자리를 잡으면 찾아와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시작은 소박하고 초라할 것이 뻔하다. 웹진에는 레스토랑 소개도 없을 것이고 놀기 좋은 클럽 이야기도 없을 것이고 광고를 가장한 매장 인터뷰도 없을 것이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공들여 만들어낸 문장은 아마 진득하게 읽어야할 수준일 것이고 결국 제한된 독자층을 겨우 확보할 것이다. 필진들은 개별 인맥을 활용해서 새 호가 출간될 때마다 특정 그룹에게 안내문을 발송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불특정 다수에게 ‘살포’하는 것보다 훨씬 양질의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다. 시작은, 그럴 것이다.
처음 생각한 형태는 수집된 원고를 편집, 배치한 후 PDF페이지로 만드는 것인데, 그러면 웹진을 운영하는 페이지에는 전체 내용을 올리고, 별도로 제작된 안내 페이지 하나만 첨부해서 독자들에게 안내 메일을 보낼 수 있다. 메일을 받은 사람들은 안내 페이지를 통해 업데이트된 웹진의 전체적 내용을 파악하고, 웹진 페이지에 접속해서 필요한 기사를 읽을 수 있다. 성현 형은 약간 다른, ‘팀블로그’ 형태를 제안했는데, 전자가 페이지 디자인에 많은 힘이 필요하다면 후자는 바탕이 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힘을 써야 해서, 어느 것이 더 만들기 쉬운가?는 선택의 기준이 되지 못 하겠고, 결국 독자들의 보다 나은 접근성을 확보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어떤 형태를 선택하든, 웹진의 큰 틀은 블로그 형식을 따를 것인데, 필진들은 가능한 개별 블로그를 운영하고, 블로그에 새로 쓰는 원고는 웹진의 메인페이지와 연결되어 자동으로 리스트에 추가된다.
상하이에 사는 한국인은 10만에 육박한다는 모양이다. 더 된다는 말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 살 것이다. 그 중에 지금의 교민매체가 생산하는 컨텐츠에 만족하지 않는, 아무나 발품 좀 팔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아닌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컨텐츠를 구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웹진을 읽고 또 웹진을 채운다.
우선 필진을 더 섭외하고, 각각이 정한 주제에 대한 첫 번째 준비 원고를 받아서 시안 수준의 웹진을 만들어 보아야 한다. 그런 후에 다들 함께 돌려보며 무엇인가 되어간다는 실감도 하고, 다듬어서 진짜를 만든다.
필진을 섭외하기 위해, 그들에게 대충 설명하기 위해서 웹진에 대한 생각들을 거칠게라도 풀어내야 했다.
2010.02.27 23:00
3:30pm. 뚜오룬루
흐리고 바람이 불고 빗방울이 조금씩 날렸다.
오전에 사진액자 작업을 맡기고 오디오 매장에 갔다.
어떤 음악, 어떤 오디오 장비에서 나오는 현소리는
근육을 그 결대로 찢어낸다. 결마다 풀려난 근육의 가닥들이 사방으로 펼치고 음들이 그 사이 마다에서 팽창한다.
오후에 뚜오룬루에서 사람들과 사진 찍고 놀았다.
2010.02.24 22:44
4pm. 하미루
오전에 흐리고 오후에 맑고 밤에 번개가 치고 비가 왔다.
어제 밤에 늦게 자고 아침에 일찍 깨서 종일 졸렸다.
전시사진을 찾으러 온 바람소리 누나가 충청도쌀, 경상도쌀, 강원도쌀, 전라도쌀 햇반을 사다 주었다.
사람들 불러놓고 블라인트 테스트를 할까 보다.
오후에 이발했다.
2010.02.22 17:12
지구 온난화는 착한 거짓말? | Daum 미디어다음http://media.daum.net/digital/view.html?cateid=100019&newsid=20100220040307380&p=mk
지구온난화는 허구라고 주장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인류의 환경오염이 지구온난화를 유발한다는 이론에 대해 반대하는 다큐멘터리다. 이름은 잊었다. 다수의 과학자들이 나와서 '지구표면온도의 상승'과 '인류의 환경 오염', 특히 이산화탄소 배출은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지구표면온도의 변화는 태양의 흑점 변화와 더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는데, 이는 지구기온 변화의 추이를 살펴보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그들이 제시한 그래프에서 지구의 온도는 때로 상승하거나 때로 하강했는데, 마침 지금이 상승기에 있는 것이고, 환경보호론자들은 이를 과장하여 인류에게 커다란 위협이 닥친 것으로, 그래서 오늘 당장이라도 전지구적인 환경보호와 이산화탄소 감소에 나서야 한다고 지구인을 속인다고 말한다. 지구는 자연적인 기온상승기에 있고, 이 단계가 끝나면 기온은 다시 하강할 것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번 겨울 북반구 곳곳에 겨울추위가 닥쳤다. 일부 언론은, 곧 새로운 소빙하기.가 시작될 수 있다는 예측을 인용해 보도했다. 지구온난화의 이론으로 본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전개를 기사로 다룬 것이다. 그동안 일부에서만 다루어지던 온난화의 허구성에 대한 내용을 언론들이 하나둘씩 풀어놓기 시작하고 있다.
인류의 환경오염이 지구온난화를 유발한다는 주장은 왜 여전히 힘이 셀까? 다큐멘터리는, '녹색산업'(이 정부의 말뿐인 그것과 별개로,)이라고 부르는 일련의 산업형태가 이미 거대해져서 그것을 더 이상 침몰시킬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녹색산업에 연관되어 있고, 그 연관을 통해 돈을 벌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그럴 듯하다. 자본은 모든 것을 삼켰다. 물론 이들의 주장에 대한 비판도 있는데, 지구온난화와 인류의 환경오염이 큰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은 석유재벌들이 그들 산업의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뒷돈을 주어 만들어낸 연구결과라는 주장이다. 이것도 그럴 듯하다. 두 그럴 듯함 사이에서 한쪽에 무조건 손을 들어줄 배짱은 없어서 다만 그런 주장들이 있구나 하며 넘겼는데, 돌아가는 모양새가 갈 수록 온난화의 허구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속였다면, 나쁘다.
환경보호는 필요한 것이고 마땅한 것이다. 두 발로 땅을 딛고 선 '인간'이 홀로 누리는 땅이 아니니까, 동물과 더불어 식물과 더불어 그리고 여러 존재와 더불어 있는 공간이니까, 이 공간을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으로 함부로 쓰면 안 되는 것이고, 이 땅에 잠시 머물고 가면 다음 세대가 또 이 공간을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마땅하다. 발전이라는 면죄부 아래, 너무 함부로 살았다. 그러나 조작된 정보를 앞세워 지구가 당장 쓰러질 지경이며, 지구가 쓰러지면 지구가 불쌍한 것은 우리가 알 바 아니나 당장 당신이 더 살 수 없다고 협박하며 몰아세우는 거짓말은, 기만이다. 당신이 내뿜는 호흡, 당신이 쓰고 버린 온갖 제품들 때문에 이산화탄소가 증가하고 그 무지몽매함이 하필 당신 머리 위도 아닌 남극 하늘을 찔러 두 팔을 다 펼쳐도 품을 수 없이 큰 구멍을 냈다는 말은, 인류에 대한 원죄 선언처럼 들린다.
이야기의 옳고 그름은 더 두고보아야 할 일이고, 이대로 간다면 지구가 끓어올라 종말을 맞지 않더라도 쓰레기에 뒤덮여(월-E. 그러니까, 내 말이.)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지 못 한다. 그러니까, 시장에 갈 때는 장바구니를 들고 가야 한다는.
기후변화 그래프 - 출처: 지구 온난화는 착한 거짓말? | Daum 미디어다음
2010.02.22 16:37
3pm. 방
제대로 봄이다.
밤을 새고 어질한 정신으로 아침 장에 가서 쌀을 주문하고 과일과 고구마를 샀다.
점심 먹고 잤다.
오후에 깨었는데, 빛이 방 안에 들고 사방이 고요하다. 멀리에서 차 지나가는 소리는 아득하게 들린다.
빛만 보아도 봄인 것을 알겠다.
많은 것이 마음 속에서 빛 보겠다고 뜀박질을 한다.
2010.02.22 00:18
12pm. 집
필요하다고 꺼내둔 책들이, 며칠째 그 자리에 있다.
날씨가 풀렸다. 종일 창문을 열어두었다.
2010.02.19 22:04
3pm 광동루.
최저기온이 올랐다. 예보에서 내일부터는 추위가 물러간다고 한다.
오후에 갤러리에 가서 승민.을 만났다. 미학으로 석사를 시작하는 문제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만들려는 웹진의 필진이 되어주기로 했다.
2010.02.18 21:53
2pm. 철로 위 육교
색들이 바람에 올라타고 버티며, 봐라, 나도 이렇게 있다.
아침에 흐렸다. 낮에 맑아졌다. 바람이 불고, 기온이 낮았다.
입학을 위한 수학계획서를 초안만 잡고 다 못 썼다.
잠시 나가서 주문받은 칼럼에 쓸 추가사진들을 찍어왔다.
책 기획서를 손 못 댔다.
2010.02.18 21:46
수학 계획서
.. 대학에서 정치외교와 중국지역학을 공부. 현대중국정치에 대해, 그리고 포스트모던에 대해 배웠다. 그 때 인상적이었던 것. 기준의 부정. 다양성의 인정. 안재흥 교수님. 그 인상 강함.
.. 상하이에서 상업 사진가로, 잡지의 포트레이트를 주로 찍음. 사진에서, 단체로 읽을 수 없는 표정. 피사체와의 거리를 넘는 문제 등. 그리고?
.. 그러면서 미술사와 미학, 현대 예술 전반에 대해 공부하고, 현대 사진에 대해 고민했다. 내가 이해하는 사진사의 전개는~. 나다르 앗제 스타글리츠 현대사진. 그러나 사진을 활용한 현대미술보다는 현대예술로서의 사진에 관심.
.. 관심 분야는, ‘이미지 언어’ 그 간격은 넘기 어려운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러나, 사진 등장 이후 그 논의는 활발해짐. 그 전에는 도상해석학. 이건 완전 논리로 읽는 선형성.
소쉬르 벤야민 데리다 들뢰즈
.. 전후 미학 인식. 예술의 사회 기여에 대해 공감. 그럼, 사진을 베이스로 해서.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으로 사진 이미지의 홍수. 일상으로, ‘대화’의 개념 속으로 들어온 사진. 그 사진은 ‘문자 언어’가 아닌, 그러나 문자 언어가 갖는 일상의 소통성을 갖고, 더 빠르고 직접적이고 소통적인 방식. 이미지를 뿌리는. 이 사태를 미학은 어떻게 읽어낼 수 있나?
.. 궁극적으로, 세상을 읽는 내 시선을 다지기.
.. 그래서, 앞으로의 관심 분야는, 할 수 있다면,
.. 우선 이미지를 문자 언오와 차별적 위치에서 다룬 다양한 저작의 검토, 특히 그 선형성의 반대편에서 이야기하는 것들. 문자 언어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시각 언어의 문법의 가능성을 탐색
.. 미디어 범주가 아닌, 개인들 간의 네트워크에서 사진이 어떻게 ‘언어’로 기능하고 있는지 관련 자료를 탐색, 그리고 그 전망은? 개입 가능성은?
.. 현대 사진 미학에 대한 기본을 잡는 공부. 이 부분은 많이 부족함.
2010.02.18 21:15
홈페이지를 다시 만졌다. 1. 사용중인 제로보드를 xe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하고, 2. 글쓰는 작업을 더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블로그를 연결하고, 3. 그에 따라 index페이지를 수정했다.
1.
막강한 스킨들로 유명한 제로보드는 홈페이지가 대세일 무렵 없어서는 안 되는 게시판 제작 툴이었다. 제로보드가 나오기 전에 일반적인 유저들은 게시판을 만드는 모든 코드를 직접 인코딩해야 했다. 그 형태 또한 조악했다. 제로보드의 탄생은 코드를 모르는 일반인들도 세련된 게시판을 보다 쉽게 만들 수 있도록 지원했다. xe 버전은 제로보드의 최신버전인데, 이미 대세가 블로그로 옮겨간 후라 이전 4 버전만큼 대중적 호응을 얻어내지는 못 하고 있다. 기존 내 홈페이지는 ver.4를 기반으로 만들었는데, 이번에 고치면서 제로보드도 업그레이드했다. 기존 버전과 차별성이 커서 덮어쓰기 방법으로 할 수 없고, 완전히 새로운 프로그램을 ftp에 업로드하는 방식으로 했다. 기존 버전으로도 원하는 기능을 구현하는 데는 크게 무리가 없었고, 달라 보아야 뭐가 많이 다를까 싶었는데, zeroboard xe. 4 이건 정말 물건이다. 기존 4버전은 게시판의 기본 형태는 고정되어 있고, 이름 그대로 보이는 모양만을 수정하는 'skin'이라는 것을 적용해서 다양한 비주얼을 구현했다. 그러던 중에 드림퀘스트.라는 유저가 제작한 스킨이 등장하는데, 게시판의 비주얼만 고치는 것이 아니라 게시판을 구현하는 여러 변수들을 스킨에서 직접 변경할 수 있게 해서, 테그를 전혀 사용하지 못 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게시판 형태, 표시항목 등을 선택할 수 있도록 구현했다. fshanghai와 내 홈페이지의 이전 버전에서도 모두 드림퀘스트의 게시판, 갤러리 스킨을 사용했다. 이후 몇 가지 스킨들이 비슷한 형태로 등장했고, 제로보드는 업그레이드 과정에서 이런 흐름들을 완전하게 통합했다. 세계적인 게시판 툴인 제로보드는 한국의 개인이 처음 개발했고, 이후 개발은 오픈소스 형태로 진행되어서 원하는 누구든 참여해서 아이디어를 보태고 그렇게 더해진 아이디어는 더 유용한 기능들을 포함하는 계속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2.
기존 홈페이지는 aphorism에 있는 토막글과 portfolio에 있는 사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사진의 경우 업데이트가 늦어져서 언제나 있는 사진들만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글쓰기 비중을 좀 더 늘리고 내가 쓴 문장들을 다양한 마당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 블로그를 연결해야할 필요성이 있었다. 제로보드를 xe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한 가장 큰 이유는 xe버전에서 지원하는 textyle 모듈이다. 이 모듈은 제로보드에서 블로그를 구현하는 전용툴인데, 대부분의 블로그가 서비스 제공업체가 마련한 공간과 틀에 기반하는 것과 달리, 텍스타일은 각자의 서버에 직접 설치하여 운영할 수 있다. 단지 소속의 문제가 아니라, 글쓰는 입장에서 볼 때 웹상에서 문장을 만드는 작업에 필요한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기능은 '글감수집기'라는 것인데, 웹서핑 중 마음에 드는 내용이나 이미지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버튼 하나로 스크랩한 다음 곧장 본인이 글 쓰는 과정 안으로 삽입시킬 수 있다. 또한 블로그에서 구현할 수 있는 RSS 기능은 원하는 대상 블로그의 새글을 사이트 방문 없이 자동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주고, 내가 생산하는 정보와 문장을 같은 형태로 전파할 수 있게 한다. 블로그와 트위터가 대세다. 트위터는 단문 위주의 글쓰기 전략을 채택해서 생각의 조각들, 단편적이고 순간적인 문장들을 소통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는 짧고 빠르게, 순간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적절할 수 있어도 긴 호흡의 문장을 생산해야 하는 글쟁이들에게 어울리는 마당은 아닌 듯하다. 어쨌든, 블로그를 연다.
3.
기존 index 페이지는 두 개의 플래시 파일로 움직인다. 로고를 보여주는 메인프레임, 메뉴프레임을 모두 플래시로 제작했다. 플래시는 동적인 화면을 구현하는 최고의 툴로 일반인들의 호응을 받아왔지만, 내가 쓰는 아이폰의 경우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아서 휴대폰으로는 내 사이트에 접속할 수 없었다. 앞으로 플래시 사용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추세라고 하니, 이 참에 메인프레임만 남기고 메뉴바는 드림위버의 비해이비어.기능을 써서 최대한 간단하게 만들었다. 사실, 내 경우에 드림위버나 플래시 등은 홈페이지 업그레이드 할 때나 겨우 한 번씩 쓰는데, 잘 해야 1년에 한 번이고 그러면 할 때마다 프로그램은 처음 보는 것 같아서 세세한 효과를 구현하려면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는 만큼의 시간이 걸린다. 보기에 예쁜 슬라이드 메뉴를 플래시로 구현하는 작업을 다시 할 마음이 도저히 안 들었다. 비해이비어. 역시 인터넷을 검색해서 대충 사용법을 보고 따라했는데, 반 밖에 안 됐다. 포트폴리오 서브 메뉴는 한 번 나타나면 사라질 줄을 모르더라. 아, 그냥 둘란다.
홈페이지를 수정하면, 꼭 새집에 이사 온 기분이다. 기존에 썼던 글들을 우선 모두 옮겨왔는데, 각 글마다 제목을 달고 내용에 맞는 테그를 만들고 성격에 맞게 카테고리 별로 분류하려면 이게 적지 않은 일감이 된다. 쉬엄쉬엄 하련다. 앞으로 하려는 작업, 쓰려는 글들에 어울리는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었고, 비어있는 카테고리를 채울 아이디어들도 잔뜩 부풀렸다. 우선 기존 글들의 재배치 작업과 포트폴리오의 업데이트가 끝나면 이번 이사는 대충 정리가 된다.
새로운 마당이다.
2010.02.16 23:15
1 내가 무엇을 할까
2 올해 목표들
3 마인드맵
그러니까 내 말이 그렇단느
열라 어렵습니다...
아... 그래도 좋다니까.
2010.02.04 22:41
토니가 오랜만에 연락이 와서 파티가 있으니 다녀가라고 했다. 거의 1년만이다. 가서 보니 토니가 제작년에 론칭한 TV프로그램 관련 행사였다. 우리는 2005년에 만났다. 토니는 상하이에 살고 있는, 아시아 국가의 젊은이들이 말하는 꿈.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었는데, 운 좋게 그 중 한국 젊은이를 대표해서 내가 참여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주일을 꼬박 따라다니며 그들은 내 하루하루를 찍었다. 촬영을 쉬거나 이동 중에, 그리고 인터뷰를 하며 우리는 서로의 꿈에 대해 말하고 들었다. 그 꿈을 하나씩 하나씩 이뤄가는 토니를 보니 괜히 마음이 급해서 파티에 오래 앉아있지 못 했다.
몸은 제자리에 있고, 마음만 방향도 없이 쫓긴다.
2010.02.02 11:27
속이 조금씩 나으니 먹고 싶은 것들이 많아진다. 오랜만에 찌개를 끓여서 먹는데 그것도 두어 끼 먹으니 슬슬 질리고 냉동시켜 둔 피자 조각을 데워 먹어도 먹으면서 다른 음식 생각이 난다.
아, 곱창 먹고싶다. 곱창집에나 갈까.
2010.01.31 23:20
비 온다.
어두운 밖에서 바람에 날린 빗방울이 닫힌 유리창을 친다.
길에 사람들이 우산 쓰고 지나간다. 높은 곳에서 보면 색색 우산만 오고 간다.
비 올 때는, 육첩방은 남의 나라에서 시 쓰던 젊었던 시인 생각이 자꾸 난다.
2010.01.31 15:25
동호회 사진전시가 끝났다. 전시장에 있던 사진들을 모두 걷어내고, 같이 저녁 먹고 노래방에 가고 볼링장에 갔다. 잘 놀았다. 새벽까지 놀고 들어와서 마음껏 늦잠을 잤다. 일어나니 오른팔이 뻐근하다.
여기 저기 서툴고 아쉽고 부족한 전시였다. 어쨌든 버티는 수준에서 수습은 했다. 부족하고 서툴고 아쉬운 것들을 조금씩 채워서, 다음 전시를 준비해야겠다.
장대높이뛰기 선수의 경기를 볼 때, 대부분의 미디어와 관람객들이 주목하는 순간은 선수가 가장 높은 곳에 이르러서 장대의 힘에서 벗어나고, 휘어진 몸이 바를 넘어가는 찰나의 지점이다. 그 때, 사건은 폭발하는 힘으로 드러난다. 절정이다.
다른 순간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선수는 자기 키의 몇 배나 되는 장대를 들고 뛰어온다. 점점 속도를 높인다. 그리고 무한한 지상의 넓이 속에서, 단 하나의 점을 정해서 그 점에 장대를 꽂는다. 하나의 점이 하나의 점을 만나는 그 때에, 선수의 몸 안에 있는 긴장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온 몸의 근육이 그 한 점이 몰린다. 선수가 높이의 절정에 다다른 순간은 보기에 명확하지만 그 다음의 전개는 너무 뻔한 것이다. 이미 완성된 사건이고 폭발한 긴장이다. 모든 것이 드러나버린 사태다. 그에 비해 장대를 꽂아 넣는 그 순간의 선수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는 한 점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완벽하게 응축된 힘이 그 안에서 당장이라도 튀어날 듯 구겨져 있는 사태다.
조금 더 멀리 가 볼 수도 있다. 출발선에 서서 양 손으로 장대를 들고 있는 선수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이제, 신호음이 울리면 선수는 장대를 다시 쥐고 저 땅의 한 점을 향해서 달리고, 높이의 한 절정을 향해서 날아오를 것이다. 가만히 서서 그 어디쯤을 바라보는 그 때, 긴장은 좀 더 낮고 도도하게 흐른다. 그 긴장감은 좀처럼 밖에서 알아채기 힘든 것이지만 분명하게 있는 것이다. 사건.으로 진행되기 이전에, 모든 긴장은 어떤 방향으로든 전개가 가능한 잠재태로 있다.
그러나 이와 분명하게 구분해야 할 장면도 있는데, 경기와 상관 없이, 선수가 마음에 드는 여자와 만나 점심 먹는 상황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때, 경기의 긴장이란 없는 것이다. 잠재태로 존재하는 긴장감은 좀처럼 포착하기 쉽지 않아서, 밥 먹는 사진과 출발선 앞에 선 사진을 구분하는 것은 제법 훈련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가끔은, 훈련 없이 타고난 감각으로 해내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더라만.
사진의 낫고 못함은 따지기 어려운 문제이고, 높이의 한 점에 다다른 사진과 땅의 한 점을 정확하게 찍어낸 사진, 그리고 잠재태로 있는 긴장을 포착한 사진의 우열은 없을 것이다. 다만, 선호의 문제만 있을 것이다. 내가 구하려는 사진은, 바닥을 도도하게 흐르는 긴장이 깃든 사진이다.
에프상하이에서 활동하다가 한국으로 간 혜림이는 좋은 사진을 찍는다. 사진의 옳고 그름을 말하기는 어렵고, 더 좋은 사진과 덜 좋은 사진을 구분 짓는 것도 어려운데, 그래도 깊은 사진과 얕은 사진은 있지 않나 싶다. 여기 있을 때 녀석은 참 못 찍었는데, 한국 가서 잠시 동안에 무슨 일들을 겪은 것인지, 이제는 부러울 만큼 좋은 사진들을 찍는다. 아주 깊은 사진들을 찍는다. 일우에서 진행한 사진교육과정 수료를 기념하는 전시를 준비하는 중인데, 그 사진들이 참 깊다. 이제 그렇게 좋은 사진을 찍으니까, 예전 사진은 참 못 찍었다고 마음껏 말할 수 있다.
겨울잠은 이만하면 되었다 싶다. 잘 쉬었다. 슬슬 좀이 쑤셔서, 이제 뭐 좀 해야겠다 싶다. 어제는 한참 만에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오랜만에 풍경 앞에 들이미는 렌즈가 좀처럼 익숙하지 않았다. 보는 눈은 조금 나아졌는데 좀처럼 찍는 눈이 나아지지 않는다. 공부가 게으른 탓이기도 하고, 겨루듯이 찍어내야 하는 사진이 좀처럼 미운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도 좀, 더 해봐야겠다. 이제 개인전 준비를 하고 싶은데, 생각해 둔 컨셉은 두어 개가 있는데 아직 둘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조금 더 시안 작업을 해 보고, 둘 중에 하나를 발전시키거나 안 되면 둘 다 접고 새로운 컨셉을 생각해야 한다.
어깨가 제법 나아간다. 지난 여름의 절정에서 다쳤으니 그럭저럭 반 년 됐다. 아직까지 마음껏 움직이기에는 통증이 있는데, 그래도 80% 정도는 회복한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어깨 핑계로 피해다니던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겠다.
겨울이 가는 소리가 선명하다.
2010.01.28 23:36
머리에 태엽이 모조리 풀려나버린 것일까. 꼭 해야하는 일이 아닌, 차근차근 해야하는 일들이 좀처럼 손에 안 잡힌다. 스케줄 잡혀있는 촬영만 겨우겨우 하고, 날짜 맞춰서 넘겨야할 사진 작업만 겨우겨우 하면서 며칠을 보낸다. 인터넷을 볼 때도 제법 긴 기사는 대충 보게 되고 어디 노닥거리는 잡담에나 눈길이 머문다. 인문학 책은 펼쳤다가 그냥 접는 요즘이고, 페이지 가득 좁게 몰려선 글씨들은 어지럽다.
도대체 무엇을 잘 못 먹은 것일까? 라면이었을까? 그 피자였을까? 순대국밥이었나? 길거리 옥수수? 양고기 잔뜩 먹은 훠궈? 그 전 날 서둘러 먹은 삼겹살?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는 범인들이 여럿 뭉쳐서, 배탈이 났다. 하루 이틀은 배탈이었는데, 단지 배탈에 그치는 것 같지는 않고, 꼭 심하게 상한 음식을 먹은 것처럼 상태가 메롱이다. 어제부터는 일체 다른 음식을 끊고 죽만 끓여서 먹는다. 흰죽만 먹으니까 배가 금방 고파서 과일 아주 조금을 보태 먹는다. 일단 밥을 하고, 밥을 다시 냄비에 담아서 물을 부어 끓인다. 한번 호되게 끓인 다음 불을 약하게 해서 죽이 냄비 바닥에 붙지 않도록 가끔 저어주면서 더 끓인다. 그러면 쌀은 그 경계를 허물면서 풀어지고, 죽이 된다. 맨죽은 밍밍한 맛인데, 가끔 시간을 잘 못 재어서 바닥쪽의 죽이 조금 타면, 고소한 누룽지 죽이 된다. 압력밥솥으로 죽 끓이는 법을 찾아보았는데, 죽 기능이 있는 밥솥을 사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을 못 찾았다. 며칠 더 속을 다독여서 몸이 나으면, 김치찌개를 해먹어야겠다. 도대체 범인은 어떤 놈일까?
긴 문장을 쓰는 버릇을 들여야겠다. 짤막짤막한 몇 줄 메모는 생각을 이어나가고 살붙이는 연습을 할 수 없다. 단편적인 감정의 배설에 그치기 쉽다. 파편처럼 떠오르는 생각들을 잘 펼쳐두고, 그 사이에 있는 연관성을 살펴 배열하고, 부족한 부분은 새로운 생각으로 채워서 단아하고 단단한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서, 가능하면 긴 호흡의 문장을 쓰는 연습을 좀 해야겠다.
2010.01.27 19:26
장진. 참 좋은 감독. 참 좋아하는, 실망시키지 않는 감독.
간첩 리철진.을 처음 보았을 때 그를 알아보지 못 했다. 이것 저것 보면서, 차츰 하나하나씩 보아가면서 장진의 영화에 대한 기대가 생겼다.
영화마다 배역을 바꿔 나오는 같은 배우들은 이제 익숙한 동네사람들 같다. 단단한 연기력으로 만들어내는 캐릭터들은 살갑다.
휴가.라고 생각한다. 이것 저것 영화도 보고 책도 안 읽고 늦잠을 자고 빈둥거려 본다. 길고 길 설 연휴 기간 동안에는 어디 산에나 다녀올까 상하이 시내에서 빡빡한 출사를 다녀볼까 집에서 영화나 잔뜩 볼까 자전거를 탈까 생각도 한다. 당분간은 더, 나는 늘어져 있으려고 한다.
응원들이 고맙다. 그대들의 응원을 배신하지 말아야겠다.
2010.01.26 23:16
겨울 맞은 곰처럼 잔다. 일찍 누워서 늦게까지 잔다. 따뜻한 이불을 열면 바깥은 어느새 밝아있고 그래도 몸은 여전히 노곤해서 좀처럼 이불 밖으로 나오기 어렵다. 몇 달을 이어오던 일의 긴장도 사라졌고, 급한 일거리도 없는 겨울날들을, 나른하게 보낸다. 때 되면 다시 움직일 것을 알아서, 부러 일찍 일어나려고 애쓰지 않는다.
꿈은 언제나 페이드인.으로 시작되는데, 큰스님 한 분이 오신 모양이다. 여러 매체에서 큰스님을 인터뷰하기 위해 모였다. 작은 방이었는데, 몇 명 몰려들어가니 너무 빡빡해졌는지 서둘러 문을 닫았다. 나는 운 좋게 들어가서 인터뷰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었다. 무거운 나무 책상이 있는, 서재 같았다. 큰스님이 책상 의자에 앉으시고, 취재진들은 반대편에 옹기종기 둘러앉았다. 나는 아마 두 번째로 질문했는데, 제법 간절한 질문이었는데 어떤 질문이었는지 잊었다. 그리고 내 다음 차례는 한 여기자였는데, 깨어나서 나중에 생각하니 예전 잡지 촬영 때 몇 번 함께 일한 소피아.였다. 하여튼 소피아는 질문 대신 대뜸 옆에 있는 텔레비전을 틀고 다큐멘터리를 틀었다. 아마 다큐 속에 질문할 내용이 있는 모양이었다.
다큐는 역시 페이드인.으로 계림 정도의 산속 풍경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작은 동산들이 있었고, 그 곳곳에는 좁고 높은 탑들이 빽빽하게 서 있었다. 카메라가 그 탑들 사이로 언덕을 지나갈 때, 개울가에 서 있는 할머니 한 분이 보였다. 카메라는 할머니 얼굴을 클로즈업. 족히 200살은 넘어 보이는, 굵은 주름이 얼굴에 깊다. 할머니는 미간에 난 눈썹들을 손으로 뽑고 계신다.
"아내를 버렸어."
"아내를 버렸어."
아, 할머니가 아니라 할아버지이신 모양이다. 할아버지는 잠시 후 개울을 건너는데, 뒷모습의 할아버지 뒤에 대나무 줄기 두 개가 끌려가고 있다. 자세히 보니 대나무는 할아버지 목에 줄로 매달려 있는데, 지팡이가 없는 할아버지가 혹시 넘어질 것 같으면, 목에 연결되어 가랑이 사이로 흘러나온 대나무 줄기가 버팀이 된다.
개울을 건너던 할아버지는 얕은 물 속에서 작은 돌멩이 하나를 줍는데, 아, 돌멩이가 예사롭지 않다. 돌멩이는 둥근데, 투명해서 그 안이 보이고, 그 안에서는 색색의 원형 띠들이 회전하고 있다. 마치, 우주가 그 안에 있는 듯하다. 처음 할아버지가 들어올린 돌멩이는 보라색 띠들이 돌고 있고, 다음 들어올린 것은 검은색 띠들이 있다.
꼬마 하나가 등장해서, 할아버지는 지구를 지키는 군대였다고 말해준다. 마을은 신비롭고 할아버지는 자꾸만 돌멩이를 들었다가 놓는다. 이 마을에서는 온갖 것들이 상서롭다. 풍뎅이는 만개한 꽃송이 위에 앉는데, 꽃송이 위에 붙어있는, 돌멩이를 닮은 꽃잎은 낙하산처럼 생겨서, 풍뎅이가 그 아래를 잡으니 바람을 타고 나른다.
다큐를 열심히 보고 있는데, 뒤에서 꼬마 하나가 갑자기 토한다. 방 구석에는 어느새 작은 하수도가 생겨 있어서, 아이는 그 곳에 쭈그리고 앉아 토하고, 또 다른 사람이 등을 두드려 준다. 무엇이 아이를 토하게 했을까.
그리고, 전화벨이 울리고 나는 잠에서 깼다. 아, 그 마을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프로이드가 이럴 때는 좀 필요하다.
말싸움은, 중학교 때까지 했다. 잘 안 졌다. 말로 상대를 주눅들게도 했고, 권위를 갖기도 했다. 그리고, 참 많이 다치게도 했다. 고등학교 때는 대충 한 번 정도만 호되게 목소리를 높인 기억이 나고, 그 뒤로는 말싸움같은 거, 안 했다.
생산적인 논쟁은 거절할 이유가 없다. 서로의 생각의 경계를 키우고 다독이는 말들이 오고가는 것이야 좋다. 가끔, 진흙탕에 들어가 말로 상대를 상처내고 나를 더럽힐 때가 있다. 좀처럼 없어도, 가끔 있다. 아니다 아니다 싶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해야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할 때도 있고, 아니다 아니다 싶으면서도 어느 순간 제 분에 못 이겨 돌아보면 진흙탕에 온몸을 담그고 있는 때도 있다. 그렇게 나도 상대도 만신창이가 되어 마주보면, 더 보탤 말이 없다.
2010.01.19 22:20
꿈을 꾸었다. 앞에 놓여 있는 길이 나는 많이 무서운 모양이다. 꿈 속의 이야기는 잊었는데, 감상만 남았다.
주어를 생략하고 몇 개의 단편적인 단어들만 나열해서 감정의 조각들만 파편처럼 박아두는 문장은 비겁하고 구차하다.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으면서 알아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문장들은 유치하다. 더 튼튼하고 손에 잡히는 문장을 써야 한다.
동호회 사진전은 보름 동안 한다. 대부분 직장인들이라 전시장을 지키기 어려워서, 결국 내가 있는다. 지난 몇 달 동안 나를 몰아세우던 급한 일들도 대충 정리가 되고 마음은 한가로워서, 모처럼 온 시간을 느긋하게 누리기로 한다. 스터디도 방학에 돌입했으니 한숨 쉬어가며 더듬거리듯 읽어야할 책에서도 해방이다. 그 동안 밀린 책들을 위주로 보름 동안 가만 전시장 구석에 앉아 책이나 읽는 것이 나의 계획이다.
2010.01.15 22:18
방구석이 개판이다. 바닥에는 온갖 쓰레기들이 널렸고 책상 위에도 망치부터 드라이버까지 널렸다. 작은 테이블 위에는 프린트 용지 박스가 쌓여 있고 소파는 가방과 옷들이 점령했다. 에프상하이 전시 준비를 핑계로 집을 작업실로 썼다. 프린트와 제단과 목공 작업까지 하고 나니 꼴이 개판이다.
일 월이 반쯤 지났는데, 내 새해는 아직 오지 않았거나 벌써 멀리 가버린 것일까.
사방을 할퀸 한 해였다. 서툴고 부끄러운 한 때였다. 내가 상처낸 주변이 많다.
다시 학생이 된다고 하니까, 여러 사람이 축하하고 응원한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그랬어야 한다는 듯이 기다린 듯 축하해 주었다. 그들은 내게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성현 형에게 전해 들은 괜찮은 교수님은, 알고 보니 다른 길을 통해 꽤 가깝게 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럭저럭, 인연은 닿을 모양이고 그래서 겸사겸사 가 보게 될 모양이다.
지난 해 5월에 모여서 첫 준비모임을 가진, 에프상하이 전시가 내일 시작한다. 아마추어들이 모여서 하는 전시고, 처음 하는 전시니까 서툰 것이 많다. 부족한 전시다. 프로들에게, 와서 보라고 초대하지 않았다. 내세울 전시는 아니어도, 부끄럽지 않은 전시는 될 것이다. 돌아보면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제법 시간을 들였고 보이지 않는 소소한 것들로 몸은 바빴지 않나.
문학스터디와 미학스터디는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방학이 되었다. 어렵고 더딘 책들에서 잠시 놓여날 수 있게 되었으니, 가벼운 책들을 좀 더 속도를 높여서 읽어 두어야겠다. 학부 유학생들과 함께 문장 쓰는 공부도 해보면 좋겠는데, 괜히 시작했다가 나중에 일에 떠밀리면 안 될 것 같아서 엄두가 안 난다. 글 쓰는 사람이 주변에 몇 명 있으니까 그들이 뭉치면 제법 힘을 쓸 수 있겠는데, 다들 바쁜 사람들이니 돈도 안 되고 배울 것도 없는 모임에 힘쓰라고 차마 못 하겠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 작은 모임도 있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함부로 시작 못 하겠다. 음악에는 내가 아는 게 없으니 붙잡고 이끌어줄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마땅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다. 아마 여행잡지에 기사 쓰는 일을 하게 될 듯하고, 가을 학기에 학생이 되려면 준비할 것도 많다. 책도 이번에는 정말 마무리해야 하고, 개인 작업도 얼른 해야 무게 있는 전시도 할 수 있다.
방구석이 개판이다.
2010.01.01 22:38
대학원으로 가서, 다시 학생이 되겠다는 말을 어머니는 무척 반가워하셨다. 그렇게 간다고 할 거, 가라고 할 때 졸업하고 바로 갔으면 좋았지 않았냐고 하셨다. 언제나 내 편에서 응원을 보내주시는 어머니시지만, 모처럼 기꺼이 반기는 어머니 목소리를 들으니 그 동안 어머니 답답하셨을 마음이 닿아서 조금 미안했다. 그래도, 허송하며 지내오지 않았다고, 되어가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니도 잘 믿어주시고, 또 응원해 주셨다.
전업 학생이지는 못 할 것이다. 해오던 일이 있으니 상업 사진도 계속 하게 될 것이고, 생각해둔 개인 작업들도 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생활의 중심을 학생의 신분으로 돌리게 되면, 다른 일들 때문에 공부를 덜 하게 되는 사태는 막아야겠다. 발제문 대충 써서 아쉬운 마음이 남는, 그러면서 일도 어설프게 하는 상황은 반갑지 않을 것이다. 차근차근 필요한 자격을 준비하고, 제법 기본적인 학비며 생활비라도 벌어두어야 하고, 또 교수님도 알아보고 내가 공부할 방향도 잡아 보아야겠다. 순조롭게 된다면, 올 가을부터는 다시 학생이 된다.
새해의 첫 날에 무엇을 할까 하다가, 오전에 급한 일들 대충 해두고 집을 나섰다. 마침 자잘한 볼 일 몇 개를 보아야 해서, 차분하고 느리게 두어 시간 걸어서 볼일들을 처리했다. 모간산루에 가서 동호회 사진전에 쓸 엽서랑 사진 판넬 시안을 좀 구하고, 세탁소에 들러 한국에 입고 갈 바지 세탁을 부탁하고, 은행에서 송금을 하고, 백화점에 가서 조카들에게 줄 늦은 돌선물을 찾아보았다. 새로 생긴 백화점에는 유아용품 코너가 없어서 아무 것도 사지 못 하고 겨우 점심만 먹고 돌아왔다.
어떤 때는, 내가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부족한 나를 한 번에 끌어 올릴, 계획 없는 내 일상에 틀을 잡고 방만한 나를 몰아서 내가 가 닿으려는 곳으로 밀어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그러지 말아야겠다. 우선 내 힘으로 나를 세우고, 내 힘이 마땅히 쓰일 곳에 있는 사람을 찾아야겠다. 우선, 내가 스스로 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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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31 23:52
오전이면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겠다 싶었던 일들은 제법 길어졌다.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밤까지 맑고 서늘한 정신으로 있고 싶어서 저녁은 부러 가볍게 먹었다. 청소를 했다. 어제 마침 정원사님이 이불을 선물로 주셔서 지난 이불을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책상에 쌓인 서류들도 치우고 쓰레기통도 모두 비워서 몇 봉투의 쓰레기를 내다버렸다. 냉장고에 오래 묵은 것들을 치워내고 설거지를 해서 말끔하게 정리했다.
최근에 잘 안 듣던 음악들을 골라서 들었다. 베토벤 9번도 들었다. 다 듣기에는 좀 지루해서 4악장만 들었다. 스메타나 나의 조국.은 시작 부분의 하프 연주만 듣고 말았다. 명성황후 뮤지컬 씨디는 다 들었다. 웅산의 1집, 3집을 들었다. 여성 재즈 보컬들의 대표곡을 모아 놓은 앨범도 들었다.
책장을 정리했다. 새 책장을 사 온 뒤에 책들을 아무렇게나 넣어두고, 언젠가 정리할 날이 있겠지 싶었는데 오늘 했다. 우선 여러 권짜리 책들은 한 데 모으고 한 작가의 책들도 가능하면 모았다. 오른쪽 책장에는 문학이론과 철학서들을, 그리고 에세이와 평전들을 모았다. 왼쪽 책장에는 미술, 음악, 건축, 사진 등 갖고 있는 예술 관련 책들을 모았다. 가운데 책장에는 소설책들을 모았다. 한국 다녀올 때마다 몰아서 사오다 보니, 사 두고 안 읽는 책들이 조금씩 불어난다. 얼른 읽어야 할 책들을 따로 모아볼까 하다가 관둔다. 모아둔다고 볼 내가 아니고, 그렇게 모으려니 괜히 더 어렵다. 책장은 다시 좁아져 가는데, 치워버리고 싶은 책들도 몇 권 생겼다. 처음 내게 올 때부터 치우고 싶었던 책들도 있고, 그 때는 제법 그럴 듯하게 보았는데 시간이 지나서 녹슨 책들도 있다. 우선 두어 칸을 비워서 남은 책들은 아무렇게나 막 넣었다. 제법 색깔도 그럴 듯하고, 키도 가지런하고, 그럭저럭 번듯하게 차려 선 책들을 보니 딱 오늘 같은 날에 어울리는 작업을 한 것 같아서 혼자 뿌듯하다.
연말을 차근차근 기다려서 맞지 못 했다. 마감 넘긴 일들에 쫓겨 숨을 헐떡이다 보니 어느새 12월이고 31일이다. 10년 가까이 매년 연말에 보내던 연말인사도 올해는 못 보냈다. 억지로라도 만들어서 급하게라도 보낼까 하다가 관둔다. 올해는 유난히 새로 알게 된 사람들도 많았는데, 못 보내는 것은 아쉽다. 내년 초 새해 인사로 대신할까 생각도 해보는데, 아마 안 할 것이다.
유난히 서툰 한 해였다. 세상이 바라보는 내 나이를 뜨끔하게 안 한 해였다. 알게 모르게 간 한 해가, 좀처럼 못 마땅하다.
내일 새벽에는 새 밥을 지어야겠다. 밥이 끓는 동안,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 앉아 있어야겠다. 그리고 갓 지은 새 밥을 먹고, 다시 일해야겠다.
아, 사랑했던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
2009.12.17 16:58
며칠 동안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사진을 만졌다. 오늘 오전 정도면 마치고 오후에는 시내 카페라도 찾아 앉아서 읽어야 할 책들을 읽고 써야 할 글을 쓰려고 했는데, 막상 해 보니 작업 속도는 더디고 시간은 빠르다. 그래도 오늘 밤까지 하면 작업해야 할 급한 사진들 중에 9할은 끝낼 수 있겠다. 그러면 내일은 조금 덜 급한 사진들을 만지고, 모레는 정말 원고뭉치와 책 몇 권을 들고 사람 적고 조용한 그 카페에 가서 하루 종일 앉아 있어야겠다.
어제 밤늦게 시켜먹은 피자가 이상했던 것일까. 오전 내내 변기를 끌어앉고 있었다. 어디 나가 보려고 해도 배탈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이럴 때는 굶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아침 점심을 거르고 뜨거운 물만 계속 마셨다. 결국 오후 늦게 너무 배가 고파서 집 아래 편의점에 가서 배탈에 전혀 도움이 안 될 것이 뻔한 군것질거리들을 잔뜩 사와서 허겁지겁 먹었다. 하여튼 요즘 하는 짓이 대충 이런 수준이다.
무릎팍 도사.를 봤다. 배울 것이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는데, 개인에게 좋은 것 뿐만 아니라 더불어 좋아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참 좋다. 이번에는 배우 강혜정이 나왔는데, 출산을 앞두고 있어서 아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많았다. 강혜정이 독특한 캐릭터라는 것은 지나가는 이야기로 몇 번 들어서 그런가 보다 했었는데, 직접 보니 그럴 만하겠구나 싶었다. 참 좋은 엄마가 될 것 같은 사람이다.
나이 핑계를 대고 싶지 않지만, 이제 또래의 여자를 만나면 예전과 다른 것들을 챙겨보게 된다. 그저 나를 들뜨게 하고 사는 일에 대한 가득한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을 욕심냈었는데, 이제는 그 사람을 내 주변 사람과의 사이에 놓아보게 된다. 물론 여전히 첫 기준은 내가 되어야겠지만 그래도 생각하게 되는 것이란, 이 사람이 내 주변 사람들에게 잘 해줄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 줄까? 그런 속에서 기꺼이 행복함을 느낄까? 뭐 그런 것들이다.
여러 사람을 만났다. 같이 길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을 욕심내기도 했고, 내가 어디를 다녀오더라도 따뜻한 품으로 나를 맞아줄 사람을 욕심내기도 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내가 가진 것으로 돕고, 사방에 크게 해롭지 않은 사람으로 살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하는데, 제법 그렇게 살지 않았냐고 따져묻고 싶기도 한데, 만나던 사람과 헤어질 때마다 나는 어째 나쁜 사람이 된다. 진심이었다고 믿는 내 감정이 어쩌면 그들의 말처럼 한낮 눈속임이었나 싶고, 안전한 움집을 만들고 그 안에 들어앉아서 나만 무사히 살아남은 것은 아닌가 싶다. 발가벗은 알몸의 상대에게 온갖 날카로운 것들을 던져놓고.
2009.12.13 22:40
계획대로 된다면, 화요일 정도에는 숨을 막고 있는 급한 일거리들이 대충 수습은 된다. 그러면 숨을 막고 있는 급한 일거리들. 때문에 미루어둔 다른 급한 일들을 금요일 정도까지 연장해서 마무리하면 된다.
밤이 되니까 오늘 하루 무엇을 했나 돌아보고, 마음은 여기저기 바빴는데 손에 쥔 것은 마땅히 안 보이는 하루라고 생각한다.
아마, 책 쓰기 전까지는 이 언제나 밀린 것 같은 압박감이 사라지지 않을 모양이다. 벼락치기로 단련된 시간들이다. 중학교 때는 학기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쯤 되면 본격적인 공부는 시험 전날 밤에나 시작했는데 대충 수습은 되었다. 고등학교 때는 조금 나아져서 시험기간 며칠 전에 대충 공부할 것들을 겨우 생각만 해두고, 여전히 전날 밤부터 본격적인 공부를 했다. 그렇게 며칠을 낮과 밤을 바꿔 지내면 시험기간은 끝이 났고, 대충 수습은 되었다. 대학교 때는 그래도 조금 철이 들고 공부에도 욕심이 생겨서, 혼자서는 절대 안 되니까 착실하게 공부하는 후배들을 꼬드겨서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했다. 나는 도서관 자리를 잡아주고, 대신 녀석들은 나를 하루 종일 도서관에 묶어두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렇게 나름 수습은 했다. 벼락치기는 삶의 한 나쁜 방편으로 굳어져서, 원고는 마감 지나고 독촉 전화를 받아야 겨우 쓰기 시작하고, 그러니까 완성도라고는 개뿔 없는 개발새발 문장을 원고랍시고 내게 된다. 사진은 찍을 때만 열심이고, 마감 때는 급하게 후반작업을 해서 넘기니까 언제나 나오는 사진은 아쉽기만 하다. 중학교 때보다는 고등학교 때의 시험기간이 하루쯤 길었다. 대학은 재수 없으면 시험 기간이 2주에 걸치기도 했다. 현장에서는 마감이 날마다 닥쳐와서, 벌써 대충 석 달째 시험 벼락치기 하는 기분이다. 얼른 끝내면 될 일들을 미루니까, 막상 일이 없는 날도 그 압박감에 시달려서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이런 벼락맞을.
마감이야 어쨌든 간에, 내일은 아침부터 촬영이 있으니 오늘은 이만 자야겠다. 내일은, 또 어떻게든 된다.
2009.12.10 08:49
이상하네. 아침에 제법 분주하게 이것 저것 후다닥 움직인 것 같은데, 왜 앉아 보니 아무 것도 한 게 없어 보일까?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으로 만든 달력을 주문하기로 했다. 하나를 주문하려다가, 이왕이면 여러 곳에 나누어주어야겠다 싶어서 괜히 기분에 열 개쯤 주문하려다가, 막상 생각해 보니 또 그렇게 많이 나누어줄 곳도 없는 것 같아서 네 개만 주문하기로 했다. 몇 년 전부터 판화가 이철수님의 판화가 있는 달력을 사서 썼는데, 지난 한국 간 길에 교보에 들렀는데 안 보여서 올 해는 없는 모양이다, 생각하고 빈손으로 왔었다. 와서 이 달력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으니까, 그러려고 그랬나 싶다.
활자들로 이루어진 세상을, 책으로 구축된 세상을 내 도피처로 삼지는 말아야겠다. 그 곳으로 간다면, 그게 또 하나의 도전이 되도록 해야겠다. 지금 삶이 지쳐서, 그 곳이 어쩌면 조금 덜 피곤할 것 같아서, 덜 다투고 조금 수월할 것 같아서 마지 못해 선택하는 길이 되지 않도록 해야겠다. 책에 대한, 문장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다.
어제 잠자리에 누워서 새로 작업할 '배우' 작업에 대해 생각했다. 그 사진들을 통해 무엇을 말할 것인가? 우선 배우.라는 단어를 정의, 또는 그 단어의 범주를 설정.할 필요가 있겠다. 사진은 아름다워야 하니까 어떤 조명을 쓸지, 어떻게 다르게 만들지 고민해야겠다. 어떤 모델들을 구해야 할지, 어떤 설정이 필요할지 생각하다가 늦게 잤다.
2009.12.09 21:19
아침에 볼일 보러 가는 길에 지하철에 앉아서 수첩을 펴고, 해야하는 일들을 적었다. 언제 적어도 대충 스무 개는 넘는다. 어떤 일들은 아주 오래된 것도 있어서 단골손님 같다.
비자를 연장해야 하는데, 취업비자 연장은 처음이라서 대행사에 알아보니 대행 비용이 제법이었다. 여기 저기 물어보니까 혼자 해도 가능하다고 해서 필요한 서류들을 모아서 알려준 곳에 가서 수속을 하고 다시 부족한 게 있어서 돌아가서 다시 모아서 다시 수속을 하고 그 다음 수속을 하고 또 해서 오늘 마쳤다. 이제 일주일이 있으면 다시 일 년을 비자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는 새 비자가 나온다. 내가 직접 움직이니까 이런 저런 수속에 이틀이 조금 덜 걸렸고, 대행사를 이용할 때보다 10만원 가까운 돈이 덜 들었다. 작업이 밀려있고, 어서 후반 작업을 해서 넘겨야 돈을 받고 그래야 연말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데, 내 이틀과 10만원의 시간 사이에서, 내 이틀이 10만원과 견주어 어디쯤에 있는 것인지 분명하게 알 수 없다. 해야할 실수는 대충 다 해가면서 진행시켰으니까, 내년에 다시 연장할 때는 좀 더 수월하게, 좀 더 짧은 시간에 해치울 수 있을 것이고, 그러니까 결론적으로는 잘 한 것이다 싶다.
일해야 되는데, 좀처럼 일이 손에 안 잡히고 마음은 이런 저런 갈증이 생겨서, 쓴다. 두어 달 정도 전부터 밀린 일들이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급한 것들부터 하나씩 치워가는 사이에 새로운 일들이 밀려들고 그래서 일의 벽은 언제나 거대하고 긴급하다. 모르는 사람들은 일 많다니까 돈 많이 벌어서 좋겠다는데,
오늘 또 돈 빌렸다. 며칠 전에 조금 빌리면서 며칠이면 쉽게 풀릴 줄 알았는데 안 됐다. 내 일을 돕는 어시에게는 두 달째 월급을 못 주고 있다. 지난 주 촬영 때 온 메이크업에게는 오늘까지 송금한다고 했는데 그것도 미뤄야겠다. 어제쯤 입금되었어야 할 급한 돈이 아직 안 들어와서 그나마 막아둔 것들이 터져나가려고 한다. 들어올 돈들이 있으니 어떻게든 되기야 하겠지만 제 때 들어오지 않으니 '어떻게든'이 안 되고 '문제'가 된다. 밀린 돈들을 어서 받고, 마무리 작업을 어서 끝내서 다른 돈들을 받아야 조금이라도 등 따신. 연말을 보낼 수 있겠다. 언제쯤 통장 잔고에 영 하나를 더 붙일까.
찾아간 사무실 한 켠에서 차례를 기다리면서 잡지를 봤다. 인테리어에 관한 잡지였다. 사진을 시작한 후부터 잡지도 제법 보게 되었다. 인테리어 사진은 따로 덧붙일 말이 없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내가 겨우 흉내만 내는 분야니까 그런 것이 당연해 보였다. 인물 사진은 나쁘지 않았는데 그래도 내가 찍는다면 다르게 찍을 수 있다는 구석들도 제법 보였다. 마땅한 부분이다. 잡지의 대부분은 광고로 채워져있었다. 기사들은 온갖 허영의 집합같았다.
가구 하나를 바꾸면 당신의 삶이 바뀌고, 작은 소품 하나가 당신의 깊은 내공을 드러내고, 주변이 그런 당신의 거품을 찬양할 것이고, 없어도 죽지는 않겠지만 이게 있다면 당신은 좀 더 그럴 듯한, 잡지에 어울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결론은, 사라. 사라. 사라. 사고 사고 또 사라. 없으면 부끄러워해라. 이런 것도 살 수 없는 당신은 이 시대의 어두운 단면이다.
아, 빌어드실 세상. 열심히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저 허울 좋은 것들에게 잡아먹힐 것이다. 그 상대적 박탈감을 실제적인 위협으로 느끼며 그 안에서 허우적거릴 것이다. 아, 저것들이 팔려나가는구나. 세상이 저것들을 당연하게 소비하는구나.
소비의 시대에 적극적으로 저항한 게릴라들은 곳곳에 있었다. 시대에 등돌리고 앉아 세상을 왕따시키며 사는 것이 답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저 세상과 당당하게 마주서서 그 속내를 노려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살아내기 위해 돈은 당연히 벌어야 하는 것이고, 내게 오는 돈을 부러 내칠 생각은 꿈에도 해본 적이 없다지만, 무엇이든 사라는, 없으면 슬퍼하라는 저 함성은 기가 막히지 않나.
갈피를 못 잡는 말들. 일이나 해야겠다.
2009.12.02 23:11
팔짱을 세게 끼고 있으면, 심장이 뛰는 것이 팔에 느껴진다. 차 한 모금을 마시는 동안에, 다른 사람 발제를 듣는 동안에, 새벽에 꾼 꿈을 되돌려보는 동안에, 재미 없는 책 두어 장 뒤적이는 동안에, 이제 막 내뱉은 말실수를 후회하는 동안에도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뛰고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빈둥거리며 시간을 허송하는데도, 심장은 그것도 모르고 착실하게 뛰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조금 미안해졌다.
세상에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할까 보다. 그러니까 언제든 어떤 형태로든 돌려주어야 한다는 각오를 항상 되새겨야 할까 보다.
오늘 스터디에 온 성현 형은 마음이 많이 불편해 보였다. 괜히 와인 한 병을 사 와서는 맴버들과 함께 마시며 혹시 불편한 마음이 풀려나지 않을까 기다려 봤는데, 형은 스터디 마치고 얼른 돌아가셨다. 술이 모자랐던 것일까? 맛이 충분히 좋지 않았던 것일까?
성현 형은 직접 번역한 책을 선물로 주었다. 벌써 두 권째다. 사실 아직 읽어보자도 못 했고, 충분히 두꺼운 두 권을 그냥 책장에 잘, 폼나게 모셔두었다. 책을 받았으니 어떻게 고맙다는 표시를 해야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하다가 우선 책에 대한 감상을 제법 단단하게 쓴 문장을 하나 만들기로 한다. 읽고 생각하고 쓰려면 뭐 간단히 될 문제가 아니겠다만. 그리고 두 번째 받은 책은 초판본이니까, 꼼꼼히 읽고 어색한 부분이나 틀린 글자를 찾아서 정리해 주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 나도 가끔은 내가 기특하다.
2009.12.01 23:09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일의 지나간 이야기는 못 되더라도, 많은. 일.들의 목록이라도 적을까 하다가 그만 둔다. 다만 많은 일들이다.
몸도, 마음도, 제자리에 돌아왔다. 사람과 일의 되어가는 모양새가 들고 나는 것이고, 솟고 꺼지는 것이면 사실 제자리.라고 불러서 마땅한 어디.쯤은 없을 것이다. 다만 영영 닿지 못하는 그 가운데 어디쯤을 향해서 가까워졌다 싶으면 어느새 멀어지고, 멀어졌다 싶으면 또 가까워지려고 한다. 그러니까 제자리에 돌아왔다.고 쓰면 틀린 말이 되겠지만, 어쨌든 몸과 마음이 한참 힘을 쓰고 무엇인가 새로운 것들 앞에서 두려움의 크기보다 더 큰 호기심으로 나아가려는 그 때쯤을, 나는 내 제자리.라고 믿고 싶다. 그래서 지금 나는 제자리.로 돌아온 기분이다.
누나와 매형과 아버지와 어머니와 동생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어떤 부분은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듯했다. 나보다 나를 모른다,싶은 부분은 없었다. 적어도 내가 나를 아는 만큼 나를 알거나, 어떤 부분은 나에 대해 내가 아는 것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듯했다. 많이 듣고, 차곡차곡 담아왔다.
날씨가 추워서 옷을 따뜻하게 입었다. 해가 가려고 하니까 또 연말 인사 만들 생각을 해야 한다. 밀린 일들이 제법이다. 언제나처럼. 그리고, 가끔 오는, 맑은 정신으로 맞는 밤시간이다. 내일도 아침 일찍부터 챙겨야 할 일들이 많으니까 일찍 자야하는데, 아, 이 말똥한 정신을 어이하나. 새로 사 온 책이나 두어 장 뒤적이면 잠이 올 테다. 재미 없는데 읽어야 하는 책이다. 백 페이지쯤 읽어야 겨우 알아들을 만한 말이 두어 마디 나오고, 꾸역꾸역 겨우 마지막 덮을 때쯤 '이 말이 이 말인가? 이렇게 살란 말인가?' 싶을 책들이다.
박상륭을 좋아한다는 사람을, 처음 봤다. 한 작가를 좋아하고 말고는 사실 대단한 문제는 아닌 것인데, 그 반가움은 팔 할은 지적 허영일 것이고, 나머지 약간은 어려운 책을 어쩌면 어디 기대서라도 더 읽어낼 수 있겠다 싶은 마음일 것이다. 그의 소설의 깊이는, 한국 문학을 조금 더 풍성하고 깊게 하는, 한국 문학이 어디 가서 제법 폼 좀 잡아도 되는 재산이 되어줄 만하다. 읽어야 할 책들은 참 여러 방면에서 많은데, 요즘은 실용서가 대세니까 진득한 책을 읽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가볍게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거나, 내일 생활에 당장 활용할 수 있는 기술서이거나, 내일 시험에 써먹어야 하는 전공서이거나, 뭐 그렇다. 그런 틈에서, 세상 사는데 별 도움이 안 되는 책들을 같이 읽자고 말하기는 어렵다. 세상 사는 요령으로, 그런 말은 함부로 꺼내는 게 아니다. 그래도, 가끔은 그런 사람들 모여서 눈치 안 보고 고행하듯 문학작품을 차근차근 읽어나가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끝도 보이지 않게 너른 눈쌓인 들판에서 차근차근 걸어가면 마침내 작은 오두막이 보이듯이.
가자. 전기장판이 부른다.
2009.11.13 11:47
내가 주로 쓰는 웹브라우저는 모질라재단의 파이어폭스.다. 지금은 새로 업그레이드 된 익스플로어 8.0버전이 있지만, 그 전 7.* 버전이 주류일 때, 파이어폭스는 새롭고 더 강력했다. 지금도 나쁘지 않아서, 제법 익숙해져서 계속 쓴다. 가끔씩 파이어폭스.가 제대로 안 먹히는 사이트만 따로 익스플로어로 열어서 본다.
오전에, 즐겨찾기 폴더를 정리했다. 웹서핑하다 보면 마음에 드는 사이트는 그 때 그 때 즐겨찾기에 추가해 두는데, 이게 조금씩 모이면 정신 없다. 그래서 몇 달에 한 번씩 폴더별로 나누어서 정리한다. 정리만 해두고, 잘 안 본다. '아침마다'라는 이름의 폴더를 새로 만들었다. 그리고 자극이 될 만한 사이트 몇 개를 폴더에 넣고, 가장 기본적인 것들만 모아둔 폴더 바로 아래 두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주로 컴 앞에 앉아 한 시간 가까이 소일하는데, 가장 정신이 맑은 시간에 잡스러운 기사들이나 뒤적이며 보내는 것이 참 한심하다. 그래서 컴퓨터 켜면 '아침마다' 폴더를 열어서 그 안에 있는 개인 사이트, 블로그들을 보려고 한다. 나와 같은 시간의 크기 동안에, 그들은 그토록 의미있는 일들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조금은 자극이 되고 나를 추스릴 수 있을 것이다.
KBS에서 쫓겨난 정연주 사장의 강제 퇴임이 불법이라는 법원의 판결이 났다. 그러나 다시 돌아가려고 해도 임기가 이제 겨우 열흘 남짓 남았다고 한다. 명분으로 의미는 있겠지만 실효적 의미는 없다. 법원의 판단에는 그 실효적 의미 없음.도 작용했으리라. 그렇지 않다면 이 정권 아래서 법원은 어떤 논리를 만들어서라도 이와 같은 판결을 내지 않았을 것이다.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했을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최종 단계는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데올로기를 내재화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부당한 판결은 외부의 힘에 의해 강제된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자체를 내재화해버린 그들의 자의적 판단이다.
어쨌든, 정연주 사장은 오마이뉴스.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데, 오늘자 칼럼을 어쩌다 보게 되었다. 리영희 선생께서 정연주 사장에게 보낸 서툰 글씨의 편지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시민 행동강령 50. 같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미국의 온라인 시민단체 'Move On'에서 만든 책에 실려 있는 내용이라고 한다. 옮겨 둔다.
결코, 침묵하지 않겠다.
1. 연대의 힘
- 효과적인 온라인 청원을 시작하라
- 온라인 청원에 대해 적극 알리라
- 그 청원에 서명하라
- 각자 알고 있는 정치 지식과 추천사항들을 공유하라
- 온라인에 대해 큰 소리를 내라
- 대통령(과 다른 정치인들)에게 이메일을 보내라
- 당신 선거구의 국회의원 등 대표자들을 만나라
2. 한 표가 중요하다
- 무슨 일이 있더라도 투표하라
-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투표자들을 동원하라
- 특정 쟁점과 관련하여 투표자 등록을 조직하라
- 당신 사무실 직원들을 모두 투표장에 가게 하라
- 선거 당일 최대한 투표가 이뤄지도록 하라
- 아는 사람들중 투표하지 않는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호소하라
- (투표를 종용하는) 투표은행에 참가하라
3. 미디어의 여러 얼굴들
- 더 많이 읽고, 텔레비전 뉴스를 적게 보라
- 편집자에게 편지를 쓰라
- 편향된 보도에 반응을 보이라
-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사실에 관심을 갖도록 언론에 주의를 환기시켜라
- 광고를 내라
- 언론을 개혁하라
- 자신의 미디어를 만들라
- 독자란에 기고하라
- 정치적 (깨우침을 위한) 독서 클럽을 만들어라
- 무브온이 권장하는 미디어 자료들을 참조하라
4. 정치적 활동은 개인적인 것이다
- 국회에 편지를 보내라
- 당신이 선출하지 않은 관리들에게도 의사를 표현하라
- 깨끗한 선거를 지원하라
- 선거 캠페인에 자원 봉사하라
- 선거 캠페인이 잘 되도록 도움을 주라
- 당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위해 직접 길거리로 나가 홍보하라
- 현역 선출자에 도전하기 위해 후보로 나서라
- 돈을 기부하라
- 집에서 파티를 열어 (정치적 공간을 넓히라).
- 효과적으로 청원을 하라
- 집회가 있으면 적극 참여하라
- 선출된 관리로 봉사하라
- 어디에 갇혀 있지 말고 열린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라
5. 개인적 활동은 정치적인 것이다
- 당신이 속해있는 공동체에 봉사하라
- (잘못된) 시 정책에 반대하라
- 전국적 쟁점들을 지역 단위에서도 반응을 보이라
- 시위에 참여하라
- (인권 등을) 보호하는 법률이 잘 이행되도록 하라
- 헌법 개정작업을 유도하라
- 사회적 책임을 하는 그런 일자리를 구하라
- 당신 가족과 함께 행동하라
- 정치적 견해를 나눌 수 있는 작은 모임(살롱)을 주최하라
- 당신이 가지고 있는 돈이 힘을 발휘하도록 하라
- 다른 사람들이 정치적 견해를 밝힐 수 있도록 도와주라
- 예술 활동을 통해 당신의 견해를 밝히라
- 당신의 정치적 비전을 홍보하라
2009.11.13 01:18
요 며칠 여행자의 차림으로 걷는다. 당장 어느 산의 등산로에 들어서도 어색할 것 없는 옷을 입고, 신발도 등산화를 신는다. 우선, 유난스럽게 옷장이 비어보이고, 날씨가 험악하고, 마땅히 잘 보일 곳도 없고, 없는 옷 사이에서 그럴 듯한 조합을 고민해야 하는 일이 귀찮기도 해서, 하루 이틀이야 뭐 어떨까 싶어서 대충 입고 나선다. 츄리닝 입고 나왔냐는 구박을 받기도 했다.
아이폰을 산 후로 한 동안 집 나서면 돌아올 때까지 계속 이어폰을 끼고 다녔는데, 그마저도 다시 접었다. 길 걸으며 계속 음악을 들으면 아무래도 주위가 산만해지고, 무엇보다 귀가 쉬지 못 해서 어째 지치는 듯했다. 그리고 그 산만함의 대가로 지갑도 소매치기 당하지 않았던가.
오늘은 일부러 가방도 안 들고, 그냥 손에 책 한 권만 갖고 나섰다. 하늘은 많이 흐렸는데, 비는 오지 않는다는 일기예보를 믿어보기로 하고 우산도 안 챙겼다. 날씨가 추워지고 외투를 입으니 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홀가분하려고 해도, 집 나서면 책 한 권과 수첩 하나와 펜 두어 자루, 지갑과 휴대폰이 기본이다.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가방.이 등장해야 한다. 외투를 입으면 아쉬운대로 지갑과 휴대폰 정도야 주머니에 넣으면 그만이고, 수첩은 메모지 한 장으로 대체할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물건 두어 개를 사서, 결국 갈 때처럼 홀가분하지는 못 했다.
스타일에 목숨 걸 일은 없다지만, 그래도 단정하고 깔끔한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안다. 얼마나 채우느냐는 물론 중요하지만, 어떻게 보이는지도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을 지난 몇 년 사이에 배웠다.
마침내 거사가 끝났다. 태어나서 처음 사골을 삶았다. 하루 전날 저녁에 물에 담아서 피를 빼고, 큰 솥에 넣은 다음 물을 부어 끓인다. 한 번 끓으면 그 물을 따라내서 버리고, 다시 물을 부어 끓인다. 대충 열두 시간을 끓여서 우러난 물을 따로 담아두고, 다시 한 번 더 물을 부어 열두 시간을 끓여낸다. 처음 끓인 것과 나중 끓인 것을 섞어서, 당장 먹을 것을 제외하면 냉동칸에 넣어서 보관한다. 인터넷과 주변 사람들에게 들은대로 했다. 불조심만 잘 한다면 뼈를 삶는 일은 각오했던 것보다 쉬웠고, 뼈를 삶아낸 국물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비렸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었다.
김훈의 새 소설 공무도하.를 본다. 첫 장 몇 문장의 느낌만으로 본다면, 이제는 어째 식상해 보이는 것도 같다. 이름은 다르고 말의 내용도 다른데, 모두 같은 색깔을 가진 인물들이 그의 소설 속에 나온다. 김훈을 김훈답게 하는 그 문장들이 어쩌면 김훈을 김훈 밖에 아니게 할 수도 있겠다.
하위분류로 나누어져있던 블로그와 사이트 몇 개를 위쪽으로 옮겼다. 아침마다, 또 하루의 중간에도 여러 번씩 들어가서 본다. 책 읽는 사람의 블로그도 있고, 미술하는 사람, 여행하는 사람, 기업하는 사람,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의 사이트도 있다. 아침에 가서 보면서 또 하루 부지런을 떨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빈둥거린 저녁에 보면서 저렇게 열심히 많은 것을 채운 하루 동안 나는 빈둥거렸구나 자책도 한다. 그리고는 오후 늦잠을 너무 많이 자서 결국 밤잠도 못 자고 이 새벽까지 깨어서는 이러고 있다.
한참을 빈둥거리고 정신차려 보니 사방에 쌓인 일들이 수습 불가능 상태의 직전에 있다. 일이 밀려있는 것은 알았지만 도저히 쳐낼 신체적 정신적 컨디션이 아니었고, 이러다 내가 죽겠다 싶어서 버려둔 일들이다. 이제 몸도 마음도 잘 쉬어서 일할 컨디션은 되었는데, 그 사이 저 멀리에 있던 일들이 눈 앞에 닥쳐와서 큰 벽이 되어 있다. 에프상하이 사이트는 석영님의 도움으로 되려 전보다 좋아져서 돌아왔다. 이제 전시에 쓸 사진들을 모으고 홍보자료를 만들어야겠다. 대충 컨셉도 잡았고 도안도 생각했으니 우선 만들어 두면 하미 누나가 마무리해줄 것이고, 안내문은 컨셉만 잡으면 성현 형께서 또 힘을 써주실 테다. 사람들 독촉하고 몰아가는 일은 봉식 형이 도와주실 것이고 세세한 디테일은 정원사님께서 챙기실 테다.
대충 몇 줄 쓰면 졸릴 줄 알았는데, 낮잠이 도대체 얼마나 길었으면 좀처럼 잠이 안 오나. 바람은 세차게 창 밖에서 불고 비는 유리창에 찌찔하게 흐르는데.
2009.11.10 23:39
책 읽기에 좀 더 속도를 내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다녀올 때마다 사오는 책은 한 보따리씩 되는데, 일단 사두고 나면 마음이 풀려서, '언젠가는 읽겠지'하며 책장에 얹어두고 마는 책들이 점점 늘어간다. 스터디 때문에 억지로 등떠밀려 읽는 책들 말고, 스스로를 몰아가며 좀 더 부지런히 읽어야 한다.
반 년쯤 이어온 미학스터디는 한 달 정도면 두 번째 책이 끝난다. 그러면 다음 책으로 작정하고 있었던 책은 '1900년 이후의 예술사'라는 제목인데, 많이 두껍고 무겁고 또 어려워 보이는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최종 목적지 삼아서 이번 스터디는 지금까지 왔다. 아무래도 그냥 읽기에는 무리겠다 싶어서 개론 수준의 미학이론을 다루는 책들을 먼저 보았다. 고지가 눈 앞인데, 고지 앞에서 갑자기 한참을 돌아가게 생겼다. 스터디가 진행되며 새로 들어온 맴버들의 면면이 재미있다. 처음부터 함께 공부해 온 큰누님은 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하신 분이고, 극작을 전공한 박사생과 피아노를 전공한 음악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합류한 분은 서양회화를 전공한 정통파 미술학도다. 야매 사진가까지 붙었으니 마음만 먹는다면 예술의 여러 분야를 신나게 다루어볼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최근 몇 번의 스터디에서는 각자 전공분야를 살려 입문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수준의 정보들을 들어볼 수 있었다. 한국이라면 별 것 아니겠지만, 이 먼 땅에서 이런 사람들과 모이는 일이 쉽지 않다. 이 맴버, 마음에 든다.
마음에 들어서, 문제는 생기는 것인데, 애초에 미술에 관심이 있었던 세 명을 제외하고, 뒤늦게 합류한 연극학도와 음악도는 아직 현대미술이 낯설어서, 작정했던 책을 곧장 시작하기에는 무리가 아니겠냐는 큰누님의 사려깊은 제안을 차마 물리칠 수 없었다. 아마 두껍고 무겁고 어려워 보이는 '1900년 이후의 예술사'를 잠시 접어두고, 예전에 한 번 보았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다시 공부하게 될 것 같다. 아, 좀처럼 손에 닿지 않는 목적지다.
한참 책읽기에 속도를 붙이던 무렵에, 책마다 메모지를 끼워서 읽었다. 책에 대한 단상과 인상 깊은 문장, 그리고 책을 읽는 사이에 내게 생겨났던 일들을 메모지에 적어서 책갈피처럼 쓰고, 책읽기가 끝나면 정리해서 작은 커뮤니티에 올려서 몇 사람과 나누어 보았다. 그게, 군대 있던 무렵이다. 다시 메모지를 끼웠다. 처음 책은 노무현 대통령의 유고 회고집 '성공과 좌절'이다.
대통령께서 가신 뒤로, 여러 권의 책이 나왔다. 난무.했다고 써야 할 만큼 많이 나왔다. 인물평도 있었고 정책 안내도 있었고 울분도 있었고 또 비전도 있었다. 그 중에 마침내 대통령의 생전 원고들을 모아서 나온 책이 '성공과 좌절'이다. 별 내용은 없다. 이미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보았거나, 사람사는 세상. 사이트에서 읽은 것이 태반을 넘는다. 내용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는데, 다만 그 각오는 새삼스럽게 읽힌다. 책 곳곳에서 대통령은 지나온 삶의 허물에 대해 고백하는데, 그 솔직한 고백들은 삶에 대한 당당함으로 읽힌다. 그리고 전체 책을 통해서, 무엇보다도, 열심히 공부한 대통령이라는 인상이 짙다. 현안에 대해 잘 아는 대통령이라는 인상이 짙다. 고민은 누구나 한다. 일국의 대통령쯤 되면 그 고민이 오죽일까. 문제는 어떻게 해법을 찾고, 그 해법을 밀어나가느냐.일 것이다. 단단한 공부와 신중한 고민으로 도달한 답은,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 때 그 때 말이 바뀌는 지금의 그가 자꾸 떠올라서, 답답했다. 옮겨 적기에는 너무 많은 문장들이, 지금의 정치 현실을 걱정하게 한다.
대통령은 혈기 왕성하던 변호사 시절, 투쟁의 준비로서 '준법'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법에 대해서가 아니더라도, 드러나는 규칙에 대해서가 아니더라도, 사람에 대해, 시간에 대해, 살아가는 일에 대해 바른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혼자 바른 생활한다고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나 하나 깨끗하다고 안주하며 살아서는 이 땅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바꾸는 일에 기여하기 어렵다. 내 바른 생각이 주변으로 전해져서, 더불어 바른 사람이어야 한다.
촛불들은, 3년 뒤에 어떤 대답을 들려줄까.
2009.11.07 15:16
잡담 같은, 넋두리 같은 몇 줄 문장을 쓰는 것이 뭐 어렵다고, 한참 만이다. 다시 넋두리를 쓸 수 있을 만큼, 주변이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뜻일 테다. 주변에 널린 일거리들을 애써 모른 척하며 한참을 노닥거리고 늦잠을 자고 버려진 다음에야 겨우 움직일 만해졌다.
그 때 그 때 즐겨찾기에 추가해 둔 이웃집들이나, 참고가 될 만한 블로그들을 다녀보면 기운차게 사는 사람들이 참 많다. 긍정의 에너지로 유쾌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고,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가며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 다들, 그 에너지만큼은 아름다워 보인다. 날마다 어찌나 그렇게 기운찬 이야기들을 생산해내시는지. 새 책의 이야기, 새 하루의 이야기, 새 사람의 이야기, 새로 발견한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
아. 이렇게들 사시는구나. 나도, 다시 옷을 차려입고, 얼굴을 깔끔히 하고, 머리를 단정히 하고, 책상을 말끔하게 치우고, 책장을 정돈하고, 맑은 백지 몇 장을 펴서 움직여야 한다, 싶다.
해리포터가 처음 나온 것은 내가 군대도 가기 전이었으니 대충 10년도 더 된 것 같은데, 최근에 갑자기 해리포터의 마지막 이야기가 읽고 싶어서 속이 끓는다. 궁금하다. 궁금해서 찾아보려고 인터넷을 뒤지다가 행여 스포일러라도 만나게 될까 싶어 얼른 또 닫는다. 대충 마지막 이야기가 네 권짜리라는 것은 알았고, 한국에서 산다면 25,000원 정도라는 것도 알겠다. 그런데, 정말로 읽고 싶기는 한데 돈 주고 사기는 아까운 책이고 책장에 두기에도 아쉬운 책이다. 아, 어디 해리포터 마지막 이야기를 빌릴 곳이 없을까? 그런 책이라면 식음을 전폐하고 읽어내릴 수 있겠는데.
책 읽는 방식이 조금 변했다. 한 번에 한 권 밖에 못 읽던 것이 몇 년 전까지의 내 책읽기.였는데, 요즘에는 여러 권을 동시에 본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다. 아침에 화장실에 앉아서는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를 두어 장씩 보고, 지하철 탈 때는 문학 스터디에 쓸 노마디즘.을 본다. 김훈의 새 소설 공무도하.는 두어 장 뒤적이다가 옆에 던져두고 있고, 미학 스터디에서 보는 미술대계 3권은 벼락치기로 스터디 전날에나 본다. 발제문에 쓰려고 꺼내둔 막스 베버의 책은 목차만 보고 우선 미루어 두었다. 읽어야할 책들은 더 많은데, 시간을 대충 쓰다 보니 컴퓨터 앞에 앉아서 허송하는 시간이 훨씬 많고 진득하게 책 읽는 시간이 좀처럼 길지 않다.
책은 노인.이라는 이야기를 얼마 전에 어디서 보았다. 사람은 하나의 인생을 사는 것인데, 책은 그 수 만큼의 노인을 옆에 두는 것이어서, 그 만큼의 인생을 더 경험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본인의 하나 뿐인 삶을 더 풍성하게 한다는 이야기였다. 최근 한 동안 내 책읽기는 작은 위협을 받았는데, 책 이야기에서나 겨우 말을 하고, 보통 때는 별로 말도 없으며 유머 감각은 전무하고 경제적 현실감각도 무딘, 그러니까 말하자면 책만 아는 샌님 대접을 받은 적이 있다. 뭐라고 부정할 수 없었고, 모든 것이 상품 가치를 갖는 시대에 뒤떨어진 모습이 된 것도 같아서 주눅 들기도 했다. 마음에서는 또 괜한 반발심이 일어서, 돈으로 움직이고 영악하게 살아남아야 하는 세상을 괜히 내려다보려고도 했다.
역사책 속에서, 학문의 시대는 전근대적인 지형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질 때가 많다. 정신.만을 드높이던 한 때의 역사는 그렇게 해서 빠르게 변하는 세계 정세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 했고,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관념에 둔감함으로 나라를 잃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배웠다. 하지만 요즘에 생각해 보면, 그 정신이 이룩한 나라.를 실용과 경제의 이름으로 내리 누를 수는 없겠다 싶다. 얼마를 벌어서 무엇을 소비하며 누리는가.를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시대가 과연, 무엇을 배워서 어떻게 스스로를 다스리는가.를 기준으로 삼던 시대보다 낫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땅에 기대어, 흘린 땀만큼 얻어 쓰던 시대. 한 평생 골방에 앉아 책을 읽던 정신의 시대를 긍정할 수 있겠다. 사실, 조금은 동경할 수도 있겠다 싶다.
잘, 쉬었다.
2009.10.25 20:46
비행기 아래로 한국이 보이면, '언제쯤 이 곳에 온전히 돌아올 수 있을까'싶다. 잠시 다니러 오는 것 말고, 언제쯤이 되면 대충의 승부를 모두 겨룬 뒤에 편안한 마음으로 귀환할 수 있을까 싶다.
카메라와 렌즈 몇 개가 든 가방은 입국 때 한국 세관에 붙잡혔다. 세관 신고서 직업란에 적은 '사진가'라는 항목을 확인하고, 장비 가방을 열어 한참을 쳐다본 후에야 검색대를 통과시켜 주었다. 이미 들어올 때 초과 중량으로 들어왔는데, 상하이로 나갈 때는 서른 권 가까운 책이 추가되어 간다. 초과중량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kg당 만 원에 육박하는 요금을 보니 이게 장난이 아니다. 갈 때는 기내 휴대가 가능한 한에서 가장 큰 가방을 구하고, 그 안에 책들을 차곡차곡 쌓아야겠다. 그래서 검색대 앞에서 하나도 무겁지 않다는 듯 태연하게 들고 지나야겠다. 이 가방이 초과중량으로 걸린다면, 항공료에 맞먹는 초과비용을 지불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그것만음 막아야 한다.
치정이는 내년 초에 있는 시험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지난 번이나 이번이나 녀석은 하루 종일 학교 도서관 학원으로 분주하고 출장 반 휴식 반으로 온 형은 그런 동생을 사뿐히 무시해주시고 녀석의 침대를 점령군처럼 쓴다.
형이 무엇을 하는지 상관하지 않고 내 열렬한 팬을 자처하는 동생은, 나보다 더 좋은 재능이 많다. 착실하게 공부하고, 성실하게 산다. 세상에 대해 겸손할 줄도 알고, 자신보다 낮은 곳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볼 줄도 안다. 이번 시험도 녀석이 한다고 했으니, 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와서 본 것은, 녀석은 주변에 참 좋은 사람들을 많이 두고 있다. 그런 점은 내가 많이 배워야할 부분이다.
나는 사람을 챙기는 일에 서툴다. 진심이란 것은 가만 있어도 전해지는 것인 줄 알고, 아끼고 챙기는 마음을 다들 알아줄 거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드러나게 부러 챙겨주기도 해야 이어지는 것이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을 애써 모른 척한다. 세상,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닌데 벼랑 끝으로 스스로를 몰아가서 마치 기댈 곳 없는 여기가 마땅한 자리였던 것처럼, 이 곳에서 반드시 살아나가야 한다는 어리석은 비장함만 앞세우고는 한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리무진에는 YTN 글로벌 방송이 나오고 있었는데, 70년대 초에 태어나서 어릴 때 입양되었다는 여자가 나와서 가족을 찾고 있었다. 번듯하게 성공한 여자가 왜 이제 와서 가족을 찾으려는 것일까 생각하다가, 그 세월 동안 저 여자는 세상에 기댈 곳 하나 없이 얼마나 절박했을까.를 생각하니 어쩌면 가족을 찾는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하다가 무너지면, 더 갈 곳이 없어지면 언제고 기꺼이 나를 받아줄, 그리고 이제껏 나를 만들어준 내 가족을 생각해 보면, 그 무엇도 없이 매번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오로지 그 한 몸으로 받아내어야 했을, 실패는 잠시의 좌절이 아니라 완벽한 허물어짐이었을 그 사람의 지나온 삶이 안스러워졌다.
촬영 장비들이 모두 중국에서 사용하던 것들이라 전기 플러그가 맞지 않는다. 변환 플러그를 사려고 근처 조명기구 매장에 들렀는데, 아마 신혼인 듯한 젊은 부부가 계산대에 앉아 있었다. 남자는 내가 찾는 물건을 내어주었고 여자는 잔돈을 내어주었는데, 신혼이라는 단어가 어울리게 아담하고 깔끔한 가게에 가까이 앉은 두 사람의 미소가 참 보기 좋아서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바둥거리는 내가 참 어려 보였다.
너무 쉬지 못 했다. 피곤에 찌든 몸으로 한참을 버텼다. 내 집은 창문이 크고 커튼은 얇아서 일단 해가 뜨면 다시 잠들기가 어렵다. 그러니 밤에 일찍 잠들지 못 하면 좀처럼 피로를 풀 수 있는 긴 잠을 자기 어려웠다. 동생이 머물고 있는 원룸은 커튼만 내리면 낮에도 어둡다. 덕분에 오늘은 점심 시간까지 자다가 배가 고파서 일어났다. 동생은 학교에 가고 없었다. 모처럼 길게 자서, 몸이 가벼웠다.
성글고 서툰 말들이 난무했다.고 써야겠다. 하지 않아도 될 말들, 하지 말았어야 할 말들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쏟아낸 지난 얼마 동안의 시간이 지나간다. 말을 좀 더 줄이고, 말보다 행동을 앞세워야겠다.
2009.10.21 21:24
페이지 아래가 살짝 접혀 있다. 인상적이었다는 뜻이다. 마침 그 때 밑줄 그을 펜이 없었다거나, 펜이 있었다지만 밑줄은 긋고 싶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번에는 후자일 것이다. 소설책이니까, 소설책에 밑줄을 긋는 짓 따위는 유치하니까 그랬을 것이다.
응접실이나 식당이나 층계는 쥐죽은 듯 고요하였다. 바람의 큰 덩어리에서 떨어져 나온 샛바람이 녹슨 경첩이나 해풍, 습기에 부푼 목재 틈 사이로 스며들어(워낙 엉성한 집이었다.) 방구석이나 집안으로 밀고 들어올 뿐이다. 그 샛바람이 응접실로 들어와서 풀이 떨어져 너풀거리는 벽지를 만지작거리면서, 이 벽지가 앞으로 얼마나 더 여기 붙어 있을 것인가, 언제 떨어져 나갈 것인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리라고 상상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어 그 샛바람은 벽을 슬그머니 더듬고 지나, 마치 벽지에 그려져 있는 붉고 노란 장미꽃 무늬가 퇴색할 것인가를 묻고, 이제 그 바람 앞에 몸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휴지통 속의 찢어진 편지, 꽃, 서적들을 향해서, 저것들이 우군일까? 적군일까? 얼마나 오래 견디어 낼 것인가? 따위의 질문을(부드럽게, 왜냐하면 시간적인 여유는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물어보며 생각에 잠긴 채 이동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얼굴이 드러난 외딴 별이나, 정처없이 방황하는 배, 또 심지어는 등대불이 발하는 불빛의 인도를 받고 부는 샛바람은 그 희마한 발자취를 계단이나 매트 위에 떨어뜨리며 층계를 올라와 침실의 문 앞에서 냄새를 맡듯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샛바람의 방황은 끝나야만 했다. - 버지니아 울프. 등대.
생각해 보면, 참 좋아하는 책인데 내가 등대.를 끝까지 읽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신장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가 두 시간이나 늦어져서 공항 대합실에 앉아 어쩔 수 없이 읽어간 것이 결국 등대로 가장 가까이 간 것이 되었다. 그 공항에서 이 페이지를 읽고, 그 아래 모서리를 접었을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등대는 출판된지 족히 20년은 된 것 같은 낡은 책이다. 책장은 중간 중간 떨어져서 삐져나왔고 종이는 누렇게 바랬다.
현대사회에서 평가되는 능력이란 인간적 품성이 도외시된 '경쟁적 능력'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낙오와 좌절 이후에 얻을 수 있는 것으로, 한마디로 숨겨진 칼처럼 매우 비정한 것입니다. 그러한 능력의 품속에 안주하려는 우리의 소망이 과연 어떤 실상을 갖는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기억할 것입니다. 세상사람은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당신이 먼저 말했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직한 어리석음, 그것이 곧 지혜와 현명함의 바탕이고 내용입니다. '편안함' 그것도 경계해야 할 대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편안함은 흐르지 않는 강물이기 때문입니다. '불편함'은 흐르는 강물입니다. 흐르는 강물은 수많은 소리와 풍경을 그 속에 담고 있는 추억의 물이며 어딘가를 희망하는 잠들지 않는 물입니다. - 신영복, 나무야 나무야.
아침에 화장실에 앉아서 읽은 부분이다. 어떤 위로와 응원. 우직한 어리석음.
에프상하이 사이트는 바이러스인지 해킹인지에 당해서 일주일 넘게 완전 멈추었다. 수습을 해야긴 해야겠는데, 완전히 새로 만들기에는 시간도 부족하고 또 그럴 만한 동기부여도 없다. 대충 수습이나 하려고 보니 얼마 앞으로 닥친 동호회 전시 문제와 엮여서 일이 복잡해진다.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아침부터 이미 마감 지난, 내일 인쇄들어간다는 교민잡지 원고를 날림으로 해치우고, 저녁 스터디에 쓸 발제문을 어쩔 수 없이 또 날림으로 해치웠다. 결국 두 개 다 만족스럽지 못 했다. 많이 답답했다.
2009.10.15 22:17
저녁 시간 동안 강을 따라서 걸었다. 예정대로라면 출장지에 있어야 하겠지만 그 곳 날씨 사정을 핑계로 출장을 미루었다. 떠밀리듯 지나 온 지난 얼마 동안의 시간 뒤에, 좀 쉬어가고 싶었다. 간절하게. 길을 걷기에 좋은 날씨가 이어진다. 이 곳의 가을은 온전한 하나의 계절이 되지 못 하고 다만 겨울을 예비하고 또 그 추위를 경고하는 한 때의 시간처럼 보인다. 얇은 외투를 걸치고, 지갑도 없이 다만 동전 몇 개를 챙기고, 집 열쇠 하나와 아이폰 하나만 넣어서 나갔다. 가져 간 동전 개수에 맞는 초콜릿 음료 하나를 사서 이미 어두운 집 앞 강변을 걷다가 앉았다가 했다.
책은 몇 달째 열심히 써야한다는 구호만으로 그치고 있고 에프상하이 전시 준비는 해킹당한 사이트와 맞물려 제자리 걸음이다. 포트폴리오 업뎃은 올 초에 계획했던 것이 아직이고 연락해야 한다고 적어둔 연락처는 쌓여만 간다. 진행중인 스터디들도 이 핑계 저 핑계로 에너지 쏟는 것이 예전 같지 않고, 밀린 사진 작업들은 거의 잊혀지려는 요즘이다.
새로 시작해야 하는 사진 스터디는 좀처럼 안 된다. 우선 몇 명의 프로사진가가 모여야 하고, 그들을 이끌어갈 수 있는 매력적인 내용이 있어야 하는데, 무엇보다 좀처럼 시간을 못 만들겠다. 당장 눈 앞에 닥친, 어떤 것은 소소하고 어떤 것은 거대한 일거리들이 쏟아질 듯 내 앞에 벽을 세우고 있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벽은 너무 거대해서 그 너머까지 가려는 시도는 무모해 보이고 내 작은 몸으로 아무리 밀어보아도 오늘보다 내일은 더 거대할 것만 같다. 영영 그 너머에 닿지 못할 것만 같다. 주거 지역 앞을 흘러 돌아나가는 강의 사방은 번듯하고 높은 아파트들이 우뚝한데, 나는 무너진 기둥이며 벽돌들의 한 가운데 있는 듯하다. 일으켜 세우고 다독여 버티게 해야 할 것들이 사방에 널려서 나를 재촉한다. 이 가녀린 힘으로 나는 날마다 겨우 몇 번의 방망이질 밖에 할 수가 없는데.
미학스터디는 제법 진도가 나가서, 1000 페이지에 달하는 책 한 권을 마침내 끝내게 되었다. 몇 달이 걸렸다. 언제 왔나 싶게 대견하다. 문학 전공자들과 함께 하는 스터디는 갈수록 내 관심분야와 멀어져서 이제쯤 발을 빼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치열한 공부쟁이들과 어울리는 시간은 매력적이지만, 그들이 그들의 직업에 투자하는 시간만큼 나 또한 내 직업과 관련한 공부에 투자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언제까지 재밌다는 핑계로 그들의 공부에 끼어있을 수 없겠다 싶다. 몰랐던 이론에 대해 공부하고 막연하던 부분에 대해 밀도를 다지는 공부는 좋은데, 일주일에 적어도 꼬박 이틀을 쏟아야 하는 시간적 한계와 어떤 부분은 내 전공 분야와 아무 상관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학스터디를 정리의 우선 순위에 두게 만든다. 내 사진 공부와 사진 작업이 진도를 못 나가는 것은 내 게으름과 시간 계획의 문제일 것인데, 안 되니까 괜히 다른 곳에서 이유를 찾아 보는 것이다. 두 스터디는 최근 거의 같은 시기에 후기구조주의에 대해 다루었다.
데리다로 대표되는 해체의 미학은 일체의 기준을 부정하고 선형적 구조 위에 앞서고 뒤서며 서열짓던 가치들을 사방에 풀어놓는다. 그리고 선형성의 파괴는 다양성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졌다. 존재들의 차이 속에서 보다 충실한 의미를 찾으려는 그들의 시도는 아름다워 보였다. 심정적으로 좋아하고 또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내 살아가는 방식의 정당성을 보장받고 싶었는데, 해체의 미학은 패배자의 허무에 다름 아니라는 비판은 따끔했다. 비판에 대한 그럴 듯한 변명이 없진 않겠지만, 비판은 내게 닿았는데 그 변명은 내게서 멀리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정말 순환하는 것이라면, 조금쯤은 안심할 수 있을까.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될까 봐 이렇게 무서워하지 않아도 될까.
2009.09.27 07:00
상하이 교향악단의 130주년 기념 연주회가 있었다. 리허철 촬영 동안에 촬영은 접어 놓고 하도 넋 놓고 듣고 있으니 보기에 딱했는지 없던 표를 만들어 주었다.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과 차이코프스키의 5번 교향곡이 프로그램이었는데, 첼로 협주곡은 미리부터 좋아하던 곡이라 인상적으로 들었다. 어제의 인상이 남아서 아침 내내 뒤 프레가 연주한 앨범을 듣는데, 출장 준비로 온 방안을 가로지르며 듣는 음악은 집중해서 들을 때의 감동이 없다. 그래도, 역시 콘트라베이스가 짱입니다요.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은 가기 전에 미리 들어보고 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촉박해서 겨우 구해만 놓고 못 들어본 채로 갔다. 미리 들어봤다면, 어쩌면 중간 쉬는 시간에 미친 척 나왔을 수도 있겠다. 1악장은 아무 것도 모르니 집중해서 들었는데, 차이코프스키는 아마 등떠밀려 주문을 받고 그럭저럭 노닥거리다가 마감 닥쳐서야 뭔가 해야한다는 벼락치기의 심정으로 4악장을 만든 것은 아닌가 싶다.
신장에 간다. 돌아오는 비행기는 아직 확인을 못 했는데 아마 5일 정도의 일정이 될 모양이다.
우루무치의 기온은 최저 기온은 10도를 조금 웃돌고 최고 기온은 20도를 조금 웃돈다. 아마 완연한 가을 날씨쯤을 짐작하면 될 것인데, 여름의 끝자락에서 완연한 가을의 날씨를 기억하는 일은 어려웠다. 아직 내어 걸지 않은, 옷상자에 담긴 가을 옷 앞에서 고민했다. 등산용 바지 한 벌과 역시 여행에 어울리는 기능성 윗도리 두어 개를 담았다.
책장 앞에서 두 번째 고민을 시작했다. 읽고 있던 문학 이론책은 내려 놓았다. 시집 한 권과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를 가져가기로 했다. 신장.에서 무엇을 보게 될지는 알 수 없는데, 나를 그 곳으로 보내는 자들이 보여주려는 것은 대충 알 만하다. 돌아오면 학사 졸업논문에 버금가는 분량으로 글도 써내야 한다. 보려고 하는 것과, 보아야 하는 것, 그리고 보는 것의 간격은 결코 좁지 않을 듯하고, 나는 다만 너르고 낮은 땅에 대해서 겨우 쓰게 될 것을 알겠다. 그것이 소심한 자의 버팀.쯤 될 것이다.
등산화 끈을 묶는다. 오랜만이다.
2009.09.25 21:15
어제 일이다. 촬영을 마치고 장비는 현장에 놓아둔 채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왔다. 내가 서 있는 맞은 편에는 나보다 어린 여자가 탔다. 손에 꽃을 들고 있었다. 이름을 모르는 꽃이었다. 넓고 길쭉한 녹색 잎 두어 장이 바깥을 둘러싸고 그 안에 흰 꽃이 한 송이 아니면 두 송이쯤 있었다. 크기나 줄기의 모양으로 보아서는 카라.와 비슷했는데, 카라보다는 꽃잎이 흐드러진 모양새였다. 여자는 미인형은 아니었는데,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이었고, 옆에서 보기에 예쁜 이마가 유독 드러났다. 종일 소리지르며 촬영 마치고 오는 길이라 어깨는 무거웠는데, 향기도 전해오지 않는 건너편 꽃이 기분을 가볍게 했다.
요즘 책 안 들고 나갈 때가 많아졌다. 아이폰을 산 후 생긴 변화다. 이 작은 전화기는 내게 스케줄러인 동시에 전자사전이고 MP3플레이어이고 지도이고 노트북이다. 사람을 기다리거나 이동할 때는 1000곡 넘게 들어있는 음악에 빠져 있으니까 더 이상 책을 들고다녀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언젠가 다시 들고 다니고 언젠가 다시 읽겠지만, 당분간은 이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한다.
겸사겸사, 나를 단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연기 전공 학생들 몇 명을 소개받게 될 듯한데, 포트레이트를 좀 더 전문적으로 찍어볼 것이다. 긴 10월 연휴가 끝나면, 이 곳 사진가들과 함께 하기로 한 공부를 시작한다. 나는 내 주제를 인물사진.에 두려고 한다. 그리고 일이 순조로우면 내년 겨울쯤에는 전시를 할까 싶다. 여러 사진 분야에 뛰어난 사진가들이 많지만, 아마추어들의 수준 또한 프로를 밥 말아드실 만큼 뛰어나지만, 인물 사진이라면, 나도 좀 한다.
2009.09.21 21:28
요리를 해야 한다. 며칠 전 촬영 때문에 도자기 만드는 곳에 다녀왔다. 본격적인 촬영에 앞서서 실내를 둘러보고 있는데 작고 흰 접시가 참 예쁘게 생겼다. 크기가 작은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어디서도 보기 힘든, 가장 단순한 선으로 이루어진, 거의 높이가 없는 접시였다. 용도는 찻잔받침이어도 좋겠고, 작은 반찬들을 소박하게 담아내는 것도 좋겠다. 그 앞에 서서 한참을 생각했는데, 도대체 내 손에서 나올 수 있는 음식이나 내 냉장고에 보관 중인 먹거리 중에 그 접시에 소담하게 담길 만한 것은 없어 보였다. 라면 면발을 몇 줄씩 덜어 놓는 것도 우습고 쥐포 구워서 잘게 잘라 올려놓는 것도 역시나. 그래도 두 번 보기 힘든 접시인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서, 그 곳에 있는 세 개를 모두 사 왔다. 싸게 샀다.
내가 사는 집 주방에는 마땅한 조리공간이 없었다. 그릇 올려 두고 냄비 올려두니 요리 할 때마다 그 공간을 비워내기도 귀찮아서 가끔 된장찌개라도 끓일라 치면 마땅히 재료들 둘 곳이 없어서 괜히 부산해진다. 창가쪽, 빛이 들어오는 곳에 나무 선반을 달아서 그릇들을 그 위로 옮겼다. 빛을 받으니 잘 마를 것이고 소독도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제법 음식이라도 만들어 볼 수 있는, 재료라도 몇 개 늘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그러니까, 저 공간에 재료를 늘어놓은 후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작고 흰, 높이가 없는 접시에 담아 보아야 한다. 맛의 문제나 먹는 문제는 그 다음이다.
발제문 쓰는데만 하루 종일과 다음날 새벽까지 걸린 스터디는 뭐 그럭저럭 해치웠다. 잘. 했다고는 못 하겠지만, 수습은 대충 한 셈이다. 돈 주는 것도 아니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래도 그렇게 스트레스 받으며 무거운 책들과 기꺼이 뒹군 것이 제법 기특하다. 홀가분한 기분으로, 스터디 끝내고 돌아온 오후를 빈둥거렸다.
2009.09.15 21:54
오랜만에 이케야에 다녀왔다. 음식쓰레기를 담기 위해 뚜껑 달린 작은 쓰레기통이 필요했고, 주방에 조리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선반을 만들어야 했다. 마침 근처에 갈 일도 있고, 근처에 가는 일이 마침 돈 받는 일이라 겸사겸사 이케야까지 발이 닿았다. 오후 약속 때문에 찬찬히 보지는 못 하고 급하게 지나가듯 가면서 사기로 작정한 물건들만 골랐는데, 계산대 앞에 서니 나도 모르는 물건 몇 개를 또 들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케야가 그렇지 뭐. 쓸 데 없는 A4 사이즈 액자와, 잡동사니 정리함을 들고 있었다. 한참을 저울질 하다가 그냥 근처에 내려놓았다. 모처럼 수금도 했으니 사는 것이었는데, 나는 내가 서 있는 줄이 카드결제 전용인 줄 절대 몰랐다. 미안타. 누나야. 그래도 얼마 안 긁었다.
새벽부터 이어진 촬영은 점심 무렵에 끝났다. 내일 당장 인쇄소로 넘겨야 된다며 급한 작업을 부탁해서, 오늘 밤은 늦을 모양이다. 내일 오후 출장이 잡혀 있으니 그 전에 끝내고 보내려면 바쁘겠다. 교향악단 100명은 내가 머리 속으로 그려보던 것보다 더 많은 인원이었다. 좁은 공간에 세우고 보니 머리들 밖에는 보이지 않아서 사진은 답답해 보였다. 급한 사진이고 메인 컷이 아니니 현장에서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은 타협하며 진행했다. 그래도 지휘자도 아니면서 100여 명의 교향악단을 마음대로 오고 가게 주무르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음악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런가? 말은 참 안 들었다. 꼭 개구쟁이 꼬마들 촬영하는 기분이었다.
누나는 대뜸 전화해서, 나보고 베이비 포토를 해볼 생각이 없냐고 농 반으로 물었다. 조카들이 돌사진 찍을 때가 다가오는 것인데, 알아보니 제법 한다는 곳에서 제법 한다는 구성으로 찍으면 백 만원이 훌쩍 넘는 모양이다. 도대체 아이들 돌 사진이 뭐라고 백 만 원 넘는 돈을 써야하나? 사진가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니다만, 그거 허무해 보인다. 물론 나는 베이비 사진에 관심도 없고, 또 베이비 사진이라는 게 나름 해당 쪽의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 걸 아니까 웃으며 넘기고 말았다. 누나랑 협상해서, 왕복 항공표와 현지 체류비 일정액을 부담해주면 내가 가서 돌행사 스냅을 찍기로 했다. 그러나 누나는 강했다. 현지 체류비는 내가 부담하기로 했다. 왕복 비행기표가 어딘가.
사람마다, 집마다 가진 것이 있고 못 가진 것이 있다. 당연한 말이다. 집집마다 문제 없는 집은 없으니, 문제 두어 개 있다고 탓할 일은 아니다. 우리 집도 다르지 않다. 다만 못 가진 것이 가진 것을 가리는 것은 주의할 일이다. 새삼, 누나와 나와 내 동생을 바르게 길러주신, 그리고 세 명 사이에 좋은 우애와 존중이 있도록 해주신 부모님이 참 고맙다. 그리고 내 누나와 동생이 참 든든하다. 들판에서 막 큰 것 같은데, 제법 잘 컸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경우에 나를 흔드는 것은 주변 사람들인데, 또 어떤 경우에는 나를 세우는 것도 그들이다. 나는 또 기대고 서서 겨우 버틴다. 사람들이 참 고맙다. 잘 해야겠다. 책도 잘 쓰고, 사진도 잘 찍어야겠다. 사람도 잘 만나야겠고, 돈도 잘 벌어야겠다.
아무리 비껴서도, 이건 해야겠다 싶은 것들이 있다. 현금 없다고 돈 빌려쓴 것이 불과 며칠 전인데, 수금 했다고 또 마음 풀린다. 아무리 참아 보려고 해도, 씨디 플레이어는 사야겠다. 아, 이건 진짜 사야겠다. 하.
2009.09.14 22:16
이불을 갈았다. 여름 동안 쓰던 대나무 자리를 걷어내고 두툼한 속이불 한 겹을 깐 다음 자주색 얇은 이불을 침대보 삼아 덮었다. 그리고 지난 봄에 넣어두었던 흰색 이불을 꺼냈다. 대자리는 하루 동안 햇볕에 말려서 저녁에 말아 넣었다. 낮에는 아직 더운데 새벽으로는 제법 서늘해서 대자리 위에서 자면 새벽녁에는 설핏 깬다. 말아 넣기에는 조금 이른가 싶지만 포근한 새벽 잠이 욕심나서 바꾸기로 했다. 계절 가는 소리가 점점 선명하다.
별 것도 아니면서 전날 잠까지 설치게 만든 촬영은 예상대로 가볍게 끝났다. 한 번 본 적이 있었던 모델은 의외로 표정 잡기가 쉬워서 촬영은 순조롭게 빨리 끝났다. 가격에 비해 몇 곱절 힘든 촬영을 할 때는 본전 생각이 간절한데, 이렇게 가격에 비해 수월하게 끝나는 촬영도 있으니 주고 받는 것이 엇비슷해진다.
오후에는 요즘 한참 열올리고 있는 교향악단 촬영 때문에 공연장에 있었다. 이런 저런 이유들이 겹쳐서 고전음악을 듣게 되는 요즘이다. 고전은, 힘이 세다. 어디 음악 뿐이랴. 문학에서, 철학에서, 예술에서 고전이 갖는 힘은 마땅히 고개 숙일 만한 것이다. 상하이 교향악단은 월말에 있을 연주회 연습중이었는데, 무대 가까운 자리도 아니고, 연주단 안에 섞여서 듣는 음악은 온 몸을 울렸다. 카메라 렌즈 안을 꽉 채운 지휘자의 몸짓은 아름다웠고, 묵은 나무결이 만드는 악기의 질감은 탐스러웠다. 촬영분이 다 끝났는데도 괜히 더 찍는 척하며 한 동안 음악 앞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이 아름답다는 것을 배웠다. 스메타나의 교향곡을 여는 하프 소리도 알았다. 바흐의 피아노곡이 좋은 것도 어렴풋이 알겠고, 몇 몇 연주자의 느낌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도 겨우 짐작하겠다. 뭐, 아직은 베토벤은 소문만 무성한 옆집 아저씨 같고 모짜르트는 세상 모르는 철부지처럼 들리니 갈 길이 멀지만, 고전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참 잘 한 일이다 싶다. 고전음악에 대한 관심이 오디오 장비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는 것은 좀 위태롭다만. 오늘 촬영 중에도 콘트라베이스 주변에서 한참 머뭇거렸는데, 연습중인 그들에게 차마 말 걸지는 못 하고 부러움 가득한, 묻고 싶은 말이 많다는 표정만 지었다.
에이전트가 생겼다. 영업에는 도대체 개념이 없는 나니까, 잘 된 일이다. 이제 나를 대신해서 내 사진을 팔아주고 새 일거리를 찾아 주는 일을 도맡아 해 줄 것이다. 뭐, 그만큼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잘 되면 좋겠다.
써야지 써야지 하며 모아두었던 메모를 몇 번이나 닫았다. 애써도 안 되는 때도 있는 것이고, 하루 종일 일에 시달린 후 잠자리에 누워 마지막 남은 정신으로 느긋한 문장들이 이어지는 때도 있다.
막혀 있는 문장들이 사방에 쓰러져 있다. 한 줄씩 불러 일으켜서 먼지도 털고 다리에 힘도 불어넣어서 잘 서도록 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언젠가 되겠지, 누군가 나를 일으켜 세워서 내가 문장을 일으키도록 도울 사람이 언젠가 나타나겠지, 때 되면 하겠지 핑계만 잇대어 간다. 그러다가, 한 방에 훅, 가는 수가 있다.
진도 안 나가는 스터디 발제 책이 몇 권, 빨간색 껍질을 뒤집어 쓴 휴대폰, 이제 당분간 별로 쓸 일 없을 에어컨 리모콘, 빨간색 검은색 볼펜이 하니씩, 반쯤 채워진 물잔. 자, 잠들 시간.
2009.09.13 20:32
길에 군밤이 나왔다.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여름 사이에 아침 저녁으로 이른 가을 바람이 부는 때에 맞춰 군밤이 나왔다. 접시 안테나를 닮은 넓은 쇠그릇에 검은 자갈과 설탕을 넣고, 껍질 가운데를 갈라 놓은 밤을 넣어 볶아 낸다. 군밤 볶는 냄새는 멀리까지 닿는다. 군밤은 푸른 귤과 함께 상하이의 가을을 알리는 이른 신호다.
용란이 메일에 답장을 겨우 보냈다. 미루고 벼르던 일이다. 활자를 밥줄로 삼고 싶다는 녀석이게, 그런데 무섭다는 녀석에게 용기 내라고 썼다. 삶은 참 다양한 방식으로 있더라고, 교과서 안에 없다고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니 너무 겁 먹지 말라고 썼다. 나도 못 하는 일을 녀석에게 하라고 하는 것이 못내 미안했지만, 지금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이, 그리고 그 녀석이 내게 듣고 싶어하는 말이 그런 정도인 것 같았다.
문장쓰는 사람들은 참 예쁘다. 객관적으로 예쁜 것보다는, 단지 내가 보기에 예쁘다. 사진과 달라서, 문장은 첫 글자를 빼고 두 번째 글자부터 쓰면 안 된다. 토씨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서 글자를 만들고 한 글자씩 정성 들여 이어야 문장이 된다. 사람의 진득함을 보는 듯해서, 그 사람이 쓴 문장을 보면 그 사람을 알 듯하다. 한 걸음에 여기까지 건너 뛰어온 것이 아니라, 당신 앞에 놓인 시간을 차근차근, 때로 답답해 보일 만큼 더디고 진중하게 밟아 왔노라고 그들의 문장은 말하는 듯하다. 그런 사람 보는 게 쉽지 않으니, 가끔 보는 사람들이 귀하다.
2009.09.03 22:03
바람이 좋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서 여름이 끝나간다고 먼 신호를 보내온다. 창문만 열어도 들뜨는 며칠이다. 땀을 쏟아내며 길을 걷던 그 날들을 또 한 계절 잘 버텨낸 듯싶다.
매달 기사를 써서 보내는 교민매체와 작은 미팅이 있었다. 내가 많은 도움을 받는 곳이어서 매번 그 곳에 가서 그 곳 사람들을 만날 때는 고마운 마음이다. 마침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듯해서 나도 돕기로 했다. 그 곳 편집팀에게 사진을 읽는 법에 대해 알려주기로 했고, 내가 쓰던 기사도 조금 더 수정하기로 했다. 필요하다는 사진도 찍어 주겠다고 했다. 그 동안 내가 신세 진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인데, 사장님은 항상 도움을 받아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내가 받은 고마운 것들은 생각이 나는데 내가 이 곳에 해 준 것은 잘 모르겠다.
세상에 빚진 마음으로 산다. 내가 내 능력으로 무엇이든 도울 수 있다면, 그것들은 다만 내가 세상으로부터 받은 것들에 대한 보답이다. 그러니까 받은 것들은 고마워서 기억에 남는데, 도와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신세 갚는 것이라서 기억에 남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아침이나 저녁에 백지를 펴 두고 해야 할 일들을 잔뜩 적는다. 급하게 해야할 일 옆에는 동그라미를 치고, 해치운 일은 길게 줄을 그어서 없앤다. 어제 적은 일을 못 해서 오늘 또 적고, 그 다음날 또 적는 것들이 제법 된다.
열흘 넘게 침 맞으며 치료하고 있는 왼쪽 어깨는 많이 나았다. 하루 걸러 하루씩 가서 20분씩 맞는다. 침을 놓는 자리는 내 시선에 들지 않는 곳인데, 어떤 곳은 따끔거리고 어떤 곳은 근육이 돌덩어리가 되는 것처럼 무거워진다. 의사 선생님은, 몇 번만 더 맞으면 근육은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힘을 쓰려면 두어 달은 더 있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두어 달은 더 불편한 어깨를 다독여야 한다.
문장들이 짧다.
2009.08.30 09:30
푹 잤다.
한 동안 이런 저런 일들 때문에 늦게 잠들었다. 바깥이 밝으면 어쨌든 잠에서 깨야 하니까 잠이 부족했다. 그런 날은 하루 종일 개운하지 못 한 기운으로 움직여야 해서 일처리는 항상 어설퍼 보이고 생각은 날을 세우지 못 한다. 어제는 일찍부터 잤다.
잘 자고 일어난 아침에 노트 앞에 앉으면 내 앞으로 놓인 시간의 일들이 가지런하다.
2009.08.23 23:10
한국에 다녀오고 여행 다녀오니 한 달이 훌쩍 갔다. 풀려버린 리듬을 다잡는 일은 어려웠다. 촬영이 취소된 금요일부터 작정하고 움직임을 줄였다. 집 청소나 조금씩 하면서 밀린 일들을 차곡차곡 치웠다. 나른하게 주말 동안 버려져 있고 나니 이제 주변도 제법 차분해 지고 겨우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준비자세가 되었다. 밀린 일들을 다 치워낸 것은 아니지만, 급한 불은 껐다. 이제 힘주어 디딜 일들만 남았다.
하던대로 연습장 한 켠에 새로 해야 할 일들을 목록으로 적어둔다. 여행에서 다친 어깨 때문에 병원에 가보아야 할 것 같고, 한 달 동안 멈추어 있었던 미학스터디도 다시 이어야겠다. 잔뜩 사 온 책들도 읽을 기회가 있어야 하니 어떻게 좀 더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할지, 아니면 사람 몇 모아 책 읽은 기회를 만들지 궁리해야겠다.
청소를 대신해 주는 아주머니를 부르기로 했다. 여전히 내게는 부끄러운 결심이다. 최근에 스콧 니어링에 대해 헬렌 니어링이 쓴 책을 다시 읽었는데, 주변을 정돈하는 일은 한 삶이 기꺼이 감당해야 하는 일들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눈코 뜰새 없이 바쁜 것도 아닌데, 그래도 되는 것인지 아직 모르겠다. 아주머니는 다음주 목요일에 오기로 했다.
부모님은 지금 남 부러울 것 없이 사신다. 집집마다 문제 없는 집은 없으니 우리집이라고 다를 것은 없지만,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이 만하면 되었다 싶다. 그런 부모님은 지금도 금방 달아버리는 건전지가 아깝다고 새로 들인 텔레비전 리모컨을 내치셨다. 그리고 텔레비전 옆에 붙은 버튼으로 볼륨을 올리고 채널을 바꾸신다. 무엇도 받은 것 없이 맨주먹으로 시작하신 두 분의 젊은 날은 내 어린 기억 속에서부터 제법 선명하다. 자식들만큼은 돈 때문에 뜻이 막히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두 분의 노력은 깊었다. 객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이 돈 때문에 기죽는 일 없도록 챙기시면서도 정작 당신들은 돈 쓰는 법을 배운 적이 없으셨다. 철 든 후에야, 그런 두 분의 돈을 차마 얻어 쓸 수 없었다.
중국에 와서 처음 얼마 동안 나는 밥값이 없어서 굶었고 작업실 나무 바닥에 촬영용 스티로폼을 깔고 겨울잠을 잤다. 여름 찜통에 옥탑방 작업실에서 전기요금 걱정하느라 더위 먹어 쓰러지기도 했고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수 십 킬로 장비를 지고 한참을 걸어다니기도 했다. 그래도 제 날짜에 작업실 임대료를 대는 일은 버거웠고 두 달에 한 번 내는 임대료를 두 달 내내 걱정해야 했다. 사진 따위 접고 들어오라고 하실 게 뻔했으니 집에 말 못 하고 다만 버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비장해야 했고, 스스로를 확신해야 했다.
그게 멋인줄 알았다. 그렇게 버텼으니 지금 내가 있다고, 그럴 듯한 무용담도 생긴 것 아니냐고 스스로 믿었다. 어쩌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요즘에 한다. 나는, 삐쩍 마른 생각의 몸으로 깡만 남은 추한 꼴이 된 것은 아닐까. 가진 것 아무 것도 없어서 진흙탕 바닥에 쓰러지면서도 꼴에 자존심이라는 것만 남아서 눈만 치켜뜨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적당히 벌어서 적당히 쓰면서 살아가는 것이 적당하지 않을까. 아니, 적당히.보다는 조금 더 벌어서.
잘 쉬었다.
다시, 나를 증명해야 한다. 마음이 바쁘다. 작업실 바닥을 뒹굴던 나를, 나는 내치지 못 하겠다.
2009.08.22 21:52
사람마다 가슴 속에 영웅을 품고 산다. 대부분의 경우에 영웅의 행동에 통쾌함을 느끼면서, 살다보면 현실에 매몰되는 영웅을 안타까워 하기도 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영웅에게 배신당하기도 한다. 어릴 때 영웅은 대부분 전지전능에 가까워 보인다. 하늘을 날고 힘도 세다. 모르는 것이 없으며 불의 앞에서 절대강함의 힘으로 정의를 지킨다. 그들은 하늘에 살며 인간들의 세상을 구원한다.
자라다 보면, 영웅은 점점 간격을 줄여서 같은 세상에 사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나와 똑같은 몸으로 똑같이 숨쉬는 존재가 된다. 상상 속의 영웅이 허구라는 것을 너무나 명백하게 알게 된다. 세상은 입바람 한 번이나 주먹질 한 번으로 구해지지 않더라. 대신에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가진 것 없는 몸으로 시대와 맞서가며 도저히 감내하기 힘든 것들을 기어이 감내하며 마침내 시대를 깨우는 사람들이 상상 속의 영웅보다 못 할 것 없다는 것을 배운다.
아버지의 영웅은 아마 김영삼 전 대통령쯤 될 것이다. 아버지는 고향 거제도에서 거의 평생을 지내셨고, 그 섬에서 김영삼의 전설은 대단한 것이다. 집권 후에 그가 보여준 어떤 모습들은 실망스러웠으나, 아버지가 젊음을 불살랐던 그 무렵에 김영삼이 보여준 저항정신만큼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마지막까지 아름다웠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그는 고집스러운 그만의 길을 간 듯하고, 아버지는 여전히 그런 김영삼을 당신의 영웅으로 삼고 계신다.
대비되는 위치를 설정한다면, 내 영웅은 노무현 대통령쯤 될 것이다. 대통령이 보여주었던 꿈은 아름다웠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아버지는 전화를 걸어 말씀하셨다.
"눈물 흘리거나 그러지 마라. 대통령이나 되는 사람이 그 정도 일에 죽을 거면 대통령 할 배짱도 없었던 거다. 그런 사람 죽었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라."
아버지의 영웅이 죽는다면 아버지는 어떤 심정이시겠냐고, 그런 작은 양심의 잘못도 큰 허물로 안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운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말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영웅이었을까. 고향이 거제도라는 이유로, 김대중은 한참 동안 내게 나쁜 사람.이었다. 그를 객관적으로 보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얼마나 헌신했으며, 사심 없이, 좋은 비전을 갖고 나라를 이끌었는지 뒤에야 알았다.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쩌면. 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급작스러운 충격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멍. 할 수 밖에 없었다. 좋은 시절에 편안하게 가셨으면 좋았을 것은 이리 하수상한 시절에 근심거리를 다 내려놓지 못 하고 가신 것이 안타깝다.
얼마 전에 이 곳 책방에 갔다가, 노무현 관련 책 중 한 권에 김대중 대통령이 쓴 추천사를 읽었다.
"당신은 저승에서, 나는 이승에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웁시다."
노구를 이끌고 다시 민주화의 투쟁에 서겠다고 각오하셨던 분도 이제 저승으로 가셨다. 두 분 모두, 이제는 남은 자들의 몫으로 돌려두시고 안녕하셨으면 좋겠다.
내 몸 하나 잘 지내자고 태어난 세상이 아니다. 나로 인해, 세상이 한 뼘은 더 아름다워져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사람으로 태어난 역할을 하는 것이다.
2009.08.18 07:25
문장 쓰는 법을 알려주기로 했다. 그러니까, 가르치기.로 한 것인데, 내 주제에 언감생심 다른 누구에게, 그것도 다른 것도 아닌 '문장'을 가르친다는 생각은 시건방지기 짝이 없는(사실은 그런 짝들이야 제법 많지만) 일이니까 나는 차마 가르친다.고 못 쓰겠다. 다만, 내가 아는 것들을 알려주어 욕 먹지 않을 만큼의 길잡이라도 되면 좋겠다.
좋은 문장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중학교 무렵이니 대충 15년쯤 되었다. 생각해 보지 못 한 부분이었는데, 짧지 않은 시간이다. 예쁜 문장이 탐났던 때도 있고, 단호한 문장이 탐났던 때도 있다. 거창한 문장을 쓰고 싶어했던 때도 있고, 아포리즘의 문장으로 한 방에 무찌르고 싶었던 때도 있다. 요즘에 내 문장은, 더한 것이 없는가? 감춘 것은 없는가? 이런 물음들에 대한 답들이다. 부끄러운 것들을 없는 체하지 않고, 가진 것 이상을 말하지 않고, 있는 만큼을 적되 있는 것으로 당당하려고 한다. 없어도 되는,감정을 부풀리는 형용사와 부사를 빼고, 단어 끝에 붙는 토씨 하나마다의 무게를 감당하는 문장이면 좋겠다.
사진을 가르쳐 본 적도 있고, 미술사와 미학사를 함께 공부하며 반쯤 가르친 적도 있다. 자잘한 것들도 몇 개 있을 것이다. 참고하고 읽게 할 책들을 고르느라 책장 앞에 서 있다가,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글쓰기에 대해 말한 작은 책을 봤다. 아, 잊고 있었다. 글쓰기는 어떤 기술적 문제에 앞서서 생각의 문제이고 태도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 때의 글쟁이들은 하나의 기술로써 글쓰기를 구사한 것이 아니고 삶을 단련시키고 단련한 삶을 비추어 보는 거울로서 그들의 문장과 마주했다. 괜한 사고를 친 것일까?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일까? 문장은 함부로 알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 함부로 나서서 권할 것도 아닌 것을 늦게야 안다. 문장이 앞서고, 삶이 문장의 각오를 따라 간다. 그리고 삶이 지나온 길을 문장은 다시 뒤따라오며 단속한다. 내 요즘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예쁘다. 어쨌든 시작은 해 보고, 하다가 내 역량이 안 된다 싶으면 미련 없이 닥쳐야겠다.
시작은 한 장의 사진을 관찰하는 작업일 것이다. 사진을 찍는 작업은 내 문장에 세밀한 관찰력을 더해 주었다. 이제는 어떤 사진이든 앞에 두면 한참동안 그 사진에 대한 관찰기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무엇이든 쓰려면 쓰려는 내용이 있어야 할 것인데, 선택과 집중, 그리고 생략에 익숙한 평소의 시선과 생각은 글쓰기에 적당하지 않다. 막연한 시선과 생각이 붙잡지 못한 작은 틈들을 보게 하는 훈련으로서, 사진쓰기.는 제법 그럴 듯한 방법이 되어 줄 것이다. 사실은 예전부터 꼭 시켜보고 싶었는데 마침 실험대상이 생겼으니 잘 되었다. 해서 좋으면 되는 것이고, 혹시 기대한 결과가 안 나오면 제 복이다. 실험대상이라는 것이 뭐 그런 것을 어쩌겠나.
김훈과 박완서의 문장을 우선 준비해 두었다. 김용택의 시집도 챙겨 두었다. 아, 법정 스님의 수필집도 가져가기로 한다. 김훈과 박완서, 법정 스님은 모두 문장으로 자신들의 도.를 완성해가는 사람들인데 그 문장은 사뭇 다르다. 김훈은 자신의 문장을 한 자루 칼날 위에 세우고, 박완서는 모두 풀어서 텃밭에 널어두려고 한다. 그리고 법정 스님의 문장은 마침내 도달한 무소유의 그것이다. 아무 것도 갖지 않겠다는 문장들은, 그러나 아무 것도 갖지 않음.을 추구하는 단단한 의지들로 채워져 있다. 사람마다의 문장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고, 알려주는 내 문장과 배우는 그들의 문장도 다른 곳을 볼 것이다. 다만 자신의 문장을 향해 가기에 앞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바탕만을 나는 겨우 알려줄 수 있을 듯싶다.
새벽에 책상에 앉아서, 아니면 침대에 누워서 내 책의 원고를 만진다. 진도는 더디다. 수첩에 새로 메모한 것들도 끼워넣고, 앞뒤 문단을 잘라 여기저기 옮겨가며 적당한 자리들을 가늠하기도 한다. 무슨 틈이 이렇게나 많고 덕지덕지 붙은 수식은 또 이리 한가득인지. 이런 원고를 책이라고 냈으면 부끄러워서 나중에 어떻게 얼굴을 들었을까 싶다. 고은이의 충고대로, 기본 틀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내 이야기를 덧붙이지 않고, 다만 나의 상하이가 드러나도록 해야겠다. 물론 고치는 부분도 많을 것인데, 우선 읽는 사람에게 조금 더 친절하라는 조윤숙님의 충고는 많이 반영하기로 한다. 사진을 좀 더 넣어야 한다는 여러 사람의 충고도 듣기로 한다. 깊고 단단하게 디디는 걸음들 같은 문장을 이어야겠다. 역시나, 한 세대쯤 뒤에 어느 누구의 책장에 있어도 한 권의 책으로서, 문장으로서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목적지는 여전하다.
그나저나 진도는 참 안 나간다. 몇 줄 고치다가 또 침대에 배깔고 누워 이런 이야기나 끄적이고 있으니 더 할 말이 없다. 노트북 모니터에 반사된, 덜 마른 곱슬파마에 발바닥을 마주치며 노닥거리는 내 모습이 참 우습다.
2009.08.12 19:43
생선 두 마리가 집에 왔다. 흙을 굳혀서 만든 것도 같고, 돌을 갈아서 만든 것도 같은 생선은 굵은 마줄로 몸을 묶고 있다. 아래에는 투박한 종이 달려서 맑고 긴 소리가 난다. 책장에 걸어 두었다. 바람 불지 않는 내 방에서 풍경 소리가 울 때는 없겠지만, 이 좁은 방 안이라도 마음껏 헤엄쳐 주기를 바란다.
3년 전에 다녀왔던 양숴.에 다시 가서, 그 때 물고기 목판화를 샀던 그 집에 다시 가서 이번에는 물고기 조각품을 사 왔다. 3년 전에 내가 여기에 와서 저기 저 나무판이랑 비슷한 크기에 녹색으로 조각된 물고기를 사갔었노라고, 당신은 나를 기억하겠느냐고 물었다. 웃통을 벗고 물건을 포장하고 있던 사장은 물고기 두 마리를 싸게 내주었다.
제법 몇 달 된 편지에서, 이상은 세상의 치열함과 화해했다고 쓰고 있었다. 정확한 단어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그렇게 읽었다. 그리고 아마 서투른 답을 보냈던가. 이번 여행은 내게 작은 답을 주었다. 일행들과 일주일 가까이 속도를 맞추어 자전거 탔는데, 속도를 맞추는 일에 나는 알게 모르게 지쳤던 모양이다. 마지막 공항으로 가는 구간에서 나는 한 번도 뒤 돌아보지 않고 할 수 있는 최고 속도로 내달렸다. 숨은 차지 않았고 허벅지도 터지지 않았다. 힘은 들었는데, 후련했다. 이상, 나는 아마 치열함과 당장에 평화로운 방법으로 화해하지는 못 할 모양입니다. 나는, 내 치열함의 끝 간 데까지 뛰어가서 부딪쳐 깨어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내 방식의 화해가 될 것이라고, 이번 여행에서 겨우 나를 설득할 수 있었습니다.
미란이는 나보다 세 살이 어리다. 그런데 나보다 더 돈도 많이 벌고 세상 살아가는 일에 수월해 보인다. 나보다, 더 잘 하는 것 같다. 그 앞에서 어째 못 난 부분을 감추려 들고 가진 것에 헛기운만 세우려 드는 것 같은 나를 발견하고 나는 살짝 놀라고 당황했다. 내 지나온 날들이 제법 빈둥.이라는 단어로 요약되려는 요즘이다.
각오는 행동에 앞서는 것인데, 각오만으로 채워진 말들은 속이 빈 것들이다. 그래서 각오는 함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이제, 빛나 보겠다는 각오. 겨우 가진 것들을 힘껏 끌어모아서 방향성을 가진 길 위에 줄 맞춰 놓아보겠다는 각오.
조금 다른 길을 가도, 가려고 하는 곳은 다르지 않을 거라고 믿자. 그 끝에서 땀 닦으며, 쓰러지지 않고 기어이 잘 왔노라고 서로 토닥여 줄 날이 꼭 올 거라고 믿자. 벗들아.
2009.08.04 11:18
프로그램으로, 특정 사이트(사실은 무작위 사이트)에 스팸성 게시물을 올리거나 스팸성 댓글을 달게 하는 시스템이 있다. 스팸봇.이라고 부른다. 내 사이트는 아포리즘.을 제외하면 다른 곳은 글쓰기 기능 자체가 없고, 아포리즘 게시판의 경우도 글을 쓰는 것은 오로지 나만 가능하니까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는데, 스팸봇은 댓글에 침투했다. 특정 게시물에 수 백 개씩 달리는 스팸 댓글을 더 두고 볼 수 없다. 하나 하나 지우는 것도 못 할 짓이고, 그렇다고 스팸 댓글이 달린 게시물을 삭제해 버리자니 써 둔 문장이 아깝다.
제로보드 사이트를 둘러보니 같은 문제로 많은 사람들이 고민했고, 스팸봇을 방지하는 방법도 나와 있다. php파일들을 열어서 직접 테그를 수정해야 하는 것들이라 좀 막막하긴 하다만, 해야겠다. 사이트 작업할 때마다 조금씩 보게 되는 php 파일들은 한 번 만져두면 좀처럼 손 댈 일이 없어서 한참 만에야 다시 보게 되고, 그래서 볼 때마다 새 것 같고 도대체 어디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시키는 대로 찬찬히 따라해 보아야겠다.
2007년 7월에 쓴 글에는 도저히 수습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스팸댓글이 달려서 결국 게시물 자체를 삭제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온 지난 글을 여기에 둔다.
그 때는, 외할아버니께서 아직 살아 계시던 무렵이었구나. 나를 세상과 잇는, 나를 비롯하게 한 끈이 하나 더 있던 무렵이구나. 이제, 나를 비롯하게 한 끈보다 나로부터 비롯하는 끈들이 하나씩 더 많아지는 나이가 되었다. 한 걸음 디딜 때마다 잘 살피고, 단단하게 걸어야 한다. 뒷 사람에게는 길이 된다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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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은 헐겁게 슬프다. 감당할 수 없는 사람, 감당할 수 없는 시간, 책임 따위들을 하나씩 내려놓을 때마다 마음은 헐거운 슬픔과 마주치는데, 애정이나 소유욕이 집착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머리는 알아도 마음은 아직 받아들이지 못 해서 슬프다. 놓여나는 것들을 보는 마음이 슬프고 마음이 슬프다는 사실 때문에 다시 슬프다. 손아귀에서 손가락 하나씩 힘 빠질 때, 내 의지로 힘 빼면서 큰 흐름 속에서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스스로 다독일 때 마음이 아릿한 것이다.
문장에 있어서 나는 아마추어다. 아마추어와 프로패서널의 차이는 작업을 통한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느냐의 여부다. 프로패셔널의 기준은 고객인데, 설사 스스로의 마음에 들지 않는 작업이라고 해도 고객이 주문하면 수행해야 하고, 원하지 않는 결과물이라도 고객이 원하면 이름 석 자를 걸어 내보내야 한다. 그에 비해 아마추어는 철저히 자기만족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어서, 목적의 끝에는 언제나 스스로의 만족이 있다. 작은 용돈벌이를 제외한다면 나는 철저히 내 마음에 따라 글을 쓰고 내 만족을 위해 문장을 완성하니까, 나는 문장에 있어서 분명한 아마추어다. 내가 사진쟁이인지 글쟁이인지 생각했다.
서점에 왔다.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바닥에 앉아 책 읽는다. 전에 없이 머리가 아파서. 견디기 힘들어 나도 바닥에 주저앉았다. 글쓰기 책 한 권과 백석 시집 한 권만 겨우 골랐다. 화려하게 포장한 책들이 어서 나 좀 들여다보라고, 장바구니에 나 좀 담아가라고 벽 바닥 천장 가릴 것 없이 가득 차서 소리지른다. 눈이 따끔거리고 속은 울렁거리는데, 내가 책을 쓰면 또 누군가의 눈을 따끔거리게 하고 속을 흔들어 댈 것은 아닌지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다. 어서 서점에서 나가야겠다.
외할아버지는 요양원에 계신다.
하이고오~.
허~.
거 참~.
네가~.
한참동안 겨우 몇 개의 단어가 호흡의 간격과 높낮이를 바꾸어 반복되며 조금씩 다른 감정의 진폭을 전했다. 삶의 이유를, 존재마다가 존재하는 이유를 나는 죽을 때까지 알지 못 할 것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할아버지는 전에 없이 내 손을 잡으시고, 내 눈을 보셨다. 나는 그 앞에서
“할아버지, 저 잘 지내요. 젊을 때 고생하는 거죠.” 말했다. 할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답이 무엇인지, 사실 하이고.와 허어.로 이어지는 할아버지의 물음을 내가 제대로 읽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문장이 나와 맞지 않을 줄 어찌 알았나. 실체 없이 허물어져 내리는 문장을 나는 쓰지 않으려고 한다. 끝끝내 닿지 못 할 목적지를 향하는 길 위를 간절하게 걸음으로 잇대어 걸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문장은 그 걸음 사이의 결기를 담아 단단해야 하고 분명한 실체를 가져야 한다.
어머니는 꼬질한 아들 신발을 씻어주지 못 해 마음에 걸린다고 하셨다. 겨우 이틀 집에 머물고 가는, 신발 씻어 말릴 시간도 없는 아들의 신발을 때 묻는 그대로 보내서 마음에 걸린다고 하셨다. 내 첫 책의 첫 페이지는 ‘아버지의 둥근 배와 어머니의 주름진 손 앞에’ 이렇게 시작할 것이다.
어제 은경 누나네에서 얻어먹은 음식이 잘 못 된 것인지, 먹고 바로 소파에 구겨져서 잠든 것이 잘 못 된 것인지 내내 아팠다. 부러 거한 밥상을 차려 주었는데 잘 먹고 아파서 아프면서 미안했다. 머리가 깨질 듯하고 속은 울렁거려서 움직일 수 없었다. 아침까지 넘기기로 한 사진들이 있어서 새벽에 일어나 겨우 작업해서 넘기고 다시 누웠다. 다행스럽게 오후 촬영이 연기되어서 종일 죽은 듯 누워 있을 수 있었다. 소화제를 먹고 억지로 토했는데 위액과 침을 섞은 몇 방울이 겨우 나왔다. 다 저녁 때 나가서 과일 약간과 군것질 거리 조금을 사 왔다. 밥을 먹으면 속이 부대낄 것 같았다. 하루를 통째 누워 보내고 나니 조금 나아진 것을 알겠다. 이런 날은 생각하는데, 소박하게 살아도 좋을 것이다. 분주하게 일을 만들고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살아있음의 증거처럼 믿는 삶이 꼭 아름다운 것은 아닐 테다. 믿고 기댈 사람 하나 없는 외국에서 혼자 작업실 소파 위에 종일 누워 신음하고 있으면 내가 뭘 이루겠다고 이렇게 지내고 있나 싶기도 하다. 물론 이런 생각은 잠깐 하고 만다.
2009.08.02 13:56
“나 한 권 사 줘, 책.”
“안 돼 오늘. 돈 너무 많이 썼어.”
제법 배가 나온 중년의 아저씨였다. 막 녹아내리기 시작하는 바닐라콘 아이스크림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이 책 저 책 뒤적이면서 말했다. 마땅히 사고 싶은 한 권이 있다기보다는 그저 이 코너에서 한 권쯤 사고 싶은 눈치였다. 아내는 밉지 않게 구박했다. 말을 마친 아내는 이미 자리를 떠났는데, 남자는 여전히 남은 미련을 어쩌지 못 해서 한참 동안이나 책 앞을 떠나지 못 했다.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콘을 수습하며. 아, 기분이 좋아지는 풍경.
“이렇게 하니까 책 사기 편하지?”
“응, 근데 아빠는 이 것 밖에 없어?”
“응”
“에게 에게”
푸른 원피스를 입은 꼬마는 종종 걸음으로 아빠 뒤를 따라간다. 앞서가는 아빠와 딸을 바라보는 엄마는 편안해 보인다.
일 년에 두어 번 한국 다녀올 때마다 서점에 들러 필요한 책들을 한꺼번에 사 온다. 돌아오는 짐중에 언제나 가장 큰 짐은 책뭉치다. 이번에는 다른 때보다 좀 많이 샀다. 하고 있는 스터디들에 필요한 책들이 대부분이고, 소개받은 철학 소개서적들도 제법 있다. 읽어야 하는 책들을 고르고 나면 다음은 읽고 싶은 책을 고를 차례다. 6개월에 한 번씩 서점에 갈 때마다 읽고 싶은 책의 주제가 변하는 요 몇 년이다. 이번에는 클래식이다.
서점에서 책 보는 여자는 아름다워 보인다. 같은 사람을 길거리에서 보았다거나 다른 여타 모임에서 만난다면 저렇게 아름답지 않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한다. 서가에 서서 책을 고르는 여자나 바닥에 편하게 앉아 책을 읽는 여자들이 모두 예뻐 보인다. 꾸미지 않고 집중한 그 표정과 시선이 아름답다.
노무현 대통령을 기억하려는, 그 뜻을 이으려는 책들이 여러 권 나와 있었다. 한 권쯤 사려고 이것 저것 들추어보았는데 너무 많아서 고르기 어려웠다. 그래서 대신 유시민의 책 한 권을 샀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를 추억하고 감상에 젖는 것보다는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시집을 사지 않는 것은 미안하고 위태로운 일이다. 시에 가장 열심이었던 때는 대학 무렵이었던것 같은데, 중국에 온 이후에도 한 동안은 서점 갈 때마다 시집 코너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마음이 점점 바빠지면서, 차근차근 시집을 읽어보고 고를 시간이 없어서 이제 시집 사기 어려워 진다. 시집 코너의 전면을 채우고 있는 시집이란 것들이 가볍고 말초적이고 대충 팔릴 만한 것들이 대부분이라서 좋은 시집을 찾기는 더 수고스러운 일이 되었다. 기형도의 시가 한 시대를 이끌었고 여전히 빛나는 시이기는 하지만, 그 시집이 지금도 시집 가판대의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 과연 맞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한 권 한 권 뒤져가며 차근차근 읽어가며 내게 맞는 시집을 고르는 일은 이제 마음이 바빠서 잘 안 된다. 좋은 새 시인을 소개받을 수 있는 통로도 없으니 좀처럼 다시 가까워질 수 있을지 모르게 되었다.
한국에 있는 동안 내 원고에 퇴짜를 놓는 출판사의 메일을 또 한 통 받았다. 처음이 충격적이었지, 이제 그러려니 한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출판사들의 의도대로 수정하고 수정하는 사이 내가 바라는 책이 점점 기존 여행에세이 책들과 아무런 차이도 없이 닮아간다는 부분이었다. 고은이는 마침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충고를 해주었는데, 그렇게까지 하지 말라고 했다. 고집스러운 내 책을 쓰라고 했다. 듣기에 좋았다.
2009.07.18 10:01
며칠이나 지났나.
재미나게 일하고, 좋은 사람들도 만났다. 새로 들은 노브레인 노래들이 참 마음에 들어서 청소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런 노래들이라면, 아침 시간에 에어컨 온도를 낮추고 청소기 윙윙 돌리면서 들어야 딱.이다.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아침 내내 음악을 제법 시끄러울 만큼 틀고 청소했다. 주말 아침인데 옆집은 좀 짜증이 났겠다. 미안하다. 그래도 줄일 생각은 없다. 청소라고 해보아야 진공청소기 한 번 휭 휘돌리면 끝나는 일이다. 그래서 청소기가 닿지 않는 집안의 구석구석에는 짧게는 몇 달 길게는 해를 넘긴 먼지들이 수북하다. 절대로 짧은 내공으로는 만들 수 없는 먼지의 지층이다. 책장을 살펴보면 가끔이라도 손이 가는 책들과 좀처럼 보지 않는 책들은 그 앞에 쌓인 먼지로 알아차릴 수 있다. 움직이지 않는 장비며 장식장 위에도 먼지들은 저들만의 지층을 쌓고 있다. 이제는 아주 친근하고 어째 오래된 친구 보는 것도 같다.
net의 지층에 대해 생각하고 혼자 감탄하며 연습장 틈에 적어둔 것이 며칠 되었다. 역사.라고 이름 붙이면 어쩐지 불손해 보이는, 자연의 시간에서 사건은 지층으로 남는다. 지구의 나이가 40억 년 좀 더 된다고 했던가? 그 시간이 오롯이 층층으로 남아 있다. 자칫 수직의 선형성으로 읽을 수 있겠지만, 지층은 내게 여전히 순환의 고리 안에 있는 어떤 것이다. 자, 이제 재밌는 부분이 나오는데,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저변을 확대한 것이 내가 막 신입생이 되던 98년을 전후한 시기였다. 색깔 있는 사람들은 그 때쯤 개인 홈페이지도 만들었을 것이다. 이후에 싸이월드 등의 포털 제공 개인 공간을 거쳐 현재는 블로그가 대세다. 트위터라는 인스턴트 공간은 딱 게으르기 좋아 보인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온갖 개인 웹 공간에 사건에 대한 반응이 남는다. 예를 들어 노무현 대통령의 투신과 그 이후 생겨난 일련의 사태에 대한 반응은 대한민국 웹人들의 거의 모든 웹공간에 어떤 형태로든 흔적이 남아있다. 한 시대적 사건이 쌓아둔 넷의 지층이다. 이런 유쾌한 사태라니. 그 지층들을 조합해 보는 것은 참 재밌는 시도가 될 듯하다. 뭐 내 전공분야도 아니고 당장 어떻게 쓰일 것 같지도 않지만, 사진이든 글이든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게 된다면 재미있는 소재로 사용해 볼 만하다. 이런 아이디어가 튀어 나올 때는 가끔 내가 기특하다.
정면승부. 요즘 웅얼거리며 혹시나 모를 삐딱선으로부터 나를 설득하는 말. 호구를 쓰고 죽도를 들고 마주 서면, 도저히 내가 상대가 안 되는 사람들이 많다. 틈은 보이지 않아서 공격할 방법이 없는데, 어느새 상대의 칼은 내 머리를 치고 있다. 하다가 하다가 안 되면 슬쩍 열받아서 칼을 치켜 든다. 상단.이다. 상단은 절대로 물러서는 마음이 없어야 하는, 배수진의 마음이어야 한다고 들었다. 여전히 상대는 틈이 안 보이고, 조금씩 조금씩 그대의 공격 거리 안으로 나를 잡아 넣는데. 아, 여전히 나는 방법을 모르는데. 언제나 맞는 건 순간이다.
차근차근 배우고 익혀서 이제 겨우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행동으로 나오려고 하는 내 정면승부는 내가 얻은 귀한 힘이라고, 믿고 싶다. 상황 앞에서, 상대 앞에서, 두려움 앞에서, 모호함 앞에서 물러나지 말기.
좀처럼 안 적는 얕은 감정의 문장들을 적어두는 것은, 등 뒤에서 노브레인이 아침 내내 시끄럽게 떠들고 있기 때문. 이런 음악 속에서 생각이 정리 따위가 될 수는 없구나. 그래도 참 기분 좋은 음악. 청소도 끝났는데.
2009.07.09 19:24
앞길 막지 마라.
봐 주라.
상하이에 처음 온 여행객처럼 걸어 보겠노라는 아침의 각오대로 되지는 않았다. 날은 더웠고, 내 발걸음은 볼 것 없는 곳을 알아서 피해갔고 눈은 개중에 있을 아직 보지 못한 것들만 찾았다. 읽겠다고 들고 나온 두꺼운 책과, 돌려받은 얇은 책 두어 권이 무겁다. 처음 읽은 김연수의 단편소설은 기대 만하지 못 했다. 소설이 대단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모르겠고, 다만 기대만큼 나와 맞지 않았다. 기대는 잔뜩 했었다.
수첩에는 반 접은 A4 용지가 몇 뭉텅이 끼워져 있다. 며칠 되었다. 사실 몇 달 된 것도 있고, 몇 년 된 것도 있다. 미룬, 미루어진 일들이다.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오늘 해야 하는 일들이 많고, 한국 다니러 가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상하이에 머무는 동안 해야 할 일들이 많고, 젊어서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살아서 해야 하는 일들이, 참 많다.
새로 사고 싶은 씨디플레이어에 눈 돌아간 것이 며칠 되었다. 스피커도 욕심이 나고 선재도 바꾸고 싶지만 괜한 욕심이다 싶어 다독이고 다독이는데, 이번 씨디피에는 당했다. 스피커와 앰프를 사고 씨디피는 승우 형이 빌려주신 이상한 녀석을 붙여 쓴 지 1년이 넘었다. 오디오 전용 씨디피가 아니라 디제이용 씨디피라서 음질이랄 것이 없다. 앰프고 스피커고 부산을 떨어봐야 소용이 없는 셈이다. 액정이 고장나서 도대체 지금 내가 듣는 음악이 몇 번째 트랙인지 파악도 안 된다. 무엇보다 리모컨이 없어서 때마다 가서 재생 버튼을 다시 눌러야 하고 전화라도 오면 얼른 가서 앰프 볼륨을 줄여야 한다. 이만하면 바꿔야 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은가? 새로 들일 녀석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음색은 모르쇠.다. 어차피 만만한 가격대에서 내 막귀 앞에 음질은 그 놈이 그 놈일 것이고, 마음 가는 대로 지르련다. 지름신께서 점지하셨으니 미약한 내 힘으로 어찌 버틸까. 뜻대로 따르리다. 뭐 잔고가 넉넉한 것은 아니지만 당장 돈 나갈 곳도 없고 조금이나마 더 들어올 돈도 있으니 슬쩍 못 이기고 말자. 딱 이번만. 알고도 속는 거짓말이란.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전축이 있었다. 절대 전축이 있을 만한 집안 상황이 아니었는데, 제법 큼지막한 스피커에 프리앰프, 파워앰프, 턴테이블, 카셋플레이어까지 세트로 구성된 인켈 전축이었다. 그 때는 비슷비슷하게 생긴 쇳덩이들이 무엇인지 알 리 없었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런 것들이다. 아마, 젊은 부모님의 거창한 사치였을 것이다. 가난했지만, 그래도 처음 시작하는 때쯤에 한 번쯤 부려보는 호기 같은 것이었을까. 아마. (내가 오디오를 산 것은 결코 우뚝한 우연이 아닌 셈이다. 피가 어디 가겠는가.) 아이 있는 집의 전축들은 대충 비슷한 운명을 겪는다. 스피커 그릴은 찢어진다. 턴테이블의 카셋트 핀은 부러지고, 우퍼는 찌그러져야 한다. 그래서, 내 기억에 전축은 다만 그 거대한 형태로만 남아 있다. 소리가 없는.
지금은 창고처럼 되어버린 고향집 작은 방에는 10년쯤 된 미니컴포넌트가 있다. 고등학생일 때 구구절절한 편지를 써서 조르고 졸라 산 것이다. 무슨 핑계를 대었더라? 아마 교육방송을 듣는다고 했었던가? 기억도 안 난다. 다만 별 필요도 못 느껴 안 사주시던 것을 어버이날이던가? 편지 몇 장으로 끝내 얻어내었다는 기억만 있다. 몇 장의 씨디를 사고는, 아마 시시해져버렸던가. 라디오를 열심히 들었던 기억.
이번에 가면 컴포넌트를 꺼내 안방에다 설치해 드려야겠다. 그리고 다운받아 둔 수 백 곡의 포크가요를 구워다 드려야겠다. 어머니께서 참 좋아하시겠다. 아버지께는 사진 교본을 가져다 드려야겠다. 옆에서 가르쳐 드리면 좋겠지만 차근차근 배우는 걸 달가워하지 않으시는 데다가 시간도 마땅찮으니 얇은 책 두 권이라도 드려야겠다. 촬영하고 받은, 꼭 주먹들이 들고 다니는 것 같은 나름 명품이라는 일수가방은 매형 드리면 되겠다. 음, 누나한테는 마땅히 줄 게 없구나. 조카들 신발 사다 주고 사진 찍어주면서 넘겨야겠다.
멀지 않은 때에, 한국에 몇 년쯤 살았으면 좋겠다 싶다. 계속 있을 수는 없겠지만, 상하이의 시간이 끝나고 그 다음의 한 판을 시작하기 전에 몇 년이라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부모님 곁에서. 아버지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전국 여행을 다니고 싶다. 어머니께 컴퓨터를 가르쳐 드리고 싶다. 내게 낚시를 가르쳐주셨던 그 때처럼, 아버지께 사진을 가르쳐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어머니 텃밭에 가서 일하시는 동안 말동무가 되면 좋겠다. 나는 아직 이룬 것이 없어서 못 간다. 그리고 작은 것들부터 하나 둘씩 이루게 되면 그 이룬 것들에 등 떠밀려 또 못 갈 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잘 설득하고 다독여서, 더 늦기 전에 두 분께 몇 년의 시간만이라도 돌려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자식들 키우느라 접으신 아버지의 사진을 돌려드리고, 한 때는 고왔다는 어머니 노래를 들려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하루가 게을렀던 저녁에 마음은 더 조급해진다.
2009.07.06 19:01
악몽쯤 되는 것들이다. 생전 꾸지 않는 꿈들을 꾸었다. 이틀 전에는 밀린 일들에 떠밀려 떨어지는 꿈이었다. 지지부진한 책 기획서 문제와, 계약에 앞서 보내야 하는 촬영계획서 문제가 마음에 걸렸는데 그 부담이 생각보다 컷던 모양이다. 꿈 속에서 나는 몇 개 일에 동시에 쫓겼는데 결국 못 해냈고, 결말은 잊었다. 일어나서, 얼마나 마음이 답답하면 이런 꿈까지 꾸나 싶었다. 어제는 다른 일 때문에, 오늘은 또 다른 일 때문에 진도는 여전히 거기에 있고, 내일도 다른 일이 있다. 오늘 밤에는 좀 해야지 해야지 하는데, 가 봐야 아는 것이다.
오늘 낮잠 자는 동안에는 동생과 함께 큰 배를 타고 휴양지 섬으로 놀러가는 꿈을 꾸었다. 배는 목적지 거의 다 와서 풍랑을 만났다. 아, 이 싱싱한 꿈의 결말은 그냥 잊을란다. 섬은 휴양지 뒷편으로 현지 주민들의 낡은 거주지역이 있었다. 수영장에는 물이 겨우 몇 십 센티미터 밖에 없어서 수영할 수 없었는데, 수도 꼭지를 틀어서 물을 받아도 수도 꼭지는 자꾸만 잠겨서 수영장에는 물이 차지 않았다.
어제는 함께 영어공부를 시작한 사람들과 앉아서 여행가자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는 덤덤했다. 여행 좋아하던 내가 왜 덤덤했을까. 덤덤한 중에 궁금했다. 제대로 기억에 남는 여행이라고 간 것이 제법 오래 되었다. 여행은, 새로운 것을 보는 것도 좋겠지만 마음의 자세를 바꾸는 일인 듯도 싶다. 낯선 곳에 가는 것도 맞겠지만 내 마음이 낯설어지는 곳에 가는 것도 맞는 듯싶다. 찬.이는 여행했던 곳 중에 어디가 가장 좋았었냐고 물었는데, 나는 대답하지 못 했다. 돌아보면, 모든 여행의 기억이란 것이 아름다운 것만 남았다.
2009.07.01 21:42
약속과 약속 사이에서 공중에 뜬 큰 덩어리 시간에,
마침 읽어야 할 책도 제법 있고,
밖에는 비가 좀처럼 그칠 것 같지 않고,
어쩌겠어. 검은 물 한 잔 값이 아깝긴 해도.
2009.06.25 21:12
베토벤
마침내 하루가 갔다. 늦게 일어났다. 밀린 잠이고 풀린 긴장이었다. 종일 컴퓨터 앞에서 떠나지 못 하다가 저녁 먹고 겨우 일어났다. 요즘은 밥 먹고 곧장 작업을 이어가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소화가 잘 안 된다. 덕분에 맛을 들인 저녁 산책은 새로운 즐거움이다. 저녁 먹고 앰프를 켜서 예열해 두고 나간다. 지갑도 없이 전화기랑 열쇠, 그리고 동전 몇 개 집어서 간다. 근처 마트까지 저녁 바람 맞으며 건들거리며 걸어가서 내키는 음료수 한 병을 사서 갔던 길을 느리게 걸어 돌아온다. 강변길에는 저녁 바람이 좋다. 오늘은 콜라다. 일 많이 한 날은, 더구나 몇 개 일이 엉켜서 전화연락들까지 겹치는 날에는 콜라 만한 것도 없다. 몸에 해로워? 까짓 것.
와인병처럼 콜라병을 떨굴 듯 쥐고, 뭘 들을까 하다가 대충 앞에 놓인 베토벤 교향곡을 듣는다. 불은 다 끄는 것이 좋다. 그래야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서 그나마 앞이 무대 비슷해 진다. 들어도 들어도 나는 그 멜로디가 그 멜로디 같고, 앨범을 통째로 걸어 놓으니 도대체 이 녀석의 제목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마침 음악하는 사람을 알게 되어서, 작곡을 가르쳐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작곡이 배우고 싶었다기 보다는, 화성이며 대위법이며 하는 것들을 좀 배우면 멜로디라는 것도 조금 친근해지고 그러면 도대체 계통 없어 보이는 이 고전음악들을 조금 더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배워본 적이 있냐고 묻더라. 아니요. 다룰 줄 아는 악기는 있냐고 묻더라. 아니요. 그 눈에 드러나는 가망성 없음.의 의사는 선명했더라. 그래도, 가사에 지치는 날들도 있잖은가. 언제 들어도 새 것 같은 클래식은 그래서 언제나 신선하다. 옆 집 눈치보는 소심한 마음을 곱게 접어서 마음 구석 눈이 닿지 않는 곳에 쳐박아두고 볼륨은 크게 튼다. 그래야 음악 속에 온전히 잠길 수 있다. 듣다 보면 스피커도 더 좋은 걸로 장만하고 싶고 앰프도 바꾸면 음악이 더 좋아질 것 같은 생각을 잠시 하지만, 잠시 하고 만다. 이백오십 만원은 아직 기억 전면에 있다.
준비했던 발제는 끝났다. 미학 스터디 발제는 서양미학의 역사에 대한 개관이었고, 발터 벤야민 발제는 나답지 않게 일주일을 머리 싸매고 덤볐는데 결국에는 용 머리에 뱀 꼬리를 이어 붙였다. 애초 감당하기에 벅찬 깊이고 분량이었다. ‘몽타주’라는 한 단어에 담기에 몽타주는 너무 아까운 기법이다. 이미지적 몽타주 기법을 문장에 도입시킨 것을 나는 임의로 “이미지를 선언하는 문장”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더 공부해보고 싶은 부분이다. 벤야민은 모더니티의 신화성을 지적하고 그에 대한 반성을 시도한 것인데,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모더니티에 대한 반성을 주장하는 벤야민 또한 외관을 바꾼 새로운 모더니티의 형식을 창조한 것은 아닐까. 벤야민은 궁극적 목적지를 설정하는 부분에 있어서 극도의 신중함을 보이지만, 유토피아에 대한 잠재적인 긍정까지 숨기지는 못 한다. 그래, 나아가 닿을 곳을 긍정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할 수는 없지 않나. 당신 탓 아니다. 알레고리.는 몽타주와 떼어 생각할 수 없다. 몽타주를 구성하는 이미지의 조각들은 그 자체가 알레고리적인 성격을 가지며 존재의 본질을 일체의 매개없이 드러낸다. 동시대에 누구도 인식하지 못 했던 현실의 이면을 포착하기 위해서, 벤야민은 얼마나 민감한 더듬이를 갖고 있었던 것일까? 그 민감함은 놀라운 통찰력으로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읽기.를 제안했는데, 결국 벤야민은 그 민감한 더듬이를 감당하지 못 하고 자살했다. 달랐기 때문에 보였고, 달랐기 때문에 죽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수잔 손탁은 벤야민의 이런 측면을 토성의 영향을 받은 우울.이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처음 읽을 때는 억지스러워 보였는데, 벤야민의 철학에 있어서 우울.의 역할은 커 보인다. 괜히 수잔 손탁이 아니다. 현실에 대한 벤야민의 인식은 논리적 사고 끝에 결론을 이끌어 내는 학자의 그것이라기보다는 어떤 영감과 찰나적 전환에 의지하는 예술가의 인식과 닮아있다. 하여튼, 예술하는 것들이란.
상아탑의 학자로서 자리 잡으려던 벤야민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 했다. 바로크 시대의 알레고리를 비판한 그의 논문은 퇴짜맞았다. 너무 어려워서. 그리고 공산주의가 청년기에 접어든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서 벤야민은 재야 좌파학자의 길을 택했다. 그에게 영감을 준 뮤즈, 라시스의 영향으로, 벤야민은 그의 학문이 조금 더 현실 세계에 기여하기를 바랬고, 자신의 학문적 성과로 세상이 조금 더 나은 곳이 되기를 바랬다. 죽음 앞에까지 껴안고 갔으면서 끝내 완성하지 못 하고 남은 그의 마지막 원고 파사젠베르크.는 그 시도의 미완성 결과물이다. 남은 자들은 그 시도의 위대함만을 겨우 찬양한다.
어제 안철수씨가 나오는 무릎팍 도사.를 보았는데, 그 마음 씀씀이가 참 예뻤다. 잘 나가던 CEO 자리를 포기하고 다시 학생이 되기로 결심했을 때, 하나의 회사보다 세상에 기여할 방법을 찾고 싶었다는 그의 말은 듣기에 기분 좋았다.
나는, 어떻게 이 세상에 기여할 수 있을까? 나를 온전히 버려서 낮은 곳에 어렵게 있는 사람들을 도우러 갈 수 있겠지만, 그런 극단적인 형태의 기여가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로 내가 태어나고 나를 길러준 이 세상에 내가 받은 것들을 돌려줄 수 있을까?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으라고 태어난 세상은 아닐 테니까, 내가 태어난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
나는 왜 직업으로서의 일거리들을 밀어두고 돈도 안 되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스터디에 열올리는 것일까? 지적 허영일까? 무엇이라도 증명하려는 것일까? 나중에 돈 벌 준비일까? 삶이 도대체 물음표여서일까? 이 배움으로 나는 어떻게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
사진 찍는 일보다 글쓰는 일이 더 좋은 이유는, 우선 펜이 카메라보다 가볍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습장 위에 글자 한 자 한 자 적을 때의 내가, 피사체를 앞에 두고 카메라로 겨누고 구도를 잡을 때보다 훨씬 평화롭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글 쓸 때의 마음처럼 사진 찍는 일이 잘 안 된다. 영원히 안 될 수 있다. 사진은 내게 공간의 호흡을 포착하는 사냥.인 듯하고, 공간과 나 사이의 겨룸.인 듯하다. 전투적일 수 밖에 없지 않나. 문장 같은 사진을 찍는 연습을 해야겠다. 하루 하루 연습장에 또박또박 글씨 적어내려가듯이, 단정하고 소소한 사진들을 찍도록 연습해야겠다. 내 문장도 하룻밤 사이에 된 것은 아니지 않나. 하다 보면 닿는 날이 오겠지. 닿는 날이 못 오더라도 틀리지 않았다는 소식이라도 오겠지.
2009.06.21 22:18
이틀을 시험 앞둔 학생처럼 살았다. 몇 권의 책을 읽고 발제문의 개요를 잡았다. 이왕 하기로 한 기운을 몰아서 그 동안 못 다한 다른 일들까지 모두 꺼내놓으니 책상은 난장이고 마음은 비장하다. 오후에 영어를 가르치는 친구 찬.에게 연락이 와서 간단한 스터디가 있으니 와 보지 않겠냐고 했다. 책상 위에 쌓인 일거리들을 가늠한 후에, 우선 가 보기로 했다. 할까 말까 망설이는 순간에, 뭐든 해보는 것이 낫다는 믿음은 이제 내게 진리다.
다들 재밌게 열심히 했다. 피아노를 가르친다는 두 친구는 내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새로운 캐릭터였는데, 시간을 허송할 수 없다는 말은 단단해 보였다. 아직 어린 친구들이 삶에 대한 각오를 드러낼 때, 나는 깜짝 놀란다. 잠시면 끝나고 해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와 다시 일 앞에 앉겠다는 다짐은 희망사항에 그쳤다.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공부 마치고 나오니 밖은 어두웠다.
돌아와 컴퓨터 켜니 성공회대에서 있었다는 노무현 대통령 추모콘서트 기사가 뜬다. 콘서트 제목은 '다시, 바람이 분다.'였다고 한다. 콘서트에서 신해철은 삭발하고 나와서 울었다고 한다. "대통령을 죽인 죄인이라서 문상도 못 했다. 담배 한 대 올리지 못 했지만, 할 줄 아는 것은 노래 뿐이니 노래로 추모한다."며 몇 곡의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가 불렀다는 곡들을 찾아서 틀어둔다. 울어준 그대들이 참 고마웠다.
이미 마감 지난, 그래서 도저히 더 미룰 수 없는 일이 몇 개. 그리고 내일이 마감인 일이 몇 개. 며칠 남긴 했는데 분량이 많아서 도저히 벼락치기가 안 되는 일이 몇 개. 그러니까, 잠시 다녀와서 얼른 마저 일 할 생각이었는데.
일찍 자기는 걸렀다.
2009.06.16 21:41
어느, 잊은 듯 오래된 사이트의 글 몇 줄을 읽다가 생각합니다. 나는, 건방지게 던지듯 문장의 마침표들을 내려놓지는 않았던가. 문장 끝에 힘 좀 붙었다고 뜻만으로 휘둘러대지는 않았나. 아직 한참 어린 것이 시건방을 떨지는 않았나.
조금 더 겸손하게요. 모든 사람을 대하는 문장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게, 모든 존재하는 것들 앞에서 그 존재하는 이유를 곱씹으면서 설사 내가 미루어 알 수 없는 이유라도 명백하게 있을 테니까, 한 없이 작은 모습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 앞에서 낮은 문장을 써야겠지요.
말 많으면, 좋을 일 하나 없습니다.
2009.06.16 07:15
간밤에 꿈 꾸었다. 사진찍는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갔다. 강변이었고, 아시아적인 풍경과 유럽적인 풍경이 섞여 있었다. 강변은 어릴 때 놀던 그 강변이었다. 새벽에 깔끔한 기분으로 깨어서 사람들 불러 아침 산책을 갔다. 강변 둑길에는 새벽 일터로 나온 시골 사람들이 있었고, 맴버 두어 명은 먼저 나와서 새벽길을 걷고 있었다. 나는 노랗게 펼친 강아지풀을 찍었고, 낮게 강물도 찍었다. 더 걸어서 큰 호수변에 있는 오래된 마을로 들어섰는데, 온갖 원색의 천들이 새벽 빛에 제 빛깔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마 운남에서 보았던 풍경들이 꿈에 겹쳐졌던 모양이다. 빛은 맑았고 공기는 투명하고 가벼웠고 경쾌했다. 함께 간 맴버들도 말 없이 다들 든든했다. 나는 신나서, 제법 느낌이 좋은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마을을 벗어나자 관광객들이 많은 호수였다. 아마 마을은 호수에 면해 있었던 모양이다. 풍경은 나른하고 아름다웠다.
모처럼 단잠을 잤다.
2009.06.15 21:25
일찍 잘랬더니 어림 없겠다.
엄청 클 것 같던 계약건은 재차 확인하는 과정에서 실제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처음 일을 연결시켜준 로즈.는 예상 외로 줄어든 규모 때문에 괜히 미안해했다. 됐다. 일단 계약서에 도장 찍고나면, 가격과 사진찍는 자세는 큰 상관관계가 없다. 십 만 원짜리 사진을 찍을 때나 백 만 원짜리 사진을 찍을 때나 내 마음가짐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뭐 다르기는 한데, 작다. 다만 부담감의 크기가 가격과 정비례 관계에 있을 뿐.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위해서는 영문 소개서라는 난관이 아직 남아있지만, 뭐 규모가 줄었으니 행여 못 잡더라도 덜 아쉽겠다. 그나저나, 이 밤에 어디서 영문 자문 구할 곳도 없는데, 더구나 별 내용도 없는 영문소개서를 어째 만들어내나.
사이 좋게 양쪽 발바닥에 커다랗게 한 개씩 싱싱한 살색 구멍이 생겼다. 이 곳 대학동아리에 껴서 검도를 했었는데, 방학이라고 안 한댄다. 몇 명이 남아 있었는지 마침 오늘 하루 운동이나 하자고 연락이 와서 냉큼 갔다. 예상했던 대로, 몇 주 쉬었더니 칼은 몇 배로 무거웠다. 그래도 한 판 신나게 놀았다. 무리해서 노는 동안 팔에는 길게 멍이 들었고 발바닥은 물집이 잡혀서 또 며칠 걷는 게 일이겠다. 그래도, 오늘은 제법 때리기도 했다. 방학 동안에는 조금 더 먼 곳에 있다는 상설 도장에 다녀야겠다. 돈 좀 비싸다던데. 오고 가기 멀다던데. 그래도 몇 년만에 다시 시작한 검도니까, 이제 가능하면 멈추지 않도록 해야겠다.
사진으로 만나서 스터디를 통해 더 알게 된 성현 형에게서 요즘 많이 배운다. 몇 년 동안 길을 못 찾았던 공부에 대한 갈증이 조금은 덜어져서 좋다. 어제는 스터디 자료 받으러 간 길에 내 책에 대해 여러 조언도 듣고 참고할 수 있는 책도 몇 권 빌려왔다. 형의 방에 책들은 겹겹이 쌓여 있었는데, 보기에 좋았고 세상에 읽어야 될 책이 참 많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취미 삼아 하는 공부는 이렇게 재미있는데, 나중에 직업으로 공부하는 때가 오면 그 때는 공부가 나를 덮치고 목 조를까? 지금 사진이 그런 것처럼.
그래도, 가 보면 참 좋은 곳이 많다. 안 가고 편히 살기 보다는, 가서 신나게 살아야겠다는 믿음은 한 번도 흔들린 적 없고, 그 시도들은 한 번도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2009.06.11 06:58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다.
누구의 말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탁닉한 스님의 말쯤이 아닐까 하는데,
"화를 내는 것은 타인의 잘못으로 나를 상처입히는 일이다."고 했다.
머리는 아는데 마음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을 때가 있다. 따져보면, 일하는 중에 생긴 사태니까 녀석의 말대로 전적으로 그 녀석 책임은 아닌 것이고, 아직 어린 나이니까 감당할 수 없는 일 앞에서 우선 도망치고 싶어하는 녀석의 마음도 지극히 당연하다. 사실 이제 별로 화도 안 난다. 지갑에서 수리비 빠져나갈 때 대충 마음도 정리된 듯싶다. 그런데도 마음은 녀석을 계속 미워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어서 잘 모르게 되었다. 제 책임은 크지 않다고, 돈 얼마 못 주겠다고 말하는 그 녀석을 더 미워해야 하지 않나? 내 성질 건드려서 결론적으론 한 푼도 안 내고 속으로 다행이다 싶어할 저 녀석을 이대로 웃으며 봐도 되는 것일까? 그건 세상에 너무 만만하게 보이는 건 아닐까? 그러니까, 좀 더 나쁘게 굴어야 하는 건 아닐까?
아, 가만 두면 스러질 작은 '화'의 조각을 그대로 두는 것이 맞는가? 아니면 세상 살아가는 마땅한 자세로서 두고두고 더 지펴야 하나? 이거, 쉬운 문제가 아니네.
그나저나, 저 녀석이 다시 웃는 모습을 보게 되면, 그건 정말로 제법 밉겠네.
2009.06.10 18:14
광장으로 가자.
오늘, 해가 지면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결연한 눈빛으로 광장에 모인다.
바다 건너에 있다는 핑계로 더는 무심할 수 없게 되었다. 기억하고 있다. 여기서, 작은 목소리로 응원하고 있다.
힘 내자. 사람들아.
한국에 가는 날, 나도 그 광장에 서겠다.
2009.06.09 23:26
"이 봐, Mark. 생각해 봤는데, 카메라가 떨어진 것 중에 내 책임은 그렇게 안 큰 것 같아. 네가 말한 만큼의 돈을 못 내겠어."
화가 나서, 한 푼도 내지 말라고 큰 소리로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네 책임이 아니면, 그 카메라가 거기서 추락한 것은 보안 검색대에 스스로 올라가서 추락을 예비한 카메라 탓이냐? 카메라가 죽기를 결심하기라도 한 것이냐? 도대체 네 핑계가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왜 그냥 돈 없다고, 사정을 살펴주면 안 되겠냐고 말 못 하냐? 속에 담긴 말들을 쏟아내는 것도 구차해 보여서 담아두고 덮고 말았다. 견적서에 나온 수리비는 내가 다 물어야 한다.
어릴 때는 나도 그랬다.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어려움이 갑자기 밀려오면, 어떻게든 도망칠 방법을 찾았다. 비껴 설 자리만 살폈다. 정면으로 부딪쳐 깨거나 깨어진다는 것은 너무 무서웠다. 따지고 보면 화 낼 일도 아니었던 거다. 사람이 좋고 나쁜 문제가 아니었다. 중국인이고 한국인인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어시는 아직 어린 것 뿐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자신의 크기로 감당할 수 없는 사태 앞에서 비껴나고 싶었던 거다. 거기에 비겁.이라거나 부당.따위의 수식을 붙이는 건 잔인하다. 도저히 물러설 수 없는 상황과 마주쳤을 때, 정면으로 마주서는 것만큼 담백한 승부는 없다는 걸, 그 어린 친구는 언제쯤 배워가게 될까?
전화 끊고 후회를 했다. 그깟 자존심이 뭐라고, 단 돈 얼마라도 받을 걸 그랬다. 내가 땅 파서 돈 버는 것도 아니면서. 어줍잖은 자존심이라니.
개뿔 손에 쥔 것도 없는데, 시간이 갈 수록 나는 해낼 수 있다는 잔잔한 자신감이 바닥부터 찬다. 나는, 될 것 같다.
2009.06.08 14:48
정신줄을 놓았다.
사태는 며칠 전에 벌어졌다. 하이닉스 사보 촬영을 마치고 카메라 가방이 보안검색대를 거쳐 나왔다. 같이 일하는 어시스턴트가 제 몫의 조명 가방을 들어내린다는 게 그 옆에 있던 카메라 가방을 밀었다. 일 미터 남짓, 카메라 가방이 바닥으로 추락한 소리는 둔탁했다.
이 카메라를 산 것이 4년 남짓인데, 추락은 처음이었다. 우선 카메라에게 미안했다. 별 일 없을 줄 알았는데 돌아와서 점검해 보니 사진에 세로 줄이 가득 생긴다. 아, 뭔가 문제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30만원 들여서 셔터 박스를 교체한 것이 불과 한 달도 안 됐는데, 카메라는 다시 병원행이다. 그게 지난 토요일.
전화가 왔다. 수리 견적 250만원. 가장 비싼 부품 중 하나인 COMS를 통째 갈아야 한단다. 아, 250만원이라니. 저렴한 카메라 몇 대를 구입할 돈이다. 250만원이라니. 어시는 제 잘못이니 자기가 부담하겠다고 하지만, 그럴 돈도 없는 걸 안다. 우선 받을 수 있는만큼 받고 나머지는 고스란히 내가 떠안아야 한다. 아, 250만원이라니.
겨우 돈 조금 모일까 말까 하던 통장을 다시 털어야 한다. 수금 밀린 곳에도 전화를 해서 좀 독촉을 해야겠다. 집 값 낼 날도 다가오고 작업실 임대료 낼 날도 다가온다. 이번엔 바꾸리라 다짐했던 자전거 페달과 내일이면 새로 출시될 아이폰도 물 건너간다. 이번엔 정말로 돈 모아서 집에 보내고 생색 좀 내어볼까 했더니 또 말짱 황이다.
쳇. 250만원이면 250만원이지. 얼른 털어야겠다. 없어서 당장 빚을 내야하는 형편도 아니고. 까짓 돈에 답답해지고 정신줄 놓는 꼴이 더 밉다.
그나저나, 250이 뉘집 애 이름은 아니잖나.
아. 일 정말로 열심히 해야겠다.
2009.06.08 10:19
새 스터디를 시작했다. 이번 스터디는 내가 꾸린 것이 아니고 기존에 있던 스터디에 참여했다. 꾸리고 이끄는 부담이 없으니 우선 편하다. 중문학을 전공하는 석박사 과정에 있는 분들이 모여서 발터 벤야민의 글들을 읽어나간다. 재미있다. 아는 것도 없는 녀석이 그 동안 사진 스터디며 미술사 스터디 꾸리며 쏟아내는 척을 하느라 힘들었는데, 들어보지도 못 했던 학자들의 이름도 나오고 비슷한데 다른 생각들과 말 섞을 수 있는 기회가 되니 참 좋다. 다들 공부를 일로 하는 분들이라서 나는 더 좋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공부는 내게 취미생활이니까 그들만큼 부담될 것도 없고 텍스트도 내 방식대로 읽어서 내가 욕심나는 문제제기만 한다. 그래도 사진찍으며 사는 지난 몇 년 동안 기어가듯 읽어둔 책들이 허투인 것 같지는 않아서, 대견하다. 첫 번째 시간에 나는 벤야민이 시도한 가치선형성을 부정하는 작업에 주목했고, 어제 두 번째 시간에는 선형적으로 전개되는 문장을 이미지적인 비선형적 문장으로 전환시키는 작업에 주목했다. 스터디 자료들을 잘 모아서 그냥 스쳐가는 공부가 되지 않도록 해야겠다.
새로운 미학스터디를 준비한다. 여기저기 사람 구하는 글을 올렸더니 몇 명이 연락해 왔다. 작년에 꾸렸던 미술사 스터디는 재미는 있었지만 부족한 느낌이 많았다. 이번 스터디는 미술사가 아닌 미학사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이제까지 등장했던 미학과 관련된 논의를 개괄적인 수준에서 다루어 보고, 그 다음에는 1900년 이후의 미술사에 대해 보려고 한다. 박사생도 있고, 영어를 가르친다는 사람, 무용 전공하는 석사생도 있다. 이런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제대로 힘을 쓴다면 재미난 스터디가 되겠고, 자칫하면 참 얕은 책읽기가 되겠다. 어쨌든, 시작은 해 보아야겠다.
지난주 촬영을 마치고 카메라가 추락했다. 테이블에서 짐을 내리던 내 조수가 카메라 가방을 쳐서 카메라는 구입 후 처음으로 1m 높이에서 떨어졌다. 집으로 돌아와 점검해보니 문제가 생겼다. 급하게 센터에 수리를 의뢰했는데 도대체 견적이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다. 저렴하게 가능하다면 어시 녀석이 돈을 지불하게 되겠지만, 최악의 경우로 간다면 막대한 비용을 가난한 중국 친구에게 전가할 수 없게 된다. 어시 녀석은 녀석대로 얼어서 저녁 먹는 동안 말도 한 마디 못 하고 주눅들어 있었다. 아, 아이폰도 사야 되고 자전거 페달도 클릿으로 바꾸려고 찜해두었는데, 어쩌면 카메라 수리비에 올인해야 하는 사태가 온다. 다음 촬영 전에 수리나 가능하길 빌어야겠다.
2009.05.29 23:15
벗들은 바다 저 편에 있고
내 것이 아닌 울음들은 너무 멀다
나는 겨우 우는데
부딪칠 곳 없는 곡 소리가
갈 곳을 모른다.
남한산성을 다시 꺼내 읽는다. 살아서 감당할 수 없는 치욕은 없다는, 모든 치욕을 마침내 감당하는 것이 삶이라는 김훈의 선언적 문장은 멋들어졌었으나, 이제 모르게 되었다. 살아서 감당할 치욕에 대해 다시 묻기 위해 책을 열었는데, 겨울 산성 안에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갖힌 왕의 모습이 시골 사저에서 마지막을 고립 속에 보내던 대통령의 모습과 자꾸만 겹쳐 보여서 문장마다에서 나는 운다.
영결식을 지켜보던 내 앞 사람은 연신 어깨를 들썩이며 서럽게 울었다. 아직 무엇도 모르겠다고, 다만 미안해서 운다고 그는 말했다.
2009.05.29 17:15
에프상하이에 쓴 글.
자로가 석문에서 묵게 되었는데, 문지기가 물었다.
“어디에서 오셨소?”
자로가 말하였다.
“공씨 문하에서 왔습니다.”
“그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 일을 하는 사람 말인가?”
공자께서 위나라에서 경쇠를 두드리며 연주하고 계셨는데, 삼태기를 메고 공자의 집 문앞을 지나가던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마음에 미련이 남아 있구나. 경쇠를 두드리는 모습이여!”
조금 있다가 다시 말하였다.
“비루하구나. 땡땡거리는 소리여! 자기를 알아주지 않으면 그만둘 뿐이로다. 물이 깊으면 아래옷을 벗고 건너고 물이 얕으면 옷을 걷어올리고 건널 일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세상을 버리는 것은 과감하지만, 그런 일이야 어려울 게 없지.”
논어. 헌문 편 김형찬 역, 홍익출판
대통령께서 가셨습니다.
아침에 울고 오후에 사람들 만나서 웃고 밤에 울고 자고 일어나서 또 웁니다.
좋아하거나, 싫어했으면 좋겠습니다. 반대편에 선 사람들의 입장도 긍정하는 것이 관용이라고, 그런 것이 세상에 필요한 덕목이라고 배웠습니다. 속 좁은 저는 도저히 자칭 보수라고 말하는 저 친일수구꼴통들을 긍정할 수 없을 것 같지만,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 그래야 한다고 스스로 설득이라도 해 보겠습니다.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 보다 못 한 것은 무관심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사이트 대문이라도 며칠 닫아 걸고 국화라도 몇 송이 뿌려두고 싶지만, 여기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서 그렇게도 못 합니다. 어떤 사이트들은 정치와 무관하기를 스스로 바랍니다. 사진 사이트에서는 사진 이야기만 하자는 곳도 있고, 자전거 사이트는 자전거 이야기만 하면 되지 않냐고, 괜히 민감한 주제를 불러 와서 분란을 만들지 말라는 곳도 있습니다. 정치는, 분리될 수 있는 것도, 그렇게 되어서 마땅한 것도 아닙니다. 지난 10년의 경험이, 현재의 상황이 정당하지 않다고 일러주고 있습니다. 나는 이 사이트가 그런 침묵을 강요하는 곳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공자 할아버지는, 일생 동안 자신의 정치철학을 펼치기 위해 떠돌아 다녔습니다. 세상에 관여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적 수양에 힘쓰는 것이 더 낫다는 노장사상가들 앞에서, 공자 할아버지는 “사람과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어떻게 사람의 일에 무관심하겠는가?”라고 반문했습니다. 대통령의 사이트 이름은 ‘사람 사는 세상’이었습니다. 나 하나 열심히 살면, 그래서 나처럼 개개인이 다 열심히 살면 좋은 세상이 오겠지.라는 것은 어쩌면 순진한 생각입니다. 그렇게 침묵하는 국민들을 그들은 아주 쉽게 여길 겁니다. 컨테이너로 길을 막고 물대포를 쏘고 조금만 눈에 엇나가면 잡아 들입니다. 알고 있는 것으로, 옳다고 믿는 것으로써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려는 의지가 지금을 있게 했습니다. 이 땅을 지금에 닿게 해주었던 많은 사람들이, 쉽게 사는 방법을 몰라서 그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두 투사가 될 수는 없을 겁니다. 다만, 무관심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좋아하거나, 싫어했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의 죽음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온 몸을 던져서, 마지막 남은 한 줌으로 끝끝내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잠시라도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영원할 수는 없겠지만, 되도록이면 오래 그 분의 가치를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기득권에 맞서 싸운 분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세계에 당당하고 오로지 국민 앞에 고개 숙이던 분이었습니다. 당신의 어떤 고통보다도 주변 사람들이 상처받는 것을 못 견뎌 하신 분입니다. 마지막 남은 몸뚱이 하나로 남은 사람들에게 마지막 힘을 불어넣고 가신 분입니다. 그 미련함이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자라면서, 존경하는 인물을 묻는 질문에 한 번도 자신 있게 대답한 적이 없었고, 그런 내가 참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나는 2002년 이후로, 노무현을 존경한다고 말합니다. 이 땅에서 정말로 존경 할만한 정치인을 가질 수 있어서, 그리고 그런 정치인과 동시대를 살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잘 가십시오.
고마웠습니다.
정말로 미안합니다.
2009.05.29 17:10
촬영 때문에 태호에 다녀왔다. 태호 강변에는 영산이라는 산이 있고, 산 중턱에는 팔 십 팔 미터 불상이 서서 세상을 내려보고 있다. 석가모니불이다. 십 육 미터라고 들었다. 계단 어디쯤에서 십 육 미터의 높이를 가늠해 보았다. 어림할 수 없었다. 아슬아슬한 높이였겠다. 어떤 각오.같은 것이 필요했겠다.
반드시 죽어야 한다.
요행이라도 살아나서는 안 된다.
십 육 미터의 높이는 그런 각오의 높이처럼 보였다. 반드시 죽기 위해, 마지막 남은 몸뚱아리로 최후의 응원을 보내기 위해 그 분은 두 주먹 꼭 쥐고 수직으로 내리꽃혔을 것이다. 팔 십 팔 미터는 사람의 높이가 아닌 것이고, 십 육 미터는 살아서 닿을 수 없는 높이 같았다.
명복 같은 것은 빌지 않았다. 주제 넘게 누가 누구 명복을 빌겠는가. 저 땅에 가셔서도 이 땅의 복을 빌어 주실 분이다. 누가 빌어주지 않아도 그 땅에서 떵떵거리며 사실 분이다.
걱정하는 벗들이 전화 걸어 주었다. 너무 서럽게 무너지지 말라고도 했고, 그래도 살자고도 했다. 그 뜻들이 고맙다. 걱정만큼, 같이 울고 싶었을 벗들의 마음도 알겠다.
추모의 뜻으로 닫아두었던 사이트를 다시 연다. 이제부터 열심히 쓰겠다. 행동해야겠다. 건강한 분노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마음만 바른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몸으로 나올 때 세상이 호응해 올 것을 안다.
지켜주지 못 해서.
2009.05.23 20:56
블로그에 2009년 5월 14일 목요일에 쓴 글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고재종
그토록 흐르고도 흐를 것이 있어서 강은
우리에게 늘 면면한 희망으로 흐르던가.
삶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듯
굽이굽이 굽이치다 끊기다
다시 온몸을 세차게 뒤틀던 강은 거기
아침 햇살에 샛노란 숭어가 튀어오르게도
했었지. 무언가 다 놓쳐버리고
문득 황황해하듯 홀로 강둑에 선 오늘,
꼭 가뭄 때문만도 아니게 강은 자꾸 야위고
저기 하상을 가득 채운 갈대숲의
갈대잎은 시퍼렇게 치솟아오르며
무어라 무어라고 마구 소리친다. 그러니까
우리 정녕 강길을 따라 거닐며
그 윤기나는 머리칼 치렁치렁 날리던
날들은 기어이, 기어이는 오지 않아서
강물에 뱉은 쓴 약의 시간들은 저기 저렇게
새까만 암죽으로 끓어서 강줄기를 막는
것인가. 우리가 강으로 흐르고
강이 우리에게로 흐르던 그 비밀한 자리에
반짝반짝 부서지던 햇살의 조각들이여,
삶은 강변 미루나무 잎새들의 파닥거림과
저 모래톱에서 씹던 단물 빠진 수수깡 사이의
이제 더는 안 들리는 물새의 노래와도 같더라.
흐르는 강물, 큰물이라도 좀 졌으면
가슴 꽉 막힌 그 무엇을 시원하게
쓸어버리며 흐를 강물이 시방 가르치는 건
소소소 갈대잎 우는 소리 가득한 세월이거니
언뜻 스치는 바람 한자락에도
심금 다잡을 수 없는 다잡을 수 없는 떨림이여!
오늘도 강변에 고추멍석이 널리고
작은 패랭이꽃이 흔들릴 때
그나마 실낱 같은 흰줄기를 뚫으며 흐르는
강물도 저렇게 그리움으로 야위었다는 것인가.
말이 너무 많아서 쓰러질 듯이 지쳤을 때 시 읽는다. 오랜만이다. 오랜만에 읽으니, 전에 안 보이던 것도 보인다. 아마 그 때는 보았는데 지금은 안 보이는 것도 있을 터이다. 생각 없이 꺼낸 시집 안에는 내가 한국을 떠나오던 무렵에 고은이가 썼던 편지가 끼워져 있다. 전에도 몇 번 보았던 것 같은데, 어쩐지 이 시집 사이가 그 편지의 자리인 듯해서 옮겨두지 않았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 여전히 가장 위태롭고 단단한 사람쯤 되는 고은이는 아마 그 녀석의 속내를 닮게 될 딸아이와 함께 영국에 산다. 편지 속에서,
"당신도, 나도, 건승합시다. 최소한, 비겁하게, 가고 싶은 길에서 가야할 길에서 도망치지는 않도록 합시다. 재회 때까지 건강하세요."라고 쓰고 있다.
이번 작업이 끝나면, 어디 짧은 여행이라도 다녀와야겠다. 두 바퀴 자전거를 타고.
2009.05.23 20:55
블로그에 2009년 5월 9일 토요일에 쓴 글
아침에 복단대에 갔다. 잡지 준비하는 친구들 인터뷰가 있었다. 며칠 바빠서 인터뷰 질문도 제대로 정리를 못 한 터라, 붐비는 아침 시간도 피하고 질문지도 정리할 생각으로 일찍 나섰다. 도착해 보니 약속 시간까지는 한 시간이 남았다. 정문 안쪽에 큰 모택동 동상이 만드는 그늘에 앉아 필요한 것들을 정리하며 쉬었다. 조금쯤 졸고 싶기도 했는데 아침 맑은 바람이 자꾸 잠을 깨웠다. 눈감고 있어도 잠들지 못 했다.
모택동 동상이 만드는 그늘은 컸다. 나 말고도 두어 명이 충분한 제 공간을 확보하고 앉아서 신문도 보고 귀도 후비고 사람도 기다렸다. 오늘의 중국이, 모택동의 그늘에서 쉬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2009.05.23 20:55
블로그에 2009년 5월 5일 화요일에 쓴 글
유학생에 대한 책임. 내가 대학생활을 통해 많이 성장했으니, 그런 기회가 상대적으로 드문 이 곳 유학생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어떤 막연한 책임감 같은 것. 건너 건너 알게된 유학생들이 잡지를 만들겠다고 한다. 그 중에 깨어있다고 스스로 아는 몇몇이 모여서 자신들이 속한 유학생 사회에 어떤 자극을 주고 싶다고 뜻을 모았다. 좋은 뜻으로 뭉쳤으니 잘 하라고 그저 마음만 보태며 있었는데, 얼마 전에 만났을 때 처음으로 걱정이 됐다. 든든하게만 보이던 친구였는데, 지친 모습이 안타까웠고 저러다가 제풀에 쓰러지면 그 좋은 시도가 빛을 보지 못 하고 무너지게 될 테고 그렇게 되면 그런 시도를 했던 팀에게도 아쉬움으로 남겠지만 그것보다 큰 것은 그 시도를 통해 어쩌면 자극을 받고 스스로의 가능성을 알게 될 더 많은 유학생들이 안타까울 것이다. 강건너 불구경이나 하고 뒷방 늙은이처럼 괜히 잔소리나 보태려던 마음을 바꿔서 조금 나서서 돕기로 했다.
발간 일정을 앞둔 잡지라고 하기에는 준비라고 해 둔 것이 없었다. 우선 급한대로 다시 회의를 통해 구성을 잡고 아는 잡지사로 가서 편집에 필요한 디자인툴을 얻어왔다.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으니 툴에 대한 안내 서적도 거의 빼앗듯이 가져왔다. 잡지의 핵심이 되는 디자인 서식도 얻어 왔다. 선듯 내어준 마음이 고맙다. 팔자에 없는 편집 디자인을 공부하게 생겼다. 모자란 기사를 몇 개 써주기로 하고 기존 원고에 대한 교정 이상의 수정 작업을 해주기로 했다.
학생들이 하는 작업에 끼어드는 것이 못내 못 할 짓을 하는 것 같다. 그 때는 나도 그랬을까? 하는 것마다 서툴러 보이고 온갖 틈만 보인다. 그런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의 나도 만들어졌을 테니까 그들의 지금도 긍정하는 것이 맞겠지만 그러기엔 그들이 잡아둔 일정은 촉박하고 해 놓은 것은 성글다. 급한 마음으로 몰아치고 안 되는 부분은 내가 떠안기로 한다.
마음이 불편하다. 내 부족함을 내가 잘 아는데 그 부족한 모습으로 저 당당한 아이들을 몰아치고 있으니 무엇인가 속이는 기분이고, 회의 끝내고 아이들 돌려보내고 나면 방 안에는 쇳소리만 여운처럼 남고 녹슬어가는 쇳조각 비린내만 난다. 급한 마음에 말이 너무 많아서 미처 생각으로 채우지 못 한 성근 말들이 난무한다. 쫓기는 마음은 저들의 상황을 깊이 헤아리지 못 하고 내 기준에 맞추어서 닥달만 한다. 내가 관여하기 훨씬 전부터 저들끼리 공들여 만든 결과물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자꾸만 그들 기를 죽이는 것 같아서 내 말에도 자신이 없다. 그들 노력의 결과로 탄생한 잡지에 대한 자부심 대신, 부족한 것들만 모여서 어설픈 미완성 밖에 얻어낸 것이 없다는 감상을 갖게 할까 무섭다.
친구들, 선생님 생각이 간절하다. 내 부족함을 바닥까지 깨부수며 범접하기 어려운 높이의 지식으로 강의해주시던 교수님들이 간절하다. 선생님들의 지식에 대한 의심 없이 참 편하게 많은 것을 배웠다. 의심 따위 우습다는 듯, 이미 수 많은 의심에 대한 승전 기록을 보여주시듯 선생님들의 배움은 깊고 단단했다. 그 말본새 하나하나, 그 몸가짐 하나하나는 또 얼마나 멋드러졌던가.
몇 명만 뭉쳐두면 이 정도 잡지쯤은 놀이처럼 해치우고 시원하게 맥주 한 잔 마시러 갈 수 있는 친구들이 간절하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못 해낼 것이 없어 보였다. 서로가 서로의 능력에 대해 신뢰했고, 자신들의 자리에서 언제나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들고 나타나는 그들의 등장은 참 든든했었다. 함께 모일 때 산술적 합 이상의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했고, 그들은 한 번도 기대를 배신한 적이 없었다.
며칠의 취재와 며칠의 디자인 기간이 끝나면, 어쨌든 잡지라는 형태가 나올 것이다. 이번 작업이 끝나면 나는 팽.당해야 한다. 내가 팀에 있는 게 이 친구들에게 별로 이로운 일이 아닐 듯하다. 대학생으로 팀을 꾸려 그들의 내부적 성장과 외부에 대한 자극을 의도한 것이니까, 그렇게 가게 해야겠다. 그러니까 이번 한 번에 나는 되도록 많은 것을 보여주어야겠다. 다음 번 작업에는 그들이 더 나은 곳에 닿을 수 있도록 하고, 무엇보다 겨우 나 정도의 수준에 만족하지 말기를 당부해야겠다. 든든하고 아름다웠던, 일당백 친구들의 전설을 전해주어야겠다. 깊은 바다같았던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전해야겠다.
작업을 진행할 수록 내 부족함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번 일 끝나면 입 좀 닫아야겠다. 말 좀 줄이고, 부족한 내 공부나 좀 더 채워야겠다. 지난 3월부터 시작한 에프상하이 사진스터디도 슬슬 끝이 보이니까, 사이트 활동도 좀 줄이고 새로 책공부하는 작은 모임이나 꾸려 보아야겠다. 사회인의 신분으로 학생들 작업에 끼어드는 것이 어색했는데, 생각해 보니 내 마음은 한 번도 학생이 아닌 적이 없었다. 선생님 따라가다가 혼자 길 잃고 우는 학생이다.
2009.05.23 20:54
블로그에 2009년 4월 27일 월요일에 쓴 글
베이스가 좋아진다. 요요마의 첼로 정도에서 느끼던 호감은 게리 카의 베이스 연주쯤으로 더 내려갔다. 저음은 고음보다 층간 소음이 잘 전해진다. 아파트에서 듣기에는 신경이 쓰이지만, 그래도 밤에 듣는 베이스 음악은 심장에 바로 닿아서 심장박동이 음에 반응한다. 아랫집 윗집에 조금 미안하지만.
악기 하나 배워야겠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있었는데, 그건 맘처럼 쉬운 게 아니다.
때가 되어서 악기를 배우게 될 때, 콘트라베이스나 안 되면 더블 베이스라도 배워야겠다. 더블 베이스보다 좀 더 큰게 콘트라베이스인가? 단지 그 차인가? 더 크면 음이 더 낮은가? 뭐 어쨌든, 악기는 정한 셈이다. 활로 켜는 것보다는 손가락으로 튕기는 게 더 나을 듯. 도구를 하나라도 덜 쓰니 다루기에 더 쉽지 않을까?
가족 재즈밴드라도 만들어야지. 근데, 온 가족이 다 베이스를 좋아하면 어쩌지?
블로그에 2009년 4월 23일 목요일에 쓴 글
유난히 시계視界가 좋은 날이 있다. 오후 늦은 낮잠을 자고 일어난 오늘 저녁이 그렇다. 창 밖은 마침 어두워지는 중이었는데, 아주 멀리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작은 베란다를 실내로 끌어들여 놓은 내 방의 창문은 서쪽을 향해 둥글게 나있는데, 서쪽으로는 아파트 단지와 그 너머 낮은 건물들의 꼭대기가 이어져서 지상과 하늘의 경계를 만든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멀리 중산공원에 있는 롱즈멍 호텔의 야간조명이 보인다. 이렇게 시계가 좋은 날은 한 달에 잘 해야 한 번 정도 밖에 없다. 이런 날은 건물의 외관을 찍기에 좋은 날이다. 뿌연 날씨에 찍고 이 만하면 됐다고 자위하며 돌아선 건물들이 미련처럼 남아서 떠오른다. 마침 대기는 건조하고 하늘은 흐리고 낮아서 내가 좋아하는 날씨가 되었다. 이 날씨에 바람까지 세차게 불었다면, 그래서 저 하늘 너머에서 곧 태풍이라도 올 것 같은 날씨였다면 내 마음은 미리 날았겠다.
퇴고를 시작한 원고는 진도가 잘 안 나간다. 문장을 마련하지 못 한 기억을 내용만으로 엮으려니까 그렇다. 내 글쓰기에 대해 생각할 때, 내 문장은 빠질 것이 없지만 내 기억력은 선택과 생략에 능하다. 그래서 닥친 상황에 대한 문장은 참 좋은 것을 알겠는데, 지나간 일에 대해 기억해 쓰려고 하면 문장은 맛도 안 나고 꼭 필요한 요점 외에 주변 상황들의 많은 부분을 생략해 버려서 쓰고 돌아본 문장은 문장이라고 부르기 부끄럽다. 내 다음 책은 아마 길에서 쓰게 될 것이다. 기억이 지나간 일들을 선택하고 선택받지 못한 이야기들을 지워버리기 전에, 싱싱한 비린내 나는 문장들을 묶어 내는 책이 될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쓰게 될지는 모르겠다만.
월드비전에 후원신청을 한 것이 한 달 가까웠는데, 오늘에야 이메일을 통해 내가 후원할 아이에 관한 내용을 받았다. 아마 신청할 때 쓴 한국 주소로 우편물로 발송되었던 모양이다. 이메일을 통해 정보를 받겠다는 문의 메일을 보내니 이제야 보내준다. 내가 도울 아이는 말리.에 사는 토고.라는 이름을 가진 일곱 살 남자 아이다. 말리가 어디에 있는 곳인지. 피부색이 검고, 눈이 크다. 사진 좀 잘 찍지 그랬나. 흙벽 앞에 세우고서, "자, 사진 찍자. 예쁘게 찍어야 사람들이 널 도와줄 거야. 말 잘 들어야지."하며 카메라가 폭력을 휘두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아이는 겁에 질려서, 팔려나가는 짐승의 눈빛으로, 자신이 받는 도움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도 모르는 표정으로 사진 속에 있다. 때묻은 푸른색 티셔츠를 입었다. 축구를 좋아한다고 쓰여 있고, 남자 형제 네 명에 보통의 건강상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름보다 윗줄에 아동 번호.라는 제목으로 이 아이는 몇 개의 숫자로 그 존재를 대신하고 있다.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모르겠구나. 얼마의 돈이 네 삶을 구하지는 못 할 듯한데. 내가 마음으로 편지를 쓴다고 해야 네가 그 뜻을 받아들이기도 아직 어린데. 힘 앞에 주눅 든 네 표정 앞에 나는 주눅 든다. 어쨌든, 한 아이의 눈빛 덕분에 나는 열심히 제대로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서로 돕고 살자. 나도 힘이 들 때는, 버텨야 할 이유를 생각하마. 부족한 내가 기꺼이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잊지 않으마. 나라도 세상에 있어서 어느 누구에게는 의지가 되니 그래도 사는 것이 낫다고 믿으마.
유난히 정신이 맑은 밤이 있다. 오후 늦은 낮잠을 자고 일어난 오늘 밤이 그렇다. 어제 늦게 잠든 덕분에 아침에는 늦잠을 잤고, 덕분에 요 며칠 새벽마다 하던 원고 퇴고를 오늘은 못 했다. 한 번 엉킨 일과는 계속 이어졌는데, 마침 별다른 일정도 할 일도 없었던 하루는 무료하게 갔다. 인터넷으로 영화도 보고 한국 쇼도 보면서 밝은 날을 보냈다. 며칠 분주하고 단단하게 살았던 뿌듯함으로 오늘 하루의 나태함 정도는 덮어도 좋은 것이라고 스스로 다독인다. 이렇게 정신이 맑으니까, 오늘은 편지라도 써야 하나. 어제 혜림이가 보내준 히긴즈 트리오라는 재즈밴드의 음악을 씨디로 구워놓고 아직 듣지 않았는데, 아랫집 윗집에게 조금 미안하기는 하지만 다 늦은 밤에라도 들어 보아야겠다. 부탁받은 승우 형 렌즈도 얼른 팔아줘야겠고, 허락의 전화를 해 준 승민씨 강의도 짜 보아야겠다.
조금 더 경쾌하게, 리듬을 타며 걷자. 다시 못 올 봄이지 않나.
2009.05.23 20:53
블로그에 2009년 4월 21일 화요일에 쓴 글
1-2
시간은 빨리 흘렀다. 1년 반을 예상하고 온 길이었다. 1년의 교환학생 과정을 보내야 했고, 그 전에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최소한의 중국어 실력을 확보하기 위해 한 학기 먼저 와서 따로 어학연수 과정을 듣기로 했다. 시간의 끝이 정해지면 남은 시간의 크기가 작아 보인다. 이 넓은 땅을 이해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배워가기에 일 년 육 개월의 시간은 턱없이 모자라 보였다. 어학반의 수업은 오전과 오후 수업이 하루씩 번갈아 있어서 하루 중의 반나절은 마땅히 할 것이 없었고 학교 바깥은 끝 간 데를 모를 신천지였다. 카메라 한 대와 지도 한 장, 나침반 하나를 챙겨서 틈 날 때마다 도시를 채집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도시는 거대했다. 지도 속에는 도시를 관통하는 강과 길이 섞여 있었다. 그 사이로 지하철과 버스 노선이 지도 속의 점들을 잇고 있다. 그 연결은 가늘어서 아슬아슬해 보였다. 2차원의 평면 속에 면적과 위치만으로 존재하는 그 곳에 무엇이 있는지는 직접 가 보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학교가 있던 곳은 새롭게 도심권이 형성되는 쉬자후이 지역이었고, 그 곳에서 화하이루를 따라 버스를 타면 온갖 백화점들이 늘어선 길을 지나 상하이의 몇 안 되는 전근대 건축물 예원의 서쪽 끝에서 버스는 멈춘다. 골동품 시장과 귀뚜라미 시장을 지나고 남방 정원의 흔적을 본 후에는 더 동쪽으로 걸어서 황포강의 야경이 유명한 와이탄에 닿거나 북쪽으로 걸어서 상하이의 가장 번화한 거리 난징루로 갈 수도 있다.
이틀 썼는데, 몇 줄 안 되네. 이렇게라도 해야 얼른 수정이라도 할 듯.
2009.05.23 20:52
블로그에 2009년 4월에 쓴 글
속 깊은 친구 몇 명을 가깝게 두고 있다는 것이 참 복 된 일인 것을 알겠다. 한국을 떠나 살면서 변한 것 중에 한 가지는 친구의 범위를 넓게 잡은 것이다. 형, 누나, 동생, 선배, 후배 등으로 나누어 갈래 지었던 사람들이, 사실은 그냥 친구였다고 이제 안다. 한국어의 존칭은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는 장점이 있지만, 관계를 서열화하는 단점도 있다. 몇 살 터울 정도는 그냥 친구로 좋다. 사실 나이라는 것을 따져묻는 것도 서열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한국인들에게서 특히 드러나는 모습이다. 좋은 사람들 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이 사실인 듯하다. 나이를 잊고 싶은데, 대충 그렇게 사는 것도 같은데, 나 혼자 잊는다고 잊어지는 게 아니다.
때로 멘토가 되고, 때로 쉴 곳이 되고, 또 언제나 응원을 받을 수 있는 친구들의 존재는 축복이다. 내가 갖고 있는 복잡 다단한 문제들도 나를 아는 친구들의 입장에서 보면 단순해 보인다. 내 밖에서 나를 나로서 보아주는 그들이 있어서 가끔 벽에 부딪칠 때 그들을 생각하고, 그들은 내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훌륭한 답을 들고 웃으면서 내게 온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내가 나로서 오롯하게 있을 수 있는 응원이고 나다운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믿음이다.
어머니는 최근 몇 년 동안 많이 답답해 하신다. 그 때쯤의 여인이 한 번쯤 겪는다는 주부우울증인가 싶다가도, 그 증상을 보면 안타깝기는 어쩔 수 없다. 어머니께 내 좋은 친구들같은 친구들이 단 몇 명만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아버지는 젊어서 이루신 것들에 기대어 지금도 세상을 호령하며 지내신다. 이제 좀 더 낮고 부드러워지셔도 좋을 듯한데 당신 자신은 아직 그럴 뜻이 없으신 모양이다. 아버지께 멘토가 되어줄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몇 있었다면, 그래서 그 친구의 말이라면 온 마음을 열어서 듣는 아버지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친구들의 기대를 져버리지 말아야겠다. 그들에게 받은 힘으로 열심히 아름답게 살아야겠다. 힘들면 가서 기대고, 또 내가 잘 자라서 그들에게 꼭 같은 힘이 되어 주어야겠다. 그대들이 내게 얼마나 귀한 사람들인지, 알게 해야겠다.
2009.05.23 20:51
블로그에 2009년 4월 19일 일요일에 쓴 글
1-1
1. 맹인 연주자 앞에서 사진을 묻다.
바람이 차다. 두어 번의 여행으로 한국보다 따뜻한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겨울과 봄의 경계에 있는 날씨는 방심하기에 딱 좋을 만큼의 추위다. 한국의 추위가 정면으로 몰아쳐오는 것이었다면 이 곳의 추위는 바닥으로 낮게 깔려서 온다. 봄이 코앞인 것 같아서 한 낮의 느낌은 겨울을 이미 지나 보낸 듯한데 몸의 아래에서부터 조금씩 덤벼오는 추위는 스며들 듯이 온 몸을 감았다. 2월의 얇고 낮은 추위가 바다 건너 온 유학생을 처음 맞았다.
유학원에서 나온 가이드를 따라 짐짝처럼 실려 한 학기 동안 중국어를 배울 학교로 간다. 할 줄 아는 말이라고 해야 한 줌이 채 되지 않고, 가이드가 없다면 국제 미아 되기 딱이니 짐짝보다 나을 것도 없는 셈이다. 몇 장의 뜻 모를 종이에 이름을 쓰고 몇 권의 책을 정신 없이 받았다. 수속이 끝났다.
역할을 다한 가이드는 돌아갔다. 임시숙소로 배정 받은 방은 큰 길가에 있었다. 룸메이트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친구였다. 인사는 어색했다. 겨우 며칠 동안의 인연일 것을 서로 알았다. 짧게 인사하고, 룸메이트는 다른 수속을 위해 나가고, 해가 지고, 방은 넓었고, 방을 가득 채운 공기의 질감은 낯설었다. 이제, 혼자가 되었다. 시작은 언제나 무서운 것이다. 내 앞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고, 내가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확신도 없는 것이다. 상황이 내 뜻대로 움직여 준다는 보장도 없고,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내가 작정한 목적지에 가 닿으리라는 기대는 말 그대로 기대인 것이다. 이제껏 지나온 많은 시작들을 생각하며 곧 익숙해 질 것이라고 다독여 보지만 그래도 공중에 뜬 마음은 좀처럼 낯선 땅에 내려올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낯선 악기 소리가 산란한 마음을 깨웠다. 소리는 얇고 낮았다. 도로변에서 출발한 소리는 온통 비어서 막막한 공간 속으로 이른 봄 추위처럼 낮게 왔다. 생각해 보면, 특별히 인상적인 소리는 아니었다. 다만 그 순간에 공간은 너무 낯설고 넓었고 긴 저녁 시간 앞에서 나는 무엇이든 해야 했다. 카메라를 들고 소리를 따라갔다.
맹인 할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차들을 등지고 앉아 얼후를 연주하고 계셨다. 중국의 전통 악기 얼후는 뱀가죽으로 덮은 울림통에 두 줄을 묶어 활로 켜서 소리를 낸다. 소리의 질감은 듣는 사람마다 다른 것이지만 이 십 수 년 만에 처음으로 긴 외국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 제법 어울렸다. 할아버지의 반대편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한참을 들었다. 저 소리에라도 동화될 수 있다면 적어도 혼자는 아닐 것이다. 할아버지의 등 뒤로 자동차의 불빛들이 흐르듯이 가고, 할아버지와 나 사이로 행인들이 지나갔다. 생경한 풍경이다. 사람들의 옷차림, 도로를 달리는 차들의 모습, 네온 사인 속에 들어 앉은 글씨들, 사람들이 지나며 내는 소리, 바람 속에 섞인 냄새. 무엇 하나 낯설지 않은 것이 없다. 손에 익은 카메라 하나만 겨우 익숙하다. 셔터를 만지작거리고 렌즈를 괜히 돌려본다. 할아버지 앞에 놓인 그릇에 동전 하나를 떨어트리고, 물었다.
“할아버지, 저는 여기 학교에 있는 유학생인데요.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보일 듯 말 듯, 그러나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한 줌도 되지 않는 단어로 대충 얽어낸 문장이 과연 제대로 된 것이었는지, 내 질문이 과연 정확한 것인지, 할아버지는 내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신 것인지, 그리고 내 요청에 대한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 것인지 아무 것도 확실한 것은 없었다. 단지 단어의 부족함 때문은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사람을 보여주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는 느낌은 묘했다. 맹인이 사진에 대해 갖는 감상은 어떤 것일까? 보이지 않는 세상을 포착해 액자에 담아 둔 장면은, 보이는 것과 떨어져 사는 사람에게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리고 내가 사진을 찍는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 할 그 앞에서 허락을 받는 나는 또 무엇인가? 멀찍한 곳에 떨어져 앉아서 최대한 작게 몸을 웅크리고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상하이, 긴 여행의 첫 사진이다.
2009.05.23 20:51
블로그에 2009년 4월에 쓴 글
1. 맹인 연주자 앞에서 사진을 묻다
2. 옥탑방 작업실에 사는 물고기
3. 예술가, 그 발칙한 이름
4. 강, 도시의 시작
5. 낡은 가을 오후의 산책
6. 상하이를 상하이답게 하기
7. 즈멍의 골목길
8. 여행, 길의 끝에서
시작합니다.
2009.05.23 20:50
블로그에 2009년 4월 18일 토요일에 쓴 글
왼쪽 손바닥이 나갔다. 어제 운동 다녀와서 제법 큰 물집이 잡혔다. 일 때문에 밀려서 겨우 열흘 만에 운동을 갔더니 겨우 자리잡기 시작했던 손바닥 굳은살이 그 사이 풀려나고 있었던 모양이고, 지난 운동 때 깨먹은 죽도 때문에 새 죽도로 바꿨더니 손잡이 부분이 아직 거칠었던 모양이다. 이번 물집은 제법 커서, 가만 두면 다음 운동 때 더 문제가 될 것 같았다. 얼른 새 살 돋으라고 물집 잡힌 부분을 걷어냈다. 쓰라린다. 샴푸할 때 내가 왼손 바닥에 샴푸를 받는다는 걸 오늘 아침에 처음 알았다. 한 손으로 머리 감고 한 손으로 로션 바르니 왼손 바닥이 막 그립다. 키보드에 손을 얹을 때도 왼손 바닥이 아랫부분에 닿는다는 걸 또 처음 알았다. 새 살이 돋고, 다시 벗겨지는 일을 두어 번 더 반복해야 손바닥은 단단하게 버텨둘 거다. 그 동안에는 조심해서 써야 한다. 책 속에서, 모리 교수는 상처입은 제자에게 어서 벗어나려고 하지 말고 상처의 바닥까지 내려가라고 말한다. 바닥에 닿으면 자연스럽게 바닥을 박차고 오를 수 있으니까, 애써 바둥거리지 말라고 일러 주신다. 나는 마음 급한 어린이니까, 얼른 떼어내고 새 살 돋으라고 아직 덜 아문 피부를 공기 중에 드러내고 만다. 이 정도는 버틸 만하다고 마냥 혼자 믿으면서.
아침에 인터넷에서 본 글 중에, 낙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낙타는 사람과 함께 사막을 건널 때, 힘든 내색을 잘 안 한다고 한다. 묵묵히 걷고, 든든하게 걷는다고 한다. 그러다가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때가 오면,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죽는다고 했다. 그리고 글은, 그런 낙타의 행위를 배신이라고 쓰고 있었다. 낙타 혼자 가는 길이었다면 그런 묵묵한 실천이 미덕이겠지만, 다른 존재와 동행하는 길이기 때문에, 배신이라고 했다. 일방적 헌신이 미덕이 될 수 없는 관계가 동행이겠구나 싶었다. 내어줄 부분을 내어주고 받아줄 부분을 받아주는 연습도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모나님은 언젠가 내게 그런 충고를 했는데, 상대방의 호의를 받아주는 것도 연습해야 한다고 했다. 신세 지는 일에 서툰 반군은 밉지 않게 부탁하고 또 신세 지는 사람들 보면 그것도 참 좋은 재능인 듯해서 부럽다.
생각에 머물러 있던 일 몇 개를 진행시켜야겠다는 다짐. 더 미룰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일에 떠밀리고 쫓기기 전에, 내가 일을 몰아 가야한다는 다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답답함을 애써 지우고, 가능한 상황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한다는 자각. 그리고 아주 많이 늦기 전에, 꼭 야구장 응원을 가 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
2009.05.23 20:48
블로그에 2009년 4월 10일 금요일에 쓴 글
바다에 다녀왔다. 바다의 등장은 갑작스러웠다.
한 달쯤 걸려서 이상에게 보낼 답장을 다 썼다. 이상은 편지마다에 책갈피를 넣어서 보내주었는데, 나는 게으르고 또 편지 봉투에 넣을 게 마땅찮아서 겨우 명함 한 장 넣었다. 명함이라... 이상이라면 명함을 명함 아니게 받아 줄 것을 안다. 편지 안에서, 몇 년째 아무 곳에도 하지 않던 칼 이야기를 다시 했다. 잊은 줄 알았다. 칼은 더 이상 어떤 화두도 아닌 줄 알았다. 내가 여전히 한 자루 칼에 기대어 있고 끝내 닿지 못 할 곳을 향해 계속 한 자루 칼을 갈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았다. 내 안으로 가지런하기, 온 몸으로 낮아지기. 제법 좋은 칼을 갈아 가고 있구나 싶다.
나보다 어리지만 내 존경을 받기에 충분한 경훈이와는 어제 저녁을 함께 먹었다. 녀석은 와이프와 함께 먹을 술국을 아마도 삥뜯어서 갖고 온 듯하다. 같이 먹자고 소주 한 병도 갖고 왔는데, 나는 겨우 물잔으로 회답했다. 아깝다. 바로 몇 시간 전에 나는 중고 씨디 두 장을 사고, 편의점 와인 코너 앞에서 얼마나 망설였던가. 꼭 한 잔 하고 싶었는데, 혼자 먹으면 일 년을 먹을 것 같은 와인 앞에서 아주 오랜만에 한참 고민했다. 녀석이 그렇게 올 줄 알았다만 한 병 질러 놓을 것을. 술 한 잔이 참 고픈 날. 내가 그런 생각을 했었다는 사실도 가물한,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존재마다의 탄생 때마다 저 끝에서 달려와 맺히고 폭발하는 우주와 우주의 맥박 같은 갈등들. 아,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제법 몇 년 떠벌리기도 했었는데.
숫자로 따지면 분명하게 어린 효빈이는, 도대체 어떤 시간을 거쳐온 것인지 가끔씩 던지는 한 마디 속에 막강한 내공을 언듯 보이고는 한다. 저 나이에 저런 내공이라면 도대체 저 아이가 내 나이쯤 되면 어떤 말들을 하게 될까? 기대가 된다. 효빈이에게 들려준 협곡의 양편에 앉은 두 사람의 이야기는 정말 십 년은 된 것이다.
우연찮게 지난 생각의 토막들을 불러오게 되는 요즘이다. 그 때쯤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기특하기도 하고 또 치기 어린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고, 그 생각의 바탕에서 이렇게 걸어온 지금의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다. 나는, 자랐다.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문장을 써야 한다. 감정을 다만 소비시키고 마는 문장은 배설 외에 무엇도 안 된다. 그러면서 이런 문장들이나 쓰다니.
2009.05.23 20:48
블로그에 2009년 4월 5일 일요일에 쓴 글
프랑스가 자랑하는 정신 톨레랑스 tolerance는 한국에서 '관용'이라는 단어로 번역된다.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정신.
톨레랑스의 정신은 긍정.에 가까운 것인가 싶다. 나와 다른 방식을 내치지 않고, 그것이 너의 방식이라고 긍정하는 일. 타인의 방식에 동의하고 함께 하지 않아도,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간격을 다만 긍정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배운다. 오래도록, 모든 것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럴 수 있다고 고집을 부렸다. 같은 민족이, 같은 피붙이가, 또 같은 공동체 안에서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가슴으로 안 것은 최근이었던가? 아니면 그 보다는 좀 더 일렀던가?
물론, 노력으로 되지 않는 것들도 여전하다. 나는 누가 뭐래도, 아무래도 이명박 일당을 긍정하는 일은 불가능이라고 여긴다. 개념 없는 것들 하고는.
월요일 아침부터 또 이러고 있다.
작업이나 하자.
2009.05.23 20:47
블로그에 2009년 4월에 쓴 글
밀린 일들 하겠다고 작정한 일요일이다. 늦잠 약간, 청소 대충, 낮잠 조금 많이, 옥수수 삶아 먹고, 대충 빈둥거리다 보니 해 떨어졌다. 방해 안 될 음악 골라 두고 제법 밀린 메일들 답장을 부지런히 쓰니 밤이 늦었다. 밀린 일들은?
이상.이 보내준 편지 두 통의 무게감이 좋다. 나는 아직 첫 번째 답장을 쓰는 중인데 두 번째 편지가 왔다. 반갑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공들인 답장을 해야겠다. 어쩌나, 두어 장은 수첩에, 두어 장은 메모지에 써 두었는데. 봉투에라도 공을 들일까. 아는 사람들의 주소를 물어두어야겠다. 뭐 게으른 반군이니까, 게다가 편지는 공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거니까 그리 쉽게 쓰지는 못 하겠지만, 그래도 물어 두었다가 이 사무치는 봄에 사방으로 편지 날려야겠다.
결국에는 혼자 서는 것이니까, 게다가 나는 일반적.이라는 수식과는 조금 다른 모양으로 살게 되어버렸으니까, 나이.라는 게 별로 걸릴 게 없다.만, 일단 관계라는 걸 두고 보면 무시하고 지내던 숫자가 도드라진다. 더구나 존대가 분명한 한국인의 삶 속에서라면 더더욱. 부끄럽게 채워온 것 같진 않은데, 딱히 거창하게 채운 것도 없는 나이가 되었다. 나는 아직 사방이 거칠고, 나는 아직 무엇이든 덤벼서 깨질 수 있을 듯한데, 사방에서 이제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시선들이 무겁다. 어쩌나. 결국엔 혼자이겠지만, 내 시작은 혼자가 아니었으니 멋대로 살 수도 없는 노릇. 기꺼이 어깨에 짊어질 주변의 무게들. 거 참, 오늘 문장들 지저분하네.
퇴고.를 시작해야겠다. 더 미룰 수 없으니까, 제법 그럴듯한 수정안도 나왔으니까, 이제 엉덩이 좀 무겁게 해서, 하루에 몇 시간씩은 꼬박꼬박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만들어야겠다.
밤이 늦었으니, 이제 일 좀 해야겠다.
2009.05.21 08:21
어제는 늦잠을 잤다. 며칠 일 때문에 바빠서 잠을 제대로 못 잤고, 제대로 못 잔 잠 본전 생각이 나서 푹 잤다. 그리고 낮잠도 길게 잤다. 오후 미팅만 아니었다면 종일 잤을 거다. 그리고 밤에도 일찍 잠들었다. 오늘 새벽의 깔끔함은 그렇게 이틀을 공들인 결과다.
일 때문에 벌려두었던 책상 하나를 아침에 접었다. 지난주 스터디 때 사람들이 풀어놓고 간 종이컵들도 치웠다. 거실이 조금 넓어졌다.
해야 할 일들이 많다. 3월에 시작한 사진스터디는 이달 말이면 끝난다. 몇 명 작게라도 키워낸 것 같아서 제법 뿌듯하다. 동호회 전시 준비로 에프상하이는 새롭게 분주하겠지만, 매주 토요일마다 나를 묶어두던 일정은 이제 없어진다. 도와주던 유학생 잡지도 거의 되었다. 앞뒤 표지사진부터 내부 이미지 사진까지 찍었고, 편집과 디자인까지 잡지의 모든 부분에 내 손때가 묻었다. 유학생 잡지여야 하니까, 내 이름은 어디에도 안 담기겠지만, 내가 밤새서 내가 만든 녀석이라고, 여기라도 자랑질을 해야겠다. 호부호형 못 한 홍길동의 마음이 이런 거였구나.
새 책공부나 꾸려야겠다.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학자들의 책으로 커리를 짜고, 1년쯤 되는 커리를 짜서 몇 사람 함께 읽어야겠다. 시작은 프로이드로 할까 싶다.
고양이같은 여자를 만나요. 혜림이가 일러주었다. 아, 여자는 여우와 곰 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고양이가 있구나. 감탄했다. 결코 침범할 수 없는 자신만의 우주를 갖고 있는 동물. 그런데도 옆에 머물고 있다는 존재감을 주는 동물. 아, 고양이라니. 주변에는 모두 곰같은 여자들이고, 나도 여우는 싫으니 곰같은 여자만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아, 고양이라니. 길고양이를 찾아 나서야겠다.
아침에, 단정해졌다. 열심히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9.05.20 21:21
블로그에 2009년 3월 30일 월요일에 쓴 글
"그 때 나와 지금의 내가 만나서 말싸움을 하면 아마 그 때 내가 이길 거야. 그 때는 내가 좀 셋잖어. 뭐, 지금의 나는 웃지 않을까? 그러면서 생각하겠지. 아, 저 녀석이 방향을 잘 잡아서 잘 커야 할 텐데."
"요즘은 생각해. 오직 모를 뿐.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 아는데 모르는 척 하는 것 같고, 정말로 진심으로 모르는 거. 그렇게 되는 생각을 해. 낮아지겠다는 다짐은 역시 아는데 모르는 척 하겠다는 뜻 같고, 정말로 내가 처음부터 가장 낮은 곳에 있었던 것처럼."
메신저에서 오랜만에 만난 지혜와 나눈 대화들. 처음 만난 것이 봄날의 학교 도서관 앞. 잎이 파랬고 바람이 따뜻했다.
"오빠는 생각 없이 지내서 참 좋겠어요." 지혜가 내게 건넨 첫 마디. 요즘에도 우리가 만나면 꺼내놓고 웃는 이야기. 내가 생각이 없나?
장비 잔뜩 지고 출장갈 때면, 서류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비행기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웠다. 나는 언제쯤이면 저런 단촐한 모습으로 길을 떠나볼까 했다. 한국 오고 갈 때 짐 부풀리는 걸 지독하게 피하려는 것도 어쩌면 그래서인 듯싶다. 출장을 빙자해서 놀고 쉬러 간다. 바닷가로 간다. 이번에는 카메라 장비 하나도 없다. 똑딱이 카메라 하나만 챙겼다. 노트북도 안 가져 간다. 이메일은 미리 자동답장 기능으로 설정해 두었다. 초대해 주는 사람 체면도 있는 거니까, 깔끔하게 입을 흰 셔츠 두 장, 그리고 이번 여름에 입으려고 사 둔 등산용 반바지, 책 한 권과 원고 뭉치. 맞다, 수영복. 쉬엄쉬엄 느리게 느리게 나른하게 햇볕에 널린 빨래마냥 널부러져 있다가 오려고 한다. 새벽에는 바다로 가고 저녁에는 수영장으로 가면서 물 속에 떠다니다가 와야겠다. 심심하면 책 읽고, 엽서도 쓰고, 또 원고도 써야겠다. 어쨌든 빨리 책이 되어 나와야 하는 거니까.
속도나 방향의 전환.같은 것.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바라는 것들. 눈 앞에 닥친 여러 상황에 대한 시원한 답들이, 널부러진 빨래 위로 내려와 앉아 주기를.
2009.05.20 21:20
블로그에 2009년 3월 29일 일요일에 쓴 글
흐린 일요일 오후
운동화처럼 신고 다니는, 비 맞은 구두에 약칠해서 그늘에 두었다. 대신 등산화끈 질끈 동여매고, 옷도 등산복 비슷하게 입고 쌀 사러 간다. 여행가는 기분으로. 마침 들고 나간 책도 김연수의 ‘여행할 권리’. 책 쓰는데 참고하라고 쥐루 누나가 보내준 책이다. 잘 나가는 소설가답게 작가는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재주가 좋다. 소소한 사건들을 씨줄 날줄 엮듯이 이어서 구성을 탄탄하게 하고 문장들은 재기 발랄해서 참 재미있다. 재미만 있는 줄 알았는데, 김사량이 중국으로 간 길을 따라 가는 다큐멘터리 이야기쯤에 이르면 작가적 사색의 내공도 드러난다. 좋은 책이고 많이 참고가 될 책이다.
근처 시장으로 가서 우선 김치찌개에 들어갈 마늘과 양파를 하나씩 사고, 옥수수도 하나쯤 사려다가 별로 좋은 녀석이 안 보여서 관둔다. 입구로 돌아나오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눈치보다가 어두운 계단으로 도망친다. 같이 안 놀아줄 모양이다. 비싸게 군다. 쌀집에서 그 중에 좋은 쌀 한 포대를 사서 어깨에 짊어지고 온다. 바쁘다는 핑계로 집에 쌀 떨어진 지 일주일이 넘었고, 며칠 동안 내 아침은 삼양라면과 짜파게티를 번갈았다.
에프상하이에서 만난 오래된미래.님이 월드비전 참가를 압박하셨다. 기꺼운 마음으로 하겠다 하겠다 하다가 오늘에야 등록한다. 내가 보내는 많지 않은, 그러나 적지도 않은 돈으로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어느 땅의 아이가 밥을 먹고 자라겠구나. 밥만 먹지 않고 어쩌면 공부도 하며 자라겠구나 싶다. 굳이 해외 아동이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나를 지독한 한국인으로 키워낸 한국의 민족주의 교육을 원망할 때가 있다고 답해야겠다. 나는 죽을 때까지 한국인으로 살겠지만, 내 다음 세대는 당당한 지구인으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어줍잖은 영토의 경계를 나누고 그 경계 밖에 있는 것들을 향해 날 세우는 것을 당연하게 가르친 교육은 사기다. 네가 버티지 않으면 경계 밖의 것들이 와서 너를 해치고 네 주변의 것들을 모두 가져갈 것이라는 내부적 협박이다. 교육은 그렇게 나와 내가 아닌 것들을 나누고 바깥 것들을 미워하게 가르쳤다. 도울 수 있다면, 내가 인지하는 공간의 가장 낮은 곳이 그 대상이 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우주인이 되지 못 하는 게 아쉬울 뿐이다. 해외 아동을 후원하는 일이 한 때 유행처럼 보인 적이 있다. 괜히 생각 없이 숟가락 하나 더하는 것 같아서 꺼리다가, 그런 유행이라면 얼마든지 해도 되겠다 싶어서 떠밀리는 마음으로 덜컥 신청했다. 자신에 대한 어떤 기대는 기꺼이 받아내기도 하고, 어떤 기대는 어쩔 수 없이 받아내기도 한다. 한 존재의 기대를 하나의 몸으로 받아내는 일은 무겁다. 집에서 풀 하나 키울 때도 그 풀이 제 온 생명을 내 보살핌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그 무게가 가볍지 않다. 이제 저 산 넘고 바다 건넌 어디에서, 한 아이가 내게 그 성장을 의탁하게 되었다. 아, 한 삶이 어떻게 다른 한 삶을 온전히 받아서 버티어 내나?
이 나이까지 자란 나를 보면 나는 참 많은 혜택을 받으며 자랐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제대로 배울 기회도 평등하게 나눌 수 없었던 부모님 세대만 보아도 그렇다. 배움에 대한 앞선 세대의 갈증들. 당신을 입을 것 쓸 것 아껴가며 내게 주신 것들이 얼마였던지. 덕분에 나는 잘 자랐다. 빌어먹으실 국경 이라는 틀 때문에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라도, 최소한의 기회는 있어야 한다. 그들의 삶을 그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간절하게, 그렇게 생각한다. 이미 있는 기회를 버리고 대충 살겠다는 것들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기회조차 가져본 적 없는 아이들이나 기회를 자각하지 못 하는 청년들을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 곳 유학생들에 대한 생각도 같은 선상에 있다. 그러니까 능력이 있는데도 대충 사는 것들이나 제 한 몸 살 찌우며 살겠다는 것들은, 좀 맞아야 한다. 어쨌든, 힘들게 지낸 몇 년을 지나 이제 이 정도 돈을 내 힘으로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이게 작은 일이 아니다. 이게 돌려주기.의 시작이 될 모양이다. 인터넷 뱅킹 클릭 몇 번으로 끝난 이 작은 선택이, 어쩌면 내 다음 삶의 방향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 더듬이가 그렇게 말한다.
2009.05.20 21:19
블로그에 2009년 3월 25일 수요일에 쓴 글
눈이 따끔거리는 아침
미리 약속을 했었다. 미팅 끝나고 연락 드리겠다고, 부르시니 가능하면 가겠노라고 했다. 미팅은 예정보다 한 시간 가까이 늦게 시작했고, 늦게 시작했으니 당연하게 늦게 끝났고, 집에 들러서 간단한 작업을 마무리하고 가겠다던 예정을 바꿔서, 남의 집에 너무 늦게 가는 것도 예의가 아닌 거니까 곧장 모나님 댁으로 갔다.
늦은 자를 위해 마련된 음식은 보기에 맛깔스러웠고 먹기에 편했다. 반가운 봄나물 달래가 두부와 함께 무쳐져서 상에 올랐고, 소담하게 담긴 잡곡밥 옆에는 깨를 갈아넣은 된장국?을 닮은 국도 있었다. 보기만해도 건강해질 것 같은 상차림에 연신 감탄했다.
두어 시간을 작정했던 잡담은 길어졌다. 온갖 차를 꺼내 마시며 온갖 음악을 바꿔 들어가며 온갖 이야기들을 이었다. 고흐를 좋아하는 건치 어린이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고, 원숭이와 얼굴 검은 할머니가 나오는 어릴 적 꿈에 대해 말하고, 도 닦은 사람들이 정말 공중부양을 할 수 있을지 가능성을 검토하기도 했다. 정치가 생활 속에 들어와야 된다는 이야기는 시작은 했으나 호응이 없어서 흐지부지했고, 홍콩에 출장 간 메튜도 잠시 이야기 속에 등장했고, 개그는 타이밍이라는 전제에 모두 동의한 후 실습도 했다. 몇 번은 성공하고 몇 번은 실패했다. 실패는 응징당했다. 에프상하이의 새 맴버들을 어떻게 좀 더 빠르게 식구로 만들 것인가 생각하는 척 하다가, 술을 많이 마셨던 한 때의 무용담을 들으며 찬 홍차 몇 잔 마시고 잠을 못 잤던 볼링장의 전설을 되불러 오기도 했다. 늦게 빈손으로 찾아간 손님에게 모나님은 씨디 두 장을 덜컥 주셔서 나는 득템.했다. 고흐의 별 쏟아지는 밤이 표지로 그려진 노트도 받았는데, 서로간의 암묵적 동의 하에 수첩 주인은 건치 어린이가 되는 것으로 했다. 온갖 종교를 불러내서 결국은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결론에 닿았고,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들을 해야 한다는데 공감했다. 아, 그것 말고도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등장하고 사라졌는지. 편집당한 이야기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이야기가 길어져서 새벽부터 촬영 들어가야 할 반군은 중간에 나왔다. 남은 두 분께, 참 고운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고맙다는 마음을 잔뜩 전했는데, 얼마나 닿았는지는 내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 것이다. 차마시며 노닥거리는 모임을 아예 정기 소모임으로 하자는 작당이 있었으나, 전개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다음에는 내 집에서 음악을 준비할 테니 마실거리 들고 오시라고 했다.
아, 잠 못 잔 아침의 뻑뻑한 눈이란.
2009.05.20 21:18
블로그에 2009년 3월 15일 일요일에 쓴 글
수육
아는 형의 부탁으로 사진 촬영을 도와주러 갔다. 형의 여자친구분이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에 올릴 주얼리 사진이었다. 주얼리 사진은 워낙 전문적인 분야인데다 나는 그 쪽 전문이 아니니 애써 나설 것은 아닌데 뭐 쇼핑몰용 사진이니 크게 부담가질 것은 없었다. 촬영을 도와주고 리터칭 방법도 간단하게 일러주었다.
고맙다는 뜻으로 그 분은 수육을 삶아서 내어 오셨는데, 이른 점심을 먹고 한참을 아무 것도 목 먹은 속은 쓰릴 정도로 아팠고, 허기진 속을 채우려고 얼른 몇 개 먹고 나니 이상하게 속이 더 아팠다. 빈 속이이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오랜만에 수육을 제대로 먹을 기회였는데, 못 먹고 물러 나와야 하는가. 아 저 산처럼 쌓인 흰 비계덩어리여. 멀구나.
속이 점점 더 아파서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먼저 간다고 하고 나왔다.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데 느낌이 이상하다. 속이 쓰린 거랑은 어째 좀 다른 느낌. 설마? 지하철역까지 가볍게 뛰었다. 아, 체한 거구나. 너무 급하게 먹었구나. 아, 새우젓의 빈자리가 크구나.
집까지 오는 동안 가볍게 뛰고, 와서 소화제 먹으니 잘 때쯤에는 속이 편해진다. 자려고 눈 감으니 두고 온 수육이 아른거린다.
내 치열하고 슬픈 지난 주말 이야기다.
2009.05.20 21:15
블로그에 2009년 3월 12일 목요일에 쓴 글
어제는 종일 비가 왔다. 머무르는 비가 아니라 한 번 쏟아지고 말 비라서 종일 제법 세차게 왔다. 일기예보에는 오늘도 비가 온다고 했는데 새벽 나절에 비는 그친다. 하늘은 여전히 낮고 흐린데 빠르게 흐르고 바람도 세차게 부는 걸 보니 비는 더 안 올 모양이다. 그냥, 느낌이다. 바람이 좋아서, 외장하드에 들어있던 음악 꺼내서 듣는다. 컴퓨터로 음악을 들으면 포토샵 속도가 느려지고 또 따로 엠프도 있으니 굳이 그럴 필요도 없어서 최근에 컴퓨터로 음악 듣는 일은 잘 없다. 대학교 입학하고 부터 조금씩 긁어모아둔 음악이니 제법 십 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음악들이다. 내 또래도 안 듣는 옛노래들부터 최신 유행곡 월 별로 모아둔 것까지 제법 있다. 역시, 음악 들으며 글을 적으면 도대체 방향을 잡을 수가 없구나.
음악여행 라라라. 무슨 개그도 아닌 것이 음악프로그램이라고 하는데 요즘에 꼬박꼬박 챙겨 본다. 손지연.이라는 가수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알았고, 적우의 얼굴도 여기에서 처음 봤다. 강호동의 무릎팍도사. 이후로 기존 프로그램들이 개그쇼의 형식을 도입하는 듯한데, 어색할 것 같던 장면은 예상보다 훨씬 성공적인 듯하고, 가수를 불러놓고 노래 두어 곡 듣고 어색한 말 몇 마디 웃긴 척 하고 다시 노래 듣는 이 프로그램도 그 연장선에 있다. 진행방식은 그만그만한데, 불러세우는 가수들이 좋아서 그만하면 됐다 싶다.
이제는 떠나온 지 제법 된 내 작업실에는 낡고 큰 스피커가 네 귀퉁이에 있었다. 스피커보다 더 낡은 엠프도 있었다. 나보다 앞서 있었던 것들이다. 사람 귀가 간사하다는 것을 작업실에서 알았다. 그 낡은 것들에서 나와 나무 바닥을 울리며 내 귀에 닿던 소리는 컴퓨터 스피커의 그것과 비교도 안 되는 풍성함이었다. 2년 가까운 작업실 생활을 마치고 나왔을 때, 컴퓨터 스피커 소리는 귀가 아파서 얼마 들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미친 척 앰프를 샀다. 지름신의 가르침이 언제나 그렇듯, 처음에는 그저 저럼한 걸로 구색만 맞추면 되지 했던 것이 알아보는 사이에 점점 높아지고 높아져서 밥값 방값 걱정하던 그 때에 덜컥 분에 과한 앰프를 들였다. 내 집 거실의 절반을 차지하고 앉은 앰프와 스피커, 그리고 몇 장의 씨디들.
음악은 그저 작업하는 동안, 딴짓하는 동안 배경처럼 흐르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앰프 사고 스피커 사고 씨디도 몇 장 사면서 알게 된 것은, 음악은 그냥 음악만 듣는 거다. 진공관을 예열시키고, 음악을 고르고, 따뜻한 물 한 잔 따라 와서 적당한 거리에 자리 잡고 앉아서 음악 들으면, 좁은 거실에서 새로운 공간이 열린다. 아, 음악은 행복한 것이구나, 싶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음악에 대한 내 이해가 사진이나 문학에 대한 수준만큼 되었더라면 나는 하루 종일 음악을 듣고 살았을 테지만, 아직 얕고 얕아서 도대체 모를 음악이 많다.
어떤 날은 문득 깨닫는 날들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깨닫기도 하고 저녁 잠자리에 누워서 불끄고 깨닫기도 한다. 무엇을 깨달은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아, 내가 자랐구나 싶기도 하고 나를 둘러싼 껍질의 한 쪽이 깨어져 나가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흐리고 대지는 젖어 있고 바람이 세게 부는 날, 나는 조금씩 자라는 나를 느낀다. 아름다운 봄날의 흐린날이다.
새벽에 일어나 메일 열었는데 호텔 촬영 의뢰가 왔다. 포트폴리오와 견적을 보내고 서로 의견을 조율하고 눈치를 살펴야 하니까 의뢰가 촬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완벽하지 않다. 그래도, 하나 둘 오는 연락이 반갑다. 이번엔, 티엔진이다.
새벽 맑은 정신에 적어두는 이런 주정같은 메모라니.
2009.05.20 21:15
블로그에 2009년에 쓴 글
새벽 자전거는 들릴 듯 말 듯 콧노래 흥얼거리며 간다.
봄처녀 제 오시네.
색동옷을 입으셨네.
봄과 처녀를 떼어놓을까? 아니면 봄처녀라고 붙여둘까? 떼어놓자니 두 단어의 개별성은 선명해지고 개별성의 두 단어 사이에서 생겨나는 관계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것 같다. 단어 둘을 붙여서 ‘봄처녀’라고 쓰면 새로운 존재의 탄생이다. 봄은 잡스러운 기운들이 새롭게 태어나는 계절이니까, 봄처녀가 좋겠다. 자전거는 어디쯤 와서 흩날리고 있을 봄처녀 색동 저고리 보러 바닷가로 간다.
봄은 떠나온 곳으로부터 온다. 대학시절 봄은 고등학교 너른 운동장을 몰아 다니는 모래바람이었고,바다 건너에서 맞는 봄은 고향 바닷가에 부는 비린내다. 봄에는 떠나온 모든 것이 그립고 봄바람은 가슴에 사무쳐서 이 계절을 지나는 일은 위태롭다. 위태로운 봄은 사태처럼 올 것이다. 한 번 두 번 신호를 보내다가 한 순간 와락, 덮쳐 올 것을 안다. 봄에 그리움은 꽃처럼 핀다. 아침 일곱 시 반, 집을 나선 자전거는 수주허를 따라 와이탄으로 가서 황포강을 건너는 배에 오른다. 주말 아침이라서 출근시간인데도 배는 제법 널널해 보인다. 자전거가 강을 건너가는 비용은 1.3원.
푸동으로 건너온 후 지도는 당분간 보지 않기로 한다. 저 동편 끝에는 너른 바다가 있다. 나침반 하나만 보며 가는 길, 개별 길들은 이름을 잃었다. 다만 방향성만 있는 길 위에서 자전거는 봄맞이 산책을 간다. 속도계도 보지 않기로 한다. 겨울용 자전거 복장도 벗어 던지고 가볍게 입고 나선 길, 지도를 포기한 자전거 앞에 지도에 나오지 않는 좁은 골목이며 흙길이 나와서 당황스러움과 경이로움을 동시에 준다. 시내를 벗어난 곳에서 간단한 음료수와 쵸코바 하나로 허기를 달랜다.
골목길과 번듯한 차도를 번갈아가며 네 시간을 달려서 자전거는 바닷가에 닿는다. 三甲港산지아강. 마음 속 목적지로 두었던 곳이다. 몇 년 전에 버스를 타고 왔던 곳인데, 특별히 볼 것이라고는 없는 누런 바다라는 기억만 있다. 그 ‘별 볼 것은 없는 것’이 보고 싶어질 줄 몰랐다. 살아가며 보면 그런 때도 있다. 아무 것도 보지 못 하고, 한참이 지나서 보이는 것들이 있다. 아무 것도 보지 못 했고, 한참이 지나도 보이지 않는데, 어쩌면 보았었구나 싶은 기억의 흔적만 남는 때도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은 다만 보지 않으며 지나온 것들이었다. 무서워서 피하고 피했다는 사실이 다시 무서워져서 감추고 만다. 보이는 것들이 보이는 대로는 아닐 것이다. 산만큼 커 보이는 화물선도 수평선 끝으로 멀어져 가면 점으로 보일 듯하고, 저 끝에 한 점도 눈 앞까지 오면 태산만큼 클 듯하다. 도대체 모를 길 위에서 자전거는 방향을 잃고 다만 가는 것인데, 여정이 길어지면 자전거의 길은 결국 사람의 안으로 이어지는 모양이다. 자전거 여행자들의 목적지는 결국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그 어디쯤이다.
이른 봄빛 아래 자전거를 세우고 바닷가 둑에 누워 낮잠도 잔다. 바닷가의 낮잠은 깊지 않아서 바람과 소리가 옅은 잠 속으로 들어온다. 멀리에서 지나가는 큰 배는 느리고 낮은 울음소리를 낸다. 항구에 정박하기를 기다리는 화물선들이 바다 가운데 떠 있다. 봄도 저기 어디쯤에 떠서 곧 이 땅에 닿을 것이다. 바다는 그 가운데 뜬 배와 그 앞을 지나는 작은 배와 물의 끝에서 그 배들을 바라보는 사람까지 모두 담아서 다만 넓고 깊어 보인다. 사람들은 서로 가까이 앉아서 마주보지 않고 멀리 먼 곳을 함께 본다. 그 자세로 오래들 있는다.
쓰고 있던 고글을 벗으니 부신 하늘이 푸른 것을 알겠다. 오늘 하늘이 파랗다. 깊게 푸른 것이 아니고 성글게 푸르다. 순수하고 고집스럽게 푸른 것이 아니고 온갖 것들 오는대로 모두 받아준 푸른색이다. 그래서 저 빛깔 하늘 속에는 온갖 것들이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고향 뒷산에 지천으로 핀 봄나물 같은 하늘이다.
길게 한숨 자고 통과의례처럼 사발면 하나 먹고 난삽하게 가지 친 감정들을 쳐낸다. 바닷가의 감정들을 그대로 끌고 도시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먼지가 곱게 앉은 버스 종점의 편의점에는 사발면 먹는 동안 버스가 안 들어 오기를 빌어야 한다. 아, 라면은 다 익었고 저기 버스 온다. 흙먼지를 날리며.
아침에 탔던 배를 다 저녁에 타고 되돌아 간다. 시내로 들어오며 자전거는 다시 생활들 속으로 들어왔다. 채소 봉지를 들고 집으로 가는 자전거들과 오토바이들 속으로 자전거는 간다. 오전에 맑던 하늘이 흐려진다.
바퀴 구른 거리 91km
2009.05.20 21:13
블로그에 2009년 3월 11일 수요일에 쓴 글
# 1
새벽에 버스는 아직 오지 않을 모양이다. 첫 버스를 기다리는데 풀숲에서 고양이가 운다. 작고 불안한 소리로 운다. 쪼그리고 앉아서 부르니까 회색털 고양이가 온다. 사람 손에 길러졌던 모양이다. 주저주저하다가 와서는 내 주변을 돌면서 몸을 비빈다. 아직 새끼다. 만져보니 목줄도 있다. 아, 사람 집에서 살았었구나. 어떻게 할까 하다가 목줄이라도 풀어주어야 할 것 같아서 만져보는데 어떤 방식으로 잠긴 것인지 잘 안 풀린다. 고양이는 장난치는 줄 알고 손가락을 깨물고 무릎 위로 올라와 배를 보이며 눕는다. 발톱 때문에 바지 여기저기가 상처난다. 안 된다. 이 놈아.
가만 보니 풀숲에 노란, 조금 덩치가 큰 녀석이 하나 더 있다. 이 녀석은 제법 사람을 경계하고 다가오지 않는다. 회색 새끼 고양이가 노란색 고양이를 따른다. 집 나와서 여태껏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에 그런 사연이 있었던 모양이다. 새끼 고양이는 노란색 고양이와 나 사이를 오고 가며 바쁘다. 고양이가 울면 풀숲 안으로 들어갔다가, 내가 손짓하고 부르면 무릎으로 올라온다.
버스 오는지 보는 사이에 노란색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간다. 이리 오라고 부르니 새끼 고양이는 몇 번 뒤돌아보며 멈칫거리다가 이내 노란 고양이를 따라 갔다. 갈등 끝의 결심 같은 걸 본 것 같다. 좋은 길잡이를 만난 고양이가 잘 살기를 빈다. 아, 끊어주지 못한 목줄이 아쉽다.
버스는 오지 않는다. 택시비가 아깝지만 어쩔 수 있나. 새벽 택시는 빠르다. 새벽 고가를 달리는 쾌감으로, 택시는 한 낮의 갈증을 달랠 모양이다.
# 2, # 3
난징루를 따라 끝까지 가면 그 곳에서 지하도를 통해 와이탄 강변에 갈 수 있다. 고흐의 그림들이 잔뜩 걸려있는 지하통로는 아마 그 옆에 있는 네덜란드 은행에서 돈을 댄 모양이다. 여기 지하도를 지나며 여기 그림들을 볼 때마다 이 그림들을 촬영한 사진가가 궁금해진다. 사진들은 고흐의 붓질을 최대한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 일반적인 그림 촬영 조명과는 다른 방식을 택했다. 전체 밝기를 유지하는 동시에 측면에서 강한 하이라이트 광원을 써서 고흐의 붓질은 사진 속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실력있는 사진가의 잘 찍은 사진이다. 김훈의 문장이 그런 것처럼, 고흐의 붓질은 그의 숨을 갉아서 캔버스에 뿌려둔 것같다. 그래서 마침내 더 갉아낼 숨이 없을 때, 고흐는 죽었는지도 모르겠다. 고흐의 그림같은 사진을 찍겠다고 벼른 게 몇 년인데, 게으른 사진가는 그럴 능력도, 용기도 없다. 나는 길게 살고 싶다.
# 4, # 5, #6
공사현장은 일찍부터 움직인다. 벌판에 높이를 쌓고 또 허물고 다시 쌓는 일은 도시에서 익숙한 풍경인데, 상하이는 그 익숙한 것이 너무 많아서 마치 상하이의 특징적인 모습인 듯하다. 초봄 아침에 바람은 아직 거세고 기온은 찬데, 노동자들의 작업복과 헬맷은 어찌나 원색으로 찬란들 하신지.
28mm 화각은 마음에 든다. 사진은 시원하고 통쾌하다. 그래도 자꾸만 비겁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45mm의 화각은 어려웠지만 비장했었다는 감상같은 것. 그래도 28mm를 계속 써야겠다. 쉽고 경쾌한 화각이다.
2009.05.20 21:12
블로그에 2009년 3월 6일 금요일에 쓴 글
살아가는 일이 팍팍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버티듯 사는 하루는 힘겹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앞을 막아선다. 나는 왜 태어나서 이 세상을 버티며 있는 것일까? 나이 들어가는 아들의 반쪽을 걱정하는 어머니께 푸념처럼 물었던 적이 있다. 한 몸도 거추장스러운데 제 발로 걸어 어디를 가란 말인가.
"어머니, 이 험한 세상에 또 아이를 낳아서 살게 해야 되나요? 사는 건 힘든데 그냥 나 하나로 그 어려움을 그치면 안 될까요?"
"여봐, 아들. 고생이라니? 생각해 봐. 네가 살아온 날이 고생이었어? 얼마나 재밌는 일이 많았는데! 아이를 낳아서 이 험한 세상을 또 겪게 한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이 재미난 세상을 살게 해주겠다고 생각해야지."
아, 어머니는 위대하다. 겨우 서른 생을 살아온 아들은 찍 소리 못 하고 두 손 든다. 그래, 살아온 날들은 얼마나 빛나는 하루들이었던가. 나는 그 빛들 속에서 또 얼마나 속으로 빛나며 나를 채워 왔었나. 이 신나고 재미난 세상을 나 혼자만 누릴 것은 아니구나. 살면서 내가 배우고 느낀 재미를 내 아이에게 알려주어야겠구나.
대부분의 일들이 양면성을 갖지만, 어떤 것들은 의심할 것 없이 마냥 아름다운 것도 있다. 사랑도 그 중에 하나다. 짝사랑의 설래는 마음도 좋고, 갓 시작된 풋풋한 마음도 좋다. 가까워질 듯 여전히 그대로인 거리를 재는 긴장감도 좋고, 농익은 질척함도 좋다. 빛 바래가는 건조한 느낌도 나쁠 것 없고, 큰 자리 비어버린 뻥 뚤린 허전함도 뭐 거쳐야 할 것이다. 또래 친구들 중에 사랑에 대해 무덤덤한 녀석들을 보면 내 마음이 가빠진다. 아, 두 번 사는 세상 아닌데, 도대체 무얼 하고 있나.
삼 주째 내리던 비가 그친다. 살짝살짝 그친다. 올듯 안 올듯 비가 그치고 날듯 말듯 햇빛도 나온다. 그렇게 봄이 올 모양이다. 나는 잘 쉬었다. 깊은 잠을 자고 영화도 보고 이런 저런 생각도 했다. 몸이 부드러워지고 정신은 말끔해졌다. 새로 검도를 시작했는데 칼을 휘두르는 근육은 많이 비어 있었고, 대신 빈 속에서 소리는 야무지게 뭉쳐 나왔다. 마침 일거리도 안 들어와서 아무 긴장도 없었다. 날 개이니 하나둘 작업 연락도 온다. 일요일에는 비가 안 온다면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멀리 나가보아야겠다. 토요일에 있을 사진스터디는 일찍 마쳐야겠다. 일요일을 위해. 그리고 만약에 비가 오면, 멀리 친구가 보내온 편지 한 통과 답장 쓸 종이 몇 장 들고 어디 편한 자리라도 찾아 나가야겠다.
사랑하자.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2009.05.20 21:11
블로그에 2009년 2월 21일에 쓴 글
새 카메라는 시그마에서 만든 무늬만 똑딱이 DP1이다. 새로 샀다.
내 밥줄로 쓰고 있는 SLR이 갖는 몇 가지 단점을 극복해보려는 시도다.
3년 넘게 일상적으로 45mm 화각을 써 왔다. 멀리 있는 것을 당기지 못 하고 가까이 있는 것을 밀어내지도 못 하는 화각이어서 이 랜즈를 쓰는 동안 나는 피사체 앞에 정면으로 마주서는 연습을 했다. 이집트인들이 그려내던 정면의 그림들처럼, 렌즈는 피사체를 보기 좋게 포장하지 말고 단지 본질 앞에 서기를 요구했다. 스며들기도 했고 덥쳐들기도 했던, 본질을 보겠다는 시도는 많은 부분에서 실패했다.
새 카메라는 28mm 고정 화각이다. 광각이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넓게 보이고 멀게 보인다. 코 앞에 섰던 피사체가 저만치 물러나며 나와 피사체 사이에 있었으나 보이지 않았던 공간을 도드라지게 한다. 작은 카메라를 쓰는 것도 처음이고 광각을 주로 구사하는 것도 처음이라서 카메라는 손에 잘 안 익는다. 작은 새 카메라가 내 손에 익숙해지고 28mm 화각이 눈에 익는데는 제법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낯선 것과 만나서 익숙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을 긍정해야 한다. 부대끼는 어색함과 불편함도 시간이 지나는 동안 맞아갈 것을 알고, 그 곳까지 가는 시간의 길이도 자연스러운 것을 알겠다. 다만 익숙하던 것이 멀어지는 데 걸릴 더 긴 시간도 함께 긍정할 수 있기를 빈다.
2009.05.20 21:10
블로그에 2009년 2월 20일에 쓴 글
내가 사는 집 씽크대. 한 끼 식사에 그릇은 하나씩. 더 쓸 그릇이 없을 때까지 설거지 미루기.
요 며칠은 하는 일 없이 논다. 논다.기 보다는 빈둥거린다. 노는 것만도 못 하다. 여기 저기 사이트나 뒤적거리고 다른 사람들 블로그나 둘러 다닌다. 지나간 쇼프로그램도 보고 책도 몇 장 뒤적거린다.
베토벤바이러스.드라마를 대충 돌려가며 다시 봤다. 대사 중에,
"버나드 쇼가 죽을 때 이런 말을 했어.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뜨끔.했다.
돈 버는 일이 많이 없다고 기죽어서 늘어져 있지 말아야겠다. 돈 버는 일이 많이 없으면 그 만큼 시간이 남고, 그 시간에 돈 안 버는 일이라도 하면 된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오늘을 후회하게 된다면, 돈을 못 벌어서 후회되는 시간이 아니라 채우지 못하고 빈둥거리며 성글게 보내버린 시간이기 때문일 테다. 좀 더 바지런하게 책도 보고 사람도 만나고 사고도 쳐서 풍성한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글도 부지런히 쓰고 사진도 신나게 찍어야 한다. 우물쭈물하면서 보내면 안 된다.
낙서처럼 적어두는 걸 보니 이 글은 며칠 지나서 지우겠구나.
왜 쓰나?
2009.05.20 21:07
블로그에 2009년 2월 19일에 쓴 글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진행형일 겁니다. 한 사람 보고 느끼는 호감부터 시작해서 만나고 사랑하고 싸우고 서먹하고 다시 화해하고 또 사랑하고 나중에 헤어지고 헤어진 다음에 그리워하고 후회하고 그러다가 잊고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나는 것까지. 그 시간들을 빼고 나면 깨어있는 시간이 참 짧을 것 같습니다.
2009.05.20 21:03
블로그에 2009년 1월에 쓴 글
아마 대통령 경호원들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다. 그들은 아침마다 깨끗한 속옷으로 갈아입는다고 했다. 매일이 생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만약에 오늘 죽어서 누군가 내 죽은 몸을 치워내게 될 때, 깨끗한 몸으로 보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아저씨 속옷같은 하얀 속옷은 비장한 각오와 잘 섞여 보이지 않았지만 그 하얀 색깔은 그들의 뜻과 맞아 보였다.
긴 여행이나 무모해보이는 여행 앞에서 나는 매번 뒤돌아본다. 집 나서기 전날에는 설겆이도 하고 사방에 널린 옷들도 제법 정리하고 쓰레기도 비워내고 집안도 정돈한다. 겁나서 그런다. 내가 다시 이 곳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 싶어서 그런다. 여행 떠나기 전날에는 매번 새 여행을 후회한다. 왜 떠나겠다고 했을까? 지금이라도 다시 짐을 풀고 앉으면 안 될까? 싶다. 꾸려놓은 짐들과 뱉어놓은 말들에 떠밀려서 내 여행은 시작된다. 출발하기 전날의 두려움은 익숙해질 듯한데 매번 낯설고, 다만 두려움에 주저하는 내 모습만 친근하다. 만나고 헤어질 때, 머물다가 떠나갈 때 내 지난 모습이 가지런하게 보였으면 좋겠다. 여기 저기 사방 흩어둔 난삽함 말고, 가지런하고 분명한 선들로 남았으면 좋겠다.
여행이라고 떠나는 것이 오랜만이다. 긴장하며 떠나는 여행은 몇 년만이다. 짧은 여행이 될 것인데 한참만에 가는 것이다 보니 마음 속에서는 더 길다. 일주일쯤 전에 가려던 것인데 날씨가 맞지 않아서 이제야 간다. 새벽마다 일어나서 하늘을 보고 다시 눕고 다시 눕고 했다. 짐은 대충 꾸려 두었다. 상하이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황푸강의 발원지로 간다. 강의 발원지라는 목적지는 별 의미 없다. 다만 어디든 가야했고 그래서 어디든 찍은 것이다. 자전거는 새벽 지하철을 타고 상하이의 남서쪽 외곽으로 가서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과거 황푸강의 발원지로 알려졌으나 이제 아닌 것으로 알려진 딩정호가 1차 목적지다. 아마 서너 시간이 못 걸릴 것이다. 거기서 다시 서쪽으로 가면 태호에 닿는다. 아마 점심 시간쯤일 것이다. 태호는 장쑤성과 절강성을 나눈다. 다시 남서쪽으로 국도를 타면 절강성 후조우에 닿는데, 느긋하려면 이 곳에서 하루 묵을 것이고, 마음이 쫓기면 더 가서 안시까지 갈 것이다. 안시에서 목적지 용왕산까지는 다섯 시간쯤 걸릴 것이다. 국도도 아니고 성도도 아니고 현도에 해당하는 길이라서 길사정이 좋지는 않을 것이고, 산을 향해 가는 길이니 경사도 있을 것이다. 도착 시간에 따라 당일 등산하거나, 산 아래에서 묵은 후 3일째 되는 날 등산하려고 한다. 1500미터가 넘는 산인데, 이 산 어디쯤에서 황포강은 발원한다. 하산한 후에는 최대한 수월한 방법을 찾아서 상하이로 돌아올 것이다. 자전거를 담을 수 있는 전용가방을 따로 가져간다. 자전거의 앞바퀴와 뒷바퀴를 빼면 들어가는 크기다. 아마 가까운 항주까지 자전거로 간 다음 상하이로 오는 기차에 자전거를 실어 오거나, 운이 좋으면 산 아래에서 상하이행 관광버스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행은 꽉 찬 3일쯤 걸릴 것이다.
지내다 보면, 여행이 고플 때도 있고, 여행이 절박할 때도 있다. 절박한 여행을 한참동안 미루어오다가, 내일 간다. 나는 건강하게 돌아오겠다.
2009.05.20 18:48
새 시대의 새 흐름에 동참하려고 블로그로 갔었다. 글로벌한 흐름에 동참하겠다고 구글 블로그 서비를 쓰기로 했다. 잘 움직이던 블로그는 중국에서 접속을 막아서 이제 여기서는 안 보인다. 블로그를 쓰며 여기 사이트가 거의 버려진 듯했는데, 겸사겸사 잘 되었다.
돌아올 수 있어서 다행이다. 돌아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시간들도 많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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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짧은 글 모음
2008.12.29 12:00
군대 제대 후 처음 디카를 사고, 심심해서 시작한 연말 인사가 이제 일곱 해 되었다. 해마다 들어간 내 사진들 보면 내가 변한 것을 알기도 하고, 또 내가 여전한 것을 알기도 한다. 한 명 한 명에게 보낼 생각을 하며 한 명마다의 이야기를 생각한다. 한 명도,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블로그.를 만들었다. 내년도 올해처럼 살면 끝장이겠구나.라는 절박한 마음이다. 이 사이트를 좀 더 사진가.다운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문장.을 빼낼 작정이다. 문장과 인터액션. 게시판을 없애고, 그 부분들을 블로그로 옮겨가려고 한다.
포트폴리오 사진을 제외하면 여기에 올라오는 사진은 거의 없는 셈인데, 내년에는 아포리즘. 게시판에 꼬박꼬박 진지하게 작업한 새 일상의 사진들을 올리려고 한다.
이 사이트를 리뉴얼하던 2년 전의 마음 그대로, 여기에서는 사진.만으로 이야기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내 블로그.
2008.12.24 00:20
1.
중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서울 동생집에 머물렀다. 시험기간이라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동생이 와서 깨웠다. 새벽 세 시가 지나 있었다.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병원 계신 모습을 보고 올라온 지 이틀 만이다. 면도하고 옷 차려입고 나왔다. 새벽에 바깥 바람은 찼다.
2.
외할아버지 핏줄은 어머니 밖에 없다. 외할머니는 어머니 어려서 벌써 돌아가셨고, 어린 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그도 얼마 못 자라 죽었다고 했다. 아침에 도착한 영안실에, 어머니는 앉아서 울고 계셨고 아버지는 독경하고 계셨다. 동생과 함께 절하고 나오니 아버지께서 울고 계셨다. 고집스런 외할아버지께 가끔 삐뚠 소리 하신 것이 가슴을 친다고 하셨다. 무남독녀인 어머니를 도와 아버지도 상주가 되셨다.
철 들고 처음 상복을 입었다. 나는 백관이 되었다. 상복. 그 얇은 옷 한 겹이 무겁다. 피의 무게다. 나를 이 땅에 보내고 또 내가 이 땅에서 이어가야 할 무게를 실감한다. 상복. 새 옷 냄새가 난다.
3.
내 기억의 시작에서부터 외할아버지의 한 쪽 다리는 불편했다. 내 기억의 시작에서부터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였으므로, 나는 할아버지의 불편한 다리가 할아버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열 살쯤 되었을 때, 논두렁에서 떨어져 구해주는 사람 없이 몇 시간을 찬 논두렁에 방치되었던 할아버지는 그 뒤로 여든 생 동안 반신을 불편하게 쓰셨다고 한다. 외할머니는 어머니가 다섯 살 때 돌아가셨다. 그리고 외할아버지는 외증조할머니와 함께 사셨다. 외증조할머니는 내가 겨우 기억이나 할 무렵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외할아버지는 혼자 사셨다. 차근차근 외할아버지의 삶을 되짚어 보면, 그 한의 크기를 재려다가 지쳐 넘어진다.
영정 사진 속에서 할아버지는 깔끔하게 걷어 올린 머리 스타일이다. 살짝 보이는 흰머리카락도 균형이 좋다. 왼쪽 어깨를 높이고, 굳게 다문 입. 체크 무늬 모직 넥타이와 스트라이프 재킷. 메인 조명이 왼쪽 위에서 내려 오고 반대편 조명이 부족한 밝기를 채우고 있다. 이미 오래 전에, 할아버지께서 이 사진을 찍으시러 가던 날을 기억한다. 할아버지께서는 절뚝거리시며 한참을 걸어서 드물게 오는 시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가 이발하시고 면도하시고 옅은 갈색이 퍼져나가는 배경지 앞에 앉으셨을 것이다. 카메라 앞에서 할아버지는 어떤 표정을 지으신 것일까. 기어이 살아낸 일생을 통째 밟고야 말겠다는, 나는 결코 생에게 패하지 않겠다는 각오 같은 것일까. 힘이 다해 갈 때, 저 사진 한 장으로 할아버지는 든든할 수 있으셨을까?
4.
시작부터 끝까지, 어머니는 서럽게 우셨다. 살아오는 동안의 한의 무게만큼 울음은 무겁고 깊었다. 곡소리는 어떤 해방. 같았다. 쌓이고 쌓여서 그 개개의 형태가 뭉개져버린, 인간의 말이 되지 못한 온갖 부정의 감정들이 비로소 풀려나는 소리 같았다. 밖으로 울어야 할 마지막 핑계가 되어주었던 혈육을 보내고, 이제 남은 삶 동안 어머니는 속으로 우실 모양이다.
5.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문상 오셨다. 노구를 이끌고 와서 두 번 큰 절하고 작게 한 번 절 했다. 늙은 몸은 엎드리기 위해 엎드린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이 걸렸고, 일어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굽혀지지 않는 노구를 무릎 꿇고 엎드리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발인 날 새벽에 꺼지는 향을 갈아가며, 부조함에 들어온 봉투들을 꺼내 정리했다. 노트를 펴서 봉투에 적힌 이름을 옮겨 적고, 봉투 안에 든 만원 짜리를 세어서 이름 옆 칸에 적었다. 날 밝아서 발인 전에는 영안실 원무실에 가서 장례 기간 동안 사람들이 먹은 음식이며 온갖 비용을 정리했다. 카드 하나로는 한도를 초과해서, 어머니와 아버지 카드를 모두 받아 썼다.
6.
갓 태어난 아이들을 보고 돌아선 며칠만에 보는 죽음은 비현실적이었다. 아직 태지도 벗지 못한 피부와 검버섯 핀 피부는 아무래도 닮지 않았다. 이것이 변해 저렇게 될 것이라고, 배우지 않았다면 믿지 못 할 뻔했다. 저 피부가 이 피부가 될 때까지, 저 피부는 어떻게 되어갈까?
장례 기간 내내 카메라는 쭈뼛거렸다. 내 카메라는 아내의 죽음 앞에 춤 추었다는 장자가 되지는 못 할 것이다. 그 사체 앞에서 조리개를 조여나간 아라키도 못 될 것이다. 내 카메라는 참 작아야할 모양이다.
할아버지.
이제, 되었네요.
2008.12.24 00:18
어려서 누나는 아팠다. 멀리뛰기하다가 다쳐서 두어 달 아버지 등에 업혀 학교 다녔다. 그리고 사방으로 찾아다니며 치료 받아서 겨우 낳았다. 아픈 동안 다시는 누나가 누나의 두 다리로 설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갑자기 다쳤던 것처럼 갑자기 나았을 때 부모님은 우셨다.
다 자라서 누나는 아팠다.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했다. 큰 수술을 하고 매형이 병수발을 했다. 완치 판정을 받고 매형이 우셨는지, 또 부모님이 우셨는지 나는 모른다.
건강한 쌍둥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나는 백화점 1층 걷는 중에 들었다. 마음 졸였었는데, 마음 쓸까봐 심한 당부도 못 하고 그저 속으로 빌고 기다렸는데, 출산 후 기운 빠졌지만 건강한 누나 목소리를 듣고 백화점 1층에서 나는 울었다.
얼른 와서 조카들 사진 찍으라는 무언의 압박.
아이들은 흐리고 낮은 하늘의 세상과 첫 대면했다. 저 작은 것이 사람이다. 조리원에서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내게 안긴 아이는 초점 잡기 힘든 눈으로 사방을 살폈다. 그러니까, 이 아이는 세상에 태어난 존재의 가치를 고민하고 있는 것일 테다. 아직 익히지 못한 사람의 언어 대신, 전할 수 없는 언어로 어쨌든 무거운 고민을 시작한 것이다. 누나는 웃었다.
내년 한국에 갈 때는 예쁜 아기 신발 두 켤레를 사야겠다.
2008.12.04 21:39
쓰고 싶은 말들, 써야겠다고 다짐한 말들이 많은데 요즘은 왜 그리 글 쓰기가 어려운가. 메모지 한 구석에 아이디어만 적어둔 글도 있고, 컴퓨터 바탕화면에 몇 줄 적다가 그친 글도 있다.
어디 보자.
최근에 본 다큐멘터리 차마고도 2편, 오체투지를 보며 퍼다먹은 감동에 대해 쓰려고 했다. 유난스럽게 노란 은행나무 낙엽들을 말머리로 쓰려고 보아둔 게 며칠 전이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그 선험적 선언의 위험에 빠지기 쉽다는 이야기도 쓰려고 했고, 내 책읽기의 방식이 여러 권을 한 번에 섞어 보는 형태로 변했다는 이야기도 쓰려고 했다. 소비하는 사진과 생산하는 사진에 대해 생각한 메모도 있고, 내 책 원고 진도 안 나간다는 푸념도 쓰려고 했다. 아, 세계 경제 위기를 온몸으로 겪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구나. 누나가 쌍둥이 낳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백화점 걸어가다가 괜히 눈물이 나왔다는 이야기도 쓰려고 챙겨두었다. 어느새 연말이라는 이야기, 대학생들과 함께 꾸리려는 인문 책읽기 모임 이야기도 있다.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들을 하려고 했었다고, 이야기해버렸다.
오래 밀린 숙제 날림으로 끝낸 기분. 이제 나는 밀린 이야기 없다.
2008.11.26 06:41
새벽마다 창밖은 안개가 가득하다. 강 건너 저편의 아파트들은 흐리고 더 멀리에 있는 것들은 형체도 없다. 날씨가 제법 춥다. 외투 여미듯 생각들을 여민다.
2008.11.16 22:17
중국 자전거 여행을 처음 생각했던 때는 군대 가기 전이었다. 아마 북경을 출발해 상하이를 거쳐 광동에 이르는, 해안선을 따라 가는 중국 여행이었을 것이다. 어줍잖게 계획만 하는 듯 마는 듯하다가 실행하지 못 했다. 유학생 사회에 대한 책임감과 자전거를 탄다는 흥분이 더해져서 내년 여름쯤에 학생들을 모아 중국 대륙 횡단에 나설 계획을 세우고 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종혁이를 불러서 실무진을 꾸리라고 부탁했다.
맡은 일을 듬직하게 해내는 종혁이는 평소에 신뢰하는 아이다. 주문한 사항을 단지 수행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목적지를 알려주면 그 곳에 닿는 길을 직접 개척해가는 모습이 듬직하다. 실무진을 꾸리라는 부탁에 종혁이는 알음알음 아는 동료 셋을 우선 데리고 왔다. 수원이는 본인의 말에 따르면 준프로급으로 자전거를 타는 친구다. 자전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여행 루트를 짜고 여행단의 체력을 배려한 노선 조정 등을 총괄할 수 있을 듯했다. 현주는 여러 곳의 공모전에서 입상 경력을 갖고 있는, 이재에 밝은 학생이다. 기획서를 만들고 얼개를 짜는 일, 그리고 웹상에서 구현될 작업들에 어울릴 듯하다. 경훈이는 나를 제일 놀라게 한 친구인데, 온갖 서양 철학자들의 이름을 앞세우며 왔다. 웹진에 관심이 많다고 하니 여행단 준비에서 여행기간에 이르기까지 미디어와의 소통을 전담해 줄 수 있을 듯히다.
네 명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자극적이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맞은 나는 당황했다. 돌려보낸 후 생각하니 말도 행동도 서툴렀다 싶다. 나보다 몇 살 어린 친구들이라고 너무 얕보았다. 어차피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기획이니까, 나는 뒷방 늙은이나 할까 보다.
자전거를 산 후, 상하이의 자전거 클럽 몇 곳을 기웃거리고 있다. 함께 다녀보기도 한다. 맞는 클럽도 있고 아닌 곳도 있다. 지난 주에는 함께 책 읽고 공부하는 모임도 시작했다. 할 만한 모임이다. 매주 목요일 사진 강평 모임은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가서 딱 두 시간 강평하고 돌아오면 몸에도 마음에도 부담이 없다.
경훈이라는 친구는 두 현호를 생각나게 했다. 군대에서 내 후임이었던 윤현호.는 내게 제대로 된 책읽기를 알려준 친구다. 겨우 역사소설이나 몇 권 읽고 책 좋아한다고 자만하던 내게 현호는 정통 문학의 매력을 알려 주었다. 철학을 전공하고 사진을 공부한 후 지금은 예술 전반에 대한 기획을 하고 있는 사진 친구 김현호.는 언제나 내가 보고 배우는, 나보다 몇 걸음 앞서 있는 친구다. 두 현호를 생각나게 하는 경훈이라는 친구 앞에서 나는 참 소리 요란한 빈상자 같았다. 많이 배워야겠다.
책읽는 일을 다시 챙기기로 한다. 책을 읽는 과정과 읽은 책을 정리하는 과정은 닮은 듯한데 사실은 다른 성질의 작업이다. 다시, 읽은 책들에 대해 후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읽은 책에 대한 후기를 드러내는 것은 생각의 바닥을 고스란히 드러내게 만들어서 부끄러운 작업이다. 그래도 해야겠다.
2008.10.14 21:44
아침에는 파출소에 가서 거류증 연장 수속을 했다. 담당 경찰들은 이것 저것 물었다. 나는 말 하면 안 되는 것들을 요령껏 감추면서 질문의 조건들을 하나씩 채워 대답했다.
작업실에 나가서 사진 몇 장을 리터칭하고 어제 찍은 인터뷰 사진을 옮겼다. 리터칭한 사진을 잡지사로 전송하고 인터뷰 사진 중에 쓸 사진을 골라서 대충 만져 놓았다.
오후에 조계 지역에 사진 찍으러 가겠다던 계획은 흐지부지 되었다. 저녁 약속 전에 끝내기에는 조금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촬영 계획을 취소하고 나니 조금 모자라던 시간이 되려 많이 남았다. 장판에 배깔고 누워서 어제 인터뷰한 내용들을 컴퓨터로 옮겼다.
저녁에는 내일 촬영을 위한 사전 미팅이 있었다. 새내기 기자와 편집디자이너가 함께 왔다. 셋이 머리 맞대고 촬영 컨셉에 대해 회의했다. 시간 끌어봐야 답답할 것만 같아서 대충 총대 매고 정리해서 안심시키고 말았다. 어차피 사진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는 사진가에게 돌아온다. 칭찬이든 욕이든.
돌아와서 김광석 듣는다. 한참 같이 듣던 사람들이 생각나고 그 사람들과 어울리던 시간들이 생각나고, 그 때 꾸었던 꿈들이 생각났다.
하루하루는 분명한 구체성 위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두고 겨우 이렇게 적어 둔다.
2008.10.11 10:22
사람이 참 많다. 이만큼 보고 알겠다 싶었는데 저만큼 보면 나는 아직 모르겠고 이제 저만큼은 내 안에 넣겠다 싶었는데 또 그만큼 보면 나는 아직 좁구나 싶다. 사람도 많은데, 살아 있는 것들은 더 많고, 산 것들도 많은데 숨쉬지 않고 사는 것들은 더 많고, 그렇게 많은데, 내 의식 밖에 있는 것들은 더 많을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짐작할 뿐이다.
동경하고 공감하고 사랑하고 반대하고 미워하고 무시하고 또 잊는다. 꿈꾸는 대로야, 의식하지 못하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삶까지 내 안에 담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당치 않는 바람이란 것은 자명하고, 자명한 것을 넘어서 도저히 닿을 수 없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살아있는 것이 그렇게 오만하면 안 된다. 다만, 살아가면서 좀 더 많은 삶의 방식들을 긍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 살아갈 수록 고집만 생겨서 긍정하는 삶의 폭이 줄어드는 잘못을 저지를까 두렵다. 그 가치에 동의하고 마음으로 응원하는 삶의 방식에 그치지 않고, 비록 나와 다른 방식이고 내가 싫어하는 삶의 형태일지라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경계 너머에서 그 삶들을 긍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겨우 삶 하나를 앞에 두고.
2008.09.27 22:24
우시의 택시 기본요금은 8원이다. 우시는 상하이 옆에 있는 도시다. 최고속도가 시속 250km에 달하는 기차를 타고 50분 좀 넘게 간다. 그러니까 중국식으로 말하면 바로 옆에 있는 도시다. 우시에는 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이 있다. 기차역에서 출발한 기본요금 8원 짜리 택시가 딱 33원이 되면 하이닉스 정문에 도착한다. 먼 곳이다. 나는 앞으로 1년 동안 이 곳 공장의 노동자가 되기로 했다.
다른 촬영들에 비해 하이닉스 사보 촬영은 부담이 적다. 나는 몇 시간 신나게 노는 기분으로 사진 찍는다. 그리고 돈도 받는다. 오늘은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찍었다. 난생 처음 이상한 옷과 장갑과 신발과 모자를 걸치고 신이 나서, 공장 안에서 내 걸음은 빨랐다. 반도체를 생산하는 라인은 듣던대로 맑았고 생각보다 밝았다.
셔터질이 버거울 때가 있다. 셔터질이 인이 박힐 때도 있다. 셔터질이 여운으로 남을 때도 있다. 아침 열 시에 시작한 촬영은 저녁 다섯 시 넘겨 끝났다. 모처럼 날이 맑아서 저녁 하늘이 예뻤다. 촬영은 끝났는데 나는 카메라 집어 넣지 못 하고 돌아오는 길가에서 자꾸 하늘을 찍었다. 오랜만에 셔터가 참 가벼웠다.
중고 카메라 한 대를 구해서 아버지께 보내드렸다. 새 것 사드리고 싶었는데 그렇게까지는 여유가 없어서, 겨우 중고 카메라 하나 보내드리면서 생색도 못 냈다. 촬영 중에 아버지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는 대뜸 온갖 버튼의 기능들을 물으셨다. 아, 중고카메라는 설명서가 없지. 한참 장비 들고 이동하는 중이라 세세하게 알려드리지 못 하고 그저 "제가 세팅 맞춰 보냈어요. 우선 자동 모드에서 쓰시면 돼요." 했다. 다음 번 한국에 가면 아버지 모시고 촬영 특훈을 할까 보다. 아, 그런데 어쩌나. 아버지는 당신께서 나보다 사진 잘 찍으신다고 믿으시는데. 아버지, 그래도 제가 명색이 사진가인데요.
2008.09.21 22:23
행복합니까?
길 가는 사람마다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행복합니까? 바쁘게 걸어가는 회사원, 잘 차려입은 아가씨, 산책 나오신 노부부, 놀이기구 앞에서 울고 있는 아이, 식당 앞에서 배 두드리며 나오는 연인.
행복합니까? 물었을 때 주저없이, 또는 심사숙소해서 행복합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저들 중에 얼마나 될까? 어떤 상황이면, 어떤 기분이면 행복하다고 말해도 부끄럽지 않을까? 행복한 일이 얼만큼, 그리고 안 행복한 일이 얼만큼이니까 행복한.에서 안 행복한.을 뺀 값이 영보다 크면 그 때 행복한 것일까? 오늘 이만큼 고생해서 몇 년 뒤에, 몇 십 년 뒤에 나는 크게 행복할 테니까 그 행복 담보를 조금 끌어와서 지금 나는 행복한 것일까? 남들만큼 벌어서 남들만큼 쓰니까 남들만큼 행복한 것일까?
엉뚱한 물음이 대책없이 간절한 날도 있다. 나는 정말 간절하게 묻고 싶었다. 그래서 만약에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답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실은 숨겨둔 문제 하나를 더 묻고 싶었다.
행복합니까?
2008.08.25 17:04
오후는 고요하다.
새벽에는 비가 많이 오고 천둥도 치고 번개도 쳤다. 눈 감고 있는데도 감은 눈 앞이 번쩍거리고 화난 천둥이 창문 바로 앞에서 울어댔다.
오후에 비는 그치는 듯 마는 듯하다. 1년쯤 끌던 책도 초고를 마쳐서 출판사쪽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고, 지난 주에는 촬영도 제법 열심히 했다. 전공도 아닌 엉뚱한 것을 두 번이나 주문했던 보그.는 다행히 인터뷰 촬영으로 세 번째 주문을 해 주었고, 나는 마침내 해낸 것 같다. 상대적으로 이제 제법 익숙한 노블리스 촬영은 대충 한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하다. 처음이니까 더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더 많은 물량을 투입하고 더 큰 긴장감을 가졌다.
며칠 째 배달 못 하고 집에 있던 사진도 오늘 가져다 주었다. 받는 사람이 참 좋아해 주어서 주는 마음이 더불어 좋았다.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노트.는 한참 전에 사서 대충 한 번 읽어보고 기대 이하.라는 감상으로 아무 구석에나 놓아두었던 책이다. 어제 나가는 길에 작고 가벼운 놈으로 고른다고 골라서 가져갔는데, 원고 쓰고 나서 읽으니 그 책이 다르게 읽힌다. 옛 사람들은 말도 많이 안 하고 UCC도 안 찍고 또 사진도 안 찍고 이메일도 안 써서, 글은 자신을 드러내는 가장 완성된 재현물이었던 듯하다. 그래서 옛사람은 문장 앞에서 결사적이다. 책 두어 번 더 읽고, 미뤄두었던 두 번째 퇴고를 시작하려고 한다.
밀린 일들 대충 처리된 오후는 고요하고 편안하다. 나는 영화나 한 편 때리고, 생수통 배달 오면 받아둔 다음에, 라면 하나 끓여 먹은 후 제대로 돈 벌 궁리를 하려고 한다.
2008.08.18 20:31
며칠 말이 많다. 일은 안 하면서.
영숙 누나와 그 동생 진숙씨는 오늘 돌아갔다. 오후 비행기 타고 가서 밤에 내리면 내일 아침부터 출근이라고 했다. 많이 움직이고 갔으니 몸은 피곤할 것인데, 몸의 휴식과 마음의 휴식은 다른 것인지 둘은 신나게 걸어다닌 며칠을 휴가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재밌는 사람들이다. 누나는 2년 전 그 때처럼 많은 것을 챙겨주려고 했다. 내가 아직도 밥값도 없이 냉난방도 안 되는 창고 바닥에 자는 줄 아는 모앙이다. 그 마음이 고맙다. 2년 전에 잠시 보고 말았던 동생은 이번에 며칠 함께 놀았다. 같이 있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좋은 기운을 가진 사람이다. 귀한 재능이 제 자리를 만나서 빛을 발했으면 좋겠다.
사람 보내고 돌아설 때마다 나는 부쩍 자라는 듯한데, 한참 지나 돌아서서 보면 조금도 나아간 것 같지 않다. 사람이 가고 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고 나도 가고 올 것인데 반복되는 과정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 보낼 때마다 가슴은 높은 곳에서 덜컥 떨어지고 숨은 걸음을 막아선다.
어제 저녁을 함께 먹으며 나는 두 사람에게 조직.에 대해 묻고 들었다. 군대를 제외하면 마땅한 사회 조직을 겪어보지 않는 나는 시스템.에 대한 환상이 있다. 두 사람은 번듯한 조직.에 있는데, 그들이 들려준 조직.이란 대충 이렇다.
정도 이상으로 열심히 하지 마라. 소용 없다.
먼저 나서서 아이디어를 내지 마라. 그게 곧 네 일이 된다.
언제든 빠져나갈 구멍을 생각해라. 책임진다는 생각은 미덕이 아니다. 책임진다는 뜻은 곧 끼니 걱정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남들 하는 정도만 하고 시키는 일만 잘 해라.
창의력 따위, 체제를 바꾸려는 도전 따위, 개나 줘버려라.
조직은 개인의 역량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조직은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조직은 기름칠 잘 된 부품을 원한다.
조직은 네 목표가 아니다. 네 목표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조직.은 끔찍한 거다. 그 조직은 좋은 조직과 나쁜 조직을 가리지 않는 듯하고 큰 조직과 작은 조직을 가리지 않는 듯하다. 나는 내가 대학생활의 큰 유산으로 여기는, 그리고 역사 속에서 다양한 선각들에 의해 시도되었던 유기적 조직.을 언급하며 다른 가능성을 따져 물었지만 숙련된 조직인.들의 대답은 단호해서 내 의문은 뿌리부터 차단당했다. 유기적.이라는 수식은 조직.이라는 본질을 도저히 넘을 수 없어 보였다.
살아가는 일은 구체적 행위와 사실들을 통해 비로소 구축되고 또 완성될 것이다. 모든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작업이 가치를 가지려면, 그 전에 우선 단단한 구체성으로 다진 일상이 있어야 할까 보다. 그러니까, 나는 사진을 찍고 글도 쓰고 돈도 벌고 밥도 먹고 잠도 자야겠다.
여름아, 이제 그만 좀 가라.
덥다.
2008.08.18 10:00
책꽂이를 한참 쳐다보다가 왔다. 모아둔 소설책들은 대충 읽었거나 읽고 싶지 않은 것들만 남았다. 요즘에는 읽은 책 중에서 특히 문장이 욕심나는 것들로 골라 다시 읽는다. 길에서 읽을 책 고르며 두껍고 무거운 책을 고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겨우 김승옥의 소설집 한 권을 챙겼다.
"끝까지 가 보자. 설사 우리가 도달한 끝이 저 길의 한 중간이더라도, 끝까지 가 보자." 이 책을 내게 준 이는 책 앞장에 이렇게 적어 주었다.
나는 그 길의 어디쯤에 와 있는 것일까? 그는 또 그의 길 위에서 얼마쯤 갔을까? 우리는 가기나 한 것일까? 끝에는 닿을 수 있을까? 우리가 도달하는 길의 끝은 또 어디일까? 끝은, 있기는 한 것일까?
나는 농도의 짙고 옅음에 대해 말했고, 그 생각은 색깔의 존재로 인해 깨어졌다. 모든 존재를 무채색의 선형성 위에 두고 읽었는데, 실상 그들이 다른 색깔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지적은 충격이었다. 그런데 선형성에 대한 미련은 좀처럼 버릴 수 없는 것이어서, 나는 각 색깔이 갖는 색의 충실도를 척도 삼아서 다시 선형적 질서를 세우려는 모양이다. 왜 색이 색으로 온전히 아름다우면 안 되나? 가파른 질문으로 몰아세워 보아도 좀처럼 나는 나를 설득하지 못 한다.
새벽에 택시는 빨리 달렸다. 거칠 것 없는 길을 택시 운전사는 레이싱 선수처럼 달렸다. 커브에서는 최대한 속도를 유지한 채 부드러운 코너링으로 흐르듯했고 직선 주로에서는 기록 단축에 힘쓰는 선수 같았다. 그 속도는 유쾌하고 가벼워서 경기에 임하는 단단한 마음은 옆자리 승객에게까지 상쾌한 새벽 바람을 밀어넣어 주었다. 교통정체가 종일 동안 이어지고 멈춘 차들이 끼어들기를 통해 전진해가는 상하이에서, 택시 운전사는 이 새벽의 기억으로 한낮의 정체 속을 밀어가는구나. 싶었다.
나는 직장인도 아닌데, 왜 월요일 오전에는 마음이 덩달아 바쁠까? 괜히 직장인 흉내라도 내고픈 마음인가?
2008.08.16 20:45
어제는 새벽까지 놀았다. 그러니까 어제 저녁부터 오늘 새벽까지 놀았다. 영숙 누나가 2년만에 상하이에 왔다. 동생이랑 같이 왔다. 모처럼 에프상하이 맴버들이 함께 모여서 밥 먹고 술 먹고 이야기하고 놀았다. 우리 집에 사람들이 모여서 그렇게 판 벌려서 논 것이 처음이다. 지난 겨울에 이사온 후 나는 마땅한 집들이도 못 했었으니까, 마침 이름만 집들이.도 겸했다.
과일 잔뜩 사고, 술도 제법 사고, 고기도 굽고 찌개도 끓였다. 아, 누나는 베이컨말이도 만들었다. 요즘 술은 입에도 못 대는 나는 쥬스 홀짝거리고 콜라 벌컥거리면서 같이 취했다. 손님 치르는 것이 이런 재미구나. 싶었다. 하여튼 영숙 누나가 오면 상하이가 이벤트 도시가 되는 것 같다. 내 작업실을 통째 털어내고 거기서 파티를 열었던 사람도 누나였었지.
누나와 그 동생은 아마 오늘 종일 숙소에 쓰러져 있었을 것이다. 길지 않은 여행기간 중에 하루를 숙소에 쓰러져 있게 만든 것 같아서 괜히 미안하기도 하다.
정신 차리고 보니 저녁이다. 원고나 좀 살펴야겠다.
2008.08.14 13:04
명호가 왔다. 어제 저녁에 상하이에 도착했다. 1년 간 아시아를 돌아 왔다. 짐 풀기 전에 사진 찍어서 작년 녀석이 출발할 때 찍은 사진과 겹쳐 보았다. 1년 사이에 녀석은 수염이 많이 길었고, 몸은 말랐다. 떠날 때와 비슷한 짐으로 명호는 왔다. 보이지 않는 변화도 있을 것인데, 그 변화는 1년 동안 상하이를 떠난 적 없는 내가 함부로 짐작해서 말할 수 없는 것들이다.
온다는 연락을 받고, 녀석이 떠나던 그 날과, 그 날 이후 1년 동안 나는 무엇이 변했나 생각했다. 내 사진은 나아갔고, 책도 초고가 끝났다. 이제 제법 밥값도 번다. 촬영 미팅에는 그럴듯하게 옷도 차려입고 가고, 필요할 때는 술도 한 잔쯤 산다. 아, 나도 변했구나.
난생 처음 큰 계약건을 물었다.고 생각했다. 구두계약이 끝난 상황에서 나는 새 작업에 들어갈 조명을 추가 구입하고 출장갈 기차표도 예약했다. 일을 도와줄 사람도 둘 구했다. 그리고 몇 시간 전에 계약 무기 연기 통보를 받았다. 낮잠 자려고 막 누웠는데 전화를 받아서 잠이 깼다. 이미 합의해 놓고, 출발 날짜까지 맞춰서 다른 스케줄 다 취소한 나는 뭐가 되냐고, 다시 점검해 달라고 화를 냈지만, 전화 끊고 생각하니 계약서 도장 찍기 전에 앞질러 간 내 탓이다.
1년 동안 내게 일어난 보이지 않는 변화는 어떤 든든함. 같은 것이다. 계약이 연기되어도 괜찮다. 늦게라도 가면 된다.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다. 다음에 다른 일을 하면 된다. 사방 기둥 하나 없이 불안하고 가벼웠던 때가 1년 전인가 보다. 이제 일 하나 둘 정도로 들뜨거나 가라앉지 않는 나를 보면서 시간이 흘렀다고 안다. 잘 살아냈구나 싶다.
초고는 끝났는데, 원고 수정이 길어지면 올해도 책은 나오기 힘들겠구나. 내년 설에는 집에 갈 수 있을까?
2008.07.30 20:45
내 문장과 사진이 정말로 책이 되어서 나오면 어떨까. 싶다.
헛 살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을 겨우 할 수 있겠다 싶다.
2008.07.20 06:24
지난 밤에 창문 열어놓고 자는데 바람이 세차게 불고 비가 왔다. 태풍이 온다고 했었는데 아마 다녀간 모양이다. 아침에 하늘은 흐리고 바람도 여전히 거센데 나는 항구에 간다. 상하이를 처음 개항시킨 영국 선박이 접안했던 항구다.
태풍이 오기 전이나 태풍이 다녀간 후에 시원하고 큰 바람이 부는 날을 좋아한다. 그 바람은 서늘해서 몸 속에 있는 것들을 모두 끄집어내는 듯하고 또 바라는 마음으로 머물러 있는 많은 것들을 그 목적지로 데려가는 듯하다.
바람처럼 지하철을 타고, 흐려서 끝도 보이지 않을 강가에 가야겠다.
2008.07.09 21:28
내가 내 집에 오는 것이 오랜만이다. 무슨 이유인지 내 홈페이지가 있는 서버가 중국 인터넷 제공 회사에 의해서 차단당했고, 한 달째 나는 집에도 못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다. 다른 회사에서 제공하는 회선을 쓰는 어떤 집들은 되기도 한다. 집에서 노트북 무선 인터넷을 켜면 다른 집의 무선 신호를 몰래 끌어올 수 있는데, 그렇게 해서 가끔 내 홈피도 뜬다.
처음 내 자전거를 가진 때는 아마 초등학교 5학년 쯤이었다. 자전거가 너무 타고 싶었는데 고등학교 시절부터 얼마동안 싸이클 선수생활을 하셨던 아버지는 그 위험성 때문에 반대하셨다. 새벽에 일어나 작은 몸으로 신문배달 가방을 짊어지고 두어 달 고생한 뒤에 겨우 받아든 월급으로 자전거를 살 수 있었다. 내 돈으로 산다니까 아무 말씀을 안 하셨던 것인지, 어리고 작은 몸이 새벽마다 신문 돌리는 모습이 기특해 보이셨던 것인지, 아니면 안스러워 보이셨던 것인지 모른다. 어쨌든 자전거 가격은 내 두 달 월급보다 조금 비쌌는데, 아버지께서는 이제까지의 모습과 다르게 선듯 모자란 돈을 내어 주셨다. 그리고 다음 달 월급에서 다시 가져가셨다지.
거제도는 산이 많은 섬이다. 도로는 산을 가르고 가지 않고 산 위에 걸터 앉아 간다. 그 도로를 자전거 여행한다는 이름으로 참 많이 다녔다. 지금 달리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중학생일 때는 하루 온 종일 달리면 섬의 1/4 정도를 달릴 수 있었다. 번잡한 아들의 하이킹을 반대하실 게 뻔한 아버지의 눈을 피해 새벽에 몰래 나오던 날에 어머니는 간단한 간식거리를 챙겨주시고는 했다.
대학교 입학하던 그 때부터 작은 계획이 있었다. 여름 방학 두어 달 전에 자전거를 샀다. 그리고 짧은 하이킹으로 몇 번 연습한 후, 첫 방학 시작과 함께 친구 영광이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거제도로 갔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처음인 만큼 어찌나 서툴렀던지. 내 여행은 거제도를 두어 시간 남기고 미완으로 끝났다.
자전거 여행을 여행보다 레이싱처럼 했던 그 시절에는 밤새 세미나 준비한 후 새벽부터 달려 밤에야 겨우 돌아오기도 했다. 그런 날은 길가에서 낮잠을 길게 잤다. 북한강으로 남한강으로 달리기도 많이 했다. 이제는 기억도 가물하다.
입대 전에 중국 자전거 종단을 계획했다. 나름 기획서도 만들었는데 어디서부터 흐지부지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군대 말년 휴가를 몇 달 앞두고, 집에서 쉬고 있던 자전거를 창원 부대로 갖고 왔다. 주말 외출마다 자전거 수리점에 가서 여기저기 손보아서 준비해 두었다가, 휴가 신고식 마치고 곧장 자전거를 타고 남해안 일주를 시작했다. 동에서 서로 남해안을 타고 제주도로 건너가서 다시 부산으로 나와서 부대로 복귀하는 여행은 꼬박 열흘이 걸렸다. 수염이 잔뜩 길어서 검게 변해 돌아온 나를 부대 사람들은 처음에 알아보지 못 했다.
석모도 그 섬에서 자전거 타던 때가 있다. 길도 아닌 풀밭에서 타고 갯벌에서도 탔다. 시간이 오래 흘렀으니 풀이 높게 자라 길을 덮을 것이고 밀물이 들어와 바퀴자국을 지울 것이다.
중국은 자전거 타기 좋은 곳이고 자전거 사기 불안한 곳이다. 깔끔한 자전거는 얼마 안 가서 도둑맞는다.
이번에는 제법 튼튼하고 가벼운 자전거를 사려고 한다. 말릴 것 같은 혜정이도 이번에는 되려 더 반긴다. 자전거 여행 이야기를 하니 자기도 하고 싶다고, 같이 자전거 타고 긴 여행을 가자고 한다. 옆에서 말리는 사람이 없으니 바람이 제대로 든다. 사실 이번 자전거 이야기는 혜정이가 먼저 꺼냈다. 나는 옆에서 추임새 몇 번 넣은 게 전부다. 바람 넣다가 내가 더 바람 들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지 않나.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브랜드도 알아보고 구입시 주의해야 할 점도 알아보았다. 제대로 된 MTB를 사는 것은 처음이니까 공부할 게 많다. 아직 스피커랑 엠프 공부도 덜 했는데. CDP 살 돈은 당분간 자전거로 전향하기로 한다. 중국은 한국보다 많이 넓어서 시작부터 끝까지 자전거로 누비기 힘들다. 당분간은 상하이에서 타고, 그 다음에는 주변 도시까지 기차에 자전거를 실어가서 도시를 자전거로 누빌 생각이다. 그렇게 적응한 다음에, 내년 언제쯤에는 상하이에서 홍콩까지 자전거를 탈까 싶기도 하다. 입대 전 계획했던 그 종단을 거의 10년 만에 실현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전거 타고 바다 앞에 서면, 거제도에서 석모도까지가 눈 앞에 펼치겠다. 어쩌면 나는 울겠다.
2008.06.20 11:34
운동 다녀오는 길에 날개미 한 마리가 땅을 기고 있다. 디디던 발을 얼른 옮겨서 겨우 피했다. 녀석도 나도 다행이다. 스님들은 여름에 소소한 산 것들을 밟을까 두려워서 산 속에 들어가 하안거에 든다. 그 뜻이 참 좋다.
개미를 피하다가 퍼뜩 생각난 것인데, 음...
스님들은 정말로 작은 것들 혹 밟아 죽일까 두려워서 하안거에 들고 대비되는 이유로 동안거에 드는 것일까? 그냥, 너무 덥고 추워서 그런 것은 아닌가?
혼자 생각해도 발칙하다.
아, 오는 길에 참새도 한 마리 봤는데 이제 막 땅에 떨어져서 아직 푸릇한 잎사귀 몇 개를 물고 날아갔다.
2008.06.19 21:35
새 웹브라우저 파이어폭스.를 받았다. 익스플로어보다 조금 빠르고 새 창이 탭으로 뜨는 것은 우선 보기에 좋다. 그리고 전체화면 모드에서 즐겨찾기가 왼쪽으로 자동 슬라이딩 되지 않는 것은 조금 불편하다. 하지만 단축키 ctrl B를 누르는 법을 배웠으니 참을 수 있다. 대부분의 선택은 하나가 옳고 하나가 그른 것보다는 다만 다를 것인데, 선택의 당사자는 그 다름을 낫고 못함의 차이로 인지해야 비로소 어떤 비장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얼마 전에, 몇 년만에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다. 내가 하늘을 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어서 나는 하늘을 날면서도 그 사실을 의심했는데, 꿈애서 깨었을 때, 하늘을 날아 다녀온 곳에서 가져온 메모가 내 수첩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을 보고는 내가 정말 날았다는 것을 비로소 믿을 수 있었다. 그 놀라움이란. 꿈 안의 꿈을 꾼 셈이다.
내가 하늘은 나는 법은 로봇이나 수퍼맨의 그것과는 달랐는데, 나는 조그만 턱을 박차고 오르거나 아주 낮은 높이에서 떨어지면서 비로소 저공비행을 시작한다. 바람에 올라타는 기분. 그 때 땅과 내 몸 사이에는 겨우 수 십 센티미터의 간격 밖에는 없다. 그렇게 날면서 점차 고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내 비행은 이어진다.
비장하지 않아서 어떤 결정도 없는 일상같은 날씨다. 더위 속을 사람은 힘겹게 걷는다.
살면서 삶이 지루하다거나, 날마다 나아가는 것 없이 반복되는 시간이라고 느껴질 때, 어떤 반전.을 꿈꾼다. 그러니까 삶의 어떤 낮은 턱 같은 것, 떨어져도 다치지 않을 정도의 높이 같은 것. 나를 바람 위에 얹어 줄 반전.같은 것들.
2008.06.03 20:55
간판 떼어왔다.
언제 어디에 다시 걸릴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다.
열쇠를 넘기고 작업실 크고 빈 공간에 혼자서 가만 앉았는데,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여기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꾸미고 내가 만들고 내가 앓아가면서 겨우 겨우 버틴 모습이 마냥 익숙해서 처음의 모습은 벌써 잊은 모양이다. 내가 가고 나도 이 공간이 그 때와 같지 않을 것이다.
빈 공간에 대고,
고맙습니다. 인사했다.
그 말 밖에 따로 할 말이 없었는데, 그래도 그 동안 나를 내치지 않고 잘 길러준 공간이 참 고마웠다. 그리고 고맙다고 말할 수 있게 지낸 내가 또 고마웠다.
STUDIO GOGH
문 닫다.
2008.06.02 20:37
작업실 이사했다. 형식상으로는 장소를 옮겨 세 명이 같이 쓰는 것이고 내용상으로는 더부살이다. 아침부터 작업실에서 짐들 정리하는데 좀처럼 진도가 안 나갔다. 새로 옮기는 작업실에 가서 구석 한 켠에 내 장비들을 두고 오는 길은 꼭 남 집에 아이 맡겨두고 나오는 기분이었다.
밤이 가까워서야 겨우 집에 왔다. 음악을 크게 틀어두고 잠시 앉았다가 배가 고파서 계란도 굽고 새 김치도 썰어서 먹었다. 밥 먹고 나서는 수박도 제법 담아 왔다. 올리브기름이 떨어져서 새로 사야겠다. 나는 요즘에 김치찌개도 하고 된장찌개도 한다. 썩 맛있다. 요리도 배웠으니 이제 장가를 가야 하나?
며칠 전 아는 분 집에 갔는데, 프랑스에서 이 십 년 가까이 살다가 온 그 친구는 옛날 집들이 있는 골목에 풍경처럼 살고 있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텅 비어있는 집이었다. 책상과 책장이 하나씩. 그리고 의자 몇 개와 작은 소파 하나. 옷들은 붙박이 장에 들어 있는 모양이었다. 아, 홀가분하구나. 이 친구는 언제든 가볍게 떠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짐 싸면서 보니 새 스튜디오로 가는 짐보다 내 집으로 들어오는 짐이 많다. 어쩌나, 내 집에는 지금도 이미 짐들이 많은데. 꼭 필요할 것 같아서 산 컴퓨터와 프린터. 그 컴퓨터와 프린터를 위한 별도의 책상들과 내 글쓰기 책상, 또 큰 마음 먹고 지른 진공관 앰프와 스피커, 게다가 애물단지 책들과 그 책들을 위한 책장이 두 개, 작업실에서 먹고 살던 시절에 침대로 쓰던 소파와 그 아래 깔린 작은 소파는 또 어쩌고. 아, 나는 짧은 생에 무엇을 이리 덕지덕지 붙이나.
삶이 번잡하다.
2008.06.01 09:51
아침에 유혈진압 사진들을 봤다.
시민들이 여럿 다쳐서 피흘리고 있었다. 경찰은 곤봉을 휘두르는데 그 곤봉에는 어떤 주저함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껏 마음으로만 응원하면서 봤었는데, 그러면 안 되는 모양이다.
분명한 잘못을 저지르고 그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그에 대한 항의를 힘과 무식함으로 누르려는 저 개념 없는 쥐새끼 한 마리를 두고 보면 안 되겠다.
2MB 용량이 부족해서 저 쥐새끼는 이 땅의 바른 역사를 기억하지 못 하는 모양이다. 고작 불도저 운전법이나 알까. 아니다. 그것이나마 제대로 안다면 이럴 수 없다.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
2008.05.18 20:58
Inter action.
이름은 이렇게 썼다.
어떤 소통.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데 그 소통이란 것이 커뮤니케이션.의 의미보다는 상호간에 주고 받는 어떤 유형 무형의 움직임.같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새 게시판을 연다.
한 명이 다녀가고 두 명이 다녀가고 여러 사람 다녀가면서 풍성하면 좋겠다.
2008.05.06 12:14
운동하고 나오는 길에 보니 운동화 바닥이 다 뜯어져서 덜렁거린다.
오래 신었다. 군대 말년휴가에 갔던 열흘짜리 하이킹도 기억해 보면 이 운동화였던 것 같고, 복학 후에 꽤나 다녔던 하이킹도 이 운동화를 신었다. 엉성하게 가다가 말다가 하던 핼스장도 전부 이 운동화를 신었다. 떨어질 때도 되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게을러진다는 것은 한 켤레 운동화를 오래 신는 일인 것 같다.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은 가난까지는 아니어도 무엇 하나 물려받은 것 없는 젊은 부모님이 꽤나 부지런하게 움직이시며 조금씩 살림을 만들어나가던 무렵이었다. 그 때는 어려서 잘 몰랐는데, 내가 신던 운동화가 많이 낡아서 거의 떨어져나가던 때였나 보다. 어릴 때는 운동화가 전천후 아니었던가. 어느 날 아침에 학교 간다고 문지방을 내려서는데 두 분이 여느 떄 같지 않게 그 앞에 서서 웃고 계신다. 그리고 그 아래 놓여 있는 새 운동화. 어떤 모양이었는지 기억나지 않고 그 운동화를 얼마나 오래 신었는지 기억나지 않고 그 때 내 기분이 어땠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데, 그 앞에 어린 아이보다 더 설래는 표정으로 서 계시던 두 분 표정은 지금도 생각이 난다. 새 운동화를 살 때는 가끔 그 아침이 생각난다.
사람 만나러 갈 때 신는 신발이 다르고, 여행갈 때 신는 신발이 다르고, 편하게 장보러 갈 때 신는 신발이 다른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운동화는 맨땅에 닿을 일도 잘 없고 겨우 핼스장 바닥이나 런닝머신 위에서만 움직이니까 오래 신는다. 요즘에는 하이킹 가는 일도 없으니까 꼭 무슨 집 안에서만 기르는 애완동물 마냥 바깥 구경을 못 하는 신발이 되었다.
내일은 새 운동화를 사야겠다. 빨간, 아주 빨간 운동화를 살 거다.
조심해야겠다. 새 신을 신고 너무 뛰다가 머리가 하늘에 닿으면 우습겠다.
2008.05.06 10:07
박경리 선생님이 가셨다.
큰 선물 주고 가시는 길이 편안하셨으면 좋겠다.
토지.가 이루어 놓은 그 넓은 들에서, 이 나라의 글쟁이들은 마음껏 뛰어 놀 테다.
요즘 내가 정상이 아닌 것인지,
박경리 선생님 돌아가셨다는데 괜히 땅박이가 밉다.
2008.05.04 22:11
과연 될까? 싶은 심정으로 시작한 서양미술사 스터디가 어느새 석 달이 되었고 다음 모임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긴 역사를 겨우 몇 달에 다루어야 했기 때문에 서투른 부분이 많았고 또 성근 부분이 많았다. 다섯 명이 서양미술사에 대해 서로 다른 책을 선택해 한 달에 두 번 모여서 발제하고 토의했다. 현직으로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이 둘 있었고 나를 비롯해 세 사람은 적어도 미술 분야와는 무관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아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읽었다. 재미있게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아서 적지 않은 부분을 건너뛰며 읽었다. 처음 공부하는 사람에게 너무 어려운 책이었다. 함께 해준,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해준 일행들이 고맙다. 이번 스터디가 끝나면 한 주 정도의 휴식을 거쳐 다음 스터디를 이어가게 될 것인데, 동양미술사를 하자는 사람도 있고 각자 좋아하는 작가를 선택해 작가론으로 하자는 이야기도 있고 또 현대예술에 대해 하자는 의견도 있다. 어떤 주제도 개인적으로 별로 흥미롭지 않아서 다음 스터디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데 아마도 하게 될 것이다. 지식의 습득과 공유 외에 에너지 있고 창조적인 사람들과 지속적인 자극을 주고받는 일이 내가 의도한 스터디의 목적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스터디 나가는 꼴이 참 부럽게, 웹진은 진도가 안 나간다. 스터디보다 조금 큰 기획이고 잘 되면 훨씬 더 재미있을 작업인데 시작.이라는 것은 역시 쉽지 않다. 일의 단위가 크니 쉽게 되지 않고 마땅한 팀도 없도 또 내가 게으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알고 있었던, 한 때 상하이를 거쳐 갔던 신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아, 그 사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 녀석이었다면 믿고 같이 해볼 수 있었을 텐데. 따위를 생각한다.
겨우 책 한 권 쓰겠다고 그 앞에 앉아 낑낑거리는 꼴이 안스럽다. 가만 두면 무엇도 안 될 것 같아서 최근에는 원고의 완성도를 포기하고 우선 시간계획에 맞추어 작은 꼭지들의 마침표를 찍는데 힘을 쓴다. 계획대로 된다면 6월 말에는 전체 열 두 개 꼭지의 초고가 완성된다. 그러면 나는 몇몇 사람들에게 원고를 보내서 그들의 의견을 물으려고 한다. 초고를 다 쓰고 인연들의 피드백이 돌아오는 그 동안에는 작은 여행도 생각해 두고 있다. 김훈의 책들을 여행길에 가져가겠다는 생각도 벌써 해 두었다. 겨우 책 한 권 쓰겠다고.
소통.같은 것. 예술사에 대해 공부할 때나, 사진에 대해 말할 때나, 빌어먹으실 현 정권의 지랄발광을 볼 때나, 미처 못 다 한 말에 대해 생각할 때나, 지난 실수에 대해 생각할 때나, 내 문장과 사진에 대해 생각할 때도 어떤 소통.에 대해 말해야 하지 않나 되몯는다. 지금 내 사이트는 상당히 일방적이어서 건방지다. 가장 최근의 사이트 리뉴얼은 그러니까 한 명의 상업사진가로서 오로지 사진을 제대로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고 사진가는 사진으로 말해야 한다는 어떤 덜 익은 비장함이 그 때는 컸다. 어떤 방향인지 아직 분명하게 알 수 없지만, 어떤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징조를 내 여기저기에서 본다.
2008.04.30 19:50
새학기를 시작하는 기분 아니면 새 방학을 시작하는 기분. 잘 하고 싶다, 잘 해야겠다는 다짐 같은 것. 시간표도 새로 짜 보고 괜히 결심도 굳게 하면서 주먹 한 번 불끈 쥐어 보는.
5월 시간표를 뽑아서 벽에 붙인다. 지난 달에는 제법 많은 칸에 곱표.를 그렸고, 그 마저 없이 통째 비워놓은 칸들도 여럿이다. 더 이렇게 지내면 안 되겠다는 몇 년째 반복되는 위기감 같은 것. 무엇이 제대로인지 모르지만 나는 어쨌든 한 번 사는 세상 제대로 살고 싶으니까. 그래서 조금 더 비장한 마음으로 5월 시간표를 붙인다.
계절은 곧 여름이 된다. 여름에는 나비가 날까?
2008.04.23 20:42
올해는 봄이 유난히 늦다. 매년 봄이 올 때는 말 할 수 없는 설램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오는 듯 마는 듯 와서는 알게 모르게 가 버릴 모양이다. 낮에 밖에 나가면 제법 따뜻한 것도 같은데 아직도 집에서 작업할 때는 외투를 두 개 입는다.
삶에서 가을은 언제쯤 오는 것일까? 계절은 해마다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삶은 한 해 밖에 없는 것일까? 그래서 삶에는 가을이 한 번 밖에 오지 않는 것일까? 알몸으로 가벼워지는 가을의 나무를 만나는 기회는, 삶에는 한 번 밖에 와 주지 않는 것일까.
나는 밖으로 빛나려고 하는가? 내 안으로 빛나고 싶다고 여러 해 생각했는데, 생각의 끝은 결국 안에서 생겨난 빛이 밖으로 퍼져나와 밖으로 빛나는 거기였을까? 사진과 문장과 삶이 모두 거기를 바라본다는 아픈 자각. 같은 것들. 알면서도 판 위에 놓게 되는 악수.같은 것들.
문장 앞에서 마음이 급하다. 어떤 예감 같은 것. 어서 써야 한다는, 지금 쓰지 않으면 기회가 없을 거라는 예감 같은 것. 그래서 마음이 급하다. 더 미룰 수 없다.
불꽃처럼 살면 좋겠다. 하지 않으려고 않으려고 모르는 척 했던 단어인데 결국 쓰고 만다. 불꽃처럼 살면 좋겠다고 쓴다.
2008.04.08 18:52
쌀 섞었다. 지난 설 즈음에 사서 먹고 이번에 샀으니까 두 달쯤 먹은 셈이다. 현미 5kg짜리를 사고, 옆 곡물 코너에서 팥을 샀다. 팩으로 포장되어 있는 녹두와 율무(로 추정되는 것)를 샀다. 그리고 유기농 코너에서 조, 검은콩, 찹쌀, 작은 율무(로 추정되는 것), 메밀(로 추정되는 것)도 샀다. 3만 원이 조금 덜 들었다. 우선 현미를 두 곳에 적당히 나눈 다음 다른 잡곡들을 적당히 넣어서 섞었다. 두 덩어리 중에 하나는 집개로 입구를 물려서 그늘에 두고, 다른 한 덩이는 쌀칸에 놓았다. 지난 번 잡곡밥은 맛이 참 좋아서 가끔 외식할 때는 밥 먹는 일이 되려 아쉬웠다. 이번에는 지난 번에 더해서 율무(로 추정되는 것)과 메밀(로 추정되는 것)을 더했는데 밥맛이 어떨지 알 수 없다. 이 글을 적고 나면 가서 쌀 담궈야겠다. 지난 번에 혜정이 통해서 중고로 구입한 압력밥솥은 밥을 참 맛있게 해준다.
지난 달에 찍어둔 호텔들 덕분에 통장에는 제법 잔고가 있고, 그래서 요즘 장보러 갈 때는 돈 걱정 하지 않는다. 가서 필요한 것들, 사고싶은 것들을 사도 계산대에서 마음이 가볍다. 거창하게 살지 않더라도, 그저 먹거리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는 것이 이토록 마음 편한 것인가 싶다. 겨우 먹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3년이 걸렸다. 다음 3년은 내게 무엇을 주는 시간이 될까?
저녁 반찬은 뭘로 하나?
2008.03.24 14:53
요즘 몇 명이 모여서 서양미술사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르네상스와 매너리즘, 바로크 미술 정도까지 진도가 나갔습니다. 격주로 하는데 다음 주에는 바로크 후반부와 낭만주의에 대해 할 겁니다.
첫 주에 고대미술과 이집트, 그리스 미술에 대해 했었습니다. 그 때 이집트 미술에 대한 부분이 저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집트 미술은 어색합니다. 다리와 몸통, 그리고 다시 몸통과 얼굴이 따로 놀지요. 다리와 얼굴은 옆모습이고, 몸통은 정면입니다. 저는 그런 이집트 미술을 참 서투르다고, 그리스 미술과 비교해서 참 원시적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공부해 보니 그것도 아닌 모양입니다. 이집트인들은 그리스처럼 그릴 줄 몰라서 그런 게 아니었답니다. 사물을 나타낼 때 어떻게하면 가장 사물의 본질적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까 고민했고 그 결과로 태어난 것이 소위 말하는 '정면성의 원리'라는 것이랍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은 시각적인 착각, 즉 착시를 불러 일으키려는 저급한 의도를 가진 것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당시의 미술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왕이나 신께 바치는 것이었는데, 감히 그런 관람자를 대상으로 저급한 시각적 속임수를 쓸 수는 없다고 믿었기에, 그들은 정면성의 원리를 가장 훌륭한 표현방식으로 옹호했다는 것입니다.
미술사 공부에서 제가 다루고 있는 책은 아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라는 책입니다. 시인 황지우는 이 책을 읽고 비로소 예술사적인 지형감각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작품이 예술사에 있어서 어떤 맥락을 따라 왔고 따라서 현재 어떤 흐름의 연장선에서 어떤 가치를 획득하고 있는가.라는 부분을 이 책을 읽은 후 비로소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황지우의 그런 말에 공감합니다. 뭐 한참 모자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현대 사진에서 광각은 지배적인 흐름입니다. 그리고 저는 현대.라는 시대에 광각이 참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렌즈의 선택에서 호불호.의 문제 정도는 있을 것이고, 제 경우에는 표준 화각을 구사하는 것이 조금 더 까다롭고 어렵기는 하지만, 내가 바라보는 공간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좀 더 지극한 시도를 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과감하게 시선을 몰아가려는 시도 대신, 좀 더 쉽게 인상적인 사진을 만들려는 유혹 대신에 공간이 갖는 어떤 본질.이 내 사진에 담겨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같은 것 말입니다.
어떤 화각이 좋고 어떤 화각이 나쁘다는 생각은 의미가 없을 겁니다. 현대 예술에서 모든 예술은 스스로의 가치를 획득하고 있고, 또 그런 가치들은 존중받습니다. 다만 진지한 작업을 앞둔 사진가라면 한 번쯤 자신의 화각에 대해 물어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합니다. 나는 이 화각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언제나 열심히 하시는 노신님 사진 보면서 많이 배웁니다. 같이 공부하는 입장에서 작은 참고라도 될까 싶어 아침 부시시한 모습으로 적어둡니다.
2008.03.21 13:50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에 봉하마을에서 촌장님처럼 지내고 계신다. 나는 매일 인터넷 뉴스 보다가 가슴이 먹먹할 만큼 답답해지면 노무현 홈페이지에 가서 글 몇 개 읽어보고 나온다. 요즘 그 곳에서는 시민주권운동.이라는 부분에 대해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려고 하는 모양이다.
나는 모택동과 김구에 대해 말하면서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아름다운 세상에 끝끝내 닿지 못 했고 다만 그 진정성으로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얻었다고 썼다. 노무현 대통령도 참 아름답다.
노자 할아버지 한참 좋아하던 때에 바람처럼 스스로를 완성하며 사는 것이 제일이라고 믿었다. 치고박는 현실을 안타까워했고 또 의미 없다고 보았다. 세상이 망가져도 언젠가는 큰 순리대로 갈 것이고, 그러면 지금의 치고박는 싸움의 허무함을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공자 할아버지를 읽었다. 네가 살고 있는 세상이 사람과 더불어 사는 곳인데 사람에게 어떻게 무심할 것이냐고 야단치는 듯했다.
선거가 축제가 되어야 한다. 내 표 한 장으로 내가 원하는 세상이 올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그런 희망을 줄 수 있는 역할을 이 땅의 정치인들이 해야 한다. 그래서 선거일은 한판 신나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 대학은 선거철에 선거에 대한 다양한 토론이 이루어져야 하고 사회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선거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 적어도, 지금의 이 꼴을 두고보면 안 되지 않나. 힘들게 힘들게 만들어 온 이 땅을 또 개판치면 안 되지 않나.
2008.03.21 13:27
물이 가득 담긴 큰 그릇 안에 빈 찻잔을 담았다. 찻잔은 잠시 흔들거리다가 균형을 잡고 그릇 가운데 떴다. 아, 찻잔이 뜬다. 잔은 비어서 뜨는 것일까? 물은 무슨 마음을 먹고 저 빈 잔을 떠올려 준 것일까? 싱크대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만들겠다고 만들겠다고 말만 했던 웹진을 위해 어제 첫 회의를 했다. 내가 밥을 사고 후식도 샀다. 알면서도 덥썩 미끼를 물어준 사람들이 고맙다. 상하이에 거주하는, 생기있는 사람들의 인력 풀을 구성하고, 해서 마땅한 이야기를 하며, 현지 유학생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 세 가지 목적으로 웹진은 출발한다. 신나는 놀이터 하나가 또 생겨난다. 나는 그 안에서 마음껏 놀아볼 테다.
봄인가. 무언가 서둘러야 하고 무언가 이루어야할 것 같은. 내 겨울잠은 너무 길었나. 몸은 나아가다가 비틀거리고, 또 움직이다가 멈추고 해서 박자 맞추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나는 나아가기에 대한 간절한 바램이 있고, 그래서 가려고 한다. 떨치고 일어나면 좋겠다. 3년 사이에 나는 이 만큼 왔다.
홈페이지를 개편하겠다. 이번 개편은 내 사진들을 좀 더 잘 팔기 위한 목적과, 책 출판시기에 대비해서 소통하기 위한 공간을 마련하려는 두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향으로 진행하려고 한다. 웹진 fshanghai와 직접적 연결을 만들고, 몇 년 동안 닫아두었던 잡담 게시판을 다시 연다. 현제 제로보드 게시판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 사진포트폴리오 게시판은 라이트룸의 기능을 이용한 플레시 형식으로 바꿀 것이다.
미술사 스터디를 시작해서 이미 궤도에 들었다. 예상보다 얻는 것이 적은 것도 같고, 서툰 것도 같다. 첫 술에 배부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여러 번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첫 술의 가치가 포만감이 아닌 다른 데 있다는 것도 나는 또한 경험했다. 주문한 봉투가 오면 사진 발송이 시작된다. 호텔 작업 포트폴리오도 제법 됐다. 곧 웹진이 시작할 것이고, 별도의 사진 스터디도 봄과 함께 시작할 것이다. 조금 늦어진 책도 다시 속도를 붙일 것이다. 나는 잘 하고 있다.
계절이 바뀔 때 불어오는 바람은 그 바람과 함께 있었던 기억들도 함께 담아 온다. 내 봄은 어떤 원시의 감정이다. 수 만 년 전쯤에 내가 살았던 아릿한 봄이 기억날 것 같다. 그 봄에, 나는 어느 벌판에 있었던가.
좋은 친구들 더불어 나른한 봄볓에 드러난 나무뿌리처럼 앉아서 맥주나 한 잔 하면 얼마나 좋을까. 소리소리 노래도 부르면서.
2008.03.12 22:46
겨울잠이라도 한 판 잔 것 같은 기분,
지난 겨울은 길고 추웠다. 봄은 갑자기 왔고 몸도 갑자기 깬다.
2008.02.01 23:13
내 이럴 줄 알았다. 잠시 자려고 누웠던 낮잠이 늦잠이 되어 서둘러 깼을 때부터 알았다.
지난 학기 복단대 교환한생으로 왔던 학교 후배 현주를 만났다. 곧 귀국한다고 해서 밥 한 끼 샀다. 나 요즘 돈 좀 번다고, 편하게 먹고 싶은 것 먹으라고 하면서 내가 먹고 싶은 얼큰한 한식으로 했다. 선미 누나가 돌아갔고, 먼지도 돌아갔다. 성균 형도 돌아갔고 곧 현주도 간다. 사람 보내는 일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번 겨울에는 유난히 돌아가는 사람이 많고 떠나보낸 마음은 채 가라앉기 전에 다시 뜬다.
밤이 길고 춥다. 상하이는 50년만에 내리는 기록적인 눈 때문에 도시 전체가 정신이 없다. 거의 이 십 일 가까이 햇빛을 보지 못 했고, 일주일 가량 눈이 내리고 있다. 최저기온은 영하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전기장판을 싫어하는 나는 세 겹 옷을 입고 잔다. 그래도 새벽에는 추워서 잠시 전기장판 켰다가 끄고 잔다.
미술사 스터디가 곧 시작한다. 웹진도 슬슬 사람이 모인다. 사진스터디는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가능하다. 뭐가 하나씩, 되어 간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밤 늦었는데 잠이 안 온다.
2008.01.18 12:37
새해도 한참 갔다. 일 나가는 진도는 더디고 마음은 조급하다.
십 수 년 전부터, 나는 서른 살이 되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 역사 속의 영웅들은 어려서 뜻을 펼치고 스무 살에는 완성에 근접하지 않았던가? 십 년 전 생일에는 조급한 마음으로 오대산에 올라서 수음은 했었던가 안 했었던가. 서른 되어서 며칠 지내고 보니, 서른에도 세상은 끝나지 않을 모양이다. 나는 마흔을 기다려 보기로 한다.
프린터는 아직도 수리중이다. 사진을 넣어 보낼 봉투를 의뢰했고, 형압 틀도 문의했다. 취미이던 사진이 직업이 되어버린 후로 내 취미란은 비어 있었다. 프린팅을 취미로 삼아볼까 싶다.
웹진을 만들 생각, 책 원고를 정리해서 우선 웹 연재를 시작할 생각, 그리고 작업들을 프린트하고 다시 프린트에 탄력 받아 작업을 계속할 생각. 연초에는 사고를 치고, 연초를 제외한 일년의 나머지 시간에는 사고를 수습하며 산다. 그렇게 한 해가 간다. 올 해는 책이 나온다.
2008.01.01 18:55
"오빠, 그거 알아요?"
"응? 뭐?"
"오빠, 내일이면 서른이다."
연말 기념 판타스틱 이벤트 초특급 몸살과 더불어 새해를 맞았다. 내복 입고 양말 신고 머리는 산발을 해서 하얀 마스크 쓰고 앉은 꼴이라니. 매년 12월 초에 보내던 연말인사도 올해는 정말 연말에 닥쳐 급하게 만들고 보냈다. 대신 올해는 한 분 한 분에게 따로 소식을 적었는데, 참 잘 한 일이다.
아, 올해가 아니구나.
내 올해는 어떤 한 해일까? 보다는 어떤 한 해여야 할 것인가? 인연들은 안녕했을까?
나는 착하게 잘 살고 있는데, 세상은 왜 자꾸 내 앞에 숫자를 붙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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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짧은 글 모음
2007.10.29 07:37
구해 놓은 박스 몇 개를 열어서 책을 넣었다. 잠자려다 말고 갑자기 일어나 책장을 털었다. 책은 늘어나고 책꽃이는 그대로여서 어떤 책들은 책 위에 누웠거나 책 앞에 기댔다. 그런 책들은 제법 먼지가 덮여있고 모양도 뒤틀려 있다. 책꽃이에 기대거나 누워있지도 못 한 책들은 작업실 여기저기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거나 촬영용 소품이 있는 자리 한 켠에 들어가 있다. 한 두 번 읽고 책장에 모시듯 넣어두는 깔끔한 책들에게 미안해서 되는대로 주변 사람들에게 빌려주었는데 여러 사람 손 거쳐오는 사이에 책들은 많이 상했다. 여기저기 망가진 부분들이 보여서 책 담는 동안 또 미안했다. 이렇게도 미안하고 저렇게도 미안하다면 그나마 많이 읽혀서 닳아 망가지는 편을 택하겠다.
상하이에 와서만 다섯 번째 집을 옮기고 책은 네 번 옮긴다. 책 옮기는 일이 이사 중에 제일 큰 일이다. 한국 다녀올 때마다 조금씩 구해오고 손님 올 때마다 몇 권씩 부탁해서 모은 책들이 이제 제법이다. 보고 있으면 든든해서 좋은데 이사갈 때는 발이라도 달려서 저것들이 차례로 걸어가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책은 무겁다. 책장이 하나쯤 더 있으면 좋겠지만 외국생활이라는 것이 언제 떠날지 모르고 언제든 떠날 마음을 한 구석에 남겨두는 것이라 새 가구 장만하는 일은 썩 기껍지 않다. 아마 새집에서도 운 나쁜 책들은 방 여기저기를 방황할 것이다.
책의 크기는 다양하다. A4 사이즈보다 큰 잡지도 있고 들고 다니기 좋은 문고판 크기도 있다. 책을 포장할 때는 책들마다의 크기를 잘 살펴서 상자 안에 가지런히 담아야 한다. 그래야 책이 덜 다치고 양도 많이 넣을 수 있다. 최근의 책들은 기본적인 판형에서 조금씩 변형한 것들이 제법 있다. 그래서 어떤 책은 조금 짧고 어떤 책은 조금 높거나 길다. 널리 통용되는 몇 개의 판형 외에 조금씩 다르게 만들어진 판형들은 책 싸는데 어려움을 준다. 책디자인에 대해 잘 모르니 무슨 이유가 있어서 그랬겠지 싶으면서도 들고 다닐 때 조금 더 불편하게 느껴지는 넓은 책들은 썩 반갑지 않다.
2007.10.26 10:25
이사를 가려고 한다. 작업실을 연 지 2년이 되어가고 작업실 소파에서 먹고 자는 일이 또 2년 가까워 온다. 승희 형과 작업실을 함께 쓰기로 하고, 줄어든 임대료로 집을 구하기로 했다. 여러 가지 조건들이 맞아 떨어져서 집을 구해 나가는 결정은 퍽이나 현명하고 시의적절한 판단이 되었다. 운영비에 대해 생각한다면 한 명 정도 파트너를 더 구하는 것이 좋은데 아직 마땅한 사람을 구하지 못 했다.
집은 작업실 앞에서 버스를 타고 20분쯤 가야 닿는 아파트 단지에 있다. 3주 정도 집을 보러 다녔는데 마음에 드는 집을 수용 가능한 가격대 안에서 구하는 일은 어려웠다. 촬영을 제외한 모든 작업을 수행하는데 부족하지 않을 작업실 겸 주거공간을 원했다. 처음에는 시내 중심에 있는 낡은 옛 건물들에 낡은 풍경처럼 들어앉을 생각을 했는데 혜정이의 충고를 듣고 몇 번 고민하다가 생각의 방향을 틀었다. 무한으로 낮아질 수 없다면 무한으로 높아지면 되겠다 싶었다. 낡은 풍경처럼 녹아들 수 없다면 높은 바람처럼 깃들면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구한 집은 대단위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고층 아파트다. 중국의 아파트는 단지 건축이 끝난 상태에서 분양되고 분양받은 사람들은 각자의 취향에 맞추어 집 내부 인테리어를 시작한다. 이번에 내가 들어가기로 결정한 집은 아직 인테리어가 되어있지 않은 집이다. 바닥은 시멘트가 그대로 드러나 있고 그 어떤 가구도 없으며 욕실 공간에는 파이프 라인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방을 구분하는 공간은 문이 없어서 그대로 뚫려 있고 천장에는 전선 끝에 달랑 매달린 전구가 드러나 있고 창문은 커튼도 없이 바깥 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내부 인테리어가 끝난 집은 훨씬 비싼 월세를 요구했고, 텔레비전도 안 보고 장식장도 소파도 필요 없는 나는 굳이 비싼 값을 치르면서 화려하게 치장한 집에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선택한 집은 무엇도 없어서 되려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이다. 공원과 강이 내려다보이는 북쪽 공간에는 큰 책상 두 개와 책장을 놓아 작업실로 쓰고, 그 보다 안쪽에 있는 공간은 가운데 침대만 덜렁 놓아두려고 한다. 작업실에서 침대로 쓰던 소파는 책상 옆 창가에 두어야겠다. 집주인 쪽에서 세탁기와 온수기, 냉장고 정도는 구해주기로 했으니 사는 데 큰 지장은 없을 것이다. 집 바로 아래는 대형 마트가 있고 5분만 걸으면 작가들이 뭉쳐 있는 모간산루가 있으니 살고 다니기에도 편할 것이다. 아무 것도 없어서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참 마음에 드는 집이다. 집은 새로 지은 아파트 26층에 있다.
옛날 큰 스승들은 소유를 곧잘 집착과 연결시켰다. 집착은 번뇌와 닿아 있다고 했다. 그 분들이 하신 말씀이니 아마 맞을 것이다. 다만 도 닦는 분들이야 소유를 멀리함으로 해서 집착과 담을 쌓는 것이 방법이겠지만, 현실에 발 붙여 사는 사람들은 소유와 그에 따른 집착을 긍정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텅 비어있는, 아직 계약서에 싸인도 하지 않은 아파트를 보며 이 곳에 오래 있고 싶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영업에 한 없이 서툰 나라도 어떻게 움직여서 일을 좀 더 많이 하고 그래서 이 집에 걱정 없이 오래 머물만큼의 돈을 벌어야겠다 싶다. 변화로 인해서 생겨나는 이런 자극들은 참 반갑다. 소유와 집착이 작은 동기가 되어가는 과정은 재미있다. 그런가? 움직여야 소유할 수 있기도 하고 소유했기 때문에 움직여야 하기도 하는 것일까? 사람 사이에도 그럴까? 내가 모든 준비를 끝낸 다음 너를 만나러 가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과, 너를 만났으니 나는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은 어쩌면 아주 조금밖에 다르지 않은 것일까? 함께 머물면 그 '함께'와 '머묾'을 위해서 나는 더 열정적으로 살게 되는 걸까?
다음주에는 이사를 해야겠다.
2007.10.11 23:37
바람이 서늘하다. 이불 걷어차는 새벽에는 가끔 깨고 이불 여며서 다시 잔다.
가을은 반전이 어울리는 계절이고 계기, 전환 같은 단어들이 어울린다.
반전이라.......
2007.09.29 07:10
살아남기.가 화두다. 아침에 인터넷에서 읽었는데, 카이스트가 교수 정년보장심사에서 예전과 달리 상당히 많은 인원을 탈락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그 여파로 교수사화에 긴장이 일고, 사회는 그런 긴장을 긍정하고 있다고 한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고, 교수 사회에 국한된 이야기도 아니다. 사방 모든 곳에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산다. 살아가는 목적이 단지 살아가는 것.이 되었다. 살아남은 자는 살아가는 것이고 살아남지 못 한 자는 살아가는 것이 아닌 게 되는 것일까?
한 번도 살아남기 위해 산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사진을 찍고 문장을 지어서 나는 나를 완성할 수 있으면 좋겠다. 완성.이란 끝끝내 닿지 못 할 목적지이겠지만 그 목적지를 향하는 길 위에서 언제나 걷고 있겠다고 다짐한다. 그 길위에서 살다가 그 길 위에서 죽을 때, 나는 비로소 아름다움을 완성하지 않겠냐고 생각한다.
사회는 오늘도 우열을 나누고 있다. 누가 더 잘 하고 누가 더 못 하는지 묻고, 어떤 것이 옳은지 어떤 것이 틀린지 가치를 매긴다. 그래서 잘 하고 옳은 것은 장려하고 못 하고 틀린 것은 공격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몰아낸다. 조금 다른 것을 색깔의 차이로 보지 않고 농도의 옅고 짙음으로 읽을 때 삶은 팍팍해진다.
세상 사람들이 저마다의 색깔로 아름다우면 안 되는가? 왜 자꾸 뒤를 몰아서 삶을 벼랑으로 내 모나.
2007.09.27 22:41
내 작업실은 내가 작업실로 쓰기 전에는 창고 건물 관계자들이 쓰던 회의실이었다. 간판은 회의실이었고 용도는 다용도였다. 회의도 하고 춤도 추고 강의도 했던 모양이다. 작업실을 준비하며 천장 한 가운데 있던 싸이키 조명 두 개를 떼어냈고 샹들리에 두 개 중에 하나를 떼어냈다. 공간의 네 귀퉁이에는 큰 스피커가 매달려 있고 텔레비젼이 가운데 두 개 매달려 있다. 스피커와 텔레비젼에 연결된 선을 따라 가면 옆 골방으로 이어지고 골방에는 엠프와 레이저디스크 플레이어를 비롯한 각종 음향장비들이 있어서 이 곳의 모든 소리와 영상을 그 곳에서 통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텔레비전 중에 고장난 하나는 버리고 다른 하나는 카메라와 연결해서 촬영용 모니터로 쓴다.
골방에 쌓여있는 음향장비들 중에서 엠프를 떼어오고, 골방으로 향하던 스피커들의 선을 따로 끌어내어서 컴퓨터 옆으로 오게 했다. 컴퓨터와 엠프를 연결했고 끌어온 선들을 엠프에 연결했다. 컴퓨터로 음악을 틀면 백 이십 제곱미터의 공간이 통째로 소리 낸다. 촬영이 있는 날에 모델과 이야기할 때는 음악을 낮추고, 일단 의사소통이 끝나고 셔터를 누르는 동안에는 공간 가득 음악을 채워서 서로의 고함소리가 겨우 닿도록 했다.
작업이 없고 할 일도 없는 날 늦은 밤에는 음악을 크게 틀고 작업실 한 가운데 의자 하나를 놓고 앉아 들었다. 가끔 와인도 한 잔씩 했다.
아마 내년에 나는 이 작업실에 없을 것인데, 작은 방에 앉아 작은 스피커로 음악 들게 될 어느 때는 오늘같이 음악 듣는 날이 그립게 떠오를 것이다.
2007.09.25 18:55
말이 생각을 앞질러 갈 때가 있다. 생각은 아직 다지지 못 했는데 말은 상대방의 추임새나 탄력이 붙은 말의 속도에 등떠밀려서 저만치 앞서 간다. 성급한 말인 것을 알면서도 다시 추스려넣을 수 없어서 답답하다.
아침부터 짐을 꾸려 공장 찍으러 다녀왔다. 추석이다. 내년 추석쯤에는 나도 집에 들러야겠다. 그럴 수 있겠다.
2007.09.20 07:20
큰 태풍이라고 했다. 자고 일어나니까 새벽 서쪽 하늘이 파랗게 맑고 동쪽 하늘은 흐리다. 하늘이 깨끗하다.
아직 고향에 살았던 때에 큰 바람이 지나고 나면 아버지와 바닷가로 갔었다. 큰 바람이 불어와서 바닷물을 뒤집어 놓으면 호흡이 어려워진 고기나 게 문어 낙지 같은 것들이 수면으로 뜨거나 해안가 바위에 붙어있고는 해서 뜰채 하나만 가져가서 잡아오고는 했다.
문장은 더디고 사진은 더딘 것도 못 된다. 사방 길바닥에 널려서 주워지기를 기다리는 문장들에게나 가야겠다. 큰 바람을 몰아가야겠다.
2007.09.10 18:50
하늘이 맑고 바람이 서늘하다. 서편 하늘은 아래는 붉고 위로 올라갈 수록 파랗게 변한다. 요 며칠은 계절 가는 것이 분명한데 모르는 척 딴청을 피웠다.
가을에 대한 대목은 어떻게 시작하던가?
컴퓨터가 망가져서 고쳐내는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불안불안하기는 한데 그래도 이제 제법 돌아간다.
나는 열심히 쓰고 있다. 나를 재촉하고 나를 몰아서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으로 적고 있다. 다 된 초고는 책상에 바른 자세로 앉아서 천천히 소리 내어 읽는다. 내가 내 문장을 소리내어 읽을 때처럼, 내 책을 보게 될 사람들이 그렇게 소리내어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바람이 참 좋다. 가을이 시작될 무렵의 바람은 가운데가 텅 빈 채로 불어온다. 어떡하나. 나는 그 빈 속을 채워줄 게 아무 것도 없는데. 너는 빈 대로 그렇게 살다가 가라.
2007.09.03 13:21
그러니까 오늘의 작전은 택배아저씨가 오시면 잡지사로 보낼 씨디 한 장을 보내고 점심을 먹은 후 소파에서 잠시 뒹굴거리고, 원고의 난징루 부분 초고를 저녁 전까지 마무리한 다음 저녁을 먹고 잠 자기 전까지 어제 마시다가 남은 와인을 마시면서 마감 닥친 커버 사진을 작업하는 것인데,
도대체 택배 아저씨는 왜 아직 아니 오시나. 그러니까 내가 일을 진행할 수가 없어서 지뢰찾기나 하면서 가려운 머리나 벅벅 긁어대면서 인터넷 식도락 기사나 들추고 있지 않나.
핑계 대마왕 반군.
2007.08.25 11:37
마음에 많이 안 드는 사진을 전해주고 대금 받아 돌아오는 길은 몽정한 새벽같은 기분이다. 돈은 빨간색 봉투에 황금실로 리본까지 두르고 들어 있다. 이런 엉망으로 만든 사진을 주었으니 돈을 조금쯤 돌려줄까 생각도 했었지만 두 달마다 내는 임대료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걱정하는 내 부지런함을 생각해서 봉투째 가져온다.
첩보에 따르면 지하철 3호선 역사 몇 곳에, 한 달쯤 전에 작업한 신인 배우들 사진이 아주 크다랗게 인쇄되어 붙어 있다고 한다. 3호선 타러 갈 핑계를 만들어서 역마다 내려봐야겠다.
모레는 웹진의 표지사진을 찍기로 했는데 한 컷 쓰겠다는데 여섯 벌을 찍어 달랜다. 찍는 만큼 받는 나로서는 받고 찍으면 되지만 언듯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오전 내내 인터넷에서 모델이 되는 아나운서의 자료와 사진이미지를 뒤적였다. 미리 알아보고 준비하는 과정은 모델과의 소통거리를 만들고 모델을 먼저 이해해서 기싸움의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다는 이점이 있지만, 자칫 준비한 자료와 이미 만들어버린 이미지 속에 모델을 가두어서 새로운 시도를 제한하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촬영 전까지 최대한 수집하고 분석하고 이해한 자료들을 촬영 시작과 동시에 모두 잊으려고 애쓴다. 조명이 켜지면, 모든 자료를 녹여서 해체시키고 내 안에 온전히 녹았을 거라고 믿고 만다. 그 다음부터 자연스레 뿜어내고 받아들이고 소통하며 사진.을 만드는 것은 더 이상 논리가 관여할 부분은 아니다. 이번 촬영은 Elle에서 소개했는데, 그래서 엘르를 용서하기로 했다. 지난 달 엘르와 처음 작업한, 3일에 걸쳐 찍는 네 커플의 시리즈 사진은 껌딱지 만하게 나왔다. 사진 나왔다는 소식 듣고 얼른 잡지 샀다가 그 사실을 확인한 후에 덮어서 멀리에 치워두고 아직 들춰보지 않았다. 이번 촬영을 마치면 근근 다음달 임대료를 준비할 수 있다. 도대체 프린터는 언제 사나?
마침 어제 수금한 돈으로 와인 한 병 샀다. 와인샵에 가면 49원에 살 수 있는데 집 근처 마트에서는 55원에 사야한다. 무거운 맛이 참 좋은데 값이 싸서 더 좋은 술이다. 한 동안 마시고 싶었는데 주머니가 비어 살 수 없었다. 며칠 뒤까지 초고를 넘기기로 했는데, 그 작업이 끝나면 한 잔 마셔도 좋겠다. 이제 문장이 막히면 냉장고 문 열어보면서 나를 닥달할 수 있겠다. 여름 끝무렵 작업실 옥상에서 맞는 밤바람은 혼자 잔 들기에 딱 좋다.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듭니다."
필립스의 예전 광고 카피다. 글쓰는 일이나 사진찍는 일이나 다른 여타 일에 이르기까지 작은 차이.의 거대한 간격.을 실감한다. 2%의 완성도가 걸작을 만든다. 2%가 보태어질 때 걸작이 되는 것은 좋은데, 2%가 빠졌을 때 평범함.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다. 평범함은 없다. 2% 부족한 결과물은 98% 모자란 결과물이다. 문장에서는 2%의 차이를 겨우 읽어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문제는 내가 이름 석 자 걸어서 돈 벌어먹는 사진에 있어서 아직 그 2%의 차이를 명확하게 가려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인터넷의 발달 덕분에 세계적인 사진 이미지를 모조리 참고할 수 있는 것은 좋지만, 덕분에 세계적인 사진 이미지.를 요구하는 클라이언트들과 만나는 일은 더욱 사진가를 곤란하게 하고, 이런 이런 이유로 이런 사진밖에 안 나온다고 말하는 것도 차마 사진가로서 못 할 짓이라 속에서만 답답하다.
사는 일은 헐겁다고 생각하는데, 헐거운 삶은 왜 이리 쉽지 않은가.
아, 동생이 제대했다. 내가 반군.이라고 부르는 유일한 녀석이다. 그 녀석 군대 가기 전에 중국에서 만났을 무렵에 나는 거실에 세들어 살며 거실을 방이라고 부르고 대나무 소파에서 잠잤었다. 제대할 때쯤에는 꼭 내 이름으로 작업실을 열고 내 이름으로 책 한 권도 쓰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작업실은 허덕이고 있지만 어쨌든 열었고, 책은 겨우겨우 잇대어 가고 있으니 조금 늦기는 했지만 영 틀려먹지는 않았다. 언제 다녀올까 싶었던 녀석이 벌써 왔다. 반군, 제대를 축하한다.
2007.08.17 23:39
맑은 저녁을 위한 포트레이트.
2007.08.13 14:11
하늘은 낮게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분다.
2007.08.11 20:07
이틀 일정으로 북경에 다녀왔다. 호텔에서 호텔로 택시 타고 가서 매니저를 찍고 다시 호텔에서 레스토랑으로 가서 사장을 찍고 새벽에 돌아와 몇 시간 자고 전날의 일정을 비슷하게 반복한 후 상하이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다.
북경은 맑았다가 흐렸고, 돌아오는 비행기를 기다릴 때 다시 맑았다. 공항에는 캐리어 들고 오가는 사람이 많았는데, 출장 때마다 30kg 가까운 장비를 지고 가는 나는 언제쯤 날씬한 캐리어 하나 들고 비행기를 타게 될까 생각했다.
한 달에 한 번쯤 출장을 간다. 꼭 창문쪽 좌석에 앉는다. 비행기가 막 뜰 때, 고도고 100m도 안 될 때 아래를 내려다 보며 '여기서 비행기가 추락하면 그냥 죽겠네.' 생각한다. 살아가는 일이 가볍다.
인터뷰 사진을 찍고 남은 메모리 전부를 하늘로 채웠다. 구름의 대륙에도 지형이 있다. 평원이 펼치고 강이 흐르고 산맥이 솟고, 바다는 멀어서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아서 미루어 짐작해야 했는데, 짐작의 저 끝 어디쯤에 바다는 분명이 있는 것 같았다. 비행기는 구름의 강을 길잡이 삼아 평원 위를 떠 갔다.
2007.07.26 23:03
아침에 잠시 나갔다가 왔더니 성균 형 연락이 왔다. 종일 작업실에 있을 거라고 말했다.
전기요금 걱정이 되는데 마침 머리도 아프니 잘 됐다 싶어 에어컨을 끄고 선풍기를 틀었다. 공장용 대형 선풍기는 책상 쪽으로 놓으면 태풍처럼 와서 책상 위에 있는 모든 문서를 날려버릴 기세다. 멀찍한 곳에 고개 돌려서 틀어 두니 내게 바람도 닿지 않는다. 옥탑방 작업실은 사방 열기를 끌어모아둔 것 같아서 가만 있어도 땀이 책상을 적신다.
형은 오후에 닭죽 한 그릇을 가지고 왔다. 어제가 복날이었다고, 불러서 같이 먹으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 했다고 직접 싸 왔다. 닭죽 한 그릇 주겠다고 온몸을 땀으로 적시며 온 형에게 나는 겨우 시원한 음료수 한 모금을 내어주고 고맙다는 말만 보태었다. 잠시 앉았던 형은 책 한 권 빌려 무더위 속으로 돌아나갔다.
전자렌지에 닭죽 한 그릇 데워 먹는데, 숟갈마다 어찌 그리 여러 사람 얼굴이 겹치나. 고마운 사람들, 미안한 사람들, 신세 진 사람들, 신세 갚아야 할 사람들 얼굴이 닭고기 한 조각씩 씹을 때마다, 뼈 한 조각씩 발라낼 때마다 눈 앞에 겹쳐서서 죽 뜨는 숟가락이 점점 무거워졌다. 바다 건너와서 그래도 닭죽 한 그릇 챙겨주는 사람이 있구나 생각하니 고맙고, 사방 상처만 새겨놓은 것도 같은 내가 이렇게 넙죽 받아먹어도 좋은가 생각하니 미안하고 슬프다. 죽 한 그릇이 참 넓고 깊다.
다 먹고 나서 전화 걸어서는, 겨우 고맙다.는 말 밖에 못 했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는데, 들어주었으면 싶은 말이 몇 마디 더 있었는데 나는 겨우 고맙다.고 하고 끊었다.
2007.07.20 16:08
촬영 갔다가 지난 번 바자 촬영 때 만났던 프로모터를 만났는데, 바자에서 내 사진이 스타일과 맞지 않아 안 쓸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몇 달 만에 듣는 소식 치고 썩 기분이 좋지는 않은.
바자와 처음 하는 작업이라 촬영 전에 이미 제법 많은 분량의 바자를 보고 갔었다. 내 사진이 그대들이 몇 달에 걸쳐 실어놓은 인터뷰 사진보다 분명히 나았다. 분명히 나았다.
사진이 셀렉되지 않았다고 특별히 분하지 않다. 어느새 생겨난 내 사진에 대한 고집이 반가울 따름이다.
2007.07.18 23:01
네 커플을 찍는, 정확하게는 세 커플 반을 찍는 엘르 촬영은 삼 일만에 끝났다. 모델들의 퇴근시간에 맞춰 진행된 촬영은 밤 열 시가 지나 마지막 컷을 찍었다. 사연있는 남자와 그 남자를 선택한 씩씩한 여자는 대여해온 금박 소파 위에서 재미나게 놀았다. 사연.에 주목한 나는 왁스의 음악을 준비해 두었는데, 음악과 상관 없이 커플은 잘 놀았고 오랜만에 왁스를 듣는 나는 촬영 내내 와인 한 잔 마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탭이 모두 돌아간 작업실에는 조각 케익 몇 개와 매콤한 치킨 버거 하나가 남았다. 케익은 너무 달아서 다 먹을 수 없어 두 개를 먹고 치킨 버거는 매운 맛을 참으며 먹었다. 그리고 보름도 훨씬 지난 와인 한 잔을 따르고 왁스를 더 크게 듣는다. 에디터와 아트디렉터는 어쩌나저쩌나 또 내 맘에 썩 들지 않는 컷을 치켜들고는 베스트.라고 외치며 갔다. 일말의 기대를 가져보지만 아마 일말의 기대마저 뭉개며 내일쯤에는 자신들의 베스트컷을 골라 후작업을 요청해 올 테다. 사진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은 이럴 때 표가 난다. 정말 제대로 된 고수는, 큰 느낌도 살리고 디테일도 훌륭하게 뽑아낸다.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느낌에 주목하고, 에디터는 깔끔하게 정돈된 포즈와 표정을 원한다.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 나는 힘이 없다.
최고기온. 38도를 찍었다. 습기로 가득 채워놓은 38도는 견디기 힘들다. 중국어에서는 이렇게 고온의 다습한 날씨를 먼.하다고 하는데, 한자로 쓰면 문 문자 안에 마음 심자가 들어 있다. 문 안에 들어 앉은 마음, 또는 문 안에서 나오지 못 하는 마음은 답답한 것일까. 더위가 무서워서 오늘은 하루 종일 에어컨을 의지했는데 전기요금 걱정에 트는 내내 마음은 조마조마했다. 켜고 끄기를 반복했다.
인터뷰이가 되는 연습. 길에서, 미술관에서 사람들을 만나 취재하는 인터뷰어의 입장에서 가끔씩 옮겨 와 취재당하는 인터뷰이가 된다. 주말에는 북경에 있는 잡지사 한 곳에서 인터뷰하러 온다고 한다. 잡지 이름을 말해주지 않는 것이 조금 걸리지만, 올 때 가져온다고 하니까 두고 볼 일이다. 다큐멘터리에 소개된 내 사진들에 대해 물으려고 한다는데, 다큐멘터리에 소개된 사진들은 한참 광각으로 시각을 왜곡시키고 느낌을 과장하던 무렵의 것이라, 지금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는 점이 조금 걸린다. 나는 무어라고 대답해 주어야 하나? 이번에 처음 작업한 엘르에서는 컨트리뷰트.페이지에 쓰고 싶다고 내 사진과 간단한 소개를 부탁해 왔다. 사진이야 준다지만, 어떻게 지금의 나를 200자 한자 속에 녹여 내나? 글쓰는 나에게도 어려운 주문이다.
황혼의 문턱에서 왁스는 사랑이 두렵다고 노래부른다. 꽃순이가 되어 바보같은 미소도 지어 본다. 언젠가 계절이 바뀌던 때에, 이제 여름이 갔다고, 여름은 다시 오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엘리베이터 아주머니에게 '아주머니, 무엇인들 다시 와 줄까요?' 속으로 물었다. 스쳐간 것이 다시 오지 않을 테고, 다시 와도 그 때 그 모습이 아닐 것이다. 책을 생각하며 나는 스쳐가는 것들의 이야기 말고 상하이에 머무르는 이야기를 하자고 다짐했는데, 찰나의 순간을 사는 존재들이 과연 머무름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괜한 욕심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잠시 점했다가 갈 것을 무엇 하겠다고 바락바락 내 흔적을 남기려고 애쓰는가 싶기도 하다.
오늘도, 말이 길다.
2007.07.18 16:28
분명히 한국 가기 전까지만 해도 좀 아슬아슬하긴 해도 프린터 구입할 돈이 수중에 있었는데, 뭐 계약 건이 조금 늦춰졌다고는 해도 계산상으로는 구입 가능했는데, 오늘 잔금 체크하니 임대료 내고 핼스장 연장하면 딱.이네?
연습장에 꾹꾹 눌러쓰는 오늘의 메모.
"돈 되면 곧장 프린터 지를 것.
지르고 볼 것!!"
2007.07.17 21:45
한국에 다녀오는 동안 썼던 메모들을 어제 저녁에 올렸다가 아침에 내렸다. 문장은 어떤 결기.를 전해야 하고 문장이 모인 글.은 생각과 삶의 정수.여야 한다. 아무래도 취한 기운에 올려두는 문장은 허무한 넋두리 느낌이 있어서 반갑지 않다. 메모는 다시 정리하고 다듬어야겠다.
어제 약속시간에 닥쳐 급하게 빵 한 조각 물고 육교를 건너는데 전화가 왔다. 투자회사인데 나를 좀 보아야겠단다. 오늘 가서 담당자를 만났는데, 오스트리아 출신의 친구는 영국의 면세지역에 본부를 두고 있는 자신들의 투자회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능하면 들어주려고 했는데 도저히 그럴 수 없어서 중간에 말을 끊었다.
"그래서요? 대체 왜 당신들 회사는 내게 전화를 한 거죠? 난 이제 막 시작한 사진가입니다. 돈도 없어요. 언제 투자할 수 있겠냐구요? 글쎄요. 몇 년은 걸리겠죠."
"그러게 말이예요. 당신을 내 데이터베이스에 끼워 넣은 그 빌어먹을 녀석은 대체 누구죠?"
입에 발린 몇 마디 인사를 반갑게 나누고 나왔다. 내 택시비는 어디서 보상받나?
신던 조리 신발이 떨어져서 새로 샀다. 한참 지친 목소리로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작전대로 카드 사용권한을 부여받았는데, 계산하려니 카드가 먹통이란다. 멀쩡한 지갑을 홀라당 털렸다. 반군네 지갑 현금보유고 0원.
상하이에 다시 온 순간부터 분주하다. 저녁에는 일찍 들어 와 두어 시간 저녁잠을 잤다. 마늘 장아찌와 김 몇 조각으로 저녁 먹고 잠시 쉬었다. 새로 사 온 책을 보며 쉬었다. 잠을 좀 잤더니 좀 살겠다.
이제, 일해야겠다.
2007.07.07 07:43
은경 누나네에서 아침 먹었다. 어제 푸동에서 촬영이 늦게 끝났고 작업실에 돌아오기에는 너무 늦어 은경 누나네에 갔다. 성균 형이 더위에 맞서며 맛나는 닭튀김 세트를 만들어 주어서 근사한 저녁을 먹었다. 형이 해주는 밥은 잡곡밥인데, 중간 중간 입 안에서 톡톡 터져서 씹는 맛이 좋다. 새벽에 형은 잠을 자고, 누나가 일찍 잠 깼다며 밥과 라면을 차려 주었다. 아침에 라면이 별로 끌리지 않아서 국물만 먹고 대신 밥을 가득 먹었다. 누나는 소파에서 고양이와 놀았고 나는 등 돌리고 테이블에 앉아 말 안 하고 먹었다.
혼자 밥 먹을 때, 먹는 일은 때로 고단하고 대부분의 시간에 경건하다. 밥숫갈이 밥그릇 한 번 긁을 때마다, 밥그릇 약간씩 점점 비어갈 때마다 먹는 일의 경건함이 온몸에 닿는다. 다 먹고 물러 앉아 물 한 컵 마시면 의식이라도 하나쯤 끝나는 것같다. 황지우는 뭐라고 쓰지 않았던가. 혼자 밥 먹는 늙은 사내의 뒷모습을 보며. 아마도 눈물이 난다.고 썼었지.
날씨가 덥다. 무척.
2007.07.05 19:16
낮 최고 기온이 36도를 찍었다. 체감온도는 더 높다. 아침 열 시 인터뷰로 시작해 저녁 일곱 시 로케이션 점검으로 하루가 끝났다. 한여름의 상하이를 걸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끈적끈적한 젤리 속을 걷는 기분이다. 걸음 걸음은 빈 공간 속을 흘러 나아가지 못 하고 사방을 가득 채운 습기의 젤리를 해치며 간다. 이 여름은 내 글의 또 하나 테마가 될 거다.
엘르에 다녀왔다. 주말 촬영을 잡았다. 초보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말에 힘을 실었다. 지난 번 바자 촬영은 아직 잡지에서 찾아볼 수 없고, 셀렉한 사진 연락도 없다. 엘르는 9월분 기사인데, 많이 일찍 결혼한 부부들을 찍는다고 했다.
조선 선비들이 문장 짓는 이야기를 묶어낸 책이 나왔다고 한다. 한국 가는 길에 사 와야겠다.
모간산루에서 포트레이트를 전문으로 그리는 이스라엘 화가를 인터뷰하고, 공동 작업을 하자고 약속했다. 몇 명의 모델을 골라서, 사진과 그림은 어떻게 모델을 기록하고 표현하는지 탐색해보자고 했다. 재미나겠다.
몇 줄 쓰지도 않았는데 사발면이 불었다.
2007.07.04 07:33
새벽에 명호가 떠났다. 남경으로 간다고 했다. 중국, 태국, 인도 등을 아우르는 1년 여정의 아시아 여행을 시작하는 녀석에게, 잘 가라. 무사히 와라. 인사하며 문 앞에서 보냈다. 어떤 떠나감은 돌아옴을 약속하고 어떤 떠나감은 돌아오는 것 따위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곧 다시 보자고 보내기도 하고, 오래오래 보지 말아서 모두 잊은 다음에야 보자고 보내기도 한다. 가고 보내는 것이 같다.
작년 겨울에 사서 쓰던 수첩이 마침 다 되어서 속지를 새로 갈았다. 다 쓴 수첩 겉에는 2006.11 2007.07 이라고 쓰고 서명했다.
2007.07.03 15:20
요 며칠 책이 풍년이다. 학교 후배 열대여섯이 다녀가며 선물이라고 책 몇 권을 가져다주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새 소설책과 들어보지 못 한 소설 몇 권인데, 열린책.이라는 출판사의 책들이다. 함께 오신 교수님은 조경학자의 시선으로 풀어낸 풍경 이야기 두 권과 건축관련 에세이집 한 권을 주셨다. 복단대 유학생 사이트에는 방학을 맞아, 졸업을 맞아 한국으로 돌아가는 유학생들이 중고장터에 책을 내어놓고 판다. 개인적인 생각에서야 책이란 것이 사람들 손을 떠돌아 다니며 읽히는 게 마땅하고, 다 읽었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면 되는 것이라고 믿어서 소설책 돈 받고 파는 것이 마땅찮았다. 생각을 바꾸어 괜찮은 소설들이 나오면 모조리 사서 모으기로 했다. 이번에 처음으로 몇 권을 샀는데, 여섯 권을 만오천 원에 샀다. 지난 일 년 상하이에서 학생으로 있었던 명호는 곧 일 년짜리 여행을 떠나는데, 내게 빌려간 책들 돌려주며 자기가 갖고 있었던 책 몇 권도 보태주었다. 나는 에어컨 밑에 소파 놓고 길고 게으르게 누워 책들 뒤적여 본다.
어제 아침 운동 가는 길에 작년 여름 출장길에 사서 신던 조리 슬리퍼 끈이 끊어졌다. 딱 일 년짜리였던 모양이다. 운동할 때 신는 운동화를 신고 돌아왔다. 아침에는 우산 손잡이에 묶여있는 끈이 끊어졌다. 이것 저것 끊어져나간다.
음,
일 년 가까이 만나오던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자연처럼 큰 흐름 안에 있기를 바랬지만 차근차근 쌓아온 시간은 단번에 끊어내기가 쉽지 않다. 감정은 여러 갈래로 오고 가서 모두 가려 적을 수 없고, 다만 헤어졌다고 쓴다.
2007.06.21 16:03
어제는 모간산루에 다녀왔다. 45mm, 17mm 렌즈 두 개와 수첩을 준비했다. 쓰겠다고 쓰겠다고 각오만 덧대어오던 책을 위한 첫 번째 취재다. 생각대로 진행된다면 내년 4월까지 원고를 마무리하고 8월에는 책이 되어 나올 수 있다. 그 때에는 연말 인사 보내는 사람들에게 메일을 보내서 책 좀 사 달라고 떼써 볼 작정이다. 책에는 상하이를 아우르는 열두 가지의 이야기가 담기는데, 이제까지 내 안에서 익어 온 온갖 문장들이 사방 펼쳐날 거다. 다만 사진의 방향성에 대해 확실한 답을 찾지는 못 했는데, 일관되고 구체적인 색을 가지는 동시에 허무맹랑하지 않은 사진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도대체 그런 사진은 어떤 사진일지 생각만 계속 하고 있다. 명색 직업이 사진가인데.
내일부터는 대통령 선거를 180일 앞두고 인터넷에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하거나 비방하는 표현을 쓰면 안 된다고 한다. 기사 아래는 수 많은 리플들이 달려서 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을 비난하고 있었다. 도대체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연말 대선은 흥미진진하겠다. 누가 된다고 해서 나라가 단 번에 좋아지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어떤 집단이 되느냐에 따라서 최근 수 년간 힘들게 다져온 나라가 한 방에 망가지는 경우는 생길 수 있다. 나라가 망할까 걱정하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개표를 지켜보아야 한다. 꼴이 꼴이 아닌 꼴이 되면 어떡하나. 해외 부재자 투표에 대해 알아보고, 안 되면 미리 들어가서 선거운동이라도 작게 하고 꼭 투표하고 와야겠다.
2007.06.08 12:20
한겨울을 빼면, 작업실에서 모델과 마주설 때는 대부분 맨발이다. 움직이기 편하고, 발바닥부터 머리끝까지 온통 렌즈 안에 몰려든다. 아침 아홉 시에 시작한 촬영은 자정을 조금 남겨두고 마지막 셔터를 끊었다. 열다섯 시간 이어진 촬영에서 발바닥은 까맣고 발등은 배경용 합판에 찍혀 상처가 났다. 왼쪽 어깨 근육이 뭉쳤다. 끝날 무렵에는 몸이 지쳤고, 큰 고함으로 몸을 떠받쳤다.
열다섯 시간의 촬영과 이어질 이틀의 후반작업이 끝나면 나는 마음에 두었던 프린터를 살 수 있다. 재주는 내가 부리고 돈은 프린터가 먹는 것 같아서 살짝 억울하기도 하다.
영어에서 셔터를 누르는 동작은 방아쇠를 당기는 동작과 닮은 취급을 받는다. 사진을 찍는 순간의 움직임을 'shoot'이라고 쓴다. 우리말에서 사진 찍는 순간을 일컫는 몇 개 단어가 있는데, 나는 그 중에 '끊다.'는 단어를 좋아한다. 사진은 연속하는 시공간 속에서 순간을 '끊어'내는 것인데, 그렇게 도드라진 순간의 앞뒤로는 보는 사람만큼의, 또는 보는 순간만큼의 공간이 새로 덧붙는 것이어서 시공간은 사진의 점.에서 비롯해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며 복층적이고 다면적인 이야기를 만든다. 생겨나는 이야기는 본래 있었던 것의 다른 모습일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이야기의 흐름일 수도 있다. 끊어서 만드는 사진이 공간 너머의 공간에 잇닿아 있다.
열흘 일정으로 한국에 간 혜정이가 돌아오려면 이틀이 남았는데, 작업과 촬영이 밀려 있는 이틀은 참 길어서 녀석 만나려면 아직 한참이 남은 것만 같다. 아이스와인 한 병을 사 온다고 했다. 사과에 치즈조각을 얹은 과일안주를 만들어달라고 졸라야겠다. 마침 강바람이 좋으니까.
2007.06.06 15:48
잠시 볕이 났다. 하늘은 여전히 구름으로 가득 찼는데 햇빛은 그 가운데 어디쯤을 깨며 오는 것 같기도 했고 구름이 비켜준 작은 틈으로 오는 것 같기도 했다. 서편 창문으로 빛 드는 걸 보며 낮잠을 잤는데 잠시 있다 눈 뜨니 다시 흐리다.
몇몇 유명한 사진가들은 그들의 글이나 책 속에서 한결같은 무서움에 대해 말하는데, 새 촬영을 시작할 때나 결과물을 받아볼 때 언제나 무섭다고 썼다. 엄살처럼 보이는 그 말들이 거의 대부분 사실임을 나도 비로소 안다. 촬영을 앞둔 날은 잠들기 직전까지 두근대는 가슴을 누르려고 애쓴다.
내일은 아침부터 밤까지 촬영이 이어진다. 몸과 마음을 한계까지 몰아갈 촬영이 끝나면, 어쩌면 마음에 두었던 프린터를 살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조금 조금씩 나아져서 제법 굶지 않을만큼 돈을 벌 수 있게 되면 무얼 해야하나 생각했다. 차곡차곡 모아서, 더 훌륭한 작업실을 갖겠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더 좋은 사진을 만들겠다. 돈이 모이는 것과 사진 실력이 나아지는 것 그리고 조건들이 맞추어지는 것이 함께 박자를 맞추어야 한다. 꼭, 보그에 내 이름으로 화보를 걸 테다.
성경아, 화내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어디. 정말 화가 날 때는 문장 앞에 앉을 수 없어서, 화날 때의 문장은 여기에 없단다. 나무가 자라면 둘레가 커지는데, 그 때 나무의 바깥 부분은 넓어져서 더 많은 공간의 호흡을 그 안에 품고, 나무의 안 부분은 더 단단해져서 굳은 뼈대가 된다고 했다. 함부로 아프지 말자.
2007.05.20 23:19
5월도 끝물입니다. 뭐라고 하는 사람 없어도 시간은 제법 빠르게 제 걸음을 갑니다. 잠자다가 일어나서, '담백하게 스며드는 문장을 쓰자. 찔러들어가지 말고, 강요하지 않고, 여기와 저쪽을 가르지 말고, 서투르게 단정 짓지 않는 담백한 문장을 쓰자.' 수첩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마음의 준비도 되어 가고, 소재도 제법 떠오르는데 첫 삽 뜨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또 '시작해서 탄력만 붙는다면 까짓 거 한 방일 거야.' 혼자 안심을 시켜봅니다.
낮에 햇빛은 많이 뜨겁고 옥탑방 작업실은 낮잠 자는 사이 땀으로 젖을만큼 데워지지만 해 떨어지면 제법 시원하고 가끔 서늘하기까지 한 바람이 붑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작업실 아래 펼친 강에 궤적을 남깁니다. 바람의 궤적은 강의 흐름에 올라타는 것 같지만 때로는 물의 궤적과 바람의 궤적이 합쳐서 둘 중 무엇도 아닌 새로운 모양의 궤적을 만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내가 너와 함께 걸을 때 그 궤적이 나도 너도 아니었던 것이 아마 그와 같았을까요. 그 안에서 바람도 강물도 제 각기 오롯했겠지요.
아마 이 여름의 중간 어디쯤에서, 나는 저 물의 궤적 위를 바람의 궤적처럼 떠돌아 볼 겁니다. 내심 작정하고 있는 글의 첫머리가 이 강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상하이의 현대와 근대를 잇대어 흐르는 강 위에서 내 이야기를 시작할 겁니다.
앓기 시작했던 것이 2월 중순쯤이었으니까 꼬박 석 달이 지났습니다. 이제 힘써서 움직이는데 거의 지장이 없습니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좋은 바람을 만나면 와인 한 잔 정도는 예의상 마셔줄 수 있는 만큼 되었습니다. 마침 며칠 전 잡지 광고에 들어갈 와인을 촬영했는데, 촬영 후에 와인은 작업실 냉장고로 들어갔습니다. 혼자 맞기 과분할 만큼 좋은 바람 앞에서 마주 보고 잔 들어도 좋았을 것을.
바람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불어오기도 하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불어가기도 합니다. 강물의 표면은 바람을 따라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궤적을 그리지만 끝끝내는 흘러서 바다에 닿겠지요. 저 바람도 끝끝내는 대양에 닿을 겁니다. 그렇다면서요? 그 큰 바다에는 참치가 산다면서요?
2007.05.19 23:09
밤 한 시 십오 분.
좀처럼 맑은 정신으로 깨어있기 힘든 시각. 가끔 낮잠을 길게 자는 날이 있는데, 저녁에 아침같은 기분으로 깨어나 잠시 머뭇거리면 맑은 밤이 온다. 그렇게 맞는 밤은 낯설다. 내가 일찍이 겪어보지 못 한 새로운 시간의 한 토막을 마주하고 앉아 생경한 공간에 떨어져 나와 앉는다. 그럴 때는 좀처럼 진도 안 나가던 문장도 두어 줄 쓸 수 있고, 몇 달 째 밀려서 거의 잊혀질 뻔했던 안부인사에 답장도 쓸 수 있다. 무엇보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한밤중의 공기는 한껏 유혹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어서 큰 창문을 모두 열고 와인 한 잔 마시면 뭔가 흥미진진하고 흥분되는 사건이 생겨날 것만 같다. 사건의 무대는 현실에 닿아있지만 판타지를 꿈꾸는 그 어디쯤이 좋다. 한바탕 꿈이어도 좋은 것이다.
2007.05.15 22:23
비 온다.
작업실 안에 앉아서 보면 잘 보이지 않는데, 발 씻으러 밖에 나가니 오는 듯 마는 듯 온다. 밤의 강빛은 가로등 불빛을 받아 나트륨색으로 반짝이는데, 그 반짝이는 표면 곳곳을 빗방울이 내려와 깬다.
낮잠을 자다가 더워서 깼다. 두려운 여름이 다시 왔다. 두 겹으로 겹쳐 덥던 이불에서 겉이불을 떼었다. 이불 두 장은 오랫동안 꼭 붙어 있어서 마치 하나 같았다. 이불의 부푼 부분과 이불의 가라앉은 부분 사이에서 두 이불은 들고 남이 같았는데, 두 장을 분리하며 본래 하나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었다. 둘이 하나가 되고 하나가 다시 둘이 되는 것이 그렇다.
일 년 반 넘게 내 작업실의 디자인 디렉터로 함께 일했던 세은 누나가 귀국을 결정했다. 용무를 말하지 않고 작업실에 들르겠다고 했을 때 이미 미루어 짐작했었는데 직접 들으니 잠시 멍. 했다. 가끔 함께 가는 식당이 있는데, 작년 연말에 둘이 앉아서 "내년에는 조금 더 풍성한 이야기를 하자."고 다짐했는데, 그 내년이 오지 않을 모양이다. 내 일을 자기 일처럼 해주어서 나는 참 고맙다. 누나가 돌아가면 다른 사람을 구해야겠지만 그 사람은 단지 메이크업일 뿐, 누나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겠다.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받고 보내는 일이 억지스럽지 않다.
2007.05.07 21:42
"평양성에 해 안 뜬대도 난 모르오. 웃은 죄 밖에."
장사익은 이렇게 불렀다.
존재와 존재간의 관계를 생각할 때, 일방이 일방을 일방적으로 기르거나 보호하거나 힘이 된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존재마다의 무게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너와 내가 존재와 존재로 만나서 손잡고 걸어간다. 좁은 화분 속에서 목마른 작업실 잔디를 보며 생각했다. 내가 잔디를 기른다는 생각은 아무리 뒤집어보아도 건방지다.
기르던 고양이 보낸 것이 제법이다. 길렀다기 보다는 그냥 옆에 두었고 녀석도 그냥 살아내었다. 야생에서 살던 녀석이 사방 벽으로 쌓인 공간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을 테다. 어느 밤에 내 마음대로 납치해서는 한 철 겨울을 같이 살다가 다시 보냈다. 납치하던 그 날처럼 그 자리에 내려두었다. 다음날 귀 한 쪽에 핏방울을 달고 덤불 속에서 쉬는 것을 보았는데, 그 다음부터 보이지 않았다. 철들고 동물과 함께 먹고 자는 것이 처음이었는데, 철들 무렵부터 혼자 살아온 나는 적응하지 못 했다. 발정난 녀석은 밤새 크고 서럽게 울었고 구석마다 소변을 누었다. 수술을 시키면 같이 살 수 있다고 했지만 차마 못 할 짓이라 그냥 보냈다. 하루를 살아도 고양이로 살라고 보냈다. 고양이는 제 구역을 갖고 산다고 하는데, 구역을 거느리고 살던 고양이는 내게 붙들려 있는 사이 제 구역을 필시 잃었을 것이고, 귀에 엉겨붙은 핏방울은 구역을 되찾으려는, 또는 새 구역을 개척하려는 의지와 그 의지에 반대되는 힘의 충돌이었을 테다. 녀석은 그렇게 살다가 죽을 것이다.
작업실 여기저기에 아직 녀석의 흔적이 많다. 새 배경지 꺼낼 때나 낡은 소품 챙겨들 때는 녀석 오줌냄새가 아직 많이 뭍어 있어서 모델 앞에 있는 나를 당황하게 한다. 책상 옆에는 녀석 귀에 든 진드기를 치워내는 소독약과 연고가 아직도 그대로 있다. 전부 다 치워낸다고 해도, 골목길에서 고양이 볼 때마다 꼬리 끝에 조금쯤 달려있는 것 같은 녀석 모습은 어떻게 치워지지 않는다. 잠은 잘 자는지, 간밤에 천둥소나기는 어디서 피했을지, 제 자리는 만들었을지, 쓰레기통은 영양가 있는 것들로 잘 골라다니는지. 그리고 안녕한지. 보내는 일이 그렇다. 함부로 데려와서, 그리고 함부로 보내서 미안하다. 다시는, 기르지 않으마.
요 며칠 장미꽃을 훔친다. 내 작업실이 있는 건물 옥상에는 나 말고도 다른 세입자분들이 계신데, 아마 그 분들이 씨앗을 뿌렸을 빨간 장미가 큰 화분 몇 개를 채워서는 난간가에 줄지어 있다. 며칠 전에 한 송이를 꺾어와서 조명 아래 두고 찍었는데 참 예뻤다. 찍은 장미꽃은 거꾸로 매달아 두었다. 다 마르면 다시 찍으려고 한다. 오늘은 풍성하게 핀 한 송이, 아직 어린 한 송이, 그리고 말라서 떨어지기 직전에 있는 한 송이를 꺾었다. 배경지 자를 때 쓰는 가위를 몰래 숨기고 나가서 보는 사람이 없는지 잘 살핀 후 꽃송이 약간 아래를 자른다. 장미를 훔쳐 작업실로 돌아오는 기분은 묘하다.
장미는 무거운 꽃이다. 집게에 물려 찍다가 잘 못 해서 바닥으로 떨어질 때는 '투-욱'. 둔탁한 소리가 난다. 검은 배경을 쓰고 꽃색깔도 아주 어둡게 뽑아내어서 마치 검은 장미가 암흑의 저편에서 느리게 건너오는 느낌이다. 한 동안 더 작업한 후에 좋은 종이를 골라 프린트하려고 한다. 언젠가 망원렌즈에 대해 쓰며 모든 피사체를 포트레이트의 대상으로 만든다고 썼다. 포트레이트는 주변에 있는 것들을 상관하지 않는다. 오로지 피사체의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며 묻고 또 묻는다. 검붉은 장미 앞에서 내가 만들어 내는 물음표들은 아직 인간의 언어로 형상화되지 않는 것들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들이다.
긴 노동절 연휴가 끝났다. 임대료 낼 때가 되었는데 벌어놓은 돈이 없어서 연휴도 반갑지 않았다. 잡지사며 클라이언트도 모두 놀아서 어찌해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겨우 장미 몇 송이를 꺾으며, 겨우 골목길 모퉁이 몇 개를 돌며 일주일을 보냈다. 김훈 선생의 새 책이 나왔다고 인터넷에서 읽었다. 그렇게 서둘러 서둘러 숨을 갉아내다가 저 양반 너무 일찍 쓰러지면 어떡하나, 괜한 걱정을 잠시 했다.
내게도 하려고 작정한 일이 있고 쓰려고 작정한 문장이 있다. 당당하지 못 할 것이 없고, 부끄러울 것도 없다.
2007.05.05 12:06
삶은 참 쉽지 않다.
밥을 사러 가야겠는데 계단은 잠겨 있고 엘리베이터 아주머니는 오실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돌아와서 유자차라도 마실까 하는데 도대체 굳게 잠긴 유리병은 열릴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알고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힘으로는 도저히 열 수가 없다.
카메라 렌즈에 필터가 굳게 물려 풀리지 않거나 유리병 마개가 너무 세게 잠겨서 안 열릴 때 대부분의 경우는 마찰력을 증가시킴으로써 열 수 있는데, 가장 무식하게는 힘을 더 쓰는 것이고, 고무줄 등을 감아서 시도할 수도 있다. 반대로 비누거품 등을 이용해 마찰력을 감소시키는 것도 방법이다. 포기하지 않고 손바닥이 빨개질 때까지 돌리고 돌리는 무모함. 이 십대는 무모해도 좋다. 어머니나 아버지는 조금 다른 방법을 쓰실 것도 같은데, 아버지는 아마 다른 공구를 쓰실 수도 있다. 결국 무모함의 연장선인 셈인데 남자는 사실 여자보다 조금 더 무모하다. 그래도 된다. 귀여우니까. 다른 방법들이 안 통할 때 어머니라면 아마 웃으시면서 잠시 그대로 두라고 하실 수도 있다. 나이들어감.의 현명함과 여성의 현명함은 자연스럽게 그런 결론을 내린다.
조금쯤 좌절해도 된다. 대책없이 무모해도 된다. '해도 된다.'는 의미는 시도해 보아도 좋다는 의미다. 절대.에 대한 가정이나 단서는 아니다. 그러니까, 무모한 것도 좌절하는 것도 잠시 거쳐가는 것으로 족하고, 잠시 거쳐가는 것이니까 무모한 좌절도 좋다. 청춘아, 잠시 쓰러져 있어도 좋다. 곧, 다시 걷자.
다시 숨을 가다듬고, 저 유리병이 열릴 때까지 젖 먹던 힘을 쓰겠다.
나는 아직 젊고, 게다가 무모한 수컷이니까.
2007.04.23 21:21
갑자기 생각이 나서.
많다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그렇지도 않네.
2007.04.22 19:40
읽고 있는 책이 도저히 진도가 안 나가서 덮었다. 중국 당대예술에 대한 교양서적인데 번역이 잘 안 된 것인지 읽기가 더디다. 얼마 전에 읽은 독일 소설가의 소설도 비슷했는데, 작가가 모국의 언어로 모국의 문화 속에 녹아있는 풍성한 이야기를 문장 속에 녹여 낼 때, 번역은 태생적인 한계를 갖는다. 시가 번역하기 힘들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소설도 일정부분 해당된다고 요즘 생각한다.
책 선물을 좋아한다. 내가 받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고, 주는 것도 좋아한다. 한 때는 도서상품권을 선물로 주기도 했는데, 선물이란 것이 내 뜻을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상품권보다는 내가 직접 골라주는 것이 더 낫겠구나 싶었다. 특히 오래된 친구나 선후배 사이에서는 책을 주고 받는 것으로 그 사람의 요즈음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새책 헌책을 가리지 않는 편인데, 책꽃이에서 하나 뽑아 보내달라고 하면 그 사람의 지금 모습과 지금의 나를 생각하는 인연의 마음까지 담겨 온다. 선물도 좋지만 막역한 사이에서는 강제로 강탈해 오는 짓도 곧잘 한다.
요즘 한국의 책은 너무한다 싶을만큼 질이 좋다. 좋은만큼 비싸다. 좋은 원고를 쓰고 좋은 기획을 한 작가와 기획자에게 수고에 상응하는 금전적 보상이 돌아가는 것은 맞겠지만, 비싼 종이와 두꺼운 표지에 책 값을 지불한다는 생각이 들 때는 슬며시 화도 나고 억울도 하다. 그 비싼 책을 한 번 읽고 책꽂이에 모셔두는 것이 답은 아닌 것 같아 주변 사람들에게 아무렇게나 빌려 주는데, 여러 사람 돌려읽는 사이 책이 낡아가는 것은 책의 마땅한 운명이라 생각하니 아쉬울 것이 없다. 다만 한 번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책들은 참 많이 아쉽다. 아끼는 김훈의 자전거여행과 필립퍼키스의 사진강의노트 두 권은 내가 최근에 발견한, 돌아오지 않는 책들이다.
대학교 때 한 친구와 이야기하며 나중에 나중에 나는 좋은 서재를 갖고 싶다고 말했더니 식탐에 준하는 책탐이라고 핀잔을 들었다. 책을 읽으려는 욕심이 아니라 책을 모으려는 욕심 아니냐고 물었다. 미처 생각해보지 못 했던 부분이라 당장 대답하지 않고, 그런지도 모르겠으니 곰곰히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답을 알지는 못 한다. 다만, 모든 문제에 꼭 대답을 해야하는 것은 아닌데, 책에 대한 문제는 내게 그런 종류다.
삼 일 동안 꼬박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급한 일 처리하는 것을 빼고는 꼬박 하얀거탑이라는 드라마 DVD를 봤다. 워낙 잘 만든 드라마라는 소문이 있고, 애정관계를 비비 꼬아둔 흔한 드라마도 아닌 것 같아 열심히 봤다. 시신을 기증하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자기 분야에 대한 집착과 그 집착 때문에 알면서도 묻어두어야 했던 소소한 생각들이 은근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재밌게 보고 돌아서니 어느새 삼 일이나 갔다. 잘 봤다는 생각인데, 속았다는 생각도 아주 조금은 든다.
거 참,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나?
2007.04.22 19:11
중국에서 길을 나선다는 것은 곧 모험과 마주할 각오를 한다는 의미다. 길 떠나는 사람에게 모험은 낯선 것이 아니지만 특히 중국에서, 특히 외국인의 입장이라면 그 모험은 조금 더 빈번하게 다가온다.
항주로 가는 차는 한참 달리는 중에 멈추었다. 하필 고속도로 중간이라 다른 차들은 여전히 ‘한참 달리는’ 중이고 멈춘 차는 달리는 차들이 만드는 쌘 바람에 휘둘리며 서 있다. 취재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수리를 하기도 다른 차를 부르기도 힘든 상황에서 기자와 디자이너는 속이 타고 그 사정을 아는 기사 아저씨는 의미도 없는 몸짓으로 분주하다.
강 건너 불을 보며 나는 급할 것이 없다. 작업실에 새로 세울 벽의 개략적인 설계도를 그려보고, 내가 중국에 머무는 동안 할 수 있는 작업과 봉사를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봉사라는 것은 내가 넘치게 받은 혜택의 일부를 내 손으로 돌려주는 것인데, 굳이 개인이 우주의 일부이고 우주 또한 개인의 일부라는 여러 선각자들의 말을 끌어오지 않더라도, 내가 받은 것은 어떤 형태로든 되돌아갈 것들이겠지만 가능하면 내 의지에 바탕해서 내 능력을 수단 삼아 돌려주면 좋겠다. 물론 꼼수도 없지는 않는데, 봉사라는 이름 아래 진행될 일련의 과정은 내 개인적인 작업의 일부일 것이고, 나는 그런 꼼수를 가능한 드러내지 않을 작정이다.
작업실 안에 세우려던 벽은 그 진행이 더뎠는데, 예전에 한 번 보았던 것에만 묶여 꼭 그렇게만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며칠 고민하며 여러 다른 부품들을 보는 사이 보다 새롭고 간단한(또한 보다 저렴한)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이제 벽을 세울 수 있겠다.
지나던 정비차량의 도움으로 기력을 회복한 자동차는 한 시간 여를 달리다가 다시 멈추었다. 이번에는 하얀 연기 꼬리를 길게 끌며 섰다. 목적지 항주까지는 아직 30분이 남았는데 자동차는 콜록거리며 연기를 뿜을 뿐 움직일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몇 달 전에 나는 내 사진을 크게 한 번 털어야 할까 생각했는데, 어제는 내 문장에 대해 같은 생각을 했다. 두 번 모두 생각의 단서는 혜정이가 주었다. 내 무거움에 대해 생각할 때, 무거움의 바닥까지 눌리는 것은 문장이다. 문장 쓸 때 나는 무엇도 놓치지 않으려는 섬세한 관찰력을 스스로에게 요구하는데, 그 기대치는 사진에 대한 것보다 크다. 말과 행동은 그와 달라서 적게 말하고 작게 움직이려고 하지만 움직이고 말하는 속에서는 가볍기를 바란다. 물론 그 가벼움은 경쾌해야 하는데, 경박하지 않고 무거움을 덧쓰지 않아야 한다. 가벼움은 단단하게 뿌리박은 갈대의 흔들림 같아서, 주변의 바람과 스스럼없어야 하지만 그 뿌리는 아련함 속에 분명해야 한다. 가볍되 경박하지 않아야 한다. 무거움을 덧쓰는 가벼움은 앞서 못지않게 경계할 것인데, 있지 않은 또는 없어도 좋을 무거움은 이로울 것이 없다.
내 문장에 가벼워질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 한참 가는 길에 온몸을 힘껏 떨어내면 자칫 가던 길을 잃을까 싶기 때문이다. 다만, 문장이 문장의 무게로 헛되게 버겁지 말기를, 그렇게 되도록 경계하며 애써야겠다. 문장에 싣는 무게는 문장으로부터 오지 않을 것이다. 단단하고 성실한 매일의 걸음, 거기서 온다. 경쾌하게 가벼운 문장과 호흡마다를 막아서는 무거운 문장에 대해 생각할 때 얼핏 박완서와 김훈의 문장을 떠올려볼 수 있다. 내게 박완서의 문장은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문장처럼 보이고, 김훈의 문장은 숨을 갉아가며 쥐어짜는 문장 같아 보인다. 작가마다 가지는 문체의 개성이겠지만, 개성이란 결국 세상을 대하는 태도 때문인 것도 같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란 또한 작가의 나이와 상관있는 것도 같다. 삶의 어느 변곡점을 지나면 과거를 살아가는 시간이 올 것 같은데, 어쩌면 그 변곡점을 지난 박완서와 아직 변곡점 못 미쳐 온 몸으로 세상을 밀고 나가는, 아직도 겨루어야 할 것이 많은 김훈의 문장일 수 있다.
두 번째 멈춘 차는 도대체 갈 생각을 안 한다. 거친 숨만 헐떡거린다.
2007.04.15 19:46
비 온다. 세차다. 갑자기 천둥이 치고 곧장 하늘을 통째 쪼개어 바닥으로 내리찍듯이 비 온다. 천둥소리를 무심결에 듣고 넘겼는데, 이어진 세찬 빗방울 소리가 천둥을 기억나게 했다. 비 오는 소리가 처연하다. 무엇도 담아두지 않은 사진에서 외로움을 읽어낸 사람이 외로운 사람인 것 처럼, 내리꽃는 빗방울이 처연한 것은 빗방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며칠 전에 끄적여 두었던 메모를 아직 옮기지 못 했다. 가만 놓아두면 날카로운 모서리가 조금씩 닳고 제 짝 아닌 접속사들은 토씨 하나씩 허물어져 내린다. 그리고 어느 저녁이나 새벽쯤에서 겨우 문장 한 줄 밀어올릴 힘이 목에까지 차오르면 메모 꺼내서 볕에 널 수 있다. 아리랑.을 읽었는데, 김산은 모든 것들에게 패하고 오로지 자신에 대해서만 승리하였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었다. 독한 놈이다.
이제 밤을 도와 세 장의 기사와 열대여섯 장의 사진을 만져야겠다.
존재마다의 경계가 새삼스레 도드라지는 밤이면 경계 너머 저기서부터 내 경계를 조각조각 허물어 오곤 했던 친구들이 보고싶어진다.
소나기는 시작처럼 갔다.
2007.02.24 18:52
하늘은 파랗다. 공항에 내려서 보는 한국 하늘은 언제나 파랗다.는 형용사를 앞세워 온다. 처음 받아보는 천 원권 새 지폐는 파란색이어서 낯설고, 깔끔하고 너른 실내에 어울리게 성큼성큼 건너 뛰는 택시 미터기 요금은 낯설어서 사람을 당황하게 한다. 택시 라디오에서는 양희은이 나와서 노래하고 이야기하는데,
"서른? 아직 아기죠." 했다.
짧은 문장에 길게 위로받았다. 조급함이 조금은 덜어졌다.
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 순대 사서 가져와 먹었다. 제일 적게 줄 수 있는 양을 물었더니 3천 원이라고 해서 그렇게 샀다. 공항 리무진을 타고 거스름돈으로 받은 새 천 원권 지폐를 냈다.
집은 변한 것이 없다. 어머니 흰 머리카락이 조금쯤 는 것도 같고 얼굴 주름이 조금쯤 선명해진 것도 같다. 아버지도 여전하시다. 아무리 생각해도 돈 될 것 같지 않은 일에 더 허송세월 하지 말라. 말씀 앞에서 당장 다음달 임대료를 마음에 숨긴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얼른 다시 가야 한다. 내 무대가 아직은 거기다. 길이 먼데 마음이 급해서 집에 있는 것이 편하지 않다.
2007.02.06 09:19
겨울이 가야 비로소 오는 것이 봄인 줄 알았다. 아직 겨울이 가지 않았는데 봄은 벌써 왔다. 겨울 끝머리 속에 녹아서 왔다. 한 번 두 번 신호를 보내다가 한 순간 와락, 덥쳐 올 것을 안다. 위태로운 봄이 그렇게 올 것이다.
작업실이 너무 넓어서 감당할 수 없다. 잠자고 일어나고 밥 먹고 씻어도 작업실은 아직 채워야할 빈칸이 너무 많다.
두어 줄 쓰다가 지우고 또 두어 줄 쓰다가 지우고.
2007.01.18 18:25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책 읽다가, 먹는 일을 생각했다. 다시 작업실에서 생활하는 날들이 시작되면 나는 어떻게 끼니를 이어야 하나? 생각했다. (문장을 쓰는데 시작.이라는 단어에서 호흡이 덜컥. 걸렸다. 과속 방지턱을 감속 없이 넘어가다 체한 자동차처럼. 다시.라는 부사가 자동차 끝머리에 걸렸다. 시작.은 무엇인가를, 어떤 행위를 처음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다시.라는 부사는 같은 상황 또는 연결되는 상황이 앞서 존재했다는 증거 아닌가. 시작.도 다시.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그것은 어떤 관대함일 것인데, 관대함을 베푸는 주체는 시간 정도가 아닐까 싶다.)
몇 달 안 된 집을 정리하고 다시 내 온 시간의 공간으로 작업실을 선택하는 것은 우선 금전적인 부담을 줄이려는 목적이고, 출근, 퇴근으로 나누어져 끊어지는 일의 리듬이 싫었기 때문이다. 내가 내는 집값에 비해 내가 집에서 얻는 효과가 적다는 판단도 한 몫 했다. 이미 겪어본 작업실 생활이니 조금은 더 대비할 수 있다.
새벽 촬영은 허탕을 쳤다. 촬영 약속한 곳에서 내부 연락에 문제가 생겨 약속한 장소에는 어떤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24시간 편의점에서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고, 대답 없는 철문을 세게 노크했다. 옆 아파트 초소의 관리원은, 아무리 두드려도 소용 없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돌아오는 택시는 여전히 야간할증인데, 중국 서부지역색이 강한 노래가 나왔다. 듣는 사람 적은 새벽 시간. DJ의 맨트 없이 잇달아 나오는 노래들 중에 섞여 있었다. 짧은 중국어 실력으로 듣기에 노래는 명백함.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명백함 보다는 선명함.에 더 어울리겠다고 혼자 생각했다. 선명함 또는 명백함을 노래하는 고원의 목소리는 지난 봄에 들렀던 윈난성 어디쯤을 떠올리게 했는데, 그 땅의 기운이란 것은 나와 너를 나누는 명백함이기 보다 모든 존재가 제 각기 가진 윤곽을 오롯이 드러내는 선명함과 어울렸기 때문이다. 고원의 선명함 속에서 존재는 서로 겨루지 않았고 각기 가진 색으로 아름다웠다. 고원에 서 보면 멀리 바다는 보이지 않았고 그 존재 또한 관념 속의 것이었지만 관념의 바다로 끝끝내 닿을 것이 분명한 강물은 거센 소리를 내며 발원하고 있었다. 내가 나서서 나를 보이고 증명하지 않아도 큰 흐름 속에서 나와 내 주변이 자연스럽게 선명했다.
새벽 두 시 반에 일어나 네 시 반에 돌아오는 택시를 타며, 나는 어떤 존재를 향해 내 무엇을 증명하려고 이렇게 아둥거리고 바둥거리는가 물었다. 답할 수 없었다. 다만 뿌리를 구름에 담군 고원을 생각했다.
본다.는 자체는 왜곡을 전제한다. 산 정상에 올라서서 보는 광활한 대지, 끝 간 데 없이 펼친 바다를 고작 손 가락 한 마디도 안 되는 동공으로 받아들여 시각 속에서 광활함으로 재구성하는 것은 곧 왜곡의 과정이다. 이 때 눈과 가장 닮은 왜곡을 만드는 것이 표준렌즈다.
2007.01.17 14:44
가끔 버거킹에 간다. 케이에프씨, 맥도널드와 다르게 패스트푸트 같지 않은 맛이 좋아서 간다. 고기 맛도 좋지만 함께 씹히는 양파와 토마토 맛도 좋다. 먹는 것도 가능하면 그 자리에서 먹고 오는데, 다른 곳으로 가져가는 사이에 소스가 빵에 스며들어 전체적인 맛을 눅눅하게 만드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내게 버거킹은 패스트푸드가 아니다. 어제는 마침 행사를 해서, 하나를 사면 하나를 더 주었다. 혼자 간 나는 덕분에 와퍼 두 개를 한꺼번에 먹었는데, 내가 본래 시킨 와퍼를 먼저 먹고 이벤트로 따라 나온 와퍼를 나중에 먹었다. 역시나 이벤트로 나온 와퍼는 얇았고 재료도 빈약했다. 나중에 먹길 잘 했다고, 만약 처음 먹었으면 맛 좋은 와퍼를 부른 배로 맞이해야 했을 것 아니냐고 스스로 대견해 했다. 삶의 지혜라는 것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이틀 뒤면 다시 여기 작업실에서 잠자는 생활을 시작한다. 하나 둘 준비하는데, 오늘은 가필이를 데리고 병원 다녀왔다. 녀석 몸에 사는 벼룩을 내가 들어오기 전에 어떻게든 떼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낯선 공간이 낯선 가필이는 내 외투 여기저기에 상처를 내고, 손바닥에 깊은 두 줄 상처를 더 만드는 것으로 반항했다. 벼룩 제거용 목욕, 귀 진드기 제거용 약품 등 450원 비용이 들었다. 법정 스님 말씀 중에, 난을 길러보면서 가진 것마다 집착이 따라오는 것을 새삼 알았다.고 하셨다. 어쩔 수 없다. 도 닦으며 살지 않을 바에야, 집착 또한 곁에 두어야 한다. 그래도, 450원은 아깝다.
2007.01.10 14:13
나는 좋은 문장, 좋은 글을 꼭. 쓰고 싶습니다.
2007.01.08 12:09
눈이 부신 가필군의 낮잠 자는 모양새.
2007.01.02 19:48
크기가 작은 두통. 난로 앞에 너무 오래 있었다. 창문을 열어 환기 시킬 때는 조금 낫는듯 하더니 찬 기운에 문 닫으니 다시 아프려고 한다.
대만 지진 때문으로 인터넷이 아픈 지 1주일이 되어 간다. 사이트 접속이 수월하지 않고 해야할 일 몇 가지도 덕분에 못 하고 있다. 우선, 연말인사의 답장에 대한 답장을 써야 하는데.
가필이는 몸살 감기가 걸렸을 수도 있다. 잠 자는 시간이 길어졌고 잠의 깊이도 깊어졌다. 이틀 전에는 문 열고 들어오는데도 모르고 자고 있었다. 말려 놓은 걸레를 가져와서 덮어주었다. 잘 덮고 잔다.
2007년이다. 올 해가 지나면 많은 것이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책과 사진작업, 작업실 문제와 내 다음 일들이다. 한 해 안에 윤곽을 확인하려는 것은 어쩌면 아직 젊은 조급함일 수도 있겠지만, 한 해 안에 윤곽이 드러나야 한다고 여전히 믿는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의 윤곽을 보탠 큰 윤곽, 그러니까 내가 과연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는 놈인가? 하는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철 든 후부터 꼭 껴안고 다니던 물음에 대한 윤곽이, 아마 올 해가 지나면 아주 조금은 선명함을 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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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짧은 글 모음
2006.12.26 08:15
반짝.
작정하는 글에 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2006.12.19 17:20
제법 하루 종일 걸려 연말인사를 발송했다. 주로 쓰는 G mail로 발송하려고 했지만 html기능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어쩔 수 없이 다음.메일을 이용해서 단체메일로 보냈다.
연말인사 보내며, 일 년만에 메일주소록을 열어보며 그 사이 내가 제법 움직여 왔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더디고 더뎌서 무엇도 나아진 것을 몰랐다. 한 해 사이에, 나는 내 이름으로 된 작업실을 가졌고 부족한 몇 장의 포트폴리오도 가졌다. 대충 사는 하루들에게 참 부끄러웠는데, 멈추어 있지는 않았구나. 대견하다.
한 명 한 명 이름을 보고 메일주소를 옮겨쓰면 사람들 얼굴이 하나 하나 떠오르고 하나 하나 얼굴에게 전해야 할 안부와 묻고 싶은 이야기들이 또 하나 하나 짝을 맞추어 떠오른다. 쉽게 단체메일 턱.하니 보내는 것이 끝끝내 미안한 것도 같은 이유다.
올해도 스무 명 넘는 인연들이 메일을 돌려보냈다. 어떤 사람은 메일 주소가 없어졌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편지함 용량이 꽉 찼다고 한다. 비슷한 것이다. 다른 주소를 쓰니 관리를 안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넘치는 거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연락처를 잃어간다. 몇 명의 인연이 새로 생겨나는 것과 전혀 별개의 문제로, 잊혀지고 묻게 되는 인연들이 많이 아쉽다.
인연들이, 부디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나도 돕겠다.
2006.12.14 18:20
버스 내려 길 걸으며 내가 가진 것들을 생각했다. 정확하게 말해서, 나는 내가 가진 것의 얼마를 쓰며 사는가? 생각했다. 대충만 따져보아도 20% 남짓, 잘 쳐준다 해도 25%를 넘지 못 하는 것 같다. 나는 내가 가진(자각하는) 에너지의 20%를 쓰며 살고 있다. 고작 그 정도로 애쓰며 힘들다고 나 아닌 것을 탓한다.
내가 느끼는 불안함과 불만족 따위의 감정이란 것들은 결국 완전히 연소시키지 못한, 어쩌면 불붙어보지도 못한 에너지의 불쾌한 찌꺼기. 그 냄새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 다음 내 목표는 어떻게 좀 더 많은 에너지를 쓰며 사는 시스템을 내 안에 구축할 것인가? 로 결론 지을 수 있다.
사이트의 메뉴구성을 약간 바꾸고 지난 한 해 동안 잡지에 썼던 글과 사진들을 모아 올렸다. 차곡차곡 쌓아두고 보니 겨울 맞은 농부의 심정을 알겠다. 무엇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 몰랐는데 돌아보니 제법 쌓이고 있었던 것을 알겠다. 사이트 개편은 내 포트폴리오로서 이후 작업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도록 만들었다.
연말인사를 다 썼다. 드디어. 문장이 겉도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당장 발송하지 않고 하루이틀 두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조금 자난 다음, 여전히 아쉬운 문장을 시간에 떠밀려 인연들에게 보내야겠다. 인연들아, 어느새 또 한 해가 지났다.
2006.12.09 08:33
어떤 비는 내린 후 추워졌고 어떤 비는 내린 후 따뜻해졌다. 어제는 종일 내리는듯 마는듯 비가 왔는데 오늘 아침 나오는 길에 바람이 부쩍 각을 세워 찌른다. 그래서,
바야흐로
겨울.
한 달 가까이 끌어오던 일이 어제 파티촬영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시안작업부터 본촬영, 추가 작업까지 하나의 리듬을 가지고 이어져서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욕심을 많이 내는, 그만큼의 욕심에 어울리는 준비를 보여준 de all 식구들 덕분에 즐겁게 작업했다. 지금 한참 카피중인 사진들을 확인하고 작업하고 프린트해서 넘겨주면 일이 끝난다.
예진이와 이야기하던 중에, 나는 사람마다 색의 절정.을 맞는 시기는 다를 것 같다고 말했다. 가능성.을 본다고 말하면서도 나는 지금 내 앞에서 인연들이 절정.의 색을 뿜어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예진이는 한 걸음 나아가, 색깔이 변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선형적인 시간 위에서 색의 옅음과 짙음 사이를 오가고 있는 내가 멍.해졌다. 맞다, 색깔이 변할 수도 있는 거구나. 새삼스러웠다. 색깔에는 우열이 없다.
이제, 연말인사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2006.12.02 18:56
한 마리 고양이로 살아도 좋을 것이다. 하나의 공간에 있고 하나의 동작 속에 동참할 때조차 고양이는 온전히 소속되지 않는다. 설사 살 부비고 있더라도 고양이는 온전한 자신만의 공간을 온전히 남겨두고 있다. 밥을 얻어먹고 물을 얻어마시고 잠자리를 제공받아도 고양이는 고양이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일 것까지 있겠는가 어디. 하이에나가 아니면 어떨까 또. 생명이라면, 이렇게 완벽하고 온전하게 분리된 자기만의 공간을 가져야 한다. 적어도 자존심 있는 생명이라면 그래야 한다. 뭐 무생물이라고 갖지 말란 법 있겠나 어디. 다 떨어진 소파 위에 앉아 눈을 감았다 뜨는 가필이처럼, 완전히 어두워진 작업실에서 노란색 조명을 켜고 비율 안 맞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큰 음악을 듣는 나도 그랬으면 싶다.
매 월 잡지가 올 때마다 나는 내가 쓴 문장을 보며 부끄럽다. 어떡하나. 글 써야 하는데 이렇게 문장 앞에 겁만 늘어나니 이 일을 어떡하면 좋으나. 허영으로 가득 채운 문장은 아니다. 제법 몇 년 애썼으니 내 문장에 허영은 빠졌다. 적어도 아주 조금은 빠졌다. 소금에 쓴맛 빠지듯 빠졌다. 그래도 시간에 쫓겨 대충 갈겨내는 문장은 얕고 거추장스럽다. 시간에 쫓겨 쓴다는 사실이 내 문장을 변호하는 것은 아니고, 나도 거기에 기댈 생각 없다. 내 문장이 아직 얕다. 깊숙하게 찔러 들어가지 못 하고, 진득하게 스며들지도 못 하고 겉에서 모양만 내며 읽어달라고, 어서 읽으라고 재촉한다. 아, 어쩌나. 나는 문장을 써야 하는데.
안재흥 선생님은, 자신은 포스트 모던을 좋아하지만 명백한 모더니스트.라고 하셨다. 어제보다 나은 내일.이 삶의 명제가 된 사람들. 나아가지 못 할 때, 참치를 생각한다. 헤엄을 멈추면 참치는 숨을 쉴 수 없고 그러면 참치는 죽는다. 나아가지 못 하면 죽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 때나 나아가기를 멈추어도 생활은 그대로인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나아가고 나아가다가 결국 그 나아감.이 삶 자체가 되어서 나아감.을 빼면 삶에 아무 것도 남는 게 없고 그래서 결국 삶이 없어져 버리는, 그래서 죽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나아감.이 없는 삶은 살아도 살아 있는 게 아니고 죽음보다 더 비참한 현실이 된다. 그 때쯤 되면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다. 나아감.에 대한 의지를 포기하는 순간, 세상이 통째 허물어져 내린다. 부단한 의지로 나아가는 게 아니다. 그것 밖에 할 수 없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 존재를 알기 때문에 멈출 수 없다.
뚜껑 열고 한 달이 넘은 와인은 참 맛이 묘.하다. 어쩌나, 이 것 밖에 남은 게 없다.
가진 것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삶이 아니다. 내 부모님이 그러셨듯이 나 또한 개쳑하고 개척하며 살아야 한다. 연말 인사 준비하며 여러 가지를 생각한다. 고양이같은 그대들이, 오늘 참 많이 보고싶다. 부른 자의 투정이다. 해 떨어진 작업실은 춥고 난로는 따뜻하구나.
가필이 몸에는 벼룩이 산다. 벼룩은 길이 2~4mm 정도인데 양옆으로 납작하게 생겼다. 그러니까 멀쩡한 벼룩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참 얇게 생겼다. 사진 찍기가 힘들어서 결국 죽여 눕힌 다음에야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이 벼룩은 피부에 이빨을 박고 피를 뽑아먹으며 산다. 예전에 곤충소년.이라는 만화가 있었는데 그 만화에서 벼룩은 제 몸 높이의 60배를 뛴다고 나와 있다. 과연 벼룩을 잡아 책상 위에 두면 녀석은 곧 다시 뛰어 가필이 몸 속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한 번 잡은 벼룩은 딱. 소리가 날 때까지 꼭 눌러 죽여야 한다. 거 참, 벼룩이 피를 먹어 보아야 얼마를 먹겠나? 그래도 가필이가 자꾸 제 등을 핧고, 벡과사전에는 벼룩의 크기 외에도 벼룩의 위해성.에 대해 잔뜩 써 놓았으니 잡으면 죽인다. 사실, 가필이 털 속을 뒤져보면 벼룩이 꽤 많다. 얼른 목욕을 시켜야 할 텐데. 그래도 무릎에 올라오는 가필이를 내칠 수 없다. 벼룩이 내게 옮겨와 보아야 얼마나 오겠나. 매일 비누에 샴푸로 화학코팅을 하는 내게서, 온갖 화학섬유로 만든 옷 속에서 순수자연인 녀석들은 또 얼마나 버텨낼 수 있겠나.
인연들아, 부디 쓰러지지 마라. 그대가 쓰러지면 나는 안쓰러움 이전에 화를 내야 할 것 같다. 가진 것들은, 열심히 살아야 한다. 대충 살라고 우주가 그대에게 그런 능력을 주지는 않았을 거다. 그러니, 부디 열심히 살아라. 가끔 대충 사는 하루를 만나는 날이면 쓰라린 주정도 해 가면서, 부디 쓰러지지 말자. 그대가 가진 능력만큼, 세상은 아름다워질 권리가 있다. 그리고 능력을 가진 그대는 그만큼 세상을 아름답게 가꿀 의무가 있다. 그러니까 대충 살면 명백한 직무유기.밖에 안 된다. 가끔 의심하겠지만(내가 정말 능력 있을까?), 가끔 회의도 들겠지만(그냥 남들처럼 살면 안 될까?), 그래도 인연아, 쓰러지지 말자. 그대들이 쓰러지면, 세상은 또 얼마를 기다려야 할까? 나는 또 어디에 기대어 우나? 가끔 스스로가 한심해도 부디. 쓰러지지 말자 인연아. (발음이 우습다. 인연.이 이 년.이랑도 비슷하구나.)
나는, 제대로 가고 있나? 언제나 가장 간절하게 답을 구하고 싶은 문제는 사실 이런 거다. 느리게 가고 빠르게 가는 것은 별로 궁금하지 않다. 제대로만 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면 언젠가는 닿을 수 있지 않겠나? 밤 같은 새벽 산길을 걸을 때 제일 반가운 것은 이정표였다. 얼마가 남았다는 걸 알 수 있어서 반가운 게 아니다. 잘 보이지도 않는 길을 걸어왔는데, 내가 가는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려주는 이정표를 만났을 때 느끼는 안도감과 희열을, 상상할 수 있겠나? 이 길 위에서, 나는 언제쯤 그럴듯한 이정표를 만날 수 있나? 사방이 맹수들로 가득찬 정글을 걷는 느낌인데. 더구나 내가 가려는 목적지도 아련한데.
아, 12월의 주정.
술이 아직 남았는데.
2006.12.02 09:00
아,
12월.
2006.11.27 12:19
다리 저린다. 날씨가 추워져서 내가 작업실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가필이는 내 무릎에 올라와서 엎드려 잔다. 오늘 아침에는 작업복이 발톱에 걸려 조금 상했다. 안 쓰는 커튼을 크고 두껍게 접어 무릎 위에 올려두니 그 위에서 잔다. 저도 나도 따뜻해서 좋기는 한데 고양이와 살쾡이 중간 정도의 덩치를 가지고 하는 짓은 개를 닮은 이 녀석은 꽤나 무릎을 저리게 한다. 곤히 자고 있는 녀석을 그렇다고 쫓아낼 수는 없지 않나.
오전 내내 부글거리며 화장실을 들락거리게 했던 속이 이제 좀 잔다. 어제 승희형, 먼지, 혜정이와 함께 먹은 양꼬치가 문제였다. 맛있디고 평소에 잘 먹지 않던 매운 음식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었다. 오후 촬영까지는 몸이 컨디션을 회복해주어야 한다.
몇 년만에 내 돈 주고 옷을 샀다. 두툼한 담요같이 생겨서 입으면 이불 속에 들어가 걷는 느낌이 든다. 새옷 냄새. 나쁘지 않다. 새삼 내 모든 옷 구입을 알아서 해주는 누나에게 고맙다.
내년에 쓰려는 책의 얼개가 대충은 잡히고 있다. 상하이를 찾는 사람들이 한 권쯤 갖고 오고 싶은, 그런 책을 쓰겠다. 상하이와 예술을 한 데 어우르는 책이 될 거다. 우선 타겟을 확실히 정하고, 너무 욕심 부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 글의 내용을 정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문장의 틀.을 정하려고 한다. 책에 관한 부분은 예진이에게 많은 도움을 받기로 했다. 관련된 좋은 책들을 권해 주어서 잘 읽었다.
꼬박 열흘도 더 비 내린다. 끊길듯 끊길듯 끊기지 않고 내려서 사람을 참 지치게 만든다. 빛 못 보고 덕분에 물도 못 얻어먹는 작업실 잔디들도 기운이 없다.
방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이불을 새로 사고 옷장도 옮길까 한다. 청소도 조금 해야겠다. 어차피 잠만 자는 공간이니 무엇도 더 들이거나 꾸미지 않을 작정이었다. 정착할 곳이 아니라 잠시 머물다 떠날 곳이라는 생각이 그런 다짐을 만들었다. 그래도 사람 사는 방인데, 포근한 느낌은 좀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한 소리 들었다. 작업실에 쓰는 돈 귀퉁이를 아주 조금만 떼어서 방에 쓰기로 했다. 이번 한 번만.
연말인사를 만들어야 하는데 마음에 틈이 없다. 오늘 촬영과 내일 수금, 사진 전달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일주일 정도는 크게 바쁘지 않으니 조금 몰아쳐서 작업실 청소도 하고 연말인사도 만들어야겠다. 해마다 조금씩 늘어나는 인연들은 연말인사 보낼 때쯤이면 나를 참 즐겁게 만든다. 올해는 어떤 사진을 쓰나? 올해는 어떤 말을 하고 또 어떤 다짐을 쓰나? 올해, 아름다운 인연들은 어떻게 살아내 주었나?
소소한 자투리같은 사건들이 참 귀하고 곱다.
2006.11.24 10:17
전과책 보던 무렵 이야기다. 동아전과 아니면 표준전과. 동아전과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유럽식 건축물의 느낌이었고, 표준전과는 모던하게 각을 세운 현대건축물 같았다. 초등학생이 볼 수 있는 가장 두꺼운 책 중에 한 권이었을 전과 안에는 교과과정 내용 외에도 토막토막 작은 읽을거리들을 두어 지루함을 덜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솥을 일곱 번 건 손병희' 아마 비슷한 제목이었다. 어쩌면 손병희. 대신에 최시형.이었을 수도 있다. 최시형은 동학의 2대 교주고 손병희는 3대 교주다. 만약 제목이 손병희.였다면, 어느날 최시형이 손병희를 부엌으로 불렀다. (제목이 최시형.이었다면 부엌으로 부른 사람은 최제우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가마솥을 걸라고 말했다. 손병희는 진흙을 쌓아 아궁이를 만들고 그 위에 솥을 걸었다. 최시형은 솥의 수평이 맞지 않는다고 다시 걸 것을 명령했다. 손병희는 아무 말 없이 다시 솥을 들어내고 아궁이를 허문 다음 처음부터 진흙을 쌓고 다시 솥을 걸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불구멍이 아쉽다는 이유로 다시 솥을 들어내야 했고 이렇게 최시형은 일곱 번 솥을 다시 걸게 했고 그 때마다 손병희는 아무 말 없이 아궁이를 허물었다. 일곱 번 솥을 건 다음에야 최시형은 손병희의 사람됨을 마침내 인정하고 동학의 교주가 되도록 했다고, 이야기는 쓰고 있었다.
이야기는 오래도록 남아서, 어떤 일을 할 때 지칠만큼 반복되는 순간이 오면 꼭 다시 기억났다. 그러면 나는 세상의 시험을 받는 심정으로 몇 번이고 비슷한 과정을 반복했고 그 끝에서 실체도 없는 무엇에게 이겼다는 작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일곱 번의 숫자가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몇 번이고 다시 나를 몰아갈 수 있을까의 문제다. 지치지 않는 에너지로, 습관적인 몸짓에 머물지 않고 매번 새로운 최선을 다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음식 다섯 컷을 찍기로 했던 촬영은 아침 열 시에 시작해서 밤 열 시를 넘겨 겨우 끝났다. 사진을 리뷰하던 텔레비젼은 중간에 고장나고, 낡은 조명은 켜지고 꺼지기를 반복했다. 보이는 상황들 앞에서 물러서기 싫었다. 클라이언트의 ok 사인이 떨어지고도 내가 먼저 한 컷 더 찍겠다고 덤볐던 것은, 아궁이를 허물고 다시 흙을 쌓는 손병희의 모습이 내 등뒤에서 지켜보고 있어서였다. 내가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를 나 혼자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까다롭게 소품을 챙기고 좋은 안목으로 사진을 살펴준 사장님 덕분에, 그리고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 작업해준 정 디자이너님 덕분에 나는 좋은 사진 몇 장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2006.11.05 19:44
쓰던 수첩이 몇 장 남지 않았다. 첫 장에는
“삼성동 공항버스터미널 2층” 이라고 적었다. 아마 약속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 장에는 지난 봄 교통대 정원에서 끄적인 메모가 있다.
“교통대 다녀왔다. 꼭 2년 전 이 맘 때다. 상하이 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것이. 같은 계절 같은 공간에 있어보면 참 여러 가지가 생각난다. 막막함으로 첫 걸음 디디던 그 때부터 한 명의 사진가로 이름을 내어 거는 지금까지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고 참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 여전히 잔디는 푸르고 여전히 학생들은 오가는데 그 때의 학생들은 아닐 것이다. 그 친구들은 지금 어디에선가 나름의 걸음을 걷고 있을 테다. 그 때의 내가 아닌 내가 부지런히 걸음 걸어 지금에 닿아 있듯이.” 라고 쓰고 있다.
다 쓴 수첩을 버리지 않는다. 따로 한 곳에 모아두지 않지만 버리지 않으니 책장 어디쯤이나 선반 어디쯤에 하나씩 있을 것이다. 약속 장소 메모, 클라이언트 전화번호, 최종 수정할 사진들의 번호, 포트폴리오를 보낼 잡지사 명단, 갑자기 연락 받은 오랜 친구의 소식 따위들. 수첩 쓸 동안의 소소한 기록들은 자연스런 일기 같아서 버릴 수 없다. 전화번호 하나, 약속 메모 하나 볼 때마다 상대방의 목소리와 그 때 작업실에서 듣던 음악까지 떠오른다. 하루 세 끼를 식빵으로 연명하던 힘든 시기의 메모는 그 크기가 더욱 크다. 다듬고 걸러낸 문장으로 채워놓은 홈페이지가 정돈된 생각의 일기라면 소소한 기록들로 채운 수첩은 조금 다른 일기다. 시인은, “인생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한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오늘, 제법 비싸게 주고 새 수첩을 샀다. 오래도록 쓸 생각이다. 가죽으로 점잖게 겉장을 만들고 단단하고 거친 속지를 끼워놓은 수첩이다. 다 쓴 속지는 통째 바꿔 넣을 수 있는데, 아무 장식 없는 것으로 세 권을 추가 주문하고 왔다. 옆에 작은 수첩도 보였는데, 휴대성과 공간 활용도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큰 것으로 골랐다. 어제 아는 동생이 사주겠다는 것을 됐다며 그냥 지나쳤는데 오늘 버스 타고 지나는 길에 마음이 서서 다시 가 샀다. 작은 수첩은 들고 다니기 편해서 필드작업하며 쓰기에 편하지만 조금 쓰면 다음 장으로 넘겨야 해서 생각의 맥을 끊기 쉽다. 휴대성을 조금 손해보기로 하고 대신 생각을 크고 자유롭게 펼쳐낼 수 있는 녀석으로 골랐다. 명색 글 쓰겠다는 녀석이니까. 다만 펜을 끼울 수 있는 부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며칠 책 읽을 욕심에 두세 권씩 한꺼번에 가지고 다닌다. 읽다가 중간에 내려놓고 다른 책을 읽기도 하고 쉽게 읽히는 책은 하루 낮동안에 훌쩍 읽어내기도 한다. 이번에 새로 온 책들이다. 작가의 방.이라는 책은 잘 된 인터뷰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석제의 이름은 몇 번 들었는데, 이번에 단편 소설집을 읽어 보니 이야기꾼.이라는 평가가 제대로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 속에서 이문열은 하루 열 시간 이상 책상에 앉아 원고를 쓰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공지영은 젊음은 하나의 형벌 같다고 말한다. 너른 작업실을 꾸리며 내 젊음은 너무 나태하지 않은가? 반성한다.
요즘 문장을 쓸 때 가장 주의하는 부분은 쓸 데 없는 힘을 빼는 일이다. 그러나 쓸 데 있는 힘과 그렇지 않은 힘의 경계를 구분하는 것은 참 위태로운 작업이고 자칫하면 문장 자체가 허물어질 수 있어서 어렵다.
2006.11.01 07:49
두 분 오셔서 일주일 머물다 돌아가셨다.
따져보니 얼추 10년이 넘었다. 집 나와 사는 것이. 10년의 간격을 생각하지 못 하고 살았는데, 이번 두 분과 함께 있는 동안 그 무게를 알았다.
많은 것을 생각한다.
새로 주문한 책이 스무 권 가량
한국에서 책 선물이 왔다. 영미 누나는 직접 쓴 책을 주었고, 함께 왔던 성지희양은 성석제의 새소설을 보내주었다. 참 고맙고 고맙다.
곧, 여행을 떠날 것이다. 챙겨야 할 것들도 많고, 매듭을 짓고 디딘 땅을 다져야할 일도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난삽한 가지 몇 개를 쳐야 한다.
집 열쇠를 두고 나와 오랜만에 작업실에서 잤다. 고양이는 여전히 밤새 놀았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다. 가슴 한 가운데가 뜨끔거렸지만 감기 안 걸렸다.
작업실에서 처음 돈 벌어 저녁 먹으러 갔던 그 일식집에 어제 디렉터와 다시 갔다. 그 때를 이야기하며 1년 뒤에 우리는 이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물었다. 조금은 더 풍성한 마음으로 즐겁게 지금을 돌아볼 거다.
새 책이 많이 생겨서, 참 좋다.
2006.10.01 17:00
품 안에서 새끼 고양이가 잠들었다. 한참을 세차게 뛰어놀다가 내 팔 안에 와서는 그르릉거리며 잔다. 깨울 수가 없어 움직일 수 없었다. 몸도 생각도 움직일 수 없었다. 생각이 크게 널뛰면 호흡이 따라 뛰고 고양이가 깨어날 것이다. 내 품 안에서 잠든 녀석의 꿈이 편안하고 아름답도록, 꼭 지켜내고 싶었다.
물론, 다 자고 일어난 고양이는 또 나를 할퀴며 놀았다.
사는 동안에 어떤 형태로든 위기는 온다. 개인의 삶 속에도 오고 관계 속에도 온다. 하지만 말이다. 시간이 예비하는 것이 위기만은 아니지 않겠나. 위태로운 시간을 지혜롭게 이겨낼 수 있는 현명함과 배려, 그리고 용기와 확신 같은 것들. 시간 안에서는 그것들도 함께 온단다. 미리부터 겁먹지 말자.
하늘은 높아서 닿을 수 없다. 그러나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이 걷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은 아니다.
산이 해마다 한 번씩 크게 몸을 떨어 계절을 갈아입듯이, 바다도 큰 바람이 부는 때에 맞춰 몸을 턴다. 그 때 얕은 바다는 몸을 통째 뒤집어 색깔을 바꾼다. 호흡이 가빠진 생선이며 조개는 물 위로 뜨거나 얕은 곳으로 나온다. 내 사진을 한 번 털어야 할까? 지난 밤에 생각했다.
2006.09.25 07:36
"나는 세상 전부가 너무 고마워요."
"그런데 어쩌죠. 전 바느질도 잘 못 해요. 가정부를 찾았던 거군요."
세상은 참 많은 우주를 품고 있어서, 나 하나의 생각으로 잴 수 없다.
특별하지 않은 남자와 특별하지 않은 여자
둘이 되어 보면 세상은 어느 한 구석 특별하지 않은 것이 없다.
어쩌나,
나는 이런 수수께끼같은 낙서를 좋아하지 않는데.
2006.09.22 13:55
오후 무렵에 골목길은 빛이 좋았다. 탁한 색을 펼치는 담벼락을 겨누고 있는데 앵글 구석이 소리지른다. 그제야 화면 오른쪽 아래에 호떡 파는 부부가 들어와 있는 것을 알았다. 노발대발. 찍지 말랜다. 한참 떨어진 그들에게 걸어가는 동안에도 화는 그칠 줄 몰랐다.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당신들을 찍은 것이 아니라고 설명해 보았지만 이제 주변 사람들까지 불러가며 야단이다. 더 있을 수 없어서, 더 통하지 않아서 걸어 나왔다. 내 뒷통수가 보이지 않을 곳까지 그들의 목소리는 닿았다. 그들은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마음의 풍요와 몸의 풍요가 닿아 있을 수도 있을 텐데.
나는 내 아이가 풍요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몸이 풍요로울 때 마음의 풍요를 얻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겠지만, 마음의 풍요로움 또한 좀 더 수월하게 몸의 풍요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다는 사실을 삶 속에 익혔으면 좋겠다.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어려운 젊은 시절을 사셨다. 기억하는 두분의 젊음은 참 부지런했다. 그리고, 참 열심이었다. 감사하다. 그렇게 나를 만들어 주셨다.
두 분이 다녀가시겠다는 소식. 아침 버스에서 들었다. 멍. 갑자기 어쩐 일로. 명절도 없이 바다 건너에서 고생(?)하는 큰아들이 보시기 안스러우셨던 모양. 그나저나, 이발을 해야 하나? 수염을 깎아야 하나? 이 모습 보면 걱정하실 텐데, 어떻게 단기간에 얼굴이라도 좀 불려 놓지? 두 분께 어떤 사진을 찍어드릴까? 청바지에 하얀 셔츠를 입고 오시라고 해야 할까? 앨범을 만들어 드릴까? 흠.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나중에 나중에 생겨날 내 가장 큰 손님, 내 아이에 대해 상상해 보는 날들이 있다.
2006.09.18 08:20
은경 누나네 집에서 내 방까지 오는데는 느릿하게 걸어서 한 시간이 걸렸다. 새벽에 사람들은 움직이는 점.점. 같았고 빛은 사선으로 들어와 점.점.을 깎았다. 봄 같은 꽃향기도 났는데 이름을 모르는 꽃이었다. 갑자기 생각난 내 속물스러움.이 돌아오는 내내 머리 속에서 머물렀는데, 입안 가득 쓴맛이 돌았다. 나는 그것이 속물스러움.의 맛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연달아 비내리고 난 후 가슴 사무치는 바람이 분다. 사방의 아름다움도 사무친다. 이제 여름은 다시 오지 않을 거라고 창고 아주머니는 말씀하셨다. 아주머니, 무엇인들 다시 와 줄까요?
4층 옥상 난간에 호박덩굴이 자란다. 초록 덩굴로 있을 때 보이지 않던 것이 호박꽃 한 송이 피워내며 존재를 알려왔다. 반가워서, 그 앞에 한참동안 서서 속물스러움.을 생각하며 사무치는 바람을 맞았다.
새 작업을 어서 시작하고 싶다.
2006.09.15 09:46
김훈 선생님의 집이었다. 거실에는 낮고 너른 테이블이 있는데 그 위에 두꺼운 잡지가 놓여있다. 표지를 보지는 못 했지만 꼭 월간 조선만큼이나 두꺼웠다. 마침 책 안에는 김훈 선생에 대한 인터뷰가 실려있었는데, 사진가의 가방.같은 코너에 김훈 선생의 소지품을 소개하고 있었다. 등산과 관련된, 자전거와 관련된 소지품들이 많았다. 인상적인 것은 주머니칼이었는데, 주머니칼보다는 과일 깎는 칼같았다. 칼의 상표는 '횟집칼'이다. 잡지는 자전거 관련 내용이 유독 많았는데, 자전거 뒤에 부착하는 꼬리등의 이름은 생소했다. 몇 번 들어본 것 같은, 그러나 처음 듣는 단어였다. 나갈 시간이 되어서 선생과 함께 문을 나서는데, 아파트였다. 아, 일행도 두어 명 있었다.
과음한 후에 꾸는 꿈 치고는, 제법 그럴듯 하지 않은가?
2006.09.10 18:15
일요일 늦은 오후 작업실
어둡다. 맑은 하늘에 크고 무거운 구름들이 바람따라 몰려가고 몰려오는 하루였다. 하늘은 서늘한 바람색이다.
손톱이 부러졌다. 좀처럼 없는 일이다. 많이 마셨던 모양이다. 주정처럼 명함 건넸다. 하지 말았어야 했다. 사람들은 새벽까지 함께 마시고 이미 밝은 와이탄에서 사진 찍었다. 오전을 잠으로 보내고 일어나도 머리가 말끔하지 않았다.
내 사진이 참 외롭다고 들었다. 내 사진은, 외로웠을까? 사진에서 외로움을 읽어낸 사람은 외로운 사람이다. 나는 내 사진에 어떤 단어도 넣어두지 않았다.
외롭지 않은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개체는 그 경계.로 인해 모조리 외롭다. 동전 뒷면처럼. 작은 화분에 자라는 잔디가 느끼는 외로움도 작거나 하찮은 것이 아니다.
아쿠아리움.에 이어 새롭게 시도할 작업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내 카메라는 당분간, 지난 몇 년 잊었던 모습으로 살아야 할까 보다. 해 보자. 사진이 내가 가진 힘의 부분이라면 애써 접어두지 않겠다.
상하이 비엔날레를 통해 만난 당대예술의 모습은 우선 세계 예술 속에서 중국적인 것.의 자리찾기에 골몰하는 단면이었다. 또한 개인성을 소멸 또는 무시 또는 단절시키고 전체 속에 매몰된 개별의 현대성을 재현하고 있었다. 나는 그 반대의 입장에 서서 작업해 들어갈 것인데, 모든 조건들을 모조리 배제한 채 오로지 개인성.만을 갖는 모습들을 모아서 당대.를 보여줄 것이다. 개인성은 소멸했거나 그 의미가 축소된 것이 아니라 오롯이 살아 있다는 점을 사진적인 방법으로 표현할 것이다. 그러나 작업의 결과물은 역설적으로 보일 것이다. 중국 당대사진에서 보여지는 어줍잖고 표피적인 사진을 반박할 것이다. 당장에 할 수 없는 것들 앞에서 변명하기보다 할 수 있는 일들을 먼저 하겠다.
개뿔. 사진이나 열심히 찍어라.
2006.09.07 09:34
지난 밤 작업실이 추웠다. 새벽 공기가 이제는 덥지 않다. 가을 오는 것이 뚜렷해서 위태롭다. 더운 땅에서 여름이 물러가는 때는 하나의 세상이 끝나는 때다. 시작부터 끝까지 더위 속에서 온전하게 만들어지던 하루의 어느 구석이 조금씩 깨어지며 하나의 세상이 끝난다. 세상의 무너짐을 지각한다. 다음에 오는 세상 앞에서 나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무섭다.
몇 달만에 작업복을 벗고 구두를 신는 하루다.
2006.09.04 09:16
비가 참 세차게 온다. 빗방울이 땅 두드리는 소리가 4층 작업실 창문을 뚫는다. 방울끼리 부딪치며 내는 소리도 있다. 좋은 포도주 따르고 좋은 음악 틀어서 하루 종일 취해 있어도 좋을 비다.
사진잡지에서 기자생활하며 사진강의도 하는 중국인 친구와 만나 이야기했다. 막 인터뷰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익숙한 풍경을 낯설게 담는 프랑스 작가에 대해 들려주었다. 나는 요즘 읽고 있는 '날이미지의 시'와 연관지어 현대사진을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부족한 중국어로 답답하기만 했다. 낯설게 찍는 사진은 낯선 소재를 찍거나 낯선 방식으로 찍거나 또는 낯선 시선으로 찍는다.
작업실에 일찍 나온다. 여섯 시나 일곱 시쯤 깨면 전자렌지에 고구마 두 개 씻어서 넣어두고 나도 씻는다. 고구마가 익는 데는 12분이 걸리는데 내가 빠를 때도 있고 고구마가 빠를 때도 있다. 비닐팩에 고구마 두 개를 담고 집 앞 마트에서 우유 하나를 사서 온다. 작업실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10분이 채 안 걸린다. 일찍 오면 계단은 아직 닫혀 있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조금 늦게 오면 계단으로 온다. 들어오면 컴퓨터 켜고 엠프 켜고 에어컨 켠다. 구멍 뚫어 둔 빈병에 물을 채워 열 개 잔디 화분에 물 주면 아침 일이 끝난다. 고구마 먹으면서 인터넷 뒤적거리면 어느새 아침 시간이 훌쩍 간다. 음악 듣고 뉴스 보며 고구마 먹는 빈둥거림이 참 좋다.
다음주에 예정대로 돈을 받으면 우선 밀린 임대료를 내고, 그 다음주에 또 예정대로 돈을 받으면 포도주를 한 병쯤 사야겠다. 창고 사람들 모두 돌아가고 텅 빈 밤에 음악 크게 틀고 취해 있어야겠다.
비가 참 세차다.
2006.09.02 08:04
바람이 분다. 가을이 오려는 모양이다. 창문 열어 바람을 들이는 것이 한참만이다. 특별한 장식이나 아이템으로 시선을 끌지 말고, 전체적으로 단순하면서 고급스러워야 한다. 표정이나 자세는 크지 않되 가슴과 허리 라인을 드러내야 한다. 조명은 단순하며 부드러워야 한다. 놀이하는 심정으로.
붉은 색 피는 본능을 긴장시킨다. 상처에서 베어나온 핏조각을 핧아 기운을 차리고 안광을 갈아내는 작고 여린 짐승. 언덕에 앉아 바람 맞는다. 바람이 불어오는 저 먼 바다에는 헤엄을 멈추면 숨 쉴 수 없다는 참치라는 녀석이 산다.
2006.08.27 19:32
삶이, 너무 소란하다.
2006.08.16 07:17
나를 고민하게 하는 것들.
열 개 잔디 화분은 날마다 쑥쑥 자란다. 물만 겨우 주는데 하루가 다르게 높이가 변한다. 열 개 중에 두 개 화분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싹이 돋았다. 콩나물처럼 빨리 자란다. 나는 잔디 화분을 샀는데, 내 작업실에 열 개 잔디 화분을 두고 싶었는데 별난 녀석 둘은 잔디를 순식간에 배경으로 만들며 주인공처럼 자란다. '뽑아야 하나, 두어야 하나.' 한참만에, 그냥 두기로 한다. 미안해서. 화분 위로 10센티미터 공간을 두고 유리를 올릴 생각인데, 녀석들은 아마 유리를 뚫고 자라지 못하는 한 더 자라지 못 할 것이다. 오고 가는 것이 편안하고 큰 흐름 속에서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혹시 아는가? 산삼이라도 자라날 지.
마땅히 나아가야 할, 그러나 지지부진 멈추어 있는 일들이 주변에 많이 생겼다. 조금 더 힘을 몰아 걸어야 한다.
2006.08.06 23:04
윈난
"떠날 거야. 바닥에 닿지 않는 물풀처럼 부유할 거야. 다시는 그 어디에도 뿌리 내리지 않을래. 땅들은 모두들 상처를 앞세워 왔어. 뿌리내리고 싶거든 먼저 상처부터 껴안으라고 들이밀었어. 채 아물지도 않은 내게. 이제 어디도 멈추어있지 않을래."
"잘 가. 무엇도 너를 붙잡을 수 없는 곳에서 순간마다에 머물 수 있기를 기원할께. 부유하더라도, 네가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 아름다울 거야."
2006.08.01 18:42
동갑내기 현호는,
작년 말부터 어른이 되었다.고 말했다. 충무로에서 냉면을 먹고 있을 때였다. 녀석이라면 그럴만 하다. 정확하게 어른이 된 시점을 알고 있는 녀석에게, 나는 깜빡 잊고 어른이 되던 그 순간의 반짝이는 감각을 묻지 않았다. 아마 현호가 냉면값을 치뤘다.
아직 어른이 된 것 같지 않은 나는,
두 달 임대료를 겨우 치뤘다. 지난달 1일에 줄 돈인데 한 달을 늦추었다. 돈 받기로 한 거래처가 부도가 나서 만 원을 못 받았고 더 기다릴 수 없어 집에 부탁했다. 부끄러웠다. 두 말 없이 보내주시는 어머니 때문에 고맙고 미안해서 울컥했다. 금고에는 잔금 2000원이 있다. 지난달 찍었던 잔금 1500원을 오늘 받아왔다. 내일 4400원을 마저 받고 여행기사와 인터뷰 기사값 800원을 받아야겠다. 손님 올 때마다 내 책상 한 켠에 일회용 컵 놓아 맞는 것이 참 많이 미안한 지도 오래 되었는데, 이번에는 작은 테이블을 사야겠다. 1200와트 조명과 대형 반사우산이 필요하고, 시사메거진도 아니면서 2,5,8,0 번이 잘 안 눌러지는 휴대폰도 바꾸어야 한다. 더 몸 다치기 전에 근처 작은 아파트라도 구해야 하고 소품으로 쓸 배경지며 소소한 꾸러미들도 구해야 한다. 작업에 필요한 LCD 모니터도 나름 급하고 100mm macro 렌즈도 어서 꾸려야 한다. 구베이에 다녀 오느라 택시값으로 50원 가까이 쓰고 사진 프린트 비용으로 280원을 썼다. 6월 전기세와 수도세는 224원이었다. 내일 아침에는 일찍 분홍색 배경지를 사러 가야한다. 배경지는 270원이다.
꿈만 꾸며 살 수 있는 땅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나마 하루 세 끼 식빵을 면한 것이 이제 겨우다. 열악한 환경과 박봉을 견디는 것은 꿈을 꾸는 대가라고 했다. 하루하루 힘에 겨워 걷는 걸음은 어떤 숙명적인 고난이 아니라 다만 숨쉬며 살아가고 있다는 맥박같은 것이어서 별로 싫거나 두렵거나 어렵지 않다. 적어도 나는 내가 원하는 길 위에 있고 매 순간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걷는지 뚜렷하게 알고 있다. 적어도 이 길은 누구에게 떠밀려 온 것도 아니고 아무런 선택의 대안 없이 내게 던져진 것도 아니다. 삶 속에서, 선택의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신에게 있는 선택의 권리를 자각하지도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 자신에게 선택할 권리 따위는 없다며 자조 섞은 목소리로 주저 앉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어디에나 있는 어려움이라면, 어디로 가도 맞딱뜨릴 벽이라면 적어도 원하는 길 위에서 만나야 하지 않겠나? 그래야 비로소 어려운 쓴맛 속에서 없는듯 가려진 단내를 즐길 수 있지 않겠나?
다행인 것은,
점심 때 만난 쯔쯔는 단사진 가격에 대해 물었다. 잡지 기준으로 알려주니 고객에게 이야기할 때 더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게 노력해 보겠다고 말했다. 친구 소개로 만난 디자이너는 카탈로그 촬영 가격을 물어 왔다. 데이페이 기준으로 알려주었다. 그 가격대로 클라이언트와 접촉해 보겠다고 말했다. 두 명째 촬영이 끝난 K1필름측에서는 사진에 아주 만족해 주었고 당분간 추가 촬영이 이어질 거다. 부도가 난 업체는 꼭 돈 주겠다고, 기다려 달라고 전화해 왔다. 느리기는 하지만 작업실에 작은 식구들이 하나 둘 불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내 자신감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고 사진에 대한 세부적인 기술에 조금씩 더 확신이 생겨나고 있다. 결코 돌아서서 주저 앉지 않겠다는 다짐이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몸 아플 때마다 염려해주고 도와주는 좋은 벗들이 한가득이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괴력의 태풍 때문에 여기 먼 바다까지 떠밀려와 한 치 앞 안 보이는 풍랑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 것도 정의되지 않은 광활한 바다에서 풍랑과 어울려 보고 싶었다. 의지로 돛대를 세울 때 비로소 바람이 온다. 그래서 지금 나는 바다에 있다.
대충 살지 마라.
2006.07.31 21:24
"낡은, 아주 낡은, 그래서 가아끔씩만 제정신을 차리는 노란색 필라멘트 전구 같아. 길게 까암빡거리며 겨우 응답하는 불빛. 여리고 질긴 생명같은 거 말야."
"여리고 질긴…"
"응, 여리고 질긴 생명. 대견하고 가여운 생명"
"대견하고 가여운…"
'말꼬리가 길게 남는다.'
"네 메아리가 공중에서 모여. 허공을 감싸서 존재를 만들어. 감싸고 있는 바깥 것들을 가리켜 존재.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본래 없는 것을 덮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으니까 흉을 보아야 할까? 태생에서부터 빈 것들. 그것들이 아우성 쳐."
2006.07.23 19:43
날 저물어 간다. 어두워가는 하늘 가운데를 박쥐들이 난다. 네 시간을 작정했던 촬영은 오전 10시에 시작해서 오후 다섯 시에 끝났다. 카메라 앞에 섰던 모델도 모델 데려온 클라이언트도 만족하며 돌아갔다. 온 몸이 땀으로 젖어 몇 장 지폐를 받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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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가는 버스에 앉아 책 첫 장을 연다. 제목 밖에 없는 너른 페이지 아래에 -2005. 봄. 남한강- 이라고 낯익은 글씨로 적혀 있다. 얼른 책 윗쪽을 보니 내 싸인도 없다. 아, 이 책 내가 산 게 아니구나. 예상 못 한 곳에서 비어져 나오는 기억이 공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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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내선 비행기를 타는 것은 처음이다. 대합실의 사람들은 시내버스 기다리는 줄을 닮았다. 뜨는 비행기가 많아서, 비행기 안에 앉아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비즈니스석에서 높은 목소리도 따진다. 부지런히 어디로 전화도 한다. 그런다고 비행기가 뜨겠나? 거칠게 부풀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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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땅에 갈 때 기대하는 것은 그 땅의 빛과 냄새 따위의 것들. 사람은 어디나 다르지 않았고 가려서 뽑아놓은 풍경은 감상까지 선택해서 준비해두고 있었다. 떠나고 돌아오는 길이 한 걸음씩 쌓일 때마다 더욱 기대게 되는 것은 낯선 빛과 냄새, 땅의 기운 따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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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기를 쓰지 않은 지 일년쯤 되었다. 근래에는 한 달에 서너 번, 가위로 자른다. 얼굴을 더듬어 보면 양쪽 수염은 길이가 다르다. 오른손을 쓰는 내게 왼편이 조금 더 수월하다. 그래서 언제나 오른뺨 수염이 조금 더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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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 좋은 관찰력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문장의 적절한 무게를 알아야 한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 하는 문장은 드라마 속 눈물처럼 가볍기 쉽고, 속에서 여물다 못 해 삭아버린 문장은 과장해서 무겁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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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땅은 겨루며 오지 않는다. 사람과 풍경은 덤벼드는 따끔거림이 있어서 애써 찾고싶지 않고 할 수 있으면 피해 걷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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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하고 싶다는 욕구는 유일함. 또는 최소한의 희소성.을 전제하고 있다. 꼭 같은 것을 꼭 같은 방식으로 표현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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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창문 멀리 아래로 땅이 보였다. 땅은 검은색에 가까운 녹색이었고 흐렸다. 중에 햇빛을 받은 부분은 노란색을 조금 섞은듯 했고, 그늘진 부분은 검은색에 더욱 가까웠다. 높이 올라와서 보면 땅 가운데로 긴 선들이 흐르는데, 곧게 뻗어 사방을 찌르고 있는 것은 길이었고 상처난 땅을 에돌아 나가며 어루고 달래는 것은 강이었다. 꼭 같이 길게 늘어선 두 선의 쓰임새가 그렇게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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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은 소용없다. 계통은 힘이다. 문장도 사진도 생각도 삶도, 의지를 가지고 모여 설 때 의미를 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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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을 읽으며 문장의 실체를 생각한다. 김훈의 문장은 존재의 근원을 향해 곧장 찔러들어가지 않는다. 주변을 에돌며 더듬어 살핀다. 애써 찌르지 않고 찾아 밝히려고 하지 않는다. 존재의 실체를 구하지 않는 문장은 그러나 명백하고도 선명한 실체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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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들고 골목길 들어설 때 한 마리 난삽한 들개가 되어 나는 부끄러웠다. 들개떼의 허기는 만족을 몰랐다. 탐욕만 그득한 눈빛은 어디에도 머물지 못 하고 떠돌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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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파하. 바다 海를 이름으로 쓰는 땅. 해발고도 3300m의 산 속에 바다같은 초원이 펼쳐 있다. 경계 없는 초원을 구경하기 위해 관광객이 오고 관광객을 받기 위해 주차장이 생겼다. 주차장 이외의 지역에 정차하면 벌금을 부과한다. 사람들은 주차장을 중심으로 부채살 모양으로 퍼져나갔다. 살들이 뻗어간 사이를 바람이 불어와 채웠다. 사람들은 초원 곳곳에 점으로 박히고 너른 초원은 그렇게 거대한 바람이 된다.
처음 이 초원에 발 디딘 인류는 무엇을 보았을까? 준비된듯 마련된 광활한 초원에서, 존재가 존재를 처음 대면한 그 날은 어떤 날이었을까? 큰 바람이 불고 마른 하늘에는 천둥이 쳤을까? 하늘이 양편으로 갈라지며 큰 빛이라도 내려왔을까? 짐작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적어도 평범한 하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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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치는 것들은 머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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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전통옷을 입고 나와 사진의 화려한 모델이 되어주고 돈을 받는다. 돈 달라는 어린 목소리가 잔인할 것도 같지만 그 얼굴이 돈을 알아 탐내는 것 같지는 않다. 돈 받기 전에는 얼굴을 가려 렌즈를 피하고 돈을 받고서야 비로소 웃으며 카메라를 바라보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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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남에 있는 티벳사원 근처에는 언제나 까마귀가 날고 있다고, 현지에 익숙한 분이 알려주셨다. 사원은 고원 평지의 가장 높은 곳에 우뚝 빛 받고 섰다. 황토색으로 빛나는 사원 담벼락 아래 앉아 있다. 맑은 하늘은 비가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한다. 호랑이 시집가는 날. 비는 방수 겉옷 위를 튀기듯 때리고 고개를 숙이면 마른 바닥에는 까마귀 그림자가 사방으로 날았다.
공간 속에 머물지 못하고 스쳐가는 것은, 그렇게 스쳐가며 남긴 기록들로 머무름의 이야기를 흉내낸다는 것은 참과 거짓의 이야기 이전에 참 슬픈 일이다.
빗방울 속에는 제법 먼 곳에서 아니면 가까운 곳에서 날아왔을 모래가루들이 들어 있었는데, 외투를 두드리는 소리가 모래의 것인지 물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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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 가해지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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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보면 마을은 벌레 먹은 흔적 같기도 했다. 좋은 마을은 나아가고 물러서는 데 억지스러움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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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비행기를 타고 하늘 가운데서 구름을 내려보았을 때 구름은 끝 없이 즐거운 놀이터 같았다. 포근하게 온 몸을 감싸는 무중력의 구름 안에서 영원히 놀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구름은 발이 푹푹 빠지는 무중력의 모래사장일 것이다. 걸음걸음 디딜 때마다 온 몸을 묻어버릴 듯 빨려드는 늪 속에서 어떻게 저 끝 보이지 않는 곳까지 닿나? 이제 구름 속에 있는 꿈을 꾸는 날이 오면 다음날 아침 이렇게 말하게 될 지도 모른다.
"악몽을 꾸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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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정리된 마음으로 여행길 메모를 옮겨둔다. 다음달 여행기사 쓰기로 했는데 가져온 메모는 온통 잡스러운 것들 뿐이다. 찍어온 사진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일주일 동안 열심히 배운 설명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은 없고 모조리 야릇한 것들만 있다.
아, 여행기사는 뭘로 쓰나.
2006.07.02 17:25
"어머니, 어떡하면 좋아요? 사는 게 너무 난삽해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 어떡하면 좋아요? 벗들은 여행 떠났어요. 멀리멀리 간다고 했어요. 한 달만큼 다녀보고 돌아오겠다고 했는데, 나는 어쩐지 벗들이 영영 돌아오지 않아도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별은 아닐 거예요. 그렇죠? 고인 물 속으로 돌아오지 말고, 영원히 길 위에서 생선처럼 팔딱였으면 좋겠어요. 검게 그을린 얼굴과 한결 단단해진 걸음으로 돌아오는 벗들을 보면 나는 어쩌면 슬퍼질지도 몰라요. 아주 조금이겠지만 말이죠. 무사히 돌아온 반가움이 금방 묻어버리겠지만 말이죠. 나는 어쩌면 슬퍼질지도 몰라요."
"멈추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오늘은 어제보다 나아야 하고 내일은 오늘보다 몇 걸음 더 디뎌야 한다고 했잖아요. 어머니, 꼭 그래야 해요? 여기, 잠시 멈추면 안 되나요? 오늘도 걷고 있는 저들은, 정말로 나를 짓밟을까요? 내가 멈추면 저들은 기다린듯 나를 앞질러 걸을까요?"
냄비에 밥을 짓기 위해서는 우선 바닥이 두껍고 속이 깊은 냄비가 필요하다. 센 불로 먼저 끓인 다음 중간 불로 10분 이상 끓인다. 마지막 10초 가량 다시 센 불로 끓인다. 다시 10분 가량 뜸을 들인 후 주걱으로 저어 준다.
엡손 R4800. 돈 생기면 살 프린터. 기약 없는 찜.
2006.06.28 10:43
퍽.
"아야.!"
"괜찮아? 저런, 피 난다."
"깨졌어. 잠깐 딴 생각하느라 손에 들고 있다는 걸 잊었어. 힘이 빠졌나 봐."
"그걸 왜 손으로 집어. 빗자루로 치워내면 될 걸 괜히 피를 봐."
"응. 붙잡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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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장 가는 길에, 목줄도 없는 개 한 마리가 횡단보도 옆 벽이 만드는 그늘에 서 있었다. 더워 보였다. 잘 먹지도 못 한 것 같았다. 녀석은 제법 앙상한 몸으로 꼬리를 다리 사이에 숨긴 채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위협하기에는 지쳐 보였다. 지쳐서, 사방을 위협으로 느끼는 것 같았지만 녀석은 그늘을 벗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헬스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목줄 없는 회색의 개는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이번에는 바닥에 얌전히 앉아 있었는데, 일정 거리를 두고 경찰 세 명이 그 주변을 둘러 싸고 있었다. 경찰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그렇듯 일단의 군중들도 함께 모여서 개를 보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개를 기르려면 매년 일정 금액을 납부해야 한다고, 그렇게 하지 않은 미등록의 개는 끌고 가서 도살한다는 기사가 기억났고, 기사와 함께 실려있던 죽은 개, 죽어가는 개, 죽이는 사람 사진들이 목줄 없는 개의 영상과 겹쳐졌다. 그 자리에 조금 더 서 있는다면, 몇 명의 전문가들이 와서 개를 개잡듯 포획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신호등 파란불을 확인하고 길을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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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분석해둔 책이 있다면 읽어보고 싶다. 대중은 현명한가? 대중은 멍청한가? 대중은 언제나 대중인가? 대중이지 않은 존재들의 집합이 대중인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대중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표면적이다.라는 점인데, 다빈치 코드.의 성공에 대해 나는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소설의 위대함에 바치는 역사적인 헌사들은, 적어도 다빈치 코드.를 향한 것은 아니었다고 확신할 수 있다. 물론, 다빈치 코드는 아침부터 밤까지 나를 붙잡아 둘만큼 재미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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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어 있는 것은 계속 멈추어 있으려고 하고, 움직이는 것은 계속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려고 한다. 뉴턴. 관성의 법칙.은 과학적인 수식을 빼고 본다면 익숙함.에 관계된 문제다.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역치 이상의 자극이 필요한데, 자극을 받아 운동.한다고 해도 관성에 의한 버팀.이 생긴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거나 변화를 추구하고자 할 때 마주치게 되는 주저함, 괜히 길을 나섰다는 후회같은 감정들이 모두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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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 기간이 곧 만료된다. 너무 늦게 알았다. 순조롭다면 주변 회사를 통해 취업비자를 신청할 수 있다. 7월에 운남으로 떠나는 일정 때문에 자칫 시간이 모자르게 되면 한 번 더 여행비자를 신청하는 방법 밖에 없다. 어쩌면, 운남으로 가지 못하는 경우까지 생각해야 한다. 1년.이 되어 간다.
2006.06.27 13:45
새벽의 하늘은 버거울만큼의 무게를 이고 있었다. 헬스장 나오는 길에 만난 하늘은 이미 흐릴 대로 흐렸고 바람은 태풍이 온 것처럼 세찼다. 대기는 낮은 구름들에 잔뜩 눌려 있었는데 바람은 그 사이를 오가며 근근 버티고 있는 녀석을 또 흔들어댔다. 계란프라이 하나와 두유를 사서 나올 때쯤에는 이미 한두 방울 비가 내리고 있었고, 사람들은 곧 쏟아져내릴 폭우를 예상하고 뛰다시피 걸었다. 근처 과일가게에 들러 과일을 사야 할까? 아니면 그냥 가야 할까? 걷는 내내 시간을 계산했다. 과일가게에 들러 과일을 사는 데는 돌아가는 길에서 보낼 시간까지를 합쳐 오 분 정도가 추가될 것 같았고, 낮은 하늘과 달리 비는 순간에 강도를 더할 것 같지 않았다. 며칠 째 몸에 가득한 열기를 내리기 위해 수박을 사고 싶었지만 냉장고도 없는 작업실에서 수박 한 통을 해치우는 일은 쉽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오렌지로 바꾸었다. 잘 고른 오렌지 네 개는 18.2원인데, .2원을 깎아주어 18원만 내고 샀다. 기억하고 있던 액수와 달라서 속으로 당황했다. 가격을 미리 알았다면 조금 더 싼 과일을 골랐을 것이다. 오렌지를 사서 작업실로 돌아오는 마지막 1분 가량은 결국 뛰어야 했는데, 막 샤워를 끝낸 몸은 땀과 비로 약간 축축해졌다.
다행히 회복기로 접어들었다. 반환점은 언제나 최악이다. 합당한 인용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새벽이 오기 전, 하늘은 가장 어둡다고 하지 않던가. 도저히 버틸 수 없어 택시를 타고 복단대 근처 한국식당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평소 잘 먹지 않는 매운 음식은 아플 때마다 참기 힘든 유혹이다. 고추장 된장 찌개를 시켜 간장종지같은 밥 두 그릇을 먹었다. 1주일 만에, 두 그릇을 다시 비울 수 있게 되었다. 은경 누나네에서 저녁으로 해물잡탕을 얻어먹었다. 사람들과 게임하며 놀다가 먼저 잠들고, 평소 아침을 간소하게 먹는다는 누나는 부러 거한 아침을 차렸다. 영숙 누나네에서 석고 조금 발라주고 한숨 얻어 잤다. 방은 물론이고 거실까지 에어컨을 가득 켜 주어서 이불 감고 잘 잤다. 까르푸에서 초밥 세트를 사다 주어 맛있게 먹었다. 저녁에는 작업실 디렉터 세은누나가 닭죽을 만들어다 주었다. 요리도 안 하는 사람이 애썼다. 이제껏 한 번도 맛 본 적 없는 닭죽이었다.고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앞으로 다시는 못 얻어 먹을 지도 모른다.
종일 선풍기 앞에 엎드려 빌려온 소설을 읽다. 다빈치 코드. 너무 유행하는 소설은 되려 거리를 두게 되는데, 어떤 알랑한 존재의 유일성에 대한 본능적 반응이다. 소설의 모더니즘.에 충실한 이야기다. 움베르토 에코.의 작품과 닮았다. 그러나 현대예술에서 장르는 의미가 없다. 김훈의 새소설집은 그 한 가지 예가 될 만한데, 사진의 본질적 특징 중 하나인 불연속성(존 버거)을 문장에 활용하면 독특한 느낌의 소설을 만들 수 있다.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근대소설 (또는 근대적 성격을 갖는 현대소설)과 달리 불연속성.의 소설들은 문장을 이미지화 한다.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시작이나 완결은 더 이상 필수요소가 아니다. 오히려 소설 자체가 하나의 이미지 기능을 수행하며 독자의 개인적 역사에 따라 얼마든지 해석의 품이 다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장치는 작가의 철저한 의도를 따른다.
이미지화 된 소설.에 대한 평론을 써 볼까? 어제 밤 잠들기 전에 생각했다. 신춘문예에 당선된 평론들을 구해서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책을 검색해 두었다가 한국 다니러 가는 사람에게 부탁할 생각이다.
명색 사진가라는 녀석이 맨날 문장만 잡고 논다. 어머니는 내가 작은 실수를 했을 때나 큰 실수를 했을 때나 한결같은 반응이셨다.
"참 자알 했다."
거기에는 약한 강도의 질책과, 더 큰 강도의 격려가 언제나 함께 했다. 사진가가 맨날 문장으로 놀아도, 참 자알 하는 것이다.
2006.06.26 21:41
"반환점을 돌았어. 이제 나는 나아질 거야. 많이 아플 땐, 걷는다는 건 물론이고 버티고 서 있기조차 힘들어. 그럼 살피게 되는 거야. 꼭 붙들어야 하는 것들만 빼고 하나하나 내 손에서 놓여나도록 힘을 빼지. 처음에는 꼭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들도 하루 이틀 계속 아프다 보면 꼭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돼. 그랬었어. 몇 번이나. 그렇게 허물벗듯 아쉽게 내려두고 돌아나오곤 했던 거야. 아쉽게. 아플 걸 알면서도. 돌아가서 다시 붙들 수 없을 걸 알면서도."
"꼭 필요한 것만 갖고 살 수는 없을 텐데. 아름다움이란 기능성 너머의 무엇이라고 말한 건 너였어. 독자적인 호흡을 운운하고 아름다움의 가치를 과장한 것도 너였어. 왜 그게 한 순간 필요 없는 게 될 수 있지?"
"그 기준이 기능성은 아닐 거야. 그리고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건 의지가 관할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지. 자연스러운 거야. 바다도 가끔 그렇게 몸을 털고 산도 계절을 바꾸며 온몸을 떨구어 내. 늦은 가을 밤길을 도와 산에 오르면 산이 온몸으로 떨쳐내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어떤, 비명같은 소리지. 그 목적지가 선형적인 시간의 도달점인지 원형적인 시간의 순환고리 속에서 같은 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건 어떤 비명.같은 거였어. 단호하고 허허로운 비명 말이야."
"네 결론이란 것들은 모조리 순간적인 반응 뿐이지. 무섭니? 담담한 너는 어느 때보다도 더 불안해 보여. 애써 규정지으려는 모습. 모든 게 네 의식 속에서 줄 맞춰 서 있기를 바라지. 잘 정리된 서고書庫같이. 언제든 원하면 마음대로 찾아볼 수 있어야 하고 일말의 혼돈도 허락할 수 없겠지. 그래야 그 안에서 비로소 너를 규정지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그거, 네가 불안하다는 거야. 사랑한 거 아니었나?"
"사랑.이라는 단어로 말할 수는 없는 시간들이었어. 하지만 그 시간을 설명할 때 사랑.이라는 단어를 빼고는 불가능한, 그런 거야. 사랑? 사랑은 언제나 상호적인 감정이라고 확신했어. 물론 그게 목숨을 걸고 다음에 올 모든 것들을 저당잡힐 만큼 거창할 필요는 없겠지. 사랑이 하찮은 게 아니라 작은 감정들이 하찮을 수 없는 거야. 유별난 건 아니야. 어떤 대단한 결심도 아니야. 머리카락을 자르는 건 어쩌면 화려하고 거대한 제의.같은 거야. 존재의 의미를 창조하고 확대하는 그럴듯한 허풍 말이야. 만나고 헤어지는 건 지극히 사소하고 평범해. 무엇이 되기 위한 과정인 것도 아니고 완성으로 가는 어떤 단계도 아니야. 그러니까 죽을 때까지 함께 하는 게 성공, 중간에 이별하는 게 실패라는 따위의 공식은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 거지. 그냥 만나고, 그냥 헤어지는 거야. 그 자체로 의미고, 그 자체로 가치야."
"변명이야. 도망치지 마. 어디에서든, 어디로든. 어울리지 않아."
"도망치고 싶지 않아서 그래. 그래서 강을 뒤에 두고 서는 거야. 단호하게 끊고 나아가지 않으면 도망이 될 것 같아서, 그래서 돌아갈 길을 끊는 거야. 변명일까?"
2006.06.25 10:54
"싫어."
"입어."
"싫어."
"투정부릴 때가 아냐."
"나아가던 것도 다시 아플 것 같아. 통 넓은 소매, 도대체 만든 사람을 의심하게 만드는 패턴디자인, 목에서 허리까지 한 번에 똑, 떨어지게 만드는 어깨선. 이건 정말이지 환자의 회복을 더디게 해서 조금이라도 더 병실에 붙잡아 두려는 현대의학의 음모야. 알아? 환자복을 입는 순간에 나는 완전히 무장해제 당하는 기분이 돼. 삶에 대한 작은 의지까지 모두 하얀색 병동에 저당잡히고 일체의 자발성도 금지 당하지. 내 존재는 없어지고 그냥 한 명의 환자만 남는 거야. 싫어. 명백한 음모야. 병든 기운을 이렇게 모조리 모아둔 곳이 환자의 회복에 좋을 까닭이 없어. 단지 격리시켜서 사회를 순조로워보이게 하는 게 전부야."
"평소에 잘 했어야지. 지금 네 몸으로는 차라리 아무 의지도 없는 게 나아. 할 수 있는 거라곤 겨우 버티는 것 밖에 없는데 뭐. 괜히 악으로 버티려고 하지 마. 한 번쯤 세상에서 버려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거야. 적어도, 아직은 돌아갈 기회는 남았으니까. 마지막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존재까지 거부당하는 사람들도 많아. 그런 사람들에게는 동정하는 것도 미안해. 괜히 생색내는 것 같거든. 얼른 입어. 나아서 돌아가야지. 나아서 다시 네 옷 입어야지."
2006.06.24 09:09
"좀 어때?"
"나아졌어. 아주 조금이긴 해도. 겨우이긴 하지만 걸을 수 있겠어. 한 발 한 발 디딜 때마다 긴 여행을 떠나고 돌아오는 것 같아. 아침 산책도 마치 10 년도 넘는 긴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야. 이제는 저만큼 앞에서 신호등 파란 불이 깜빡거려도 뛰지 않게 됐어. 천천히 겨우겨우 걸어서 다음 신호를 기다려."
"애써 아름답게 보려고 하지 마. 지금 너는 정상이 아니야. 얼른 나아야지. 많이들 걱정해. 아침 표정에는 네 하루가 보여. 복권이라도 당첨된 것처럼, 좋은 꿈이라도 꾼 것처럼 밝은 날은 네 컨디션이 모처럼 좋다는 뜻이지. 그 표정을 보면 기쁘다가도 얼마만에 보는 건지 생각하면 다시 씁쓸해져."
"의미가 없는 존재는 존재할 의미가 없는 걸까? 많이들 걱정하니까, 나는 얼른 건강해져야 할까? 여신女神은, 참 불행했겠다. 존재의 의미를 스스로의 밖에서 구해야 했을 거야."
"여신은, 얼어죽을. 밥이나 먹어."
2006.06.22 21:23
"오랜만이야. 박쥐를 보는 건. 해가 지고 아직 하늘 끝편으로 색이 남아있을 시간이면 박쥐는 동네 하늘을 실루엣으로 날곤 했어. 어쩌다가는 가게 안으로 들어오기도 했는데, 온통 환한 실내에서 녀석은 무척 당황하는 것 같았지. 창문에 몇 번 머리를 박으며 녀석은 점점 지쳐 갔는데, 그렇게 겨우 매달린 녀석을 잡은 적도 있었어. 살려보냈던가? 죽였던가? 기억 나질 않네."
"여왕개미네?"
"며칠 전에 살려보낸 녀석이야. 무거운 몸통을 이끌고 왔었어. 아마 몸 가득 알을 품고 있었겠지. 여왕개미가 수컷의 정액을 받는 건 꼭 강간당하는 인상을 줘. 이미 배가 불러와서 땅에 겨우 끌고 다닐 것 같은데도 수컷들은 계속해서 사정해. 왜일까? 여왕개미를 보고 있으면 목적지나 정착지가 없는 것 같지. 항상 떠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떠돈다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닐 거야. 정착해야 할 것들에겐 슬프겠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떠도는 것들은 부유.라는 게 슬플 것도 나쁠 것도 없겠지."
반군은 이야기 연습중. 나중에 나중에는 소설을 써야 하니까. 그런데, 이런 문장은 상당히 지저분하네. 배설같은. 나는 좀 더 좋은 문장을 써야 하는데.
2006.06.22 21:04
젖가락을 들어 살찐 고등어 토막을 집었다. 온통 빨간 찌개 국물 사이로 투명한 김치 조각도 보였다. 참 맛있어서, 이제 주말마다 집에 와서 밥을 먹어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깨었다. 꿈이다. 원숭이에게 쫓겨 강둑에서 떨어지던 어린 꿈 이후로, 참 오래 남는 꿈이다.
"상하이를 떠날 거야."
"왜? 갑자기."
"그냥. 혼자 이 곳에서 생활하는 게 견디기 힘들어졌어. 고향으로 돌아갈 거야. 부모님이 계신 곳."
상하이에는 처음 왜 왔던 거냐고, 이 땅에 올 때 네 꿈은 무엇이었냐고 묻고 싶었다. 묻지는 않았다. 잔인해 질까 무서웠다. 모두가 나와 같은 꿈을 꾸는 것은 아니다.
"예쁜 모델은 이미 많아."
"뭘 보고 싶다는 거야? 내 안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화난 표정이 없는 걸. 난 잘 화내질 않아."
"그래, 예쁜 것들은 세상 사는 곤란이 아무래도 적지. 비교적."
스스로가 예쁜 것을 아는 모델은 좀처럼 예쁜 표정을 벗겨내지 못 한다. 울어도 예쁘고, 찡그려도 예쁘다.
"모델의 표정은 층을 가져야 해. 화를 내도, 그 표정 속에는 여운이 남아야 하는 거야. 단지 화를 낸다는 것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왜 화를 내는지 궁금하게 만들고, 나아가서 보는 사람이 개인의 경험까지 이입시킬 수 있는 공간을, 너는 네 표정 속에 배려해야 해. 모델은 온몸으로 표현해야 해. 예쁘기만 한 모델은 많아. 네 색깔을 만들려는 노력이 없다면, 너는 그냥 편하게 그렇게 살아버려도 좋아. 괜히 고민하지 마. 금방 잊혀질 거야."
의자 위에 앉아 바닥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듣던 모델은 슬그머니 내려와 옆에 쪼그렸다. 너는, 궁금하지 않니? 네 한계 너머에 있을 다른 너.
최고 기온이 35도를 넘었다. 삼 일째다. 작업실은 찜통만큼 덥다. 한 번 가둔 열을 내보내지 않는다. 작업실은 길보다 덥다. 아침마다 베개는 온통 땀이다. 저녁에는 샤워 못 한 몸으로 잠든다. 밤 10시면 헬스장은 문을 닫고, 겨우 샤워해도 작업실도 돌아오는 동안 옷은 젖는다. 어제 오늘은 다행히 촬영이 있어 에어컨을 틀 수 있었다. 위험한 여름이다. 좋지 않는 컨디션으로 나기에는 버거운 여름이다. 나는, 무섭고 가엽다.
고등어 찌개를 먹을 수 없다. 35도의 여름이 버겁다. 밥 반 그릇만으로 구토가 밀려와도. 나는 돌아가지 않겠다. 내 한계가 어디인지 궁금하고, 한계 너머에 있을 다른 내가 궁금하다. 그 녀석이 저기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2006.06.15 21:04
대기에 습기가 가득한 날 밤하늘은 흑백이 아니다. 색을 잘 못 맞춘 모니터처럼 약간 마젠타가 섞여 있는 것도 같고 옐로가 섞여 있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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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맨발로 다닌 발바닥은 온통 먼지다. 뽀드득 뽀드득. 두 발바닥을 마주 비벼대면 거친 마찰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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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끈 작업실에 앉아 창문을 열고 크게 음악을 들으면, 자줏빛 구름을 뚫고 토토로가 내려올 것 같다. 끝내주는 배경지와 촬영소품, 브론칼라 파워팩 세트를 자루 가득 선물로 담고. 아, 작품을 프린트할 수 있는 좋은 프린터도 한 대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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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창문을 끝까지 열고 오렌지 쥬스를 큰 컵 가득 홀짝이고 있으면 강바람은 혼자 맞기에는 과분하다 싶게 아름답다.
2006.06.14 22:41
한밤중에 하늘에게 물어보아도 별들만 반짝일 뿐 마음에서 흘러나온 물이 검은 호수로 흘러갈 뿐 다시 한 번 천사는 나를 돌아볼까 내 마음에서 물놀이를 할까 겨울 바람에 눈물이 흔들리고 어둠 속으로 날 인도하네 얼음같이 차가운 눈동자로 나는 점차 커 가고 누구도 가까이 할 수 없는 악취를 풍기는 보석
- 영화 <아무도 모른다> OST 중에.
언제부터 일본 영화를 참 기대하고 보게 된다. 삶의 작은 틈바구니에서 읽어내는 의미는 보는 사람을 참 즐겁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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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강하면 이미지는 힘을 잃는다. 최근에 읽은 소설들 속에서, 제법 한참 전에 보았던 영화들 속에서 작은 답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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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은, 공간은, 사진은 아름다워야 한다. 기능성을 넘어서는 독자적인 호흡을 가질 때, 존재는 아름다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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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둘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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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7월 중순에는 쿤밍에 가게 될 지 모른다. 사계절이 봄.이라는 윈난성. 그 성도가 쿤밍.이다. 내게는 모든 인연과 시간이 온통 기회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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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 물 속에 지느러미를 세운 채 있어도 답답하거나 조급하지 않다. 바람이 불고, 나는 바다로 갈 테다. 바다로 가서, 헤엄을 멈추면 호흡할 수 없는 참치처럼 살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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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이상은 요즘 뭘 먹고 살까? 몇 줄 글에 달리는 엉뚱한 댓글들을 보며, 내 문장의 행간을 읽어내주던 친구 생각이 났다. 이 친구 오면, 기꺼운 마음으로 백주 뚜껑을 따도 좋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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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나는 아직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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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더 줄여야 한다. 생각만으로, 말만으로 꿈꾸지 마라. 행동하지 않으면, 벼랑끝으로 몰아치지 않으면 아무 곳도 나서지 못 하고 아무 곳에도 닿지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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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라와 교코와, 시게루와 유키. 일본이라는 땅이 참 궁금하다.
2006.06.01 09:34
꼬마는 내 손등에 살짝 키스하고 갔습니다.
아, 여섯 살 소녀의 고백 앞에서 나는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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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면도 있고 나쁜 면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좋은 점은 더욱 좋도록 애쓰고 나쁜 점은 줄일 수 있도록 애씁니다
어떤 경우에는 나쁜 점을 알면서도 끝간 데를 향해 더욱 몰아가기도 합니다
고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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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은 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2006.05.22 19:04
지갑을 잃어버렸다.
그래, 잘 되었다.
지난한 삶에 가끔은 매듭도 필요한 거니까.
2006.05.19 23:42
작가는 의식을 표현하기에 적당한 소재를 찾는다. 그러나 의식과 소재 사이에는 언제나 크거나 작은 간격이 존재하고, 이 간격은 작가의 의도를 왜곡 또는 변형시킨다. 설사 읽어내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작가의 의식을 가장 온전하게 대변하는 소재로서의 작가 자신은 커다란 가능성을 갖는다.
작업실에 만들 흙밭 계획.
오늘 풀을 파는 시장에서 본 낮은 화분은 정사각형. 가로 세로 32센티미터. 테이블로 쓰려고 찜해둔 유리는 폭이 30센티미터. 토기화분은 한 개 가격이 80원. 7개를 사서 두 줄로 엇갈리게 놓기. 마음에 드는 풀들에게 찾아가 누추한 작업실에서 나와 함께 살아주지 않겠냐고 부탁하기.
아, 흙이 없네.
2006.05.13 10:26
아침에 손끝이 저렸다.
길 다니며 김훈의 새소설을 읽는다. 진중하게 앉아 읽지 못 하고 길 다니며 눈의 가운데는 책을 읽고 눈의 가장자리는 앞을 살폈다. 생각의 가운데는 행여 넘어지지 않을까 저어하고 생각의 가장자리는 문장과 이야기에 감탄했다.
2006.05.11 23:37
왕성한 호기심으로 매번 새로운 앎의 대상을 찾아나서는 정신의 여행자들에게,
망각이란 나아가는 속도만큼이나 빨라서.
2006.05.10 20:36
누구를, 또는 어떤 존재를 미워한다.고 말하지 마라. 말은 마음을 만든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말하면 하게 되고 사랑한다 사랑한다 말하면 사랑하게 된다. 그러니까, 숨이 끊기는 그 날까지 일생 일말의 의심도 없이 미워할 작정이 아니라면 함부로 미워한다.고 말하지 마라. 말이 반복되면 기운이 동.하고 밉지 않을 일까지 미워진다.
아픈 일 많은데, 좋은 일 만들기도 부족한 시간인데.
그러니까, 미워도, 미워한다.고 말하지 마라.
- 지난 글.
2006.05.10 19:44
면도했다. 오랜만이다. 방심한 탓에 두어 군데 붉은 빛이 돌았다. 상처. 상처는 힘이다. 날카롭게 베어나 갈라진 살갗은 더 큰 간절함으로 상대를 부여잡는다. 한 번 생겨난 상처는 매끈한 피부보다 자극에 약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상처는 간절한 껴안음이다. 양편의 살갗이 서로의 안까지 껴안아 만들어내는 흉터가 그것을 증명한다.
내가 약한 것은 상처가 없는 까닭임을 오늘 비로소 알았다.
-지난 글.
2006.05.10 07:53
칼.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던 무렵이 있었다. 망나니의 주변 없는 칼과 고수의 있는듯 없는듯 감추어둔 칼.에 대해 말하고 생각하던 무렵이었다. 새삼 다시 칼.이 생각나는 것은 다시 한 자루의 칼을 품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 때 품었던 한 자루 칼은 내 사진 속에 내 글 속에 또 내 걸음 속에 오롯이 날 세웠다.
디테일에 집착하는 사진은 서툴고 얕다. 디자인을 거쳐 이미지의 사진으로 가기에는 아직 멀었지만, 적어도 닿아야 할 곳은 그 곳이다. 화려하기만 한 수식과 걸러내지 않은 잡설의 문장은 얕다. 안다고 말하기 위해 딛고 선 자리를 장식하는 문장은 거친 동시에 지루하고 읽는 사람의 살갗을 아프게 찌른다. 삶에 장식이 많은 사람은 얕다. 이미 오래 전에 목적을 잊고 대신 그 자리에 수단을 모셔둔 사람은 안타깝고 밉다.
내 사진은 내 문장은 또 내 걸음은
언제쯤이면 단순하고 담백한 그 곳에 가 닿을까.
2006.05.09 23:40
랜즈는 한 장의 유리로 구성되지 않는다. 적게는 서너 장, 많게는 열대여섯 장의 유리가 합쳐 하나의 랜즈를 만든다. 빛은 유리를 통과하며 굴절되고 왜곡되고 퍼지고 모아진다. 필름에 맺히는 상은 굴절되고 왜곡되고 퍼지고 모아져 마치 본래의 빛인 양 담겨진다. 들어가는 유리가 많으면 빛의 손실과 왜곡이 크고 다시 그 왜곡을 보정하기 위해 새로운 유리를 넣는다.
속에 담긴 생각이 말로 행동으로 걸음으로 나오기까지 몇 장의 유리를 거쳐올까? 순수인 듯, 진심인 듯 보이는 말과 행동과 걸음은 또 몇 장의 유리를 거치며 얼마나 진실을 가렸을까?
2006.05.08 20:14
여행은 끊임없이 새로움을 찾아 떠나는 것만은 아닐 겁니다
설사 매 순간마다 걷는다고 해도, 사실은 그 순간마다에 머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편한 숨을 한 뜸 한 뜸 심어가며 공간마다에 머물러 보면 그 안에는 참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2006.05.08 12:45
책 정리했다. 책꽂이 가득한 책들을 한 권 한 권 꺼내 제목을 받아적고 작가이름을 받아적었다. 존재를 몰랐던 책과 존재를 잊었던 책. 새삼스럽게 손에 잡혀드는 책들은 제각기 사연을 품고 있었다. 어떤 책은 페이지 사이에 쪽지를 끼우고 있었고 어떤 책은 표지 속에 철지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꽃잎처럼.
치옥 동무!
꽃잎처럼 살자
1997. 5. 2 성욱 동무가.
다음에 다음에 겨우겨우 인연이 닿아 다시 볼 수 있다면, 그 때는 물어보아야겠다.
'성욱아, 우리 꽃잎처럼 살고 있나?'
글을 위한 공간을 다시 배려한다.
간절했다.
2006.05.07 11:21
녀석과의 작별인사는 언제나 일말 비장했다
그 순간은 매번 내게 하니의 의식같은 것이었는데,
비장함으로 날 세운 것도 돌아서 그 무딘 날을 보는 것도 언제나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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