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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ju/-Weather

봐야지. 만나야지.


밤이 늦었는데, 마루가 운다. 요 며칠 기침감기를 앓는 중인데 잠 드는 것을 보고 내려왔는데 기침을 하다가 깨서 우는 모양이다. 아내가 달래고 있겠구나.


컴퓨터 작업만 하는 작업실로 쓰는 이 지하실을 아주 작은 스튜디오로 바꾼다. 있는 짐들을 다른 방으로 옮기고 여기는 상반신 포트레이트 정도를 찍을 수 있도록 고칠 생각이다. 큰 촬영이야 스튜디오를 빌리면 된다지만 이도 저도 아닌 작은 촬영은 어떻게 하기 어려웠다. 아무래도 작으나마 공간이 있는 게 좋겠다.


개인 작업에 쓸 배경지를 만들었다. 조명도 됐고, 누구를 찍을 지도 생각했다. 이제 들고나가서 찍기만 하면 되는데. 되는데.


소설 토지.를 다시 읽고 있다. 몇 달 전에 마침 20권 짜리 전집이 중고로 나와서 냉큼 업어왔다. 아내는 10권을 읽는 중이고 나는 6권을 읽는 중이다. 대학교 언제였던가. 몇 학년 어느 계절에 읽었는지 기억 안 나는데, 여덟 달에 걸쳐 읽었다는 것만 기억난다. 그리고 그 전율도 희미하게나마 기억난다. 글을 쓰겠다고 작정하는 입장에서 읽으니 이 소설은 더욱 놀랍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한 사람의 생각 속에서 이토록 많은 사람을 이토록 생생하게 일으켜 세우나. 게다가 그 사이에 얽히는 이야기와 펼쳐진 배경이란. 토지는, 보물이다.


지난 주에 공원에 갔다가 주차 딱지를 끊었다. 벌금 내는 곳은 멀었다. 갔더니 무인단속에 걸린 것도 있어서 4건, 15만원 가까운 돈을 내고 왔다. 오는 길에 마침 옛날 노래가 나왔는데 갑자기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너무 보고싶어져서 눈물이 났다. 훌쩍거리면서 친구 이름 하나하나 혼자 불러보면서 왔다. 봐야지. 만나야지.


나는, 다시 써야겠다. 문장을 생각하고 적는 시간이 참 좋다. 사진은 아무래도 눈앞에 보이는 걸 뭐든 찍어야 될 모양이다. 밥값을 벌어야 하고, 내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니까. 문장이라도 든든하게 붙잡고 있으면, 마음이라도 버티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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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ju/-Weather

직업 사진가로 돌아간다








에이전시에 보낼 새 포트폴리오를 준비했다. 제품 사진도 있고, 음식 사진도 있고, 호텔 사진도 있지만 그래도 제일 많은 것은 인물 사진이다. 고르고 보면 내가 고른 사진의 인물 표정은 무겁다. 웃고 있어도 바닥은 어두운 것 같다. 나는 무거운 표정이 좋다. 사는 일은 어쨌든 종말로 가는 일방통행이다. 그 사이에서 얻는 작은 기쁨도 크게는 종말의 방향성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웃음 밑에도 어떤 비애는 깔려있는 것이 마땅하다. 역설적으로, 삶이 획득하는 아름다움의 상당 부분은 이 종말을 향하는 일방통행 때문에 생겨난다. 소설 모비딕.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종말을 향하는 비극 속에 담긴 아름다움을 잘 포착했기 때문이다. 이 비극과 아름다움은 수컷에게 어울린다고 한동안 생각했는데, 아마도 모든 사람에게 잘 맞을 것이다.



























반 년 가까이 글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 처음 몇 달은 준비 기간이었는데 마음은 글쓰는 일에 가 있었고, 나중 몇 달은 사진을 아주 접고 글을 썼다. 좋았다.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을 재료 삼아서 내가 세상에 내놓고 싶은 목소리를 마음껏 지르는 것이 참 좋았다. 내가 글을 정말 쓰고 싶어하고, 또 제법 쓸 줄 안다는 걸 이 몇 달을 통해 알았다. 


글을 쓰는 일은 즐거웠지만 일의 어떤 부분은 낯설고 힘들었다. 그래서 버티지 못 하고 쫓겨나듯 나왔다. 직업 사진가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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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ju/-Weather

마침 그 자리에 그런 빛이 떨어지고 있었다.





산 다녀왔다. 1년 만이다. 벽은 높고 무서웠다. 싱싱한 생채기 몇 개 얻어 왔다.


어제는 창고로 쓰고 있는 방을 정리했다. 식당과 여러 방에 나누어 둔 선반들을 모두 한 방에 모으자고, 아내가 말했다. 정리하면서, 더는 쓰지 않는 것들을 버렸다. 벽에 설치하는 옷장, 망가진 공장용 선풍기 같은 것들이다. 작업실 끝내면서, 언젠가 쓸 지도 모른다며 차마 버리지 못 하고 꾸역꾸역 가져온 것들이다. 1년쯤 지나보니 알겠다. 그것들, 쓸 일 없을 거다.





청혼할 때 썼던 아내 사진들을 발견했다. 연애하면서 찍어둔 사진들을 크게 프린트하고 액자에 넣어서 갤러리를 빌려 걸었었다. 프린트하던 날, 집에 있는 아내 때문에 몰래 할 수가 없어서 생각다 못해 화를 내며 내쫓았었다. 그렇게 쫓아내두고 얼른 프린트를 했었다.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 이야기를 하며 같이 웃었다.





결혼이 4년 되어가니까, 이 사진들은 5년 더 된 것들이다. 4년 된 아내가, 5년 전 아내를 본다. 사진들은 다시 창고로 넣지 않고 집 곳곳에 그냥 두고 보기로 했다. 오래 보관하려면 상자에 넣어서 잘 두는 것이 좋은데, 그러자면 좀처럼 볼 수 없다. 아내는, 그냥 망가질 때까지 꺼내두고 보기로 했다. 아마, 마루가 사진들을 가만 두지 않을 거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그때 자기는 참 예뻤다고 스스로 보며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아내 사진은, 쓰촨 청두에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마침 그 자리에 그런 빛이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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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

[책]나, 제왕의 생애

제왕의 생애 / 쑤퉁 / 문현선 / AGARA / 2013

원제. 我的帝王生涯 2005











원고 마감을 마치고, 쉬운 마음으로, 사실은 다음 번에 원고의 재료가 될까 싶어 붙잡은 책이다. 위화. 함께 현대 중국문학의 대표작가라는 소개는 허풍일 수도 있겠지만, 읽어 보지 , 라는 생각이었다. 재미있어서, 잡은 다음날 다 읽었다.


, 도입부터 힘이 있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부왕께서 승하하신 새벽에는 서리가 내렸고, 깨진 노른자 같은 태양은 동척산 기슭 뒤편에 걸려 있었다.



새는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소재다. 줄타기가 전면에 등장하는 소재라면 새는 완전히 숨은 것도 아니면서 완벽하게 전면에 나서지도 않는다. 수면에 꽃같다. 그런데 표지에까지 등장하는 것을 보면, 내가 새를 너무 가볍게 읽었는가.


소설은 나라의 왕이 적는 1인칭 서술이다.


적어두지 않으면, 아마 금방 잊을 것이다. 내용은 물론이고 읽었다는 사실조차 잊을 것이다. 급하게 읽은 책은 대부분 그랬다.


읽어 보니, 작가에 대한 평가는 전혀 과장이 없어 보인다. 이런 소설이라면 당대를 대표할 만해도 좋다. 다만 내가 모르고 있었다.


그의 소설은 몇 작품이 이미 영화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중편 처첩성군.은 공리가 출연한 홍등.으로, 부녀생활.은 장쯔이가 출연한 재스민 꽃이 피다.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캐릭터의 힘이 좋고 장면 서술도 탁월하다. 특히 색에 대한 표현도 좋아서 영화 제작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야기가 담고 있는 의미도 단선적이지 않고 단순하지도 않아서 재미있다.


노란색 비단 저고리가 순식간에 들오리의 피로 붉게 물드는 것을 보았다. 85


피로 얼룩진 새로운 섭국의 지도를 보았다. 섭국 지도는 원래 커다란 새의 모양과 비슷했는데, 부왕 때에 새의 오른쪽 날개가 동쪽 접경의 서국에 잘려나갔고, 대에 이르러서는 새의 왼쪽 날개가 사라졌다. 이제 나라 섭국의 영토는 죽은 새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새는 다시는 날아오르지 것처럼 보였다. 124


인간은 초초함과 공포, 거칠게 날뛰는 욕망으로 엮인 생명의 가닥을 잡고 있다. 누구든 끈을 놓으면 즉시 어두운 지옥으로 떨어진다. 나는 부왕이 끈을 놓음으로써 죽음에 이른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266


기뻐 날뛰며 옷소매를 끌고 ..

소맷자락이 그에게 질질 끌려가다가 결국 찢어지고 말았다. …

나는 그를 향해 나머지 소매 한쪽을 휘두르면서 마찬가지로 크게 소리쳤다. …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소매를 떨치는 것으로 충분했다. 모든 것이 각자의 날갯짓과 꿈일 뿐이었다. 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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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ju/-Weather

많이 연습하고 있다.




태풍 온다. 상하이로 바로 들이치지는 않고 저기 남쪽 푸지엔성 어디로 오는 모양인데 비구름은 상하이까지 몰려와서 여기도 비 온다. 늦은 퇴근길에 장비는 많고 우산은 없어서 택시를 타고 왔다. 아내와 마루도 친구네 놀러 갔다가 마침 좀 전에 들어와서 마루와 목욕했다. 내일은 새벽부터 촬영에 나서야 하고 오늘 꼭 쓰겠다던 원고는 결국 다 못 썼는데, 모처럼 정신은 말끔하다.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의 사진이 그렇다고 해서, 배워얄 것 같아서 시작하고 비슷한 느낌을 열심히 연습중이다. 많이 보고 기억했다가 거리에서 비슷한 느낌인 듯하면 찍어보고, 집에 와서 비슷한 색감과 톤으로 보정해 본다. 쉽지 않다. 십 년 가까이 내가 해 온 사진은 한 장 이미지 안에 다양한 선을 이용해서 요소들의 관계를 드러내는 종류였다. 그런데 인스타그램에 어울리는 사진은 병적일 정도로 직각 구도에 의지하고 톤은 희멀거니 밝게 탈색시킨 것들이다. 물론 배울 것도 많다. 덕분에 몇 년 동안 욕심냈었는데 만들지 못 했던 색감에 가까워서 이번에 많이 연습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돌아보면 나는 무심한 듯한 공간에서 불편하고 불안정한 호흡을 발견하는 사진에 더 애착이 간다. 이번 작업들을 통해서 내 사진은 새로운 영양분을 얻을 테지만, 완전히 옮겨가지는 못 할 것 같다. 다행이다. 지난 십 년의 사진에서 작은 줏대라도 세울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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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ju/-Weather

꼭, 쓴다





꼭, 쓴다.

달력에서 마감날짜가 사정 거리에 다가오면 마음은 미리부터 겁먹고 바쁘다. 이번 달에 써야 할 원고는 세 개다. 허공에 생각의 단서만 여기저기 펼쳐놓고 며칠이 가고, 적당한 사람을 섭외하고 실패하고 겨우 만나고 몇 마디를 주워 듣는데 며칠이 가고, 대충 할 말을 떠올리는 데 십수일 같은 며칠이 간다. 그리고 마감이 코앞에 온다. 좀 더 좋은 문장을 적고 싶다는 핑계로 결국 한 글자도 적지 못 한 채로 항상 여기까지 온다. 이제, 밤샘과 후회, 압박과 새벽빛, 도대체 성에 차지 않는 몇 줄의 문장이 뒤이을 거다.


꼭, 쓴다.

아직 마감이 3일 남았으니까, 오늘은 한 꼭지 글은 꼭 다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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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ju/-Weather

뭐, 딱히



뭐, 딱히 할 말이 있다고는 못 한다. 아내와 마루는 다 건강하고 우리 셋이 함께 있을 때 셋은 같이 웃는다. 오늘 날씨는 흐리다고 하고 나는 전화기에서 블로그 쓰는 연습을 한다. 이른 사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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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

주머니에 넣어 다니는 우주, 상하이 아라리오갤러리 <隐力 Invisible Force>


Invisible Force

작가. 니요우위倪有雨

전시. 2015. 09.05 - 11.01






아라리오 갤러리 상하이에서 새 전시가 시작됐다. 제목은 인리. 중국어 인을 찾아보면 비밀스러운, 숨은 등의 뜻을 가진다. 영문 제목은 Invisible Force. 아마도 보이지 않는다는 시각적 의미보다는 드러나지 않았다, 체감하기 이르다는 느낌이 더 어울릴 것 같다. 한글 제목을 붙여보자면 잠재하는 힘. 정도.






갤러리가 있는 헝산팡衡山房은 2014년에 새롭게 생겨난 예쁘장한 단지다. 갤러리, 카페, 브랜드 샵 같은 것들이 모여 있는 풍경은 상하이 곳곳에 있는 다른 몇 곳과 비슷비슷하다. 낡은 건물의 외관을 살리고 그 낡은 그럴듯함에 빚지고서 관광객을 꼬드긴다. 




단지 입구에 있는 컨테이너에 갖힌 코뿔소, 또는 코뿔소를 가둔 컨테이너는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앞서 전시했던 리후이의 작품이다. 3층 공간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던 녀석인데, 여기 1층 광장까지 무슨 수로 내려온 것인지 모르겠다. 전시장에 있을 때는 더 외롭고 낯설어서 불쌍했는데, 광장에 나와 있으니 당장이라도 컨테이너 철판을 뚫고 나올 것 같아서 반갑다. 코뿔소, 너 야생이었구나. 스타벅스 뒤, 붉은 철판 문은 여러 번 보아도 예쁘다. 고운 빨강이다. 아라리오 갤러리 상하이.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우주를 소재로 삼았다. 1층에 걸린 회화 작품 중에 오른편은 정육면체의 평면도다. 원하는 만큼의 우주를 접어서 정육면체로 만들면 주머니에 넣어다닐 수도 있을 거다. 무한의 우주가 당신 주머니에 담겨 있는 순간이라면, 도대체 품을 수 없는 크기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존재라면, 그런 존재가 마음 내키면 주사위 놀리듯 우주를 손 바닥 위에 튕긴다면. 또 어쩌면 더 작은 정육면체의 우주를 줄에 묶어서 선물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우주를 선물하고, 갓 태어난 아이에게 새로 탄생하는 우주의 육면체를 선물한다면. 맑은 날 오후 산책 같을 때는 우주를 삼켜볼 수도 있을 걸. 그럼 몸 안에서 우주가 피어날까. 작가의 작업은 시각적인 매력과 대중적인 이해의 통로를 모두 가졌다. 그래서 이 상하이 출신의 작가 니요우위는 요즘 잘 나간다고 한다. 1984년 생이니까 아직 어린 편인데 세계의 컬랙터들이 그를 주목한댄다. 이런 그림을 그리는 자라면, 어쩌면 어릴 때 천문관측 동아리라도 했을 법 한데, 상하이 작가라고? 상하이에서 별이 보이기나 했던가.













2층 작업도 신선하다. 작가는 밤하늘을 찍은 천문관측 사진을 여러 구획으로 나눈 다음, 같은 비율로 구획한 거대한 캔버스 위에 우주를 옮겨 놓았다. 거대한 작품은 영락 없는 밤하늘인데, 가까이서 보면 별 하나하나는 여러 크기의 서로 다른 자석을 붙여 둔 것이다. 아하, 이해된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엉뚱한 경고 문구가 적혀있다. 


“당신의 값나가는 시계나 심장 모니터링 장비를 작품 가까이 가져가지 마세요.”


이 주의깊은 경고를 차마 작품 옆에 적지 못 하고 계단 벽에 조심스럽게 붙여둔 갤러리스트의 조마조마함이라니.





3층이 마지막이다. 높은 천장을 가진 공간은 측면으로 빛이 들어와서 온통 환하다. 몇 점의 회화, 한 개의 운석 돌덩이, 한 줄의 실. 뭐 어쨌든. 순백의 공간에 들어선 검은 우주와 별, 그리고 은하다. 유한한 공간에 들어앉은 검은 우주의 인상을 뭐라고 쓸까. 우주가 들어와서 공간을 우주화했다고 쓸 수도 있겠지만 너무 나간다. 프레나임 안에 가두어진 우주라고 해도 그것이 격리나 고립 같지는 않고, 상상할 수 없는 크기를 구겨넣었다는 느낌은 좀처럼 안 든다. 공간 안에 걸린 우주 그림은 꼭 창문같아서, 저 너머에 무한한 우주가 있고, 운 좋게도 겨우 작은 구멍이 있어서 그곳을 들여다 볼 수 있는구나 싶다. 어쩌면 그것이 작가가 가진 힘일 수도 있다.



잠재하는 힘.이라는 제목은, 그러니까 방점을 찍는 이 힘.이라는 글자 때문에, 작가가 주목하는 것이 어쩌면 우주 자체라기 보다는 그 뒤에 감추어진 어떤 힘인가 싶기도 하다. 공간을 더 변호하면 좋을 것을. 우주는, 배경이냐?




아라리오 갤러리는 지하철 쉬지아후이역徐家汇站 13번 출구에서 가깝다. 한국 갤러리니까 당연 한국인 갤러리스트도 있다. 월요일은 휴관이다!





阿拉里奥画廊 ARARIO GALLERY SHANGHAI

# 7 Lane 890, Hengshan Rd, Xuhui District, Shanghai

上海市 汇区 衡山路 890 7

T +86 21 5424 9220

E-mail  info@ararioshangha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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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ju/-Weather

피를 머금고, 계단을 봤다






차마 그 자리에서 말을 못 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방심하고 걷다가 유리에 부딪치는 사람들. 어떻게 유리가 안 보이나? 


항주에 다녀왔다. 더운 날씨에 새벽 4시 반에 집을 나서서 밤 10시까지 운전과 촬영을 반복했다. 처음 생각과 달라서, 별로 가져가지도 않은 장비로 엉뚱한 것들을 찍어야 했다. 항주 주변의 위성도시 량주良诸라는 곳에 대형 부동산 개발회사가 만드는 고급 문화마을이 있다. 거기에 안도 다다오가 디자인한 건물이 한 채 있었다. 건물은 이제 막 공사가 끝나서 내부는 텅 비어있고, 사람도 없었다. 건물 옆 마당은 낮은 경사를 그대로 살렸는데, 마당 위에 올라가서 보면 그 경사에 걸친 직선의 길과 건물의 선이 묘하게 엇갈려서, 이 언덕의 높이와 언덕에 늘어놓듯 그린 길도 세심하게 의도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재밌네, 라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안도 다다오의 디자인이라는 말을 듣고 아하, 그 정도 급에서 다룬 거였구나, 싶었다. 노출콘크리트 벽면이 안도 다다오의 명함이기는 해도, 이제는 여러 곳에서 노출콘크리트 공법을 쓰니까 그것만으로는 그의 작품이라도 단정짓기는 어렵다. 


건물은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날카로운 예각으로 둘러싼 건물은 어느 모서리 하나 돌아설 때마다 다음에 무엇이 나올지 가벼운  기대가 생겼는데, 새로운 각에서 보이는 모습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마침 바깥으로 큰 계단에 보였다. 멋진 계단이었다. 얼른 보려고 나가는데, 꽝! 당연히 열린 문인 줄 알고 나갔는데 거기는 유리였다. 제법 세게 부딪쳐서, 위 아래 입술이 다 터졌다. 좀처럼 이런 실수는 안 하는데. 피를 머금고, 계단을 봤다. 좋더라. 그래도 나는 피를 봤으니까, 올라가지는 않고 그냥 보고 돌아나왔다.


좋은 건물은, 어쩔 수 없다. 작품이다. 좀 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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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ju/-Weather

생각이 툭 끊겼던 그 대목을









어제는 종일 폭우가 쏟아졌다. 아침 출근 길에 집 앞 사거리가 침수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두어 시간 있다가 다시 가려니 물이 더 불었다. 무릎까지 물에 빠지며 겨우 길을 건너서 지하철을 탔다. 종일 바지에서 냄새가 났다. 저녁 돌아가는 길에도 물은 완전히 빠지지 않았다. 아침 길에 본 침수된 자동차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오늘 아침에 날이 갰다. 길 가득, 어제 물 넘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만년필로 글씨 쓸 때, 종이의 질감에 민감해진다. 먹을 먹는 종이와 튕겨내는 종이가 다르다. 잉크의 굵기가 만드는 획의 질감도 있다. 펜이 흐르는 속도가 획에 그대로 드러난다. 글자마다에서, 생각이 툭 끊겼던 그 대목을, 만년필 획은 기록하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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